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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6장 - 탈출3



방법은 독을 극음지기로 얼린 후 각 혈도마다 공간을 만들어 극음지기와 약간의 극양지기를 축적시켜 놓는 것뿐이다. 향후 얼린 독이 녹아 다시 온몸으로 퍼진다면 각 혈도의 주변에 축적시켜 놓은 극양지기가 급한 것은 태우고 나머지 대부분은 극음지기가 얼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이후 아이가 천상무극진기를 익혀 남은 독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다행히 그는 오년 전 검강천과 겨루면서 자신의 몸에 내재해 있는 극음지기를 확인했고 그가 보여준 초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파천태극무검을 대성했고 그 결과 극양지기까지 얻게 됐다. 천상지무와 당시 그가 익히고 있던 파천태극무검과 원리가 동일했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삼혼과의 삼혼지문의 비무를 펼치면서 파천태극무검의 원리를 파악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파천태극무검은 천상지무의 원리는 닮았다.

 

 

‘허나, 닮음은 뭐고 다르면 또 무엇이랴. 뭐인들 상관 있나. 약속만 지킬 뿐이다. 그거면 돼,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자신의 내력을 오성으로 내려 극음지기의 양을 줄였고 대신 여유가 생긴 2성의 내력에는 극양지기를 실었다. 지금부터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단전의 경우 힘의 논리가 통했지만 혈도와 혈맥의 치료는 화타나 편작의 의술처럼 정밀하면서도 신속해야 한다.

 

 

또한 진기의 양이 일 리라도 넘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어 극도로 정밀해야 한다.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하는 극도로 정밀한 작업이었다. 그는 단전에서 한 손을 떼 중요 혈도를 짚어가며 극양지기를 밀어 넣고 나머지 한 손으로 자신의 극음지기를 아이의 기경팔맥을 통해 십이경략과 주요 혈도로 흘려보냈다.

 

 

‘치료는 이제부터야. 극양지기로 혈도 주변과 혈맥에 퍼져있는 천상무극독을 태우고 그 일부와 아이의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만 남겨두고 대부분 얼려버릴 기경팔맥의 주변에 극음지기를 내장시켜야 해.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극도로 정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삼혼과 저들의 일전 중에 작은 진동이라도 이곳까지 밀려오면 이후의 치료는 불가능 해. 결국…’

 

 

삼혼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다. 극도로 정밀한 치료를 무사히 치르려면 그들은 상대를 완벽히 압도해야 할뿐만 아니라, 충돌의 파장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초식을 사용해야 한다. 삼혼이라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이 사실을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결국 그는 또다시 그들에게 힘든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

 

‘죽을 맛이군… 할 수 없지.’

 

 

이왕에 엎질러진 물. 이번에는 아예 넘치도록 따라야 했다. 그 결과는 그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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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혼은 오천협룡의 세 번째 합공에 대항해 막 팔성의 공력으로 절초를 날리는 중이었다. 상대는 자신들의 합공이 불혼이 펼친 기막에 튕겨나가자 만만치 않음을 감지한 듯 전력을 다해 두 번째 합공을 펼쳤다. 하지만 이도 속혼의 도움을 받은 불혼이 막아냈다. 바로 그 순간이 류심환이 무영의 단전치료를 막 끝내는 순간이었다. 도혼은 자신을 무시하는 다섯 놈들에게 ‘늙은 사이비 땡초 말고 나한테 덤벼’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헌데 일이 꼬이려는 것인지, 상대는 이를 알기라도 한 듯 세 번째 공격은 다섯 명이 각각 자신의 독문무공을 펼쳐 그 조합으로 이루어진 합공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원리와 초식으로 이루어진 한천마결을 펼쳤다. 검, 도, 장, 선, 지의 다섯 무공이 만들어낸 음기는 같았으나 한천마결의 빙혈류가 초식의 흐름에 따라 천지 간에 존재하는 모든 방위를 거치면서 절대 음강으로 발전했다.

 

 

그 위력이란 수십 장 두께의 절벽은 그대로 관통하며 얼려버릴 정도로 막강한 극강의 절대 음기였다. 검강천이 펼친 것과는 또 달랐다. 삼혼이라 해도 이 초식을 주군이 있는 곳까지 충돌의 여파가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때 주군의 전음이 들렸다. 주군의 전음이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조종처럼 울렸다.

 

 

 

 

 

[상대를 제압하되 출동의 여파가 이곳까지 미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것만은 피해야 합니다. 힘들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전음의 내용은 이랬고 주군의 전음을 들은 불호노가 속혼은 상대의 합공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강력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주군이 부탁했기 때문이다. 고래고래 소리만 지를 뿐,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던 도혼도 입을 다물었다.

 

 

‘허면, 파천무형검법 뿐이야.’

 

 

불혼의 생각은 이랬고.

 

 

‘으아! 주군도 빨리 좀 말씀해주시지! 제기랄, 현의천도류에서 방법을 찾아야 해.’

