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정보통신사업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필자의 회사에서 만든 것은 문자메시지를 대량으로 전송하는 장비인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해당 장비를 여러 곳에 팔 수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곳에서 문자메시지를 대량전송했기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저의 장비로 고객에게 알림문자를 보냈는데, 장비에서 오작동이 일어나 한 고객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수백 건 송신됐습니다. 황당한 일을 겪은 고객이 대한항공에 항의했고, 대한항공은 제 회사에 손해배상을 묻겠다고 나왔습니다.



저로서는 절체절명의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이런 오작동이 다른 장비에서도 일어나면 모든 장비를 리콜해야 하고, 그럴 경우 너무나 많은 피해보상이 발생해 사업을 접는 수밖에 없었습니다(그것이 아니더라도 LG전자의 계약파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작동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오작동의 원인을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통신사의 로그기록이 필요했고, 퀄검사가 납품한 모뎀에도 문제가 있는지(생산 시의 문제로 불량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통신사의 로그기록을 받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였지만 받아내는데 성공했고, 기록 확인을 통해 통신망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로그기록을 살펴보면 망의 문제로 문자메시지의 중복전성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그기록을 통해 통화내역이나 기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지만, 망의 제대로 돌아갔는지, 저의 장비에서 같은 번호로 대량전송이 됐는지, 어떤 번호에 집중적으로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는지,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퀄컴사의 모뎀이 불량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고, 통신사와 퀄컴사가 대한항공에 사과를 하고, 손실보존을 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사업을 접을 필요는 없었고, 그 바람에 진실은 규명했지만.. 더욱 크게 망하게 됐습니다.



아무튼 로그기록만 있으면 국정원의 사찰이 정상적이었는지, 아니면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그기록을 가지고 국정원의 대테러‧대북공작활동을 모조리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로그기록은 디지털 흔적에 불과해서 공작 내용까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로그기록은 누구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하거나 감청했는지 흔적을 알려줄 뿐이지, 그 이상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해킹과 감청에 사용된 프로그램을 함께 돌려야만 해당 내용까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즉 국정원이 로그기록을 제출한다고 해서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작되거나 훼손되지 않은 로그파일만 있으면 진실은 금새 밝혀집니다. 신경민 의원의 주장처럼, 국정원에 의해 조직적으로 로그파일이 조작되거나 훼손됐다면 하드까지 분해해서 일일이 대조해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22일 문제의 마티즈 차량을 폐차시킨 국정원의 조직적 증거인멸처럼.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비영리 연구팀 '시티즌랩'의 작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해킹팀 업체가 국정원과 거래하며 미국의 서버를 경유했다고 하니, 그곳의 로그기록도 삭제됐다면 진실규명은 물 건너간 것과 다름없습니다. 국정원이 국가기밀을 미국(의 정부나 기업, 정보기관 등)에 팔아먹었다는 것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신경민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해킹됐거나 감청당한 핸드폰의 통신사망 로그기록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마저 조작되거나 삭제됐다면 진실규명은 국정원 직원들의 내부고발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경찰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주장을 펼치며 사건을 조기종결했는지도 내부고발이 없으면 밝힐 수 없습니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지난 4월에 자료 삭제가 불가능한 부서로 전출갔다는 사실과 4급 이하는 자료를 삭제할 수 없다는 국정원 내규만으로 국정원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밝힐 수도 없습니다. 권은희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국정원 댓글사건이 표면화되지도 않았을 것처럼, 계속되는 속보를 종합할 때 남은 것은 내부고발밖에 없습니다. 



새누리당2중대의 역할에 충실한 야당에게 바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국정원의 내국인 사찰논란도 흐지부지되는 것 아닐지 걱정이 앞섭니다. 슈퍼추경 처리에 합의하면서, 국정원 사찰의혹 청문회도 개최하지 않고 법인세 인상도 명시하지 않는 것에 합의한 것으로 볼 때 진상규명은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문재인.. 이 세 글자를 희망의 목록에서 지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단 한 번도 긍정적으로 다룬 적이 없었던 김한길도 국회를 박차고 나가 천막당사를 차렸었는데, 문재인은 지지자와 국민을 상대로 정신 나간 퍼포먼스(러브샷과 셀프 디스)나 하고 있지 않나.. 정치가 무슨 어린내장난도 아니고,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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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4 08:55 신고

    요즘 야당 대표급의 존재감이 너무나 없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할 정도 입니다

    다른쪽에선 재벌 사면 한다고 낄낄 대고 있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넋놓고 남의잔치집 잔치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4 15:39 신고

      문재인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까지 무력한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문제입니다.

  2. 바람 언덕 2015.07.24 09:14 신고

    내부 고발자가 나온다고 해도 상황을 반전시킬 힘이 없습니다.
    권은희 과장이 그 상징입니다.
    사실상 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이 나라는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한 수구보수정권의 장기집권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4 15:40 신고

      그래도 내부고발자가 나와야 합니다.
      정치란 명분이 쌓여야 혁명이던 민란이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재인이 정말 사람 실망시키네요.

  3. 耽讀 2015.07.24 13:10 신고

    지금 이 문제 해결 안하면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은 새누리당이 잡습니다.
    선거 아무리 잘하고, 야당 지지자 투표율 100%, 새누리당 지지자 투표율 50%라고 해도 개표에서 집니다.

  4. 구름바다 2015.07.24 15:38 신고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잘 설명했습니다.

    공감이 충분히 갑니다.

    이 것을 바로 잡지 못 하면 국정원의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을
    영원히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정말 문재인씨가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지만
    과연 얼마나 당차게 나갈 수 있을런지...
    대안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슬퍼군요...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24 15:41 신고

      문재인이 너무 물렁합니다.
      이런 식이면 백퍼센트 패합니다.
      야당을 뒤집어야지 이대로는 안 됩니다.

  5. 사가닥 2016.07.16 23:56 신고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저는 아웃사이더적 기질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제가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 것에서 나온 것 같고, 상대적이고 때로는 절대적인 약자를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불의한 강자에게 지극히 도전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아웃사이더적 기질과 풍부한 상상력,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등이 무모할 정도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얄팍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본 사람은 저와 비슷한 서향과 기질에 빠지기 쉽고, 이는 『아웃사이더』의 저자 콜린 윌슨이 설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란 '평생을 치통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자기보존의 본능과 끝없이 싸우면서도, 지독한 자아의 방황에 끔찍한 열병을 앓는 사람이고, 그 중에 일부는 성자의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는데, 제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삐걱거리면 걷는 양철로봇과 같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저로 하여금 사업에 실패한 이후 처음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바라보게 한 최초의 순간이었고, 저는 그 후로도 한참이 흘러야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승의 주인에게 제출할 삶의 대차대조표에 기록할 삶의 변명들을 찾던 것에서부터 처음으로 해방될 수 있는 단초를 찾은 것이었지만, 그때는 제게 찾아온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영역에 대한 지적 탐구를 계속했고, 그것이 제 육체의 병들로부터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그때는 제 몸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변화의 조짐들을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어쨌든 저는 딜리트키를 한 번 누르면 완전히 삭제되는 최후의 선택을 뒤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아주 자그마한 여유가 생긴 저는, 저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주목하지 못한 채 주류 경제학(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과 거기서 인용된 책들을 네트워크 타듯이 넘다들며 지적 탐구의 분야를 넓혀갔습니다.

 

 

특히 밀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시카고학파들의 저작들과 하이에크의 《노예로의 길》과 《자유에의 헌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헌데 작은 지식이 쌓인 것 때문일까, 아니면 현장과 너무 다른 그들의 주장과 뻔뻔함 때문인가, 저는 그들의 형편없으면서도 탁월한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는 누구나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지적 사기(그들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를 끝까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카고학파와 그들의 현실 참여와 각종 기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파고들수록 정치는 물론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실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계급적 의식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같은 그런 계급의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공통의 정서적 유대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저의 분노는 커가기만 했습니다.

 

 

경제학 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안내자도 없는 완벽한 독학이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의 해석을 바탕으로 편향된 지식만 섭취하던 저는, 저의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도 그들의 이론은 지구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화폐주의와 자유방임적 무한경쟁을 통해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최종 목표로 하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빚도 자산이라는 허구의 논리가 인류를 종멸로 이끌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거대 자본과 금융산업이 대다수의 국가와 인류의 발전을 견인했던 실물경제를 담보로 다단계적 사기를 얼마든지 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고 주장이었습니다, 제가 L통신사를 상대로 일종의 허무맹랑한 사기를 쳤던 것처럼. 그들은 거대한 지적사기군단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주류 경제학(신고전주의자)은 경제학자들이 먹고살기에 딱 알 맞는 학문이었습니다. 



오히려 J.S. 밀과 칼 마르크스에서 시작해, 칼 폴라니와 허버트 민스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장하준 및 센  등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주류 경제학자들의 책에서 더 많은 지혜와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훨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물 경제와 금융 산업에 적합했고 살아 있는 통찰이자 지식이었습니다, 『블랙스완』의 저자 탈래브가 시니컬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그러다 문득 저는 한 가지 공통점 비슷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동안 방향을 못 잡던 중에 문득 떠오른 것인데, 그것은 현대로 접어들수록 주류 경제학자들이 갖추지 못한 것들의 공통분모였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했는데, 그것은 위대한 현인들의 특징인 철학적 사고와 과학적 지식의 부족이었습니다. 또한 미국 중심의 편향적인 가치관과 기회주의적 속성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지적 탐구는 다방면으로 확대됐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때부터 주객이 완전히 전도됐습니다. 저승에 제출할 삶의 대차대조표에서 엄청난 마이너스를 만회하기 위해 시작한 생의 마지막 여정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고, 그 내용도 처음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저자들이 인용하고 추천한 책들을 중심으로 끝없는 지적 여정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지식은 쌓여갔고, 몇 번인가 두뇌 이곳저곳에서 각자 따로 있던 각각의 분야들의 지식들이 조금씩 합쳐지거나, 일부라도 연결되는 그런 생각하지도 못했던 경험들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는 제가 알게 된 것들을, 사업 실패의 경험과 함께 이 시대의 사람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과 미래세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죽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 것이지요. 물론 그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더욱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방향을 틀었는데, 지금에서 돌아보면 제 건강도 그때부터 끝없이 이어지던 추락에서 상승 쪽으로 돌아선 첫 번째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끝에는 더 큰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젊었을 때 읽었던 천여 권에 이르는 문학서적들과 각종 교양서적에서 접할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읽은 것들을 모두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종 지식들을 꾸역꾸역 뇌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앞에서 경험한 것, 이렇게 무식하게 정독한 것들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하나의 종합으로 귀결되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중중의 병들을 달고 사는 환자가 어설프게라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면 최소한의 건강이 뒷받침돼야 했는데, 제 몸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제게는 분명 커다란 기적이었습니다. 뇌의 기능이 살아나자 육체의 건강도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정말로 문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에 찾아온 무모한 생각 하나가 저를 다시 살게 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하루에 몇 십 분씩이라도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조금씩 쌓여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운동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분명 마지막 선택을 생각했던 시기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해져 있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완벽히 극복할 수 없었지만, 육체적 고통은 많이 줄어들었고 망가진 간과 허리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저는 닥치는 대로 물리학과 화학(이것은 제 형님과 동생의 전공이라 공부하기가 수월했습니다)에 대한 교양과학 서적들을 사서 읽었고 생물학과 유전공학, 뇌과학과 정보통신과 언론방송 분야까지 닥치는 대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몇 번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작정 읽고 또 읽었습니다. 모든 책을 정독했고,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습니다.

