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9년 동안 권력의 애완견 노릇에 충실하기 위해 친일·반공의 완장과 신자유주의 합리성(인간을 극도로 세분화되고 표준화된 비숙련 단순 노동자로 훈련시켜 극단적인 노동 착취를 거쳐, 종국에는 노동자와 관리자 모두를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해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인 비인간화와 탈인간화의 형식합리성)을 대변했던  KBS가 정반대에 위치한 것으로 포장됐지만 또 다른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구좌파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극우에서 극좌로 탈각한 KBS의 역주행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방송 시간을 늘린 <오늘밤 김제동>과 KBS뉴스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좌파의 놀이터를 표방한 듯한 <오늘밤 김제동>에 대해서는 2편의 글로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9시 뉴스>에서 뚜렷해지고 있는 구좌파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유한국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말아먹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이 땅의 언론들 중에서 JTBC 뉴스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KBS <9시 뉴스>의 (발견하기 힘든) 구좌파화는 '백석역 사고'와 '광주형 일자리' 등의 보도들에서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사고들이 속출하는 것은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자신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두 정부에 누가 될까봐 언론들이 보도를 회피했던 사고들에 비하면 많은 편도 아니지만)이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나 맥도날드화, 유리감옥이나 감시사회, 승자독식사회나 시장만능주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나 줄푸세, 부정적 세계화와 자동화의 확대 등으로도 명명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의거해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이명박근혜 9년이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구축해 놓은 국가위기관리시스템과 다양한 위기대응 메뉴얼 등을 모조리 무력화시키는 시기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용산참사와 AI 확산, 구제역 파동, 세월호참사, 메르스대란 등도 이런 신자유주의적 역주행의 결과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9년 내내 방치해둔 곳곳에서 부실화 과정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터지지 않았을 뿐 사고의 가능성은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었다(9년 동안 초대형사고들이 너무 많아 보도가 되지 않은 것도 많을 수 있다). 민영화와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된 공무원 정원 축소 과정에서 시설관리와 보수, 점검 등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해고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무원을 대폭 증원(일자리 창출)하려고 했던 것도 무력화된 국가위기관리시스템과 다양한 위기대응 메뉴얼을 복원하는데 방점이 찍혀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CT룰 찍고 온 필자가 '백석역 사고'를 다룬 <9시 뉴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보도를 보면서 최근에 두드러진 변화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보도에서는 '온수관이 낡았다'는 것만 언급했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2명이 123km 육안 점검'이라는 타이틀의 2 번째 보도에서도 터무니없을 정도의 관리·점검 인원 부족의 이유를 다루지 않았다. 모든 책임이 문재인 정부와 지자체로 향할 수밖에 없다. <9시 뉴스>는 노동정책에서 약간의 후퇴를 보여준 (그러나 구조적 문제여서 어쩔 수 없었던)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언론들이 남발해 사용하기 때문에 '단독'이라 쓰고 '공통'이라 읽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배당 조작' 보도 시리즈는, <오늘밤 김제동>의 확대재편성과 맞물려 통진당과 관련된 사법부의 범죄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현대사법사에서 이 정도의 민주주의 파괴행위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 관련자들을 모조리 처형해도 모자랄 판이어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단히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이석기와 이정희, 서기호 등으로 대표되는 통진당의 피해가 가장 컸기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도 정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위안부할머니와 강제징용피해자 등과 함께 사법농단의 주요 피해자인 통진당 관련 보도는, 그들이 대한민국의 구좌파를 대표했다는 점에서 '광주형 일자리 무산 이유'인 '생산 물량 35만 대 달성 때까지 단체협약 유예'에 대한 현대차의 거부(협력업체 포함 광주와 전남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독일의 부흥을 이끈 슈뢰더 내각의 사회적 대타협을 모방한 것으로 보임)에 이어 현대차 노조의 파업 예고로 마무리한 보도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도록 편성·배치됐다.

 

 

문재인 정부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민주노총에 이어 현대기아차 노조가 포함된 한국노총까지 대정부 투쟁에 들어간다는 보도에는 현대차와 정부의 입장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구좌파적 편향을 노골화했다. <9시 뉴스>의 이런 보도 흐름은 '연동형 비례제'를 밀어주고 있는 <오늘밤 김제동>과 수미상관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국민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공영방송 'KBS1'으로써는 구좌파적으로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데올로기적 지향으로써 생명을 다한 획일적인 평등이나 노동의 절대성과 동등성을 대변하는 구좌파적 가치는 진보의 재정립을 막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들의 교조적 주장과 투쟁방식은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디지털 기술의 21세기에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온갖 문제들이 속출했던 자본주의 초기에 연구를 진행하는 바람에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와 소외, 잉여, 교환 등을 탁월하게 설명했지만, 그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빈약한 미래 예측의 참혹한 실패로 68혁명의 신좌파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시민행동주의 및 존 롤스의 《정의론》과 부분적 반론의 형태로 이루어진 후속 연구들에 자리를 내주면서 겨우 명목을 유지할 뿐이다.   

 

 

이 때문에 민주진보정권이 들어설 때만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는 KBS가 구좌파 같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에 편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준조세에 해당하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는 점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신자유주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나, 정치적 양극화의 한 축인 구좌파적 급진화는 촛불혁명을 통해 상당 부분 극복해낸 극단적 양극화를 되살려내고 표퓰리즘의 득세에 일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난 9년간의 애완견 노릇에서 탈피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KBS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노동 정책 후퇴에 맞춘듯이 구좌파적 급진화로 방향을 튼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구좌파를 포함해 거의 모든 진보주의의 핵심 메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N포세대의 좌절과 절망, 불행과 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불꽃 페미'라는 '급진적 여성운동'(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그들의 투쟁과 주장을 페미니즘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해서는 '성대결로 치닫는 20대 분노의 근원에 대해'와 '이수역 사건, 신자유주의와 디지털기술의 슬픈 자화상'에서 거칠게 다루었는데 'KBS1'의 급진화에 대한 반론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최초의 자식세대'라는 프레임은 사실이 아니며, 설사 그렇다 해도 구좌파적 급진화로는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세상을 모두 분해해 다시 조립하지 않는 한 'All or Nothing'식 투쟁으로는 바람직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약한 모든 것을 100% 지키라고 요구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남은 임기 동안 영생의 차원에 이를 천문학적 단위의 욕들을 먹는 수밖에 없다. 약속한 것을 모두 다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또한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분야에서 공약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실현해가고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순서에서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을 차근차근 되돌리고 있음도 말할 수 있다. 

 

 

일요일에 방송되는 <저널리즘 토크쇼 J>를 보면 'KBS1'의 목표가 공정성과 영향력 면에서 '손석희의 뉴스룸'으로 대표되는 JTBC를 능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KBS1'이 언론의 역할을 중립적 위치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손석희의 JTBC와 비교해서 상대적 우위를 최대한 빨리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좌파적 급진화를 선택했다면 미시적으로도 거시적으로도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면서도 그것의 결과물에 대단히 부정적인 중상류층 고학력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KBS1의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구좌파는, 그것도 급진화된 구좌파는 지독할 정도로 물질주의적이어서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 성향을 20세기 내내 보여주었다는 경험적 사실이다. 이재명의 트레이드 마크로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할 수 없는 기본소득(기본소득 논의에서 숨겨진 위험들)이 구좌파와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것도 마르크스주의의 악성 변종을 불평등 극복의 정수처럼 오해했기 때문이다(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미래학자의 성급한 결론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김어준이 말한 이재명 지지율 7%의 핵심에 자리한 것도 '꼬리를 잡아 중심을 흔들겠다'는 기본소득(청년배당 포함)에 대한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민주당 지지자라는 그의 주장에는 추호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을 묶어주는 최고의 지향점이 기본소득인 것은 분명하다. 지급액을 대폭 후퇴시킨 이재명의 계획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아닌 기본용돈이라 불려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말하는 기본소득이 스위스와 핀란드에서 진행했던 기본소득과는 금액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으로는 불평등의 'ㅂ'조차도 줄이지 못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해서 'KBS1'이 지향하려는 미래의 이상향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필자가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통합적 사고로 치환할 수 있는 진보적 꼰대(단 유머와 위트를 장착한 대단히 열려있는 배나온 꼰대)를 자처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은, 표퓰리즘 뒤에 숨은 극우의 준동과 반동을 막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디지털 기술을 해방의 수단으로 여기는 급진적 구좌파의 선동과 폭력으로부터도 미래세대와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필자가 'KBS1'의 최근 행태에 적극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남은 일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었던 필자의 약 20년에 걸친 다독 및 정독과, 그것에 바탕한 반성적 성찰의 사고들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거나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는 경험들과 현실적 한계들이 이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필자의 공부와 판단이 틀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맞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을 단 한 줄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정의로운 사회와 포용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믿어라!! 믿어 봐라, 제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나는 김제동의 오랜 팬이다. 이승엽 만큼이나 김제동을 좋아한다. 김제동이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놓친 적이 없으며, KBS가 <오늘밤 김제동>을 런칭한다고 했을 때 첫 방송을 학수고대하며 나만의 카운팅을 시작하기도 했다. 내용이 너무 어럽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연재를 중단한 상태지만, 필자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우영우드>라는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을 김제동에서 따오기까지 했으니 광팬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랬던 김제동이, 청년을 위해 (사실상) 현실정치에 뛰어든 김제동이 국민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공영방송의 시사프로를 진행한다면 차별성 있는 방송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대했던 첫 방송부터 오늘까지 <오늘밤 김제동>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본방사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년 4월까지 집필을 마치기 위해 2~3일에 한 권의 책을 독파해야 하고, 틈틈이 글로 옮기는 와중에도, 그것도 간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오늘밤 김제동>은 반드시 시청했다.

 

 

이재명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도 약간의 비판을 했을지언정 그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렇게 삐걱거리며 욕도 먹어가면서 김제동이 시사프로에서도 성공 가도에 들어서기를 바랐다. 전원책이 나와 난장판을 벌이고 간 어제의 삐걱거림도 끝내는 극복해 내리라 믿었다. 낮은 시청률은 차근차근 끌어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반론권 차원에서 진행했지만 실패하고만 이정렬 변호사의 출현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지면서 <오늘밤 김제동>의 담당 PD와 제작진의 의문투성이 대응도 그와는 상관 없다고 믿었다. 

 

 

헌데 조금 전에 끝난 <오늘밤 김제동>의 초입에서 김제동과 해당 PD가 주고받은 어이없는 진행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애정과 믿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다. 번갯불에 꽁을 볶기라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밤 김제동>의 신뢰성이 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하찮고 귀찮다는 듯이 이정렬 변호사와의 진실 공방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김제동과 해당 PD의 단답놀이는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하는 파시즘적 행태가 아른거렸다. 

 

 

김제동이 해당 PD에게 물었다, "반론권 보장하지 않은 적이 있나요?" 해당 PD가 답했다, "없습니다." 그게 다였다. 김제동과 해당 PD는 이정렬 변호사와의 진실공방에서 제작진이 올린 공지문을 수정함으로써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본질을 완전히 왜곡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를, 필자도 어김없이 포함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속였다. 이정렬 변호사가 반박한 것은 반론권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의 변호사와 인터뷰한 후에 반론권 차원의 출연을 요청하지 않았으면서도 했던 것처럼 말한 거짓말이었다.    

 

 

<오늘밤 김제동> 측에서도 억울해 보이는 측면은 있다. 이정렬 변호사에게 출연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방송에서 김제동과 담당 PD가 그것에 관해 이정렬 변호사와 해석 상의 오해가 있었다고 말한 후 정식으로 출연을 요청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일이었다.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어 조금은 예민해진 이정렬 변호사가 이것마저 거절했다면 소수(혜경궁 김씨를 고발한 3,245명으로 한정할 경우)에 불과한 문파를 능멸하는 오늘의 단답놀이가 약간의 정당성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필자도 소송인단의 한 명이어서 오늘의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 편향된 인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재명과 그를 보호하는 정체불명의 세력, 그러나 상당히 정교하게 폭을 좁힐 수 있는 세력에 대한 인지 편향과 확증 편향이 차가운 이성의 작동을 막고 있을 수도 있다. 필자의 분노가 객관성을 잃었다고 반박해도 특별히 대응할 방법도 없다. 이승엽과 함께, 김제동의 오랜 광팬이었다는 것은 필자의 블로그에 올라있는 여러 편의 글들로 증명할 수 있지만 이재명 때문에 김제동에게도 편향된 인식이 생겼다고 비판할 경우 반박할 증거를 제시할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김제동과 해당 PD가 단답놀이로 논란의 본질을 빗겨가는 방식은 정직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이 갖춰야 할 시청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보여주지 못했다. 본질을 왜곡해 빗겨가는 두 사람의 단답놀이는 지극히 자한당스러웠고 더욱 노골적으로 말하면 대단히 이재명스러웠고 동시에 김어준스러웠다. KBS1은 국민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공영방송이고, 그 중에는 필자를 포함해 3,245명의 소송인단과 문파의 시청료도 포함돼 있다.

 

 

해서, 단물이 빠진 씹던 껌을 뱉어버리는 듯한 두 사람의 단답놀이는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됐다. 김제동과 해당 PD의 사과를 정식으로 요구한다. 이정렬 변호사가 거절하더라도 방송을 통해 공식적으로 출현을 요청하라. 시청자의 숫자를 계량화해 이익의 저울로 달아본 결과에 따라 소수의 견해를 묵살해버리는 오늘의 행태는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이어서 괴벨스의 선동정치를 연상시킨다. 필자의 눈에 파시즘의 망령이 아른거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그래서 서독 체제를 통째로 동독에 이식해버리는 바람에 동독의 지도부와 전범들을 처벌할 수 있었던 통일 독일의 사례를 들어, 한반도 통일 이후의 북한 지도부 처벌을 떠들어댄 이준석의 무지함(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책들은 널려 있으니 관점이 다른 몇 권의 책이라도 읽은 다음에 떠들어도 떠들어라)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김제동과 해당 PD의 단답놀이는 그렇게 치부할 수 없다.  

 

 

김제동, 당신의 본모습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내가 어리석어서 지금까지 속았던 것인가? 아니면 KBS의 구좌파 성향을 보이는 집단이나 세력에 이용 당하는 것인가, 혹은 정반대로 김제동이 KBS를 이용하는 것인가? 단답놀이의 폭력적인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빼면, 필자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오늘의 잘못을 바로잡는 내일의 <오늘밤 김제동>을 요구할 뿐이다, 오래된 광팬이 아닌 시청자의 일인으로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문파를 공격하고 능멸하는 선대인의 발작적 행태는 그의 경제 지식이 형편없고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진보 경제학자들의 책과 논문은 물론, 인지 편향된 상태에서 확증 편향을 위한 통계를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면, 그리고 한국 부동산시장의 바로미터와 다름없는 일본과 스페인 등의 거품 붕괴와 역진된 인구구조를 감안하면 부동산가격의 폭락은 시간의 문제일뿐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편향된 접근과 해석이 믿음이나 신념이 되면 그것이 10년이던 20년이던 폭락 예언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현실경제를 있는 그래도 보고, 정부의 역할을 고려해 보면 일본이나 스페인처럼 부동산가 폭락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과 조지 리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ㅡ뉴 센츠리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동산가 폭락을 막아낼 대체시장은 여전히 남아있다. 월가의 새로운 먹거리(채권과 묶고 다시 나눈 생명보험의 증권화 남발)와 프래차이즈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푸코가 '합리성의 비합리성'을 걱정한 베버의 관료제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나쁜 의미의 합리성)이 종말론적 붕괴를 얼마든지 늦출 수 있다.

 

 

선대인은 그렇게 다양한 현실경제에 대한 공부와 지식이 부족하기에 주구장창 부동산가 폭락만 떠들어댈 수 있었다. 이념화된 신념과 믿음이 경제학자로써의 객관적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선대인이 롤스나 드워킨, 벌린, 로직 등의 <정의론>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짓거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식과 인격 모두에서 선대인은 그 정도밖에 안되니 그의 도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케인즈가 《일반이론》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그 유명한 말을 선대인과 부동산시장에 적용하면 어떤 예언도 가능하다. 그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당연한 것과 당연해 보이는 것은 다르다. 부동산가는 떨어질 것이고 떨어지고 있지만, 트럼프로 대표되는 표퓰리스트들이 권력을 잡는 나라가 급격히 늘어나 1929년의 경제대공황에 못지 않은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한 국가경제가 무너질 정도의 부봉산가 폭락은 일어나지 않는다.  

 

  1. merryjanet 2018.12.05 11:16

    김제동의 진정한 오래된 팬으로서의 실망...그리고 좀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읽혀지네요.
    개인적으로 김제동에게 우호적이긴 했으나 뭐 그닥 팬이라고까지 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도 도령님의 안타까움이 와닿습니다.
    참 ...대체 이재명 따위가 뭐라고 여러 사람 흙탕물 뒤집어 씌우는군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가족에 대한 패륜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끝나는 게 아닐까요.
    경제가 실패해도, 정치력이 상실되어도, 국가의 흥망엔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도덕이 무너진다면 그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아주 기초적인 논리를 왜 어리석게도 무시하는지...
    이재명 따위는 그 손꾸락들이 외치는 '죽이기' 를 할 만한 가치가 1도 없는 쓰레기인데.

    • 늙은도령 2018.12.05 15:45 신고

      손가혁과 민주노총 조합원 등은 증거가 나와도 거부할 만큼 편향이 심해진 상태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재명이 범죄를 저지른 증거가 나와도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보다는 중간 상태에 있는 분들에게 호소하고. 지지를 거둔 분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2. 김민성 2018.12.05 18:51

    잘 읽었습니다.

  3. 영구땡칠 2018.12.06 00:14

    광문들 모여서 지네들끼리
    욕잔치하는걸 뭐라할것도 없지만
    한심해서 한마디 합니다
    아집으로만 꽉차서
    눈에 불을켜고 문정부 까는사람
    죽이려달려들지만 그것도 엥간치해야지
    분위기파악 못하면 니들 때문에
    문통 더 힘들어질거다.
    적폐청산 어찌보면 시작도 못했는데
    개누리에 겨눠야할 총구를 내부로 향해서
    친박,비박 나누듯이 박사모 패거리들이
    했던짓을 똑같이 해대니 일반국민이 보기에
    당신들을 어찌보겠소?
    본인들이야 지금하는 짓거리가
    문통을 지키는 일이라고 자위하겠지만
    박사모도 그때 똑같이 생각했다는것 잊지말고
    지금이야 워낙 문통이 호인이고 선비라서
    지지율이 유지되지만 만약 남북관계까지
    힘들어지면 지지율 낙동강오리알되는것
    순식간인데 그때는 그대들끼리만 문통지킬건지?
    작게는 민주세력 크게는 촛불세력까지 문통에
    지지자로 끝까지 남을수있게 친문들이 노력해줘야지..
    아마 모를거야 문통지킨다는 광문들 패거리정치
    때문에 국민들 마음이 떠나고있다는걸..


    • 늙은도령 2018.12.06 05:23 신고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고 뇌가 있어도 생각하지 않은 당신이나 정신차려!
      이재명과 김혜경이 저지른 일들을 용납하는 것은 정치의 문제를 넘어 인간에 대한 예의야.
      우리의 지도자는 아무리 야비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실상 형제자매를 죽이고, 노모를 악착같이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추잡한 범죄들을 저지른 자를 지지하는 너 같은 놈들은 인간의 축에도 들지 못해.
      이재명과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이재명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힘든 거야.
      그 놈이 지지율이고 도덕성이고 다 말아먹으니......
      도덕적 윤리적 판단을 상실한 당신 같은 사람을 보통 악마라고 합니다.
      존재 자체가 인류의 불행이지요.

  4. 별빛산책 2018.12.06 08:22

    영구땡칠에 대한 늙은도령님 판단 아주 적합하군요..우린 내부총질이 아니라 곪은 살을 제거하는 중인데요. 되려 이재명따위 내부적폐 보호한다고, 문재인대통령 공격해대는 이재명지지자들이 온라인상에 넘쳐나던데요. 그들을 뭐라하는 말은 없으니, 아전인수격이죠.

  5. 늘근하네 2018.12.06 09:22

    먹물들의 분탕질에 지친 중간층의 외면때문에 자한당이 꿩알줍네~~~

  6. 독거노인 2018.12.06 09:34

    김제동은 정체만큼이나 언행이 모호하더라수요.
    기자출신도 아니고 시사 분야에 전혀 경력이 없으면서 게스트나 PD 한둘 앉혀놓고 대담하고 노래틀고 시청자얘기 듣는게 전부이면서 스스로 논란이나 일으켜 뉴스에 나오더군요.
    뉴스를 탐사나 분석하지도 않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거고도 아니면서 논란을 만들어 뉴스를 생산하고 있네요.

    • 늙은도령 2018.12.06 13:11 신고

      팟캐스트화라고 보면 됩니다.
      김제동이 스스로 함정에 들어갔습니다.
      볼수록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 2018.12.06 17:48

    비밀댓글입니다

  8. 마산댁 2018.12.06 17:54

    카메라 돌아가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을 봐 버린 일인으로 얘를 아웃 시킨지 오래됐다는. 이글에 댓글 쓰는 이유는 이런 애를 공영방송에 내 보이는 우리의 언론이 찌질한 먹방보다 못한 하수의 시사, 뉴스를 국민은 안다는. . 일기예보만큼 믿을게 못되는 방송 언론들에 놀아나는 현실이 슬프다는...

  9. 삼포로가는길 2018.12.07 10:35

    평소 안보던 프로를 이날은 논란이 많아 일부러 찾아 봤는데 방송중 위에 언급하신것처럼
    김제동 .pd 콩볶아 먹듯 후다닥
    단답놀이..
    어이가 없더군요.
    그런데 그걸 지적하는 언론이 없어
    이상하다 했는데..
    역시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갠적
    생각은 첫이미지에서 느껴진 인상이
    비껴가질 않는다는걸...
    이재명.김어준.김제동. . .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8.12.07 16:27 신고

      김제동이 사람을 잘못 만났나 봅니다.
      청년당 고문을 하면서 너무 급진화됐고요.

 

노통을 죽음으로 내몬 주범들인 쓰레기 언론과 기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기내 간담회에서 국내 문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소통을 회피하는 반민주적 행태라며 집요할 정도로 문프를 공격한다.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거대언론이자 명문대 출신의 기자로써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발광하는 모양새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트럼프와 문프간에 갈등과 불화가 있다고 스스로 확정한 다음에 지금처럼 가는 방향이 올바른 길인지, 그럼에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느냐는 편향되고 악의적인 질문을 던진 중앙일보 기자의 오만방자함에서는 시퍼렇게 날을 세운 살의가 올라올 정도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보다는 그것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수구언론의 친일·반역적 행태야 이골이 난 것이라고 해도, 대단히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11시 뉴스를 없애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오늘밤 김제동'의 시간을 늘림으로써 구좌파적 접근이 늘어난 (그것이 껄끄러웠는지 얄팍한 지식으로 제멋대로의 말잔치를 쏟아내는 전원척을 투입해 이념적 편향성을 물타기 했지만 프로그램의 질만 떨어뜨리는 악수로 귀착됐다, 단 1회에 불과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KBS가 4시에 진행되는 <사사건건>에서도 문프의 '반쪽 소통 논란'이라는 제목 하에 첫 번째 꼭지로 다루었다. 이 정도면 다시 뭉친 언론카르텔의 '문재인 흔들기'를 넘어 '문재인 죽이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패널로 나온 자들도 문프를 공격해야 할 동기가 대단히 높은 바미당의 이준석과 그의 비판을 방어해야 할 동기가 약할 수밖에 없는 정의당의 박원석이었다. 그나마 '靑 특감반 비리…사퇴론 입장은?'이라는 두 번째 꼭지에서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오늘도 어김없이 논리 확장의 오류에 빠져 '특감반 비리'를 무한대로 과장한 이준석(하버드대학에서 전공한 것이 '닥치고 뻥튀기'였을까?)에 맞서 나름의 방어를 해냈지만 소극적인 수준에 그쳤다. 청와대의 특검반 비리를 최초로 단독 보도했다는ㅡ확인이 필요하다ㅡKBS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 길들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내 간담회에서 외교 문제에 한해서만 질문을 받겠다며 국내 현안을 연이어 꺼내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모든 언론의 날선 비판과는 다르다. 필자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양해를 구한 대통령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국내 현안을 연이어 질문한 것은 기자 본연의 역할이라 욕할 일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을 '당신(김정은을 지칭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래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이라고 지칭한 것은 어떤 이유를 들어 변명한다 해도 용납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대통령을 '당신'이라고 지칭한 것이 의도적이었다면 천하의 후레자식이고 무의식 중에 나왔다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더욱 분노하는 것은 조중동에서도 가장 처지는 중앙일보의 기자 따위가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대통령에게 '당신'이라고 지칭한 것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민주당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당대표라는 작자는 베트남 여성을 '선호'의 대상으로 상품화시키지 않나, 전 세계 지도자와 시민들 대다수가 존경하는 자당 출신의 대통령을 쓰레기 양산처인 중앙일보의 기레기 따위에게 길거리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장삼이사 취급을 받았는 데도 아무런 논평 하나 내놓지 못하니 국정운용의 한축인 여당으로써 기본적인 능력이나 자격이라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개소리에는 몽둥이가 약이지만 보수 정권의 애완견 노릇이나 했던 개새끼 입에서 멍멍거리는 소리밖에 나올 것이 있겠느냐며 무시하고 넘어간다 해도, 이명박근혜 정부 때는 권력의 노예처럼 그런 질문조차 하지 못했고, 오바마가 특별한 기회를 제공해 질문할 기회를 주었을 때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박근혜 얼굴만 처다보며 침묵으로 일관했던 그들의 '그때그때 다른 기레기 본성'은 영원히 기억해야 하리라. 권력의 특성에 따라 언론의 자유를 무한히 축소하거나(그것도 자발적으로!), 정반대로 늘리는 이들의 이중성과 기레기 본성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들어서지 못한 핵심 요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전 약속이 어떻게 됐던 외교 문제로 질의응답을 한정한 것은 외국 순방의 목적에 집중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부재시에는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실장이 국내 현안을 관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외유 중에 터져나온ㅡ지상파 3사를 비롯한 거대언론들이 문프의 외유 때만 이런 보도를 내보내는지 의심할 필요도 있어 보이지만ㅡ청와대 감찰반 비리의 전모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답변을 하면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실장에게 일종의 지침처럼 부담을 줄 수 있기에 국내 현안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자리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위기에 닥치면 원칙으로 돌아가는 문프의 방식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실장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 것이다. 감찰반 비리도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기에 그들의 비리를 바로잡는 것도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때만이 최적의 답을 찾아낼 수 있고, 감찰반 비리로 실망했을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을 넘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다짐을 보여줄 수 있다. 문재인 리더십의 핵심이 신뢰이기에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감찰반 비리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결자해지다. 자신의 외유 중에는 이낙연 총리가 국정운영의 대표이자 주체다. 그것이 경제 문제던 사회 문제던, 사실상 책임총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낙연 총리가 대처하고 해결해야 한다. 감찰반 비리를 막지 못한 정치적이고 실질적인 책임은 임종석 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에 있지만, 이낙연 총리도 각 부처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어디에서는 발생하고 있을 비리들을 발본색원해 엄중처벌할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결자해지는 임종석 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조국 민정수석의 경우에는 결자해지의 책임이 막중하고도 또 막중하다.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와 비리가 계속되고 있으니, 이전 정부들과 비교해 사고와 비리의 발생비율과 경중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조국 민정수석은 양 어깨에 대한민국을 이고 있다는 책임감으로 감찰반 비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국민의 다수가 만족할 수 있을 수준이 성공의 기준이며, 이전과는 달리 대단히 까다롭게 평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결자해지에 성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내 간담회에서 국내 현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원칙과 결자해지! 자신이 귀국할 때까지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실장, 조국 민정수석이 감찰반 비리와 국내 현안들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평가하려면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권한을 주어야 한다. J노믹스를 비판하는 논리들은 하나같이 엉터리이니 답할 필요도 없지만 몸이 상할 정도로 강행군을 하고 있는 외유 중에도 노골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 보려는 기레기들에게 휘둘려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실장, 조국 민정수석이 현안을 처리하고 문제를 수습하는데 운신의 폭을 줄일 이유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을 회피한다는 부정적 인식까지 각오한 채 일부 기레기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을 때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외순방이라는 강행군을 하고 있기에 '청와대 홍보팀과 사전 약속을 어떻게 했던지 간에 외교에 관련된 문제만 질문받겠다'고 한 것은 외유의 목적에 전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원칙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인류사적 대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반쪽 소통 논란'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것이며, 마다하지도 않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던 기자들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도 '국내 현안을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황당하고 자기모순적인 질문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시도했다는 것이 한심하고 창피할 따름이다. 이들이 기레기로 회자되는 것은 똥과 오줌을 구별할 정도의 역량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그 놈의 빌어먹을 엘리트 의식은 국내에 돌아오기 전에 망망대해에 수장시키고 오길 바란다. 공부하지도 고민하지도 않는 기레기들이 인류사의 거대한 전환을 성사시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erryjanet 2018.12.04 23:24

    대통령께서 미리 "외교에 관한 질문만 받겠습니다." 하고 양해를 구했고
    우리 대통령은 끝까지 예의와 품위를 지키셨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며 문프를 곤란하게 만들자는 불순한 의도가 모두의 눈에 보였는데도
    아마 다른 대통령, 특히나 박그네 같았다면 "지금 나랑 쌈하자는 거예요?" 하고도 남았을 일.
    해외순방 기자단이 외교에 집중하느라 열일하는 대통령에게 편하게는 못대해주더라도
    온갖 기본 매너란 건 모조리 쌈싸다 먹었는지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며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문프의
    품성에 또한번 감동하면서 ....
    저런 몰상식한 시정잡배같은 기레기들에게 시달리느니 어서빨리 3년 반이 지나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행복한 노년을 지내시는 게 낫지않을까...싶은 바보같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5 00:10 신고

      성공해서 보란 듯이 돌아가야지요.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의 개소리에 분노가 울컥 했지만 본래부터 그런 놈들이니 분노도 아깝기만 합니다.
      일본에 보냈으면 딱 알맞은 자들의 집단에서 제대로 된 놈이 나오겠습니까?

  2. 기레기소탕 2018.12.06 20:29

    기레기언론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저주 증오 무례함의 배경이 무엇일까요?

    되도않는 우월의식? 이명박근혜를 향한 그리움 아니면 특정 배후 세력의 지령?

    이나라 기레기 언론들은 가끔식 국적이 어디지?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정말 경제가 망하기를 바란다는 느낌도 들고 특히 문대통령을 향한 인격 모독스러운 인신 공격은 진짜 이것들의 기레기 언론인들의 기본 인성 자체를 의심스럽게 하더군요

    • 늙은도령 2018.12.07 13:17 신고

      대한민국을 망치는 첫 번째 세력이 언론입니다.
      무엇보바도 종편부터 없애야 합니다.
      심사를 엄격히 해 지나친 경쟁을 막아야 합니다.
      인터넷 언론들도 언론의 자유를 악용하는 경우 폐쇄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제대로 된 언론이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루머 유포에 관한 문제라면 문화와 사회적 규범이 더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루머꾼들이 어떤 짓을 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남을 위하거나, 사악하거나 상관없이 루머꾼들이 거짓 루머를 퍼뜨려서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혹인 비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디스토피아 같은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자들은 루머의 진실 여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저 폭포효과와 극단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그러한 허위사실을 믿도록 만들려고 할 뿐이다. 그리고 편향 동화를 통해 수많은 근거 없는 믿음들이 완고하게 자리를 지키게 된다. 그런 미래가 오면 사람들은 특히 자신들이 속한 특수한 집단에서 유래하거나, 아니면 유래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들을 믿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장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희망사항이나 분노, 공포 그리고 성향에 잘 들어맞는 내용들이다. 그런 미래에는 다양한 반향실에 틀혀박혀 사는 사람들끼리 각자 서로 전혀 다른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끔찍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루머들을 얼마든지 받아들인다. 그러한 상대가 자기의 적이거나, 아니면 적으로 생각되는 사람인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ㅡ 캐스 선스타인의 《루머》에서 인용

 

 

이번 글에서는 김어준과 이재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루고자 한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그들의 성공에 어떤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위의 인용문을 보면 유튜브와 팟캐스트, 소셜미디어를 통해 악의적인 가짜뉴스와 루머, 음모론, 허위정보, 혐오 발언 같은 '바이러스성 콘텐츠'를 남발하는 자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가짜뉴스와 루머 등을 퍼뜨려서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혹인 비경제적인 보상'을 받기 위함이다. 

 

 

관종의 특성이 강한 그들은 가짜뉴스나 루머 등의 '진실 여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들은 '폭포효과와 극단화를 통해' 자신의 방송을 듣거나 글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허위사실을 믿도록 만들'어 경제적 이익을 취한다. 김어준과 김용민, 이동형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러면서도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다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검증이 불가능한 가짜뉴스나 루머, 음모론, 편향된 정보, 가공된 지식 등을 남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자극적인 것일수록 호기심이 발동되는 인간의 심리학적 약점을 파고든 결과 '근거 없는 믿음들이 완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고 가짜뉴스와 루머 등에 노출된 횟수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특히 자신들이 속한 특수한 집단에서 유래하거나, 아니면 유래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들'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럴 경우 특정한 지식과 정보에만 반응하는 '인지 편향'이 일어나며, 이것이 반복될수록 특정한 정보와 지식, 주장에만 마음을 여는 확증 편향이 모습을 드러낸다.

 

 

김어준과 이재명의 말은 철떡같이 믿어도 그것에 반대되는 증거들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은 추종자와 지지자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성된다. 이들은 김어준이 특정 대상이나 저들을 저격하기 위한 음모론이나 그럴싸한 주장을 제시할 때 그것들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증거들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김어준의 입을 통해 나온 음모론과 주장들이 대단히 황당하고 현실성이 없어도 무조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 상태, 즉 판단의 기준이 김어준에게 맞춰져 있는 확증 편향의 포로가 됐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지지자들도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그가 유죄라는 수많은 증거들은 거부하고 오로지 이재명의 앞뒤가 다르고 수시로 변하는 말과 항변만 믿는다.

 

 

그들에게 김어준이나 이재명의 말들은 자신의 '희망사항이나 분노, 공포 그리고 성향에 잘 들어맞는 내용들'로 이루어졌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아무런 확인작업도 없이 무조건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런 상태에서 각자의 '반향실에 틀혀박혀 사는 사람들끼리 (다수의 사람들은 절대로 믿지 않는) 전혀 다른 믿음을' 교류하고 강화하는 일방적이고 편향된 상호 강화과정을 진행시킨다. 이런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숫자에 이르면 다른 정보나 지식, 주장에 문을 닫아버리고 자신들을 공격하고 압박하는 다수의 사람들과의 전방위적인 전쟁도 불사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극단적으로 분열되고 정치사회적으로 양극화된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어느 쪽에든 자신의 판단을 일치시키는 인지 편향의 과정들이 기하급수적 늘어나 국가 전체가 둘이나 셋, 넷 등으로 나뉘어져 서로를 향해 증오와 분노, 공포와 두려움을 표출하고 싸움에 합류하기에 이른다. 자치의 주체인 주권자를 국민과 비국민으로 분류하고 차별했던 이명박근혜 9년의 비정상이 이렇게 탄생했다. 한편에서는 촛불집회가, 다른편에서는 태극기집회가 동시에 열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끔찍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바이러스성 콘텐츠를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마쳤기에 증오와 혐오, 분열과 차별을 유도하는 온갖 선동가와 위선자, 음모론자들이 판을 칠 수 있는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 가짜뉴스와 루머 등이 '역겨움, 분노, 악의와 같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사람들이 그것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디지털 기술과 만난 '바이러스성 콘텐츠'는 아무런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무한대로 퍼져나간다. 공격의 대상들은 정치인부터 연예인, 운동 선수, 지식인, 교수, 기자 등을 가리지 않으며 종국에는 평범한 일반일들도 공격의 대상에 포함되는 무법천지가 펼쳐진다.  

 

 

상대를 폄훼하고 저격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말일수록 전파의 속도와 확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5단계만 거치면 세계의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페이스북처럼 그들만의 디지털 네트워크의 위력도 극대화된다. 월가와 런던의 금융가가 만든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퍼져간 것과 비견될 수 있을 만큼 개인이나 집단, 정부를 탈탈 털어버릴 수 있는 '바이러스성 콘텐츠'가 광속으로 오고가며 공격 대상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고간다. 이 모든 것이 광속으로 이루어지기에 진실이 거짓을 따라잡아 바로잡는 자정작용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조작된 가짜뉴스와 피해자의 영혼까지 말살시키는 악성 루머 등의 공격 대상이 민주적 토론의 경쟁자가 아닌 '자신의 적이거나, 아니면 적으로 생각되는 사람인 경우에는' 악의적인 정보들을 받아들일 동기가 확고하기 때문에 어떤 인지부조화, 즉 공격 대상도 이 나라에서 함께 살면서 이해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 토론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아도 아무런 죄의식이 들지 않는 정신 상태에 이른다. 가짜뉴스와 악성 루머 등이 절대적 진실처럼 다가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처럼 자리잡게 됐으니 자신의 공격은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경우, 비슷한 생각을 가졌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들의 주장과 행태에 합류하거나 동의하는 '동조화 현상'이 폭증된다. 충분히 많을 정도의 집단을 이룰 때까지 이런 동조화 현상은 계속되며 구르는 눈덩이처럼 폭포수 효과를 발휘한다. 만인의 적이었던 이명박을 먹이로 한 나꼼수의 성공이 정확히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집단화된 사람들에게 다수가 됐다는 믿음이 자리하게 되면 가짜뉴스와 악성 루머 등을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시킬 욕구가 극대화된다. 나꼼수의 수많은 아류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초가 이렇게 조성됐다. 팟빵과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뒤를 이었고 이용자를 늘려야 하는 포털도 자리잡고 있었다.  

 

 

이쯤에서 세상을 모든 단 하나의 창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들이 24시간 내내 라이브 상태를 유지시키는 스마트폰이 그것인데, 디지털 기술의 총화인 스마트폰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최적화된 도구이자 성전이며,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와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와 각종 앱은 초등학생들도 '스파르타의 300인 전사'에 비견될 수 있는 무적의 디지털 전사로 탈바꿈시킨다(20대 여성들에게 상시화된 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되도록 만든 주범도 스마트폰에 집중된 디지털 기술의 위력이다. 인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이 극단적인 성대결로 치달은 것도 상당 부분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어느 날 갑자기 거의 모든 남성이 성적으로 집단 타락한 결과가 아니라). 

 

 

김어준과 이재명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추종하는 지지자들이 대표적이다. '이이제이파 신도와 정치인'이라는 희귀한 집단의 광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한테도 열지 않는 자신의 지갑을 기꺼이 열고 또 열고도 모자라 또다시 열 기회만 기다린다. 자신의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는 것은 교주에 대한 모욕이자 반동이자 범죄다. 이들은 새로운 지령이 떨어지면 지옥이라도 달려갈 태세를 마친 상태에서 교주의 명이 떨어질 때 최고의 화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맹목적인 증와 분노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전투력을 키우고 또 펼친다. 

