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된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ㅡ미쓰이와 함께 일본 전범기업의 쌍두마차인 미쓰비시의 조건부 장학금으로 교수 생활을 이어가는 램지어와 완벽히 대비되는ㅡ의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 ㅡ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의 관점을 통해 이승윤과 이무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주장 설명

첫 번째, 코로나19 펜데믹의 도덕적 이율배반에 대해

두 번째,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라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세 번째, 능력주의의 전제인 공정하게 제공된 교육이라는 환상에 대해

네 번째, 태어날 때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다섯 번째,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능력주의의 담론에 따라 패배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에 대해

여섯 번째, <싱어게인>이라는 기회 또는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에 대해

 

 

훗날 코로나19세대로 회자될 이땅의 청춘들에게 능력주의로 중무장한 세계화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버거워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승윤과 이무진처럼 나 여기있다고 외치면 누군가는 반드시 화답한다는 것을 믿어주길 희망해본다. 기성세대 모두가 사악하지 않음을, 최악의 세상을 물려준 것에 미안하고 있음을,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반박하지 못하는 죄의식과 어리석음을, 우리가 너희를 응원하듯이, 너희도 우리를 믿어주기를.    

  

 

 

https://youtu.be/Rk5Fom4yN1I

 

 

JTBC 싱어게인이 배출한 세 명의 스타가 뉴스룸에 출연했습니다. 최종성적이 1~3위였던 이들을 뉴스룸 '문화초대석'에서 볼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 = 당일 잠 못잠. 다음을 잠만 잠.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라 실감하지 못했지만, 비대면상이라도 SNS는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기 실감, 배가 아프다는 것은 창작자로써 좋은 자세라고 생각, 계속 아플 것,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다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에. 자신의 노래가 어디까지 퍼질 수 있나 궁금해 싱어게인에 참가했는데 그에 대한 데이타가 쌓여야 이제는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성을 띨 수 있는지 확인했음. 데이타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싱어게인 초창기에 이무진 같은 참가자를 보고 큰일났다시퍼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김이나 심사위원과 많은 팬의 성원 덕분에 자신감을 갖게 됐음. 이승윤씨가 기보보다 아프게를 불러줘서 너무 고마웠고 감동적. 살이 더 빠지고 안색도 좋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미사여구없이 감사합니다, 그다운 마지막 멘트!

 

 

이무진 = 경연 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모인 팬카페에 글 하나 올렸다. 방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어머님의 잔소리가 줄고 식사 메뉴의 퀄러티가 올라진 것에서 인기 오른 것 실감. 공교롭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오래된 노래들 선택한 것은 자신의 색채를 실을 수 있고 섞을 수 있는 노래라고 판단해서 선택했음. 오늘 노래, 이문세의 휘파람도 대단히 좋았는데 그의 음색과 색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어린 사람, 이승윤과 정홍일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기적

 

 

정홍일 = 예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인기몰이와 그에 따른 팬들의 홍수가 너무나도 고마워 그들과 소통하는데 집중.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인기를 말해주는 것. 마리아를 선곡한 것도 하드락을 해온 그에게 적절했음. 그가 노래 부를 때 활짝 웃는 이승윤과 이무진의 표정과 리액션도 좋았다. 시사문제를 다루는 뉴스룸에 하드락 가수의 라이브가 이루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고 혁명이었음. 자신을 통해 마니아 음악인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이 행복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생겼다.  그들에게도 공연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https://youtu.be/cLVr99Xk0EY

 

  1. 참교육 2021.02.15 11:37 신고

    공중파들이 뽕짝공화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출처 : 구글이미지

 

천재가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정반대의 놈들도 많기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램지어 교수가 발표한 두 개의 논문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프리드먼과 하이에크(경제학이 아닌 다른 학과의 교수로 잠시 머물다 영국으로 튀었다)의 시카고대학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이끌었고, IMF 외환위기 때 한국을 탈탈 털어먹으려 했던 '하버드 가이'처럼 되먹지도 않은 '경제학 제국주의'를 만천하에 펼친, 그래서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양산한 하버드대학의 두 얼굴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목사들이 설립한 하버드 대학은 미국의 예외주의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첫 번째는 국내외의 친미국적 천재들을 쓸어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반미국적 천재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에서 기원한 학문의 자유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이 절대적 자유로 끌어올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오며 악명 높은 명성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경제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고해성사를 벌이고 있는 경제학 제국주의는 시카고대학의 신고전파 학자들과 그들에게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법률경제학자ㅡ시카고대학과 하버드대학에 주로 포진해 있거나 있었다ㅡ들이 이끌어왔었습니다. 79년 영국에서 대처가 집권하고, 80년에 미국에서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최고봉을 찍었던 이들의 후예 중 한 명이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의 두 논문 중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는 <국제법 경제리뷰>라는 학술지에 기고한 것이며, 나머지는 일본 우익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극우적 성향의 산케이신문 해외 선전지인 '재팬 포워드'에 실은 <Recovering the truth about the comfort weman>입니다. 위안부 강제동원 진실을 왜곡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와 학계가 인용하는 자료만을 가지고 이런 논문들을 낼 수 있었는데, 법률경제학자 중 쓰레기 같은 교수들만 할 수 있는 역사왜곡과 인권 유린의 파렴치한 지적 범죄의 전형입니다. 

 

 

일본과 미국의 역사학자들 중에는 이런 쓰레기 같은 자들이 널려있지만ㅡ한국에서는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대표적ㅡ하버드 대학에도 이런 친일파 교수들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일본 우익으로부터 연구자금을 지원받는, 또는 지원받기 위해 역사왜곡도 서슴치 않는 램지어 교수는 정통의 역사학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거리도 학문의 자유 운운하며 최악의 쓰레기들을 양산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 같은 망나니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램지어 같은 하버드대 교수들이 반지성주의로 중무장한 미국인들을 손쉽게, 아주 손쉽게 선동하고 동원할 수 있는 쓰레기 같은 논문과 저서들을 내놓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센델의 최신작 <공정하다는 착각>과 정반대에 위치한 램지어 같은 쓰레기 교수들의 논문들도 나올 수 있는 것이 하버드대의 야누스적 두 얼굴입니다. 

 

 

보수우파의 무조건적 비난대상인 노엄 촘스키의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하버드 대학이 종신교수에 임명해 반미적 활동을 차단하려는 시도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를 참고하시면 진실의 일단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등수학을 이용해 온갖 금융위기를 촉발하고도 처벌받지 않은 자들ㅡ금융공학과 계량경제학이 대표적ㅡ의 성전이 하버드 대학이라는 사실을 까발린 세계적 석학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우아아아아아아악!!!!!!!! 제 입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설들이 쏟아져나올 것 같아와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기랄, 하나님은 뭐하고 계신데? 악마보다 사악한 이런 자들에게 벼락이라도 때리지 않는 거야?!!!!

 

 

 

 

 

www.youtube.com/watch?v=tI__ZjAJ7q8

 

  1. 여강여호 2021.02.13 08:27 신고

    저는 이런 쓰레기같은 논문을 두고 정작 우리 대학사회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더 본노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21.02.13 21:00 신고

      우리나라 대학에도 일본의 문부성장학금을 받아 교수하고 있는 놈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이놈을 비판하면 교수사회 전체가 욕먹을 수 있어서 더욱 침묵하고요.

  2. 참교육 2021.02.14 06:17 신고

    구석구석 곳곳에 쓰레기들이 넘쳐 나네
    머릿속의 먹물은 이런 쓰레기지식을 토해 내가 위해 쌓았는지...

 

 

조중동에 버금가는 기레기로 전락한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년간 경제상황은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의도된 여론조사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일보 만큼 욕먹지는 않지만 기레기 짓거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YTN이 거지 같은 이 여론조사를 보도하며 붙인 어뷰징 제목이 '국민 60%, 문 경제운용 실패'였습니다. 기레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런 악의적인 낚시 짓거리는 YTN이라는 민간통신사가 먹고사는 방법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경제에 폭망했다고 대동단결해서 비난했던 그때의 그 언론들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무조건 경제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의 국가경제상황'을 묻는 여론조사를 벌였으니 참으로 비열하기 그지없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의 반사이익을 올린 국민들이나 기업들도 제법 되는데, 대부분의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지난 1년간의 경제상황에 대한 여론조사가 좋게 나올 리 없지요.

 

 

 

조사를 의뢰한 방송사가 노골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스스로 알아차려 의로자의 똥고를 빨아주는데 도를 튼 여론조사기관의 합작품을 YTN 같은 민간기레기가 어뷰징 보도를 한 것이지요. 전체 인구 5천만 명을 넘는 모든 선진국가들 중에 최고로 잘했다고 모든 경제 관련 기구와 연구소들의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와는 전혀 다른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지난 1년간의 경제상황'을 떠들어대니 기레기의 영원함은 민주주의의 최대 난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나마 '노무현 죽이기'를 잊지 않고 있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늘어나 이 정도지, 그들마저 놀아났다면 더욱 나쁘게 나왔겠지요. 부와 권력, 기회를 독식하고 있는 기득권에 빌붙어 먹고사는 민간통신사 YTN의 본질은 절대 변할 리 없는 기레기입니다. 의도된 왜곡을 불러오는 이런 여론조사가 방송을 많이 타면 탈수록 국가경제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경제운용에 실패했다고 세뇌당하기 일쑤이지요.        

 

 

 

조중동을 뺨치는 경지에 이른 이들의 기레기 짓거리가 아무리 많이 행해져도 천만 문파의 낙점을 받지 못하면 누구도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음은 불변의 진실입니다. 이재명이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똥줄타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그를 적극적으로, 아니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YTN이라고 하지만, 최종결정은 진성문파가 합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써 깨어서 연대하는 힘, 즉 정치력을 잃지 않는 노빠이자 문파들을 넘어서지 않는 한 어떤 자도 어림없습니다. 

 

 

문프의 임기 중에는 무조건이고요!   

 

 

이승윤의 영웅수집가를 작곡하게 된 이유를 밝힌 인스타그램 글을 분석해봤습니다. 빅미 시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든 그의 성찰이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을 보여줘, 넌 소중하고 중요하고 행복할 자격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셀럽과 분야별 스타,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아바타와 익명성을 이용해 너의 욕망을 펼치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물어뜯어봐!

 

 

거대 플랫폼사업자의 시대이기도 한, 빅미 시대의 디지털 현상을 날카롭게 파고든 이승윤의 냉소적이면서도 폐부를 찌르며, 그러면서도 탁월한 비틀기가 돋보이는, 방구석 음악인 특유의 유머들이 포진된 이 짧은 글이 그의 천재성을 말해줍니다. 시대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날카롭고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방어적인 이승윤의 영웅수집가가 새롭게 해석될 것입니다, 이 인스타그램의 글로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youtu.be/vZhXvtXHzjY

 

  

 

제가 이승윤의 덕후가 된 후에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그의 팬클럽 카페 이승사자(이름을 변경한다고 합니다)에도 오늘 가입했기 때문에 이승윤의 인생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나무위키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살펴봤지만 그가 이 노래를 작곡했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가사의 행간에 담겨있는 이승윤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곡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라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분명한 것은 JTBC 싱어게인에 출연하기 전이라면, 노래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꿈을 쫓아 살아왔지만 죽을 만큼 노력하지도 못한 것 때문에 후회만 남기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시절의 자신을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습니다. 

 

 

특히 사형선고라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뜻하는 것이고, 절대의 절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에게 특히 충격적인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사를 보고 추측컨데,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닐까? 지독할 정도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승윤에게 이런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그의 삶에 상당한 무게를 갖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그런 추측도 해봤습니다. 방구석에 갇혀있던 시기라 자신의 모습에 절망했을 수도 있고요. 

