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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29장, 30장 ㅡ 새 천년 그 시작을 향한 마무리3


- 자네, 타초경사(打草驚蛇)라고 아나? 성동격서(聲東擊西)는?


- 헐헐… 나를 바보로 아나.


- 그럼, 됐고.


- 응? 됐다고…? 아니,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 그것도 잘 두드리면 재미있지. 지금처럼.


- 허, 나를 갖고 놀겠다? 너의 그 얕은 준비로 내 천년을 대체할 수는 없지. 네가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해서 그것이 타초경사건 성동격서건 달라질 건 없어. 암. 자네가 이룬 일극무원결의 성취로는 안 돼. 무영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고.


- 정말, 그럴까? 확신하나? 자네의 수정 극본에도 결점이 없다고 믿고 있나, 아직도? 하하하, 그렇다면 뭐, 나라고 더 할 말은 없지. 두 연극을 동시에 무대 위로 올릴 밖에야.


- 극본이 탄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에 대한 자질과 연기력의 차이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자네의 연극은 너무 갖춰진 게 없어. 준비도 부족했고, 해서 한 무대에 올릴 것도 없지. 그 어떤 것으로도…


- 주인공의 인기를 넘어설 수 없다, 이거 아닌가? 자네의 말은?


- 더 말해 무엇 하겠나.. 이는.. 하룻강아지가 범.. 어?

‘이것은.. 삼경과 사경의 기운에 이상이 생긴 것.. 일환에 어.. 어찌 이런 일이? 허면 정말 저놈의 말이..’


-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영 또한 네놈처럼 정기신일체다.


- 뭐라고? 무영이!


- 뭘, 그리 놀라나? 그것뿐이 아니야. 검강천은 무영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이를 알았지. 그리고 천상천와 역천마곡, 천외천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 그는 천상지무의 무공이 극에 이를 때쯤에야 한 가지 검결이 이상했음을 알았고 그것이 정기신일체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 그 또한 이를 추론해냈고 그때부터 대비했던 거야.


- 검강천이..


- 선천지체였던 검강천은 알 수 있었던 거야.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무영이 갖고 있음을. 해서 그는 자신이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어. 정기신일체는 세 가지 무공을 소화해낼 수 있는 유일한 신체라는 것을 선천지체의 한계에 도달한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이는 세 개의 무공을 다 취하려는 자도 정기신일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면 최고의 적이 될 수 있는 무영을 제일 먼저 제거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했지.

그가 혜준을 불렀어. 그 아이는 순음지체였지. 무영에게서 정기신일체 중 신의 일부를 혜준에게 옮겨놓은 거야. 그 대가로 검강천은 자신의 내공 3할을 아이에게 넘겨야 했어. 만일 그 3할이 그의 몸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는 천상무극독에도 중독되지 않았을 거야. 역천은 막을 수 있었더라도 대신 무영이 죽었겠지, 자네에게.


- ......


- 그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천년 전설의 허상을 벗기기로 결심했던 게야.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고 나와의 비무에서 그는 물을 줘 그 씨앗을 키울 사람으로 나를 정했던 거야. 나 역시 그의 뜻을 알았고 내가 무영을 가르치며 물을 줘 줄기와 몽우리까지 이끌었어. 대견한 것은, 해서 너와 다른 것은 무영이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 꽃을 피웠다는 거야.

헌데 검강인과 진무결의 순서가 바뀌고 자네가 자꾸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면 이젠 무영이 열매까지 맺은 것 같은데.. 맞나? 네놈은 천년을 관조했던 눈을 갖고 있는데 보이지 않나?


- ......


- 후훗! 이젠 말도 못하는군. 세 개의 무공의 위대함은 각각 존재함으로써 최강이지. 자네가 애당초 비틀지 않았다면 그러했겠지. 일극무원결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는 거야. 자네가 비튼 부분을 채워 어떤 무공이던지 간에 그 끝에 이를 수 있게 돕는데 있지.

등에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고 하지 않나. 자네가 비틀었기에 자네만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거기에 허점이 있었어. 나는 그것에 모든 것을 걸었고 여기까지 왔어. 이것이야, 너와 내가 다른 점이.