 

 

이재명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세월호참사를 철저하게 우려먹은 것과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 대해 극단적인 이분법을 적용해서 절멸시켜야 할 해악으로 몰아간 것도, 김어준이 끊임없이 음모론을 퍼뜨리거나 질문을 빙자해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한 것도 이들에게 끝없이 먹이감을 제공하고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해서였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이분법의 저편에 있는 그들에게는 잔인했던 것도 지지자와 추종자들의 좌절과 분노, 절망과 공포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부추겨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분열과 사즉생의 공격과 확전이 온라인을 초토화시킨 후에 오프라인으로 흘러넘친다. 넘칠 정도로 남아도는 것이 끝없이 수혈되는 디지털 전사들이다. 누구도 이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세속을 등진 수도사처럼 초연할 수도 없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해가 충돌하는 사람과 집단 간의 합의가 필수조건인,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치열하고 투명한 협상이 필수조건인, 최악의 경우 합리적인 토론이라도 이루어지면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는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마저 작동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내몰린다.

 

 

마침내 이동형 같은 똥파리가 300만 전사 운운하고, 김용민 같은 급진적 기독교도가 80만 팔로워 운운하며 정봉주와 이재명을 비호하고, 문파로 대표되는 정반대에 자리한 사람들을 협박하고 공격하는 정글같은 세상이 도래한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저희가 디지털 십자군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할렐루야!' 사이비 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인 배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폭력이 자신의 교주를 비판하고 헐뜯는 모든 이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진다. 그들에게서 파시즘의 광기가 아른거린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바이러스성 콘텐츠'가 분출시킨 집단적 분노와 증오, 살의로 뒤덮여지면, 확증 편향과 편향 동향으로 강화된 공격과 테러 모의를 실제로 감행하는 '모험 이행'이라는 물리적 실천들이 다양한 형태의 폭력으로 폭발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현실이 되는 이런 상황에 이르면 트럼프나 르펜, 에르도안, 치프라스, 그릴로, 이재명, 김어준 같은 급진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이며 수구적인 민족주의자나 보호무역, 자국우선주의, 직접민주주의 등을 주장하는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달변의 선동가가 좌절하고 분노한 사람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권력을 잡거나 제1당, 제2당 지도자, 킹메이커 같은 대선후보로 승격되거나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유력 인사로 자리잡게 된다.  

 

 

이들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중독된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 두려움과 공포, 좌절과 살의를 부추기는 뱀 같은 수사학으로 아웃사이더에서 주류사회를 위협하는 비주류의 리그를 형성하고 세를 더욱 불려나간다. 좌우동형의 일베와 손가혁이 이렇게 동원되고 네트워크적으로 조직된 부류에 속한다. 세계화와 자동화에 위협을 느낀 불안한 노동자와 분노한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합류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런 사람들을 결집시켜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브렉시트인데, 이를 압축해서 표현하면 '표퓰리즘의 세계화'의 전형인 신자유주의적 역주행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다(존 주디스의 《표퓰리즘의 세계화》를 참조).   

 

 

촛불혁명으로 이명박근혜 정부라는 표퓰리즘 전성시대를 종지부 찍은 대한민국의 경우, 그 퇴행과 비정상의 9년 동안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이동형, 진중권, 김갑수, 정규재, 변희재 같은 선동가와 위선자, 협잡꾼은 물론 홍준표, 김진태, 손혜원, 표창원, 조응천, 김현, 장재원, 이언주, 강연재 같은 또라이 정치인들까지 이런 극단적인 투쟁에 가세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전국적 인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어프렌티스>처럼ㅡ트럼프는 이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줄곧 '나는 당신을 승자로 만들어 주겠다. 우리는 함께 패자들을 짓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ㅡ이들이 가세한 한국의 정치판도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처럼 바닥없는 하향평준화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나갔다(나오미 클라인의 《NO로는 부족하다》 참조).   

 

 

여기에 CNN과 MSNBC, 폭스 같은 전국방송(한국의 지상파 3사)과 케이블방송(한국의 종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한국의 조중동과 한경오) 같은 기성언론들까지 참여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탈출구가 없는 난장판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 진실이 사라진 거짓의 향연이 위풍당당하게 세상의 모든 곳을 점령한다. 김어준이 한국판 트럼프인, 그러나 그보다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이재명을 유력한 대선후보로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메커니즘을 교활할 정도로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도덕적 가치, 반성적 회고와 성찰, 자치의 핵심인 시민 의식, 좋은 삶을 위한 실천적 가치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신념으로써의 윤리관, 상대에 대한 상호존중과 배려, 평등한 자유와 정치적 책임의식 등이 사라진 총체적 타락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부패와 비리, 거짓말과 속임수가 만연한다. 배려하고 존중하며 바르게 산다는 것이 제일 멍청한 짓이 된다. 타락의 끝에는 좌우 양쪽에서 민주주의 위기론과 종말론이 핏빛 이빨을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다(오늘은 여기까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우리의 입장에서 트럼프를 미워할 수 없음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한의 공동 번영을 위한 평화체제 구축 때문이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자한당과 바른미래당의 일부, 태극기부대 등을 제외하면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예측이 불가능한 트럼프와 그에 버금갈 정도로 예측이 불가능한 김정은까지 상대하면서 분명한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끔은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뢰의 리더십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적 리더십에 종지부를 찍은, 그래서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끌고갈 수 있는 문재인 리더십에 관한 글을 며칠 내로 써볼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필자의 글에 속상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1. 카사바 2018.12.04 11:37

    아직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진 못하지만 항상 선생님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우리에겐 문재인대통령님과 문프의 가치와 원칙을 따르는 많은 문파들이 있기에 그래도 희망이 있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길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8.12.04 14:54 신고

      책으로 낼 때는 더욱 쉽게 풀어낼 것입니다.
      지금의 글들을 다 초고라 첨삭이 가해져야 합니다.
      그 점 이해해주십시오.

  2. 카사바 2018.12.04 16:05

    넵 고맙습니다👍👍

  3. 가영맘 2018.12.05 13:47

    글 전체적 흐름과 맥락이 산만하군요
    게시글로 올리시기 전에 자기 검열을 좀 더 철저히 하시라, 부탁드립니다

  4. 너가더음모론자 2018.12.27 12:25

    늙은이 본인이 인지편향 같네요.
    최진기처럼 추종자들에 읍소해 여론몰이하지 마시구요.
    김어준과 이재명을 묶어까는 것부터 똥파리스럽지만 그마저도 주장의 근거가 너님 소설이고 추정이지 뭐하나 팩트랄게 없네;

 

의회에는 3부가 있지만 기자석에는 3부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제4부가 자리하고 있다.

 

                       

                                                                       ㅡ 에드먼드 버크, 에드윈 베이커의 『미디어 집중과 민주주의』에서 재인용

 

 

 

 

조중동이 임기 5년 내내 악귀처럼 펼쳤던 '노무현 죽이기'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은 지상파 3사가 이런 추세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좋은 정책'의 설계자로써 진보의 재정립을 원했던 노통의 입장에서는 '가난한 조중동' 역할에 충실했던 한경오의 공격이 가장 가슴 아팠겠지만 노통의 지지자 입장에서는 지상파 3사의 압도적인 화력이 가장 아팠었다. 종편이 없었던 그때의 지상파 3사는 대통령의 권력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막강했다.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과 이보다 좋을 수 없었던 촛불정부의 출범으로 영혼과 육신에 각인된 슬픔들이 대부분 풀어질 수 있었지만 지상파 3사의 엘리트 의식이 마음에 걸렸다.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SKY로 대표되는 명문대 출신의 중상류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지상파 3사는 상고 출신의 빈민층으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노무현ㅡ아, 언제가야 이 단어를 쓸 때마다 울컥하는 감정의 격랑이 일지 않고 따뜻한 미소가 바람처럼 불어올까?ㅡ을 탐탁해 하지 않았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권력의 애완견 노릇을 하며,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고 압도적인 영향력이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지상파 3사의 엘리트 의식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동안 사상 최고의 자유를 누렸던 이들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똑 같은 언론의 자유를 누릴 터, '치욕의 9년'을 일거에 털어버리기 위해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려 한다면 촛불혁명에 담겨있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는 몸을 낮추며 망가질대로 망가진 내부의 환부부터 도려내는데 집중하겠지만,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하락 추세가 지속되면 숨겨놓았던 엘리트주의 이빨을 들어낼 것이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없고, 완벽한 국정운영이란 불가능한 일이라 마침내 그런 순간이 도래했다. 지상파 3사 모두가 단독이라며 하나도 다르지 않은 공통의 뉴스들을 내보냈으니, 문프를 팔아 한몫 챙기려는 악성 종양으로써의 청와대 감찰반의 비리였다.

 

 

정부의 각 부처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공무원들로 구성된 문제의 감찰반은 '문프의 사람'이 아니어서 촛불정부의 청와대도 피해갈 수 없는, 그래서 지상파 3사에 의해 무한대로 부풀려진 악성 종양이었다. 그것은 수술로 환부 전체를 제거해야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악성 종양ㅡ조국 민정수석이 비리의 전모를 밝히기도 전에 감찰반 전체를 원청으로 돌려보낸 외과수술을 집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ㅡ이었고, 지상파 3사로써는 문재인 정부를 길들일 최고의 먹이감을 확보하게 됐다.

 

 

지난 며칠 간, 한국의 중상류층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유일제국의 대통령인 트럼프와 만났을 때를 제외하면 지상파 3사의 8시와 9시의 메인뉴스를 비롯해 모든 시간대의 뉴스의 첫 꼭지부터 서너 개는 청와대 감찰반 비리 관련 보도로 채워졌다. 농부이자 시민으로 돌아간 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던 때만큼 압도적인 분량을 배정하지는 않았지만, 지상파 3사의 보도 방식은 '문재인 흔들기'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공격적이고 일방적이었으며 대단히 부풀려졌다.

 

 

이런 국내의 흐름을 알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기내 간담회에서 감찰반 비리에 관련된 질문을 연속적으로 쏟아냈을 때 외교 관련 질문만 받겠다며 관련 질문에 한해서는 단호하게 일축했다. 위기에 처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는 문프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장면은 지상파 3사의 뉴스와 각종 시사프로에서 반복적으로 방영됐고, 저질의 정치평론가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지만 사태의 흐름을 일거에 뒤집어버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재정의 해명은 깜도 안 되고, 표창원의 숟가락 얹기는 치졸하며, 조응천과 박주민의 배신과 과속은 치가 떨리지만, 이해찬 대표의 뒤바뀐 발언과 조국 수석 퇴진을 반대한다는 박지원의 계산된 변화에서 기내 간담회의 위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탄탄하고 강력한 지지기반이 부재했던 노통과는 달리 문파와 촛불시민이라는 확고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문프는 지상파 3사의 일치된 맹공에 밀리거나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었다. 노통처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면 천번 만번이라도 사과하겠지만 지상파 3사에게는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솔직히 말해 필자는 조국 민정수석을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 동안 문프를 힘들게 만든 것이 인사의 잡음ㅡJ노믹스 비판은 경기가 뚜렷하게 좋아질 내년 상반기면 설 자리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문프를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ㅡ이었기에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정수석에서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다. 이번 감찰반 비리에 대해서는 문프가 국민에게 직접 사과할 것이기에 조국 수석은 검찰의 수사가 이루어질 동안 청와대의 기강을 확실하게 다잡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단도리칠 의무를 확실하게 매듭지으라는 뜻이다. 

 

 

따라서 지상파 3사가 주도하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이 표정관리를 하며 꽃놀이패를 돌리는 작금의 연합공격으로는 문프를 흔들 수 없다. 약간의 상처는 남겠지만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오고, 문프가 귀국 후에 확실하게 처리해 전화위복으로 바꿔놓을 청와대 감찰반 비리로는 '노통 흔들기'의 데자뷰를 만들 수 없다. 지상파 3사의 맹폭은 언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전력으로 볼 때 '지상파 3사의 정부 길들이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선민의식은 통하지도 않을 것이고, 용납되지도 않을 것임은 그들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동안 시민들을 문프와 함께 한참은 앞으로 나가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을 중립적인 위치라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권력 감시'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너무나 강한 손석희의 JTBC는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이 이명박근혜 9년이라는 암흑의 시대를 보내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지상파 3사를 필두로 모든 언론의 수준이 형편없을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이들의 고답적인 엘리트주의가 만들어낸 잘못들을 글로 다루려면 수십 권의 책으로도 모자라지만,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그들의 선동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만큼 확고하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던 KBS의 갑작스런 퇴행이 마음에 걸린다. 모든 언론사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공무원스러움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KBS가 나갈 방향은 제4부로써의 공영방송이지 3류·4류의 난장판인 팟캐스트나 소셜미디어화가 아니다. 며칠 걱정이 많았는데, 문프의 기내 간담회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 아, 기분 좋다! 하늘 한편에서 노통이 활짝 웃고 있다. 

 

 

헌데, 이재명 관련 뉴스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요? '늦었지만 기적처럼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이재선씨 부인인 이재명 형수의 인터뷰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네요. 이재명과 김어준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왜 이런 일들이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는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차포 2018.12.03 16:52 신고

    기자라는 단어의 한자어를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오는거 아닐까요?

  2. 카사바 2018.12.03 19:39

    아, 기분 좋다!
    대통령님, 만세 🙌

  3. 뉴페이스 2018.12.03 21:29

    우리도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네이버 헤드라인을 보세요...
    그나저나 조응천 의원은 왜 저럴까요? 원래 박근혜의 사람이라서 그러나..

    • 늙은도령 2018.12.03 21:50 신고

      학교에서 시사문제와 이슈들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인간을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나쁜 의미의 합리성)에 사로잡힌 교육을 바로잡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김기춘과 함께 일했던 자입니다.
      더 말해 무엇할까요?

  4. merryjanet 2018.12.03 22:46

    청와대특별감찰반 비리 부풀리기하면서 조국 수석 거취까지 난리를 쳐대니 이재명 형수님의 인터뷰는 낮에 잠깐 종편에서 나왔다가 종적을 감춰버렸습니다.
    청와대 인사문제는 대통령 권한인데 민주당에서 설쳐대며 사과를 하는 것도 개인적으론 오히려 일을 키우나 싶어 못마땅했었는데
    조응천 따위가 나서서 조국 수석을 거론할 줄이야....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민정수석은 최소한 대통령과 3년 이상은 함께 가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께서 귀국하시면 결정하시고 아마도 대국민 담화 정도는 내놓으실거라 생각하지만....
    지상파 3사는 하나같이 대통령의 소통을 흠집내려고 신나서 떠들고 있는데, 요즘 많이 거슬렸던 JTBC 하나만 그에 대한 어떤 논평도 없이
    대통령께서 그에 대한 답변을 말씀하실거라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멘트 마무리가 모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하더군요.
    뭐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무례하기 짝이없는 기레기들을 1호기에 태워 동승해서 그 머나먼 순방을 하시는 문프가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같잖은 칠푼이 때는 쓰잘데기없는 키득거림에 질문 한마디 못하던 기레기들이 ㅉㅉ.
    조국 수석을 흔들어 내리려는 무지랭이들은 그 다음 순서로 대통령을 향하는 것들이기때문에
    절대로, 결코 조국 수석을 거론해서는 안될 것이라 믿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4 00:40 신고

      암요, 그래야지요.
      조국과 탁현민은 끝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이재명 덕분에 옥석이 가려지네요.
      최순실은 보수 진영을 박살냈다면 이재명은 진보 진영의 껍데기들을 걸러내는 효자 노릇을 해주네요.ㅋㅋ

 

박지원의 '이영자' 발언에 이어 이해찬의 청와대 저격 후 민주당 내외에서 조국 민정수석의 사퇴와 청와대의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과 김어준을 향하던 세간의 관심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을 노리는 이런 배은망덕한 공격의 이면에는 '노무현 흔들기'의 데자뷰라 할 수 있는 '문재인 흔들기'의 시퍼런 칼날이 자리하고 있다. 해서, 6년 전에 썼던 필자의 글을 이전의 블로그에서 가져와 수정없이 올리되 빨간 글씨로 조금만 보충했다. 그때의 판단이 지금에도 유효한 현실이 참으로 지랄맞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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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의 대선 가도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른바 조중동문(경향도 포함)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서 대역 죄인으로 몰렸던 친노 인사 9명이 문재인 캠프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논란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을 하자면 피할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경향신문과 한겨레까지 들고나온 그 논지의 불투명함과 불명확성에 대해 이번 글에선 구태여 논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정권이 바뀌어 참여정부의 5년이 어떻게 이 땅의 기득권과 좌우의 특권층에 의해서 좌절됐는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무슨 준비를 해놓고 갔는지 밝혀진다면 이에 대한 논란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노라는 낙인이 찍히면 각자의 정치역로까지 남들에 의해서 제지받아야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정치 환경이요, 정말로 그들의 퇴출이 국민 대다수의 뜻이라면 친노 인사 9인의 사퇴와 백의종군은 그 나름의 의미를 충분히했다.

 

 

 

 

헌데도 민주통합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면, 결국 이-박 단합이라는 구태정치의 전형(대체 그 단합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별로 없지만)을 보여준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책임이 막중하다 하겠다. 마치 미래가 박탈당한 듯 말하는 젊은 세대들의 분노가 일정 또는 상당 부분 사실이라면, 그들의 표가 있어야 정권을 교체해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5년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이-박 단합이라는 구태정치의 원죄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2선 후퇴는 시대적 명령이라 할 수 있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바친 부모 세대의 다수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면 그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듯이, 미래를 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주장에도 같은 의미 이의를 달 수 없다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자리한 두 사람의 2선 후퇴는 지극히 당연한 정치적 요구라 할 수 있으리라. 필자는 국민의 다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이 현재의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역사적 인식과 민주주의적 소통 및 법치주의에 대해서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박근혜 후보와 승리를 위해서라면 노무현 대통령을 몇 번이라도 부관참시하겠다는 새누리당과의 일전에서 자신의 정치적 노하우와 역랑을 발휘할 공간은 충분히 많다.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부실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어떻던 간에 최종 득표수로써 당락이 결정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대승적 차원에서의 2선 퇴진은 더 큰 승리를 위한 작은 양보라 생각할 수 있다.

 

 

이 땅의 산업화(모든 국민의 피땀이 어려 있는 산업화는 박정희 한 명에게 집중되는 업적으로 치환될 수 없다)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 아니다. 그저 상당수 국민의 뜻이 그렇다면, 두 사람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제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노욕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막장 인생처럼 제멋대로 터져나오는 김재철 MBC 사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처럼, 대선의 방향을 박정희 시대까지 과거로 돌리는데 일조한 인물로 기록돼서야 그 간의 노력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어쩌면 두 사람에게 승리의 배당은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환희의 순간에도 함께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2선 후퇴가 구태 정치의 표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적 결단을 국민들이 잊지 않는 한 진정한 승자는 한 발 물러서는 희생의 모습에서 더 큰 승리를 이끌어낸 두 사람의 담대한 결단에 바쳐질 것이다. 시인은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 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너무나 이상적인 생각과 미국식 사고에 갇혀 있기만 할 뿐, 모든 면에서 준비 부족과 아마추어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와 그를 따르고 지원하고 꼬드기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양보를 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재집권이, 이 때문에 사이비 진보매체들마저 이-박 단합에 원죄를 묻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하고 강력한 반론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겠지만, 정치 인생의 막바지에서 대한민국 미래의 거대한 분기점과 전환의 중심 서 있는 두 사람의 정치적 결단을 강력하게 희망해 본다. 움추리지 않으면 도약할 수도 없듯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문제를 일으킨 감찰반 전원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 후 보다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하도록 만든 것은 문프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국 민정수석이 문제의 감찰반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던 데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자들이라면 문프가 귀국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정치적 동지애와 신뢰의 배포가 있어야 한다.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욕ㅡ결국은 문프를 향한 욕이 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차도살인지계ㅡ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의 맷집이 강하기만을 바란다. 두들겨 맞아야 할 때라면 원없이 맞아주는 것도 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으니 각 부처에서 파견된 문제의 공무원들을 조국 민정수석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결국 조국 민정수석은 문프가 귀국할 때까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문프가 귀국해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그들의 비리와 일탈의 전모를 파악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아야 한다. 문프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으니 우리는 조국과 청와대로 향하는 집중포화를 방어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를 이용해 이재명 일당이 이슈의 중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파로 사는 것, 참으로 피곤하고 힘들지만 간암 치료를 위해 입원할 때까지 집필을 잠시 미뤄둘 생각이다. 끽해야 1주일 정도니 출판 시점이 늦춰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도서구입비가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간암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형태의 자살만 생각하던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 어려움이야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하다. 집필도 문프의 성공에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이니 지금의 어려움은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문프가 조국 민정수석을 신임하는데, 문파인 내가 어떻게 그를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나기는 그치기 마련이고, 미세먼지까지 쓸어간 뒤의 하늘이란 청명함 그 자체일 것이다. 이번 논란도 그렇게 될 것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싸움에 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는 누군가? 천하제일 문파의 일원 아닌가? 허면 다른 무엇이 또 필요할 것인가?  

  1. Kheju 2018.12.03 08:23

    건강하세요^
    잘보고 있습니다
    문파로 산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3 14:20 신고

      이런 진통을 겪어야 진보 내에서도 부패한 자들을 골라낼 수 있어요.

  2. 카사바 2018.12.03 12:25

    선생님의 건강을 응원합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41>을 드디어 봤다.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그만의 음모론을 내세우는 김어준 총수답게 이재명 논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의도가 역력했지만, 그의 말이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김어준 교도라고 해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의 아전인수격 주장과 난삽한 해석이 난무했다. 수없이 많은 논리적 오류와 모순은 고사하고 억지춘향 같은 궤변들에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로 김어준 총수는 바닥을 드러내며 비틀거렸다. 

 

 

 

 

틀려도 그만인 그의 주장(예언과 음모론)처럼, 문재인 정부의 정권재창출을 무력화시키려는 작전세력들이 이재명 퇴출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파와 친문 사이트(특히 여성사이트)에 침투해 암약하고 있다고 해도(그럴 수도 있다), 모든 얘기가 기승전삼성으로 귀결되는 천편일률적 진부함이 수많은 오류와 궤변의 근원이라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김어준은 작전세력의 핵심을 일베 출신의 고급 댓글러라고 규정함으로써 댓글부대를 운영한 국정원과 삼성을 등치시키는 교활함을 보여주었으나,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양의 증거들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련 증거를 검증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어준 음모론의 전형이 반복됐다. 김어준의 음모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동기가 강한 사람이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합리적 의심은 고려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합리적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재명의 덫에 갇혀 횡설수설하는 김어준의 주장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김어준 특유의 음모론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촛불혁명 이후의 대한민국도 여전히 삼성의 손아귀에 장악돼있는 삼성공화국의 연장일 뿐이다.  

 

 

씹기만 해도 인기가 올라가는 이명박근혜의 활용성이 사라진 지금, 문재인 정부의 배후에서 대한민국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이란 존재는 김어준에게 무한대의 음모론을 제공해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인 것은 확실하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어떤 의혹을 받고 있건 간에 오로지 삼성만 씹고 욕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만능의 면죄부라도 되는 모양이다. 김어준에게 김용철 변호사의 책과 경험, 주진우의 추적 결과가 삼성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다른 재벌들도 비슷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성도 작은 기업에게 사기를 당하고 수십 조의 광고를 퍼붓고도 뒤통수를 맞는 기사에 노출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의 동생과 친구, 지인들이 삼성그룹의 임원교육을 받던 중에 겪었던 경험들만 풀어놓아도 김어준이 알고 있는 삼성이란 삼성 전체의 1%도 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다. 1%도 지나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대표로 재직 중인 필자의 친구를 제외하면 이건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임원들이 전체 임원의 90%에 이르는 현실을 고려하면 1%도 후하게 평가한 것일 수도 있다. 삼성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자들을 볼 때마다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김어준 총수의 얘기를 듣다 보면 전지전능한 수준에 올라있어야 하는 삼성이 왜 이렇게도 실족을 거듭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의 헤지펀드 중 최악으로 회자되는 엘리엇을 상대해야 하는 법무부도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무팀에 불과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ㅡ그의 주장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는 뒤에서 밝히겠다ㅡ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도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래서 탄핵을 당해도 모자랄 최악의 정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반문세력이 가장 만족해 할 참으로 자한당스러운 주장이다.

 

 

이런 역설을 인식하고 있을 김어준은 엘리엇을 상대해야 하는 법무부 공무원이 이재용을 변호하는 법무법인 태평양(필자의 친구가 파트너 변호사로 있는데 어떤 수준의 변호사가 법무부에 취직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출신이라는 미끼를 투척하는 것으로 피해갔지만, 그것이 그의 지식과 내공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말해준다. 김어준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8,000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온 엘리엇이 삼성과 짜고치는 고스톱을 벌이고 있다고 (스쳐가듯이) 말했는데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모든 것을 기승전삼성으로 연결시키는 김어준이라서 그런지, 엘리엇이 소송에서 승리해 8,000억원을 챙기려면 이재용의 유죄가 확정돼야 한다는 중학교 수준의 논리적 모순을 깨닫지 못한 채 문제(?)의 공무원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어떤 논리를 들어서든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와 문제의 공무원을 분리해야만 자신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용이 무죄를 받으면 엘리엇은 8,000억원은 고사하고 자신을 상대로 승리한 대한민국 정부에 재판비용을 토해내야 한다.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삼성과 엘리엇이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면 김어준의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이런 모순을 김어준이 인식하지 못한 것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음모론이 이재명이라는 존재로 해서 타이타닉호처럼 허무하게 좌초했음을 의미한다. 학원강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댓글공작의 추악함을 비판 논리의 근거로 확장해버린 모순과 오류의 음모론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태평양 출신이면 모두 다 삼성의 앞잡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김어준의 단순무식한 논리 전개는 문제의 공무원이 엘리엇을 상대하는 근거로 이재용을 석방한 정형식 판사의 판결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것에서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김어준은 문제의 공무원이 엘리엇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박영수 특검의 수사결과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맹비난했다. 이것도 논리적 모순에 해당하는데ㅡ자신의 음모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라를 말아먹을 위험천만한 주장이라는 것을 김어준은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ㅡ그것도 이중의 모순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기승전삼성으로 풀어가는 김어준의 다급한 처지와 지적 논리의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첫 번째 논리적 모순은 사법부가 결정할 이재용 재판과는 상관없이 엘리엇을 상대로 승리해야 하는 문제의 법무부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정형식 판사의 판결과 비슷한 논리를 펼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재용이 유죄라는 논리를 펴면 최소 8,000원을 엘리엇에 지불해야 하며, 문재이 대통령이 법무부를 통해 대법원의 판결에 압력을 가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민주공화국 핵심 규범이자 헌법적 가치인 삼권분립을 위반하는 초법적 행태다.

 

 

아무리 삼성이 밉기로서니 거대한 제조업체를 인수해 수익이 나는 부분과 부실을 내는 부분을 분리해 판매(대규모 해고가 선행된다)함으로써 수백억에서 수천억, 삼성의 경우에는 수조에서 수십조의 이익을 거둬가려는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에게 국민의 혈세를 지불할 수 없는 일이다. 대법원에서 이재용의 혐의에 대해 최종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문제의 공무원은 엘리엇과의 소송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 확인할 수 없지만 법무부가 그를 교용한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소송에서 패했을 경우 국민연금으로부터 8,000억원을 인출해 엘리엇에 배상해야 하는 문제의 공무원으로써는 정형식 판사의 판결에서라도 대응논리를 가져와야 한다. 아니, 현재까지 오직 그것만이 법적 효력을 갖는 공적 판단이라 그것을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재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국민연금의 돈을 지키기 위함이다.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인 법무부는 정부의 연속성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싸질러놓은 똥을 치움에 있어 국민에게 돌아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엘리엇과의 소송을 담당하는 문제의 법무부 공무원 입장에서는,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로써는 이재용과의 재판을 담당하는 박영수 특검팀과는 달리 정형식 판사의 터무니없는 법리해석이라도 끌어와 승리해야 한다. 엘리엇과의 소송에서 패하면 다른 헤지펀드들도 추가 소송에 나설 것이고, 삼성을 넘어 다른 재벌들로 전쟁을 확산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주장은 삼성을 죽이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재벌들도 죽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몰락으로 귀결될 최악의 주장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김어준의 음모론은 이재명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대한민국이 망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이재용의 유죄를 이끌어내는 것은 박영수 특검팀의 역할이지 문제의 공무원에게 주어진 역할도 아니다. 얼핏 보면 둘은 하나의 사안 같지만 조금만 신경 써 들여다 보면 별개의 사안임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기업 내에서도 부서마다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처럼 법무부라고 해서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제대로 된 조직 생활을 해보지 않은 입진보들의 무지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공통점을 김어준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못한 것이 <다스뵈이다 41>의 본질이다.

 

 

모든 것을 기승전삼성으로 치환하는 김어준이라서 이런 단순한 논리의 오류조차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풀어가야 이재명을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파악하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법무부로써는 엘리엇과의 소송에서 패하면 비슷한 소송들이 줄을 이을 터, 국민연금이 토해내야 하는, 최종적으로는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마련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손실분을 채워야 하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무조건 막아야 하는데, 모든 것을 기승전삼성으로 몰고가야 하는 김어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두 번째 논리적 모순과 오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문파와 친문사이트 내에 침투해 문재인 정부의 정권재창출을 무산시키라는 명령을 하달 받은 작전세력의 배후가 삼성이어야 하는 김어준의 입장에서는 법무부와 문제의 공무원을 별개의 존재로 분리키는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 그럴 때만이 자신의 음모론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공무원을 채용한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 소속이라는 점이 부각되면 자신의 주장이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것이 되니, 문재인 정부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자신의 입장이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재명의 퇴출을 막지 못하면 자신의 커리어도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원래부터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했지만 때를 잘만난 행운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그가 취할 수 있었던 어마어마한 전리품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무리수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다스뵈이다 41>은 김어준과 이재명의 동시몰락을 암시하는 전주곡 같았다. 희대의 사기꾼 이재명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삼성을 끌어들였지만, 시대를 역류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사실을 악착같이 외면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김어준 총수로서는. 

 

 

어쩌면 김어준은 이재명을 지키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재명이 무너지면 자신을 향할 대중과 검경의 칼날(삼성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불투명한 회계와 어떻게든 정봉주를 쉴드쳐야 했던 것 등등등)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필자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김어준 총수가 왜 이토록 이재명에게 목을 매는 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4개월 만에 시청한 <다스뵈이다 41>에서 필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권력과 대중의 사랑에 취한 김어준 총수의 음모론이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애초부터 이재용을 압박해 삼성을 착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수조 원에 이를 수도 있는 국부 유출을 막는 일은 김어준 총수의 능력 밖에 있었다. 그 동안 누렸던 것만으로도 김어준 총수는 고마워하고 만족해야 한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김어준 총수가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과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을 끝내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정이었기 때문이다.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나꼼수 멤버는 그들의 힘과 열정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다. 팟캐스트의 가능성을 눈치 챈 영민함과 촛불혁명에 일조한 것까지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꼼수가 한국정치에 미친 영향에도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권력을 비판하는 것으로 또 다른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김어준의 행태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 동안 누렸던 영광과 찬사가 컸던 만큼 추락의 아픔도 크겠지만 그렇게라도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김어준 총수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김어준 총수를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 줄어들었다고 해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도 있다. 미래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재기의 역사를 만들 수도 있으리라. 미래세대가 물려받을 대한민국과 재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 땅의 진보 진영에는 재앙 같은 일이겠지만.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김어준 총수가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재명 바이러스에 감염된 김어준에게 기승전삼성은 어떤 백신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해서,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제목을 빌려 김어준 총수에게 말하고자 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다만, 공지영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 유명해졌으며,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까지 더할 필요는 없으리라, 김어준 교주의 성도들이 아직도 상당하기에. 이재명 교주의 성도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김어준 총수는 〈다스뵈이다 41〉를 티핑포인트로 해서 넘지 말아야 선을 넘어버렸다. 《닥치고 정치》를 통한 과거 세탁이 말짱도루묵이 됐다.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미련마저 사라져버렸다. 끝으로 하나만 묻자, 김어준 총수에게. 대체 이재명과 어떻게 얽혀있기에 이런 무리수와 자충수를 남발하는 것이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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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버벅도사 2018.12.02 18:13

    이명박근혜 깔땐 팩트고 뭐고 쫄지마! X발 하며 밀더니 이제와선 무논리 망상이라며 까네. 어휴 좌파하면 인생 편히 사네

  3. 자한당알바들꺼져 2018.12.03 03:25

    얼마 받고 이런 글 쓰시나요?

    • 웃지요 2018.12.03 04:18

      반박이 안되니 침착하게 부들대는 걸로 보이는 군요.
      (주인장에게는 남의 집에 와서 이런 댓글 달아서 죄송합니다.)

    • 늙은도령 2018.12.03 14:24 신고

      하루에 1조원 받는다, 왜?
      적냐?
      그러면 하루에 10조원 받는다고 하자.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이 흐려지고 있는 거야.

  4. merryjanet 2018.12.03 11:57

    어디든 다 쑤시고 다니며 오염균 퍼뜨리는 이재명 맹종신도들이 여기까지...
    다~ 차치하고라도, 아무리 못배워먹은 천출이라하더라도 글을 배우고 최소의 도덕을 알아들었다면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평생 들어도 볼 수 없는 저질쌍욕을 그것도 친형수와 형님에게 쏟아붓고
    심지어 어린 조카들에게까지 협박질 서슴지 않았으니... 인간 탈만 썼지 짐승도 그렇진 않아요.
    그런 짐승만도 못한 걸 맹종 추종한다니...
    숨만 쉬면 거짓말인 그 공갈부부를 감싸지 못해 '작전세력'이니 '삼바'니로 호도하려 억지부렸던 털어준.
    솔직히 일말의 애착도 없지만, 어쩌면 많이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손절한다면 명맥은 유지할 수도 있으련만....
    뭐 본인의 선택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끔찍한 연줄때문에 저러는건지 참 궁색하더군요.
    이쯤되면 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수는 없을 거 같은데, 민주당 지도부도 기소당하고 나면 더 물고 늘어질 핑계도 없겠죠.
    어서빨리 그 흉칙한 이름 '이재명'이 사라길 기다립니다.

    • 늙은도령 2018.12.03 14:23 신고

      네, 빨리 사라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재명과 김어준 두 명이 나라를 이상하게 만들고 있어요,

  5. 반어준 2018.12.03 17:11

    이번주도 꼭 봐야겠네요. 깜빡 잊고 있었는데. 홍보감사요.

    • 카사바 2018.12.05 15:43

      님도 참, 이글이 어떻게 김어준 홍보글입니까? 남의 집에 왔으면 예의를 갖춰서 반박해 보시든지!

  6. 영구땡칠 2018.12.05 23:47

    문정부에 조금만 비판적이면
    김어준도 손석희도 이해찬도
    김제동도 그리고 그누구도
    까버리는 광문들..
    박사모하고 뭐가 다르나?
    노통에 비극에서도 교훈을 못얻은
    당신들이 문통도 사지로 몰것이다.

    • 아테나 2018.12.06 16:17

      노통을 괴롭힌 게 보수언론과 야당 뿐이었나요? 진보를 자처하는 한경오를 비롯해서 여당의 탄돌이 의원들, 진보 지식인들이 너도 나도 정부에 훈수질하며 깝치는 통에 노대통령 정말 힘들어하셨습니다.

      그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긴 사람들이 문파입니다.이념이나 진영에 구애받지 않고, 상식에 근거해서 그 누구든 잘못하면 까고 잘하면 바로 칭찬합니다. 기준은 문프입니다.

      그리고...
      노통의 비극에서 당신이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 급 궁금하네요.

    • 늙은도령 2018.12.07 16:29 신고

      이재명과 관련된 것이지.
      주제를 돌리지 말아야죠.
      하여간에 니들은 꼭 그래요, 이재명스러운 것이.

  7. 노안거중 2018.12.06 16:39

    옳쏘 김어준 교주는 이재명 짝짝꿍 해라

  8. 오명숙 2018.12.09 16:10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깨닭을수있는 판단력과 분별럭을
    가진. 문파들이 자랑스럽다

  9. 트트레이 2018.12.11 16:43

    덕분에 다스뵈이다 41 잘 듣고 왔습니다 ㅎㅎ 김어준 말이 충분히 합리적으로 들리던데 ㅋㅋ 다들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데서 망조가 시작되죠~ ㅋㅋㅋ

    • 늙은도령 2018.12.13 18:59 신고

      정의도 수십 가지가 넘고요.
      최소 정의를 애기하고 싶다면 롤스, 드워킨, 벌린, 노직 등은 보시고 얘기해요.
      대단히 무식해 보이니까.

  10. 쩜도령 2019.02.05 02:26

    늙은도령이라 뇌도 늙으셨나
    주절주절 길게도 써놨네
    정신좀 차립쇼 아재요
    이나라 망치는건 당신 같은 사람이니까

  11. 장관 2019.02.05 06:36

    그런데 지나고 나면 김어준이 한얘기가 거의 맞아들어가는데 어쩌지?

  12. 삼성본질은? 2019.02.05 07:52

    다른건 모르겠고 삼성불법승계와 국민연금이 이를 동조한건? 아직 사실이 아닌건가? 세금탈루하려고 한건 아닌가? 그것에 대한 답도 있어야

  13. 조까 2019.02.05 09:01

    그동안 김어준이 한말들 나중에 보면 거의가 맞던대?
    삼성알바이신가?
    착하게 사세요~

  14. 신성남 2019.02.05 10:23

    당신이 자한당의 재건에 일조 하는것은 분명해 보이는구려

  15. 단두대가 필요하다 2019.02.05 10:34

    어디서 약을팔고있어?

    삼바가 분식회계로 사기친것도 쉴드쳐봐라!

    카~~~~악. 툇!!

  16. 꺼져라 2019.02.05 10:39

    어주니가 미워 죽겠지?
    지식과 글재주를 이렇게 나쁘게 쓰는 사람들 때매 우리나라가 이 오냥 이꼬라지가 됐지~~
    그래서 기레기라고 하는거지..