 

 

난 사형선고를 당했어/ 몇몇 사람들 마음속에서 ㅡ 그와 가까운, 그와 비슷한 어떤 사람들로부터 현타가 올만큼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사형선고를 당했다고 말할 정도니. 아마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절교의 선언을 들었거나, 그의 음악세계나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혹독한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수가 아닌지라 삼일이 지났지만/ 난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 ㅡ 자신들만 야훼에게 선택받은 민족, 도는 선민이라며 주장하며 독점권을 주장했던 유대인의 종교에서 벗어나 인류 모두의 종교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구약의 야훼와는 달리 모든 이들의 원죄를 대속해주기 위해, 그래서 인류 모두가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날에 모두 다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느님, 하나님 등으로 불리는 최고의 신, 성부에게는 모든 인류가 다 선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우뚝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수의 엘리트만 독점해온 라틴어에서 벗어나 모든 이들이 사용하는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세 번째는 서유럽을 지배해온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선교사로 대표되는 공격적인 선교가 서유럽 강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선봉에 서서, 식민지 지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켜준 것입니다. 이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예수의 부활이 절대적입니다. 그가 야훼의 아들이자 성자로써, 무엇보다도 모두의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해, 그리하여 인간으로 죽었지만 신으로써 부활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또한 충분히 긴 시간이 흘러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 예수의 재림으로 깨어있는 모든 이들이 최후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도 또다른 이유입니다. 최대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노력이 천국으로 가는 보증수표임을 밝힘으로써 신자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과 지복한 삶을 약속한 것까지 더해지면서. 

 

이승윤씨는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한 최초의 인간이자 신으로써의 예수와 한낱 인간인 자신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형선고를 당한 자신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재심을 청구하진 않았어/ 내심 기대한 건 맞지만 피곤해/ 피고인석엔 다신 앉기 싫어 ㅡ 나 또한 부활하고 싶다고, 다시 말해 사형선고가 잘못된 판결이라며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지요. 현타가 대단히 심했나 봅니다. 사람인지라 내심 기대한 건 맞지만, 피곤한 노릇이지요.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예수의 부활에 버금갈 정도로 힘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돌리는 일이란 여간해서는 성공하기 힘들지요.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노력이 재심법정의 피고석에 다시 앉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재심판사를 설득하려면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잘못됐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니 피곤한 일이겠습니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재심판사는 1심판사의 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어차피 내 진술을 피가 고인 술잔으로 만들어/ 넌 축배를 들 테니 ㅡ 사형선고가 잘못됐다는 판결임을 밝히기 위한 자신의 진술은 어차피 판사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 자신이 소크라테스의 자기 변호처럼 배심원단이나 판사를 설득한다고 한들 이미 예단을 가진 그들은 또는 그는 사형선고가 정당했다는 반대 논리로 활용해 자신의 피가 고인 술잔으로 만들어 승리의 축배를 들 테니까, 소크라테스에게 강권된 독배처럼.    

 

건배 내 죽음의 형장의 이슬/ 한 모금을 줘 심장을 도려내/ 현장에 묻고 함박웃음을 지어 ㅡ 똑같이 사형선고를 내릴 재심판사와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1심판사, 즉 자신을 법정에 고발한 몇몇 마음의 당사자들이 내 죽음의 형장에서 이슬(자신이 흘릴 피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승윤 자신의 마음 고생이겠지만)을 가져와 축배를 들고, 그렇게 취한 상태에서 심장까지 도려내기까지 할 것이므로. 그렇게 잔인한 짓을 벌인 이들은 심장이 도려내진 자신을 현장에 묻어버리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최종적인 승리를 건배와 함께 내릴 테니까.     

 

엄마는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ㅡ 그렇게 버려진 자신을 위해 엄마가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마당에, 그것도 재심을 포기한 상황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행복해져야 하리라. 그것이 그들의 사형선고가 잘못된 것임을 증명할 것이기에.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불멸성을 말하며, 도망가라는 제자와 친구들의 간청도 물리친 채 배심원들이 내린 독배를 마셨던 것처럼. 

 

이제 그럴게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ㅡ 이승윤도 결심했다. 그렇게 하겠다. 죽을 만큼 살아서 행복해지겠다고. 이때의 처절한 경험이, 그 쓰라린 기억이 이승윤으로 하여금 JTBC 싱어게인에 도전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승윤의 공식인터뷰와 비교해보면 이것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때의 사형선고가 그로 하여금 조금 더 유명해져 행복해지겠다는 결심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 테니.  

 

난 사형선고를 당했어/ 몇몇 사람들 마음속에서 

 

예수가 아닌지라/ 삼일이 지나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미련하게도 나는 살아갈 거야 ㅡ 미련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살아갈 거야. 엄마의 부탁대로 죽을 만큼 행복해질 거야!! 

 

건배 내 죽음의 형장의 이슬 한 모금을 줘/ 심장을 도려내 현장에 묻고 함박웃음을 지어

 

엄마는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이제 그럴게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youtu.be/Aba81z683UI

 

 

저는 이승윤의 가사와 세계관을 통해 제가 꿈꾸던 지식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수천 권의 책을 읽고 통섭적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듣는 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울림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이승윤이란 철학적 가수가 나타났고, 그의 시적 가사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원한 노빠이자 문파인 늙은도령으로서 단 한 번도 처음의 마음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은 우회해야 하고,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른 SNS를 통해 문프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의 현실정치 퇴출과 함께. 네이버에 있는 <팩트야 놀자>라는 카페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개차반 판사를 탄핵했다고 그것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또다른 개차반 판사가 김은경 전 장관에 실형을 때리고 법정구속한 무논리와 정치적 판결을 비판하기도 하면서요. 

 

 

저는 아고라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으며 단지 방법상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그 방법적 접근을 다루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파 여러분들. 

 

 

https://youtu.be/WSJdIoASkcE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움직임을 보면 최소 3가지는 확실하게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적 차원의 코로나19 방역을 정세균 총리와 정은경 청장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축적된 자료와 통계, 경험ㅡ대다수의 성공과 소수의 실패가 함께한다ㅡ 등을 통해 보다 세밀하고 맞춤형 전략과 전술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맨앞에 자리합니다. 

 

 

두 번째는 인구수가 5천만 명을 넘는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국가적 차원의 방역과 끝없이 이어지던 외부요인에도 불구하고 경제방역에도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탁월한 국민 덕분이고, 그중에서도 깨어있는 시민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일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깊이와 넓이, 폭을 알 수 없었던 문프의 근심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지요. 문프가 이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위대한 국민 때문에 가능했음을 여러 번에 걸쳐 언급한 것이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문프와 청와대가 이낙연 대표의 민주당과 손잡고 미루고 미루었던 선거공약들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문프의 확실한 신임을 받고 있음에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이재명이 제멋대로 해석을 경계함과 더불어 확대재정에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홍남기 부총리에게 책임은 대통령인 자신과 문재인 정부 모두가 책임질 테니 보다 유연한 접근을 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4차 재난지원금이 순식간에 정해진 것도 문프의 교통정리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세 번째는 노통을 지켜줄 수 없었던 노사모의 확대재편성의 실패를 현재의 진성문파ㅡ천만 문파의 99%ㅡ는 성공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민주당 대선후보들에게 문파의 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정책들을 내놓야 하는지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문프는 흔들리지 않는 99%의 문파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있어, 어떤 시대의 인류와 국가도 경험하지 못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붙이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어서 상당한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민주진보진영의 최고 스피커였던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이젠 정치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아도 된다는 의미로요. 유 이사장이 없었다고 생각해보거나, 그의 자리에 다른 스피커를 놓아보면 답은 명백합니다. 노통을 위해서도 그렇게 싸웠는데 이젠 원하는 삶을 살라는 고마움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몇 가지 추측들이 있지만 그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겠습니다. 이승윤의 덕질을 통해 제가 목표한 바에 전념하면서요. 그것에 대해서는 오늘 늦게 글과 영상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시민 이사장님, 그동안 너무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님이 있어 99%의 문파가 든든했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1. 참교육 2021.02.11 07:23 신고

    문재인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네요
    후세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저는 미국에 대한 저자세와 세월호문제를 덮어두고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21.02.12 06:43 신고

      미국에 대한 저자세는 지정학적 한계를 장점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중국과 등지는 순간 대한민국 경제는 무너져내립니다.

      세월호참사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가설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반면에 몇 가지 사안으로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접근이고요.

      밖으로 나가보시면 문프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가 문프의 지도력을 높이 칭송하는데 한국의 구좌파와 노조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분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요.

      마르크스는 단지 철학자로써만 인정받는 것이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이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하나에 집중하지 않았고, 그래서 평생을 자신의 잘못된 이론을 수정하기에 바빴고요.

      각자의 신념은 건드릴 수 없는 것이기에 평가는 천차만별일 수 있지요.
      완벽한 대통령이란 있을 수 없고, 문프의 자리에 다른 정치인을 대입해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재명처럼 시장친화적 사기만 치는 자들이 최후의 위험이고요.
      교황까지 들먹이며 사기치는 그를 보고 있자면.... 어휴!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교조 복귀도 제 예측보다 빨랐던 것처럼 전 종합적인 접근을 합니다.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몇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니까요.

    • 늙은도령 2021.02.12 06:43 신고

      미국에 대한 저자세는 지정학적 한계를 장점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중국과 등지는 순간 대한민국 경제는 무너져내립니다.

      세월호참사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가설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반면에 몇 가지 사안으로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접근이고요.

      밖으로 나가보시면 문프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가 문프의 지도력을 높이 칭송하는데 한국의 구좌파와 노조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분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요.

      마르크스는 단지 철학자로써만 인정받는 것이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이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하나에 집중하지 않았고, 그래서 평생을 자신의 잘못된 이론을 수정하기에 바빴고요.

      각자의 신념은 건드릴 수 없는 것이기에 평가는 천차만별일 수 있지요.
      완벽한 대통령이란 있을 수 없고, 문프의 자리에 다른 정치인을 대입해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재명처럼 시장친화적 사기만 치는 자들이 최후의 위험이고요.
      교황까지 들먹이며 사기치는 그를 보고 있자면.... 어휴!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교조 복귀도 제 예측보다 빨랐던 것처럼 전 종합적인 접근을 합니다.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몇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니까요.

 

 

스포츠 채널로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정지한 TV화면에는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이 아닌 번호 30번으로 불리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목을 풀었다. 공연을 하기 직전의 가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을 푸는 경우는 많지만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참가자는 처음 보는 듯했다. 왠지 모를 생경함과 연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부르겠다는 노래라는 것이 이런,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이란다.

 

 

뭐지, 이건? 갑작스러운 호기심이 몸을 관통해갔다. 리모콘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청년의 성대에서 튀어나온 노래라는 것이... 그랬다, 충격 그 자체였다. 호기심은 무한대로 솟구쳐 제멋대로 온몸을 휘졌더니 어마어마한 전율로 자라나 나를 압도했다. 아니, 집어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그 청년의 압도적인 열창에 빠져들었다. 

