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심환을 추적하던 천상천 제3장로 검강윤과 현무당을 맡고 있는 당주들인 오천협룡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신형을 멈췄다. 그 멈춤이 너무 급작스러워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수백 리를 미친 듯이 도망치던 상대가 갑자기 멈춰서 자신들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어라? 왜 이래, 이 자식?”
검강윤은 그의 갑작스런 행동이 의아했다. 그것도 심하게 의아했다. 지금까지 아이를 안은 상태에서 너무 잘 달렸던 놈이, 그것도 아직 한참은 더 달릴 것이라 생각했던 놈이 갑자기 멈추더니 아예 돌아서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죽어라 도망가야 할 놈이 할 짓은 아니었다.
‘지쳤나? 아니면 무영이 죽었나?’
검강윤은 몇 가지를 가정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고 오천협룡까지 더한다면, 이유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 더는 도강갈 수 없었군. 그래서 죽으려고, 큭큭큭."
검강윤이 득의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는 상대를 죽이기만 하면 됐다. 그의 웃음이 얼굴선마저 뚫을 듯했다. 헌데, 자세히 상대를 보니.. 뭔가 이상했다.
‘어?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네? 공중에서 멈춰, 떠 있는 채 돌아섰다는 얘기잖아!’
검강윤이 상대의 행동에 잠시 의아해 하다 득의의 웃음을 터뜨릴 때 그의 옆에 있던 오천협룡의 첫째, 일룡은 순간적으로 멈춰 돌아선 상대의 동작과 그 상태를 주목했다. 멈춘 순간부터 돌아서기까지 상대는 지면에 떠 있었고 달리는 속도 때문에 반드시 먼지가 일고 흙들이 튀어야 했는데 그것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먼지조차 일으키지 않다니? 어쩌면 저 자는 생각보다 고수?’’
그것을 눈이 보고 뇌가 판단했을 때 그들은 알지 못할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특히 일룡은 그 두려움이 더했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만에 하나 그 격언이 상대에게 적용된다면, 먼지를 일으키고 넘어질 뻔했던 자신들은 그의 상대가 아닐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잘 생각했다. 어차피… 피… 피다! 허걱! 이건, 내 피!”
처음에는 상대를 향한 말이었으나, 단 두 단어 이후에는 경악으로 변질된 외침이 검강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뭔가 번쩍하기는 했었다. 미간이 모기에 물린듯 뜨끔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이건 뭐야?’
일룡은 검강윤의 미간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생각할 틈을 준 것인지, 아니면 생각을 끊어 정확한 판단을 못하게 한 것인지 그 순간은 헷갈렸다. 그 짧은 혼동을 가르며 하나의 빛이 지나갔다. 일룡은 그렇게 느꼈다, 보지 못하고.
“크윽!”
검강윤의 삶이 짧은 신응소리와 함께 끝났다. 상대의 갑작스런 변화에 잠시 마음을 풀었던 것이 치명적 실수였다. 초절정고수 간의 대결에서는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한 줄기가 선이라니!!’
일용은 미간을 거쳐 코의 정점에서 양 쪽으로 흘러내리는 피가 빛의 결과임 알았을 때, 검강윤의 목이 뒤로 약간 밀리며,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류심환의 말이 막 삶의 영역에서 죽음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던 검강윤이 이승에서 들었던 마지막 인간의 말이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효용이 없는 말이라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다음? 염병할!!'
사실 검강윤의 머리를 관통한 지풍은 류심환의 무공 중 가장 속도가 빠른 태극일섬(太極一閃)이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지풍이 지나간 자리에 몰려든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 하나의 선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것이 생을 다한 검강윤이 접한 최후의 무공이었고 류심환이 결심한 세 번의 초식 중 하나였다.
퍽!
그렇게 생을 마친 검강윤이 뒤통수부터 지면에 처박혔다. 류심환은 이것으로 검강천의 죽음에 대한 대가는 일부 받았고, 자신이 입곡을 허락하지 않은데 대한 대가의 일부도 받았다.
[흩어져 협공을 한다.]
상황 파악이 끝난 일용의 전음에 오천협룡이 몸을 날렸다. 그들은 검강윤이 대지에 처박히기 전에 몸을 날렸고, 그 방향이 류심환을 향했지만 공격의 방향은 모두 달랐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3수 안에 끝내려는 류심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두 수 안에 저들을 제압하려면, 천상지무밖에 없어. 하지만 아이가 죽어. 방법은 하나야.’
류심환이 최후의 수를 떠올리며 그 운결을 실행하려는 순간, 그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세 명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봤다. 너무나 익숙해 한몸이나 다름없는 그들은 자신의 유일한 동반자들이었다.
'삼혼, 당신들은 도대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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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다.’
