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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왜 이재명 지지자는 하나같이 폭력적일까?

 

제가 한때나마 이재명을 문프 다음의 차기주자 중의 한 명으로 생각했었는지,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돌아보면 이재명 지지자의 폭력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인용문은 제가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당내경선과 촛불혁명을 지켜보며 개념화한 세종태종론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했으니 이재명 지지자들은 얼마나 더했겠습니까?

 

 



현재의 대한국민은 혁명 기간이라 그렇지 심층적 이념분포는 중도보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대통령은 태종 같은 강성 리더십보다는 세종 같은 포용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신자유주의적 헬조선에서 탈출하려면 드골식 청산(권위주의 독재로 귀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실제 드골도 그렇게 변해 탄핵에 몰리기 직전 사임으로 정치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체제혁명의 완수로 이어지려면 이념분포가 너무나 불리합니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은 세종의 이미지가 강하며, 지지기반이 탄탄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올라 이념분포를 진보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점진적이지만 누적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득권의 저항은 탄탄한 지지기반으로 상대하고, 중도·무당층에게는 세종적 리더십으로 다가가 안정적인 변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밉니다. 그렇게 이념분포를 진보적으로 바꿔나갑니다


이런 환경에서 진보적 태종이 등장합니다. 이념분포와 여론환경이 변화했고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세종의 뒤를 이은 태종은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허락하는 한에서 혁명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태종이 아니라 21세기에 맞는 태종을 말하는 것이지요. 세종 치하에서 살아남았지만 많이 약해졌고 상대적 소수로 전락한 기득권세력과 시장 우파의 극렬한 저항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그런 태종의 리더십 말입니다.



모든 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세종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인 태종이 왕권을 흔들어대던 수많은 왕족(자신의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마저 쫓아냈다)과 외척, 개국공신 등을 모조리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흘린 엄청난 피로 인해 조선의 왕권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세종이 조선이라는 신생국가를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문프를 세종으로, 이재명을 태종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재명의 대권이 현실화되면 그 동안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했던 주류 기득권을 잔혹하게 처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피가 철철 넘치는 복수를 원하지 우아한 복수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폭력혁명(원래는 프루동이 『빈곤의 철학』에서 개념화했는데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을 써서 조롱하고 짓밟음으로써 지적재산권을 빼앗아왔다)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이재명 같은 폭력적인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만들면 그에 준하는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문프의 적폐청산 범위와 속도, 방식, 강도 등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들은 뼈와 살을 발라내는 적폐청산을 원합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민주노총이 그를 제외한 채, 문프와 가깝다고 알려진 민주당 지역단체장 후보들의 유세를 폭력적으로 방해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동착취를 무한대로 부풀려 폭력혁명에 정당성을 부여한 마르크스의 교리가 이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착취를 당했다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음에도, 그래서 시민불족종이 비폭력을 지향함에도 이들은 폭력혁명에 준하는 복수를 원합니다.

 

 

이들은 이재명의 비겁함도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에 오르면 다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재명의 폭력성에 광적인 호응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세종은 필요 없고 오직 태종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재명이 대통령에 오르면 노동자의 천국이 열릴 것이라 믿으며, 북한의 좌파 전체주의 독재와 힘을 합치면 노동자의 유토피아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이 싫다는 이유로 북한과 중국을 옹호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폭력으로 귀결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들이 대변하는 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10~20%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자신들은 완장 찬 전위로써 하위 99%를 선동해서 잔혹한 복수를 감행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재명이 천하의 패륜아이자 범죄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둘 수 없는 것도 세상을 뒤집기 위함입니다.

 

 

이재명을 정치에서 퇴출시켜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자들의 폭력성이 불러올 잔혹한 복수극과 그에 수반되는 피바람입니다. 푸코와 촘스키가 첨예하게 대립한 대담에서도 나왔듯이, 노동자의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 일정 수준(엿장수 맘대로다!)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폭력 옹호론이 이재명 지지자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이재선씨와 김사랑, 김부선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권 유린과 폭력 자행, 공갈협박과 고소고발이 남발하는 것도 폭력혁명의 대체제로 이용된 것뿐입니다. 조폭과의 연루설이 놀라울 것도 없고요. 저 또한 잔인할 정도의 적폐청산을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 이재명 지지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꿈꾸었겠습니까? 이들에게는 정의와 도덕이란 몸에 맞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옷과 같습니다, 이재명과 그의 부인처럼.

 

 

이재명을 퇴출시키기 위해 남경필을 찍어도 되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