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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18장 ㅡ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1



이곳은 하남성(河南省) 내 대별산(大別山) 앞자락에 제마단(制魔團)이 있다. 창룡문과 성도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일종의 무림맹인 제마단은 현 무림의 정파를 대표하는 단체이다. 제마단은 백 년 전 소림대첩 시 구성됐으나, 그 필요성이 사라져 이제는 명맥만 남겨두고 무림 정세만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 됐다. 현재의 제마단이란 느슨한 형태의 무림맹 수준으로 백 년 전의 위용은 사라진 상태다.



물론 그 이름처럼 무차별적인 살인을 일삼는 살마(殺魔)의 등장이나, 문파 간의 이해관계가 강호정세에 영향을 줄만큼 복잡하고 엄중할 경우 제마단은 휘하에 소속된 문파들의 인원들을 파견해 조정을 한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무력행사를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는 등 나름대로 무림의 조정자적 역할을 해왔다.



보통 희대의 살마인 경우 죄의 경중에 따라 척살하거나, 생포해 무간뇌옥에 감금했다. 문파 간의 싸움에선 이해관계를 보편타당한 무림의 관습과 전례에 따라 중재를 하거나, 억울한 쪽이 있으면 그 문파를 지원했다. 지원은 주로 정파 위주로 이루어졌지만, 때에 따라서는 정파와 사파의 중간에 위치한 문파의 경우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재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무력으로 해산시키거나 휴전을 강제하기도 했다. 중재의 관점은 정파의 보편적 규범과 관습을 따랐다.



그런 제마단 내 집성전에 제마단에 참여한 거의 모든 문파 장문인과 연배가 비슷한 장로급 무인들이 모였다. 제마단이 결성된 지 백년 만에 그 출발 시의 규모에 버금가는 거대한 집회가 이루어졌다. 이는 무림의 정세와 균형을 뒤흔들 만한 중차대한 일이 일어났음을 의미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인 무당파 소속 태극도인 문지광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무당파의 장로로 양의무극신공(兩儀無極神功)과 태극혜검(太極慧劍)을 대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당(武當)의 현 진무관(眞武觀)을 관장하고 있는 무당파 서열 이위(二位)의 초절정 고수였으며 제마단의 부단주이기도 했다.



“여러분, 이 분이 천 년 전설의 주인인 천상천주인 천검무존 검강인 대협이십니다. 바로 제마단의 태상맹주이시기도 합니다. 강호의 안녕을 위해 천 년 전설의 주인으로써 위대한 명예를 포기한 채, 복마전을 멸문시킨 고금제일의 무협이십니다.”

“아, 드디어 전설의 천상천주를 살아서 내가 보다니. 이를 어찌 믿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하면 전설의 천상천주가 일인재림의 율법까지 깨뜨릴 정도로 역천마곡의 위세가 막강하다는 것 아닙니까? 천 년 만의 혈난이 우리 세대에서 다시 발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탄성을 토해낸 화산파 장문인 자하선인(紫霞仙人) 우중문에 이어, 창룡문 삼장로 일검필 사마검(一劍必死 魔劍) 백강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창룡문 십대고수에 속하는 추살마대 대주였으며, 그의 명성을 드높인 일검필탈마혼검류는 가히 일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역천마곡의 후예들이 단 하루 만에 천마성을 몰살시킨 것처럼, 어쩌면 그들의 힘이 천 년 전의 위세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백강의 질문에 이번에는 소림의 홍인대사 소유걸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는 현 방장인 홍기옥불 소유진의 친동생이었으며 현 소림의 지객당주 겸 십팔나한을 이끄는 나한전의 전주이며 당대 소림의 삼대 고수이기도 했다. 현재 소림의 대외적인 일도 대부분 방장 소유진을 대신해 소유걸이 대행했으며 당연히 외소림(소림의 속가제자 전체를 이름)도 그가 관장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천상천이 복마전을 친 이유 또한 그것에 있다 합니다. 복마전의 주요 자리에 역천마곡의 사마령을 위장 침투시켜 복마전을 사실상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멸문을 시켰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너무 위중하여 일인재림만을 지킬 경우 너무 많은 무림인이 피해를 볼 수 있어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율법의 엄중함과 전설의 약속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검강인 태상맹주님!” 