삼혼 중에서 불혼(三魂)이 먼저 몸을 날렸다. 한 형제로 보이는 다섯 명의 추적자들이 그들과 같이 온 건방진 놈이 주군의 지풍에 관통돼 단 한 수에 떨어져나갔을 때, 그들이 다섯 방향으로 흩어지며 주군을 향해 그들은 몸을 날리자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었다. 불혼은 그들과 동시에, 아니 그 순간보다 반에 반이라도 빠르게 몸을 날렸다.
[주군! 아이를 치료하십시오.]
불혼(佛魂)이 전음으로 주군에게 말했다. 그는 주군과 오천협룡의 중간에 끼어들면서 그 이유를 차마 육성으로 설명할 수 없어 전음을 쓰는 꼼수를 부렸다.
[죄송합니다. 불충의 대가는 어떤 것으로든.]
“야핫!”
그가 주군을 향해 몸을 날린 오천협룡의 앞을 가로막으며 장풍을 연속해서 다섯 번 날렸다. 그러자 류심환의 앞에 하나의 장막이 쳐졌다. 그것은 불혼이 자신의 장풍으로 만들어낸 불력(佛力) 가득한 기막(氣幕)이었다.
퍽퍽퍽! 쑤욱!
오천협룡이 펼친 다섯 가지의 극강의 음기가 그의 펼친 기막에 부딪쳤다. 그들은 다섯 방향으로 몸을 날려 류심환을 협공했고, 그 결과가 다섯 개의 극강의 음기였다.
“흡!”
불혼이 제법 큰 신음을 질렀다. 그의 몸도 심하게 흔들렸다. 기막에 막혔지만 그들의 음기에서 엄청난 충격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는 밀려나지 않았고 대신 그의 기막 다섯 군데가 움푹 들어갔다. 하지만 그 정도 선에서 상대의 음기(陰氣)들이 전진을 못한 채 격렬하게 마찰을 일으켰다. 기막과 음기의 힘겨루기는 막상막하였다.
순간, 하나의 인형이 불혼의 뒤에 내려 그의 후단전에 자신의 양 손을 붙였다. 그 인형은 자신의 내공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는 격체전공(隔體傳功)을 시전했다. 불혼에게 엄청난 공력이 밀물 듯이 밀려들었다. 그는 삼혼의 막내 속혼(俗魂)이었다. 그 다음에 나머지 한 명이 나섰다.
“나하고 놀자, 천상천의 다섯 마리 똥개들아.”
오천협룡의 뒤로 도혼(道魂)이 표홀히 내려서며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새 같았다.
‘이 자들은 또 뭐야?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고수들이야.’
오천협룡의 첫째 일룡이 검강윤의 죽음을 목격하고 류심환을 향해 절초를 펼쳤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세 명의 고수들이 그의 심장을 덜컥 거리게 했다.
‘한 놈은 단 한 수로 검강윤을 죽였고, 나머지 세 놈은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일룡과 나머지 네 명은 극도의 놀람 속에서도 모두 똑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단 한 수로 검강윤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존재했으며, 지금까지 수백 리를 오면서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세 명의 고수가 있었다. 그들의 뇌가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천년 무림의 어떤 누구도 이들에 일치하는 문파나 고수는 없었다. 무림에 나오지 않는 은거기인이다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무공이나 실력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무림에서 영원한 비밀은 없다.
'이들 같은 무인은 맹세코 없어!'
그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바로 그 순간!
팅! 휘익!
속혼의 내력을 받은 불혼의 기막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면서 그들이 결발한 음기가 고무처럼 튕겨졌다. 튕겨난 음기는 자신들을 향해 되돌아 왔고 그들은 다급히 초식을 거두면서 필요한 만큼만 움직여 그들 간의 간격을 넓혔다. 그렇게 벌릴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대의 것이었다. 자신들의 뒤로 모습을 드러낸 자는 고려할 틈도 없었다.
쉭! 쉭!
튕겨난 음기는 늘어난 틈새로 그들의 옷깃을 스치듯 지나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스쳤음에도 스쳐간 곳의 도포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것만 봐도 그들이 펼쳤던 무공의 음기가 얼마나 강력하고 극도로 차가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허나 그 극한의 음기는 반탄력에 멈추지 않고 그들의 뒤로 날라갔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서있었다. 도혼이다.
“뭐야? 이거! 야, 불혼! 날 죽일 생각이야?”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자신에게 갑자기 엄청난 음기가 파고들자, 그것이 다섯 놈들이 아닌 자신에게 날아온 이유를 알아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물론 자신은 고래에 속하지만, 그는 불혼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있는 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그 모습은 접혔다 해야 함이 맞을 정도로 그의 허리는 순간적으로 꺾였다.
우두둑!
외모에서 드러나는 나이를 감한 할 때 당연히 이런 소리가 나와야 정상인데, 실제 일어난 소리는 새색시 옷고름 푸는 소리처럼 부드러웠다.
스스스.
젖힌 그의 배 위로 아슬아슬 하게 음기가 스쳐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의 배 위로 다섯 줄기 차가운 느낌이 스쳐가면서 엄청난 소름만 돋게 했다.