                                                           

 

동시에 자연철학과 정치학으로 범위를 넓혔고,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쓴 책들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터지라고, 두뇌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일고 또 읽었습니다. 막무가내 식 독서가 300여 권을 넘어설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속살을 볼 수 있는 통섭적 지식을 찾고야 말겠다는 미친 짓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소설 같은 책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고, 철학적 사고와 과학적 추상을 요구하는 것들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전반적인 이해도 딸렸지만, 하나의 책에서 인용된 다른 책들로 옮겨가며 지적 탐구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정말로 무모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결과들이 하나 둘씩 모양을 갖추면서 저는 일정 수준 이상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고, 제가 직접 책을 사서 읽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쯤에는 읽은 책들이 500여 권을 넘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적 탐구를 향한 주먹구구식 독서의 양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아니 어쩌면 건강이 좋아지는 것 이상으로 경이로운 일일지도 몰랐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머리 여러 곳에 따로 따로 저장돼 있던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의 내용들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연결되고 합쳐지더니 하나의 개념과 이해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밝힌 것처럼 뇌의 가소성 원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뇌의 여러 부위에 따로 존재했던 책의 내용들이 새롭게 살아난 뉴런과 시냅스에 의해 연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철학·방송·교육·역사 등의 온갖 서적에 나왔던 내용들이 서로 몸을 섞더니 명료한 형태로 융합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은 동안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도 두껍게 가렸던 속살들을 드러내더니 이내 합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어서, 제가 가장 싫어하게 된 플라톤의 경이로운 체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후로 책을 읽는 속도와 이해도가 높아졌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책들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데 진정으로 경이로운 일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뇌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에 의해 세상의 이면과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온갖 병으로 망가진 몸에서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처음에는 그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맞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간의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는 간경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공황증상과 깨어 있는 모든 순간마다 통증을 전해오는 디스크 증세와 만날 때마다 저는 2~3개 월 간격으로 죽을듯한 고통에 시달리다가도, 체력이 살아나며 다시 살아갈 만큼의 회복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회복된 체력이 제 나이 또래의 평균적인 것에는 미치지 못할 만큼 미약한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통증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통증의 업&다운이란 현세와 지옥을 오가는 느린 마차처럼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갈아먹는 것은 변함없었지만, 이런 기간이 지나가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한 번 건강이 악화되면 최소 2주는 사경을 헤맬 정도로 고통에 시달립니다. 피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적 각성의 고열은 극도의 피로를 가져다줍니다. 신문의 기사 하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TV 시청을 2분 이상 지속할 수 없을 만큼의 극한의 피로감에 빠져듭니다.


                                        

                                                     로댕의 지옥의 문



그렇게 1분1초가 단테의 불길처럼 짓밟고 가면, 저는 조금씩 극도의 무력함과 피로에서 패잔병처럼 풀려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뇌의 변화에 이어 일어난 육체의 변화를 건강 자체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될 극한 고통과 견딜 만한 고통의 사이클 중의 하나라고 평가 절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업다운이라도 생긴 것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1%의 희망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그 망할 놈의 1% 때문에 현실적 두려움인 99%의 절망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작은 몇 평의 방에서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갇혀 있던 육체에, 하루하루의 힘겨운 삶에 작은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인정하기가 어려웠고, 다시 찾아올 통증에 대한 예단이 제 영혼을 좀먹곤 했습니다. 정신에 이은 육체의 변화는 분명히 예전의 싸이클과는 달랐고 저는 업다운의 폭이 줄어들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런 변화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그것은 마치 작열하던 태양이 어둠으로 넘어가기 전에 휴식의 공간처럼 황혼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었습니다. 수면제가 들어간 다량의 신경정신약의 힘을 빌어 잠이 든 후, 느지막이 깨어나면 약 1~2분간 주어지던 무고통의 평화로운 순간들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정신과 영혼까지 갉아먹던 육체적 통증이 완연하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그런 변화, 육체적 통증에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게 된 체력의 회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죽는 순간까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건강의 호전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절대 제 것일 수 없으리라 포기했던 희망이 비로소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저 알고나 죽자고 했던 그 자포자기식 저항이, 한 가닥 미련이 저를 끈질긴 고통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심연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빌어먹을 1%의 희망이 절대적인 확률로 저를 짓눌렀던 99%의 두려움과 현실적인 한계와 압도적인 절망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의 여명이 너무나 무겁게 자리하고 있어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던 칠흑 같은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면서.  




P.S. 이 글을 쓴 3년 후인 어제, 마침내 서울까지 운전을 하고 갈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너무 지쳐서 세월호광장과 소녀상에 갈 수 없었지만, 서울까지 운정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갈 생각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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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산 2014.08.17 00:37 신고

    늙음도령님 그런 큰 사건을 통해 얻게된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4.08.17 00:49 신고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 동안 공부한 것을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2. 늦은봄 2014.08.19 20:05 신고

    건투를 빕니다~~^^

  3. 백순주 2015.08.18 11:59 신고

    V자를 그리며 웃고 있는 모습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글입니다.
    이제 좀 편안해 지셨나요?
    저는 단 1%도 공감해 드릴 수 없는 인생입니다.
    남편이 제게 했던 말을 늘 반박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겠습니다.
    "암튼 즐거운 인생이야! 대체 어려움이 없었으니 어떻게 이해를 하겠어?"

    학문의 넘나듦을 할 수 있는 님의 능력이 부러우면서도 그 댓가를 치르라면 손사래를 치며 달아날 수밖에 없겠습니다.
    희망을 보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늙은 도령'이라는 필명이 왠지 꺼려져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 학문의 깊이가 앝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끝에 닿도록 제 자리에서 힘 써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윤승현 2016.05.12 10:17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처음 "썰전"에 출연하는 유시민,전원책님을 검색하다 이곳과 인연을 맺게되었습니다. 어제 처음 썰전에 유시민작가님이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 몰아서 다시보기를 하다보니 아침이 되었구요. ^^;;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과 인연을 맺게 되다니....
    좋은 글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란의 글은 더욱 공감하면서 읽었구요.
    자주 자주 들러 좋은 글로 감사한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워갈게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윤승현 배상



저는 궁금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 참혹한 실패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수많은 인재ㅡ학력에서도, 경력에서도, 창의성에서도, 성실성에서도 잘해왔고 잘할 것으로 보였던ㅡ들이 창업했던 벤처기업들이 속절없이 망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창업하는 순간이 지옥행 열차를 예약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들 거의 전부에 확실한 인맥이 있고 권력의 핵심부까지 연결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도와주었음에도 제가 단 한 방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한시도 몸에서 떠나지 않는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그 수많은 실패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니 그저 알고나 죽자, 그것뿐이었습니다. 



작은 바람이 있었다면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승에 이르러서 삶의 대차대조표를 내놓을 때 궁색한 변명이라도 적어놓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막상 삶의 기억을 되돌려 보면 삶의 대차대조표에 기록할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저에게 삶의 마지막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끈질긴 생존에의 욕망을 훌훌 떨쳐버리기 위한 용기를 주기 위해 대차대조표 상의 기입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동생과 형의 도움을 받아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업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경제와 경영 관련 서적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 칼 마르크스, 룩셈부르크, 게오르그 짐멜, J.S.밀, 조지프 슘페터, 리스트, 케인즈, 폴라니, 슈마허, 오이켄, 뢰프케, 뤼스토우, 미제스,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민스키, 나이트, 갤브레이스, 킨들버그, 베블런, 맨큐와 섹스,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 장하준과 센, 피투시, 이근식과 이정우 등등을 거쳐 무게 없는 경제의 대명사로 등장한 『티핑포인트』와 『롱테일 경제학』, 『블랙스완』까지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습니다.                                               




 

헌데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에서 시작된 주류 경제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경제학이라는 것이 그 출발부터 모순과 오류로 가득했습니다. 아마 이쯤부터였을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 선택을 위한 최후의 변론을 준비하는 것을 잠시 동안 뒤로 밀어놓고, 본격적인 지적 탐구의 영역으로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이. 제가 다시 살게 된 단초가 된, 그 말도 안 되는 긴 여정의 첫 걸음이.  

 

 

제가 사업에 실패한 것처럼,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합리적 인간의 이익 추구가 자유 시장(이른바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자유방임적 시장과, 한 번인가 언급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가는)을 매개로 완벽한 경제 체제를 만든다는 초등학교 수준의 선언은, 그의 주저 『도덕감정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순진한 아이디어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주류경제학은 그 출발부터 실패를 보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경제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했던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칼 폴라니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갤브레이스와 장하준 등이 비판했듯이 아담 스미스의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허구적이며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였습니다. 내가 무일푼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최단기 벤처신화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그 허무맹랑한 일장춘몽의 비극처럼. 어쩌면 나는 이들의 주장에 완전히 속은 아마추어 중 하나였을지도 몰랐습니다, 유신헌법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국가가 나서서 사기쳤던 시절의 나처럼.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삶을 영위하는 모든 개개인에게 기독교적 도덕이나 윤리적 책임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살라는 해방선언에 다름 아니었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이 제가 꿈꾸던 성공에 대한 환상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ㅡ일종의 신의 섭리나 우주의 법칙 같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ㅡ이었습니다. 경제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를 감안하면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의 위대함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이미 수백 년이 지난 21세기의 제가 보기에는 잘못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를 완벽한 패배자로 만든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의 자행했던 행태가 가능한 것도 어쩌면 이런 잘못된 신화가 수백 년 동안 쌓여, 소비자들의 눈을 가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착취하며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같은 것이 실제로는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었음에도, 상상을 불허하는 인맥으로 하여 저는 그런 갑과 유사 갑의 횡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자만심에 빠지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랙털 기하학



처음으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뇌에서, 신경에서, 세포에서 동시에 흘러나왔습니다. 비로소 저는 시야를 가린 짙은 안개 너머로 언뜻언뜻 세상의 속살에 다가갈 수 있는 작은 단서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작은 조각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으로 전체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전체는 조각과 동일하다는 만델브로트의 ‘프랙털 이론’처럼, 안개 너머로 스치듯이 본 작은 조각들이 전체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깨달음이었고, 작은 성찰에 불과했지만 다음으로 나가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저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잠시 동안 제가 속해 있었던 삶의 쪽을 살펴보기 위해, 제가 제 자신에게 주었던 뜬금없던 기회의 황당함에 비할 만큼 세상의 속살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세상의 표면만을 보며,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어떤 것ㅡ그것이 자본이던 권력이던 무력이던 권위이던 신이던ㅡ에 대해 알아야 했습니다. 



어째서 모순과 오류로 넘쳐나는 경제학과 경영학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으며, 초국적기업들과 거대 금융자본과 국제기구와 국제법 등이 하나처럼 움직이는지, 개별 국가의 통치엘리트들은 그들과 타협한 채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지, 극단적 불평등이 난무하고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계산되며, 가난하고 힘없는 자가 수없이 죽어나가도 별다른 뉴스가 되지 못하는,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최후의 선택을 뒤로 미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시점이 제게 허락된 삶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저에게 제가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아니, 사업 실패에 대한 변론의 법정에 제 스스로 설 수 있는 용기의 일단을 비루하기 그지없는 저에게서 제가 허락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수많은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중에, 어머님 말고도 처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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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oaton 2014.08.09 23:23 신고

    잘 읽었습니다.

  2. Croaton 2014.08.10 21:07 신고

    예.. 제가 뭘 급하게 했나 보군요.

  3. 늙은도령 2014.08.10 21:39 신고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마음이 되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블로거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먹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메리트가 되려면 네티즌 모임의 일일 방문객이 수천 명에 이르러야 합니다.

    저도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볼 게요.

    저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미친듯이 달려들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홍보와 마케팅 방안을 고민해보겠습니다.

    활성화까지 최소 1년 정도는 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길게 보자고 한 것입니다.

  4. 덕산 2014.08.12 14:10 신고

    우리나라에 정의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늙은도령님 항상 건강하십시요.

    • 늙은도령 2014.08.12 16:39 신고

      네, 정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소기업들과 대기업 간에 필요하고, 강자와 약자 사이에 필요합니다.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면 이런 일이 줄어듭니다.
      우리는 체제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주의가 경제영역에도 적용되면 공생이 가능해집니다.
      제 형제와 친구들이 삼성, 현대 등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서 임원으로 있지만 이들도 최근에 들어서는 기업의 이익이 너무 소수에게 집중됨을 걱정합니다.

  5. 2014.08.13 14:57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5 21:34 신고

      정말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LG전자에 대한 미움이 모두 사라졌지만, 국가가 제 역할만 하면 재벌들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공존과 공생이 가능합니다.
      빚이 있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으면 파산을 신청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의외로 상황이 급박하면 대부분 통과됩니다.
      채권자에게 모두 다 전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빌린 부분만 전화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저축도 할 수 있고, 신용카드는 못 만들지만 회생프로그램을 밟으면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립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니 한 번 고민해보십시오.

  6. 백순주 2015.08.15 23:50 신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셨다는 말... 비로소 숨이 쉬어집니다.
    첫번째 글에서는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손을 댈 수가 없었는데... 다행입니다.
    제목이 '내가 다시 살게된 이유'인 것을 아둔한 저는 이제사 눈에 들어 옵니다.
    세번째 글은 조금 아껴두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16 01:12 신고

      지금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더욱 많은 의문들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지금의 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확실하게 깨졌으면 합니다.
      뭐가 부족한지, 그래서 뭐를 더 알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나가면 확실한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엉켜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풀어가고 있는데, 건강이 바쳐주기만을 바랍니다.

