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오너의 딸인 조현아는 이 땅의 수많은 장그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땅콩 후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재벌의 세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땅콩 후진’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너 딸의 명령에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기장은 항공기를 후진시켰고, 서비스를 담당해야 할 사무장은 무력하게 내렸으며, 거대기업 대한항공은 오너의 딸을 감싸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동안 표 값을 지불한 승객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문제의 항공기는 승객이 지불한 돈으로 비행을 함에도 그들은 철저하게 무시됐습니다. 이런 초법적인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조현아가 대한항공 임직원들에게는 신과 동격인 오너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빚으로 샀을 항공기는 물론, 승객이 지불한 돈으로 월급을 주면서도 자신이 기장과 사무장, 승무원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땅콩 후진’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빼앗긴 승객들의 피해는 승무원의 서비스로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왔지만,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한 지금에는 오로지 돈이 곧 권력입니다. 축적돼 견교해진 돈의 크기에 따라 권력의 크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초법과 불법, 탈법적인 행동도 돈의 크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됩니다. 재벌가의 특권의식과 슈퍼갑질이 일상화됩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하는 독점 자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하에서 가장 잘 돌아가고 성장하지만, 축적돼 막강한 권력이 된 거대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됨에 따라 민주주의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세습되는 독점 자본의 시대에 들어서면 사회경제적 평등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만큼 성가신 것이 없습니다.



왕족과 귀족에게 부와 권력이 독점되던 봉건사회에서 제3의 신분으로 등장해 새로운 부와 권력을 늘려가는 부르주아에게는 자신의 재산과 시장경제를 지켜줄 국가와 함께, 자유방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한국에서는 왜곡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이에 대해서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자들의 속셈’에서 다루겠습니다)가 최상의 체제였습니다.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부르주아가 민주주의와 손을 잡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이 된 독점 자본이 봉건시대의 왕족이나 귀족처럼 거대한 부를 세습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면 민주주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유의 원천이 사라진 불평등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가 단위에서 세계로 넓혀진 시장의 통합은 불평등을 지구적 차원으로 고착화시킵니다.



독점 자본의 권력이 이렇게 세계화되면 절대군주를 떠올리는 ‘땅콩 후진’이 가능한 일이 됩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부의 독점이 이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세습되는 거대한 부의 독점을 분산시키면 이런 봉건적이고 초법적인 행태는 불가능해집니다.



                                          노무현 정부 때 민주주의가 확대됐던 이유



민주주의국가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밖에 없습니다. 독점되고 세습돼 초국가적이 되는 독점 자본의 속성을 조세정의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화 하는 것입니다. 세습되지 않는 한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등 사회적 비용에서 자유로운 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치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대한 부가 세습되지 못하게 하는 것,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 시장의 기능이 원래는 공정한 경쟁과 가격을 형성하는 정의 실현의 장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바로 잡는 것, 국민행복권 실현을 위해 불평등한 탄생을 평등한 공존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조현아 앞에선 또 다른 장그래인 기장과 사무장, 승무원들이 불평등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항공기가 출발하면 그때부터는 기장과 승무원의 역할 하에 표 값을 지불한 승객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정치가 죽으면, 그래서 독점 자본을 견제할 것이 사라지면 계약직 사원도 아닌 정규직은 물론 서비스 비용을 지불한 승객마저도 또 다른 장그래로 만드는 ‘슈퍼갑질’을 방지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경우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재벌 오너 중에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여전히 제왕적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후진'과 '무늬만 사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재 시대의 압축성장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한 정실자본주의와 세습자본주의의 천국인 대한민국은 극소수의 거인과 절대다수의 난쟁이로 나뉘어진 후진국에 불과합니다. 



흔히들 경제가 밥 먹여 준다고 하지만 이는 상위 10%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지 하위 90%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거대한 지적 사기입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경제 규모가 수백 배로 커졌지만, 중산층이 줄고 하층민이 늘어나는 것에서 보듯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위 90%에게 늘어난 것은 빚과 구조화된 불평등과 새로운 형태의 차별입니다.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진들 부의 재분배와 경제민주화를 강제하는 정치의 역할이 사라지면 제2, 제3의 ‘땅콩 후진’과 ‘무늬만 사퇴’인 재벌가의 특권의식은 반복될 뿐입니다. 하위 90%를 밥 먹여 주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부와 권력의 독점을 최소화하는 정치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10 08:14 신고

    재벌을 없애야 합니다
    세습...절대로 안될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10 15:37 신고

      재벌보다는 재벌로부터 제대로 된 행태를 이끌어내는 정치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재벌에게서 세금을 제대로 걷고 공정거래를 하게 만들고 중소기업과 공생의 길을 가게 만들면 모두가 좋아집니다.

  2. 동의합니다 2014.12.12 01:02

    몇 년 전 TV에서 오늘날의 멕시코 경제,
    특히 살리나스라는 자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과 캐나다와 FTA 를 체결하면서
    극소수의 부자가 그 나라의 거의 모든 부를 다 차지하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너무나 불평등한 그들의 상황을 보고는
    무척 마음 아픈적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의 삶이 수준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삶은 지금보다 더 불합리 했으면 했지
    덜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판단으로 이 역경을 넘겨야 하는데
    그런 힘은 좀 더 현실을 볼 줄 아는 눈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져야 되는 것이죠.

    그런 눈과 귀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늙은도령님,
    계속 진실을 밝히며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좋은 글
    잘 써 주시기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4.12.12 03:13 신고

      아무리 저 같은 사람이 비판의 글을 올려도 님 같은 분들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판에 열려있는 님 같은 분들이 늘어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좋아질 것입니다.
      압축성상의 시대에 삶의 전성기를 보낸 60대 이상의 노인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분들처럼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국가란 정치가 절대적 힘을 갖습니다.
      정치를 멀리하면 할수록 소수의 엘리트에게 모든 것이 돌아갑니다.
      보는 눈과 듣는 귀는 하나입니다.

  3. 동의합니다 2014.12.12 04:10

    맞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유권자인 우리 모두가
    잘 감시 감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TV 나 방송에서 일삼는
    국회의원들의 싸움에 욕하지 말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더욱 관심을 가져서 당장 부정을 고칠 수 없다 해도
    최소한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줘야 합니다.

    국회의원들 싸우는 것에 염증을 느껴 정치에 관심을 가지 않고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의 권리도 행사하지 않는다면
    서민과 약자들의 삶에 무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권리마저 짓밟을 기득권자들의 영생불멸만 이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야당 의원들이 집권당을 향해서 싸우는 것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줄 아는 인내력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12 05:58 신고

      정치는 말이고 토론이며 어느 정도는 논쟁이고 언쟁입니다.
      외국의 정치토론은 한국보다 더욱 치열하고 살벌합니다.
      우리의 정치토론은 너무나 얌전하고 순치됐습니다.
      이런 식이면 노무현 같은 지도자는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국회의원들의 토론이 짜증나고 저급한 언쟁처럼 보일 뿐입니다.
      님의 말처럼 인내심을 갖고 그 이면에 자리한 것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촌천살인의 대명사였던 유시민이 활약할 때는 우파논객이 상대가 되지 못했지요.
      그 덕분에 우리는 정치가 말이며 논쟁이라는 것을 깨달았었구요.
      이제는 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으응? 어, 어, 누구세요?



죽음 같은 잠에서 겨우 깨어난 희멀건 한 내 눈동자에 들어온 얼굴이란 것이 방금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면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곳이 천국인지도 몰랐다. 지난밤의 동생과 나눈 대화 때문에 모든 에너지가 고갈돼 잠든 상태에서 이승을 떠나 별로 죄 지은 것이 없는 관계로 천국에 직행했을 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랬으면 나...만 좋았고 동생은 무척 슬펐겠지만 어쨌든 나를 부르는 아스라한 소리에 겨우겨우 깨어나 가까스로 눈을 떴는데, 뒤로는 투명할 정도로 푸르른 하늘과 햇살을 배경으로 살며시 눈을 감은 채, 그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미소를 띤 천사가 더없이 달콤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깨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따듯한 손길이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의 신경은 극도로 흥분상태로 빠져들었다. 



'으흐흐. 어찌 이런 홍복이..'

“재우씨, 맞으시죠?”

“..네? 네? 네, 네! 재우가 저..인데요, 헌데 누, 누구세요?”



이런 연속적으로 멍청한 답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잠에 덜 깬 상태에서 가래가 가득 낀 목소리로 말했으니, 차라리 아니한 만도 못했고 이 모든 것을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지 않는가? 어제 동생과 얘기를 끝내고 난 뒤에 기절하듯 잠들었기 때문에 동생이 머리도 감겨주지 못했고(보통 이런 경우에는 떡 진 머리가 됐다), 깊은 잠을 자고 나면 항상 생기는 덕지덕지한 눈곱과 입가로 흘러내린 뚜렷한 침의 흔적도 닦아내지 한 상태일 텐데, 하필 이런 최악의 상태에서 이렇게도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날 게 뭐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째서 나에게 한없이 뒤끝이 찝찝할 모진 시련을 주신단 말인가? 하물며 상대가 천사라고 할지라도 모든 만남이란 첫 인상에서 상대에 대한 느낌의 90% 이상이 결정 난다고 하는데, 이렇게 억울한 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태어나 단 하루, 생전 가져보지 못한 기쁨과 행복 속에 잠이 들었건만 하늘은 그것마저도 용납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완벽한 폭탄이었다. 제기랄!



“전 수경이라고 해요. 야학 선생님인 재영씨께서 오늘부터 형님의 친구가 되 달라고 부탁해서 오게 됐어요. 형님과 말할 때는 말한 다음에 몇 초 동안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고, 너무 많은 얘기를 나눠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음, 그리고 방도 하나 내주셨어요.”

‘뭐, 방까지?’

“네, 네? 재영이의 친구가 되 달라고 제가 부탁을?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친구가 되 달라고 재영이에게.. 아, 이것도 아니지. 그러니까 그쪽 분한테 제 친구가 되 달라고 재영이가 부탁했다고요? 뭐, 방까지 내줬다고요?”



‘고맙게도!’ 재우는 차마 이 말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하긴 쓸데없이 남아도는 방이 하나 있기는 한다. 책과 잡동사니만 쌓아둔 방을 그대로 두기보다 이런 천사에게 내주는 것만큼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방값은 땡전 한 푼 필요 없다! 그냥 들어와 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양손 들어 감읍할 따름이다. 그렇다 해도 도대체 이게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분명한 아리따운 천사가 내 친구가 되 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그것도 모자라 함께 살아주기까지 하겠다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내 동생, 재영이가 부탁해서 말이지? 허면 재영이 이 곱디고운 천사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이 분명한데 설마 그것이 몇 시간 전이거나 하지는 않겠지? 지금 몇 시지? 밖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는 것을 보면.. 뇌리를 스치는 온갖 생각에 작금의 상황을 최상의 결론으로 이끌려 하는 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예의 달콤하고 정감어린 음성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그것도 최상의 결론 쪽으로, 으흐흐.



“네, 재영씨가 빈방이 하나 있다고 하면서 들어올 수 있냐고 부탁했어요. 전 재우씨가 하려는 일에 대해서 재영씨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승낙했어요. 그래서 오늘 같이 온 건데, 제가 싫으세요?”

“싫다니요? 천만에요! 오히려 가문의 영광이에요! 천사께서 있어만 주신다면야 집도 내드릴 수 있어요.”

“호호호. 그건 너무 큰 데요? 제가 영광이지요, 재우씨 일을 도와드릴 수 있게 돼서.”



웃음소리 역시 천하일품이었다. 그녀의 청아한 음성에 내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드는 듯했다, 조금 끈적끈적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헌데 이름이 수경이라는 이 천상의 여인은 말을 하면서 계속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차마 내 꼴을 계속해서 볼 수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설마?’

“사실 제가 시각장애 안마사라, 재영씨가 아예 집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형님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형님이 세상을 바꿀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재영씨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모양이네요? 정말로 제가 불쑥 찾아와 기분 상하신 건 아니시죠?”



말을 마친 천사가 잔잔한 미소(내게는 살인미소)를 띠며 나의 답을 기다렸다.



“아, 아닙니다. 기분이 상하기는요? 절대 아닙니다. 가문의 영광이라니까요!”



그녀는 역시 시각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살인미소를 만들어낸 자그마한 얼굴에 오똑한 코, 마스카라를 한 것처럼 짙고 긴 속눈썹, 예쁘고 작은 입술과 달걀처럼 갸름한 턱 선에 낭랑한 음성까지 어느 것 하나 천상의 명품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여자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적이 없는 내 눈에는. 그녀는 맑고 영혼과 고운 심성을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 천사가 분명했다. 저 가녀린 몸 뒤에는 단 번에 하늘까지 날아갈 수 있는 커다란 날개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숨겨져 있을 터였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 기분이 황홀경이리라. 재빨리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동생이 누군가에게 나를 살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또 어쩔 것인가? 이런 천사가 나를 보살펴준다는 데야 고맙고 감사하고 분에 넘치고, 크크! 웃음이 새나오는 것을 막느라 힘겨울 뿐이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탱큐 할 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천사와 함께 살려면 에너지 사용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을 터이니, 그것만 조심하면 성은이 망극할 지경이지 않은가?



‘할 수 없지! 이제부터는 TV를 본다거나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의도적으로 멍 때린다거나 하는 잡스런 일들을 전혀 하지 않으면 돼. 그리고 하나 더.’

“이제부터 무조건 많이 먹는 거야!”



나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생각만으로 끝내야 할 말 중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말았다.



“네? 아! 배고프시구나? 어떡하죠? 아직 제가 집안 구조를..”

“아, 아닙니다. 배가 고프다는 게 아니라..”



나는 천사와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혼선을 빚었다. 반응의 시간차 때문에 말이 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실수는 저질러진 것, 떡 본 김에 제사 드린다고 아예 이참에 대화의 방법에 대해 천사에게 설명하고 질서를 잡으면 된다. 쪽팔림은 잠시이지만 첫 만남부터 괜한 오해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헌데, 이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양 천사가 먼저 말하는 게 아닌가.



“아, 제가 말을 한 후에 몇 초 기다리지 않았네요. 죄송해요, 재우씨. 지금도 제가 중간에 재우씨 말을 끊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천사가 분명하디니까!’

“완전 아닙니다. 앞서 한 말은 제가 이제부터는 많이 먹겠다는.”



나는 여기서 잠깐 말을 끊고 기다렸다. 나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시켜주기 위해서였는데 천사가 분명한 그녀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상황을 파악하는 속도가 무지무지 빠른 것인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착한 심성은 기본인 아름다운 천사가 센스와 머리까지 좋은 것이었다.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은이 망극합니다!’



