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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워드

우영워드 ㅡ 수경의 결심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길을 가던 순례자들은 이곳에 돌탑을 세웠다......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탑 위에 돌 하나를 더 얹어놓곤 했다. 어떤 특별한 이유나 알려진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고 그 중 누군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 중에서




제법 서늘한 기운이 스미어 나오는 창문을 열었다. 이때쯤이면 초가을 저녁 어스름이 도시를 떠도는 온갖 욕망들 위로 작열했을 열기를 서선 너머로 밀어냈고 있으리라. 바람 속에 깃들어 다가와서는 얼굴을 간질이는 노을을 떠올려봤지만 그 색체는 끝내 시신경 어디에도 담아낼 수 없었다. 몇 개의 단어의 조합으로 인식되는 색체란 태초의 순간부터 불었을 바람과 첫날의 열기를 모두 간직했을 노을처럼 내게는 영원히 형상화되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들이었다. 다만 나에게는 그 바람과 노을 속에 담겨 있을 수많은 사연들의 하소연과 피곤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 더 생생히 느껴지는 그들의 사연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하루하루의 현실에 저당 잡힌 가난한 영혼들의 방황이나 아픔 같았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해 그 자체가 세상이고 우주인 어둠은 잰 걸음으로 다가와 나의 하루와 한 낮의 더위에 시달린 세상의 모든 존재 위로 검게 내려앉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윤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여기저기서 유령처럼 튀어나온 붉은 십자가들이 이곳은 신이 창조한, 온갖 불의와 탐욕으로 물든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리라.



휘잉, 스스슥. 휘리릭. 어둠이 깊어져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걱정과 사연이 더욱 차가워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꽃잎들처럼 스산하고 흐느끼는 소리로 다가왔다. 그렇게 비릿한 자연의 소리로 화한 것들은 점자책에서 읽은 표현들로 대충이나마 상상해낼 수 있지만, 바람과 소리마저 없는 것들은 손과 피부로만 느낄 뿐 분명한 형상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런 경우 자연과 세상이란 초라한 미술관 귀퉁이에 걸려 있는 미술작품에 불과하다. 모든 물질적인 욕망들과 세속적인 성공들도 내게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들만의 투쟁일 뿐, 생각 속에서조차 아무 의미도 없는 정지된 것들이다. 내게 세상은 끈임 없이 도는 바람개비처럼 너무 어지럽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들이 미친 듯이 충돌하고 소용돌이치는 한바탕 난장판에 가까웠다. 세상은 비열하거나 사악했고, 아주 가끔은 활기찼으나 결국 타락하거나 애처로운 것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나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지금까지 세속적 감정과 물질적 이익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거나 안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날카로운 생존의 감각과 청빈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이성은 그 무엇으로도 약화시켜서는 안 될 최후의 보루였다. 나는 나를 편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에 주의했고, 위로의 말에 이끌리지 않았으며 나를 향한 어떤 도움의 손길도 마다함으로써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은밀한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 하물며 육체적 편의를 얻기 위해 수없이 사들여야 할 물질적인 것들에 마음을 둘 일이란 추호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발정 난 짐승처럼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려는 자기 파괴적인 존재처럼 다가왔을 뿐이다. 하물며 쉽게 싫증내거나 유행에 뒤쳐졌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전해지는 것들이 그랬고,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물질적 욕망과 육체적 쾌락을 부추기는 유혹의 말과 소리들로 가득했다.