 

 

청년이 보여준 몰입도와 무대를 폭발시킬 듯한 그 퍼포먼스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낸 노래가 청년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춤사위가 청년이었다.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은 그렇게 청년의 것이 되었다. 어떤 단어들을 동원해야 청년의 무대에 걸맞은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그랬다, 그 몇 분의 시간이란 초대형 가수를 넘어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이승윤이란 가수의 무대를 처음 본 순간을 거칠게 표현하면 이러했습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이승윤의 열창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땠을까? 만일, 정말로 만일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동안의 시간 지연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승윤의 치릿치릿뱅뱅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시사와 시대에 관한 치열한 영상들을 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권에 이르는 독서량으로도 누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유튜버에 불과했는데, 아고라의 논객으로 활동할 때와는 완벽히 다르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없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30호로 불리던 무명의 이승윤을 천둥벼락처럼 만났습니다. 파당정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고민과 주저함을 한방에 날려주었습니다. 사막을 헤맬 때난 느낄 수 있는 갈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의 한 달이란 한여름밤의 꿈 같은, 달콤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어머님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단 하루도 형이상학적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한 달이란 시간이 푸른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그들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바람같이 흘러갔습니다. 녹화를 마친 영상에서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차분해졌고,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통신사업에서 망한 후, 지난 20년 동안 책 없이는 단 하루도 보낼 수 없었는데, 어머님을 보내드린 후 단 한 시간도 편할 수 없었는데 제가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승윤이란 청년에 흠뻑 빠져 덕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팬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제게 보내준 한아름의 선물이었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12년 이상 저를 지켜본 독자분들은 늙은도령이 미쳤구나, 마침내 맛이 갔구나. 죽을 듯 죽을 듯하다 겨우겨우 살아나더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쳤습니다. 네, 미쳤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이승윤이라는 청년에게 미쳤습니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전율에 빠져들었던 노래에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엄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조금만 쉬어갈게. 노래 가사처럼 '쉬지 않고 난 계속 달렸으니까. 잠시만 쉬어갈게, 물 한 모금 마시며. 엄마의 대한 그리움도 물로 적시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형이상학적 죄의식도 물로 달래가며.        

  1. 제니 2021.02.17 16:03

    제 마음을 멋지게 글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윤 가수님 꽃길만 걸으시길 기도합니다

 

아직도 어젯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졌던 떨림과 흥분과 감동이 온몸의 세포에 여진의 진동처럼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자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온 코로나19 펜데믹의 장기화로 모든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치고 감당하기 힘든 우울과 해소할 수 없는 분노로 힘들어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떠났고, 남아있는 모두가 힘겨웠으며,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지난 1년 여는 일상의 소중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가고, 많은 분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우익 자유주의자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을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인권과 자유의 억압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인류 공통의 방역대책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과학적으로 0.00001%의 진실도 들어있지 않은 백신음모론으로 지구 차원의 집단면역 형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간이 죽음을 대면하는 인간심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의 단계부터, '뭔라도 해야 한다'는 '협상'의 단계를 거쳐 '사태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쏟아붙는 '분노'의 단계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우을'의 단계를 지나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수용'의 단계는 지금까지 인류는 모든 도전을 극복했기에, 그랬듯이 이번의 위기도 이겨내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들고 하나씩, 그렇게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사회, 국가, 지구 단위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헌데 전염력이 2배 이상으로 올라갔고 치료기간도 훨씬 길어졌으며 그에 따라 자연히 치사율도 높아진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펜데믹 종식이 아닌 코로나19와의 동행이라는 엔데믹을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이 미증유의 위기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만능의 백신 같은 뜻밖의 선물을 들고나온 '방구석 음악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웃사이더 무명 특유의 언더 가수였고,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의 경계에 갇혀 성공한 가수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배아픈 무명의 천재 아티스트였습니다. 그의 재능은 하나의 장르에 가둬놓기에는 너무나 다양했고, 특정 장르로 묶기에는 너무나 뛰어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고, 그 이상의 생태계였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였고, 그럼에도 완성된 천재의 전형이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맹폭한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능력주의 예찬은 대대로 세습되는 특정 집안이나 이익집단을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온갖 경우의 불평등한 탄생 때문에 능력을 키우고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배제와 차별의 장벽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칸트가 불평등과 양극화가 공고해진 작금의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이승윤의 무명시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결과의 평등은 고사하고, 기회의 평등마저 주어지지 않는데 무슨 수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배제와 차별의 높은 벽을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진입의 첫 걸음부터 갈 수 있는 길이 모두 다 막혀있는 청춘들에게는 더욱더 잔인한 배제와 차별의 거대한 벽입니다. 능력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있다면 도전의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성공으로 가는 모든 길에는 갖가지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그래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장년과 노년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커녕 앞선 세대들이 남기 온갖 이름모를 빚들까지 떠앉아야 했을 뿐입니다. 희망이 절망스러운 상태에 빠진, 그래서 희망조차 가지지 않으려는 수많은 청춘에게 이승윤이라는 방구석 음악인은 뜻밖의 위로이자 선물이었으며, 세대간 갈등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 치유와 해방의 아이콘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청춘은, 그리고 저 같은 꼰대들까지 이승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빠져들었으며, 따라불렀고, 전율했으며, 주체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가 웃으면 같이 웃었고, 그가 울먹이면 같이 울먹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배제와 차별의 해소였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공정한 기회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패자부활전 의미가 강한 싱어게인을 통해 그가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은 갈수록 커지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불평등과 한낱 감기 바이러스에 무너져내리던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의 상위 라운드 진출과 탈락, 재진입을 거쳐 최종 우승으로 막을 내린 파이널 무대가 우리에게 제공된 무대이자 우승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승윤처럼 성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는 우리 모두에게 '내가 했듯이 너도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우리 함께 가자, 명왕성으로! 그곳이 사막인들 우리가 함께 하면 그곳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승윤의 노래와 우승이 이 시대의 모든 문제점들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끊어지고 고립된 관계의 복원이자 일상으로의 돌아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승윤과 싱어게인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도전과 아름다운 경쟁, 멋진 연극 같은 피날레는 우리로 하여금 '이 고난과 위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치유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문화적인 것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써의 이승윤 현상이 탄생하게 이르렀습니다.

 

 

현상으로써의 이승윤과 싱어게인 참가자 모두로 해서 우리는 치유받았고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희망을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좌절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기에 현상으로써의 이승윤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고, 우리는 그의 손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잡은 것이지요. 그렇게 이승윤과 우리의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모두를 리프레쉬 시켜준 이승윤은 말할 것도 없이 싱어게인 참가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승윤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말했듯이 싱어게인 스태프 모두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수많은 청춘에게, 아니 모든 무명인과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기획력에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긴 장마 뒤의 첫 햇살 같았던 지난 몇 개월은 이승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싱어게인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야기들로 해서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했습니다. 첫 시즌이 끝났다는 아쉬움은 두 번째 시즌의 기다림으로 변할 것이며, 공연현장에서 이승윤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g7wMFk_RTfw     

 

  1. 장선영 2021.05.10 16:12

    저도 생전 처음 가져보는 연예인?에 대한 이 폭발적인 감정이입이 당황스럽고, 심지어 힘들기까지해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의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와 내 인생에 대한 위로,격려,희망 그런 것?
    간만에 끓어오르는 이 에너지를 어찌 다시 내게 돌릴지 고민이 됩니다.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이승윤의 우승으로 끝난 JTBC 싱어게인 파이널, 그 대장정의 마지막 경연을 저만의 편파적인, 저만의 방구석에서, 저만의 마음대로 감상평을 펼쳐보았습니다. 패자 또는 무명에 머물러있던 가수들을 대상으로 패자부활전이자 대국민 쇼케이스였던 싱어게인은 이땅의 모든 패자와 약자들에 대한 위로와 치유의 장이자,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같이 다가왔던 멋진 기획이었습니다.

 

 

파이널에 진출한 6인의 마지막 경연을 보며, 그들이 저에게, 무엇보다도 이승윤이 저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하나하나 되돌아봤습니다. 이승윤의 최종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참가자 모두가, 탑10에 들었고, 탑6에 든 모두가 다 승자였고 주인공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했고,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코로나19펜데믹에 의한 코로나블루에서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물 같았던 지난 몇 개월의 잔영들이 정말로 진부하게 말하자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거듭거듭 말하지만 수고하셨고,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을 비롯한 여러분 모두에게 무한대의 비약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누구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지극한 행복의 원천이기에, 지난 몇 개월은 저와 많은 분들에게 소중하고도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파릇한 미소로 되풀이되고 되풀이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고,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 만세!!!   

 

 

P.S. 재미있는 사실 하나, 파이널 무대를 장식한 6인 중 무려 4명이 '이씨'였다는 것은 생물학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그들의 DNA를 분석할 필요가....................................................................네, 그냥 자라고요? 네, 그리 하겠습니다. 이승윤이 우승했는데 살아생전 처음으로 꿈속에서 남자가 나타나도 좋을 이틀에 걸친 파이널 무대! 하지만...... 저 여성을 무척무척 좋아하는 굶주린 남자랍니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이지만.... 에고, ㅠㅠ 

 

 

이승윤이 JTBC '싱어게인' 제작진과의 공식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가 싱어게인에 참가하게 된 이유와 인생의 대반전이 이루어진 순간, 그래서 노래보다 이름이 앞에 있게 된 가수로 역전된 상황까지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제가 이승윤 못지않게 파보고 싶었던 63호 이무진에 대한 언급과 새로운 우승후보를 떠오른 29호 정홍일, 향후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하기도 했고요.

 

 

이승윤은 인터뷰에서 나 이렇게 노래하는 뮤지션이야, 대중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뮤지션이야, 좀더 많은 분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자신의 존재를,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노래보다 앞설 수 있기를 바라서, JTBC 싱어게인에 참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음반을 낸 뮤지션만 참가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은, 패자부활전 같은 열린 기회로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로써의 치릿치릿뱅뱅, 매 무대에서 최고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 번호로 불리던 무명과 노래보다 이름이 앞에 있게 된 역전, 그래서 값질 수밖에 없는 싱어게인, 악보도 볼줄 모르고 근본도 없지만 이제 시작된 자신의 음악인생 제2막, 멋지게 이어가겠다는 다짐,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 향후 더 나은 결과물과 창작물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함으로써. 

 

 

제작진들의 진정성이 느껴졌고ㅡ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듯이 그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 없고, 방송국 차원의 돈벌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해도ㅡ무명의 뮤지션들을, 그래서 이름보다는 번호로 불려야 했던, 이름없는 가수처럼 노래 뒤에 이름이 겨우 붙을까 말까할 정도의 자신과 같은 처지의 뮤지션들을 사려 깊게 대해주는 것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신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성공한 선배 음악인들ㅡ자신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해 배아프고 시기를 했었는데ㅡ그들의 성공을 인정하는 것에서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이승윤을 볼 수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그들의 재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말해주는 것으로 그 성공들에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에 꽂힌 아웃사이더에서 세상의 밝은 면도 볼 수 있는 인사이더로써의 변화를 말해줍니다.

 

  

새로운 우승후보로 떠오른29호 정홍일과 자신의 영혼의 단짝 같았던 63호, 이무진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싱어게인 측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더욱 많이 끌어야 하기 때문에 슈퍼스타로 떠오른 이승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천재성을 홍보하도록 한 것이지요. 실제 저도 이무진에 대해서는 별도의 영상으로 다룰 생각입니다. 2000년대 생으로 높은 수준의 실력과 폭발력, 무대를 즐길줄 아는 대범함, 그만의 음색과 노래 소화 능력까지 모두 다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승윤의 무명성 지구인과 이번 인터뷰를 함께 놓고 보면 필연보다 더 필연적으로 보이는 평행우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번 영상에서는 이승윤이 공식 인터뷰를 통해 말했던 것을ㅡ그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믿는, 아니 진심에 가장 가깝다는 전제 하에서ㅡ하나하나 분석해봤습니다. 그가 했던 말의 행간에 숨어있는 것,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후의 음악인으로써 자신이 걸어야 할 마음자세 등에 대해 찐팬의 일인으로써 조심스럽게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완성해봤습니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하나도 다룰 생각입니다.

 

  

https://youtu.be/9zBkgnH1CrE

 

  1. 참교육 2021.02.08 06:15 신고

    코로나로 공중파들이 나라를 뽕짝세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국민의 뽕짝화...괜찮을까요?

