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이런, 벌써 눈치 챘어? 허, 이렇게 허무할 데가? 자넨 그게 문제야. 너무 똑똑해. 재미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고. 내 제자였으면 전 과목을 F로 도배해버릴 텐데?”

“제가 자퇴하고 말지요. 돌리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허, 성미까지 급한 것 하고는? 알았어, 내 말하지. 자네가 나보다 몇 백배는 더 생각하겠지만, 내부인으로서 요즘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퇴행적 언론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재영은 자신이 3년 전부터 준비한 필생의 목표에 대해 성수가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하자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언론 환경이라니?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매스 미디어에 관한 것임을 예상했지만 하필이면 언론 환경이란 말인가? 재영은 자신도 모르게 동그라진 눈으로 성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왜 그리 놀라나? 난 자네가 문제의 M방송국 기자라서 묻는 말인데? 그냥 수수방관만 할 자네도 아니고,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반응이 왜 그렇게 과도해?”

“아, 그거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수님 같은 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갑자기 뛰어넘어가며 말하면 누군들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마치 미친..”

“미친년 널뛰듯 한단 말이지? 하하하,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내가 너무 왔다 갔다 하기는 했어. 어, 이거 괜히 미안하네? 그래도 미친년 널뛰듯 한다는 말은 너무 심했어. 명색이 교수인 나에게, 안 그래?”



서둘러 말을 삼킨 재영에게 성수는 웃으며 말했다. 말실수에 대해 분명한 추궁도 곁들이면서. 재영의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지리라! 최소한 얼굴의 일부라도. 성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속으로 숫자를 세고 계시죠? 어림없습니다. 전 학습효과도 없는 놈이랍니까?”



성수에 대해서 상당 부분 파악한 재영이 그의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넘겨짚었다. 장군에 멍군하는 격 이었니 이보다 확실한 반격은 어디 있으랴.



“이런,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도저히 못 당하겠어.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 장강의 앞 물이 뒷물을 밀어낸다)이라더니, 이건 왠지 씁쓸하네.”

“하하, 그것 보다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교수님?”

“하하하하! 그래, 그게 더 적절하겠어. 그럼, 내가 손오공이고 자네가 부처인 것으로 하지. 그건 그렇다 치고, 언론 환경에 대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더할 수 없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공영방송마저 관료주의에 빠져들었고 추악한 자사이기주의적 행태는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뼈 속까지 상업주의에 물들었어요. 미국보다도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네, 언론의 존립근거마저 흔들릴 정도에요. 동방국 언론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소셜테이너 금지규정과 도청사건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으니 낙하산 사장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언론 매체로써 절대 남겨서는 안 될 나쁜 선례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던 간에 또다시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근거가 점점 쌓이고 있는 거니까요. 기자와 PD들의 열패감이 너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이젠 무력하기까지 한 것도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에요. 게다가 지상파 방송을 새로 허가받은 4개의 보수 언론들이 점점 열악해지는 언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차별적인 광고영업을 하고 스타급 PD와 제작자, 인기 연예인과 연기자, 특급 MC들을 빼오는 과정에서 몸값이 엄청나게 폭등하는 등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물밑 전쟁이 가히 썩은 흙탕물로도 표현이 안돼요. 기업들도 이런 조폭 식 광고영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골치 아파할 정도에요. 광고와 협찬을 따내기 위한 협박성 기사와 뉴스보도가 신문과 방송을 갈아타며 무차별적으로 진행될지 누가 알겠어요? 최근에는 타 방송사 MC와 PD, 작가들을 빼오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인기 프로그램을 죽이기 위해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여러 가지 관행마저 마구 까발리고 있어요. 이건 마치 스스로 자멸하려는 자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일상으로 저지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거의 미칠 지경입니다. 뭔가 사단을 내지 않으면 미디어 생태계는 최소 2~3년 안에 공멸할 수도 있을 만큼 엉망이고 지독히 비관적이에요.”



언론 장악을 통해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낙하산 인사와 광고시장의 한계로 지속이 불가능한 4개 지상파방송을 무더기로 허가해준 것 때문에 언론 자체가 스스로 자멸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방송사 내·외부에서 비이성적인 일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재영의 말에 성수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지는 몰랐다. 성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거대한 전화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 시점에서 끝을 모르고 퇴행하는 언론을 보고 있자면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국민의 입장에서도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쩔 때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반인륜적 언론의 행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국에서 언론정책에 관한 가장 저명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에드윈 베이커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미디어 집중과 민주주의』에서 ‘미디어의 당파성이 미디어 집중과 맞물리게 되면 권위주의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나서 망령처럼 되살아난 권위주의 정권과 그와 결탁한 미디어 경영진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제어하거나 멈추게 하지 않으면 어떤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잠시 재영을 바라보던 성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 서랍을 열어 서류봉투 하나를 꺼냈다.



“리블링은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네. 언론의 소유권이 한 사람이나 일부에게 집중되느냐 아니면 견해를 달리하는 다수에게 분산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알지요. 형의 파일에서 읽었고 매일 경험하고 있으니 어찌 모르겠습니까?’



재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다음에 나올 말이 형과 같은지 궁금했기 때문에 자신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이걸 줄 테니 시간 나는 데로 읽어보게.”



재영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성수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봉투를 꺼내 재영에게 건넸다. 오늘의 성수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재영이 얼핏 봐도 서류봉투는 한 손으로 받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 보였다. 두께를 가늠하면 족히 7~800페이지에 이를 듯싶었다. 성수가 건넨 서류봉투를 받아 든 재영은 그 무게가 주는 이질감과 알 수 없는 압박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USB에 담아주면 될 걸, 굳이?’



재영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을 재빨리 움켜쥐었다. 그것은 치열한 기자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제2의 본능 같은 감각이었다.



“교수님도 프린트된 상태로 받은 모양인데, 서류를 준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지 않으시겠죠?”

“응, 지금은. 침대를 같이 쓰는 마누라에게도 밝힐 수 없는 사람이니, 자네가 이해해주게. 자료를 읽고 나면 그가 누군지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을 거야. 자료를 받고 많이 고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만한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어. 내가 조금이라도 자네를 믿지 못하면 절대 그 자료를 넘기지 않았을 거네.”

“어떤 자료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기도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하네요.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자료인 것 같은데?”



재영은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이 성수에게 적임자가 됐으니 둘 사이의 인연이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치사는 나중에 하지. 일단 읽어보게. 절대 간단치 않은 내용이니, 심사숙고해야 할 거야. 난 일생의 모험을 선택했어. 자네도 같은 선택을 했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그렇다고 내 선택에 얽매이지 말게.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너무 큰 숙제를 안겨준 게 아닌지, 벌써 걱정되네?”



이미 재영에게 자료를 건넨 후인데도 성수는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워 했다. 재영은 어떤 권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교수라는 신분인 그가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라고 말할 정도면 자료가 갖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서류의 무게 이상으로 묵직한 내용이 들어 있으리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 읽는 대로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참,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에 대한 제 생각은 교수님과 조금은 다릅니다. 저는 20세기를 풍요를 향한 속도의 파시즘과 소비의 시대라고 보며, 21세기는 그 속도와 가격 파괴로 가능했던 과소비의 저주가 초래한 부작용과 폐해들을 전 인류가 대신 짊어지고 하나씩 치유하는 시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며 미국 전역으로 번져가고 있는 패자들의 시위와 미국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다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버린 유로존의 몰락에서 그 징후들을 보고 있고요.”



재영은 자신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은 채, 자신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못하는 성수를 뒤에 남긴 채 그의 방에서 나왔다. 재영은 형의 힌트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뿐만 아니라 인식의 차이도 느꼈지만 그것보다는 미지의 자료에 대한 기자로써의 호기심과 흥분, 성수 같은 사람이 조심할 정도의 내용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과 무게의 과중함에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지만 재영은 왠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단어들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것 외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취재기획안의 속도를 높이자. 이 자료가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나도 그처럼 주사위를 던질 때가 온 거야. 어차피 가고자 했던 길, 두려워할 게 뭐 있어? 게다가.’

“난 영원한 아웃사이더잖아!”



성수의 연구실에서 나와 계단이 있는 곳까지 복도를 걸어가던 재영이 자신을 향해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의 말이 좁고 밀폐된 공간의 공기와 뒤섞여, 뚜렷한 공진을 만들자 마치 사자후처럼 쩌렁쩌렁 복도를 울렸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진동이 같은 흐름에 합쳐져 증폭되는 원리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실현된 것이었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물리학 법칙은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강하건 약하건 간에 인간원리가 적용되는 우주의 행성이라면 단 하나의 예외도 존재하지 않는다.



“뭐라고요?”



마침 계단에서 복도로 들어선 30대 후반의 남자가 깜짝 놀라며 재영에게 물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의 단단한 신체의 소유자였다. 9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온 것이 분명하다면 최소한 몇 방울의 땀이라도 이마에 맺혀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호흡이 조금은 거칠어지거나. 어쨌든 그는 육체적 단련에 있어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가 분명했다.



“아, 아닙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재영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불의의 인물에게 사과하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온통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재영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지만 내내 뒷골이 간지러워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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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자네도 그런 처지인가? 이거 동병상련의 동지네? 그렇다면 조금이 아니라 자세히 말해줘야겠네? 앞서 자네가 말했듯이, 세계적 차원의 금융위기를 넘기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돈을 뿌려댔지만 그건 실물위기로의 전위를 조금 늦췄을 뿐이야. 금융위기로 증발한 수십 조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인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하위층의 지갑을 털어서 만회하는 자본주의 특유의 방식과 어차피 강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철석같이 달라붙어 저항하고 있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후유증이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라는 걸 입증해주고 있어. 게다가 WTO와 IMF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3대 첨병 중 하나인 세계은행 총재의 고백처럼 이 위기가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어.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해 기축통화의 자리에 오른다는 건 아직 시기상조고 유럽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에 너무 집착해 특유의 탄력성을 잃은 상태라 유로가 기축통화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는 상황이니 어쩌면 이건 대공황보다 더한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어. 물론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디폴트 위기까지 몰렸던 미국,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유로존의 재정위기, 원전사고와 엔고 현상도 부족해 ‘리틀 재팬’이라 불릴 정도로 수십 년 간 대규모 투자를 한 태국이 침수되는 바람에 주력 생산기지가 파괴된 것까지 도무지 끝을 모르는 일본의 추락, 예상보다 더딘 브릭스 국가(브라질, 인도, 러시아, 중국)의 성장, 경제가 경착륙 할 가능성이 높아진 중국, 중국을 대신할 베트남의 한계, 대체 시장으로써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더딘 성장세, 아랍의 정치 불안 등이 거기에 한 몫 했겠군요?”



재영이 성수의 의견에 처음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제 더 이상 성수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런 재영을 보면 성수가 좀 더 강한 톤으로 말을 이었다.



“암,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지. 그중에서도 중동의 민주화 투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봐.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인류사적으로 보면 프랑스 대혁명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세대 간 전쟁도 격화될 것이고 고령사회라는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시기에도 곧 도달해. 그래서 앞으로의 10~20년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자 대전환의 시기라는 게 나와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야.”



“저도 아랍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재스민 혁명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도 남을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겁니다. 그렇게 돼야만 하구요. 작게는 메이저 석유회사와 그들과 결탁한 내부의 독재세력, 반묘와 반서구를 외치며 온갖 테러를 일삼는 근본주의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성전이 시작된 것이고 크게는 아랍식 민주주의의 확대와 ‘피의 석유’에서 인류가 해방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재영은 열띤 음성으로 화답했다. 사실 T.E.로렌스를 가장 흠모하고 인생의 롤 모델로 삼은 재영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랍의 독립을 이끌었던(영국의 정보국 소속이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는 상반된 평가도 있음) 로렌스처럼 치열하게 사는 것이 삶의 일차적 목표였으니, 재스민 혁명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던 성수가 미소를 띠며 재영의 화답에 다시 화답했다.



“내 생각도 자네와 같아. 아랍의 민주화 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유발한 변화 중 몇 안 되는 바람직한 결과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네. 그런 면에서 보면 금융위기의 주범인 미국의 몰락은 당연하면서도, 대규모 생산과 가격파괴의 소비경제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기도 해. 세계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간 미국의 경제 회복이 대공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상수이기 때문이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남용해 흥청망청 빚잔치를 벌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당연한 데도 말입니다? 한 번 구축된 기득권이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미국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란.. 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현존하는 유일한 제국으로써의 프리미엄이지.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 제국의 위치에선 내려서지 않겠지만 ‘유일한’ 과 ‘기축통화국’이라는 절대적 기득권은 반납할 수밖에 없을 거야. 디즈니랜드(미국은 미국 자체가 디즈니랜드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디즈니랜드가 있다고 한다)와 허리우드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세계적 영향력의 젖줄이자 돈줄인 대학의 교육 제도, 악의 근원인 군산복합체마저 무너지면 그땐 껍데기만 남겠지. 물론 토크빌의 지적처럼,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천혜의 땅은 영원한 자산으로 남아 변함없는 미국적 가치의 대명사로 남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절망적인 미국의 상황에 유럽의 재정파탄, 일본의 원전사고의 후유증까지 더하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을 넘어 자본주의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가지고 있어. 물론 그 효율성에 있어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경제구조가 없기 때문에 몰락까지야 가지 않겠지만, 소수에 독점될 수밖에 없는 자유방임적 시장과 초국적 자본 위주의 정치경제적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처방과 수술이 없다면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미증유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변종들인 레닌과 스탈린이나, 노르웨이 테러범인 브레이비크처럼 히틀러의 추종자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다시 활개 치도록 방관할 수야 없지 않겠나? 어떻게든 막아내야지.”



성수가 분명한 이념적 지향점과 미래의 목표를 드러내는 의견을 표출했다. 재영은 ‘마르크스의 변종들과 히틀러의 추종자들’이란 그의 말에 크게 동감하면서도 그것이 정치경제적 전체주의(착취의 파시즘)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다면 성수는 다시 형의 힌트에 적합한 인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재영은 문득 형의 계획에 대해 성수에게 말하는 것을 조금 연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이 처한 국가 재정 파탄과 여전히 탐욕적인 금융시스템, 탐욕적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 신설과 부유세 강화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 전 지구적 차원의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 변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으로 풀린 돈이 초래하고 있는 만성적 물가상승,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겠네요.”



재영은 일단 성수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는 성수의 생각을 좀 더 깊은 곳에서 끌어내기 위해서였는데 성수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에 응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재영은 무의식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의심의 싹을 찍어 누르지 못했다.



“그것만이 아닐세. 국경을 넘는 자본 이동에 세금을 물리자는 토빈의 주장처럼, 초국적 자본의 무차별적인 이동을 제어하지 않으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네.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녔던 19세기가 인간의 이성을 풍요롭게 한 세기였다면, 20세기는 그 위대한 사유의 산물로써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류의 물질적 풍요를 이룩한 세기라고 할 수 있어. 국가와 거대 자본의 지원이 그들에게 유리한 연구물을 내놓기에 급급했던 얼치기 경제학이라고 해도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특히 구소련이 몰락한 이후, 고삐 풀린 자본이 과학과 기술과 정치와 뒤엉켜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에 내재된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무시해도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나? 물론 그 중심에는 자연의 선물이자 물보다 싼 석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재영은 위기상황에 대해 말하던 중, 뜬금없게도 20세기가 석유를 중심으로 한 성장의 시기였다고 단정한 성수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의 방향을 틀어버린 이외의 가설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야 상당히 증폭됐지만, 도무지 맥락이 이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 바람에 무의식에서 빠져 나오던 의심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짧은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재영은 20세기를 ‘혁명으로 시작해 사건으로 끝난 세기이며 쓰레기의 세기로 불릴 것’이라고 말한 로제 마르땡 뒤 가르의 정치적 정의와 너무나 다른 성수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동방국의 일개 소장파 경제학자가 내린 의견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의 논리가 지나칠 정도로 비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되는 것이 있기는 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가 자연이 준 자원인 석유에서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 진정한 창조이자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한 것처럼 말입니까?”



“빙고! 단언하지만, 석유가 없었다면 20세기의 성장은 불가능했네. 물론 다른 것들도 있지만 석유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없어. 지금은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지만, 인류를 가난이란 족쇄로부터 해방시켜 풍요를 가져다 준 화학의 공헌까지 부정할 순 없지. 물론 풍요를 이루기 위해 아랍과 아프리카 등의 산유국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해온 물보다 값싼 석유라는 저가의 가격정책이 전제됐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네. 하지만 신이나 자연이 아닌 인간이 발전시킨 화학의 힘이 없었다면 석유에서 추출한 마법 같은 소재, 플라스틱도 없었을 테고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네. 또한 앞으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플라스틱을 태우는 것 이외에는 경제성이 있는 게 당분간 나오기는 힘들 것이네. 물론 그것이 인류에게는 일종의 딜레마나 아이러니일 수밖에는 없겠지만 말일세.”



성수의 말은 거의 플라스틱을 창조해낸 화학 찬양론자 수준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건 일개 경제학자가 무 자르듯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그런 단순한 화학방정식도 획기적인 에너지 해결책도 아니었다. 재영은 뜬금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성수의 주장에 뭔가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고 긍정하기에는 자신의 지식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풍요의 대가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 풍요라는 것도 골고루 나눠진 것도 아니고. 계산도 불가능한 환경오염의 폐해는 석유에서 대부분의 이익을 독점한 거대 자본이 아닌, 모든 인류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재영은 처음으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성수의 주장에 강하게 부정했다.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석유가 제공한 값 싸고 마법 같은 제품들이 없다면 단 하루의 생활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그것이 초래한 폐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풍요의 과실이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인류 전체의 발전까지 부정할 수야 없지 않겠어? 난 부의 재분배와 복지의 확장은 정치와 경제가 풀어낼 과제이지 석유의 용도를 발전시킨 화학의 잘못은 아니라고 봐. 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케미컬 리커버리라고 함)도 이미 왜국이 개발해 놓은 상태고 유럽에선 비중 1.0(플라스틱의 분자결합력을 약화시켜 분해할 수 있는 기준 밀도. 플라스틱을 사용 금지와 사용 자제, 사용 가능으로 나눠 리사이클링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제하고 있음) 이상의 플라스틱 소재에 대한 사용 금지(에너지 리커버리라고 함)를 ISO 규정으로 추진 중이야. 석유가 리터 당 100달러가 넘으면 경제성도 갖게 돼. 물론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기존의 환경오염을 줄이거나 더 이상의 오염을 막을 수도 있는 기술들은 이미 개발돼 있어. 이런 것들로 해서 나는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기업, 특히 제조업의 잘못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봐. 물론 제조업체의 책임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과학과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야. 거대한 힘일수록 책임도 커지는 법이지만 과거로 돌아가거나 현상 유지에 매달려서는 인간의 능력과 풍요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계하는 거라면, 지나친 것일까? 어쩌면 자네가 기득권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기성 종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같은 논리가 아니겠나?”



“교수님,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것 아닙니까? 저도 플라스틱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것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술적 발전과 재활용이라는 대체 에너지적 가능성에도 긍정적인 편이구요. 하지만 교수님 논리대로라면 핵무기와 핵 발전도, 수많은 인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모든 전쟁도 인류 발전에 공헌했으니 그 모두에게 면죄부를 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과학과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파괴적 속성과 자가증식적 경향을 띤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류를 빈곤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대부분의 테크놀로지가 인류를 보다 수월하게 통제하고 이제는 인류 전체를 멸종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걸 지구 자체가 입증하고 있는데 그런 결과를 초래한 과학과 기술을 상업적 목적과 통제의 도구로 가장 많이 차용한 대기업의 책임이 그리 크지 않다니요? 특히 금융과 에너지, 유통 및 매스 미디어 관련 초국적기업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육식을 즐기고 온갖 기술적 편리에 매몰돼 매일같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자신이 소비와 향락의 노예로 전락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개개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이익만 챙겼을 뿐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초국적기업까지 무죄방면해줄 수야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교수님?”



재영이 다방면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성수의 말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성수의 시각이 자신이 뒤엎고 싶은 제도권 시각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형의 힌트에 정말로 적임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격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과 에너지 분야 초국적기업의 잘못에 대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네. 자네의 말처럼 모든 테크놀로지 또한 자신의 적용 분야를 최대한 확장하려는 내재적 성향을 갖고 있기도 해. 그래서 내적 동력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지. 좀처럼 사라지지도 않고. 핵에 관련된 기술처럼, 일부는 확장의 결과가 지나치게 파괴적인 경우도 있지. 하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가치가 이미 성과를 이룬 과거의 결과물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 가우스의 종형곡선에 수렴하는 결과를 만들지도 않지만 누구도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잠재적 성향까지 매도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자네가 지적한 논리적 비약은 시공간을 한꺼번에 뛰어넘고자 할 때 주로 발생하는 것이지 내 말처럼 현재에 두 다리를 굳건히 하는 경우에는 비약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어? 양자역학이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우리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성과를 부정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일 테고.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이 서로 협력해 이룬 성과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수명 연장을 이룬 의학기술과 인간의 활동반경을 넓혀준 자동차와 철도, 비행기는 물론 인류의 지식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컴퓨터를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화학과 물리학의 총화인 플라스틱까지 비판한다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네. 피해가 예상된다고 발전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류 진보의 역사이자 이치라면, 누군가 도전해야만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지 않겠나?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인류에게 남겼지만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세기를 그 정도의 허물만 탓하며 시간의 저편으로 놓아준다고 해서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안 그런가?”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 성수가 재영의 반박에 물러서지 않았다. 뭔가 작심한 것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그가 아니다. 게다가 금융위기를 얘기하다 갑자기 석유로 주제를 바꾼 것은 분명 어떤 의미도 없으면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었다. 질서정연한 사고를 중요시하는 성수가 결코 이런 럭비공 식의 논리를 전개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재영은 성수가 한 말들을 빠르게 되돌려봤다. 어렵지 않게 하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재영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성수에게 물었다.



“그럼, 압축성장을 이룬다는 명목 하에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대규모 댐과 원전 건설 같은 SOC 사업을 통해 배를 불린 권위주의적 토건세력(왜국의 자민당과 관료 같은 사이비 케인지언 - 토건업자와 직업관료 - 들이 주를 이룬다)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합니까?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했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다시 희생을 강요했던 우리네 역사의 20세기를 마냥 놓아주자는 말은 아니겠지요?”



“당연히 그건 아니네. 이익을 독점하고 자원을 소비하기만 한 토건세력과 관련 이익집단까지 면죄부를 줄 수야 없지. 일부에게만 이익이 집중되는 발전은 너무 많은 희생과 끝없는 혼란을 야기하니까. 토건세력이 주도하는 경제가 위기의 또 다른 진원지라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니, 그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잔인한 범죄야!”



성수가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단어로 끝을 맺었다. 재영은 그 제서야 성수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성수가 한 말을 피드백 해보면 한 개의 단어가 일관되게 자리했다. ‘20세기’가 바로 그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성장과 풍요의 과정으로 작용했던 20세기는 놓아주자는 뜻이었다. 그래야 미래의 혼란과 차별을 진정으로 바로잡을 수 있기에. 그렇다면 21세기의 그 무엇, 플라스틱이라는 만능의 제품을 창조해낸 물보다 싼 석유와 비견될 만큼 경제적으로 중요성을 갖는 것, 21세기를 인류 공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기로 재구성해나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그것들 중에 성수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터였다. 물론 그와 정반대일 수도 있다. 21세기를 인류가 진정으로 발전한 세기로 만들어줄 그 무엇을 가로막고 있는 어떤 다른 것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수가 직업이 기자인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탐욕의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이익을 창출해줄 먹이로 결정한 디지털 세계의 패권주의나, 신방 겸용과 소유권 집중을 통해 몸집을 불리며 철저히 상업화의 길을 가고 있는 매스 미디어에 관한 것이리라. 만약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성수가 형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제3의 동반자에 적합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영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성수에게 물었다.



“20세기에 대한 얘기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대체 제게 말하고 싶은 게 뭡니까?”



재영이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성수에게 물었다. 둘이 대화할 때 어떤 의문이라도 생기면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라면 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자신과 성수 같은 부류에겐 최악의 행위였다. 재영은 성수의 입술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까, 뚫어져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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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앨리스 2015.08.28 23:41 신고

    이런 지적인 대화를 길~~~게 나누는 재영과 성수가 부럽군요ㅎㅎ 사회를 압축해서 인식하게 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29 00:26 신고

      나중에 시간이 돼 소설을 낼 마음이 생기면 모조리 퇴고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이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에요.
      최대한 줄여서 소설답게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요.

  2. Chris (크리스) 2015.08.29 01:03 신고

    성수의 입술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저도 궁금합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에피지에서 인용



재영은 ‘우영워드’의 가상서버에 나타난 숫자가 100을 넘기는 순간을, 온몸을 뚫고 가는 전율에 앉은 자리에서 가상스크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 듯 앞으로 내민 순간의 짜릿함을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다. 형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우영워드’ 사용자가 100명을 넘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영워드’의 가상데이터센터가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를 의미하며 아울러 불멸의 생명을 이어갈 에너지의 축적이 비로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상데이터센터를 움직일 에너지가 축적됐다는 것은 에너지 사용에 따라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이용해 ‘우영워드’가 스스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진화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서로 협력하며 진보하는 불멸의 유전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이는 인류의 생존과 자연과의 공생,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는 이타적인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이제 그 숫자는 500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이 정도면 ‘우영워드’의 배포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파레토의 법칙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0.03%에 불과한 지배 엘리트와 특권층으로 탈바꿈한 ‘자기조정 시장’의 주창자들은 물론 그들의 후예들이 지난 400년 동안 구축해낸 지배 시스템과의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설 단단한 기초공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숫자가 1,000에 이르면 가상데이터센터가 생존의 단계에서 벗어나 구글로 대표되는 거대 디지털 제국과의 일전에 나설 수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형의 조력자를 자처한 현인과 나의 영원한 친구, 정환의 혼신을 다한 노력 덕분이었다. 누구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형의 계획을 실천해간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영워드’가 아무리 위대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형의 계획이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치밀하다 해도 이렇게 빠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영워드’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배포할 세 번째 조력자를 확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 동안 형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그에 적합한 3명의 인물을 만났고 그들의 성품과 능력, 정치·경제·사회적 성향과 삶의 행적들에 대해 꼼꼼히 조사하고 살폈다. 이제 그들 중 한 명을 ‘우영워드’의 조력자로 결정하면 형이 세운 계획의 1단계를 완성하게 된다. 그것은 원대한 형의 계획이 안정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고 아울러 내가 꿈꿔왔던 언론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진행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재영은 먼저 Y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멘토 열풍을 몰고 온 인물 중 한 명인 박성수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14 – 의외의 자료



자유주의는 대내적으로 경제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역할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방임을 지지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세계 각국을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했다......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자유롭지 못한 정치제도의 조합도 분명 가능하다.


                                                             -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중에서




사회가 부유하면 할수록 실제생산과 잠재생산과의 사이의 간격은 클 것이다. 따라서 경제체계의 결점은 더욱 명백하고 또 포악한 것이 될 것이다.


                                                 - J.M.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중에서



“마침내 천국으로 통하는 문을 지키고 있던 성 피터가 케인즈와 프리드먼에게 물었네.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자신을 변호해 보라고 했어. 케인즈는 대공황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어.”



성수가 초국적 자본이 벌이는 전 세계적 착취 시스템이자 독재적 권력이었던 신자유주의의 몰락에 대해 설명하던 중, 불쑥 『경제 저격수의 고백 2』에 나온 얘기를 인용했다. 그는 40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속한 대학에서 종신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그것을 포기하고 귀국한 특이한(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미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종신교수 자리를 거절한 이유 또한 희대의 걸작이라 할만 했으니, 죽거나 스스로 물러날 때가지 교수신분이 유지되는 종신교수 자리라고 하는 것이 지식에 대한 영원한 기득권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식에 대한 그의 신념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 발전시켜 후대에 전하는 것이라는 형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케인즈다운 말이네요. 최저(실질)임금 이하에 허덕이고 있던 노동자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그로서는 능히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겠죠.”



재영이 성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형의 힌트와 계획의 첫 번째 단계에 따라 Y대 교수로 있는 성수를 찾아와 취재의 명목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이 힌트에서 밝혔듯이, 세계경제를 꿰뚫는 학문적 깊이와 실천이라는 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성수는 형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수학천재나 정보물리학자를 소개시켜 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이었다. 이는 ‘우영워드’의 미완성 코드를 완성하고 가상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첫 번째 책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목적을 배제하더라도 박성수 교수는 재영이 기자라는 신분으로 만난 사람 중에서 최상의 인물이었고 미래의 동반자로 삼기에 충분한 능력뿐만 아니라 맑고 선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이란 관계하는 동물인 인간의 본능이요 그 무엇보다도 강한 순수한 힘의 원천이지 않은가.



“그렇지. 사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게 물가상승이 반영된 최저임금 아닌가?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그의 주장은 노사 간의 합의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전파 경제학의 허구를 파헤친 위대한 선언이나 마찬가지였어.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만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지. 어쨌든 자유주의 경제학의 잘못된 진실을 파헤친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인 케인즈의 말에, 성장을 중시하는 통화경제학자이자 모든 규제에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의 수장인 프리드먼이 말했어. 자네도 알다시피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 중 인간과 자유기업의 합리성과 자기조정 시장만을 특별하게 강조했을 뿐 근본적으로 수많은 이익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와 중앙은행의 존재가치를 부정했고, 역사에서 자신의 논리에 유리한 것만 선별해 마치 보편적 진리인양 호도하는 등 인간과 시장에 대한 저급한 이해에 머물러 무모하기 그지없었던 프리드먼이 직설적으로 말했어.”



“지옥에 있는 프리드먼의 귀가 유난히 간지럽겠네요?”



재영이 프리드먼을 설명하며 목소리의 톤이 점점 높아지는 성수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물론 재영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왜? 내가 프리드먼을 너무 나쁘게만 표현해서? 맞아, 인정하지. 하지만 사실이니까. 난, 프리드먼을 무덤에서 끌어내 역사의 법정에 세워 그 죄 값을 치르게 하고 싶을 정도로 그를 증오해.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한 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인 시카고학파와 한국에 만연해 있는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증오해. 2008년 금융위기의 기원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르니까. 아무튼 악마의 사도가 분명했던 프리드먼이 자신은 인류가 더 이상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아예 모든 규칙을 없애기 위해 죽을 때까지 전력투구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어. 그 덕분에 인류사에 다시는 대공황이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까지 하면서 말이야.”



“이런, 죽어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는 얘기네요. 그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간에 수많은 나라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파탄내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신자유주의의 대부로써 능히 했을법한 말이네요.”



사실 재영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몸에 발진이 돋을 정도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대공황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선진국 중심의 경제위기와 그들이 부를 쌓는 과정에서 인류의 60~70% 이상이 겪고 있는 상대적 빈곤의 고통이 거의 대부분은 그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 떼거리들의 사상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 편승해 막대한 부를 챙긴 정치 엘리트들의 책임도 상당하지만.



“우수게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에 비견될 만큼 인류사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야. 현재 선진국에서 전 세계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급격한 재정위기가 경제규모를 다운사이징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서민과 빈곤층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겠지만, 한 10년 정도 세월이 흐른 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한 기억마저 희석되면 이런 사실이 더욱 분명해질 거야.”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이며 언론ㆍ문화적인 의미를 넘어 인류사적 의미까지요? 이번 금융위기가 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자본주의의 몰락을 의미하는 대공황까지는 가지 않았잖아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백척간두에 서 있지만, 미국이 쉽게 무너질 나라도 아니고, 중화국도 거품의 연착륙에 성공하고 있으니, 대공황을 거론할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재영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가 대변한 금융 자본주의의 몰락으로 이어져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낼 인류사의 변곡점으로까지 격상시킨 성수의 말에 일말의 의문을 표했다. 그것은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지구가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석유를 너무 싼 가격에 사용한 것과 포스트 포디즘 이후의 압축 성장을 뒷받침한 값싼 전기가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탄생부터 통제의 수단이었던 컴퓨터와 인터넷이 더해져 단기 실적에 목매는 주주이익 중심의 기업 경영, 대규모 투기 자본화된 금융 산업의 구조적 탐욕과 탈선이 부차적 원인이다. 이는 별 볼일 없는 한 형제, 재우와 재영의 일치된 생각이다)을 그냥 지나쳐 버릴 위험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영은 아담 스미스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경제학이 인간과 시장에 대한 잘못된 믿음(합리적이라는 믿음)에 근거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또한 주류 경제학에서 서구사회를 번영의 시기로 이끌었다고 칭송하는 하이데거(자유에의 헌정)와 대처, 프리드먼(자본주의와 자유)과 레이건의 조합에 의해 추진된 신자유주의도 지나치게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여러 가지 오류가 있어 재영은 주류 경제학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됐다. 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늘려주고 미래까지 그래야 한다고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불평등 이데올로기로 치부하거나, 기껏해야 기득권을 위한 통계학 이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량 잉여생산과 속도의 파시즘이 불러온 공멸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보통 자유(경쟁) 시장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미국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천대, 만대 기업이라고 해도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에 제한한 선정 자체가 그들만의 기준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 및 차단작업이기 때문이다)’이 평균 30년 주기로 30~40%가 바뀐다는 것에서 논리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자유(경쟁) 시장의 시스템을 주도하는 자들에게는 수천만 개 기업 중 시스템 중심부로 들어오는 대기업들이란, 전체 기업을 기준으로 할 때 불과 몇 십만에서 몇 백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신규 회원이 도태된 구회원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소하고 부수적이며, 따라서 전혀 변한 게 없는 해프닝에 불과할 뿐이다. 지역적으로 일부 시장과, 크게는 몇 개의 나라가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세계경제 시스템을 지배하는 자들의 면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피해도 잔망스러울 뿐이다. 이익의 총합과 지배 시스템에 하자가 생기지 않는 한 이런 일인 매년 벌어지는 연말 정산 디너쇼와 다를 것이 없다.



반면에 지나칠 정도로 휴머니즘에 빠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치경제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폭력적 혁명을 선택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린 마르크스를 필두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반대편에 있거나 현장 종사자(주로 실물경제)가 선호하는 위대한 경제학자인 케인즈와 창의적 기업가 정신을 주창한 슘페터, 금융 부문의 경우 자유(경쟁) 시장은 실물시장과 정반대로, 즉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비이성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완벽하게 밝혀낸 민스키와, 경제학은 경제학자를 먹여 살리기에 딱 적당하며 주류 경제학의 오류와 허상에 대한 풍자와 촌철살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겔브레이스, 금융위기의 본질과 과정을 완벽하게 밝혀낸 킨들버거 등의 저평가된 경제학 서적들에서 오히려 실체적 진실과 경제학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주류 경제학은 기업의 속성과 현장에서의 거래방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왕국만을 건설하고 유지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들 외에도 그때그때의 경제 상황에 따라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경제학자 중에서 정치적 성향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 문제지만), 게리 베커와 니얼 퍼거슨(역사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와 제국에 대한 필요악적인 긍정적 생각, 금융 시스템에 대한 가치중립적 태도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금융위기를 표만 의식한 정치인과 인센티브에 목맨 금융 분야 종사자들의 탐욕, 이를 방치한 정부와 경제 관료들의 잘못이 중첩된 것으로 분석한 『폴트라인』의 저자 라구람 라잔과, 카오스 이론의 대가로 기존의 포트폴리오 위주의 금융이론을 비선형적 프랙털모델로 뒤집어버린 만델브로트의 『프랙털이론과 금융시장』 등의 서적들을 참고했지만 재영은 2008년의 금융위기를 인류사적 의미까지 격상시킨 성수의 주장이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과는 다르다. 처녀가 임신했느냐 숫처녀가 임신했느냐의 차이라 할까? 문제는 거의 모든 여자는 임신한다는 사실이다. 씨를 함부로 뿌린 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형도 속도의 파시즘과 값싼 석유, 컴퓨터와 인터넷 등을 빼면 성수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긴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대기업들에게도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분명한 각성을 주었고, 소비자로써의 개개인에게도 편익과 품질 위주의 소비에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소비에 대해서도 눈 뜨게 했기 때문이다. 재영은 그래서 성수의 다음 말이 너무나 궁금했다. 보편적 가치나 일방적 주장이 아닌 논리의 다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언제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해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논리로 성수의 의견에 일부러 반대를 표시했던 것이다.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의 몰락과 WASP의 재부상, 경제위기에 직면해 유럽이 우왕좌왕하고 전통의 다문화주의를 포기한 것,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무차별 학살에서 보듯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극우주의 세력과 종교적 근본주의를 절대적 신의 명령으로 해석하는 각종 테러집단, 그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영국과 이스라엘, 칠레 등의 대규모 폭동, 거대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일방적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빈부의 격차, 폭주 단계에 이른 지구온난화가 초래하고 있는 각종 이상 기후, 이젠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참여 민주주의 정신, 인간의 신경망처럼 전 지구적 차원으로 얽혀 있는 초국적 투기자본이 초래한 천문학적인 부실자산과 재정적자, 빚에 근거한 금융의 폭주로 그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띠는 제조업의 위축과 공기업의 무분별한 민영화, 위기 대체 방법을 인원감축으로 대처하는 기업들의 노동유연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 등이 일시에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라 금융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야. 이것들에서 안전한 나라는 없어.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니, 이건 마치 자본주의의 정반대에 서있던 마르크스가 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혁명 직전의 상황과 거의 비슷해. 시장사회주의를 꿈꾸었던 폴라니가 살아 있다면 더 정확한 진단을 내놓았겠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상당히 일치된 생각이야.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와 영국과 칠레,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폭동처럼,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초래한 대공황의 증거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어. 이건 마치 유럽과 미국을 뒤흔든 68혁명의 전야를 방불케 해.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부산을 떨지만, 부자증세와 소비 축소, 공정무역과 금리 인상을 통해 장기저축을 늘리는 등의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절대 이번 위기를 탈출할 수 없을 것이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인간과 사회를 모두 파괴시켜버린 신자유주의라는 인류사 최악의 괴물이 아예 끝장을 보자며 인류 전체와 자본주의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게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이야. 그래서 어마어마한 인류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이야.”



성수가 전 세계적 상황을 일목요언하게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논리의 정연함이 수면을 박차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눈부신 빛의 파편들을 분출했다.



“그 정도인가요? 미국을 대체할 만한 중국 시장이 커지고 인도와 브라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신흥시장도 빠르게 팽창 중이라 세계경제가 대공황까지는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시카고학파의 퇴장이야 당연하지만, 막강한 세계경제가 백척간두에 서있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네요? 결국 금융위기의 불똥을 막기 위해 천문학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풀린 돈이 문제라는 얘긴데 그에 대해 교수님의 설명을 좀 더 들었으면 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너무 시간을 뺏는 건 아닌지?”



“무슨 소리? 얼마든지 해주지. 교수라는 게 뭐겠어? 떠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자들인데. 게다가 나 요즘 

한가한 사람이야. 현 정권과 주류학자들에게 문제아로 낙인찍힌 이후 남아도는 게 시간이야, 허허허.”