      님도 좋은 글로 멋진 블로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처음에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L전자에 대한 원망이 강했으나, 갈수록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더욱 컸습니다.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과 끝까지 저를 밀어주었던 친구들의 도움에 아무런 화답도 못한 것들이 저를 끝없는 회한의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해진 정신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사업 실패에 대한 자책은 일상의 모든 것들에 스며선 견고하게 자리 잡아 끈질기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가족과의 눈 맞춤도 힘이 들었습니다. 형과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 곳은 마련했지만, 유별나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 제 주변의 상황이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자격지심이 집요할 정도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업 실패에 따른 온갖 병으로 제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는데도, 저는 병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정신이 병들면 어떤 위로의 말도 차갑거나 비릿하게 들리는 모양입니다.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삐딱한 경사가 생기고, 자책은 내적인 분노와 의심으로 영혼을 병들게 했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삶의 거의 모든 것에 긍정적이었던 제가 하루하루 폐쇄적이고 음울하며 적개심 강한 병든 괴물로 변해갔습니다. 제 안의 수많은 제가 수시로 생각의 주인이 돼 온갖 광기의 검들을 휘둘렀고, 육신의 고통과 감정의 너울에 따라 냉기를 퍼붇다가 용암처럼 튀어올라 저를 갉아먹었고, 극단으로 몰아쳤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 너는 살 가치도 없어.. 이 정도의 호사가 너에게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라.. 행동으로 너의 죄값을 치러라.. 가만히 있어도 떠올라 무섭게 저를 몰아치는 생각, 생각들.. 저는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힘겹고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생각이 멈추기나 하면 육체의 고통하고만 싸우면 될 것 같았습니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자책의 생각들 속으로는 회한이 참회로, 울분이 분노로, 저항이 광기로, 자괴가 자학으로 넘나들며 제가 제에게 묻고 제가 대답하고 회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제게 허락된 몇 평의 공간마저 저를 숨막힐 정도로 조여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죽어가는 날들이 쌓여가기를 몇 달을 넘어 몇 년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정신의 고통이 커갈수록 영혼은 어둠의 핵심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그것을 인지할 때마다ㅡ언제나 인지했지만ㅡ한 가닥 가느다란 존재의 끈마저 놓고 싶었습니다. 그때쯤부터,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진 날카롭고 끈질긴 육체의 고통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정신적 갈등과 영혼의 도피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육체적 고통의 크기가 커가는 만큼 정신적 방황은 줄어들었지만, 제가 거처할 공간이 갈수록 좁아드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압박이 커짐에 따라 수시로 발생하는 공황증세가 극도로 활성화된 죽음의 공포를 세포 하나하나, 신경 하나하나마다 독약처럼 스며들게 만들었습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건강이 나빠질수록, 체력이 고갈될수록 제가 제어하지도 방어하지도 못할 상황에 대한 공포가, 저를 짓누르는 죽음에 대한 극한의 공포ㅡ매일같이 자살을 생각했음에도ㅡ로 이어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공황증세가 저를 극도로 무력화시켰고, 매일같이 갱신되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것은 건강이 나빠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악화될 뿐, 회복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주는 극도의 고통과 공포에 저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무장해제된 제가, 살아서 머물 수 있는 참회와 안식의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증거만 쌓여갔습니다. 



1시간을 버티면 그 다음의 1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면 얼마든지 쌓일 수 있는 존재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적 고통이란 언어의 장난이자 건강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육체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면 정신이란 한낱 장신구에 불과했습니다.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이 괴로웠습니다. 당연히 생각의 지평은 좁아졌고, 의지의 영역이란 갈수록 줄어드는 공간의 압박과 시간의 축적에 최후의 수단이란 탈출구를 강요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남아 있는 선택이란 단 하나뿐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저를 설득했고, 이 질긴 육체적 고통에서, 모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삶이 주는 고통의 굴레가 커질수록, 가상의 죽음이 전해주는 그 악마적 쾌락만 무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육체적 고통에 잠들기조차도 힘이 들었습니다. 최후의 선택까지 버티려면 항우울제와 향정신성 약물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단 1분도 잠들 수 없었습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가 저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안식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약물에 의존해 잠이들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를 먹고 난 다음 긴긴 잠에서 깨어나면, 아직 고통에 대한 육체적 메커니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1분여 정도의 시간 동안만ㅡ신경이 병에 만들어내는 통증을 뇌에 전달하기 전의 1분여의 시간만 저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달콤함이란 내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자, 어떻게든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일종의 마약중독자처럼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의 노예로 전락해갔습니다.

 

 

저는 악마에게 기도했습니다. 부디 가족도 저를 포기해주기를.. 기억의 단편에서라도 저를 지워가기를..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자 거의 매시간마다 울려대던 핸드폰도 잠잠했졌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저의 안부를 묻는 전화도 점차 줄어들어갔고, 마침내 저는 핸드폰을 해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세상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매체인 인터넷과 신문도 끊었습니다. 저는 세상과 연결된 모든 것들을 하나씩 잘라나갔습니다.



부디 저를 기억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저의 존재를 잊어주기를.. 저라는 인간이 이땅에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였다는 것처럼 잊혀지기를.. 저는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나씩 지옥으로의 떠남을 준비했습니다. 억지로라도 세상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저에게 세상이 언제 자비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멍에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존재했던 자리마저 허용되지 않는 냉정한 현실과 갈수록 늘어나는 약물 뿐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것이란 이런 죽음보다 못한 삶의 비루함 뿐이었습니다. 저는 꿈꿨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극적인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만 더욱더 강해졌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이 실패와 좌절에 대한 것들뿐인데.. 가장 극적인 죽음이라니!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습니다. 초라하게 떠나자,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할 수 있다면 제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몇 조각의 흔적마저 지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죽음 중 가장 초라한 죽음, 컴퓨터 자판의 딜리트 키만 누르면 이땅에 존재했다는 모든 흔적들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져버리는 그런 삭제되는 죽음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죽음을 떠올리고 떠올려 봤는데.. 끝내 한 사람의 얼굴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 제 삶에서 손을 뻗으면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 있었던 어머님의 얼굴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한 발짝도 앞으로도 나갈 수 없었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갇힌 채, 살아 있으나 주검만도 못한 육체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죽지 못했기에 단 한 순간도 휴식할 수 없었던 생각의 고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완전히 갇힌 채 벌레 같은 몇 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싸움을 나 홀로 하고 있을 때, 어떤 매개물도 근거도 없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체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가? 난 정말 열심히 살았지 않았는가? 가능하면 죄짓지 않으려 했고,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멍에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도 투정부리지도 않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고통의 질곡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가? 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봤고, 게다가 같은 장애인이지만 나처럼 살지 못하는 이들과 상대적인 약자들을 위해 사업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저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최초의 순간이 생각나지 않지만,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제 삶이 꼬였고 도저히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버렸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경쟁에서도 뒤져지지 않았던 제가 왜 이런 막다른 골목까지 밀려왔을까? 제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이 철저한 실패로 이어지는데 세상은 또 어떻게 작용했을까? 단지 장애인이라는 것만으로, 평균적 인간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저 같은 인간에게는 상당히 닫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처참한 실패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저에게 가장 초라한 죽음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에서, 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자리한 지랄 같은 세상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저 알고 싶었습니다, 가장 초라한 죽음을 택하기 전에. 끝끝내 어머니의 얼굴을 지울 수 없다고 해도, 저는 알고나 죽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초가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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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흙속의연꽃 2014.08.09 08:15 신고

    참으로 눈물 나는 이야기 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요. 단맛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단맛을 느끼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보지만 당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로서도 충분히 다가 옵니다.

    글의 말미에 극적인 반전이 보입니다. 그것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목숨을 건 단식을 하는지에 대한 심정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왜 이 사회가 잘 못 되었는지 모두 알려 주십시요.

    • 늙은도령 2014.08.09 19:44 신고

      네,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최대한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죠.
      권력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2. 덕산 2014.08.12 13:25 신고

    정말 눈물이 나옵니다.
    왜 늙은 도령님의 글에 진심과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44 신고

      글을 쓰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정말로 글을 통해 자신을 담아내려면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도 용감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자세입니다.

  3. 태봉 2014.08.16 21:55 신고

    님의 글을 보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 직접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런다고 제가 얼마나 님의 고통을 알수나 있을까요? 그나저나 현재 님이 그 기간을 이겨내시고 제가 이렇게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8 17:22 신고

      네, 그렇게 다시 살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고, 님과도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4. hwang sy 2016.01.26 03:44 신고

    살아야 하는 건 그 자체가 이유가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요 ^^

    • 늙은도령 2016.01.26 04:58 신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라,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라.... 그러다 보면 살아내는 것이지요.

  5. 남순희 2016.01.27 08:02 신고

    현재님이 장애인 이셨다니 ~
    그리고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글을 읽으니 정말 마음 아프네요.
    어떻게든 극복 하셔야죠.



그런 나날 속에서 극도로 커진 스트레스와 누적된 만성피로에 간이 망가지고 마이클잭슨 같은 슈퍼스타나 걸리는 백반증이 온몸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생긴 두 다리의 길이 차이 때문에 디스크가 악화돼 만성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수면 장애는 더욱 악화돼 공황 증세로 발전해 수시로 저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가면서 저를 아예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까지 망가뜨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 빚쟁이들의 끊임없는 독촉은 그들의 투자금을 다 갚거나, 현재의 병들이 악화돼 드러눕거나 죽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서 불치병인 간경화까지 저를 찾아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공황증상에 탈진해 죽음 직전의 공포까지 떨어지기를 수십 차례, 육신은 지칠대로 지쳤고, 살아있는 것이 차라리 지옥이었습니다. 어머님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전화만 와도 벌벌 떨었고, 20년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두 눈 중 하나는 실명에 이르렀고, 나머지도 불안불안 한 상태까지 악화됐습니다.

 

 

누구한테도 도움을 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파트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미국에서 귀국한 형과 S그룹 임원으로 막 승진한 동생이 전셋집은 마련해주었지만,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형은 차라리 감옥에나 들어갔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습니다, 제 건강이 받쳐주는 한에서는. 아니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금의 형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그것이 빚쟁이들의 시달림 속에서 가장 빨리,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헌데 저는 이렇다 할 불법은 저지르지 않았기에 감옥에 들어갈 방법도 없었고,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악화된 건강 때문에 금방 석방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지만 말입니다.

 

 

물론 감옥에서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차라리 그게 나을 듯싶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이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저 역시 아버님보다 10년 정도 앞선 나이에 비슷한 병으로 생을 마감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만 줄기차게 들더라고요. 기억 속에 분명히 자리하고 생각들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쇼팬하우어의 책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몸이 극도로 망가지자 빚쟁이들이 하나둘씩 물러나고 자금 회수를 포기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죽음과도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니 향후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의 끊임없는 도움으로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결국은 개인파산, 즉 경제적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한 빚 독촉을 했던 두 분의 개인투자자들에게서 어머님을 지켜낼 방법이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의식 때문에 그렇게도 하지 않으려 했던 개인파산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빚을 털어내지 않으면 더 이상은 버텨낼 수 없었습니다. 갈수록 늘어가는 어머님에 대한 불효와 건강 악화가 개인투자자에 대한 죄의식에서 더 이상의 불효는 안 되다는 생각에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지요.

 

 

이미 투자금을 돌려받기를 포기한 개인투자자들까지 포함해 저의 능력과 비전을 믿어주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개인파산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도저히 재기불가능한 제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간곡한 용서를 구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그때, 저는 경제적으로도 실질적으로 죽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는 산다는 게 죽음보다 못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은 24시간 온갖 통증을 선사했습니다. 육체적 고통이 최악에 이르면 정신적 고통이란 사치일 뿐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으로 인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했습니다. 형과 동생, 친척과 친구들은 연일 승리의 나팔을 불어댔지만 저만은 끝모르는 어둠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짧게 요약한 제 사업실패 스토리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저는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두 분의 멘토와 다른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분명히 말하지만 절대 창업하지 마십시오. 어떤 비상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해도, 끝내주는 제품을 만들어 대박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해도 현 대한민국 상황에서는 절대 창업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10억쯤, 사장님 소리 듣는 재미에 그냥 마음껏 쓰다가 모두 날리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산을 갖고 있지 않다면 절대 창업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아니라면 판매할 제품이 나올 때까지 최소한 3년간은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투자금을 받아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절대 사업에 뛰어들지 마십시오.