    • 늙은도령 2021.02.09 18:00 신고

      저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다만 홀대받던 가수들이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대중문화란 유행을 타는 것이고 돈이 되면 누구나 달려붙으니 그런 과정이 하나라고 봅니다.
      비대면 세상에서 극도의 우울과 분노로 힘든 사람들이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이런 현상은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조차 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은 때가 되면 행동할 것입니다.
      기레기들의 조작과 왜곡, 선동에 놀아니지 않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무명성 지구인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ㅡ 마치 싱어게인에서 번호로 불리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다른 이와 구별되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무명의 서로움. 그래서 명성이 없으면 이름조자 가질 수 없는 걸까, 아니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는 것일까? 비상할 수 있는, 패자불활전과도 같은 천재일우의 경쟁의 장이라도 해도 너무나 잔인한 63호와의 경쟁,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 그래서 빅10에 들어야만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무명의 설움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명왕성에나 갈까/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가엾기도 하지/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ㅡ 여기의 왕은 권력의 상징, 신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작은 돈으로 자신을 부리는 행사 주최자일 수도,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으로 상징되는 모든 이들, 그런 모두가 인정받고 평등한 그런 유토피아 같은 곳은 없을까? 태양계의 마지막에 자리한 명왕성에라도 도망갈까? 아, 그렇지! 명왕성도 태양과, 그 사이의 행성들과 중력으로 연결됐다고 알려졌던 명왕성이 보다 발전된 측정 기술로 그의 궤도를 살펴보니, 태양이 아닌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에는 다른 항성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 밝혀져 태양계에서 퇴출됐으니 갈 수도 없겠지. 그 또한 이름을 상실한 것과 같으니까. 

 

여기서 잠깐 뉴턴의 중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ㅡ 그래도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처럼, 초속 30만Km의 빛에 올라타 명왕성까지 가보자. 상상은 자유니까. 안녕, 명왕성. 난 너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너에게는 이름없는 행성일 뿐 지구에서 온, 무명의 가수인 이승윤이야, 헌데 기억할 정도는 아니니 잊어도 돼, 내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어. 태양계에서 떨어져나간 너도 지구인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갈 테니..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아무 것도 아니래/ ㅡ 현재의 청춘들을 대표하는 부분, 정규교육이던, 가정교육의 이름이던,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진 빚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기 힘든 태산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위에 앉아, 실은 실이되 이름도 없는 무영실로 빚 때문에 자꾸만 구멍나고 사라져가는 청춘의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거라도 해야 이자라도 갚을 것 같은데, 천재소리 듣는 형과는 달리, 대단히 유명한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놈이니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무엇이라도 만든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니라네. 그 절망감과 비참함이란.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ㅡ 이땅에서, 이 시대에서, 청춘의 삶이란, 삶은 달걀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도 같은 곳이라는 말은 너무나 잔인한 것 아니야? 숨이 턱턱 막히고 아무도 함께하는 이가 없는, 꽃 하나 나무 하나없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라 해도,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심지어는 달 그림자도 있는데, 게다가 사막을 횡단하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인 오아시스 같은 샘이 숨겨져 있지 않아도 사막은 모래와 언덕과 바람과 달 그림자로라도 아름다울 순 없는 것일까? 실패한 청춘들만 추방되는 지옥 같은 곳인가? 설사 오아시스가 백일몽 같은 실제가 아니더라도.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사막아, 아녕. 난 이름도 없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는 무의미한 발자취 정도에 불과하니 기억하지 않아도 돼. 이름 모를 빛들,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고 무명길로 기우고 기워도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다시 말해 희망이란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지게 된 빚더미 위에 앉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도, 희망이란 이름의 빚더미의 미래란, 무명실로 기워서라도 잡고 싶은 희망이란 빛은, 무엇으로도 잡아둘 수 없으니, 그게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ㅡ 무명성 지구에는 이름없는 생물의 종만도 천만 개체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만들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무의미하고 숨막히는 삶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다구치니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인가봐? 성공해야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무명실로 정체도 모를 무엇인가 기워도 되지 않는, 막막한 공간에 갇혀있는 청춘의 삶이란, 아니 모두의 삶이란 광내거나 아니면, 성공을 포기한 채 도망가서 분노나 포출하는 그런 것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해서 신에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소명을 준다는 신에게 나의 이름을, 내 존재 이유를, 삶의 가치를 물었더니, 이런 신이 말하길 난 이름도 없다네. 난 신의 계획 속에 없었던 그런 버려진 존재일까? 나는 카인의 후예일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신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이름이 없다고 할 경우입니다. 신은 절대자이고 모든 것들을 주재하며, 그래서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을 가둘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는 뜻으로써 자신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승윤에게는 신도 이름이 없으니 모든 이름없는 청춘들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자, 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명왕성도, 사막도 살만한 곳이 됩니다. 청춘들에게 지금의 삶이 삭막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 되지요. 척박한 곳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 이런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https://youtu.be/o5_YYIfR7GE

 

 

서양철학만이 아니라 동양철학, 특히 초기불교(근본불교)의 권위자인 프랑스 철학자들인 로제 폴 드루아와 모니크 아틀랑이 공저한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는 코로나19와 전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책입니다. 책의 시작은 '희망은 절망스러운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철학은 언제나, 과학이나 종교도 물론 정확한 질문이 있을 때만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현재의 상황을 일람한 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없이 사는 것을 택할 정도로 희망을 잏어버렸다고 합니다. 인류를 멸종으로 이끄는 인공지능과 로봇, 사이보그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고삐풀린 폭주, 극단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드는 경제구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국민의 안전과 이익,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의 타락, 민주주의 지킴이이자 권력의 감시견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자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 각자도생에 빠져든 초개인주의,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의 붕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청춘의 절망 등까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다 상처만 받을 것이 뻔한 현실에서 아예 희망을 갖지도 않게 된 것이지요. 

 

 

여기에 코로나19 팬더믹이라는 경험하지도 막을 수 없었던 최악의 위기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책이 출간될 때는 없었던 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절망을 불러오는 것들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좋은 영향의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 나쁜 영향의 시너지 효과가 커진 것이지요. 그것이 진화론이던, 창조론이던, 인류가 지구에 자리잡은 이래 지난 1년 여는 1, 2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참혹한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청춘부터 코로나19의 희생자들까지, 모두가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란 불가능합니다. 서양에서 희망의 원래 뜻이 무엇이었으며, 현재 모두가 이해하는 희망의 뜻으로 변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판도라 상자를 언급한 후, 우리가 다시 희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절망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자고 합니다. 

 

 

이런 엄혹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마디로 희망의 반댓말인 젊망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무차별적인 분노에 휩싸이지 말고, 무엇보다도 삶을 포기하지 말자며, BTS(방탄소년단)이 모든 인류를 향해 따뜻한 위로의 노래를 전해주었습니다. 긴 가뭄을 끝내는 달콤한 비처럼, 오랜 장마 끝에 첫 번째 햇살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녹이는 따뜻하고 상쾌한 봄바람처럼 방탄의 노래, 'Life goes on'이 희망을 잃은 우리에게 이겨내자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에 나온 내용들은 영상의 마지막으로 미루고 먼저 방탄의 노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자, 함께 가보실까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말했는데, 삶은 계속돼야 한다고 노래한 방탄의 'Life goes on'에 대한 설명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DoNp3wg5484

 

 

 

구겨진 하루를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 여기저기서 채이고 밟혀 구겨진 하루, 너무 많이 구겨져 그대로 잠들 수 없으니, 매일 밤 다려서 다시 펴지 않으면 내일 또 일어날 수 없을 테니..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를 적었던, 제대로 살고 싶지만, 최소한이라도 비상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초라한 하루, 그래서 거짓말이라도 변명해야 했던, 희망했으므로 더욱 더 커진 절망 속에서 구구절절한 일기란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이 일단이라도 드러나리라.. 

 

거짓말이 시들은 어스름에/ 쉬이 머물던 약속은 먼저 자릴 뜨네요/ ㅡ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는 일기였기에 어둠이 깊어가는 그 어스름에는 시들어버리기까지, 자신이 자신에게 했거나, 타인이 자신에게 했던 약속은 잠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성에가 낀 창문에 불어 넣은 입김은/ 생각보다도 금방 식어 버렸죠/ ㅡ 밖으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그래서 창문에는 날카롭게 갈라진 성에가 끼었는데, 별빛이나 달빛이라도 보려고 자신의 입김으로 성에를 녹이려는데, 초라한 하루를 선사한 꽉막힌 현실에, 그 냉정한 한기에 자신의 입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리라, 더욱 두꺼워졌을 성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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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심죠/ 내가 이어 붙인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렇게 야위어 가는 내 마음은 이 넓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심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절망, 매일같이 구겨지는 하루하루, 성공은커녕 한 움쿰의 마음조차 간직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기우고 이어 붙여 보았지만, 화창해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이 광할한 하늘 아래서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ㅡ 너와 나, 우리는, 청춘이라는 특권이 너무나도 무겁고 버겁기만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향해 달려온 것일까요? 너와 나, 우리가 키워온 것이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른 것일까?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ㅡ 창에 성에가 낄만큼 추운 것을 고려할 때, 온도가 시작되는 곳이란 희망의 원천이거나 생명의 기원 같은 것일 수도, 너무나 적은 1%의 희망 때문에 99%에 이르는 압도적인 절망을 참아내며 매일밤 다려서 펴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던 초리한 하루로 온도가 시작되는 곳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바라보고 갈구했던 곳인데, 그곳을 향한 시선마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꿈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절망의 크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보여.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까지 잡았던 손을/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렸어요/ ㅡ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이란, 살을 가르는 상처가 전해주는 줄 정도의 아픔까지 참아가며,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손마저, 그 인내의 고통마저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릴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닐까? 1%의 희망이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너와의 손을 놓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포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은 무대가 아닐까?

 

손장갑을 끼지 않아도 움켜쥘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ㅡ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누구도 내 꿈을 알아주지 않아도, 1%의 희망마저, 그 꿈꾸는 마음마저, 너무 일찍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성에와 대비되는 손장갑, 손에 난 상처는 살을 에는 한기로 더욱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손장갑을 끼지 않고 무대를 향한 꿈을 놓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네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묻죠/ 네가 이어 받은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지칠대로 지쳤고, 그래서 구겨질 대로 구겨져 갈수록 야위어 가는 너의, 어쩌면 이승윤의 동료일 수도 있고, 무대를 향한 그만의 꿈일 수도 있는 너는, 그 간절한 마음은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너무 쉽게 손을 놓았으므로, 그것이 내가 흘린 눈물을 이어 받아 함께 울었던 너의 눈물은 어디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이 화창한 하늘 아래에 어디에? 내 눈물을 묻는 곳, 바로 그 옆에라도..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글을 좋아하시는 분은 영상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영상에 좀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글로도 충분히 풀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척이는 허울

 

 

잉크가 마른 경전 위에는 완장을 두른 경구들/ 어머 난 난시가 있어/

 

(모든 일신교의 특징이 최고존재자이자 전지전능하며 절대자이며 창조자이고 모든 우주를 창조한 단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이런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주장을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며 비판했지요. 최초의 원인으로 소급해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 충먼하고 완벽해야 하는 존재로 비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에 선행하며, 영원불멸이며, 어디에나 편재해 있으며, 모든 일어나는 일들에 자신의 뜻이 배경으로 자리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잉크가 마른 경전은 모든 신자와 비신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믿음을 강요하지요, 마치 완장을 찬 것처럼.   