  17. 삼성 2019.02.05 10:48

    기레기양반 새해 삼성복 마이 받으세요

  18. 삼성씨팟ㄴ 2019.02.16 22:44

    그래요 삼성이 당신에겐 물주지요

  19. 비겁한 트친 찾기 2019.03.11 00:58

    비겁한ㅋㅋㅋㅋ트윗에서 불리하니 동지 다 버리고 떠났엌ㅋㅋㅋㅋㅋ비열한 줄 모르고 한때나마 트친이었던게ㅋㅋ김어준을 논평할 주제도 않되는 것들이 입만 살았짘ㅋㅋ김어준을 논하기전에 스스로의 행동을 보자ㅋㅋㅋ본인의 비겁한 밑바닥을 보시옼ㅋㅋ

  20. 비겁한 트친 찾기 2019.03.11 01:04

    한때나마 속았는데.1년을 쭉 돌이켜보니, 김어준총수만한 스피커는 없다는 걸 알게 됨. 이 글을 쓴 사람을 트친으로 좀 알았는뎈ㅋㅋㅋ할말은 많지만 하지않겠ㅋㅋㅋ아 트친님. 바쁜 일 정리되면 돌아오신다더니,ㅋㅋㅋ상황이 불리해보이니, 도망친건 아니죸ㅋㅋ남을 조리돌림하고 비난할땐 신이 났는데, 혹시 본인이 당할까 겁이나서 도망ㅋㅋㅋ????

  21. 범블 2019.05.18 01:57

    이렇게 길게 쓰면 누가 읽냐?

 

인간이 테크놀로지를 만들면, 그 다음에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만든다.

                                                                                                                     ㅡ 닐 포스트만이 《테크노폴리》에서 인용

 

 

테크놀로지는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하면서 우리를 구속한다.

                                                                                                              ㅡ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 인용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에서 20대 남성의 이탈이 심화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 세대이자 밀레니엄 세대로 대표되는 이들의 이탈에는 '급진화된 페미니즘으로 인해 20대 여성에 대한 20대 남성의 구조적 역차별'이라는 (정당성은 떨어지지만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공통의 피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숫자가 가장 많아 경쟁이 제법 심했지만, 산업자본주의 전성시대와 함께 했기 때문에 취직의 어려움을 겪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인 이들의 피해의식은, 부모세대 다음으로 숫자가 많음에도 기술 발전의 결과인 일자리 급감과 청년실업의 증가, 제조업에서 지식·첨단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노동 내용의 변화, 신자유주의 득세에 따른 무한경쟁, 세습자본주의의 등장에 따른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및 사회이동성의 파괴, 성평등을 위한 여성 배려 정책, 군대라는 피할 수 없는 의무(가산점마저 폐지됐다) 등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피해의식과 반발의 정서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여기에 가부장적이며 남성우월적 사회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들과 기성언론(특히 진보매체)이 다양한 종류의 페미니즘을 성평등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로 생각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적 신성함을 부여한 목적론적 접근(목표한 것을 달성할 때까지 타협을 하지 않는)이 더해지면서 이들의 피해의식은 분노와 여성혐오, 성폭력 등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대학로 집회와 '이수역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대결의 극한대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을 넘어 이를 이용해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표퓰리스트의 득세와 증오범죄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모든 대륙과 모든 수준의 국가에서 표퓰리즘 정치가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지경까지 내모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처럼 대중의 중오와 분노, 혐오, 차별을 먹이감으로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 선동가의 득세를 견인하고 있다.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의 양자 대결로 녹여낼 수 없는 이런 정치·사회·문화적 환경의 대격변은 세대간 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더하여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퀴어 축제'에서 보듯이 페미니즘의 울타리 안에 최대한의 여성들과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들(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표현함에 있어 대단히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일지언정 정치적으로는 강자에 속한다)을 끌어들임으로써 인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의 가치를 숫적 대결이라는 정치사회적 권력투쟁으로 치환시켜 버렸다. 이런 행태는 3040세대 남성의 이탈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인류의 진화가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했다는 과학적 사실(직립보행을 하면서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심해졌으며 오랜 기간의 육아와 50년 이상 계속되는 월경과 뒤이은 폐경까지)마저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슬픈 역설까지 초래하고 있다.

 

 

(KBS의 '심야토론'에 나와 퀴어 축제와 성소수자를 지지하며, 이성애자와 기독교인의 우려를 표명한 상대 패널을 경멸하는 표정과 과격한 언어, 확정되지 않은 과학적 사실로 공격한 진중권과 금태섭 같은 입진보와 민주당 의원이 남녀의 성대결을 더욱 부추겨 20대 남성의 분노를 자극해 이탈을 가속화시킨다. 금태섭은 동성애 성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했는데,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생물학자가 특정 지역의 유의미한 숫자의 게이들을 살펴본 결과 그들 대부분에서 특정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유전자가 동성애 성향을 발현시킨다는 의미에서 '게이 유전자'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후속연구와 임상실험으로 확정되지 않아 과학적 사실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다.)  

 

 

(부시의 브레인으로써 합리적 보수주의자에 속하는) 데이비드 프롬의 《트럼프공화국》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괴롭힘과 수치를 당했다고 느꼈다. 여기에는 나이 든 백인 남성뿐만 아니라 젊은 백인 남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목부터 신랄한 연극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에는 '당신 존재 자체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트럼프에 표를 행사한 유권자들 10만 명 중 한 사람도 이런 연극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인용한 메시지는 크고 분명하게 회자되었으며 미국의 광범위한 문화적 정신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울려퍼졌다." 

 

 

상당히 과장됐고 편향된 주장에 불과하지만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이란 존재가 유일제국이자 기축통화국으로 성장한 미국의 주류이자 표준이었는데 이제는 낡고 무지하고 고집스러워 시대에 뒤떨어지고 도태되는 사람들의 표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들은 극우언론인 폭스 뉴스를 시청하지는 않지만, 폭스 뉴스가 전하는 분노, 유리됨, 수치의 메시지를 케이블이 아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해 접함에 따라 트위터에서 미국 백인 국수주의자 계정의 팔로우 숫자가 2012~2016년 사이에 무려 600%나 증가'했다. 집단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들의 분노가 온라인의 급진화와 폭력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6년 대선 당일 오전, 시얀다 무훗시와는 '온라인의 급진화에 대해 논의할 때 사람들은 늘 무슬림을 언급하지만 온라인에서 백인 남성의 급진화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는 이어 "바로 이 때문에 나는 클린턴이 트럼프의 성차별주의를 파고든 전략을 절대 지지할 수 없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문제의 성차별주의 때문이다. 인터넷 집단은 성적 좌절감을 편견으로 급진화시켰다. 온라인 인구 집단은 가장 취약한 상태의 젊은 백인 남성을 찾아내서 진보가 서구 백인의 남성성을 파괴하기 위해 결집하고 있다고 꼬드겼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트럼프의 당선 뒤에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의 좌절과 절망, 분노를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변화의 급진화가 숨어있었다.

 

 

프럼의 《트럼프공화국》은 표퓰리즘 득세의 위험성을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서술했지만, 책의 제10장 <분노>를 보면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 자신이 서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여성 유권자들이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 서민 여성들의 삶도 개선된다'는 '페미니즘의 낙수효과'를 믿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표를 주었다. 트럼프 지지자는 대졸 이하의 백인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상류층·고학력이 주도하는 페미니즘의 약속를 믿지 않는 중하위층 여성 지지자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탄핵은커녕 트럼프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진 이유도 이들(샤이트럼프 유권자)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 때문이며, 트럼프가 진보적인 엘리트 여성과 여배우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상당히 줄였지만 완전히 멈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데는 셰일가스의 저렴한 공급에 따른 낮은 물가와 전기료,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높아진 산업경쟁력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한 차원 깊이 파고들어가면 이런 사회문화적 변화의 급진화와 이런 변화를 강화시킨 디지털 기술의 폭주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와 여자형제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패륜적인 사진을 올리고, 세월호 희생자를 어묵에 비유하는 상식의 차원에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일베의 등장과 득세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반인륜적이라고 해도 있을 법한 일이었고, 실제 그렇게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대 남성의 일부가 보수화를 넘어 극우화하는 이유도 일베에 이은 메갈과 불꽃 페미의 등장과 득세와 궤를 같이 한다.  

 

 

여성 혐오와 증오, 차별과 폭력의 상징처럼 자리한 일베의 반인륜적인 행태(특히 여성 비하, 혐오, 차별, 폭력 등)에 분노해 그들의 언어와 수법을 미러링하는 방식으로 통쾌한 반격을 가했지만, 그러다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과 상당히 닮아버렸다. 일베처럼 극우화된 그들은 일베와의 전쟁을 모든 남성을 향한 극한 성대결로 확장시켰는데,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했고 '불꽃 페미'의 주장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의 대응에 실망하고 분노한 20대 남성의 이탈(양적으로 보면 지지율 하락의 변수가 될 정도는 아니다)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진심어린 반성도, 의미있는 변화와 혁신도 보여주지 못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박근혜 탄핵 직전의 수준까지 올라온 것도 이런 현상들이 결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어부지리이자 반작용이다. 이명박근혜 9년의 퇴행과 역주행을 부끄뤄워했던 샤이박근혜 지지자와 수구보수들이 소리를 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여성을 유별나게 우대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20대 남성을 위한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서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가 20대 남성을 위한 좋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으며, 의미있는 결과들도 있고, 1년 정도만 더 지나면 피부에 와닿는 결과들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 20대들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이유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느낀 실망과 좌절, 불만이 분노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고, 증오와 혐오의 표출이라는 극단적인 성대결로 치달으면서 분노하고 좌절한 20대 남성들이 여성의 군복무도 의무화하자는 터무니없고 비이성적인, 그러나 그들 나름으로는 너무나 절박하고 현실적인 주장을 내놓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20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극한 성대결이 폭발 직전의 용암처럼 들끓음에 따라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 선동가들이 기성정치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발표 자료에서 인용

 

 

이런 역주행과 퇴행의 성대결은 인터넷과 팟캐스트, 커뮤너티, 소셜미디어, 유튜브의 1인방송 등에서 쏟아져나오는 걸러지지 않는 '바이러스성 콘텐츠'(차별과 혐오, 분열과 폭력을 조장하는 루머, 혐오 발언, 음모론, 가짜뉴스 등)가 20대 남성에게 확증 편향과 동조화 확증 편향을 불러오면서 민주적 토론마저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주장과 견해를 지닌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 편향된 글과 정보, 가짜뉴스, 루머 등에 노출되면서 잘못된 인식이 더욱 강해지는 확증 편향의 반향실 효과와 필터 버블(이용자의 성향, 기호, 기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검색해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인식을 강화하는 확증 편향의 현상을 말함)은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에서도 기승을 부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르렀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규제받지 않기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은 물론 극우와 극좌, 인종차별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문화적 급진주의자 등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파멸시키는 특정 세력이나 인물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디지털 기술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만들고 승자독식의 수익을 취하는 IT기업은 경제대침체를 초래한 금융업체와 구조와 수익, 조직문화, 가치관 등에서 대단히 유사한데 이들이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기술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필자의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의 전성시대에 태어나 자란 20대와 밀레니엄 세대들은 가치 판단의 기준에 (미셸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처음으로 정식화했고 웬디 브라운이 《민주주의 살해하기》에서 수정·보완했으며, 조지 리치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로 풀어냈으며, 나오미 클라인이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과 《쇼크독트린》, 《NO로는 부족하다》를 통해 고발한)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디지털 기술의 특성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무의식과 같아서 삶의 모든 단계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릴 때 본인도 모르는 편향적 현실인식에 휘둘리고,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이성적 결과를 양산하고 있지만 이런 병리적 현상에 주목하는 지식인과 학자는 거의 없다. 디지털 기술(게임과 도촬영상, 몰카 등)에 중독된 20대에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우울증과 조증 같은 정신질환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지만 정치경제적 이유로 통합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닐 포스트만이 《죽도록 즐기기》에서 텔레비전의 기술적 특성을 파헤친 것에 이어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을 다루었던 것처럼 디지털 기술에 내재된 본질적 특성을 파악해야만 극단적인 성대결을 막고 표퓰리즘의 득세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세계경제를 장기대침체에 빠뜨린 서브프라임모기지 광란과 금융붕괴도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기술(대부분의 학자와 지식인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장기대침체의 원인 중 하나는 〈전망이론〉의 대니얼 카너먼, 《야성적 충동》의 로버트 실러,《인간행동의 경제학적 접근》의 게리 베커, 《괴짜경제학》의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 등으로 대표되는 행동경제학과 그 아류인 법경제학이다. 이전의 경제학을 대체해버린 두 개의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적 선택을 넘어 모든 행동까지 행태심리학적 분석과 법적 해석에 기초해 경제적 동기와 이익 추구 행위로 환원시킬 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은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득세에 일조했다. 행동경제학과 법경제학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이 만나 발생시킨 인류사적 사건으로 전 세계적으로 표퓰리즘이 득세하는 근원이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1929년의 경제대공황보다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상위 1%의 탐욕에 날개를 달아준 대신 하위 90%에는 지옥을 선사해주었다. 약 8,000억 달러의 공적자금과 1경 4천조에 달하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퍼부어 겨우 이루어낸 금융위기 회복의 혜택도 상위 1%에 집중됐을 뿐, 하위 90%에게는 한 줄기 빛도 비춰주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의 중산층 가정이 무너졌고 수억 명의 하층민이 빈곤층으로 떨어짐에 따라 부와 기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란 사다리를 모조리 부러뜨린 세습자본주의의 고착화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종 결과라 할 수 있다.     

 

 

구좌파에 가까운 정치학자이자 신자유주의 전문가로써 상당히 날카로운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토마스 프랭크가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금기처럼 여겨졌던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도 모든 책임을 보수우파에 돌릴 수 없음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진보 정치인과 같은 미국의 자유주의 정치인과 대통령들이 금융산업과 IT기업의 폭주와 광기를 막을 수 있는 모든 규제들을 풀어주고, 얼마남지 않은 제조업 기반마저 붕괴시키는 바람에 부시의 '미국과 세계경제 말아먹기'가 가능했다는 진보지식인의 뼈아픈 자기반성은 현재의 묵시론적 상황이 진영과 이념적 접근, 극단적 성대결로는 풀 수 없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20대와 밀레니엄 세대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터넷처럼 인터랙티브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에게 서비스 사용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명예훼손이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로부터 보호'(캐스 선스타인의 《루머》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를 참조)하는 미국의 '통신품격법 230조'에 의해 우주적 차원의 이익을 독식하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구글과 페이스북, 거대 포탈 등처럼 초국적 플랫폼 기업에도 실질적 차원에서 규제가 부과돼야 한다(이들이 조세도피처로 빼돌리고 있는 천문학적인 이익에도 징벌적 과세가 부과돼야 한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로스차일드계 금융업체 등처럼 월가와 런던의 금융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초국적 금융기업은 물론 애플과 월마트, 나이키 등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는 초국적 플랫폼 기업들에게 그들이 거두는 천문학적 차원의 수익에 준하는 정치·경제·사회적 책임을 부과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우주적 크기로 불어나고 있는 빅데이터(이를 유지하고 늘려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전기가 필요할 텐데,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그 많은 전기를 어떻게 확보할 생각인가? 폐쇄되고 있는 원전을 새로 지을 것인가?)와 뇌의 신경망을 본뜬 머신 러닝처럼 자기학습 알고리즘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하기 전에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저격하고 폄하하는 가짜뉴스와 악의적인 루머의 온상이 어디인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재명 같은 표퓰리스트 선동가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처럼 반민주적인 수구꼴통을 감싸고 도는 글과 사진, 영상이 넘쳐나는 곳들이 어디인지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것만이 아니다, 이 땅의 여성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현실을 강요하는 수없이 많은 리벤지 포르노나 도촬 영상들이 난무하는 것도 스마트폰이나 초소형카메라 등처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제품의 발전과 그것이 쏟아내는 악성 콘텐츠를 유통시킴으로써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리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여기에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가세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커즈와일이 주장하는 2,045년에 특이점을 돌파하던 돌파하지 못하던 우주적 차원으로 축적되고 있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특이점 주변에 이르기만 해도 현재의 성대결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몰고가는 것은 식은죽 먹기에 다름아니다. 2,045년 논란을 무시한다 해도 그런 세상을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고 모골이 송연한 전율이 일 정도로 공포스럽기만 하다(마이클 테너슨의 《인간 이후》와 닉 보스트롬의 《슈퍼인텔리젼스》를 참조하라)!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생명을 다한 것으로 보였던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이런 플랫폼 기업들의 간접적 지원하에 다양한 종류의 표퓰리스트에 의해 부활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정보통신기술과 나노공학, 유전공학, 뇌과학 등을 포함해 첨단과학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인류의 삶에 유익한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숙되지 못한 남성들의 성범죄 가능성을 폭증시키고, 온갖 종류의 분열과 차별을 조장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극단화를 심화시키는 디지털 기술에 내포된 본질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이며, 그것도 밀레니엄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기 전에 이루어저야 한다.

 

 

더 짧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름할 22대 총선이 실시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서 이탈하고 있는 20대(남성이 주를 이루지만 여성도 늘어나는 추세)를 되돌아오게 하려면 밀레니엄 세대(인류 역사상 섹스의 빈도가 가장 많이 줄어든 최초의 젊은 세대. 그들의 좌절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답이 없는 이유의 일부도 이것에서 기인한다)의 좌절에 대한 사회심리학적이고 진화심리학적인 분석과 사회문화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정치경제적 분석과 접근도 중요하지만 20대의 이탈과 극우화의 기저에 자리한 파국의 징후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인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을 나쁘고 과격한 어떤 것으로 만들고 있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20대 남성만이 아니라, 다른 세대의 남성 일부와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주장과 투쟁방식에 고민해야 한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모든 세대의 여성과 모든 시대의 여성으로 확대해서 투쟁의 동력과 정당성으로 삼는 것은 지독한 난센스이자 월권이며, 백번 양보한다 해도 역사적 사실도 아니다(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루겠다).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양성평등 증진에는 찬성하고 힘을 실어주지만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투쟁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성의 위대함이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고 존경하게 만드는 원천이며, 태초의 순간부터 그러했듯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여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불행해진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현대과학이 아무리 황홀하고 유토피아적인 미래상을 제시한다 해도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지구를 풍료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성의 선택과 행복에 달려 있다.

 

 

'불꽃 페미'로 대표되는 페미니스트들이 이에 반대하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간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는 그들의 권리이지만, 보다 많은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작금의 20대 남성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동시에 디지털 기술 폭주에 따른 여성의 사회진출 활성화 이면에 자리한 신자유주의 통치술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돈 되는 것이면 어떤 아이디어도 받아들이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신자유주의 이성은 여성 취업을 늘리는 것이 이익 극대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들은 싸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그 이상의 이익과 필요성이 사라지면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내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페미니즘 활동가나 지식인들이 내세우는 '페미니즘의 낙수효과'에 대해서도 근본적이고 반성적인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고학력 페미니스트들은 민간기업과 공기업 등에서 여성이 고위임원이나 경영진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유리천장'을 비판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제정된 '남녀동수법'은 고위임원이나 경영진의 성비를 '50대 50'으로 만들도록 강제한다.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며 패배감만 강화시킨다.

 

 

헌데 고학력 여성들이 민간기업과 공기업에서 여성이 '유리천장'이란 금녀의 벽을 뚫고 고위임원이나 경영진에 오른다 해서 그런 기업에 취업조차 못하는 저학력·서민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의 낙수효과'란 고학력 여성들이 그들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이용해 먹는 명분 정도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기회와 신분의 차이가 서민 여성들이 급진적 페미니스트에 동의하지 않고, 심지어는 여서 혐오와 차별을 떠벌리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기까지 한다. 남녀동수법은 자신과 같은 서민 여성에게는 역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활동가나 지식인들은 세대결로 가는 급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20대 남성을 넘어 남성 전체와 계속해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인구구조상 앞선 세대의 착취에 무방비로 놓일 10여 년 이후의 현실에 대항해 연대를 이룰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역전된 인구구조를 다룬 수많은 책들과는 달리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게 고령화 문제를 다룬ㅡ책의 주제는 세계에 관심을 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유일제국으로써의 미국 전성시대가 다시 온다는 것을 자랑하고 떠벌리는 것이다ㅡ피터 자이만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을 보면 앞세대의 부양자 역할에 허덕이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20대의 연대는 필수사항이지 선택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2025~30년부터 본격화될 20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노령인구 부양은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혹은 어찌어찌해서  저출산 추세가 역전돼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평균적으로 60년이 지나야 청년세대의 과잉부양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 상호부정에서 촉발된 성대결로 20대의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며 자기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의사와 과학자, 엔지니어 등처럼 남자 선배와 상사로부터 다양한 노하우와 지도를 받아야 하는 분야의 여성들은 극단화된 성대결(펜스룰 같은 것이 은연 중에 일어난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많은 것들이 충돌하는 지점들이 예상외로 많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온오프라인을 뒤덮은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래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을 공약하고 실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하락시키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타협없는 폭주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역풍을 여성들에게 돌려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기만 하다. 메갈과 불꽃 페미 등의 극한적 투쟁이 지속될 경우 급진적 페미니즘이 역풍을 맞을 임계점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후들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이런 역풍인데, 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춰서 성대결로 비화된 현재의 권력투쟁을 냉정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인류가 손을 자유롭게 하고 소통의 수단으로 말과 언어를 사용하는 뇌의 발달을 핵심으로 하는 진화를 선택했을 때부터(창조론으로 보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부터) 자의던 타의던 남성은 여성에게 수많은 피해를 입혀왔지만, 1부1처의 가부장제를 강요한 산업혁명 이래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자식세대인 작금의 20대와 밀레니엄 세대(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더 짧게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자식세대가 수없이 많았다)는 수많은 여성들에 못지않은 시대와 체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0대 남성과 밀레니엄 세대도 분노하고 아우성칠 만큼 인류문명사의 명백한 피해자다, 일베까지 치닫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 앞에 놓인 수많은 멸종 시나리오를 최소화하려면 생명의 원천을 보호하는 동시에 양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인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이 성공해야 한다(라캉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상당 부분 수용한 《젠더 트러블》의 주디스 버틀러로 대표되는 '프랑스 페미니즘'의 득세는 양성평등을 위한 인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을 고학력 엘리트의 전유물로 만들어버렸다. 그 때문에 '페미니즘 낙수효과'를 단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저학력·저임금 여성들로부터 유리되는 역주행에 빠져버렸다. 90년대의 어느 날 프랑스식 포스트모더니즘에 포획된 페미니즘이 남녀의 극한 성대결을 부추기는 나쁜 이데올로기로 집중포화를 받은 것도 지독하게 어려운 단어와 문장 때문에 대중화가 불가능한 '프랑스 페미니즘'의 득세와 무관하지 않다.

 

 

고도화된 문명일수록 엔피로피의 역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지속적인 생명의 창조와 조화로운 관계만이 이를 늦추거나 극복할 수 있다(맥스 테그마크의 《Life 3.0》을 참조. 이것을 다룬 책들은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지치고 다치며 아프고 병 드는 단백질 위주의 육체를 버리고 디지털장치에 저장된 정신적 존재로 우주로 나가자는 현대 과학자들의 미친 헛소리도 인류의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엔트로피의 역습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당화되기 일쑤다(미치오 카쿠의 《미래의 물리학》과 《마음의 미래》, 브라이어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와 《마음의 탄생》 등을 보라).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할 것이며, 그에 따라 4차 산업혁명이 전혀 다른 세상을 창조할 것이라고 믿는)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능숙하게 다루었듯이, 신의 되지 못한 99.99%의 인류는 도태를 피할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생명 창조의 도덕적·종교적·진화적 수단이자 결과인 성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데이비드 레비의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에 이르면 성별은 더 이상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성대결은 인류의 멸종을 앞당길 뿐이며, 인류에게 주어진 시급한 문제들을 하나도 풀지 못한 채 성대결만 극대화하는 자기파멸의 지름길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디지털 기술에 내포된 자유주의적이지만 방임주의적이며, 반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미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물론 인류의 미래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오늘은 여기까지, 조금 피곤하네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좋은글 2018.12.01 07:39

    오늘도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급히 쓰시느라 오자몇개 보입니다

  2. 뉴페이스 2018.12.01 17:57

    좋은 글이네요.
    왜 20대 남성이 분노하는지 잘 적어주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을 봤습니다. 가관도 아니더라고요...
    누가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는지, 기재부 관리들은 어떻게 국민을 버리고 대기업을 살린건지 보고 나서도 억울함과 답답함이 가득하더라고요.
    헌데 페미니즘에 있어서도 지금 정부는 영화 속 관료들의 태도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지...심히 의심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1 18:15 신고

      많은 부분을 줄이고 생략했습니다.
      책으로 출간했을 때는 20대 남성들이 극렬하게 반발하는 이유를 상세히 다룰 것이며, 다양한 분석기법을 동원해 남성의 좌절과 분노,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20대 여성들의 성대결 추구의 위험성을 지적할 것입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쇼크독트린>을 보면 당시의 상황 일부가 나옵니다.
      사실 한국은 IMF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됐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도움을 청했으면 별다른 피해없이 외화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IMF 덕분에 삼성그룹이 현대그룹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수 있었고요.

  3. 겜맨 2018.12.02 14:44 신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너무 문제네요

    • 늙은도령 2018.12.03 05:31 신고

      경제는 좋아질 것인데, 문제는 그 결과가 20대 남성에게도 돌아갈 것이냐 그것이지요.

  4. 2018.12.18 18:04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90년대 프랑스의 페미니즘이 엘리트적이었다면 2018년 현재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주요 전파 경로는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들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성폭력과 불법 촬영 및 영상 유포 이고, 여아 낙태가 횡행하던 시절 태어난 여자들이 지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입니다. 유리천장과 채용 차별만을 들어 저임금, 저학력 여성들이 낙수효과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분은 의문이 드네요. 제 주변을 보면 몰카가 무서워 화장실을 걱정하고 모텔에 가는 걸 두려워 하는 건 학력과 직종을 가리지 않더군요. 엘리트주의로 치닫는 것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일베의 존재처럼 워마드로 대표되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극우화입니다. 성소수자 혐오, 난민 혐오에서 이제는 박근혜 복권, 문재인 탄핵 등을 외치며 극우들의 행동에 점점 동참하고 있고 KT화재 때는 전쟁설 유포에도 적극 가담했죠. 이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대결구도를 가장 활용하기 좋은 사람들이 바로 한국의 극우파들이죠. 그들은 경제가 좋지 않다, 북한에 퍼주기 한다 등등을 들어 공통적으로 현 정부를 적대시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되는 정부라고 각종 가짜뉴스를 커뮤니티에 퍼뜨려 현 정부를 매도할 수 있으니까요. 오바마 이후에 트럼프가 나왔죠. 문재인 이후에 누가 이 땅에 등장할 지 궁금하고, 또 두렵네요.

    • 늙은도령 2018.12.21 04:28 신고

      대부분의 여성이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공포의 만연과 아슬아슬한 균형입니다.
      그것은 별도의 글로 다루거나 집필에 담을 것인데,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은 그런 여성의 공포가 디지털 기술이 주범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일부의 남성들은, 다수라도 마찬가지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려는 것이고, 관음증만이 아니라 관종의 기질을 가진 디지털 세대의 특성이 뿌리깊게 자리했기 때문에 이런 야만의 시대에 들어선 것입니다.
      남성을 비판하기 전에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가 범람할 수 있게 된 근본 원인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베와 워마드, 불꽃 페미는 극우화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인데, 미국과 한국의 다른 점은 이명박근혜 9년이 현재의 트럼프의 미국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런 위기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의 폭주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입니다.
      핵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여성분들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남성은 지금의 20대와는 다릅니다.
      여성에 못지않게 작금의 20대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폭주에 따른 피해자입니다.
      싸우기 전에 왜 이렇게 됐는지 근본원인부터 파악하기를 바랍니다.
      걱정스럽고 안타깝습니다.
      20대가 삶의 절정이 아닌 이 시대의 자화상이....
      탈문명화의 비이성적 과열이....

  5. 혐오? 2018.12.20 10:07

    영감님 혐오 뜻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김어준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리얼미터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8%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리얼미터의 대통령 지지율은 다른 여론조사보다 항상 낮았기 때문에 5~10% 정도를 더하면 되지만, 그렇다해도 50%가 붕괴됐다는 것은 가볍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리얼미터는 경제정책 실패, 이재명 논란, 지지부진한 북한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밖에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들은 (그것이 자의에 의해 만들어졌던,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던 간에 의심스러운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위험 수위에 이를 정도로 많아 보인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방법상에서 매우 선정적이고 미숙했던 박용진 의원의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와 그에 대한 반발인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명분 없는 집단반발, 최저임금 인상 효과 축소와 탄력근로제 도입에 따른 노동계의 집단반발(파업은 그들의 정치적 권리이나, 요구가 도를 넘었다), 중소상공인의 집단반발(점점 줄어들 것이다), 결과가 더 나쁘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통계청의 방식 변경과 그에 따른 실업율 상승(특히 청년실업률의 구조적인 문제), 느리고 약한 적폐청산 강도(문프의 통치스타일상 그럴 수밖에 없지만 성급한 국민들은 답답해 한다), 거듭되는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실패(이건 문제다!), 이제는 하락세로 돌아선 부동산가 폭등, 청와대 직원들의 연이은 기강 해이(이건 정말 문제로 위선까지 책임져야 한다), 문프가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무능력 또는 무대응(답답하네, 정말!), 문프와 청와대를 사칭한 사기들, 성대결로 번져간 남녀갈등(한국의 미래에 최고로 우려스러운 상황), 원유가 하락으로 떨어질 물가 폭등, 미세먼지 공포와 저자세처럼 보이는 대중국 외교(손석희의 JTBC가 대단히 호도시켰고, KBS가 힘겹게 바로잡고 있다), 이런 것들을 집요하고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기성언론(노골적인 문재인 죽이기), 모든 것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악질적인 분탕질(좀비 같은 놈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가짜뉴스의 폭증(민주주의의 위기), 여성을 분노케하는 검경의 수사와 사법부 판결, 끝없이 이어지는 각종 사고(이명박근혜 9년 동안 방치해두었던 것들의 예측할 수 없는 발생) 등등‥

 

 

이 중의 상당수가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 결과들이 지금에 와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것임에도 이 모든 것들이 상호강화되고 자가발전해서 문프에 대한 불만으로 변화됐다. 촛불혁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41.9%의 득표율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취임 이후 문프와 보좌진들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남북정상회담 등에 힘입어 80%대까지 치솟은 지지율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책임의 소재가 어디에 있던, 문재인 정부의 실질적 임기가 1년에 불과했던, 국정과제를 세우는 인수 과정이 없었던 간에 모든 불만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정치의 현실로써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20대, 영남, 자영업자의 이탈이 지지율 하락의 핵심이라는 박지원의 총평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해도, 지지율 하락이 추세로 자리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대단히 위험하다. 대선에서 문프에게 표를 주지 않았으나 지지로 돌아섰던 사람들 일부가 떨어져 나가며 문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지율 하락의 추세를 견인했다. 이후에는 각종 루머와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증폭되는 과정과 똑같은 과정인 '사회적 폭포효과(부정적 인식의 확대)와 뒤를 이은 동조화 폭포효과(확대된 부정적 인식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 것) 및 편향 동화(처음부터 문프에 반대했던 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고 반박할 수 있지만, 지금은 받아들이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시기다.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모든 요인들 중 거의 대부분은 J노믹스가 힘을 발휘하고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경제가 좋아지는 내년 중반부터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바뀔 것이다(장담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좋아진 것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하락 추세의 여론환경을 뒤집기에는 힘이 부친다. 루머 하나를 바로잡는 것도 상당히 힘든 것이 현실인데, 여론 형성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기반인 여론환경을 바꾸는 데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망가질대로 망가진 외교 환경을 바로잡고 세계사적 작업인 북한비핵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장 개척 등에 외교 행보를 집중하고 있는 문프의 외유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내치에 집중하게 되면 여론환경이 상승 추세로 바뀌는 것은 시간의 문제지만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시민의 곁에 있던 문프를 외국과 청와대에서만 볼 수 있다면 국민과의 거리는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다 해도 문프의 최대 장점이 단점으로 뒤바뀐 것인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문프는 또한 각 부처의 장관과 고위관료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청와대 운영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실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프가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외교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신뢰의 리더십 때문이다. 노통이 그랬던 것처럼, 문프도 민주적 지도자의 전형처럼 사람을 믿고 맡기며, 충분히 기다려주는 대신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는다. 이런 통치스타일이 내치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문프가 직접 챙기는 것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내년 초쯤에는 노통이 여러 번 했었고, 문프가 공약했던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으면 한다. 아무리 외치에 성공해도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내치에 실패하면 통치의 원동력인 지지율은 하락을 피할 수 없다. 평균적 국민이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옆에서 나의 삶을 살피고 도와주고 보듬어주는 대통령이다. 외국에서 존경받고 국익을 실현하는 대통령도 보고 싶지만, 수출과 내수가 분리된 현실을 감안할 때 내치에 힘을 쏟는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에게는 절실하고 중요하다.

 

 

문프가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대다수 오해를 풀고, 주권자의 도움을 청하고, 함께 가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내년 중반부터 좋아질, 각종 국정과제와 정책들의 결과가 국민에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다시 얻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나 또한 취임 초반의 모습을 보고 싶으며,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보고하겠다는 공약이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이해찬 대표의 민주당처럼 보수의 재정립이 요원하다는 것만 믿고 건방지고 무책임하고 어리석게 대응하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동력은 갈수록 약해질 수 있다.

 

 

이낙연 총리가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이재명 같은 악성종양이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민은 보통 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받지 못한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내년에는 문프가 외교 행보를 줄이고 국민과 함께 하는 모습을 늘렸으면 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상대하고 인류사적 대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는 지도자는 전 세계에서 문프 외에는 없지만 구체적 결과들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음에 대비해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복지가 되던 그때의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을 보고 싶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위치에 문프가 있기를 희망해본다, 국민은 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반발하거나 실망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라는 것이며, 모든 언론과 야4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50%대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지지층의 탄탄함을 말해준다. 문파와 문프, 문재인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추세를 받아들여 멋지게 되치는 것에 있다. J노믹스와 북한비핵화 등도 내년에는 좋은 결과들을 내놓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유가 하락에 따라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프의 임기 후반부는 진정한 문프의 사람들로 청와대 진용을 구축해야 한다. 문프는 건강만 챙기시라.     

  1. 방소 2018.11.29 19:44

    좋은글 잘봤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내년에는 적폐청산과 평화정착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전 세계를 수백 개의 단층으로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만드는 분노와 차별, 증오와 폭력의 소용돌이는 (유권자의 무지와 무관심과 어우러져) 표퓰리즘의 득세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표퓰리즘의 득세는 50~73년까지 지속된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성장을 기록한, 그래서 두 세대 정도만 고성장의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전성시대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그 기간 동안 축적된 온갖 부작용과 외부효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30대까지는 태어나고 보니 모든 분야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 일자리 급감에 따른 소득 감소와 미래에 대한 불안, 핵심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의 외주화, 일자리 질과 양 모두에서의 후퇴, 고도성장의 반대급부로 지구적 차원에서 목을 조여오는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이동성의 종말, 신종 질병의 만연과 미세먼지의 역습, 세계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무력감, 공동체와 사회안전망의 붕괴에 따른 책임의 개인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등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대 이하는 이런 신자유주의 합리성(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지구와 인간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아이디어의 집합체가 지역과 환경, 이념, 계급, 성별 등에 따라 하위 90%를 때로는 유연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착취하는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상위 1%와 그들의 보조자와 간수만의 합리성, 우파가 대부분이지만 좌파에도 있다)을 앞세운 자유주의 통치술에 합류한 기억조차 없다. 40대 초반도 지구를 초토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희생자에 속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모든 세대의 동반자 역할에 종지부를 찍자, 전 세계적으로 불만과 좌절, 공포와 분노가 회오리치면서,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지배엘리트와 기성체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은 이들에게 각자의 아우성을 퍼뜨리고 무리를 이루어 수없이 많은 네트워크의 이합집산을 구축할 수 있었다. 모두가 정치권력이 필요했고, 그것만이 자신을 구할 터였다.

 

 

그런 가운데 거의 모든 소통의 네트워크를 독식하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현재의 먹거리이자 미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대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이른바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등장했고, 70억 인구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추적해서 우주적인 차원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70억 인구를 각종 기준에 따라 범주화하고 분류해서 연결하고 유혹하고 선동하며 배제하는 방식으로 개별적이면서도 총체적인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빛의 속도로 시공간을 압축하는 과정이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하는 세계화다.        

 

 

바보상자라는 소리를 들었고, 대중매체를 지향하면서도 기술 자체의 본성이 자본과 권력에 유리한 텔레비전이 정보통신기술의 공습에 극단적이고 급진적이어서 아웃사이더에 머물러야 했던 선동적 정치인과 정당을 걸러내는 게이트 키핑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슈 창출이란 면에서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여전했지만, 정치적 아웃사이더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값싸고 제약받지 않는 매체와 수단이 생겼으니, 분노하고 좌절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엘리트는 당신을 갉아먹는 위선자이지만, 자신은 피해자와 약자들을 위한 진정한 대변자'라고 어필할 수 있었다. 

 

 

거칠고 짧게 서술했지만, 이것이 브랙시트 가결과 트럼프 당선으로 대표되는 '표퓰리즘 세계화'의 핵심이다. 자동화를 늘리는 세계화에 반대하며,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 시장근본주의, 이민과 난민 반대, 전통적 젠더관, 배타적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동성결혼과 낙태 불법화, 감세와 복지 유지 등을 요구하는 중구난방의 표퓰리즘이 좌우ㅡ우파 민족주의가 50% 이상을 차지하지만ㅡ를 가리지 않고 세를 불리고 정권을 잡거나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이로써 정치판이 개판 5분 전으로 변했다. '자신이 사회경제적 약자와 피해자의 구원자요 대변자고 혁명가'라며 '모든 악의 근원인 지배엘리트를 몰아내 대중의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남발함으로써 '도덕의 수사학'을 독점했지만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은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차베스와 르펜, 치프라스와 트럼프 같은 표퓰리즘 선동가들이 정부와 국회, 정당을 장악하며 정치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바닥으로의 경쟁에 빠져들었다.        

 

 

'표퓰리즘 세계화'에 대한 이상의 개괄이 필자로 하여금 수준 미달의 국회의원들이 또다시 공천을 받고,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듣보잡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높이는 '순수 연동형 비례제'에 반대하는 이유다. 야3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들먹이며 '순수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촉구한 것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야3당의 단식 땡깡이'에 굴복한 이해찬의 민주당이 '순수 연동형 비레제'를 받아들인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상태로 만든 이들은 문제 인물과 정당을 걸러내지 못하는 '순수 연동형 비례제' 덕분에 단독으로 권력을 잡을 수 없는 표퓰리즘 정당들이 제3당, 제4당, 제5당……제9당, 제10당 등에 올라 '그들만의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가짜뉴스와 루머, 음모론 등이 난무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방안이 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검열이 대표적)'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을 때 '생각의 시장'은 제대로 작용하며, 그럴 때만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 디지털시대에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는 지금에도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은 통념과는 달리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며, 반성적 고찰과 도덕적·윤리적 생각도 거의 하지 않고, 거의 모든 생각을 다수의 견해에 맞추기 때문에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김어준과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했던 이유다.          