“이런, 처죽일 놈들! 피할 거면 말했어야지!"
도혼이 이번에는 불혼에서 오천협룡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가재는 게 편이기 마련이니 비난의 강도는 훨씬 높아졌다. 물론 오천협룡의 입장에서는 피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도혼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아예 무시했다. 그것이 도혼을 더욱 열 받게 만들었다.
"이놈들 봐라? 날 무시해? 이, 개만도 못한 놈들이 감히 나를!!”
분을 삯이지 못해 고함을 한 번 더 지른 후에야 도혼이 접었던 몸을 일으켰다. 허나 분은 그것으로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씩씩거리며 길길이 날뛰었다.
“다 죽었어, 니들!! 죽을 때까지 때릴 거야! 죽은 다음에도 때릴 거야!”
‘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3명의 서로 다른 노인들을 보며 일룡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다. 역천의 계획에도 빈틈이 있었고, 3년마다 무림을 샅샅이 살피는 천상천의 정보망에도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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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고맙습니다. 서로 없던 일로 칩시다. 그럼.”
류심환은 삼혼의 등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미 배는 떠났고 수면에는 흔적이 남을 리도 없다. 어차피 5명의 추격자를 한 번에 제압하려면 필살의 절초를 펼쳐야 했고, 아이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었다. 죽어도 그들의 도움을 받기 싫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 서로 상쇄하면 될 일이라 치부했다. 부모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본 후, 무영을 눕혀 치료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3십장밖에 하나의 바위를 발견했다. 그는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아이의 상태가 너무나 급박했다. 그는 바위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웃옷을 벗어 바위에 깔고 그 위에 아이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지체 없이 주요 혈도를 막은 후 아이의 혈맥을 짚어 서둘러 검진을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색은 검다 못해 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반 각의 반, 그것의 반이라도 늦었다면.. 독이 예상보다 많이 퍼졌어.'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이의 몸에 퍼진 독은 일반적 응급치료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최고 절독인 천상무극독을 아이가 견뎌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아마도 그 기적은 단전과 몸 곳곳에 퍼져 있는 진기의 기운과 천단의 효능 때문인 것 같았다.
류심환은 자신의 내력을 오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이의 단전에 자신의 극음지기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조금이라도 기의 주입이 경로를 벗어나면 그것으로 아이의 목숨은 끝난다. 그는 끊어진 신경을 잇는 것처럼 극도로 정밀하게 자신의 진기를 아이의 단전에 주입했다. 아이의 단전에 분포해 있는 미세 혈관을 따라 그의 진기가 퍼지자 천상무극독의 강력한 저항이 일어났다.
순간, 아이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혼절해 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은 느끼지 못할 것이지만 아이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자신의 예상보다 독의 저항이 강했고 의식이 없는데도 아이의 몸이 꿈틀거릴 만큼 고통은 컸던 것이다. 아이의 몸은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핏발이 서고 호흡이 가빠지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샘물처럼 흘러나왔다. 아이의 몸이 견뎌내지 못하는 증거였다.
‘위험해!’
그는 급히 자신의 내력을 육성으로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을 통해 엄청난 극음지기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와 아이의 단전으로 흘러들었다. 강하게 저항하던 천상무극독도 그 위세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극음지기와 맞닿은 부분부터 얼어붙었다. 그러자 핏발 선 혈관들이 점점 얇아졌고 호흡도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아갔다. 입고 있는 옷을 흥건하게 적신 땀들도 잦아들었다. 꿈틀거리던 몸도 움직임을 멈췄다.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헌데, 천상무극독이 얼어붙기 시작하는 순간 아이의 단전에 머물러 있던 천상무극진기가 갑자기 요동쳤다. 차츰 안정되던 중독의 증상들이 다시 일어났다. 아이 몸의 떨림은 작은 근육까지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심해졌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급작스럽기는 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진기가 준동하는 것은 더 강한 힘으로 누르면 된다.’
두 진기는 닮았기 때문에 더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면 약한 것은 밀리게 돼 있다.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이 남아 있었지만.
‘분명, 관계 있어. 전설과 다른 게 있어. 허나, 상관없어, 아이만 산다면.’
류심환은 의문을 접은 채 자신의 내력을 칠성으로 올려 확실한 힘의 우세로 천상무극진기의 준동을 막았다. 그리고 진기가 밀려난 단전의 일부에 자신의 극음지기로 기막을 쳐 공간을 확보했다.
‘휴, 일단 일차 치료는 됐어.'
그는 기막을 쳐서 아이의 단전에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가장 시급한 치료를 끝냈다. 천상무극독은 단전에서 더 이상 퍼지지 않았고 천상무극진기도 제 자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아이는 죽음으로 가는 가장 큰 위기를 넘겼다. 잠시 숨은 돌렸지만 지금부터가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치료여서 그는 마음의 긴장은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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