- ..해도 변할 건 없다. 내가 다 없애면 되니까. 정기신일체라 해도 천년을 단련시킨 나를 무영이 넘을 수 없어. 시간이 차이가 너무 커. 해서 안 되는 거야, 자네의 연극은. 더더욱 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가를 치러야지.


- 그래 네놈 말대로 무영에겐 시간이 문제였어. 그것을 극복할 묘안이 필요했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고민했어. 헌데 나에게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어.


- ...?


- 시간은 싸움이 되지 않지만 운칠기삼(運七機三)이 떠올랐던 거야. 시간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실전경험을 선택했던 거야. 네놈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실전경험만이 시간을 메울 수 있음을 알게 된 거야. 운을 줄이기 위해 삼의 기술을 최고조로 올리는 최고 무인들과의 실전이 필요했고 지금도 무영이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지.


- ...! ..놈!


- 후후. 그리 감탄할 것까진 없고. 네놈한테 듣기는 더욱 싫고. 어쨌든 일석이조였어. 이제 알겠나? 내가 준비해 무영이 완성시킬 새 천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크하하하하하!


- 놈! 내가 준비한 기간만 천년이다. 완벽한 정기신일체는 나 하나뿐이야. 그것으로 족한 거고. 앞으로의 천년도 마찬가지야.


- 다시 말하지만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은 결코 스스로 익힌 것을 넘지 못하는 법, 네놈이 무영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알겠느냐!

‘하지만, 자네는 나와 나눈 대화를 잘 기억해야 할 거야. 마지막 안배는 이미 닻을 올렸어. 자네가 천년 연극을 만들고 직접 그 무대에 오른다 해도, 자네는 나와 나눈 대화를 앞에서부터 마지막 말까지 잘 기억해야 해. 그것이 마지막 내 안배니까.’


ㅡㅡㅡㅡㅡㅡㅡ


한성과 철용의 합공은 마치 하나의 연인이라 해도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일극무원결로 그 결점이 보완된 파천태극무검의 제 삼초 단천령태극검류와 제 사초 태극어검단천류가 한성과 철용에 의해 펼쳐지니 그것은 완벽해서 너무 강했고 오히려 아름다웠다.



슈욱!



빛은 푸르렀고 검기는 간결했으며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아 신비로웠다. 오직 빛 다음에 소리가 있어 그것이 시전된 것을 알뿐이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아니 넘쳤다. 천하의 마인에겐 너무 아름다운 합공이었기 때문이다.



빙혈천마 사마천은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마기가 움직임을 멈췄고 그제야 드러난 처음 무공을 익히던 날의 그 깨끗했던 기운이 느껴졌다.



퍽! 퍽!



한 순간에 오백 년을 돌아간 그에게 미간과 심장에서 전해져 온 소리와 통증은 그 기운을 자신에게 돌려준 것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개가 꺾어졌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허전한 게 바람의 서늘함도 느껴졌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이 이런 것이라면 자신은 마공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검신과 도천 앞에 한 무리의 마인들이 나타났다. 이미 대결을 마친 준영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고 한성과 철용도 몸을 날렸다. 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삼영 옆으로 내려섰다.



“이곳은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오빠!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기원할게요. 힘내세요. 현성 사숙과 금강...도.’



삼혼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시선이 굳은 믿음과 함께 혜준과 삼영, 검신과 도천, 천상천의 4 명의 호법들을 스쳐갔다. 허나 삼혼의 표정은 어두웠다.



‘간절히 바란다. 아니길 바란다. 오직 주군의 부름이 그것을 의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무명곡을 향해 가던 두 신형이 그 입구로부터 백여 리 떨어진 곳에서 만났다.



“잘 지내셨어요. 현 사숙님.”

“너도 그랬느냐? 허허! 결국 우리가 다시 무림에 나오게 됐구나.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사숙님.”



그들은 사라졌던 현성과 금강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비궁의 입구에서 다시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러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크하하하하! 겨우 너희들이 나를 막겠다고. 크하하하! 크하하하! 감히 초만인 진무결과 열한 명의 지옥의 힘, 역천마곡의 정예들을 상대하겠다고. 어림없다. 류심환과 검무영 보러 이리 오라고 해라.”