 

 

 

 

편파방송 논란에 휩쌓인, 그 덕분에 시청률이 2배 이상 뛰어오른 '오늘밤 김제동'의 진행자 김제동이 초대손님으로 나온 정동영과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주고받으며 유권자의 사표를 없애는 것을 절대명령인양 포장해, '순수 연동형 비례제'의 여론몰이에 나선 것은 (검증되지 않는) 아웃사이더와 (유권자의 뜻에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되는)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라 받아들이기 힘들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들에 대한 정당 차원이 아닌 국가(국민) 차원의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순수 연동형 비례제'는 특정 정당과 소속 정치인의 전체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국민 자치'라는 점에서 유권자의 사표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표퓰리스트 정치와 정당이 득세하는 현실에서 '순수 연동형 비례제'는 양극화된 정치를 더욱 세분화된 첨예한 대립으로 몰아갈 위험성이 너무 높다.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대통령 중심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전제 하에 주권의 당사자로 자리매김한 '국민이 선거에서는 그런 전제를 무력화시키기 일쑤라는 현실적 경험에 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최악의 체제로 비판했던 것과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국민 자치'가 '평등한 다수의 독재'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도 민주주의의 주인이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인민이기 때문이었다. 표퓰리즘 정치는 다수의 독재와 같은 말이며, 불평등과 양극화를 양산한 기존의 체제와 정치인, 정당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바탕으로 기득권을 파고들어 민주주의를 질식사시킨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불평등과 양극화가 19세기 수준에 근접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이 득세하는 현실에 화들짝 놀란 수많은 정치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우려도 '필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수 연동형 비례제'에 집중되고 있다. 텔레비전에 이어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 유튜브 1인방송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민(국민)'의 상당수가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의 달콤하고 매혹적인 수사학에 매료돼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가 표퓰리즘의 득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이 주요 정치인(이명박근혜와 이재명이 대표적)과 정당으로 부상해 민주주의를 극단적 위기로 내몰고 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제일 많이 발전(정확히 말하면 퇴행)한 것은 '국민'을 극단적 불평등과 양극화에 따른 분노와 폭력의 화신으로 만든 정보통신기술의 걸러지지 않는 전파성과 전염성, 반민주적 폭력성이다.  

 

 

표퓰리즘과 정보통신기술 관련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사로잡힌 국민의 잘못된 선택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터기, 그리스,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포르투칼, 브라질,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인도, 페루, 베네스엘라, 앙골라, 튀니지, 콜롬비아, 뉴질랜드 등등 전 세계적으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이 집권하거나 제1, 제2야당으로 떠오른 나라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모든 대륙, 모든 수준의 국가에서 표퓰리즘이 득세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양심적인 대부분의 학자와 지식인, 정치인은 민주주의와 인류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디지털기술이 낳은 최악의 네트워크 집단인 일베(회원이 최대 100만 명을 넘은 적이 있다고 한다)와 다수의 극우·극좌사이트, 그들을 미러링하려고 모였으나 남성 전체를 향한 대결로 전장의 크기를 넓혀 페미니즘을 파괴하는 메갈이나 워마드 등처럼 사이버공간을 중심으로 표퓰리즘과 극단주의가 득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상위 1%를 위한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희생양이지만, 그들이 무너뜨려야 할 공통의 적에 대항해 연대(향우 60년 이상 영향을 미칠 인구구성상 3중, 4중의 착취에 노출될 20대는 반드시 연대해야 한다)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위대한 인권운동이자 인류의 멸종을 구원할 최선의 대안인 페미니즘을 최악의 갈등 요인으로 추락시킨 '이수역 사건'은 자치의 주체인 인민의 합리성과 민주적 경험, 도덕과 윤리적 수양의 깊이, 반성적 사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재명의 표퓰리즘적 본질을 그렇게도 오랫동안 지적하고 증거를 찾아냈던 소수의 문파들이 극문이니, 문슬림이니, 작전세력이니, 분열세력이니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았던가? 무엇이 가짜인지, 루머고 음모론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빠른 판단과 응답, 전파를 강요하는 정보통신기술에 노출되면 주권재민의 인민 자치는 민주선국국가에서조차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표퓰리즘 정치학의 먹이감으로 전락한다.

 

 

시청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정치를 포함해 모든 것들을 오락화하는 바보상자(텔레비전)의 포로로 추락한 상황에서, 아예 사고능력을 삭제시키는 정보통신기술까지 더해진 21세기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표퓰리즘의 득세를 막을 방법이 없다.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은 절대적 시대정신이고, 거대 양당의 독주를 막는 것도 절대적 시대정신이지만 청년과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율을 늘리는 것도 절대적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들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와 사후에 탄핵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 등이 동시에 도입되지 않은 채 '순수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하면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노정된다. 태극기부대와 일베, 손가혁 등은 차치하더라도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샤이지지자들이 또다시 결속하면 국회는 극우에서 극좌, 권위주의적 독재 추종자, 급진주의자, 극단적 환경주의자는 물론 무정부주의자들까지 난립하는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 

 

 

이해찬과 김무성, 박지원 등처럼 다선 의원이라는 선거귀족을 양산하기 일쑤인 대의민주주의와 이념적 동기에 매몰되기 일쑤인 정당정치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 필자여서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전 세계의 정치권을 한 번이라도 살펴보면 '순수 연동형 비례제'는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불가능한 지점까지 몰고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자치의 주역인 인민의 분열과 반목, 차별이 커질수록 더 큰 이익을 거두고 부와 기호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대화하며, '순수 연동형 비례제'는 이런 퇴행현상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현재의 헌법이 내각제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대통령 중심제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어설픈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여론몰이식 논의는 대단히 위험하다. 구좌파와 입진보의 국회 진출이 늘어난다면 피해는 더욱 커진다. 시민행동주의라는 참여·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실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실과는 정반대로, 국민으로부터 제대로 된 검증조차 받지 않은 자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 수 있는 '순수 연동형 비례제'가 민주주의 정신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제도도 아니다.

 

 

민주주의 이해와 시민의식, 도덕적·윤리적 덕목, 디지털기술이 반드시 초래하는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의한 '사회적 폭포효과(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이 믿는 것이 규모를 키워 아주 많은 규모의 사람들이 믿게 되는 현상)', 특정 주장과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 속에서 더욱 강화되는 '반향실 효과의 결과인 집단 극단화' 등처럼 우리의 정치적 판단을 왜곡하고 타락시키는 것들에 휩쓸리지 않는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닐 포스트만은 모든 것을 오락화하는 텔레비젼이 시청자의 의식을 어떻게 왜곡하고 길들이는지 탁월하게 다룬 《죽도록 즐기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다.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도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다……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영향이 이러했는데(텔레비전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리처드 생크만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를 참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늘리는 디지털기술의 총화인 스마트폰이 보편화됐고, 최근에는 나꼼수와 그 아류들로 대표되는 팟캐스트로도 부족해 유튜브를 점령한 1인방송의 범람까지 더하면 '순수 연동형 비례제'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야3당은 이런 문제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지 여당인 민주당에게 합의안을 가지고 오라는 것은 적반하장의 극치다.

 

 

나경원이 원내대표로 뽑힌 자유한국당은……? 거기에 제대로 된 보수는커녕 제대로 된 인간이 한 명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래서 뺏다. 인적 청산과 교체가 없는 한 자유한국당은 모든 논의에서 제외한다 해도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 그리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러셀 커크(커크 러셀은 남성미 넘쳤던 유명한 배우였다)의 《보수의 정신》이라도 읽은 자가 있을까? 

 

 

                                                                                                                                                 사진 출처 : 다음 이미지

  1. 뉴페이스 2018.11.28 20:08

    흠...생각보다 놀랐네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좀 더 민주주의를 성숙시켜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그 유럽에서도 다시 극우의 손이 나타나는 걸 보면...

    • 늙은도령 2018.11.28 20:30 신고

      우리가 기술의 영향을 깨닫지 못하면 기존의 생각들 중 많은 것들이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제가 집필에 들어간 핵심 이유입니다.

  2. 늙은태양 2018.11.28 22:05

    그러면 어떤 선거제도가 지금 좋을까요?

    그리고, 이해찬대표가 말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무조건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는 나은건가요?

    • 늙은도령 2018.11.29 00:08 신고

      어떤 제도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위험투성이입니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각당의 비례대표까지 유권자들이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공개명부제가 포함된 개헌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외의 어떤 것도 한국정치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게 돼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무서울 정도로 득세하고 있는 표퓰리스트 정치인의 공통점은 자신의 잘못은 '뭐, 어때서?'하며 아무것도 아닌 채 넘어가면서도 거짓말과 가짜뉴스를 동원해서라도 상대의 잘못은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물고늘어진다. 위기에 처할수록 이런 흡혈귀적 본성은 더욱 악랄하고 광적으로 펼쳐진다. 궁지에 몰린 이재명이 '문준용 취업문제'를 들고나온 것도 이런 일환이며, 싸움의 범위를 문프에게까지 넓힘으로써 나를 건드리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하겠다는 정치적 협박에 다름아니다. 

 

 

 

 

헌데 이런 이재명의 도발은 문재인 대통령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치명적인 자충수로 그를 감싸고 돌던 이해찬 대표의 입지마저 축소시켰다. 문프는 이런 저열한 도발에 응할 정도로 낮은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대신 문준용을 거론한 이재명의 비열함은 3,245명의 고발인단은 고사하고 문프 지지자 전체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친노와 친문으로 회자되는ㅡ범주화할 필요는 없지만ㅡ의원과 당직자의 분노도 자극했다. 민주당 내 이재명 지지자들의 입지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재명이 문준용씨의 취업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문재인 지지율 하락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20대와 40대를 겨냥한 정치공작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라 지지 철회의 이유가 많아지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프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그것의 실현가능성이 얼마였는지 알 수 없지만, 기대가 무너지면 지지 철회는 분노와 공격으로 변환되기 일쑤인데, 이재명이 이를 노린 것이다.

 

 

미미한 숫자로 줄어든 기존의 지지층으로써는 검경의 수사를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자신의 편을 한 명이라도 늘리는 것이 이재명에게는 유리하다. 정치를 이런 숫자 싸움으로 바라보는, 그래서 선동과 거짓말도 주저하지 않는 이재명의 반민주적이고 조폭적인 행태는 민주당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적을 늘리는 공작이어서 이해찬 대표라도 감싸고돌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바람처럼, 민주당 장기집권이 가능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필수인데 이재명은 이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고발한 3,245명으로 대표되는 문파는 이재명의 이런 본성을 정확히 꿰뚫은 사람들이었으며, 거의 대부분 문프를 배출하고 지원하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다. 문파 역시 이해찬 대표만큼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바란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런 내용의 글을 몇 편이나 썼다. 문파 모두는 바란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신자유주의 30년의 착취와 악몽에서 벗어나 '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사람이 먼저인 사람사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이해찬 대표의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재명을 탈당이나 제명시키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큰 후폭풍을 몰고올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고 대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비교할 때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는 역공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골치 아플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자한당과 조중동, 유튜브에 자리잡은 수많은 꼴통들이 이재명 탈당이나 제명의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음도 고민을 더하게 만들 것이다. 

 

 

이재명은 절대 제 발로 민주당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더욱 환장할 노릇이리라. 그렇다고 김경수 경남지사와 동시에 탈당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외통수에 몰렸음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재명이 그런 놈인줄 몰랐다는, 아니 알았으면서도 그 정도의 권모술수는 마키아벨리도 인정한 정치기술이어서 별로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하는 구태에 갇혀있었을 수도 있다. 이재명의 교활함을 고려할 때, 결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이 얽혀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늦춰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문파와 민주당 지지자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촛불혁명에 참가한 깨어있는 시민이며, 민주주의를 지킬 최후의 보루로써 조직된 힘이다. 우리는 노통을 지키지 못한 회한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 이재명을 비판해도 지지는 거두지 않을 것이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리하여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믿어야 한다, 문프의 능력과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암은 빨리 제거할수록 완치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재명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더 많은 암세포를 퍼뜨리기 전에 화학치료나 제거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이재명의 입에서 문준용 취업문제까지 나왔다. 이해찬 대표의 결단이 더 이상 늦추지면 안 되는 절대적 이유다. 수많은 트윗과 댓글에서 봤듯이, 이재명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까지 물고늘어질 것인데 검찰 기소와 재판까지 지켜본다면 모든 책임은 이해찬 대표가 져야 한다.

 

 

깨끗해지려면 내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을 이루어내야 할 이해찬 대표가 해야 할 일이자 의무며 정치적 책임이다. 이제명을 제명하라!……………………………그리고 필자가 집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언능 하루라도 빨리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과유불급하게‥ 과유불급? 어, 이건 아닌데? 아무튼 당장 제명하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좋은글 2018.11.27 15:41

    늙은 도령님이 유머감각까지 겸비했을줄이야

    • 늙은도령 2018.11.27 16:49 신고

      젊은 시절에는 제법 했지요.
      이젠 다 잃어버렸지만....즐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2. 카사바 2018.11.28 18:37

    ㅎㅎ잘 읽고 갑니다
    아무튼 당장 제명하라!!^^;;;

 

자한당의 수구꼴통들과 그들만큼 뇌가 부식된 전·현직 정치인들, 전통의 기레기 조중동과 그들을 따라하기 일쑤인 진보매체마저도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불평등이 늘어났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자본주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뉴딜정책과 케인즈주의 덕분에 자유민주주의가 자신의 구성원들에게 약속한 온갖 장밋빛 혜택들을 단 하나도 누려보지 못한 밀레니엄 세대와 중년파산으로 내몰린 40대들의 문재인 정부 비판도 이들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소득불평등이 늘어났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너무나 당연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J노믹스의 첫 번째 단추인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해서 이런 통계가 나온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상위 10%%에게 하위 90%의 부와 기회를 이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그것도 2020년의 통계 때부터 조금이라도 반영될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평등을 늘려온 지난 20년의 추세를 멈추게 만든다는 것은 경제의 신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8년 동안 필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주제가 신자유주의 합리성으로 작금의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들어낸 절대적 원인이다. 많은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모든 종류의 민주주의를 시장화시키는 궁극의 통치술이다(미셀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던진 화두로 필자가 아는 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성찰을 담은 책이고, 이를 확대·재정립한 해낸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가 뒤를 잇는다. 푸코의 관심이 일련의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으로 관련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지만 브라운에 의해 그 일부는 채워질 수 있었다). 

 

 

김연아의 경제적 효과가 얼마니, 정치사회적 갈등이 초래하는 비용이 얼마니, BTS가 창출하는 경제적 이익이 얼마니, 노조들이 일으키는 파업의 손실 비용이 얼마니, 교황의 북한 방문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얼마니 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끄는 모든 것들을 경제 지표(시장 지표)로 환산해 자본화하는 것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세상을 점령해가는 방식이다. 나라마다 10~20년 정도의 편차가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모든 노동을 개인의 책임하에 진행되는 투자의 형태로 치환함으로써 불평등과 양극화를 경제성장의 촉진제로 만들어버렸다.  

 

 

모든 노동(개인의 돈으로 쌓아올린 각종 스펙들 포함)이 인적자본화 되면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라 자신의 자본적 가치를 팔아 이익을 얻어야 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전환된다. 노동은 자본과 기업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하에 자본과 기업에 파는 것으로 변질된다. 이럴 경우 투자의 원칙이 노동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노동(학력이 낮을수록, 스펙이 적을수록, 기술숙련도가 낮을수록 불리하다)은 저임금으로 내몰리며, 가치가 사라진 노동은 버려지거나 대체되거나 폐기된다(노동유연화의 핵심).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또한 정부의 역할을 모든 경제 주체들의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쟁을 증진시키는 규제를 늘리고,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해야 하는 것으로 한정한다(세월호 참사의 간접적 요인). 투자는 개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종 복지를 줄이고 사회안전망과 공교육 지원을 최소화해야 하고, 그래서 긴축재정과 균형재정을 지향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반하는 부실기업은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더 큰 기업에 흡수합병시켜야 하며, 그에 따른 대규모 해고는 경쟁력 저하에 일조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IMF가 김대중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한 것).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노조는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고, 자본과 기업의 투자수익률을 낮추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국정철학). 모든 교육의 목표가 민주적 이상과 정치사회적 지식, 자치 능력, 자아실현 능력 등을 지닌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비용 대비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 주체를 배출하는 것으로 치환된다. 투자 대비 이익이 떨어지는 리버럴아츠(기초 교양)는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퇴출돼야 마땅한 학문이 된다. 다시 말해 자본과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는 학문들은 생존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고 축적돼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접어들었고 무한경쟁에 따른 극소수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가 국가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지속된 이런 신자유주의의 폭격(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이런 추세를 거스를 수 없었지만 경제성장과 복지, 사회안전망, 국가안전시스템 구축 등을 늘려 신자유주의 폭주의 피해를 줄이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은 자본과 기업의 천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청년과 여성과 노인을 절망과 빈곤의 질곡으로 몰아붙였다.

 

 

청춘들이 중시하는 가성비가 가치 판단의 최고 기준이 된 것도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결과인 소득불평등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들고 미래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최소 투자로 최대 수익을 거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반화된 현상이다. 소확행의 유행도 똑같은 관점에서 보면 가성비 중시와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는 현상으로 밀레니엄 세대의 좌절과 절망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망과 희망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행복으로의 후퇴뿐이다. 

 

 

민주주의와 인류의 종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세상을 망가뜨린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자유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대체해버렸고, 필요하다면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져다 쓰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돈만 되다면, 그리고 그 이익이 상위 1%에 집중된다면 어떤 아이디어라도 가져다 썼다(나오미 클라인의 《No로는 부족하다》를 참조). 골목상권이 대형프렌차이즈에게 잠식당한 것을 넘어 대리점 간의 출혈경쟁으로 내몰리는 것도 신자유주의 합리성 때문이다. 갈수록 커지는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는 20~40년에 걸친 (보수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의 작품이어서 특정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실시된 최저임금 인상 같은 것들이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데, 그것도 정책의 효과가 나오려면 최소 2년은 걸린다. 대한민국처럼 중소상공인이 전체 국민의 20% 가까이에 이르고, 이중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중소상공인이 150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피해를 만회해줄 (자한당이 악착같이 반대해온) 임대차보호법 같은 법률 제·개정과 (카드수수로 인하와 임금 지원, 노동시간 단축을 전제로 한 탄력근로제 등의)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제공돼야 한다. 

 

 

필자의 경우, 중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내년에도 최저임금 인상폭이 두 자리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년 1사분기까지는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이지만, 그 이후로는 약간의 성장세(낮은 유가가 핵심)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두 자리 수의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반신자유주의적 조치를 감행해도 될 것 같다.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재정정책들도 과감하게 실시해야 하며, 하나의 방법으로 임대주택 건설을 늘리는 것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정 수준의 가계부채와 대학등록금대출액의 탕감도 이루어졌으면 한다(모든 책임을 개인화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익숙해진 국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겠지만).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대표적인 J노믹스의 한 축인 혁신성장(조지프 슘페터가 개념화한 '창조적 파괴'가 원조라 할 수 있다)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자와 기업을 동시에 포용해 국민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는 공정경제는 이런 포용적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구축될 수 있다. J노믹스가 신자유주의의 폭주를 막고 민주적 분배를 실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정책 집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뚜렷한 결과를 내놓을 수 없지만 문프의 J노믹스는 대한민국 경제를 신자유주의적 폭주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이 (통계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마사지함으로써 J노믹스가 실패하도록 만들기 위한) 사이비 지식인과 교수, 보수 정치인의 무논리와 거짓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불평등과 양극화를 늘리기만 해온 신자유주의 통치술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갈수록 늘어난다. 소득분위 최하위와 차상위의 소득만 줄었다는 통계는 아픈 현실이고 J노믹스에 불리하지만, 본질적인 차원의 분석없이 단기적 현상만 놓고 소득주도성장을 실패로 단정하고 후퇴할 이유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 글도 초고입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온갖 부작용을 포함해 대단히 많은 부분을 첨가해야 하지만 핵심 논리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하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돌되는 현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세분해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커졌습니다.) 

  1. 카사바 2018.11.26 23:38

    선생님, 오늘도 글 잘 봤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단락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든다"부분을 다시 살펴 봐 주세요! 혹시 "~늘어난다"가 아닐런지요?

  2. 뉴페이스 2018.11.27 00:31

    좋은 글인데, 흠...크게 3가지 정도 내용이 빠진 것 같아요.
    첫째는 부동산이고,
    둘째는 물가,
    셋째는 금리인상이 있겠네요...

    J노믹스의 정책은 훌륭하나 문제는 국민이 이를 기다려주냐 겠죠.

    • 늙은도령 2018.11.27 01:08 신고

      부동산은 별도의 글로 다룰 것입니다.
      부동산에는 다양한 역설이 자리해서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긴 글로 따로 다뤄야 합니다.

      물가는 핵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소득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과민반응으로 이어진 면도 있고요.
      1인가구가 늘어난 것도 하나의 요인입니다.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다른 부분에서 줄어든 생활비는 생각하지 않은 채 일부 분야에서 오른 물가만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요.
      유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올라간 물가의 대부분이 내려갈 것이고요.

      금리인상은 필연이지만 최대한 늦추고 있습니다.
      인상이 단행되면 가계부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정부나 한국은행도 최대한 자제하는 것입니다.
      금리인상에는 너무나 많은 외적 변수가 자리하고 있어서 답이 없는 부분입니다.
      미국도 금리인상을 못하는 이유가 연준과 트럼프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고요.
      최근에 들어 경기가 하강하는 조짐이 강해지는 것도 한몫했고요.

      님이 말한 세 가지는 하나하나를 별도로 다루어도 대단히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글에서 다루지 않았고요.

      국민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올바른 정책을 포기할 순 없지요.
      국민의 수준이 그렇다면 그 대가 역시 국민이 치루게 됩니다.
      제가 달라진 부분은 국민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영위하려면 국민의 수준이 올라가야 합니다.
      체제를 탓하고 정당과 정치인, 언론을 탓해도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인 것이고 지금까지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이라면 저라고 어쩔 도리는 없지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다면 정부라고 해도 별 수 없고요.
      국민이 떠나가면 정권을 뺏기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민의 판단에 도움을 드릴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습니다.

      진보좌파는 너무 이상론만 애기해요.
      그것도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론을 애기해요.
      그렇게 갈등만 부풀려 놓고서는 자신들의 이익만 챙깁니다.
      보수우파만 비판했던 제가 진보좌파 비판에도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이지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보수우파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현실을 이해한 다음에야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 아니면 뒤집어버려야 할지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넘지 못하고 있는 중소상공인들의 처지가 안타깝지만, 조중동과 한국·매일경제 같은 찌라시 수준의 기사에 속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무지함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미국경제의 대침체가 멈춘 것은 2011년이며, 2012년부터는 미미하지만 완만하게 성장세로 돌아섰다. 백인 정신의 흑인인 오바마가 세계경제를 말아먹은 금융위기 주범들 중 단 한 명도 단죄하지 않은 채 그들을 살리는데 약 8000억 달러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모자라(이때 수백만 명에 이르는 미국 시민들이 집을 빼앗겼다) 무려 1경 4천조에 이르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퍼붓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필자가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으니 바꿔야 한다고? 천만에!에서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나빠지기 시작한) 미국경제의 호전 이유 중에 일부러 빼놓은 또 다른 핵심 요인이 있다. 그것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합작(트럼프의 노골적인 간접 지원을 받는)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를 떨어뜨리고 있는 매장량 세계 1위의 셰일가스다. 국가경제와 국민경제의 모든 부분이 석유에 의존하는 미국의 경우, 휘발유가가 리터당 2.5달러를 넘으면 정권이 바뀌고 4달러가 넘으면 폭력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채굴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수질오염(원전과 석탄발전보다는 한참 적다)과 환경·생태계 파괴를 초래하고, 종국에는 지구온난화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셰일가스의 대규모 채굴(매탄 노출이 문제!)은 휘발유가를 1달러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극적으로 높여주었다(트럼프가 기후협약 탈퇴를 떠벌이는 이유). 탄핵 위험에 노출돼 있고, 하원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었음에도 트럼프가 미친 짓거리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50달러 이하의 셰일가스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 극도로 부풀려진 완전고용 때문이 아니다.

 

 

피터 자이한의 《21개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 따르면 2014년 이래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에서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수평시추와 파쇄공법이 발전하고 파쇄액의 식수원과 환경오염 가능성이 급격하게 줄어들면 미국경제 호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상황이 역전되며, 이것이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역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지만, 향후 10년간은 미국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셰일가스를 두고 벌어지는 극심한 갈등과 늘어만 나는 빈부격차를 미국의 정치권이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면.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본격화돼 오바마 정부까지 지속된 제조업의 해외 이전(제조업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포스트 포디즘'이라고도 한다)으로 제조업 기반이 박살나지 않았다면 미국경제의 강세는 천하무적의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이 금융산업의 광기를 제한했던 모든 규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같은 당 출신인 오바마가 금융업계의 슈퍼엘리트에서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처럼 정보통신업계의 슈퍼엘리트로 갈아타며 제조업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미국경제는 더욱 좋았을 것이다(토마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을 참조).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워싱턴 켄센서스'로 구체화된 '달러 경제의 되먹임 시스템'(미국의 천문학적인 무역적자를 미국과의 무역에서 돈을 번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재투자로 상쇄하는 금융시스템) 덕분에 미국 전체로 볼 때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다. 미국 제조업 노동자(대졸 이하의 백인남성이 주를 이루고, 이들이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다)와 저임금 비정규직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불평등을 주요한 성장동력으로 인정하는 경제관 때문에 무시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중소상공인 일부가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에서 동의하기 힘들다. 중소상공인의 대다수는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으로 그들의 열악한 현실이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고, 이에 따른 문재인 정부의 지원책과 자한당의 반대로 10년 동안 통과되지 못했던 법률 통과에 따른 혜택들이 반영될 내년에는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전체 의석수의 2/3에 이를 수만 있다면, 열악한 환경의 중소상공인을 포함해 이 땅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각종 정책이 펼쳐지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개헌과 관련 법률들의 국회통과가 가능할 수 있다. 이재명을 감싸고 도는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곳곳에 포진해있는 구좌파와 입진보들이 차기주자를 앞세워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면 노통이 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실현할 수 있다.   

 

 

재벌과 상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을 가장 억압받고 착취되는 집단으로 보여지도록 만들기 위해 전체 조합원의 30%(저임금 비정규직)를 앞세우는 정치적 강자 민주노총의 억지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을 제공할 수도 있다. 경제가 정말로 나빠지기 시작한 현실적 한계 때문에 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에 따른 그들의 격렬한 저항이 필요없어지는 그런 날도 올 수 있다. 극단적인 진영논리와 양극화된 이념대결을 넘어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그보다 더 많이 얻는 최상의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낼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민 전체를 공평하고 평등하게 배려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를 테면 조합원 100만 명의 민주노총도 배려해야 하지만, 무려 750만 명에 이르는 중소상공인도 배려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희생자인 그림자 노동의 전업주부와 경제적 약자인 청소년과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미혼모, 편모(부)가정 등은 물론 난민과 이주민, 해외노동자까지도 배려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이다.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헌법과 법률이 허락하는 한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모든 국민을 공평하게 배려하고 어려움을 돌봐야 한다.

 

 

나는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저격하는 세력 중에서 진보매체와 지식인·교수들이 가장 가증스럽다.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교조적인 이들의 행태는 수구꼴통보다 더욱 국민을 분열시키고 격렬하게 싸우도록 부추기고 있다. 목적의 정의로움을 내세워 수단이 폭력성과 야비함을 무시하는 그들의 뻔뻔함에 구역질이 올라온다. 토론과 논쟁의 정치적 경쟁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해 선악의 이분법을 팔아 먹고사는 그들의 행태를 용서하기 힘들다.

 

 

강준만의 헛짓거리가 극에 달했던 '싸가지 없는 진보'가 바로 그들이다. 어느 누고도 평등과 자유의 이상향을 말하면 고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이나 그를 밀어준 나꼼수 멤버와 그 아류들처럼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자들은 고귀해질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바람직하며 칭찬 받아 마땅한지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노통과 문프는 그렇게 살았고 정치의 아웃사이더였다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다.

 

 

 

 

두 분은 자유민주주의에 내재된 본질적인 한계와 정치환경에서의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해 정치적 좌절과 정책적 실패도 했(었)고, 일부 공약에서 후퇴하는 잘못도 실족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다. 인민의 자치를 빼면, 민주주의는 속이 텅빈 풍선 같아서 그 안에 들어오는 것들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된다. 이명박근혜 9년처럼 탈민주화(또는 역민주화)가 가능했던 것도, 이에 맞서 촛불혁명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41%의 투표율로 대통령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2~3%까지 떨어졌다 해도 국민의 반 이상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다. 경제적으로 뚜렷한 결과를 내놓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노무현 죽이기에 앞장섰던 진보매체와 진보지식인·교수들이 '가난한 조중동 노릇'으로 되돌아간 것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촛불혁명에도 불구하고 41%에 그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이 말해주는 것이 변함없는 그들의 옹졸함과 비열함을 말해준다. 

 

 

번지르하고 잘난 체 하는 말과 글, 표정과 태도에는 질릴대로 질렸다. 그들의 레퍼토리는 추호의 변함과 발전도 없으며 완벽하게 틀린 것으로 증명된 마르크스의 추상적 예언에 갇혀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노동자가 단 한 번의 통합이라도 이룬 적이 없었고(한나 아렌트와 울리히 벡 등이 입증했다), 뉴딜정책 때의 노동자들처럼 전쟁 중인 외국노동자와의 단결이란 헛소리에 불과했다. 68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진보적 자유주의가 시민행동주의로 발전하는 동안 구좌파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든 이유가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이 노조를 파괴해온 과정을 다룬 《혁명의 만회》는 참혹할지언정 일부의 진실만 담고 있을 뿐이다.   

 

 

진보매체와 지식인·교수들이 이에 답하지 못하면 무식한 것이고 답할 수 있다면 위선자이거나 자신만 옳다는 근본주의자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에 몸담고 있는 30%의 저임금 노동자는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이라도 받았지만, 최소 150만 명(750만 명 중에서)의 중소상공인은 피해만 입었을 뿐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에서 그들의 피해를 보존해주는 것이 시급하지 않은가? 30만 명 민주노총 조합원을 위해 150만 명 중소상공인의 억울함과 피해를 모른 채 할 수 없는 것이 (일시적으로 끝날) 작금의 노동정책 후퇴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행보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리고 트럼프와 김정은이란 예상이 불가능한 두 명의 지도자를 달래고 설득하고 만나게 해서 결과(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를 끌어내는 시점에 이르면 노동정책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전 세계적인 수요 부족으로 내년 1사분기까지는 경제가 하강할 터, 그때까지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도 마다할 수 없다. 문프에게 노통의 참모처럼 뛰어난 인물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노무현 죽이기'에 이은 진보매체와 진보지식인·교수, 민주노총 같은 구좌파들, 자신만 고고한 척 하는 민변, 민주당 내의 입진보와 기회주의자들, 한국노총 같은 유사보수들의 변함없는 '문재인 죽이기'에 다수의 국민들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다. 문파처럼 진득하게 기다려주면 반드시 화답할 정권이 문재인 정부며, 신뢰의 정치로 전 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가짜와 껍데기들은 가라, 조중동과 자한당의 수구꼴통들과 함께.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카사바 2018.11.26 00:25

    좋은 글 고맙게 잘 보고 있습니다. 쓰고 계신 저서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8.11.26 00:30 신고

      감사합니다.
      내년 4월까지는 집필을 마치고 6~8월 중에는 출간할 것입니다.

  2. 늙은태양 2018.11.26 05:57

    잘보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문정부말기에 주가는 2,700 을 통과(내심 3,000 까지 가능하다봄)할것이라 확신하고,
    1인당 소득은 38,000 불 이상 달성할거라 봅니다.
    (내심 젖먹던 힘까지내서 40,000 불 달성했으면..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노통때 경제가 엄청 성장했음에도 사람들은 집값 상승만 이야기해서 그 빛이 바랜점이 많습니다.

    문정권은 노통을 잊는 제2 의 경제 중흥기가 될거라 확신합니다.

    • 늙은도령 2018.11.26 07:55 신고

      미국이 미친 짓만 하지 않으면 님의 예측에 가까이 갈 수도 있곘지요.
      세계경제가 하향세지만 내년 1사 분기만 지나면 경제가 호전될 수 있으면 그것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여려운 상황입니다.

  3. 언제나 희망 2018.12.31 18:38

    님의 예측대로 내년1사분기 지나면 세계경제가
    나아질것이라는 것에는 공감하기 어렵네요ㆍ
    그 반대가 될확율이 높다고 생각되네요ᆢ
    경제사이클상 하락예상 ㆍ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ㆍ미일 등 세계경제의 둔화ㆍ특히 중국경제의 둔화ㆍ국내경제의 성장동력상실ᆢ
    어느것 하나 좋은것이 없는데 뭘같고 좋아질거라는 것인지ᆢ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영세기업도 자영업자도
    근로자도 모두 안고 가야되는데 근로자들만 안고
    갈려고 무리한 정책을 펴니 나라경제가 더욱더
    쪼그라들고 있죠ᆢ
    특히 최저임금 무리한 인상ㆍ근로시간의 급격한
    단축ㆍ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없는 정책들ᆢ
    특히 경제무능ㆍ무능ᆢ
    이론은 좋으나 시기가 잘못되었습니다ㆍ
    지금 시행하고 있는 각종경제정책들은 실은 그나마 경제가 잘나가는 약 10 년정도 전에 시행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인데ᆢ
    안타갑네요ᆢ
    만약 당신이 기업을 운영하는데 매출은 줄고
    사업환경은 나빠지고있는데 근로자들의 임금을
    정부에서 무리하게 인상시키면 당신은 어찌생각하시요?
    답해 보시오 ᆢ

    • 늙은도령 2018.12.31 23:01 신고

      당신처럼 생각하면 대체 어느 시절에 올바른 조치를 하지요?
      통계수치를 다룬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책들을 보면 1973년 이후 세계 경제는 계속해서 하락했다는 증거들로 가득합니다.
      피케티는 그것을 진실의 영역으로 끌어올렸고요.
      그게 세계 경제의 현실입니다.
      약간의 반등도 거품으로 모두 다 판명됐고요.
      세계 경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공부하실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우리는 박정희 시대부터 지속돼온 고도,불평등, 과대 성정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20년 정도의 편차가 있을 뿐이고요.

      경제 무능이라고요?
      어디에 경제 무능이라는 지표가 나왔습니까?
      증거들 대주시면 제가 반박하는 증거들을 수두룩하게 알려드릴게요, 다른 글을 통해.
      기레기와 양대노총이 떠들어대는 헛소리에 넘어가지 마시고요.
      지금 문프가 하는 일은 임기 말쯤에 이르면 얼마나 좋은 정책이었는지 드러날 테니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고요.
      나대지 않으면 중간은 가니까.

      제 형제와 친구들, 선후배들이 재벌들의 임원으로 수두룩하게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도 현장에 대해 잘 알고요.
      그들의 얘기를 종합하고, 학자들의 분석, 통계청의 지표 등을 보고 판단하니 그렇게 알고요.

      세계 경제가 내년 1/4분기까지 하강할 것이라 했는데 뭔 상승을 얘기했다는 것이지요?
      하강이 그치면 그 파장이 6~8개월 정도 갑니다.
      더 이상 떨어지니는 않아도 나바지지는 않지요.
      경제지표 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지행지표로 사후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요.
      신뢰할 수 없는 경제학이지만 그것이라도 공부하시면 선행지표와 사후지표가 나와있으니 찾아보시고요.

      당신 수준에서는 나의 상대가 안돼요.
      장하준이나 신장섭 정도면 모를까?
      그러니 당신과 수준이 맞는 사람과 논쟁하세요.
      난 집필 때문에 정신없어서 이번 답글로 끝낼 테니까.
      이런 형편없는 수준의 질문에 답하는 것조차 낯뜨거워서 얼굴을 못들겠으니 그리 알고요.

 

이정렬 변호사님,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나기로 했습니다. 어제 시즌 마수걸이 골을 기록한 손흥민의 활약상을 지켜보다 잠에 드는 바람에 오후 2시에나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구 2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왔다갔다며 국가대표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 때문에 손흥민은 극심한 난조에 빠져 있었지요. 돈벌이에 혈안이 된 FIFA의 A매치 데이 동안 짧은 그러나 기량을 회복하기에 충분했던 달콤한 휴식 덕분에 특급 선수로 도약하던 당시의 기량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피로 누적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지요. 더 무서운 것은 피로 누적에 따른 스트레스의 증가입니다. 오늘 새벽 경기를 포함해 올시즌 딱 두 경기를 빼면 손흥민은 피로 누적에 따른 경기력 저하로 힘들어 했습니다. 연이은 낮은 평점과 정규리그 무득점이 그 결과였고, 그에 따라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쌓이는 것을 그의 플레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적료의 호가가 1,000억원을 넘나들던 상황에서 900억원대로 떨어지며 국가대표로써 거둔 위대한 성과를 좀먹고 있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손흥민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일치된 견해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2주 간의 꿀맛 같은 휴식 덕분에 숀세이셔널이자 숀샤인으로써의 손흥민이, 우리가 보았고 열광했으며 간절히 기대했던 손흥민이 돌아온 것입니다. 리그 첫 골을 올린 장면은 신계에 있다는 메시와 호날두를 머슥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18게임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온 전통의 강팀, 첼시의 최고 수비진을 상대로 환상적인 골을 기록했으니까요.

 

 

 

 

단 2주간의 휴식,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손흥민은 그렇게 상당히 힘들었던 인고의 시간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꿀잠에서 깨어난 후 언제나처럼 어머님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가볍게 목욕을 시켜드렸습니다. 어머님이 드실 점심을 준비하기 전에 (제가 잠든 사이에 문파들이 쏟아냈을 수많은) 트윗들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켰습니다. 특이하게도 맨 처음에 떠오른 트윗이 변호사님의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어.. 이게 뭐야? 궁찾사 대표와의 마찰 때문에 혜경궁 김씨 사건에서 손을 뗀다니?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도 궁찾사 대표가 수임을 해제했다니요? 고발인의 한 명인 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동시에 3,245명에 이르는 고발인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수임을 해제했다니요? 고발과 소송의 효율성을 위해 대리인의 역할을 하는, 그래서 그들의 희생에 무한한 경의와 한없는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존재의 근거조차 없는 궁찾사 대표라는 사람에 의해 수임이 해제됐다니요?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관련 트윗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관련된 트윗들에는 전·현직 민주당 대표가 밀어주며, 민주노총을 비롯해 정치적 힘과 전투력이 강한 단단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대선 때보다는 조금 떨어졌다 해도 여전히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이며, 무엇보다도 진보매체로 포장한 기레기들이 (광고를 매개로 한) 대변인 노릇을 자처할 정도로 살아있는 권력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있었고, 그래서 이변을 응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간의 뇌는 기쁨과 슬픔, 공포와 두려움 같은 온갖 감정을 조절해 생존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당시에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던 슬픔과 아픔도,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기쁨과 행복, 황홀함의 전율도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돼 무리없이 관리됩니다. 감정의 고양이 너무 커, 그래서 이성의 판단이 작동하지 못할 정도로 숨이 턱 막힐 정도에 이르면 극단적 선택을 취할 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뇌는 이성을 마비할 정도로 고양된 감정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되돌려놓습니다.