 

 

매년 창업되는 기업들 중의 90%는 1~2년 안에 망합니다. 살아남은 1% 중에서도 0.01%만이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현상 유지나 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매년 통계층 등에서 발표하는 자료는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거의 통계 왜곡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분명한 투자자가 나오기 전에는 절대 창업하지 마십시오.

 

 

아이디어가 뛰어날수록 대기업에게 뺏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맥이라는 것도 잘 돌아갈 때나 인맥인거지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 인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누가 뭐라고 해도 영업의 99%는 인맥인데, 그 정도의 인맥을 구축한 중소기업은 거의 없고 창업을 선택한 99.99%의 신생기업이라면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기업 오너의 자식이어서 일감을 몰아주지 않는 한.

 

 

그것만이 아닙니다. 회사의 운영체계와 직원들의 수준이 대기업에 이르는, 그 근처에라도 겨우겨우 다가간 중소기업은 0.000001%도 안 됩니다. 애당초 게임이 안 되는 거지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블루오션을 발견했다고 해도,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찾았다고 해도 그 시장이 조금이라도 커질 기미가 보이면 대기업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빼앗아 갑니다.

 

 

최근에는 ‘통 큰 시리즈’까지 연속적으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젠 소규모 장사치의 것까지 싸그리 빼앗아 가겠다고 만천하에 선언한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감히 창업이라고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얘기입니다. 한 번 실패하면 철저히 망가지고 가족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절대 재도전의,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 대한민국 경제체제 하에서 어떤 이유로도, 어떤 가능성으로도, 누가 뭐라고 해도 창업하지 마십시오.

 

 

그건 99.99% 자살로 들어가는 초고속 열차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속 300km로 일차선 도로를 양방향에서 질주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최근에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도무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창조경제가 자리를 잡는다 해도 창업을 하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고도 또다시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1%의 희망을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무려 99%에 이르는 절망의 실체에 대해서 억지로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극히 희박한 희망이 나에게는 통할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정치적 명제도 창업에 적용되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P.S.이것으로 저의 사업이야기는 마칩니다. 다음 편부터는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다 어떻게 다시 삶을 일으켜 세웠는지에 대해 쓸까합니다.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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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흙속의연꽃 2014.08.06 20:38 신고

    공감 합니다.
    사회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비슷한 내용입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다 부도가 나서
    한 없이 추락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내가 경험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생생하였습니다.

    99.9%는 실패 하고 0.1% 정도 성공할까 말까한
    것 동의 합니다.
    제명대로 살려면 창업은 꿈에도 꾸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06 20:50 신고

      네, 우리나라의 환경에서는 안 됩니다.
      더더욱 경제가 나빠진 현재의 상태에서도 안 됩니다.

      요즘에는 전 세계적으로 창업의 실패가 90%를 넘은 상태입니다.
      현재의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창업은 너무 많은 사람을 구렁텅이로 내몹니다.

  2. Croaton 2014.08.07 01:36 신고

    좋은 글.. 가슴 아픈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 늙은도령 2014.08.07 03:25 신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지금은 그 때의 경험이 저를 살게 하고 있습니다.

  3. 덕산 2014.08.12 13:17 신고

    정말 귀감이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고자 다양한 아이템을 알아보고 있던 중입니다.
    OEM업체에서 벗어나고자 아둥아둥 발버둥 치고 있는 도중에
    이 글을 읽은지라 약간의 두려움 및 경계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 경제상태와 정권에서는 왠만하면 새 사업을 시작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게되네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36 신고

      반드시 사전 마케팅을 해보셔야 합니다.
      지역들을 정해서 마케팅을 해보고, 특정 기간을 정해서 해보고, 전체 시장의 규모와 경쟁기업들과의 마케팅, 직원들의 능력, 시장구조, 미래전망과 함께 자금계획을 최소 3개월 이상 짜 보신 후에 그러고도 이익이 남을 것 같으면 사전 마케팅해본 지역 중에 가장 잘되는 곳에서 아주 작게 시험 영업을 해보십시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시장 분석과 아이템 분석, 자금 계획이 선행돼야 하고 그 시뮬레이션이 성공 가능성이 100%가 나왔을 때만 아이템을 늘리십시오.

      지금의 경제상황은 역사상 최악입니다.
      대기업들도 시장이 형성되면 무조건 뛰어들려고 합니다.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해 거래질서를 세워야 하는데 현 정권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지만 필요할 때 자문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4. 덕산 2014.08.13 17:47 신고

    조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늙은도령님의 글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많이 키워가고 있습니다.
    나눠주시는 지식들 감사히 받겠으며 이를 통해 지식의 창을 넓혀 가도록 하겠습니다.

    (...)
    조언해 주신 것처럼 새 아이템 결정 및 신사업 추가에 대해서는 현 경제상황을 최대한 감안하여
    매우 신중히 검토하고 분석하여 접근 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필요할때 자문까지 해주신다는 말씀에 큰 힘을 얻어갑니다.

    항상 건필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십시요.
    자주 들러서 소중한 글들 읽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8.13 19:50 신고

      네, 알겠습니다.
      이 나라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나라라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시장을 창출해내도 대기업이 와서 빼앗아 가는 경우가 많으니 늘 조심하시고요.

  5. 선우림 2014.09.22 05:19 신고

    놀라운 글 안타가운 마음으로 또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무기까지는 되셨기에 유능한 사업자라 할 수 있겠는데 승천을 못하고 말았군요.
    가장 낙관적인 상황이 가장 위험한 위기일 수 있겠다 느껴집니다.
    겸손과 조화와 균형의 소중함도 배우구요.

    하나 님은 실패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고 느껴집니다.
    어이 알겠습니까?
    님만한 지식과 경륜 그리고 경험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될지요.
    님은 재산은 적으나 인간은 아주 큰 분일 수 있지요.
    그 고통의 댓가들을 언젠가는 반드시 챙기는 삶도 의미있을 것입니다.

    현대차 문제로 들어왔는데 님 자체가 더 흥미로운 분이시네요.
    못가진 것들을 부러워하지 마시고 아파하지 마시고
    가진 것들에서서 위안과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저도 긴 세월 아팠습니다.
    님과 비슷한 노총각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아름다운 희망을 키운다면
    삶은 견딜만 할거라 믿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서로.
    건강하시구요.

    • 늙은도령 2014.09.22 09:04 신고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삶 같습니다.
      참담한 실패 이후 자살만 생각하다 다시 책을 읽게 됐고, 내 안의 분노와 좌절,체념과 고통을 돌아볼 시간이 됐습니다.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대학교 때까지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이후로는 시집 이외에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삶의 열정을 찾을 수 있게 됐고, 이제는 마음이 참 부자가 됐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에 접근하면서 사유의 기쁨도 되찾았고, 완전히 소진된 에너지도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죽음에 가까운 것에서 다시 출발하다 보니 하루의 삶이 힘들지 않았고, 내일이란 시간도 충분히 기다리며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죽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직도 곳곳에 병들이 남아 있지만 불편한 친구처럼 함께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앎이 깊어가면서 지식은 나눠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공부도 계속하고 있고요.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으로 무장되면 세상은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지식을 가려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추려내고 있습니다.
      제대로 민주주의가 삶의 질을 높여주고, 태생적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꿔나가는 작은 계기라도 됐으면 합니다.

      지금보다 우리는 더 잘 살 권리가 있고 특히 미래세대는 더욱 잘 살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보다는 좋은 세상을 넘겨주고 싶을 뿐이지요.

      님도 건강을 회복해 의미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할게요.
      이렇게 인연의 처음이 시작돼 반갑습니다.

  6. 오름 2014.12.15 19:15 신고

    오늘 3시간 넘게 글을 읽다가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건강하십시오...

    저도 40대 중반을 넘어가다 보니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건강이란 걸 느끼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좋지만
    오늘 하루 먹고 살 수만 있어도 감사드리며...

    • 늙은도령 2014.12.15 19:54 신고

      반갑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돈은 죽지 않을 만큼 있으면 되지만, 건강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건강함은 일종의 가능성이라고 봅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출발은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한 삶을 기원할게요.

  7. 호운 도령 2015.12.21 03:33 신고

    안녕하세요 늙은 도령님
    23살 어린 도령입니다.
    야밤에 이리저리 떠돌다
    도령님의 게시글을 보고 댓글을 달고싶어 티스토리에 가입까지 했네요. 도령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따라한점 애교로 넘겨주시길..

    정치 시사쪽 게시글을 읽으려고 들어왔다가 3시간이넘게 블로그를 못떠나고 있고 댓글을 달고나서도
    최소한 2시간은 블로그에 계속 머무를듯 하네요 좋은 글들 정말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12.21 03:57 신고

      좋은 인연이 됐으면 합니다.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 공부한 것들을 반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지적공동체의 구성을 조금 미룰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8. 호운 도령 2015.12.21 03:57 신고

    정치권이란곳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언제나 시끄러운 그곳..
    경영이든 경제든 철학이든 어떤학문이든 책을 읽고 정보를 찾아 습득을하면 어떤것이구나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이놈의 정치는 이해를 떠나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도저히 알수가 없었죠.
    정치라는것을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파악해보려
    여러 기사들을 읽어보고 지식인들의 의견도 들어보았으나 도저히 객관성이 부여가 안되더군요.
    저의 짧은 인맥으로 접하는 지식은
    죄다 인터넷과 방송을 통한 정보였는데 각자 하는말이 다르며 부정확한 지식과 찌라시가 난무하는 과대포장된 그곳에서 저는 어떠한것도 확실히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특정 사이트에 과다히 몰입하여
    불분명한 정보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세상을 비판하는 멍청한 주변인을보니
    더 그렇게 되더군요.
    다만 느낀건 아 세상이 정말 개판이구나 정치권에서 맑은사람은 정말드물구나 맑은사람도 물이들어야 정치를하는 구조구나..
    주변 아는 어르신중 제법 급이높은 공무원을 하는분이 계셨는데 고작 지방 촌구석에 군수를 하려해도 돈봉투를 뿌리는건 관행인걸 알려주셨죠.
    저는 그 이후로 어느정도 관심을 땟습니다.
    무조건 중립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죠
    어설픈 지식으로 정치에 어떠한 잣대를 놓기보단 포기를 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1.14 17:43 신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정치란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은 보이고 그렇게 됐을 때 우리가 정치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라는 것이 국민의 의식이 높아지고, 부의 불평등이 줄어들면 자기들 뜻대로 못합니다.
      포기하는 순간이 정치인들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9. 호운 도령 2015.12.21 04:02 신고

    그냥 열심히 살고 큰사람되서 세상을 자기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에게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자 이것만 목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말이 길었네요
    오늘 도령님의 글을 과거의 글부터 쭈욱 읽으며 신뢰를 느꼈습니다.
    말빨만큼 글빨도 장난이 아니신..☺
    저의 인식에도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으며 저희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를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0. 호운 도령 2015.12.21 04:06 신고

    세상에 대해 이기적으로 변해가던 제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것같아 기쁘며 감사드립니다.
    사업이야기 또한 웃프면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 잘읽고 갑니다.
    소통이 가능한 지식인을 넷상에서라도 뵈어서 기쁩니다.

    • 늙은도령 2015.12.21 04:52 신고

      그랬다니 다행입니다.
      저의 영광이고요.
      우리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유와 자유방임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기주의는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피해를 불러옵니다.
      개인주의는 나의 이익이 타인의 피해에서 자유로울 때 나옵니다.
      자유는 책임이 있고, 타인의 평등한 자유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고, 자유방임은 내멋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의 원리라고 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11. 호운 도령 2015.12.21 05:01 신고

    좋은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세월호에도 따뜻한 마음을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지적공동체가 형성된다면 꼭 동참하고 싶네요 평범한 공대생입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하세요 많이 배워갑니다
    종종 올게요.

  12. 시골잔차 2016.06.27 19:47 신고

    앞에 댓글에 답글다신것중에

    자신의 지식이 깊어질수록, 지식은 나눠야한다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 무장이되면 ,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것이란 말씀에

    감동 먹고 갑니다.