씁쓸하게 웃는 성수의 말에서 상식을 벗어난 현 정권의 행태에 대한 불만과 주류경제학자들의 지나칠 정도로 폐쇄적인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배나왔다.



“회사에서 기피 인물로 찍힌 저와 비슷하네요, 하하하!”



재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주류와 지배 권력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활동 반경이 상당 부분 제한된 성수의 처지 안타까웠다. 이를 테면 권위주의 독재시대의 적색분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는 분명히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으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정의의 실현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면에서 형의 힌트에 가장 적합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잠깐 흔들렸던 확신이 다시 강화됐지만, 재영은 확인차원에서 성수의 선언적 주장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견해로 치부하며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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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형의 노트북을 찾았다. 그는 형이 누운 상태에서 한 자 한 자 사력을 다해 작성한 파일들을 노트북에서 찾아 밤낮으로 읽고 또 읽었다. 회사에 10일 간의 휴가를 낸 상태라 재영은 업무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았다. 육체적인 피로는 혼자라는 사실에 압도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라면이나 햇반, 물, 동료들이 사놓고 간 과일이나 과자 등으로 겨우겨우 때우는 공복은 지랄 맡기가 쥐새끼 같아서 아예 무시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정신에 모든 힘을 집중할 때면 에너지가 육체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기 일쑤여서 뜻하지 않은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지만 재영은 형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악착같이 버텼다.



‘형, 이 정도일지는 몰랐어. 아니, 아인슈타인이 환생한다 해도 이만큼은 못할 거야.’



재영은 형의 유골을 고향 강가의 바람에 날릴 때, 손가락 사이로 퍼져나가는 재의 온기가 너무나 생생해 주먹을 움켜쥐었고 한동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수면에 떨어져 작은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는 그 가벼움과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는 허무함은 또 어떻고? 헌데, 재영은 형이 남긴 파일의 내용에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만큼 엄청난 충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형의 흔적들로부터 죽음을 떠올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0,000권이 조금 넘는 독서량이 가져다 준 방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재영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깊이와 동서양을 망라한 철학과 모든 학문의 기초인 화학과 물리학을 거쳐 전자공학과 생명공학, 생체심리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창의적 발상과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치밀하고 장대한 형의 계획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재영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자동 정리해주는 전능의 워드프로세스와, 가상 메모리를 상ㆍ중ㆍ하단전으로 나누어 정보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저장 공간을 지정하는 인체공학적 방식, 신경회로인 뉴런과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장단기 기억을 만들어내는 시냅스의 전자ㆍ화학적 반응의 일부를 디지털 코드로 풀어낸 인공지능 검색엔진에 이르러서는 아예 사고의 기능마저 멈춰버렸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도록 재영은 형의 계획에 대해 어떤 생각도 이어갈 수 없었다.



‘이건.. 거의 완벽한 인공지능이야! 어떤 검색엔진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재영은 인간 사고에 대한 저급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지털 제국을 건설하려는 구글과 애플, MS을 비롯해 반지성적 사이버 왕국을 건설하려는 모든 인터넷 검색 업체와 미디어에 대항하고, 깊고 고요한 사유와 모든 기억의 연결과 통합을 통해 이뤄지는 인격의 존엄성과 갈수록 그 존재가 미약해지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형의 계획이 일개 광언이나 비현실적 몽상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영은 살아서 물리학의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지 못한 아인슈타인처럼, 형의 계획을 실현할 도구들도 아직은 미완성이었지만 계획의 99%는 이미 실현된 상태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이나 신문, 웹상의 글을 읽거나 텔레비전 뉴스나 드라마를 볼 때, 우리의 뇌가 그 내용들을 잠시 담아 두었다가 다른 내용들이 밀려들어오면 곧장 내보내는, 저용량의 작업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들을 일정 기간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단기 기억으로 옮겨, 개념이나 사상 같은 것을 형성하는 스키마와 무의식 속에 자리할 정도로 오래된 기억 같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장기 기억으로 바꾸는 과정을 이렇게 간단히 풀어낼 수 있다니! 형은 상상 속에서 수학적 계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장기 기억을 만들어내는 뉴런과 그것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의 단백질 합성과정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어. 이건 구글과 MS 등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필사적으로 완성하려고 몸부림치는 꿈의 검색엔진이야! 아니, 어쩌면 그 정반대일수도 있고.’



“형! 정말 이 모든 걸 혼자서 다 만들어낸 거야? 이것 때문에 몇 년 앞당겨 죽음을 맞이했던 거야? 이 세상에 나 홀로 두고!”



재영은 자신도 몰랐던 형의 재능과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계획,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와 신념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의 창조주라 해도 이 정도로 완벽한 설계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컴퓨터가 여분으로 갖고 있는 전자기를 디지털 에너지로 변환시켜 디지털 엔트로피를 방출하는 방식의 순환으로 무한의 가상공간을 창출해내는 방식이란, 가히 디지털 열역학 법칙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었다. 



자가면역성 백신제조를 완성시키기 위해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의 화학적 단어인 A, T, G, C를 디지털 방식으로 치환해 모든 컴퓨터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무력화시키는 디지털 항체는 만능의 백신에 다름 아니었다. 개인이 어떤 것이든 기록(녹음과 타 사이트에서 복사해 온 것을 저장만 해도 가능)만 하면 자동색인이 이루어져 기억의 네트워크에 자동적으로 연결ㆍ통합하는 ‘우영워드’란 인간의 뇌가 기억을 형성하는 방식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 최후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하지 않았다.



물론 ‘우영워드’를 확장해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인간의 뇌처럼 통합해내는 디지털 뉴런과 시냅스 코드를 안정적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고급 수준의 프로그래머가 필요하지만 동방국에서 그런 수준의 프로그래머를 찾는 일이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듯싶었다. 형이 정해놓은 목표치는 10만 개인데 그 중 8만 개는 완성된 상태였다. 대신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코드의 게놈지도는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형은 그런 적임자를 가려낼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해두었고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힌트, 즉 지름길도 남겨뒀으니 자신은 그 길을 따라 여행하며 적절한 인물을 찾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형, 이거 너무 싱거운 거 아니야? 어차피 내 인생을 구속할 생각이었다면 좀 더 어려운 일들을 부탁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재영은 자신에게 최소한의 역할만을 남겨줬지만 그것만으로도 영원히 자신을 구속하게 만들어버린 형의 거대하면서도 무모하기 그지없는 계획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그 덕분에 형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은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다. 형의 세운 계획의 첫 장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암울하기 짝이 없는 예언적인 묵시록이었고, 어찌 보면 썩을 대로 썩은 동방국의 현실에 대한 치명적 경고였다. 그것은 완벽한 절망에서 최대한의 희망을 찾아내기 위한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줄 몰랐던 무모하기 그지없었던 한 인간의 처절한 고투의 산물이며,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순간이 고통이었던 철저히 고립된 영혼의 간절한 호소이자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재영은 평생을 스크린을 통해 세상과 만났던 형의 디지털 세상의 미래를 이렇게 암울하게 봤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형은 컴퓨터를 통해서만 삶이 가능했기 때문에, 디지털 세상은 형의 모든 것이었다. 따라서 디지털 세상에 대한 형의 평가는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은 뜻밖의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잠시나마 자신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기대가 크면, 그 기대가 순수하면 할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어쩌면 형에게 디지털 세상이란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워야 했던 건 아닐까? 물리학자들이 하나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정식에 우주의 원리를 담아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형은 암울하기 짝이 없는 「디지털 묵시록」을 작성한 이유에 대해 말하길, 현재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배할 소수의 기술과 전략 및 소유주들의 목표를 정확히 알아야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우영워드’를 사용할 이용자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가질 수 있도록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작성했다고 했다.



형은 또한 리처드 도킨스가 발견한 ‘밈’이라는 유전자가 디지털 세상을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장이 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의 단초 중 하나로 보였다고 했다. 형은 ‘밈’이라는 유전자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TV와 개인용PC, 휴대폰과 인터넷을 거쳐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이르기까지 자기복제와 돌연변이, 자연선택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났던 누적적 진화가 스크린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제어하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일어나는, 그래서 잘못된 진화를 막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메스를 들이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에는 ‘우영워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근데 형, 힘들지 않았어? 매 순간 지속되는 고통에 저항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런 거대한 일들을 해왔으니, 난 엄두도 못 낼 것 같은 데? 형이 위대한 리처드 파인만이나 루게릭병이 악화된 이후의 스티븐 호킹처럼 탁월할 정도의 상상력과 직관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재영은 만일 신이 있다면, 육체적으로 무력하게 태어난 형과 지독할 정도로 축복받은 육체를 갖고 태어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로 해서 그의 뜻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겠지만, 그것보다는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홀로 진행하면서 형이 꿈꿨을 세상이, 형의 일생과 하루하루의 투쟁이 정말로 행복했을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사실 신이야 그를 찬양할 인간이 없으면 그 권능의 가치조차 의미 없는 철저히 인간 의존적 존재 아닌가? 신은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인간이 필요했을 뿐이고 그 대표적 모델이 형의 일생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겠는가?



“Fuck your Heaven!"



재영은 수면제와 진통제를 먹지 않는 몇 시간의 잠도 잘 수 없을 정도로 끔직 했던 육체적 고통과 24시간 내내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안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고투의 연속이었던 형의 일생 - 오직 컴퓨터 앞에 누워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그 처절한 28년 모두 - 을 떠올리며, 인류를 위해 기꺼이 참혹한 고통을 감내하며 초라하고 누구 하나 슬퍼하거나 기억하지 않은 죽음을 선택한 디지털 전사의 출사표를 계속해서 읽었다. 그것은 영혼을 뿌리까지 갉아먹는 끝없이 이어진 육체적 고통과의 팽팽한 투쟁의 증거들이었고, 동시에 그것 모두를 그리움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종신 서약서였다.



재영아, 한나 아렌트는 그 잠정적인 패배와는 상관없이 독재정치와 전제정치가 인류를 항상 따라다녔다고 말하며 『전체주의의 기원』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었어.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을 포함하고 있다는 진리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 시작은 끝이 줄 수 있는 약속이며 유일한 ‘메시지’이다. 시작은,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 되기 전에 인간이 가진 최상의 능력이다......새로운 탄생이 이 시작을 보장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



내 죽음도 너의 삶에서 또 다른 시작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어. 난 육체적으로 무력했기에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어. 그것은 나에 의해서 너에게 가해진 속박이기도 했지만, 나는 너를 통해서만 세상과 만났을 수 있었기에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교감한 우리는 세상의 어떤 힘과도 맞설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너와 내가 형제이기 이전에 완벽에 가까운 조합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주사위를 던지는데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떤 숫자가 나오는 것도 개의치 않았어. 확률이란 그저 확률일 뿐이니까.



그것을 바탕으로 나는 신자유주의가 창출한 상업적 전체주의(대량 생산과 가격 파괴로 이루어진 소비의 파시즘)와 사회의 파멸에 대항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무모하리만치 담대한 한 가지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죽음에 임박해서도 흔들림 없이 계획을 진척시킬 수 있었어. 나도 너처럼 무모한 낙관이나 분별없는 절망에는 반대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갈 때, 너와 나는 동전의 양면일수도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추호도 배제하지 않았어. 가족과 사회를 포함한 인류의 역사에서 악화가 언제나 양화를 구축하고,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착취와 억압조차도 사회가 돌아가게 만들고 나름의 질서를 확립’시키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에도 나는 잠재된 가능성을 보여주고 현실에 도전할 수 있는 열정과 동기만 불러일으켜주면, 평범한 사람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특권층과 지배 시스템을 향한 혁명의 방법으로 폭력적 수단을 얘기하는 건 아니야. 그것이 정의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다 해도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어. 물론 공권력의 야만적 집행에 저항하는 폭력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의의 실현에 폭력이 없다면 어떤 정의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저항권으로서의 정당한 폭력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권력으로 하여금 공권력 사용에 신중을 기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 



그래서 나는 사이버상의 폭력을 정의의 이름으로 실행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기로 했어. 물리적 파괴와 상관없는 특별한 형태의 폭력이라 죄의식까지는 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래서 혁명의 수단으로써 개개인의 지식의 강화를 선택한 거야. ‘우영워드’는 뇌가 지력을 높이고 인격을 형성시키는 방법과 최대한 동일하게 설계됐기에, 나는 개인의 노력이 늘어날수록 혁명의 성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리라 확신해.



나는 지금 바라고 기원하고 있어. 비록 선택의 여지도 거의 없고 반강제적이지만, 어쨌든 최종 선택은 너에게 달려 있어(얘기가 여기서 끝나면 다 너의 책임이라고 뻥도 쳐놨어). 재영아, 형에겐 너에 대한 투명한 확신과 순결한 사랑이 있어. 나는 너에게 일방이 될 수도 없었고 너는 나에게 타방으로 존재할 수도 없었잖아.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면, 나의 주관이 끝나는 곳에 너의 객관이 있었고, 너의 주관이 향하는 곳에 너의 객관이 불을 밝혀주었어. 돌이켜 보면 우리는 둘이면서도 하나였고 하나이면서도 여럿이었어. 비록 내가 이룬 것은 작고 미약하지만 너를 거치면 분명한 형태로 작동하리라는 믿음은 그래서 정당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살아서 탐욕을 조장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어떤 권위와 독점적 시스템에도 저항할 거야.



그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너와 나의 이름을 따 ‘우영’이라 이름 붙였으며, 뇌의 작동원리에 가장 가까운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내장한 워드 프로세스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 바로 그것이야.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우영워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이 ‘우영워드’를 자유롭게 사용해 지식과 정보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며, 출생이라는 단 하나의 우연에 의해 비롯된 재산과 기회의 차별, 지리적 족쇄와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를 만끽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공생하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거야.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이란 탄생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계량적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따라서 인류에게 풍요라는 선물과 공멸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겨준 과학과 기술의 지적 윤리를 재설정하고, 노력에 합당한 이익을 보장하되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차별을 초래하고, 그 차별의 확장이 정의의 실현과 사회의 결속을 해칠 정도에 이르지 못하게 조절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지금 무너지고 있는 세계경제를 되살려 내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인류의 지향점은 결국 개인의 권리와 성장을 유인하는 자유가 먼저 치고 나가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각종 권리의 남용과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려는 욕망 및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탐욕을 적정선에서 제어하고, 정의의 관점에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평등의 확대에 있다고 믿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고, 신에 의한 창조이던 누적적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이던 간에 인간이 가장 발달한 두뇌를 갖게 된 근본적 이유이자 만물의 영장으로써의 의무라고 생각해. 루소의 말처럼 ‘덕성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제도가 덕성을 기’르는 것이고, 칸트의 말처럼 ‘오직 좋은 정치제제를 통해서만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도덕적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마찬가지로 너와 내가 극명하게 다른 장단점을 지닌 채 이 땅에 태어난 이유도 그런 인류의 지향점에 일조하라는 절대 명령(넌 이런 말을 가장 싫어하지만)에 의한 것이 아닐까? 재영아, 나는 너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었어. 너는 그런 나를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내가 이런 미치광이 같은 무모하고도 지난한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었고, 소정의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었던 것도 너라는 측정 불가능한 잠재력을 지닌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 어쩌면 나는 너라는 위대한 인간의 여러 분신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것을 분명하게 믿으며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허무맹랑하리만치 무모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 그 계획은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번째 단계는 너만 알고 있어야 해, 재영아.



하나 : ‘우영워드’의 목적과 구성

둘 : ‘우영워드’의 확산을 로드맵과 타임스케줄

셋 : 최후의 선택 또는 유일한 보험



재영은 그 뒤로 한참이나 이어진 형의 계획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도, 그 준비의 철저함과 과정에 대한 담대함, 결과에 대한 치밀한 예측과 확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세부 계획이 하나하나 실현될 때마다 더욱 커질 것이며 결코 줄어들 이유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다는 태초 이래로 그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여전히 넉넉하게 남아서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형이 준 힌트에 따라 박성수 교수와 많이 친해졌어. 형의 예상대로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야. 당연히 정의롭고 진실해. 그리고 또 한 명의 기인, 형이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던 현우씨도 만났어. 그에게 형의 계획을 얘기할 날이 곧 올 거야. 헌데 형, 목표를 이루려면 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내가 꿈꿔왔던 일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아. 형, 이해해줄 수 있지? 형의 계획에서 많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재영은 액자 속의 형에게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며 계획으로부터 잠시 동안이나마 이탈(돌아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목표에 대해 간곡한 이해를 구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남은 자에게 주어진 일이고 구속이어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보였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에(재영은 그렇게 믿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일체의 꾸밈과 가감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망자의 혼령처럼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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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5.08.02 06:58 신고

    노을이에겐..다소 어렵네요.ㅎㅎ
    그래도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휴일되세요.

  2. 참교육 2015.08.02 14:04 신고

    우영워드.. 시작할 때 지금까지 줄거리를 소개 해 주시면....?

    • 늙은도령 2015.08.02 18:33 신고

      한 번 신경을 써 볼게요.
      많은 분이 읽으면 그럴 기분도 나겠는데....

  3. singenv 2015.08.04 00:36 신고

    읽기가 만만치 않네요~ ㅋ

    • 늙은도령 2015.08.04 00:46 신고

      네,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직 퇴고를 거치지 않는 내용이라 많이 고쳐야 합니다.
      그럴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늘 경계에 있었어. 이제는 선을 넘을 수 있을까? 간절하게 바라면 변화는 가능한 것일까?’



잠시 상념에 빠졌던 재영은 형의 방으로 건너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형을 살펴봤다. 그는 뼈만 앙상한 채 온몸에 온갖 의료장비를 달고 있는 형을 보는 일이란 언제나 가슴 먹먹한 아픔이었고, 한 인간에 대한 존재의 가치와 실존의 처절함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자 그 자체로 너무나 힘겨운 삶에의 투쟁이었다.



‘형은 어때? 간절히 원하면 형이 꿈꾸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이루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순간순간이 생존에의 투쟁인 형의 고통이 최소한의 결실이라도 맺을까?’



재영은 천형의 불치병이 가져다 준 그 끝 모를 고통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형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없이 안타까웠다.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은 형제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렇게도 튼튼한 육체를 갖고 태어났거늘, 형은 어찌 저렇게도 철저하게 무력한 육체를 갖고 태어났단 말인가? 재영은 도무지 실현 불가능할 법한 잔인한 확률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요즘 들어 너무 많은 시간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건강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형이 걱정됐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재영은 말없이 지켜볼 뿐 특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잠든 형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내려다 본 재영은 의료장비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다음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형은 내일 아침까지 깨어나지 않을 테니 재영은 그 사이에 밀린 일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 필생의 숙원사업을 진행시켜야 했다. 그는 노트북을 부팅해 회사 내부 망에 접속해 새로운 기사가 올라와 있는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 중 참고해야 할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기사는 없었다. 따라서 당장 해야 할 밀린 일들도 없었다. 재영은 노트북 옆에 놓여 있는 갤럭시S의 전원을 눌러 모든 사회와 통하는 디지털 광장인 액정화면을 띄웠다. 부재중 통화가 무려 17통이었다. 누군가 문명의 힘을 빌려 자신을 불렀을 연속적인 소리나 아우성들. 디지털 정보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나와 다른 이들의 소통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졌다.



‘미친 듯이 진동했겠구나.’



재영은 코끝을 찡그리며 부재중 통화 내역을 들여다보았다. 팀장에게서 온 것이 세 통이나 되었다. 세 번째 것이 한 시간 전인, 저녁 10시에 온 것이었다.



‘엄청 잔소리 듣겠군. 그나저나, 그제 보고한 취재기획안 때문일 텐데?’



재영은 커서를 팀장의 부재중 통화에 맞춘 후 통화버튼을 누르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보수적 관점의 박 팀장은 취재기획안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그와 통화하기 전에 취재의 논리와 타당성을 강화할 무엇이 필요했다. 재영은 진보적 성향이 강한 정현 선배를 떠올렸다. 이번 기획취재안도 사실상 그녀가 축적해온 자료와, 함께 한 취재 경험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선배와 통화해보자. 박 팀장이라면 선배에게 전화했을 거야. 뭐라 했는지 그것부터 들어보자.’



재영은 부재중 통화 중에서 정현 선배의 번호를 선택했다. 그녀 역시 3번이나 자신과의 통화를 시도했었다. 사실 재영이 세 번씩이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영원히 그와 통화하지 않겠다는 뜻이거나, 자신이 죽었다는 의미였다. 팀장이나 그녀가 3번 이상 재영과의 통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재영은 정현 선배가 전화를 받기 전에 노트북 화면에 취재기획안을 띄웠다.



<거대 언론, 지배를 꿈꾸다>



정현은 모니터에 띄어놓은 취재기획안을 읽고 또 읽었다. 재영이 담당 팀장에게 제출하기 전에 자신에게 보내준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M방송국에 입사한 이래, 이처럼 공격적이고 방대하며 무모한 취재기획안을 본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미친 취재기획안이었다. 비록 재영이 기자로써의 본능이 출중하고 팩트 이면에 놓인 진실을 파헤치는데 탁월한 능력과 끈기, 취재의 집요함과 남다른 용기를 지녔다 해도 이것은 기름을 이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웃사이더적인 성향이 강해 깨어서 혼돈은 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안에 내재한 자유와 질서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자폭하겠다는 거야, 뭐야?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역시 이놈에겐 한 번의 일탈이, 일탈 중 최고의 효과를 갖는 섹스가 필요해. 상대가 나면 좋고.’



정현은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해 여기까지 오게 된 재영이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방송국에 입사한 지난 13년 동안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것도 봤고, 권좌에 오른 모든 것을 다 아는 대통령이 낙하산 사장(푸른색 기와를 두른 구중궁궐에 끌려가 조인트도 당했다는 황당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에 대해 악의적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를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 그래서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의 자금을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조직을 폄하한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타의 모범이 된 천하의 대인배)을 내려, 관철시키는 것도 지켜보았다. 게다가 (온갖 욕을 먹는 자리에 자신을 임명해 수명을 늘려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대통령이나 4년 차에 이르면 당연히 빠져드는 레임덕을 막겠다고 결연한 의지로 내부 조직과 인사를 권력의 취향대로 만들어놓는 것도 지켜보았다. 최근에 들어선 언론이기를 포기한 듯한 행태도 남발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권력을 향한, 그 권력이 바뀌면 다시 차를 갈아탈 기회주의적 일렬종대! 이 상태라면 낙하산 사장의 연임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할렐루야!’



물론 이념을 달리 하는 대통령이 바뀌면 국가의 중심이 그들에게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국영 방송이 아니라도, 국민 모두의 공적 재산인 주파수를 할당받은 방송국이라면 일정 이념에 경도되거나 자사이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거대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막기 위해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반대 논리로 도배하는 행태도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태란 해도 너무해!’



정현은 한 국가의 언론과 방송의 80% 이상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현대국가에서 더 위험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도 모자라 보도전문 방송사 사장까지 낙하산으로 채워진 현재의 상황은 80년대 초의 5공 시절을 방불케 했다. 인류는 다양함을 존중하고 자유의 확장과 함께, 복지증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평등의 확대를 위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분투해 왔다. 인류의 지향점이 거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 게다가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민주주의란 견제와 균형 속에서 꽃을 피우며, 소수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며, 참여와 여론 형성(이미 형성된 여론이란 없다. 실제로 여론 조사에 사용되는 질문에 따라 여론의 향방과 내용이 변하기 때문이다. 즉, 여론이란 한 개인이 오랜 기간 동안 습득한 지식이나 토론, 논쟁, 사고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의견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간 동안의 사회 현상에 대해 그저 “예”나 “아니오”로 묻는 전화조사 방식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응답자의 내적 의견에 대해 알아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여론 조사에 사용된 질문을 통해 여론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숱하게 조작된다. 숫자가 객관적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에 기반해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한 통계학은 과학이나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의학, 법률, 언론, 종교 심지어는 방송 언어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을 통해 투표에 선행하고 (칼 포퍼의 주장처럼) 국민에 의해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보다 국민에 의해 잘못된 지도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현은 그런 신념으로 13년을 취재하고 방송했다. 언론에 몸담은 이상 자신이 바라봐야 할 대상이란 오직 진실과 정의, 그래서 시청자인 국민밖에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아니 그 이상으로 실천했다. 하지만 낙하산 사장이 조직을 장악한 이후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언론으로써의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일들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내세우는 논리라는 것이 시청률 부진이고 언론이 지켜야 할 균형 감각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이익이 최우선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광고주와 후원사가 원하는 것이라면 시청률도 필요 없다며 프로그램 편성도 손바닥 뒤집듯 제멋대로 칼질하니, 이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정권에 불리한 기사는 아예 내보내지도 않고,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들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니.. 열심히 취재하면 뭐해, 방송될 가능성도 없는데?’

“염병할 새끼들! 최소한의 기회라도, 언론이면 언론다운 취재기준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 아니야? 그저 선정성 높고 날로 먹는 것만 낚아오라니! 개만도 못한 새끼들!”



정현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힘들었다. 그렇다, 진실과 정의라 해도 기회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지 않은가? 신은 주사위 노름을 하지 않는다며 섭리의 절대성을 주장한다고 해도 진실과 정의에게 어떤 무대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자신을 비롯한 기자와 PD들에게 더 이상 무대란 주어지지 않았고, 급기야 보복성 인사 조치로 연예본부로 발령 나지 않았는가? 현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사실을 밝힌다 한들 그것이 시대정신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권이 바뀐다 해도 달라질 보장도 없었다. 다음 정권이라고 자살한 전임 대통령과 비슷하거나 현 대통령과 다를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권력이란 무엇이라도 변형시켜 타락 시킨다. 지금까지 이런 권력의 속성에서 벗어나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현대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수많은 이익들의 경연장이자 집합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더 희망이 없어 보였다. 정현은 그렇게 지쳐 갔고 피로가 쌓였으며 다시 충전해 투쟁할 여력조차 없을 만큼 방전되기에 이르렀다.



‘이건 유서야. 기자가 언론을 향해 비수를 꽂겠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절대 불가능해.’



정현은 초조한 마음에 한 발 떨어져서 취재기획안을 들여다보았다. 재영을 아끼는 편향성 때문에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면 냉정한 눈으로 취재기획안을 볼 필요가 있었다. 누구나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고조되면 이성이 자리를 내주고 꼬리를 감추기 마련인데, 하물며 아웃사이더적 경향이 강한 재영이라면 말해 무엇 하랴?



‘이런다고 달라질까?’



정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객관적이 아니라 아예 주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번 시도는 일방적인 싸움도 되지 않을 터였다. 국지전도 치르지 못할 전력으로 전면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철저히 분리된 채 오직 죽창만 들고 있는 난쟁이와 첨단무기로 무장한 거인이 싸움을 벌인다면, 결과야 뻔하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은 낙하산 사장이 조직을 완전히 장악해 관료주의화 됐고 극도로 상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전통의 노조마저 무력해진 상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재영의 취재기획안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폐기 통보를 받은 꼴이었다. 지난 4년에 걸친 방송국의 이익집단화와 그것에 무력했던 직원들의 열패감이 그것을 증명했다. 차라리 박 팀장의 선에서 깨지면, 그것이 베스트라는 판단이 들 정도로 정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정권이 바뀌는 게 확실하다 해도, 이건 너무나 큰 싸움이야. 이것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



정현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생각은 재영의 의도에서 점점 뒤로 물러났다. 그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뒷걸음질이란 자신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였고 그래서 어색했지만 빌어먹을 것이 빨라지는 속도에 맞춰 생각의 균형마저 제대로 유지됐다. 정현은 자신을 향한 자책과 변명을 거기서 끝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은 기자로써의 신념보다 취재의 결과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키워온 신념에 반하는, 주와 부가 뒤바뀐 행태이자 타협이었고 이제는 화석화된 무기력한 생각이었다. 



특히 연예본부로 발령이 나기 전의 몇 개월 동안에는 재영과 한 팀이 되어 취재를 나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모습에 깜작 놀라곤 했다. 정현이 느끼는 자책과 혼란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갔다. 그 과정에서 의식 저 밑에 꾹꾹 눌러두었던 현실의 높은 벽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는 신념이 자신에 대한 것인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것인지 헷갈렸지만 재영의 취재기획안에서 점점 물러날수록, 그 속도와 균형이 완전한 협력을 이룰수록 차마 자신에게 하지 못했던 마지막 질문에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나는 그만큼 깨끗했을까?’



그녀가 기자로써 겪었던 지금까지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익을 넘어서는 이념은 없다고. 역사와 이데올로기는 벌써 종언을 고했고, 권력은 거대 금융자본과 초국적기업 및 거대 언론을 거쳐야 실현될 수 있다고. 서로 견제해야 할 네 개의 거대 세력이 이룩한 단단한 카르텔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를 다 까발리겠다는 이런 황당무계한 취재기획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이 이에 이르자, 정현이 이번에는 분명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진실과 정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재영의 취재기획안이 실현불가능하다는 판결을 확정하는 중에 낮 익은 음악이 청각을 간질였다. 충전 중인 아이폰이 마치 생명체처럼 스스로 빛을 발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과 자신의 연결은 그렇게 작동했다. 



정현은 선명한 액정화면에 떠오른 전화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친 기획자, 매력이 넘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후배, 어떤 특별한 일탈이 없으면 스스로 정한 울퉁불퉁한 운명의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려갈 남자, 그래서 한 번은 꼭 진탕하게 뒹굴고 싶은 남자, 천형의 병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죽었다고 하지만 형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자학적인 아웃사이더, 재영을 나타내는 11자리의 숫자가 두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정현은 잠시 망설이다 갤럭시S를 집어 들어 천천히 귀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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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에는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ㅡ 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 중에서




어쩌면 나는 깨어나지 않는 잠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용이 죽음과 같아서, 영원히 빛과 어둠 사이 갇힌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설명하고 그것과 투쟁하는, 숱한 몽상가들이 꿈꿨던 그 지겨운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이성의 힘을 믿었기에 물질의 과잉 속에서도 투명한 질서와 자율이 있으리라 믿었다. 탐욕의 자본주의 하에서 이성의 가치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고투를 마다할 수 없었지만, 그 끝에는 관대한 희망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로렌스가 그러했듯 밤에 꿔야 했던 꿈을 낮에 꿨는지도 모른다. 밤에 꾸는 꿈은 아침에 일어나면 초라해지지만 낮에 꾸는 꿈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 마련이며, 언제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어떤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정신은 감각의 부속물이며 감각이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어내고 정신이 일보 전진할 때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보다 먼 모험, 보다 깊은 고난, 보다 심한 고통으로 빠져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렌스만큼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한 나는, 이성이 행동을 지배하고 영혼이 육신을 고양하는 어설픈 지성의 테두리에서 서성거렸다. 세상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용기가 부족했기에 나는 움직이기 전에 결정하지 못했다. 문제는 늘 거기서 발생했다.



로렌스의 경험처럼, 나의 시작도 어느 수정처럼 맑은 오월의 아침(아니 오후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에 일어났다. 지난밤의 폭우가 만들어낸 세상 첫날 같은 햇빛에 눈을 떴지만, 밤새 퍼 마신 술 때문에 이성은 숙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불 속을 뒹굴고 있었다. 육체는 아직 정신에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질서정연한 사고가 배제된 그 순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딪쳐왔다. 



만개한 오감은 만물의 속삭임, 색체와 향기, 숨결과 미세한 떨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알코올의 찌꺼기와 잠의 잔재, 정신의 부재가 만들어낸 현실과 비현실이 어디쯤. 그것은 인위적 해석과 성향이 배제된 본질의 세계였다. 거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창조의 말도, 숱한 우연으로 가득 찬 거대한 섭리와 일관된 진화의 논리가 수십 억 년에 이르는 거대한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작용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세조정에 슬쩍 끼어든 ‘눈먼 시계공’의 간섭도 필요하지 않았다. 



만물은 아름답거나 초라하고 복잡하거나 단순했다. 날것 그대로의 세상에선 모든 것이 투명해 어떤 꾸밈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관성의 법칙도, 거대한 거리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힘도, 나노 같은 극소의 공간에서 작동하는 양자역학의 에너지도, 질량불변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물리학 법칙마저도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시공을 뛰어넘어 내가 로렌스의 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아니면 로렌스가 내 몽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그 꿀맛 같은 몇 분(아니 몇 십 분, 몇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지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이나 본질의 차원을 얘기할 때는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투명한 질서만이 혼돈처럼 자유로운 곳.



재영은 로렌스적 경험이 현실의 옷자락에 닿는 순간, 칼끝이 살을 파고드는 벼락같은 통증을 느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위장이 쥐어짜듯 비틀어졌다. 역한 취기가 통증을 앞세워 맹렬하게 신경을 파고들었다. 그 위세에 눌려 만개한 오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였지만 고통마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으윽.”



지독한 갈증과 함께 위액이 역류할 듯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재영은 손을 뻗어 머리맡을 마구 뒤졌다. 가까스로 주전자가 손에 잡히자마자 재영은 입으로 가져와 있는 대로 쏟아 부었다. 미지근한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위장에 닿는 순간 묵직한 통증이 엄습했지만, 재영은 미간과 이마를 찌푸린 채 꾸역꾸역 물을 밀어 넣었다.



“꺼억.”



고개만 쳐든 채 급하게 마신 물 때문에 트림이 터져 나왔다. 어지간한 통증은 수장시켰지만 그 바람에 토할 것처럼 위장이 출렁거렸다. 재영은 힘겹게 몸을 뒤집어 물의 역류를 막았다. 도대체가 인간이란 과거의 고된 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족속이다!



“끅.”



재영은 다시 한 번 트림을 한 후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봤다.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억 속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두 눈에 어지러웠다. 다시 위장이 울렁거렸다.



‘제기랄!’



재영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간 위장의 상태를 다스렸다. 몇 가지 생각들이 뒤죽박죽 머리를 스쳤지만, 아직도 뚜렷한 잠의 잔재가 의식을 끌어내렸다. 재영은 물을 빨아들이는 마분지처럼 온몸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의식을 차단하는 스위치가 꺼지고, 잠을 불러오는 스위치가 켜졌다. 태고 이래로 반복돼온 빛과 어둠의 공전처럼, 두 개의 상태가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재영은 혼신을 다해 잠의 입구에 감각과 정신을 풀어놓았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생각을 버리면 오감이 깨어나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열리리라. 생명으로 충만한 그곳에서는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내가 벌이는 이 지루한 고투는 냇물을 거쳐 작은 강에라도 이를 수 있을까? 바다는 거대한 수면에 때 없는 파문을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자신의 품을 내어주려 할 것인가?



재영은 꿈꿨다, 손을 뻗으면 잡히는 주전자처럼 질서가 감각처럼 살아 있는 세상을. 생명의 회로에는 어떤 결함도 없기에 들여다보지 못할 실체도 파헤쳐야 할 이면의 진실도 없는 세상을. 만물의 소리와 숨결, 색체와 향기가 내는 것들이 일체의 사고가 배제된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한 세상을 꿈꿨다. 질서가 혼돈처럼 떠다니는, 어떤 여과장치도 정형화된 논리와 이념의 창도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그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세상을 향해 고뇌하고 투쟁하며 연대를 꿈꿨다.



하지만 진실은 항상 의식이 튀어나와 불굴의 노력으로 물질과 직관의 결과를 뒤집는 데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실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끊임없는 노력이, 끝없이 필요했다. 재영은 늘 거기서 멈칫거렸다. 이면에 자리한 채, 배후에서 작용하는 거대한 힘은 늘 그쯤에서 멈추라 경고했고 회유했으며 때로는 자신을 무자비하게 찍어 눌렀다. 재영은 그 압도적이며 일방적인 힘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모든 권력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그것은 지적생명체인 인류 탄생의 순간부터 구축되어 온 것이다. 그 압도적이며 가공할 실체 앞에서 한 명에 불과한 개인이 머뭇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순수한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매개체도 필요 없는, 어느 수정처럼 맑은 오월의 아침에 경험했던 그 몇 분의 무작위적인 빙의처럼.



재영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경험의 순수함 때문에 탄식했지만, 시대의 예언자와 몽상가들은 언제나 실제적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막에 들어가 육체를 핍박하고 물질을 멀리한 채 명상에 잠길 수 있었으나, 세상에 나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행위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다. 이성을 차갑게 유지했음에도, 명상과 고뇌의 양이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다 해도, 예언자가 본 것은 극도로 고양된 감정과 각성된 정신이 만들어낸 자기 체험적 영혼의 울림이었을 뿐이다. 그것은 신비한 천상의 경험으로 채색됐지만 시대를 바꿀 전능한 말도 거룩한 질서가 구축되는 그 어떤 역사의 현장도 증거하거나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성찰의 순간에 들었던 천상의 말에 압도돼 삶과 죽음과, 관계와 사랑의 본질에서도 벗어나 그들만의 언어와 성역에 머물렀다. 예언자는 지상의 가난과 천국의 보상만을 떠들고, 몽상가는 반복되는 이상의 혼란과 찬란한 패배의 기억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그들은 모호하게 말할 뿐,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오직 스스로 구축한 그들의 성서와 성전에서만 머물러 절대 다수의 희생과 복종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뿐, 의도된 분노와 탐욕에 의거한 ‘사탄의 맷돌’식 일탈을 조장했다.



신이 인간의 삶에서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이제 예언자와 몽상가는 지상에서의 완전한 퇴장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들을 모조리 경계의 변방으로 영구 추방시키거나, 아무튼 그들의 기억을 역사에서 삭제해서라도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완벽히 처단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화신인 ‘자기조정 시장’과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독재를 꿈꿨던 마르크스의 몰락처럼, 그들의 퇴장은 ‘속도의 파시즘’적인 진보의 역사에서 절대 다수의 희생과 죽음을 선동했던 얼치기 합리주의와 어설픈 휴머니즘의 패배로 기록돼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와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거대 언론, 지배를 꿈꾸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재영은 거대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분명 꿈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생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재영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둠은 다가갈수록 멀어졌고, 물러설수록 다가왔다. 감각과 이성은 초라한 방에 갇혀버린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희망이란 구석진 천장에 늘어져 있는 거미줄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세월의 무게 같아서 몇 점의 먼지에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일체의 사고가 배제된 오감은 물먹은 마분지처럼 아예 작동하지도 돌아오지도 않았다. 감각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란 이성의 체계에 갇혀 이미 죽어버린 경험으로 물컹물컹 흐느적거리거나 널브러져 있었다. 인류 대부분의 삶이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향한 무차별의 고투는 이렇게 이름 모를 공동묘지에 수장되거나 아무렇게나 매장돼 버렸다. 투명한 진실과 그 끝에 서 있는 초라한 희망, 재영이 붙들 수 있는 것은 그런 주변적 요소의 허탈함이 거의 전부였다.



그래, 언제나 희망이 문제였다. 희망은 늘 존재했고 단 1퍼센트만으로도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1%의 가능성에라도 움직여야 한다면, 우리가 실패할 압도적인 확률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99%라는 일방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우리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1%의 독점은 99%의 희망에서 작동할 뿐, 희생의 대가가 무엇인지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지금부터 또 얼마나 많은 고투를 벌여야 우리는 99%의 희망이란 자인한 고통과 좌절, 일방적인 희생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재영은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너무나 힘들고 두려웠다.