 

 

'어제 죽어간 모든 사람들이 애타게 보고 싶어했던 내일인 오늘'이 지옥처럼 다가오는 만성질환자나 그에 준하는 최악의 환경에 처한 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의 모토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제가 힘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고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진리의 영역에 들 수 있었던 것도 뇌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선택과 함께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뇌는 그렇게 생존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이것이 단 하나의 예외입니다. 궁찾사에서 일했던 문제의 실무자도 그 동안의 싸움에서 많이 지쳤을 것입니다. 믿기 힘든 검찰은 물론, 정부와 맞서도 승리하기 일쑤인 초대형로펌과 싸워야 하는 이정렬 변호사도 쌓이고 축적된 스트레스의 크기를 감히 예측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재명 군단이라는 어마어마한 적과 싸우면서 몸과 정신을 짓눌러왔을 스트레스의 연속(건강을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만큼의 연속된 스트레스)에 예기치 못했던 타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툼의 씨앗들이 자라고 있었을지 알 수 없고요. 진실이 무엇이던 문제의 실무자는 궁찾사에서 떠났고(뒤늦었지만 그 동안 고발인단을 대신해 싸워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3,245명을 대리하는 궁찾사도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정렬 변호사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지금부터의 싸움이 진짜이기에 혹시라도 모를 내부의 혼선이 있었다면 그것을 드러내 제거한 이번의 혼란이 새옹지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온 다음에 땅이 굳어진다 했듯이, 3,245명의 고발인들은 궁찾사와 이정렬 변호사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웠는 지도 모릅니다. 사건 수임비가 턱없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궁찾사 운영에 너무 방관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제안과 거의 모든 고발인들의 일치된 의견처럼 이재명과 김혜경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무기고를 추가로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추가고발인을 모집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진행했으면 합니다. 

 

 

투명한 공개를 원칙으로 궁찾사의 운영비도 모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시민의식을 내세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입니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이라는 악마의 시장논리는 공기와 물, 조망권 같은 공공재와 자연재는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가진 것이 많던, 대단히 적던 모든 사람들이 돈의 노예이자 목숨을 걸고 꺾어야 하는 적으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공공재와 가장 기초적인 생필품마저 돈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고 경쟁이 심해지면 더더욱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제가 집필 중인 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이것인데, 민주주의의 위기나 종말론에 힘을 실어주는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이 권력을 잡거나 유력한 정당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지난 40년 동안 세계를 휩쓸어버린 신자유주의 합리성 때문입니다. 이재명이란 권위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표퓰리스트가 경기도지사와 유력한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지식과 지혜, 경험과 성찰의 면에서 형편없이 낮은 나꼼수와 그의 아류들이 난장판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맞다면, 이정렬 변호사도 상위 1%에게 하위 99%의 부와 기회를 이전시키는 '사탄의 맷돌'(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서 인용)으로써의 신자유주의 시장화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언제나 승자의 편'이라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소프트 전체주의에 굴복하지 않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사는 세상을 구축하는 것이 필생의 꿈이자 정치적 의제였고, 온 삶을 바쳐 실천했었고 하고 있는 노통과 문프를 존경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통과 문프가 그랬듯이, 이 정도의 고난은 극복하지 못할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집필에 들어간 2주 후에 간암이 재발(정확히 5년만에)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처음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별로 슬프지 않았고, 그래서 단 한 번의 화학치료로 간암을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극복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재발 진단을 받은 후 오히려 운동량을 늘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집필 때문에 빠른 회복이 필요하니까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인간의 삶이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그래도 생존을 위한 최강의 도구인 뇌가 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능히 극복해가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좋은 삶'을 이루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어.. 사이비종교의 냄새가 나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노통의 성찰은 수구꼴통은 물론 이재명 같은 표퓰리스트를 경계하기 위함이었고, 지금 3,245명의 고발인과 궁찾사, 이변이 실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좌파인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를 보면 참으로 멋진 문장이 나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바꿔버린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경계하며 했던 말인데, 이 시대의 청변 이정렬 변호사에게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정치적 지원도 받지 않는 우리 문파와 함께하는 힘겨운 여정의 끝에 모두가 바라는 성지가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힘 내십시오, 어떤 일에나 있기 마련인 어제의 논란은 툴툴 털어버리면서.

 

 

시민권은 그 내용이 전부 제거되고 나면 회원권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쥬로 2018.11.25 19:49

    훌룡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간암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8.11.25 19:53 신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전에도 한 방에 극복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솔직히 간암이 재발했다고 하지만 건강은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 초반까지 떨어진 이유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대표되는 J노믹스 때문이라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물론 그들과 비스무리한 진영에 자리한 자들의 비판논리를 들여다 보면 어의가 없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시장경제와 현장의 소리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에서는 그들의 무지와 무조건적 반대에는 분노는커녕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경제학의 아버지로 회자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경제학과 학부생도 읽는 기본적인 경제학원론이라도 살펴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국경제가 어려운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원인은 수출품목의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석유화학과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품목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원자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지라 이 둘의 슈퍼사이클 호황의 종료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본격적인 경기 하강을 말해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전부터 모든 나라의 정부와 대학, 연구소, 초국적 기업들이 입에서 단내가 나올 정도로 떠들어댔던 미래의 먹거리는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생태계 파괴 등의 부작용을 남기지 않고도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했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들은 정보통신산업과 엔터테인먼트산업, 세계경제를 말아먹은 금융산업만 키웠을 뿐 인류의 삶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제조업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생태계도 구축하지 못했다(로버트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를 참조하라).

 

 

인공지능과 유전공학, 나노공학, 뇌과학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도 기존의 산업들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에 불과해서 세계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산업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아인슈타인 같은 초천재들이 쏟아져나오지 않는 이상 4차 산업혁명이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지도 못한 채 기존의 일자리마저 씨를 말리는 역할만 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으로 등극할 것 같은 특이점주의자들의 허황된 주장처럼, 인공지능이 2045년에 특이점을 돌파하면 풍요는커녕 인류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릴 수 있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하지 못한다 해도 일정 수준의 발전만으로도 인류를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가 인공지능을 생각하며 언제나 암울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그것의 발전 대비 인간의 지혜와 성찰은 계속해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공황이나 금융위기처럼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 두 품목의 슈퍼사이클 호황은 사상 최고의 수출액과 경상수지 흑자 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인이었고, 그것이 끝남에 따라 한국경제가 나빠진 것도 당연한 결과다. 세금이 많이 걷힌 것도 두 개 품목의 슈퍼사이클 호황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미친 감세가 없었다면 더욱 많은 세수가 걷혔을 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내수를 살리거나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을 고려할 때, 문재인 정부가 경제가 나빠지는 것을 1년 간의 재정확장 정책으로 막기를 바랐다면 그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에 다름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는 것은 국민이 감내해야 할 피해가 지금보다 더욱 많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도와주지 못할 망정 방해라도 하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을 도와주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 모두가 몇 년은 가난해져도 경제체질을 확실하게 바꾸는데 동의해준다면 약간의 희망이라도 생기기는 한다. 헌데 동의해줄까?

 

 

그것이 안 된다면, 미국과 영국, 일본과 유럽연합의 중앙은행처럼 한국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서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마저도 한국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다른 국가나 거대기업, 금융업체, 펀드들이 사주지 않는다면 완전한 패망으로 가는 길이다. 따라서 경제의 하강곡선을 상승곡선으로 바꿀 묘수를 찾는 것이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힘들다. J노믹스 비판자들이 한국과는 달리 경기가 좋다는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미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천문학적인 확장재정을 펼칠 수 있는 중앙은행을 두었고, 자국화폐가 기축통화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중앙은행이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계속해서 돈을 찍어냈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가 살아난 것이지ㅡ정확히는 대침체의 지속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지 양국 정부의 특별한 경제정책이 먹혀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구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시장이 가능해진 이후, 전 세계적인 차원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란 죽어라고 돈을 찍어내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다. 저개발국가의 성장처럼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면 약간의 경기변동은 일어나겠지만, 일개 정부가 경제를 살렸다 죽였다 할 수 있는 시대는 20세기로 끝났다. 

 

 

피케티와 급진적 진보좌파들이 주장하는 (필자도 한때는 주장했고 희망도 해봤던) 초고율의 누진세와 글로벌부유세, 의미있는 수준의 금융거래세 실시 등은 모든 인류가 동시에 깨어나 정치적 합의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실현불가능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을 동시에 일이키는 것이 남아있는데, 주요 노조들이 기득권화 했거나 신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해 철저하게 해체된 현실을 고려하면 피케티의 주장보다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뉴딜정책을 통해 1929년의 경제대공황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미국도, 케인즈주의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한 유럽도 증세가 아닌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신자유주의 40년은 세계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개별 정부의 차원에서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영국, 일본, 유럽연합 등에서 풀어놓은 돈이 거의 2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붕괴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있었지만, 그것 만큼 각국 정부가 처리해야 할 빚의 규모를 생각하면 현상유지도 불가능한 시절로 들어설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북한이라는 미지의 시장이 남아있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뚜렷한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이 남겨놓은 각종 부실들ㅡ대표적인 것이 폭증한 가계부채다ㅡ도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를 들여오는 바람에 수출과 내수 양면에서 받은 중국발 타격이 한계치에 이른 시점에서 트럼프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돌입하는 바람에 한국경제의 부진이 더욱 심화됐는데,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무역전쟁이 확장되는 것과 표퓰리즘의 득세로 보호무역의 파고가 높아지는 것도 문재인 정부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겹쳐 한국경제가 나빠진 것이며, J노믹스를 비판하는 자들이 조금만 노력했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던 현장의 목소리이자 내수와 수출의 냉혹한 현실이다. 각종 통계가 나쁘게 나온 것은 당연하다.

 

 

거시경제학적으로 보면 신자유주의 40년(나라마다 10~20년 정도의 편차가 있다.) 동안 세계경제는 상위 20%에게는 혜택이 돌아가는 대신 하위 80%에게는 피해를 전가하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넓혀가는 기간이었다. 상위 20%에서도 상위 1%가 가져간 것이 전체의 80%에 이르렀을 정도로 상류층에서도 빈부격차가 더욱 커졌다. 대한민국도 이런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을 종식시킨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의 취임으로 잠시동안 잊을 수 있었던 참혹한 현실이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예산으로 구조화된 경제침체에 맞서야 했던 6개월을 빼면 문재인 정부가 실질적 결과를 낼 수 있는 기간도 1년에 불과했다. 경제침체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1년만에 이런 추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정부란 인류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지표가 나쁘게 나온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다. 두 개의 열광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니 1년 정도 묵혀두었던 문제들이 여전히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그것이 모여 J노믹스에 대한 비이성적 비판으로 터져나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이루어진 J노믹스는 쓸모 없는 학문으로 전락한 경제학에서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좋은 아이디어이고 모든 나라의 정부가 따라야 할 모범적인 경제정책임에도 노무현의 참여정부 초기를 연상시킬 정도의 비판에 직면한 데는 이런 이유들이 선행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들도 이런 구조적인 원인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니 기본적 논리도 갖추지 못한 무식하고 억지스러운 비판들이 득세할 수 있었고, 동조하는 국민들이 늘어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J노믹스의 3개 축 중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고 있는 성장주도성장은 모든 경제학이 추구하는 핵심 목표로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절대과제로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강력하게 추진해도 눈에 띠는 성과를 보여주기 힘든 과제다. 그만큼 계층간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노동자와 가계의 소득을 올리는 것을 빼면 문재인 정부가 존재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저항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의 결과로 지지율이 하락한다 할지라도 뚝심있게 밀고나가야 할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이런 절대적 당위성에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에 집중 포화가 퍼부어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90%에 이른다는 실언을 한 것과 중소상공인의 격렬한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를 동시에 교체한 것 등에서 유추해볼 때 소득주도성장 퍼부어지고 있는 비판의 기저에 자리한 것이 무엇이지 어림짐작 할 수 있다. 

 

 

먼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왜곡된 것이며, 그 때문에 대단히 악의적이라는 사실부터 분명히 밝힌다. 불평등과 양극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 이명박근혜 9년의 아우성들과 지난 대선에 나온 후보들의 공약들을 돌아보면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대폭 올린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이 나빠졌다며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대폭 올리지 않았다면 비판의 강도는 지금보다 더욱 높아졌을 것이기에 작금의 비판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진보학자의 경제서적을 광범위하게 파고든 필자조차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대폭 올리고 난 다음에야 자영업자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지점들이 일본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저임금 인상(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다룬 진보학자의 어떤 경제서적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둘을 동시에 다루지 않은 이유를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고, 진보매체에서도 이런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런 부작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에고 힘들어. 오늘은 여기까지).

 

 

 

 

인구 1억 2천만 명의 일본을 자영업(또는 편의점)의 나라라고 하지만 인구 5천만 명에 불과한 우리와 비교하면 사정이 좋은 편이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대리점의 최소 이익을 보장해주고 대리점 직원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등 자영업계의 환경과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우리보다 좋은 편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기침체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주요 선진국의 지위를 놓치지 않는 이유(핵심은 제조업)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최소한 경제사회적 경쟁력만 놓고 보면 일본이란 나라는 정말 불가사의한 나라다).

 

 

터키, 그리스, 멕시코 다음으로 자영업자가 많은 대한민국의 해당 종사자는 750만 명에 이르는데, 이들을 대표하는 이익집단과 정치적 영향력 부재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750만 명 중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를 입은 인원도 적지 않지만 일자리를 잃는 등 직격탄을 받은 인원은 150만 명 정도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조합원수가 100만 명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많은 숫자라 할 수 있다. 

 

 

2년 연속 2자리수의 최죄임금 인상은 더는 미를 수 없는 시대의 과제였고,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증대를 위한 필수과제였지만 자영업에 종사하는150만 명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결과로 다가왔을 터였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경제에 관해서는 구좌파에 가까울 정도로 급진적이어서 최저임금 관련 연구들을 섭렵했던 필자도 한국의 자영업 상황이 열악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까지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렸는지는 몰랐다.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와 관련된 각종 연구에서 목표한 액수를 단기간에 달성했을 때 자영업계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얼마나 클 지에 관해서 다룬 연구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비한 진보매체를 비롯한 기레기들의 천국인 기성언론에서도 이런 내용을 다룬 적도 없었다. 양대노총이 대변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노동자(노조에 소속된)의 입장에서만 최저임금 문제를 다루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영업자 상당수와 알바 자리마저 잃은 일부 청년들의 저항에 직면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영업 담당 비서관을 신설한 것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령탑을 교체하겠다는 대통령의 결심이 이때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 장하성 실장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계의 피해를 제대로 보고했다면 문 대통령의 실언도 없었을 것이고, 서둘러 자영업 담당 비서관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급진적 진보에 가까운 장하성 실장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접근방식에서 현실주의적 진보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와 궤를 달리하는데, 이런 차이가 자영업의 피해를 과소평가하는 실수로 이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장하성 실장의 접근법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계의 피해를 예상해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두지 않았던 것이 실책이었을 뿐, 그의 접근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와 청년들의 반발에서 보듯이 장하성 실장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고, 이들의 반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김동연 부총리의 책임도 줄어들지 않지만, 그 덕분에 비정상적이도 너무나 비정상적이었던 자영업계의 문제점과 중소상공인의 열악한 처지가 국가적 화두로 떠올랐다.

 

 

위기가 곧 기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자영업 담당 비서관 자리를 신설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자영업계에 전화위복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가 성립됐다. 언론과 함께 대한민국을 말아먹는 최악의 집단인 국회(특히 시대착오적 경제관과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자유한국당)에서도 10년 동안 묶어두었던 임대차보호법과 카드수수료 인하, 프랜차이즈법 일부 개정 등 자영업계의 숨통을 틔워줄 법률들을 통과시켰다.

 

 

이것만으로도 많이 부족해 가야할 길이 상당히 멀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노동자와 자영업 종사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도깨비방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모든 국민과 분야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순차적인 방식으로 해결해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재벌 오너와 경영진과 비교했을 때만 사회적 약자이지만, 대통령과 장관들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정치적 힘은 어느 집단에도 뒤지지 않는 강자다. 30%의 비정규직 조합원을 빼면 나머지 70%의 조합원은 사회적 약자에도 속하지 않는다.

 

 

당장은 기본도 갖추지 못한 비판들의 홍수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겠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계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들이 본격적으로 말을 하게 될 2년쯤 후에는 지지율 상승이라는 대반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의 의석수로는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일자리 정책(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루겠다)을 밀어붙일 수 없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이 다가올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나 2/3 이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단기적 소득 증대 및 일자리 정책이라도 펼쳐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발상의 전환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청년일자리와 관련된 필자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별도의 글로 다루겠다).     

 

 

궁극적으로는 개헌을 통한 보편적이고 누진적인 증세가 이루어져야 한다. 토지공개념과 이익공유를 더욱 강화해서 공정경제에 이를 수 있는 이익공유제와 초과이익환수제, 금융거래세, 보유세 인상 등도 뒤따라야 한다. 노조가 정말로 필요한 중소·중견기업과 정보통신 관련 기업 등에서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노동관계법도 개정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시장가격표를 붙여 인간의 영혼과 신앙까지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경제화를 밀어붙이는데 성공한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인류는 어떤 성장동력도 마련하지 못한 채 19세기에 준하는 불평등과 양극화만 늘려왔을 뿐이다. 

 

 

필자는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한다. 그들의 주장은 대단히 이상적이고 인본주의적이지만 추상의 차원에서나 가능하고, 잘못된 예언 때문에 문제만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성을 기준으로 할 때 자본주의를 대체할 가능성은 제로라 할 수 있다.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는 그런 면에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못지 않은 성찰을 보여준 책이며, 디지털 세대가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토마스 프랭크가 보여준 성찰에 주목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과 경제가 좋은 것이지, 디지털기술로 중무장한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골드만삭스, JP모건, 시티그룹 등처럼 일자리는 만들지 않으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빼돌리는 초국적 기업들이 좋은 것이 아니다. 이들 때문에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자유의 왕국'의 정반대에 위치한 '초격차 사회'의 도래를 운운하게 된 것이며, 현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미래학자들이 기본소득 도입만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헛소리를 떠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대마초 유통을 합법화하는 나라와 도시가 늘어나는 것에서 보듯 인류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은 모습을 꼭꼭 숨긴 채 인류의 실족을 바라만 보고 있다. 관련된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인류의 축복이기보다는 저주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인류의 미래먹거리를 제공할 새로운 성장동력이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과학기술과 뇌의 발전을 기준으로 인류의 진화사(창조론으로 봐도 똑같은 결론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를 살펴보면 21세기를 끝으로 인류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류는 진화의 최종단계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갈수록 강해진다. 향후의 과학기술 발전도 그런 가능성을 높여주는 방향으로만 진보를 이루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필자도 상당수의 지식인처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포획되거나 대책없는 저항만 외치는 표퓰리즘 정치가 득세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나마 J노믹스가 성공한다면 비관적인 미래의 도래가 일정 기간 미뤄질 수 있다. 루소의 바람처럼 우리 모두가 신이 될 수 없기에 현기증 나는 이상과 척박하기 그지없는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조합과 지혜로운 타협을 통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자체로 노무현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 두 분이 우리의 지도자였고 지도자라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며 축복이다. 자유한국당에 포진해있는 수구꼴통들과 민주당과 정의당에서 암약하고 있는 좌파꼴통과 입진보들만 솎아낼 수 있다면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이 J노믹스를 통해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문재인 대통령만큼 전 세계적 존경의 대상이 된 지도자는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존경을 받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비견될 만큼의 임펙트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 힘이 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리당략과 진영 논리, 정치적 야심에 빠져 문재인 대통령을 헐뜯는 김성태와 김진태, 이언주 등의 망언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고 있는지 말해봐야 내 입만 더러워질 뿐이다.   

 

 

이명박근헤 9년의 역주행을 끝장낸 촛불혁명은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표퓰리즘의 득세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시민자치와 정치혁명(민주주의의 핵심)의 위대한 모델을 제공했다. 양극화된 한국정치와 갈등만 유발하는 기성언론, 타락할 대로 타락한 사법부가 최후의 장애물로 남아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는 이것들마저도 돌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촛불시민이 여전히 깨어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J노믹스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청와대와 정부의 고위관료와 공무원들이 제 역할만 제대로 한다면 필연코 성공할 것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도 경제성장을 포기하자는 미친 소리를 공약으로 내걸 리가 없다. 성장 포기는 가난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어느 유권자가 그들에게 표를 주겠는가(민주주의의 치명적 단점). 

 

 

이제는 이런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류는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을 무조건적인 선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며 작금의 위기를 자초하기에 이르렀다(현대의 천체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은 지구는 먼지 정도에 불과하며, 인간도 음식과 비교할 때 원자의 배열에서만 다른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청춘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자식세대도 나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그런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났었다. 인간을 신이 창조했던, 원숭이에서 진화했던 인류의 발전은 여성의 희생을 담보로 지적인 발전을 거듭해왔고, 그 결과가 지구온난화와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동반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극대화였다. 그 결과 인류의 멸종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이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경제적 풍요와 삶의 편리함만 추구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라면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물론 이 글도 초고입니다. 첨삭을 거쳐 책에 포함될 것인데, 그때는 보다 완벽한 논리를 펼쳐보이겠습니다.) 

  1. 언제나 희망 2018.12.31 18:12

    당신의 글은 상당부분 공감되는 부분이 많으나
    경제부분에서는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ㆍ 소득주도성장중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에는 반대합니다ㆍ
    당신은 현장경험이 전혀없는 몽상가에 불과합니다ㆍ 최저임금을 주는곳은 영세기업이거나 소상공인들이 대부분입니다ㆍ
    경기가 활성화되어 매출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증가가 따라가지 못할때 정부가 개입
    하여 인상시키더라도 그 것을 감내할 수준이 되면
    임금상승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날수 있습니다만
    지금처럼 내수경제가 하락하고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데 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타나서 몰가상승ㆍ고용감소ㆍ근로자의 실질임금 감소ㆍ자영업자 영세기업 몰락 ᆢ 등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수 밖에 없는것입니다ᆢ
    현장경험을 좀 하고 글을 쓰세요ᆢ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치 정보를 이용할 수 있지만, 기존의 관심이나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이런 경험 속에서 쉽게 휘둘릴 것이다.

 

                                                                                           ㅡ 피파 노리스의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에서 인용》 

 

 

 

이명박 정부가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를 모두의 본보기로 삼아 정부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 했을 때 수많은 논객들이 사이버 망명을 택했다. 언론 장악과 대규모 종편 허용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한 정부 비판이 줄어들지 않자 당시의 대표적 논객이었던 미네르바를 잡아들였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헌법적 권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막장의 수준까지 치달으며 국민을 협박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논객들의 대규모 사이버 망명이라는 놀라운 실적도 올릴 수 있었다. 

 

 

그 이후 아고라는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한 저항의 장소이자 시민의 토론장으로써 크게 위축됐고ㅡ또라이 기질이 강한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이런 폭력적 탄압에 맞서 논객의 길로 들어섰고, 여전히 용감한 소수의 논객들은 자리를 지켰지만, 그것으로는 미네르바와 망명한 논객들의 빈공간을 채울 수 없었다. 그들을 대신해줄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다. 이명박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던 수많은 국민들은 누군가 나와 막힐대로 막힌 가슴을 뚫어줄 통쾌하고도 시의적절하며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주기를 바랐다.  

 

 

 

 

바로 이때 질식사할 것 같은 대중의 시대적 갈증과 욕구를 정확히 꿰뚫은 4명의 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법적 제약을 받지 않는 신기술을 활용해 유쾌·상쾌·통쾌한 난도질을 펼칠 수 있는 사이버 전사들이었다. 종횡무진하게 활약할 그들은 향후 10년의 언론 지형을 뿌리 채 뒤흔들 난세의 영웅들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손석희의 JTBC만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었던 이명박근혜의 역주행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화끈하고 노골적으로 풀어낼 것이었고, 특별한 것들을 내놓지 않아도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와 추종자들을 양산할 시대의 대변자(또는 빨대)가 될 터였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엄청난 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절망하고 분노한 대중에게는 놀라울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인적구성으로 이루어진 나꼼수가 이때 등장했다. 대한민국 상공을 떠들며 아우성을 치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들이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되지 못한 울분과 분노, 적의였으니 이를 눈치채지 못할 사람들은 없을 터였다. 분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었고, 누구든 치고나오면 그것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대중적 열광을 독차치할 상황이었다.

 

 

서울 한 구석의 벙커에 4사람이 모였다(처음에는 3명). 그들 중에서 디지털 공간의 자유주의적이고 불손하며, 거칠면서도 평등주의적인 성향을 대표하는 김어준은 음모론처럼 '바이러스성 콘텐츠'를 양산하는데 도를 튼 대가이자, 수많은 이슈 중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것을 귀신처럼 골라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적절한 만큼의 육두문자를 사용하고 <닥치고 정치>를 통해 지저분한 과거를 세탁하는데 성공하고 친노이자 친문(문재인 이사장을 미래의 지도자로 선점한 것은 대단히 영리했다)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등 대중의 마음을 홀릴 선동가적 영웅의 조건들을 두루갖추었다. 

 

 

주진우 기자는 탐사보도의 대가(주구장창 그것만 했기 때문일까? 그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일까?)로 알려져 있었으며, 특히 이명박근혜의 추적자로 유명했고, 그로부터 확인하기 힘들지만 대중의 관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이슈를 제공할 수 있었다. 기성언론의 기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장기 추적기는 그만의 장점으로 부각되며 대중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다. 보수적 성향의 구좌파로 분류되는 김용민은 개혁주의 성향의 기독교인이자, PD를 했던 경험으로 팟캐스트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인 정봉주는 대중이 듣고 싶은 기성정치의 내밀한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호기심을 낚아챌 수 있는 보물창고였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부의 정치탄압 희생자라는 상징성은 나꼼수의 저항적 상징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의 대중언론사에 다시 나올 수 없는 완벽한 조합이 탄생했고, 거칠 것 없는 그들의 입담과 폭로, 조롱, 가십거리의 양산과 무차별적인 폭로는 갈수록 축소되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풀어주었고, 그들을 열광케했고, 수많은 아류들을 창출했다. 

 

 

메신저와 메시지의 완벽한 조합을 이루어낸 나꼼수의 최대 장점은 정알못은 물론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신물이 난 대중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쉬운 언어와 적당한 욕설로 이명박근혜의 정치적 퇴행을 까발리고 희화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입을 거치면 반투명한 장막에 가려있던 한국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이 저잣거리와 거실, 자신의 방에서도 얼마든지 회자될 수 있는 안주거리와 식재료로 전환됐으니 막장드라마보다 막장정치가 재밌다는 분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명박근혜 9년이란 막장정치와 비정상의 연속이었기에 막장에 가까운 막말과 욕설, 음모론을 쏟아내면서도 대중들이 접근하기 힘든 현실정치의 뒷얘기를 안주처럼 곁들이면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이 매일같이 쏟아내는 사이다 발언은 그것에 담겨있는 정보의 수준이나 평론의 질과 상관없이 대중들의 갈증을 완벽하게 풀어주었다. 그들을 지지하고 추종하는 대중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꼼수의 최대 공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모든 개인에게 '1대 1', '1대 다'로 접근할 수 있는 쌍방향 디지털기술을 이용해, 대단히 쉬운 언어로 정치공학을 풀어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정치의 일상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 한 수많은 아류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공은 가히 대중 동원에 성공한 정치혁명과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들은 대중의 영웅이었고 진정한 대변자이자 분노한 감정의 배설구였다.

 

 

남꼼수의 공은 이것 말고도 상당히 많다. 그들에 대한 대중의 사랑과 열광, 존경과 추종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해낸 것으로 인해 그런 영광을 누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그들은 대중을 지배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지배하는 위치까지 올라갔으며, 군림하려 하지 않았으면서도 군림하게 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 벙커에서 공중파 라디오를 거쳐 (잠시였다고 해도) 지상파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거둔 성공에 대한 합당한 대가였다.  

 

 

검증도 팩트체크도 받을 필요가 없었던 그들은 더 올라갈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들은 그렇게 권력화되어 갔다. 지배하려 하지도 않았고 군림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올라간 높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권력(정확히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에 물들어갔고 적극적으로 즐겼다. 그들에 열광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렀기 때문에 수많은 정치인이 그들을 호출을 기다렸고, 노통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이해찬 같은 유력 정치인도 그들의 손을 잡아야 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김어준이 대단히 불쾌하게 진행했지만, 문재인 후보까지 선거 유세의 일환으로 그와 정봉주가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해야 했으니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다. 나꼼수의 영향력은 모든 정당을 넘어 정부 고위관료에게까지 미쳤으며, 그 모든 것이 권력화하는 과정의 비정상적 징후들이었다. 성남 시장에 불과했던 이재명이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적방송으로 시작한 나꼼수가 이제는 현실정치에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언론권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수백만에 이르는 지지자와 추종자들 때문에, 그들은 킹메이커를 자처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권력을 쌓고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 권력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는데, 그들은 달콤하지만 과유불급이었던 권력에 취해 자신을 경계하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팟캐스트 시절에는 작은 에피소드로 지나칠 수 있었던 실족들이 늘어났고, 권력화의 과정처럼 쌓이고 축적됨으로써 폭발력이 가중됐다.

 

 

김어준 총수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것도 작은 실수와 잘못들이 연발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들에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해적방송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음모론과 예언이 틀렸다고 사과할 일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원래 틀리기 일쑤인 것들이어서 사과할 필요도 없었다. 김어준이 늘어난 영향력에 때문에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선 이후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에 대단히 조심했지만 음모론자 특유의 실수와 잘못까지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영향력이 살아있는 권력으로 자리잡은 뒤라 그런 실족들을 예전처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들로 치환해버릴 수 없었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그들은 권력화했고, 이슈를 좌우할 만큼 실질적 영향력도 커졌기 때문에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유명한 격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것은 필연의 과정이었고, 모든 정치역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 권력의 영욕사였다.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친 김용민의 막말사건부터 김부선과 얽혀있는 주진우와 김어준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에 이어, 정봉주의 부끄러운 퇴장까지 나꼼수는 더 이상 이전의 나꼼수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재명이 결정타였다. 그들은 하자로 넘쳐나는 이재명을 차기주자로 키워왔기 때문에 그에게 불리한 모든 증거와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을 감쌌고, 그들에 열광했던 일부 지지자와 추종자들에게 역공까지 취했다. 감당할 수 없는 권력에 취하면 사리판단이 흐려지기 마련이며, 힘들고 어렵던 시절의 초심이란 기억에서 삭제시켜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 김어준 사단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권력의 사유화가 나꼼수 멤버를 궁지로 내몰았다. 

 

 

적당한 욕설과 함께 쉬운 언어로 풀어낸 현실정치가 정치의 수준마저 낮춰놓았다. 서민의 언어로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정치와 민주주의, 시민 의식, 시대정신, 무엇보다도 사람 중심의 원칙과 상식을 풀어낸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와 민주주의, 시민의 수준을 몇 단계나 높인 것에 비해 나꼼수는 그들이 사용하는 욕설과 언어의 수준 만큼 정치와 민주주의, 시민의 수준을 낮춰버렸다. 나꼼수의 역할이 예전과 같을 수 없음은 이런 현실적 결과들로부터 파생한다. 



미국의 셧다운 사태, 영국과 유럽의 노딜 시나리오, 한국의 국회 공전 등 전 세계적으로 민주적 토론과 정치적 절차를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불가능해진 것도 나꼼수로 대표되는 팟캐스트와 홍준표 등으로 대표되는 유튜브방송이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싸움만 부추길 뿐 민주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과 특별한 관련도 없는 이데올로기나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공격하는 행태들이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해야 할 정치를 양극화로 몰고가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등에서 힘겹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해도 양극화된 국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기 일쑤다. 국민이 갈갈이 찢겨 있으니 진영논리와 당파적 이익, 자신의 재선만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삶을 높여주는 법률은 통과시키지 않는다. 



개헌과 공수처, 최저임금에 관한 얘기 할 것. 


 

그리하여 나꼼수의 역설이 현실화 됐다. 권력화를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던 자가 권력화의 길로 들어서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는 역설!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은 당사자를 몰락시키는데 나꼼수의 리더였던 김어준 총수도 똑같은 저주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 김어준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그들의 영향력도 상당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어 김어준 총수가 이번 위기를 극복해낼 수도 있다. 민주진보 진영에서 김어준이 할 수 있는 일이 넘칠 정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힘든 작업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대단히 힘든 작업이다.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몇 단계 높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김어준을 비롯한 나꼼수 멤버가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지지자와 추종자들이 그들의 변화를 원하지 않을수록 나꼼수의 역설이 말을 하게 된다. 그들의 공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변화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꼼수의 역설은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보라고 하는데, 김어준과 주진우, 김용민과 정봉주가 그들의 성공을 이끌어낸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벗어나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변화를 선택하려고 할까?

 

 

필자는 부정적으로 본다. 변화된 나꼼수는, 다시 말해 보다 세련되고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하는 나꼼수는 대중이 열광하는 나꼼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명과 그들 간의 관계가 얼마나 밀착돼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재명이라는 악재를 적절한 수준에서 손절매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줄 사람들이 그들의 지지자나 추종자이니 역으로 이용해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그들의 지지자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구태여 변화를 택할 이유도 부족하다. 이재명의 정계 퇴출에서 최고조에 이를 나꼼수의 역설이 나꼼수의 변화를 담보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보는 변화란 단지 자신에게 합당한 정도의 영향력과 권력으로 재편되는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따라온 권력을 내놓을 사람도 없다. 이재명이 악착같이 싸우며 자신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적절한 때에 그와 절연하면 그만이다. 그 동안 이재명과 관련된 온갖 논란에 침묵과 회피로 일관했던 이유와 그를 변호해주었던 이유를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풀어낼 수도 있다.

 

 

필자가 말한 나꼼수의 역설이 민주진보 진영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들의 지위를 그들의 영향력에 맞는 적절한 위치로 재조정할 것은 분명하다. 나꼼수의 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어쩌면 멋진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정치 수준은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높아졌기 때문에 그들의 반전이 어디까지 이루어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은 나꼼수의 시간이 아니라 나꼼수 역설의 시간인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까지는 김어준과 나꼼수 멤버가 질문을 던졌다면 앞으로는 그들을 향해서도 질문이 던져질 것이다. 이를 테면 '극문 뒤에서 웃고 있는 작전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그런 저급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프의 지지율이 떨어짐에도 기승전이재명만 떠드는 가짜 문파가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지? 왜 다른 정치인이 아닌 이재명이어야 했는지? 잘못한 것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노무현을 정말로 존경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팔아 성공의 열쇠로 사용한 마케팅 전략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물을 것이다. 그것이 나꼼수 역설의 또 다른 핵심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꼼수에 대한 중간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을 계속해서 지지하거나 신뢰하더라도, 그들을 더 이상 지지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한국정치와 언론사에서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그것에 어떤 시대적 의미가 있었고, 한국정치와 언론에서 그들의 명과 암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때다. 질문을 던질 뿐, 질문은 받지 않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며, 지위와 역할에 걸맞는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본격적인 결과를 내놓아야 할 시점이고, 그것이 곧 총선의 결과로 이어질 터, 싫던 좋던 그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칠 나꼼수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가 지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김어준의 모토가 '쫄지 마, 씨바'였으니 자신과 동료에 대한 중간평가에 쫄거나 불편해 하지는 않으리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 글은 초고입니다. 그래서 거칠고요. 나꼼수에 대한 자신의 견해, 많은 분들이 밝혀주시면 수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좋은글 2018.11.23 23:55

    최근 김어준과 나꼼수일행들에 대해 가장 심도있고 정확히 분석해주셨습니다 박수보냅니다

  2. 검불향기 2018.11.24 06:26

    요근래 글이 올라오지 않아..죄송하게도 늙은 도령님도
    저 쪽으로 넘어가셨나보다 ㅠㅠ 했습니다..ㅠ 죄송합니다
    이재명지사건으로 혼란스러운 요즘입니다..그동안 내가 허상을 보고 산건지 귀신에 홀린건지 ...나름 방귀좀 낀다는 팟캐스터들도 역사학자 그리고 민주당의 참 괜찮다는 의원님들까지..그동안 내가 열광하고 지지하던분들이 맞나?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 마치 진짜 나만 모르게 모의한것처럼 한방향인지...
    정권을 바꾸고 문프를 당선시키고 민심마저도 자기들이 핸들링한다고 생각하는거겠죠..
    이피리부는 사나이들이 어디까지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고갈지 걱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8.11.24 18:50 신고

      원래 그러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고 인간의 한계입니다.
      저도 한 때는 나꼼수 팬이었으니 자책하실 필요없습니다.
      덕분에 한 단계 더 성숙된 것이지요.
      지금은 거저먹은 자들과 가짜들을 골라내는 시기입니다.

  3. 스티브 잡스 2018.11.24 15:41

    스티브 잡스와 이명박의 은혜로 졸부가 된 그들.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이동형 푸나.
    그러나 이제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적이된 특이한 케이스임.

  4. 김어준 2018.11.25 01:46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늙은도령님께서 애독자들의 견해를 물으시니 도령님의 글을 항상 기쁜 마음으로 읽는 저도 한말씀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적어 봅니다. 저는 나꼼수의 팬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태도가 본질이다라는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김어준의 권위적인 태도에서 권력에 연연하는 본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욕설도 걸죽한 저잣거리 민심이라기보단 좌파지식인 워나비의 ♪♩♫마이웨이식 허세가 느껴져서 그리 통쾌하지도 않았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음모론은 재미는 있었으나, 음모론이란 원래 비판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게으른 악성 종양같은 것이죠. 좋아하고 존경할 수 없는 대상에게 열광을 보내긴 어려웠구요, 사안에 따라 김어준이 우리쪽에 유리하게 방향을 잡고 갈 때나 응원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도령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이유 때문에 일종의 채무감을 가지고, 깊숙히 올라오는 비호감보다는 의무적인 호감을 느껴 보려 노력해 왔었는데 지금은 더이상 그런 노력이 요구되지 않으니 좀 후련한 감도 있습니다. 그 당시엔 유용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거추장스럽게 된 걸림돌 정도로 생각합니다. 시민권력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지요.

    • 늙은도령 2018.11.25 01:56 신고

      저도 나꼼수를 들었던 이유는 제가 접근하기 힘든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지요.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아니면 듣기 힘든 정보를 듣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들이 권력화되면서 그런 것마저 의미없어졌습니다.
      '태도가 본질이다'라는 말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태도에는 그 사람의 본성이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갈수록 정치의 수준이 떨어지는 현상 때문입니다.
      이제는 민주당 정치인마저 막말을 쏟아냅니다.
      서민에게 다가가기 위함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낮춰 쉽게 해먹기 위함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그런 이유들로 해서 나꼼수 역설을 썼습니다.
      인류와 민주주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진영논리를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 종말하기 직전입니다.