나는 먼저 두 종류의 신에게 감사를 마음을 전한 후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제 말은 수경씨가 제 친구로 오셨으니 이제부터는 많이 먹고 힘내겠다는, 뭐 그런 것이지요. 하하하!”



나는 최대한 남자답게 웃으려 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에너지를 팍팍 썼다. 깊이 자고 일어나서인지 오늘따라 에너지도 넘쳐 나는 것 같았고. 업 된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방방 떠다니며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호호호. 그런 것이었네요. 저도 좋아요. 제 남자 친구가 되어주실 분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명해주시니, 저도 많이 먹고 힘낼게요.”

‘남자 친구라고? 남자 친구! 크하하하하..’



나는 천하의 영웅호걸이라도 되는 냥 집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호탕하게 웃고 싶었지만 천사의 다음 말 때문에 마음 속 웃음을 중간에서 접어야 했다. 



“재우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재우씨 상황부터 제가 익혔으면 해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지금 상황을 알았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인생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여자 친구가 되려고 하는 복덩어리가 나의 상황을 알고 싶단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말랑말랑하고 더럽고 축 처진 내 몸과 배변 상태 등을 손으로 만져 일일이 확인해보겠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촉감으로 내 몸과 기타 등등의 부대상황을 익히고 그려서 뇌 속에 각인시키겠다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나는 너무나 두려워졌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생이 만지는 것 이외에 누구한테도 내 몸을 만지게 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천상의 선물 같은 수경씨라면 더더욱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급격한 변화를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운을 뗐다.



“재우씨, 제가 확실한 여자 친구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저는 손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과 소통해요. 하물며 제 첫사랑이 될지도 모르는 남친인데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다른 여자한테 절대 양보할 수 없어요, 그것만은.”

‘첫사랑이 될지도 모르는 남친이라 다른 여자한테 양보할 수 없다고?’

“아, 알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단 한 마디의 말에 모든 두려운 감정을 내려놓고 즉각적으로 완전 무장해제 상태로 돌입했다. 천사는 말도 이렇게 하나보다? 단 한 방에 나를 사로잡아 버리니! 그래, 어차피 치러야할 통과의례라면 빨리 치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아픈 건 변함없고 맨 처음에 전력을 다해 때리는 자를 만나면 말짱 황이지만 그 정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천사를 여친으로 만들려 한다면 천하의 도둑놈심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 재우씨가 말로 저를 안내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재우씨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 갈 테니까요.”



살짝 미소를 머금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래서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유리 같은 미녀를 봤을 때 뒤에서 후광이 난다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의 천사, 수경씨가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 있기는 했다. 



“저 근데요? 혹시.. 그러니까.. 어, 이를테면..”



나는 마음에 걸리는 마지막 하나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말을 빙빙 돌리자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것도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이!



“왜요? 또 마음에 걸리는 게 또 있으세요?”

“네? 네! 아, 그게 아니라.. 네, 네, 있긴 있어요. 헌데 그게..”



내가 엄청나게 더듬자, 그녀가 묘한 미소를 띠며(보조개가 너무나 예뻤다!)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 그게 다름 아니라.. 천사께서, 아니 수경씨께서 제 몸 상태를 파악하시기 위해 저를 만질 때, 저 그게 혹시..”

“혹시 뭐요?”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천사의 미소에도 은근한 음흉함이 내포될 수 있음을! 보조개는 왜 이리 예쁘고 선명하단 말이냐?



“그거 있지 않습니까?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거 있지 않아요? 그거 말이에요. 허어, 흠! 흠!”

“호호호호! 재우씨도 참 짓궂으시네요? 아직은 아니랍니다. 정말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모를까? 너무 빠르신 것 아니에요, 재우씨?”

“하하하. 하하. 하. 그러네요? 제가 너무 앞서나간 거네요. 하하하. 하하.”



해맑게 웃는 그녀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창피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문에 현답이라! 그녀는 분명 머리 좋은 천사이거나 그에 가까운 선하고 곱고 아름다운 여인일 수밖에 없었다, 적에도 나에게는 말이다.



“재우씨, 전 사람을 그만의 특유한 기운과 성품으로 보지 외모로 보지 않아요. 물론 저 같은 사람도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흔히들 잘생겼다 하는 얼굴이나 체형에 대해서는 떠올릴 수 있고 구별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상대가 잘생겼다고 제가 더 열심히 안마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제가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에게 피로한 상태에서 찾아와 제 안마를 받고나서 손님들이 시원해하고 기운을 차리시는 것에서 전 보람을 느껴요. 중요한 건 상대의 기운과 품성이에요. 제 안마를 받고나서 진심으로 고마워해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맑은 기운과 좋은 품성이 느껴지니까요. 사람 간의 만남은, 서로 주고받는 마음은 성적순도 외모순도 아니잖아요? 저에겐 재우씨에게서 느껴지는 맑은 기운과 착한 성품이 중요할 뿐이지, 그 외의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저에겐 재우씨가 앞으로 하실 일들이 중요해요. 거기에 제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구요.”



나의 천사는 너무나 조리 있게, 그것도 차분하고 담백해 피부와 쏙쏙 와 닿도록 말했다. 거기에서는 어떤 꾸밈도 느껴지지 않았고 특별한 의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직 사람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미치도록 굶주려 있던 나에게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녀에게, 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선녀에게 나처럼 미천한 자가 더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말 한 마디로, 웃음 하나로 나를 격려하고 이끌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그 일에 조금이라도 지쳐하면 언제든지 나를 보듬어 줄 텐데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고운 심성과 정말로 해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녀인데 무엇 하나 못할 것인가? 



그래 가보는 거다. 내 삶의 버팀목인 동생의 바람이 들어 있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하늘에서 지상까지 내려온 투명한 바람처럼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을(생각만 해도 피부에 소름이 돋고 오금이 저렸다, 몇 초 후에!) 수경씨의 손길이 녹아 있는 그런 ‘단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할 일이란, 살아서 이 땅에 남겨야 할 것이란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게 허락된 에너지를 모두 다 쏟아 부으리라. 마지막 한 점의 에너지까지 사용해 불꽃처럼 산화할 때까지 전력으로 달려가리라. 그래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게 마련인 법, 육체의 경험과 활력을 잃었다면 지력의 무한함과 자유로움을 얻었다. 잃은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얻은 것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주위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면 되는 것일 뿐이다. 뇌와 육체의 불균형이 나의 운명이라면 그 사용의 선택권은 온전히 내 몫이지 않는가? 



                                            




먼저 제가 아파서 글을 쓰지 못한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꾸준히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분들과 후원자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 덕분에 힘겨운 시간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1주 전에 찍은 MRI 상으로는 암이 재발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것은 나오지 않았고, 각종 수치도 안정되게 나왔습니다.



비록 암세포를 잡았다 하지만, 제 건강은 세월의 평균적인 흐름보다는 빨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건강이 회복되는 것에 맞춰서 운동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허리 상태 때문에 제 기대보다는 빨라진 세월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속도까지 욕심내는 것은 아니지만, 내년에는 지적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실천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나름대로의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들을 직접 뵙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제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미래에 대해 여러분들의 고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지적공동체를 이루려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까닭에, 여러분들에게 저라는 놈을 보여드리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정말 나누고 싶은 얘기들이 너무나 많은데, 제 능력이 모자라 같은 자리에서 쳇바퀴만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미루어두었던 철학책들(하버마스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이 가장 어려웠습니다)을 읽으며 혼재돼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였습니다. 정리된 생각을 글로 옮기기에는 철학적 언어들이 만만치 않아 만나서 말씀드리는 것이 제 건강에 이로울 것 같습니다. 쉽게 쓰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사유의 결과를 글로 옮길 정도의 능력은 안 된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아픈 기간 동안 EBS에서 철학과 과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장하석 교수의 강의를 접하게 된 것은 저에게 또 하나의 도전거리를 제공해주었고, 제가 지금보다도 더 건강해져야 할 이유가 됐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미생'은 쓰다가 접은 '우영워드'라는 소설을 완성해야 할 강한 동기를 제공해주었고, 그래서 저는 더욱더 건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여러분과의 만남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인 지적공동체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토대를 쌓아갈 생각입니다. 사실 저에게 후원액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난하고 힘겨운 삶이 일상이 된 저에게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철학자도, 인격자도, 지성인도 될 수 없는 저는 사람과의 만남에 너무나 굶주려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고, 몇 개의 댓글에도 넘칠 만큼 행복합니다. 물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육체적 고통의 크기는 늘어날 것이고, 동반된 고통에 힘들어하겠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이라 그때에 고민하려 합니다. 당장은 한 편의 글이라도 더 쓰는 것에 집중하고, 19일에 있을 노무현재단의 송년식에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고, '인터스텔라'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으면 바람이 없겠습니다.



제 동생이 생존에 성공했기 때문에 삼성그룹에 대한 비판을 1년 정도 미룰 수밖에 없게 됐지만, 그 덕분에 1년 정도는 마음 편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려고 합니다. 내년 2~3월 중에 여러분과의 첫 번째 만남을 계획할 수 있게 된 것도 상당 부분 동생 덕분입니다. 이 정도면 저도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MRI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입니다. 제게 허락된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서 여러분과의 첫 번째 만남을 추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행복입니다. 제 건강을 걱정해주시고 주인장이 없는 공간에 와서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름 : 신현재

계좌번호 : 농협, 179371ㅡ51ㅡ030814

핸드폰 번호 : 010ㅡ8555ㅡ9264

이메일 : jireem61@daum.net


   



  1. 공수래공수거 2014.12.09 08:41 신고

    결과가 좋으셔서 다행이십니다
    꾸준하게 관리 하시어 건강 회복하시길 빕니다^^

    • 늙은도령 2014.12.09 17:55 신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참교육 2014.12.09 10:07 신고

    다행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09 17:57 신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라 지금은 행복합니다.
      한결같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3. 새싹이아빠 2014.12.09 10:19

    참 다행이네요~ 좋은 글, 좋은 만남 기대합니다^^

    • 늙은도령 2014.12.09 17:58 신고

      네,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응원에 힘입어 건강이 완연한 회복세로 접어들었습니다.

  4. 뉴론7 2014.12.09 10:32 신고

    다행이네요 건강하세요

  5. 길손 2014.12.09 15:54

    더 큰 용기와 사랑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 살아가시길 기원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4.12.09 18:00 신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성원에 힘입어 건강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님도 행복하십시오.

  6. 2014.12.10 00:3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09 17:57 신고

      항상 염려해주셔서 그런가 봅니다.
      제 건강상 몇 달에 한 번씩은 극도로 다운되곤 하는데 그 주기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 일렁바다 2014.12.10 09:14

    한동안 도령님의 글이 올라오질 않아 걱정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다니 정말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고
    소중한 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쁩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10 20:11 신고

      네, 님의 응원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에 신경쓰며 좋은 글로 화답하겠습니다.



인간은 인간이란 종으로서는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는 불평등하게 태어납니다. 우리는 천부인권을 지닌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는 수없이 많은 면에서 불평등하게 태어납니다. 지적 존재로 진화한 인간은 그 지적 작용의 결과 때문에 철학적 개념인 존재론적 차원과 정치적 개념인 민주주의의 차원에서는 평등합니다. 



하지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승격시킨 그 지적 작용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거치면, 개인이 된 인간은 현실과 환경에 따라 출발부터 철저하게 불평등한 존재로 변질됩니다. 부가 쌓여서 축적돼 세습하는 단계가 되면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함(압도적인 권력)을 지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불평등도 쌓여서 축적돼 세습되는 단계에 이르면 어떤 것으로도 타파할 수 없는 견고함(가난의 대물림)을 지니게 됩니다. 두 견고함 사이에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자리합니다.





‘미생’의 장그래는 태생적 불평등의 견고함을 타파하고자 평생을 거쳐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쏟아 붙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출발점에 뿌리내리고 있는 불평등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식과 태도의 차원에서도 불평등을 수용하는 것에 익숙한 장그래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의 정규직마저도 거대한 심연입니다.



장그래는 정규직이라는, 실제 그 자리에 올라서면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그는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다가가면 그만큼 멀어지는 미래의 전당포에 저당 잡힌 사회적 불평등의 포로입니다. 정규직이 목표인 그는 수없이 많은 ‘YES’를 자신에게 주입시키고 또 주입시킵니다.



장그래의 눈에는 오 차장이 아득히 멀게만 보일 것인데, 최 전무에 이르면 하늘보다 더 높아 보일 것입니다. 그런 장그래가 재벌2세인 조현아 부사장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서비스가 회사의 매뉴얼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항공기를 멈추게 만든 조현아의 행태는 어떻게 보일까요?





회사의 경영을 책임진 임원에게도 재벌의 오너와 일족은 제왕이자 왕족이고 성골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이고 생사여탈권을 지닌 현실의 절대자입니다. 마음속으로는 온갖 욕을 퍼붓고 빈정거린다 한들 현실에서의 오너와 일족은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거리에 있는 태생이 다른 존재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철저한 위계가 정해진 경로에 따라 말단 계약직까지 내려오면 둘 사이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자리하게 됩니다. 만일 장그래가 대한항공의 계약직 사원이고, 기내 서비스에 투입됐으며, 오너의 딸인 부사장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담당이었다면 그는 어떻게 됐을까요?



인간이란 종으로서의 장그래와 조현아는 성별만 다른 평등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장그래와 조현아 사이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그래는 항공기에서 내리자마자 계약이 해지됐을 것이고, 조현아는 늘 그렇듯 목적지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언론의 집중포화에 노출된 조현아의 ‘슈퍼갑질’은 정치적 판단(절대 사법적 판단이 아니다)에 따라 최소한의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당분간 조현아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고, 대한항공의 서비스는 더욱 강화돼 직원들을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해당 스튜어디스는 알아서 사표를 낼 것이고, 그녀의 상사들과 기장과 부기장에게는 불이익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정치적 판단이 제대로 내려지지 않는 한, 아울러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런 불평등과 부조리를 정치가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한 딱 거기까지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과 《정치의 약속》에서 말했듯,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올바른 정치에 의해 평등을 향해 나아갑니다. 계약직인 장그래의 눈으로 본 조현아는 까마득한 높이에 자리한 존재일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존재로서의 장그래의 눈으로 본 조현아는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피고인에 불과합니다.





사회적 관계에 의해 견고해진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미래의 세대까지 넘겨주지 않는 것, 그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대한한공 조현아 부사장의 ‘슈퍼갑질’을 뉴스를 통해 접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생’의 장그래와 그 보다 더 열악한 '카트'의 주인공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불평등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줄푸세'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현아의 '슈퍼갑질'에 정규직의 임금을 삭감하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친재벌적 정책이 오버랩되는 것은 저만의 과잉반응일까요? 



