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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교황의 뜻을 단칼에 잘라버린 그날의 추기경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 성향이 강한 성직자다. 교황의 이름으로 빈자의 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처음 채택한 것에서, 현재의 경제 모델을 ‘죽음의 문화’라고 한 것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주요 뉴스가 되지만 노숙자가 죽으면 뉴스도 되지 못한다는 것에서 교황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시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사실 예수가 3년간의 공적 활동(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에서 보여준 것들이란 현대 정치학으로 분류하면, 급진적 자유주의자나 진보주의자에 해당한다. 예수를 따랐던 천주교의 초기공동체가 오언의 사회민주주의, 블랑키와 헨리 조지의 사회주의,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자유의 왕국’과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수는 다시 나오기 힘든 혁명가였고, 니체와 마르크스는 이 부분에서 예수에 대한 이해(엄밀히 말하면 사도 바울)가 부족했다. 



성경을 보면 현재의 자본주의와 상충되는 내용이 즐비하게 나온다. 이런 내용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모두가 선민이며 평등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와 동일한 것들로 넘쳐난다. 칼뱅의 청교도정신이라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막스 베버가 주목했던 청교도정신과 자본주의의 연관관계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신자수가 늘고 교회가 커지면서 종교 특유의 지위체계가 확립되고, 신자 관리와 교회 유지를 위한 세금(십일조+)을 거둬들이기 위해 거대한 관료제체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세속적 욕망과 교세 확장(창조주 야훼가 인간에게 내린 첫 번째 축복인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라'라는 것을 악용한)에 집중하는 바람에 천주교가 지독한 권위주의적 보수의 성향을 띠게 돼서 그렇지, 예수의 가르침은 진보적 가치로 넘쳐난다. 예수의 가르침이 사랑과 평등으로 압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를 닮았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고 독려하고 있다. 교황이 방한했을 때 세월호 유족, 사회경제적 약자, 장애인 등을 계속해서 만나서 사랑을 베풀고 안아주고 보듬어주었던 위로하고 격려했던 것도 낮은 곳으로만 임했던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에 이런 교황을 만날 수 있었다는 엄청난 행운이고 축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참사 유족들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으며, 한국 교회와 목자, 신도에게 거리로 현장으로 나가 정치에 참여하라고 말했던 이유도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생명의 문화'로 나가라고 했고, 그 정반대에 위치한 신자유주의적 팽창을 대표하는 ‘죽음의 문화’와 맞서 싸우라고 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라고 했고, 세상의 권력과 불의, 부정의와 폭력 앞에 주저앉지 말고 저항하라 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말에 열광하면서 교황앓이를 하는 동안, 세월호 특별법의 미래를 조금은 낙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기도 했었다. 예수가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세상의 반석으로 삼은 교황의 말씀에 따라 추기경부터 주교들, 신부와 수녀, 수도자와 신도들이 ‘죽음의 문하’와 맞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태리라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교황의 말이 예수의 가르침에 일치함에도, 선두에 서서 정의와 사랑을 실현해야 할 염수정 추기경이 단 두 마디 말로 이 모든 것을 무효화시킨 것을 보며 필자의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염 추기경은 ‘세월호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피해자 유족에게 양보하라는 망언까지 더했다. 보수 성향 중에서도 꼴통에 가깝다는 염 추기경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망언이자, 위대한 선교자들이 지킨 한국천주교의 역사에 치욕을 남겼다.



한 마디로 해서 교황이 우리의 국민에게 준 그 많은 사랑과 위로, 배려와 격려를 통해 정의의 실현과 저항의 동력을 구축해주었지만, 염수정 추기경의 기자회견 한 방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교황 방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명백한 퇴행이다. 염 추기경의 말에 힘을 얻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세월호특별법 무력화에 더욱 강하게 나올 것이고, 야당은 지리멸렬할 수박에 없다. 



염수정 추기경의 기자회견 한 번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교황의 말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으로 향하는 희망과 저항과 정의의 실현이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승에서의 삶을 다한 뒤 어떤 얼굴로 예수를 만나려는 것일까? 예수는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지 640일이 덧없이 흘러간 지금이라도 염수정 추기경은 그때의 기자회견에서 누구에게 돌을 던졌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