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을 뒤엎는 작업은 여덟 시진 넘도록 계속됐고 그것이 성공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자 검강인의 눈빛이 갈수록 강렬해졌다.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해도 하늘을 뒤엎는 작업의 성공을 어느 누군들 장담할 수 있을까? 역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끝날 때까진 추호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 처음 계획한 대로 진행됐고 이제 거의 그 끝에 이르려 하지만 검강천의 죽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역천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계획대로 되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단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된다!!”

 

 

검강인은 역천이 성공이 눈앞에 다가올수록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낮말은 해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자세로 지금까지 은밀하고 치밀하게 그러면서도 속전속결로 역천을 진행했다. 천상천의 천주가 아닌 외궁 궁주로 밀려난 후, 지난 삼십 년 동안 치욕을 먹고 살았다. 더 이상 먹어치울 치욕이 없어졌을 때, 하늘을 향해 검을 들었다. 역천이 성공 직전에 이른 것은 지난 30년의 준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 시작은 이랬다. 먼저 천후 금미령이 검강천을 중독시키게 만들어 내공을 약화시켰고, 다섯 명의 호위무사와 열두 명의 친위대를, 내궁의 대총관이자 천상천의 3장로인 검강윤과 오대당주인 오천협룡을 필두로 해서 외궁 소속 칠대 전주, 암살대와 결사대 및 추살대를 동원해 내궁을 초토화시켰다. 그가 극비리에 키웠던 열두 명의 살천령(殺天靈)의 활약은 눈부셨다. 내궁에서 장로들 다음으로 무공이 강한 열여덟 명의 호법 중 일곱 명이 그들의 손에 최후를 맞았다.

 

 

검강천이 천상천의 미래로 키우고 있었던 12명의 제마령들을 자신에게 넘어온 내궁의 장로들과 외궁의 장로들을 동원해 제압했고, 미래의 살수로 키우기 위해 지하감옥에 가두었다. 가장 껄끄러운 천상천의 비밀병기 삼재(三在)를 제일 먼저 포섭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모든 것이 역천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검강천의 마지막 추종자인 다섯 명의 장로와 열한 명의 호법들을 제거하면 역천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자신은 다시 천상천의 내궁으로 입성할 것이며 당연히 물려받아야 했었던 천주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검강인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제 천궁의 결전이 끝나면 천상천은 내 것이야!'

 

 

침착함을 유지하던 검궁인의 눈빛이 조금씩 타올랐다. 그는 내궁에 위치한 제마전으로 오는 동안 삼십 년 전의 치욕을 걸음걸음마다 둔탁한 발자국으로 남겨놓았다. 그것은 천상천 역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념비적인 것들로 기억되고 칭송될 작은 증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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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 내궁에 위치한 천주의 거처, 천궁(天宮). 그 안에는 내·외궁의 주요 당직자들이 도열해 있고 천상천 32대 천주인 검궁현이 태사의에 앉아 있다. 그 앞에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 서있다. 한 사람은 육 척 장신에 구리빛 피부, 딱 벌어진 어깨, 단단해 보이는 골격과 수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고 단아한 눈빛을 가졌다. 누구라도 한 번 그를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도가 느껴졌다.

 

 

다른 한 명도 외모 비슷했으나 느껴지는 기도는 유연했다. 허나 그의 눈빛은 총명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검미는 날카로웠으나 콧날의 선이 매끄럽고 입술이 여인의 그것처럼 얇고 붉어서 전체적 조화를 이룬 미남의 전형이었다.

 

 

 

 

“본 천주는 십 년 동안 앞의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학식과 인품, 업적과 무공 수련과장까지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켜보았다.”

 

 

마침내 검궁현이 입을 열었다.

 

 

“천무대제(天武大帝) 검강인은 그 학식이 역대 천주 중 으뜸이라 할 만하고, 모든 궁인들이 그를 따를 정도로 따뜻한 인품까지 지녔다. 이는 은둔의 문파인 천상천의 천주로써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젊은 궁인들의 무공까지 한 단계 발전시킨 것도 이에 못지않은 업적이라 할 수 있고.”