      대단히 보수적 인식이지만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다시 말해야 합니다.
      물질주의에서 벗어나야 하고요.
      진보좌파 비판도 그래서 할 생각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19세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너무나 변했는데 그들만 요지부동입니다.

  5. 만나킴 2018.11.25 02:41

    최근 행동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지사에 대해 어떤 발언과 제스추어를 취했는지 지금 글로는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네요. 아무튼 굉장히 명확하게 전체를 파악하고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8.11.26 02:06 신고

      책을 낼 때는 그 부분도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4개월 넘게 그들의 방송을 듣지 않아서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6. 아테나 2018.11.30 21:08

    며칠전 뉴스공장에서는 노조의 고용세습 요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습도 보이더군요.
    전과4범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에 버금가는 헛소리라 생각되는데, 이 부분도 짚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1 17:31 신고

      고용세습 중에 인정할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버리면 노조라고 할 수 없지요.
      완전한 기득권!
      현재의 한국 노조들의 현주소입니다.

  7. 좋은글 2018.12.01 07:43

    이명박시대의 거악에 저항하는것만으로도 선명성을 확보했기에 나꼼수는 지지를 받을수 있었죠 그 지지가 이제 권력이 되어버린 지금 나꼼수일파는 권력을 지키기위해 꼼수를 부려야만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거죠

  8. 좋은글 2018.12.01 07:48

    나는 꼼수다의 '나' 는 이명박였지만
    문재인 정권이후 방송권력을 가지면서
    나는 꼼수다의 '나'는 김어준이 되어버린것이 역설이죠! 이명박 김어준 이재명 셋이 트리오로 노래한곡 하시죠. 우리는 꼼수다 ~위아더 꼼수~

  9. 좋은글 2018.12.01 08:48

    나꼼수의 역사와 지정학적 공간의 상호성에 대하여 ㅡ

    1. 반지하 나꼼수 ㅡ반지하골방에서 서너명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서 이명박 싫어 열라 싫어 따위의 레파토리를 작게 은밀히 떠들어댔다 소비층의 규모도 작게 잡았기에.. 거칠고 자유분방한 말투와 음모론을 낄낄대며 작은 하수구로 슬몃 내보냈다 팩트이건 아니건 주워들었거나 전해들었거나 거대악을 씹고 흠집내는것만으로 재미있었기에 대중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대중들은 나꼼수에게 무엇도 요구하지않았다 그 말들이 진실인지 뉴스가치가있는지, 심지어 진중권이 '저널리즘이 아니라 너절리즘이다' 라는 공격을 해도 반격하지않았다 '무학의 통찰력이야~~'라는 쉬크하면서 겸손하면서 정통논객과는 싸우고 싶지않다는 스탠스를 유지했다

    '우리 말을 몇명이나 들어줄까'

    2.무대위로 오른 나꼼수 ㅡ수만명의 지지자 . 연대를 원하는 소수분파 그리고 단순 참가자들로 이루어진 여의도 집회. 나꼼수는 무대위에 오른다!

    위상이 한단 상승한다 반지하골방에서 단파라디오로 비밀지령을 접수하던 레지스탕트들이 그들을 하나로 집결시켜주고 이끌어줄 히어로를 영접하는것이다

    그무대위 김어준은 속으로 말한다 '진중권보고있나? 닥치고 정치하라니까 ! 독일서적에서 뽑아쓰는 어려운 말로는 이 대중들을 규합할수없는거야 . 보아라 무학의 정치조직역학을'.


    그리고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온다 장비 인건비 빼고도 꽤 이윤이 남는 이윤을 극대화한 공연이다
    상설공연장까지 만든다 이윤은 좀더 정기적이고 대규모로 확보된다 .만족이다. 성취다. 자신감이다.차기 정권은 이 힘으로 충분히 바꿀수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하다 이제 지속적으로 '잘 계몽하고 가르치면 돼' 박근혜정권의 밑바닥를 열심히 갉아대면 쓰러질것이고 차기 대선에 우리가 점찍은 후보를 세우리라! 그런데 최순실이 나타난다 나꼼수가 수년걸려 호미로 하나씩 파내려 했는데 최순실이 최신식핵무기 테블릿 노트르 박근혜정권을 순간붕괴시킨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후 촛불집회로 넘어오며 나꼼수는 촛불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쪽배정도의 지분으로 떠돈다

    '아직 우리 말빨 먹히고있어 문재인만 대통령 만들면 좋은 시절 올거야'

    3,공중의 귄세 잡은자 나꼼수 ㅡ문재인 대통령정권이 시작하면서 각 분야의 개국공신들은 서로를 축하하고 공을 더 주장하기도 하며 작은 분파로 갈린다 모든 정권이 그래왔듯. 나꼼수의 전리품은 공중파의 마이크를 잡는것이였다.
    반지하에서 무대위로 이졘 공중파까지ㅡㅡ여야 정치인. 지망생 .방송타서 책팔고싶어하는 맛칼럼리스트 .정치진출지향 변호사 들이 번호표를 들고 나꼼수 앞으로 몰려든다. 윈조멤버들은 각자 복잡한 탈락과 분화 과정을 거쳐 이합집산하고있고 상징성은 어중이가 구할이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시기 이후로는 나꼼수라 쓰고 어중이로 읽어도 된다
    어중이는 일개 국회의원쯤은 '알로보는' 파워와 기개를 가졌기에 용감하게 차기 대권주자를 낙점하고자한다 .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난다.성남에서 쌈잘하고 말잘하고 고기잘사주고 적당히 약점까지 있어서 쥐고 흔들기도 좋은 인물 게다가 민주진영에서 이친구처럼 학생운동이라곤 해본적없는 사람 만나기 힘들다 어중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대학시절 보스양복사입고 몇푼 벌었던 아방가르드 자유영혼였기 때문에 소위 정통 운동권인사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를 부르는 사람였기에ㅡ
    이 친구와는 짬짜미 하기 참 좋다 무대위에선 바른소리 시원한 사이다 연설을 하지만 선술집에선 ♩♫♩욕을 뱉어가며 천박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배짱이 척척 맞는다.
    어중이는 떠중이를 차기주자로 점 찍는다
    '씨바 이럼 최소 십년은 내 꼴리는대로 사는거네'

    '진중권? 누구더라. 요즘 방송에서 안보이던데 무슨 프로 패널한다고? 냅둬무슨 말인들 떠들라고 해 그 까짓것'

    이겼다 가졌다 그 연속성을 담보해줄자 이재명이다

    그런데
    그런데
    댐의 아주 작은 구멍에서 물이 새어나오나 했더니 여기서 갈락지고 저기서 틀어지고 난리가 아니다
    '별거 아닌데 호들갑들은.. 내가 막을게'

    어중이가 마이크를 잡는다
    '아ㅡ아ㅡ 주민 여러분 이거 별거 아냐 내가 다 고쳐 쓸게 이제 입닥치고 정치를 보기만해 한 열발짝 떨어져서. 땜의 균열이 안보이게 떨어지란 말야. 저기 말 안듣는놈들 작전세력이야'

    하지만 균열은 더 커지고 급기야 붕괴직전에 놓여있다 엄청난 혼란과 후폭풍이 발생할것이다

    이제 어중이는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을것이다

    '이거 다 니들 때문이야. 씨바 그나저나 대타자는 누구로 뽑아서 빨리 프레임을 가져가지.?'



    어중이...너무 높이 올라간거다

    • 늙은도령 2018.12.01 17:30 신고

      좋은 분석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제대로 짚어내요.

      어중이... 너무 높게 올라간 것이 문제였지요.
      감당할 수 없으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10. 좋은글 2018.12.03 03:48

    댓글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응원합니다

 

(상업적 정신에 매몰되면) 인간의 시야가 좁아지고 인간이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교육은 경멸 또는 무시당하고 영웅적인 기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런 결함을 보완하는 작업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ㅡ 아담 스미스,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에서 재인용

 

 

 

현재까지 이어진 주류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보수 진영에서 하늘처럼 떠받드는 아담 스미스도 사유재산을 이용해 교육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비판했고, 이런 움직임을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유재산권을 신이 준 불가침의 자연권으로 승격시킨 존 로크도 교육에 관해서는 상업적 이익에 이용되는 것에 반대했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도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개인의 이익 추구 행위로부터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보수주의의 원조인 이들의 책들마저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사유재산권 보호' 운운하는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파렴치한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그들의 무지함이 보수의 가치마저 말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관점에서 봐도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교육부의 지시를 거부하며 사보타지를 하고 있는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집단반발은 사유재산권 행사에 관한 자유주의적 권리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

 

 

국가로부터 각종 혜택(세금 감면과 시설 지원, 교사 월급 지원 등)을 받고 있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사유재산권의 일반적인 형태와 같을 수 없다. 이런 인류의 공통적인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사유재산을 사용해 이익을 취할 때는 타인의 권리와 재산에 피해를 주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않는다. 사유재산을 행사할 경우에도 그것의 결과가 타인의 권리와 재산에 침해를 가하면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비리와 집단반발은 사유재산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모든 영역을 이익 창출이 가능하도록 경제화하거나 시장화해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기로 약속한 평등한 권리(시민권과 의무교육 포함)와 공평한 관심과 진심 어린 배려인 국가의 복지 제공을 무력화시키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관한 문제로 봐야 한다. 소수의 승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민주적이고 헌법적인 가치를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행위로 치환해버림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타락시키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교육마저 돈벌이로 전락시킨 참담한 현실에 대한 고발장이다. 

 

 

 

 

결국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사보타지는 미래에 행사될 집단적인 매표행위와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는 정치기부금 제공을 거래의 조건으로 내세워 유력 정치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익을 대리하도록 만드는 반민주적 행태이자 대의정치를 타락시키는 행태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통치술로 파악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한 소수나 그들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떨어지는 개별화된 다수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고 착취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아동교육마저 이익 추구 수단으로 타락시킨 전형적인 사례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민주국가가 헌법과 민주주의 규범 등을 통해 국민과 약속한 모든 수준의 교육마저 노골적인 이익 추구의 대상으로 변질시켜 개인이나 집단의 재산증식용으로 바꿔버린다. 모든 수준의 교육이 경제화 또는 시장화됐기 때문에 거기에 적용되는 일체의 논리와 규범, 행태도 경제와 시장의 논리에 따른다. 가치 판단의 기준은 민주적 가치나 공화적 양식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과 기업의 사익 추구라는 경제적 주체로써의 이해타산이자 승작독식이다.

 

 

이 때문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아동교육의 공적인 목적은 교육자가 아닌 장사꾼으로써의 원장과 그 일족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장 논리에 매몰된다. 국민의 혈세인 국가지원금도 원장과 그 일족의 이익 추구를 위한 먹이감으로 던져질 뿐이다. 재산을 증식하려는 이런 행태가 불법은 아니지만 그래서 일정 수준의 수익을 위해 사립유치원을 시작한 분들을 마냥 욕할 일은 아니다. 자신의 투자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취하는 경제적 행위도 비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익 추구의 방법과 수준이 원칙과 상식을 넘어서 비리와 부패의 수준에 이르고, 세금 혜택은 물론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국가지원금을 받은 이상 그에 합당한 국가의 감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유재산이 투입됐다 해도 국가의 지원 하에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교육기관에 편입된 이상 공적 감사를 받는 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의무다. 한유총과 원장들이 사유재산권 행사의 절대성을 내세워 정부의 지시를 거부하려면 정당하게 이익을 취했어야 했으며, 더 나아가 국가지원금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원장의 사유재산권 행사는 유치원의 소유권에 한정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이익의 소유권은 온전히 원장에게 귀속되는 것도 아니다. 원장 혼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모든 교육을 실시했다고 해도 국가가 제공한 각종 혜택과 지원금에서 발생한 이익은 비리의 전리품이 될 수 없으며 그에 합당한 공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익 추구 행위를 모든 것에 우선하는 권리와 가치로 승격시킨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매몰된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역설적인 것은 신자유주의 합리성에서도 사유재산권은 절대적 가치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장 기능을 통해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여기지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할 권리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그럴 경우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시장 기능의 배후에서 부추기고 장려하는 무한경쟁을 통해 하위 99%의 재산을 상위 1%에게 이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경제화 또는 시장화시키면 자본과 기술, 조직, 경험, 네트워크 등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쪽(부자나 대기업)의 일방적 승리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부분이 경제화 또는 시장화돼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민주주의나 헌법, 정치보다 우위에 서게 되면 부자나 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승자독식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시장에서의 거래란 언제나 현재의 상태(어떻게 부자가 됐거나 거대기업이 됐는지 따지지 않는다는 뜻)만 의미가 있는 까닭에 상대적·절대적으로 유리한 부자나 대기업의 승자독식이란 능력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이지 기울어진 운동장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립유치원 운영이 자잘한 돈이 아닌 매우 큰 돈이 되면 현재의 원장들보다 더 큰 재산을 가진 거부나 거대기업이 시장화된 유아교육에 뛰어들어 기존의 사립유치원들을 고사시켜버린다. 비리 원장들과 한유총 덕분에 유치원 운영이 시장논리에 따른 경제화됐기 때문에 냉혹한 신자유주의 경쟁을 통해 현재의 원장들을 상대로 고사작전을 펼칠 수 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학교를 미래 소득을 높이기 위한 학생들의 스펙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교육 자체를 상품화시킬 수 있었던 것도 신자유주의 40년에서 비롯된 참담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교육까지 시장화한 부의 무한 축적은 비판의 대상이 아닌 칭송의 대상이 된다. 모든 분야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이 신자유주의 합리성으로 대체되면서 아동교육을 위한 국가지원금까지 사익 추구를 위한 경제적 먹이감으로 전도된 것이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비리의 본질이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다양한 체제나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도 유연한 형태를 띠며, 돈이 되는 온갖 아이디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제가 없는 자유방임적 경쟁을 통해 승자가 결정되는 가치관이자 독점을 합리화하는 규범이다. 궁극적으로는 신은 언제나 승자의 편이라는 전체주의적 독점으로 귀착되는 시장근본주의의 현실이다.

 

 

한유총과 원장들의 집단반발의 본질이 여기에 있음에도 공부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공부하고도 지혜를 형성하지 못해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이 땅의 지식인과 언론은 문제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정부와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대결로만 몰고가고 있다. 무식하기로 유명한 정치인이야 그렇다쳐도 제대로 된 지식인이나 언론이라면 '내 돈은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며 사유재산권을 들고나온 한유총과 원장들의 집단반발에 내재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그 일그러진 영혼을 비판하고 나서야 했다.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불법과 비리, 사유재산권을 내세운 집단반발과 폐원 협박은 자유방임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애인학교가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 들어서는 것을 집단으로 막았던 강서구의 일부 주민에게서도 이런 저급한 민낯이 확인됐었다. 수많은 청춘과 미주택자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부동산 투기세력과 담합을 일삼는 아파트 부녀회에게서도 추한 민낯을 볼 수 있었고, 보고 있다.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을 제공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사유재산권 운운하며 한유총과 원장들의 집단반발에 힘을 실어주는 파렴치한 행태에서 이런 부끄러운 민낯은 극대화된다. 민주주의와 헌법, 정치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이 땅의 교육마저도 신자유주의의 먹이감으로 던져준 김성태 같은 수구꼴통들이 입법부(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미래의 표와 정치기부금을 거래의 조건으로 한 유력 정치인(국회의원)과 공당의 이익집단화는 시장민주주의로 타락한 대한민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주소와 부끄러운 민낯을 말해준다.

 

 

돈이 가치체계의 맨 위에 자리잡았을 때, 돈만이 가치체계의 맨 위에 자리잡을 수 있을 때, 사익 추구가 모든 행위규범의 맨 위에 자리잡을 때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부의 축적과 독점 및 세습이라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굴복했을 때 이런 부끄러운 민낯들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위풍당당하게 행진할 수 있다.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대한민국이지만 미국보다 더 미국다운 자유방임 시장경제에 매몰돼버리면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작업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사족 같은 바람이 있다면, 유은혜 장관과 박용진 의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을 설득했으면 한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고 해도 사립유치원은 개인재산과 공공재산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중간적 존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사유재산권을 들고나온 것에도 나름의 정당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 할 수 있다. 아동에 대한 공교육이나 공적 지원의 부실한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한국적 특수성과 태생적 한계도 고려함으로써 그들을 신자유주의 합리성에서 벗어나게 도와줘야 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해진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시대정신이 적폐청산이라고 해도, 사유재산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갈등 조정과 합의 도출이 민주적인 정치행위의 본질이라면 한유총과 사립유치원 원장들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는 정치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말살시킨 민주주의를 되살려내야 한다. 

 

 

현재의 헌법에 명시돼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사유재산권과 개인의 권리, 구속받지 않는 독립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국민주권에서 기원하는 인민 자치 및 평등한 자유, 사회정의 실현을 중시하는 민주주의가 상호존중하는 타협과 배려의 체제이며, 토론과 협상의 과정(절차적 민주주의)을 통해 서로 충돌하는 갈등을 조정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실천적 행동규범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시 작동하도록 만들 때만이 인간의 영혼까지 시장화시키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폭주에 맞서싸울 수 있다.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을 고루 반영해 한 차원 높은 민주주의로 전진해가는 실질적 민주주의,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 평등과 자치, 삶의 질을 높이는 동반자 민주주의는 이런 실천적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노력과 실천들이 하나로 모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가다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고 설계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하나씩 실현해가고 있는 사람사는 세상이 불연듯 도래해 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것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믿으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미셀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독트린》, 토마스 프랭크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을 보십시오.)

 

이재명이 기본소득을 또다시 들먹였다. 거짓과 위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그에게는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그가 말하는 기본소득이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의 후반부에서 개념화했고(전반부에서는 고전파 경제학의 오류들을 비판하며 바로잡았는데 설득력이 높지는 않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이 '음의 소득'으로 스쳐가듯 언급했으며, 거대한 지적사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2045년에 특이점을 돌파한다는 인공지능 포함)의 전도사들이 '초격차 사회'의 구원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기본소득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제시한 '차등 원칙(파레토 최적을 살짝 비튼 것으로 보인다)'의 한계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주에서 파레토 최적을 다룰 것).

 

 

 

 

'공정으로서의 정의(사회주의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자유주의적으로 풀어낸 정의)'를 정립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새장을 연 롤스는, 기존의 불평등을 인정한 상태에서, 추가로 이루어지는 경제성장은 '그 이익이 사회의 최소수혜층(최하위계층)에 가장 많이 주어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분배(차등 원칙)를 전제로 할 때만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정의'의 두 번째 원칙으로 제시한 이 '차등 분배'는 기존의 불평등을 바로잡을 수 없지만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면서도)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주에서 롤스가 개념화한 제1원칙에 대해 설명할 것).

 

 

하지만 롤스가 집단화한 최소수혜층(최하위계층)에는, 필자 같은 장애인(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 포함)도 있을 것이고 만성질환자나 휘귀질환자, 미혼모나 편모(부)가정, 노동 능력을 상실한 노인, 저임금 노동자, 성소수자, 이주민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포함됐을 터, 이들에게 똑같은 액수를 제공하는 차등 원칙은 최소수혜층(최하위계층) 내에서도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차등 원칙의 패자들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리고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주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드워킨처럼 구체적인 사례를 들 것) 기존의 불평등도 인정하는 롤스의 정의론은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이중으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선동적 표퓰리스트인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토지보유세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모든 국민에게 매달 일정액(100~200만원)을 주는 것이라면 롤스의 차등 원칙이 받았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5천만 국민에게 지급할 자금(년 600~1200조원)을 기적적으로 마련한다고 해도 그밖의 복지와 사회안전망 등을 폐지하거나 극도로 축소해야 하기 때문에 롤스의 차등 원칙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주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기본소득 연구자들의 제안한 각종 세금의 신설을 다루되 2008년의 글로벌금융위기가 촉발시킨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뉴딜정책이나 케인즈주의처럼 초고율의 누진증세를 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다룰 것).  

 

 

기본소득으로는 생존을 이어가기 힘든 사람들도 문제지만ㅡ기본소득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복지와 사회안전망 등이 폐지됐거나 상당히 축소됐음을 상기하라ㅡ안정적이고 고임금의 일자리를 유지할 사람들과의 불평등도 더욱 커질 것이다. 기본소득에 들어갈 세금을 내고도 충분히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상류층과의 불평등도 줄어들지 않는다. 기업들은 기본소득을 핑계로 임금이나 사원복지 등을 대폭 줄이거나 없앴을 수 있으며, 자동화를 통한 대규모 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주에서 기타 사례들도 제시할 것).  

 

 

소비 폭발은 만성적 인플레이션의 위험에 노출되며, 생산 폭증에 따른 원·부자재 구입 등으로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도덕적 해이뿐만 아니라 마약이나 도박 중독 같은 각종 부작용을 피할 수 없으며, 경기 악화에 따른 지급 축소나 중단도 발생할 수 있다(주에서 구체적인 각종 부작용을 다룰 것. 이를 테면 기본소득 실시를 통해 새로운 이익원을 창출하려는 각종 금융상품의 출시를 예상하고, 그에 따라 과소비나 빚을 내는 행태에 대해 다룰 것. 1020세대의 재정자립으로 1인가구로 독립함에 따라 가족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이에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과소비에 대해서도 다룰 것. 결국 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늘리며 새로운 형태의 파산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도 다룰 것). 

 

 

이럴 경우 폭발적으로 터져나올 국민적 불만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정부란 존재할 수 없다. 신생국에 다름 없었던 19세기의 미국이나 별다른 소득권이 없는 알레스카 주처럼 특수한 시기나 환경에서나 가능한 기본소득은 대한민국처럼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국가에서는 실현불가능하다(주에서 19세기 미국의 특수한 상황과 기본소득을 실시 중인 알레스카의 상황을 설명할 것.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반대한 국민투표 결과도 자세히 다룰 것).

 

 

이밖에도 기본소득 실시에 따른 부작용은 수없이 많다. 기존 산업과 서비스의 효율성 강화에 불과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기본소득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의 빈부격차, 즉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걱정했던 '초격차 사회(주에서 이에 대해서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히 풀어낼 것.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할 것)'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실리콘벨리를 제외하면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주에서 이에 대한 증거들을 제시할 것). 영국처럼 제조업 경쟁력이 독일과 한국, 일본 등에 뒤떨어지는 유럽국가들이 인공지능에는 약간의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 미래학자들과 특이점주의자들이 떠들어대는 '초격차 사회'는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기본소득을 노령연금이나 아동수당, 청년배당 등처럼 제한된 국민에게 용돈 수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계획한다면 기본소득이라는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 또 다른 기본용돈이나 그와 비스무리한 어떤 것으로. 이재명이 재정자립도 1위의 성남시장 시절에 실시한 청년배당이 그의 자식과 같은 나이의 청년들에 한정(꼼수의 대마왕!)해서만 용돈 수준으로 제공한 것도 이 때문이다(주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시민권까지 받은 청년에게도 기본용돈이 주어지는 어이없는 사례들도 있었음을 밝힐 것).

 

 

물론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가부장적인 보편적 복지나 획일적 평등(구좌파가 추구하는 결과의 평등)을 주구장창 요구하는 진보좌파가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기본소득은 실시할 수 있다(주에서 진보좌파의 바람과는 달리 정치현실과 어긋나기 일쑤인 보편적 복지의 허구성에 대해 다룰 것. 개인의 부를 조사하는 행정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전체 국민에게 일정액을 직접 싸주는 기본소득의 허구성도 다룰 것. 기술 발전은 어디에 써먹을 생각인가?). 이럴 경우에도 기존의 복지나 사회안전망은 유지해야 한다(주에서 그 이유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할 것). 결국 용돈 수준의 기본소득을 제외하면 이재명의 만병통치약 같은 기본소득은 '자신의 능력을 다해서 일했지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 신에 버금가는 고귀한 성품의 인간들로 구성된 유토피아(마르크스가 말한 자유의 왕국)에서나 가능하다(마르크스가 말한 자유의 왕국과 그에 대한 추상의 오류에 대해 자세히 다룰 것). 

 

 

진정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경제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한, 즉 제로성장의 시대나 특이점을 돌파한 인공지능 덕분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몰락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최고의 노동생산성에 이른 시대에나 가능한 유토피아적 관념의 산물에 해당한다. 그것도 아니면 존 롤스가 사회계약의 대안으로 제시한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원초적 사회'에서의 합의(주에서 자신의 능력이 좋은지 나쁜지, 자신의 재산이 많은지 적은지, 자신의 직업이 돈을 벌기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등을 전혀 모르는 무지 상태에서의 합의이기 때문에 가장 공정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가정되는 이유를 다룰 것)'에서나, 로널드 드워킨이 《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원초적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자원 배분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무인도에서의 경매'(주를 통해 처음 이곳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똑같은 자금을 분배 받고, 자신의 기호와 성향을 실현시켜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다. 그렇게 확보한 자원으로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꿈을 실현해간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가설적 보험시장과 이에 근거한 조세제도, 자원 배분의 재교정 등이 추가로 마련되는 내용을 자세히 다룰 것)에서나 가능한 꿈의 소득이다.

 

 

기본소득에 대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실현불가능한 이유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주에서 한두 가지 예를 제시할 것).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위기를 돌파할 만병통치약도 아니며, 그것의 실현가능성을 따져보지도 않은 채 유토피아적 환상에 빠져있는 지지자들을 뭉치게 만들 수단도 되지 못한다. 기본소득은 사회주의적 이상향(주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결과의 평등 중간 어디쯤에 자리하는 자본주의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제안이라는 점에서 좌우 모두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는 하다(주에서 좌우의 기본소득을 소개할 것).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위에서 제시한 이유들과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한 것과 비슷한 이유들로 해서 성공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할 수 있다. J노믹스가 현재로써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며, 쓸모 없는 학문으로 전락한 경제학에서 그나마 건질 수 있는 것들ㅡ소득주도성장(노동자를 위한 성장)과 혁신성장(기업을 위헌 성장), 공정 경제(국민 모두를 위한 포용적 성장)ㅡ로 구성된 최상의 경제기조이다.

 

 

신과 동격인 '보이지 않은 손'이 없으면 언제나 실패하는, 그래서 정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자기 조절 시장'이라는 허구의 아이디어(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참조하라)를 숭배하는 자유한국당 꼴통들의 '미신경제학(토마스 프랭크가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사용했음)'은 19세기의 불평등에 접근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산업자본주의에서나 통했던 사고와 투쟁방식을 고수하는 노동계가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그들만의 투쟁으로 한정되지 않으려면 J노믹스에 담겨있는 미래지향적 함의에 동참해야 한다(주에서 노동계의 고립 현상에 대해 자세히 다룰 것. 구좌파와 신좌파의 갈등 및 노조의 역사와 목표의 변화까지 다룰 것).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오늘은 여기까지. J노믹스를 다룬 글은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뉴페이스 2018.11.22 14:55

    불과 1년 전에는 4차 산업혁명엄청 걱정하시더니ㅋㅋ
    맞아요. 전 처음부터 이거 마케팅용어라 생각했어요. 클라우스 슈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참...그 테슬라 조차도 100% 공장자동화 못해서 해매고 있는데 말이죠.

    아, 학교 숙제 중 국부론과 관련된 에세이를 쓰는데 있는데 이 글을 좀 참고해도 될까요?

    • 늙은도령 2018.11.22 17:21 신고

      정말 많은 책들을 봤습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토론했고요.
      현장은 어떤지 확인했습니다.
      심지어 외국까지 살펴봤고요.

      그런 다음에야 문제점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최고 천재들이 걱정하듯이 인공지능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4차 산업혁명은 지독히도 부풀려져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한 지적사기란 특이점주의자들이 말하는 2045년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제 평가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1세기 말쯤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중간결론에 불과합니다.
      국부론 관련해서 인용해도 됩니다.

처음으로 김제동의 발언에 우려를 표해야 할 것 같다. '오늘밤 김제동'에서 '김혜경 논란'을 다룬 끝무렵에 '이번 논란으로 이재명의 경기도정에 차질이 생기면 그 피해는 경기도민이 감수해야 하는데 언론들은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본질은 무시한 채 갈등만 유발하는 한국 언론의 고질병을 질타한 김제동의 발언은 얼핏 들으면 대단히 적절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대단히 표퓰리즘적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경선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보자. 혜경궁씨 논란(김혜경 논란)을 비롯한 이재명의 온갖 거짓말 논란이었다. 김어준 일당에 의해 문프의 가짜 지지자이자 민주당의 분열을 획책하는 보수 진영의 알바부대로 전락한 문파가, 필자를 포함해, 거의 1년 동안 떠들어대는 바람에 의제화될 수 있었던 이재명의 거짓말과 이중인격 논란이었다. 이재명을 경기지사로 뽑으면 안 되는 수많은 증거들을 제시한 문파의 주장을 경기도민이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 지난 경기지사 선거였다. 

 

 

그리고 경기도민은 문파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들은 이재명(과 김혜경)을 둘러싼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을 선택했고, 작금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이재명 논란으로 경기도민만 피해를 입는다는 김제동의 발언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자유와 권리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듯이, 정치적 선택도 마찬가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국민이 동의하고 따를 것을 약속한) 정치적으로 주어진 것들이어서 그것들을 향유하는 데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전제로 한다. 

 

 

경기도민이 이재명을 선택한 이상, 그들이 이번 논란의 피해를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칙과 상식, 정의와 양심을 배제한 채 반민주적 진영논리와 단기적 이익 및 저급한 정치 논리에 빠져 정치적 선택을 하면 이런 사단이 일어날 수 있다. 영국의 브랙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듯이, 이재명을 선택한 경기도민도 같은 대가를 피할 수 없다. 경기도민이 피해자라는 김제동의 발언은 이래서 성립할 수 없다.

 

 

김제동은 '사립유치원 논란' 때도 '어른 싸움에 선생님과 아이들만 피해를 본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 또한 위험한 이분법으로, 모든 표퓰리스트가 국민을 둘로 가를 때 쓰는 수사학과 일치한다. 특정 집단을 부와 권력, 이익과 기회를 독점하는 악으로 규정해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분노와 증오를 유별하고 그것으로부터 정치적 동력을 얻는 방식의 이분법과 동일하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표퓰리즘 정당이 집권하거나 주요 정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수사학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표퓰리즘을 연구하기 위해 최근에 읽은 책들

 

 

다수의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을 때 더 많은 선생님들이 이에 대해 침묵했다. 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약자일지언정 바로 같은 이유로 해서 암묵적인 공범이 될 수 있다. 원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 위해 선생님을 피해자로 규정한 채 원장들을 악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히틀러의 나치와 스탈린의 소비에트가 동원했던 이분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김제동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며, 사람 냄새 가득한 김제동의 진심을 의심해서 이런 비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상대적 약자와 피해자를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모든 정의가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악을 나누는 식의 이분법은 정의의 가치를 부패시킨다. 약자의 편에 서있는, 그래서 고맙고 소중한 김제동이지만 조금 더 많고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권한다. 최근에 필자가 읽은 표퓰리즘 비판서적들의 70%는 보수주의자들이 쓴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도 찾기 힘든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고백성사이자 자기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들이다(제발 이번에는 한심하고 멍청하고 저급한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 '인간은 과거의 역경에서 배우지 못한다'는 로렌스의 성찰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세상을 '자본(사측) 대 노동자'로 나누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주장처럼, 세상사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며, 이분법적 계급정치에 기반한 모든 사회주의 실험(사회적 민주주의의 실험이 성공한 것에 비해)은 실패했다. 그처럼 우리 모두는 조금씩 잘못이 있고, 반면에 그보다 조금은, 때로는 많이 잘하는 편이기는 하다. 최고의 정치인이자 지도자인 노통과 문프도 완벽할 수 없으며, 진보가 언제나 옳고 선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는 언제나 틀리고 악하다는 생각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상대적 약자와 피해자들을 부각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선악의 이분법적 방식으로 귀착되면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권위주의적 독재나 전체주의를 피할 수 없다. 

 

 

김제동의 열렬한 팬으로써 이번 글을 썼다. 나꼼수 멤버와는 다른 '김제동의 오늘밤'도 계속해서 시청할 것이며, 시청률이 폭발적으로 늘 때까지 지속적으로 응원할 것이다. 이번 글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썼다. 김제동이 이 글을 볼 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본다면 참고했으면 한다. 세상을 이 모양 이꼴로 만든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사이비 전문가 및 지식인과 언론인보다 몇 배는 지혜롭고 사람 냄새 가득하고, 아름답고 좋은 언어를 사용하며,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의 편에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김제동 파이팅!!!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대나무 2018.11.20 13:30

    다시 방장님 글을 보게 돼서 반갑습니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 거짓은 드러나겠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 뉴페이스 2018.11.21 02:11

    오랫만이네요~~
    이재명...분명 올바른 사람은 아니죠.
    헌데, 1,20대인 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이재명이 아니에요...남녀 갈등과 경제지. 10,20대는 더 이상 민주당의 우군이 아니라고요.
    도령님도 실제 1,20대의 목소리를 꼭 들어보셨으면 해요...유재일씨처럼 유튜브를 하시던지 해서...

    진보의 업그레이드도 좋지만 이재명 이슈는 이쯤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대선주자가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 늙은도령 2018.11.21 03:02 신고

      1020세대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제가 집필 중인 책에 포함될 것이고요.
      1020세대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이탈하더라도 저로써는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체제가 만들어낸 1020세대(특히 이성애 남성)의 좌절이나 분노가 성대결로 비화하게 됐지만 냉정하게 분석해서 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것일 뿐, 반성적 고찰과 합리적 판단, 냉철한 행동은 각자의 몫입니다.
      디지털세대 또는 밀레니엄 세대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작금의 현실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지 알려드리는 것이고, 그 다음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판단을 위해 지적 자료는 제공해드릴 것이고 저의 바람도 글에 담겠지만 최정 결정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3. merryjanet 2018.11.21 16:30

    도령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정말 지긋지긋 ...이제 입에 담기도 싫은 이재명.
    거기에 무슨 꼭꼭 숨겨야할 빚을 감춘 건지 거취 입장을 결정짓지 못하는 민주당...
    포털만 잠깐 돌아봐도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제 아예 대놓고 반문활동하던데
    어찌 저리 파렴치하게 민주당에서 버티려고 하는지..
    20대 젊은층의 이탈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들이 자한당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이 정신차리고 대북경협이 조금이라도 진전되어서 경제효과가 미세하게라도 나타난다면
    지지율은 아주 많이는 아니더라도 올라갈거구요.
    그리고 아직도 50%가 넘는데 그간의 정권들보다는 높은 거 아닌가요?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4. 대구시민 2018.12.05 02:29

    세상을 '자본(사측) 대 노동자'로 나누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주장처럼, 세상사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님의 위 말씀처럼, 세상은 친문과 비문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게 아닙니다. 경기도민은 지방선거에서 문파의 주장을 일축한게 아니라, 이재명을 경기도지사로 뽑은 겁니다. 님 글을 보니, 극렬 문파가 무슨 대단한 이슈를 만들어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듯 한데, 지방선거에서 극문들이 한 일은 이재명에 대한 여러 의혹제기를 한 것입니다. 마치 타진요처럼 말이죠. 그것의 법리적 해석은 두고보면 될일입니다.

    사실 이재명이 도지사로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외에 그의 가족관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언론의 행태로 피해른 입을 수 있는 경기도민이 왜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님의 지적이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것은 "우리 극문의 경고를 무시한 경기도민은 응분 댓가를 치러도 싸다."는 것인데, 이정도면 거의 종말론 수준이지요. 극문들이 그리 대단한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극문들의 행태가 결국에는 문통을 위기로 내몰것이라는 점입니다. 노통때 처럼말이죠.
    원래 과거부터 행실들이 권력에 빌붙고 잇권에 눈이 멀어 지지자들 배반하고, 갈라치는게 습성이었으니 새삼스럽진 않습니다.

    이맇게 언론에 분탕질의 미끼를 주고 놀아나다가 문정부가 뭔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범죄집단 수준의 보수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지 않을까 그게 답답합니다.

    문통의 가장 큰 장점은 인복인데, 좌우로, 정책적으로 그걸 차버리게 작당하는 정신머리는 잇권과 이해관계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죠. 다는 모를 일이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좋고 잇권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사회공동체의 이익도 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5. ㅡㅡ 2018.12.05 02:30

    어제까지만 김제동 펜인걸로.!!

  6. ㅡㅡ 2018.12.05 02:36

    혜경궁김씨가 우리가생각하는 그분이 아닐수도 있지만 그분이 맞다라는 팩트는 본인만 아는것 아닌가요?
    다른사람들이 맞다 아니다도 쉽게말할수없는거고 남편인 이재명도 말할자격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본인만이 아는거니까요
    그래서 김제동의 발언또한 실망스럽기도 하구요

    • 대구시민 2018.12.05 03:13

      당체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사내용을 계속 지켜봐야습니다만,ㅎㅎ
      내말은 혜경궁인지 뭔지가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인가 말이지요.
      혜경궁 트윗으로 극문들이 고소한 내용의 대부분이 문준용관련한 내용이라던데, 보수언론에서 좋아라 할 이런 미끼를 던지고 분탕질 하니 좋으십니까?

      문통을 죽이자는 건지, 문통을 신격화하자는 것인지..참.
      아무튼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고, 극단주의는 서로 통하는가 봅니다.

  7. 영구땡칠 2018.12.05 23:35

    개소리를 길게도 써놨네..
    그마음으로 개누리를 조졌어봐라
    적폐청산 진즉에 끝났다.

  8. 아이두 2019.01.04 21:31

    김제동씨 공영방송에
    연기자? 어울리지 않습니다.

  9. 무일 2019.03.11 23:15

    이재명이든 김경수...그들의 공백으로 도정을 피해보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고 그들의 행동의 본질이 위법이냐 아니냐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들이 이런 죄질이 의심 스러워도 그들을 택한것은 도민이다.

이수역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매일같이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화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다. 이수역 사건의 주범은 정치경제적으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가진 자들과 많이 가진 자들이 각 분야의 영혼 없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 가졌거나 거의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탈탈 털어간 신자유주의 30년(나라마다 10년 안팍의 차이가 있다)의 주역들이다. 그들의 핵심 무기는 무서운 속도로 일자리의 씨를 말린 것을 넘어 2045년 이후에는 인류의 노예화나 멸종의 단계(특이점을 돌파한 인공지능과 인간이 주도한 마지막 산업혁명이라는 4차 산업혁명)로 가겠다고 선언한 디지털기술이다.    

