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핵발전

조둥동과 한수원노조는 미래세대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핵발전은 (일체의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그것이 가동되는 시기의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에너지원입니다. 그 이유는 핵발전의 폐기물들이 최대 수십만 년 동안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별도의 장소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인데, 어떤 나라도 최대 10만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하나의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상식의 수준에서도 핵발전은 미래세대에게 계산하기 힘든 피해를 떠넘깁니다. 더 이상 핵발전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핵발전 옹호자들이 미래세대의 이익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핵발전은 발전소를 건설하고 해체하는 업계와 갈수록 수준이 떨어지는 직원(최고의 인재가 지원하던 원자력공학과.. 더보기
과학만능주의와 인류의 종말 이처럼 끝없는 이윤 창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산업사회의 2차적 시장 형성이라는 ‘요정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동안 결과의 부작용(부수효과)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개인에게는 과학적 결과에 대한 낙관적 운명론이란 현세에 재현된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과정은 역사의 필연이며, 그래서 폭주하는 기차를 멈추게 하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대안과학과 대체의학 및 과거회귀적인 식이요법과 지역의 소규모 농장을 돕는 것 이외에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유기농 열풍과 함께 확률로 먹고 사는 ‘공학’이 전면에 부상한다(특히 유전공학과 환경공학 및 원자력공학). 이들의 주장.. 더보기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ㅡ 진실을 마주할 용기(3) 결국 사회가 ‘1 대 99(실질적으로는 0.1 대 99.9) 사회’로 재편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광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0.1%만 비대칭적 종말을 지켜보며, 끝내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에서도 홀로 독야청청할 것이다. 울리히 벡의 말처럼 ‘부는 상층부에 쌓이지만, 위험은 하층부에 쌓인다.’ 따라서 부와 기회와 위험의 불평등이 정확히 중첩되는 부분의 사람들부터 종말을 맞을 것이다. 상황을 바꿀 시간은 이미 지났다. 정말로 0.1%의 특권그룹에게 유리한 ‘상황이 나빠질수록 좋다’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추상화한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생산방식과 전문화된 과학기술)에 의해 상부구조(정치, 문화, 교육, 종교 등)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전문화된 하부.. 더보기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ㅡ현대성의 탄생6 결국 지난 250년 동안 인류는 지구 곳곳에 널려 있는 석탄을 이용하는 기술이 내연기관을 탄생시켰고,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엔진 노릇을 톡톡함으로써 노동분업(포드의 자동차 생산방식, 포디즘)의 1차 소비 팽창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로 석유의 다양한 이용과 전기전자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포스트포디즘(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환경규제를 피해 전 세계적 재편성된 생산체제)의 2차 소비 팽창을 이룰 수 있었다. 이어 생산품(특히 모바일기기와 문화 콘텐츠)를 한 번 만들면 무한복제가 가능한 첨단통신기술의 발달로 지적재산권과 특허전쟁으로 중무장한 초국적기업들의 3차 소비 팽창을 들어설 수 있었다. 이들은 이제 각 지역 고유의 생명으로부터 추출한 유전자와 원소들을 특허권으로 독점해, 지역 고유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