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2부 4장 ㅡ 천하혈난지세3, 절대에 대한 일반적 오류

 

 

 

 

정, 사파를 가리지 않고 동북삼성(東北三省)의 모든 문파들은 하나의 공통된 꿈이 있다. 중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강호로의 진출이다. 그곳에는 팔괘가 나온 황하(黃河)가 있고, 글이 나온 낙수(洛水)가 있다. 역사의 산실인 장안이 있고 낙양도 있다. 웅장한 태산도 있고 아름다운 동정호도 있다. 전설의 복희(伏羲)와 신농(神農), 황제(黃帝), 제준(帝俊)이 나온 대륙의 역사가 그곳에 있다. 길림성(吉林省)과 요령성(遼寧省), 흑룡강성(黑龍江省)에 있는 모든 문파는 강호로 진출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동북삼성에서 그런 꿈을 이룰 수 있는 문파는 정파와 사파를 통틀어 오직 복마전(伏魔殿)만이 있을 뿐이다. 동북삼성의 흑룡강성에서 작은 문파로 시작해 동북삼성 전체를 호령하는 사파제일세력으로 성장한 복마전은 지난 100년 동안 강호 중심에 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세를 넓히고 내부의 힘을 강화하며, 강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승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사파제일세력인 천마성을 넘어 강호의 패자가 되는 그날을 위해 복마전은 오늘도 칼을 갈고 있다.

 

 

 

 

천마성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복마전의 중심인 마혼집성전(魔魂集成殿)! 복마전의 중심인 이곳의 불빛은 여전히 휘황찬란했지만, 이곳에서도 천마성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천마성의 상대가 초마인 진무결과 그의 조력자들이었다면, 이곳 복마전의 상대는 천무대제(天無大帝) 검강인과 천상천의 고수들이었다.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법도 한데…”

 

 

 

 

검강인이 전설의 미남인 반안을 떠올릴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냉소 어린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천년 전설의 경쟁자가 아니랄까 봐, 검강인도 초만인 진무결과 거의 똑 같은 말을 했다. 그의 검은 한 사람의 목젖에 닿아 있다. 그 한 사람은 동북삼성의 맹주로서 마공의 경지가 최절정에 이른 복마전주 흡혈마제(吸血魔帝) 추성한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목젖에 닿아 있는 검의 주인, 검강인을 바라봤다.

 

 

 

 

“…”

 

 

 

 

추성한은 검강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상대는 반 시진도 안 돼 복마전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전설의 주인 천상천주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추성한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무인이 아닌, 신의 경지에 이른 고금제일의 절대강자이다.

 

 

 

 

추성한은 그가 한 말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복마전주의 지위를 그의 부하인 옥진결에게 넘기라고 한 것은 자신의 퇴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단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상대가 천상천주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를 맞상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복마전의 주인을 바꾸겠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상대는 전설의 주인이다. 그를 상대로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보자는 허튼 희망도 갖고 있지 않다. 그가 복마전주의 자리를 지나가는 개에게 주라고 해도 줄 판인데, 추성한은 천년 만에 강호에 출도한 천상천주가 왜 하필이면 복마전주의 자리를 옥진결에게 넘기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복마전 전체를 취하면 될 일이거늘.

 

 

 

 

‘제기랄, 그냥 자신의 수하로 들어오라고 하면 될 일인데.. 전주 자리를 왜 넘기라는 것인지?’

“…왜? 천상천이, 복마전주 자리를 원하는 것인지…?”

 

 

 

 

추성한은 최소한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천상천이 천년 전설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무림을 접수하겠다면, 그런 변화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에 맞서 싸우는 것은 기름을 이고 불길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은 모든 강호인들이 알고 있는데, 그들의 능력에 비하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복마전 전주 자리를 노린단 말인가? 추성한은 목젖에 닿아 있는 검 때문에 제대로 말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씨부럴, 날카롭기는 더럽게 날카롭네. 천년 동안 검만 갈았나? 침만 삼켜도 피부가 갈라지니, 제기랄!!’