 

 

 

 

이수역 사건은 상위 10%(1%의 지배층과 9%의 간수로 이루어지며 간수의 대부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영속적인 지배를 위해 하위 90%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성대결의 전조이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기 때문에 어느 쪽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이런 성대결은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을 무너뜨리며 제3의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표퓰리즘 정치집단들(대표적으로 영국의 브랙시트를 주도한 자들과 트럼프의 당선을 도운 자들)의 권력 장악과 배 불림에 악용될 수밖에 없다. 낙태 찬반 문제와 동성혼 합법화 같은 여성 권리와 생명윤리의 충돌 및 성소수자 권리 문제, 국가가 인정하는 결혼제도의 몰락과 다양한 형태의 대안모델, 불멸할 것 같았던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테러 공포 및 시민권 문제 등과 연동되는 다문화주의와 난민 유입, 외국인 노동자 확대 등이 진보와 보수를 나누었던 전통의 의제를 대체하는 현상도 이런 성대결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최근에 들어 이에 주목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부시의 참모였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은 데이비드 프롬의 《트럼프공화국》과 조금은 과격하지만 탁월한 진보지식인인 토마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이 대표적이다. 디지털혁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성공했다. 성대결을 넘어 인류의 멸종을 막으려면 보다 포괄적인 연구가 절실하며 무엇보다도 극단적인 견해를 강화해서 무한대의 갈등을 유발하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 사용을 대폭 줄이거나 올바르고 정의롭게 활용해야 한다. 가짜뉴스 같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의 온상인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같은 악마의 기업들의 역겨운 돈벌이를 규제하지 못하면 인류에게 행복한 미래란 존재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반상과 성찰은 아예 하지도 못하는 보수의 부활이 요원한 것과 상관없이 표퓰리즘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일부 진보 진영의 숟가락 얹기와 표퓰리즘 행태는 문제의 심각성만 높이고 있다. 이들 모두에게 반성적 성찰과 대오각성이 요구된다. 반향실효과에 빌붙어 돈 좀 벌어보려는 일부의 탐욕과 그들이 주도하는 바닥으로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수역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남녀 구분 없이 밀레니엄 세대들의 지지층 이탈현상이 본격화될 수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남녀 성대결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놈들은 물론 이언주 같은 표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이수역 사건에 담긴 함의를 악용해 문재인 정부 흔들기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생존 때문에 통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밀레니엄 세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대단히 위태로운 지경까지 내몰릴 수 있다. 멍청하고 한심한 유재일처럼 이수역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 이어 진보 진영의 대안언론에서 유사한 콘텐츠가 양산될 경우 문재인 정부는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경찰총장은 물론 내치를 맡은 이낙연 총리가 촛불혁명의 대한민국을 극도의 혼란으로 몰고갈 전조로써 이수역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잘못된 처방을 내놓은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최대 적, 기성언론의 선정적이고 호도된 접근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두렵고 초조하다.

 

 

대졸 이하의 중상류층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은 영국의 브랙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세계화와 자동화의 최대 피해자인 젊은 남성과 저학력 여성들이 가세하면서 현실이 됐다. 이들이 전통의 보수와 진보를 밀어내고 있는 제3세력의 주축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진 중인 표퓰리스트 선동가들의 자양분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이수역 사건으로 본격화된 성대결은 차별과 혐오,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표퓰리스트 선동가와 정치인, 중상류층이 장악하고 있는 기성언론(JTBC의 역주행과 비교할 때 KBS는 여기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썩을대로 썩은 종편, 저급하고 악랄한 대안언론과 1인언론에 무한대의 먹이감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이명박근혜의 잃어버린 9년보다 더한 지옥으로 역행하게 만들 것이다(학벌이란 최악의 집단지배를 초래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이 선진민주국가들과는 달리 이명박근혜 9년이란 표퓰리즘 전성시대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대졸 이상의 학력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높은 교육열 때문이었다. 자원이 없기 때문에 인간에 투자한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원이 있었으면 박정희와 전두환 등의 독재가 지금도 이어졌을 것이며, 대한민국을 차베스의 베네스엘라처럼 파탄지경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자원을 보유한 독재자는 국민과 대화하고 양보할 이유가 없다. 이는 별도의 주제로 다룰 생각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 글은 집필 중인 책의 '페미니즘'과 '소셜미디어'에 포함될 것인데, 이수역 사건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이수역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디지털기술로 중무장한 일베와 메갈의 등장과 피 터지는 전쟁부터 살펴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의 폭주는 밀레니엄 세대와 대졸 이하에게 지옥과 다름없었으며 특히 젊은 여성에게는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었음을 하나씩 밝혀나갈 생각이다. 다만, 세몰이와 투쟁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꽃 페미의 투쟁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진화해야 한다,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참혹한 실패에 처해질 것이다.)

 

  1. 공수래공수거 2018.11.19 10:27 신고

    무서운 언론입니다.
    여론을 호도하는건 정말 순식간입니다.

 

"민주주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등장하기 마련이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가령 헨리 포드, 휴이 롱, 조지피 매카시, 조지 윌리스와 같은 인물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당의 민주주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경쟁 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인용)"

 

 

 

 

미국의 트럼프만이 아니라, 이명박근혜의 '잃어버린 9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런 역주행은, 기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인물인 이재명을 밀어주는 민주당의 지도부와 의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세월호참사를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우려먹은 이재명(그의 실체를 몰랐을 때는 지지했었다)은 품성이나 언행, 기질 등이 표퓰리스트 선동가인 트럼프와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노골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대선주자에도 오르지 못했을 이재명(일개 도시의 시장에 불과한 행정가가 정치판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예외적인 경우였다)을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할 때마다 분노와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것도 살아온 방식과 품성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두 사람을 쌍둥이라고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걸러내기는커녕 비호하기에 급급했던 추미애와 이해찬, 표창원, 정성호, 손혜원 등은 물론 김어준과 주진우, 김용민, 이동형 같은 자들에게도 위의 인용문은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의 주장과 논리가 얼마나 저급하고 선동적이고 편향적이이서 종국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바로미터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다양한 저자의 '정의론(롤스, 드워킨, 벌린, 노직 등)'과 표퓰리즘 관련 책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나 우중의 독재로 전락하는 데는 자유의 과잉과 책임의 부재, 도덕적 판단, 윤리적 신념의 결여 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평등과 자유가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철학적 무지함이 이런 퇴행적 현상들을 초래하고, 그 결과 체제와 사회의 하향평준화가 기성정치인과 정당 및 언론과 지식인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선동가들이 활개칠 수 있는 것도 이런 퇴행적 현상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보수의 자멸로 진보 진영의 승리가 어부지리처럼 이루어진 지금이야말로 진보 진영의 업그레이드 필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일자리를 무서운 속도로 없애고 있는 기술 발전은 산업자본주의에서나 유효했던 노동자 중심주의의 구좌파적 관점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진보를 넘어 보수에게서도 지지를 받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보수의 재정립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안주한 진보 진영이 승리의 열매를 달라며 또다시 분열을 시작했기 때문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적인 언론이 이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KBS가 그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만, 손석희 저널리즘으로 대표되는 JTBC의 딴지놓기가 문재인 정부를 흔들면서 바람직한 언론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MBC는 엠병신이었을 때가 차라리 나을 정도로 극단적인 이분법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구좌파 성향의 엘리트주의자들이 MBC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남북의 평화체제 확립과 경제공동체 구축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와 모든 과정을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부치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대북제제에 일정한 양보를 해주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는데,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로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는 대한민국에 가장 크게 작용할 터, 전선을 전방위적으로 넓히고 있는 트럼프의 강공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하락세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여러 가지 요인들이 누적된 결과지만 트럼프와 사우디의 고유가 정책(중국을 길들인다는 명분하에 시작했지만 세계적 경기 부진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수출 1위인 석유화학과 수출 2위인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이 동반으로 끝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시점에서 이런 불리한 요인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로 진입하려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 경제로 대표되는 J노믹스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도 이재명의 퇴출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당이 더 이상 이재명 문제로 삐걱거릴 틈이 없다. 점점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내부의 분열을 최소화해야 한다. 보수의 환골탈태가 갈수록 요원해지는 상황에서,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딴지잡기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국내 상황까지 급변할 경우ㅡ이를 테면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라 탄핵이 진행될 경우ㅡ문재인 대통령이 힘겹게 끌고가고 있는 남북 문제의 추진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남북경협 추진 등에 국회의 적극적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경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편성할 J노믹스 성공도 국회에서의 입법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표퓰리스트 정치인인 이재명이라는 변수를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ㅗㅗ 2018.11.13 01:32

    한국경제가 왜 지난정권 박근혜 때문에 어려워 졌나요?

    • 2018.11.17 11:10

      비밀댓글입니다

  2. 최재민 2018.11.13 07:37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걱정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3. 2018.11.13 13:23

    비밀댓글입니다

  4. 문파 2018.11.17 11:20

    오렌지폭탄을 제거반 문파..
    징글징글합니다.
    이재명이

  5. 좋은글 2018.11.23 23:52

    좋은글입니다 정보와 통찰력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을 지켜본 후 화들짝 놀란 각국의 학자와 지식인, 관련 전문가들이 무수히 많은 논문과 책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중에서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막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은 두 명의 하버드대 교수들의 자기반성적 고백성사라 할 수 있다. 공동 저자의 자아성찰은 영국과 유럽의 학자들이 영국의 브렉시트에 충격받은 것보다 미국의 학자들이 트럼프의 당선에서 받은 충격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두 명의 교수는 해당 책에서 '인민의 통치'로 대표되는 평등주의에 대한 건국의 아버지들의 지나친 우려와 편견 때문에 치명적인 허점을 지니게 된 미국 헌법의 한계들을 비판하고 구체적인 사례들ㅡ예를 들면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이 FBI 같은 독립적인 정부 기관을 자신의 측근 인사로 채워서는 안 된다는 구체적인 금지 조항을 달고 있지 않은 것과 긴급조치나 행정명령을 통해서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것ㅡ을 열거한 뒤, 인종 차별에 의존해 미국의 정치를 독점해온 공화당과 민주당의 분열상과 직무유기를 까발렸다.

 

 

(주 : 매디슨의 《연방주의자 논설》을 보면 그와 해밀턴, 존 제이 등이 무지한 다수가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 즉 주권재민에 근거한 국민 자치라는 평등주의적 민주주의를 극도로 경계하는 발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들이 자연귀족에 해당하는 백인남성의 (선출직) 엘리트들이 지속적으로 자유주의적 통치를 할 수 있도록 유권자의 선택을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되는 선거인단 제도(지금은 슈퍼대의인제도가 이런 일을 대신한다), 사실상의 귀족계급 집단인 상원에 하원을 견제할 힘과 함께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통제장치들을 설치했다. 한나 아렌트도 《혁명론》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정부를 반대한 이유들로 '고대의 역사와 이론이 민주주의의 '평온치 못한' 성격, 즉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갑작스럽게 소멸할 만큼 단명한다는 말로 압축되는 특유의 불안전성, 그리고 시민들의 변덕과 공공 정신 결핍, 여론과 대중 정서에 휩쓸리는 성향' 등의 이유를 들어 미국 공화국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최고의 역사학자였던 찰스 비어드는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에서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헌법이란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신의 재산(동산과 주식, 채권 등)과 미래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는 것을 목표로 작성됐음을 밝혀냈다.)  

 

 

저자들은 또한 공화당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뉴트 킹리치가 상대인 민주당을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규정한 이후, 정치가 합리적 경쟁에서 무법천지의 전쟁으로 변질된 것을 지적했다.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거나 굴복시켜야 끝나는 전쟁처럼, 미국의 정치가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극단적인 대립(머독의 <폭스 뉴스>를 정점으로, 이를 부추긴 기성언론의 책임도 크다)으로 치달으며, 헌법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양극화를 막아온 비공식적인 민주주의 규범(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마저 무력된 것이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막지 못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고 고백했다. 이런 정치의 양극화는 모든 민주국가와 민주화 과정이 진행 중인 국가에서 발생하는 공통의 현상이지만, 노무현의 참여정부 때부터 '노무현 죽이기'로 통칭되는 보수 진영의 무차별 공격과 집요한 흔들기, 악착같은 발목잡기와 노골적인 비협조 등으로 본격화된 대한민국처럼 미국에서 특히 심각했다. 

 

 

매튜 크렌슨과 벤저민 긴스버그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통해 미국의 기성정치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대규모 동원 중심의 미국 대의민주주의가 각자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처리하는 개인민주주의로 축소되는 과정을 풀어냈다. 미합중국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양분된 두 개의 나라와 두 개의 국민으로 갈라선 것은 남북전쟁 직전의 상황에 비견될 만큼 미국 정치를 작동불능의 지경까지 내몰았다. 클린턴 대 부시, 부시 대 엘 고어, 부시 대 케리, 오바마 대 매캐인의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극단적 분열상은 트럼프 대 힐러리의 대선과정에서 거짓과 루머, 경멸과 증오, 음모론과 악의적 가짜뉴스 등이 난무하며 선혈이 낭자한 최악의 전쟁터로 비화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열하고 저급하며 더러운 쓰레기들로 가득했던 선거의 분열상은 성문화되지 않은, 그러나 민주주의 역사보다 오래된 두 개의 규범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뒤늦은) 경험을 제공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두 개의 민주주의 규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물론 경쟁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주장을 혐오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걱정하고 헌법을 존중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의 생각이 어리석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경쟁자가 반역을 꾀하고, 전복을 꿈꾸고, 혹인 민주주의 경계를 넘어서려 한다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상대가 선거에서 이길 때 우리는 그날 밤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선거 패배를 재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상호 관용이란 자신과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한다."

 

 

최소 2개 이상의 정당과 후보자가 참여한 자유롭고 공정하며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치적으로 평등한 주권자인 국민이 자유로운 언론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다음 정부를 이끌어갈 정당과 대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무력이 아닌 민주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라고 정의한다면(조세프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참조할 것), '상호 관용'이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민주주의 규범은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선행조건이자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선거가 승자독식을 가리는 것이라면 패자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기보다는 패배를 부정하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체제의 전복을 꿰할 것인데, '상호 존중'의 규범이 작동하는 한 이런 파국은 피할 수 있다.

 

         

"민주주의 생존에 중요한 두 번째 규범은 우리가 '제도적 자제'라 부르는 개념이다.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체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 : 기존의 정당들이 진영논리에 갇혀 진흙탕 싸움만 벌이고, 이념적 지향이나 당령과 당헌처럼 지속성을 띠는 예측가능한 정치에서 벗어나 일시적인 지도자의 매력이나 대중적 인기에 이끌려다니며 단기 실적 위주의 정치와 선거에 매몰되고, 그에 따라 당원이나 지지자의 소통도 약해지면서 정당정치 기반의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시민행동주의(시민개입주의, 정치행동주의)처럼 직접민주주의의 강화 현상과도 연동될 수 있다. 정당과 언론은 두 개의 규범으로 트럼프 같은 극단적 표퓰리스트를 걸러내고, 시민들은 두 개의 규범처럼 기성정당과 언론 및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상황으로 내모는 선동가 형 정치인의 수사학에 속지 않는 기준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사용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이 표퓰리즘 정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상호 존중'과 마찬가지로, '제도적 자체'라는 민주주의 규범은 헌법 정신과 법의 지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선행조건이자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지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정당과 정치인들이 '제도적 자제'라는 개념을 내재화해 습관처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상의 설명에서 보듯 두 개의 규범은 밀접하게 얽혀 있을 때 서로을 강화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이런 자세는 정치인들에게 관용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제공하며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것이다.

 

 

반면에 정치인들이 경쟁 상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제압해야 하는 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두 개의 규범은 무력화되고, 승리를 위해 제도적이고 합법적인 테두리를 넘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무슨 짓인들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불법과 탈법적인 술수들이 자행되고 종국에는 초법적 행태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과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의 패배가 곧 정치적 사망을 뜻하기 때문에 헌법도 무시하는 강경한 태도도 불사하려 할 것이며, 선거는 위험천만한 불장난과 반민주적 폭력이 난무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격상되는 것도 시간의 문제일 뿐이리라. 

 

 

자유로운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정권교체와 승자에 대한 패자의 인정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강령은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내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선에서 자행됐던 권력기관들과 군의 수많은 불법 선거와 정치 개입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미국 헌법과 법률은 물론 모든 나라의 헌법과 법률에도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서도 진영 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눠지고 충돌하기도 하는 관계로 '상호 존중'과 '제도적 자제'라는 두 개의 비공식적인 규범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두 개의 규범이 무용지물이 된 것을 넘어 견고하다고 믿어왔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것ㅡ귀족주의를 선호했던 보수적 자유주의자 토크빌이 100여 년 전에 미국을 둘러본 후 일종의 예언처럼 경고했던 것ㅡ이 증명되자 두 명의 하버드대 교수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반성적 고찰을 이어갔다.           

 

 

"민주주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등장하기 마련이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가령 헨리 포드, 휴이 롱, 조지피 매카시, 조지 윌리스와 같은 인물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당의 민주주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경쟁 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일단 잠재적인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는 두 번째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다. 그 독단적인 지도자가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제도가 그를 통제할 것인가?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선출된 독재자를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 정당 체제와 시민사회는 물론 민주주의 규범이 필요하다. 그 규범이 무너질 때 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민주주의 보호막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독재자는 민주주의 제도를 무기로 삼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선출된 독재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 기관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무기로 활용하고', 언론과 민간 영역을 매수하고자(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정치 게임의 규칙을 바꿔서 경쟁자에게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인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트럼프만이 아니라, 이명박근혜의 '잃어버린 9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런 역주행은, 기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인물인 이재명을 밀어주는 민주당의 지도부와 의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세월호참사를 철저하게 우려먹은 이재명(그의 실체를 몰랐을 때는 지지했었다)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현실정치에서의 퇴출운동에 참여한 것도 그의 품성이나 언행, 기질 등이 표퓰리스트 선동가인 트럼프와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노골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대선주자에도 오르지 못했을 이재명(일개 도시의 시장에 불과한 행정가가 정치판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예외적인 경우였다)을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할 때마다 분노와 실소를 금하지 못했던 것도 살아온 방식과 품성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두 사람을 쌍둥이라고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걸러내기는커녕 비호하기에 급급했던 추미애와 이해찬, 표창원, 정성호, 손혜원 등은 물론 김어준과 주진우, 김용민, 이동형 같은 자들에게도 위의 인용문은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의 주장과 논리가 얼마나 저급하고 선동적이고 편향적이이서 종국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바로미터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정의론(롤스, 드워킨, 벌린, 노직 등)'에 관한 책들과 표퓰리즘 정치학 관련 책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나 우중의 독재로 전락하는 데는 자유의 과잉과 책임의 부재, 정의감의 상실, 도덕적 판단과 윤리적 신념의 결여, 반성적 성찰과 숙고된 합의의 실종 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평등과 자유가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철학적 무지함이 이런 퇴행적 현상들을 초래하고, 그 결과 체제와 사회의 하향평준화가 기성정치인과 정당 및 언론과 지식인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선동가들이 활개칠 수 있는 것도 이런 퇴행적 현상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은 이런 퇴행적 현상들의 박람회였으며, 끝을 모르는 민주주의의 역주행(탈민주화)으로 귀결됐다. 이들의 반민주적 통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끝을 낼 수 있었지만, 죽어도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인정할 수 없어 민주주의 규범마저 무시한 채 극단적인 흔들기와 무조건적인 반대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아직도 기성 정당과 언론, 대학, 종교집단 등에 여전히 포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정치가 합리적 토론과 협상이 불가능한 극단적인 양극화로 접어든 것도 이들의 반체제 집단 같은 난동과 노골적인 적개심 표출, 조직적인 방해공작 때문인데, 그들을 저격하고 비난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권력화의 단계를 넘어 현실적인 이익까지 챙겨온 김어준과 주진우 등의 나꼼수 멤버들에 열광하고 추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들에 대한 선호와 인정은 차치하더라도, 이들은 정치적 양극화의 또다른 말인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해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으며 그들이 쏟아낸 말들과 질문 중에 어떤 것들이 사실이었고 그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 객관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일방통행은 독재의 다른 말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잉글하트와 달톤처럼 디지털 기술과 시민주권의 조합에 긍정적이어서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피파 노리스의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에는 참조할 만한 내용들이 다수 나온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17년 전에 출판된 책이어서 한계는 있지만 상당 부분이 현재에 적용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참조할 가치는 충분하다. 디지털 기술들이 일으킬 정치 혁명을 긍정적으로 보다 최근에 들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다룬 이런 초기의 연구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말해준다. '촛불혁명'과 '소셜미디어'를 각각의 장에서 다룬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도 디지털 민주주의의 명과 암을 제대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디지털 정치혁명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준다.  

 

 

"국가 간 통계자료를 보면, 정보통신 기술을 매개로 시민 관여의 기회를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전통적인 통로를 통해 참여했던 적극적인 할동가들이다. 방관자들이나 무관심층이 주식시장에서 게임과 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다른 사이트에 시간과 정력을 쏟는다면, 디지털 정치는 그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을 것이다…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토론 집단과 게시판, 온라인 토론방에 대한 연구는 이런 공간이 진지한 토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대체로 실패하는 반면, 오히려 동질적이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는 장소가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인터넷이 정치적 행동주의의 동기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매우 미약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디지털 정치는 주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신화적인 성공으로 2014년이나 2015년까지는 디지털 정치와 소셜미디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낙관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극우 정당의 약진이 심상치 않았지만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을 만큼은 아니었다. 2016년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캐스 선스타인의 《루머》와 래리 다이아몬드의 《자유화 기술》에서 언급된 경고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넘어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까지 이르자 대중의 인식은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가짜뉴스가 차별과 혐오, 증오와 적개심, 폭력을 선동하는 쓰레기 같은 발언들과 함께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뒤덮어버린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가짜뉴스와 루머 같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파급효과를 산출해냈고, 국민투표의 향배와 선거의 결과까지 바꿔놓았다. 가히 소셜미디어와 표퓰리즘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 4장 <소셜미디어>를 보면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결에서 가짜뉴스로 대표되는 '바이러스성 콘텐츠'의 온상이었던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기능이 승패를 갈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성 언론이 받는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디지털 도구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적들을 연결해 주고 해묵은 증오를 극복하면서 지역 맥락을 재구성해 줌으로써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독재 지배를 강화하고 인종적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빛의 속도로 퍼진 '바이러스성 콘텐츠'의 범람 때문에 선스타인이 《루머》에서 경고한 '반향실 효과'(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여론의 함정을 말하는데, '크로스 체크'를 하지 않는 확증편향 오류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생각이나 지향이 비슷한 사람에 둘러쌓이면 현실인식이 왜곡되는 인주부조화에 이르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가 미국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여론환경과 정치 판도를 바꿔놓았다.

 

 

"그런 다음,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미국 정치의 전통적인 문지기를 우회하는 트럼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거운동을 보면, 소셜미디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예전이었다면,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이민자, 종교 소수자 및 정적들에 대한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나 비방을 늘어놓는 그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 덕분에, 도널드 트럼프는 전통적인 언론 매체의 기반 시설이 필요 없게 되었다. 대신 그는 수백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메시지를 직접 트윗할 수 있었다. 일단 그가 그렇게 하니, 기성 방송사들은 냉혹한 선택에 직면했다. 한창 논의되고 있는 이야기를 팔짱을 끼고 무시하느냐? 아니면 트럼프의 트윗 내용을 마치 정밀조사를 끝낵 내보내는 것처럼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증폭해 주느냐? 당연하게도, 그들은 두 번째를 선택했다. 트위터 피드는 트럼프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념적인 이유 혹은 재정적인 이유로 행동하는, 중견 전문가들의 분산된 네트워크에 의해 강화되었다. 이들 중 가장 두드러진 곳이 〈브라이트바트〉사였는데, 이 신문사의 급부상은…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기성 미디어 조직과 맞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성 언론이 받는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방침이었기에, 진실을 전하기보다 센세이션을 일으킴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브라이트바트>말고도 수없이 많은 중소 미디어가 뒤를 이었다. 미국의 대선이 가짜뉴스와 온갖 루머, 각종 음모론이 판을 치는 쓰레기들의 경쟁으로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의 <네이버>와 <다음>처럼, <비데어>와 <인포워즈>, <아메리칸르네상스>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도 '바이러스성 콘텐츠'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다른 이유들로 해서 트럼프 만큼 욕을 많이 먹었던 힐러리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할 수 있는 미국 선거제도의 특수성은 별도로 한다고 해도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꼼수의 성공도 이런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이명박근혜라는 두 명의 표퓰리스트 대통령을 배출한 대한민국이었기에 나꼼수의 성공이 가능했다. 디지털 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순기능도 상당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방관자들을 디지털 정치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고, 많은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종편의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 그들은 외면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명박을 저격하는 것을 넘어 기성정치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들이 다루기 좋은 대형 사건들과 이슈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 점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투명성 때문에 음모론적 상상력이 활개 칠 수 있는 상황도 한몫했다. 그들의 영향력이 손석희 사장에 비교되거나 지상파 뉴스의 영향력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들에게 절절매는 것도 이들의 추종자들이 여론을 만들고 선거 판도를 바꿀 만큼 엄청난 표밭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를 쉬운 언어로 풀어간다고 해서 정치의 수준까지 떨어뜨리면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기회주의적 선동가들이 힘을 얻는다(나꼼수의 역설). 음모론의 홍수와 함께, 그들 자체가 권력이 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는 오래 전에 사망선고에 비슷한 판정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정치와 시민행동주의(시민개입주의, 직접민주주의)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가짜뉴스의 폐해가 아무리 크다 해도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할 수 없듯이, 상대 진영을 적으로 지정해 타도의 대상으로 돌리거나 음모론적 접근에 의지해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내세워 재벌오너를 공격한다고 해서 재벌이 착해지는 것도 아니다(주진우가 진행하는 MBC의 <스트레이트>가 대표적). 재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법 위에 군림해온 재벌 오너만 공격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한국경제에 좋다고 할 수 없다. 자국에서조차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않고 천문학적인 세금을 조세도피처로 빼돌리고 노조도 없는 구글과 애플 같은 초국적기업에 비하면 제조업 중심의 한국 재벌들은 칭찬을 받아도 모자랄 판이다(삼성전자가 싫다고 애플을 찬양하는 진보매체들의 이중적 잣대는 창피해서 고개도 못들 지경이다). 재벌을 한국경제에 좋은 방향으로 개혁하고 4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도 완화시켜야 하지만 오너만 공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재벌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내부자들과 그들에 기생해서 이익을 챙기는 외부의 조력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오너를 아무리 공격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진보 진영의 가장 큰 약점은 현장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낮다는 점인데, 이것을 극복하려면 재벌들이 돌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것인데, 재벌 오너의 잘못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과 함께 재벌을 착하게 만드는데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유럽의 선진복지국가처럼 초국적기업들이 진보 진영과도 손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게 중요하다. 그럴 때만이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창출이 핵심), 혁신성장(생산성 높은 기업이 핵심), 공정 경제(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이익공유가 핵심)라는 환상의 J노믹스가 성공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제대로 분석해서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은 경제 투톱을 동시에 교체한 것도 최소 2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는 J노믹스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논리 구조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반대를 위한 반대밖에 하는 일이 없는 자유한국당의 생떼 같은 비난과 정부의 도움이 없으면 언제나 실패를 거듭하는 시장경제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바른미래당의 앵무새 같은 비판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이것을 이용해 온갖 선동과 가짜뉴스를 양산해낼 소셜미디어와 팟캐스트, 유튜브에 올라가는 1인방송의 '바이러스성 콘텐츠'와 전파력을 막을 방법이란 없다. 가짜뉴스처럼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대한 면역력과 필터링 능력이 약한 사람들이 도처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기꺼이 속아넘어갈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아닌가.   

  

 

 

(J노믹스를 비판하는 논리들의 허접함은 별도의 글로 다루겠다. 한국의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알게 되면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도 초고다. 오늘은 여기까지)

 

  1. utopia 2018.11.12 07:59

    j 노믹스성공하길바랍니다...소득주도,,..2020 총선에 심판받겠지요..보궐선거도곧옵니다

 

 

들어가는 글  

 

 

 

 

그리하여 가장 최근에는 브라질에서 극우 표퓰리스트 정치인이자 '리틀 트럼프'로 회자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63)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최고조에 이른 민주주의 위기론과 종말론이 신종 전염병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시민의 힘으로 권위주의적 표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박근혜를 탄핵시킴으로써 민주주의 역주행의 잃어버린 9년을 종식시킨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들이 권력을 잡거나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시민 자치를 뜻하는 민주주의(특히 자유민주주의)를 벼랑끝으로 내몰면서 작동불능의 지경으로까지 몰고가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빰칠 듯한 극단적 표퓰리스트의 득세에 기존의 정당들과 언론들은 너무나 무력하고 부패해서 이들에게 휘둘리며 민주주의 방패막이로써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케이블 방송(한국의 종편을 생각하면 된다)과 인터넷언론, 팟캐스트, 유튜브의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한 1인방송, 정치뿐만 아니라 모둔 분야에서 극단적 대결을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같은 대안언론과 유사언론, 1인언론의 폭발적인 분출은 정치적 아웃사이더나 극단적 표퓰리스트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필터링 기능이 마비된 생태계에서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증오와 혐오, 차별과 분열, 배제와 범주화, 복수와 테러를 조장하는 발언들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퍼져나갔다.       

 

 

경쟁하는 체제와의 싸움에서 민주주의 진영의 승리를 이끌었던 고도·과속성장의 파티는 너무나도 짧았고, 선진복지국가를 구축한 북유럽의 국가들을 빼면 자유주의 경제학이 자랑했던 낙수효과와 비슷한 것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뒤를 이은 신자유주의 30~40년 동안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가 발생함에 따라 기성정치와 제도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면서 표퓰리스트들이 목소리를 높일 환경이 조성됐다. 2016년부터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수많은 논문과 저서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과학기술이 미친 영향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처음으로 정식화한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40년만에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정보통신기술로 대표되는 디지털기술과 빅데이터 및 뇌과학에 기반한 인공지능 발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신자유주의는 하위 99%의 돈을 상위 1%로 이전하는 역계급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대기업과 자본의 입장에서 수익성이 높은 아이디어들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강자의 수익모델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무한경쟁을 강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술이다. 푸코에 의해 신자유주의 이성이라고 명명된 이런 통치술은 자유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치환시켜 정치적 인간을 경제적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따라서 기술 발전을 녹여내는데 상당한 성공을 이룬 로버트 J.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와 '촛불혁명'과 '소셜미디어'에 하나의 장을 할애한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와 경제,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날개를 달아준 디지털기술과 인공지능에 대한 냉정하고도 비판적이며 포괄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물론 인류의 멸종을 막을 최후의 기회마저 허무하게 날릴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인간이 주도하는 마지막 산업혁명이자 최후의 발명품이라고 하는 4차 산업혁명(미국의 실리콘벨리와 영국, 한국에서만 각광을 받는)과 인공지능의 영향까지 포함해 거칠고 위태하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려고 한다. 성장의 또 다른 말이 극단적 불평등이었으며 지속불가능한 양극화였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과학기술 발전의 역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성장과 진보를 무조건적인 선으로 보는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이런 인식을 대전제로, 가능하면 모든 사안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볼 생각이며, 양극화된 이념적 구분이나 프레임전쟁의 관점에서도 최대한 벗어나려고 노력하되 현장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나에게는 너무 쉬운 보수우파 비판만이 아니라 살과 뼈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진보좌파 비판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작고한 드워킨이 그랬듯이, 진보와 보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합의점을 제시할 것이며, 비판을 넘어 대안 제시에도 용감하려 노력할 생각이다. 다양한 정의론 중에서 이 시대에 맞는 정의론의 일단이라도 고민해보았고, 몇몇 선도적 연구가들의 도움을 받아 디지털기술과 디지털세대의 명암도 직선적으로 다루었다. 조심스럽지만 디지털기술과 만난 페미니즘의 급진화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페미니즘의 정상화만이 수많은 인류 멸종 시나리오의 대부분을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남녀의 성대결로 변질되고 있는 페미니즘 급진화의 원인을 밝혀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믿는다. 인류사 전체를 놓고 보면 부모세대보다 자식세대가 못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밝힐 것이지만, 밀레니엄 세대의 경우가 그중에서도 최악인 이유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았으며,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자살만 꿈꾸다가 방대하고 무차별적인 독서를 통해 지금에 이른 나에 대한 이야기다. 거의 모든 표퓰리시트는 빛과 어둠의 경계를 어슬렁거리며 세상을 배회하던 아웃사이더로 분류되고, 기성정치인과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에 나의 삶을 짧게나마 다루는 것이 그들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매우 짧은 기간의 꿈으로 허망하게 끝났지만 지금의 구글과 애플이 하고 있는 사업들을 거의 다 그려보고 한두 가지는 실제로 추진해봤기 때문에 디지털기술과 온라인 세상, 특히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명과 암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었던 내 경험이 작금의 현실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이 때문에 두 번째 파트는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본 근현대사 비판에 할애했으며, 산업혁명에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거쳐 표퓰리즘의 득세까지 신자유주의 합리성과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에 미친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다루어보았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디지털시대의 표퓰리즘과 민주주의 위기, 진보의 역설과 인류의 종말을 다양한 부분으로 세분해 다루었으며, 포괄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과정을 거쳐 끝에 이르렀을 때 내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들이 독자들의 눈에는 더욱 진보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진보의 재정립처럼 다가올 수도 있고, 보수의 정신을 대폭 수용한 새로운 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가 무엇으로 나오던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것이며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며, 지금보다 풍요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식과 양심, 상호존중과 배려, 정의와 공정이 산소처럼 퍼져있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사람 사는 세상'에 다가가는 것이다. 비록 소수에 그칠 독자와의 여행이지만 모든 고민의 끝에는 흐릿하게나마 희망적인 세상의 일단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전 과정이 더욱 흥분되고 설레는 것처럼, 나와 여러분의 여행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대한 쉬운 언어로, 평이하게 풀어가도록 노력하겠지만, 혹시라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필자의 모자람과 과욕에 있지 독자 여러분의 사유의 깊이와 넓이에 있지 않음을 밝힌다. 

 

 

자, 그러면 함께 출발해 볼까요?

  

  1. 카사바 2018.11.27 00:16

    네 저도 출발합니다! 선생님의 저서가 벌써부터 많이 기대됩니다.."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우리 후손들은 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겠지요! 선생님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네요. 책을 내실 때 제목이든 부제든 눈에 확 띄게 해주셔서 많은 분들이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책이 나올 때까지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8.11.27 01:44 신고

      네, 그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목과 부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제가 최대한 충실하게 글을 써내는데 성공하면 그에 걸맞는 제목과 부제도 나올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목표한 것을 이루어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보면, 리얼리티쇼와 프로레슬링에 자신을 노출함으로써 대중적 스타로 떠올랐지만, 정치적으로는 '듣보잡'에 불과했던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놀라운 변ㅡ긍정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고 온통 부정적인 내용만 가득한 변화로 이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려면 디지털 기술이 불러온 정치 환경와 언론 환경, 시민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살펴봐야 하는데 디지털 기술에 이해부족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은 연구자는 거의 없다. 책의 3부에서 이를 다뤄보려고 하는데 관련 연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통신사업을 했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접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ㅡ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두 저자는 인종 차별에 기대 양당 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공화당과 민주당이 이념과 종교를 기준으로 극단적인 대립이란 정치적 양극화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트럼프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기준으로 공화당의 남부와 민주당의 북동부로 나뉘었던 양당 체제가) 1965년 이후로 시작된 정당 재편과 함께 유권자 집단 역시 이념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거의한 세기 만에 처음으로 이념이 곧 정당의 정체성이 되었다. 즉, 전반적으로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그리고 민주당은 진보주의를 상징하게 되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주당의 공화당은 더 이상 이념적 '빅텐트'가 아니었다. 민주당 내 보수주의 인사, 그리고 공화당 내 진보주의 인사가 사라졌고, 그에 따라 정당 간 공통분모도 줄어들었다. 상원과 하원 의원들 대부분 상대 당 인사보다 정당 내 동료와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게 되면서 정당 간 협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그리고 정당 노선에 따라 표결에 임했다. 유권자 집단과 그들이 선택한 대표가 점차 동일 '캠프'로 수렴되면서, 정당 간 이념 차이는 더욱 선명해졌다……민주당이 왼쪽으로 이동한 거리보다 공화당이 오른쪽으로 이동한 거리가 훨씬 더 멀다……정당 재편은 진보와 보수 대결을 넘어서 나타나고 있다. 정당 지지자 집단의 사회적, 민족적, 문화적 특성이 크게 바뀌면서 정당은 이제 단지 서로 다른 정책적 접근방식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 문화와 가치를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다……민주당이 점차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던 반면, 공화당은 백인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남았다. 또한 공화당은 개신교의 정당이 되었다. 개신교 집단은 특히 1970년대 말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요한 계기는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이었다……1960년대만 해도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백인 개신교 집단은 서서히 공화당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점차 비종교적인 성향을 드러냈다……다시 말해 미국의 두 정당은 이제 인종과 종교를 기준으로 확연히 분열되었다. 세금이나 정부 지출과 같은 일반적인 정책 사안에 비해, 인종과 종교는 더욱 극단적인 적대감을 낳는 양극화 동인이다."

 

 

P.216~219의 내용을 추가할 것. 그래서 뒤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할 것.  

 

 

       

 

근대와 현대 민주주의의 원조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 민주 정치의 기존 문법을 모조리 파괴하고 있는 트럼프의 당선과 과거로의 폭력적인 역주행을 선택한 브렉시트 가결에서 보듯 민주주의는 의의로 허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확산과 승리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기와의 동행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역사는 수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허점을 메울 집단적인 성찰을 모든 세대와 시민에게 제시해주지 않는다. 경쟁하는 어떤 체제보다 생명력이 높지 않았다면 여러 번 무너졌을 위기에 처한 적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위기를 달고살면서도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내는 데는 도를 텄지만 또다른 위기의 도래를 막을 수 없는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위기에 항상 노출돼 있는 것이 어떤 위기에도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역설로 작용하지만 인류의 삶을 급변시키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인 질주로 인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아직도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는 장점(다양성, 개방성, 투명성, 유연성, 반응성 등)이 곧 단점(즉흥적인 반응과 충동적인 행위, 물질주의적 시기심, 단기적이고 이기적 이익 추구, 근시안적 역사관, 극단적 개인주의, 도덕적 해이 등)이기도 한 체제이자, 플라톤의 비판처럼 우중에 의한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되기도 쉬운 행동규범이며, 완성된 형태가 없는 유동적인 체제라고 말하고 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이런 낙관론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것도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과 장점이 혼재함으로써 서로를 상쇄하거나 충격을 완화시키기 때문이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동시다발적 변화는 민주주의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던 민주주의가 위기와 극복(그럭저럭 버텨나가거나 땜질식 적응으로 대처하는 것) 사이에서 끝없이 표류하면서도 긍극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이런 본질적 속성이 극단적 표퓰리스트의 득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 1권과 2권에서 헌법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가는 미국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살펴본 후, 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심통과 변덕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에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일축했던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궁극의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토크빌의 냉혹한 평가는 모든 선진민주국가에서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조증 같은 호들갑과 두려움을 표출하며 위기에 집중하지만, 적당하거나 임시방편적 해결책을 찾아내면 위기의 본질과 근원까지 파고드는 일을 멈춰버리는 정신의 가벼움과 당장의 이익과 쾌락으로 재빠르게 돌아가는 속물근성은 어떤 민주주의도 궁극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디지털 기술로 중무장한 디지털 세대의 출현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졌다.