처음 말을 꺼낸 문지광이 침중한 소유걸의 말을 받은 후에 자연스럽게 검강인에게 넘김으로써 좌중의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음. 먼저 창룡문과 성도문 및 구대일방과 오대세가의 주요 인사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 뵙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검강인이 정중한 인사와 함께 가볍게 포권의 예를 취하며 좌중을 둘러봤다. 그의 눈이 마주치는 곳에 있던 몇몇 문파의 고수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각 문파에서 파견된 대표자들이 그의 겸손하면서도 정중해 보이는 인사말과 포권에 화답했다.



“저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천년 만에 역천마곡이 다시 부활했는데 그 위세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게다가 그에 못지않은 제 삼 세력도 등장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탄성에 대전 안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들썩일 만큼 침중했다. 역천마곡 말고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그의 말에 좌중은 찬물이 끼얹어졌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 삼 세력은 숫자는 적지만 무공이 하나같이 화경(化境)에 이른 자들입니다. 현재 천상천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중 가장 약한 삼영이라는 젊은 무인들도 화경에 이른 것으로 보여 집니다.”



충격이었다. 검강인의 말은 이곳 제마단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약한 자가 무공의 최후 경지 중 하나인 화경에 이르렀다니 가장 강한 자의 무공은 어디까지 이르렀다는 말인가. 화경에 이른 초절정고수는 현 무림에서 무림 삼성과 몇몇 문파의 장문인들을 빼면 두 손을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화경에 이른 무인은 무림사를 통틀어 당대마다 그 숫자가 불과 열 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인데, 제 삼 세력이라고 하는 집단의 최약자들이 화경에 이르렀다면 그들의 위험성은 천상천이 아니면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제마단에 모인 무인들의 표정에는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갔다.



“게다가 역천마곡은 천 년 전 그 능력의 일부만 깨웠던 지옥의 열두 힘을 완벽히 깨웠는데,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그들은 단 한 명만으로도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을 만큼 절대마인의 경지에 오른 자들입니다.”



검강인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고수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력을 드러내는 순간을 만들려고 그들의 생각을 한 곳으로 유도했다. 명예라 하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통해 무인으로서의 반발을 유도했다. 여기저기서 검강인의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좋소. 천주께서 당연히 태상맹주에 오른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현 강호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허나 지옥의 열두 힘이 얼마나 세기에 그 한 명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중 어느 문파 건 혼자서 멸문시킬 수 있단 말씀입니까? 그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성도문의 부문주 길상이 그가 유도한 것에 휘말려 들었다. 검강인이 바라던 바로 그런 반발이었다.  



‘역시 네놈이 앞장서는군. 그래 마음껏 짖어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검강인이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숨기며, 고개를 아리송한 방향으로 끄덕이며 말했다.



“제 말이 과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천상천에서 알아본 제3 세력의 힘이 너무나 막강해서 제 말이 조금 과했던 것 같습니다. 헌데, 대협 명호가 어찌 되시는지요?”

“아, 미안합니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성도문의 외문주로 있는 절혼도류광(絶魂刀流光) 길상이라 합니다. 천주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는 내문과 외문으로 이루어진 성도문의 서열 삼위(三位)에 자리한 절대강자로써 도천의 사제다. 그는 성격이 너무 강직해서, 한 번 이것이 옳다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그런 부류의 협객으로 유명했다.



“무슨 말씀을. 성도문이라 하면 현 무림의 최대 문파 아닙니까. 전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무림 삼성의 일인인 도신이 문주로 있는 곳인데 그런 겸손의 말씀을. 듣는 제가 무안하군요. 길 대협.” 

“허! 감히 제가 태상맹주이신 천상천주님께 무안을 드리다니요? 천상천에 비하면 성도문이 하도 초라해 제 자격지심에 무례를 범했나 봅니다. 저는 늘 명예만 쫓아가다 이렇게 우둔해졌습니다. 맹주님의 너른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허허허! 명예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무림의 안전과 강호인들의 목숨이 중요한 것이지요. 길 대협은 너무 저를 채근하지 마시고 함께 머리를 맞대 천년 만에 재현된 이 혈난을 가장 효율적으로 종식시킬 묘책을 의논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태상맹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강호의 힘을 하나로 모아 역천마곡과 제 삼 세력을 가장 잘 막아낼 방안을 의논해야 합니다. 맹주께서 즉위식도 취소하신 이유가 그것 때문 입니다. 그러니 일단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검강인과 길상의 대화가 자존심 싸움 비슷하게 전개되자,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제마단의 현 맹주 십절서생(十絶書生) 마광수가 나섰다. 무릇 강호를 주유한 협객이라면 상대가 전설의 천상천주라 해도 한 번쯤은 일전을 치르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고금제일인하고 겨뤄봤다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호인의 특성이다. 이를 너무도 잘 아는 마광수가 적당한 시점에 끼어들어 더 이상의 자존심 싸움을 말렸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맹주. 그리하지요.”