 

 

 

 

추성한은 죽음을 눈앞에 뒀고, 평생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죽는 이유라도 알아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 깊은 곳에서 삶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지독한 억울함에 오기도 생겼다. 해서 용기를 끌어올려 전주 자리를 넘겨줘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물어보려 시도했다.

 

 

 

 

“왜, 하필 전주..”

“그것까지 알 건 없고. 그냥 신물과 신패만 내놔. 그러면 돼, 넌.”

 

 

 

 

검강인이 추성한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냉혹하게 말했다. 그냥 복마전주를 상징하는 것만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복마전주 추성한이 이승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이 그것이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말라는 뜻이기도 했고.

 

 

 

 

“씨팔! 내가 왜, 헉!”

“씨팔?”

 

 

 

 

검강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검을 앞으로 밀었다. 그의 검은 추성한의 목젖을 뚫고 들어갔다. 추성한은 검강인의 검이 자신의 목을 파고들자, 하나의 바늘에서 시작해 전신을 가를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평생 처음 느끼는 날카로운 통증이었고, 비명은 그것에 대한 자동 반사였다.

 

 

 

 

“크악!!”

“어디에 있느냐?”

 

 

 

 

검강인이 추성한의 비명을 무시한 채 재차 물었다. 이번에도 말하지 않으면 목젖의 반까지만 들어간 검을 그대로 관통시키겠다는 뜻이 더욱 비릿해진 그의 미소 속에 담겨 있었다. 추성한은 비로소 죽음이라는 개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런… 것이었나? 컬컬, 그 동안 내 마도에 죽어갔던 놈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인가? 이런 거였나? 컬컬, 제기랄. 허나, 그래도 난 복마전주다. 천하의 추성한이란 말이다.’

 

 

 

 

추성한의 눈빛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밀어내는 결기가 언뜻 스쳐갔다. 그의 목젖에서 그제야 한 방울 피가 검날을 따라 흘러내렸다. 검의 날카로움도 날카로움이지만, 검을 목의 반까지 찔러 넣으면서도 한 방울의 피만 흐르게 만든 검강인의 검을 다루는 경지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의 피가 추성한에게는 가장 확실한 죽음의 증거였다. 검날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바닥에 부딪치며 일으킨 소리가 추성한에게는 벼락처럼 들렸다. 생과 사의 거리가 종이 한 장 차이만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추성한은 피할 수 없었다.

 

 

 

 

‘클클, 70이면 살만큼 산 것인가? 한 방울의 피에 죽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니..’

 

 

 

 

추성한은 한 방울의 피가 바닥에 튕겨 조그만 파편들로 공간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자 죽음이란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추성한이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자, 체념에서 피어나는 한 가닥 변화가 그를 최후의 선택으로 이끌고 갔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러 순간적인 생기가 찾아오는 회광반조(回光返照)와 비슷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동반자라도 있어야지.’

 

 

 

 

그렇게 삶을 내려놓자 추성한은 살아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결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살아났다. 반면에 검강인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추성한의 눈빛에서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보편적인 체념의 표상만 봤다. 삭으러드는 빛의 형태, 검강인이 본 추성한의 눈빛은 분명 체념을 의미했다. 그는 추성한이 순순히 복마전의 신물과 신패를 내놓겠다는 뜻으로 판단했다. 그 작은 차이가 추성한에게 필생의 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같이 가자!’

“놈! 파쇄체(破碎體)!!”

 

 

 

 

추성한이 자신의 몸을 산산조각 내 근거리의 상대와 함께 죽는 동귀어진의 절대초식인 파쇄체를 펼쳤다.

 

 

 

 

“끄륵!”

 

 

 

 

헌데 이상했다. 추성한은 자신의 목에서 성대를 파고 흘러나온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에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은 분명 파쇄체를 펼쳤는데, 펼친 게 분명한데, 그래서 산산조각 난 몸의 파편들이 수없이 많은 강철이 돼 상대의 온몸에 박혀야 했는데, 그전에 자신의 목을 관통한 검이 종이를 자르듯 밑으로 내려와 자신의 몸을 둘로 나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추성한은 부릅뜬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은 자신에게 향한 것이기도 했고 상대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두 개로 갈라진 몸의 여러 부위에서 조각난 내장들과 피가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왔다.