진무결은 그들 앞을 막아선 자들 속에 두 사람이 없음을 발견하자 어의가 없었다. 당연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 이들을 상대하려 했다면 제천문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오늘로써 막을 내린 거짓과 위선의 천년이었을 때의 얘기다. 지금부터는 모든 이의 천년일 것이므로 우리라 해도 너희들에겐 넘친다. 덤벼라. 그것도 떼거지로.”



준영의 눈치를 힐끔 보던 한성이 먼저 말했다.



‘허! 이거 죽이는데. 내가 말했지만 멋있어. 도혼 할아버지가 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험! 분명 죽였어.’

“켈켈켈켈! 켈켈켈켈!”



진무결이 그저 바람 빠진 웃음만 흘렸다.



“넌 좀 빠져. 나설 때 나서야지.”



준영이 한성에게 말했지만 눈을 부릅뜬 것은 진무결이었다. 오해였다. 그것이 두 무리 간에 벌어진 천지개벽 같은 대결의 시작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


검강인은 만신창이 몸으로 겨우 집성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패했다는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은 그를 더 심하게 자책하게 했다.



허나.. 공포란 또 무엇인가. 자신이 고금제일을 꿈꿨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해 치러졌던 일방적인 대결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더 두려웠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무영의 어머니인 검강천의 아내를 겁탈하던 장면이었다.



‘이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인면수심의 말종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래, 역천의 정당성이 그것으로 사라진 거야. 허허.. 늘 마음에 걸려 죄스러움을 버릴 수 없었는데.. 허허.’

“이제 끝을 내지. 내가 힘들군.”



말을 하는 중에도 통증은 쉬지 않고 그를 강타했다.



“여죄가 적지 않은데.”

“허허. 그렇겠지. 자네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겠지. 한마디만 말하겠네.”

“길지 않게.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그래. 그거야. 내가 말하려던 것이 그거야. 미안했네. 내가 사람으로써 못할 짓을 했어. 그것은 진심으로 사죄하네. 미안하네.”



검강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점점 격해지더니 흐려져 갔다.



“...안 된다. 내가 너를 처단하기 전에 너는.. 검강인은.. 내 어머니를 겁탈한 너는.. 아직 그대로야 한다. 내가 너를 가장 치욕스럽게 죽일 때까지 너는 검강인 그대로 있어야만 한다.”



무영은 그의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특히 자신의 어머니에 관해서는 그가 사죄해서는 안 됐다. 그래야만 복수가 의미가 있고 어머니의 영혼의 일부라도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그가.. 그 짐승만도 못했던 그가.. 사죄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내 검에 가장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욕망에 눈이 먼 검강인이어야 한다.



무영이 일극무원결로 합친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정수를 끌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투명하고 푸른빛이 폭발했다. 그의 분노가, 미칠 것 같은 허탈함이 폭발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영아. 복수가 다가 아님을 잊었느냐. 네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그 초식은 새 천년을 여는 순간에만 펼쳐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초식은 아직 아껴야 한다. 이곳에 와서 나를 만난 후에 펼쳐야 한다. 무영아, 너와 모든 이의 천년을 생각해라.’



류심환의 영혼의 말이 그의 마음에서 울렸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와 모든 이의 천년...

그 천년을...

위해...



무영은.. 검강인의 목을..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한풀이를.. 천상지무로만 끝내기로 힘겹게 마음을 바꿨다.



그의 검에서 푸른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투명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 빛이 이미 검강인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때.. 무영의 눈에 하늘 가장 푸른 곳에서 미소 하나가 번쩍이는 것이 들어왔다. 착각이었을까.. 내 죄스러움의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것은 분명 어머니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삼혼은 계속 날았다. 주군의 부름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생을 다하는 사람이 말하는 유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느낀 것은 주군의 부름이 몹시도 급했고 급하면서도 탈속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야 했기 때문에 급했고 그것을 결심했기에 탈속해져 그 부름에 숨결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삼혼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몸의 속도가 빛살 같다 해도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남았다.



‘주군이 선택이 신삼혼지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야.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지금까지 주군이 단 하루라도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있었던가? 주기만 했고 받은 것이 있었던가? 심지어 주변 한 번 돌아보지 않았어. 주군의 삶에서 천외천의 이름으로 산 기간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 허망함이 부처라 해도 다스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주군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시작한 새 천년을 위해 무영과 강호인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었어. 심지어 주군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칭송마저 강호에 남기지 않았어.’