학교 주변에 호텔을 건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려는 법률이 대한항공을 위한 ‘생애 맞춤형 재벌복지’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땅콩 부사장' 조현아의 ‘슈퍼갑질’이 더욱 불쾌하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과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진정한 자유와 다양한 선택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09 08:38 신고

    권력은 사용연한이 있고 몇년마다 평가를 받지만
    재벌은 평가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합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 권력보다 그 집단에서는
    제왕적으로 군림합니다

    차제에 이런것도 없어질수 있도록 해야됩니다

    • 늙은도령 2014.12.09 17:53 신고

      정치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려면 정치가 의회를 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통해 강제함으로써 이룰 수 있습니다.
      기업이란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조직입니다.
      경제민주화는 그런 조직의 논리를 민주화하는 것이고, 그럴 때만이 조연아의 땅콩 회항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2. 박지숙 2014.12.09 09:30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우리나라가 갈수록 골품제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항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가는 사회 체제에 반기를 들지 않고 수용을 하고 있는 분위기니 말입니다.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올바른 정치에 의해 평등을 향해 나아갑니다'란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오는군요.

    • 늙은도령 2014.12.09 17:54 신고

      네, 정치의 역할이 매우 필요합니다.
      철학이 분명한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면 인간은 태생에 따른 불평등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경제민주화도 정치가 하는 것이지 기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동의합니다 2014.12.12 01:31

    오래 전 읽었던 명상서적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노예제도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말에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 제도가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돈이다라는 말에서 고개가 끄덕여 지더군요.
    요 며칠 동안 그 말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이제는 정말 돈이면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군요.
    그리고 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올바른 정치의 힘이다라는 말씀,
    정말 크게 동의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살림을 맡아서 제대로 일을 하는
    정치인을 뽑는 일에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 글 기대합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삶의 희열에 빠져, 세포 하나하나마다 전달되는 에너지가 너무 충만해서 사정없이 떨리고 절제되지 음성으로 물었다. 명경지수처럼 잔잔했던 마음의 수면에 거대한 격랑이 일었고 그 파문은 공간을 건너뛰어 바다와 하늘에까지 이르러 천상의 음악처럼 넘실거렸다. 그 위로 날아다니는 것이 새인지 구름인지 천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이던 간에 동생이 원하는 그 이상으로 만들어 내리라. 나는 처음 내 힘으로 일어서 문밖으로 나서는 아이처럼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동생의 답을 기다렸다.



“형,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은 수천 년간 형성돼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진 이 세상의 지배 시스템을 일거에 깨드릴 수 있는 독보적인 프로그램이야. 난 말이야, 대다수의 난장이들에게는 극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맞서려면 티끌 하나 끼어들지 못하는 순수 선과 궁극의 의지를 지닌 초인 같은 사람이나 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 쌓이고 더해져 내일이 되는 때 묻고 얼룩진 일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의 자그마한 버팀목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존재의 모든 가치가 교환 가능한 현재의 돈과 지위, 권력으로만 평가되는 이 불의하고 불모 한 시대에서 절대다수의 난장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균적인 선과 보편적인 정의로 대변되고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 한 주, 한 달, 길게는 일 년 단위의 실존이, 그 초라하지만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삶이 마지노선이 아닐까 생각해. 그들이 원하는 건 누군가 나눌 수 있는 풍족함이 아니라 평균적인 수준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들은 선을 논하기 전에 하루를 살아야 하고, 정의를 부르짖기 전에 또 다른 하루를 버텨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조건 맞서라고, 연대해서 싸우라고 할 수도 없었어.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까지도 무력해지는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난 고민하고 분노하고 생각하고 모색했어. 그들의 거대한 지배 시스템에 맞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그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어. 그들과 맞서려면..”

“니가 고민하고 모색한 게 대다수의 난장이들이 지배 시스템에 맞설 수 있도록 그들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거냐?”



열띤 음성으로 말하는 동생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들어간 것이 이번에도 몇 초의 시간차를 초래해 일부의 말은 뒤섞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동생의 말을 끝까지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미친 듯이 날뛰는 심장의 약동과 영혼의 떨림을 주체할 방법도 담아둘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맞아 형. 절대다수의 난장이들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 존재하는 모든 지배적 프로그램을 아래에 두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생각하고 성찰하며 소통하고 연대하는, 개인적 인격의 완성을 위해 일생으로써의 삶을 창출해가는, 어떤 사이트를 드나들어도 흔적도 남지 않아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의 비밀을 낱낱이 밝혀내는, 합당하지 못한 어떤 기득권을 내세워 정치경제적 불평등을 강요할 수 없는, 그래서 내가 작성한 「디지털 묵시록」 같은 세상이 절대 도래하지 못하도록 단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줘. 이 세상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으니까.”



‘형밖에 없으니까, 형밖에 없으니까, 형밖에 없으니까.’



동생은 계속해서 자신이 생각해둔 프로그램에 대해 말해주었지만 내 뇌리 속으로는 이 말만 수없이 되풀이 됐다. 동생의 기대가 내 온 존재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동생과의 대화가 1시간 정도 더 흐르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탈진하기에 이르렀다. 거의 몇 주치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된 오늘의 얘기를 마무리 짖지 않으면 나에게는 내일이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코의 실핏줄 압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봐서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다간 쌍코피가.. 제기랄!



“재영아, 나도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어. 내가 먼저 꺼낼 용기는 없었는데, 네가 용기를 내 줬으니 너무 고마워. 나 말이야, 지금 이 순간처럼 살아 있다는 것이 기쁜 적이 없었어. 내가 너에 대해 갖고 있던 부채의식을, 삶의 제약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싶었기 때문에..”

“형, 그런 말이 어딨어. 형의 삶이 내 삶이고, 내 삶이 형의 삶인데.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면서 둘이었어.”

“허허, 그런가? 우리가 둘이면서 하나였다고?”

“그럼. 형은 나의 영웅이었어. 나는 형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놈으로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았을 거야. 세상에 대한 특별한 의식도 없이, 세상이 하라는 대로 그저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살았을 거야. 난 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다가갈 수 있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어. 형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축복이자 영광이었어. 별로 머리가 좋지도 생각이 깊지도 않았던 나에게 형은 삶과 사회,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내 이성과 꿈의 한계를 넓혀주었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알려주었어. 그것은 내가 만난 각 분야의 대가들도 결코 해줄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아는 한, 형은 아인슈타인과 리처드 파인만을 묶은 그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과학자야. 그래서 형은 내 스승이었고 안내자였고 영혼의 동반자였으며 우상이었어. 결국 형은 나의 모든 것이었어.”



동생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고 두 눈은 맑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동생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고 거의 대부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순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동생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아서 나는 그런 균형적인 모습이, 몇 시간이고 일하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체력이, 그 보편적인 신진대사가 너무나 부럽고 조금이라도 나눠받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헌데, 동생은 육체를 희생시켜 뇌만 발달하는 지랄 맞은 나의 삶이 자신의 전부였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런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헷갈렸고 어지러웠다, 체력이 고갈되어서도 그렇고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동생에게 내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에서도 그렇고. 아무튼 누워서 보는 방의 천장과 벽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미의 노래처럼.



“야, 너무 비행기 태우는 것 아니야? 너무 어지러워 속이 다 울렁거린다. 미치도록 피곤하고. 아이고 힘들어!”



나는 그렇게 너무나 많은 에너지의 사용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달했는데 동생은 아직도 못다 한 말이 있는지 빠르게 몇 마디를 더했다. 동생으로써는 이런 얘기를 다시 꺼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리라. 한 번 작심하면 반드시 하고야 마는 동생의 고집을 생각한다면 더욱 더 그렇고.



“형이 2년 전부터 유난히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뇌과학, 생명과학, 정보물리학, 열역학, 양자역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에 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을 때, 형이 뭔가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것을 연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의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특히 지난 1년간은 내가 보기에 형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의욕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느껴졌거든. 그래서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나오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 과정에서 나도 힘들게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어차피 형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면, 차라리 내가 고민했던 것을 말해주어서, 형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으로 이놈의 세상을 뿌리부터 뒤집어 버리고 싶었어. 너무 허황된 생각이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어느 정도 확신했어. 지금의 형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거지. 그리고 마침내 오늘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거야.”



말을 마친 동생이 한껏 고양된 표정과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생은 분명 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고맙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나라는 놈이 동생에게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죽을 것, 이왕이면 날 끌어들여 화끈하게 한 판 사고나 치자, 뭐 그런 생각이구나, 너? 맞지 내 말이?”

“맞아, 형. 한 번 화끈하게 사고 치자는 거야! 그리고.. 미안해. 너무 너무.”



동생도 자신의 부탁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안함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생을 부모처럼 돌봐주었으면서도 단 한 번의 부탁을 하면서(그게 좀 엄청나기는 하다) 죄인처럼 괴로워하는 동생이 나는 오히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나는 이렇게 기쁘고 희열에 넘쳐 있건만.



“됐어, 재영아. 네가 부탁한 프로그램이라면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아. 내가 그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너 때문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과학자 중에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될 수 있을 테니까. 좋아, 한 번 사고 쳐 보자!”

“OK이야? 정말로?”

“당근이지! 싸나이 한 번 말한 것,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지. 안 그래, 재영아?”

“그럼, 그래야지. 그래야 형이고 나 아니겠어?”

“하하하. 그래, 그게 우리 형제지. 재영아, 나 반드시 니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낼게. 얼마나 걸릴지 확답할 수 없지만 믿고 기다려봐. 사실 내가 준비해온 것도 있으니, 조금만 수정하면 이른 시간 안에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정말이야? 역시 형도 뭔가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있었구나. 내 그럴 줄 알았어. 좋았어! 그럼 형, 그 역사적인 날을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하자. 파이팅 김재우!”

“허허, 녀석도..”



동생에 대한 덜어낼 수 없는 고마움을 담은 나의 진심 어린 격려와, 어쩌면 자신의 부탁 때문에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갈지도 모를 동생의 안타까운 격려가 함께 어우러지자 그것은 마치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들이 산상에서 불렀던 장엄한 노래와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 비장한 아름다움에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려던 달빛이 화들짝 놀라 형광등 불빛처럼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무려 51분이나) 계속됐지만 나에게 그것은 월드컵 결승전 후반(인저리 타임, 6분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51분이다)을 마음껏 뛰어다닌 일종의 해방구였다. 살아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천상의 선물이었고 끈질기게 나를 따라와 괴롭히는 불균형한 일상과의 결연을 의미했다. 



물론 더 이상 동생의 얘기를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해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전율과 흥분에 너무나 행복해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였다(연신 해댔던 하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기절하듯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꿈 없는 잠이 무려 28시간이나 계속됐다. 헌데 에너지 고갈이 장난이 아니어서 잠의 깊이가 너무나 깊고 달콤했는지, 누군가 나를 부르는 작고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아스라이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애타게 찾는 그런 느낌의 소리가 나의 미약한 청각을, 앙상한 어깨를, 약동하는 영혼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적이 어제처럼 연이어 일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에 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법치주의입니다. 박 대통령이 몽테스키외가 정립한 삼권분립에 의한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정치는 국회의 몫이라는 발언에서도 수없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야당을 향해 특정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사람이 대통령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어서 법치주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박 대통령은 유독 자신과 측근이 연루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법치주의의 시발점인 검찰에게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발언을 남발합니다. 그것도 사건의 당사자들이자 받아쓰기에 바쁜 청와대 수석들과의 폐쇄된 회의를 이용해서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수석비서관회의 석상에서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라고 단정했습니다. 세계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로 인해 정윤회 문건의 내용이 찌라시 수준의 정보인지, 사실인지,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검찰에 의해 밝혀질 것인데 대통령은 찌라시라고 단정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발 빠르게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헤 추가 폭로를 막는데 성공한 것도 모자라, 사실상의 원고인 박 대통령이 검찰이 밝혀야 할 문건의 진실 여부를 단정해버리면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는다 한들 국민이 믿을 리도 없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주장하는 법치주의도 불가능해집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법치주의는 제왕적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정윤회 문건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소 중 소추가 면죄되는 대통령의 특권을 넘어서고,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발언까지 더하면 탄핵의 요건이 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연관된 정윤회 문건 관련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될 동안 대통령은 일체의 언급을 자제해야 합니다.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발언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자 본질이며, 민주주의의 최소치인 삼권분립의 정신이자, 대통령이 반드시 지키고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예외상황이어서 국법이 정지되는 독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 이상,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된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헌법, 법률은 물론 분명하게 형성된 여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정윤회 문건이 정말로 찌라시라면 몇 주면 그 진위가 가려질 수 있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얼굴 붉히며 성난 표정으로 찌라시 운운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건의 내용이 거짓말이니 명예훼손에 대한 내용 확인보다 문건 유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검찰에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도 안 됩니다. 





세계일보에 대한 압수수색도 그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합당하다면 진행될 수 있듯이(세계일보의 추가 보도와 압수수색에 대한 저항은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별개의 사안이라 여기서 다룰 일은 아니다), 대통령도 검찰로 수사가 넘어갔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일부 세력이 국정을 농단하고 국기를 문란시킨 것이라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처럼 바다 깊은 곳에 진실이 수장돼 있어서 몇 년이 걸려도 그 진위를 밝힐 수 없는 것도 아니어서 검찰 수사를 조금만 기다리면 백일하에 드러날 사안입니다. 검찰 수사에 정치적 입김이나 정치적 해석이 작용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며, 국민적 불신과 의혹을 해소하려면 무조건 그래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법치주의란 대통령은 되고, 그 밖의 나머지는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헌법 제1조를 개정하지 않는 이상,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박 대통령이 여당의 지도부와 의원들을 호출해 찌라시를 또다시 강조하고, 새누리당이 그렇게도 바꾸고 싶어 하는 광복절이 건국절이 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4.12.08 07:47 신고

    전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기네들 빼고 누가 이 말을 곧이 듣겠습니까?
    대통령 한 사람 잘 못 뽑아 나라가 전제군주구이 된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08 18:03 신고

      막판에 몰렸기 때문에 무슨 짓이든 하겠지요.
      청와대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무슨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겠습니다.
      물러나는 게 답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08 08:51 신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 늙은도령 2014.12.08 18:05 신고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등잔 밑을 아예 보지도 않아요.
      청와대 내에서조차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이로서 분명해졌습니다.
      박 대통령이 문제입니다.