 

 

 

 

‘파쇄체가 제대로 펼쳐지기 전에..’

 

 

 

 

검강인의 검이 자신의 몸을 두 개로 절단했고, 그 다음에서야 파쇄체가 펼쳐진 것이었다. 그래서 파쇄체의 위력이 두 개로 절단된 자신의 몸 안에서만 일어났고, 그 결과 조각간 내장과 그에 따른 선혈이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파쇄체가… 펼쳐지지 않았군. 어! 근데 이건 또 뭐야?!!!’

 

 

 

 

추성한은 자신의 몸이 둘로 갈라진 상태에서 정말 희한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몸이 목 아래로 둘로 갈라졌기에 이미 죽음의 영역에 든 것이 확실한데, 지랄 맞게도 여전히 하나인 뇌는 두 개의 눈에 들어온 형상들이 신경을 따라 전해진 형상들을 인식했다. 추성한은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누구도 하지 못했을 특이한 경험을 하나 했다. 뇌가 인식한 형상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인식했다는 기억만은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떠돌고 있었다.

 

 

 

 

쿵! 쿵!

 

 

 

 

반으로 나뉜 금강불괴의 몸 덩어리가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까지 그의 기억은 유지됐고, 부릅뜬 두 눈에는 반으로 갈라진 추성한의 몸과 조각난 내장과 이리저리 퍼진 선혈이 어려 있었다.

 

 

 

 

제기랄!!!!!

 

 

 

 

“이곳, 마혼집성전의 모든 곳을 뒤지되, 신물과 신패가 나오지 않으면 복마전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실시하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크크크, 복마전이 박살나네. 저거 봐, 혈영기마대와 복마혈사대 놈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것을! 크크크. 검강인 저놈, 천상천양천단을 복용한 후 무공이 엄청나게 늘었어. 이제는 거의 거칠 것이 없는 놈이 됐어. 크크크, 재미있겠어. 앞으로의 일이 재미있겠어, 안 그래 육력(六力)?”

 

 

 

 

천마성과 마찬가지로 세외문의 인물 두 명이 복마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력’자라는 돌림을 가진 이들의 감시능력은 무림 전체를 관통하고도 남을 듯, 전설의 주인공인 두 문파의 움직임을 세세한 부분까지 꿰뚫고 있었다.

 

 

 

 

문제는 류심환이 말한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에 이들이 포함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이로써 제천과 그의 수하들의 등장과 함께 세외문이라는 상상을 불허하는 신비문파가 또 다른 변수로 등장했다.

 

 

 

 

“그래, 재미있는 싸움이 될 거야. 나와 붙는다면. 예전에야 상대조차 되지 않는 놈이었지만, 지금은 나와 대적할만한 정도까지 이르렀어. 클클클! 자네가 양보하면 내가 상대하지, 어때 오력(五力).”

 

 

 

 

육력이 오력에게 전설의 주인공인 천상천주 검강인을 자기 몫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천의 음기와 천상천양천단을 복용한 후 최고의 경지에 올라선 검강인을 자신과 동급으로 놓았다. 도대체 이들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이런 광호한 말을 서슴없이 내놓는단 말인가?

 

 

 

 

“검강인을 양보하라고? 글쎄, 복마전 놈들을 도륙하는 속도로 볼 때 너에게 양보하기 힘든 놈이야. 조금만 더 보고 결정하자. 이런 놈과 싸울 기회가 지난 천년 동안 세외문 누구에게도 없었잖아? 쉽게 양보하기 힘든 놈이야, 지금의 검강인은. 크크크.”

 

 

 

 

천상천주 검강인을 서로 상대하겠다는 두 사람들 중 숫자상으로 볼 때 오력이 사형 정도는 되는 것 같았으나, 오가는 말로 미루어보면 숫자가 그렇게 구속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야, 한 번 양보하면 어디 덧 나냐?”