그의 말에 제일 먼저 길상이 물러섰다. 마광수는 자신보다 연배가 위이고 현 무림맹의 맹주이니 한 발 물러선들 문제될 것은 없었다. 검강인의 입고리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일단 태상맹주님의 의견을 들어봄이 어떨까요?”



길상이 한 발 물러서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문지굉이 다시 군중의 초점을 검강인에게 돌렸다. 문지굉은 누구의 편에 서는 것이 후일을 도모하는데 유리한지 본능적으로 알았고, 제마단에 모인 대부분의 무인들도 이를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 년 전설의 천상천이라면 현 무림 전체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절대문파이니, 이런 생각은 너무나 당연했다. 문지굉의 의견에 마광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럽시다.”

“그리 하시죠. 태상맹주.”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소리가 다시 나왔다.



“허허. 여러분들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한 말씀 드리지요. 작금의 무림은 천 년 전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동안 천상천 인력이 무림 전역을 조사한 결과, 천 년 전보다 더 강해진 역촌마곡을 비롯해 두 개의 신비문파가 무림 전역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힘은 천상천이 일인전승과 은둔의 율법을 깨지 않으면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합니다. 천상천이 천마성을...”



검강인은 현재의 정세를 설명하면서 천상천이 은둔의 율법을 깨고 전면에 나선 것을 무림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천상천이 전면에 나선 것을 기정사실화한 그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천상천을 중심으로 뭉치지 않으면 안 되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물론 천상천이 무림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전혀 없음을 강조했지만,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천상천이 다시 전설 속으로 돌아갈 것이란 말은 일절하지 않았다. 그는 일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당면한 위기를 최대로 부풀리며 천상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주력했지만,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길상은 일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무림이 혈난의 위기에 처했다 해도 천상천은 천년 전설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천상천주가 어떤 이유를 든다 해도 무림 전체가 받들었던 율법을 깨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당사자가 천상천주 자신이라 해도 길상이 생각하는 무림은 모든 강호인들의 것이지 특정 문파의 독점적 지배가 허용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허나, 역천마곡이 등장한 이상 천상천이 전면에 나서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어. 그들을 상대하려면 정파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하니까. 게다가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비의 문파가 2개 더 있다면 천상천의 도움이 없으면 위기를 극복하는 게 불가능해. 문주님의 지시도 있고 하니, 일단 지켜보자.‘



길상은 마음을 가라앉힌 채 검강인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들었다.



“복마전의 멸문과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심각한 타격까지, 저들의 힘이 강력하고 세 개의 문파에 이르니, 먼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저들의 기세를 꺾을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상천의 내궁을 무림맹으로 내놓을까 합니다.”



역천마곡과 신비의 2개 문파까지, 현 무림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한 검강인이 폭탄선언을 하는 것으로 말을 마쳤다.



“네? 천상천의 내궁을?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천상천의 내궁까지 내놓을 생각이십니까? 무림맹을 위해서요.”

“그건 무림맹을 옮기자는 뜻 아닙니까? 그것은 모든 참여 문파의 뜻을 모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부분 검강인의 폭탄선언에 놀라고 감사하는 가운데, 길상은 검강인의 제안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검강인이 내궁을 무림맹으로 내놓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천상천은 천상천이고 무림맹은 무림맹이어야 한다, 길상의 생각은 그랬다.



‘클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저놈이 바로 그런 놈이네. 어차피 넌 쓰레기야. 기껏해야 몇 달 정도 더 살 수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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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누가 온다 이리로. 몸놀림만 봐도 하나같이 엄청난 고수들 같아. 조심하지 않으면 날 찾을 수도 있겠어.’ 



제마단 집성전 삼 장 높이에서 떠 있던 사환이 갑자기 이곳으로 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헌데 그들이 보여 주는 기도가 하나같이 자신에게 뒤지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현 무림에 대한 감시를 이행하고 있던 사환이 있는 쪽으로 엄청난 자들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마치 그 자체가 하늘인 것 같은 사람이 있었고 그 뒤에서 함께 날아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치 그들 자신이 대기인 듯 공간을 뭉툭뭉툭 자르며 제마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현 무림의 고수들을 손톱의 때처럼 여기는 사환의 눈에도 그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사환은 소리없이 삼십여 장 밖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제마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무리의 맨 앞에 있는 사람, 그의 눈에서는 감히 마주보기도 힘든 혈광이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