  3. 천추 2014.12.08 10:45 신고

    공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4. 봉어 2014.12.08 17:00

    대통령이 민주주의 기본인 볍을 좌지 우지 하며 짗누르고있어요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때입니다

    글 잘보고가요

    • 늙은도령 2014.12.08 18:05 신고

      필요하다면 혁명도 해야지요.
      이런 상태로 더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입사 초반에는 호봉제, 중반에는 성과급제, 후반에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복합 임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는 또한 ‘성과가 낮은 정규직에게는 직업 훈련 등을 거쳐 구제의 기회를 주되, 성과 개선이 없으면 해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만들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관계 부처에 따르면 ‘첫 입사 10년 차까지는 호봉제를, 관리직급인 11~20년 차부터는 직무·성과급제를, 정년퇴직을 앞둔 21년 차부터는 임금피크제를 각각 적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 제도를 공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의 '2015년 경제 정책 방향'은 ‘복합 임금제’를 통해 ‘노동시장의 임금 경직성 완화와 해고 요건 완화’를 목표로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복합 임금제’와 '해고 요건 완화'는 정부가 직접 나서 정규직을 지금보다 더욱 쥐어짜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열악하기 그지없는 비정규직 해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공기업을 대상으로 이런 신자유주의적 관치를 하겠다면 그것까지 말릴 방법은 없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힘에 부치자 이번에는 공기업을 민간기업과 똑같이 효율성과 생산성에 목메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니 공무원들도 이제는 ‘미생의 장그래’처럼 지옥을 경험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공기업에 고용된 비정규직들이 월급이 올라 활짝 웃는 일이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정부의 권한이니 가타부타 얘기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얘기한다고 들을 정부도 아니고,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똘똘 뭉쳐서 정부에 대항하니 그들의 전투력을 믿을 밖에요. 공무원 연금 개혁은 찬성하는 필자이지만 공기업을 민간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도록 만드는 것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저항에 응원의 박수는 보내드립니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절대다수가 국민인 직원들의 임금과 해고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불통의 통치를 견지하는 현 정부는 유별날 정도로 대기업과의 소통에는 놀라운 능력과 서비스 정신을 보여줍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대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고, 보다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겠다니 대기업의 오너들과 경영진 및 대주주들은 덩실덩실 춤추며 만세를 부를 판입니다. 실효세율이 형편 없어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쌓아둘 수 있었던 대기업에게 추가적인 사내유보금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모양입니다. 



정부의 도움으로 인건비가 줄어드는 대기업이 신규로 직원을 더 뽑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비정규직의 월급과 복지가 향상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대기업의 편의만 신경쓰는 현 정부의 행태는 부와 기회를 상위 1%에게 몰아주고 세습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신자유주의의 정수를 보는 듯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세금을 늘릴 수 있는 누진적 조세정의와 갑을정 간의 공정거래, 비정규직에 대한 복지확대 등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비정상적 방법을 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규직의 해고가 쉬워지면 늘어가는 것은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미래세대의 소득을 낮추고, 노인에게 주어질 연금의 치명적 부실로 이어집니다. 



규제가 암덩어리라며 무지막지한 외과수술을 단행하는 것도 모자라, 정규직을 희생시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친기업적 성향을 넘어, 극단의 이분법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적용하는 분열과 반목의 통치에 다름 아닙니다. 설사 정규직에서 뺏은 것을 비정규직에 넘겨준다고 해도 하위 90%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부의 재분배라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상위 10%와의 불평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습니다.         

  

국민을 상위 10%와 하위 90%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하위 90%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직종에 따라, 기업에 따라, 직원에 따라, 환경에 따라,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직원의 임금과 인사 제도를 정부가 개입해 무조건 오너와 경영진 및 대주주에게 유리하도록 손보겠다는 발상은 전체주의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비정상의 극치입니다. 





공산주의보다 무서운 것이 국가 전체를 관치하는 전체주의라는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일방적 관치가 끝을 모르고 넓혀지는 것이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판박이에 다름 아니었던 박정희 시대의 유신독재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대체 박근혜 정부는 국민에게 모든 권력이 있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의 통치방식을 21세기 버전으로 바꾸어 극단적 관치로 밀어붙이면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압축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시대착오적 발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진 자본주의 세상에서 임금과 해고의 문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입니다. 스스로 체제의 바깥에서 살겠다며 모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임금과 해고의 문제는 정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닙니다. 전체주의에 준하는 독재도 국민의 동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듯이, 국민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정부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연관돼 있는 임금과 해고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현재의 노사와 미래세대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의 정부에 의해 일방적이며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의 목표가 경제위기를 핑계로 대한민국을 상위 10%를 넘어 1%의 수중으로 넘겨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하위 90%의 하향평준화가 목표가 아니라면, '복합 임금제'와 '해고 요건의 완화'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합니다.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를 넘어 세습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국민은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08 08:49 신고

    공산주의 사고 방식이군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는 자체가..

    • 늙은도령 2014.12.08 18:18 신고

      공산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입니다.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공산주의가 제대로 시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모두 다 유사 공산주의에 불과할 뿐,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예수의 13번째 사도인 바울이 이끌었던 카돌릭의 초기 공동체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만민공동회가 공산주의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보여주었고요.
      공산주의를 통해 정치를 바라보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부의 재분배적인 면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2. 소피스트 지니 2014.12.20 15:28 신고

    비정규직 자체가 문제인데 문제의 원인을 다른데에서 찾으니 해결이 안되는거지요.
    그 말을 듣지 않는 현 정부는 역시 불통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27 01:57 신고

      불통에다 무식하기까지 합니다.
      현실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없습니다.

  3. 동의합니다 2014.12.28 08:12

    정말 이 사람이 대통령이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인지 정말 앞날이 두려운 요즘이군요.

    예전에 12.12로 군사정권을 다시 이어간 전두환은 스스로가 배운 지식이 없다며
    경제학자들에게 나라의 경제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알수 없으나)
    이 사람의 무식에서 비롯되는 악질적인 제도 개악은 대체 어디까지 갈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비록 주변에 서민의 삶의 실상을 제대로 해 주는 인간들이 없어서 제대로 모른다고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런 사람이 나라의 살림을의 총책을 맡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도 우리지만 우리의 후세의 고통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참담한 심정입니다.

    제발 하루라도 빨리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어느 누구 아닌 모두가 미생인 우리 서민들과 국민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4. wooju 2015.01.25 15:08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서 좋은 글들을 종종 보는사람인데요...
    우연히 님의 글을 무단전재한 듯한 언론사 기사를 봐서요... 제보 드릴려구요.
    http://www.sisabreak.com/news/articleView.html?idxno=31527
    여기서 한 번 보세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 제가 다 화가나네요.

    • 늙은도령 2015.01.26 00:30 신고

      알겠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서 보고 왔는데 정말 어이없네요.
      적어도 3편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할지 고민해서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하나의 프로그램.”

“하나의 프로그램?”

“응, 하나의 프로그램. 너무나 완벽해 그 어떤 것도 상대가 되지 않는, 그런 단 하나의 프로그램!”



동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 나의 반응을 기다리던 동생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달아오른 나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호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펴기 쉽게 접은 세 장의 A4용지였다. 동생은 내 눈앞에 그 용지를 펼쳐보였다. 동생은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내 상태를 고려해 문자 크기를 13 정도로 한 것 같았다.



“형, 먼저 이것을 읽어봐.”



나는 동생이 펼친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디지털 묵시록」이란 제목 하에 적혀 있는 내용이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암울하기 짝이 없는 그의 생각이었다. 특히 동생은 방송 환경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완전 전환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표명하곤 했었다. 동생은 디지털 기술에 내재된 표피적이고 파편적이어서 필연적으로 제어에 유리한 본질적 성향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생각이 이 정도까지 부정적인지는 알지 못했다. 고막을 울리는 소리는 이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함성으로 커졌고 심장박동은 무려 평균적인 사람의 1/3에 해당할 만큼 빨라졌다. 나로서는 치명적인 고혈압 상태로 접어들기 직전의 위험한 상황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만들어낸 총화이자 정수인, 스크린(TV, PC, 노트북, 스마트폰, 테블릿PC)을 보거나 접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란 없다. 스크린 하나 없이 살아야 할 만큼 열악한 가난과 절대적 빈곤도 없다. 스크린의 누적적이고 지속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지지 않는 생각이나 인식도 없다. 스크린이 담지 못하는 사실이나 사건, 현상과 환상도 없다. 스크린에 올리지 못할 사소한 일상이란 없고 업데이트 돼 수정되지 않는 지식과 이상도 없다. 스크린에 영향 받지 않는 단절된 시간이나 조각나지 않는 공간이란 없다. 스크린에 의해 변형되어 왜곡되지 않는 역사나 문화도 없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평가하며 상상하고 집착한다. 각자의 감정을 저장하고 반응을 공유하며, 개개의 경험을 링크하고 비슷한 생각을 검색하며, 편집된 주장을 전송하거나 수신 받는다. 우리는 세상이 더 과학적이 될수록 생각은 더 편협해지고 반응은 더 기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추상적 사고가 무의식적 반응과 행위에 갇혀 있는 동안 끊임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디지털 유혹만을 유령처럼 찾아다닌다. 거실과 식탁에서도, 길을 걷거나 운전하면서도, 버스와 지하철, 고속전철과 비행기 안에서도, 일을 하거나 대화하면서도, 신에게 죄를 고백하거나 사랑을 나누면서도 우리는 스크린에 앞에서 점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디지털 스크린은 거대한 쌍방향의 네트워크이자 만능의 검색엔진으로 무장한 광고의 제국이다. 모든 감각과 환상, 접촉이 배제된 디지털 사정과 오르가슴의 경연장이자 소프트 파워에 대한 승자독식의 유토피아다. 스크린이 전달하는 일체의 메시지가 사실이며 실재이고 믿음이니, 이는 곧 21세기의 복음이자 전체주의의 창시자 플라톤의 환생이다. 따라서 스크린 자체가 모든 변화를 부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국가이며 사회이고 가족이며 나 자신이다. 우리는 단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열정,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을 업로드 하거나 다운로드 하기만 하면 된다. 스크린 안에서의 존재란 욕망의 투영이며 상징이고, 실존이란 배설의 터치이며 감각의 클릭이다.



스크린에 종속된 오감은 욕구를 충족할수록 예민해지고, 신경은 정보를 전달할수록 날카로워지며, 근육과 관절은 명령을 실행할수록 경직되어간다. 예민해진 감각은 신경을 건너 띠려 하고, 날카로워진 신경은 근육과 관절에서 자유로워지려 하며, 경직된 근육과 관절은 감각과 신경을 행위의 원천에서 배제하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십억 년에 걸친 누적적 자연선택이 이룩한 진화의 정수인 뇌의 기능마저 저하돼 서서히 스크린에 의해 정복돼 개개인의 생각과 감정, 기억과 인격마저 디지털 정보의 누적적 결정체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스크린 세계의 첫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진 이기적 유전자가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경험과 생각에 연결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실제 환경과 혼동을 일으키면, 이는 기억의 혼돈으로 이어져 뇌의 퇴행을 초래한다. 이런 기억 작업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에 의해서 기억이 장기적 기억으로 강화될 때마다 이 강화돼 해부학적 변화에 이르게 되면 이는 곧 관련 유전자에 기록된다. 이렇게 변형된 유전자가 복사돼 후대에 전달되고 각 세대의 스크린 경험이 축적되면 인간의 뇌는 지금까지의 진화의 과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신경회로를 형성해 다양한 사고와 개인적 경험에 의한 기억을 저장하는 유전자마저 즉각적이고 표피적인 작업 기억만 강화시키게 되면 마침내 인간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그 지겨운 사고의 수고에서 해방되리라. 인간 진화의 정수이며 미래의 개척자인 뇌도 신경세포인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기ㆍ화학적 반응의 복잡한 과정에 드는 수많은 에너지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통합적 인지과정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는 말초적 자극에만 반응하리라.



따라서 스크린에 연결되지 않는 자, 최후의 타인으로 남아 소외되고 잊혀 저 스스로 소멸되리라.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니, 스크린을 통해 맛과 냄새와 은밀한 촉감까지 전달되는 날에 인류는 디지털 세계에서 완전한 통일을 이루리라. 그 질긴 인류의 염원이 실현되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리모트컨트롤이 만들어내는 분열되고 단절된 환상의 감옥에서 한껏 자유로우며, 정보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고, 빛의 속도로 이어지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이곳저곳에 분산된 나의 일부를 배설물처럼 남기면 된다. 타인과의 깊은 접촉은 그 자체로 범죄이니 공기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흘러서는 전자처럼 쾌속 질주할 일이니, 우리는 자아를 분열하고 해체하면서 전체의 조각으로써 통합된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질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이 메시지와 이미지의 홍수와 휩쓸려 파편화되고 종교와 정치, 사회적 가치마저 상징화되면 삶과 메시지와 이미지는 삼위일체의 성역으로 들어선다.



이런 신화 창조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온라인을 유지하고 각종 알림 기능과 노출과 관음적 본능, 폭력적 성향에 충실할 일이다. 서로 교감하는 자에겐 무한의 쾌락이 주어질 것이니, 모든 메시지와 이미지에 부착된 링크를 따라 이동하고 가상의 버튼과 아이콘을 누르고 광고를 클릭하라.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리니, 광고의 노출과 팝업의 습격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약간의 피로와 산만함에 따르는 에너지 손실은 최소의 생각으로 최대의 쾌락을 얻는 기회비용이니, 이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상업적 정신의 정화이자 영원불멸의 진리이다. 무료로 주어지는 것에 복종과 권력이 교차하니, 최첨단 디지털 영상과 무한대의 하이퍼텍스트와 멀티태스킹의 영광은 지속 가능한 유일한 영역에 들리라.



이제 단순하여 즐겁지 아니한 것은 생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깊은 사유와 차가운 성찰이 떠난 자리에 표피적 재미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오락이 들어서리니, 인류의 모든 유산이 한낱 재밋거리로 전락하거나 퇴행된 신화로 부활하리라. 상식과 이성이란 먼지 가득한 박물관 창고나 공동묘지에 묻힐 것이며, 파편적 재미가 만물의 척도에 오르리니, 오직 개념 있고 쿨 한 것들만 번성하리라. 그리하여 세상 자체가 오락이 되는 날, 스크린 앞에 새로운 것도 영원한 것도 존재하지 못하리라. 오직 스크린만이 비선형적 진화의 끝에 이를 것이며, 디지털 통로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천사와 악마처럼 좌우에 거느린 채, 불멸의 권좌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들을 지배하여 영속하리라.



생각하는 자, 지워질 것이다.

의심하는 자, 삭제될 것이다.

판단하는 자, 차단될 것이다.

분노하는 자, 퇴출될 것이다.

거부하는 자, 폐쇄될 것이다.

도전하는 자, 해체될 것이다.

투쟁하는 자, 폐기될 것이다.



비약하라, 생각의 연쇄와 사고의 비선형적 통합에서 나오는 성찰을.

