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지속적으로 네거티브를 해왔는데, 그 핵심에는 대북송금특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북송금특검이 대통령의 통치행위였다며, 특검을 수용한 문재인을 공격했습니다. DJ가 특검 때문에 투석을 했고 자신은 한쪽 눈을 잃었다고 문재인을 비난했습니다.
DJ의 투석과 박지원의 실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마다 발병의 원인과 증상이 누적된 기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검 때문에 투석과 실명이 왔다는 박지원의 주장을 의학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박지원의 문재인 비난이 정당한 것인지 여부를 따지려면 대북송금특검을 노무현 대통령이 수용하기까지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박지원의 네거티브의 시작이 대북송금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싸움붙이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박지원의 구원을 풀어줄지 모르나 대한민군 민주정부 10년을 진흙탕 싸움의 소재로 활요한 것이어서 박지원에게 정치적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은 분명합니다. 야당의 당대표선거를 최악의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는데 성공한 박지원의 네거티브가 정당했는지 판단하려면 대북송금에 대해 살펴봐야 하고 그것만이 두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볼 수 있는 대북송금은 노벨평화상 수상에서 보듯이 그 정치적 정당성이 확실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한나라당이나 지금의 새누리당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 부시정부에서 최초로 발설된 대북송금의 문제점ㅡ미국이 내정간섭을 하는 특유의 방식ㅡ을 빌미로 한나라당이 노통의 취임식 다음날 특검법을 발의했습니다.
당시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은 특검법을 단독 처리해 정부로 전달했습니다.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진영은 특검법을 수용하라고 노무현 정부를 압박했고, 한겨레와 경향을 필두로 한 진보진영은 특검법을 거부하라고 노무현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노무현 당선자가 계승할 것을 수 차례 밝혔기 때문에 조중동과 한나라당 및 부시정부는 이를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남북한이 햇볕정책을 더욱 발전시켜 경제적 통일이라는 낮은 수준의 경제적 통일에 들어서면 삼성처럼 북한에 제일 먼저 주재소를 낸 재벌과 정주영의 통큰 결단을 이어받은 현대차그룹도 참여하게 될 것이고, 이럴 경우 남북한 협력체계가 공고해집니다. 종북과 좌파몰이가 없으면 지지층을 관리할 수 도, 먹고 살 수도 없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설 땅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했습니다.
햇볕정책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무현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언론에서 다룬 내용이라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감사원의 감사까지 나온 상황에서 특검법을 거부하려면 DJ가 5억달러의 대북송금(현대상선 4억달러 송금 포함)을 허용했거나 묵인했다고 해야 했습니다.
헌데 DJ는 대국민사과를 통해 현대상선의 4억달러 송금은 나중에야 알았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이는 김대중 자서전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당선자 시절의 노무현을 만났을 때, DJ가 소개한 김보현 3차장도 이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았고, 국정원도 이에 대해 당선자 신분이 노무현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노통은 DJ의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로 판단해 특검법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노통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의회에서의 재의결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반대의 가능성이 더 높았다거나, 노무현 정부가 출발점부터 엄청난 저항에 직면했을 거라는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노통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DJ와 권노갑, 박지원과 신건 등의 처벌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DJ 대통령이 매우 실망했다는 것은 자서전에 자세히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것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DJ를 지키기 위해 참여정부를 망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것보다는 노통이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한 특검법을 수용한 것은 방대한 조직을 가진 검찰수사보다 인원과 기간, 수사범위 등에서 한정된 특검이 DJ와 대북송금 담당자에게 유리했다는 것(세월호 유족이 특검을 반대한 논리와 연결된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김대중의 자서전과 노무현의 자서전을 포함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보와 보수매체의 다양한 보도와 양쪽의 주장을 펼친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정권을 막 출범시킨 노무현으로서는 특검법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DJ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J는 이것을 받아들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자신의 반이 빠져나간 느낌이라고 애통해했던 것입니다. 노무현도 DJ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 것에 늘 괴로워했습니다. 두 사람은 큰 인물이었으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을 생전에 다 풀었음은 여러 가지 보도와 뉴스, 자서전을 통해 밝혀진 상태입니다.
박지원의 주장은 그래서 일방적이고 김대중 대통령을 욕보이는 일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감정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TV토론에서조차 네거티브로 일관한 박지원의 행태는 당시의 사정을 살펴봐도 정치적 금도를 넘어선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의 명예까지 실추시켰습니다.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과 노무현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가 발전적으로 계승할 때,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보수화된 대한민국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단초라도 마련할 수 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노욕에 사로잡힌 박지원은 이것마저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필자가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자체가 지독한 모순이자 안타까움입니다. 당시에도 물러나는 김대중 정부와 취임하는 노무현 정부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부시정부의 계략이 적중했는데, 12년이 지난 지금에 이것이 재현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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