 

 

도혼의 생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이것으로 주군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무엇이든 선택해서 펼쳐야 했다. 충돌의 파장을 최대한 줄여보겠지만 성공에 대한 보장은 할 수 없었다. 류심환 만큼 삼혼도 백척간두에 서있는 느낌을 받았다.

 

 

'파장이 일어나면 먹어서라도 막아야겠지.'

 

 

불혼의 생각이 불안하게 이어졌고.

 

 

'몸을 던져서라도.. 중요 부위만 확실히 방어하면서..‘

 

 

도혼의 생각도 그 끝이 불확실 했는데, 순간 속혼이 초식을 거두며 자신의 몸을 상대가 펼친 극강의 절대 음기를 향해 날렸다. 그 무모함이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 더했다.

 

 

[주군의 명이라.]

 

 

“사제!!”

 

 

불혼이 급히 초식의 운결을 거두면서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야! 그건 내가 하려고.. 저 놈의 성미하곤!’

 

 

도혼도 막 펼치려 했던 초식을 다급히 거두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주군의 일이라면 막내란 놈은 언제나 저랬다.

 

 

퍽! 쑤욱!

 

 

다섯 가지의 음기가 인간의 몸과 충돌하거나 박혀 관통하는 소리가 났다. 속혼이 자신의 몸 다섯 군데로 상대의 초식을 막았다. 충돌에 따른 여진을 만들지 않고 불혼과 도혼이 상대를 제압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생각을 하자 그는 자신의 몸을 날려 상대의 초식을 아예 흡수해버렸다.

 

 

퍽!퍽!퍽!

“크으윽!”

 

 

비명을 지르는 속혼의 옆구리와 어깨, 허벅지가 두부처럼 뚫렸고 연이어 가슴에 장풍과 지풍이 만들어낸 빙강에 맞은 속혼의 몸이 속절없이 밀려나갔다.

 

“사제!!!”

 

 

도혼이 소리쳤다. 손을 뻗어 그를 잡거나 자신의 공력을 보내 그의 몸을 감쌀 수도 없었다. 두 눈이 부릅떠지고 가슴에선 극도의 염려가 일었으며 가늠할 수 없는 살의가 솟았다. 그는 속절없이 날려진 속혼을 보며 자신의 도장에 전 공력을 실었다. 상대를 단 한 방에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안 돼! 사제의 뜻을 생각해! 잔말 말고 파천여의일천류를 펼쳐!]

 

 

불혼의 강력한 전음이 그의 고막을 강타하자 극도의 살의에 무작정 날아오르기 시작한 도혼의 신형이 공중에 뜬 상태로 잠시 멈췄다. 그의 시야에 수십 번 구르고 튕기며 5장이나 날아간 속혼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죽었잖아..”

 

 

마치 혼잣말 하듯 도혼이 불혼에게 중얼거렸다. 그의 음성은 속이 텅 비어있었다.

 

 

[살아 있어. 알잖아. 난 천룡승천일검류야. 너도 시전해, 어서!]

"합!"

  

불혼의 몸이 둥실 떠올라 오천협룡을 향해 발사됐다. 공중에서 중간쯤 떠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던 도혼도 자신의 시야 끝에 널브러져 있는 속혼을 일견 한 뒤, 불혼에 맞춰 공중에서 그대로 몸을 날렸다. 차가운 이성이, 다급한 사정이, 주군의 부탁이 도혼을 지배했다. 허공중에 뜬 상태에서 어떤 것에도 탄력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날아가는 모습이란! 그것은 마치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비행물체 같았다. 새라고 해도 이에 이르지 못할 정도였다.

 

 

그것을 본 오천협룡의 눈빛이 만족에서 경악으로 바뀌었다. 한 놈을 보내고 흡족한 마음으로 막 네 번째 합공을 펼쳐 대결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사이비 도인 같은 놈이 잠시 공중에 떠 있다가 그 상태에서 그대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이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그 속도가 빛살 같았다. 물론 떨거지 땡초도 그들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런 경공이 가능하다니!’

‘이걸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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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심환에게도 속혼이 오천협룡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 치명상을 입고 그 충격에 오 장 정도 날려 땅에 부딪쳐 수십 번을 구르고 튕긴 후 그대로 혼절한 모습이 시야의 끝에 걸렸다.

 

 

‘속혼, 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그는 시선의 끝에 겨우 걸려 있는 속혼에게서 한 가닥 시선마저 거두며 가슴 저며오는 그의 희생을 자신의 기억 속에 묻었다. 이것으로 빚이 또 하나 늘었다. 속혼은 죽지 않았다. 그것이면 됐다. 그것만 기억 속에 각인시켜 두면 됐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 추호의 빈틈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극음지기와 극양지기가 아이의 주요 혈도와 혈맥에 다가가고 있었다.

 

 

‘주요 혈도와 기경팔맥 주변의 독을 극양지기로 태운 후 생긴 공간에 다른 것이 들어서기 전에 남은 극양지기와 모든 극음지기를 저장시켜야 해.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지금까지의 치료는 다 허사가 돼. 어떤 실수도 허락되지 않아.’