벗어나라, 삶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의 차이가 주는 번뇌와 소외에서.

생략하라, 이성과 경험을 통해 싹을 틔워 성찰과 창의에 의해 꽃을 피우는 과정의 수고를.

만끽하라, 우연이나 기회의 차별이 가져다 준 달콤한 결실과 비교 우위의 카타르시스를.

반복하라, 위의 4가지 정언 명령이 요구하는 것들이 나와 세상을 대체하는 그날까지.』



나는 수려한 문장으로 디지털 세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일방적일 만큼 암울하고 부정적이게 그려낸 동생의 글을 읽고 나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뇌와 육체에 제공되는 에너지의 불균형 때문에 일반적 삶을 거의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나는, 인간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서만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디지털 세계만이 삶의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았고 동생은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않는가? 헌데 그런 동생이, 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동생이 디지털 세계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한 글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을 위해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니, 어찌 이를 조금이라도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동생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하는데 뭐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동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고막을 찢을 듯 맹렬한 기세로 울려대던 소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생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디지털 묵시록」의 내용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어차피 한 번 읽었으니 다 기억 속에 저장됐고, 그것을 검색하는 시간이 순식간에 이뤄지니, 이를 잘 알고 있는 동생이 뭔가 말을 꺼낼 것이었다. 난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동생의 의도를 굳이 파악하려고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심장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뛰었다. 물론 거의 20년 동안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터질 듯이 뛰는 지금의 심장박동이 평균적인 속도인지, 그것보다 빠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지만.



“형,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걱정한 것처럼 나도 디지털 세계의 미래를 결코 밝게 보지는 않아. 언젠가 형이 말했잖아, 컴퓨터와 인터넷이 너무 허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온갖 바이러스와 악성프로그램이 범람하고 해킹이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쉬운 거라고. 따라서 빅데이터와 데이터 마이닝, 인식 알고리즘 등을 통해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디지털 세계의 절대 강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며 그 알고리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설명해줬잖아.”



그랬다. 15세 이후로 디지털 세상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나는 시도 없이 찾아오는 컴퓨터 바이러스와 악성코드, 해킹 등에 극도로 성질이 나 아예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는 한 마디로 ‘헐!’ 두 마디로 하면 ‘헐, 어이없음!’이었다. 컴퓨터는 정보물리학적 개념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내장된 펌웨어와 반도체를 포함해 전기전자와 기계공학적 측면만 강조한 디지털 장난감이었다. MS의 브라우저를 포함해 각종 소프트웨어들도 오류가 많았고 작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른 프로그램들과 충돌도 심했으며, 쉽게 해킹에 노출되는 병폐를 갖고 있는 코드들의 범벅이었다. 쉽게 얘기하면 컴퓨터라고 하는 것이 제조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고장이 잘 나도록 만들어진 지독히 상업적인 제품에 불과했다. 



인터넷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통제의 편리성을 위해 미국의 국방부에서 뚝딱뚝딱 만든 것이었기에 실로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느낀 그때의 실망감이란 어떤 말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 허망함에 컴퓨터과 인터넷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던 어린 동생을 붙들고 얼마나 많은 분노와 실망을 표하고 온갖 설레발을 떨었던가. 어쩌면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부정적 생각이 그때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형이 형 컴퓨터는 물론 내 노트북까지 슈퍼컴으로 만들어주었잖아. 그것도 공부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그것도 그랬다. 나는 그저 실망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내 컴퓨터와 동생의 노트북을 압도적인 능력을 보유한 슈퍼 디지털기기로 바꿔버렸다. 내 PC와 동생의 노트북을 슈퍼컴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정보물리학 이론들을 이용해 모든 연산이 동시 다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산기능을 병렬화시킨 블랙박스 펌웨어를 만들어 기존의 것을 대체했다. 아울러 프로그램 코드의 형태도 개방형(어떤 혈액형에도 개방된 O형처럼)으로 만들어 새로운 보조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때도 구성코드 간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공지능형 방식을 차용했다. 그 때문에 하드 디스크 용량에 상관없이 수많은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었으며, 온갖 연산을 위한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되도록 만들었다. 내 컴퓨터는 조립품이었고 동생의 노트북은 최소 용량의 제품이었지만 연산능력과 속도 면에서 빛의 속도를 방불케 했다. 어떤 동영상도, 멀티태스킹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쯤 되면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부정적 생각이 더욱 강화됐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잖아? 형이 모든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치료할 수 있는 슈퍼 바이러스 백신도 만들었잖아. 요건 조금 시간이 덜 걸려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잖아?”



아, 그래! 그것도 또 그랬다. 본질적으로 컴퓨터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는 기본적인 코드의 변형임으로 모든 변종 코드를 양자 에뮬레이터 블랙박스로 자동 연결시켜 내가 만든 펌웨어와 코드 배열이 다른 것들을 자동 삭제하는 기능만 첨가하면 만사 OK였다. 심지어 바이러스와 악성코드의 성지인 포르노 영상이나 스팸메일이라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컴퓨터에 가해지는 물리적 한계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까지야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무튼 컴퓨터 내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하나의 코드 방식만 취하게 하고 변종은 양자 에뮬레이터 블랙박스로 보내면 어떤 바이러스나 악성코드가 덤벼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비관적인 전망은 나 때문인 게 분명했다.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키워나갔어. 그것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할 지도 모르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생각의 형태가 구체화될 수 있도록 일단 나부터 변화시켜 나갔어. 어떤 물리적 한계에 부딪쳐도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만드는 것이 그 처음이었어. 다음은 지적 능력을 형의 발꿈치 정도라도 따라가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었어. 내가 부모님이 남겨 주신 책들을 형에게 읽어주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



동생은 잠시 말을 끊고 나를 살폈다. 내가 「디지털 묵시록」이란 자신의 글과 실로 충격적인 말(당시 나는 동생의 말에 심한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하는 상태였다)에 어떤 의견을 표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충격 속에서도 동생의 생각을 더 들어야만 했다. 디지털 세상에 대한 동생의 전망이 너무나 절망적이고 암울한 것이 나 때문이라고 해도 나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니 나는 섣불리 답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나를 자극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로서는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미증유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먼저 형한테 너무 많이 미안하고 형이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울 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지만 나는 말이야 형, 사람들이 갈수록 단편적이고 이기적이며 천박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사람 간의 관계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계산적이며 물질적 이해관계로 좁아질 때마다, 나 같은 젊은이들이 갈수록 무력해지고 당장의 편의와 이익에만 매달리도록 세상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갈 때마다, 그에 굴복한 대학생들이 자신만 살자고 죽도록 스펙 경쟁에 매달리거나, 스스로 부딪쳐 인생의 답을 찾거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보듬고 불만을 들어줄 몇몇 멘토에 열광하는 것을 볼 때마다, 심지어 그들의 강의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힘겨운 처지를 들어달라고, 조금이라도 좋으니 공감해달라고 애원하고 울부짖어도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기득권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분명 시스템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는 나약함과 패배의식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는, 그래서 불의함과 불평등이 만연해가는 이 땅에서 수많은 약자들이 벼랑 끝까지 밀려나는 것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갈수록 가벼워지는 존재의 허망함을 느끼곤 해. 지배 시스템이 이런데,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아픈 것인데, 그들이 하루하루의 삶에 휘둘려 세상의 잘못을 직시하지 못하게, 연대해 싸워보지도 못하게 만든 지배 시스템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수없이 공부하고 생각했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보고 전문가와 재야 지식인까지 모두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어. 근데 말이야 형, 사실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형과 내가 함께 읽은 책 속에도, 내가 세상에 나가 부딪치는 사건들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하소연 속에서도, 무엇보다도 형의 삶 속에도 그에 대한 답은 들어 있었어. 난 단지..”



거침없이 열정을 토해내던 동생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것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얘기라는 뜻이었고 따라서 나의 호응이 필요하다고 것이었다. 나는 그런 동생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와 어떤 당위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아니 오히려 나는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단지 뭐?”



난 거대한 운명의 끈을 움켜쥐었다,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난 단지 용감하지 못했던 거야. 그들을 비판하면서도 나 또한 진정으로 용기내지 못했던 거야.”

“네가 용감하지 못했다고?”

“응, 난 용감하지 못했어.”



동생이 내 눈을 뚫어져라 직시하며 말했다. 동생은 절대 내 눈을 똑바로 바로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나의 동생이라는 입장에서 단 한 발도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그것에 아무런 의견도 제시할 수 없는 나의 두려움과 안타까움이었고, 서로 간에 누구도 먼저 넘지 못할 태생의 원죄 같은 우리 형제의 슬픔이자 한계였다. 헌데, 그런 동생이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동생의 눈빛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용감하지 못했니?”

“모든 면에서. 특히 형에 대해 가장 많이.”



동생이 나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말을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무엇이던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던 영혼의 수면 위로 거대한 바람 한 점이 스쳐갔다. 그에 따라 한 점에서 출발해 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잔물결의 진동처럼 나는 격렬하게 떨리는 마음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말해봐!”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동생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전에 왔어야 할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순간을 늦춰준 것에 대해 동생에 감사해야 할 뿐, 어찌 한 마디라도 토를 달 수 있겠는가? 헌데, 뭔가 이상했다. 맑고 깊은 동생의 눈빛이 다른 가능성을, 의외의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분명 그것은 나만의 바람만이 아니었다. 나는 조금 더 살고 싶었고,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조금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허면, 앞서 말한 하나의 프로그램?’

“형도 이제는 알겠지만,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보다, 아니 이 세상의 어떤 프로그램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단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줘. 형이라면 가능하니까. 지금의 형이라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던가. 동생이 나에게 홀로 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삶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지자고 부탁하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가. 동생이 나에게 용감하지 못했던 것은 나를 하루라도 더 살 수 있게 해주느라 나에게 부탁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바로 그것에 있었다. 결국 그 부탁은 나를 죽음에 보다 빠르게 인도할 것이고, 그것은 나의 생존을 삶의 목적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한 동생으로써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 전부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부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동생에게는 필생의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고 나는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나에게 좀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밖에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버러지 같은 내 삶에 그 이상일 수 없는 최상의 보상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할 일과 일맥상통했다. 물론 둘의 생각이 얼마나 일맥상통하는지를 알려면 동생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었지만, 어찌 고맙고 기꺼운 일이 아니겠는가. 

                                            




칸트(특히 《판단력비판》과  《숭고에 대하여》) 이래로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예술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이후로 벤야민과 아도르노, 푸코와 부르디외 등을 거치면서 미학이란 이름으로 보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고민들이 예술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으려 했습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이 그림에서 봤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참혹한 인류의 미래를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언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대중매체와 분업의 논리를 극대화한 기업을 앞세워, 냉혹한 자본주의가 돈과 조직의 논리에 따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늦춰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파괴해야만 진행이 가능한 자본주의의 본질과 이를 포장해야만 하는 대중매체의 본질을 꿰뚫어봤던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대의 문화는 매스미디어로 대표되는 대중매체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칸트에 의해 철학이 하나의 학부로 내려앉은 것처럼, 예술이 문화의 한 부류에 속한다면 이들의 희망은 이제 종지부를 찍은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가 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미학은 고사하고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일조차 힘겨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압축성장을 신의 축복처럼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본의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첨병 역할에 충실한 대중매체에게서 일말의 희망이라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을 넘어 어리석음의 극치이겠지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미생’은 미운오리 새끼 같은 존재입니다.



자본의 논리가 집적된 대기업을 비정규직과 상시 구조조정의 대상인 직원들의 눈높이에서 다루고 있는 ‘미생’은, 미학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좋은 드라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연출력의 디테일과 캐릭터의 힘이 돋보이는 '미생'은 가장 자본주의적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종합상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을 보여줍니다.





대기업을 소재로 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가 막장을 넘어 비현실과 왜곡과 저급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미생’이란 드라마는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하기까지 합니다. 원작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미생’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과거보다 더욱 열악해진 근무환경이 성장할수록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16국에 나온,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인물이 ‘안은 전쟁터이지만 밖은 지옥’이라는 대사는 가히 일절이라 할 만합니다.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지배당한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값싸게 팔아야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이 그 밖의 모든 곳보다 안전한 곳이 된 현실을 압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사는 21세기의 인간이란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개인의 노동력(과 가족)을 쥐어짜 오너 일족과 대주주의 배를 불려주는 대기업이 아니면 제대로 돈을 벌수도 없고, 안정적 삶도 불가능한 것을 말해줍니다. 은퇴하거나 정리해고 당한 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산업혁명 이후 250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인간은 돈이 없으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됐습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약속한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였음이 너무나 분명해졌음을 오늘의 명대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족은 스위티홈이 아니라 지옥의 필수요소가 됐구요.



장그래를 비롯해 ‘미생’에 나오는 신입사원들의 능력이란 놀라울 정도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업이 진정한 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그래 정도의 능력(나머지 세 명도 마찬가지이지만)을 지닌 신입사원이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지옥이지 다른 무엇이겠습니까? 



장그래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미생’을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지만, 글을 마치며 제가 ‘미생’을 미운오리 새끼라고 한 것에 대해 짧게 부언할까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과 결말이 어떠하던 간에 ‘미생’은 은연중에 기업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중 드라마로 담아내려니 그럴 수밖에 없음은 압니다. 검열에서 벗어난 드라마는 방송을 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대중매체는 내재화된 자체 검열의 수준에서 현실을 담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대중매체가 그려내는 현실이란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미생’이 미운오리 새끼임은 이 때문인데, 드라마가 끝나면 ‘미생’이 속박된 백조의 꿈을 접은 자유로운 오리인지 알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어리석을지 모르겠지만 기업이 지옥일지언정 기업의 밖은 지옥이 아니길 기원해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hans 2014.12.07 07:24

    자본주의가 사람이 가난에 허덕이거나 배고파서 죽는 현상을 없앴습니다.

    인류의 경험과 지식이 묻어나는 제도죠.

    이기심을 긍정적으로 본 자본주의는 경쟁을 바탕으로 꽃을 피웁니다.

    소수가 능동적이고 나머지가 수동적인 시대에 살았다면 자본주의로 인해서 모두가 능동적으로 살아야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죽게됩니다.

    이러한 경쟁에 대중은 공정한 경쟁을 원하게 되고 사람이 시장의 한복판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시장에서 상품이되고 스펙이되며 성형이 됩니다.

    이기심이 허락되는 집단은 생태계와 같습니다.

    장그레를 조직에서 허락할 수 없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정한 기회에 대한 대중들의 눈 때문입니다.


    원래 세상은 지옥과 같습니다.