헌데 위험이 느껴질 때면 재빠르게 몸을 숨기는 고양이처럼 스스로 설정한 틀 안에 머물러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천둥 벼락처럼 다가왔지만,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하고 봉숭아 내움처럼 향기로웠다. 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그의 말속에는 티끌만한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의 몸에서 나온 순정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맑은 영혼 속에선 치열하게 고뇌하고 진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고결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어떤 황폐한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에 두려웠으면서도 그와 함께 하는 순간순간에 빠져들었다. 그가 다가오는 발소리만 들었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고 그의 말이 내 귀 속으로 스며들 때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을 느낀다는 것은, 차라리 아름다운 꿈이나 몽상보다 황홀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향한 마음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릴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이 불꽃같은 떨림을 정의내리기라도 한다면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제어하지 못하는 끌림이 커갈수록 나는, 스스로 그에게서 멀어지려 애쓰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결국 나는 깨어서 산산조각 날 꿈이라면 아예 깨어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내게 주어진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어느 잔혹 동화의 주인공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 일정한 거리를 두지 않으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 것으로 끝나는. 그때는 그랬다, 내가 다니는 ‘열린 학교’의 선생님인 그를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 나의 삶이라 생각했다.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고 마음을 살피고 영혼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올라치면 서둘러 투명한 공기로 화하곤 했다. 나는 그를 향해 모든 것이 열려 있었지만 그에게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만은 철저하게 막았다. 이 세상에서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은 결단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나 홀로 좋아하고 나 홀로 다가갔다가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물러서기를 반복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야학이 끝나고 난 뒤에 그가 떠날 때까지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그의 걸음이 멀어지는 것을 매주 되풀이 되는 영원한 이별처럼 두려워하고 있을 때였다. 새빨간 거짓말처럼 그의 걸음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고결한 기운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나는 절대 모를 수 없다. 그는 모든 운명을 거역하는 사람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불의 전차가 내뿜은 번개처럼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의 비현실적인 느낌과 생을 관통하는 전율을 뚫고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 소리란 것이! 그리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더없이 아름다운 음성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위대하지만 너무나 외로운 자신의 형을 도와달라고.



그렇게 나는 또 한 사람의 운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재우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형이자 유일한 그의 혈육이었다. 그는 에너지 배정과 이용의 불균형이라는 설명 불가능한 희귀한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너무나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여서 눈을 감고도 그의 생각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기운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동생처럼 한순간에 내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매력은 없었지만 재기 넘치는 말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의 분방함은 설명 불가능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원히 비상을 꿈꾸지만 한 두 번의 날개 짓에도 쇠창살에 부딪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어린 새에게 그는 무한한 창공을 날아다니는 자유를 허락해주었다. 그는 내가 꿈꾸는 어디라도 날아가게 만들어주었고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변신시켜주었다. 나에게 그는 꿈의 청부사였고 영혼의 작가였다. 그는 동생의 전부였지만 나에게도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손길이 그의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줄 때마다 죽음에 가까웠던 그의 무력함이 다시 살아나 약동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그들 형제와 함께 했던 지난 3년은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떠올리는 것과 같았다. 나는 초라한 공주였고 그들은 찬란한 두 명의 왕자였다. 나를 부르는 그들의 말에는 삶과 세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논리로 세워둔 방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고, 내 움츠린 영혼을 일깨워 영원한 이상향을 찾아가는 장엄한 순례의 여정에 나를 포함시켜 주었다. 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히 달랐지만 그중에서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오가는 선의의 감정과 배려와 사랑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세속적인 선택이 필요한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두 사람을, 위대한 형제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나에게 주어진 행운에 대해 달리 대처할 방법도 공존을 유지할 도리도 없었다. 나는 정말 내 욕심을 포기함으로써 모든 이를 구원할 그들의 순례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수많은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의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에 가보고 싶었다. 그곳을 향해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예수와 마호메트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순수하고 간절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신앙이 서로 교차하고 만나는 그곳에서 인류의 역사는 어떤 이정표를 제시받았는지, 어떤 구원의 약속을 받았는지 그 일부라도 알고 싶었다. 그들의 순례에 담긴 뜻이 과거의 영광에 있는지, 현재의 다툼에 있는지, 미래에 대한 일방적 약속과 패권에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소수의 신도들과 규율로 정해진 순례의 기간에 몰려드는 대규모 신도들을 맞이하며 대대로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슨 마음으로 대하는지, 예수와 마호메트의 친족이자 같은 민족인 그들은 셈 족에서 기원한 두 종교 간의 끝없는 싸움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고 싶었다. 예수가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의 신앙이 더 위라고 했으니 혹시 그들도 나처럼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미래라는 구원의 대열에서 밀려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들은 과거와 미래가 모두 멈춰 있는 유별난 관광지의 주민에 다름 아닐까, 몇 개의 초라한 유물에 유달리 집착하는 신도들을 그저 여행자로만 대하는 철저한 방관자는 아닐까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순결한 성지를 향하는 순례의 길은 그것 외에도 다른 것이 있었다. 그 길은 어느 누구도 걸어가 본 적이 없어 정글 같았고, 그 끝에 있는 성지의 모습이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어 어느 누구의 접근도 차단된 금단의 영역이거나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는 천혜의 낙원일 수도 있었다. 선과 악이 동전의 양면이듯이, 성지라 믿었던 곳이 악마의 본거지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성지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방랑에 빠져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성지로 가는 곳곳에 진창과 늪지, 모래구멍이 있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고난과 역경이 이무기처럼 똬리를 틀고 있어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직 두 사람, 영혼과 사랑으로 이어진 형제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역경이라도 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들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하루하루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 이외에는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란 없었다.