 

 

검궁현의 말이 이에 이르자 검강인의 눈빛이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고검천존(孤劍天尊) 검강천은 학식 면에서 검강인에 뒤지고, 모든 궁인들과의 관계도 아직 완전해 보이지 않는다. 지간 십 년간의 노력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이는 검강천이 넘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다. 업적 또한 검강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검강천은 검궁현의 얘기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데도 눈빛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오늘의 행사가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무나 무심한 그의 눈빛이 표정과 어우러져 마치 방관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허나, 천상천의 천주라 함은 고금 제일을 의미한다. 천기를 보면 가까운 미래에 간단치 않은 폭풍이 무림에 닥칠 것이 확실하다. 이는 역천마곡의 부활이 분명해 보인다.”

 

 

그의 말이 이에 이르자 천궁 내의 궁인들에게서 약간의 동요가 일어났다. 검강인도 마찬가지였고, 검강천도 처음으로 눈빛에 변화가 일어났다.

 

 

“위기는 천 년 전보다 더 클 것 같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기서도 천 년 전의 역촌마곡보다 더 강한 마기가 느껴지니 천하는 또 한 번 피에 물들 것이다. 천상천 본연의 임무가 천하의 안전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후임 천주를 지명하겠다. 이에 이의가 있는 자는 반대를 말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천의 규율에 따라 이후로 어떤 반대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더 강해진 역촌마곡이 부활했다는 검궁현의 말에 궁인들이 잠깐 동안의 동요를 드러냈지만, 이내 검궁현의 말에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후임 천주를 지명하겠다는 검궁현의 말에 검강인의 눈빛이 간절함과 그 이상의 무엇을 드러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친부인 검궁현과 눈을 마주쳐 자신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어 마음을 누르며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

 

 

오히려 그의 오른쪽 뒤편 1장의 거리에 서있는 금미령의 시선이 검궁현의 두 눈을 향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검강인의 뒷모습과 검궁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녀는 검강인과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알아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차대 천주의 부인으로 내정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본 천주는 나를 이을 천상천의 제 32대 천주로써 검강천을 지명한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검강천이 호명됐다. 동시에 한 마디의 분명한 신음과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한숨, 당황한 몇 몇 궁인들의 소란스러운 음성들이 튀어나왔다. 신음의 주인공은 검강인과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금미령이었으며, 한숨은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낀 검강인이 내뱉은 것이었다. 검강천은 차대 천주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검궁현을 올려다보았다.

 

 

‘왜, 나를? 모든 면에서 검강인에 뒤지는데?’

 

 

검강천은 객관적으로 볼 때, 검궁현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들 천주의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겠느냐만, 자신이 아니라 검강인이 천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의문을 표시한 검강천의 눈빛을 일견한 후에 검궁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는 천주의 가장 큰 덕목이 무림의 위기를 구하는 것이어서, 다른 무엇보다도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天上歸元劍)의 성취 여부를 최종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비록 검강인이 내 적자이나, 성취의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이점에서 검강천에 뒤졌고…"

 

 

검궁현이 검강천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졌으나, 검강인의 눈빛은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검궁현의 말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격하게 흔들려 폭발할 것만 같았던 반발의 감정을 완벽하게 억눌렀다. 그러나 그와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금미령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정도의 습기가 차올랐다. 검궁현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차기 천후로 내정된 여인으로서 검궁인을 편들 수 없었다. 결정은 내려졌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남편은 검궁인이 아닌 검강천으로 결정됐다.

 

 

“다만 검강인을 외궁의 궁주로 임명하여 역천마곡의 부활을 대비하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천주의 권한으로 외궁의 강호 출입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겠다. 검강인 외궁주는 이에 대해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는 천주의 자리 못지않게 중요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되며, 천상천의 신화가 외궁의 활약에 있다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검궁현이 상당수의 예상과는 달리 검강천을 천주로 임명하면서, 동시에 검강인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천창천 천 년의 율법의 한 축을 살짝 비틀었다. 내궁 내 비밀조직인 암중천만 할 수 있었던 무림 출입을 외궁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림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검감윤이 율법의 규제를 일부 풀어주기로 하자, 한없이 가라앉기만 하던 검강인의 눈에서 미약하나마 한 줄기 빛이 번쩍했다 사라졌다. 빛의 잔영이 남아 있는 검강인의 눈동자엔 붉은 실핏줄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삼가 천주의 장남, 검강인이 명을 받들어 천주의 명을 반드시 실행하겠습니다.”

