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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워드

우영워드 ㅡ 모든 것의 역사 2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반면에 뇌를 사용할 때는 육체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들까지 무한정으로 차용할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엔트로피는 단기적 피로나 장기적 무기력으로 육체에 전가되는 것도 모자라 중간에 새지도 않아 모조리 축적되는 꿈의 효율을 실현해냈다. 그에 따라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신경과 근육의 반응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이건 마치 두뇌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들을 희생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뇌를 사용할 때 평균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뇌마저도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튜닝이 되가는 것이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 덕분에 나는 20세를 넘어서면서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모든 학문에 정통하게 되었고 그 어떤 수학과 과학의 난제도 막힘없이 풀어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반드시 실제 경험이 필요한 것들과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것들까지 모두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내가 홀로 추론해낸 답이 우리나라 기상청이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에 슈퍼컴을 곱해서 나온 결과보다는 정답과의 오차 범위가 훨씬 더 작을 것이다. 분명 내 두뇌는 그 어떤 인공지능 프로그램보다 진화의 속도가 빨랐다. 특히 직관적인 판단의 경우에도 정보와 지식과 각종 이론에 기반 한 추상적이고 통합적인 추리와 계산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어쨌거나 내 두뇌는 신의 영역을 기웃거릴 정도로 탁월해졌지만 육체에 적용된 세월의 흐름은 평균의 인간보다 수십 배는 빨랐다. 이제 겨우 내 나이 30인데 일방적 희생을 감수해온 육체는 숨넘어가기 직전의 시체와 다를 바 없다. 특히 부모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17세 이후의 삶이란 하루하루가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3살 터울의 동생이 나를 정성껏 보살펴주었지만 그 세심함이 어머니를 넘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이라는 게 8,000만원의 전세금과 팔아먹을 수도 없는 수천 권의 책밖에 없었고, 빌어먹을 친척 놈들은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부터 같은 하늘 아래에서 홀연히 연락이 끊겨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쥐꼬리만 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동생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월화수목금금금 아르바이트 전선을 누비고 다녀도 생계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약해진 내장 기능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 신선한 야채나 과일, 다진 고기죽 같은 것으로 대체해야 했기 때문에 엥겔계수가 상당이 높았기 때문이다. 자연히 동생이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 내 건강은 육체의 퇴화보다 더 빠르게 나빠졌다. 결국 나는 에너지 효율을 더 높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두뇌의 사용마저 최대한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력한 육체에 깃들어 억지로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돈이 부족해 육체적 무력을 보완해줄 대체 영양 공급에 차질이 생겨 극심한 피로와 만성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동생이 없는 동안에는 막연한 두려움에 뼈 속까지 떨어야 했지만 그런 것들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고통에 불과했다. 가만히 있어도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들을 밀어내기 위해 하염없이 수를 세거나 벽지의 그림이나 글들을 보고 또 봐야 하는 일들이 몇 년을 넘어가자 산다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나을 게 없었다. 뇌는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그것을 막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육체적 행위가 갈수록 제약받기에 깨어 있는 매 순간이 점점 지옥으로 변했다. 



특히 때 없이 찾아와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는 예수의 전사들은 모조리 지옥 불에 떨어질 지어다! 그들이 폭풍처럼 나를 훑고 간 다음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에너지 고갈에 나는 무력한 육체가 느끼는 중력의 가중과 살아서 유황불을 경험하는 지극한 영광에 몸부림쳐야 했다. 결국 나는 끊임없이 육체의 에너지를 착취하는 흡혈귀 같은 뇌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 ‘가카’와 그의 졸개 정치인들이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 툭하면 던지는 말인 특단의 조처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특단의 조처가 늘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국면 전환용 시간끌기인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책이란 단 하나 뿐이기 때문이었다. 멍 때리기, 또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숨만 쉬며 시체처럼 누워 있는 것!



하지만 그것을 체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아니, 죽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나는 수없이 많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좀처럼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뇌는 보는 것에 가장 민감히 반응했고(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어둠 속을 떠도는 것들이 생각을 만들었지만), 듣는 것도 그에 만만치 않았다(귀를 틀어막고 있으면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자꾸 인기척이 느껴졌고 반드시 그것은 좋지 않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언제나 에너지 사용은 저절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와 컴퓨터, 라디오와 DVD플레이어, 스마트폰과 MP3를 틀어놓은 카오스 같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적이 있었다. 동생이 퇴근해 나를 깨울 때까지 2시간 동안 잠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깨어나 생각해보니 내가 잠들 때까지 3분 정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내 뇌의 어디에도 3분이란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무려 3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마침내 생각 없는, 고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데카르트적 성찰의 정반대에서, 나는 살아있지만 존재하지 않으니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필생의 방법이자 필사의 탈출구인 멍 때리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끝없는 명상과 수행 끝에 이른다는 득도의 순간이 내게는 터무니없이 허접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무 생각 없음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냈다. 플라톤이 동굴에서 봤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그 경이로움의 순간이 이러했을까?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예 전무해서 궁극의 진리를 깨우치고 영원한 구원이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불멸의 삶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연이 가져다준 느닷없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나는 항상 TV와 라디오, 컴퓨터, DVD플레이어, MP3와 스마트폰까지 틀어놓았고 온갖 소리가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고통스러운 생각을 얹어놓았다. 그러면 온갖 소리와 음악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파동에 따라 휘날리던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흩어지기 시작하다가,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처럼 생각의 버퍼링이 일어나는 지점에 이른다. 이쯤 되면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극단의 피로함에 생각이 늘어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기를 몇 차례 되풀이한다. 바람과 중력 사이의 깃털처럼 이리저리 요동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마냥 늘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이 버퍼링처럼 늘어지다 어느 한 순간, 천지를 가르는 번개처럼 생각이 사라진다. 



이것이 내 수명을 연장시켜준 멍 때리기의 대략적인 과정인데, 이는 성경이나 불경에 나온 성자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고통스런 에너지 소모가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에 들어설 수 있게 됐으니! 



아무튼 이렇게 멍 때기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면서 내 삶에도 기적 같은 서광이 비쳤다. 더 이상 동생의 정성을 외면할 수 없어, 뇌의 능력을 반납해서라도 육체의 기능을 일부라도 회복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됐고 하루하루를 버러지처럼 버텨나가야 할 필요도 줄어든 것이다. 그런 순간이 하루에 몇 분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운이 좋거나 극도로 컨디션이 나쁠 때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몇 십 분이 될 때도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사라져 뇌와 육체가 균형을 이루는 평온함이란, 오직 망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처럼 또 다른 최고의 선물이 나를 찾아왔다. 이를테면 무덤 터로 산 땅에 수백억에 이르는 유물이 묻혀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꿈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예수의 천사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서둘러 세상을 등진 부모님처럼.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천사의 방문은 정확히 3년 전 오늘에 일어났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나에게 세상 첫 날의 햇살처럼 찾아온 그녀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21살 꽃 다운 처녀였다. 애끓는 전생에서의 인연이나 운명처럼, 그녀가 나를 찾아온 그날은 내가 동생과 생전 처음으로 아주 잠깐 말다툼을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따라서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에 대해서 말하려면 동생과의 아주 사소한 다툼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그날의 짧은 다툼은 여느 날처럼 동생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남겨주신 책을 나에게 읽어주는 중에 일어났다. 동생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내가 직접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이 에너지 소비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그날도 늦은 시간에 퇴근한 동생은 마치 가슴에 핵연료를 장착한 로봇인양 한결 같은 음성으로 책을 읽어 주었고, 이제는 듣는 것마저 힘들어진 나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로 억제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