헌데 순례의 선두인 재우 오빠가 성지에 이르는 마지막 길목에서 멈춰선 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빠는 몇 달 전부터 같은 자리만 맴돌며 스스로에게 자해를 가하고 있었다. 나에게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아무리 채워도 부족한 에너지는 속절없이 소모돼 손에서 전해지는 기운도 갈수록 약해지고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정성들여 안마를 해주고 음식을 요리해 주어도 오빠의 기운과 활력은 나아지지도 맑아지지도 않았다. 그런 변화는 삶에 대한 미련이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는 숱한 사람들을 안마해준 경험으로부터 체득하고 있다. 오빠는 영원한 이별인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문제는 재영씨와 마찬가지로 나도 오빠의 상태에 대해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재영씨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갖게 된 마음의 격정을, 재우 오빠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나는 우리 셋의 만남에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세속적 선택을 영원히 봉인해두었지만, 마음이 너무나 뜨겁고 순수한 재우 오빠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가져다준 재영씨에게도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죄악이었다.



어찌 나라고 갈등과 혼란이 없겠는가? 어차피 셋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동행도 아니었고 함께 해서도 안 되는 동행이지 않은가? 모질게 말하면 우리의 동행은 처음부터 한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재영씨는 형이 좋아했던 여자에게는 시선조차도 두지 않을 사람이었다. 나도 재우 오빠처럼 두려웠다. 동생을 사모하는 여자의 욕망에 사로잡힌 순수한 영혼에게서 행복의 열쇠를 꿰차려는 이기적 인간의 전형이 내가 아닌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내가 순결한 형제의 위대한 작업에 끼어든 뱀 같은 여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갈수록 위축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불결하고 싫었다. 나를 변호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의 언어이든 악마의 변론이든, 나는 끝없이 갈구할 뿐 오빠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를 형에게 소개한 재영씨의 바람도 아니었고, 나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 세상을 구하려는 오직 단 하나의 계획마저 포기하려는 오빠의 지극한 고뇌의 목적도 아니었다. 답은 하나며 이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반드시 현명해져야 했다. 내가 하기에 따라 재우 오빠와의 이별이 한없이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 인류에게 희망의 불씨를 남기고자 했던 한 남자와의 이별로 승화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은 현명함을 찾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일이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내가 누렸던 분에 넘치는 행복에 대해 이제는 대가를 치러야 할 순간이었다. 재영씨가 야학 선생님으로 와서 처음 했던 말도 ‘삶의 본질은 만남과 이별’이라며 ‘죽음에 대한 성찰을 얻기 위해 인간은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를 만난 그 처음부터 한없이 설렜던 것도 그 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내가 내 영혼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그의 말을 실천할 차례였다. 그것은 또한 나에게 삶의 또 다른 가능성과 깨달음을 열어준 재우 오빠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자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재영씨와 상의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내 스스로 찾아내야만 했다. 나는 반드시 현명해져야 했다.




P.S.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소설은 문학적인 언어로 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럽게 재미없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소설다운 부분이 나오지만, 그것도 완전한 퇴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무작정 이곳에 올리면서 퇴고의 방향을 정하고 있습니다. 미완성된 부분이 여러 곳이고, 소설 전체로 봐서도 중간 정도에 멈춰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미완성인 부분만 가지고도 한 달 정도는 연재가 가능할 것입니다. 체력이 완전히 돌아오고 허리 상태가 좋아지면 본격적으로 퇴고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미완성된 부분도 다시 쓸 생각이고요. 만일 이 소설이 완성된다면 3편 정도로 나누어야 하는데, 그것은 먼 훗날의 얘기고 당장은 재미없더라도 퇴고의 방향에 대한 독자분들의 견해를 남겨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몇 편의 분량만 지나면 그래도 조금은 재미있는 부분도 나옵니다. 재미가 없는 데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