 

모든 종교의 경전들 만큼 수많은 경구로 넘쳐나는 책들이 니체의 <짜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입니다)

 

헌데 자신은 난시라니, 무조건적인 필연적인 믿음과 복종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보면 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전체 세상이 아닌 성경과 성전에서만 절대적이고 구원자이자 사랑받고 구원을 주는 존재인지 물어봅니다.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더욱 많은 기여를 하려면 성서와 성전밖에서 사랑과 구원을 주는 실천가가 되야 하는 것이 아니나며 묻는 것이 나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들고나온 성서제일주의, 성서와 예수무오류설 등도 완장을 두른 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잉크가 말랐다는 것은 각각의 종교가 오래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무지 변화할 줄 모르는 그런 고집불통으로서.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뒤척이는 허울은 완장을 두른 경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난시이니 경전이 아마도 뒤척이는 허울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고요 완장을 두른 경전은 너무너무 싫으니까. 지척에는 조울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마음 상태가 아닐까요? 뒤쳐지는 너울은 믿는 자들처럼 하늘을 향해 가지 않고 지상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최근의 일부 기독교도들처럼, 또는 경전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안은 채 자신의 이익과 탐욕에 물든 광신도들로 인해 서울이 미쳐갈 수 있고, 믿음 자체와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각자도생과 욕망들의 충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빛을 잃은 거울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돌아보게 하는 반성과 성찰 기능으로써의 거울의 역할은 쓸모없어진 것이지요. 이것만 넘어서면, 그래서 위층에 오르면 거기는 햇살 가득한 곳일 수 있지요. 아니면 해, 즉 태양으로 상징되는 신은 아랫층, 즉 현실을 방관하고만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신이 함께한다는 데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악하고 추한 것들이 널려 있으니...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이런 이유들로 해서 미쳐가는 서울에서, 그 탐욕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또는 종교적 광신에 휘청이는 각각의 개인들을 살펴봐 달라는 것 같습니다. 눈 감았다는 것은 비신도들을 말할 수도 있고요. 

 

토성의 고리 손가락엔 안 맞아/ 천체를 접붙인 왕관을 가져와도/ 어머 난 얼굴도 작아/ 어쩌면 신이, 맹신을 요구하는 신이 이승윤군에게 영광의 반지, 즉 토성의 고리를 준다고 해도 맞지 않으며, 천체, 우주를 접붙인 왕관을 씌워준다고 해도 자신은 얼굴이 작아 맞지도 않는다는 것, 즉 완장 두른 경전을 따를 순 없다는 것,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시대의 품 속에 얼어붙은/ 우린 아마 여기서 얼어죽을 개인/ 얼어죽을 내일/ 많은 이들이 시대의 품 속에서 얼어붙은 채, 다시 말해 신앙적으로도, 세속적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해 천국이 아닌 여기서, 이 지상에서, 미쳐버린 서울에서 얼어죽는 것이지요. 지옥도 아닌 대한민국 수도인 이 서울에서. 청춘을 헐값에 가져다 쓴 후에 냉정하게 버려버리는 거대도시의 냉혹한 본질에 개인은 참혹하게 얼어죽는 것이지요. 희망이라는 것의 의미로 쓰인 내일에 얼어죽을 것이니 절망의 상태에서 죽음을 맡는 것이지요.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관광지 사람들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는 이 도시에서/ 난 살아 아니 사실은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그래도 나는 살아/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나 이탈리아에 있는 고대로마의 도시들이나, 그리스 아테네 등을 보면 그 역사적 명성 때문에 살아는 있으나 좋았던 시절이 모두 다 사라진 퇴락한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살아있지도 않은 도시가 된 것이지요. 이승윤군이 말한 관광지는 정확히 확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난 이곳에서 살고 있어, 반쯤은 죽은 채로, 반쯤은 겨우 숨만 쉴 수 있는 생의 명맥만 유지한 채로, 과거의 영광에 족쇄 채워진 상태이지만 그렇게 지옥에나 있는 듯이 살아 있기는 해 

 

좋은 자린 전부 역사가 차지하고/ 우린 무덤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고/ 어제를 파낸 자리에 오늘을 묻어야만 해/ 그래야 내일이란 걸 살아/ 그래야만 내일이란 걸 살아/ 좋은 자리란 역사의 유물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역사의 무덤, 폐허처럼 쇄락한 이곳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으며,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후대의 사람들은 최악의 삶과 행복을 바쳐야 한다는 뜻, 역사의 유물들이 던져주는, 즉 관광객들이 흘리고 가는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어야 겨우 삶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뜻이지요. 많은 관광지들이 유물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까지 더하면 역사의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힘겨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역사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 왔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이 쓰는 돈 덕분에 먹고살 수 있으니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각종 유물들도 우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빚을 지기란 과거도 마찬가지. 게다가 후대의 사람들을 과거의 영광을 얘기라도 하는데, 그래야 도시의 유물도 관광객들을 맞을 수 있는데, 죽은 유물들은 후대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기억해주기는커녕 우리는 잊혀진 존재야, 관광객의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역전된 관계, 주민이 주인이 아닌 곳, 잠시 동안 들렀다 가는 관광객이 그래서 주인이지.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라는 표현은 정말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입니다. 관광객 또는 관람객에게 팔 그림이나 안내글, 역사책 등에 이곳의 주민들이 담기는 정도가 허용된 삶의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박물관 앞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친구녀석이 묻더라/ 세기가 다섯 번을 더 지나도/ 나 같은 놈은 여전하겠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걸려 있고/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 널려 있지/ 저 안에 자리는 안 그래도 얼마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헐값에 팔아/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팔아/ 관광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희망 없는 도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명성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시, 그곳의 주민으로써 화려한 비상과 절박한 탈출이란 불가능하겠지. 우리의 자리란 없어. 벽의 여백엔 관광객을 위한 작품이 걸려있고, 유적지에서 나오면 기념품들이 즐비하지. 그런 공간이 후대의 사람들이 삶을 가꾸어가야 할 공간인데 그것도 주민의 몫은 아니지. 헐값에 팔밖에야,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파는 영겁회귀의 윤회에 갇혀버린 것이지.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비록 더럽고 누추한 도시였지만 셈족의 모든 종교가 이곳을 거룩한 성지로 만들어놓았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과거의 유물을 직접 관찰하고 또한 역사의 전통을 실질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해마다 이곳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치적인 미래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보고 싶어 했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의 단합된 힘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거의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치 호텔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처럼 아무런 개성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오가는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www.youtube.com/watch?v=AOL2QknvnIQ

 

 

 

 

 

영웅수집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아마도 나의 영웅이야/ 어쩌면 저렇게도 올곧고 위대한 건지/ 끝까지 나는 따를 거야/ 다만 내가 원할 말만 영원히 하면 돼/ 걸음걸이도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 마/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 헤매다 그에 가까워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칸트가 실천이성 비판에서 말했던 정언명령처럼 사는 사람, 즉 깊은 이성적 성찰과 그에 따른 정언명령처럼 위대하고 선한 자유의지에 따라 올곧고 위대한 인간한 모습에 반한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따를 거라고 다짐한다.

 

 

다만.. 바로 여기서 이승윤이 이번 가사를 쓰게 된 이유가 나온다. 아마도 자신이 찾아 헤매던 영웅으로 보이는 그가 내가 원하는 말만 해주면 돼, 그것도 영원히 해주어야 해. 그래야 영웅에 대한 추종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될 수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웅의 걸음걸이, 즉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이 이승윤이 찾아헤매던 우상으로써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헌데 이런 영웅이란 존재할 수 없다. 누고도 완벽할 수 없으며 이승윤만을 위한 그런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얼마 동안 그를 숭배했지만,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실망했어. 그래서 부숴도 좋아,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된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숴도 좋아. 

 

 

이제야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나의 영웅이야/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시대가 원하고 있잖아/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을 걸/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일 거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그렇게 영웅들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찾아 헤매된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것도 마지막 나의 영웅으로. 그런데 내가 정말로 찾던 그런 영웅은 아니지만, 시대가 원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나도 따를 밖에야. 그렇게 시대가 원하는 영웅이니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지. 그의 모든 것은 시대를 상징하고 대표해. 심지어는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만큼. 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주장한 것처럼 에고와 이드 위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룬 그런 초자아에 의해 시대를 이끌고 있으니까. 또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세계정신에 이른 위대한 영웅이니까. 시대가 원하는 그런 영웅이니 내 진열장을 차지할 수 있어. 누구도 손대지마. 마지막으로 찾은 영웅이니까. 어, 그런데 자세히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완벽해 보였던 이 영웅에게도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상징했던 영웅마저 완벽하지 못하고 바랜 흔적이 있네. 결국 이따위 영웅이라면 부숴도 좋아.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큰 법이니까. 

   

 

우릴 위해서 부서진 영웅을 위해 묵념 한번 하고선/ 관짝을 뜯어서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다 완성이야/

 

 

빛 바랜 영웅이자 흠 있는 미완성이지만 우릴 위해서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영웅이니 묵념은 한 번 해줄 수 있어야지. 그는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의 관짝을 뜯어 영웅의 영역에서 영원히 추방하지만, 그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슬퍼할지도 모르니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프랑스혁명을 이끈 여신의 모습처럼, 영웅의 초라한 주검에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영웅의 전설은 그것으로 모두 다 완성되는 것이지.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인용).

 

 

(전설이 탄생했단 걸/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걸/ 너는 그냥 왕관을 쓰고나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될 거야)

아무런 의미 없는 널 완성 시켜 놓아 준 건 나니까/ 전리품은 전부 내 진열장에다/ 네 자리는 없어/ 너는 거기까지야/ 그러게 흠집 없이 완벽하지 그랬어/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영웅의 전설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우주인 우리의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고 숭배받는 것이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 과거의 유물로부터 영웅을 건져올려 시대정신을 상징하도록 만든 것도 우리이므로, 그리하여 너는, 짧은 동안의 영광을 취했을 뿐 20대의 나이로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프랑스혁명의 시대정신을 세계(백인이 지배하고 경험하는 한계로써의 서유럽을 말함)에 퍼뜨리려고 했으나 끝내는 황제라는 독재자가 되버린 나폴레옹의 성공과 좌절처럼, 너는 황제의 왕관을 쓴 채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되는 것이야, 얼마나 허망하고 무력한가! 영광은 없었을지언정 죽음으로 해서, 즉 성공과 완벽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무덤 아래서 잠자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넌, 영웅은 내 창조물이야, 너의 미완성을 완성으로 만들어준 것은 나의 의지이니까, 해서 전리품은 이제 모두 다 내 진열장에 놓아둘 거야. 실패한 너에게는 실존할 자리조차 주저지지 않아, 성공을 지속하지도 상속하지도 못했고 전설 속에서만 살아서 홀로 외치고 있기 때문에 너는 그것까지만 허락된 거야, 그러게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완벽한 성을 쌓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모든 존재하는 사물과 운동의 원인의 최초의 원인이면서도 자신은 어떤 원인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실존하며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불사의 영역에 오른 절대의 유일신처럼, 어떤 흠집이라도 없었다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넌 나의 진열장에 놓을 여러 영웅 중 한 명일 뿐이야, 게다가 넌 너무 오래돼서 바랜 흔적까지 있어, 누군가에 의해 부서져도 별로 아쉴 것도 없지.    