신이란 또 무엇인가? 격랑 치는 파도 속에서 신에게 기도한 소수만이 빠져 죽지 않았다면 기도하고도 물에 빠져 죽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왜 성공한 종교들이란 이 세계에서 번창하는 세력들에게만 그렇게도 관대한 것일까? 가난과 핍박, 차별에 대한 보상을 다음 세상에서 받으라 하면서 기득권 세력에 유리한 말만 되풀이 하는 저의란 무엇인가? 끝 날에 믿는 모든 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천국에 이끌려 올려 진다면, 신의 법정에 어떤 세속의 부자를 세울 것이며 어떤 세속의 가난한 자에게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정의란 어디에 있으며 언제까지 원죄 없는 구원을 좇아야 이 질곡의 땅에서 평화로이 잠들 수 있단 말인가? 재영은 지독히 상업화하고 근본주의자들이 판치는 종교와 아직 제대로 된 공통의 준칙도 없는 사회와의 접촉이 두려웠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이, 종교와 사회의 만남은 그 무엇으로도 말릴 수 없는 지극히 휘발성 높고 마녀사냥적인 비방과 폭력이 난무하는 반인륜적이며 비이성적인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대 언론, 지배를 꿈꾸다>



점차 생각의 양이 늘어나자 재영은 슬슬 잠에서 빠져 나왔다. 대부분의 숙취는 가셨지만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12평 원룸에는 지독한 정적과 어둠만이 무성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재영은 더듬더듬 기어가 책상 위에 놓아둔 노트북 전원을 눌렀다. 독점적 권리를 나타내는 특유의 멜로디가 흐른 후, 태초 이래로 그 견고함을 유지해온 어둠이 디지털 전사의 빛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어둠이 사력을 다해 반격했지만, 얼마 안 가서 둘은 알맞은 선에서 싱겁게 타협해버렸다. 잠시 동안 빛과 어둠이 치열하게 다투는 잔재로 흔들리는 회색지대의 경계선을 말없이 응시하던 재영은 손깍지를 한 상태에서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으며 무슨 오래된 응어리를 토하듯 하품을 내뱉었다. 아직도 숙취의 나른함이 남아 있던 세포 하나하나에 서서히 산소가 공급되더니 잃었던 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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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추 2015.06.03 08:31 신고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시작하세요 ^^

  2. 참교육 2015.06.03 09:13 신고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데...
    잘 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6.03 13:28 신고

      그냥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직 완성되지도 탈고도 안한 소설이니까요.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동철과 재영이 2차를 하고 있을 때, 유리는 자신만의 성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감시하는 매니저도 돌아갔다. 친 여동생 같은 코디, 소영도 이층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유리는 잠시 하루의 일정을 되돌아봤다. 동철과의 만남은 언제나 삶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처음 본 재영이라는 기자도 느낌과 인상이 그녀의 맘에 들었다. 재영을 놀리기 위해 동철과 꾸민 연극도 성공적이었다. 요즘 들어 좀처럼 갖기 힘든 즐거운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였지?’



유리는 동철과의 만남조차 스쳐가는 소풍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스크린에서만 생생한,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것처럼 변해버렸다. 몇 시간도, 운이 좋으면 며칠 정도 그런 기분이 유지되기는 한다. 모차르트의 재능에 대한 살리에리의 광적인 질투를 다룬〈아마데우스〉를 보고 난 후의 며칠처럼. 지금은 단지 다음 스케줄까지 13시간 정도의 자유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최근에는 음반 활동을 접은 이후에도 몇 개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이제 통상적인 일이 됐다. 특별 MC를 맡은 프로그램과 대학 축제 5곳, 세 편의 CF 촬영도 남아 있었다.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데도 광고 섭외는 줄기차게 들어왔다. 다만 제품의 종류와 회사의 크기가 하락세에 접어든 자신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 같아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수액까지 다 빨리면 무엇이 남을까?’



유리는 겉옷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진 후 곧장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성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루 동안 쌓인 세속의 찌꺼기부터 씻어냈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시작됐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젠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의식이 됐다. 유리는 욕실로 걸어가는 동안 뱀이 허물을 벗듯 속옷과 브래지어, 팬티까지 벗어 던졌다. 그것은 거룩한 의식을 행하는 하나의 절차처럼 보였다.



‘아픔도 벗을 수만 있다면.’



유리는 곳곳에 배치된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타인처럼 응시했다. 그것은 단 1kg의 몸무게 증가도 허용치 않은 고문 장치와 다름없었다. 얇고 긴 팔과 D컵에 이르는 탄력적인 가슴과 군살 하나 없는 복부, 그 밑으로 길고 매끈한 두 다리는 기본적 본능마저 박탈당한 속박의 결과였다.



‘껍데기, 껍데기야!’



유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나신이 괴물처럼 보였다. 타인의 욕망과 그것이 필요한 광고주가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합작품. 그녀는 문득 거울 뒤편의 배경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몇 발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뒷걸음칠 때마다 거울 속의 자신이 샹들리에 불빛이 미치는 곳에서 벗어나 희미하게 테두리를 이루고 있는 지점에 이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치 뚜렷한 형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이 모호한 암흑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 같았다. 한 발만 더 물러나면 이 혼탁한 세상에서, 모든 거짓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체를 박탈당한 영혼보다 정신을 박탈당한 육체가 더 슬픈 일이라 믿고 있는 현재의 그녀로서는, 더더욱.



‘너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유미는 거울에 반사된 빛과 벽에 의해 차단된 어둠이 치열하게 다투는 지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무대 위에 올라서면 언제나 이런 느낌이 들었다, 퇴로가 차단된 감옥에 갇힌 듯한. 유리는 거울 속의 자신을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미끄러지듯, 그러나 거의 인지하기 힘든 미세한 거리의 변화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신비한 이질감도 완벽한 단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장면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실체가 뚜렷한 사건 같았다.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죽듯, 홀연히 거울 속의 자신이 사라졌다. 미처 사라지지 못한 한 가지 생각만 빛의 세계에 홀로 남겨둔 채.



‘시들어지듯 죽고 싶지 않아.’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간의 삶이란 세상의 중심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었다. 타인의 욕망과 주파수에 맞춰진 하루하루는 자신의 의지와 욕망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빛의 속도로 질주했다. 연예계란 0.1%도 안 되는 성공에 목맨 온갖 탐욕들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충돌하는 살육의 현장이자 대규모의 전쟁터였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욕망은 치명적인 대량살상 무기였다.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는.’



그녀가 경험한 연예계란 첨단 미디어와 절대 다수의 꿈과 욕망이 만들어낸,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경연장이자 죽음의 소용돌이였다. 일단 그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타인의 욕망이 투영된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뼈가 닳고 근육이 뒤틀리는 육체노동과 사랑마저 통제되는 시스템 속에 갇혀 버린 채 흘러간다. 엄청난 갈채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돈은, 평균적 노동의 보상 수준을 넘어섰기에 치명적인 마약과도 같았다. 하지만 재주는 사후에 부여된 속성이고 성공은 성공 자체가 강화되는 승자독식의 결과일 뿐이다. 표절과 상납의 고리는 부수적인 사안에 치부될 정도로 섞어 버렸거나 조작된 채.



“신데 fucking 렐라!”



유리는 소리쳤다. 날카로운 그 소리에 한 점 한 점 내려 그녀의 어깨 위에 쌓여 있던 어둠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튀어나갔다. 그녀의 외침은 벽에 부딪쳐 울부짖었지만 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pretty woman은 영화에서나 존재해. 난 껍데기에 불과해. 대중이 원하는 대로, 시스템이 주문하는 대로 움직이는 마네킹이었어. 난 어디에도 없었어.”



유리는 신들린 무당처럼 중얼거렸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대중의 욕망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결코 기다려주지도 않았고 작은 실수에도 살을 도려낼 듯 칼날을 들이댔다. 버려지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인기란 환영이고 돈이란 자신을 태워버리는 주문이자 연료였다. 대중의 기억은 수시로 변하는 기호처럼, 지속되지도 않았고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면을 몰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유리야, 넌 어떻게 할래?”



유리는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물었다. 동철의 말처럼, 대중은 거기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 즐길 권리는 있지만 스타를 이해하거나 보호해줄 의무란 없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연예인들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노예계약이나 장기간의 합숙훈련, 박탈된 보편적인 인권, 노래와 격렬한 춤은 물론 연기력과 토크 실력까지 요구하는 현실에서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진다. 용도폐기는 또 얼마나 자주 일어났던가?



“이대로 살 거야? 나머지 삶도 껍데기로 보낼 거야? 말해봐, 유리야?”



미처 따라오지 못해 빛의 세계에 남겨져 있던 생각마저 어둠으로 끌어들인 유리가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몇 개월째 뇌리를 떠나지 않는, 마음은 이미 답을 내렸지만 현실에 깊이 빠져 있는 두 발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하나의 생각. 스스로 묻고 저항하고, 단죄하고 용서하는 지난 1년 6개월간의 치열한 갈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느 한 순간, 유리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몸도 부르르 떨렸다. 두려움 이상의 공포와 종말처럼 다가오는 체념. 이 모든 것은 어떤 힘든 결정을 내릴 때 그녀가 드러내는 전형적인 연쇄반응이었다.



띠딩팅팅티잉딩! 띠딩팅팅티잉딩!



그 반응의 끝에서 누군가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끝이 안착하는 느낌의 특유의 멜로디가 들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연달아. 즉각적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이 시간에, 대체 어떤 작자야?”



유리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환하게 밝아진 스마트폰이 자신을 유혹했지만 그녀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1년 6개월이나 끌어온 생각을 실행하기로 결정한 순간, 우연 또는 필연처럼 전해져 온 문자메시지가 불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장 샤워하러 들어가지 않은 것이, 오늘 따라 스마트폰을 꺼두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동철 오빠가 보낸 문자메시지일 거야. 오늘 맛있게 술 먹었다는, 뭐 그런 거.”



유리는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문자메시지로 자신을 찾는 사람을 동철로 단정함으로써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다. 그녀는 망설였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보낸 사람의 전화번호를 확인하지 말라고 내부의 누군가가, 어둠 저편에 숨어 있는 누군가가 연이어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 섬뜩한 느낌에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거울 속의 자신에게 10년 동안 유보했던 자유를 선물하고 싶었던 오직 한 발만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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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5시 2015.05.31 09:58 신고

    날씨가 너무 좋은 휴일이네요 ㅎ

  2. 참교육 2015.05.31 13:07 신고

    빨리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31 16:41 신고

      에고... 이거 다시 퇴고하고 완성하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리는데...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시작할 생각입니다.
      일단 7월달 첫 번째 모임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오프라인의 활동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하면서 그 다음을 고민할려고요.



동철이 ‘니뫼러의 고백’을 고백성사 하듯 암송했다. 거대 언론이 현재 권력과 자본에 밀착했을 때 나타나는 전체주의적 성향에 대해 일격을 가하려는 재영이 절대 모를 수 없는 글이었다.



“‘처음에 저항하라(Principiis obsta)’ 그리고 ‘결말을 생각하라(Finem respice).’ 니뫼러가 제시한 두 개의 원칙이 그 참혹한 경험에서 나왔죠.”

“그런가요? 하지만 사후약방문 아닌가요? 히틀러는 투표로 권좌에 올랐잖아요? 법에 의한 통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그가 아닌가요? 모든 독일인이 그를 선택하진 않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있었답니까? 아무튼 자기변명처럼 들리네요.”

“맞아요, 사후약방문이고 변명이 맞아요. 니뫼러처럼 저항정신이 투철한 사람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깨달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어요. 모든 것이 변하고 있을 때, 변화를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아요. 체제의 내부인으로써, 침묵했던 지식인으로써 자신의 무력함을 변호하고 싶었겠지만, 그의 말처럼 처음에 저항하지 않으면 어떤 결말도 생각할 수 없어요. 깨달았을 때는 늦어도 너무 늦었죠. 인간은 정말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족속인가 봐요?”

“제 생각도 같아요. 어쩔 때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만 악의 근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중에서도 배운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요. 지식인이라는 게 뭡니까? 권력 주변을 알짱거릴 뿐, 지식의 왕국에 머물러 초연한 척, 격려라고 하는 게 시국선언문 몇 쪽이란 말입니까? 배웠으면 돌려줘야죠. 지식이란 어느 누구의 전유물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동철의 눈에 적개심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고고한 척, 현실적 한계를 들먹이며, 체제의 수면 아래에서 시끄러울 뿐, 행동하거나 행동을 격려하지도 않는 이 땅의 지식인에 대한 비릿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재영도 그 점에선 의견을 같이 했지만 언론인으로써의 자괴감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 없었다.



“유구무언입니다.”

“아이고, 재영씨를 지칭한 거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제가 재영씨에게 얼마나 많이 배우고 있는데요. 좀 어려워서 그렇지, 큭.”



본성이 착해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동철이 손사래를 쳤다. 재영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국민이 인정하는 최고의 MC로써, 절대적 영향력의 소유자인 그는, 안타까울 만큼 거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재영은 그런 동철이 좋았다. 그는 동철이 전임 대통령에 대한 회한에서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나 보다 창조적인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한 잔 더 빨까요?”

“병나발도 좋습니다!”



재영과 동철은 사막에서 겨우 빠져 나온 사람처럼 소주를 들이켰다. 늘어나는 취기보다는 마음의 갈증이 더욱 컸다. 동철이 아예 글라스로 잔으로 갈아타자고 했다. 마다할 재영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안주는 싸늘하게 식어갔지만 빈 술병들은 테이블을 빼곡하게 채워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주인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연예인이라면 최소한 5가지 이상의 저 품질 고가의 안주는 기본 아닌가? 게다가 지금이 몇 시야, 소주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씨였으면 모를까? 아니 이제는 소주잔을 아예 글라스 잔으로 바꿔달라고? 이 화상들아, 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야! 제발 이익 짭짤한 안주 좀 시켜! 이런 주문들을 외는 주인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했다. 수리수리 마수리, 아부라카다부라!



“근데 재영씨, 도대체 뭘 먹었기에 그렇게도 아는 것이 많아요? 과학이면 과학,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이건 걸어 다니는 사전이 따로 없다니까? 검색도 필요 없겠어, 크큭.”



동철의 혀가 조금 꼬이기 시작했다. 주인은 두 병의 소주와 글라스 잔을 내려놓으며 더 시킬 안주 없느냐고 엄청(?) 우회해서 물었다. 그 마음을 알아챈 동철이 아예 메뉴판을 흔들었다. 알아서 갔다 달라는 얘기였다. 주인이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귀에 걸린 입의 잔영을 남기면서.



“사돈 남 말 하십니다. 동철씨도 만만치 않잖아요?”

“저야 여기저기서 동냥한 것에 불과한데요, 뭘?”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어요. 경험을 통해 스스로 얻은 지식이 진짜 아닙니까? 사실 플라톤 주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엄청나게! 도대체 전공이 뭐였습니까?”

“허허, 이거 참. 대학 때는 물리학과 생물학을, 편입해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기웃거렸죠. 대학원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남아 있는 게 없어요. 뇌 속에는 온통 말똥과 쓰레기뿐이에요.”



재영의 혀도 급격히 꼬여 들었다. 주방에서 지글지글 끓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게 전해져 왔다. 동철이 글라스 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재영의 눈에 입이 귀에 달린 주인의 잔영이 떠올랐다.





“엄청 공부하셨네요? 도대체 전공만 몇 개야? 어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근거리네. 근데, 플라톤 주름지대가 뭐에요? 성형수술 관련 용어인가요?”

“하하하! 성형 수술 용어라? 어떻게 보면 비슷하네요. 단순하고 정의하기 쉬운 것만 대상으로 삼고 복잡하고 가변적인 건 아예 무시하는 영역이 플라톤 주름지대니까. 다른 얼굴로 들어갔다 같은 얼굴로 나오는 성형외과도 일종의 플라톤 주름지대라 할 수 있겠네요. 죄다 김태희고 송혜교니..”

“김태희와 송혜교도 온다고? 이곳에? 언제?”



주방에서 미친 듯이 안주를 만들고 있던 주인이 쩌렁쩌렁한 소리로 물었다. 안주를 만들고 있는 상태에서 목을 길게 뺀 상태에서 홀을 향해 고개만 돌리니, 바동거리는 거북이가 따로 없다. 오십 줄에 접어든 주인의 두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고 얼굴 가득 기대감이 넘쳐난다. 수리수리 마수리, 아부라카다부라!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지는 법이다. 조금 전의 안주 사건이 이를 증명해주지 않는가? 주인은 기원하고 기원한다. 동방국 최고의 미녀, 김태희와 송혜교가 자신의 가계에 왕림해주길. 주시길. 주시길!



“크큭!. 귀는 밝아서. 신경 끄세요, 아저씨. 그 사람들이 이 시간에 여길 왜 와요? 그나저나 재영씨, 시대를 앞서가는 제 얼굴, 멋지지 않습니까? 요즘 대세는 못생긴, 아 그게 아니라 개성 있는 얼굴이 대세라는..”

“어련하시겠습니까? 견적 자체가 나오지 않을 만큼 대세는 대세지요, 하하하!”

“크큭. 그런가요? 우리 엄만 나 보고 잘 생겼다 하더구먼. 아, 그런데 플라톤 주름지대라? 허, 이거 참. 플라톤이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요 교수라고 알고 있었는데?”



소주가 반쯤 차 있는 글라스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철의 표정에 실망감이 완연했다. 그에게 플라톤은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았다. 재영도 글라스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동철에게 물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동철씨께, 플라톤이 최고의 철학자고 교수여야 하는?” 



꿀꺽꿀꺽. 재영이 글라스 잔에 가득 찬 소주를 맥주처럼 들이켰다. 그에 따라 이성을 잠식하는 취기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위장이 처음으로 거부의 반응을 전해왔다.



“있습니다, 있어요! 플라톤 주름지대니 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꺼억! 플라톤이 최고의 교수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있고말고요!”



동철도 취기가 급격히 올라오는지 말을 끝내는 소리의 톤이 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 말 속에는 진지함과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이 철철 넘쳐흘렀다. 재영은 취기에 급격히 무너지는 정신을 악착같이 붙들며 동철에게 물었다.



“뭡니까? 우리 동철씨를 괴롭히는 게 뭡니까? 플라톤, 그 사람! 자기 시대에만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이 시대 이곳까지 따라와 동철씨를 괴롭힘 답니까? 대체 뭡니까, 뭐에요”



플라톤이라면 질색하는 재영이 따지듯 물었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노예 찬성론자였으며, 이데아로부터의 모든 변화를 타락이라 주장해 인류의 발전을 제한했다. 게다가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활용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시켰으며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같은(실제 그는 공자처럼 당시의 권력자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랐다) 현자가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인류가 지향해야 할 유일한 이상향으로 정의했다. 일체의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 유토피아, 즉 완벽한 전체주의(히틀러의 나치, 왜국의 군국주의, 3대 세습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배체제를 구축한 조선국이 이에 속함)를 창시한 위대하면서도 위선적인 철학자였으니 재영으로써는 플라톤에 대해 탐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흔히 미국에 정착해 청빈한 삶과 지독한 노동, 다음 세대를 위한 저축을 통해 미국의 기초를 다진 청교도들을 뜻한다. 이들의 전통은 19세기 말까지 이어져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어냈다)의 정신적 선조도 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초기 기독교 신앙에 미친 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기에 칼뱅의 교리를 따른 아일랜드 계 백인 프로테스탄트들을 그의 사상적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후손이라 치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광활한 대지와 누구든 노력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천혜의 신대륙(잔혹하게 몰살된 인디언 입장에서 보면 구대륙)에 도착한 그들이 대륙의 원주민이자 자연과 더불어 살던 인디언들을 무참히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도, 신이 내린 천혜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유일한 선민(백인 우월주의에 전형이자 플라톤이 태생적으로 지배계급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인 자신들이 다스리는 게 신의 뜻이라는 의식에서 나왔다. 신대륙에 ‘언덕 위의 도시’를 구축하겠다는 그들은 자유와 함께 개인 및 기업의 이익 추구를 절대적 가치로 내세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단시일 내에 구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에 그들의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예외적 존재’로써의 신이 준 사명이라며 선제적 침공을 서슴지 않는 등, 영국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최악의 대통령이었던 부시가 소명의식 운운(실제는 석유 확보와 함께 당시 달러화를 대체할 듯한 기세를 보여주었던 유로화 결제를 막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만)하며 마치 십자군의 후예라도 되는 양, 이라크 등을 침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플라톤의 유토피아적 발상에서 이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체주의적 성향을 그 기저부터, 낱낱이 파악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복잡한 재영의 생각을 알 리 없는 동철이 플라톤에 대한 재영의 적개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꿈이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거예요. 플라톤처럼 끄윽. 최고의 학교를 만드는 게 제 필생의 꿈이거든요.”

“대안 학교요? 아, 그 얘기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동철씨, 어떤 대안 학교를 만드시려고?”

“20분 공부하고 40분 쉬는 그런 학교요. 10분 공부하고 50분 쉬어도 상관없지만. 교사는 가르치기보다 애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그런 학교요. 끅.”



재영은 동철의 표정에서 몽환적인, 그러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의 의지와 일관성이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20분 공부하고 40분 쉬는 것이었다. 가르치기보다 들어준다?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경쟁만 강요하는 기존의 교육제도에 대한 통쾌한 전복이 이것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비록 동철이 모델로 삼았던 플라톤은 자신이 세우려는 이상적인 학교가 아테네 자체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알았을 수도 있다. 칼 포퍼처럼, 나는 플라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므로).



‘동기의 순수성에서 보면 플라톤이 동철의 아래야.’



재영은 동철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그의 매력은 끝이 어디일까, 재영은 그것이 궁금했다. 



“저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을 최고의 가치라고 봐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전 이것이 영원불멸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꺼억.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것 하나면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전 그렇게 믿어요.”

“헌법에는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들어있지요.”

“재영씨가 중요시 여기는 헌법 조항은 무엇인데요? 기자라는 직업을 떠나서요?”

“헌법 119조 2항입니다.”



동철의 질문에 재영은 직각적으로 답했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뭔데요? 외우고 있다면 말해주세요.”

“좀 깁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너무 길지요?”

“길긴 기네요. 요즘 한참 회자되는 공정사회를 위한 대기업 때리기의 근거와 비슷하네요. 솔직히 전 잘 모르겠어요. 경제는 영 꽝이라. 하지만 힘없는 서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헌법이 규정한 ‘행복추구권’이라고 봐요. 나머지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해요.”

“그래서요?”

“전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상대를 짓밟아야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해요. 그냥 그 자체로 행복했으면 해요. 공부, 공부, 공부! 그렇게 올라서고 나도 딸꾹, 또 짓밟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돌려주고 싶어요, 행복을! 네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친구와 함께 가는 게 삶이라고! 딸꾹, 두려워하지 말고 사다리를 걷어차라고!”



열정 가득한 동철의 말에 재영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진심에서 흘러나온 울림이 너무나 맑고 고와서, 그 공명을 함께 하고 싶어서, 자신은 동철의 꿈을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동철씨, 일본이 나은 위대한 정치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현대정치사상과 행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헌법의 규정 배후에는, 표면의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무수한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축적되어온 노력의 흔적이 구불구불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다”고. 동철씨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나서 드리는 말입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뛰어난 인물이 나왔네요?”

“일본이란 나라, 절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실체적 진실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요. 정말 뭐 같지만.”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비관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공간이 제공되기만 하면 그들을 따라잡는 일도 멀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딸꾹! 제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이 밝은 웃음과 신명나는 놀이의 공간을 제공하는 날을 위해서예요. 그래서 저의 하루하루가 행복에 가까운 것 같아요, 딸꾹!”



재영은 술 때문에 딸꾹질을 하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하지 않는 동철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재영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동철의 꿈처럼 신명나는 것인지, 정말 자신은 그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너무나 오랫동안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본 결과 눈이 흐려지고 시야가 좁아진 것이 아닌지 갑자기 헷갈렸다. 무엇이 정의고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이란 말인가?



‘그리고 난 행복한가?’

절대! NEVER!



재영은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정했다. 누구나 자신이 변해가는 경우에는 그 누구도 변하지 않은 것이 불변의 진리라면, 플라톤 주름지대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자는 동철이 아니라 자신일지도 몰랐다. 미래로 통하는 길이 투명하고 꼭 질서정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성지에 이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여정이 나름대로의 가치와 행복을 갖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재영은 지난 3년 동안 그 사실을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는데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들, 설사 이룬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재영은 갑자기 두려웠다, 굳건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믿음에 미세하나마 균열이 가는 것이. 재영은 너무나 부러웠다, 이미 긴 순례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믿는 동철의 확신이.



“어, 근데? 재영씨, 왜 저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거예요? 저 남자가 싫다고 말했잖아요! 딸꾹. 저 여자 엄청 밝혀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크큭!”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재영은 그저 웃었다. 왜 웃느냐고 물으면, 웃음이 나와서 그랬다고. 웃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냐고?



“안주 대령이요. 어, 술도 몇 병 가져와야겠네? 김태희와 송혜교는 언제 오는 거야?”



불쑥 튀어나와 여러 개의 안주를 내려놓으며 상냥하게 묻는 주인의 말에, 재영도 웃고 동철도 웃었다.



“하하하하하!”

“크크크큭!”



영문을 모르는 주인만 눈알을 번뜩거렸다. 입술은 위 아래로, 삐죽 나오거나 샐쭉 들어갔다. 헌데 그 눈빛이 왠지 사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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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앨리스 2015.05.24 07:12 신고

    소설같은...같지않은듯 하면서도..종횡문진 하는 지적유희가 재미있고 감탄스럽습니다!
    현자들의 말씀은 의식수준에 따라 달리 해석 되기도 하는것 같아요^^

    • 늙은도령 2015.05.24 16:01 신고

      소설적 재미를 가미해야 하는데 탈고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
      시간이 되면 전체적인 퇴고를 해야 하고, 중단된 부분부터 다시 써야 하는데... 에고, 시간이 부족하네요.



사실 인간은 안경을 통해 육체적 한계를 물질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현미경의 발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유전자나 세포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신체 자체를 변형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적 이해가 더해지자 인간은 성형수술을 통해서라도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반영하는 ‘몸에 갇힌 사람들’로 변형되어 갔다. 신자유주의적인 거래와 관계를 위해 유리한 몸을 전해주지 못한 부모들은 성형수술과 피부 관리, 치아교정, 다리 교정 수술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물려주지 못하면 무능력한 부모로 낙인찍히거나 죄인처럼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화장은 아무리 많이 해도 결국은 드러나기 마련이니, 부모가 제공해야 할 기본사양에도 들지 못한다. 



요즘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 자신의 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상 증상과 극단적 부조화를 토로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추세는 더욱더 강화되고 수적으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인간으로써의 자신의 가치를 외적으로 드러나는 몸의 등급으로만 평가하는 공통적 경향을 갖고 있다. 그것이 사회가 만든 것이던,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이던 결국 그들은 아무리 신체를 뜯어고쳐도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다시 불안해지고 움츠러든다. 그런 비정상적 두려움은 거식증이나 구토 증상 같은 신경 병리학적 이상 현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TV와 인터넷을 둘러보라. 동방국 한양시의 도심을 걸어보라. 천편일률적인 유사 바비 인형들의 가공된 몸들을 신물 나도록 볼 수 있을 테니. 영혼과 육체의 불구자로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만 살아가는, 몸을 가혹한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시각문화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가짜 자아들의 아비규환적 절규들이 쉴 새 없이 들릴 테니.



물론 유리는 태생적으로 완벽한 몸을 물려받은 행운아 중의 행운아임에 분명하지만, 지금 의 유리가 되기까지 숱한 반복훈련을 통해 ‘거울뉴런’을 극도로 발달시킨 연기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 저절로 반응하도록 프로그램된 살아 있는 로봇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타고난 그대로의 유리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환상 속에서 그들의 바람대로 살아가야 하는 가상의 유리일 수도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극도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자폐아의 정반대에 서있는.



‘당신은 행복한가?’



재영은 물끄러미 유리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유리라는 사람은 같이 있는 사람에게 유대감이나 행복을 전해주는 옥시토신이나 세로토닌이 넘쳐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무장해제 되지 않고는 못 버틸 정도였으니 재영이라고 해서 어찌 다를 것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지금 극도의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는 중이 아닌가? 누군가의 위로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오지 않았던가? 재영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타인을 향해 좀처럼 열리지 않는 재영의 마음의 문이 유리라는 여인에 의해 대책도 없이 활짝 열렸다. 재영은 경국지색의 절대미인 앞에서는 이성의 차가움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절감했다. 



물론 문을 향해 걸어갈지, 문턱을 넘을지는 재영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문을 열 때 발생한 신선한 바람이 마음의 수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했고, 그것은 평생을 통해 다시 받기 힘든 최고의 보너스였다. 아직 유리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LP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처럼 흔들리고 삐걱거렸지만, 이 정도라면 첫 만남치곤 상당한 수확이었다. 재영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을 만났고, 상황에 빠져들었으며, 자연스럽게 술에 취해 들어갔다.



사뿐사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안에서만 밖이 보이는 반투명한 창문 너머에는 우주의 암흑물질처럼 도시의 어둠을 이루는 검은 물질이 자신의 시야에 걸리는 모든 것들에 내리고 쌓였다. 테이블 위로는 빈 술병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갔다. 대화가 즐겁고, 견해와 관점이 때로는 달랐지만 술의 힘을 빌린 발작적인 웃음이 그들 사이에서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몇 번은 그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작은 술집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그럴 때면 술집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리와 동철에게 쏠렸다. 눈의 실핏줄들이 터질 듯한 그들은 TV와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는 두 사람을 힐끔힐끔 보던 것에서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인양, 굶주린 여우와 늑대처럼 동철(주로 마니아적 기질이 강한 아주 소수의 여자들)과 유리(평생 잡아보지 못한 삼팔광땡에 로얄스페이드플러쉬를 잡기라고 한 듯, 절대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모든 남자들, 심지어는 술집 주인과 종업원은 물론 60대로 보이는 주방장까지 방울 달린 놈들은 모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유리의 몸을 가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투명망토처럼 뚫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광이 지배를 철하는 모양이다.





촬영 스케줄 때문에 유리가 먼저 자리를 뜬 후 재영과 동철은 자리를 보다 은밀해서 자유롭고 저렴해서 부담스럽지 않은 곳으로 옮겨 본격적인 2차 라운드로 돌입했다. 거대한 첨단 도시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후줄근한 냄새와 욕망의 쓰레기로 가려진 광화문의 뒷골목, 그 인적 없는 비현실의 공간에서 둘은 그들만의 여행 속으로 빠져들었다. 재영은 입사 이후 처음으로 써보는 연차 덕분에 꼬박 하루 반의 여유가 생겼고 동철도 내일(자정을 넘었으니 오늘이다) 저녁까지 촬영과 행사 스케줄이 없어 시간적으로 쫓기지 않았다. 세상 첫 날에도 있었고 종말의 날에도 존재할, 새벽2시에 기차를 갈아 탄 재영과 동철은 그들이 당면한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재영이 오늘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던 『죽도록 즐기기』란 중간 역은 이미 한 시간 전에 지났다. ‘성찰없는 미디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이라고 해도 둘의 대화에 끼어들 처지는 되지 못했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전임 대통령께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진 미디어가 이렇게 무서운 흉기가 될 줄 몰랐어요. 총보다 왜곡된 펜이 더 무섭고 진실보다 악의에 찬 허구가 더 단단해 보였어요. 옹호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침묵했고 저도, 저마저도.. 제가 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분은 어떠했겠어요?”



동철은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에 갇힌 사람처럼 재영에게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못한 회한으로 가득했다.



“저도 거기에 한 몫 했으니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지요. 이 땅에서 권위주의라는 치명적인 악령을 걷어 가신 분이었는데, 그땐 왜 몰랐을까요?”



동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자책감을 갖고 있던 재영이 동철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촛불이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을 때, 전임 대통령에 대한 엄청난 추모 행렬이 이어졌을 때, 그 핵심에 자리한 시민들의 열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을 터였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그분의 꿈이셨죠. 이젠 절대 놓칠 수 없는 제 삶의 목표가 됐지만.”

“우리 시대의 사명이기도 하고요. 역사의 퇴행은 5년만으로도 너무 넘쳐요. 압축성장의 신화까지는 모르겠지만, 왜제의 잔재에서 나온 변종의 산업화 세력들은 이제 퇴장할 때가 됐어요. 애국심에 삶의 대부분을 바친 베이비 붐 세대들도 퇴장하는 마당에, 유신의 악령에서 튀어나온 듯한 자들의 꼴들이란!”

“정말 추접해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 추켜세우는 걸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권을 팔아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은 또 어떻구요? 당시의 국민들이 오죽했으면 그를 몰아냈겠어요. 재임시절에 한 일이란.. 어휴, 생각하기도 싫어요. 반칙과 특권이 판치는 세상은 지난 60년으로도 족해요. 이젠 변해야 해요.”

“변해야죠. 변하게 만들어야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야죠. 어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동철씨가 확실하게 총대 매시지요? 동철씨 같은 분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들에게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디어 시대이니, 어때요?”



재영이 동철의 의중을 타진했다. 비록 가벼운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거기에는 그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연예인이 움직인다면 그 위력과 폭발력은 수천수만 개의 기사보다 월등한 것은 이미 검증을 마친 상태가 아닌가.



“총대까지 매지는 못하겠지만, 하려고요. 제 능력이 닿는 지점까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생각이에요.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무려 14명이나 자살한 호산자동차 해고자들, 쥐꼬리만 한 장학금에 비해 미친 듯이 오르기만 했던 등록금에 울부짖는 대학생들, 마음으로 따라간 바람버스의 시민들과 함께 할 생각이에요. 대신, 총이 아니라 말로써 하려고요.”



동철이 솜씨 있게 받아 쳤다. 농담을 가장한 재영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투쟁에 대한 확실한 의지도 보였다. 정치란 결국 말이고, 참여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질 때 오히려 완벽했다. 과거의 기억은 무력했지만 미래의 모습은 양보할 수 없기에 현재의 의지가 중요했다. 그렇게 뜻이 통하고 잔에는 술이 담겨 있으며, 마음이 간절하니 재영과 동철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잔을 비웠다. 차가운 소주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의식의 수면을 떠도는 기억의 초대였고, 파문을 일으켰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못하는 번뇌와 망각의 손짓이었다.



“이젠 그분을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철은 재영과 자신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지독할 정도로 자신에 엄격했던 원칙주의자이자 치열한 행동가였던 전임 대통령을 떠올렸다. 동철은 또다시 그분이 몸을 던진 언덕에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봤다. 작은 돌들도 구별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 그분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을 때 찰나의 시간이라도 주어졌을까? 영원히 건널 수 없는 생과 사의 경계가 그 사이에 있었고 자신은 지켜드리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악마와의 거래도 마다하지 않을 텐데, 나는 파우스트가 될 수 없고 떠난 사람은 다 운명이라 한다.



“동철씨, 남은 자의 역할에 집중합시다. 그분을 보내드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분도.. ”



재영은 소탈하면서도 원칙주의자였던 전임 대통령이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계몽주의적 태도, 현 대통령의 회전문 인사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코드 인사(대부분이 깨끗했지만 이념적 편향성이 강했던), 원했건 원치 않았던 간에 이념 갈등에 따른 분열의 강화와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무관심의 확대, 복지제도를 확대시켰으나 부의 양극화라는 대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책적 실수, 이익집단의 노비로 누더기가 돼 버린 비정규직법과 미국에 종속되기 쉬운 한미FTA 체결 등의 정책적 실패나 보완책이 미흡했던 것도 많았다는 사실을 얘기하려다 그냥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 땅에서 권위주의의 잔재를 상당 부분 쓸어낸 것만으로도 위대한 전임 대통령이 비참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한없는 회한에 잠겨 있는 동철에게 그런 지적들은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처럼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재영은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동철이 안쓰럽게 보였다. 그가 현실 참여의 폭을 넓히리라 마음먹은 것도, 그 8~9할은 전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기인했을 것이다.



“알아요, 알고말고요. 그분이 떠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니뫼러의 고백’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재영씨도 알겠지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습격했을 때, 나는 다소 불안해졌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어 나치는 사회주의자를 공격했다. 나의 불안은 조금 더 커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어 학교가, 신문이, 유태인이, 이런 식으로 잇달아 공격대상이 늘어났으며, 그때마다 나의 불안은 커졌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 나치는 교회를 공격했다. 그런데 나는 그야말로 교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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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요일. 2015.05.19 16:25 신고

    좋은 내용의 글 잘보고 갑니다

  2. 김미진 2015.05.19 17:47 신고

    얼마전에 "거울뉴런"을 배웠는데.....여기서 읽어 보게 되다니 정말
    작가님은 최첨단 이십니다^^

    • 늙은도령 2015.05.19 20:21 신고

      뇌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했었던 것을 사용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동철이 나서겠지? 유리에게 뭔가 물어볼 거야.’



아니나 다를까, 동철이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야, 요즘 공개 오디션 프로가 대세를 이루는 건 어떻게 생각해?”

“재미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다고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까지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을 필요까지 있을까? 각종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개별 방송국 직원을 뽑는데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게 정당한 것일까?”

“맞아! 그건 좀 너무 해. 나처럼 MC 자질이 뛰어난 사람도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니까! 오빠 말처럼 그런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하면 믿음이 가지 않더라.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몰라? 단지 싸다는 이유로 그들을 오락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건 자충수 아니야? 방송국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그렇게까지 근시안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니까.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어. 대체 아나운서까지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 이유가 뭐에요, 기자님?”