불혼은 자꾸 눈물이 나오는 것이 비궁에 가까워올수록 심해졌다. 돌이켜 보면 주군의 삶이란 모든 것의 희생뿐이지 않은가.



‘주군은 가장 위대한 무인이었으면서도 스스로 그 자리를 포기했어. 그저 다음 천년이 모든 이의 것이 될 수 있다면 부모의 죽음도, 그 불효이 회한과 처절한 복수마저 가슴에 담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어디 그것뿐인가? 새 천년의 초석을 위해 삼영에게 각각 일 할의 내공을 전수했고 신 삼혼지문을 위해 또 일 할의 내공을 넘기셨어. 이제 주군의 몸에 남은 것은 5할의 내공인데 그마저 대부분 사라진 것 같아.’



도혼도 눈에 자꾸 차오르는 것이 사내로써 그리 부끄러운 눈물임을 감추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주군의 삶은 온통 준 것뿐이다. 일극무원결은 또 무엇인가.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결합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며 이를 위해 주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고 기꺼이 모두에게 나눠줬다. 무인으로써의 최고 기재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다른 무인들의 완성을 위한 무공 창조에 다 쏟아 부은 것이니 그 희생을 또 누가 알겠는가.



‘5할의 무공도 이제 거의 다 소모했을 거야. 무영이 비궁 바로 밑에서 제천문의 감시를 피한 채 천상귀원검과 여의일도파천황을 익혀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주군은 그 감시의 눈을 속이는데 남은 내공 대부분을 소진했을 거야. 어찌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또한 내 자신의 목숨과 명예, 행복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찌 주군의 발끝에라도 이를 수 있단 말인가. 헌데.. 그 주군이 우리를 불렀어. 아직 줄 것이 남았기 때문이야, 주군은.’



속혼의 눈에서 눈물이 허공중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갈 때 세 사람은 동시에 떠올렸다.



‘주군은 신 삼혼지문을 열어 무영에게 무엇인가 넘기려 해. 이는 주군의 죽음을 말하는 거며, 비궁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이 무영에게 필요하기 때문일 거야. 아, 대체 주군이란 사람은..’


ㅡㅡㅡㅡㅡㅡㅡ


검강인의 죽음을 확인한 무영의 마음은 무거웠다. 자신이 그를 죽일 때 그는 가장 포악해야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도 사람이었고 사람이어서 죽음에 이르자 그의 일부는 선해졌다. 그것이 못내 받아들이기 싫었다.



‘허나.. 사부님의 말씀을 따른다. 그 뜻의 위대함을 내가 받든다. 그래.. 어쨌든 원수는 갚았고 어쩌면 저승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승의 한을 다 잊으셨을 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 복수까지도 산 사람들만의 일이 아닐까?’



쉽지 않은 깨달음에 이른 무영의 시선이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초마인 진무결을 향했다.



‘그래, 검강인과의 인과는 이것으로 끝내자. 사부님이 부르시니 빨리 저 자를 처단하고 비궁으로 가야 해. 이미 삼혼 할아버지들은 떠났고.. 서두르자.’



무영의 몸이 어느 새 광소를 멈추고 살기로 가득한 진무결의 앞에 내려섰다.



“그렇지. 네놈이 와야 하는 것이지. 나머지 떨거지를 내게 보내면 안 되는 것이지. 크하하하하!”



진무결의 청아한 음성이 마기마저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룬 초마인이 진면목이 그것만으로도 넘쳐흘렀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냥 시작하마. 천 년 전에도 너의 무공은 졌고 지금 너의 무공도 무엇을 더 얹었던 간에 나에게 져. 그것이 섭리다. 상극의 원리가 아니더라도 바르게 간 길과 사술을 쓴 것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야. 그 처음은 이것으로 깨닫게 해주마. 간다.”



무영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망상재를 펼친 것이다. 그는 빨리 류심환에게 가봐야 했기 때문에 속전속결을 택했다.



순간 진무결도 사라졌다. 그는 극에 이른 마기를 통해 세상의 어떤 탁한 기운에도 숨어들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어도 상관없었고 대기에 떠다니는 황사나 탁한 연기라도 상관없이 스며들 수 있었다. 마기가 자연의 일부와 일치를 이뤄낸 것이다.