 

 

이승윤이 영웅수집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실제로 존재했던 모든 영웅이란 한낱 허상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가 말한 영웅 중에 예수도 들어있다면 유명 목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청춘 특유의 반발이었을 수도 있다. 제가 20대 시절에 죄의식을 강요해야 비로소 돌아가는 가는 천주교의 교화방식이 너무 힘들어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을 이승윤도 비슷한 시기에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https://youtu.be/3KKb6RmDSGo

 

 

  1. 2021.02.06 23:2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1.02.07 04:36 신고

      하하, 젊은 시절에 그럴 수도 있지 않았나 가사만 보고 추측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사를 보면 이승윤씨도 일시적이나마 방황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다른 영상을 올릴 때 님의 댓글의 내용을 언급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승윤의 자작곡 중 3편을 선정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이승윤이라는 가수가 얼마나 잘 준비된 아티스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의 작사는 작곡 능력과 소화력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미적으로도 이승윤의 가사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만이 아니라 인간을 따뜻하게 끌어앉을 수 있는 탁월한 아티스트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픔과 슬픔, 고난과 고뇌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내면서도 아웃사이더에 머무르지 않고 좀더 성장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니 대단할 뿐입니다. 보다 자세한 가사 분석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보다 말이 좋은 분들은 영상으로 곧자 넘어가도 되고요.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삶은 원일까/아니면 구일까/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근데 나는 마름모야/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근데 나는 마름모야/여전히 삐뚜루 서 있지/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기도보다 아프게ㅡ세월호참사 아이들을 위한 노래

 

 

단 한줄도/쓸 수 없던/말들이 있었어

​기억한다는 말과/함께한다는 말은/펜보다 무거웠어

​눈물이 고여 있던 웅덩이에 들었던 하늘도/닦아내 버리면 자취를 감췄으니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마치 비밀인 듯이/모르고 팠던 건/매일 태어난 아픔들이야

​울먹이며 지는 석양아 이제 나도 서 있을게/네게 모든 어둠을 맡겨 놓지 않을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노래할게/기도보다 아프게/기억할게

 

 

 

 

게인주의

 

 

헤이 미스터 갤럭시/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착각은 말랬지/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별과 별 사이엔/어둠이 더 많아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헤이 미스 무지개/뭐 그리 혼자서 숨어 있어

폭우가 그치게/기다릴 필요 이젠 더 없어

얼굴을 내밀어봐/넌 이미 전 우주야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

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

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어느 결혼식 축가와 나머지 곡들의 가사 분석은 차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_0j9Im6PNgw

 

  1. 참교육 2021.02.03 07:47 신고

    저도 싱어게임 가끔 보는데..
    이친구 눈여겨 봐야겠습니다...ㅎ

 

대단히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위로와 행복의 가사이자, 소우주에 비견될 만큼 소중한 개개인의 존재론적 가치와 함께 어우러지기 위한 선한 정신을 전해주기 위한 BTS의 소우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승윤의 소우주는 초대형 팬덤으로써의 아미와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다양한 평가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승윤의 승리가 올어게인이 아닌 것도 평가와 감상의 차이가 상당한 클 것임을 말해줍니다.

 

마이너 가수들을 메이저 무대로 재호출하는 싱어게인이 탄생시킨 최대어로써 이승윤의 소우주 선택은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스타 탄생의 신화를 쓰고 있는 이승윤이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최고 스타의 곡을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의 위험도 따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승윤의 도전이 대범했음은 이런 위험을 감수했기 대문입니다.    

 

류희열의 심사평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던 것도 이 때문이지만, 심사의원이 아닌 한 명의 팬으로써 이승윤의 도전을 바라보면 그의 천재성과 상당히 완성된 그만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TS의 소우주가 이런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승윤의 도전을 전세계 아미들이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랍니다. 보다 깊은 평가는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승윤 덕분에 BTS의 소우주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게 된 것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였고요. 

 

 

BTS 소우주의 가사 :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우린 빛나고 있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서,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어두운 밤 (외로워 마),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사라지지 마, 큰 존재니까, Let us shi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70억 가지의 삶 도시의 야경은, 어쩌면 또 다른 도시의 밤, 각자만의 꿈 Let us shine,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O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도시의 불, 이 도시의 별, 어릴 적 올려본 밤하늘을 난 떠올려, 사람이란 불, 사람이란 별로, 가득한 바로 이곳에서, We shinin’,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숨을 쉬어,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에,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린 우리대로 빛나,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리 그 자체로 빛나, Tonight

 

 

https://youtu.be/cWWBQ_oyVYU

 

  1. *저녁노을* 2021.02.02 06:19 신고

    정말..특이하게 부르더라구요.
    늘 응원하는 분입니다.ㅎㅎ

    잘 보고가요

    • 늙은도령 2021.02.02 06:35 신고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제가 몇 달 동안 죽을듯이 아파서...
      댓글 남겨주시면 반드시 방문드릴게요.

  2. 참교육 2021.02.02 07:12 신고

    이 친구들 이런 아이디어 그리고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요?
    참 대단한 친구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분열만 조장하는 정치행태를 유물정치라 하면서 강력한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문통의 유물정치 비판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YS 정부 이래 지속되온 아이디어 차원의 '북한 원전 개발'을 문재인 정부 차원의 친북좌파적 정치밀약인양 막말을 쏟아내는 국짐의 선거운동용 북풍몰이에 일침을 가한 것은 맞습니다. 북풍공작에 대한 국짐의 징글징글한 DNA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기는 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의 X맨으로써 놀라운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안철수 때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넘어, 부산시장 보궐선거마저 패배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짐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북풍공작을 다시 꺼내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 정립하게 되는 상식의 차원에서도 익히 알 수 있는 질낮은 선거의 1차방정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문통의 유물정치 비판은 국짐의 과거퇴행적 행태만을 꾸짖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이분법적 이념과 진영 논리에 매몰된 좌우 모두의 과거퇴행적 행태를 겨냥한 것이라고 봅니다. 공리주의적 접근이라는 한계가 있다 해도 최대 다수의 국민 행복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념과 진영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를 공격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모든 유물정치자들을 비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통령병에 걸린 이재명이 전체 국민과 경기도민의 세금을 사전선거운동ㅡ경기도 차원의 2차 재난지원금 지급ㅡ에 쏟아붙고 있는 것,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물고늘어질 뿐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외면해온 정의당의 위선, 진보매체와 민주진보 논객임을 자처하며 유튜브에 자리한 채 유사 마르크스주의적이고 구좌파적인 요구만 쏟아내며 선동정치에 열을 올린 좌파지식인들의 이재명 편향성과 이념지향적 유령정치ㅡ이를 테면 김용민과 이동형. 

 

 

협소한 지식과 찌들은 관점을 가지고 문통을 비난하는 사이비 지식인ㅡ이를 테면 <조국흑서> 저자들 수준의 논객들, 완벽할 수 없는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대책과 일체의 과학을 배제한 백신음모론, 객관적 데이타를 무시한 경제실패론 등으로 문통과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데 전략을 퍼붇고 있는 조중동 부류들, 정의당을 띄워주고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언론의 의무인양 착각하며 그때그때 달라지는 공영방송의 위선적 다중성과 극단적인 페미니즘.

 

마지막으로 전체 재산 대한 고율의 부유세 신설이나 고소득자 누진세율 인상, 명품과 고가의 자동차 등 과시적 소비에 부가되는 특별소비세 인상 등은 거론하지 않은 채 국가재정만 무한대로 풀라는 자칭 경제전문가들과 기본소득을 만능열쇠처럼 뻥튀기하는 이재명 류의 정치인들까지, 엄혹한 현실과 그것의 결과로 도래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부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든 유령정치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성문파들이라면 이를 모릴 리 없습니다. 문통의 오늘 발언에 담긴 것들이 무엇인지 캐취하지 못할 수 없습니다. 전체 문파의 1%ㅡ그래도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ㅡ에 불과한 자들은 모를 수 있겠지만, 문통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이익마저 뒤로 미룰줄 아는 진성문파는 절대 모를 리 없습니다. 문파의 위대함은 이것에 있지, 파당적 권력 사용에 있지 않습니다. 문통이 위대한 이유도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인 문파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죽음에서 비롯된 이런 정치적 성찰이 문재인 대통령과 진성문파와의 가치연대의 핵심입니다. 노무현 없는 문재인을 생각할 수 없듯이, 문재인 없는 노무현도 생각할 수 없음이지요. 노빠와 진성문파는 그렇게 하나입니다. 어떤 공작과 선동도 이를 분열시킬 수 없습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www.youtube.com/watch?v=pBzS2brMtw8

 

 

 

 

갈수록 부실이 커지고 있는 게임스탑의 주가를 두고 벌어진 일련이 사태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사태의 주인공들은 주택담보부증권(주택담보모기지론의 파생상품들)의 부실에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피해자들과 그들의 자식세대인 MZ세대입니다. 이들이 목표하는 것은 수많은 금융위기를 통해 상위 1%의 배만 불려준 지금까지 반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50년을 바로잡겠다는 것입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라 디지털 게임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작게는 백악관으로 대표되는 연방정부를 장악한, 최대한 넓혀도 의회와 월스트리트, 허리우드, 군산복합체 등을 장악한 아이비리그 출신의 자본주의 귀족가문들이 규제받지 않는 시장경제를 이용해 상위 1%(최근에는 상위 0.01%)에게 하위 99%의 재산을 이전시킨 신자유주의의 메커니즘을 종식시키려고 합니다. 상위 1%의, 상위 1%에 의한, 상위 1%를 위한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끝장내겠다는 것이지요.

 

수없이 많은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를 일으킨 대형 금융업체와 헤지펀드, 자산가, 금융브로커들이 지배해온 주식시장의 를, 즉 게임의 법칙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겠다는 분노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와 동시에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미국의 붕괴와 세계경제의 몰락은 피할 수 없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의 주역들과 그의 자식들, 디지털세계를 주도하는 MZ세대의 거대한 분노가 대마불사의 월스트리와 상위 1%를 위한 그들만의 사회주의인 딥 스테이트를 뿌리 채 흔들 수 있을까요? 이들의 방식은 지금까지 상위 1%가 베만 불려온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복사판이라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거대한 태풍으로 자라나 미국 이외의 나라들을 박살내버릴지 두렵고 걱정이 앞섭니다. 

 

그동안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신자유주의에 대해 제가 읽은 수백 권의 책들과 논문들을 종합해 몇 편의 영상으로 이번 사태를 풀어볼까 합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글로 쓰려면 대단히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라 한 권의 책으로 다루어도 부족할 정도이지만, 글과 영상을 통해 최대한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https://youtu.be/iX2tlPC4qEE 

 

  1. 참교육 2021.02.01 07:39 신고

    주식...정말 좀 제대로 알고 시작해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하락한 이후로 좌파와 진보진영을 대표한다고 타인이 아닌 자신이 주장하는 일단의 지식인들이 문통과 문파를 싸잡아 비판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김우창이나 강준만처럼 제법 대접받는 교수부터 최장집, 한홍구, 홍세화 등등이 있고, 그들보다 수준이 떨어지니는 진중권과 서민처럼 <조국 흑서>를 쓴 사이비들도 있다. 

 

물론 <조국 백서>를 쓴 저자들처럼 세상의 변화를 아예 도외시한 채 70년대식의 논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구좌파적 권위주의에 물든 사이비 지식인들도 있다. 그들이 보수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도 위계서열과 알량한 엘리트주의에 빠진 것 때문인데, 이들의 얕은 지식과 뻔뻔함도 문통과 문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홍익학당의 윤홍식도 그런 면에서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동서양 철학을 섭렵하고 거의 모든 종교를 섭렵했다는 윤홍식이 그런 지식과 성찰로써 문파를 분란세력으로 재단하는 모습이란 그의 공부와 성찰이 얼마나 표피적인지 말해준다. 하버마스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김우창 교수도 젊었을 때의 날카로움을 잃었고, 아직도 계급의식에 목매고 있는 최장집 교수는 조직이자 기구로써의 계급정당적 접근과 공화적 대의로써의 근대민주주의에서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한홍구는 역사학자로써는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정치로 넘어오면 리영희식 세계관에 취해 길을 잃곤 한다. 민족주의적 역사의식과 구좌파적 성향은 수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형 민주주의의 사회주의적 버전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폭력적인 권력에 의해 강제로 파묻힌 역사의 진실ㅡ복수의 개념까지 이어질 때가 수두룩하다ㅡ을 밝혀야 하며, 민족의 통일을 무엇에도 우선하는 한홍구의 한계는 1세대 민주화세력의 공통적 한계이기도 하다. 