“당연하지, 너라면 전설의 반열에 오른 놈을 상대하는 재미를 쉽게 양보할 수 있겠어?”

“하긴, 저런 놈과 겨루는 재미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일이니. 좋아, 네 말대로 좀더 지켜본 후 누가 상대할지 결정하자.”

“크크크, 그래야지. 헌데 검강인 저놈, 손속이 정말 지독하네.”

“그러니까 역천도 한 것이지. 아무튼 잔인하면서도 대단한 놈이야. 죽은 검강천에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어. 천년 전설이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니야.”

“그래서 제천이 더욱 무서운 놈인 거야. 제천이 세외문의 최대 적수인 이유가 천년 전설에 있는 거야.”

“맞아, 제천을 넘어야 세외문이 영원한 전설에 오를 수 있어. 문주의 귀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는 제천의 눈과 귀의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정말 긴긴 기다림이었어.”

“제천.. 그 놈이야 말로 진정한 천년 전설의 주인공이지. 이제 가자. 더 이상 지켜볼 것도 없으니까. 가서 제천에게 오늘의 일을 전해줘야지, 엿 같지만.”

“그래, 가자. 일방적 도륙은 재미없으니까. 복마전, 꽤 많이 준비하더니 단방에 갔어. 차원이 달라. 아무튼 무림이 한 동안 시끌시끌하겠어. 클클클!”

 

 

 

 

오력과 육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송에서 공기 같은 신형이 떨어져 나오며 허공중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천마성에서 삼력과 사력이 보여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사라진 것과, 허공에서 나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동질의 방식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의 무공은 자연의 원리를 완벽히 소화해낸 것이 분명했다. 이런 경지의 경공은 어떤 문파의 역사에도 나와 있지 않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완벽한 신비의 문파, 세외문! 그들의 힘은 네 명의 무인이 보여준 경공만으로도 천년 전설의 두 문파를 능가하는 문파임이 분명했다. 천년 동안 전설상에만 머물렀던 두 개의 문파가 모습을 드러낸 곳에 이들이 함께 했다. 제천에 이어 세외문의 등장까지, 이 두 개의 변수는 천년의 전설을 완벽하게 뒤바꿔버릴 만큼 미증유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천마성이 초마인 진무결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하던 바로 그 시각에 이곳 복마전에서도 천년의 전설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일들이 진행됐고, 그것을 세외문의 네 고수가 지켜보고 있었다. 무림이 격랑으로 빠져들며, 천하가 혈난의 시대로 접어드는 그 처음의 일들이 천마성과 복마전에서 일어났다, 천년 전설의 두 주인공에 의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의 고민이 깊어갔다. 천상지무를 완성해 이제는 그의 무공이 충만할 데로 충만해졌는데,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劍訣)인 파천무극일원결(破天無極一原訣)을 운용하면 천상무극진기와 자꾸 충돌을 일으켜 운결 자체를 유지할 수 없었다. 무영은 이런 현상이 일어나리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상하다. 왜, 충돌하는 거지? 본류가 같은데, 그래서 상극도 되는 것인데 왜, 자꾸 서로 밀어내지? 이유가 뭐지? 정말 이상해.’

 

 

 

 

무영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류심환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두 무공은 분명 본류가 같았다. 아저씨가 이것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저절로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도 확실했다. 두 개의 무공을 서로 반대로 운결하면 하나의 출발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에서 이는 분명히 입증됐다.

 

 

 

 

헌데 상극에서 출발해 하나의 본류로 합쳐지는 두 개의 진기가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만 운용하면 천상무극진기와 태극무한진기가 충돌을 일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가 없는데, 항상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만 떠올리면 두 진기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진기끼리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기본 검결만 읊으면 태극무한진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천상무극진기를 공격했다.

 

 

 

 

그렇게 무영은 보름 동안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개의 진기가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영은 지난 보름 동안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온갖 방식으로 실험을 계속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게 나왔다.