    소중한 뼈저린 고통의 기억을 들려주셔서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펜이 될것만 같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이쯤 되면 뭔가 불길한 내용들이 나와 줘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얘기들이 그렇듯이 위기가 없으면 그거야 동화라고 해도 밋밋해서 재미도 없고, 팔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라고 한들 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충만한 때, 위기는 언제나 안개나 유령처럼 스며들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곳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며,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위기들의 한꺼번에 튀어나와 사업을 나락으로 끌어내립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돌다리도 두들긴 다음에 건너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숨겨진 위험이 실체적 모습을 드러낼 쯤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L전자가 ‘루팡’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규모 납품계약을 맺어줄 테니, 공동사업을 하자고 찾아왔던 것이죠. 말이 공동사업이지 L전자의 OEM업체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먼저 접근해왔기 때문에 저는 물론, L통신사 담당자들도 같은 그룹 계열사라는 것을 넘어, 시장 확대 면에서 자신들에게도 유리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L전자, L통신사 그리고 창업한 지 8개월밖에 안된 신생기업 ‘루팡’까지 해서 3사가 공동사업계약과 대규모 납품계약을 맺기에 이른 겁니다. 막상 계약을 맺긴 했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창업한지 8개월밖에 안 된 신생기업이 국내 굴지의 두 개의 기업과 공동사업을 하게 됐다니 이는 구글이 유투브를 인수했던 11개월보다 빠른 것입니다. 정말 저는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는 일사천리였습니다. 3사 간의 계약 내용이 전자신문과 일부 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질 정도였으니 이젠 탄탄한 성공이 눈앞에 아른 거렸고 벤처신화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때부터 월급이 밀리기 시작한 직원들도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사업에 뛰어든 진짜 목적이었던 장애인을 위한 사업도 머지않아 할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사실 제가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장애인신문사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 너무나 많은 장애인 단체와 공무원들의 비리를 목격했고, 장애인을 고용하니 거액의 벌금을 내는 대기업들을 보면서 사회구조적 모순들도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처음으로 장애인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됐고, 그래서 그런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고 싶다는 생각에 신문사를 때려 치고 나와 사업거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제가 직접 돈을 벌어 장애인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그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자활을 돕는다면 좋은 성공모델이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돌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허황된 꿈들이 실제로 이뤄질 것 같았습니다. 헌데 대량납품을 담고 있는 바로 그 계약 때문에 제가 쫄딱 망할 줄이야 어찌 알기나 했겠습니까? L전자에서 사업의 투자비용 대비 이익이 너무 적다며, OEM계약을 몇 번 수정을 요구하더니, 몇 개월 뒤에는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아예 해당 사업부를 없애버린 것이었지요. L전자의 담당직원도 부서도 사라졌으니,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모든 게 연기처럼 ‘뿅’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숱한 문제거리를 남겨둔 채.

 

 

L전자에 단 한 대의 전송장비도 납품하지 못한 채 L전자에 1차 물량으로 납품하기 위해 대출받은 전송장비 생산비용이 빚이 됐고, 처치 곤란의 재고는 공장에서 생산비가 완불될 때까지 내주지 않아 팔 수도 없었습니다. L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면 공탁금만 10억 원이 필요한데, 이미 아파트는 은행 대출건으로 날려버린 상태였습니다. 동생과 친구들도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을 만큼 적자의 크기가 하루하루 늘어났습니다.

 

 

수천 대에 이르는 재고장비의 판매가격은 L전자와의 대규모 납품계약 때문에 가격을 왕창 낮춘 상태라 이익이 나지 않는 구조가 됐고, 그렇게 판매를 해도 이익이 되지 않자 그 많던 대리점들도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루팡’의 영업력을 보고 총판권을 넘긴 다른 벤처기업들도 앞 다투어 계약을 해지했고요. 제가 파기된 계약 때문에 회사 자체를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인투자자와 기술신용기금에서는 대출금을 돌려달라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비참하고 피 말리는 순간들로 점철되기 시작했습니다. 24시간 내내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아 할 수 있는 일이란 뭐든지 했습니다. 재고는 처리할 방법이 없고 직원 월급은 계속해서 밀리고, 변호사 친구 놈들은 굴지의 대기업인 L전자와는 재판을 할 수 없다고 몸을 사렸습니다. 

 

 

L전자가 투자한 이후에 추가로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던 은행과 벤처투자사들도 모두 철수했습니다. 루팡이 그렇게 크게 흔들리자 후발주자들이 속속 등장해 시장을 잠식했고, 그중에서 ‘루팡’을 대신해서 L통신사와 공동사업을 계약한 기업도 나왔습니다. 우리가 납품할 장비를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직원 일부가 알아서 빠져나가고, 일부는 상황을 주시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말입니다, 마침내 폼페이 최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밀린 월급 대신 ‘루팡’직원과 컴퓨터, 전화 팩스 복사기 등의 일체의 사무기기, 책상과 의자, 커피포트에서 액자까지, 심지어는 내가 학원을 운영할 때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서 저의 회사에 취직했던 제자까지 저를 떠나는 날이 오고야 만 것입니다. 제자들까지 루팡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미치도록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들도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했지만, 먹고 살려면 그 방법밖에는 선택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루팡’을 폐업시키고 다른 회사를 만들면 그쪽으로 신규오더를 내겠다고 L통신사 놈들이 제가 스트레스로 잠시 입원한 틈을 타 직원들을 꼬득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루팡’을 담당하는 L통신사 담당자가 교체되지 않았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월급을 주지 못하는 사장은 사장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제가 있을 수 있는, 데리다의 말을 빌리자면 저에게 직원들은 일종의 '구성적 타자'였습니다. 저는 월급을 줘야 하는 주체로서 구성적 타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것입니다. 






아무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직원들이 모든 것을 다 가겨간, 휑하고 쓰레기만 남아있는 사무실에 패잔병처럼 혼자 남아 폐허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란, 허허. 깊은 정적만이 낮게 가라앉은 휑한 사무실에서 멍하니 한참 동안 서있었는데도 오히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더라고요. 극한의 괴로움은 감각마저 마비시키는 것인지, 바람 한 점 없는 폐허의 공간에서 저는 한참 동안을 서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숨이 턱 막히며 감정이 극도로 고양됐습니다. 

 

 

하지만 그냥 극한의 절망 속에서 당장이라도 창문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을 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몇 시간을 절대의 고독 속에 갇혀 괴로움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모든 걸 잃어버린 철저히 파멸한 사업자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게 됐습니다. 언듯언듯 살아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생각들이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웃기지 말라고 하십시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달려, 더욱 가속될 뿐입니다. 니체마저도 그렇게 두려워했던 ‘하강’의 순간처럼 말입니다. 어제의 화려함도, 지난 10개월 간의 성공도 단 하루만에 돌이킬 수 없는 정말의 구렁텅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정말 제 주변에는 어머님과 동생 외에는 아무 것도, 어떤 친구와 지인들도 남지 않았고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10여년을 함께 했던 제자에게도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친구들과는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둘 다 결혼을 했습니다. 저의 보물 같은 제자입니다)에 수도 없이 채이면서 뒤늦게 회사에 합류했던 성당 후배들에게도 피해만 준 채 완벽해도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저를 믿고 투자를 한 개인투자자들에게 미안해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사용했던 사무실을 반납(형의 친구가 건물 주인이어서 사무실 월세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의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그때 받겠다면서요)을 하고 작은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후에 어떻게든 살아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몸부림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칠수록 더 빠르게 빠져들더라고요. 개인투자자들의 압력은 끝없이 가중되고, 후발업체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L전자와 통신사 담당자들은 저를 피하고, 망해가는 벤처기업들이 이제는 역으로 영업사원으로 들어와 물건이나 팔아 연명이나 하라고 부추기고, 정말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말 그 그대로 고립무원이었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아주 작은 돈이라도 되면 무엇이든지 해야 했고, 그것도 닥치는 대로 해야 했고, 어느 곳이든 달려가 어떤 것이든 가져다 팔아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저희 대리점이었던 기업에 가서 후발주자들이 만든 장비나, 저의 회사에서 만든 바로 그 장비를 받아서 팔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를 믿어준 개인투자자와 월급을 주지 못했던 직원들에게 조금의 빚이라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웃기지 않습니까? 저의 회사에서 만든 장비를 제가 받아서 파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럴 수도 있다는 게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게 사업이며, 돈의 세계이며,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CEO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체제이자 냉혹한 현실입니다. 빚도 자산이라는 경제학의 주장이 허상이자,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에서 떠들어대는 패자부활전이라는 것은 극소수에게만 가능한 꿈나라 얘기에 불과합니다, 절대적으로. 

 

 

아무튼 저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리거나 자살 이외에는 어떤 방법도, 선택 가능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차비보다 조금 더 돈이 되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울시 전역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밤늦게 어머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마음을 모질게 다잡고, 갈수록 힘들어하는 동생 부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 



그러게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팔았고, 어떤 조건에서라도 일을 했고, 투자받은 비용의 천 분의 1라도 갚아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를 떠나간 직원들 중에 일부가 저를 임금체불로 노동부에 제소했고, 그중에서 한 명은 영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자동차마저 압류해갔습니다. 그들은 다른 벤처기업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했다가 쫄딱 망해서 제가 거둬들인 직원들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벌금 200만원에 처해졌습니다. 모든 재산을 날린 상태였던 저는 벌금 200만원을 만드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리 큰 금액도 아니지만 200만원을 분할해서 납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호적에 빨간 줄이 가고 말았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저를 제소할 방법이 없자 매일 같이 전화하고, 이미 경매에 들어간 집에 찾아와 돈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의 인맥과 영업능력이 필요했던 기업들이 저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쳤고 저는 몇 백만 원이나, 아니 몇 십만 원이라도 돈이 된다면 대한민국 최남단까지 가서 영업을 했습니다. 제품을 팔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판매에 성공하면 그 전부를 개인투자자들에게 보내 투자금의 일부라도 갚아나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개인투자자들의 손해를 보충해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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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산 2014.08.12 13:07 신고

    늙은 도령님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같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27 신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겪어야 할 평균적인 것들입니다.
      저처럼 정말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냥 벤처만 차리면 성공하는 줄 안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것 덕분에 국가 경제는 살아났지만 많은 분들이 인생을 망쳤습니다.

  2. 시골잔차 2016.06.27 19:37 신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글을 통해 절절히 느껴지네요
    절체절명의 순간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말일듯 싶네요

    • 늙은도령 2016.06.28 00:12 신고

      이제는 그것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깨닫게 됐습니다.
      즐겁게 책을 읽고 공부하며 미래세대가 살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됐고요.



사업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에 벤처기업에게 대출을 끌어다 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벤처투자 브로커인 고등학교 동기동창을 만나게 됐습니다. 저보다 먼저 벤처사업에 뛰어들어 수백억의 투자를 받은 동창을 통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던 동창놈과의 만남이 악마의 선물이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거기서부터 제 인생이 거침없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놈과 전혀 친하지도 않아 기억 속에도 없었던 놈이었는데, 이젠 평생의 원수 같은 놈(벤처거품이 터진 후에 도망을 다니다 끝내는 행방불명처리된 상태)이 되었으니 그것도 다 운명인가 봅니다.



 

 

여자를 엄청나게 밝히는 그놈은 투자자들을 소개시켜줄 때 언제나 룸살롱을 택했습니다. 그놈의 이상한 취향 때문에 저도 뻔질나게 룸살롱을 들락거리게 됐습니다. 낮에는 영업하고, 늘어난 직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한 후 밤마다 투자자들을 만나러 강남에 널려 있더 룸사롱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분위기를 변태처럼 좋아하는 투자자들과 너무나 젊고 도저히 이런데 있을 것 같지 않은 수많은 매력적인 도우미들 앞에서 온갖 설득과 애교, 아양을 떨면서 투자 의향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야 했습니다. 



정말 서글프고 한편으로는 제가 그렇게 터부시했던 밤 문화에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 돈을 쓴 것도 아니고 투자가 확정되기까지는 절대 일정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2차를 나가는 도우미 여성들의 손도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투자가 확정된 날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태어나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자를 품어보지 못한, 아.. 상상 속에서는 제법 품었지만 아무튼 지독할 정도로 오래된 굶주림 때문이었는지, 그만 저는 천연기념물의 위치에서 평범한 짐승(토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날의 허무함과 성적 욕구, 가치의 몰락, 돈의 위력 등을 생각하면 등꼴이 오싹해 옵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며, 한 번 선례가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게 선을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나 첫 번째가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최소한의 갈등도 하지 않게 됩니다. 특히 감정적 교감이 없는 육체적인 관계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아무튼 정력이 약해서 첫경험이 너무나 허무했던 저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투자를 대출 형태(몰락의 시작)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개인투자자의 자금도 유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개발비를 완불하니, 전송장비도 즉각 나오더라고요. 저는 따끈따끈한 장비를 들고 여러 대기업과 금융기관, 관공서와 대학들, 소규모 통신회사, 유치원, 교회, 학교, 어린이집, 심지어는 다단계기업과 깡패들이 운영하는 스팸메일 업자들에게까지 찾아가 장비를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청산유수처럼 흘러갔지요. 저의 회사가 판매한 문자메시지 전송장비는 사용할 때마다 통신비의 일부를 L통신사로부터 수수료로 받기 때문에, 매달 고리대금이자처럼 돈이 들어왔습니다. 통신비 일부는 무려 3년간이나 받기 때문에 사업은 날개를 달았고, 회사의 수입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영업사원들의 실적도 제법 쏠쏠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잘 풀렸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장밋빛 전망에 빠져들었고, 보다 많은 사업을 벌이기 위해 직원 수도 늘렸습니다.

