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관련된 뉴스와 보도만 수집·공개했던 예전의 메갈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상당수 여성을 페미니즘의 본질에서 벗어나 남성 모두를 적으로 돌리도록 만드는 집단극단화를 만드는 주범은 기레기 짓거리로 먹고사는 언론들입니다.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조차도 공부하지 않는 '정의론' 관련 정치철학서들을 보면 지난 날의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철학과 사상을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음에도, 선정적 보도로 먹고사는 언론들이 벌레보다 못한 남성들의 성범죄를 과도하게 보도함으로써 많은 여성들을 성대결로 내몰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로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것을 법과 제도를 넘어 인식의 차원까지 넓혀가는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 인간의 진화가 뇌의 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방향성을 띠면서 여성이 감당해야 할 육체적·정신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인류의 진화를 위해 여성에게 떠넘겨진 모든 것들ㅡ초경부터 수십 년간 지속되는 월경, 생리통, 임신, 임신 중독, 출산, 산후 우울증, 수유, 육아, 교육, 폐경 등등ㅡ은 인류 문명이 남성 위주로 진행된 핵심이자 근원입니다. 신자유주의에 이르서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최고조에 이르렀고요.

 

 

이런 진화론적 선택 때문에 가부장적 가족관계에서부터 모든 지식과 소통의 수단인 말과 언어에서의 차별(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보라)은 물론, 남성 위주의 세상과 사회가 수만 년 동안 이어져올 수 있었습니다. 인간 모두가 단백질 위주의 진화를 거부할 수준에 이르면, 즉 특이점을 돌파한 인공지능(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지만)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면 모든 차별이 사라지겠지요. 그런 날이 오면 인간은 살아남을 가능성도 없으니 이런 고민조차 의미없지만.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으로써 존재하는 한 여성이 감당해야 할 불리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섹스와 결혼(동거 포함)이 사라진 세상이라면, 혹은 인간 대신 로봇과 사랑과 섹스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육체를 포기한 채 디지털 기억으로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여성이 감내해야 할 불리함이 사라지겠지요. 기술 발전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남성에게 유리한 조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여성의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시민(남성)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반발해,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올랭프 드 구즈(남성들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를 전후해서, 여성의 인권과 권리,자유를 위해 투쟁해온 페미니스트들의 노력 덕분에 법과 제도에서의 양성평등과 젠더의식은 상당한 수준까지 이루어졌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계보를 이는 마거릿 캐노번의 《인민》을 보면 여성이 주권과 민족, 보편적 인류로써의 '인민'에 포함되는 여정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상당 분야에서 값싸게 사용하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인력(노동)으로써의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유리해짐에 따라 역차별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늘어날 정도니 천지개벽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여성들 사이에서도 유리천장을 깨뜨리기 위한 고학력 페미니스트의 투쟁이 중하위층의 여성들에게도 이익으로 흘러넘치는 '페미니즘의 낙수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반페미니즘을 선언하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까지 더하면 진화론적 차별을 강조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어떠하던 간에, 인류가 호모사피엔스에 접어든 이래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와 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일부의 남성들이 존재하다는 것입니다. 진화적 차이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1.3~1.5배 정도 강하졌다는 이유로 여성을 상대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벌레보다 못한 일부의 남성들이 여성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따지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과 범죄 등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성대결을 넘어 여성우월주의까지 쟁취하려는 일부 극단적 여성들 때문에 모든 남성들이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초소형카메라처럼, 모든 연령대의 남성(여성도 있겠지만)들이 언제 어디서나 여성들의 신체와 성관계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기술 발전도 문제의 심각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면 부모와 자식도 팔아먹는 장사꾼과 관종들이 이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배포하기 때문에 여성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일상 전체를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명의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평균적 횟수가 정서적인 체험을 거쳐 매일같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는 양적 폭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남성들이 저지른 벌레보다 못한 짓거리가 모든 남성에게 적용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거의 모든 남성들이 여성과 함께 있을 때 단어 하나에도 조심하고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여성들이 매력적인 남성을 보는 것처럼, 남성들도 매력적인 여성들을 보는 게 본능적인 것임에도 '시선강간'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펜스룰'이 또 다른 차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남성들이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동안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함께했던 남성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도 오고갑니다. "좋은 감정이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언행에 대해 감정이 나빠진 이후에 고발하면 당할 수밖에 없잖아?" "내 말이 그말이야! 방법이 없어. 가능하면 어울리지 말아야 해." 무수한 욕을 먹고 있는 펜스룰이 남성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성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던 저도 요즘에 들어서는 몇 번을 생각한 다음에야 몇 마디 말을 건낼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폭주에 따라 남녀만이 아니라 인간들 간의 상호교류와 대면적 만남이 파탄지경에 이른 지금, 성대결 양상이 갈수록 극단화하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초기 인류가 호모사피엔스으로의 진화를 선택한 이래,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전가된 희생을 제대로 보상도 해주지 못한 상황에서 양성평등과 상호존중의 공존은 물건너간 것처럼 다가옵니다. 일베가 나타났을 때 박멸하지 못한 것이 통한의 단초가 되었다고 해도 작금의 상황은 절망적이기만 합니다.