유리가 처음으로 진정성 있는 질문을 재영에게 던졌다. 그것은 미리 연출되지 않은, 그래서 각본에 나오지 않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방향도 적절했다. 리얼한 상황이 던져주는 묘한 긴장감, 재영은 유리의 질문이 조성한 상황이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지금부터가 『죽도록 즐기기』의 주제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동철이 나설 것이기에 그냥 웃으며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날의 미디어가 삶의 엔터테인먼트 화를 지향하기 때문이야. 쾌락에 종속되면 반응이 단순화 되고, 그럴수록 쾌락과 반응이 표준화 돼. 보통 표준화가 되면 쾌락을 만들어내는 생산 원가가 줄고 그만큼 실패의 위험성도 줄어들어. 이를 테면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야. 방송사가 무대만 제공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가 진행되니 방송사만 노 나는 거지. 시청률이 낮더라도 방송사는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되고, 만에 하나 시청자를 사로잡는 도전자라도 나오면 그것이 곧 시청률에 반영돼 광고단가가 올라갈 테고, 결국 투자 대비 수입이 짭짤하지 않겠어? 시청률이 낮아도 어차피 뽑아야 할 아나운서일 테니, 능력도 검증하고 시청자 눈에 익숙하게 만들 수도 있어 현장 투입이 단축될 것이고, 그만큼 아나운서 신입생들에 대한 교육비용이 절약되니 방송사 입장에선 손해날 이유가 없지 않겠어? 우리는 그렇게 값싸고 질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에 길들여져 가는 거야. 더 큰 문제는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연할수록 자신이 외모가 되고, 노래방을 뻔질 나게 드나들다보니 노래도 제법 부르는 것 같고, 클럽에 가면 죽돌이·죽순이들의 눈길도 사로잡을 정도로 춤도 되고, 학벌은 떨어지고, 집에 돈은 좀 있고, 인생이란 즐기는 것이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재주를 과대평가하는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생산 현장이나 꾸준한 노력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는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화된다는 거야. 국가의 미래는 고사하고 개인의 미래마저 종적을 감추게 되지. 즐길 수 있는 돈이나 젊음이 소진되면, 결국 그들은 도시의 밤거리를 떠도는 루저들로 전락하게 돼. 텔레비전이, 삶의 엔터테인먼트화가 만들어내는 세상이란 모두 허상일 뿐이야,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동철은 현재의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완벽한 통찰을 갖고 있었다. 일반 연예인들과는 달리 생각의 깊이가 만만치 않았고 현상의 가려진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도 출중했다. 다만 한 가지 방송국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목매는 이유의 본질, 즉 이익 창출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수익은 광고와 협찬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디션에 참가하려는 수백 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의 ARS신청과 시청자들의 문자메시지에서 나온다. 이는 통신사들이 돈을 버는 구조의 핵심인데, ARS와 문자메시지는 그 원가 면에서 들여다보면 초기 투자를 빼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즉, 일정 횟수의 사용이 넘어간 순간부터 거기에 매겨지는 통신요금이 전부 이익이 되는 것이다. ARS와 문자메시지 한 건 당 평균적으로 100원씩만 남겨도 신청자와 투표자가 수백 만 명, 연간으로 치면 수천 만 명에 이르니 총이익은 거의 수십 억 원에서 수백 억 원에 이른다. 2억에서 최대 11억 원에 이르는 우승상금이야 이에 비하면 껌 값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방송국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그렇게 목매는 이유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뛰어난 가수들이 배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노래와 춤에 매달리니 뛰어난 가수들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런 쏠림현상 때문에 그만큼 타 분야에는 좋은 인재나 적당한 수준의 노동력은 물론,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경쟁력 높은 경험과 기술의 전수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이는 산업구조의 왜곡을 초래하고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최후에는 개인과 기업 및 국가 전체의 생산성마저 떨어뜨려 저임금 외국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같은 최악의 결과로 귀결된다. 이것이 바로 TV와 정보통신이 가져다 준 마법이며 마이다스의 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또는 미디어의 강력한 유혹에 넘어가 가난과 차별의 질곡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물론 미디어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꿰뚫어 보면서도 정상의 자리에 있는 동철과 미디어의 최대 수혜자인 유리는 수천 만분의 일에 속하는 예외 중의 예외이지만.



“아, 그렇구나. 그래서 방송국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그렇게 매달리는 거구나! 오빠, 제법인데? 역시 얼굴이 못 생기면 머리는 좋은 가봐? 안 그래요, 기자님?”



유리가 잘나가다 또 다시 옆으로 세며 재영에게 동철을 흉보기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허허.. 그런 가요?”

“그렇기는 뭐가 그래요! 아무튼 잘생긴 것들이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특히 조각미남이니 초콜릿복근이니 간지 난다는 놈들은 모든 평범한 남자들의 적이라니까!”



재영이 본의 아니게 유리의 요청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 동철이 즉각적으로 발끈했다. 그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의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하긴, 원래 잘생겼거나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갈수록 잘생겨지는 것들이 즐비한 연예계에서 살아야 하니 그 정도의 외모 콤플렉스가 없다면 그는 외모에 해탈한 성인이 분명하리라. 재영은 그런 동철이 안쓰러웠지만 유리는 동철의 항변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오, 그래그래? 우리 동철이, 화났쪄?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자, 술이나 한 잔 받아. 대신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나로서는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거니까.”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거라니? 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은 내가 다해줬는데, 그런 계산법이 어딨어? 말로 준 건 나지!”

“말은 무슨 말? 당나귀나 노쇠면 모를까?”

“뭐, 당나귀? 노쇠?”

“알았어, 알았어. 말 해, 말! 해서 이건 술이 아니라 액체 당근이야. 어여, 받기나 해.”

“아이고, 이 징글징글한 것아! 옛날 같으면 소나 키울 것이! 하여튼 우리는 TV가 전달하는 정보와 내용이 왜곡된 게 아닌지, 혹시 숨겨진 게 있는지, 이면의 진실이란 없는지 항상 의심하고 질문해 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으니까. 알았어, 이 화상아?”

“흥! 헌데, 오빠 혹시 지금 한 말, 내가 그룹시절 주로 립싱크 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아니야? 왜곡이니, 이면의 진실이니 하는 걸 보면? 조금 놀렸다고, 치사하게시리. 하여간에 속 좁은 인간들은 다 저렇다니까, 호호호호!”



유리의 맑고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습하고 탁한 술집의 공기를 요란스럽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끈적끈적한 습기와 열기로 가득한 공간이 한 가닥 청명한 바람에 정화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호기심이 충족되자 유리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동철의 말 속에 유리를 의심한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이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됐네, 이 사람아! 넌 서있는 그 자체가 노래야. ‘비디오 킬 라디오스타’라고 넌 노래까지 잘할 필요 없어.”

“웬 칭찬이래? 이거 혹시 내일의 태양이..”

“서쪽에서 뜰 수도 있어! 지구가 자전의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하지만 유리야, 너무 선정적인 노래와 춤으로 흘러가지는 마라. 그건 시간이 흐르고 대중의 기억에 각인될수록 너의 가치를 갉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동철이 유리를 보며 속 깊은 얘기를 건넸다. 그의 말 속에는 유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살가운 정이 가득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죄다 벗고 나오잖아? 여길 봐도 하의실종, 저길 봐도 하의실종. 요즘 어린 것들, 좀 날씬하고 섹시해? 나도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데. 게다가 시청자들이 얼마나 냉정한지 오빠는 모를 거야? 조금만 그들의 기대에서 벗어나면, 몸으로 때우기엔 이젠 늙었다느니, 얼마나 말이 많은데? 시청자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이 얼마나 큰지 절대로 알 수 없어.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아. 그저 비판하고 씹어댈 뿐이지.”



유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녀의 표정에서도 피 말리는 경쟁에 따른 피로감이 분명하게 묻어 나왔다. 아무리 TV가 배출한 슈퍼스타라 해도 그녀만의 고충이 왜 없겠는가? 그녀를 밀어내는 아이돌 그룹과 선후배 가수들의 압력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수시로 변하는 시청자의 기대에 맞추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가능할까? 실패의 위험에 대한 압박감은 또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을까? 재영은 잠시였지만,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유리 역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당연한 거야. 시청자가 거기까지 생각해줄 이유는 없어. 변화는 니가 찾아야 하는 거지, 시청자의 몫이 아니야. 연예인의 삶도 인생의 일부야. 유리야, 네가 이 길을 계속 갈 거면 길게, 그리고 멀리 봐.”



동철은 유리의 호소에 냉정할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재영은 그런 동철이 이상했다. 유리와 이렇게도 가까운 사이라면 최소한 그는 유리의 고충에 귀 기울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동철도 연예인이기에 승자독식의 장에서 벌어지는 혈투가 얼마나 격렬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건 도리에도 맞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재영은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거의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최선도 차선도 차악도 최악의 일도 그대로 두면 시간이 다 해결해주기 마련이다. 유리의 아픔을 보듬어 주지 않는 동철의 태도에 숨어 있는 진실도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유리로써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리 없다.



“아이고, 지금까지 수백억은 벌어놓은 니가 여유롭지 못하면, 난 아예 거지게?”



동철이 정말로 힘들어하는 유리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런가? 헌데, 세금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온 데? 사실 나 엄청 세금 내거든. 아무리 내가 슈퍼스타라 해도 음원 판매가 늘고, CD도 많이 나가야 세금도 계속해서 많이 낼 수 있는데 말이야? 아예 방송국 화면마다 내 뮤직 비디오로 도배해 버리면 좋을 텐데, 히히. 아, CF도 있구나! 뭐니 뭐니 해도 자동차와 전자회사 CF가 최고인데?”



유리의 얘기가 게의 걸음처럼 다시 옆으로 샜다. 재영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벗어났던 둘의 얘기가 다시 연출한 곳으로 돌아왔으니, 그저 웃으며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이고, 저놈의 욕심하고는? 너 때문에 죽어나가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고마운 줄 알아야지.”

“타고난 능력과 매력에서 차이 나는 걸 어떻게? 솔직히 나를 본 후에 다른 얘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얼굴하고 가슴하고, 이 명품 복근과 바디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호호호호!”



유리는 말의 순서에 따라 두 손으로 가슴을 받치는 동작에서 복부를 쓸어내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어깨까지 으쓱하는 그 뇌쇄적인 모습이란! 재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유리의 매력에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유리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자신의 다져진 몸을 부각시키는 유리의 행동이 타고난 것이 아닐 터,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섹시하게 반응하도록 수없이 많은 반복학습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여성의 매력이나 가치를 36-24-36, 44사이즈에 48kg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고정시킨 매스 미디어의 작품이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몸마저 획일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의 대상으로, 그래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자신의 몸을 고치고 다듬어야 할 형편없는 제품으로 격하시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최대 희생물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다이어트와 진한 화장도 모자라 성형수술까지 받아야 미인의 기준에 들 수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상품의 제작과정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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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제 말이 맞죠? 호호호. 동철 오빠가 얼마나 음흉한지 기자님은 모르실 거예요?”

“야 그러면, 책을 권한 재영씨도 나처럼 음흉하다는 얘기잖아? 두 남자를 한 방에 보내는구먼.”

“일타쌍피야!”

“아이고, 유구무언이올시다. 헌데 듣고 보니 니 말도 일리는 있네. 그나저나 재영씨, 『거대한 전환』은 다 읽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갖고 집중해서 읽어야 할 책 같아서.”



재영은 유리와 동철의 주고받음이 마치 잘 짜진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것이 아닌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누가 뭐래도 그녀는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고 동철은 최고의 MC가 아닌가. 20세기의 정치ㆍ경제학 서적 중 가장 아름다운 어휘를 사용해 가장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거대한 전환』이라 해도 조금 늦게 읽는 것이, 아니 아예 읽지 않는다 한들 무슨 문제가 되기나 할 일인가?



“저도 몇 번을 읽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저자의 통찰에 다가갈 수 있었지요.”

“두껍기는 얼마나 한데? 깨알 같은 글씨와 수백장에 이르는.. 어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재영은 유리가 툭 던진 말이 의미심장했다. 단서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기자로써의 경험이 말해주지 않는가?



‘어, 그러면 책을 사서 조금이라도 읽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앞의 농담은 정말로? 이 여자 어쩌면, 상상 이상일 수도 있겠어?’



재영은 유리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음에 가해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유리에 대한 판단을 완전히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정현 선배에게서 받았던 것을 빼면, 그것은 철저하게 멀리했던 이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재영이 유리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 종업원이 소주 두 병과 맥주 세 병, 야채샐러드와 글라스 잔을 들고 왔다.



소맥이여 영원하라!



재영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 느닷없는 생각이 평상시의 재영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작 재영 본인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그는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살고 있는 환경에서 떨어져 나와 미지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제가 동철씨에게 괜한 책을 권해나 봅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유리씨에게 불통이 튀다니, 여러 가지로 송구스러울 따름이네요.”

“송구스러울 것까지는 없구요. 알면 됐어요, 호호.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한 잔 따라 드릴게요. 평생의 영광인 줄 아세요, 기자님.”

“이것 봐라, 나한테도 안 하던 짓을? 너 사람 차별하기냐?”

“짓이라니? 아, 우월한 내가 참아야지. 차별 하냐고? 당연하지! 짤막하고 못생긴 오빠에 비하면 기자님은 조각미남에 가까워. 따라서 차별은 당연한 거야.”

“하하하! 조각미남이라니요?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철씨보다 조금은 나은가 보죠, 유리씨?”



차별이란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떠는 재영이 유리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는 그렇게 유리의 영혼에, 현재의 상황에 젖어 들고 있었다, 한지에 스며드는 먹물처럼.



“어, 재영씨도 그러깁니까? 저 그러면 삐칩니다? 제가 삐치면..”

“놔두세요, 삐치는 게 장기이니까. 열등한 인간들의 최대의 무기잖아요. 별 효과도 없는 것을, 뭐 그렇게 내세우는지? 그런데 기자님, 미디어는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요? 거기서 재미 이상을 볼 필요가 있나요? 그 사람, 닐 뭐지?”



유리가 갑자기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그 변화무쌍함이 재영은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사고가 자유롭지 못한 그로서는 하나의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갈아타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어떤 매개체라도 없으면 항상 하나의 생각에 골몰해 있기 일쑤였다. 재영은 사고의 체계를 거치지 않아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그녀의 분방함이,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은 성품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동철이 조금은 불쌍했지만.



“나 삐쳤어!”

“하하, 닐 포스트만입니다.”

“그래요, 닐 뭐시기. 다른 것은 모르겠고, 전 ‘쇼비지니스 시대’와 그 뒤에 나오는 몇 개의 장들만 더 읽었는데, 도대체 뭔 말인지? 어쨌든 TV는 재미있어야 하지 않나요? 전 TV의 가치가 정보나 가치의 전달이 아니라 재미의 추구에 있다고 봐요. 그것이 TV의 속성이라 생각해요.”

“유리씬, 왜 그렇게 생각하죠?”



재영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가 바라던 순간이자 터닝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토론이나 논쟁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질 생각이 없고, 자신도 충만했다. 다만 상대가 유리라는 것이 문제였다. 재영은 그래서 유리의 생각을 조금 더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요?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TV가 정치나 경제, 철학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대중의 기호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면, 뭐 하러 TV를 만들었겠어요?”



매스 미디어의 총아인, TV가 만들어낸 슈퍼스타다운 발상이었다. 단순하고 지극히 표피적이지만 정확한 이해였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말하니 정말 그럴 듯했다. 재영은 이럴 때면 진화의 과정도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존재 자체가 매력인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인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누적적인 자연선택도 때론, 외형의 우수함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떤 테크놀로지가 적용됐던 간에, TV는 대중 친화적 매체라는 말인가요?”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몰라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중의 기호라고 봐요. 그 기호는 처음부터 재미였고요. 아무리 좋은 방송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시청률이 떨어지고 방송국은 광고가 줄어들게 되고, 가수와 탤런트, 다수의 연예인들은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되요. 기획사와 열악한 임금에 허덕이는 스태프들은 더 힘들어지겠고, 자연히 작품의 질도 떨어질 거예요. 그것이 대중이 바라는 것도 아니고, 해피한 것도 아니잖아요? 반대의 상황이 모두에게 좋은 게 아닌가요? 왜 재미가 문제가 되죠? 알고 보면 나도 얼마나 재밌는데?”



유리가 이번에는 나름, 논리 정연한 말로 재영을 압박했다. 재영은 유리가 공리주의적 사고의 함정과 승자독식의 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논리는 파이를 키우는 데만 집중해 분배의 논리가 무시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파이를 키우기 위해 ‘자본가가 흘린 찌꺼기가 노동자의 욕망을 자극’해 사람들로 하여금 0.001%도 안 되는 대박의 꿈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자본주의적 먹이사슬로 귀착된다. 



게다가 계량화할 수 있는 쾌락(또는 행복)은 물질에 기반한 것일 수밖에 없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쾌락(또는 행복)의 기준은 단순화된다. 그 과정에서 소수의 이익은 무시되기 일쑤다. 다수(이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 다수라는 기준은 무엇이며, 출생에 의해 출발점이 다른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기회의 불평등과 이익의 차이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승자독식의 룰이 경제와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상황에서 지난 시절보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가 전반적으로 늘어났으니 다수의 이익이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질적 풍요와 편리의 반대급부인 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라는 기후변화가 초래하고 있는 파국적인 결과는 어떻게 생산 원가에 반영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이 보증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승자가 가져가기 때문에 약자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 비정한 승자독식의 룰은 민주주의의 가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매력이 넘쳐 주체하기 힘든 슈퍼스타 앞에서 뭐라고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악의가 없는 견해를 표방할 뿐이며 자아도취적 성향이 강하다 해도, 나르시스와는 다른 사랑스러운 환상에 빠져 있는 여인에게 논리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어리석은 남자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심지어 로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는 안경 낀 여자에게 작업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세요? 기자님이 그렇게 논리가 없으시면.. 아, 나의 매력에 빠지신 거구나! 늘 겪는 일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기분은 좋네요. 저도 한 잔 주세요, 기자님.”



유리가 정말 그녀다운 말을 하면서 재영에게 잔을 내밀었다. 뭐라고 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지만, 유리의 말에 재영의 몸은 반응을 보이려 했다.  



“아이고, 환장하겠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 볼 수가!”

“눈이 새우만하니 그렇지!”

“그래서 조명 빨 같은 헛것에 속지 않는 거야!”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유리의 말에 동철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하지만 재영은 동철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손을 뻗기만 하면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앉아 있는 슈퍼스타, 유리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감정이 가는 대로 반응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증폭되는 그녀의 실체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작동했다. 재영은 처음으로 그녀의 눈을 들여다봤다. 흐린 조명과 긴 속눈썹이 만들어낸 짙은 음영 속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은하처럼 반짝였다. 재영은 단지 2~3초만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 영롱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눈동자에 자신의 영혼까지 빨려 들어갈 듯한 강렬한 느낌에 급히 시선을 거둬들였다.



‘엄청난 흡입력이야. 어떻게 보면 몽환적일 정도니. 몽환적?’



재영은 문득 유리가 논쟁을 걸어오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이런 눈동자의 소유자가 논쟁을 걸어온다는 것이 왠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영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했다.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재영은 그 미소의 끝에서 유리의 말에 가벼운 이의를 표했다.



“쇼비지니스만을 놓고 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겠죠?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쇼비지니스가 TV와 인터넷 전반에 작용한다면 시청자 역시 재미에 빠져들지 않겠어요? 결국에는 TV와 인터넷이 정해놓은 틀, 즉 삶의 오락화라는 그물에 갇혀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TV와 인터넷이 정해놓은 틀이 삶의 오락화라는 건 잘 모르지만, 어쨌든 TV 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용은 결국 개인이 선택하잖아요? 자신의 기준에서, 그것이 재미이든 정보 검색이든, 웹 서핑이든 간에 취사선택이 가능하잖아요? 경우에 따라서는 안 보고 안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TV 시청과 인터넷을 많이 한다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 복잡한 세상, 그냥 쿨하게 사는 게 최고 아니에요? 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열띤 음성으로 반론을 마친 유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미간 사이에 주름이 잡혔지만, 재영은 그 주름마저 매력적으로 보였다. 눈동자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아직까지 작용하는 듯싶었다.



“물론 안 보면 문제없지요. 인터넷도 안 하면 그만인 것처럼.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고, 유리씨처럼 노래를 불러도 좋겠지요. 하지만..”

“내 노래가 얼마나 좋은데! 기자님도 불러봤죠, 당연히?”

“하하, 당연히 불러봤죠. 몇 번 안 되지만.. 불러보긴 했죠.”



재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리를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뱉은 말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냥 넘어갈 그녀가 아니지 않은가? 뒤늦은 재영의 후회에 유리가 쐐기를 박았다.



“어떤 노래요? 한 번 불러보세요.”

“네, 불러보라고요? 허, 이거 참 어떡하지? 장소도 그렇고, 이렇게 갑자기 시키시면..”



재영이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데, 다행히 동철이 나섰다.



“야, 재영씨에게 노래를 불러보라니? 당근이지!”

“네? 동철씨까지 이러시면..”

“호호호! 됐어요, 됐어. 기자라면서 왜 이렇게 부끄러움을 타신데? 하긴 내 앞에서 부끄럼 타지 않는 남자가 없긴 하지만, 호호호호!”



유리가 한껏 웃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 맑은 웃음소리가 공명이 되어 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모든 남자 손님들의 시선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듯 바삐 움직였다. 유리의 몸, 구석구석을 훑는 매직(이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아이들의 향연!



“허허, 다음번에는 꼭 불러볼게요. 연습도 좀 하고요. 헌데 유리씨, 아까의 얘기로 돌아가면, 사람이 세상을 쿨하게만 살 순 없잖아요? 세상과 소통하는 게 TV와 인터넷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상당한 시간을 그 앞에서 보내는 게 현실이니, 결국 TV와 인터넷이 제공하는 틀에 갇혀 버리지 않을까요?”

“TV나 인터넷 앞에 앉는 게 왜 그들이 제공하는 틀에 갇히는 거죠? TV나 인터넷이 내 전부가 될 수는 없잖아요? ‘늘 깨어있으라’ 그런 상투적인 말 말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재영은 가능한 한 유리의 눈높이에서 생각을 물었지만, 유리는 동의하지 않았다. 비록 유리의 주장이 표면의 진실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녀의 논리는 명확했다. 디지털 시대에서 쿨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의 내리는 논리의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재영은 자신의 논리와 대척점에 서있는 그녀를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도 확인했고, 그녀를 이해시킬 이유는 더더욱 없었고.



‘그래, 확실해? 처음 보는 사이에 이렇게까지 공격적일 이유가 없잖아? 혹시 동철이라면 모를까?’



생각이 이에 이르자 재영은 지금까지의 상황이 단순해지고 또렷해졌다. 동철과 유리가 자신을 향해 연출하고자 하는 대강의 얼개도 그려졌다. 재영은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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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1.12 18:34 신고

    재미 있습니다.
    처음부터 봐야 더 흥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12 20:20 신고

      감사합니다.
      앞 부분도 이렇게 소설적인 요소들로 다시 써야 합니다.
      퇴고를 할 날이 오겠지요.

  2. 박창식 2015.01.13 14:12 신고

    우영워드와 천검지로는 너무나 기다려 지는 작품입니다.
    님의 다른 칼럼도 빠뜨리지 않고 읽지만...

    • 늙은도령 2015.01.13 15:35 신고

      천검지로는 내일 쯤 올리겠습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승산을 과대평가할 경우 전통적인 노동시장에 속한 사람들 중 자신의 생산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승자독식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의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일반적인 비용편익분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자신의 성공률을 정확하게 평가할 때조차도 사람들은 무모할 정도로 많이 승자독식시장에 뛰어든다...경쟁자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이미 경쟁에 뛰어든 사람들이 승리할 확률은 줄어든다. 이런 제로섬적인 측면 때문에 승자독식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전통적인 시장에서 생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ㅡ 로버트 프랭크 · 필립 쿡의 『승자독식사회』 중에서




재영의 예상과는 달리 동철의 옆에 한 명의 여자 연예인이 앉아 있었다. 술 때문인지 발그레한 볼과 짙은 마스카라 아래서 더욱 또렷한 눈동자가 주변의 빛이란 빛은 모조리 흡수해 홀로 빛나고 있는 듯했다. 손바닥만 한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길고 날렵한 목선, 탄력이 느껴지는 피부와 풍성한 머리 결이 재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미녀이자 삼척동자라 해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단 한 명의 슈퍼스타.



‘유리다!’



동철이 말한 연예인이 TV나 뮤직비디오에서나 볼 수 있는 동방국의 톱스타 유리였다. 재영은 연예인을 극도로 멀리 했지만 유리는 차원이 다른 미모의 소유자였다. 재영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발적인 유리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이란 죽음의 늪으로 유혹하는 메두사의 눈빛처럼 일단 걸려들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마력을 지닌 듯했다. 재영은 그 도발적인 시선 하나에 숨이 턱 막혔다. 동철이 반갑게 맞이했지만 재영은 주춤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재영씨. 정말 총알같이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동철은 재영의 반응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 앞에 서면 어떤 남자(일반인은 물론 동료 연예인까지)라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유독 쩔쩔매는 재영의 행동은 마치 수줍음을 타는 어느 산골 소년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예상대로였다.



“네? 네, 네. 어, 어느 쪽에 앉을까요?”

‘어느 쪽에 앉을까요? 이런 멍청한 말이 어딨어?’



재영은 말을 더듬는 것도 모자라 어이없는 질문까지 한 자신이 너무나 창피했다. 마치 속마음을 들킨 듯 재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헌데 주책없이 뛰는 심장의 반응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크크. 재영씨의 이런 모습이 좋다니까! 이왕이면 유리 앞에 앉으시죠?”

“예쁜 것은 알아서. 지영이와 현아까지 있었으면 기절했겠네?”



동철이 재영에게 자리를 권하는 중에 유리가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영의 귀에는 천둥처럼 들렸다. 유리의 말은 자신을 향한 의도적인 말이었음에도 재영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아직 뇌는 그것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는 생각보다 느리다. 숱한 반복을 통해 정보가 뇌에 각인된 기억이 되지 않는 한 신경세포인 뉴런에 특정한 반응을 일으키는 속도란 일반의 예상만큼 빠르지 않다. 유리의 말에 당황스러워 하는 재영의 반응은 신경학적으로 이런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전형적인 반응에 속한다.



“네? 아, 아! 예, 예.”

“재영씨, 신경 쓰지 마십시오. 유리가 원래 그래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항상 이런다니까요. 사실 화장 지우면 거기가 거기에요. 그나저나 유리 한 명밖에 잡아두지 못했어요. 실망하신 건 아니지요?”



동철도 유리의 농에 한 술 거든다. 재영은 동철의 말에 들어 있는 뉘앙스가 미묘했지만 동방국 최고 슈퍼스타의 농담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람 간의 만남에서 순발력이 약한 재영은 이런 경험이 처음인지라 온갖 노력을 통해 발달시킨 뛰어난 감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요? 실망이라니요?”

“뭐! 화장 지우면 거기가 거기라고?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에! 오빠 집에는 거울도 없어? 난 지금 봉사활동 하는 마음이야. 사람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 지영과 현아를 나와 비교해? 턱도 없지. 안 그래요, 기자님?”



동철의 질문에 답하는 것과 동시에 터진 유리의 말에 재영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진 유리의 연타에 재영은 좀처럼 평정을 찾을 수 없었다. 유리는 그런 재영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크크, 동철 오빠가 말한 그대로네. 그렇다면!’



유리는 자기 앞에서 당황한 채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180cm 전후의 키에 탄탄한 몸매와 강인하면서도 날렵한 턱 선이 살아 있는, 한편으로는 강직해 보이면서도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인 재영을 향해 다시 도발적으로 물었다.



“기자님 생각은 어떠냐고요? 지영과 현아가 감히 나와 비교가 되냐고요?”

“어.. 저로썬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지? 거참, 허허.”



재영은 유리의 장난스런 말들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만나자마자 이렇게 몰아치는 경우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람, 특히 모든 여성과의 만남에서 지독할 정도로 낯을 가리는 자신으로써는 그저 메마른 웃음이나 흘릴 밖에야 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야, 그렇게 강요하면 어떡해? 지영과 현아가 어때서? 솔직히 성별이 달라서 그렇지, 화장을 거둬낸 생얼로 치면 너와 나의 차이도.”

“많이 나! 그것도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난, 내 미모를 숨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장하는 거야! 안 그러면 나머지 여자 연예인들이 나 하나 때문에 다 죽어버리니까. 나도 엄청 힘들어. 타고난 미모를 숨긴다는 게 쉬운 줄 알아? 안 그래요, 잘 생긴 기자님? 누가 봐도 이거, 웃기는 상황 아니에요? 게다가 있어 달라고 애걸복걸 할 때는 언제고? 양심이 있다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사람이 저래요. 못 생긴 데다 마음까지 삐뚤어져서.. 하여간에 봉사활동 하는 마음이란 제 말, 잘 생긴 기자님은 이해하겠죠?”



동철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리는 칭찬인지 욕인지 구별하기 힘든 말로 재영을 연속적으로 몰아붙였다. 유리의 연타석 공격은 마치 기관총이 프로펠러 사이로 총알을 빠르게 난사하는 것 같았다. 재영은 좀처럼 유리의 방식에 아직은 적응할 수 없었지만, 외모만 놓고 보면 솔직히 삼척동자라 해도 동철과 유리는 비교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봉사활동 하시는 마음, 제가 잘 알지요.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유리씨.”



재영은 일단 유리가 쏟아낸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투로 말했다. 둘이 악의 없이 다투는 모습이 일면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기에 사정권 밖으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에게 현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을 뿐더러, 도발적인 유리의 시선과 장난기 가득한 질문을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소화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영은 유리의 시선을 피하며 테이블을 둘러봤다. 테이블 위에 몇 개의 술잔과 젓가락, 접시 등이 더 놓여 있는 것으로 봐서 정말로 지영과 현아가 조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둘은 유리와 함께 활동한 1세대 여성 아이돌 그룹의 대표 주자로써,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D-Pop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소녀시대와 2NE1, 카라, f(x) 등의 선조 격이었다. 비록 그들은 현재의 인기 면에서는 동방국 최고 스타로 우뚝 솟은 유리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미의 여신들로 남아 있는 특급 스타였다.



‘조금 더 서둘러 왔으면 그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재영이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유리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동철이 유리의 말에 동의를 표한 자신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재영씨, 봉사활동 하는 마음이라니요? 이거 배반입니다, 배반! 재영씨마저 그러면 제가 뭐가 됩니까?”

“그거야.. 동철씨가 지영씨와 현아씨를 붙들지 못한 죄지요. 사실 저는 지영씨 팬이거든요. 아, 물론 유리씨를 빼놓고 말할 때 그렇다는 뜻이지만. 하하하..”



재영은 웃음으로 자신의 치명적인 말실수를 넘기려 했지만 가늘게 찢어지며 강렬한 빛을 발하는 유리의 시선에 숨이 턱 막혔다.



“음, 음. 꿀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까지 삼켰다. 뒤이어 딸꾹질이 나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지만.



“침은 왜 다신데? 남자들이란 나만 보면 저런다니까! 그리고 당연하죠. 나 빼면 걔들은 시체인데 어디 감히 저와 비교해요! 어림없지. 하여간에 이놈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하고는! 피곤해, 피곤하다니까.”



자신에 대해 당연한 듯이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유리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매력적인 이마와 조명에서 나온 창백한 불빛에 부서지듯 물결치는 머리 결이 재영의 두 눈을 한껏 현란시켰다. 그녀는 단지 머를 뒤로 쓸어 넘겼을 뿐이다. 여기저기서 유리를 훔쳐보던 남자 손님들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비릿한 욕망들이 알코올을 타고 충혈된 홀 안을 넘나들었다.



“어이구, 저놈의 공주병하고는! 중증이야, 중증.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거 잡아가지 않고?”

“귀신도 내 미모에 눌려 오지 못하는 거야!”

“허허, 그런가요? 하긴 귀신들이라 해도 유리씨 미모를 모를 리 없겠지요. 하하하.”



동철은 유리의 당연한 공주병에 여전히 투덜거렸지만 재영은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도 넘쳐나는 유리의 치명적인 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방국 연예계에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미인들로 넘쳐나지만 양귀비나 서시, 클레오파트라 같은 경국지색의 수준에 오른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유리는 연예계를 통틀어도 몇 십 년 만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탁월한 자연 미인이자 불세출의 엔터테이너였다.



“앞으로도 저만한 가수가 나오겠어요? 제가 좀 독보적이죠. 뭐, 저도 인정하는 바이니까. 그건 그렇고, 제가 기자라면 질색하지만 동철 오빠가 하도 칭찬하기에 지금까지 기다렸어요. 기자님도 고마우시죠?”

“또 옆으로 샌다. 제발 정신 좀 차려!”

“됐다니까! 기자님, 좀 더 이쪽으로 앉으세요. 전 옆에서 보는 것보다 정면에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우니까. 언제 저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보기나 하겠어요? 술자리는 또 어떻고?”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가문의 영광이 따로 없습니다. 동철씨, 고마워요. 천하의 유리씨를 뵐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니.”



재영은 유리가 지시하는 대로 궁둥이를 옆으로 밀어가면서 동철에게 말을 돌렸다.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느니, 차라리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탄력성을 따라가다간 자칫 실족하기 십상이었다.



“기본 옵션이지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 않습니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크크큭!”



동철 특유의 웃음. 여린 소리의 톤과 어우러져 묘한 수줍음이 묻어 있는, 진솔함과 겸손함이 매력이자 장점인 남자. 짧은 시간에 숱한 어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특이한 존재. 국민 토종 노총각의 아이콘.. 이런 것들이 재영의 뇌리를 스쳐갔다.



“헌데 기자님, 오빠에게 이상한 책들만 권한다면서요? 죽도록 즐기기? 너무 노골적이지 않아요? 저야 뭐, 관심도 없지만. 하여간에 남자들은 예쁜 것만 보면 맨 그 생각뿐이라니까! 그러니 완벽한 날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휴, 끔찍해! 아까 침 다신 걸 보면, 기자님도 혹시?”

“야, 그만하지 못해! 모르면 가만있어. 그럼 중간이나 가지. 재영씨가 추천한 책은 그런 게 아니야.”



동철이 유리의 말을 막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디로든 튀면 거의 끝까지 가고야 마는 유리의 말에 일일이 응대하는 것은 어리석으면서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긴 제목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제목 위에 있는 ‘성찰없는 미디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이란 글귀만 보았어도 이런 식의 질문은 없었으리라.



‘허허, 이건 좀 지나쳐. 아무리 유리라고 해도..’



재영이 씨익 웃었다. 미미하지만, 입술의 끝이 어떤 비밀을 파헤쳤다는 듯한 선을 그렸다. 동철이 그 미세한 변화를 봤지만 유리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아예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또 다른 책이 뭐였지? 그래, 무슨 전환이라고 했잖아? 죽도록 즐기기와 전환, 둘을 합치면 단 하나의 결론만 나오잖아! 트랜스젠더와의 사랑. 그거 아니면 뭐야? 기자님, 제 말이 맞죠?”

“하하하하! 유리씨 정말 대단한 추리입니다! ‘죽도록 즐기기’와 ‘전환’이 만나면 당연히 트랜스젠더와의 사랑밖에 남지 않네요. 하하하하!”



재영은 유리의 연상 작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이었지만, 너무 기발해 그 동안에 쌓였던 피로가 일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조금은 서툴렀던, 유리에 대한 자신의 이른 판단이 오히려 미안하고 어리석게 다가왔다. 순수해도 이렇게 순수한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평소의 동철이라면 결코 그녀에게 두 권의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찔할 정도로 현기증 나는 연상 작용의 자유로운 비약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것이었다. 어쩌면 유리라는 슈퍼스타가 가진 재능의 일부가 이런 직설적인 당돌함에 있는 것이 아닌지, 그 투명한 말과 분방한 행동 속에 들어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지, 재영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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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득!



책상 위에 놓아둔 갤럭시2가 빛을 뿜어내며 자지러졌다. 연신 수증기를 뿜어내던 커피포트의 스위치도 약속이나 한 듯이 탈칵하며 떨어졌다. 그것들에 의해 다시 현실로 돌아온 재영은 머그잔에 끓은 물을 따른 후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걸어가는 동안에도 『미디어 이해』에서 읽은 문구를 떠올렸다. 



기술의 영향력은 의견이나 개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향력은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놓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 일상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사회에서 TV와 컴퓨터, 휴대기기 없이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이란 생각하기 힘들다. 첨단 전자기술의 총화인 미디어의 힘이란 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테크놀로지 자체의 속성에 있는 것처럼, 활자문화를 과거의 경험과 지식 전달자의 위치에서 밀어낸 방송ㆍ통신기기들은 우리의 인식과 삶 자체를 통째로 재편성하고 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휴대폰이나 모니터, 평면 또는 3DTV가 전하는 각종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접촉하며, 구분 짓고 저장하다 삭제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관여하지 않는 것은 삶의 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미디어는 세상을 뒤덮은 촘촘한 그물망이야. 거길 통과한 메시지만 전달돼. 그물망은 거대 미디어가 독점하고 대안 언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조차 편성, 조작될 수 있어. 그물망을 조금만 변화시키면 되니까.’



재영은 비슷한 뉴스와 비슷한 드라마, 비슷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비슷한 공개 오디션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도 낄 수 없는 세상을 떠올렸다. 플라톤에서 시작해 하이데거를 거쳐 히틀러가 실현했던 전체주의는 한나 아렌트의 예언대로 사라지지 않았고 그 모습을 바꿔, 좀 더 소프트하고 기술적으로 살아남아 세상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개인은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와 메시지를 각각의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정보와 메시지는 무차별적이고 방대하며 연속적으로 던져지기 때문에 즉각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면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시청자들은 오늘의 뉴스라는 형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까? 다음 뉴스는, 다음 뉴스는 하면서 몇 분이나 몇 십 초 정도로 편집된 뉴스를 연속적으로 내보내는 게, 국가나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뉴스 다음에 흥미 위주의 가벼운 뉴스를 배치하는 게 우리의 판단 기준을 얼마나 흐려놓는지 알까?’



뇌에 대한 각종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작업(또는 단기) 기억 안에 담아둘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된다. 그 정보를 번역해 가중치를 부여하고 선택적으로 저장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정보의 바다에 수장되지 않으려면 앞서 들어온 정보의 대부분을 작업 기억의 공간에서 그냥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나마 마련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에서 정보의 대부분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개인은 결국 미디어가 제공하는 네트워크(그물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러 가지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내는 ‘오늘의 뉴스’의 진행 방식이다. 뉴스를 보고 있는 동안 (또는 보고 난 이후에도) 시청자는 뉴스가 전해준 십여 개의 기사 중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는 현상에 직면한다. 이는 앵커가 ‘자 다음은’ 하는 식으로 하나의 기사 꼭지가 끝났음을 알려줘, 다음 기사를 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작업 기억의 용량을 얼른 비워두라는 암시에 의해 발생한다.



‘결국 깨어 있어야 한다는 진부한 격언에 귀착돼. 그건 쿨한 세대에겐 최악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디어가 전하는 콘텐츠(내용)가 중요하지 미디어 자체(기술)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선택은 각자 개인이 내리는 것이고 각각의 인식과정도 다르며, 자신이 처한 삶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취사선택하므로 정보의 홍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설사 거기에 빠진다 해도 쿨하고 개념만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디어는 콘텐츠를 전달만 하는 매체일 뿐이 삶의 지배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영은 마샬 맥루한이 말한 또 다른 문구가 떠올랐다.



미디어의 내용이란 실제로는 정신의 입구를 지키는 개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강도가 손에 들고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 미디어 소유권의 집중까지 더하면, 민주주의는 질식할 수밖에 없어. 소유권이 분산되지 않고 이익에 집착하며, 엘리트 위주의 당파적 성격이 강한 미디어는 칼을 든 친구가 될 수 있어. 우리는 원수에는 최대로 주의하지만 친구에는 쉽게 속아 넘어가기 일쑤 아닌가?’



재영은 자리 앉아 머그잔을 내려놓고 두 번째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슈퍼아몰레드 액정화면 속의 상대를 확인했다. 재영은 취재와 관계된 인물이 아니면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와 통화하려는 사람은 보통 두 번은 연속해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는 그것이 불필요한 통화를 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통화 지연에 따른 오해야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이 번호는?’