    예전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으며 미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인류는 가둬져서 안락하고 편하게 길러지기를 포기하고 세상속의 자유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있기에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07 08:28 신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결과가 전 세계 인구 중 40%에 이르는 30억 명이 1~2달러 이하로 살아게 된 것인지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없이 소모하고도 이런 결과가 잘 된 것인지요?
      아담 스미스가 아주 작은 지역의 시장을 보고서 터무니없는 확대를 감행한 국부론의 내용이 단 한 번도 성립된 적이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그 시작부터 파괴를 전제로 한 성장을 택했고, 그 바람에 인류 역상 유래없는 불평등을 만들어냈습니다.
      자본주의의 초창기부터 그 냉혹한 본질을 파악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고발과 저항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만큼 온 것에 불과합니다.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넘어 이제는 인간조차도 자본의 노예가 됐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조화를 이룬다는 아담 스미스의 형편없는 착각은 이미 논의 대상에서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자본주의는 죽음의 논리이지, 창조의 논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본주의를 미화하려고 해도 상위 1%가 전 세계 자산의 45%를 차지하는 불평등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경제규모 세계 14위인 한국에서도 점심을 굶는 사람이 수십만 명인데 무슨 자본주의가 자유의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지요?
      자본주의란 자본의 논리에 인간을 수동적으로 길들이는 체제지 개개인이 선택해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선택이 제한된 곳에서 정말로 행복하고 인생이 아름다우려면 악마의 탐욕을 자유시장의 어둠에 숨겨둔 자본주의부터 거둬내야 합니다.
      공생과 공존이 가능하고, 진정한 자유를 선택하려면 다양한 삶의 형태가 가능해야 하는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마저 작동 불능으로 만든 이후로는 인간의 삶이란 노예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 체제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선택은 없습니다.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나 개인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선택이란 체념이고 길들여지는 것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이 자유로운 선택이라면 그것은 무력함의 표현일 뿐입니다.
      원래 세상이 지옥과 같다면 세상을 없애야지요.
      그래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죠, 거기에 길들여지지 말고.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08 08:45 신고

    요즘 이 드라마가가 화제이더군요
    이야기만 들었는데 한번 몰아서 봐야겠습니다

  3. guqrnp 2014.12.08 09:22

    요즘 윤태호처럼 웹툰으로 현실을 더 잘 보여주고 있네요.
    드라마는 막장...그러나 오만과 편견은
    우리나라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던데요?

    • 늙은도령 2014.12.08 18:31 신고

      아... 제가 보는 드라마가 미생 뿐이라서요.
      지상파 드라마는 잘 모릅니다.

  4. 덕산 2014.12.08 12:27

    미생이후 사석이라는 제목으로 특별 5부작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미생보다 더 많은 여운을 남겨 주는 것 같았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08 18:34 신고

      나중에 한 번 봐야겠네요.
      제 조카가 5년쯤 후에는 웹툰 작가가 될 것 같은데 그때 '미생'보다 더 생생한 대기업 얘기를 해줄 생각입니다.
      건강만 허락해주면 우영워드를 끝낸 후에 시작하려고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그래서 박 대통령의 준비와 능력 부족과 현 정권의 부도덕성과 국정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정윤회 문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송사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대한민국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내몰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정윤회 문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 정부의 탄핵이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여기에 류진룡 전 장관의 인터뷰 내용과 박지만 회장의 언급과 정윤회의 전 부인의 등장, 김기춘 실장의 무책임한 행태까지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은 그 끝을 모를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국정 난맥상은 YS 정부 때의 김현철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국정조사나 검찰 수사를 넘어 특검 이상의 것이 필요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초법적이고 탈법적인 일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니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당분간 중지시켜도 모자랄 판입니다.



                                                   북한 전문 방송의 물타기



헌데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물타기 하려는 방송사들은 신은미라는 재미교포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대체 그녀가 무슨 중요한 인물이나 되는 듯이 정윤회 문건 관련 보도가 끝나면 어김없이 종북논란을 부추겨 정윤회 문건을 종북과 오버랩시킵니다. 그 다음에는 늘 똑같은 전체주의국가 북한의 동향을 과대포장해 보도합니다.



서울시향의 문제도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국민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집단에서 일어난 자질 미달의 경영자의 막말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윤회 문건과 비슷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났다면 방송사들이 어떠했을까 조금만 추론해도 현 방송사들의 보도 행태는 북한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아니면 전체주의 국가인지 도무지 구별이 안 갑니다. 제왕적 대통령의 국가라고 해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한도 내에서의 제왕적 대통령입니다. 모든 방송사들이 알아서 길 정도의 그런 대통령이 아니며, 권위주의적 독재 치하의 대한민국도 아닙니다.


                                 


단신 처리로도 충분한 내용

                      


정상적인 국가의 방송이라면 대통령에게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사태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라고 해야 하는데, 문제의 파장이 대통령에 이르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는 꼴이란 차라리 폐방시키는 것이 나을 지경입니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야당에게 보도 시간을 할당하지 않는 것은 도를 넘어도 한참은 넘었습니다.



극소수의 인물과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폐쇄성 때문에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났는데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물타기를 시도하는 방송사들의 행태는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이명박이 방송을 장악한 이후로 이 땅에는 제대로 된 방송사가 없었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모든 방송이 사실상 정부방송이 됐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JTBC마저 말조심, 보도 조심하는 모습이란 방송생태계를 바로 잡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정 운영을 바로잡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임을 말해줍니다. 대한민국 정치권을 타락시키는 검찰과 함께 막장 방송사를 바로 잡는 일이야 말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는 첫 걸음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1. baae 2014.12.06 23:26

    다시 글을 올리시는걸 보니 건강이 호전되었나 봅니다. 무척 다행입이다.

    • 늙은도령 2014.12.07 00:20 신고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직 허리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지만 장은 잡았습니다.
      에고... 수많은 병들 때문에 힘들긴 하네요.

  2. 에피우비 2014.12.07 09:17 신고

    자신의 잘 못하나 덮으려고 별 짓을 다하는거지요.

    솔직히 서울시향의 문제는 예술단체에 어만 삼성걸이 하나 들어와가지고 흑탕물을 만든다고 밖에 못하죠

    예술하는 사람들은 유유자적한 모습과 생활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창작이 나오는건데.....

    물론 아이디어와 창작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패턴속에서 나름의 터닝포인트나 리듬의 흐름이라는것이 있는데....

    그걸 이해 못하고 회사에서 처럼의 강직하고 똑부러지는 형태만 주장하는것도 문제가 있지요.

    예술은 자로 딱딱 제고 두부모 자르듯이 정확한게 아니고 체계적인게 아닌데....

    그들 나름의 자료가 있을껏이고 그들 나름의 회계가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메도하는건 좀 도가 지나치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4.12.07 18:10 신고

      박 대표가 삼성 출신입니까?
      그럼 아예 서울시향을 망쳐놓으려 했겠군요.
      예술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예술마저 삼성의 관리를 도입할 것이면 예술을 포기해야죠.
      경영을 하러왔으면 그 부분만 신경 쓰고 예술가들에게는 그들만의 공간을 허락해야죠.
      정명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는 한 분야에서 최고에 오른 천재적 음악가입니다.
      그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을 단원을 자신의 관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박 대표의 방식은 예술을 죽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 답답한 접근이네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는데 삼성맨이라는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하겠네요.

  3. 올리버 2014.12.07 18:11

    하루에 한 번정도는 꼭 들러보는데 그 동안 소식이 없길래 혹 몸이 아프신건 아닐까 염려되었습니다.
    다시 늙은 도령님의 글을 보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만 전부인 거로 알고 있는 주변인들이 태반이라 갑갑합니다.

    • 늙은도령 2014.12.07 19:48 신고

      정윤회 문건을 물타기하는 작업은 방송이 하고, 국정 농단 사건을 최소화해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은 검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건의 진위 여부를 넘어 박근혜의 국정 운영은 탄핵을 받아 마땅할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소수와 얽혀서 움직인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지요.
      제발 국민을 위해 좋은 일 몇 개라도 했으면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너무나 많이 틀릴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것이지만....

  4. 최낙현 2014.12.12 20:43

    너무 안타깝고 분노하게되네요 정미홍 저
    인간 나온것부터 영원히 안볼 언론이되었습니다.

  5. 최낙현 2014.12.12 20:46

    분노하게되고 이나라 조국이 안타깝고 슬프네요
    정미홍 부르다니 에휴 말종이네요

    • 늙은도령 2014.12.12 22:04 신고

      한국이 이성적인 토론이 가능한 나라가 되려면 TV조선과 채널A를 폐방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단의 이분법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선동 방송으로 인해 이 나라는 비이성적인 폭력이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것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은 언젠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끔직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진리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했고, 그러한 진리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삼은 것이다. (중략)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 (중략) 이제 인간의 자신의 모든 동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풍족한 자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인간이 그러한 스스로의 과제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권력이나 계획과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삼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이다. 이것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야 형. 정말 저자의 통찰력이 대단하지 않아? 형은 어떻게 생각해?”



동생은 1시간에 걸쳐 우리시대의 정치경제학적 기원에 대한 칼 폴라니의 기념비적 대작인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장을 읽어주었다. 극소수의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조정 시장(자유시장이라고 하지만 재벌과 초국적기업 및 지역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경유착의 반칙이 난무하는 네트워크에 불과하다. 시장논리를 주장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 새빨간 거짓에 대해 신의 천벌이 있기를!)’의 본질적 허구성과 야만적 선동을 그 뿌리부터 파헤친 우리 시대의 대서사시에 대한 3일간의 낭독이 비로소 끝난 것이었다. 동생의 말처럼 『거대한 전환』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견줄만한 역사상 최고의 명저 중 하나였다. 아니, 그 둘의 오류와 엉터리 추상 및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가장 설득력 있게 풀어낸 책이다.



자본주의에 문제는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허구의 아이디어에 근거하기 때문에 스미스나 마르크스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자신의 이론을 펼친 휴머니스트였다. 둘의 위대함ㅡ스미스를 마르크스의 위대함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ㅡ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고, 둘의 오류는 인간이란 변수를 제거한 지나친 추상화에 있다. 스미스의 주장처럼 시장은 그런 인간과 축적된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네트워크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이로운 적정 가격을 정하는 정의의 법정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관한 한 마르크스가 옳았고, 자유시장에 관한 한 폴라니가 옳았다. 계몽의 시대에 살았던 스미스는 철학자로서의 삶에만 충실했어야 했다. 그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ㅡ주류 경제학자들ㅡ에 의해 세상이 이 지경으로 망가져 버렸으니까.  



물론 자본주의가 최고점에 이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 '자유의 왕국'이 도래한다는 마르크스의 추상화는 다윈의 진화론과 뉴튼의 고전물리학에 지나치게 경도됐다는 푸코와 데리다의 비판에 답할 수 없고, 1929년의 대공황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예견한 칼 폴라니도 너무 성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칸트에 의해 모조리 다루어진 이성과 사유의 한계는 정보와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인간이란 존재가 그런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설정해 인간을 최상의 위치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칸트의 노력이 계몽의 이름으로 처참히 난자됐지만, 계몽된 인간이 계몽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변증법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형, 어떻게 생각해?”



동생은 내 생각을 재차 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책을 한 권 다 읽으면 일정 정도의 토론을 했다. 그런 방법으로 나는 동생에게 보다 높은 차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정립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머리는 명석하지 않았지만, 하얀 백지 같아서 무엇을 그리던 선명한 형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백지의 넓이가 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육체적으로 상상 이상의 능력을 타고난 동생의 발전은 초음속 비행기를 떠올릴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시공간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평상시 같으면 책의 내용에 대해 동생과 열띤 토론에 돌입했을 텐데, 왠지 나는 마음이 비스듬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최근에 들어 기분 조절이 쉽지 않았기에 감정이 자꾸 제어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수고했어.”



뇌에서 출발한 우울증적 반응이 신경회로를 타고 몇 초 후에야 소리라는 운동 에너지로 전환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생은 감정의 삐딱함이 느껴지는 내 반응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면 토론을 뒤로 미루던 동생이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늘 그렇듯 몇 초를 더 기다린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동생은 나의 뇌에서 보내진 말이 그것뿐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수고는 뭐.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어. 형은 어땠어? 나는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저자의 지적이 지금에야 빛을 발하는 것 같지 않아? 푸코와 벡의 성찰과 조합하면 대단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무뚝뚝하고 지극히 의례적인 내 말에 동생은 조금도 싫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나를 격려하려는 듯 활기찬 톤으로 물었다. 동생은 최근에 들어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나의 마음을 되살려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동생은 언제나 그랬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냥 골아 떨어져도 모자랄 판인데, 동생은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힘든 내색은커녕 나의 삶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동생이었다. 부모님이 살아 있다고 해도 결코 해낼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것들이 아니었다.



“형의 생각은 어때? 형이면 이미 답은 나왔을 것 아니야?”



오늘따라 동생은 오버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 동생의 행동에 비스듬한 마음의 경사가 더욱 우울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피곤하고 무기력했다.



“글쎄?”

“글쎄라니? 그런 대답이 어딨어? 이 책은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데? 특히 ‘오트피낭스’ 체제에 대해서는 형도 관심이..”

“재영아, 그만하자.”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낄지 정확히 알고 있는 동생에게 나는 차갑고 건조하게 말했다. 우울한 감정은 늘 상 폭발하기 쉬운 휘발성을 띄는 게 보통이고 그 방향은 거의 다 짜증 쪽으로 향한다.



“그만하자고? 왜 그래, 형? 어디 아픈 거야?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폭발 직전의 나를 보면서 습관적으로 몇 초를 더 기다린 동생이 바싹 다가와 나와 엉덩이 부분의 이불을 살핀다. 이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놓은 영양 보충제가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빨아 마실 수 있게 해놓은 과일즙과 야채즙이 떨어졌는지 꼼꼼히 살핀다. 그런 동생의, 오늘 따라 특별히 오버하는 것 같은 살핌에 갑자기 우울한 감정이 곧바로 임계점을 넘었다. 에너지가 임계점에 다다른 전자가 광자를 내뿜어 방향을 틀듯 나도 그렇게 이런 감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지랄 맞은 현실에서 내가 동생으로부터, 아니면 동생이 나로부터, 동생과 내가 삶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나는 가슴 속에서 주체 없이 솟아오르는 짜증과 울분을 그냥 뇌에만 담아둘 수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틀림없이 후회하고 말겠지만.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까 그만해.”



보통 사람이 기분장애의 양극단에 이르면 감정의 진폭이 최고조에 이르고, 우울증의 경우 부정적인 면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의 내가 그랬다.



“..형? 왜 그래? 낮에 무슨 일 있었어?”