 

 

 

 

‘더 이상 경우의 수는 없어. 상상 가능한 모든 수를 적용해봤는데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무영은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생각하고 생각했다.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적용해봤지만 기본 검결만 운용하려 하면 두 개의 진기는 상극으로 돌변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곧바로 주화입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영은 뇌를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하려 하는 순간에 떠올랐다.

 

 

 

 

‘그래, 이상하다고만 할 일이 아니었어. 계속해서 일어났는데 그것을 부정하려고만 했으니 답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 그래, 일단 인정하자. 문제를 풀려면 현상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그 밑에 자리한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법, 기본 검결부터 다시 살펴보자. 그 다음은 태극무한진기, 그렇게 하나씩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자. 상극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인 이상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무영이 두 개의 진기가 충돌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파고들어 원인을 찾아내려는 방식을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기존의 방식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면, 아예 정반대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백지상태에서 출발해 두 진기가 충돌나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 같았다.

 

 

 

 

‘그 동안의 방식이 틀렸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어. 지금까지 이루어온 방식이 언제나 옳았기 때문에 다른 관점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 수도 있어. 최고의 경지에서도 풀 수 없다면,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무엇을 얻을 수는 없지 않겠어? 어쩌면 나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 언제나 옳았으니,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았던 거야. 아저씨가 끝에 이르러 그 다음이 닫혀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시작으로 가는 하나의 끝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한 말이 이것을 뜻한 것일 수도 있어. 인식의 고착화만큼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도 없다고도 했었어, 아저씨가! 그래,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어.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이에 이른 무영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문제의 현상을 파고들었다. 그는 충돌 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았다. 두 진기의 접점이 아니라 그 출발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도중에 막히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출발했고, 그러고도 막히면 막히는 지점에서 생각이 가는대로 사유를 풀어 놓았다. 어떤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을 운용하면 멀쩡하던 두 진기가 충돌을 일으키는 현상을 완전히 분해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현상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였을까, 무영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구라도 너무 쉽게 빠지는 일반적인 오류에 대한 것이었다. 고수들이 쉽게 빠지는 너무나 일반적인 오류에 자신도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절대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영은 천상지무를 대성했기 때문에 가장 일반적인 오류에 빠졌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거야. 내가 빠진 함정이 일반적 오류의 전형이었어.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에 버금가는 절대무공이라는 것 때문에 당연히 기본 검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한 것이 그간의 오류였던 거야. 그래,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이 완벽하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문제는 분명 기본 검결을 운용하면 일어났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완벽한 무공이지만, 두 개의 무공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나에겐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 그것에서 출발하자.’

 

 

 

 

무영은 절대에 대한 일반적 오류, 완벽한 것은 어떤 결점도 없다는 선입견부터 버렸다. 그는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에 담겨 있는 상승무공의 원리부터 찬찬히 들여다봤다. 축검기(蓄劍氣)에서 발검기(拔劍氣)까지 기본 검결의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원칙도 없이 생각이 가는대로 해체와 종합을 거듭해서 해보았다.

 

 

 

 

하지만 무영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과정 속에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무영은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에서 어떤 문제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태극무한진기와 기본 검결과의 적합성 여부를 검토해보자. 기본 검결은 진기를 기반으로 해서 운용되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 이번에는 이 부분을 분해시켜 다시 조립해보자. 먼저 여기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무영은 태극무한진기를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았다. 이렇게 해서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것이다. 두 진기와 기본 검결과의 관계를 차례로 분석해 볼 것이고, 그 다음의 것들도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되짚어 볼 것이다. 어떤 정해진 끝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능성의 세계를 무한대로 넓혀놓았다. 영원히 그런 순환과 비약, 분해와 조립, 해체와 융합, 단절과 결합에 갇혀 있을지라도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따라가볼 생각이었다.

 

 

 

 

이 시점이 무영이 폐관에 든 지 삼년 반을 막 지나던 순간이었다. 당연히 삼영이 폐관에 든 지도 삼년 반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