재영은 상대를 인식하는 첫 단계가 11자리에 이르는 수의 조합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했다. 사진(또는 아이콘)도 함께 뜨게 하는 것도 통화량을 늘리려는 미끼상품, 즉 이익 창출을 늘리려는 불필요한 기능일 뿐이었다. 수의 조합과 아이콘은 한 명의 인물을 기억에서 불러냈다. 동철이었다, 아니 그임을 증명하는 전화번호와 정형화된 메시지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재영은 캘럭시2를 들어 귀로 가져갔다. 동철은 요즘 들어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소셜테이너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정현 선배의 소개로 알게 된 유일한 연예인, 그 역시 미디어의 명암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제시하던 차였다. 타고난 말솜씨만큼 생각의 깊이도 충실한 그는, 재영이 갖지 못한 이 시대 최고의 무기(유머, 재치)를 장착한 사람이었다. 재영이 그에게 끌린 것은 자신과 비슷한 아웃사이더적인 기질 때문이었다. 그가 본 세상도 합리적이거나 질서정연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형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동철씨, 웬일이세요?”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느닷없지요, 제가?”



왠지 슬픔이 묻어 있는 듯한 동철 특유의 음성이 조심스러우면서도 정겹게 다가왔다. 통신망의 용량 부족으로 통화품질이 떨어지는 차에, 여러 가지 음성이 섞여 들리는 것을 보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떠드는 술집이나 포장마차 같은 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한 잔 하신 모양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를 다 주시고?”

“노총각이 다 그렇죠, 크큭. 공장 대신에 사원을, 하늘의 길에 포장마차를, 호수 속에 응접실을! 한 잔 했습니다, 이런 이른 시간부터요.”

“랭보 좋지요. 환각제나 술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니 세계적인 시인이 되신 모양입니다, 하하. 마침 저도 한 잔 하고 있는데, 종류는 다르지만. 아뜨뜨!”

“아뜨뜨? 뭘 마시.. 아, 커피 마시는군요. 그것도 아주 뜨거운. 입술만 랭보가 되겠네요? 크크큭!”

“동철씨 때문에 입술 다 뎄어요!. 책임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고소할 거예요.”

“저보고 재영씨 입술을 책임지라고요? 저 남자는 별로인데요. 못 생긴 남자의 입술은 더더욱. 유리로 뺐지 못한 입술인데, 어딜 감히. 크크큭!”

“사돈 남 말하십니다! 어디십니까?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온통 여자목소리뿐인 것 같은데? 혹시 전설의 아방궁인가요?”

“크큭. 귀는 밝으셔서. 오실 수 있으세요?”



동철이 전화한 이유를 밝혔다. 재영이 동철의 제의를 기꺼이 수용했다.



“그래서 전화한 거 아닙니까? 전에 만났던 곳입니까?”

“네, 그곳이에요. 엄청 예쁜 연예인들이 수두룩해요. 반쯤 맛이 간 상태에서, 그것도 예쁘고 어린 순서대로. 크크큭!”

“총알같이 날아가겠습니다! 제가 갈 때까지 그분들 붙들어 매놓으십시오. 알겠습니까?”



재영은 좀처럼 하지 않는 농담을 던질 만큼 동철의 초대가 고마웠다. 울고 싶은 놈 때려준다고, 타이밍도 적절했다. 공복에 마시는 술,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 진통해열제였다. 이성이 지나치게 고양될 때면 감정은 탈출구를 찾기 마련인데, 재영에게는 공복에 마시는 술이 그랬다. 재영은 취재기획안을 저장한 후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갤럭시2도 가방에 밀어 넣은 후 어깨에 걸쳤다. 자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마도 동철은 술과 여자 연예인을 핑계로 자신이 추천한 책, 『죽도록 즐기기』나 정치경제학의 기념비적인 서적, 『거대한 전환』에 대해 토론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죽을 때까지 한 번 마셔보자. 술에 죽나 취재기획안 때문에 죽나, 어차피 한 번은 죽는 거, 당근 술이지!”



재영은 누구에라도 보이려는 듯이 손바닥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그것은 마치 팀장이건 국장이건, 거대 언론이건 그 뒤의 시스템이건, 심지어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해 있는 신에게라도 위세를 떠는 것 같았다. 오늘은 실컷 퍼 마시리라, 재영은 스스로의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튀어나오려는 일말의 두려움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1%도 안 되는 취재기획안의 승인 여부였지만 지금 당장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는 거야!”



재영은 이번의 취재기획안이 진실을 향한 길고 험한 여정이 될지, 아니면 죽음을 향한 무모한 출정식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은 한 잔의 술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지금은 그 누구의 한 마디 격려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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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꽃 2015.01.02 08:11 신고

    새해 더욱 강건하시고..
    뜻하신 모든일 이루시길...
    복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복 많이 지으시기를...

    • 늙은도령 2015.01.03 18:05 신고

      네, 감사합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재영은 이렇게 해서 취재기획안을 통과시키는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될 X라는 정보원을 확보하게 됐다(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다. 이 사회에 진정한 영웅이 있다면, 죽음보다도 더 질긴 압박과 회유, 정치 검찰에 의한 수사와 고발 및 이해당사자들이 가할 수도 있는 살해위협까지 버텨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압도적인 위협이 가해지면 육체란 초라해지고 죽음은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거기에는 평범한 개인과 전임 대통령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X가 제공한 제보 내용을 취재기획안에 올리지 않았지만, 재영은 이번의 제보와 뒤에 이어질 폭로내용들을 통해 불가능해 보였던 취재기획안의 승인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나라에서 내부고발자란 조직의 배신자일 뿐이지 공익의 실현자가 될 수 없어. 시스템을 건드리는 자는 철저하게 짓밟힐 뿐이야. 그들이 진정한 영웅인데.’



재영은 악의 근원이 개인의 기질보다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하는 『루시퍼 이펙트』의 내용이 떠올랐다. 악의 평범성(히틀러의 핵심 측근이었던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유태인을 학살하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단지 행정적 접근을 찾았을 뿐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죄에 대해 관료적 책임이라는 최소한의 죄만 인정했다. 특히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지식인으로 통할 만큼 대인관계가 좋았고 성품 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거의 없었다. 즉,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도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거악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의 평범성)에 대한 성찰은 한나 아렌트의 『예수살렘에서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에서 이미 상세히 밝혀졌지만, 재영은 그 평범성 때문에 악은 사라지지 않고 창조주인 신의 말씀처럼 폐쇄된 공간과 지배 시스템 속에 광범위하게 편재돼 있다는 섬뜩한 내용이 새삼 떠올랐다. 세속적인 이익집단처럼 행동하는 대형교회와 대학들, 기성 정치인들, 그들과 결탁한 세력들이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재영은 보수 언론(대통령의 좌 클릭, 우회전에 실망한 진보 언론도 한 목소리였지만)의 집중포화를 받아 자살에 이른 전직 대통령 관련 책들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는 그럼으로써 진보적 성향이 강한 자신의 의견을 철저히 (끝내 가능하지 않았지만) 배제했고 국내 미디어 상황에만 편향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은 기자로써 가져야 할 공평성의 기준이기도 했지만, 가능하면 히든카드를 사용하지 않은 채 취재기획안을 통과시키는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여기저기서 보이지만 보수 성향의 팀장에서 시작해 국장을 거쳐 보도본부장까지 돌파하려면 이정도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어쩌면 결정적인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반영한다 해도 취재기획안이 승인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기자의 신분마저 박탈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이 여러 번 특종을 터뜨렸다 해도 그것은 과거의 일 일뿐, 현재의 상황에선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보증수표는 아니었다. 하지만 도박에 가까울지 몰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은 부딪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독한 행동주의자 아닌가?



“휴우.”



재영은 허파에 들어있는 산소를 모두 뽑아내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시간 혹사한 등의 근육과 허리에서 묵직한 신음이 새나왔다. 재영은 목을 좌우로 흔들고 손바닥으로 뺨을 밀어 반대 방향의 어깨로 고개를 꺾었다. 우두둑, 좀비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제야 재영은 모니터 화면 하단에 나온 시간을 확인했다.



‘뭐야? 12시가 지났잖아? 8시간이나 지났어!’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재영은 피로에 지친 두 눈의 반항에 직면했다. 그는 붉게 충혈된 채 제발 좀 살려달라는 두 눈의 항변에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자 점과 선의 어지러운 빛의 잔상들이 절대 어둠에 갇힌 시야를 휘졌고 다녔다. 빅뱅의 순간에 최초의 우주도 그러했으리라. 물질과 반물질을 무한대로 뿜어내며 시공을 뛰어넘는 팽창(과 수축)의 여정을 시작했으리라. 아인슈타인이 그 불변성을 인정한, 열역학 제2법칙(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엔트로피 총량은 계속 증가한다)과 입자이면서도 파동인 빛의 속도로 시작해 밀도가 커질수록 점점 느려지는 물리학 법칙에 따라(물론 이것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허블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우주의 끝이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질량이 없어 무엇이든지 통과하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 도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던 거야! 하긴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입자로 만들어진 모든 것이 확률로만 나타낼 수밖에 없으니, 무엇 하나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겠다, 우리의 인생처럼).



꼬르륵!

“이런, 생존의 욕구가 먼저구나.”



재영은 생체시계가 터뜨린 단 한 번의 아우성에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물리학 법칙도 무용지물로 화했다. 육체의 반응처럼 단순한 것이 가장 강력한 것이 아닐까? 대중 매체의 성공은 오감에 작용하는 생리현상에 충실한 결과가 아닐까? 0과 1, 즉 예스와 노 두 가지의 무한 반복으로 이루어진 비트 이미지와 정보의 전달은 인간의 뇌에 반응해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이에 따른 화학작용을 통해 오감을 작동시켜 생리적인 욕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재영은 오랜 굶주림에 돌아버리기 직전의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둘러봤다. 시야를 아무리 넓혀 샅샅이 스캔해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 흔해빠진 과자나 사탕 하나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공복을 달래줄 것은 커피를 탈 수 있는 정수기 물뿐이었다. 헌데, 거기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무슨 의지와 힘으로 거기까지 간단 말인가? 피로에 찌든 이놈의 귀차니즘! 사무실에는 신입사원은 고사하고 단 한 명의 후배 기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들, 다 죽었어! 하늘같은 선배가 이렇게 밤을 새고 있는데? 요즘 놈들, 다 빠졌다니까!”



재영은 아우성거리는 위장의 요구를 아예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감지도 않았는데 두 눈에 커피가 두둥실 떠다녔다. 자신을 몰아치는 생리적 이상 반응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어라, 모니터 화면에도 커피가 떠다니네?’

“알았어, 알았다니까! 끙. 영차!”



재영은 계속되는 공복의 침공에, 적에게 끌려가는 노예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먹다 죽은 놈, 때깔도 곱다 했으니 커피 두 봉지는 기본이었다. 재영은 커피포트에 정수기 물을 넣고, 커피믹스 두 봉지를 머그잔에 털어 넣었다. 먼지투성이인 커피포트의 뚜껑을 보며 후배들을 더욱 굴릴 것(말로만)을 다짐한다.



“확실한 교육이 필요해!”



재영은 저 혼자 떠들며, 물이 끓는 동안 어둠이 견고하게 내려앉은 도시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이 취재기획안을 마무리하는 동안 지구를 태울 듯이 이글거리던 태양은 여기저기 솟아 있는 건물 뒤로 사라져버렸고, 창문을 통해 새어나간 빛이 어둠을 밀어낸 채 서늘해진 도로를 덮고 있었다. 재영은 문득 자신의 열정과 고뇌가 거기에 포함돼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미디어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최초로 정립(그러나 미디어 발전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너무 주관적이고 현학적이며,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으로 본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지만)한 마샬 맥루한의 선언이 분명하게 다가왔다.



미디어는 빛의 속도로 전해지는 메시지고 메타포다!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의 속성이 더 위험한 것은, 탈레브의 주장처럼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인간은 많이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를 생각하는 순간일 텐데, 정보의 바다에 빠져버린 인간은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 기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능하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권위가 기억력에 의해 나온다 해도 이제는 그 기억마저 책이 아니라 구글이나 네이버의 검색엔진이 대신해주니 앞선 이들의 경험은 홀대 받기 일쑤다. 검색된 내용들은 대부분 평이한 단어로 짧게 요약된 표피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것도 두뇌의 계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네티즌이 수용하는 평균보다 조금 길거나 사용된 단어와 문장이 순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는 거의 대부분 외면된다. 이는 수많은 링크가 달린 정보를 끌어오는 검색엔진이 본질적으로 얕고 빠른 이해를 추구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검색엔진 위주의 인터넷 업체는 광고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그들은 검색을 하는 네티즌이 최대한 한 사이트에 적게 머물게 할수록, 그래서 최대한 단시간 내에 다른 사이트로 넘어가 또 다른 광고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강준만 교수가『대중매체 이론과 사상』에서 폴 비릴리오의 말을 빌려 지적한 것처럼, 네티즌들이 인터넷이 제공하는 ‘속도의 파시즘’에 중독되거나 갇혀버린다. 네티즌들은 그들이 방문한 사이트마다 흔적을 남김으로써 정치와 종교적 편향성, 특정 제품에 대한 기호와 중독 정도, 분야별 콘텐츠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나 본능적이며 생리적인 성향, 그런 콘텐츠를 찾는 횟수와 시간적 간격에서 나타나는 충성도,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는 물론 소셜네트워크와 인맥사이트에서 가족이나 친구, 여가 시간에 대한 정보까지 지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렇게 노출된 정보와 데이터들은 구글이나 애플 등의 대규모 클라우팅(또는 컴퓨팅) 서버에 축척되고, 끊임없는 마이닝을 거쳐 한 인간에 대한 거의 완벽한 수준의 분석이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각각의 네티즌의 생각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구글과 애플 등은 적재적소적시에 개별적 타깃 마케팅을 실시해 광고주의 상품 판매를 극대화시킨다. 결국 네티즌들은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정된 상품 정보와 개별 광고를 수동적(반강제적이 더 적절하겠다)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휴대기기를 갖고 변기 위에 있거나 TV나 PC 앞에 있거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을 통해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욕망이 꿈틀거린다. 겨우겨우 눌러온 소비 본능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마구마구 분출시킨다. 뽕 맞은 것처럼 판단과 사고기능이 마비된다. 신상, 신상, 신상이야! 에라 모르겠다! 변기에서 뒤도 확실히 닦지 않은 채 후다닥 해당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통화버튼을 터치한다. 오! 구매할 때마다 느껴지는 달콤한 기쁨이여, 모든 욕망의 카타르시스여!



헌데, 구매를 마친 후부터 왠지 모를 구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항문에서 시작된 찝찝함이 현실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통장(마이너스 통장까지 통틀어)의 잔고가 익사 직전이다. 남편(또는 부인, 또는 애인, 또는 부모)은 언제 정리해고 당할지,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는 또 어떻고! 만날 삽질만 하더니 서민경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거야? 그리고 어떤 새끼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상품 광고를 보낸 거야? 모레까지 각종 공과금과 이자도 내야 하는데.. 결국 사고 나면 아무 쓸데없는 욕망의 소비에 빠져 더 많은 개인들이 파산지경에 이르고 광고주와 미디어 매체들은 떼돈을 번다. 이것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이면동체인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정점이다.



“기자라고 다를 게 없어. 허구한 날 인터넷만 뒤지잖아? 발로 뛰는 기사가 진짜인데 쉽게 얻으려고만 하니, 그들이라고 해서 실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겠어? 모든 게 수박 겉핥기식이지.”



재영은 기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참고할 뿐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사고력을 떨어뜨리고 인식의 방식마저 표피적으로 화석화시키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들은 진지함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질색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말장난에 환호했다. 심지어 각 분야의 전문가마저도 모자이크 식의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이제 원전이나 고전을 읽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이해의 폭이 줄고 인식의 방식마저 디지털화해 갈수록 이해와 가치 판단의 기준마저 변했다. 사람들은 깊은 명상을 외면한 채, 미디어가 제시하는 재미에만 몰두해 갈수록 ‘생각이 없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나는 소중하고 하나같이 쿨하니까, 골치 아픈 생각이란 꺼져 버려!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제기랄! 인류의 발전이란 다 허상이야.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잖아!”



재영은 디지털 시대에서 절대 불변의 위치에 오른 ‘쿨’한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즉각적이면서도 표피적이지만 세련되고 범사에 무관심해, 현실에서는 오히려 관대해 보이는, 어쩔 때는 파렴치한 엘리트 범죄에 대해서도 ‘뭐 그 정도 가지고’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가치 판단의 왜곡현상과 사고의 가벼움이 ‘쿨’한 것이었다. 물론 개념만 있다면 재미만 추구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으리라. 드라마, 오락, 뉴스, 다큐멘터리, 스포츠, 연예정보, 리얼리티로 포장한 각종 프로그램에 몰입해, 허상과 실제의 사이에서 방랑하는 디지털 유목민의 신세가 된다고 해도 내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수동적이면 뭐 어때? 삶은 어차피 내가 선택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사회의 몰락, 지옥은 언제나 타인이라는 생각을 조장하는 중심에 미디어가 있어. 나도 그 일원이고. 오죽하면 기레기라고 하겠어.’



재영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끔씩 질주하는 차량의 경적과 브레이크 소리가 빛과 어둠의 파편을 만들며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지만, 재영은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 생각의 연계를 끊어버리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 공기를 마구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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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4.12.29 09:00 신고

    한주의 새로운 시작이네요 행복한 한주 열어가세요






재영은 유선전화로 짧게 통화한 X를 만나기 위해 세 번이나 장소를 바꿔야 했다. S신문사의 내부문제를 고발하겠다는 X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만남을 두 번이나 번복했기 때문이다. 재영은 X를 설득하느라 도로 위에서 1시간 반 이상을 서성거려야 했다. 재영은 그 과정이 마치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insider〉를 연상케 했다. 1996년 묘국의 CBS 방송사는 시사프로그램 <60Minutes>에서 묘국 3대 담배회사의 하나였던 브라운&윌리엄슨의 개발자이자 부사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던 제프리 위건드가 회사가 저지른 불법행위(매출을 늘리려고 담배에 암모니아 화합물을 넣어 흡연자의 중독성을 강화시켰음)에 대한 의회 증언에서 회사 임원들이 허위증원을 했다는 리포트를 했는데, 방송사 경영진이 방송 시작 직전에 프로그램 방영을 취소시켰다. CBS 경영진이 방송을 취소시킨 이유는 자문 변호사들과 특히 자문역을 맡았던 캐던이 위증에 대해 리포트를 한 위건드가 담배회사 퇴사 시 ‘비밀 보호 각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방송이 나가면 CBS가 담배회사로부터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손해배상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면의 진실은 조금 달랐다. 당시에 CBS를 소유하고 있던 로스 사가 웨스팅하우스에 CBS를 매각하려 했기 때문에 담배회사로부터 소송을 당하면 매각 가격이 하락하거나 매각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의회에서 위증을 한 담배회사 임원중에 앤드루 티시는 로스 사의 대주주인 로렌스 티시의 아들이자 로스 사의 자회사인 또 다른 담배회사 로릴러드의 사장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방송을 막아야 했다.

방송이 취소된 리포트 내용은 ‘배너티 페어’라는 소규모 언론사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지만 그 반향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고발을 한 위건드는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아내와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마이클 만 감독이 1999년에 영화화한 것이 <insider>였는데, 이를 통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줬으나, 그때에는 이미 “미국 텔레비전에서 탐사 저널리즘은 거대 기업의 이익에 희생”되었고, 미디어 합병을 주도한 복합기업들의 이익 때문에 감시견으로써의 언론은 이미 고사 직전에 이른 상태였다. 어쨌든 러셀 크로가 연기한 위건드가 X라면, 이 사건에 대해 가장 상세한 보도를 한 그로스먼이 자신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대한민국에서도 몇 번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회사나 조직이 승리했다. 하물며 폭로의 대상이 절대적 세력인 거대 언론사라면 내부고발자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으면 폭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파워엘리트들의 ‘이너 써클’의 위력이자 기득권의 힘이며 대한민국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넘지 못할 벽은 없어!”



재영은 스스로를 다짐하며 2시간에 걸친 마라톤 경주 끝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3대의 CCTV가 설치돼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분할된 화면이 잘리는 곳에 약속 장소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재영은 그간의 취재에서 사건 현장이 촬영된 CCTV 화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자일 가능성이 높은 X 또한 취재 경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물론 CCTV에 『1984』에 나오는 텔레스크린(영상감지장치가 달려 있어 개인을 집 안에서도 감시할 수 있는 ‘빅브라더’의 최대 무기)처럼 구굴이 개인용PC에 내장된 마이크로폰을 이용해 개인이 TV에서 어떤 드라마와 버라이어티쇼, 리얼리티 프로그램, 광고 등을 선호하는지 알아내는 ‘오디오 지문인식’ 시스템과 인공위성으로 지구 전체를 촬영하는 구글어스에다가 거리를 실제로 찍은 스트리트뷰까지 더해지면 어떤 숨바꼭질도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재영이 생각하기에 X는 용의주도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아니면 이미 내부고발에 따른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는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떤 내용이기에, 이 정도까지 조심하는 거지?’



재영은 제보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의 더욱 증폭됐다. 그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은 후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안은 어두웠다. 마치 그 자체로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재영은 어둠의 핵심에 앉아 있는 X를 한 눈에 찾을 수 있었다. 무모하리만치 진실을 파고들었던 기자 본능과 수없이 단련해온 직감이 X를 향해 꿈틀거렸다. 재영은 빛의 방향에서 어둠의 영역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가 X에게 다가갈수록 어둠은 뒤로 밀려났지만 공간이 생기자마자 순식간에 그 공간을 다시 채웠다. 그것이 어둠의 힘이리라, X는 햇빛을 후광처럼 달고 오는 재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재영의 걸음 하나하나에서 내부고발에 따른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티끌만한 생명의 단서를 찾기라도 하듯이.



“M방송국의 김재영입니다.”

“앉으시죠.”



나지막한 재영의 말에 X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은 채,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톤으로 자리를 권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 있어서 마치 어둠의 일부분이 된 듯했다. X는 빛의 세계에서 다가온 재영이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떤 경우에도 방송을 내보낼 수 있습니까?”

“내용에 따라서요.”

“불가능하다는 말로 알겠습니다. 오늘 만남은 없던 걸로 합시다.”



재영의 답에 X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나가버릴 태세다. 재영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당신의 제보와 상관없이 S신문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갈 것입니다. 그쪽에서 내부비밀을 자료를 건네주시면 가는 길이 상당한 힘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방송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네요? 오늘 우리는 만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X가 재영이 걸어온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것은 빛의 세계인, 냉혹한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이게 당신의 제보와는 상관없이 제가 추진하고 있는 취재기획안 초고입니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오픈하지 않은 것인데, 보고 나서 말씀하시죠?”



재영이 탁자 위에 복사물 하나를 놓은 후 오른 손으로 X를 향해 밀었다. 제목이 인쇄돼 있어야 할 첫 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것은 아직 제목을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최신의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제보의 내용에 따라 제목이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직감적으로 상당한 폭발력을 지닌 제보가 분명하다고 판단한 재영이 일생일대의 도박을 선택했다.



“...”



창밖의 햇빛을 응시한 채 아무 말 없이 서있던 X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재영이 내민 복사물을 집어 들어 한 동안 첫 장의 제목 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첫 장을 넘겼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 속에서 간간이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날카롭게 일었다. 재영은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이렇게까지 섬뜩할 수 있음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입에 침이 마를 정도의 긴장감을 다스려야 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10여 년처럼 흘렀을까, X가 재영의 준 취재기획 초안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몇 가지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진행사항을 봐가며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X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를 유지한 채 가지고 온 봉투 하나를 재영에게 건넸다. 재영은 그제야 X가 몇 개의 봉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그에 맞는 시나리오를 세워둔 것이 분명했다. 재영은 X에게서 오랜 경험에서 나온 용의주도함은 물론 반드시 고발을 방송시키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기초 자료입니까, 아니면 각기 다른 제보 중 하나입니까?”

“둘 다 입니다.”

“알겠습니다. 추후의 연락은?”



재영이 봉투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것 같기도 했고 예상외로 가벼운 것 같기도 했다. 모호한 무게였다.



“명함에 나온 것 말고 다른 핸드폰이 있습니까?”

“없습니다만..”



재영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X의 질문에 하나의 단어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대포폰?’

“그럼, 이 폰을 쓰시죠.”



X가 재영에게 위치추적이 불가능한 구형 핸드폰 하나를 건넸다.



‘역시! 정말 주도면밀한 자야.’

“대포폰이군요? 그쪽의 전화만 받을 수 있는?”



재영의 빠른 추리에 X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X는 거의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재영의 취재기획안은 물론, 그것에 못지않은 순발력까지 갖춘 재영에게서 미약하지만 희망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10분 정도 이곳에 더 있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X는 마지막까지 주도면밀함을 잃지 않았다. 재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X가 자신보다 경험 면에서 분명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철저한 주류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거대 신문사의 내부고발자가 된다면 X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재영은 문득 자신의 목표가 담겨 있는 취재기획안의 무모함이 피부에 와 닿았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의 10분의 시간이란 예상보다 길기도 했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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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4.12.26 09:08 신고

    이 영화는 보지 못했네요 잘보고 감니다





재영은 언론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예언적 문구와 선험적 경고, 음모론적인 질문을 동원해 문제의 취재기획안을 마무리 지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찼던 초기의 문구에 비하면 그나마 경험과 세월의 풍화작용을 통해 많이 다듬어지고 순해진 문구였지만 휘발성만큼은 여전했다. 그 때문에 지난 3년 동안의 준비기간 중에서 기획취재안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높이려는 최근의 6개월의 노력은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피 말리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연이어 터지는 대형사건이 주는 과다한 업무량과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관심과 비정상적인 조직의 변화가 초래한 상황은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사로잡힌 대가치고는..’



재영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아서도 역사적 퇴행을 멈추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을 작심하고 비판한 결론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마음속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취재기획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취재량이 점점 늘어나는 기존의 업무와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기획취재팀에 속한 기자의 수도 줄어들었다. 결국 재영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잠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체중이 무려 5kg이나 빠졌고 늘 만성피로에 시달려야 했다. 사투에 사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가 비록 육체를 극한까지 몰고 가는데 익숙하다 해도 취재를 하러 지방이라도 갈라치면 취재차량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가 다반사였다.



‘욕도 많이 먹었어. 여기가 무슨 모텔이냐, 자신이 기사냐, 귀에 박힐 정도였으니.’



재영은 무엇보다도 정현 선배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녀는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여러 가지 조언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줬고 자신의 열정이 지나칠 때면 너무 나가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했다. 기자로서의 자신에게 그녀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가 연예본부로 발령(보복성 인사였다)난 후 상황이 급변했고 지금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취재기획안이 늦어진 것도 그 결과였다.



‘오긴 왔는데.. 가능할까?’



문제는 재영 스스로 생각해도 기획취재안의 휘발성이 너무 높아 어디서 뇌관이 터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혼자 진행하는 것도 버거운데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자체 폭발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따라서 기획취재가 몰고 올 파장을 대비해 치밀한 논리와 완벽에 가까운 사전 조사, 확실한 정보원과 사후대책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여기서도 정현이 물려준 경험과 그녀가 넘겨준 10년 치의 취재자료가 있었다. 그것은 기자로써 생명을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전적으로 선배의 덕분이었어.’



재영이 보기에 정현은 언론인의 전형에 가까웠다. 그녀와 함께 한 취재 경험은 아웃사이더적 경향이 심했던 재영을 세상의 중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해줬다. 재영은 이런 현장 경험을 통해 정치와 자본의 역학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이면의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게 됐으며, 거대 미디어의 힘과 영향에 대해 뼈 속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갈라진 안개 틈으로 흘깃 보이는 광경처럼, 생생하지만 뚜렷한 형태를 이루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마는 전체에 대한 세부 광경들의 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았다. 재영은 조각들이 만들어낸 전체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고 호기심을 넘어 사실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제야 볼 수 있었어. 실체의 추악함을.’



진실은 실체의 바로 뒤에 숨어 있었다. 비록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딱딱하면서도 울퉁불퉁한 표면에도 내부의 진실은 얼마간은 반영돼 있기 마련이다. 재영은 무엇이든지 접촉하기 전에는 파악하지 못하는 감각의 게으름을 깨워 이성의 칼끝으로 표면을 긁어냈다. 여러 가지 부스러기가 떨어져나갔고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하나하나 취재수첩에 기록하고 ‘우영워드’에 옮겼다. 그렇게 내부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측량할 수 없는 노력과 끈기, 불굴의 투지가 필요했다. 실체의 진실에 다가가도 모든 것을 보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어쩌면 이런 경우가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재영이 소화해내기 힘든 일말의 두려움이 자리했다. 지금까지 어떤 두려움에도 굴복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견고한 것들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와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는 법이다. 개인이 그 앞에 서면(실체 앞에 선다는 것조차 기적 같은 일이다) 터무니없이 왜소한 자신에 대해 비로소 깨닫는다. 두려움은 언제나 그런 과정을 통해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야 없지. 그건 내가 아니야.’



재영은 건조한 미소를 머금었다. 언제나 그는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런 미소를 머금었다. 그 다음은 오직 폭풍 같은 돌진만이 있을 뿐이다. 비록 지난 1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 언론의 실체까지 파고들지 못했어도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힘의 추악함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것만을 보고 전력을 다해 파고들었다. 그것은 무모하리만치 직선적인 방법이어서 위험 부담이 컸지만 그것이 재영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특유의 선택이었다.



‘시스템! 네놈의 실체가 어떻든 간에 기다려, 내가 갈 테니.’



재영은 가장 큰 타깃이자 최대의 언론 시스템인 보수언론과 국정홍보처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자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행태에 취재기획안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우선적으로 국내의 미디어 관련 법률을 검토했으며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가들의 법률과 자료들도 취합했다. 그렇게 해서 거대 미디어 통합과 집중에 관한 분석의 틀을 세웠다. 형이 남긴 파일에 요약돼 있는 언론 관련 서적들의 내용도 커다란 도움이 됐다.



‘거기까진 순탄했어. 대학원 때부터 구상한 것이었고 준비도 철저했으니까.’



재영은 취재 틈틈이 미디어의 관련 분야의 고전에서부터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최근의 책까지 수백 권의 책들을 섭렵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관련 논문들도 확보해 촬영하거나 복사한 후에 ‘우영워드’에 담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난 20여 년간의 관련 기사와 칼럼, 논설, 뉴스와 각종 영상자료 등도 일일이 참조했다. 그 밖에도 언론 분야 전문가와 교수, 전ㆍ현직 관료(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자도 있었다)와 일부 야당 정치인(말만 많았지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도 취재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취재기회안의 객관성과 보편성은 물론 기획취재의 당위성과 논리의 정당성을 강화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가 축적돼 재탄생된 취재기획안은 무서운 속도로 설득력을 높여갔다. 하지만 ‘우영워드’의 도움을 받더라도 재영 혼자서 지난 60년간 쌓여 견고해진 거대 언론과 공영 방송의 장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혼자서 움직여야 했고, 그 때문에 1년이 넘도록 실체적 진실의 바로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가 최대 고비였어. 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헤매고 있었을 거야.’



재영이 점차 지쳐가는 중에 뜻밖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그것은 유난히 추웠던 지난 1월의 한파가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 (처음에는 정현에게 온 전화였지만 담당자가 재영이라며 그녀가 돌린)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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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4.12.24 09:14 신고

    언론인 정운현씨가 쓴 '작전명 녹두'가 생각납니다.
    책으로 엮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늙은도령 2014.12.24 11:30 신고

      네, 노력할게요.
      이것은 제 모든 것이 녹아 있어서 퇴고 과정을 거친 후 반드시 출판할 것입니다.

  2. 달빛천사7 2014.12.24 09:40 신고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가족들과 좋은시간 보내세요

  3. 박창식 2014.12.24 15:38 신고

    메리 크리스마스!!!늙은도령님.

    강건하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 늙은도령 2014.12.24 20:58 신고

      네, 고맙습니다.
      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십시오.
      건강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이 놈의 정부가... 에고ㅜㅜ







다다다다다다다다!



일정한 속도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100여 개의 책상이 놓여 진 수백 평의 공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벽과 창문에 부딪친 소리는 미세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파장은 형광등이 방출한 창백한 빛과 어우러져 지옥에서 흘러나온 사자(死者)의 곡성처럼 섬뜩하게 울렸다. 가끔씩 속도가 줄어들거나 어쩔 때는 멈추기도 하던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이어지다가 1분 전부터 완전히 멈췄다. 그렇게 수백 평에 이르는 공간이 다시 정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쯤, 평정을 찾아가던 공기를 연속적으로 뒤흔들었다.



다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



규칙적인 소리가 다시 한 곳에서 시작돼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들은 앞서 출발한 소리의 반향과 섞이거나 예외 없이 벽과 창문에 부딪쳐 새로운 반향을 만들어낸 소리는 수백 평의 공간에 극미한 파문을 일으키며 날아다녔다. 서서히 소멸하여 증발하는 소리, 그 불연속한 에너지의 방출은 중앙 출입문을 기준으로 우측 창가 끝부분에 자리한 재영의 자리에서 출발했다. 예정된 취재를 마치고 그가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는 낮은 비구름이 도심의 하늘에 걸려 있던 축축한 낮과 어둑한 밤 사이였는데 지금은 도시 전체가 무겁고 조밀한 어둠과 빛의 공해 속에 잠겨 있었다. 도심의 조명이 방출하는 현란한 빛들과 그 총천연색 파동을 삼키는 어둠의 물질이 소름이 끼칠 정도의 균형을 이루고 있어 그 안정감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영은 워드 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이제 끝이 보인다. 사무실 밖에서 일어난 변화를 전혀 깨닫지 못한 재영은 조금씩 지쳐가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처럼 보수 언론의 신방겸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가치에 대한 국가적 의제를 선정하고 논의의 범주를 제한시켜 국민의 후생 증진이 아닌 특정 이념과 한정된 광고주와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증대에 몰두할 것이라는 한정된 프레임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사기업적인 요소가 강한 대한민국의 거대 언론에 비해 다양한 의견을 제공하는 독립 언론의 부재는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기존의 거대 언론매체와 초국적기업에 의한 일방적인 미디어 통합이나, 광고수주나 협찬 주문 등의 무한경쟁으로 이끌어 미디어 생태계, 그 자체를 공멸로 이끌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 또한 같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거대 언론과 초국적기업에 의한 미디어 통합과 미디어 생태계의 파괴는 공공담론의 형성이라는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하면서도 하층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여론의 통로를 제한할 것이며, 광고와 협찬을 유치하는데 절대적 기준이 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돼 선정성과 폭력성 높은 프로그램들을 남발해 시청자의 안방까지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비관적 결과를 예측해낼 수는 있다. 이탈리아 언론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가 자신 소유의 방송들을 통해 총리 재직 시의 실정에 대해 아예 기소조차도 할 수 없는 면책특권을 통과시키는 등 자신과 추종세력에게 유리한 일방적 주장을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국민의 탈정치화를 만연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도배시킨 ‘베를루스코니 효과’가 이를 생생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청자 인식의 오락화는 정치적 무관심을 더욱 심화시켜 정치의 오락화를 초래하고, 1년 예산이 400조에 이르는 정부의 예산집행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약화시킨다. 그 결과 시대의 과제인, 지속 가능한 성장과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더욱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언론기업을 구축한 머독 소유의 타블로이드 잡지,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무차별적인 도청사건에서 보듯, 행정ㆍ입법ㆍ사법에 이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이 신방겸영과 소유권 집중을 통해 민주주의를 그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는 현실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는 있다.



이제 언론이란 다양한 공공담론의 형성과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감시견으로써의 역할에서 벗어나, 정부에 대한 ‘언론의 감시’가 아니라 정부와 국민에 의한 ‘언론에 대한 감시’가 시대적 사명으로 바뀔 정도로 절대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암울한 현실인식도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현상을 경계하는 수많은 언론학자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거대 언론에 의한 미디어 통합과 집중은 개인과 사회, 개인과 기업, 개인과 국가가 소통하는 길목에 자리해 광고주와 언론기업 자체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종국에는 그들 스스로 권력과 탐욕의 권좌에 오를 때까지 욕망의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선험적인 분석과 현실적인 입증사례들을 살펴보고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나 극도도 상업화되는 언론환경에 대해 공통의 우려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는 표피적이며 단층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시안적 판단들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표층 프레임을 걷어내고 그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거기에 무엇이 웅크리고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 만천하에 밝혀내야 한다. 그 회심의 미소는 당연히 언론의 신자유주의화와 선정적인 보수화다. 광고대행에 대한 위헌판결이 그 첫 단계이고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표류에 따른 각 사의 독자적인 광고수주가 중간단계이니 그들의 계획은 점차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가 운영체제의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가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두 개의 지배적 시스템이 남았으니 그 하나가 인터넷과 통신이요, 그 나머지가 언론이다. 인터넷은 물론 메이저 신문과 방송도 광고와 협찬으로 움직인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부산물일 따름이다. 따라서 광고시장이 공공성을 잃고 무한경쟁의 장이자 승자독식의 정글로 접어들면 언론의 공공성은 자동적으로 고사한다. 광고와 협찬을 기업과 정부, 특정 이익집단 등에서 따오지 못하거나 언론의 공익성과 다양성을 위해 광고와 협찬이 재분배되지 못하면 언론 자체가 돈이 말라 폐업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시청률에서 밀리고 광고주의 선호도에 반하는 공공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규제 철폐를 통한 시장 자유화와 자본의 무한 축적과 세습을 위한 노동유연화,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 등이 교조적 행동강령인 신자유주의가 침투한 영역치고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지켜낸 분야가 있었던가? 보수 신문의 종편 진출은 압축성장과 IMF 외환위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중하층을 삼켜버린 1%의 신자유주의가 회귀불능의 천 년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려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전파는 공공의 재산이라는 철학만으로 미디어랩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전파를 위임 받은 언론 매체의 투명성 강화는 민주국가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자 선진 복지국가로 가는 첩경이라는 주장도 광고와 협찬 시장의 파괴와 왜곡에 철지난 외침으로 전락할 것이다. 무한경쟁으로 달려가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압축성장과 외환위기 극복에 따른 과실의 재분배에 실패한 대한민국은 선진 민주국가로 진입하는 갈림길에서 멈춰서 있다. 지속적인 성장과 보편적 복지를 이루기 위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기존 질서에 머물러 퇴보할 것인가는 동방국 미디어 생태계를 건전하게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시급한 통과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개의 지상파로 모자라 대한민국의 언론 환경을 과포화 상태로 만들어버린 4개 종편의 디지털 방송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한 국회의 표결을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정당성도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광고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혼탁해지고 있다. 국민과 시민으로써의 우리는 언론이 민주주의의 감시견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여야 모두에게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공공재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언론의 존재가치는 그 다양성에 있으며, 오직 국민에게서 나와 국민에게만 귀속될 뿐 왜곡되고 편향된 광고나 협찬 시장에 귀속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여야 국회의원들과 정부는 언론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기업들에게 지나친 광고 협찬비용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통과에 당장 나서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사안이다. 언론의 신자유주의화는 국민과 시대의 이름으로써 막아내야 할 절대 명령이기 때문이다. 헌데 현 집권세력은 물론 야당마저도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통과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 여기에는 국민의 이익에 반하거나 그들에게 밝히지 못할 특별한 이유와 이해관계라도 숨어 있단 말인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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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정수면 1단계에서 4단계로 점진적으로 넘어가다가, 또 다른 변환기가 켜진 듯이 갑자기 새로운 상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느린 뇌파는 사라지고 각성상태처럼 빠른 뇌파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근육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잠들어 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역설수면’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근육은 꼼짝 않고 잠들어 있건만 뇌는 깨어 있는 것이다.