신경질적인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몇 초를 더 기다린 동생이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살핀다. 내 마음 속의 응어리를 보듬듯 동생의 눈빛이 나의 좌절과 고뇌를 풀어 내린다. 여느 때 같으면, 아니 어떤 경우에도 나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 동생의 마음과 희생을 아는 내가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껏 뛰쳐나간 삶에 대한 짜증과 울분을 쉽게 거둬들일 마음이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동생의 헌신이 거대한 태산이라면 불균형한 삶에 대한 나의 자제도 그에 못 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생의 눈빛이 항우울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만해. 그만하면 됐어. 그만, 제발 그만!”



다시 격한 감정을 배설한 말이 채 현실이 되기도 전에 이미 후회하고 있는 내가 몇 초 후에나 현실이 되는 나의 말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동생은 또 다시 몇 초를 더 기다렸다. 자신의 반응은 어떤 내용의 말이라도 일단 그 말에 형의 의지가 온전히 말에 포함됐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그 역시 처음 겪는 상황에 무척 당황했다는 것을 행동(나에게서 떨어져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분명히 밝힌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동생은 그렇게 해서라도 매 순간 나를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려 전력을 다했고, 자신의 섣부른 감정적 대응이 나로 하여금 쓸모없는 에너지 소비를 부추긴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냉혹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했다. 동생은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와 함께 있는 한 절대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에너지 불균형의 최대 피해자는 내가 아니라 동생일지도 모른다.



“형, 그냥 저자의 생각일 뿐이잖아? 수천 권의 책 중에 하나일 뿐이잖아? 우리시대의 문제를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 마지막 구절은 그냥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그냥 뭐? 체념하지 말라고?”



동생의 말이 ‘그냥’에서 몇 마디 더 지난 뒤에야 뇌에서 떠올린 말이 시간차 현실이 되었다. 나와 동생이 대화를 나눌 때, 내가 중간에 동생의 말을 자르면 항상 이런 시간차 현상이 벌어진다. 하지만 동생은 모든 것을 주인의 삶에 맞추는 노예처럼 이런 혼선에 익숙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몇 초 더 기다린 후에야 답했다, 지랄 맞게도.



“응. 체념하지 마.”

“체념하지 말라고? 왜? 왜, 내가 체념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생각과 현실 사이에 늘 시간차가 발생해 그 어떤 감정도 금세 시들어버리지만, 이번만은 좀처럼 격해진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동생에게 이렇게까지 격한 감정을 드러낸 경우도 지금까지는 없었다. 정말 엿 같은 현실, 그보다 더 엿 같은 나, 더더욱 형이라는 감옥에 철저하게 갇혀 있는 동생! 과도한 에너지 소모에 따른 극도의 무력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끝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따라 안좋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것은 극단의 슬픔이 가져다주는 미래의 쾌락에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내 자신의 고통과 그것이 불러온 부정적 환경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형은, 어떤 난해한 문제도 풀어내는 형은.”



동생은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마지막 베팅을 하는 도박꾼처럼 분명하게 말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된 형은, 그것이 천형의 멍에이던 운명의 장난이던 간에 그 증거를 세상에 남겨야 하니까.”

“내가 왜? 이 지랄 같은 불균형이 신의 축복이라도 된단 말이야?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생의 말에 생전 처음으로 동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어느 배우의 말처럼, ‘배신! 배반!’이었다. 한 번 틀어진 감정은 좀처럼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고, 회색빛 우울증의 색조를 격한 감정에 실기에만 바빴다.



“그래, 형. 나니까 하는 거야. 형의 온 삶을 옆에서 함께 한 나니까 하는 말이야.”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 순간만은 동생이 나보다 더 이성에서 멀어진 것 같았다. 절대 허물어질 것 같지 않았던 동생의 냉정함이 한낱 바람처럼 느껴졌다.



“너라서 하는 말이라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장 잘 아는 너라서..”

“응, 나라서 하는 말이야. 형의 삶을, 그 지옥 같은 불균형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나니까 하는 말이야. 나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니까. 형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고 아파하는 나니까 말이야!”



동생은 나와의 대화에서 지켜야 할 시간차 룰도 지키지 않았다. 내 말을 중간에 끊고 들어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치 준비했던 것처럼 쏟아냈다. 동생이 아주 천천히 눈을 깜박였던 것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을 저지르겠다는 자기 다짐의 신호였던 것이다. 그런 동생의 말과 행동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 행간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 짧았지만 억겁만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후, 동생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차올랐고 음성에도 습기가 가득해 터질 듯한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서라도 형이 이 땅에 살았다는 증거를 남겨야 해.”

“너를 위해서라도?”

“응, 나를 위해서라도.”



동생의 두 눈에 맺힌 눈물과 음성에 담긴 슬픔이 아니더라도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문득 나는 동생이 단 한 번이라도 나한테 무언가를 부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런 부탁을 하려고, 그는 그렇게도 오랫동안 저 홀로 가슴앓이를 한 것이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동생에게 내 고통과 아픔을 공감해달라고 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동생이 겪어야 할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 또한 타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뭔데?”



나는 갑자기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맹렬하게 솟아오르는 호기심과 기쁨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해버리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대 방출을 의미했고, 종국에는 극심한 피로와 허탈감만 되돌려주는 빌어먹을 희망의 사촌이었지만 나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쿵쾅! 쿵쾅! 귓가로 이런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에 따른 심장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이 내 남은 생을 좌우할 터였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반면에 뇌를 사용할 때는 육체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들까지 무한정으로 차용할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엔트로피는 단기적 피로나 장기적 무기력으로 육체에 전가되는 것도 모자라 중간에 새지도 않아 모조리 축적되는 꿈의 효율을 실현해냈다. 그에 따라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신경과 근육의 반응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이건 마치 두뇌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들을 희생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뇌를 사용할 때 평균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뇌마저도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튜닝이 되가는 것이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 덕분에 나는 20세를 넘어서면서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모든 학문에 정통하게 되었고 그 어떤 수학과 과학의 난제도 막힘없이 풀어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반드시 실제 경험이 필요한 것들과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것들까지 모두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내가 홀로 추론해낸 답이 우리나라 기상청이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에 슈퍼컴을 곱해서 나온 결과보다는 정답과의 오차 범위가 훨씬 더 작을 것이다. 분명 내 두뇌는 그 어떤 인공지능 프로그램보다 진화의 속도가 빨랐다. 특히 직관적인 판단의 경우에도 정보와 지식과 각종 이론에 기반 한 추상적이고 통합적인 추리와 계산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어쨌거나 내 두뇌는 신의 영역을 기웃거릴 정도로 탁월해졌지만 육체에 적용된 세월의 흐름은 평균의 인간보다 수십 배는 빨랐다. 이제 겨우 내 나이 30인데 일방적 희생을 감수해온 육체는 숨넘어가기 직전의 시체와 다를 바 없다. 특히 부모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17세 이후의 삶이란 하루하루가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3살 터울의 동생이 나를 정성껏 보살펴주었지만 그 세심함이 어머니를 넘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이라는 게 8,000만원의 전세금과 팔아먹을 수도 없는 수천 권의 책밖에 없었고, 빌어먹을 친척 놈들은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부터 같은 하늘 아래에서 홀연히 연락이 끊겨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쥐꼬리만 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동생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월화수목금금금 아르바이트 전선을 누비고 다녀도 생계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약해진 내장 기능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 신선한 야채나 과일, 다진 고기죽 같은 것으로 대체해야 했기 때문에 엥겔계수가 상당이 높았기 때문이다. 자연히 동생이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 내 건강은 육체의 퇴화보다 더 빠르게 나빠졌다. 결국 나는 에너지 효율을 더 높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두뇌의 사용마저 최대한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력한 육체에 깃들어 억지로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돈이 부족해 육체적 무력을 보완해줄 대체 영양 공급에 차질이 생겨 극심한 피로와 만성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동생이 없는 동안에는 막연한 두려움에 뼈 속까지 떨어야 했지만 그런 것들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고통에 불과했다. 가만히 있어도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들을 밀어내기 위해 하염없이 수를 세거나 벽지의 그림이나 글들을 보고 또 봐야 하는 일들이 몇 년을 넘어가자 산다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나을 게 없었다. 뇌는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그것을 막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육체적 행위가 갈수록 제약받기에 깨어 있는 매 순간이 점점 지옥으로 변했다. 



특히 때 없이 찾아와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는 예수의 전사들은 모조리 지옥 불에 떨어질 지어다! 그들이 폭풍처럼 나를 훑고 간 다음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에너지 고갈에 나는 무력한 육체가 느끼는 중력의 가중과 살아서 유황불을 경험하는 지극한 영광에 몸부림쳐야 했다. 결국 나는 끊임없이 육체의 에너지를 착취하는 흡혈귀 같은 뇌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 ‘가카’와 그의 졸개 정치인들이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 툭하면 던지는 말인 특단의 조처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특단의 조처가 늘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국면 전환용 시간끌기인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책이란 단 하나 뿐이기 때문이었다. 멍 때리기, 또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숨만 쉬며 시체처럼 누워 있는 것!



하지만 그것을 체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아니, 죽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나는 수없이 많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좀처럼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뇌는 보는 것에 가장 민감히 반응했고(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어둠 속을 떠도는 것들이 생각을 만들었지만), 듣는 것도 그에 만만치 않았다(귀를 틀어막고 있으면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자꾸 인기척이 느껴졌고 반드시 그것은 좋지 않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언제나 에너지 사용은 저절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와 컴퓨터, 라디오와 DVD플레이어, 스마트폰과 MP3를 틀어놓은 카오스 같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적이 있었다. 동생이 퇴근해 나를 깨울 때까지 2시간 동안 잠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깨어나 생각해보니 내가 잠들 때까지 3분 정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내 뇌의 어디에도 3분이란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무려 3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마침내 생각 없는, 고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데카르트적 성찰의 정반대에서, 나는 살아있지만 존재하지 않으니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필생의 방법이자 필사의 탈출구인 멍 때리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끝없는 명상과 수행 끝에 이른다는 득도의 순간이 내게는 터무니없이 허접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무 생각 없음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냈다. 플라톤이 동굴에서 봤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그 경이로움의 순간이 이러했을까?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예 전무해서 궁극의 진리를 깨우치고 영원한 구원이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불멸의 삶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연이 가져다준 느닷없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나는 항상 TV와 라디오, 컴퓨터, DVD플레이어, MP3와 스마트폰까지 틀어놓았고 온갖 소리가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고통스러운 생각을 얹어놓았다. 그러면 온갖 소리와 음악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파동에 따라 휘날리던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흩어지기 시작하다가,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처럼 생각의 버퍼링이 일어나는 지점에 이른다. 이쯤 되면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극단의 피로함에 생각이 늘어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기를 몇 차례 되풀이한다. 바람과 중력 사이의 깃털처럼 이리저리 요동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마냥 늘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이 버퍼링처럼 늘어지다 어느 한 순간, 천지를 가르는 번개처럼 생각이 사라진다. 



이것이 내 수명을 연장시켜준 멍 때리기의 대략적인 과정인데, 이는 성경이나 불경에 나온 성자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고통스런 에너지 소모가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에 들어설 수 있게 됐으니! 



아무튼 이렇게 멍 때기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면서 내 삶에도 기적 같은 서광이 비쳤다. 더 이상 동생의 정성을 외면할 수 없어, 뇌의 능력을 반납해서라도 육체의 기능을 일부라도 회복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됐고 하루하루를 버러지처럼 버텨나가야 할 필요도 줄어든 것이다. 그런 순간이 하루에 몇 분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운이 좋거나 극도로 컨디션이 나쁠 때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몇 십 분이 될 때도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사라져 뇌와 육체가 균형을 이루는 평온함이란, 오직 망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처럼 또 다른 최고의 선물이 나를 찾아왔다. 이를테면 무덤 터로 산 땅에 수백억에 이르는 유물이 묻혀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꿈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예수의 천사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서둘러 세상을 등진 부모님처럼.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천사의 방문은 정확히 3년 전 오늘에 일어났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나에게 세상 첫 날의 햇살처럼 찾아온 그녀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21살 꽃 다운 처녀였다. 애끓는 전생에서의 인연이나 운명처럼, 그녀가 나를 찾아온 그날은 내가 동생과 생전 처음으로 아주 잠깐 말다툼을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따라서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에 대해서 말하려면 동생과의 아주 사소한 다툼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그날의 짧은 다툼은 여느 날처럼 동생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남겨주신 책을 나에게 읽어주는 중에 일어났다. 동생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내가 직접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이 에너지 소비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그날도 늦은 시간에 퇴근한 동생은 마치 가슴에 핵연료를 장착한 로봇인양 한결 같은 음성으로 책을 읽어 주었고, 이제는 듣는 것마저 힘들어진 나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로 억제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06 11:55 신고

    영화 루시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정규직이 과보호 되고 있다는 최경환 부총리님, 대기업 입장을 대변하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최 부총리님이 보기에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정규직 과보호에 있는 가 봅니다. 이명박 정부 내내 창조적으로 노조를 파괴하더니, 박근혜 정부는 아예 정규직을 직접 겨냥하기로 한 모양이네요.





이명박 정부는 각종 감세조치로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사상 최고로 늘려주더니, 박근혜 정부는 각종 규제의 철폐와 함께, 빈약한 정규직의 지갑을 털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늘려주실 모양입니다. 담뱃값 인상과 같은 간접세를 통해 서민과 비정규직의 지갑을 털 수 있게 됐으니, 이제는 정규직이 타켓이 됐나 봅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최 부총리님이 말씀하시는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이란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어느 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OECD 가입국 중 가장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정리해고의 두려움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규직이 과보호 받고 있다면 이 땅의 비정규직들은 죽어야 할 모양입니다.



온갖 통계를 통해 증명되고 있듯이, 상위 10%에 전체 부의 80~90%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 하위 90%를 왜 그렇게 집요하게 괴롭히시는 것입니까? 대선과 총선 때는 모든 것을 다해줄 것처럼 하더니만,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위 10%와 맞서거나 그들을 설득할 용기가 없는 것인지요?





