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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어쩌면 하늘로 떠난 엄마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의 이승윤이란

 

 

스포츠 채널로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정지한 TV화면에는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이 아닌 번호 30번으로 불리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목을 풀었다. 공연을 하기 직전의 가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을 푸는 경우는 많지만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참가자는 처음 보는 듯했다. 왠지 모를 생경함과 연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부르겠다는 노래라는 것이 이런,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이란다.

 

 

뭐지, 이건? 갑작스러운 호기심이 몸을 관통해갔다. 리모콘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청년의 성대에서 튀어나온 노래라는 것이... 그랬다, 충격 그 자체였다. 호기심은 무한대로 솟구쳐 제멋대로 온몸을 휘졌더니 어마어마한 전율로 자라나 나를 압도했다. 아니, 집어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그 청년의 압도적인 열창에 빠져들었다. 

 

 

청년이 보여준 몰입도와 무대를 폭발시킬 듯한 그 퍼포먼스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낸 노래가 청년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춤사위가 청년이었다.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은 그렇게 청년의 것이 되었다. 어떤 단어들을 동원해야 청년의 무대에 걸맞은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그랬다, 그 몇 분의 시간이란 초대형 가수를 넘어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이승윤이란 가수의 무대를 처음 본 순간을 거칠게 표현하면 이러했습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이승윤의 열창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땠을까? 만일, 정말로 만일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동안의 시간 지연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승윤의 치릿치릿뱅뱅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시사와 시대에 관한 치열한 영상들을 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권에 이르는 독서량으로도 누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유튜버에 불과했는데, 아고라의 논객으로 활동할 때와는 완벽히 다르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없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30호로 불리던 무명의 이승윤을 천둥벼락처럼 만났습니다. 파당정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고민과 주저함을 한방에 날려주었습니다. 사막을 헤맬 때난 느낄 수 있는 갈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의 한 달이란 한여름밤의 꿈 같은, 달콤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어머님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단 하루도 형이상학적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한 달이란 시간이 푸른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그들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바람같이 흘러갔습니다. 녹화를 마친 영상에서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차분해졌고,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통신사업에서 망한 후, 지난 20년 동안 책 없이는 단 하루도 보낼 수 없었는데, 어머님을 보내드린 후 단 한 시간도 편할 수 없었는데 제가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승윤이란 청년에 흠뻑 빠져 덕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팬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제게 보내준 한아름의 선물이었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12년 이상 저를 지켜본 독자분들은 늙은도령이 미쳤구나, 마침내 맛이 갔구나. 죽을 듯 죽을 듯하다 겨우겨우 살아나더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쳤습니다. 네, 미쳤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이승윤이라는 청년에게 미쳤습니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전율에 빠져들었던 노래에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엄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조금만 쉬어갈게. 노래 가사처럼 '쉬지 않고 난 계속 달렸으니까. 잠시만 쉬어갈게, 물 한 모금 마시며. 엄마의 대한 그리움도 물로 적시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형이상학적 죄의식도 물로 달래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