 

                                                            ㅡ 장 디디에 벵상의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 중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마침내 10의 32승에 이르는 온도를 넘는 순간 수없는 차원으로 뒤엉켜 있던 입자와 반입자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동안 쌓이고 쌓였던 무한히 응축된 에너지의 폭발이란 오직 빅뱅이란 말을 제외하면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가능한 모든 방향과 차원을 향해 무한히 많은 쿼크와 반쿼크는 물론 폭발의 순간 방출된 미증유의 복사열이 퍼져나갔다. 그 압도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온갖 차원의 시공간들은 생성과 동시에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1초가 더 지났을까, 6개의 쿼크들이 무한대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자기장을 만드는 입자가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그 핵심적 움직임의 잔영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신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지만 분명 시선 속에 잡힌 무엇인가가 있었다.

 

 

곧이어 수소와 헬륨, 리튬과 중소수 같은 최초의 원자핵이 만들어졌다.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의 인력이 질량이 없는 전자들을 잡아당겨 일정한 궤도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구름떼를 이루자 비로소 물질과 반물질이 생성됐다. 빅뱅의 순간에 생성된 복사와 물질과 반물질이 혼재하는 최초의 우주가..

 

 

‘우주가... 아니야 다른 건 필요 없어. 쿼크들에게 질량을 부여한 입자의 움직임만, 전자기장의 생성방식만 떠올리면 돼! 헌데, 이런 지랄 같은 경우가 어딨어?’

 

 

재우는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에너지조차 자신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설수면에 든 자신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뇌의 기능을 극대화해 입자가속기에 비견될 만한 능력을 펼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현실의 행위로 이어지게 할 능력이 없었다. 수경의 도움으로 그렇게 원했던 완벽한 역설수면에 들어설 수 있었지만, 그래서 우주 탄생의 신비까지 꿈꿀 수 있었지만, 그 바람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에너지 한 방울마저 상실해버렸다.

 

 

‘제기랄, 깨어나야 뭐라도 하지!’

 

 

재우는 미칠 것 같았다. 분명 자신이 완벽한 역설수면 상태에서 본 것은 모든 입자에 질량을 선사해 물질을 만들 수 있게 해준, 소위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가 분명했다. 힉스 입자가 만들어낸 전자기장에 의해 질량도 없는 기본입자에 질량을 생성해주는 방식을 마침내 본 것인데 이제는 반대로 역설수면에서 깨어날 방도가 없어져 버렸다.

 

 

‘신의 비밀을 알게 됐으면 뭐 해? 깨어날 수도 없는데.’

 

 

깨어날 수도.. 깨어날 수도 없다면 다 부질없는 것이다. 재영은 역설수면에서 빠져나올 에너지를 끌어 모을 수 없었다. 


 

‘수경이.. 수경이 그렇게까지 해주었는데.. 이게 뭐야? 깨어날 수 없다니. 제기랄!’

 

 

재우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신의 신체 중 오직 뇌와, 시각 및 청각 기능 일부만 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것도 깨어나야 쓸 수 있는 것이니, 동생이 부탁한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깨어나야만 한다. 그건 절대 명령이자 수경의 사랑과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수경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재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살이란 살이 모두 빠져나간 그의 얼굴 위로 태초의 순간처럼 햇빛은 눈부셨다. 비스듬한 햇빛의 각도 때문에 재우의 얼굴은 차라리 해골에 가까웠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였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바꾸겠다니..’

 

 

수경은 다시 한 번 재우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본다. 거의 1분에 한 번씩 내쉬는 숨이 극히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이어지고는 있었다. 재영의 말로는 재우가 완전한 역설수면에 든 것 같다고 했지만 수경은 갈수록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숨 쉬는 주기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어. 링거가 들어가는 속도도. 깨어나겠지? 깨어나지 못하는... 아니야, 오빠는 깨어날 날 거야. 반드시, 반드시 말이야.’

 

 

수경은 재우로부터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자신이 역설수면에 들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육체의 활동에 공급되어야 할 에너지의 대부분이 뇌로 공급되는 정체불명의 천형 때문에 뇌의 능력이 극한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재우의 잠은 죽음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완전한 역설수면에 들면 뇌의 기능이 최소한의 에너지로도 최대로 돌아갈 수 있지만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 재우의 말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수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오빠.. 꼭 깨어나야 해.”

 

 

수경은 상체를 굽혀 재우의 귀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한 다음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실려 있는 인지하기 힘든 슬픔의 조각들이 억지로 끌어올린 희망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오빠, 내 선택이 틀리지 않게 해줘. 꼭 깨어나야 해.”

 

 

수경은 자신의 몸에 가득히 흐르고 있는 삶의 에너지라도 넘겨주고 싶었다. 세상의 이면을 파 해쳐 보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 형제의 무모한 여정에 합류했지만, 이 자인한 천형의 고통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재우의 잠이 길어질수록 두려움과 후회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사실 수경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 비루했기에 이 위대한 형제의 계획 속에 합류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자신이 경험한 세상이란 모든 것이 속이고 뺏고 탐하고 버리는 것이었다. 헌데 이 형제들의 삶이란 서로의 특징이 정반대인 것만큼, 서로 기대고 주며 끊임없이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래, 한 번은 예루살렘에 가고 싶었어.’

 

 

사실 수경은 수많은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의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에 가보고 싶었다. 그곳을 향해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예수와 마호메트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순수하고 간절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신앙이 서로 교차하고 만나는 그곳에서 순례자들은 어떤 삶의 이정표를 제시받았는지, 어떤 구원의 약속을 받았는지, 그래서 지옥 같은 삶의 방향이 변했는지 그 일부라도 알고 싶었다.

 

 

길을 가다 보면 순례자들이 세웠다는 돌탑이 나올 것이고 자신도 그 탑 위에 작은 돌 하나만이라도 얹어놓고 싶었다. 순례자 중 누군가가 거기에 처음으로 돌을 놓았을 것이고 그 뒤에 왔던 순례자들도 하나씩 돌을 얹어놓는 과정에서 하나의 탑이 세워졌다면, 자신도 그런 행렬에 동참하고 싶었다. 처음에 돌을 놓았던 사람의 마음과 그 돌 위로 새로운 돌을 올려놓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난 그저 순례자 중의 한 사람이라 되고 싶었을 뿐이야.’

 

 

헌데 정말로 그런 단 하나의 꿈을 실현할 수가 있게 되었다. 삶에 이리 채이고 저리 차이는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느닷없이 없었지만 모든 사람들 위로 내리는 햇살처럼 분명히 다가왔다.

 

 

‘그래, 그때부터였어. 내 삶이 송두리째 변한 건.’



(재영과 수영의 첫 번째 만남이 이어져야 하는데 쓰지 못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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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오늘 난 오빠를 내 삶에서 단 한 번뿐인 사랑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사랑? 사랑? 사랑!’



재우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듯 맹렬하게 달려드는 심장과 기타 등등의 모든 것들을 두 눈에 담아 수경을 향해 일거에 발사했다. 슈퍼맨처럼 재우의 눈에서 발사된 빛이 너무나 강렬해 수경은 지난 24년 동안 자신을 가둬둔 칠흑 같은 어둠이 일거에 걷혀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오랫동안 쌓여서 견고해질 대로 견고해진 거대한 어둠이 그 순간만큼은 온통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재우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새삼 깨달은 수경은 울컥하는 마음에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가슴은 격하게 떨렸고 말은 나오지 않았으며 호흡은 갈수록 가빠졌다.



‘안 돼! 감정에 휩쓸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직 남아 있는 의식이 많잖아? 정신 차려, 이수경!’



수경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자신을 강하게 몰아쳤다. 이제부터는 재우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으리라 몇 번을 다짐했다.



‘괜찮아 수경아. 뭐든지 말해봐. 네가 무슨 말을 하던 난 받아들일 테니까. 네가 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면 이미 넘치도록 충분하니까.’

“오늘 오빠와 우리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둘만의 결혼식?’

“첫날밤을 보내려고 해. 그래서..”

“결혼식이라고?”

“먼저 오빠의 몸부터.. 응, 결혼식.”

“뭐, 첫날밤까지?”

“응, 첫날밤까지. 결혼식을 올린 후에 우리 둘이서 신혼여행을 갈 수 없으니까.”

‘결혼식? 신혼여행?’

“수경아, 너 도대체..”



재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생각과 말이 섞이고 대화가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단호한 표정과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수경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재우는 뇌의 핏줄을 터뜨려버릴 듯 맹렬하게 내뿜는 심장의 펌프질 때문에, 그에 따른 통제 불능의 에너지 폭발 때문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마구잡이로 날아다니고 어디선가 온갖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렸다.



“대체 너.. 너..”

“그래서 지금부터 오빠의 몸을 깨끗이 닦을 거야. 난 이미 다 닦았으니까.”



수경은 이마의 핏줄의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재우의 상태를 무시한 채 살과 근육이 거의 다 사라진 재우의 몸에서 헐렁한 옷들을 모두 벗겼다. 수경은 푸른 핏줄이 선명한 투명한 피부의 재우의 몸 구석구석을 미리 준비해둔 젖은 수건으로 정성들여 닦았다. 심지어 아주 조금이나마 커지고 단단해진 재우의 성기와 사타구니까지 깨끗하게 닦았다. 재우는 핵폭발에 버금가는 에너지 발산(1분 안쪽의 야동 샘플을 본 정도)과 모든 핏줄을 터뜨려버릴 듯 미쳐 날뛰는 심장박동(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저혈압), 거칠 대로 거칠어진 호흡(지독한 입 냄새를 동반한)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생각들의 범람(빛의 속도)에 본능과 이성이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풍선처럼 쪼그라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특히 젖은 수건이 그곳을 닦을 때는 온몸이 그대로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재우는 급격히 혼미해지는 정신을 잡아두느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세포 하나하나마다 잠재돼 있을 지도 모르는 생명의 에너지까지 끄집어내야만 했다. 극도로 흥분한 것이 육체적 반응의 미미함인지 정신적 반응의 폭주인지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살아서 수경이 준비한 의식을 다 치르려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하나밖에 없었다.



‘멍 때리기! 멍 때리기! 난 지금 아무 생각 없어. 머릿속이 하해. 텅 비었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내 이름이 재우인 것도. 아 아니야, 재우가 누구야? 생각은 지금 외출 중. 남아 있는 생각 없음. 머리가 텅 비었음. 수경이 어딜 닦는지 모름. 헉, 이게 뭐야? 생각하지 마! 생각하면 안 돼! 안 돼!’



재우는 욕정의 외적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주문을 외웠다, 면벽참선에 들어간 10년차 고승처럼. 그리고 마침내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수경의 손길이 멈췄다. 성욕이 집중되는 곳을 무력화시키느라 재우는 이미 극도의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고 이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극도의 나른함과 몇 배는 커진 것 같은 중력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부족으로 육체의 반응이 급속히 느려지는 것은 마치 세포의 질량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 지구보다 몇 배는 강한 중력에 짓눌리는 압박처럼 작용했다. 



재우는 무력해지고 무거워진 육체가 지구의 중심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압박감을 느낄 때면, 무방비상태로 죽음으로 빨려 드는 극도의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 생생하고 느리게 진행돼서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빠져 드는 그 압도적인 공포란 죽음 그 자체보다도 두려워서, 살려 달라고 모든 것들에 매달리는 그 비굴함이란 결국 무한정의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또 한 번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가졌고,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한낱 쓰레기로 전락시키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위대한 뇌가 감당해야 할 저주 받은 육체의 공황장애이자 확실한 쿠데타였다.



‘제기랄! 발기할 거면 확실하게 발기할 것이지, 에너지만 축내는 이 염병할 정신적 발기란 뭐란 말이냐? 이 버러지만도 못한 한심한 놈아!!’



재우는 극도의 자괴감과 맥없이 스러진 성욕의 폐허에 누워 초점이 풀린 시선으로 수경을 바라보았다. 헌데 자신의 자괴감을 보상해주려는지 한껏 상기된 표정의 수경이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지 않았고 볼록한 가슴의 기복도 평상시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빠르고 컸다. 사실 수경은 재우의 몸에서 일어난 반응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자 밀물 듯이 달려드는 두려움에 단단히 여민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젖은 수건으로 닦아도 해도 미약하나마 반응을 보인 성기의 변화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댐도 작은 균열에서 무너져 내린다 했어. 여기서 흔들리면 안 돼! 오빠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끝내야 해!'



수경은 어금니를 질끈 물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모질게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연분홍 원피스의 단추들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수, 수, 수..”



재우는 수경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뒤늦게 있는 대로 커진 두 눈을 감지 않으면 대뇌피질 안팎으로 촘촘하게 퍼져 있는 핏줄들이 온전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인간의 욕구와 욕망, 쾌락과 고통을 관장하는 시상하부는 부글부글 끓어오를 듯했다. 좌반구와 우반구 사이에 있는 물은 물론 뇌의 빈 부분을 채우고 있는 100밀리리터쯤 되는 물이 모두 동원된다고 해도 안정된 온도를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수경은 재우의 반응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풀어진 단추 때문에 헐거워진 원피스에서 양 팔을 빼낸 후 어깨 부위를 아래로 내리자, 스르르 툭 - 이것이 매미처럼 탈피하는 수경의 원피스가 24살 물오른 처녀의 가슴에서 복부와 골반을 거쳐 발목까지 떨어져 내리는 현실세계의 소리였고, 우르르르르 콰아아아앙! - 이것이 그 짧은 시간에 재우의 뇌에서 일어난 길고 긴 소리였다. 의식을 치르기로 작심한 수경은 원피스 안으로 브래지어와 팬티도 입고 있지 않았다!



‘어, 어, 어..’



이제는 생각조차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든 재우는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잡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것처럼, 조금 전까지의 수경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 염병하고 지랄 맞은 시간차는 어떤 경우에도 재우가 극복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고 이미 수경의 모든 것은 해마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후였다. 아무리 부정하고 억누르려 해도 대자연의 절경을 담은 파노라마가 펼쳐지듯 떠오르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수경의 나신이란 아프로디테나 비너스 여신보다 수만 배는 강렬하고 매혹적이었다. 생전 처음 드러낸 나신이 자신도 두렵고 부끄러운지 살짝 찡그린 미간의 주름과 너무나 긴장해 가늘게 떨리는 온몸의 탄력이란 천하의 서시인들 이만했겠는가? 태양도 부끄러워 구름 속에 숨어버렸고 정지한 듯 멈춰버린 바람마저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는 듯했다.



‘헌데 수경아, 너의 나신에서 느껴지는 처연함이란 무엇이니? 초점 없는 눈동자에 갇혀 있는 체념이란 무엇이니?’



재우는 좌뇌와 우뇌를 제멋대로 넘나들던 온갖 생각과 정념들이 정지하는 것도 모자라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느낌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재우는 툴툴, 허파를 떠난 허한 웃음이 입 밖으로 새나오지 못하게 막아야 했고, 급속도로 식어버린 심장이 미처 내보지 못한 피를 감당하지 못해 허둥대는 것처럼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어야 했다. 그것만이 모진 마음으로 의식을 거행하는 수경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기 때문이다.



‘이건 또 뭐야?’



재우는 무너져 내리는 에너지 불균형에 가까스로 저항하는 중에 자신의 코앞에서 수경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그때 둘의 입술은 이미 포개져 있었다). 이어서 재우는 수경의 촉촉한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분명하게 머물러 있는 것을 느꼈다(그때 둘의 입술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재우는 수경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할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오빠, 이건 우리 둘의 첫 번째 입맞춤이자 영원히 깰 수 없는 결혼예물의 교환이야. 이제는 혼인서약을 해야 해.”

‘혼인서약?’

“결혼예물 교환?”

“나 이수경은 김재우를 남편으로 받아들여 평생을 사랑하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제 오빠 차례야.”

‘내 차례라고?

“나를 남편으로?”

“응, 내 유일한 남편으로.”



수경의 말과 내 생각과 말의 순서가 뒤섞여 혼란스러웠지만 재우는 다시 빨라지는, 그래봤자 평균적인 수에서 한참이나 부족한 심장박동과 미미하기 그지없는 혈압 상승을 용인했다. 애당초 에너지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본능적인 육체의 반응이란 지렁이가 꿈틀하는 것보다 못했기 때문에 막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재우는 천지개벽의 날처럼 영혼을 몰아치는 그 거대한 격랑과 지독한 운명의 장난에 자신을 던져버린 수경의 결심에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거의 바닥난 에너지는 육체를 넘어 뇌까지 잠식해 들어왔고 재우는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수경만 바라볼 뿐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뭐해 오빠? 이제 오빠가 혼인서약을 할 차례야. 날 부인으로 맞는 게 싫어?”

‘아니야, 절대! 나에게 넌 얼마나 과분한 사람인데, 내가 어찌 널.’

“하, 할게. 나 김재우는 이수경을 아내로.. 받아들여 평생을 사랑하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재우는 혼인서약을 낭송하는 중에 울컥울컥 넘어 오는 격정에 몇 번이나 말이 끊어질 뻔했다. 재우의 낭송이 끝나자 수경은 비로소 눈을 감으며 재우가 덮고 있는 이불 속 왼편으로 들어와 나란히 누웠다. 재우와 수경의 피부가 닿은 곳곳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불꽃이 일어 움찔하기를 수차례, 서로 다른 반응의 시간차와 뛰는 가슴을 힘겹게 진정시킨 수경이 조금은 열 띤 음성으로 말했다. 재우는 이미 과도한 에너지 사용의 후유증에 비몽사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사정이야 어찌됐던 수경은 이제 자신의 아내가 된 것이다!



“오빠, 이제 신혼여행만 남았어. 각오해야해, 절대 봐주지 않을 테니까.”

‘봐주지 않겠다고?’

“신혼여행?”

“응, 신혼여행. 여기가 신방이야. 우린 방금 도착했고, 지금은 낮이지만 지금부터 첫날밤을 치를 거야.”

‘첫날밤을 치른다고?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수, 수경아?”



재우는 있는 힘을 다해 수경을 불렀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숨을 길게 들이쉰 수경이 재우의 오른 손목을 잡아 너무나 탐스러운 가슴 위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몇 초 후에나 느껴지는 수경의 탄력적으로 솟아오른 가슴의 봉긋함과 격하게 뛰는 심장박동은 재우를 사지로 몰아가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헌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수경이 재우의 왼 손목을 잡아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자신의 처녀림 위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요동은 속도와 양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지만 미쳐 날뛰기는 뇌나 육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머릿속은 하해지다 못해 완전 진공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수경의 움직임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첫날밤의 거사라면 아직까지는 일방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재우가 설마설마 하는데 수경이 오른 손을 움직여 다시 꿈틀거리는 자신의 성기를 잡는 것이 아닌가? 수경이 절대 봐주지 않겠다고 한 말이 이것을 뜻했다.



“이제 오빠와 나는 하나가 된 거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수경은 수많은 고민 끝에 찾아낸 자신의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기를 바랐다. 사랑의 종류가 어찌 하나 뿐이겠는가? 감정에 따르는 것만이 사랑의 본질은 아니리라, 수경은 그 이상을 생각했고 실천에 옮겼다.



‘바다는 언제나 자기 집에 앉아 생을 혐오하는 이들을 유혹할 것이고, 수수께끼에 대한 끌림은 최초의 슬픔을 넘어선다. 마치 그러한 슬픔을 현실이 충족시킬 수 없으리라는 예감처럼 말이다.’



재우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나오는 문구가 떠오르는지,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자신의 성기를 움켜쥔 수경의 손에서 전해오는 사랑의 열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에 너무나 서글펐다. 하지만 육체적 무능력이 한계치를 넘은 나하고의 첫날밤을 이보다 더 현명하게 풀어낼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니콜라이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가 나누는 마지막 정사도 이만은 못하리라. 하지만 끝없는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감각과 감정의 배설은 그 핵심이리라. 쾌락적 만족은 엄청난 에너지의 소실을 동반하고 그 후유증은 온전히 육체의 몫이라면, 이 정도의 거사로도 재우는 정사를 하면 죽어가는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정말로 복상사를 당할 수도 있었다.



쾅! 콰앙! 콰아앙!



마침내 재우의 육체와 뇌에서 천지개벽하는 빅뱅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우주 탄생의 순간이 그러했을까? 무한대로 분출하는 에너지와 급속하게 팽창하는 시공간에 뿌려진 물질과 반물질의 향연! 모든 것을 태울 듯한 복사열과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빛의 탄생! 끝없이 늘어나는 시공간을 채워버린 암흑물질과 결합된 물질과 반물질이 방출해낸 에너지에 의해 모든 방향으로 늘어나는 우주와 기본입자들! 진공 속에서도 요동치는 소립자들! 그리고 재우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원자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 소멸을 감당하지 못해 그대로 혼절했고 그 때문에 재우는 수경이 마지막으로 한 말 ‘사랑해’를 끝내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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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확백이 홈페이지에서 인용



“나는 이제 디지털 세상을 정의로운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에너지 불균형의 결과인 내 지적 능력을 최대한 쏟아 부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들려 한다. 내가 만들려는 프로그램에는 우주와 생명 탄생의 원리가 녹아들 것이며 인간 두뇌의 위대함을 재현해낼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에 대한 파스칼의 내기처럼 어리석어도 안 되며, 전 세계에 바벨탑 같은 거대한 데이터 센터를 구축해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사이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되어서도 안 된다. 세상의 모든 프로그래머도, 궁극적으로 어떤 과학자도 만들지 못할 유일한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존재가 없고, 앞으로도 없어야 하기에 내가 세상을 등진다 해도 단 하나의 프로그램은 돌아가야 하니까. 재영이 그것까지 책임져서는 안 되니까.’



재우는 글 전체를 낭송하는 수경의 목적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궁금함은 수경이 진행하는 의식의 구체적 내용과 최종 목적지였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수경의 청아한 음성은 흔들림 없이 이어져 글의 말미에 이르렀지만 재우는 어떻게든 미루고 싶었던 삶의 마지막 장을 다시 펼쳐야 했다. 그것은 마치 탁자 위에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유리잔 조각과 파편들이 거대한 흡입력에 이끌려 그 과정을 거슬러 돌아가 다시 온전한 유리잔으로 합쳐지는 영상과 비슷했다.



“하지만 디지털 전사를 자처하는 나는 에너지 불균형이 심화된 이후로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디지털 스크린이 보여주는 누군가의 관점이나 주장, 정보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디지털 메시지와 이미지의 범람과 홍수 속에서 세상과 만나고 생각의 연상을 통해서만 직관적이고 추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떠있는 물고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미친 듯이 헤엄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상상의 세계에서 몸부림쳤지만 언제나 그 자리였고 하릴없이 수많은 에너지만 소실돼 갔다. 결국 내가 꿈꾸는 열역학 기반의 양자역학적 알고리즘을 완성하려면 현실 공간에서 다양한 실험과 피드백을 대행해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뇌의 연상과 추론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해도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환경의 0.1%도 구현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낭송을 이어가던 수경이 여기서 다시 한 번 호흡을 골랐다. 글을 처음 읽었던 순간에도 이곳에서 흔들렸던 마음이 3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는 자들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고 그래서 수경은 재우를 도울 수 있었던 지난 3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재우는 마음의 격랑을 다잡기 위해 깊이 숨을 들이쉬는 수경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질끈 눈을 감았다. 자신을 디지털 전사로 되돌리려는 수경의 의식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재영이 없으면 난 무엇도 할 수 없고 어떤 것도 꿈꿀 수 없을 테니까. 나라는 놈은 동생의 희생과 헌신에 세를 낸 존재에 불과해. 죄수는 자신의 육체에 갇혀 있지만 없는 것보다 낫듯이, 나는 재영에게 매여 있지만 죽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에 살아왔던 것처럼. 너도 결국은 재영을 통하지 않았으면 만날 수도 없었을 테니 내가 재영을 밀어놓고 어떤 것인들 할 수 있겠니? 하지만 수경아, 난 말이야..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난 말이야..’



재우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다시 되돌아온 유리잔에 담을 수 있는 것이란 결국 과거일 뿐임을 알기에, 덤처럼 주어진 지난 3년간의 행복이란 재영이 가져다 준 넘치도록 과분한 행운이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온 마음을 다해 수경의 의식에 최대한 빠져드는 것이었다.



“헌데 하늘이 강제로 선사한 천형에 대한 보상의 차원인지, 아니면 자연의 자가 치료적 선물인지, 또는 일단 복사해 퍼뜨리고 보는 이기적 유전자의 본질적 특성 때문인지, 내게는 아날로그적으로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동생이 한 명 있었다. 내가 겪는 육체적 삶의 참혹함을 모두 짊어진 동생이 없었다면 나는 0과 1의 비트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마저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만큼 나의 삶은 측량 불가능한 뇌의 발전으로도 보상받지 못했을 것이다. 갈수록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에게 수많은 책을 읽어줌으로써 거의 모든 학문을 깨우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디지털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지배적 현상을 그 뿌리까지 파헤쳐 가공할 미래의 전체주의적 성향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의 일방적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삶의 9할은 동생에게 빚진 것이며 나머지 1할도 온전히 내 것은 아니다. 동생은 단 한 번도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통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고 그런 동생이 없었다면 나는 현실세계에 대한 이해는커녕 무한해 보이는 디지털 세상의 허상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수경은 한편의 서사시를 낭송하듯 글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갈수록 고양되는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그녀도 재우를 디지털 전사로 되돌리는 의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에 습기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재우도 수경의 음성에서 갈수록 습도가 높아짐을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의 수면에서 일어나는 파문을 제어할 수 있었다. 정녕 체념은 모든 걸 가능케 하는 희망의 샘이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칼 폴라니가 옳았다.



‘날개가 부러진 내가 다시 날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파닥거릴 때, 숱한 영혼의 상처로 귀결된 비상의 꿈이란 그 자체로 비좁기 그지없는 새장에서의 절망이었어. 어린 나이에 생계비를 벌기 위해 세상에 뛰어든 재영이 없었다면, 나는 새장에서 나의 불행을 한탄하며 끝없이 울부짖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을 거야. 내 경우엔 부모생육지은이 아니라 제(弟)생육지은이 맞아. 동생이 읽어준 책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연상과 추론을 통해 우주의 끝까지 무한히 비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제는 99% 완성된 ‘우영워드’도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내 삶의 9할은 동생의 것이고 나머지 1할도 내 것은 아니야. 다만 지금에 와서는 네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수경아, 내게 사랑이라는 황홀하고 마법 같은 경험을 가져다준 거, 정말 고마워.’



“나는 바란다, 디지털 세상을 재편하기 위해 동생이자 내 영혼의 동반자인 재영과의 완벽한 연대를. 존재의 위대한 기적과 존엄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나의 무모하고도 발칙한 도전은 영원한 아웃사이더이자 뼈 속까지 행동가이며 투명한 영혼을 지닌 동생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동생과의 환상적 연대의 대부분은 내가 죽은 다음에나 가능할 것이다. 형의 기묘한 병을 자신의 멍에처럼 짊어진 채, 일방적 희생을 감수해온 동생이 본연의 잠재력과 선한 의지로 무장한 불굴의 힘을 드러낼 때, 아날로그 세상은 물론 디지털 세상에도 민주적 변혁을 가져올 강력한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다. 나는 지금 죽음과 삶의 연대가 불러일으킬 그 거대한 회오리를, 디지털 빅뱅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 폭발적 에너지의 분출을, 그 이후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열린 세상을 상상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몇 년 치의 에너지 사용을 기꺼이 반납한 단 하나의 이유이자,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적 감성을 이해하기 위한 실존적 인간으로써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비록 그 걸음이 저승에서나 가능하다 해도 이승에선 작고 초라한 발자국 하나라도 남길 수 있지 않겠는가?”



수경은 글의 낭송을 마치며 감겨진 두 눈에서 끝내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을 삼키느라 전력을 다해야 했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거친 물결을 일으키며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흘려보내라는 저항이 거셌지만 수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감정의 둑을 넘으려는 마음의 저항을 모질게 외면했다. 오늘 자신이 치러할 의식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처음부터 흔들려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거니? 난 네게서 받기만 했는데, 떠나려 하는 너를 어떻게 붙들 수 있겠니?’



재우는 수경의 낭송이 끝난 후에도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는 그녀를 보기 위해 감았던 두 눈의 봉인을 풀었다. 뇌가 명령을 내린지 몇 초 후에 띄어진 눈의 초점이 또 다시 몇 초가 지난 후에야 제 기능을 찾았지만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의 떨림처럼, 그 떨림이 폭풍처럼 자라나 영혼을 가로질렀던 전율처럼 그녀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3년 전에도 언제나 눈을 뜨면 눈부시게 찬란한 그녀가 한결 같은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다.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불쑥 찾아온 손님과 선물 같아서 밀어낼 수도 잡아둘 수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님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고 선물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면, 지난 3년이 꼭 그랬다. 재우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던 날들을 이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저편으로 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이 못내 서글펐지만 더 이상 수경에게 마음의 부담을 안겨줄 순 없었다.



“글은 다 낭송했고 다음은 뭐야? 수경아, 궁금해 죽겠어. 난 미치기 전에 어서 말해봐!”



재우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수경에게 재미있는 얘기 듣는 것처럼 다음을 재촉했고 수경은 그제 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헌데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또 한 번 재우를 엄청난 충격에 빠뜨렸다.



“오빠에게 나의 모든 걸 보여주는 것.”

“뭐, 너의 모든 걸?”

“응, 내 모든 걸!”



수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재우는 수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몰래카메라도 아닐 터,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대체 수경은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설마 옷을..’



재우는 차마 다음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지난 3년 간 수경의 나신을 떠올려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특히 무더운 여름날에 가벼운 차림의 그녀를 보면서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았다면, 그건 싸늘한 시체나 좀비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경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먼저 내 눈동자부터.”



수경은 말과 동시에 지난 3년간 자신 앞에서 단 한 번도 뜨지 않아서 화석처럼 단단해 보였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마치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그 단순한 동작 하나에 재우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세상에 나온 이래 누구한테도 내 눈동자를 보여준 적이 없어. 그건 누구한테도 보여주기 싫은 나만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야. 살아가는 동안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 내 진정한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었어.”



저주의 봉인을 풀 듯, 재우의 시선에 들어온 그녀의 눈동자란 초점이 없어 영롱하거나 생기를 찾을 수 없었지만, 그럼으로써 비로소 완벽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다는 사실에 재우는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자신의 영혼을 뿌리째 뒤흔드는 순간에도 그놈의 지랄 맞은 시간차 현상은 여전했지만 재우는 온몸의 신경과 세포를 모조리 깨우는 에너지의 약동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수경이 눈을 떴다고, 설사 눈동자가 없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가장 힘겨운 멍에까지 드러낸 수경의 마음에 재우는 폭발할 듯 날뛰는 감정의 격랑을 다스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다. 



용의 역린이란 그것을 건드리면 곧바로 응징할 수 있는 힘의 상징이지만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인간의 장애란 드러낼수록 움츠려드는 것이 멍에를 가진 자들의 한계이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극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해지거나 길들여질 뿐 승화의 미덕이란 타인의 관점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헌데 수경은 자신의 멍에를 드러낸 것도 모자라 재우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폭탄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다, 이미 에너지 소모 면에서 상당한 출혈이 있는 재우를 향해.



“오빠가 그 사람이야. 이 세상에서 나의 모든 걸 볼 수 있는 오직 한 명의 사람이 바로 오빠야. 난 오늘 오빠를 디지털 전사로 되돌려 놓기 위해..”

“오직 한 명의 사람이 나라고?”

“응, 오빠가 그 사람이야. 내가 오늘 치르려는 의식은 오빠를 디지털 전사로 되돌려 놓는 것만이 아니야.”

‘허면?’



재우는 일일이 묻기에도 힘이 달렸다. 오늘 수경이 하려는 의식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따라가려면 에너지 조절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우는 눈으로 수경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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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4.12.16 18:34 신고

    처음부터 읽어야겠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4.12.16 19:55 신고

      초반부는 재미 없을 것입니다.
      제가 공부한 것들을 녹인 소설이라 문학적 요소가 초반부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지적인 내용만 나옵니다.

  2. 박창식 2014.12.17 12:59 신고

    재미 없다니요.
    숨 쉬기 힘들만큼 집중해서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17 16:17 신고

      나중에 문학적으로 퇴고를 하면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허리가 완전히 좋아지면 그때부터 퇴고를 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정윤회 문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냥 올리고 있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오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해. 내가 어떤 말을 하던 간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알았지 오빠?”



수경이 불길한 변화를 증명하기 위한 멍석부터 깔아놓았다. 재우는 정말로 터질 듯이 박동하는 심장의 압박에 뇌의 울렁거림마저도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만일 죽기 직전의 두려움이 이런 것이라면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극도의 두려움에 빠지면 모든 정신과 영혼마저 마비시켜버린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재우는 생각까지도 완벽한 진공 상태에 빠져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진공상태의 양자가 에너지 없이도 요동친다는 것이 바로 지금의 자신과 완벽히 똑같을 터였다.



“오빠 난 지난 3년이 꿈만 같았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였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어쩔 때는 시간이 멈췄으면 했어. 한데 말이야, 오빠?”

‘너도 행복한 만큼 두려웠니? 시간이 멈췄으면, 바랄 정도로?’



재우는 인식지체 때문에 몇 초 뒤에나 수경의 말을 모두 들었고, 그것 때문에 일어난 두려움의 증폭이란 수경의 말처럼 시간마저 멈춰버리게 하는 것 같았다. 그 충격에 여전히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난 그 행복이 깨지는 걸 느꼈어. 절대 내 것 같지 않았던 그 주체할 수 없는 행복에 균열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 그때부터 분에 넘쳤던 행복이 그나마 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가당치 않은 행복도 오빠와 재영씨가 만들어준 것이니까.”



수경은 여기까지 말한 후 잠시 말을 멈췄다. 숨을 크게 들이쉰 그녀는 복받치는 감정을 조절한 다음에야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재우는 수경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것 외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육체처럼 말이다, 제기랄!



“한데 말이야, 오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두 사람이 선물해준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오빠와 재영씨가 불러주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내가, 어리석은 내가..”

“그건 아니야! 수경아, 절대 그건 아니야!”



재우는 수경의 말을 중간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지랄 같은 말 섞임이란 아예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수경이 스스로에게 자책하는 일이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경은 재우의 격한 외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말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중단된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결심한 것을 오늘 행하지 않으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처럼, 그렇게. 재우는 뭔가 단호한 결심을 한 것이 분명한 수경의 말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그저 생각으로만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빠가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나는 터무니없는 욕심이 생겼어. 오빠를..”

‘나를 좋아한다고? 너도 나를?’



재우의 심장이 더욱 격하게 뛰었다. 당연히 생각한 것보다 몇 초 후에나. 그에 따른 에너지 소모란, 까짓것 그게 무슨 의미 있단 말인가? 수경도 나를 좋아한다는 데야! 뇌에서 엔도르핀과 도파민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온갖 혐오감을 불러오는 콜레시스토키닌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재우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오빠를 보내기 싫어진 거야. 오빠와 재영씨의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지만 난 감히 그 계획이 연기되기를 바랐어.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모두 다..”

‘왜 안 돼? 그 계획이란 거 미룰 수 있어, 너를 위해서라면.’

“재영씨 때문에 시작된 것인데,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어. 아니, 일부러 잊으려 나를..”

‘재영이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고? 그래, 우리의 만남도 재영이 때문에 시작된 것이지.’

“속이려고 했었던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오빠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모든 바친 사람이 재영씨인데..”

‘나를 위해서? 그래, 재영은 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쳤지.’

“나에게 이런 행복을 안겨준 사람인데, 나는 내 욕심에 오빠가 지난달부터 계획을 더 진행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으면서도, 오빠에게 그러면..”

‘너도 알고 있었구나. 그래 당연히 알았겠지, 나의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는 너이니까.’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어. 나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있게 되었고 무엇을 위해 오빠 곁에 머물 수 있게 됐는지 잊었던 거야. 내 욕심에..”

‘그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도, 세상을 뒤집어 버릴만한 능력을 갖게 된 것도 다 재영이 덕분이지.’

“사로 잡혀 당치도 않게 그만 재영씨를 밀어내려고 했던 거야. 내가 얼마나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전혀..”

‘알겠어, 수경아. 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닫지 못했어. 그래서 말이야, 오빠?”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던 수경이 다시 한 번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 이상 더 처연할 수 없는 눈빛으로 재우를 바라보았다. 재우는 그녀의 처연한 눈빛에 어려 있는, 날카로운 정으로 긁어도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이는 결심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새겨진 석판을 받아든 여인처럼, 그녀의 결심은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재우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떠나겠다는 거냐?’



재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체념이라고 하기에는 운명에게 창피했고, 그렇다고 수경을 잡기에는 재영의 희생과 그녀의 결심에 더없이 죄스러웠다.



“그래서 오빠, 난 지금부터 하나의 의식을 진행할 거야.”

‘하나의 의식?”

“그게 뭔데?”



나는 수경이 말한 하나의 의식이란 말에 너무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뇌 속의 생각들도 이미 광란의 질주에 빠져들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뭉툭뭉툭 사라지고 있었다. 내 비루한 영혼을 잡아가기 위해 호시탐탐 내 주위를 맴돌던 성마른 성격의 저승사자가 에너지 소모에 발맞춰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이 두 눈에 아른거렸다. 하나의 의식이라니, 이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수경의 낙담이 너무 커 잠깐 이성이 외출한 것도 아닐 터, 재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 시추에이션에 거의 주먹만 한 크기의 침을 삼키며 수경의 다음 말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오빠를 원래의 디지털 전사로 되돌려 놓는 단 하나의 의식!”

“뭐, 디지털 전사라고?”



재우는 수경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했던 단어에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주기 상으로 볼 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법의 날도 아닌 것이 분명한데 수경은 수구언론들이 즐겨 쓰는 방법인, 앞뒤가 뭉툭 잘려버린 얘기를 거침없이 뱉었다. 수경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재우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 수경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볼 뿐,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재우 자신도 잊고 있었던 ‘디지털 전사’라는 말에 있었다.



“너, 혹시 읽은 거니?”

“응, 읽었어. 오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재영씨가 점자로 옮겨놓은 글을 읽었어. 내가 이 집에 들어온 것도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야.”