 

 

슬슬 패망의 길로 접어든 것이지요. 직원이 늘어날수록 고정비가 눈에 띨 정도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고정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로 불어나더라고요. 그것은 정말 패망의 지름길이었습니다. 초기의 기업은 인건비를 늘리지 않는 것으로 연명해야 하는데, 저는 정반대로 간 것이었지요. 그만큼 사업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고, 제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해서..

 

 

아무튼 제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L통신사는 문자메시지 매출 면에서 타 통신사들을 제치고 최고에 이르는 기염을 토했고, 모든 통신사 고객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지만 L통신사만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통신요금 부과구조 때문에 연례적인 통신사 사장 회의에서 격렬한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좋은 물건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기업들이 사줄 것으로 알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라 실질적 영업에 실패하기 일쑤였던 선발 벤처기업들이 루팡의 소문을 듣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제품 중에는 통신사들의 기지국 용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아주 느리게 작동했지만 iPAD와 거의 유사한 제품도 있었고,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PDA와 심지어는 현재의 스마트폰과 거의 동일한 플랫폼을 채택한 이스라엘 제품도 있었습니다. 경쟁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영업력이 전무한, 그래서 자본잠식 상태 직전까지 몰려 있던 그들이 영업을 대행해 달라고 지겨울 정도로 찾아왔고, 저는 그중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제품들을 선별해 틈틈이 영업을 대행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업의 경우에는 그들의 제품을 사줄 만한 대기업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수수료도 받지 않은 채로. 그렇게 저와 영업사원들은 조금씩 영업 대상을 넓혀 갔습니다. 자연히 사업의 아이템 수가 늘어났고 따라서 직원 수도 늘어났습니다. 심지어는 타 벤처회사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던 팀까지 채용하기에 이르렀으니,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말로 겁대가리 없이 치밀한 자금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마구 벌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에겐 사업이 가장 쉬웠어요. 영업이 바쳐주니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보인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벤처열풍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사업에 뛰어든 것이 오히려 복을 불러오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투자받은 자금이 고갈돼 영업조차 못하는 기업들의 뛰어난 제품들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오라면 따올 것 같았습니다. 고정비가 주는 압력이 갈수록 목을 조여왔지만, 통신비 수수료를 생각하면 능히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정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루팡’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과 투자사들이 줄을 섰고, 타 통신사에서도 공동사업을 하자는 유혹의 손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나날이 판매도 늘어갔고 수수료의 매출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 상태로 1년만 지나면 새로운 벤처신화로 등극할 날도 멀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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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oaton 2014.08.03 06:12 신고

    일단 댓글이 없는 관계로 읽었습니다. 도장.

  2. 태봉 2014.08.03 16:23 신고

    늙은도령님의 사업이야기를 읽다보니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요?
    이렇게 사업의 열정과 수완과 인맥이 있으니 거기다 한 번 실패까지 해봤으니
    다시 뭐든지 시작하면 성공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거나 왜 하시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다시 사업에 성공하면 재력을 바탕으로 님이 원하시는 지적공동체를 더 잘 만들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늙은도령 2014.08.03 17:06 신고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사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조금씩만 벌고 능력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해야죠.
      그렇게 작게 시작할 생각입니다.

  3. 덕산 2014.08.12 12:55 신고

    늙은 도령님~
    정말 귀감이 되는글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경험을 통해 많이 배워갑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26 신고

      살면서 도움이 되셨다면 저의 영광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말로 사업을 해서 성공하기 극히 희박한 나라입니다.
      정규직 자리가 적은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세대가 걱정입니다.

  4. 일루와봐 2015.04.28 11:14 신고

    솔직하게 펼쳐 놓은 이야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

  5. 시골잔차 2016.06.27 19:21 신고

    알지못했던 신세계를 보는듯 흥미진진하게 보고있습니다^^



사기는, 어차피 칠거면 크게 처야 먹히는 법입니다. 나중에 담당자였던 김 과장과 김 대리가 저에게 해준 얘기로는 자신들에게 하루에도 10개 이상의 사업계획서가 도착하는데, 그중에서 극히 일부만 미팅을 잡는다고 했습니다. 그냥 묻혀버리는 것들의 80~90%를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 운 좋은 줄 알라는 것이었지요. 



헌데 그들이 만난 수백 명에 이르는 벤처기업 사장이나 임원과는 180도 다른 제가 천하의 사기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동시에 정말로 상상을 불허하는 인맥을 갖고 있으나 아직까지 사업 경험이 없는, 그래서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휘귀동물로 봤다고 합니다. 또한 광적인 열정에 걸맞게 제법 뛰어난 상상력과 영업력을 갖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를 테면 구라가 무지무지하게 세거나 그것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특이한 별종이라고 생각했었다더군요.

 

 

어차피 공동사업 MOU란 얼마든지 파기할 수 있는 것이니, L통신사 입장에선 시간 말고는 특별히 손해날 것도 없는 일이어서, 일단 미친 척하고 사업을 진행해보자고 내부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제가 제시한 인맥들은 그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부분이기 때문이었고, 이후의 제 행보가 무척 궁금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탁월한 배포가 있거나 사기꾼 기질이 남다르면 공짜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최종 결과가 어떠하던 간에 당시에는 대기업으로부터 공짜점심 비슷한 것을 선불로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 그때 저의 미친 제안을 냉정하게 거절했으면 제가 이렇게까지 재기불능의 몸으로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무모하기 이를 데 없었던 저의 만용이자 운명이었다면. 문제는 그 빌어먹을 운명이라는 것이 한참은 지나고나서야 혹시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어리석기 그지없는 변명을 갖다 붙이게 만들어서 탈이지요. 인간이란 자살을 선택할 때조차도 자기합리화를 해내는 특출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기만적 동물입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거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직원 한 명에 사무실도 없고 자본금도 없고 투자도 받지 못한, 당시까지는 숫총각(혼자서 하는 놀이를 제외하면)이었던 놈이 자산이 몇 조에 이르는 대기업에 무작정 찾아가서, 내가 너희들도 먹여 살려줄 테니 공동사업계약서 한 장만 도장 콱 찍어달라고 한 것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도장만 찍어 주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해낼 테니 무조건 믿어달라고 큰 소리까지 뻥뻥 쳤으니 말입니다. 



이런 뻥이 가능했던 것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유산으로 물려주신 수천 권의 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책과 함께 하는 삶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때의 분위기에 가장 적절해 보이는 얘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무엇이든 일정 이상의 노력이 투자되면 반드시 결실을 맺기 마련이고, 특히 상대의 기분을 꿰뚫으며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말발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어쨋거나 들어보기나 하셨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저같이 정신 나간 사람의 얘기를? 아마 평생을 살아도 저 같은 미친 놈, 만나기는커녕 좀처럼 보기도 힘들 겁니다. 뭐, 제 무모한 계획이 성사가 안 되면 L통신사 직원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는 생각으로 부딪쳤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일종의 도박에 가까운 사업적인ㅡ사기적인ㅡ방식의 원나잇 스탠드 정도라고 하면 적할하게 비유한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저의 통신사업이 시작됐고 L통신사로부터 모뎀과 그것에 대한 기술 자료를 받았습니다. 직원이 없는 관계로 개발은 당연히 아웃소싱으로 진행했습니다. 그것도 최소 비용만 지불한 상태에서, 처음 만난 나를 믿고 장비 개발부터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을 설득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최소비용만 지불한 채 아웃소싱으로 초기 모델의 개발에 들어갔고, 저는 대기업에 있는 친구와 친척, 지인들을 만나 사전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실제로는 완성된 전송장비도 하나 없이.. 아,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테스트 장비 하나는 일주일만에 개발회사에서 만들어 주었군요. 그것을 가지고 영업을 하고 다녔으니, 해당 대기업에 있는 친구와 지인들도 어이없을 것이었습니다. 뭐,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테스트 장비로 시연이 가능했으니.   

 

 

어쨌든 그건 다 일종의 쇼에 불과했고 오직 그럴싸한 비즈니스 모델만 제시되어 있는 영업제안서와 거창하지만 그럴싸한 언변으로 이루어진 영업이었습니다. 저는 친구와 친지들에게 반강제적 구매를 요청하거나 애걸복걸해서 기어코 떠넘기고 마는 이상하고도 말도 안 되는 영업을 해서 완제품을 생산하기도 전에 판매실적을 거두었습니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흔히들 말하는 ‘맨땅에 헤딩’이 바로 저의 영업방식이었지만, 맨땅이 오히려 뚫리 것이었습니다. 



물론 친구와 지인들이 제가 사업을 한다니까 서로 도와주겠다고 한 것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솔직히 전 열심히 살았고, 착하게 살았고, 소아마비였지만 전혀 장애인 티를 내지 않을 정도로 밝았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누구보다도 좋았던 사람이어서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혼맥으로 얽혀있는 우리나라 최상류층이나, 최고의 권부까지 영업하러 갈 수 있는 인맥이 수두룩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밀어붙일 수 있었고,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냉정하기 그지없는 비즈니스 업계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그지없던 영업이자 완전 미친 짓의 연속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L통신사 담당자의 눈에는 달리 보였던 모양입니다. 수많은 벤처기업의 임원이나 사장이 영업을 하기 위해 찾아와도 좀처럼 만나주지 않는, 심지어 L통신사 직원들이라 해도 좀처럼 만나주지 않는 대한민국 대기업 임원이나 중역들을 가족 만나듯 만나서는, 거침없는 구라를 풀어대니 저를 따라 다니던 L통신사 담당자들이 이에 탄복했고, 가끔은 뒤집어질 정도로 저를 따라다니며 실적을 올렸습니다. 



한 마디로 L통신사 직원드른 저에게 흠뻑 빠졌고, 윈윈하는 영업 실적들이 쌓여갔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순탄해서 사업이 이렇게 쉬원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때까지는.   




                                               프로그램 CD이미지입니다. 




그렇게 L통신사 직원들과 믿음을 쌓아 갔을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저를 만나 준 대기업 관계자들이 모두 아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제가 직접 전화를 걸어, 그것도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한 번만 시간을 내달라고 설득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는 분이라도 최선을 다했고, 일의 전후로 감사함을 표했고, 가능하면 자주 얼굴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것들은 노동의 대가입니다, 심지어 글이나 지식의 생산도. 

 

 

인맥이요, 그거 만들고 관리하고 유지하는 거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미인도 용자가 얻듯이(요즘은 스토커로 잡혀가지만) 인맥 타령하며 사업에 실패한 자들의 푸념은 부딪쳐보지도 않은 채 지례 겁먹고 하는 말들입니다. 두드리지 않으면 스스로 열리는 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기성 짙다고 해도 세 치 혀를 통해 나오는 말도 진심과 열정, 가능할 법한 미래의 표상과 가치를 담아내면 상당한 파괴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전력으로, 온몸과 마음, 감성과 열정, 분석과 판단, 구체적인 비전과 윈-윈하는 이익으로 하나하나 부딪쳐나갔습니다. 절뚝절뚝 걸어가면서도 한 번도 뒷걸음치지 않았고 부딪쳐보지 않은 채 지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갔습니다. 일본을 가장 잘 파악한 책으로 유명한 《국화와 칼》에서 "내가 가는 길에 부처가 있으면 그의 목을 배라"는 말처럼.

 

 

물론 저를 처음 보는 당시에는 모든 대기업 담당자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이 스쳐갔지만 그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며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설득해나가면 육체적 장애는 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저의 비즈니스 모델의 바탕에는 언제나 윈-윈이라는 공생의 법칙이 견고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업제안서를 만들 때 상대편의 입장에서 작성했고, 그럴 때만이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뇌물이나 술자리 같은 것을 만들지 않고서도. 