 

 

대통령부터 대기업 사장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위 10%의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몸이라도 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여성들까지 현대의 페미니즘(프랑스 페미니즘에 경도된)이 품어내려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초보적인 피임에서 모든 형태의 성소수자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그들 사이의 혼란을 종식하고, 단합된 세력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포함돼 있는 퀴어이론에 이르기까지 이론과 실천의 페미니즘이 극우 포퓰리즘화한 불꽃 페미들의 폭주를 담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성을 차별하고 존중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차별을 강요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어떤 남성도 용납할 수 없지만 성대결로 치닫는 미래세대들을 보고 있으면 일찍 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극렬 페미니스트들이 같은 여성들을 상대로 폭력적인 획일화를 강요한다는 얘기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1990년대의 반페미니즘 기류가 다시 부활할 것 같아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여성인권 향상과 양성평등, 젠더의식 고양에 찬성하는 여성들 중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이 존재함에도 하나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입니다. 나치가 장애인, 성소수자, 희귀질환자, 정신질환자 등을 독일 국민에서 제외시키고, 나머지 국민들을 협박해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든 과정이 극렬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악용해 여성들의 선택권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이들의 행태는 전체주의 그 자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앞선 세대의 모든 여성들과 기혼여성들을 욕보이는 방식으로 투쟁 동력을 얻고 있어 비열하기까지 합니다. 앞선 세대의 여성들을 모두 다 적으로 만드는 이들의 폭력성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 세 아들을 키워 나름대로 성공시킨 제 어머님의 자긍심마저 모독하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호모사피엔스의 역사 전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반동도 이런 반동이 없습니다.  

 

 

디지털기술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주도하는 이런 묵시론적 현상들이 인류의 종말을 가속화한다면 누구를 위한 페미니즘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 남성주의 운운하는 벌레보다 못한 놈들까지 활개를 치고, 이에 호응한 저질 꼰대들이 남성 위주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파렴치함까지 기승을 부린다면 전면적 문화전쟁을 넘어 물리적 충돌(이수역 사건의 본질)까지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한계를 찾아내 기뿐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려 하다가도 극단적 성대결의 미래세대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다가오곤 합니다.

 

 

위대한 인권운동이자 양성평등을 향한 탁월한 정의론으로써의 페미니즘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만 가는 하루하루입니다. 불꽃 페미가 어떤 것들까지 쟁취하려 하고, 여성이 우월한 세상이 펼쳐질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으며, 이땅의 언론들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보도로 극단적인 성대결을 유도하면서 광고 수주에만 열을 올린다면… 지옥이 따로 없겠지요. 여성을 극단적 페미니스트로 만들고 있는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사회적 흉기로써의 기레기가 대한민국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전형적 방식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또다시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불꽃 페미의 섬뜩한 폭언들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다시 나오기 힘든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양성평등 정책들까지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문프의 67번째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아, 대한민국 사법사의 최대 수치로 등극한 양승태의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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