 

 

많은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인터넷이 불러온 변화는 대단하지 않았고, 정보통신기술은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제외하면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꾸지도 못했지만(<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의 내용을 주로 다룸), 밀레니엄 세대의 등장과 소셜미디어의 약진과 맞물리면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전과는 다른 규모로 이끌어가고 있다. 민주주주의 단점이 장점으로 뒤바뀌는, 그래서 민주주의의 실패가 성공으로 뒤바뀌는 경우가 속출했던 과거의 사례가 미래에도 적용된다는 보장이 사라져가고 있다. 성공과 실패의 이중적인 변증법은 민주주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처럼 작동하면서도 그로부터 확고한 지혜를 끌어내지는 못하는 한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표퓰리즘 선동가와 정당들이 이전의 경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핏빛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득세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성찰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표퓰리즘의 득세는 이전에도 있었다며 과거의 경험에서 그들의 폭주를 막아낸 승리의 기억들을 되살려낼 필요가 있다고 외치고 있다. 표퓰리즘의 득세를 빠르게 진행되는 탈민주화 과정으로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석은 민주주의의 성공, 즉 더 높은 단계의 민주주의로 가는 민주화 과정으로, 느리게 진행되지만 실패, 즉 더 낮은 단계의 민주주의로 역행하는 탈민주화 과정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는 정치학자 틸리의 주장에 근거한다. 그는 특정한 체제에서 국가와 국민의 정치적 관계의 폭이 더욱 넓어지고, 평등이 더욱 강화되고, 보호의 수준이 더욱 높아지고, 구속력 있는 상호협의의 정도가 더욱 올라가면 민주화된다고 정의하고, 이런 네 가지 요소가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면 특정 체제가 탈민주화된다고 정의하는데,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화와 탈민주화의 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민주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국가의 능력도 강화되며, 탈민주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국가의 능력도 떨어진다. 민주화의 정도가 높은 고능력 정치 체제에서는 국가 관료가 특정한 행위를 할 때마다 시민의 자원, 활동 및 인적 관계망에 높은 수준의 긍정적 영향을 창출하며, 저능력 정치체제 하에서는 국가 관료가 아무리 이러한 요소들에 영향을 주려해도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찰스 틸리의 《위기의 민주주의》를 보라). 

 

 

민주주의가 수많은 도전에 흔들리며, 예상치도 못한 위기로 몸살을 앓는 것도 민주화와 탈민주화를 오고가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인데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이 이를 극대화시키는 모양새다. 정치철학자이자 법학자인 드워킨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다수의 결정이 일방통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를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간의 토론과 협상을 통해 양보를 이끌어내고 모두의 의지와 선택, 이익이 반영되는 지점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동반자 민주주의가 아닌 다수의 의지와 선택만 중시하는 다수결 민주주의로 축소할 때 민주주의의 단점이 극대화되고 장점은 극소화되는데 양극화된다. 민주주의의 단점은ㅡ플라톤에서 버크와 토크빌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로 보수주의자들이 견지해온 주장처럼ㅡ국가 또는 해당 체제를 "누가 이끌 것인가에 대한 최종 평결을 경제, 철학, 외교 정책, 환경과학 등에 대한 지식이 없고 이런 분야에 대해 자질을 갖출 만한 시간도 능력도 모자란 수천만의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발생하는데, 디지털 기술은 이런 위험을 줄이기보다는 높이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드워킨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성정치가 '똘똘한 중학교 학생들의 토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고 한탄한다(드워킨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인용).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주의 핵심이 '국민 자치 또는 다수 통치'에 있는 한 기성정치의 하향평준화는 불변의 진리이자 불편한 진실인데, 바로 이것 때문에 다수의 뜻이 일방통행하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가장 낮은 단계의 민주주의로 자리하는 이유가 되고 포퓰리즘의 득세로 이어졌다.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고, 진지하고 숙의된 토론이 없으면 다수의 독재로 귀결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합법적 절차를 걸친 체제의 결정이 민주주주 후퇴를 넘어 권위주의 독재나 파시즘과 군국주의처럼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체제로 전복되기도 하는 경우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면 표퓰리즘 득세에 대한 이들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보수주의자들이 귀족주의의 근대적 변형인 엘리트주의를 강조하고,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종교적 가치와 전통, 질서를 보장하는 관습과 규범,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왔다. 반면에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 진보주의자들은 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일에만 열중할뿐 최종 평결을 최선으로 만드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여력과 열의도 없다는 것을 애써 무시한 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민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강조하며, 다수결 민주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을 드러낸다.

 

 

(주 : 사회적 생산관계라는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에 종속된 상부구조로써의 정치의 역할을 부정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자본주의의 미래를 잘못 예측한 마르크스의 주장에 의존했던 진보ㅡ특히 구좌파ㅡ의 바람과는 달리 중산층에 진입한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다니얼 벨의 《탈산업사회의 도래》 등을 참조하라. 마르크스 비판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의 예언이 틀렸음을 웅변해주는 것으로는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참조하라. 칼 폴라니, 한나 아렌트, 울리히 벡, 토마 피케티 등도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린 이유와 실제적 증거들을 다루었다. 마르크스 비판은 별도의 글로 다룰 것이다.) 

 

 

문제는 이런 두 가지 관점이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으로 가지 않고 상대를 적으로 여긴 채 승자독식을 외치면 민주주의는 상시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국민적 피로와 정치혐오만 키우고 누적시킨다.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진보와 보수는 극단적으로 충돌하거나 상대와의 토론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고 상대를 비방하고 저격하는 악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양보와 타협, 협상을 통해 정치적 합의에 이르는 고능력 민주국가에 이르는 꿈이란 장자의 꿈속에서도 재현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단점이 강화되고 장점이 약화되면 '너 죽고 나 살자'로 대표되는 정치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알고 싶다면 유벌 레빈의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을 보라. 도식적인 구별은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전쟁》을 보라. 촛불혁명 이후를 조망한 책으로는 박세길의 《두 번째 프레임 전쟁이 온다》를 참조하라).

 

 

로널드 드워킨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미국 정치는 끔찍한 상태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극렬하게 의견이 갈린다. 테러와 안보, 사회정의, 정치와 종교, 어떤 사람한테 판사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그냥 의견 충돌 정도가 아니라 양쪽이 상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치의 협력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치는 전쟁의 양상에 가깝다"며 한숨을 토한 것도 정치적 양극화가 미국의 민주주의가 작동불능의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치적 관용과 상호존중이 사라진 정치판이란 정글보다 못한 살육과 파괴의 전쟁터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정치적 양극화는 미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발견된다. 전 세계적으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들이 득세하게 된 것도 이런 정치적 양극화가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적 공론장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미국 공화당의 실세였던 뉴트 킹리치가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면서 극단적인 정치의 양극화는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영국에서 대처의 집권과 미국에서 레이건의 집권은 (시대적 맥락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만) 정치적 양극화의 초입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고, 이후의 정치를 생사가 결정되는 전쟁터로 변화시킨 전환점이었다. 냉전은 끝났지만 분열의 양상은 국내정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물리적 거리가 줄어든 만큼 격렬해졌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장점들은 흔적을 감췄고 단점들만 거리를 활보했다. 사회주의와의 체제대결에서 승리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이 곳곳에서 침몰하며 위기의 경고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거에서 지면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이런 정치의 양극화로 인해 민주적 토론과 구속력 있는 합의가 불가능해진 현재, 미국과 유럽처럼 선진민주국가의 정치학자들과 보수적이거나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들 가운데는 민주주의의 영속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민주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강한 프랑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선진민주국가에서도 민주주의의 종말을 얘기하는 학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구적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권위주의나 군사독재의 망령들이 되살아났으며, 보호무역과 이민자·외국노동자 배척, 백인우월주의·인종차별주의, 남녀차별를 옹호하거나 동성애와 낙태, 보편적 복지, 공교육 확대 등에 반대하는 극단적 정치인과 정당들이 득세하면서 민주주의 위기론과 종말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정치엘리트와 제도적 차원의 문제일뿐 시민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계속해서 커졌다고 주장하며, 이를 견인하는 디지털기술의 발달 덕분에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관하는 정치학자들도 있다. 이들은《조용한 혁명》의 로날드 잉글하트, 《디지털 민주주의》의 피파 노리스, 《시민정치론》의 러셀 달톤 등이다. 표상만을 볼 때 민주주의는 무한퇴행을 거듭해온 것 같지만 그 아래로는 참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디지털민주주의와 시민주권 행동주의(정치행동주의 또는 시민개입주의라고도 한다)로 대표되는 이런 거대한 흐름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승리를 확고히 할 터였다. 박근혜(권위주의적 표퓰리스트)를 끌어내린 촛불혁명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기념비적인 정치혁명(비폭력 시민불복종)이지만,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의 득세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 이들 역시 위기의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으리라.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귀결된 이후(1989년) 개인의 권리와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다수의 의지와 정치적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가 서로의 단점을 각각의 장점으로 상호보완하면서 민주주의(정확히는 '개인 권리 존중과 국민 자치의 독특한 조합'인 자유민주주의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자본주의 연합)의 승리가 확정되는 듯했으나(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보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 따른 불평등과 양극화, 그것의 직접적인 결과인 저출산과 고령화, 갈수록 강화되는 저성장과 복지 축소, 새로운 빈곤층을 양산하는 성장의 역설 등으로 대표되는 지난 30년의 역주행이 이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었다. 파티는 짧았고 승리는 보잘 것 없었으며 착각은 치명적이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지난 30년 동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멀어지면서 자유민주주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364p 인용할 것)는 작동불능의 상태까지 내몰렸다. 60년대까지는 소수파에 불과했던 신자유주의자와 신보수주의자들은 억만장자의 통큰 후원 하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주의를 공격(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했고,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공격(반민주주의적 자유주의)함으로써(주 : <불경한 삼위일체>와 <불의란 무엇인가>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인용할 것) 케인즈식 정부 개입(큰정부)과 복지국가를 무력화시켰다. 이들의 주도 하에 경쟁하는 다른 체제들에 대해 영원한 승리를 달성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연합은 뿌리까지 흔들렸고, 지속적인 여진에 따라 서로로부터 멀어져갔다. 진공을 싫어하는 정치의 속성상 그들이 갈라진 공간으로 정치의 양극화와 디지털기술에 의존해 지지자를 늘리는데 성공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들이 들어섰다.   

 

 

상대를 적이자 악으로 규정하는 표퓰리즘의 특성상 대중의 여론은 상대의 숨통을 조르는 칼이며 선거는 상대의 숨통을 끊는 창이라 할 수 있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승자독식의 정치경제학이 정치의 양극화를 견인하고 번창시켰다. 극단적인 진영논리와 배타적 이념대결은 전속력으로 마주보고 달려드는 두 대의 기차와 다름 아니었다. 반칙과 불법이 난무하는 선거의 분열상과 정치의 양극화는 하나의 나라를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색깔로 분열시키고 갈라놓았다. 그 결과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자유를 죽이는 행위로 가혹한 구조조정과 대규모 정리해고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와 '민주주의 없는 권리 보장(평등을 죽이는 행위로 중하위층을 죽이는 복지 축소와 긴축재정, 공기업의 민영화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이 등장해 자유민주주의를 뿌리에서부터 부식시키며 정치의 양극화와 이념적 분열상을 극대화시켰다(주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보완은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에 자세히 나와있는데 추가할 것).

 

 

영원할 것 같던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인도할 체제에서 멀어져갔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은 트럼프의 당선은 정치적 양극화가 자유민주주의를 작동불가능하게 만들었음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의 저자 데이비드 런시먼 식으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정된 바로 그때 위기의 씨앗이 잉태된 것이다. 장점이 곧 단점이듯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실패를 담보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누구도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경쟁자가 사라진 자유민주주의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스포츠카였다. 냉전의 대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무차별적으로 터져나왔다. 정치인과 정당의 토론을 안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한 텔레비전은 정치인의 이미지와 스타일만 부각시켰으며, 정치의 가십화와 오락화만 가속화시켰다(주 : 리처드 생크먼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와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에서 인용할 것).

 

 

냉전이 정점에 달했을 때 소련이 나토회원국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유권자의 낮은 정치수준에 맞춰 인기영합적인 정책과 실행불가능한 공약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미국인의 절반이 9.11 테러의 비행기 납치범 중에 이라크인이 믿을 만큼 국민의 무지가 높은 점을 악용해 극단적인 표퓰리스트들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려된 것이다. 미국의 선거가 TV드라마 수준에 맞춰 진행되는 것도, 정치인의 정치 자문들이 유권자를 무지한 군중으로 다루라는 조언을 늘어놓는 것도 정치 지식과 경험이 일천한 표퓰리스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후보들의 TV토론에서 선동과 차별, 증오와 혐오의 발언들이 난무하는 막장드라마가 펼쳐지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분법과 자극적인 언어의 마술사인 표퓰리스트에게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브루스 애커만과 제이스 피시킨의 《숙고의 날》을 보라).

 

 

언론의 저질 오락화와 양극화를 동반한 정치적 양극화는 선거의 분열상을 극대화시키는 것과 함께,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믿음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켰다. 표퓰리스트의 발언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일수록 기성정치인과 정당,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만 가중시켰다. 선의의 정치는 사라졌고 그놈이 그놈이라는 유권자의 편견와 정치혐오만 강화시켰다. 민주공화국의 부식은 갈수록 빨라졌고 법치주의와 법앞의 평등은 유전무죄 무전무죄로 대치됐다. 사회 정의와 정치적 올바름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고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세대간 전쟁으로 비화했다. 경제성장이란 특정 계급을 위해 나머지 계급을 약탈하는 것으로 변모했고, 부와 기회가 세습됨에 따라 조건의 평등이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은 종적을 감추었다. 실패가 개인화됨에 따라 가족과 사회안전망이 빠르게 해체됐고 세대와 세대 사이만큼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들어앉았다.

  

 

달라진 것은 도전자의 유형ㅡ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소외받고 버림받은 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표퓰리스트ㅡ뿐이다.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47~73년(길게는 30년대 초반에서 70년대 후반까지) 동안 자유민주주의는 복지국가 구축에 성공함에 따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장밋빛 미래에 대한 온갖 약속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고도성장이란 지극히 한시적인 시기에만 가능한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보라). 고도성장이 불가능해진 세상이란 모든 부분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불평등과 양극화, 환경 파괴, 자원 고갈, 기상 이변, 청년실업 증가와 중년 파산, 노인 빈곤 등으로 얼룩진 실패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으며, 하이에크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향하는 '노예로의 길'이었다.  

      

 

전후세대와는 달리 고도성장의 과실과 자유민주주의의 달콤함을 누려보지 못한 세대들이 늘어나고 축적됐다. 특히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해진 자식세대인 밀레니엄 세대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충성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늘보다 못한 내일에 벌거벗겨진 채 던져진 이들의 불만과 분노, 절망과 두려움은 기존 체제를 뒤엎어버리겠다는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들의 책임전가와 감언이설, 거짓말에 힘을 실어주었고,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과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나라마다 기성 정치인과 정당, 언론을 비판할 근거와 환경이 다름에도 '배신당한 다수와 경멸하는 소수자들'의 좌절과 절망, 분노와 증오를 선동하고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근거한 표퓰리즘의 수사학(차별과 분열, 증와와 혐오, 책임 전가와 치졸한 복수의 말들로 가득하다)은 디지털기술에 의존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설득력 있게 다루었듯이, 타락할대로 타락한 언론들의 자사이기주의와 선정적 상업주의, 극단적 진영논리와 이념 대결은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대안언론들의 부상과 난립을 초래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표퓰리스트를 대변하도록 만듬에 따라 기존의 역학관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베네스엘라, 칠레, 러시아, 그리스, 스페인, 터키, 필리핀, 인도, 헝가리, 폴란드, 뉴질랜드,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영국, 미국, 브라질 등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들이 권력을 잡거나 무서운 속도로 부상해 주요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편화, 디지털언론·팟캐스트·쇼설미디어의 대중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존 주디스의 《표퓰리즘의 세계화》에서 인용문을 찾아 추가할 것).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기존 정당과 언론들이 극단적 표퓰리스트를 걸러내는 필터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신자유주의자와 극우주의자들이 주도한 브렉시트가 가결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트럼프 같은 최악의 표퓰리스트가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다수의 선진국 중 하나로 전락한 영국이야 그렇다 해도, 세계 최강 미국에서 최악의 표퓰리스트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당선은 민주주의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을 산산조작냈으며, 미국의 민주주의가 작동불능의 지경에 이르렀음을 웅변한다. 건국자들의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의 규칙과 규범을 짓밟아버린 트럼프의 언행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음을 말해준다.    

 

 

백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다수의 독재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미국 헌법(메디슨, 해밀턴, 존 제이의 《연방주의자 논설》을 보라)의 허점들과 인종차별에 의해 유지된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거대양당(공화당과 민주당)과 뉴욕타임즈, CNN, 워싱턴 포스트 등의 거대언론들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상대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인정하는 관용과 상호존중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범을 포기한 채 머독의 폭스와 인터넷언론처럼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며 필터링 역할ㅡ루즈벨트의 대법원 장악 저지와 닉슨의 탄핵 추진이 대표적인 예ㅡ을 엿바꿔 먹었기에 트럼프의 당선이 가능했다.

 

 

거대양당과 거대언론들이 필터링을 통해 트럼프라는 극단적 정치인을 걸러냈다면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반발을 불러왔겠지만, 미국 민주주의가 작동불능의 상태까지 내몰리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며, 미국이 예외국가이자 유일제국에서 악의 축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클린턴에 대한 불만이 트럼프 당선에 비견될 만큼 혐오스럽고 꺼려지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이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토머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ㅡ보수주의자의 은밀한 공격》에서 인용문을 찾아 추가할 것).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동일한 사건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형적인 예인데, 이를 바로잡는 것이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유민주주의가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느냐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브렉시트를 찬성한 영국인과 트럼프에게 표를 준 미국인은 저학력 백인노동자만이 아니다. 이들보다 더 많은 표를 준 집단은 전통의 중상류층과 밀레니엄 세대들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복지가 세계화와 자동화, 이민자, 해외노동자 등에 의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자식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부유층(나이로는 60대 이상, 학력으로는 대졸 이하)이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주도한 세계화와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 중장년층과 자유민주주의로는 해답이 없다고 생각해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풀어줄 수 있다면 권위주의체제와 군사독재라도 상관 없다는 밀레니엄 세대들도 브랙시트와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 연합의 한편은 미국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신물이 난다고 공언하는 부유층, 대체로는 노년의 유권자였고, 다른 한편은 더는 잃을 게 없다고 믿는 가난하고 홀대받는 유권자였다. 그러니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들의 개인적 환경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가진 게 거의 없어서 자신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도 무관심한 사람들의 조합이었다……(브랙시트에 찬성한) 단절된 이들은 자기 집도 있고 후한 연금제도에서 혜택을 본, 나이가 많은 유권자들로, 이들 가운데 다수가 평생 동안 보수당을 지지해 왔다. 고립된 이들은 보다 젊은 청년, 윗세대가 누린 혜택을 자신들은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목격한 이들이었다. 이 있음직하지 않은 동맹의 양편을 잇는 고리 하나는 고등교육, 정확히 말해 그것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즉 브렉시트 투표 패턴을 결정한 가장 큰 단일 요인은 대졸 여부였다. 영국에서 60세 이상 인구 가운데 대졸자는 거의 없다. 현재 18세에서 30세 가운데 거의 절반이 대졸자이지만(이들은 자신들이 지식 경제의 혜택에서 배제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절반은 아니다(데이비드 런시만의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서 인용)."

 

 

이런 면에서 볼 때 민주당 관계자와 자유주의 운동가들이 '노동계급과 하층계급 백인들의 선거 참여가 확대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적절했다 할 수 있다. '그들은 (세계화와 자동화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계급과) 하층계급 백인들이 낙태할 권리와 적극적 차별 시정 정책을 반대하며, 공립학교에서도 기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제한적인 총기 소유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매튜 크린슨과 벤저민 긴스버그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에서 인용). 민주당 관계자와 자유주의 운동가들은 트럼프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의 핵심 지지층 절반이 이들과 겹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정치와 선거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에 비해 공화당 지지층이 넓어졌던 것은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인터넷과 함께 했으며,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말을 하고 관계를 만들며, 최근에는 쇼셜미디어로 중무장한 밀레니엄 세대들의 분노와 절망도 공화당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었으며, 긍극적으로는 표퓰리스트 정치인의 득세에 일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터였다. 디지털 낙관주의자들은 이런 분석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브렉시트 가결과 트럼프 당선으로 그들의 주장(또는 희망사항)은 상당 부분 설득력을 잃었다. '중년 파산'의 당사자로써 인터넷과 쇼셜미디어 사용이 능숙해진 4050세대의 분노와 절망도 또다른 자양분이며, 정치적 양극화를 세대간 전쟁으로 확장시킨 디지털전사들인데 이들의 활약 덕분에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패가 예상됐던 2018년 중간선거 결과는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상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준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민주주의와 쇼셜미디어'라는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특히 이번 중간선거의 핵심이슈가 트럼프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오바마케어의 축소였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전체 유권자의 42%가 오바마케어의 축소를 핵심이슈로 선정했다). 더욱 두렵고 절망적인 것은 좁게는 미국의 유권자들이, 넓게는 전 세계 민주국가의 유권자들이 드럼프에게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인식이다. 드럼프이 등장에 경악하고 실소했다가 지속적인 지지율 상승에 설마설마하며 현실을 부정하다가 그의 승리를 지켜봐야 했던 것을 넘어 드럼프의 표퓰리즘과 막장정치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한나 아렌트가 《정치의 약속》에서 "우리가 사막의 조건에서 고통받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인간적이며 여전히 본래적이다. 위험한 것은 사막의 진정한 거주자가 되어 거기에 익숙해지는 일'이라고 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이번 중간선거로 입증된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 정부도 극도로 흥분하거나 위험한 상태에서는 폭력적이 되거나 심지어 잔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드물게 발생해 짧은 기간에 끝나버린다…그런데 민주국가에서 위협이 될 억압의 종류는 지난 시대에 존재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다. 현대인의 기억 속에는 그 표본이 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방금 말한 모든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아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 될 것이다. 옛날말인 전제정치나 폭정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못할 것이다. 즉 위와 같은 사실은 새로운 사실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것을 어느 정해진 단어로 명명할 수는 없겠고, 단지 어떤 정의를 내리도록 해야 할 것 같다(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2권에서 인용)."

 

 

초기 미국사회를 둘러본 후 토크빌이 미래의 미국시민에게 남긴 이런 경고가 수백년의 세월을 격해 2018년의 미국에서 정확하게 재현된 것이 이번 중가선거의 결과는 아닐까.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미국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꿰뚫은 토크빌이 끝끝내 찾지 못한 단어는 '표퓰리즘 독재'가 될 것이며, 그가 내리고자 했던 정의는 제국의 종말에 내재된 잔인하면서도 압도적인 폭력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억만장자인 트럼프의 최종목표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나오미 클라인의 《NO로는 부족하다》와 데이비드 프럼의 《트럼프공화국》,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서 다룬 내용들을 조합하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클라인은 《NO로는 충분하지 않다》에서 신자유주의의 최종전사인 트럼프의 목표가 충격요법(IMF가 칠레와 아르헨티나, 한국 등에 강요한 구조조정, 긴축재정, 대규모 해고, 복지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 등처럼 가혹하고 잔인하며 일방적인 조치들)을 많은 나라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경제대공황을 일으키고, 지구온난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ㅡ전통의 동맹에게도 관세폭탄을 남발하고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키우는 것을 넘어 환율전쟁으로까지 확대하려 하고, 사우디와 러시아와의 합작으로 석유가격을 계속해서 올림으로써 세계경제를 파탄 직전으로 몰고가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과 인도 등의 석탄 사용을 늘리도록 만든 것에서 클라인의 주장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설득력을 얻는다. 국내의 어떤 언론도, 관련 전문가와 학자들도 말하지 않지만 미국은 40달러 전후의 세일가스와 2008년 금융붕괴의 피해를 국민과 전 세계로 돌린 천문학적인 구제금융과 무제한 양적완화 덕분에 뜻밖의 호황(일본도 마찬가지)을 누리고 있지만, 그런 호황이 영원할 수 없기에 경제대공황을 일으키는 것이 단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ㅡ이번 중간선거의 결과가 트럼프의 승리로 해석된다면, 그래서 미국이라는 최강국의 모든 자원을 제멋대로 써버리고 전통의 동맹국에까지 위압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신과 가족, 측근의 이익만 챙기려고 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계산불가능한 영역에 접어든다. 

 

 

사실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단순했다(p.37). 클라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트럼프의 당선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p.36, p.249에서 인용). 《NO로는 충분하지 않다》를 통해 클라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압축하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여서 그녀의 주장이 틀리기만을 바랄뿐이다(p.21~22).   (트럼프의 즉흥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ㅡ롤스의 <정의론> p.103~104) 

 

 

프럼은

 

 

자이한은

 

 

다소 과격하고 과장돼 보이는 이들의 주장에 진실의 일단이 담겨있다면 상상하는 그 무엇보다 더욱 나쁜 참담한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같은 표퓰리스트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정치적 도구와 기관, 법률과 규제와 규범 등을 무력화시키기 전까지는 소외되고 버림받은 시민들의 민주적 대변자이자 타락하고 부패한 기득권의 청소부를 자처하는데, 이런 도덕적 말의 독점에 중독된 유권자들이 만만치 않은 지지세력으로 견고해졌음을 지방선거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이들의 심리적 해제와 동조화가 빨라지고, 그에 발맞춰 지지자의 숫적 확장이 지속되면 트럼프의 재선 확률은 급격하게 올라갈 수 있다. 이번 중간선거로 공화당 내에 적극적인 지지세력을 구축한 것이 공화당 장악으로 이어지면 재선 확률은 또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트럼프의 재선이 현실이 되면 더 이상 자신의 본색을 숨길 필요가 없는 트럼프의 역습이 전 세계에 쓰나미처럼 덮칠 것이다. 진도 9를 넘는 트럼프발 정치적 대지진이 지구를 뒤흔들면 지구온난화의 급진화에 버금가는 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금고를 가득채워줄 트럼프발 경제대공황과 측근들의 배를 불려줄 정치적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3차세계대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럼프와 그 일족, 측근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세계를 지정학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전쟁들이 인류를 지옥으로 내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항상 상상하는 그 이상을 보여줬기 때문에 모든 시나리오가 트럼프의 책상 위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맨앞에는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전력투구 중인 문재인 정부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가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를 볼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을 볼 때도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하고, 인간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고 여성을 희롱하고 이민자와 소수민족을 경멸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남발하고 정치를 타락시킬 때마다 정반대에 위치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청문회스타인 노무현, 트럼프는 클라인의 p.48, 75). (나는 노무현에게서 미래의 지도자를 봤다를 활용할 것).    

 

 

"저는 사상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는 쪽입니다. 모든 사상은 소중하지만, 모든 사상은 완결성을 인정할 때 절대주의가 되고 사람에 대한 지배와 속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상은 인정하지만 절대적인 사상은 인정하지 않는 쪽입니다. 사상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존경할만한 사상이 있다면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자기 이론의 근거, 자기 가치의 근거에 대해서 스스로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그리고 그저 관념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실로서 업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노무현 2006년, '정치기획위원회 오찬 발언, 김종철·조기숙 외 《노무현의 민주주의》에서 재인용)."

 

 

(오늘은 여기까지. 초고라 상당히 많은 부분이 추가되고 보다 쉽게 다듬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주제들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었습니다.

집필을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고요.

폭염을 피해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통합시키고자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당연시 여겼던 것들도 근본부터 다시 들여다 봤습니다.

공고해진 저의 신념과 의심하지 않았던 사고체계까지 원점에서 다시 돌아봤습니다.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생각들을 가능한 한 끝까지 밀고갈 수 있었습니다.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의 각 단계마다 반대 논리를 성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들에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았습니다.

어려운 것들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집필을 위한 준비는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블로그 활동보다는 개인방송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필도 이를 위한 과정의 일환입니다.

스트레스가 증가하더라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운동량을 늘린 것도 그 때문이고요.

 

저는 더 탄탄해졌습니다, 이전보다.

진보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급진적 개혁, 결과의 평등 중시, 큰 정부, 법인세 인상, 보편적 증세, 기본소득 찬성, 낙태, 군의 동성애, 난민 인정, 규제 강화 등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과, 보수는 사회안정을 위한 점진적 개혁, 불평등 인정, 작은 정부, 법인세 인하, 보편적 감세, 기회의 평등 중시, 능력주의, 낙태와 동성애 반대, 종교·도덕적 가치 중시, 애국심과 민족주의 강화 등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처럼 도식적인 패키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유의 개념을 정치에 집중시킨 진보와 경제이 집중시킨 보수의 차이도 다시 들여다보는 등 각각의 가치와 목표들에 대한 다양한 조합을 구성하고 논리를 진전시켜 봤습니다.

프레임 전쟁에서도 한 발 물러나 그 명과 암을 바라봤습니다.  

 

덕분에 진영논리와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것들 중 몇 가지는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의 결과가 더욱 진보적이 될 수도 있고, 진보의 재정립이 될 수도 있고, 보수의 좋은 점을 수용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정의, 과학기술, 경제, 정당정치, 언론, 도덕, 윤리, 종교, 교육, 문화, 스포츠 등에 대한 제 목소리를 더욱 분명히 할 생각입니다.

비판의 수준도 높일 것이며, 동시에 대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대안 제시를 회피해왔던 지금까지의 비겁함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근본적 차원의 원칙과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공허한 주장이나 고리타분한 이상보다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을 더 많이 반영하려 합니다.

 

아무튼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노빠이고 문파로써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 와니. 2018.10.19 20:35 신고

    잘 지내고 계셨다고 소식을 남겨주시니 막연히 기다리지 않을 수 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생각하시는 집필이나 개인방송까지 차근차근 정진하시고 이뤄 내시리라 믿습니다.
    못지않게 건강도 챙겨주셨으면 좋겠구요. ^^;

  2. 불여시 2018.10.20 01:18

    궁금했어요.건강하게 잘지내시다니 다행입니다.

    속시원하게 풀어놓으신분없어서답답하던차였습니다.

    어지럽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좀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시선이 그리웠습니다.

    응원합니다.👍👍👍

  3. 과유불급 2018.10.20 07:53

    다른 이유도 아닌 자기성찰을 위한 시간을 가지셨다니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응원하겠습니다.

  4. 홧팅 2018.10.21 14:41

    걱정했는데 다행이근요
    하루빨리 이재명 몰아낼수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시길..

  5. 홧팅 2018.10.21 14:46

    김어준 김용민에 논객 김동열 오늘의 유머까지
    배신자로 돌아선 지금
    믿을곳은 늙은도령님과 몇개 커뮤니티 뿐이군요.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우리가 희망을 버리는순간
    문재인정부도 실패하고 맙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8.10.22 10:11 신고

    건강하게 잘 계시는군요.^^
    궁금했습니다.
    개인 방송을 준비하고 게신다니 잘 준비하셔서 좋은 컨텐즈로 사랑을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7. 2018.10.23 09:06

    비밀댓글입니다

  8. 은빛 2018.10.24 00:32

    걱정 많이 했는데 잘 지내고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개인방송 기대됩니다 잘 준비하셔서 문재인정부와 문파들의 힘이 되어주세요ㅎㅎ

  9. 태봉 2018.10.27 03:58

    어디든지 가는 곳마다 항상 응원합니다~~~

  10. 최재민 2018.10.30 20:54

    편찮으신가 걱정했습니다.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며칠사이 찬바람이 제법입니다.
    건강하십시요.^^

  11. kheju 2018.11.02 12:47

    아~정말 반갑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들락거렸던지요.건강하시고 단단해지셨다니 더 반갑니다 자주 오시면 좋겠습니다

  12. 2018.11.23 08:01

    비밀댓글입니다


이재명과 은수미라는 두 명의 근본주의적 꼴통들과 소위 진보매체라고 하는 일부의 언론들 때문에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화두로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30~40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의 폭주 속에 상위 1~10%에게 부와 권력, 기회 등이 독점되는 것을 넘어 세습되는 지경에 이르면서 모든 시민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존엄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해진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헌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가 충돌나는 제도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진보진영의 이상이었던 보편적 복지가 조세저항(자본가와 기업가만 조세저항에 나선 것은 아니다. 중산층에 진입하거나 진입 직전의 노동자들도 조세저항에 참여했다. 노동자가 부르주아가 된 것이다)이란 높은 벽에 가로막혀 후퇴를 거듭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찾아낸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습격에 화들짝 놀란 미래학자들이 (어설프고 성급한 추론 끝에)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할 인공지능 시대의 구세주로 기본소득을 주장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본소득이란 현재의 부는 상관하지 않은 채 모든 국민(미래학자들에 따르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전세계 모든 시민에게 지급할 수 있다)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돈을 말합니다.

 


기본소득을 찬양하는 학자와 정치인들은 전체 국민의 소득과 부를 조사해서 분류해야 하는 막대한 행정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인구 부족으로 개발되지 않은 토지가 널려 있어서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도 더 이상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조세에서 조금씩 짜내거나 새로운 조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 발전, 특히 엘리베이터의 발달로 고층빌딩이 즐비한 현실도 고려했습니다. 전체 국민에게 돈을 지급하기 때문에 국민과 기업의 부와 자산, 소득 등을 조사해서 분류하는 막대한 행정비용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인공지능이 도입되면 행정비용은 제로에 수렴한다). 이재명과 은수미가 지급대상을 하위 90%가 아닌 전체(100%)로 늘릴 수 있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얼마로 책정하느냐에 따라 기존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일 수 있기도 하고 영원히 고착시킬 수도 있습니다. 모든 복지를 하나로 모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주는 것에서, 보편적 복지의 목적인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수준, 인구감소에 따른 시장 위축을 막기 위한 대안적 제도로써 소비 증대를 견인하는 용돈 수준까지 기본소득의 지급액이 세분될 수 있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는 것까지 목표로 한다면 기본소득의 지급액이 300~400만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했던 소득세와 증여∙상속세 등이 80%대로 올라야 하고, 법인세도 50% 이상으로 인상돼야 하며, 지구화된 시장경제의 패자들인 가난한 국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글로벌부유세도 신설돼야 합니다

 

 

헌데 이것이 가능할까요? 보호무역을 기치로 내건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의 집권 등을 고려하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여기서 이재명이 말한 공평∙정의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죽은 자식 부랄 만지고 있다고 달라질 것이 없으니ㅡ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니ㅡ소비 증대를 견인할 수 있는 세 번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소득이라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의 소비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위 10%를 제외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거나 모든 경기도민에게 존엄한 삶의 질을 제공하는 것(조세정의에 따른 보편적 복지의 목표)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지속시키는데도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소비 증대에 따른 지역경제활성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하위 90%가 아닌 전체 경기도민에게 주는 것이 공평하고 정의로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소비자의 숫자와 전체 금액을 늘리는데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것입니다. 8만원의 기본소득이라도 1,300만 명에 이르는 경기도민이라면 월 104천억이나 되니 지역경제활성화는 누워서 떡 먹기죠. 경기도의 1년 재정이 22조 정도라고 하니 두 달이면 중단이 되겠지만논리적으로는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폐의 모든 것들이 불평등과 양극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무시하면 이재명의 주장이 맞습니다, 보편적 공평과 정의는 개에게나 줘버리고!!

 

 

부와 권력, 기회의 평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지 않거나 방치한 채 소비만 증대시키는 것이라면 이재명의 주장이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지역화폐로 주는 것이 현금으로 주는 것보다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만악의 근원인 불평등과 양극화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소비에 따른 당장의 쾌락만 중시하는 분들이라면, 그래서 이재명을 대통령까지 만들어 소비만 늘릴 것이라면 (그래서 기업에 좋은 일만 할 것이라면) 상위 10%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할렐루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8.07.14 11:48 신고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단계가 생각납니다.

  2. 2018.07.16 11:22

    비밀댓글입니다

  3. 2018.07.22 12:57

    비밀댓글입니다

  4. 뉴페이스 2018.07.23 13:06

    결국 도령님의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이재명 그는 한낱 마피아 보스였나봅니다.
    한때 도령님이 이미 살아있는 권력인 이재명에게만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아서...
    왜 이러시나 했습니다.

    이재명 같은 진보의 그림자가 사회를 덮칠 때, 진보의 빛인 노회찬은 운명했습니다.
    하나 둘 빛이 꺼져가는 걸 눈치채는 순간, 이 땅에는 다시 한번 극우주의가 몰려 올겁니다...

    이제 다시 한번 글을 쓰실때도 되었네요. 공부보다는 다시 키보드를 잡으실 때가 왔습니다.

  5. 2018.07.24 15:48

    비밀댓글입니다

  6. 동우 2018.07.28 15:18

    sbs의 이재명 죽이기는 숨어 있던 적폐가 모습을 드러낸 것. 2탄
    http://personaz.tistory.com/301

    태영건설, SBS 대주주서 '이명박근혜 적폐' 급전직하?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html?no=388093

    sbs 그알 편은 경찰 조사로 밝혀지겠지만 ..
    사실과 진의 차이는 멇까요?

    현 경기 지사를 지지하지 않지만 언론 보도는
    왠지 막장 드라마를 보는 거 같아 씁쓸합니다.

  7. 2018.09.09 19:52

    비밀댓글입니다

  8. 은빛 2018.09.27 22:21

    도령님, 무슨일 있으신가요? 새 글을 올리지않으시네요..ㅠㅠ


100년 전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사고를 연상적 사고 순수 추론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연상적 사고는 과거에 경험한 패턴이나 규칙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용한다. 겪어본 적이 없는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순수 추론을 하려면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해야 한다(둘을 합쳐 '이중 처리 이론'이라 한다). 20세기 후반에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인지 과정에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이름을 붙였다. 직관전인 시스템 1은 인간 정신 중 원시적인 쪽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4만 년 전 도구를 만들 능력이 있던 크로마뇽인의 출연과 함께 인지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듯하다. 이 시스템의 바닥에 깔린 법칙은 친숙한 쪽을 선호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사람들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목표 쪽을 향해 움직인다. 나중에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시스템 2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분석 능력으로 훨씬 느리다. 지적 능력의 측면에서 볼 때 더 오래되고 직관적인 시스템 1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소간 동등하다. 규칙은 간단하며, 이 규칙이 말이 되는가는 누구나 안다. 총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더 속도가 느린 추론의 영역인 시스템2에서이다. 





위의 글은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퀴즈쇼인 <제퍼디>에서 50연승을 기록 중이었던 켄 제닝스를 꺾은 인공지능 '왓슨을 다룬 스티븐 베이커의 《왓슨 -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에서 인용했다. 인공지능이 긴 겨울(침체기)을 지낸 후 1990년대 들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뇌를 역분석해 진화의 결과인 뇌신경망의 작동방식을 인지·학습·추론이 가능한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지만(영원히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의 뇌는 연상적 사고(직감의 영역인 시스템 1)와&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