수경은 그날의 상황을 좀 더 얘기했지만 그 이상의 것들은 사족이었다. 디지털 전사라는 말이 수경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재우는 최후의 생각마저 사라져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오빠의 글을 읽으면서 난 처음으로 운명이란 게 정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받았던 당시의 충격이란.. 뭐랄까?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의 고리 같은 게 영혼을 낚아 채가는 느낌이 들었어. 글의 처음인 ‘어차피 삶이란 죽음을 향한 여정이다. 그 여정 중에 죽음에 대한 성찰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으며 그에 따라 어떤 것들을 이루었느냐가 개개인의 가치이자 역사’라는 문장부터 날 충격과 전율로 몰고 갔어.”



수경은 마치 궁극의 진리를 엿본 위대한 철학자처럼 열띠고 활기찬 표정으로 당시의 환희를 얘기했다. 그런 수경을 보는 재우의 시선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자리했다.



‘그래, 사람에게는 운명 전체를 뒤흔드는 벼락같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야. 영혼을 뒤흔드는 그 압도적인 둔중함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지. 너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라면 말할 필요도 없고. 허허, 이것도 다 자업자득인가?’

“특히 난 ‘깨어 있는 모든 순간마다, 심지어 어둠과 빛을 나누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라도 삶의 주인이고 싶은 것이 보편적 욕망이라면, 기억이 이르는 그 시작부터 에너지 사용과 분배의 불균형에 시달린 나는 디지털 세상에서만 그것이 가능했고 따라서 내 삶의 가치와 역사는 모두 디지털 세상에만 있다. 헌데 내 삶의 모든 것이었던 디지털 세상은 인간의 삶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에서 철저히 멀어져 갔다. 위대해 보이는 외면에는 반드시 허상이 숨어 있기 마련이고, 선형적 변화와 빛의 속도를 중시하는 곳에는 획일적 기준과 속도의 파시즘이라는 악마적 성향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지식과 정보의 평등과 세상의 민주화를 모토로 하는 디지털 세상이 그 본질적 역할에서 벗어나 소수의 탐욕이 다수의 이익을 착취하는 공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나는 지켜볼 수만 없다. 그것은 현실세계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내 삶의 의미까지 말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나는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라는 부분에서 이르러서는 오빠와의 만남이 숙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



수경은 얼핏 본 궁극의 진리에 고무돼 자신만의 언어와 체계로 그 깨달음을 풀어내는 철학자처럼 몽환적 표정까지 지었다. 재우는 그런 수경을 지켜보는 것이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었다.



‘조금만 더 너와 함께 하려는 내 욕심이 과한 것이었니? 수경아, 사랑이라는 거, 그런 거 아니니? 넌 나하고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지 않니? 디지털 전사? 나 그딴 거.. 그딴 거..’



재우는 죽음에 대한 성찰에서 자꾸만 멀어지려는 자신을 그날의 결연한 디지털 전사로 되돌리려는 수경의 의도가 야속하기만 했다. 뇌의 활동을 줄이지 않는 한 10년 치 정도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죽어서도 갚지 못할 동생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디지털 전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것이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뜻밖의 행복과 상충된다는 사실이 재우는 못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수경은 재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단아한 음성으로 글 전체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재우는 그것으로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 단 하나도 남지 않았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누구나 하는 사랑과 평균적인 행복이란 애당초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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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수경은 창문을 관통한 햇볕이 여전히 따스했기 때문에 재우 오빠에게 주어진 에너지의 불균형이 결코 가혹하지 않은 것인 양, 신은 오빠의 얼굴에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을 것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자신이 모든 이승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자신이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엄혹한 상황에서도 태양은 빛나야 하고 바람은 불어야 하며 꽃은 피어야 하고 나무는 무성해야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신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신은 자신의 영광을 찬양받기 위해서 자연을 만들고도 인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소아병적 환자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수경은 몇 날을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었고 가능하면 오늘 그것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재우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졌다. 그때 조금 열어 둔 문 틈 사이로 재영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형의 방에 이르는 재영이 천천히 방문을 연 다음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수경씨, 저 출근합니다. 오늘은 지방 취재가 있어서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아요. 밤에는 제법 추워질 것 같으니 보일러 트시고요. 형님, 부탁드릴게요.”



재영은 수경에게 말한 다음 곤한 잠에 빠져 있는 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재영은 요즘 들어 형의 수면시간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수경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반면에 수경은 형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자신을 부를 때 반드시 존칭을 붙이는 재영이 못내 서운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재영씨,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이 늦게까지 작업을 하시느라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이에요. 아마 몇 시간 정도는 더 주무실 것 같아요. 잘 다녀오세요. 제가 형님께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수경씨. 혹시 뭐 필요한 것 있나요?”

“요즘 배가 싱싱하고 달다고 하던데?”

“알겠습니다, 최고로 좋은 걸로 사올게요. 그거면 되나요? 야채는 충분하지요? 수경씨는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재영은 재차 수경에게 물으며 형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수경은 그런 재영의 모습을 상상으로 떠올렸다. 혹시라도 형이 깨면 그냥 갈 수 없어서, 그런 형을 돌보는 자신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아주 세세한 것까지 배려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수경은 재우의 숨소리가 고른 것으로 봐서 깨어나려면 최소한 한 시간 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해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수경씨. 그럼 다녀올게요.”



재영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마루를 지나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수경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재영의 구두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나지막한 음성으로 재우를 불러보았다.



“재우씨?”



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수경은 그렇게 재우가 깨어나려면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음을 확인해 본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오늘이 적기야. 더는 미룰 수 없어. 그건 모두를 망치는 일이야.’



수경은 마음을 다지며 입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어 세탁기 위에다 올려놓았다.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벗은 후 조심스럽게 샤워기를 틀었다. 상당히 차갑게 느껴지는 물이 머리를 적시며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화들짝 놀란 피부가 자신의 마음처럼 수축되었다. 하지만 수경은 물의 온도를 조절하지 않았다. 마치 깨끗한 냉수에 영혼까지 씻어낼 듯이 차가운 물에 자신의 몸을 모두 내맡겼다. 물오른 24살 처녀의 탄력적인 신체가 가냘프게 떨렸다. 수경은 한동안 샤워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에 온몸을 맡기고 있다가 손을 내밀어 비누를 찾았다. 그 더듬거리는 손길이 그녀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두 손으로 비누에 거품을 낸 후 온몸 구석구석을 정성 드려 닦고 닦았다. 물이 차가워 비누 기운이 쉽게 씻겨나가지 않았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손으로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샴푸로 머리를 감은 후에도 수경은 차가운 물이 한동안 더 자신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신녀가 세속의 모든 때를 씻어내기 위해 제욕의 의식을 떠올릴 정도로 숙연해 보였다. 



그렇게 40분이 넘도록 몸을 닦은 수경은 약간의 화장까지 한 후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연분홍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녀는 곧장 부엌으로 가 재우가 먹을 과일즙을 내고 각종 영향보충제를 섞은 고기죽을 끓였다. 과일즙을 유리컵에 담아 빨대를 꼽고 고기죽을 그릇에 옮겨 담아 입으로 불어 알맞게 식힌 후 쟁반에 담아 조심스럽게 재우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수경이 아점 밥상을 차리는데 또 다시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깊고 깊은 잠에 빠졌던 재우가 엄혹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제일 먼저 그의 입에서 힘겨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고 눈을 뜨지 않은 상태에서 눈 부위의 근육을 찡그렸다. 그리고 난 다음, 채 흘러내리지 않은 채 입안에 고여 있던 침으로 마른 목을 축이며 눈곱이 가득한 눈썹을 위아래로 힘들게 띄어내었다. 물론 멍 때리기의 친구이며 죽음의 사생아인 깊은 잠에서 깨어난 뇌는 이럴 때면 한결같이 일어나는 육체의 반응인 하품과 부수적인 말들을 이미 몇 초 전에 하달했다. 소원이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뇌와 육체의 시계가 일치하거나, 일단 저지르고 난 뒤에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으아아하함! 아, 잘 잤다. 오늘도 죽지 않고 깨어났으니, 많이 먹고 힘내야지. 수경아, 나 배고파. 얼른 먹을 거 줘.”



3년 전부터 시작된 여느 날처럼, 아침과 점심 사이에서 깨어난 재우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다음, 수경을 향해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재우는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수경과 자신에게 인식시키려 했다. 그것은 또한 수경의 보살핌이 자신을 살게 하는 원동력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재우는 그런 간접적인 방식으로 수경에게 고마움을 표했으나 수경에게는 그런 배려가 지난달부터는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짐으로 쌓이고 있었다. 수경은 오늘 그것을 풀어낼 생각이었다.



“오빠도 참! 세수부터 해야지, 깨끗하게.”

‘새신랑처럼.’



수경은 마지막 말을 마음으로만 했다.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그 말이 왠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사랑은 폭풍처럼 다가오는 격정 같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도 더 큰 의미의 사랑도 있을 것이다. 수경은 그렇게 믿고 싶었고, 자신의 선택을 실행할 오늘만이라도 그래야만 했다.



“세수부터? 너무 배고파 다시 잠들 것 같은데? 백만 둘, 백만 셋, 나도 에너자이저가 필요해.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배고픈 지금은.”



재우는 농담 반 억지 반, 수경에게 떼를 썼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오늘 따라 수경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가 아닌가?



‘화장까지 했어!’



재우는 본능적으로, 생각보다 몇 초 후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이 아니라 위장 쪽으로 수평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던 간에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났건, 타인에게서 일어났건, 환경에서 일어났건 간에 모든 변화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이유로 비롯됐던 간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죽음이 그랬고, 에너지 불균형의 시작과 심화가 그랬고, 자신의 삶을 포기한 동생의 변화가 그랬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일어난 친척들의 연락두절이 그랬다. 자신에게 변화란 어김없이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처럼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잔혹한 삶의 폭력이자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재우는 심장박동이 기억 속의 어떤 순간보다 더 빠르게 뛰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 어, 어.. 수경아? 무, 무슨 일이..”



재우는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뇌에서 떠올라 제멋대로 휘도는 불길한 생각들이 광란의 질주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지랄 맞은 것은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수경은 또 몇 초를 기다린 후에야 말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 시간차란 재우와 상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좀처럼 감정에 휩쓸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격정은 몇 초 사이에도 차갑게 식어버린다. 수경은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목소리에 최대한 비음을 포함시켰다.



“무슨 일은? 왜, 내가 너무 예뻐서? 나도 화장하면 경국지색이 따로 없어. 오빠는 그 사실을 몰랐지?”

“뭐, 환장했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 비음을 섞은 수경의 의도는 실패했다 - 수경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재우는 크게 안도하며 소심한 농담으로써 자신을 나락까지 떨어뜨렸다가 건져 올려 준 수경에게 복수했다. 그렇다고 고약한 유령처럼 자신의 뇌에서 떠나지 않는 일말의 불길한 생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 오빠는? 환장이 아니라 화장! 화장 말이야, 흥!”

“아, 화장? 어쩐지 미의 여신이 나타났다 했어! 야, 이렇게 예쁠 수가! 이 정도면 이거, 범죄 아니야?”



재우는 작은 양 주먹을 옆구리에 댄 채 콧소리를 내며 살짝 얼굴을 찡그리는 수경의 반항에 대적할 수 없었다. 그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이란 아침 햇빛을 담고 있는 이슬방울에 살짝 젖어 있는 붉은 장미를 연상시켰다. 그런 모습을 나 같은 비리비리한 남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차라리 범죄였다.



“범죄라니?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재우는 자신의 말에 뾰로통한 음성으로 물어보는 수경의 입술을 그대로 덮치고 싶었다. 그것이 마음으로든 상상으로든 그래서 또 몇 시간을 피로감에 시달릴 지라도 단 한 번의 입맞춤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지!’

“다른 모든 여자들이 너의 미모에 밀려 실의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을 텐데, 그건 여자들만이 아닌 모든 남자들에게도 최악의 범죄야, 범죄!”

“호호호! 그런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러니 오빠는 복 받은 줄 알아, 호호호.”

“하하하! 그럼, 난 복 받은 놈이지! 암, 그렇고말고!”



오늘 따라 유난히 밝은 표정의 수경이 마음에 걸렸지만 재우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사용 가능한 에너지도 상당히 충전돼 있었으니 수위를 조절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봤자 몇 십분도 가지 못하는, 지독히도 허탈해질 상황에 불과하지만.



“그러니까 오늘 아점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해. 이처럼 예쁜 내가 정성들여 만든 거니까, 알았지?”



수경이 오늘 따라 양이 많은 과일즙과 향이 기막힌 고기죽이 한 그릇 가득 담겨 있는 쟁반을 내밀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님?”

“자 그러면 과일즙부터 먹어볼까, 돌쇠야?”



재우는 오늘 따라 자신의 농담에 신명나게 반응해주는 수경을 보면서 그녀가 차려온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는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장기처럼 느리게 작동해 그 본래의 소화 기능이 떨어진 위장의 포만감에 연신 트림을 해댔다. 그것도 수경의 면전에 대고.



‘이런!’

“수경아 이건 고의가 아니야! 그냥 자연스러운 육체의 반응일..”



후환이 두려운 재우는 말끝을 흐리며 한껏 움츠린 시선으로 수경을 힐끔 봤다. 육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그로써는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었고, 지금까지는 효과 만점이었다. 헌데 그 가늘고 비스듬한 시선에 걸려 있는 수경의 표정이 뭔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일생의 중대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제법 결연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천사의 의상 같은 연분홍색 원피스도 마음에 걸렸고 일 년에 한 번 내 생일 때만 했던 화장(그녀는 그것이 선물이라고 했다!)까지 한 상태에서, 탐스러운 머릿결에서는 샴푸 특유의 향기마저 후각을 자극하니 재우의 뇌가 심장보다 빠르게 덜컹거리고 허파보다 빠르게 벌렁거렸다. 분명 그녀의 모습은 달랐다. 지난 3년 동안 수경은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건 나쁜 결과로 귀결되는 급격한 변화가 분명했다. 그녀의 면전에 트림을 해댄 것은 아예 문제조차 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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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길을 가던 순례자들은 이곳에 돌탑을 세웠다......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탑 위에 돌 하나를 더 얹어놓곤 했다. 어떤 특별한 이유나 알려진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고 그 중 누군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 중에서




제법 서늘한 기운이 스미어 나오는 창문을 열었다. 이때쯤이면 초가을 저녁 어스름이 도시를 떠도는 온갖 욕망들 위로 작열했을 열기를 서선 너머로 밀어냈고 있으리라. 바람 속에 깃들어 다가와서는 얼굴을 간질이는 노을을 떠올려봤지만 그 색체는 끝내 시신경 어디에도 담아낼 수 없었다. 몇 개의 단어의 조합으로 인식되는 색체란 태초의 순간부터 불었을 바람과 첫날의 열기를 모두 간직했을 노을처럼 내게는 영원히 형상화되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들이었다. 다만 나에게는 그 바람과 노을 속에 담겨 있을 수많은 사연들의 하소연과 피곤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 더 생생히 느껴지는 그들의 사연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하루하루의 현실에 저당 잡힌 가난한 영혼들의 방황이나 아픔 같았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해 그 자체가 세상이고 우주인 어둠은 잰 걸음으로 다가와 나의 하루와 한 낮의 더위에 시달린 세상의 모든 존재 위로 검게 내려앉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윤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여기저기서 유령처럼 튀어나온 붉은 십자가들이 이곳은 신이 창조한, 온갖 불의와 탐욕으로 물든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리라.



휘잉, 스스슥. 휘리릭. 어둠이 깊어져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걱정과 사연이 더욱 차가워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꽃잎들처럼 스산하고 흐느끼는 소리로 다가왔다. 그렇게 비릿한 자연의 소리로 화한 것들은 점자책에서 읽은 표현들로 대충이나마 상상해낼 수 있지만, 바람과 소리마저 없는 것들은 손과 피부로만 느낄 뿐 분명한 형상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런 경우 자연과 세상이란 초라한 미술관 귀퉁이에 걸려 있는 미술작품에 불과하다. 모든 물질적인 욕망들과 세속적인 성공들도 내게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들만의 투쟁일 뿐, 생각 속에서조차 아무 의미도 없는 정지된 것들이다. 내게 세상은 끈임 없이 도는 바람개비처럼 너무 어지럽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들이 미친 듯이 충돌하고 소용돌이치는 한바탕 난장판에 가까웠다. 세상은 비열하거나 사악했고, 아주 가끔은 활기찼으나 결국 타락하거나 애처로운 것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나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지금까지 세속적 감정과 물질적 이익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거나 안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날카로운 생존의 감각과 청빈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이성은 그 무엇으로도 약화시켜서는 안 될 최후의 보루였다. 나는 나를 편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에 주의했고, 위로의 말에 이끌리지 않았으며 나를 향한 어떤 도움의 손길도 마다함으로써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은밀한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 하물며 육체적 편의를 얻기 위해 수없이 사들여야 할 물질적인 것들에 마음을 둘 일이란 추호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발정 난 짐승처럼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려는 자기 파괴적인 존재처럼 다가왔을 뿐이다. 하물며 쉽게 싫증내거나 유행에 뒤쳐졌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전해지는 것들이 그랬고,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물질적 욕망과 육체적 쾌락을 부추기는 유혹의 말과 소리들로 가득했다.



헌데 위험이 느껴질 때면 재빠르게 몸을 숨기는 고양이처럼 스스로 설정한 틀 안에 머물러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천둥 벼락처럼 다가왔지만,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하고 봉숭아 내움처럼 향기로웠다. 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그의 말속에는 티끌만한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의 몸에서 나온 순정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맑은 영혼 속에선 치열하게 고뇌하고 진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고결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어떤 황폐한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에 두려웠으면서도 그와 함께 하는 순간순간에 빠져들었다. 그가 다가오는 발소리만 들었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고 그의 말이 내 귀 속으로 스며들 때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을 느낀다는 것은, 차라리 아름다운 꿈이나 몽상보다 황홀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향한 마음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릴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이 불꽃같은 떨림을 정의내리기라도 한다면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제어하지 못하는 끌림이 커갈수록 나는, 스스로 그에게서 멀어지려 애쓰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결국 나는 깨어서 산산조각 날 꿈이라면 아예 깨어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내게 주어진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어느 잔혹 동화의 주인공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 일정한 거리를 두지 않으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 것으로 끝나는. 그때는 그랬다, 내가 다니는 ‘열린 학교’의 선생님인 그를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 나의 삶이라 생각했다.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고 마음을 살피고 영혼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올라치면 서둘러 투명한 공기로 화하곤 했다. 나는 그를 향해 모든 것이 열려 있었지만 그에게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만은 철저하게 막았다. 이 세상에서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은 결단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나 홀로 좋아하고 나 홀로 다가갔다가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물러서기를 반복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야학이 끝나고 난 뒤에 그가 떠날 때까지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그의 걸음이 멀어지는 것을 매주 되풀이 되는 영원한 이별처럼 두려워하고 있을 때였다. 새빨간 거짓말처럼 그의 걸음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고결한 기운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나는 절대 모를 수 없다. 그는 모든 운명을 거역하는 사람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불의 전차가 내뿜은 번개처럼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의 비현실적인 느낌과 생을 관통하는 전율을 뚫고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 소리란 것이! 그리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더없이 아름다운 음성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위대하지만 너무나 외로운 자신의 형을 도와달라고.



그렇게 나는 또 한 사람의 운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재우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형이자 유일한 그의 혈육이었다. 그는 에너지 배정과 이용의 불균형이라는 설명 불가능한 희귀한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너무나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여서 눈을 감고도 그의 생각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기운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동생처럼 한순간에 내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매력은 없었지만 재기 넘치는 말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의 분방함은 설명 불가능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원히 비상을 꿈꾸지만 한 두 번의 날개 짓에도 쇠창살에 부딪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어린 새에게 그는 무한한 창공을 날아다니는 자유를 허락해주었다. 그는 내가 꿈꾸는 어디라도 날아가게 만들어주었고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변신시켜주었다. 나에게 그는 꿈의 청부사였고 영혼의 작가였다. 그는 동생의 전부였지만 나에게도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손길이 그의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줄 때마다 죽음에 가까웠던 그의 무력함이 다시 살아나 약동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그들 형제와 함께 했던 지난 3년은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떠올리는 것과 같았다. 나는 초라한 공주였고 그들은 찬란한 두 명의 왕자였다. 나를 부르는 그들의 말에는 삶과 세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논리로 세워둔 방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고, 내 움츠린 영혼을 일깨워 영원한 이상향을 찾아가는 장엄한 순례의 여정에 나를 포함시켜 주었다. 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히 달랐지만 그중에서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오가는 선의의 감정과 배려와 사랑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세속적인 선택이 필요한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두 사람을, 위대한 형제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나에게 주어진 행운에 대해 달리 대처할 방법도 공존을 유지할 도리도 없었다. 나는 정말 내 욕심을 포기함으로써 모든 이를 구원할 그들의 순례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수많은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의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에 가보고 싶었다. 그곳을 향해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예수와 마호메트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순수하고 간절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신앙이 서로 교차하고 만나는 그곳에서 인류의 역사는 어떤 이정표를 제시받았는지, 어떤 구원의 약속을 받았는지 그 일부라도 알고 싶었다. 그들의 순례에 담긴 뜻이 과거의 영광에 있는지, 현재의 다툼에 있는지, 미래에 대한 일방적 약속과 패권에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소수의 신도들과 규율로 정해진 순례의 기간에 몰려드는 대규모 신도들을 맞이하며 대대로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슨 마음으로 대하는지, 예수와 마호메트의 친족이자 같은 민족인 그들은 셈 족에서 기원한 두 종교 간의 끝없는 싸움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고 싶었다. 예수가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의 신앙이 더 위라고 했으니 혹시 그들도 나처럼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미래라는 구원의 대열에서 밀려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들은 과거와 미래가 모두 멈춰 있는 유별난 관광지의 주민에 다름 아닐까, 몇 개의 초라한 유물에 유달리 집착하는 신도들을 그저 여행자로만 대하는 철저한 방관자는 아닐까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순결한 성지를 향하는 순례의 길은 그것 외에도 다른 것이 있었다. 그 길은 어느 누구도 걸어가 본 적이 없어 정글 같았고, 그 끝에 있는 성지의 모습이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어 어느 누구의 접근도 차단된 금단의 영역이거나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는 천혜의 낙원일 수도 있었다. 선과 악이 동전의 양면이듯이, 성지라 믿었던 곳이 악마의 본거지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성지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방랑에 빠져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성지로 가는 곳곳에 진창과 늪지, 모래구멍이 있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고난과 역경이 이무기처럼 똬리를 틀고 있어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직 두 사람, 영혼과 사랑으로 이어진 형제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역경이라도 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들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하루하루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 이외에는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란 없었다.



헌데 순례의 선두인 재우 오빠가 성지에 이르는 마지막 길목에서 멈춰선 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빠는 몇 달 전부터 같은 자리만 맴돌며 스스로에게 자해를 가하고 있었다. 나에게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아무리 채워도 부족한 에너지는 속절없이 소모돼 손에서 전해지는 기운도 갈수록 약해지고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정성들여 안마를 해주고 음식을 요리해 주어도 오빠의 기운과 활력은 나아지지도 맑아지지도 않았다. 그런 변화는 삶에 대한 미련이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는 숱한 사람들을 안마해준 경험으로부터 체득하고 있다. 오빠는 영원한 이별인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문제는 재영씨와 마찬가지로 나도 오빠의 상태에 대해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재영씨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갖게 된 마음의 격정을, 재우 오빠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나는 우리 셋의 만남에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세속적 선택을 영원히 봉인해두었지만, 마음이 너무나 뜨겁고 순수한 재우 오빠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가져다준 재영씨에게도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죄악이었다.



어찌 나라고 갈등과 혼란이 없겠는가? 어차피 셋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동행도 아니었고 함께 해서도 안 되는 동행이지 않은가? 모질게 말하면 우리의 동행은 처음부터 한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재영씨는 형이 좋아했던 여자에게는 시선조차도 두지 않을 사람이었다. 나도 재우 오빠처럼 두려웠다. 동생을 사모하는 여자의 욕망에 사로잡힌 순수한 영혼에게서 행복의 열쇠를 꿰차려는 이기적 인간의 전형이 내가 아닌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내가 순결한 형제의 위대한 작업에 끼어든 뱀 같은 여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갈수록 위축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불결하고 싫었다. 나를 변호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의 언어이든 악마의 변론이든, 나는 끝없이 갈구할 뿐 오빠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를 형에게 소개한 재영씨의 바람도 아니었고, 나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 세상을 구하려는 오직 단 하나의 계획마저 포기하려는 오빠의 지극한 고뇌의 목적도 아니었다. 답은 하나며 이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반드시 현명해져야 했다. 내가 하기에 따라 재우 오빠와의 이별이 한없이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 인류에게 희망의 불씨를 남기고자 했던 한 남자와의 이별로 승화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은 현명함을 찾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일이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내가 누렸던 분에 넘치는 행복에 대해 이제는 대가를 치러야 할 순간이었다. 재영씨가 야학 선생님으로 와서 처음 했던 말도 ‘삶의 본질은 만남과 이별’이라며 ‘죽음에 대한 성찰을 얻기 위해 인간은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를 만난 그 처음부터 한없이 설렜던 것도 그 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내가 내 영혼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그의 말을 실천할 차례였다. 그것은 또한 나에게 삶의 또 다른 가능성과 깨달음을 열어준 재우 오빠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자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재영씨와 상의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내 스스로 찾아내야만 했다. 나는 반드시 현명해져야 했다.




P.S.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소설은 문학적인 언어로 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럽게 재미없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소설다운 부분이 나오지만, 그것도 완전한 퇴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무작정 이곳에 올리면서 퇴고의 방향을 정하고 있습니다. 미완성된 부분이 여러 곳이고, 소설 전체로 봐서도 중간 정도에 멈춰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미완성인 부분만 가지고도 한 달 정도는 연재가 가능할 것입니다. 체력이 완전히 돌아오고 허리 상태가 좋아지면 본격적으로 퇴고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미완성된 부분도 다시 쓸 생각이고요. 만일 이 소설이 완성된다면 3편 정도로 나누어야 하는데, 그것은 먼 훗날의 얘기고 당장은 재미없더라도 퇴고의 방향에 대한 독자분들의 견해를 남겨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몇 편의 분량만 지나면 그래도 조금은 재미있는 부분도 나옵니다. 재미가 없는 데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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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꽃 2014.12.12 08:38 신고

    아닙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회복중이시라니 다행입니다.
    항상 강건하시길..

    • 늙은도령 2014.12.12 18:06 신고

      에고, 감사합니다.
      지독히 재미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약간의 희망을 갖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사랑의 격정이란 3년이 최장의 유효기간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첫날의 떨림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물론 익숙해진 부분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매일 매일이 죽음을 향한 단거리 경주 같은 나에게 수경이 가져다준 기쁨이란 절대 줄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외로 에너지의 양이 늘어났고 정말 열심히 먹고 또 먹었다. 그 덕분에 나는 동생의 염원과 헌신이 수경의 헌신과 심성으로 이어져 세상 어느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무적의 프로그램을 거의 다 완성했다. 아직 가장 힘겨운 장벽인 신경세포인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 틈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가장 중요한 가상 데이터센터의 메인 알고리즘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최후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핵심 단초는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다. 



물론 그 장벽을 넘는 과정에서 소모될 에너지 량을 조절하는 것이 최후의 숙제로 남아 있어 최근에 들어서는 알고리즘 설계가 급격히 늘어진 것은 사실이다. 에너지 사용에 구애받지 않고 모험을 하기에는 내게 남은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볼 때, 내가 넘어야 할 마지막 장벽은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어쩌면 생존에 필수적인 잠재 에너지까지 필요할지도 모른다. 경험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마지막 장벽 앞에서 주저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은 에너지 사용이 많아져 육체의 기능은 거의 정지해버릴 정도로 느려졌지만, 그래서 24시간 내내 누워서 지내야 했지만 순간순간이 하루하루가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내 옆에는 언제나 수경의 따스함과 사랑이 있었고 동생의 응원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생전 처음으로 삶에 대한 미련과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수경과 동생과 함께라면 단 하루의 삶도 내게는 1년보다 길고 소중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기억이 미치는 최초의 지점까지 돌아가 지금까지 거슬러 올라와 봐도 지난 3년처럼 행복했던 시기는 없었다. 나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사랑이라는 그 신비하고 설레며 찬란하고 안타깝고 조급해지는 힘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믿음과 희망이라는 작은 돌덩이가 일으킨 파문에서 시작해 끝내 바다에 이르는 그 장대한 흐름을 알게 되었고 빛과 어둠이라는 양 극단이 만나는 지점에 그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수경의 손길이 내 피부에 와 닿았던 그 순간의 충격을, 그 설렘과 떨림, 기쁨과 부끄러움을 잊지 못한다. 지랄 맞은 몇 초간의 시간차는 예외가 없었지만 그것이 육체이건 뇌이건 간에 분출하는 에너지와 삶의 약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무엇도 단절된 채 혼자 있는 것은 없었다. 삶은 에너지의 소비이고 엔트로피의 증가이며, 그 엔트로피가 다시 쌓이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무한 회귀의 연속된 과정이었다. 거기에 사랑과 내일에 대한 희망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하지만 나에게 허락된 것은 늘 그렇듯 일정한 곳에서 멈춰야 하는 것이다. 삶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은 계속되고 쌓여서 커져만 가는데, 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에서 마음을 뗄 수 없었다. 뇌와 육체가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의도적인 불균형이 보편타당한 세상과 우주에 대한 깨달음과 소소하지만 마음을 옭아매는 일상에 대한 미련 사이에서 자꾸 트러블을 일으켰다. 나는 철지난 꽃들이 마른 가지 위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자꾸 하루라도 더 사는 것에, 그래서 수경과 동생과 더 많은 감정의 교환을, 그 교환 속의 삶에 착착 감기는 대화를 나누는 것에 마음이 갔다. 온전히 우리 세 명에게만 허락된 그 공간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렇게 몇 달을 허송세월한 나는 지금 빛과 어둠이 만나는, 아니 서로 갈라지는 그 얇고 수시로 움직이는 좁은 테두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내게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한 보장이 줄어들수록 나는 도살 차례를 기다리는 사육된 짐승처럼 수경의 말과 손길, 미소와 격려에서 한 치도 떨어질 수 없었다. 세속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와 집착이 커질수록 나는 한없이 위축되었고 끝도 없는 어둠의 핵심으로 빠져들었다. 시간은 매 순간 폭풍처럼 튀어나갔고 죽음에 대한 성찰은 초라해졌다. 너무나 두려운 것은 동생도 수경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경은 동생을 사랑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내가 아니라.



                 *



IMF와 세계은행을 앞세워 빈국의 돈을 부국의 자본과 기업으로 빨아들이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회복불능의 벼랑 끝에 몰렸다 해도 아직 그들의 공복을 달래줄 먹이감은 세계 도처에 넘칠 만큼 남아 있다. ‘자기조정 시장’이란 완전한 시장과 완전한 정보, 완전히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허구의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모든 가치를 오직 돈과 권력이라는 독점적이며 배타적인 이익으로 몰아가는 ‘사탄의 맷돌’이 돌아가는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거의 모든 규제를 거부하고 자유방임적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벗어나 쌍방 간, 또는 소수의 국가나 지역 간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배타적인 방식을 통해 투자자와 초국적기업, 상대적 우위에 있는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가난한 국가의 빈곤은 더욱 심해졌으며 물질적 가치에 우선해 삶과 환경을 망가뜨렸고 민주주의를 저해했으며 세계 각국에서 많은 패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기준이 된 것은 조금만 노력해도 자수성가할 수 있었던 ‘언덕 위의 도시’이자 축복 받은 천혜의 대지인 미국에서조차 극도의 불평등을 초래한 것도 모자라 전 세계를 대공황으로 몰고 간 신자유주의 체제를 고착화시키는 것이었다. 



인류와 자연이 그 밑바닥을 드러내며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절대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을 ‘자기조정 시장’이 이제는 디지털 세계인 사이버 공간으로 침투해 영원한 확장을 실현시키고 있다. 가족과 사회라는 최후의 보루로 지탱되던 아날로그 세계를 초토화시킨 중상주의자의 유물인 ‘사탄의 맷돌’이 이제는 디지털 공간마저 하나씩 점령해가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사람의 모든 행위와 생각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정보라는 형태로 거래되는 곳에서는 인류 모두가 생산자이자 소비자이기 때문에, 생산을 위한 재투자비용과 자원고갈 및 환경오염 방지라는 사회적 비용 면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디지털 세상에선 독점적 이익으로 귀결되는 ‘자기조정 시장’이 더욱 범람할 수 있다.



특히 정보가 교환되는 모든 곳이 시장인 사이버 세상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거래가 성사되기 때문에 아날로그 시장처럼 대부분의 상행위를 감시하고 규제해 바로 잡기도 힘들다. 극도로 파편화되고 익명화된 사이버 공간에서 국가와 역사, 전통과 문화, 계층과 계급 간의 협력과 유대란 갈수록 약해지고 퇴색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행위와 접촉은 ‘생각하고 성찰하는 인간의 두뇌’마저 퇴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모든 가치가 전자화폐의 이동과 즉각적 쾌락으로 압축되는 ‘사탄의 맷돌’이 무한증식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특히 모든 것에 우선하는 ‘자유방임적 논리’와 ‘생존권에 우선하는 지적재산권’, ‘사생활의 실종’과 ‘인간의 뇌보다 똑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국가와 공동체만이 아니라 전체로써의 사회와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삶마저 더욱 빠른 속도로 파괴시킬 것이다.



사실 세계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인류 전체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향해야 할 목표라 할 수 있다. 인류 전체의 삶을 고민하고 자본의 독주에 저항하는 세계시민들이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현상이다. 결국 문제는 필연적으로 글로벌 불균형을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추진되는 방식과 그것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 있다. ‘자기조정 시장’의 글로벌 버전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일방적 진행과 폐해를 알거나 경험한 국가의 사람들과 시민단체는 자유무역에 목을 맨 초국적 자본과 기업 및 각국의 통상관료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며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캐치플레이 하에 ‘공정무역’과 ‘사회적 정의’를 목 놓아 외친다.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무모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현실성을 띠려면 IMF나 세계은행, WTO 같은 국제기구들이 미국과 일본, 유럽의 선진국은 물론 그들과 함께 밀접하게 교류하는 민간자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자본집행에 있어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아울러 초국적 자본과 기업들도 이익 독점의 탐욕에서 벗어나 자유무역과 국제금융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원독점에 따른 지역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환경파괴와 오염이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지금보다 적극적인 사회 공헌을 통해 인류의 공존과 상생의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세계 국가는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배타적 자유무역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내 시장을 키우고 부의 재분배를 이루는 사회 안정망을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세계화는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는 국가들이 최대한 참여한 가운데 채택된 협약과 제도 하에서만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초강대국의 일방적 요구와 자유무역만이 유일한 신조인 통상관료들과 거대 자본의 끈질긴 담합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거대 언론들은 극도의 상업화에서 벗어나 ‘권력에 대한 감시견’으로써의 역할을 되살려야만 한다. 지배 엘리트와 집중화된 권력을 감시하는 제4부로써의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이 사적인 이익에 매달리지 않고 공공의 복리에 충실할 때만이 점점 촘촘해지고 상호 연관성이 높아가는 세계화가 더 이상 절대다수의 희생을 담보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병폐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질 것이며, 전혀 예상치 못한 불의의 난관이 닥친다 해도 세계화의 혜택에서 배제된 약자들이 가혹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생존선 주변에 몰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절체절명의 위험에 빠져들거나 절대적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그래서 그들에게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주려면 폭주하는 신자유주의 세력들의 탐욕을 견제하려면 각국의 언론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감시견으로써의 의무에 충실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이다.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보다 정의로운 세상이 가능하려면 그런 세상을 만들고 지향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구호는 그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발 심리를 희석시키는 역효과만 만들어낼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은 세계화의 과실이 모든 사람에게 합당한 만큼씩 나눠지고 장기적으로는 기회와 노력과 결과의 상대적 불평등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은 바뀌지 않으며, 내가 현재의 불평등한 체제에 탐욕적 이데올로기에 분노하고 연대해 투쟁하지 않으면 우리와 후대를 위한 또 다른 세상도 불가능하다는 것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또 다른 세상의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찌 ‘또 다른 삶이 가능하다(Another Life is Possible)’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인가.



문제는 절대다수의 난장이들(그 비율이 99%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이 주인이 되는 또 다른 세상을 가능케 하려면 그들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완벽한 버팀목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역사적 결정론자, 칼 마르크스처럼 노동계급에 의한 무장혁명과 다수의 독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철지난 휴머니스트의 치기 어린 바람이고 여러 층으로 분화된 현대의 계층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닫힌 세계인 지구에서 그의 주장을 실현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감당할 수 없는 무질서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악화로 현실적인 양화를 구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대다수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전에는 없었던 무질서한 세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아니한 만도 못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결국 혁명의 핵심은 과다한 에너지 소비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비폭력적인 방식을 찾는데 있다.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되는 역사의 전례를 되풀이한다면 어떤 체제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나는 뇌와 육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불균형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형에게 희망을 걸었다. 형도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내 방식에 동의할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가장 형답고 형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헌데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형의 생각과 방식은 나와는 달랐다. 형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모든 이들을 깨어 있는 지식인으로 만들어 완벽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공지능 알고리즘 프로그램도 개인에게 주로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형과 생각이 달랐다. 형의 계획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업체들의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절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형이 만든 프로그램이 세상에 출시된다면 그것은 기존의 강자들에게 핵폭탄보다 더 한 충격을 가할 것이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그들이 형의 프로그램을 가만히 나두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형의 계획은 철저히 사용자 친화적이라 업체의 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형은 자신이 만든 완벽한 프로그램을 모든 이에게 무료로 배포하려고 했었다.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그것도 분초를 따지는 디지털 기업환경에서 어떤 프로그램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제품을 무료 배포한다면 기존 업체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아 100%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형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형의 계획에 수정을 가해야만 했고 그것을 이루어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는 영원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고 세속의 때가 전혀 묻어 있지 않은 수경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던가. 헌데 지금 형이 흔들리고 있다. 그것도 내가 형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끌어들인 수경이 때문에. 세상에 ‘우영워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형뿐이고 따라서 형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리는 것이다. 내가 수경에게 재차 부탁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진행될 수 없다.



헌데 형이 수경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한다. 수경도 형에게 마음을 연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두 사람의 삶과 사랑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내게는 그것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일상을 덮어버린 시간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늘어질지 지켜보고 기다릴 뿐, 달리 할 것도 없다. 그렇게 기다리다 형이 생명을 다한 별처럼 산화하듯 마지막 에너지를 다하는 순간이 도래하더라도, 수경이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가 불연 듯 생을 등지는 모습을 속절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도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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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으응? 어, 어, 누구세요?



