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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나는 아직도 9개의 유언을 전달하지 못했다

 

 

세월호가 직립됐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관련 글들을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유족분들을 만나러 안산에도 가지 못했고요.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지만 직립된 세월호에서 침몰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면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하고 1000일이 지났을 때 더없는 슬픔과 분노를 달래며 힘겹게 쓴 시입니다. 시는 이제 포기했지만 알량한 재주라고 미수습자(당시의 기준)에게 바치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치울 방법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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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돌아가고 있다.

지난 1000일의 슬픔과 연민을

어제 입은 속옷처럼 벗어두고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난 1000일의 투쟁과 저항, 외침과 절규가

싸구려 동정이나 집단적 분노의 단편이 아니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싸웠고, 분명히 전달했음을 

능숙하지 못한 언어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난 1000일의 짧았다면, 누구도 비겁하지 않았음을 

지난 1000일의 길었다면, 누구도 용감하지 않았음을

나 또한 그들 속에 있었으며그들 또한 나와 함께 했다고 잃어버린 언어로 스스로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날에 그들은

분명히 나처럼, 전해지지 않은 두 개의 유언을 들었다.

말했으나, 바다보다 차가운 두려움과 공포 속에 갇혀 버린

두 개의 유언을 피맺힌 절규처럼 들었다.

(우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라고

(당신과 같았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지는 해는, 분명히 나처럼 

떠나는 그들의 등 뒤로 

지난 1000일의 슬픔과 연민, 분노를 길게 드리우고 

그날의 유언처럼 일상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어쩌면 나는, 떠나는 그들처럼 

하루에 하루치씩

그렇게 1000일을 가라앉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떠나는 그들과는 달리

(우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라는 295개의 유언은 들었지만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당신과 같았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9개의 유언도 들었지만

영원히 전달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들처럼 떠날 곳이 없는 나는 

한 치의 자유도 없는 차가운 공간 속에 갇혀     

전달하지 못한 9개의 유언을 

영원히 떠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가 죽었고

누가 살아있는가, 이 망각의 대지 위에

저 차가운 심연의 바다 속에. 

분명히 나는, 떠나는 그들처럼

304개의 유언을 들었고

아직도 9개의 유언을 전달하지도 못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