‘제법이군. 허나 탁한 기운은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망상재를 펼치자 무영이 움직이는 곳마다 실상과 같은 기의 흔적들이 생겼다. 그것은 남아 있는 잔상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실상 같은 기운들이었다.



‘허억! 아니.. 이것은 모두가 다 진기(眞氣)야. 무한공력이 아니면 불가능하잖아? 이는 신의 영역이거늘 어찌 저놈이 펼친다 말인가?’



탁한 기운 속에서 무영에게 다가가던 진무결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물론 탁한 기운의 일부가 무영에게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지. 탁한 기운의 단점은 흩어질 수 없다는 거야. 탁한 기운은 한데 모여야만 위력이 커지고 본래의 성질도 유지하는 법이지. 자연에 스며들어 몸을 숨겼다 해도 결국..’



무영은 파천태그무검의 제 육초 제마무림파천황(制魔武林破天荒)을 탁한 기운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펼쳤다. 수없이 생성된 그의 사십이 개의 진기들 중에 스물아홉 번째에서 푸른빛이 일었다.



그 순 번에 어떤 의미도 없어 보였다. 일곱 번째에서도 빛이 일어날 수 있고 사십일 번째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만큼 모든 진기가 다 무영 같았다. 허나 무영의 실체는 스물아홉 번째 있었다.



팟!



빛이 날아간 후에 짧은 소리가 일었고 그곳의 대기가 잠시 흔들렸다. 그때 진무결은 자신의 종아리 쪽이 따끔하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펼친 멸천귀원장(滅天鬼怨掌)이 무영이 만든 사십이 개 진기 전체를 휩쓸어가는 것을 보았다.



“크윽!”



따끔한 것은 통증으로 발전했다. 허나 그의 손은 다음 장강을 발사하고 있었다. 무영의 진기들이 다 장풍에 산산이 부서지는 중에서 다시 열 개의 진기가 생성됐고 이번에는 여덟 번째에서 빛이 다시 일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망상재를 구성까지 펼쳤고 이번 열 개의 진기 중 열 번째까지는 순차적으로 펼친 것이었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앞의 진기로 두 번 거꾸로 옮겼다. 결국 무영은 열두 번의 진기를 만든 것이다.



이는 초마인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종아리가 잘려나갔음을 알았을 테고 급격히 흔들렸을 내력 때문에 다시 모든 진기를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자신이 만드는 진기 중 마지막 것이 생성될 때 그 진기를 노리리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았다. 진무결이 격발한 멸극귀혼장(滅極鬼魂掌)이 정확히 열 번째 진기에 부딪쳤다. 그 결과는 흩어질 뿐이었다. 멸극귀혼장은 조금 더 나간 뒤 사라졌고 이미 흩어진 진기는 스르르 대기로 돌아갔다. 본래의 성질로 귀환한 것이다.



번쩍! 콰르르릉!



엄청난 빛의 폭발과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그 빛은 검이었으나 처음부터 모든 곳에 있었고 초마인 진무결 시야의 모든 곳에도 있었다. 그것은 푸른빛의 해일이었고 축제였으며 거력이었다.



진무결은 멸극귀혼장을 회수하며 멸천마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천지양단마장(天地兩斷魔掌)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빛의 해일이 일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천지양단마장이 격발됐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에 완벽하게 펼쳐졌다. 이를 위해서 잘린 종아리의 혈도를 짚어 지혈해야 하는데도 방치했다.



그것은 본능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대응이었다. 그가 초마인의 경지를 이룰 때보다 그 위력은 더 강해졌다. 미증유의 거력이 그의 손에서도 쏟아졌다.주위의 모든 것이 극을 넘어선 마기에 전율했고 숨죽였다. 그렇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점령한 채 무영이 일으킨 빛의 해일에 부딪쳐갔다.



두 기운이 충돌했다. 천지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충돌은 이전에는 없었다.



쾅아아아아앙!!! 콰아아앙!!!!

버언쩍!! 슉! 쉭! 쉭! 팟! 팟!



주변 수백 장이 흔들렸고 들썩이었으며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 모든 것이 그 충돌 여파로 천지개벽 직전의 혼란함을 드러냈다. 한참 열한 명의 지옥의 힘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삼영과 혜준, 검신과 도천, 그 밖의 다른 정, 사파 고수들까지 급히 물러나야 했다.