 

 

추호의 틈도 보여서는 안 되는 이 찰나의 순간에 아이의 생명과 검강천과의 비무와 그에 따른 깨달음, 죽음으로 부탁한 아비의 청인 오년 전의 약속과 조금 전 속혼의 희생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결정된다. 그래야 아이가 살아 깨달음의 대가를 치룰 수 있고 자신은 아이를 천하제일인으로 키워 검강천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생명도 받치려 했던 속혼의 희생도 의미를 갖게 된다. 이번 찰나 지간의 치료에 그 모든 것이 결정된다.

비록 이것도 임시치료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성공시켜야만 과거도 살릴 수 있고, 미래도 의미를 갖게 되며 지금 이 순간의 모든 노력과 희생이 비로소 둘을 연결할 수 있다.

 

 

‘한 번뿐이야. 두 번은 없어.’

 

 

류심환은 극도로 집중했다. 그 찰나 지간만 생각했다. 극음지기와 극양지기가 모든 혈도와 혈맥에 있는 천상무극독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독과 두 지기의 접점들만 보였고 다른 어떤 것도 그의 의식 속에 자리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자신마저 잊었다. 그렇게 그는 뜻밖의 이유로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신기하게도 극도의 집중이 무아의 경지로 이어졌다.

 

 

류심환이 무아경지에 이르는 순간 무영의 주요 혈도와 혈맥 주변에 있던 천상무극독이 극양지기에 타 들어갔고 미세하지만 독이 사라진 곳에 공간이 생겼다. 그것은 허공중에 무엇이 터지거나 타면 그곳이 순간적으로 진공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무아지경의 류심환은 그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경이로움은 그 다음에 있었다. 선천지체의 생존본능이 보여주는 위대함이 남아 있었다. 스스로 일어나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질긴 생명력의 원천이 류심환의 극음지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극미한 공간으로 그의 의식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몸이 극음지기를 불렀다. 무아지경에 이른 류심환의 영혼이 무영의 몸에 자리한 본능을 깨웠고, 아득히 깊은 심연 속에 머물러 있던 어미의 뱃속부터 자리한 선천지체의 생존본능이 그의 무아지경에 반응해 스스로 깨어났다. 류심환은 무아지경 속에서 또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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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혼의 천룡승천일검류와 도혼의 파천여의일천류가 오천협룡이 펼친 네 번째 합공, 한천무극빙혈류의 극음의 강기들을 삼켜버렸다. 두 합공이 절대적인 위력을 가졌기에 엄청난 폭음과 함께 주변 몇 십 장은 폐허가 되고 인근 몇 십 리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났거나 엄청난 낙뢰가 떨어졌다고 느꼈음이 옳았다. 그래야 맞았다.

 

 

헌데, 오천협룡의 생각과는 다르게 폭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충돌의 파장도 크지 않았다. 그들은 한천마결의 제4초, 한천무극빙혈류를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펼친 갑작스런 합공에 한천무극빙혈류가 통째로 삼켜지는 것이 아닌가. 한천마결이 어떤 것이더냐. 그 네 번째 초식인 한천무극빙혈류 또한 무엇이더냐.

 

 

선조인 오천협이 천상천을 탈출한 뒤 오백 년을 갈고 닦으며 혈족 간의 혼인까지 강제해서 태어난 한 형제만으로, 그렇게 오백 년을 한결 같이 노력해 완성한 무공이지 않은가. 당연히 천상지무를 빼면 이것을 능가할 무공은 없어야 했다. 그들은 오백 년을 그렇게 믿었고 수련해왔고, 반전의 기회를 노렸다.

 

 

헌데 그 믿음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며 떨거지 같은 땡초와 얼치기 무당 같은 도장의 합공이 자신들의 초식을 막은 것이 아니라, 아예 삼켜버렸다. 바다 속으로 빠져든 돌들이 이러했을까? 그리고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삼룡과 사룡, 오룡의 몸이 수만 개로 조각나 흩어지는 것과 이룡과 자신의 몸에 수천 개의 구멍이 뚫리며 서있던 자리에서 일 장정도 밀려난 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는 사실을 일룡은 기억하지 못했다.

 

 

지랄 맞게도 사제들의 몸을 산산조각낸 것은 그들이 펼쳤던 한천무극빙혈류의 파편들이었다. 천상지무의 초입에 이른 한천무극빙혈류가 근원을 근원도 알 수 없는 단 두 명의 합공에 삼켜지는 것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오백 년 한이다. 그 피 끓던 은둔의 슬픔이요 가족과 잠자리를 같이 했던 치욕의 세월이다. 그런 오백 년이다.

 

 

‘나는 죽었어도 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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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심환이 무영을 안고 일어섰다. 불혼과 도혼이 속혼에게 달려갔다. 산서성 외딴 이름 모를 산길에서 천년 전설은 새로운 모습을 잉태했다. 그것은 전설 밖에서 죽었으나 그 안에 군림하면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절대자의 죽음과 그 전설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여 다시 전설 속으로 돌아갈 절대자의 아들과 그 사이의 간격을 완벽하게 메워줄 한 사람에 의해 이뤄졌다. 그리고 그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그 순간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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