죽음 같은 잠에서 겨우 깨어난 희멀건 한 내 눈동자에 들어온 얼굴이란 것이 방금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면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곳이 천국인지도 몰랐다. 지난밤의 동생과 나눈 대화 때문에 모든 에너지가 고갈돼 잠든 상태에서 이승을 떠나 별로 죄 지은 것이 없는 관계로 천국에 직행했을 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랬으면 나...만 좋았고 동생은 무척 슬펐겠지만 어쨌든 나를 부르는 아스라한 소리에 겨우겨우 깨어나 가까스로 눈을 떴는데, 뒤로는 투명할 정도로 푸르른 하늘과 햇살을 배경으로 살며시 눈을 감은 채, 그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미소를 띤 천사가 더없이 달콤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깨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따듯한 손길이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의 신경은 극도로 흥분상태로 빠져들었다. 



'으흐흐. 어찌 이런 홍복이..'

“재우씨, 맞으시죠?”

“..네? 네? 네, 네! 재우가 저..인데요, 헌데 누, 누구세요?”



이런 연속적으로 멍청한 답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잠에 덜 깬 상태에서 가래가 가득 낀 목소리로 말했으니, 차라리 아니한 만도 못했고 이 모든 것을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지 않는가? 어제 동생과 얘기를 끝내고 난 뒤에 기절하듯 잠들었기 때문에 동생이 머리도 감겨주지 못했고(보통 이런 경우에는 떡 진 머리가 됐다), 깊은 잠을 자고 나면 항상 생기는 덕지덕지한 눈곱과 입가로 흘러내린 뚜렷한 침의 흔적도 닦아내지 한 상태일 텐데, 하필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이렇게도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날 게 뭐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째서 나에게 한없이 뒤끝이 찝찝할 모진 시련을 주신단 말인가? 하물며 상대가 천사라고 할지라도 모든 만남이란 첫 인상에서 상대에 대한 느낌의 90% 이상이 결정 난다고 하는데, 이렇게 억울한 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태어나 단 하루, 생전 가져보지 못한 기쁨과 행복 속에 잠이 들었건만 하늘은 그것마저도 용납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완벽한 폭탄이었다. 제기랄!



“전 수경이라고 해요. 야학 선생님인 재영씨께서 오늘부터 형님의 친구가 되 달라고 부탁해서 오게 됐어요. 형님과 말할 때는 말한 다음에 몇 초 동안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고, 너무 많은 얘기를 나눠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음, 그리고 방도 하나 내주셨어요.”

‘뭐, 방까지?’

“네, 네? 재영이의 친구가 되 달라고 제가 부탁을?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친구가 되 달라고 재영이에게.. 아, 이것도 아니지. 그러니까 그쪽 분한테 제 친구가 되 달라고 재영이가 부탁했다고요? 뭐, 방까지 내줬다고요?”



‘고맙게도!’ 재우는 차마 이 말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하긴 쓸데없이 남아도는 방이 하나 있기는 한다. 책과 잡동사니만 쌓아둔 방을 그대로 두기보다 이런 천사에게 내주는 것만큼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방값은 땡전 한 푼 필요 없다! 그냥 들어와 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양손 들어 감읍할 따름이다. 그렇다 해도 도대체 이게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분명한 아리따운 천사가 내 친구가 되 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그것도 모자라 함께 살아주기까지 하겠다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내 동생, 재영이가 부탁해서 말이지? 허면 재영이 이 곱디고운 천사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이 분명한데 설마 그것이 몇 시간 전이거나 하지는 않겠지? 지금 몇 시지? 밖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는 것을 보면.. 뇌리를 스치는 온갖 생각에 작금의 상황을 최상의 결론으로 이끌려 하는 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예의 달콤하고 정감어린 음성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그것도 최상의 결론 쪽으로, 으흐흐.



“네, 재영씨가 빈방이 하나 있다고 하면서 들어올 수 있냐고 부탁했어요. 전 재우씨가 하려는 일에 대해서 재영씨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승낙했어요. 그래서 오늘 같이 온 건데, 제가 싫으세요?”

“싫다니요? 천만에요! 오히려 가문의 영광이에요! 천사께서 있어만 주신다면야 집도 내드릴 수 있어요.”

“호호호. 그건 너무 큰 데요? 제가 영광이지요, 재우씨 일을 도와드릴 수 있게 돼서.”



웃음소리 역시 천하일품이었다. 그녀의 청아한 음성에 내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드는 듯했다, 조금 끈적끈적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헌데 이름이 수경이라는 이 천상의 여인은 말을 하면서 계속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차마 내 꼴을 계속해서 볼 수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설마?’

“사실 제가 시각장애 안마사라, 재영씨가 아예 집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형님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형님이 세상을 바꿀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재영씨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모양이네요? 정말로 제가 불쑥 찾아와 기분 상하신 건 아니시죠?”



말을 마친 천사가 잔잔한 미소(내게는 살인미소)를 띠며 나의 답을 기다렸다.



“아, 아닙니다. 기분이 상하기는요? 절대 아닙니다. 가문의 영광이라니까요!”



그녀는 역시 시각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살인미소를 만들어낸 자그마한 얼굴에 오똑한 코, 마스카라를 한 것처럼 짙고 긴 속눈썹, 예쁘고 작은 입술과 달걀처럼 갸름한 턱 선에 낭랑한 음성까지 어느 것 하나 천상의 명품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여자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적이 없는 내 눈에는. 그녀는 맑고 영혼과 고운 심성을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 천사가 분명했다. 저 가녀린 몸 뒤에는 단 번에 하늘까지 날아갈 수 있는 커다란 날개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숨겨져 있을 터였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 기분이 황홀경이리라. 재빨리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동생이 누군가에게 나를 살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또 어쩔 것인가? 이런 천사가 나를 보살펴준다는 데야 고맙고 감사하고 분에 넘치고, 크크! 웃음이 새나오는 것을 막느라 힘겨울 뿐이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탱큐 할 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천사와 함께 살려면 에너지 사용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을 터이니, 그것만 조심하면 성은이 망극할 지경이지 않은가?



‘할 수 없지! 이제부터는 TV를 본다거나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의도적으로 멍 때린다거나 하는 잡스런 일들을 전혀 하지 않으면 돼. 그리고 하나 더.’

“이제부터 무조건 많이 먹는 거야!”



나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생각만으로 끝내야 할 말 중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말았다.



“네? 아! 배고프시구나? 어떡하죠? 아직 제가 집안 구조를..”

“아, 아닙니다. 배가 고프다는 게 아니라..”



나는 천사와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혼선을 빚었다. 반응의 시간차 때문에 말이 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실수는 저질러진 것, 떡 본 김에 제사 드린다고 아예 이참에 대화의 방법에 대해 천사에게 설명하고 질서를 잡으면 된다. 쪽팔림은 잠시이지만 첫 만남부터 괜한 오해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헌데, 이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양 천사가 먼저 말하는 게 아닌가.



“아, 제가 말을 한 후에 몇 초 기다리지 않았네요. 죄송해요, 재우씨. 지금도 제가 중간에 재우씨 말을 끊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천사가 분명하디니까!’

“완전 아닙니다. 앞서 한 말은 제가 이제부터는 많이 먹겠다는.”



나는 여기서 잠깐 말을 끊고 기다렸다. 나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시켜주기 위해서였는데 천사가 분명한 그녀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상황을 파악하는 속도가 무지무지 빠른 것인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착한 심성은 기본인 아름다운 천사가 센스와 머리까지 좋은 것이었다.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은이 망극합니다!’



나는 먼저 두 종류의 신에게 감사를 마음을 전한 후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제 말은 수경씨가 제 친구로 오셨으니 이제부터는 많이 먹고 힘내겠다는, 뭐 그런 것이지요. 하하하!”



나는 최대한 남자답게 웃으려 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에너지를 팍팍 썼다. 깊이 자고 일어나서인지 오늘따라 에너지도 넘쳐 나는 것 같았고. 업 된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방방 떠다니며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호호호. 그런 것이었네요. 저도 좋아요. 제 남자 친구가 되어주실 분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명해주시니, 저도 많이 먹고 힘낼게요.”

‘남자 친구라고? 남자 친구! 크하하하하..’



나는 천하의 영웅호걸이라도 되는 냥 집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호탕하게 웃고 싶었지만 천사의 다음 말 때문에 마음 속 웃음을 중간에서 접어야 했다. 



“재우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재우씨 상황부터 제가 익혔으면 해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지금 상황을 알았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인생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여자 친구가 되려고 하는 복덩어리가 나의 상황을 알고 싶단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말랑말랑하고 더럽고 축 처진 내 몸과 배변 상태 등을 손으로 만져 일일이 확인해보겠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촉감으로 내 몸과 기타 등등의 부대상황을 익히고 그려서 뇌 속에 각인시키겠다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나는 너무나 두려워졌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생이 만지는 것 이외에 누구한테도 내 몸을 만지게 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천상의 선물 같은 수경씨라면 더더욱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급격한 변화를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운을 뗐다.



“재우씨, 제가 확실한 여자 친구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저는 손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과 소통해요. 하물며 제 첫사랑이 될지도 모르는 남친인데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다른 여자한테 절대 양보할 수 없어요, 그것만은.”

‘첫사랑이 될지도 모르는 남친이라 다른 여자한테 양보할 수 없다고?’

“아, 알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단 한 마디의 말에 모든 두려운 감정을 내려놓고 즉각적으로 완전 무장해제 상태로 돌입했다. 천사는 말도 이렇게 하나보다? 단 한 방에 나를 사로잡아 버리니! 그래, 어차피 치러야할 통과의례라면 빨리 치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아픈 건 변함없고 맨 처음에 전력을 다해 때리는 자를 만나면 말짱 황이지만 그 정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천사를 여친으로 만들려 한다면 천하의 도둑놈심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 재우씨가 말로 저를 안내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재우씨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 갈 테니까요.”



살짝 미소를 머금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래서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유리 같은 미녀를 봤을 때 뒤에서 후광이 난다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의 천사, 수경씨가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 있기는 했다. 



“저 근데요? 혹시.. 그러니까.. 어, 이를테면..”



나는 마음에 걸리는 마지막 하나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말을 빙빙 돌리자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것도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이!



“왜요? 또 마음에 걸리는 게 또 있으세요?”

“네? 네! 아, 그게 아니라.. 네, 네, 있긴 있어요. 헌데 그게..”



내가 엄청나게 더듬자, 그녀가 묘한 미소를 띠며(보조개가 너무나 예뻤다!)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 그게 다름 아니라.. 천사께서, 아니 수경씨께서 제 몸 상태를 파악하시기 위해 저를 만질 때, 저 그게 혹시..”

“혹시 뭐요?”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천사의 미소에도 은근한 음흉함이 내포될 수 있음을! 보조개는 왜 이리 예쁘고 선명하단 말이냐?



“그거 있지 않습니까?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거 있지 않아요? 그거 말이에요. 허어, 흠! 흠!”

“호호호호! 재우씨도 참 짓궂으시네요? 아직은 아니랍니다. 정말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모를까? 너무 빠르신 것 아니에요, 재우씨?”

“하하하. 하하. 하. 그러네요? 제가 너무 앞서나간 거네요. 하하하. 하하.”



해맑게 웃는 그녀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창피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문에 현답이라! 그녀는 분명 머리 좋은 천사이거나 그에 가까운 선하고 곱고 아름다운 여인일 수밖에 없었다, 적에도 나에게는 말이다.



“재우씨, 전 사람을 그만의 특유한 기운과 성품으로 보지 외모로 보지 않아요. 물론 저 같은 사람도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흔히들 잘생겼다 하는 얼굴이나 체형에 대해서는 떠올릴 수 있고 구별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상대가 잘생겼다고 제가 더 열심히 안마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제가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에게 피로한 상태에서 찾아와 제 안마를 받고나서 손님들이 시원해하고 기운을 차리시는 것에서 전 보람을 느껴요. 중요한 건 상대의 기운과 품성이에요. 제 안마를 받고나서 진심으로 고마워해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맑은 기운과 좋은 품성이 느껴지니까요. 사람 간의 만남은, 서로 주고받는 마음은 성적순도 외모순도 아니잖아요? 저에겐 재우씨에게서 느껴지는 맑은 기운과 착한 성품이 중요할 뿐이지, 그 외의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저에겐 재우씨가 앞으로 하실 일들이 중요해요. 거기에 제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구요.”



나의 천사는 너무나 조리 있게, 그것도 차분하고 담백해 피부와 쏙쏙 와 닿도록 말했다. 거기에서는 어떤 꾸밈도 느껴지지 않았고 특별한 의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직 사람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미치도록 굶주려 있던 나에게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녀에게, 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선녀에게 나처럼 미천한 자가 더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말 한 마디로, 웃음 하나로 나를 격려하고 이끌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그 일에 조금이라도 지쳐하면 언제든지 나를 보듬어 줄 텐데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고운 심성과 정말로 해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녀인데 무엇 하나 못할 것인가? 



그래 가보는 거다. 내 삶의 버팀목인 동생의 바람이 들어 있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하늘에서 지상까지 내려온 투명한 바람처럼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을(생각만 해도 피부에 소름이 돋고 오금이 저렸다, 몇 초 후에!) 수경씨의 손길이 녹아 있는 그런 ‘단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할 일이란, 살아서 이 땅에 남겨야 할 것이란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게 허락된 에너지를 모두 다 쏟아 부으리라. 마지막 한 점의 에너지까지 사용해 불꽃처럼 산화할 때까지 전력으로 달려가리라. 그래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게 마련인 법, 육체의 경험과 활력을 잃었다면 지력의 무한함과 자유로움을 얻었다. 잃은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얻은 것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주위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면 되는 것일 뿐이다. 뇌와 육체의 불균형이 나의 운명이라면 그 사용의 선택권은 온전히 내 몫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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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삶의 희열에 빠져, 세포 하나하나마다 전달되는 에너지가 너무 충만해서 사정없이 떨리고 절제되지 음성으로 물었다. 명경지수처럼 잔잔했던 마음의 수면에 거대한 격랑이 일었고 그 파문은 공간을 건너뛰어 바다와 하늘에까지 이르러 천상의 음악처럼 넘실거렸다. 그 위로 날아다니는 것이 새인지 구름인지 천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이던 간에 동생이 원하는 그 이상으로 만들어 내리라. 나는 처음 내 힘으로 일어서 문밖으로 나서는 아이처럼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동생의 답을 기다렸다.



“형,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은 수천 년간 형성돼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진 이 세상의 지배 시스템을 일거에 깨드릴 수 있는 독보적인 프로그램이야. 난 말이야, 대다수의 난장이들에게는 극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맞서려면 티끌 하나 끼어들지 못하는 순수 선과 궁극의 의지를 지닌 초인 같은 사람이나 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 쌓이고 더해져 내일이 되는 때 묻고 얼룩진 일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의 자그마한 버팀목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존재의 모든 가치가 교환 가능한 현재의 돈과 지위, 권력으로만 평가되는 이 불의하고 불모 한 시대에서 절대다수의 난장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균적인 선과 보편적인 정의로 대변되고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 한 주, 한 달, 길게는 일 년 단위의 실존이, 그 초라하지만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삶이 마지노선이 아닐까 생각해. 그들이 원하는 건 누군가 나눌 수 있는 풍족함이 아니라 평균적인 수준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들은 선을 논하기 전에 하루를 살아야 하고, 정의를 부르짖기 전에 또 다른 하루를 버텨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조건 맞서라고, 연대해서 싸우라고 할 수도 없었어.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까지도 무력해지는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난 고민하고 분노하고 생각하고 모색했어. 그들의 거대한 지배 시스템에 맞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그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어. 그들과 맞서려면..”

“니가 고민하고 모색한 게 대다수의 난장이들이 지배 시스템에 맞설 수 있도록 그들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거냐?”



열띤 음성으로 말하는 동생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들어간 것이 이번에도 몇 초의 시간차를 초래해 일부의 말은 뒤섞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동생의 말을 끝까지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미친 듯이 날뛰는 심장의 약동과 영혼의 떨림을 주체할 방법도 담아둘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맞아 형. 절대다수의 난장이들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 존재하는 모든 지배적 프로그램을 아래에 두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생각하고 성찰하며 소통하고 연대하는, 개인적 인격의 완성을 위해 일생으로써의 삶을 창출해가는, 어떤 사이트를 드나들어도 흔적도 남지 않아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의 비밀을 낱낱이 밝혀내는, 합당하지 못한 어떤 기득권을 내세워 정치경제적 불평등을 강요할 수 없는, 그래서 내가 작성한 「디지털 묵시록」 같은 세상이 절대 도래하지 못하도록 단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줘. 이 세상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으니까.”



‘형밖에 없으니까, 형밖에 없으니까, 형밖에 없으니까.’



동생은 계속해서 자신이 생각해둔 프로그램에 대해 말해주었지만 내 뇌리 속으로는 이 말만 수없이 되풀이 됐다. 동생의 기대가 내 온 존재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동생과의 대화가 1시간 정도 더 흐르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탈진하기에 이르렀다. 거의 몇 주치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된 오늘의 얘기를 마무리 짖지 않으면 나에게는 내일이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코의 실핏줄 압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봐서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다간 쌍코피가.. 제기랄!



“재영아, 나도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어. 내가 먼저 꺼낼 용기는 없었는데, 네가 용기를 내 줬으니 너무 고마워. 나 말이야, 지금 이 순간처럼 살아 있다는 것이 기쁜 적이 없었어. 내가 너에 대해 갖고 있던 부채의식을, 삶의 제약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싶었기 때문에..”

“형, 그런 말이 어딨어. 형의 삶이 내 삶이고, 내 삶이 형의 삶인데.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면서 둘이었어.”

“허허, 그런가? 우리가 둘이면서 하나였다고?”

“그럼. 형은 나의 영웅이었어. 나는 형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놈으로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았을 거야. 세상에 대한 특별한 의식도 없이, 세상이 하라는 대로 그저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살았을 거야. 난 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다가갈 수 있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어. 형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축복이자 영광이었어. 별로 머리가 좋지도 생각이 깊지도 않았던 나에게 형은 삶과 사회,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내 이성과 꿈의 한계를 넓혀주었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알려주었어. 그것은 내가 만난 각 분야의 대가들도 결코 해줄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아는 한, 형은 아인슈타인과 리처드 파인만을 묶은 그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과학자야. 그래서 형은 내 스승이었고 안내자였고 영혼의 동반자였으며 우상이었어. 결국 형은 나의 모든 것이었어.”



동생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고 두 눈은 맑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동생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고 거의 대부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순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동생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아서 나는 그런 균형적인 모습이, 몇 시간이고 일하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체력이, 그 보편적인 신진대사가 너무나 부럽고 조금이라도 나눠받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헌데, 동생은 육체를 희생시켜 뇌만 발달하는 지랄 맞은 나의 삶이 자신의 전부였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런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헷갈렸고 어지러웠다, 체력이 고갈되어서도 그렇고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동생에게 내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에서도 그렇고. 아무튼 누워서 보는 방의 천장과 벽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미의 노래처럼.



“야, 너무 비행기 태우는 것 아니야? 너무 어지러워 속이 다 울렁거린다. 미치도록 피곤하고. 아이고 힘들어!”



나는 그렇게 너무나 많은 에너지의 사용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달했는데 동생은 아직도 못다 한 말이 있는지 빠르게 몇 마디를 더했다. 동생으로써는 이런 얘기를 다시 꺼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리라. 한 번 작심하면 반드시 하고야 마는 동생의 고집을 생각한다면 더욱 더 그렇고.



“형이 2년 전부터 유난히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뇌과학, 생명과학, 정보물리학, 열역학, 양자역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에 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을 때, 형이 뭔가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것을 연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의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특히 지난 1년간은 내가 보기에 형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의욕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느껴졌거든. 그래서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나오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 과정에서 나도 힘들게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어차피 형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면, 차라리 내가 고민했던 것을 말해주어서, 형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으로 이놈의 세상을 뿌리부터 뒤집어 버리고 싶었어. 너무 허황된 생각이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어느 정도 확신했어. 지금의 형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거지. 그리고 마침내 오늘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거야.”



말을 마친 동생이 한껏 고양된 표정과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생은 분명 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고맙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나라는 놈이 동생에게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죽을 것, 이왕이면 날 끌어들여 화끈하게 한 판 사고나 치자, 뭐 그런 생각이구나, 너? 맞지 내 말이?”

“맞아, 형. 한 번 화끈하게 사고 치자는 거야! 그리고.. 미안해. 너무 너무.”



동생도 자신의 부탁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안함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생을 부모처럼 돌봐주었으면서도 단 한 번의 부탁을 하면서(그게 좀 엄청나기는 하다) 죄인처럼 괴로워하는 동생이 나는 오히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나는 이렇게 기쁘고 희열에 넘쳐 있건만.



“됐어, 재영아. 네가 부탁한 프로그램이라면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아. 내가 그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너 때문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과학자 중에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될 수 있을 테니까. 좋아, 한 번 사고 쳐 보자!”

“OK이야? 정말로?”

“당근이지! 싸나이 한 번 말한 것,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지. 안 그래, 재영아?”

“그럼, 그래야지. 그래야 형이고 나 아니겠어?”

“하하하. 그래, 그게 우리 형제지. 재영아, 나 반드시 니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낼게. 얼마나 걸릴지 확답할 수 없지만 믿고 기다려봐. 사실 내가 준비해온 것도 있으니, 조금만 수정하면 이른 시간 안에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정말이야? 역시 형도 뭔가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있었구나. 내 그럴 줄 알았어. 좋았어! 그럼 형, 그 역사적인 날을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하자. 파이팅 김재우!”

“허허, 녀석도..”



동생에 대한 덜어낼 수 없는 고마움을 담은 나의 진심 어린 격려와, 어쩌면 자신의 부탁 때문에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갈지도 모를 동생의 안타까운 격려가 함께 어우러지자 그것은 마치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들이 산상에서 불렀던 장엄한 노래와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 비장한 아름다움에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려던 달빛이 화들짝 놀라 형광등 불빛처럼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무려 51분이나) 계속됐지만 나에게 그것은 월드컵 결승전 후반(인저리 타임, 6분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51분이다)을 마음껏 뛰어다닌 일종의 해방구였다. 살아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천상의 선물이었고 끈질기게 나를 따라와 괴롭히는 불균형한 일상과의 결연을 의미했다. 



물론 더 이상 동생의 얘기를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해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전율과 흥분에 너무나 행복해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였다(연신 해댔던 하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기절하듯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꿈 없는 잠이 무려 28시간이나 계속됐다. 헌데 에너지 고갈이 장난이 아니어서 잠의 깊이가 너무나 깊고 달콤했는지, 누군가 나를 부르는 작고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아스라이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애타게 찾는 그런 느낌의 소리가 나의 미약한 청각을, 앙상한 어깨를, 약동하는 영혼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적이 어제처럼 연이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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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하나의 프로그램.”

“하나의 프로그램?”

“응, 하나의 프로그램. 너무나 완벽해 그 어떤 것도 상대가 되지 않는, 그런 단 하나의 프로그램!”



동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 나의 반응을 기다리던 동생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달아오른 나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호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펴기 쉽게 접은 세 장의 A4용지였다. 동생은 내 눈앞에 그 용지를 펼쳐보였다. 동생은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내 상태를 고려해 문자 크기를 13 정도로 한 것 같았다.



“형, 먼저 이것을 읽어봐.”



나는 동생이 펼친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디지털 묵시록」이란 제목 하에 적혀 있는 내용이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암울하기 짝이 없는 그의 생각이었다. 특히 동생은 방송 환경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완전 전환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표명하곤 했었다. 동생은 디지털 기술에 내재된 표피적이고 파편적이어서 필연적으로 제어에 유리한 본질적 성향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생각이 이 정도까지 부정적인지는 알지 못했다. 고막을 울리는 소리는 이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함성으로 커졌고 심장박동은 무려 평균적인 사람의 1/3에 해당할 만큼 빨라졌다. 나로서는 치명적인 고혈압 상태로 접어들기 직전의 위험한 상황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만들어낸 총화이자 정수인, 스크린(TV, PC, 노트북, 스마트폰, 테블릿PC)을 보거나 접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란 없다. 스크린 하나 없이 살아야 할 만큼 열악한 가난과 절대적 빈곤도 없다. 스크린의 누적적이고 지속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지지 않는 생각이나 인식도 없다. 스크린이 담지 못하는 사실이나 사건, 현상과 환상도 없다. 스크린에 올리지 못할 사소한 일상이란 없고 업데이트 돼 수정되지 않는 지식과 이상도 없다. 스크린에 영향 받지 않는 단절된 시간이나 조각나지 않는 공간이란 없다. 스크린에 의해 변형되어 왜곡되지 않는 역사나 문화도 없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평가하며 상상하고 집착한다. 각자의 감정을 저장하고 반응을 공유하며, 개개의 경험을 링크하고 비슷한 생각을 검색하며, 편집된 주장을 전송하거나 수신 받는다. 우리는 세상이 더 과학적이 될수록 생각은 더 편협해지고 반응은 더 기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추상적 사고가 무의식적 반응과 행위에 갇혀 있는 동안 끊임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디지털 유혹만을 유령처럼 찾아다닌다. 거실과 식탁에서도, 길을 걷거나 운전하면서도, 버스와 지하철, 고속전철과 비행기 안에서도, 일을 하거나 대화하면서도, 신에게 죄를 고백하거나 사랑을 나누면서도 우리는 스크린에 앞에서 점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디지털 스크린은 거대한 쌍방향의 네트워크이자 만능의 검색엔진으로 무장한 광고의 제국이다. 모든 감각과 환상, 접촉이 배제된 디지털 사정과 오르가슴의 경연장이자 소프트 파워에 대한 승자독식의 유토피아다. 스크린이 전달하는 일체의 메시지가 사실이며 실재이고 믿음이니, 이는 곧 21세기의 복음이자 전체주의의 창시자 플라톤의 환생이다. 따라서 스크린 자체가 모든 변화를 부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국가이며 사회이고 가족이며 나 자신이다. 우리는 단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열정,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을 업로드 하거나 다운로드 하기만 하면 된다. 스크린 안에서의 존재란 욕망의 투영이며 상징이고, 실존이란 배설의 터치이며 감각의 클릭이다.



스크린에 종속된 오감은 욕구를 충족할수록 예민해지고, 신경은 정보를 전달할수록 날카로워지며, 근육과 관절은 명령을 실행할수록 경직되어간다. 예민해진 감각은 신경을 건너 띠려 하고, 날카로워진 신경은 근육과 관절에서 자유로워지려 하며, 경직된 근육과 관절은 감각과 신경을 행위의 원천에서 배제하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십억 년에 걸친 누적적 자연선택이 이룩한 진화의 정수인 뇌의 기능마저 저하돼 서서히 스크린에 의해 정복돼 개개인의 생각과 감정, 기억과 인격마저 디지털 정보의 누적적 결정체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스크린 세계의 첫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진 이기적 유전자가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경험과 생각에 연결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실제 환경과 혼동을 일으키면, 이는 기억의 혼돈으로 이어져 뇌의 퇴행을 초래한다. 이런 기억 작업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에 의해서 기억이 장기적 기억으로 강화될 때마다 이 강화돼 해부학적 변화에 이르게 되면 이는 곧 관련 유전자에 기록된다. 이렇게 변형된 유전자가 복사돼 후대에 전달되고 각 세대의 스크린 경험이 축적되면 인간의 뇌는 지금까지의 진화의 과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신경회로를 형성해 다양한 사고와 개인적 경험에 의한 기억을 저장하는 유전자마저 즉각적이고 표피적인 작업 기억만 강화시키게 되면 마침내 인간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그 지겨운 사고의 수고에서 해방되리라. 인간 진화의 정수이며 미래의 개척자인 뇌도 신경세포인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기ㆍ화학적 반응의 복잡한 과정에 드는 수많은 에너지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통합적 인지과정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는 말초적 자극에만 반응하리라.



따라서 스크린에 연결되지 않는 자, 최후의 타인으로 남아 소외되고 잊혀 저 스스로 소멸되리라.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니, 스크린을 통해 맛과 냄새와 은밀한 촉감까지 전달되는 날에 인류는 디지털 세계에서 완전한 통일을 이루리라. 그 질긴 인류의 염원이 실현되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리모트컨트롤이 만들어내는 분열되고 단절된 환상의 감옥에서 한껏 자유로우며, 정보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고, 빛의 속도로 이어지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이곳저곳에 분산된 나의 일부를 배설물처럼 남기면 된다. 타인과의 깊은 접촉은 그 자체로 범죄이니 공기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흘러서는 전자처럼 쾌속 질주할 일이니, 우리는 자아를 분열하고 해체하면서 전체의 조각으로써 통합된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질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이 메시지와 이미지의 홍수와 휩쓸려 파편화되고 종교와 정치, 사회적 가치마저 상징화되면 삶과 메시지와 이미지는 삼위일체의 성역으로 들어선다.



이런 신화 창조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온라인을 유지하고 각종 알림 기능과 노출과 관음적 본능, 폭력적 성향에 충실할 일이다. 서로 교감하는 자에겐 무한의 쾌락이 주어질 것이니, 모든 메시지와 이미지에 부착된 링크를 따라 이동하고 가상의 버튼과 아이콘을 누르고 광고를 클릭하라.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리니, 광고의 노출과 팝업의 습격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약간의 피로와 산만함에 따르는 에너지 손실은 최소의 생각으로 최대의 쾌락을 얻는 기회비용이니, 이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상업적 정신의 정화이자 영원불멸의 진리이다. 무료로 주어지는 것에 복종과 권력이 교차하니, 최첨단 디지털 영상과 무한대의 하이퍼텍스트와 멀티태스킹의 영광은 지속 가능한 유일한 영역에 들리라.



이제 단순하여 즐겁지 아니한 것은 생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깊은 사유와 차가운 성찰이 떠난 자리에 표피적 재미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오락이 들어서리니, 인류의 모든 유산이 한낱 재밋거리로 전락하거나 퇴행된 신화로 부활하리라. 상식과 이성이란 먼지 가득한 박물관 창고나 공동묘지에 묻힐 것이며, 파편적 재미가 만물의 척도에 오르리니, 오직 개념 있고 쿨 한 것들만 번성하리라. 그리하여 세상 자체가 오락이 되는 날, 스크린 앞에 새로운 것도 영원한 것도 존재하지 못하리라. 오직 스크린만이 비선형적 진화의 끝에 이를 것이며, 디지털 통로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천사와 악마처럼 좌우에 거느린 채, 불멸의 권좌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들을 지배하여 영속하리라.



생각하는 자, 지워질 것이다.

의심하는 자, 삭제될 것이다.

판단하는 자, 차단될 것이다.

분노하는 자, 퇴출될 것이다.

거부하는 자, 폐쇄될 것이다.

도전하는 자, 해체될 것이다.

투쟁하는 자, 폐기될 것이다.



비약하라, 생각의 연쇄와 사고의 비선형적 통합에서 나오는 성찰을.

벗어나라, 삶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의 차이가 주는 번뇌와 소외에서.

생략하라, 이성과 경험을 통해 싹을 틔워 성찰과 창의에 의해 꽃을 피우는 과정의 수고를.

만끽하라, 우연이나 기회의 차별이 가져다 준 달콤한 결실과 비교 우위의 카타르시스를.

반복하라, 위의 4가지 정언 명령이 요구하는 것들이 나와 세상을 대체하는 그날까지.』



나는 수려한 문장으로 디지털 세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일방적일 만큼 암울하고 부정적이게 그려낸 동생의 글을 읽고 나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뇌와 육체에 제공되는 에너지의 불균형 때문에 일반적 삶을 거의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나는, 인간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서만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디지털 세계만이 삶의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았고 동생은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않는가? 헌데 그런 동생이, 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동생이 디지털 세계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한 글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을 위해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니, 어찌 이를 조금이라도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동생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하는데 뭐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동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고막을 찢을 듯 맹렬한 기세로 울려대던 소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생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디지털 묵시록」의 내용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어차피 한 번 읽었으니 다 기억 속에 저장됐고, 그것을 검색하는 시간이 순식간에 이뤄지니, 이를 잘 알고 있는 동생이 뭔가 말을 꺼낼 것이었다. 난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동생의 의도를 굳이 파악하려고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심장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뛰었다. 물론 거의 20년 동안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터질 듯이 뛰는 지금의 심장박동이 평균적인 속도인지, 그것보다 빠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지만.



“형,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걱정한 것처럼 나도 디지털 세계의 미래를 결코 밝게 보지는 않아. 언젠가 형이 말했잖아, 컴퓨터와 인터넷이 너무 허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온갖 바이러스와 악성프로그램이 범람하고 해킹이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쉬운 거라고. 따라서 빅데이터와 데이터 마이닝, 인식 알고리즘 등을 통해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디지털 세계의 절대 강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며 그 알고리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설명해줬잖아.”



그랬다. 15세 이후로 디지털 세상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나는 시도 없이 찾아오는 컴퓨터 바이러스와 악성코드, 해킹 등에 극도로 성질이 나 아예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는 한 마디로 ‘헐!’ 두 마디로 하면 ‘헐, 어이없음!’이었다. 컴퓨터는 정보물리학적 개념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내장된 펌웨어와 반도체를 포함해 전기전자와 기계공학적 측면만 강조한 디지털 장난감이었다. MS의 브라우저를 포함해 각종 소프트웨어들도 오류가 많았고 작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른 프로그램들과 충돌도 심했으며, 쉽게 해킹에 노출되는 병폐를 갖고 있는 코드들의 범벅이었다. 쉽게 얘기하면 컴퓨터라고 하는 것이 제조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고장이 잘 나도록 만들어진 지독히 상업적인 제품에 불과했다. 



인터넷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통제의 편리성을 위해 미국의 국방부에서 뚝딱뚝딱 만든 것이었기에 실로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느낀 그때의 실망감이란 어떤 말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 허망함에 컴퓨터과 인터넷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던 어린 동생을 붙들고 얼마나 많은 분노와 실망을 표하고 온갖 설레발을 떨었던가. 어쩌면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부정적 생각이 그때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형이 형 컴퓨터는 물론 내 노트북까지 슈퍼컴으로 만들어주었잖아. 그것도 공부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그것도 그랬다. 나는 그저 실망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내 컴퓨터와 동생의 노트북을 압도적인 능력을 보유한 슈퍼 디지털기기로 바꿔버렸다. 내 PC와 동생의 노트북을 슈퍼컴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정보물리학 이론들을 이용해 모든 연산이 동시 다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산기능을 병렬화시킨 블랙박스 펌웨어를 만들어 기존의 것을 대체했다. 아울러 프로그램 코드의 형태도 개방형(어떤 혈액형에도 개방된 O형처럼)으로 만들어 새로운 보조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때도 구성코드 간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공지능형 방식을 차용했다. 그 때문에 하드 디스크 용량에 상관없이 수많은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었으며, 온갖 연산을 위한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되도록 만들었다. 내 컴퓨터는 조립품이었고 동생의 노트북은 최소 용량의 제품이었지만 연산능력과 속도 면에서 빛의 속도를 방불케 했다. 어떤 동영상도, 멀티태스킹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쯤 되면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부정적 생각이 더욱 강화됐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잖아? 형이 모든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치료할 수 있는 슈퍼 바이러스 백신도 만들었잖아. 요건 조금 시간이 덜 걸려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잖아?”



아, 그래! 그것도 또 그랬다. 본질적으로 컴퓨터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는 기본적인 코드의 변형임으로 모든 변종 코드를 양자 에뮬레이터 블랙박스로 자동 연결시켜 내가 만든 펌웨어와 코드 배열이 다른 것들을 자동 삭제하는 기능만 첨가하면 만사 OK였다. 심지어 바이러스와 악성코드의 성지인 포르노 영상이나 스팸메일이라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컴퓨터에 가해지는 물리적 한계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까지야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무튼 컴퓨터 내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하나의 코드 방식만 취하게 하고 변종은 양자 에뮬레이터 블랙박스로 보내면 어떤 바이러스나 악성코드가 덤벼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비관적인 전망은 나 때문인 게 분명했다.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키워나갔어. 그것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할 지도 모르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생각의 형태가 구체화될 수 있도록 일단 나부터 변화시켜 나갔어. 어떤 물리적 한계에 부딪쳐도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만드는 것이 그 처음이었어. 다음은 지적 능력을 형의 발꿈치 정도라도 따라가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었어. 내가 부모님이 남겨 주신 책들을 형에게 읽어주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



동생은 잠시 말을 끊고 나를 살폈다. 내가 「디지털 묵시록」이란 자신의 글과 실로 충격적인 말(당시 나는 동생의 말에 심한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하는 상태였다)에 어떤 의견을 표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충격 속에서도 동생의 생각을 더 들어야만 했다.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전망이 너무나 절망적이고 암울한 것이 나 때문이라고 해도 나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니 나는 섣불리 답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나를 자극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로서는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미증유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먼저 형한테 너무 많이 미안하고 형이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울 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지만 나는 말이야 형, 사람들이 갈수록 단편적이고 이기적이며 천박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사람 간의 관계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계산적이며 물질적 이해관계로 좁아질 때마다, 나 같은 젊은이들이 갈수록 무력해지고 당장의 편의와 이익에만 매달리도록 세상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갈 때마다, 그에 굴복한 대학생들이 자신만 살자고 죽도록 스펙 경쟁에 매달리거나, 스스로 부딪쳐 인생의 답을 찾거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보듬고 불만을 들어줄 몇몇 멘토에 열광하는 것을 볼 때마다, 심지어 그들의 강의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힘겨운 처지를 들어달라고, 조금이라도 좋으니 공감해달라고 애원하고 울부짖어도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기득권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분명 시스템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는 나약함과 패배의식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는, 그래서 불의함과 불평등이 만연해가는 이 땅에서 수많은 약자들이 벼랑 끝까지 밀려나는 것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갈수록 가벼워지는 존재의 허망함을 느끼곤 해. 지배 시스템이 이런데,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아픈 것인데, 그들이 하루하루의 삶에 휘둘려 세상의 잘못을 직시하지 못하게, 연대해 싸워보지도 못하게 만든 지배 시스템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수없이 공부하고 생각했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보고 전문가와 재야 지식인까지 모두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어. 근데 말이야 형, 사실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형과 내가 함께 읽은 책 속에도, 내가 세상에 나가 부딪치는 사건들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하소연 속에서도, 무엇보다도 형의 삶 속에도 그에 대한 답은 들어 있었어. 난 단지..”



거침없이 열정을 토해내던 동생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것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얘기라는 뜻이었고 따라서 나의 호응이 필요하다고 것이었다. 나는 그런 동생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와 어떤 당위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아니 오히려 나는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단지 뭐?”



난 거대한 운명의 끈을 움켜쥐었다,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난 단지 용감하지 못했던 거야. 그들을 비판하면서도 나 또한 진정으로 용기내지 못했던 거야.”

“네가 용감하지 못했다고?”

“응, 난 용감하지 못했어.”



동생이 내 눈을 뚫어져라 직시하며 말했다. 동생은 절대 내 눈을 똑바로 바로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나의 동생이라는 입장에서 단 한 발도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그것에 아무런 의견도 제시할 수 없는 나의 두려움과 안타까움이었고, 서로 간에 누구도 먼저 넘지 못할 태생의 원죄 같은 우리 형제의 슬픔이자 한계였다. 헌데, 그런 동생이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동생의 눈빛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용감하지 못했니?”

“모든 면에서. 특히 형에 대해 가장 많이.”



동생이 나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말을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무엇이던 떨어지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