쩍! 쿠르릉! 우드득!



충돌의 여파는 반각을 이어갔다. 그 위력에 맞서 성한 것이 없었다.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졌고 오직 커다란 진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차츰 그 진공 속에 떠다니던 부유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충돌의 여파가 진정되자 조금씩 시야가 트였다. 충돌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그 시점에서 진무결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다. 충돌은 여파가 반각이 갔지만 그 사이에도 수천 번을 넘게 작은 충돌이 이어졌고 그것은 일종의 내공 대결과 비슷했다. 해서 내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헌데 그는 자신의 내공이 밀리는 것을 느꼈다. 우위를 점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공이 무영에게 밀렸던 것이다. 내력의 대결이 되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의 판단이 뿌리 채 흔들린 것이다.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작은 마음의 흔들림이 그의 몸이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그의 종아리에서는 피와 함께 마기도 쉴새없이 빠져나갔다. 무한 마력이라 믿었는데 잘린 종아리 혈관을 타고 들어온 검기는 마기와 상극이었다. 그것이 이제야 위력을 드러내며 그의 내력을 급격히 갉아먹었다.



그리고 번쩍! 하나의 투명한 빛이 일었다. 그 빛은 그가 본 빛 중 가장 강렬했다. 그 빛의 강렬함에 무영의 말이 눈부시게 빛났다.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이 이 초식에 의해 양단됐으니 그의 후예인 너 또한 그리하라. 이미 말했듯 천 년 전에 진 자는 천년 후에도 천상지무를 넘을 수 없다. 천상지무의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天上制魔奪魂검)은 한 번 펼쳐지면 목표한 상대를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목숨을 거둔다. 이는 상대방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둘로 양단하기 때문에 천상제마양단검(天上制魔兩斷검)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화극연을 벌한 것이 이 초식이다. 너도 그리한다.”



진무결은 믿을 수 없었다. 아직 내공 대결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데 하나의 진기가 더 생기더니 거기에서 빛이 일었고 그 빛은 놀랍게도 천상지무의 초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절대에 이른 두 무공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진 것을 믿기란 그의 무공지식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두 무공을 동시에 펼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각각의 무영이 각각 하나씩 펼쳤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믿을 수 없어.’



그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졌고 그 중 일부는 그의 몸이 양단되면서 두 개로 갈라진 뇌가 조금씩 더 한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위대한 마인, 그 극에 이른 마기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진무결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정확히 둘로 양단됐다. 피조차 튀지 않았다.



쩍!



한 번의 소리와 작게 두 번 쿵! 쿵! 그것이 다였다. 초마인 진무결이 세상에 나와 마의 극에 이르렀음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이 몸이 소리와 함께 마기에 의해 재로 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가 튀지 않았다.



진무결의 생각은 맞았다. 무영은 둘을 두 개의 진기를 만들어 발사했다. 하나로 합쳐진 것은 지금 펼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고, 그 직전에 사부의 말이 있었다. 새 천년을 열기 위해서만 이는 펼쳐야 한다고 했으니 그것을 따라야 했다. 무영으로서도 최후의 초식은 지금은 남겨두고 싶었다. 아직 그에게는 최대의 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무결은 검강인보다 한 수 위였어. 만일 내가 두 무공을 합치기 위해 일극무원결을 익히지 않았다면 결과는 반대였을 거야. 대단한 자였어.'



[혜준, 삼영. 뒤를 부탁할게. 믿어도 되겠지?]

[오빠.. 조심해야 해!]

[주군.. 아니 동생 잘 해.]

[그래 나도 믿어.]

[형님.. 편히 다녀 오세요. 이곳은 우리가 해결할 테니..]

[다들 고마워. 내 꼭 돌아올게. 아무도 다쳐서는 안 돼.]



전음과 함께 무영이 신형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그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건너뛰어야 했다. 분명 류심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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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류심환의 몸이 끊어진 연처럼 튕겨져 이리저리 휘날렸다. 무천이 손에서 격발된 장장에 류심환이 힘없이 나가떨어진 것이다.



“아니? 이것이 웬 일이냐? 너는.. 나 못지 않은 자인데..? 어찌 이리도 간단하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 류심환! 어찌 이렇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