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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드라마틱한 김효주의 재역전우승



15번 홀까지 김효주의 우승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여자골프 사상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소렌스탐과 이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캐리 웹이 무서운 기세로 쫓아왔지만, 김효주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 2타차 리드가 역전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헌데 16, 17번 홀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추호의 흔들림도 보여주지 않았던 김효주가 실수를 연발했고, 케리 웹은 관록의 샷을 보여줬다. 그 결과는 1타자 역전으로 귀결됐다. 두 홀에서 무려 3타의 차이가 두 선수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제 18번홀 한 홀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케리 웹의 우승이 결정적인 것 같았다. 제5의 메이저대회로 승격한 에비앙 챔피언십의 18번 홀은 버디를 잡기 힘든 홀이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케리 웹이 타수를 지키는 전략으로 나오면 김효주의 재역전 우승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골프도 장갑을 벗을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케리 웹은 샷은 잘해야 파였지만 김효주는 세컨 샷을 통해 홀에서 3미터 정도의 거리에 공을 안착시켰다. 김효주가 메이저대회 우승에 대한 중압감과 대역전에 대한 부담에 빠져 버디를 놓치지 않는 한 재역전 우승이 가능한 상황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국내 랭킹 1위이자 미래의 골프여제로 각광받고 있는 김효주의 버디펏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18번 홀로 빨려들어갔다. 한 타차 재역전!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기적 같은 드라마가 연출됐다. 골프의 여신은 밋밋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를 지켜본 케리 웹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표정의 변화를 숨기려 했지만 집요한 카메라의 앵글에서 미세한 변화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주사위는 그녀에게 넘어갔지만, 마음이 흔들린 케리 웹의 마지막 펏은 아슬아슬하게 홀을 외면했다. 그것으로 김효주의 드라마틱한 재역전 우승이 확정됐다.



김효주는 대회 출전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그렇게 지켰다. 19세의 김효주는 메이저 대회로 승격한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지옥 같은 퀄리파잉스쿨을 거치지 않고 LPGA로 직행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실력으로 입증해 보였다. 신지애와 이지영, 최나연과 유소연 같은 선배들이 해낸 것을 김효주가 못해낼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작년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3위를 기록했으니 우승을 못할 것도 없었다. 



이로써 아마추어 시절부터 세계 1, 2위를 다투었던 리디아 고(17, 뉴질랜드 교포)와 스윙의 교과서 김효주의 골프여제 경쟁이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박세리와 박인비의 계보를 잇는 한국 여자골프의 대형스타 탄생이 오늘로서 확정됐다. 향후 세계 여자골프계를 이끌어갈 두 명의 걸출한 신인들이 LPGA에서 조우할 수 있는 여건은 완성됐다. 





세계 여자골프계를 주름잡는 한국선수들의 열풍은 이제 태풍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박세리와 박인비 중 누구라도 우승했으면ㅡ필자는 박세리가 우승하기를 바랐다ㅡ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미래의 골프여제 탄생을 위해 한 번쯤 양보하는 것도 언니 된 덕목이 아니었을까?



젊은 날의 메시와 마라도나를 연상시키는 이승우란 걸물의 등장과 함께, 나흘 내내 골프 보는 재미를 선사해준 김효주와 한국 여자골퍼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아울러 남자골프의 왕중왕을 가리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 한국 남자골퍼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