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뒤늦게나마 조국 대전에 참여한 이유 중 하나는, 보수 정부만 들어서면 기레기로 변신하는 KBS의 확증편향적 쓰레기 보도들 때문이었다. 이명박근혜 정부 10년의 기레기 짓거리를 통렬하게 반성했다는 KBS는 조국 일가 보도에서 그것이 쌔빨간 거짓말이었음을 증명했고, 감찰의 공소장이 확정된 진실인양 보도한 오늘도 증명했고 내일도 증명할 것이다. 자한당, 검찰, 언론의 삼축동맹에 의해 시작된 조국 대전이 한반도를 뒤덮은 이래 KBS 9시뉴스는 단 한 번도 조국 일가가 범죄자라는 확증편향과 집단극단화의 광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저널리즘J> 덕분에 KBS 9시뉴스(모든 뉴스)의 기레기 짓거리들이 상당 부분 묻히고 있어서 그렇지, 국민의 시청료로 먹고사는 KBS 9시뉴스의 확증편향과 집단극단화는 국민ㅡ최소한 서초동에 모인 국민들ㅡ을 능멸하고 욕보이는 짓거리의 정화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KBS 기자들(정직원)은 일베 해비유저라고 해도 일단 입사에 성공하면 정년퇴직 때까지 절대 잘리지 않는 불사조여서 이런 기레기 짓거리를 감행하는 것에 꺼리낌이 없다. 이땅의 기득권 중에서 검찰과 함께 최고의 지위에 있으니 일반 국민들이야 우습게 보일 밖에.  

 

특히 KBS 보도국 기자들ㅡ직위가 높을수록 더욱 심각하고 법조팀이 특히 심하다ㅡ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의 (조선일보 오너 일족과) 걸레 같은 기자들처럼 이땅의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열한 엘리트주의와 교조적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의 보도에 따라 여론을 넘어 여론환경까지 제멋대로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신성불멸의 검찰마저도 자신의 취재망에 걸리면 끝장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오만방자함은 조국 보도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저널리즘J>에서 심판자 역할을 자임했던 김덕훈 기자의 발언이 예외적이거나 감정적 실수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오만방자한 발언은 KBS 보도국 기자들이 공유하는 의식(김경록 인터뷰를 검찰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조작내 보도한 3건의 꼭지에서 본격적으로 시발된)의 발로이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행태다. 보수 성향은 물론 진보 성향의 기자들도 이런 의식과 행태를 보여주기 일쑤지만 KBS만큼 강고하지는 않다. 자신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 확신하기 때문에 조국 일가의 성공 행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심판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성공이란 반칙이고 특권일 뿐이리니. 

 

KBS 9시뉴스와 그밖의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최고의 기레기로 전락했다 기사회생한 기자들(특히 보도국과 편집국 소속)이 촛불혁명을 통해 배운 것은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뿐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KBS의 정치 관련 뉴스를 보고 있자면, 일체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민주적인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적인 보도만 내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의 반론권도 인정하지 않는 조국 보도는 예외로 한 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땡전·땡박 뉴스를 남발하다가도, 진보적 성향의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언론의 윤리 운운하는 것으로 살아가던 이들로써는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정치투쟁에 더 이상 휘말려들기 싫었으리라, 민주주의에서는 필수적인 정치투쟁을 진영논리로 치부해버림으로써. 대한민국을 불평등과 불공정, 부정의하게 만든 주역들이 거의 대부분 자한당 주변에 모여있음에도 양측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정권교체라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면죄부 발행에 급급하면서 기존의 기득권은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한다. 

 

검찰과 KBS 법조팀 기자들의 유착을 폭로한 10월 8일의 <유시민의 알릴레오, 알라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KBS 기자들에 대한 필자의 비판이 주관적인 헛소리에 불과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능멸받아 마땅한 국회(후진적 정당정치 포함)처럼, 나는 이땅의 언론과 기자들에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유시민의 폭로가 놀랍지도 않다. 법조팀 기자들이 검찰과 메신저를 통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한다는 것에서는 분노도 치밀었지만, 반칙과 특권으로 먹고사는 기득권의 양대산맥이 검찰과 KBS 기자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KBS의 법조팀과 검찰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라!) 

 

따라서 법과 제도로써 신분이 보장되는 자들도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는 여기서 나왔다)로 일체의 기레기 짓거리에 면죄부를 발행할 수 없다. 기소를 남발하거나 유예함으로써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에 면죄부를 발행하는, 자신에게는 정치적 보험을 들어두는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주의에서 검찰권력의 대부분이 나온다. 노통과 문통을 제외한 살아있는 권력과의 정치적 거래도 여기서 나왔다. 조국 일가를 범죄자로 만드는 작업도, 노통이 그랬던 것처럼 문통과도 정치적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이래, 반칙과 특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언론의 역할(다양한 정치결사체와 함께)이라고 이해돼왔다. 언론이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시대정신 및 공익에 헌신하고, 권력자와 기득권이 아닌 국민(주권재민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무엇보다도 어떤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 법앞의 평등과 공정한 정의의 근간인 평등한 자유)을 위한 진실을 보도하는 공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주장이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또다른 이름이 기레기가 된 작금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공영방송의 타락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심하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분출은 당연한 귀결이다. 언론에서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조차도 보도하지 않는다면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인민)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거리의 정치는 최소화됐을 것이며, 검찰의 반칙과 사법부의 국정농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포털과 1인 미디어, 팟캐스트, 유튜버 등의 등장으로 언론의 먹거리가 줄어든 것은 이해하는 바이나 그런 열악해짐은 기술 발전에 따른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것이어서 변명이 될 수 없다. 유독 언론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설사 언론 환경이 유독 심하게 어려워졌다 해도 반칙과 타락, 특권과 편향까지 이해해줄 수는 없다. 하물며 국민의 시청료라는 끊기지 않는 밥줄이 있는 공영방송 KBS의 기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엘리트주의에 확증편향과 집단극단화가 붙으면, 그게 바로 파시즘이다. 히틀러의 나치와 스탈린의 소비에트, 히데키의 군국주의처럼. 조국 대전을 서둘러 따라가며 찬찬히 지켜보고 있자면 검찰총장과 KBS사장을 국민의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 어떤 나라와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그래서 대다수의 나라들이 겪은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유일무이한 나라인 미국에서나 통할 수 있는 극단적인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최소한 국민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공영방송이라면 새로운 접근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권력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이 부과돼야 한다. 공영방송의 핵심이라고 해야 할 KBS 9시뉴스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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