 

제 자랑 같지만 대부분의 영업에서 저는 긍정적 답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장비를 개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저는 가진 돈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동생과 친구에게 계속해서 손을 벌릴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제법 부자에 속했던 삼촌이나 숙모님처럼 친척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분들과 금전적으로 얽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개발과 영업, 특허등록 작업 및 사무실 임대 등을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동시에 개인과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아 내거나 아니면 기술신용기금이나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때 절실히 느꼈죠. 사업은 자금이 마련된 다음에나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대한민국에서의 사업은 다 날려도 될 자신의 돈이 있거나(0.1%도 안 될 것입니다) 철저히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지, 자금을 만들어가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도 매일 같이, 많게는 하루에 세 번 정도 L통신사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들이 내 전화를 습관처럼 받도록 만들 때까지 그 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과의 벽을 허물어가며 영업을 통해 미래의 비전에 대한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습니다. 또 그들이 제 사업과 상관없이 어떤 대기업이나 관공서에 들어가고 싶어 하면 제 인맥을 총동원하거나, 아니면 직접 부딪치고 부딪쳐서라도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까지는 반드시 대기업과 관공서 담당자를 연결시켜주었습니다.

 

 

그렇게 L통신사와 담당자들과의 신뢰도는 높아져 갔습니다. 나중에는 그들이 ‘루팡’ 직원인지 L통신사 직원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더 비참하게 무너지면서도 L통신사와 L전자와 재판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저와 일했던 L통신사 직원은 이제 임원이 돼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과거란 과거일 뿐 현재의 삶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완성된 장비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L통신사와 한 몸처럼 움직였고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어 L통신사 건물에서 투자설명회도 여러 차례 열기까지 했습니다. 그것도 공짜로요. 그들은 L통신사 창사 이래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립서브스 아니었나 생각되기는 합니다.

 

 

헌데,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당시에는 벤처열풍이 급격히 꺼져 가는 중이어서 투자나 대출을 받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투자는 대표이사를 보고 40%가 결정된다고 하는데 제가 지체장애인인 게 결정적인 흠결로 작용했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고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스처가곤 했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돈은 알게 모르게 세나갔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모아 준 돈마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아웃소싱 개발비를 완불하지 못해 장비도 나오지 않았는데 사전 영업한 대기업들이 장비를 사겠다며 장비를 가져오라고 재촉했지만 막상 팔아먹을 장비조차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영업을 대행해준 기업과 비슷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결과에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갔지요. 돈이 눈 앞에서 날아다니는 데도 손을 뻗어서 움켜쥘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저도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님과 저의 명의로 된 아파트를 팔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허허, 하루하루가 지옥같이 지나가곤 했습니다. 갈수록 희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저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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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oaton 2014.08.01 22:43 신고

    읽기만 해도 참 마음고생 심하게 하셨을 거란 느낌이 옵니다.

  2. 백순주 2015.08.16 06:41 신고

    돈키호테...
    혹자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정신 나간 기사의 터무니없는 무용담’ 정도의 글로 평가하지만,
    ‘인류의 바이블’(생트 뵈브), ‘근대 소설의 효시’(알베르 티보데),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르네 지라르),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 찬사는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창의적 인재'의 대명사가 된 그가 떠오릅니다.

    • 늙은도령 2016.01.14 17:25 신고

      에고.... 다 지나간 일이지요.
      이제는 살아있다는 것에도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3. 시골잔차 2016.06.27 19:15 신고

    책을 좋아하는 일인으로써 부모님께 천권이 넘는 책을 받으시고, 책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신점이
    참 인상깊습니다.
    저는 20살 때부터 월급으로 책을 사보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맞는 이야기를 구사하셨다니
    한수 배우고 싶은 맘입니다.
    우미연에서 추천받고 첫 글 남깁니다.
    이야기 흥미진진하네요^^

    • 늙은도령 2016.06.28 00:03 신고

      에고..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실패에서 배운 것이 전무이고요.
      암튼 책을 끼고 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봅니다.

      헌데 우미연은 처음 듣습니다.



회사이름을 왜 ‘루팡’이라고 결정했느냐 하면, 어차피 사업에 뛰어든 이상 세상의 돈을 훔칠 거면 확실하게 왕창 훔치자, 뭐 그런 무지몽매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낭만적 생각(결정적 패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가 끝물이라고 해도 잘하면 벤처사업을 통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미친 짓을 밀어붙인 것은 제가 세상 경험이 너무 없었고, 한 번 미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입니다.

 

 

해서, ‘루팡’의 유일한 직원이자 월급여로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루팡’의 부사장에 취임한 S물산 퇴직자에게 장비 설계도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어떤 사업계약서도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장비 설계도와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졌고, 저는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상태에서 허무맹랑한 사업계획서 하나만 달랑 들고 이통사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통신시장의 가장 약자였던 L통신사와 전화로만 연결이 된 상태에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물론 통신사 직원과 미팅을 잡기 위해 L통신사에 수십 차례라 전화를 걸었지요, 담당부서도 모른 채. 그렇게 수십 차례에 걸친 집요한 전화를 통해 당시 데이터 사업팀에서 법인을 상대로 핸드폰을 특판하고, 문자메시지 사업을 담당했던 김 모 과장과 김 모 대리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통사 과장이 이름도 모르는 벤처기업을 만나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저는 ‘내 비록 시작은 초라하나 그 끝은 창대하게 쫄딱 망하리라’는 철저한 패망의 서사극의 첫 막을 인생과 사업이라는 냉혹한 무대에 올려놓은 것이지요. 대기업 조직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저는 통신사 담당자들에게 말하길, 다른 벤처기업들과는 달리 직원도 한 명뿐이고 사무실도 없지만 L통신사의 모뎀을 사용해서 이러이러한 문자메시지 대량전송 무선장비를 만들어서, 내가 갖고 있는 인맥과 영업력을 총 동원해 이러저러하게 판매할 테니 쌍방의 이익을 위해 공동사업 MOU를 맺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걸 갖고 투자를 받아내 사업을 단 시일 내에 궤도에 올려놓고 음성부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L통신사의 데이터 사업부문을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여기서 맨붕에 빠지시면 안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었죠. 그것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미쳤던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아니 강남 길거리에서조차 거의 볼 수조차 없었던 배불뚝이 지체장애인이 뭣 모르고 하는 말이니 L통신사 직원들이 저를 보기에 가소롭고 황당했겠지요. 그들도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더니 제가 좀 더 구체적인 영업계획을 말하면서 화려한 언변으로 끈질기게 설득하자, 질렸는지 아니면 지쳤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틀 후에 다시 한 번 더 미팅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들로써도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가능할 것도 같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한 저의 얘기와 성공에 대한 강한 확신에 대해 냉정하게, 그러나 어이없어 하면서 찬찬히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겠지요.

 

 

어쨌든 그들은 다음 미팅을 약속한 것으로 이미 저의 열정에 감염돼 버린 것이었고 그래서 이틀 후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기업에 몇 명은 이미 임원으로 재직 중이었고, 부장급도 상당수에 이르는 친구들의 명단과 당시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집단인 S그룹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지금은 임원으로 승진한 동생과 D그룹 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형이 들어있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교통공학자인 삼촌과 K생명 그룹 오너인 친척분과 각 분야에서 국가지도자급으로 있는 어마어마한 지인들의 명단까지 제공하며,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으니 이 보다 사기성 짙은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베팅을 한 것이었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모험을 강행한 것이었습니다. 벤처라는 단어가 자체가 모험이니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인맥은 거짓이 아니었으니, 그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뭐 그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무데뽀 정신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날, 음성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L통신사의 데이터 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었던 박 모 상무로부터 MOU 체결에 대한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먹기였습니다. 저의 인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대기업의 인맥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그들로서도 구미가 당겼을 것입니다. 


 

 

P.S. 멀티포트입니다. 장비 안에 모뎀이 8개 들어 있는 문자메시지 대량 전송장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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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봉 2014.07.30 13:31 신고

    잘 되었으면 이렇게 늙은도령님의 글을 읽어보지 못했겠네요

  2. 하루키 2014.07.31 10:17 신고

    뒷이야기는언제쯤?

  3. mangrove 2016.04.25 09:35 신고

    아자씨 때문에 지금 국민들이 스팸에 시달리고 있는 거에요.. ㅠㅠ

    • 늙은도령 2016.04.25 20:39 신고

      지금의 스팸은 통신사가 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 가지고 통신사와 엄청나게 싸웠는데 그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사업할 때 스팸을 보내는 업체의 경우 장비를 회수한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후발업체들이 이런 것을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이런 조건 때문에 조폭에게 칼을 맞을 위기도 처했습니다.
      스팸은 저의 비지니스 모델에 없었는데 악용하는 업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 죄는 인정합니다.



글이나 쓰면서 살았으면 충분했을 필자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저의 사업이야기를 하려면 저의 멍에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필자는 백일 직후에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외국인이 들여온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걸렸던 것이지요.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당시에 많은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합니다.



헌데 그 후유증 때문인지 저는 어려서부터 신경성 수면장애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그 증상이 악화돼, 항우을제 계통의 수면유도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수면유도제를 장기 복용하게 됐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저에게 '아침형 인간'이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고 그에 맞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지체 장애인(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인 것을 떠나서 정상적인 취업이 불가능했고 결국 30세에 이르렀을 때 오후에만 출근하는 작은 신문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외를 통해 돈을 벌었는데 돈이란 기준으로 보면 신문사에 취직한 것이 몇 배는 손해였습니다. 당연히 비정규직이었고요. 

 

 

어쨌든 정부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 전체를 대박의 소용돌이 속으로 미쳐 날뛰게 한 벤처광풍이 빠르게 식어가던 시기였으며,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거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꺼져가던 시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파장의 분위기였고 광기의 끝물이었습니다.





헌데 운명인 듯 신문사의 조그마한 사무실에 얹혀 지내던 프로그래머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저의 눈에는 그가 신기하면서도 처량해보였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컴퓨터를 바다 속에 수장시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컴퓨터를 싫어하고 멀리했던 저로써는 신세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더 강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교에 다닐 때 카드를 천공해 프로그램을 짜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과제로 주어진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류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의 천공 카드를 사용하는 컴퓨터의 오작동율이 8만분의 1인데 하필 제가 그 확률에 걸려든 것이었죠.

 

 

컴퓨터와의 악연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재수까지 해서 치른 대학입학시험 성적이 최초의 컴퓨터 채점의 결과 때문인지 가채점보다 20여 점이 나쁘게 나왔습니다. 집권을 위해 죄 없는 국민을 수천 명이나 사살한 독재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학정원을 거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치기게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류가 많았던 시절의 컴퓨터 채점 때문에 전국 등수는 고3 때보다 2배 이상 떨어져 대학을 하향 지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이 이러했으니 컴퓨터에 대한 불신이 이만저만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대학시절부터 8만분의 1에 해당하는 오작동이 저에게서 일어났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죠. 그런 이유들로 해서 저는 컴퓨터란 단어만 나와도 치를 떨었고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를 모조리 수장시켜버리겠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극한의 혐오증이 있던 저는 그 사람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한 컴퓨터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됐습니다. 경제적 개념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저는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정치와 함께 경제 분야 기사를 다루기로 마음먹었고 S텔레콤과 K통신사를 취재를 빌미로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통신 관련 기사를 쓰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인간에게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 문자와 함께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핸드폰을 모든 사람들이 갖게 될 것이며, 따라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두 가지를 결합하면 최고의 사업이 될 것이라는 그런 깨달음 말입니다. 눈에 돈이 아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통신업체들을 취재하던 중에 몇몇 벤처기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중에서 저의 깨달음을 이미 실현해낸 기업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매우 실망이 컸지만 어쨌든 저는 그 장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 회사의 사장을 만났고, 인맥이 풍부한 관계로 해당 벤처기업의 영업을 도와주게 됐습니다. 100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은 그 회사는 방송3사의 메인뉴스에 나올 정도로 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손꼽혔는데 막상 안에서 그 기업을 들여다보니 엉망진창도 이런 엉망진창인 기업이 없었습니다.