 

 

노빠들을 대표하는다는 몇몇은 문파가 문통을 절대화한다고 비판했지만 그 또한 각각의 표상들이 그들의 직관에서는 하나의 현상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는 표어를 천만 문파의 프로파간다인양 오해한 이들은 대통령과 최대로 해도 청와대만을 되찾은 문통의 임기 동안 온갖 기득권의 저항이 가열차게 진행될 것을 알기 때문에, 문통에 힘을 실어주는 표상이라는 것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문파는 문통을 절대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성공을 절대화하고 싶었다. 그것의 불가능함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모아줘야 일정한 수준이라도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이명박근혜의 9년 동안 철저하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노빠의 시조이자 본류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문통의 통치방식과 정책들을 오해했듯이, 문파 역시 오독한 것이다. 이들이 비판한 문파라는 현상은 각자의 경험에 근거한 지성개념의 영역에 속할 뿐, 진정한 비판과 성찰로 가는 이성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한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정립한 비판방식으로 보면 그들이 틀린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들은 천만 문파를 대표하는 것처럼 왜곡된 현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철저하게 경험에 의존하는 지성개념에 갇혀버렸다. 경험적 직관은 인간을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는 이성의 능력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에서 출발했다 해도 더 높은 차원의 초월적 이성비판에 이르지 못하면 각각의 개인적 경험에서 전체를 추론하는 비약과 이율배반의 모순추리를 남발하게 된다. 

 

원조 노빠를 자처하는 이들의 문파 비판은 그런 수준에 머물러있다. 노통과의 정치경험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때의 경험에 의존하는 단편적인 분석에 머물러있으면 그들은 천만으로 늘어난 문파의 성장과 다양성, 개별적 독립성과 연대적 참여의식의 진화를 따라올 수 없다. 어려운 표현이라 많은 분들께는 어렵겠지만 저들이 노통과 함께할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비판근거가 얼마나 일천하며 개인적 직관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홍세화, 진중권, 서민 등은 수준이 너무 떨어져 비판의 대상도 되지 못하지만 관종의 성향이 허경영에 버금가고 권력에의 의지가 니체보다 강한ㅡ그러면서도 추하기가 그지없는ㅡ이들의 궤변과 비판의 저급함은 천만 문파를 단 하나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범죄에 한치의 주저함도 보여주지 않는다. 천만이란 숫자는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 볼 수 없음을 말해주는데 그들은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하나로 묶어버린다.

 

이성보다 앞서는 손가락의 난동을 참지못하는 일부의 키보드워리어를 문파의 전형으로 규정지어 버리면, 이들 같은 비판도 가능하다. 일반화의 오류에도 들지 못하는 이들의 비판은 비판의 논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현실적 근거를 1% 정도의 극렬문파ㅡ뇌보다 손가락이 빠른 키보드워리어ㅡ에 두고 있다. 용감무쌍하게 99%를 배제시키며 1%가 전체라고 우기는 이들의 초월적 비약은 초월철학을 정립한 칸트라도 혀를 내두를 판이다.   

 

최소한 라이프치니와 벤야민의 단자론에 대한 이해가 있었더라도 이런 막가파식 비판을 할 수 없다. 몇 발 더 나아가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에 따르면, 천만 문파를 자신의 직관에 다가온 대표적 표상인양 포장해, 99%의 현상은 무시한 채 1%라는 극소수의 행태를 표상적 감성화로 하나의 계열로 묶어버리고, 그에 따른 형식적 범주화를 통해 제멋대로 비판하는 엿장수 맘대로의 변증학적 추리를 서슴지 않는다.

 

천만 문파의 표상적 잡다를 각자의 실체에 하나하나 연이어 덧붙이지 않은 채, 감성적 비약을 통해 하나로 묶어버리는 이런 오류추리의 변증학은 이성에 따른 초월비판으로 들어설 수 있는 근거를 단 하나도 가질 수 없다. 다시 말해 문파에 대한 저들의 비판은 조건적인 소수의 경험적 예로써 무조건적이고 초월적인 신이라는 존재를 실체화시키는 논리적 비약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1%가 99%보다 진실이라는 저들의 주장은 경험의 크기(양)나 질의 밀도에서 터무니없는 궤변이자 왜곡일 뿐이다.     

 

 

감성적 지성개념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이들의 비판(1%의 키보드워리어의 행태에 근거한)은 그것의 확장을 이끌 수 있는 연장적이면서도 기연하는 상기(깨어있는 시민의 가치연대로써의 99%의 문파의 이성적 성찰에 근거한)로써 반성적 비판을 이끌어내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시공간에 천만 문파를 가둬놓은 채, 실체로써의 실재성을 제멋대로 부여한 채 이율배반으로 가득한 가상적 변증학을 마구마구 풀어댄다.

 

이들의 오류추리들은 모순대당(두 개 중 하나는 참이고 나머지는 거짓인 명제)의 이율배반으로 가득해, 칸트가 그렇게도 경멸했던 잘못된 변증학(생각하는 내가 실존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한 근원적 원인이자, 원인을 일으킬 뿐 자신에게는 귀속시키지 않는 전능한 신이 필연적으로 실존한다는 대다수의 엉터리 형이상학)의 전형이다. 프랙털 이론(전체는 부분을 이루는 단위와 거의 비슷하게 구성된다는 이론)을 들이댄다 해도 현실에서의 하나는 하나일뿐 전체가 아니다.

 

칸트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비판은 이성의 영역으로 초월하는 어떤 확장도 불가능한 결함투성이의 단견들이어서 자신의 논리적 근거를 신적 초월성에 일치(노통을 독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시키지 않는 한 어떤 객관적 근거도 가질 수 없다. 철학적으로 난해한 용어들을 모두 다 거둬내 쉽게 말하면, 1%의 키보드워리어가 나머지 99%를 대표한다는 주장이어서 철학의 수준에서도, 상식의 수준에서도, 심리적 수준에서도 어떤 논리적 근거도 가질 수 없는 사상누각이란 뜻이다.  

 

이들의 비판은 모두 지성개념에 머물러 있다. 즉 자신의 좁고 선급하며 편향된 경험적 추론에만 의존해 있다. 얼치기와 사이비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들은,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치열하고도 꼼꼼하며 끈질지게 정립한 순수 이성의 개념화, 즉 이념적 초월분석으로 분석하면, 양자터널링에 의한 양자얽힘 만큼 우주 탄생의 인플레이션적 폭발에 비견될 정도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갈 수 있다는 이들의 비판은 허공 중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바벨탑을 보는 듯하다.

 

이들에 대한 비판을 더욱 학문적으로 치밀하게 펼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써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를 위한 글에서 그렇게 먹물적인 모습까지 보일 필요는 없으리라.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의 최대치에 이르는 방법론을 정립한 위대한 칸트가,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도덕법칙이자 상식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실천이성 비판>으로써의 의무와 당위를 이들의 비판에서 찾아낼 방법이란 단 하나도 없다, 도대체가! 

 

 

초월철학을 통해, 즉 이성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에 따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당위와 윤리로써의 도덕법칙이 나오는데, 천만 문파를 하나의 집단으로 우겨넣는 폭력적인 짓거리는 상식의 수준에서도 오류추리에 해당한다. 천만의 문파에는 대깨문도 있을 것이며, 극히 일부의 문슬림도 있을 것이다. 행동이 앞서는 격렬 문파도 있을 것이고, 뒤에서 후원하고 응원하는 수없이 많은 99%의 문파들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즉 1945년의 해방 이래, 헌법적으로는 임시정부와 3.1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써 깨어있는 시민들이 존재하고 대를 이어 이어져 왔다. 위기 때마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뒤바꿔온 이들은 건국 이래, 오로지 한국전쟁을 빼면, 가장 큰 규모와 가장 다양한 종류의 외부충격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의 근거로써 함께했다. 

 

1%의 극렬문파와는 다른, 노통의 삶과 죽음, 지식소매상이자 스피커로써 유시민 이사장(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의 도움을 받아 문통과 함께하는 99%의 진성문파는 양자요동하는 지혜이자, 직간접적 참여의 파동으로 실존하는 정치사회적 연대의 원천이다. 문파의 진정한 힘은 여기에 있지, 1% 정도의 키보드워리어적 공격성과 무도함에 있지 않다. 진성문파는 지켜볼 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부충격에도 불구하고 문통이 너무나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장도, 다음 대통령도 천만 문파의 표가 결정한다. 명심하라, 진성문파의 마음을 얻거나 훔치지 못하면 누구도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한다. 침묵하는 문파가 더욱 무서운 법이다. 왜? 그들은 두 번은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섭게 깨어있는 그들은 수십억 개의 뉴런이 시냅스로 연결돼 있는 뇌처럼 그렇게 연결돼 있다. 모든 뉴런은 노통의 정신과 문통의 가치이며, 시냅스는 각자의 깨어있음이다. 

 

 

니체의 말처럼, 천년왕국을 기다리며 탐욕과 권태에 쩔어있는 '최후의 인간'은 너희들이지 천만 문파가 아니다. 연대하는 힘이자 관계로써의 문파는 언제나 '시작하는 인간'이다.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목표한 곳에 이르는, 그곳이 성지이기를 바라기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사는 세상'이기를 바라는 각각의 개인이자 더욱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향한 최후의 보루이자 가치연대로써의 전체이다. 

 

천만 문파는, 생철학자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증명한 것처럼 노통의 삶과 죽음에서 출발해 문통의 성공적인 퇴임까지 다양한 형태로 갈라지면서도 끝내는 하나로 뭉치는 그런 창조적 진화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늘 현재에 천착하면서도, 돈만 밝히는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선 노무현의 정신까지 배진, 즉 소급하며,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시민으로 돌아온 문재인이 봉화마을에 돌아와서는 동지이자 친구인 노통에게 퇴임인사를 하며 웃는 순까지지 전진, 즉 나아간다. 

 

문파가 어떻다고? 까불지 마라. 아니, 너 자신을 알라. 너의 무지부터 돌아보라! '권력이 다르면 지식도 다르다'는 푸코의 말도 성찰해 보라! 하버마스의 성찰을 빌리면, '공론장 이동'은 벌써 일어났고, 99%의 문파는 이미 그곳에서 문통의 성공을 위해, 무엇보다도 코로나19의 조기 극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99%의 문파는 네그리와 하트가 말한 반제국적이고 이합집산을 마음대로 하는 '다중'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가치연대이고 도덕법칙으로써의 실천이성이니 말이다! 

 

천만 문파의 출발점은 단 하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아울러, 언제나 동시에 목적지도 하나다. 반칙과 특권이 사라지고 상식과 원칙이 번성해 사람들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먼저인 사람사는 세상이며, 그런 대한민국이다!

  1. 도령님화이팅 2021.01.31 04:05

    윤홍식을 비판하는 글을 볼 줄은 몰랐는데
    도령님, 틈새 사이비들을 놓치지 않고 비판해 주시는군요.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21.01.31 06:39 신고

      나름대로 자신만의 성찰에 이르렀다고 자화자찬하는 윤홍식은 불교에 관해서는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철학과 정치철학에 관해서는 그의 주장이 전혀 먹힐 수 없습니다;
      윤홍식을 철저하게 분석, 비판할 수 있지만 저 역시 초기불교(근본불교)에 관한 공부를 더해야 합니다;
      윤홍식의 구독자가 십만 명에서 멈춰버린 것도 그의 한계가 그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이지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jtbc의 싱어게인'의 참가자 중 최종결승에 오를 것 같은 세 명의 뮤지션에 대해 다루어봤습니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그 가능성을 정초한 미학의 관점을 차용해 세 가수의 능력과 가능성, 미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싱어게인' 자체가 패자부활전이기에 작금의 청춘들에게도 이런 기회들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로, 대중성에서 실패한 가수에서 대중성을 다시 획득해가는 가수로,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에서 대중적 감성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가수로, 마이너에서 메이저 무대로 옮겨가서도 여전히 성공할 수 있는 가수로 이 세 명의 참가자는 이땅의 청춘들의 또다른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K-pop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새로운 가수들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미래가 밝기를 바랍니다.

