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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겁하기 짝이 없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대법원이 삼권분립이란 헌법적 가치마저 거부하며,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지극히 비겁하고 정치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전원은 당의 원내대표를 찍어 발라낼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서슬 퍼런 결기에 바짝 엎드린 채 이도저도 아닌 말장난만 늘어놓았습니다





유죄는 유죄인데, 현 정부 하에서는 유죄를 유죄라 말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정치적 책임을 하급심에 떠넘기는 비겁함의 극치여서, 대한민국 사법사에 길이길이 남을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대통령에서 여왕으로 자리매김한 박근혜는 '짐이 곧 국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됐고, 대법원에 의해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유린당했습니다. 



이명박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원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을 입증한 문서가 통상적인 공식문서가 아닌 사적인 문서여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는 원심(2심)재판부가 증거능력도 없는 문서(트위트 계정과 활동내역이 담긴 ‘시규리티 파일’과 출처가 불투명한 트윗내용을 담은 '425지논')를 가지고 유죄를 선고할 만큼 형사소송법 법리에 대한 이해가 형편없다는 뜻입니다.



위대한 대법원 어르신들의 판단은,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고, 연수원 성적마저 상위권이어서 판사가 될 수 있었고, 향후 줄서기만 잘하면 대법관도 노릴 수 있는 원심재판부가 증거능력에 대한 형사소송법의 법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자질미달자라는 일종의 고해성사에 다름 아닙니다.





대체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정치검찰도 함부로 못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음지에서 조작해 양지를 지배하는'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의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에 법리 해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판사들을 배정했답니까? 대한민국 고등법원 판사들의 수준이 이 정도로 형편없다면 대체 어떤 판결인들 따를 수 있답니까



대법원의 파기환송에는 이것 말고도 더 참담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푸른집과 족벌언론의 외압을 막아주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찍혀 발라지고, 살아있는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윤석렬 수사팀이 공중분해된 이후, 황교안이 새롭게 구성한 (그저 그런) 수사팀이 (힙겹게 또는 마지못해 발견한) '시규리티 파일'과 '425지논'보다 더욱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는 원세훈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수사팀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ㅡ국정원 서버를 압수수색하지 않는 한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 증거를 추가로 제시하지 않는 한, 이명박의 호위무사이자 입헌군주제의 일등공신인 원세훈에게 유죄를 선고할 방법이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김용판 전 경찰청장도 그렇게 풀어준 대법원이 다시 한 번 한계를 설정해준 것입니다, 원심재판부에게. 





결국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증거들이 넘쳐나도, 그 중 어떤 것도 국정원 통상적인 공식문서의 형태로 정리된 것이 없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을 판결할 수 없게 됐습니다. 원심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원세훈은 공소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유죄인 듯 무죄 같고, 무죄인 듯 유죄 같은 상태에서 지루한 법정공방만 이어가면 됩니다.



원심 재판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못했던 홍길동처럼, 원세훈에게 유죄를 유죄라고 판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무죄로 추정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흐르고 흘러서 공소시효를 넘겨버리면 국정원 댓글사건은 수사가 완결된 상태에서 미제사전으로 남게 된 사상 최초의 사례가 됐습니다.



이상에서 거칠게 살펴본 것처럼, 원심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교묘하며, 비겁하고 기만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원세훈은 넘쳐나는 증거들로 해서 유죄가 확실하지만, 그 증거들이 공식문서가 아닌 개인이 이메일 상에서 관리한 ‘시큐리티 파일’이거나, 출처가 불투명한 '425지논'이어서 무죄가 된 사상 초유의 범죄자가 됐습니다.





어쩌면 국정원에서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사실이 발각될 것을 가정해 '시큐리티 파일'이나 '425지논'을 작성할 때 통상적인 공식문서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침몰한 세월호 내부에서 국정원이 작성한, 초딩이 봐도 소유주가 아니면 작성하기 힘든 문건이 발견돼도 아무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나라이니, 황교안이 구성한 (그저 그런) 수사팀이 박근혜의 정통성을 부정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국정원은 모든 기록이 저장돼 있는ㅡ참여정부가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삭제가 불가능하게 만든 중앙서버만 수사팀의 압수수색에서 지켜낼 수 있다면, 또는 원장이나 차장 등의 지시사항을 ‘시큐리티 파일'이나 '425지논'의 형태로만 전달하면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불법을 저질러도 아무런 법적 처벌도 받지 않게 됐습니다.



이명박의 퇴임 후를 지켜주기 위해 박근혜를 당선시켜야 했던 현 정부의 개국공신 중 한 명인 김용판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이자 일등공신인 원세훈에게 유죄를 선고할 용기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지요. 삼권분립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보다 정치적 이해득실이 중요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에서 대국민 감청장비를 수입해 국민을 해킹하고 감청했다는 증거가 추가될 수 있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할 국정원의 통상적인 공식문서가 없으면 원세훈과 국정원 직원에게 유죄를 선고할 방법이 없습니다. 더욱 지랄맞은 것은 지금 어디선가 이명박과 박근혜가 파안대소하며, 남은 증거마저 삭제키를 누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유신독재 시대의 중앙정보부를 꿈꾸는 국정원 전성시대가 두 번째 막을 올렸지만, 정치적 책임을 하급심에 떠넘긴 대법원이 원세훈의 보석은 기각했기 때문에 국정원도 똥 눈 뒤 뒤를 닦지 못한 찝찝함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습니다. 국정원이 뛰어난 비데를 써서 그럴 일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 얼마의 술을 들이부어야 음주운전이 되고, 일방적으로 몇 개의 뼈와 이빨을 부러뜨려야 폭행이 될까요?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의 유무죄를 가리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형태의 증거를 제시해야 대법원에서 유죄를 밝히는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이로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에 하나가 더해지게 됐습니다, '성공한 부정선거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둘 간의 차이는 단 하나, 전자는 현 새누리당 의원인 장윤석 검사의 선에서 이루어졌지만, 후자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모든 심급을 거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자가 더욱 정치적이고 치욕적이고 비겁하고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고 반국민적이고 반국가적입니다. 오로지 이명박근혜 정부에 친화적인 파기환송일 뿐입니다. 



P.S. 국정원이 해킹 및 감청장비를 수입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외생변수입니다. 국정원과 거래한 이탈리아의 해킹 및 도감청 전문회사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거꾸로 해킹을 당했고, 그 내용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되며 국정원 댓글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제 코가 석자인 박근혜 정부로서도 더 이상 원세훈의 국정원을 막아줄 여유가 없습니다. 임기 1년차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박근혜가 이번의 폭로마저 찍어누를 경우 탄핵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의 사기행각에 종지부가 찍힐지, 그 강도는 어떠할지 지켜보는 재미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