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


                                                                ㅡ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인용




박근혜 대통령의 작심발언이 있고 난 뒤에 유신시대를 방불케 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려 40년 만에 대통령 모독죄가 부활하질 않나, 검찰은 빅 브라더를 자처해 공개된 장소라면 상시 감시를 하겠다고 하질 않나, 캐나다 교민의 시위를 거대한 차량으로 가로막지 않나, 민주주의를 뿌리 채 부정하는 일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독재란 국법이 정지된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나치의 공법학자로 악명 높은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이나 《독재론》 등을 통해 정립했고,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통해 구현됐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발언이 나오자마자, 검찰이 놀라운 민첩성으로 인터넷 명예훼손 전담팀을 구성해 상시적 감시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헌데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는 기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치의 파시즘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연구를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합법과 불법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독재는 압도적인 권위(공권력)에 의해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때문에,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결정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이고 명분화된 기준이 없으면, 통치자의 기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통치자가 그건 코걸이야 하면 귀걸이도 코걸이가 됩니다. 통치자가 얼굴을 찡그리면 범죄가 되고, 얼굴을 붉힐 정도면 중죄가 됩니다. 박정희의 유신시절에 쏟아져 나온 긴급조치 1~9호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때는 시민이 세 명만 모여도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을 때, 필자가 걱정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박근혜 대 문재인의 대결이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이라는 글을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서 환경에 의해 길러진다는 것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님은 너무나 많은 사례들로 새삼스럽게 언급한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입니다.





헌데 20세기도 아닌 21세기가 14년이나 흐른 지금에서 창피를 무릅써야 할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UN에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 날, 국내에서는 인권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나오는 빅 브라더가 따로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김기춘 비서실장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거쳐 김진태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사정라인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나치의 살해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탄식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이 《계몽의 변증법》을 쓴 것도 그 탄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예로부터 금지가 오히려 마약 같은 독극물로의 접근을 부추겼듯이 이론적 상상력의 차단은 정치적 광기에 길을 활짝 열어준다.



“마음에 드는 것은 허용된다”라는 말이 진리라면, 그 반대인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도 진리입니다. 근대의 민주주의가 탄생하던 순간부터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면 민주주의는 독재나 전체주의로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독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검찰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글은 쓰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이런 발언은 독재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것입니다. 검찰의 발언대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글’이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법치주의의 원리에 따라 검찰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글’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만일 검찰이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검찰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이어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은 문제의 발언을 한 검찰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상위법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주권재민과 제21조, 표현의 자유에 따라 검찰에게 요구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헌법에 나와 있는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그 기준부터 제시해야 합니다.



검찰이 제시하는 기준이 민주주의와 헌법에 합당하면 그에 따라 글을 쓰면 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됩니다. 또한 검찰이 기준이 헌법에 위배되면 헌재에 위헌여부를 묻는 소송을 제기하면 됩니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처벌하려면, 피의자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문제가 있는 글의 기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쓴다는 것, 쓸 것이 생겨 쓴다는 것이 내 모든 것이기에 아고라에 올리는 글을 쓰며 자체 검열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에도 반하고 제 양심에도 반합니다. 따라서 검찰에게 다시 한 번 요구합니다. ‘문제가 되는 글의 기준’을 제시하고, 최소한 민주적이고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 기준의 실효성을 따질 수 있도록 법적용의 구체적 예들을 제시해주십시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중용투자자 2014.09.26 21:17

    허참. 7시간 어디갔냐고 물어봤더니 모욕발언이라고 사이버 검열을 강화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소송비용 없는 사람은 소신것 글도 못쓰겠네요. 대한민국만 시계가 거꾸로 가는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4.09.26 21:49 신고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해야지 찍어누르려 하면 답이 없습니다.
      유엔 기조연설에서 인권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국내에선 기본권과 인권을 억압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2. 숲속의친구 2014.09.26 21:58 신고

    저와 같은 소시민들은 잘은 모르지만,
    무언가 잘못되면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요즘입니다.