 

 

특히 사장이라는 작자가 개차반이었습니다. 분명 문자메시지 장비를 팔아먹을 곳이 수두룩해 보이는데 기술적 한계와 영업력 부족, 사장의 무능력 때문에 투자비를 거의 다 날리고 장비 한 대 제대로 팔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여러 군데 기업을 소개해주었는데도 전혀 추가영업을 진척시키지 못하더라고요. 직원들은 월급이 몇 달째 밀려 있었고 핵심 프로그래머와 영업사원들이 속속 이탈하는 와중에도 사장은 룸살롱이나 드나드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갔고 회사가 자본잠식을 넘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태까지 추락하자 사장 놈이 저에게 영업권을 상당 부분 양도할 테니 대리점 계약을 맺자고 하더라고요. 대리점 가맹비는 그들이 월세조차 못내는 방치된 사무실의 빚을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대체하자고 했는데, 영업을 해주면서 이리저리 얽혀있던 저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장의 제의에 동의했습니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하나 차리게 됐습니다. 몇 명이지만 저의 영업력을 믿고 직원으로 합류한 사람들도 있었고요.

 

 

헌데 영업을 해도 이놈의 전송장비가 수없이 오작동을 일으켜 단 한 대도 팔 수 없었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어머님의 쌈짓돈이었던 무려 400만원에 이르는 돈만 하릴없이 까먹게 됐습니다. 현재로 따지면 몇 천 만원에 이르는 돈이었고 당시의 저로써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슬슬 열이 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문자메시지 전송장비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아무튼 뭔가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면 저까지 빈털터리가 되버릴 상황에 처했습니다.

 

 

헌데 직원으로 합류한 사람 중에 S물산 출신 엔지니어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문자메시지 대량전송장비의 신뢰성에 대해 물었고, 판매가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의 말에 분통이 터졌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장비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가능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전송장비 속에 넣은 핸드폰을 모뎀으로 바꾸면 가능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모뎀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럼, 모뎀은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것이냐 물었더니 대한민국 최고의 전자기업 두 군데서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두 전자 기업을 만나 모뎀을 받아내면 만들 수 있느냐 물었더니, 그건 불가능하고 통신사를 통해 접근해야 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그의 말을 듣지 말아야 했는데 이미 어머님 쌈짓돈도 다 말라버리고 저의 인맥을 보고 합류했던 직원들이 알아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형의 압력이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과외나 다시 하라고요. 결국 사고를 치지 않는 한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해서 ‘루팡’이란 회사를 차려 문자메시지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생과 친구들의 도움과 법무사의 요술까지 더해, 서류상으로만 자본금 5,000만원인 법인을 대략 400만 원 정도 들여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동생과 친구들의 도움(즉, 날릴 각오를 하고 무작정 빌린 것이지요)으로 자본금을 다 채웠지만. 어쨌든 미친 짓이었죠, 그것도 한참이나. 벤처광풍이 끝물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미친짓이었습니다.

 

 


P.S. 제가 설립한 회사에서 만든 원 포트 서버입니다. 문자메시지 대량전송 장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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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순주 2015.08.26 11:51 신고

    사업을 해 보겠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어서 열어보지 못했는데...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뭔가를 도전하는 순간부터 달라지네요. 내가 되든, 남이 되든, 상황에 바뀌든 간에...
    그래도 해보니 알 수 있는 게 많아요. 얻는 것도요.

    아직 1편만 읽었으니 한가한 소릴 할런지도요. 그렇다면 좀 기다려 주세요~^^


어쩌면 나는 깨어나지 않는 잠과 끝나지 않는 꿈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용이 죽음과 같아서 영원히 빛과 어둠 사이 갇힌다 해도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단한 삶의 연속 속에서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돌고 또 맴돌았을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질긴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거기에서 비롯되는 영혼의 잠식과 정신의 몰락이었다.

이상보다는 조금 더 높은 무엇을 추구했지만 늘 돌아보면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음을 발견했다.

온 몸에 가득한 상처란 나의 몸부림이 진실보다 조금 높은 곳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득권과 다툰 패배의 결과들이었다. 





나는 영겁회귀하는 것 같은 순간순간의 동일함 속에서 어제가 오늘이 되고, 내일이 다시 어제가 되는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설명하고 그것과 투쟁하는, 숱한 몽상가들과 예언자들이 꿈꿨던 무한한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이성의 힘을 믿었기에 물질의 과잉 속에서도 투명한 질서와 자율이 있으리라 믿었다.

탐욕의 자본주의 하에서 이성의 가치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고투를 마다하면서도, 자꾸 옆으로 새는 욕망의 소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었지만, 그 끝에는 관대한 희망이 있으리라 믿었다.

정말로 나는 죽는 순간에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로렌스가 그러했듯 밤에 꿔야 했던 꿈을 낮에 꿨는지도 모른다.

밤에 꾸는 꿈은 아침에 일어나면 초라해지지만 낮에 꾸는 꿈은 그 열기로 인해 육체는 물론 정신과 영혼마저 사로잡기 일쑤다.

낮에 꾸는 꿈은 차가운 이성의 채로 거를 시간이 없기에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 마련이며, 언제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영혼의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정신과 육체에게는 어떤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정신이 감각의 부속물이라면, 감각이 견딜 수 있는 데까지 앞으로 나가고, 뒤를 이어 정신이 일보 전진할 때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보다 먼 모험, 보다 깊은 고난, 보다 심한 고통으로 빠져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렌스만큼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하는 나는, 이성이 행동을 지배하고 영혼이 육신을 고양하는 어설픈 성찰의 테두리에서 서성거렸다.

세상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용기가 부족했기에 나는 움직이기 전에 결정하지 못했다. 

사유가 행동을 제약하려 하지만, 감각이 미쳐날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배회할 뿐 세상의 중심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문제는 늘 거기서 발생했다.

 



 

로렌스의 경험처럼, 나의 시작도 어느 수정처럼 맑은 오월의 아침(아니 오후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육체가 혼란스러운 이 같은 경우에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에 일어났다.

지난밤의 폭우가 만들어낸 세상 첫날 같은 태초의 햇빛에 눈을 떴지만, 밤새 퍼 마신 술 때문에 이성은 숙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불 속을 뒹굴고 있었다.

육체는 아직 정신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질서정연한 사고가 배제된 그 순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에게 스며들었다.

만개한 오감은 만물의 속삭임, 색체와 향기, 숨결과 미세한 떨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알코올의 찌꺼기와 잠의 잔재, 정신의 부재가 만들어낸 현실과 비현실의 그 어디쯤에서 나는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었고 무엇도 걸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인위적 해석과 성향이 배제된 본질의 세계였다.

거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창조의 말도, 숱한 우연으로 가득 찬 거대한 섭리와 수십 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여정이 숱한 우연으로 가득차는 것을 막기 위해 미세조정에 슬쩍 끼어든 ‘눈먼 시계공’의 간섭도 필요하지 않았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었고, 만물은 아름답거나 초라하고 복잡하거나 단순했다.

날것 그대로의 세상에선 모든 것이 투명해 어떤 꾸밈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관성의 법칙도, 거대한 거리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힘도, 나노 세계보다 더 작은 극소의 공간(원자)에서 작동하는 양자역학의 비약도, 질량불변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물리학 법칙마저도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시공을 뛰어넘어 내가 로렌스의 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아니면 로렌스가 내 몽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그 꿀맛 같은 몇 분(아니 몇 십 분, 몇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지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이나 본질의 차원을 얘기할 때는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투명한 질서만이 혼돈처럼 자유로운 곳.

만개한 오감이 어떤 계산과 간섭도 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는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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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4 01:54

    비밀댓글입니다



처음은 두려움이고 설레임이다.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것이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인연들을 만들고, 색다른 경험을 할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어서 미래라는 것인데 

그래서 현재만이 실재하는 것이라 했는데 글이란 것은 늘 죽어있는 경험들의 소산이다. 

글이란 쓸 때만이 현재일 뿐, 업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생각을 거처 언어로 드러난다는 것에서 늘 죽어있는 경험이다.

글이 기록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미셀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첫 경험에 대신하려 한다.

20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떠오른 푸코는 권력의 해체와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인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지만, 너무나 많은 추종자로 하여 자신이 지적 권력으로 우상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무려 8년 간 침묵을 했다.

그가 지적 권력으로 자리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자세에서 나왔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하나의 참조사항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 사람 이상이, 의심할 바 없이 나처럼, 더 이상 얼굴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쓴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나에게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지도 말라. 이것이 나의 도덕이다. 이것이 내 신분증명서의 원칙이다. 쓴다는 것이 필요할 때,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좌우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던 푸코로서는 일일이 대항할 방법도 없었고, 그런 논란에 빠져들고 싶지도 않아 자신은 오직 글을 쓰는 것으로만 말하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다.

필자도 이와 비슷하다.

쓸 것이 필요할 때, 사유의 결과물을 기록으로 옮겨야 할 때, 이곳에 글을 남김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나는 글로써 말할 것이며, 글로써만 존재할 것이다.

나의 얼굴은 없으며, 신분증명서도 갖지 않고 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나 또한 끝없이 공부하고 보다 깊은 성찰에 이르기 위해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뿐이며, 그것들을 글로써 말할 뿐이다. 

시작은 언제나 사막과도 같다.

자유로운 자만이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언제나 출발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상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보기 보다는 현실의 가장 낮은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려 한다.

죽음에서 시작하면 영원히 살 것이며, 출생부터 시작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출발을 시작한다.

길은 있어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나왔기에 길이 나는 것임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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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민국 2014.07.09 23:53 신고

    훌륭하신 마음과 강인한 정신...

    항상 끝없이 공부하고, 죽음마저 초월하시는 숭고함..

    도령님의 글들을 보며 많이 깨닫고 본 받고 싶습니다.

  2. 씽ㅡㅡ 2014.07.13 14:28 신고

    우연히 아고라글을 보고 찾아와 즐겨찾기 했습니다~!

    학식과 성품을 본받기 위해 자주 들려서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건강하세요~~!

  3. 꼬꼬 2014.08.05 17:25 신고

    도령님의 답글에도 공감을 많이 하고 갑니다.

    글을 써서 남긴다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 정말 공감이 갑니다. 역설적이기도 해서 재밌네요. 요즘 인터넷을 통한 광장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는데요. 현실의 시공간 벽을 허무는 새로운 장인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남기고 소통하는게 과연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선 공존을 가장한 혼자만의 세상에서의 독재도 일어나기 때문이죠. 물론 독재라는 것도 작은 세상안에서의 착각이지만 (또 다른 통제는 존재하니까요) 적어도 익명성, 내 인터넷기기의 독점성 등은 내가 작은 세계에서나마 주인이 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좋죠. 독재가 전제된 소통의 입을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지..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적어도 도령님글은 도령님의 삶의 방향이 공동체와 이상을 향해 있는듯하여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가는 길을 밝히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령님이 앞으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쓰시며 자신의 존재의 길을 밝혀나가시길 응원합니다. 멋지십니다. 전 댓글 하나 달때도 많은 용기를 내야 하던데 이렇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당당히 보여주신다는 게. 오즈의 마법사에서 허수아비,양철나무꾼,겁쟁이사자가 뇌,심장,용기를 찾는 것엔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 늙은도령 2014.08.05 18:06 신고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이 정립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치열해야 하며, 진실해야 하며, 투명해야 합니다.
      글이 힘을 지니거나 울림이 있으려면 거짓된 것들을 올리면 그것은 독자를 향한 사기입니다.
      삶의 경험과 지적 여정, 성찰의 결과물들을 가장 쉬운 언어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숨기고, 분명한 기준이 없다면 허구의 기록이겠지요.
      글을 쓰는 것이 삶이기에 최대한 투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감사합니다.

    • 꼬꼬 2014.08.08 18:20 신고

      치열하고, 진실하고, 투명할 것. 앞으로 계속해서 곱씹어야 할 말들이겠네요.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4. 덕산 2014.08.11 20:36 신고

    늙은도령님

    늦게나마 감사인사드립니다.
    아고라에서 알게된 후에 이사이트에 와서도 써놓으신 귀중한 글 늘 읽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활짝 열게 해주시고 악덕자본의 진실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더 많은 분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저도 작은 힘이지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00:37 신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 명씩 깨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연대의 소중함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개성이 평등을 기초로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세계입니다.

  5. 육펜스 2014.09.01 02:55 신고


    살이와 생각. 이라고
    티스토리 대문만 지어놓고

    이럭저럭 일상으로
    전혀 글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있습니다^^


    님의 글들 보다 정독하며
    제 마음자세를 먼저 다듬어봐야할듯 합니다


    좋은 글과 정보들..
    늘 감사드립니다.

  6. 백순주 2015.08.21 15:56 신고

    '나의 얼굴은 없으며, 신분증명서도 갖지 않고 있다.'

    PC로 만나는 세상은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전 블로그 개설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얼굴이 생기고, 신분증명서도 발급되었습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그게 더 어려워 그만 두었습니다.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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