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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김제동의 톡투유, TV로 놀러간 우리의 삶



필자는 세월이 가도 무너질 미모가 없는 김제동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필자의 꿈이 모든 이들과 소통하면서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를 좋아합니다(전 여성을 무척 밝힘을 분명히 해둡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을 읽었고, 유머와 재미있는 얘기들을 찾아다녔으며, 그래서 많은 미모의 여성들을 꼬셨... 아, 그게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일상화하려고 노력했으며, 많은 모임의 사회를 자처하기도 했습니다(온갖 병들과 짱돌들이 필자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몇 만 명의 학생들 중에서 저 같은 소아마비를 한 명도 보지 못했듯이, 나머지 학생들도 저처럼 기상천외하고 뻔뻔하며 바람둥이(어, 이것도 아닌데.. 이게 다 박근혜 기자회견을 봤기 때문이야!!) 장애인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또라이짓 때문에 제법 유명했던 필자는 체력이 허락하는 최대치까지 다양한 종류의 강의를 청강하면서 다양한 학과의 여학생들을 감상하는 것을 덤으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 ㅡ 특히 내 눈에 아름다운 여학생들이면 누구나 ㅡ 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내 입장에서는) 즐겁게 얘기했으며, 단칼에 거절을 당하거나 여학생의 남자친구로부터 소소한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이들과 얘기하기 위해 TV, 영화, 연극, 스포츠, 팝송, 가요, 야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소설, 시, 철학 등등을 두루 섭렵했습니다(지금도 이러고 있으니 운명인 것 같습니다. 에고, 힘들어!).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얘기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체력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가끔은 딴 것 때문에 껌은 필수!). 연고전이 열리면 단과별 응원도 주도했고, 단과대 사회도 봤습니다(그래서 여성 파트너가 없었습니다). 그런 필자였기 때문에 김제동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충격적이었고, 몹시도 꿈꾸었던 모습이라 그의 어록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김제동은 손석희의 탁월한 술수(?)에 넘어가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연예인이 되었고, 그 덕분에 여러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한 더욱 매력적인 연예인이 됐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냄새(특히 노총각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여러 명이 진행하는 틀에 박힌 프로그램은 어색했습니다. 동료들을 딛고 올라가야 살아남는 경쟁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혹시 초강력 무좀에 걸렸나?).



삶과 성공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기에 굳이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지만, 폭발적인 인기 때문에 올라선 정상의 자리가 불편했을 것입니다(그래서 산에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왔습니다). 영혼이 자유롭고, 악할 수 없으며,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특유의 표상을 보여주는데, 김제동은 그런 표상 속에 있는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재주를 지녔고,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이 때문에 외모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사람과 있어도 다른 사람이 그립고, 그래서 관계와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 늘 외롭지만 고독 속에서도 삶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성공했지만 그 성공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 상식이 곧 공감이고, 공감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정치임을 아는 사람. 그래서 술을 입에 달고 살되, 지나치지 않는 사람(주사가 있다고 하는데.. 술 먹으면 다 그렇지 뭐!!).



그래서 아프고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멀리할 수 없는 사람이 김제동입니다(유독 팔다리가 짧아서 그렇다는 '김제동을 둘러싼 풍문'도 있습니다. 김제동은 그래서 '7시간의 미스터리'에 답해야 합니다). 자아의 거울이란 타인이며, 그들의 거울 속에 자신이 있음을 아는 사람, 그가 JTBC 톡투유로 돌아왔습니다. 김제동과 손석희 덕분에 우리들의 평범한 삶이 화려하고 선명한 화면 속으로 소풍(방청권은 예매는 필수)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방송이 대중문화라 하면서도 화면 속에서 대중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전문적인 방청객 알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조연(사건·사고를 일으켜야 주연이 된다ㅠㅠ)이었고, 리액션을 잘해야 하는 청중이었으며, 방송될 수 있는 사연만 제공했을 뿐입니다. 중간에 대본이 있고, 작가가 있고, PD가 있고, 편집(통편집, 자막처리로 처참하게 사망하곤 한다)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녹화시간의 1/4 정도만 방송을 타는 김제동의 톡투유에도 이런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의 고성능 레이저가 무서운 방송사 입장에서 무작정 모든 얘기들을 내보낼 수 없겠지요. 하지만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삶들이 오고가는 동안에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제동의 톡투유에는 우리들의 얘기들이 있습니다. 구태여 포장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정제되지 않고, 투박하지만 조미료가 더해지지 않은 얘기들이.





화면 속에는 내가 있었고 당신이 있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당신과 비슷한, 우리와 비슷한 또 다른 너와 나, 우리들의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임에도 시청률이 좋게 나왔기에 정규프로로 확정됐다고 하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들(나의 사연도 될까?)이 방송을 타고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TV만 틀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누구의 얼굴에 질린 분들은 눈을 맑게 하는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사찰과 엄마부대의 데모를 뚫고 김제동이 돌아왔습니다. 그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그래서 우리들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처음 전파를 탔습니다. 그 옛날의 사랑방처럼, 우리네 삶의 다양하고 잔잔하고 애잔하며 공감가는 얘기들이 딸기나 포도처럼,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처럼, 식혜나 수정과처럼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사는 산본에서도 녹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Welcome to 김제동! 

Don't worry, you and me.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