 

 

검강인이 무릎을 꿇으며 외궁궁주로서 밀려난 한을 구배에 담았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금미령은 검강인의 구배에서 갈수록 커질 한이 분명히 보였다. 검강천은 아무 말없이 검강인의 구배를 지켜보았고, 검궁현은 자신의 결정이 정말로 현명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검강인 말한 ‘천주의 장남’이란 말이 검궁현의 귓속에서 맴돌았고, 구배를 올리는 검강인과 금미령의 마음속으론 아홉 번의 다짐이, 치욕의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검강인은 이제 금미령과 검강천의 혼례를 막을 방법이 사라졌고,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반드시 저 자리에 오른다. 필요하다면 뭐든지 할 거야. 내 여인을 지키지 못하니, 나는 죄인이며 남자로서 최악이야. 필요하다면 하늘이라도 벨 거야. 반드시 저 자리에 오를 거야!'

 

 

섬뜩한 검강인의 저주가 결코 풀릴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각인될수록, 그의 눈빛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미령,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돌아올 테니..’

 

 

구배를 마친 검강인은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치욕과 분노, 무력감을 억누르며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검강천의 품에 안기는 금미령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죽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검강천은 본 좌 앞으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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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부터 역천은 삼십 년을 거슬러 왔다. 특히 검강천이 금미령과의 사이에서 그토록 갖지 않으려 했던 아이를 그의 두 번째 부인 취설란이 출산한 7년 전부터 역천의 작업은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마침내 외궁의 궁주로 밀려났던 바로 그곳, 천궁이 바로 검강인의 수중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상황은 어떤가?”

 

 

검강인의 음성이 처음으로 떨렸다. 지난 삼십 년 내내 이 순간만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자신은 천상천의 적자였고, 자신을 밀어낸 검강천은 그 출신도 모른 채 외궁에서 내궁으로 굴러 들어온 혈혈단신 고아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사랑했던 여인 금미령마저 천의 율법에 따라 검강천의 부인이 됐고, 지난 30년 간 단 한 번도 안아보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을 이제 바로 잡으려 한다.’

 

 

가슴에 담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그날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그에게 지난 30년이란 좌절과 분노, 살의로 뒤범벅된 폭발 직전의 활화산이었다. 외궁을 역대 최강의 상태로 끌어올렸던 지난 30년이란 치욕에 대한 엄혹한 와신상담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에 이르려 한다.

 

 

“천궁의 내전에서 선발대가 대장로와 고장로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나머지 세 장로와 열한 명의 호법은 외궁의 일곱 장로와 열두 호법, 칠대 전주와 12명의 살천령이 맡고 있습니다. 승부는 이미 우리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내궁 3장로와 내궁의 5대당주, 부총관과 일곱 명의 전주, 열여덟 명의 제마척살대가 6개조로 나뉘어 검강천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독에 중독된 검강천과 무영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천상천 외궁의 삼호법 광문요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했다. 그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검강인의 욕망은 이미 천주의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삼재(三在)에게 뒤처리를 맡긴다. 검강천과 무영의 죽음을 확인하라. 광 호법, 수고했다.”

 

 

천상천의 절대병기까지 동원하면, 귀찮은 보고도 더 들을 필요가 없고 천궁으로 들기만 하면 된다. 귀신보다 더한 세 명이 천궁 내 어둠의 얼룩으로 숨어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주 잠깐 어둠의 일부가 흔들리기는 했다. 그러나 모두 다 어둠에 속해 있어서 그것이 어둠이 흔들리는 것인지, 어둠에 바람이라도 불어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자들이야. 저들을 제일 먼저 설득하지 못했으면 역천은 실패했을 수도 있어.’

 

 

검강인이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역천은 막을 내렸다. 이제 변수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전까지의 천상천은 이후부터의 천상천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을 것이니, 검강인이 역천의 끝을 선언했다.

 

 

“천궁으로 옮긴다.”

 

 

이제 가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밀려났던 회한의 그곳으로 이제는 주인이 되어 들어간다. 판단착오로 볼 수밖에 없는 타의에 의해 밀려났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돌아왔다. 이제부터 천 년 전설의 주인은 바로 나다. 천상천 제34대 천주이자, 모든 것이 바뀔 새로운 천상천의 1대 천주는 바로 나, 검강인이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하남성, 성도 정주(鄭州)의 중심에 자리한 청운장. 백면서생들이 모여서 학문을 논의하는 이곳에서 무림인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역천이 일어났다. 이곳은 모든 무림인이 찾았으나 끝끝내 찾을 수 없었던 천 년 전설의 절대 문파, 은둔의 신화인 천상천의 내궁으로서, 유명 학자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는 청운장이었다.  

 

 

전설은 강호 안에 있었고, 다만 등잔 밑이 어두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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