 

'싱어게인'처럼 젊은 시절의 패배가 삶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처럼 나이가 들면 알 수 있는 삶의 지혜이지만,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청춘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로 이 세 사람이 다가갔으면 합니다. 실패를 거듭하고 건강상으로 최악까지 갔던 저조차도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었으면 합니다. 소확행보다는 도전하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청춘의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으로써 '싱어게인'이 만들어낼 패자부활전의 신화를 고대하고 고대합니다. 연대를 나온 저는 고대보다는 기대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지만, 간절함의 크기와 질이 다른 것 같아 '고대한다'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온갖 불평등에 마주친 이땅의 청춘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희망과 패자부활전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을 살게 하는 것은 그 빌어먹을 놈의 희망 아니겠습니까?

 

좌절하고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정치논평마저 접은 유시민 이사장에게도 다른 삶의 모습들을 기대할 수 있듯이, 평균적으로 60~7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청춘들이라면 어떤 기대인들 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듯합니다.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인 칸드도 57세에 이르러서야 <순수이성 비판>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른 것이라면, 희망이나 재도전 또한 같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RjwJeWWpS54

 

 

민주진보 진영의 최대 스피커였던 유시민 이사장이 정치세계로부터 영원히 퇴장하게 됐습니다. 유 이사장이 이 지경까지 몰린 상황이 대단히 안타깝지만, 유시민 이사장이 완전한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의 사과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제는 그를 놔주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제가 보기에 유시민 이사장은, 전체를 100을 칠 때 96가지를 잘해왔지만 4가지 면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몇몇 영상에서 다루었지만 편집으로 잘라내곤 했는데 이번 영상에서 그것들을 다루어봤습니다. 유시민 이사장을 완전히 놓아주려면 그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구석에 몰린 사람에게 못할 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영상을 찍는 것을 미루고 미뤘지만, 유 이사장이 이번 기회에 확실히 털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비상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유시민 이사장 덕분에 희망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그가 없었다면 작금의 정치상황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라면 천하의 유시민도 그랬던 것이었겠지요. 진중권이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처럼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파렴치한에 비하면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는 진정한 용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아듀, 유시민! 거자필판이요 회자정리라 했으니, 지금은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www.youtube.com/watch?v=w-k-b76hdeg

 

  1. 2021.01.28 01:02

    비밀댓글입니다

  2. 참교육 2021.01.30 13:07 신고

    참 똑똑한 사람인데... 넘쳤네요...
    실천업없는 관념적인 지식인 사대는 이제 그쳐야지요.

 

 

진성문파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것을 모르는, 아니 악착같이 모르려 하는 조중동, 그중에서도 중앙일보에 실린 논평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문재인대통령에 이르는 동안 한결같은 지지와 신뢰를 보여준 진성문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중앙일보 칼럼의 저자는 이제야 그 일단이라도 알게 됐나 봅니다. 저자는 미국 주립대학ㅡ공교육ㅡ의 신화를 작성했던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답니다.

 

논평의 행간에 숨어있는 것들까지 동의할 수는 없고, 어떤 의도로 썼는지 추측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지만 그에 대해서는 논외로친다 해도 문통을 유령 취급하는 공영방송과 얼치기 사이비 좌파지식인들이 포진한 진보매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논평이라는 점에서 다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통이 금방망이나 도깨비방망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부동산투기나 코로나19 대응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할 만합니다.

 

 

어제의 기자회견으로 문통의 생각을 알게 된 진성문파로써 기자회견의 내용을 일일이 분석할 필요는 없을 터, 오로지 이데올로기적이거나 파당정치의 끝판왕으로 변질된 진영논리로만 보면 정반대에 위치한 적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음을 말해주는 희귀한 논평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인지부조화를 넘어 집단극단화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현재의 정치환경에서 이런 신선한 접근이 중앙일보에서 나왔다는 것은 약간의, 아주 약간의 희망은 남아있나 봅니다. 

 

보수주의자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가 대단히 중시한 편견ㅡ오랜 기간 동안 검증돼 살아남은 습속이나 규범을 받아들이는 보수주의 특유의 편견을 잠시 옆에 놓아두고 이 논평을 볼 수 있다면 문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분법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손자병법의 하나를 빌린다면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것을 말해주는 논평입니다. 정권재창출이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상대의 생각과 논리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주열 한은총재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상승을 이어가고 있는 주식시장의 이상과열에 대해 경고를 보냈습니다. 이주열 총재가 관료 특유의 절제된 단어 선정과 차분한 톤으로 말했지만, 미국의 연준의장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한은총재의 경고는 주식시장의 이상과열이 임계점을 넘어 거품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라도 하듯이 '동학개미'라는 단어가 에널리시트와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전의 모든 개미들과는 다르게 가치투자를 한다는 이들은 '영끌'의 주인공이면서도, '이생망'을 주문처럼 외우던 2030세대들이라고 전해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청춘에게는 헬조선에 다름없었던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세계 선도국으로 변한 만큼 이들의 갑작스런 등장과 모순된 행태는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워렌 버핏처럼 가치투자에 나선 이들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장기투자를 할 경우 돈을 벌 가능성이 높은 초국적기업은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저평가된 성장기대주들을 찾아내 장기투자를 함으로써,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고, 기업의 성장과 함께 돈도 벌겠다는 애국심에 불타는 화이트엔젤처럼 알려졌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적대적인 것으로 알려진 2030세대들이 촛불혁명 이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죽어도 믿지 말아야 할 에널리스트와 언론, 주식부로커들이 작명한 '동학개미'라는 명사 또는 프레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헬조선과 이생망을 외치던 이땅의 2030세대가 기업의 경영권을 지켜주고 국익도 최대화하는 애국청년으로 돌변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곧 죽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기대수명이 80세 중반대에 이르는 이땅의 청년들이 집단적으로 자살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변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방법이란 없습니다. 

 

이런 전제 하에, 그리고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에 관련된 수많은 연구와 저적들을 분석의 도구로 사용해보면 '동학개미'라는 프레임에 대한 온갖 의문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이들이 거대한 작전세력일 수 있다는 의심도 가능할 판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9ZSLB9FHvQg

 

 

˙

미국은 트럼이재명 안철수 정의당 공영방송 조중동 등이 이끄는 표퓰리즘 전성시대프의 표퓰리즘에 종지부를 찍었고, 영국은 브랙시트라는 표퓰리즘의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일본은 재기불능 상태로 빠져드는 이때, 모범 국가였던 대한민국이 표퓰리즘의 광풍에 휘말려들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서도 고군분투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유령 취급하는 언론과 정치권 때문에 극단적 표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투기세력의 대변인인 조중동을 필두로, 안철수와 나경운, 국짐당이 이끌고 있는 우파 표퓰리즘과 문통을 인위적인 레임덕으로 몰고가며 정의당을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공영방송(MBC, KBS) 중심의 좌파표퓰리즘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에 있을 대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숙고, 성찰이 완전히 사라진 채 코로나19와 부동산투기세력에 지친 국민의 정서를 파고들며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깨어있는 시민들의 설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 여지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 요구하는 초개인주의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탐욕의 폭주가 이명박 시대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브랙시트가 성공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듯이 자신의 피해와 손해, 분노와 불만에만 매몰된 개인들은 표퓰리즘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 사회저의와 경제정의가 사라진 대한민국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일개 판사가 정부의 방역대책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감사원장이 대선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감사하겠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좌우표퓰리즘이 극대화시킨 초개인주의와 탐욕이 정치 본연의 기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모든 가치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인류의 종말은 더욱 당겨질 것 같습니다. 제 정신으로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하루하루입니다. 

 

 

https://youtu.be/1SMKjiO6OCw

 

  1. 2021.01.29 23:1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1.01.31 06:43 신고

      10만원 수준의 경기도민을 위한 재난지원금은 눈감아 줄 수 있지요.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이지만 대통령병에 걸린 파시즘적 나르시시트인 그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의 지지율보다 비호감도를 살펴보면 경기도지사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익공유제를 들고나온 이낙연 대표의 제안은 실현가능성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필요할지는 모르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야기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좋은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했던 19세기 말에 근접하고 있는 현재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막기 위한 정부의 방역대책으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전세계가 지구와 환경을 파괴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양산해온 기존의 성장만능주의에 매몰된 현재,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율의 부유세 신설과 법인세 인상, 초고소득자 증세 등밖에 없습니다.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하고 있는 극소수의 부를 앞에 언급한 세금들을 통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지속적으로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하위80%에게 차등적으로 지원할 때만이 지속가능한 경제환경이 가능해집니다.        

 

 

 

이낙연 대표의 이익공유제는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낙연 대표가 던진 이익공유제의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터뜨린 기업들이 회복불가능해 보이는 피해를 감내한 국민들과 자영업자 등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은 사회정의이자 경제정의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시켜야 합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이낙연의 이익공유제에 대한 국민의힘의 비판이 얼마나 부자를 위한 반민주적 논리이며, 갈수록 어려워지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무시하는 왜곡이자 프로파간다입니다. 국짐의 비판은 재벌과 대기업을 위해 절대다수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지극히 반인륜적 옥으로 내모는 것이어서 국짐의 본질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그런 문제점들을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천만 명에 이르는 진성문파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써 깨어있는 시민들은 13분 이후부터 시청해도 됩니다. 법치주의와 검찰에 대해,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 코로나19 때문에 참고있을 뿐 여전히 문통을 지지하는 진성문파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영상의 앞부분은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을 지역상품권으로 시행하라는 이재명의 주장이 얼마나 문제가 많으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는지에 댜루었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말한 이익공유제는 삭제했는데 하나의 영상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짐당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고 있는 김종인이 경제전문가도 아니며, 우리가 지금까지 지겹게 지켜본 시장우파일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부유세 도입과 법인세 인상 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익공유제는 차선책으로써 으뜸입니다.

 

지지율이 1등으로 올라서고 이낙연 대표를 확실하게 따돌렸다고 판단한 이재명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사면권 등을 흔들어대고 정세균 총리에게 대든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잊지 마십시오. 이재명이 아무리 가면을 쓰고 착한 척을 하며, 국민을 위하는 척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정책들과 행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혜경굼 김씨'의 수많은 SNS가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10jqFtbzEjk

 

 

진보매체에 포지한 지식인들의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비판이 하도 어이없어 모조리 반박했습니다. 문통에게 제왕적 대통령이 되라고 하지 않나 조국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추미애를 저격하는 것을 넘어 후보 시절의 공약들을 단 하나도 달성한 것이 없다며 집중난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낙연과 윤석렬을 하나로 묶어 이재명의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겠다는 듯한 이들의 광기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입니다.

 

놀라운 분업체제를 갖춘 그들의 광기어린 공격을 보면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댑니다. 이재명에게 제왕적 권력을 부여해 대한민국을 좌파지식인과 진보매체의 세상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입니다. 폭력적이기 그지없는 이재명 지지자들에게는 침묵한 채 문파만 전제적 여론독재를 하는 민주주의 파괴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천만 문파 중에는 또라이도 있을 것이고, 극렬한 자들도 있을 것이며, X맨도 있을 것인데 진정문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그들을 전체인양 매도하며 팬덤정치 운운합니다. 그들의 논리 모순은 문파는 팬덤이고 이재명 지지자는 팬덤이 아니라는 투입니다. 죽어도 박근혜를 찍었던 사람들과 국짐에게만 표를 주는 사람들은 문파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투입니다. 

 

오로지 문파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최악의 아마츄어이자 관료집단에 사로잡혀 모든 개혁을 방기한 최악의 정부인데, 여론독재를 하고 있는 문파 때문에 탄핵당하지 않을 뿐이라는 듯합니다. 그들의 한심하고 고리타분하며 급진적이며 계급적인 비판에 분노가 치밀기 전에 변하지 않는 그들의 완고함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나 하는 것인지?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고, 국민의 수준이 얼마나 높으며, 특히 깨어있는 시민으로써의 진성문파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선도국가로 만들었음은 추호도 인정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현실과 현장, 기술에 대한 이해가 천박한 지식인들의 난장판이 가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두 편의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dHT9zLf6b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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