    • 늙은도령 2014.09.26 23:30 신고

      제가 답답한 것은 통치자와 정치인들이 기득권이 아닌 절대다수의 서민들을 위해 일하게 만들어야 함에도 선입관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통계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래서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늘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통치자와 정치인들이 소수의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정치했기 때문입니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왜 이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지,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절대다수의 서민들을 위해 정치하라고 요구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까지 이르러야 가능합니다.
      그런 수준이 돼야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헌데 자본주의(신자유주의)는 극소수에게 부를 몰아줍니다.
      낙수효과가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것은 진보와 보수 경제학자 모두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의 수준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경제학자는 없습니다.
      결국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부의 재분배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우리 모두의 행복이 증진된다는 뜻입니다.
      최소한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고 나서 이념을 얘기하고 정당을 얘기해도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학에 가까운 멍청하기 그지없는 짓입니다.
      지금까지 민주정부가 10년이었고, 나머지 60년은 보수정부였습니다.
      그 결과가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라면 어느 쪽에 책임이 많겠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과 행복, 삶의 질을 포기한 채 정신적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결과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도 대한민국의 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폐선을 수입해서 서민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 후진국형 사고입니다.
      세월호 운행되는 동안 누가 돈을 벌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습니다.
      청진해운과 유병언 일가가 돈을 모은 과정이 그 답이고, 관료들이 챙긴 돈이 그 답입니다.
      중하위층의 지갑을 털어 상위층들이 나눠가진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와 싸워야 합니까?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하고 있는지 그것만 확인하면 답이 나옵니다.
      민주주의란 내 권리를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대신 권력을 소수의 정치인에게 위임한 제도입니다.
      내 권리가 우선이고, 그래서 내가 자유롭게 말하고 살 수 있는 것을 지향하는 체제가 민주주의입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몇 시간만 시간을 내서 인터넷 검색만 해도 답이 나옵니다.
      불평등에 관해 검색만 몇 번하면 답이 나옵니다.
      대통령이 뭐 중요합니까?
      내가 힘들면 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라는 게 이런 것입니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이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정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보수란 개인의 소유권이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국가에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내 자유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나라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바로 그런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줄어드는 나라가,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지는 나라가 북한이 아닙니까?

      님처럼 고마운 분들 때문에 더 힘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자유에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그래서 불평등하기 일쑤입니다) 자연법적인 자유가 있는데 이를 사적 자유라 합니다.
      반대로 제도에 의해 불평등을 줄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자유는 보수의 가치입니다.
      기득권들이 보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자유는 진보의 가치입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진보적이었던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헌데 권력과 자본과 손 잡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를 왜곡했습니다.
      1% 대 99%의 사회는 이렇게 해서 출현하게 됐습니다.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없이 많은 자원을 사용한 대가로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 혜택의 대부분이 1%에 집중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99%는 혁명을 제외하면 삶의 노예가 됩니다.
      생존의 본능보다 강한 것이 없어서 단 몇 푼의 돈이라도 벌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기득권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노예가 됩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신과 가족의 삶이 좋아진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면 1 대 99라는 것은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힘을 내서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고, 저를 후원해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몸부림이고요.

  3. 노자경 2014.09.26 22:27

    짝짝짝 !!!! 속 시원한 글 감사합니다
    울화가 치미는 이 시절에 도령님의 글로 위안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9.26 23:22 신고

      수없이 많은 정치학과 경제학, 사회학, 철학, 심지어는 과학에서도 박 대통령과 검찰이 하는 일이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것은 명백히 나옵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이 없습니다.
      특히 보수일수록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보수의 가치에 합당합니다.
      진보는 약간의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사회경제적 평등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헌데 자신이 보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행태란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독재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들의 특징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철저하게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과 검찰의 행태는 독재와 전체주의 사이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입니다.

  4. 파시즘미워염 2014.09.27 06:35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인 의사표현의 기준을 제시하여 헌법에 명시된 자유로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 늙은도령 2014.09.27 16:25 신고

      박근혜가 최악의 수를 뒀습니다.
      그녀는 이것으로 급격히 레임덕에 빠져들 것입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4.09.27 09:02 신고

    비판적인 글을 쓰시는 분들에 대한 도전이고 협박입니다

    종편들 참...어떻게 안 되나요.보다 보다 욕 나옵니다

    • 늙은도령 2014.09.27 16:26 신고

      박근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권을 탈환해야 함이 분명해졌습니다.
      물러날 수 없지요.

  6. 내조국 2014.09.27 10:45

    늙으도령인지 미친놈인지 모르지만 글이 많이 잘못 치우쳐 있네. 친일파 .

    • 늙은도령 2014.09.27 16:27 신고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연재를 보십시오.
      친일파라고요?
      내가 하는 일이 친일부역자를 우리나라에서 걸러내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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