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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교황이 돌아간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고 서민적인 성향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습니다. 역대 교황 중에 이처럼 소탈한 분도 없었지만, 빈자의 성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교황의 새로운 이름으로 정한 분도 처음입니다. 교황의 성품과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발언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미혼모 자녀의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에게 "사람들과 구원의 길 사이를 갈라놓는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하며,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교회는 거부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오늘날 초국가적테러와 시장경제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공동선이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며 "바티칸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에 관해 국제법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교황은 이 땅의 약자들을 만나서 축복할 것이며, 항상 낮은 곳으로 다니셨던 예수처럼 교황도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을 치를 것입니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사실 필자는 84년대에 한국에 방문했던 최초의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2세를 만나기 위해 각 지구에서 선발된 청년 대표로 장충체육관서 일어나 교황을 향해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문제를 소리쳤습니다. 장내는 일순간 술렁거렸지만, 안기부 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 해당 청년을 연행하려 했습니다. 분위기가 팽팽해지며 그 청년이 끌려나가면 우리라도 말려야 하는지, 그래도 교황이 지켜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우 복잡했는데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청년을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행사 때였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갔는 듯했으나 3부행사가 진행됐을 때 자리를 비운 그 청년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물론 교황이 행사가 끝난 후에 선처를 호소해 풀려났지만, 그 이후로 청년이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언론이 완전히 통제된 상태라 그 후의 일을 추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두환 군부독재 하에서는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서 많은 일들을 하며 큰 희망과 위로를 주고 갈 것은 확실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7월재보선 이후의 정국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붕괴했고, 방송들의 선정적인 과잉보도로 상당수 국민이 세월호 피로감에 젖어들었고, 방송들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과 각을 지려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JTBC도 힘이 딸리는 형국이고, 뉴스타파는 권은희 관련 의혹 보도 이후 다른 독립언론들의 영향력까지 끌어내리는 악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언론의 본질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던 KBS는 조금씩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고, MBC는 종편화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TV조선과 채널A는 북한전문방송과 유병언 전문방송 및 새누리당 방송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MBN은 모든 뉴스를 선정적으로 변형시키는 해적방송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통신사인 뉴스아이는 종편이 다루지 않는 정부 편향성 보도들에 열을 올리고, YTN은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내용은 단신처리하고, 유리한 것은 부각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최근 전국을 여행했던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방의 음식점은 거의 다 TV조선을 틀어놓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용인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시민단체는 이미 힘을 잃은지 오래고, 아무런 아젠다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들도 현재의 질서와 체제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정부를 비판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이런 현실에서 대한민국을 보다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정의롭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레임덕에 처했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거리 몇 곳에서만 촛불을 들 수 있을 뿐이서, 집권세력은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네티즌들의 아우성이 넘쳐나지만, 비정치적 사안에서만 효과를 볼뿐, 기존의 체제를 개혁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린세상에서 닫혀버린 여론만 무수히 사이버 공간을 휘젖고 다니며 격한 감정만 배설하고 다닐 뿐입니다.  



군대의 문제와 폐해에 대해 많은 것들이 방송과 언론을 타고 있지만, 군대라는 조직의 존재 목적을 생각하면 변할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구축되고 군이 완전히 민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군대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현 집권세력과 족벌언론들은 북한의 호전성예측가능한 대응을 먹고 사는 관계로 지금보다 나아질 것을 바라는 것은 기대난망입니다.  





그렇다면 야권과 시민단체, 국민들을 한껏 들뜨게 만든 교황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 다음에는 어떤 전략이 있는지, 야권이 총 궐기해 집권세력과 목숨을 건 건곤일척의 투쟁을 할지,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진보 정당들이 국민을 움직일 수 있는 천하의 묘책을 덜고나올 수 있을지, 너무나 큰 실책을 벌였고 회복불가능한 피해를 제1야당에 입혔지만, 안철수에 이어 박영선까지 모두 다 식물 의원으로 만들면 제1야당의 야성과 리더십은 어디서 찾을지, 모든 것이 안개 속으로 기어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합니다.



교황이 세월호 참사와 군대 폭행살인 등에 대해 지속적인 발언을 할 수 없는 일이며, 정진석 추기경만큼 보수적 성향이 강한 염수정 추기경이 강우일 주교처럼 집권세력과 대척점에 설 리도 없습니다. 교황 또한 추기경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어서 교황이 돌아간 다음의 천주교 지도부가 60~80년대의 모습을 되찾을 수도 업습니다. 우경화될 대로 우경화된 현재의 한국에서 진보적 가치를 얘기한다는 것은 일부 사이버 공간이나 인문학 강의에서나 가능합니다. 



교황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국내에 있을 때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기내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으니 그때서야 교황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강우일 주교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를 통해, 세월호 유족들을 통해, 하이에나 같은 언들을 통해 먼저 흘러나올 수는 있지만, 현 집권세력은 그것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현 집권세력의 폭주를 저지해야 하는 정당과 단체 등에서는 교황이 떠난 뒤에 어떻게 하겠다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황이 박근혜 머리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회의 다수당을 이길 만큼의 투표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황의 발언은 비교할 수 없는 위로가 되고, 끝까지 투쟁할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줄지언정, 현 집권세력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대안과 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들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야권과 지식인들이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란 그럴 때만이 존재의 이유를 획득할 수 있고, 정당정치가 유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됩니다. 종교가 정치를 대신할 수 없고, 교황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황의 방문이 이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밀알이 되게 하려면, 그에 앞서 야권이 비옥한 토지가 돼야 합니다. 



제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교황이 방한 중에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 이후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황의 방안 중에 확실한 것을, 그래서 그분이 떠난 뒤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내고, 국민이 그것에 도움받아 세월호 특별법을 유족의 뜻대로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