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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대차 한전부지 매입논란,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한전부지에 대한 현대차의 고가매입 논란에 대한 수많은 글들을 보고 있자면, 많은 아쉬움이 있어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는 두 개의 초국적기업이 한판 대결을 펼친 한전부지의 고가매입 논란을 이해하려면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한전부지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넘은 가격에 현대차에 넘어갔는데, 한전부지 가치에 대한 일반의 평가와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축적해둔 초국적기업의 평가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글이 유투브를 18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구입한 것처럼,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를 미래의 요람으로 보고 있었기에 일반의 평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그룹인 폭스바겐의 본사처럼 자동차 박물관(또는 자동차 테마파크, 관광객까지 포함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만 염두에 두고 한전부지를 매입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삼성전자그룹의 신사옥을 뛰어넘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가매입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현대차가 한전부지에 롯데가 잠실에 짓고 있는 초고층빌딩(부지의 넓이를 봤을 때 꼭 한 개의 빌딩만 짓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자 대비 원금을 회수할 방법이 널려 있다는 것이고, 현대차그룹에 속해 있는 대기업들을 살펴보면 무엇이 들어설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화점을 새로 짓는다 해도 교통의 요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동차 테마파크는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직접 판매의 장소이기도 하고 거대한 주차장이기도 합니다. 국내외 부품업체의 입주도 줄을 이을 것입니다. 대형 자동차쇼와 국제회의를 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도 들어설 수 있습니다. 롯데월드 같은 새로운 테마파크도 들어설 수 있고, 이런 식으로 각종 부대사업들이 가능합니다   



또한 초국적기업의 위상에 맞지 않았던 구사옥에서 벗어나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주는 영향이 지금보다 몇 배는 배가됩니다. 시간이 곧 돈인 그들을 원스톱으로 상대할 수 있으니, 각종 사업의 성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호텔의 역할도 할 테고, 실제로도 호텔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도 계속 쌓아만 두면 낮은 금리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어 일정 규모의 감액은 현대차에게 유리합니다. 또한 자동차산업은 부품 및 하청업체들이 어떤 제조업보다 많은데, 이를 통합관리할 수 있는 공간적 활용도 부가가치 극대화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보다 앞선 순위의 자동차기업들은 폭스바겐 본사의 대박신화를 벤치마킹한 상태라 현대차는 오히려 늦은 편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씹어댈 수 있어서 그렇지 초국적기업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기업 대 기업으로 부딪치면 두려운 것이고, 승자독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가 제시한 입찰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삼성전자의 입찰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볼 때 현대차의 입찰가에 비해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무려 10조원에 이르는 거액이 투자되는데 양사의 정보전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을 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의 다음 번 인사에서 이번 입찰을 담당한 미래전략실의 담당 임원과 직원들이 승진하면 삼성전자가 제시한 입찰가가 현대차의 입찰가에 비해 천억 단위에서 차이를 보였을 것입니다. 반대일 경우에는 현대차가 삼성전자의 작전에 농락당한 것이 됨으로 이번 논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번 현대차의 인사를 주목하면 됩니다.





인사에 관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기업문화 차이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기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글로 옮기지 못함을 이해해주십시오. 특히 동생과 친구가 양 그룹의 임원이라 보다 깊은 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경험한 것과 오픈해도 될 정도의 것들은 이번 글에 다 담았습니다.



동생과 친구가 양 그룹에서 퇴사하면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양사와 직접 거래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언론과 회고록 등에 나오는 내용들이 얼마나 걸러지고 축소되고 포장된 채 전파를 타는 것인지 상상하는 이상의 것들로 즐비합니다.



이는 전 세계가 동일한데, 직위가 높을수록,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경험의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정권이란 4~5년, 길게는 8년을 가지만 초국적기업들은 그 몇 배에서 몇 십 배나 오래갑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시장이 형성된 현재는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는 초국적기업들은 국가라는 경계가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세 번째는 현재의 경제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금융권과 삼성전자그룹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증세와 공무원연금 및 공기업개혁에 나선 것, 유럽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것, 미국의 부활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 중국의 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인도 등 신흥국들의 경제마저 나빠지고 있거나 정체상태에 빠져있는 것, 인류의 다음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것 등을 고려하면, 인위적인 성장률 조정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구조조정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MF가 최근의 보고서에서 성장률 추이를 하향조정한 것이 시사하는 바는 현재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럴 경우 현찰이 풍부한 초국적기업을 중심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대형투자은행들이나 거대 헤지펀드와 연기금들이 초국적기업을 중심으로 보수적으로 자금 운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돈을 불러오는 이런 순환이 몇 번만 반복되면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은 제로섬 게임처럼 일정 기간 진행될 것입니다. 20년 전에 회자됐던 대형기업 중심의 업종별 구조조정이 이제야 실시되는 것으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런 추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해도 기본적으로 제조업을 놓지 않은 초국적기업들은 살아남게 돼있습니다. 한국의 경쟁력도 제조업에서 나오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조업의 가치는 늘어납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천문학적인 실탄을 갖고 있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라면 일정 수준의 부침은 있을지언정 급작스런 몰락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승자의 저주는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다고 해도 특정 지역은 이런 추세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게다가 건설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현대건설이 할 것이니 투자비용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승자의 저주라는 것은 너무 나간 것입니다. 



다만 이번 글은 초국적기업과 계열사들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내부거래적 요소와 기본소득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정치경제적 판단은 배제한 글임을 밝힙니다. 그것까지 다루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거대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적 오류와 역설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