부총리님이 말씀하신 계약직 정규직이란 기존의 정규직 중에서도 중하위 직급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청년들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부총리님에게는 미생이 완생이 되는 것이 그렇게 눈꼴 시린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비록 하늘이 도와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지만, 정규직 과보호론과 묘하게 연결되는 가업 승계 상속세를 대폭 감면하는 법안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닌지요? 최 부총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위 90%는 돈을 쓸 때마다 어마어마한 간접세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가 미덕인 세상에서 저축할 여력마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하위 90%는 소비하는 족족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어 삶을 이어가는 그 자체가 세금을 내는 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대인 90%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제발 한 국가의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으면, 지나치게 많이 가진 소수와 대기업의 금고를 터는데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이 정규직이던 비정규직이던 별로 상관이 없는 자들 말고, 죽어라 고생해도 정규직조차 못되는 사람들에게 '너 너무 과보호 받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언제든지 잘릴 각오를 하라'고 위협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상위 10%의 금고만 정당하게 털면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설마 공무원연금 개혁이 뜻대로 안 되니, 이제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고 나온 것인지요? 차라리 4대강공사와 자원외교, 방신비리와 원전비리 등처럼 국민의 혈세를 쌈짓돈 쓰듯이 하는 관행부터 바로 잡으시지요. 조부모와 부모 잘 만난 것 빼고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자들이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리는 부조리를 활성화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제발 하위 90%가 아닌 상위 10%와 치열하게 싸워주십시오.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계약직 정규직으로 바꿔주십시오. 아니면, 경제민주화와 반값등록금 약속이라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미생은 그나마 대기업을 배경으로 하는 조금 성공한 자들의 얘기인데도, 그보다 못한 비정규직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는지 그것부터 살펴보시지요.



중소기업으로 가면 사정은 더욱 열악합니다. 대기업의 납기 압박과 단가후려치기, 인력과 기술 빼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업도 힘이 듭니다. 하청에 하청을 거친 현장으로 가면 사정은 더더욱 열악해집니다. 영세사업자를 거쳐 일용직 노동자들에 이르면 이건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외국인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에서는 최저생계비와 노동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같이 살자는 것이지, 우리도 잘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국가를 대신해 국민의 삶을 보살펴달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삶은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재취업이 쉽다면, 해고기간동안 국가가 책임져준다면, 복지가 잘되고 있다면 정규직 과보호론에 반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구수와 제조업, 국민정서처럼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은 독일을 모델로 해야 합니다. 그들이 모든 유럽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잘 나가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정규직 과보호론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제발 이 땅의 중년과 청년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은 만들어주십시오.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경제를 총괄하는 부총리의 역할입니다. 현재 국민들은 폭발 직전의 상태입니다.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면 그 이후의 일이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최경환 부총리님에게 레드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20대와 30대는 계기가 주어지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이 땅의 미래입니다. 그들 편에 서서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만드는 일에 전념하시면, 몇 십 년 후에는 <명량>이 아닌 <최경환>이 모든 흥행기록을 갈아치울 것입니다. 



지렁이가 꿈틀하도록 밟는 것, 이젠 그만 좀 합시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1. 바람 언덕 2014.12.05 12:13 신고

    일전에 이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정말 윗돌 빼나 아랫돌 메꾸자는 발상에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저것들이 하는 것이란 게 늘 이런식이지요.
    말 바꾸고, 조삼모사식 탁상행정이나 하고,
    100원 주고 1000원 빼앗아갈 궁리만 하는 X새리들...
    도대체 이 놈의 국민들은 머리가 멍청한 건지, 진짜 세뇌당해 머리가 굳어버린건지.
    죽겠다고 아우성거리면서도 바꿀줄은 모르고,
    아, 진짜 뿔딱지나...

    • 늙은도령 2014.12.05 22:56 신고

      현 자본주의 체제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헌데 상위 10%가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하위 90%를 터는 것밖에 현재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정부가 온갖 것들을 다 건드리고 있습니다.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를 털고 싶지만 걸리는 것이 많으니 그것도 못하고, 이제는 내부의 권력암투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저는 길게는 4~5년 정도로 보고 있는데, 현 체제는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다른 방법으로 말입니다.
      다만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많은 하위층을 죽음으로 몰아갈지 그것을 알 수 없지만, 지배 엘리트들도 파국을 피할 수 없음을 아는 것 같습니다.
      동생이 삼성임원에서 살아남았지만 삼성부터 시작해 전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다루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대공황 직전입니다.

      문제는 좋은 방향으로 갈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갈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의 체제는 효력을 다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내적 힘을 키워야 합니다.
      전 그런 방향으로 나갈 생각입니다.
      지적공동체를 꾸리는 일에 조금 더 시간을 낼 생각입니다.
      친구들을 만나 지혜를 모을 생각입니다.

  2. 여강여호 2014.12.05 17:01 신고

    속이 다 시원한 촌철살인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런 조언이 들릴까요?
    서민들에게 욕먹는 것쯤이야 상위 10%를 위해서라면 감내하고도 남을 사람들일건데 말입니다.
    어느 개그우먼이 그랬죠? 이 인간들만 보고 있으면...
    짜증 지대로다!

    • 늙은도령 2014.12.05 22:59 신고

      정윤회 문건은 이미 박근혜 정부가 레임덕에 들어섰음을 말합니다.
      불의한 정권이니 빨리 무너지는 것이지요.

      아쉬운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너무나 무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탄생해야 합니다.
      아니면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쳐 모여야 합니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강력한 야당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젊은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으니 거기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4.12.06 11:53 신고

    상위 10%만을 위한 정책..
    이 나라가 그들만의 나라인지..에혀

    최경환 거리의 부랑자 같은 사람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06 18:47 신고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태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면서 세계 경제는 식민지 팽창과 대규모 개발 및 분업화된 생산을 통한 대량 생산의 역사였습니다. 계몽의 시대가 도래하여 영원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성장의 패러다임이 절대적 가치로 고착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려면 두 가지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 하나는 팽창과 개발 및 생산을 위한 무제한적인 신용의 창출이었고, 나머지는 대량 생산된 제품을 신용 창출에 힘입어 소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계몽의 시대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자본주의의 역사는 돈을 풀어서 자연과 노동과 정신을 착취함과 동시에 이를 소비하도록 개인을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빚더미 위에 올라서 있는 지구



이를 위해 국가는 대규모 행정조직을 동원해 세금을 걷고, 이를 통해 신용 창출의 원천으로 자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불완전하고 불공정한 시장을 통해 새로운 기득권으로 떠오른 지배엘리트들을 위한 국가와 지역 및 세계 차원의 시장을 구축하고, 값싸고 질 좋은 노동자들을 시대적 요구에 봉사하는 교육제도를 통해 양산해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등장은 무한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긍정적 경제관을 주입시킴과 동시에, 첨단학문과 과학 및 기술로 중무장한 환상적인 광고를 통해 소비의 극대화와 신용 창출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던 시민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자의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커졌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짐에 따라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하는 인류가 등장했습니다. 소비의 중독이나 노예로 만드는 광고와 서비스 및 유행의 홍수는 삶의 모든 공간에서 개인의 삶과 욕망과 함께하며 끊임없이 유혹했습니다. 광고의 홍수에 노출된 개인이 이것에 맞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로서 끊임없이 더 많은 빚을 권하는 신용 창출과 그것에 힘입은 과도한 소비가 두 개의 축으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견고하게 구축됐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보다 많은 빚과 보다 많은 소비를 위한 특권화된 기득권의 도구와 선동에 불과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축이 끝없는 차별과 온갖 문제를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금까지 이끌고 왔고, 이제는 그 관성의 질주를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소비경제의 하이라이트



세계 각국의 정부와 국제기구들, 슈퍼리치와 거대 자본들이 하는 일이란 중단 없는 성장을 위한 신용 창출과 소비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한한 진보와 그 낙관적 결과에 대한 한계에 이른 것이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입니다. 더 이상은 기존의 경제 규모를 늘려갈 방법도, 여력도 바닥이 나 버린 것입니다. 가격파괴와 할인경제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현 체제를 유지하는 두 개의 축에서 심각한 부실이 노정된 것입니다. 거품의 크기가 너무 커 작은 바늘로 톡 찔러도 터져버릴 지경입니다. 특권화된 기득권들은 이것을 터뜨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고,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뒤집어 보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 성장이 이루어져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 현실에서 아예 빚과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보는 것입니다. 지구보다 더 커진 거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1%를 더욱 궁지로 내모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항을 하겠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과 정단대의 행동과 실천으로서.



거품을 터뜨릴 수도,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없도록 아예 기존의 체제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빚과 소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자식들을 위한 교육비 지출마저도 학교 공부에 한정하는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낮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여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최소화하고, 먹고 자는데 드는 에너지 사용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초고령사회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게 만들면 된다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육아와 교육, 생계를 함께함으로써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현 체제의 독점적 승자들이 제발 빚을 내서 소비를 늘려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정말 독하게 자린고비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현 체제가 바뀌지 않은 한 해결이 불가능한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도록 말입니다. 



상위 10%가 전체 부와 기회의 90%를 독점하는 상황이지만, 그들로만은 현재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위 90%가 무리하게 빚을 내서 신분상승의 꿈을 버리지 않고, 남들에게 꿀리지 않도록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할 때만 상위 10%가 지금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의 규모를 줄이고, 돈의 대부분이 내부에서 도는 소규모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다한 돈이 필요없는 문화와 놀이를 찾아서 향유하고, 삶을 짓누르는 무한경쟁의 압박에서 한 발짝 벗어나 정신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진보와 과시와 경쟁의 악몽에서 벗어나 물질적이고 사회적으로는 가난해져도 정신적으로는 부유해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정부와 정치에 대한 감시ㅡ예산의 사용과 정책 및 법의 적용과 집행ㅡ를 극한까지 늘리는 것입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같은 얘기이지만 평균수명이 80년이라면 이렇게 2~3년 정도 살아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2~3년 더 살아가는 것이 더 힘겨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지나칠 정도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압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가진 자들이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이 돌지 않으면 지금 가진 것들을 절대 유지할 수 없습니다. 상위 1%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국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운영에 드는 고정비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돈이 안돌면 제일 먼저 죽어나가는 곳이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와 행정입니다. 기업은 아예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들은 살기 위한 자구책을 미친 듯이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위 90%의 소박한 반란에 따른 모든 압박이 상위 10%에게 집중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거품의 압력은 더욱 커지고, 거품의 폭발을 막고 있는 외벽은 빠르게 약해집니다. 빚과 소비를 줄인 하위 90%에게 거품 폭발이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대안적 삶은 이미 제시돼 있다



고생은 하겠지요. 무척이나 힘들 것입니다. 빚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며 거품을 늘리지 않는 동안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분노가 차오르겠지요. 그것이 쌓이고 퍼져 가면 바로 혁명의 원동력이 됩니다. 폭력이 배제된 자유의지에 의한 저항이, 정신의 풍요로움을 찾아가는, 가난하지만 즐거운 여정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쓰나미가 됩니다.



동등한 시민으로 태어나 체제의 노예로 살아가는 일을 중단했을 뿐인데, 아니 최소화했을 뿐인데 세상은 근본부터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릅니다. 그것은 파국을 선택한, 갈 데까지 가보자는 특권화된 기득권들의 암묵적 합의를 공생과 공존의 방향으로 틀어놓을 것입니다.



상위 10%, 최종적으로는 상위 1%에 유리한 현 체제는 중하위 90%가 무리하게 빚을 내 소비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식시키려면 이 두 개의 축에 타격을 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의 시기, 폭력적 혁명이 불가능하다면 현 체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정반대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주체이며 삶의 주인입니다. 반성적 실천이 가능한 것이 인간입니다. 우주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으로 밝혀낸 유일한 고등생명체가 인간입니다. 물질적 가난이란 자본주의적 시각이 만들어낸 차별의 논리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표라면, 이제부터라도 생각하며 최소한으로 소비하며 살면 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꾸면 됩니다. 현재의 체제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빚을 소비에 쏟아부어 이루어내는 양적 성장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하위 90%의 삶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팍팍해지는 것입니다. 작금의 경제 성장이란 하위 90%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전도된 나쁜 성장입니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4.12.05 07:54 신고

    내가 자본과 싸울 투사가 될 때 세상이 바뀌겠지요.
    나 하나가 아닌 수 많은 투사가 된 나로 만드는....

    • 늙은도령 2014.12.05 09:55 신고

      우리가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으면 됩니다.
      성장이란 악마의 논리를 거둬내면 세상이 보입니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다수의 나가 생깁니다.
      세상이 복잡하니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05 08:05 신고

    세상도 나도 바꾸기가 힘이 드는군요 ㅡ.ㅡ;

    • 늙은도령 2014.12.05 09:56 신고

      아주 조금만 바꾸면 됩니다.
      세상을 우리가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나라도 변하면 됩니다.
      그냥 그렇게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변하게 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실제 이런 변화에 동참한 사람들이 늘고 있답니다.

  3. 덕산 2014.12.05 08:34

    공동체 생활으로 공생과 공존을 해나간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 생각 바꾸기 넘 힘이 드네요.

    • 늙은도령 2014.12.05 09:58 신고

      일단 자신부터.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나부터 변화를 실천하면 됩니다.
      현 체제는 너무 거대해 스스로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거기에 휩쓸려 가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 내 삶의 방식부터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것이 퍼져 힘이 됩니다.
      무조건 내 삶부터 바꾸는 것입니다.

  4. 뉴론7 2014.12.05 09:36 신고

    좋은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5. TISTORY 2014.12.05 17:55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12월 6일, 7일 이틀간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6. 발큰신데렐라 2014.12.10 13:44 신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4년 한해동안 정말 필요치 않은 소비를 습관적으로 또는 충동적으로 너무 많이 했더라구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정말 필요한 물건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2014년 마무리 잘하시구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12.10 20:01 신고

      네, 건강에 조심하며 좋은 글로 인사드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모든 일들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최선은 다해볼 생각입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에게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쓰는 글들인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7. 기저 2015.03.03 23:02 신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투자하고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물질적인 부분이 참 어렵습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나를 보며 속상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나는 현재가 아닌 미래 지향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버텼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지금 이 순간을 통해 정신적인 풍요로움에 이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히브리인 예수는 선과 정의감에 대한 증오, 히브리인의 눈물과 슬픔을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죽음의 동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가 만약 선과 정의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에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그도 사는 것을 배워 대지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웃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ㅡ 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하늘 아래 유일한 것은 “우주의 에너지 총합은 일정하며 에너지를 사용하면 엔트로피 총량, 즉 무질서도는 계속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뿐이다. 아인슈타인도 인정했듯이, 부분적으로 닫힌 세계인 지구에서 이 두 가지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에너지는 입자로 전환될 수 있고, 그 입자들이 모여 존재를 이루기 때문에 우주의 에너지 총합은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의 총합과 같다. 또한 자연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위는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의 총합이 일정한 안정된 상태에서 어떤 존재가 생존이나 기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량의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럴 경우 다른 존재들은 그만큼 무질서해진 상태(엔트로피)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들이 생존에 필수적인 질서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결국 모든 존재는 생존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만큼의 에너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물론 모든 사용된 에너지가 100% 엔트로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어서 쓸모없이 소비되는 에너지도 있다. 따라서 에너지 총합이 일정한 지구에서 에너지 사용은 평균적인 수준이라도 그 이상의 엔트로피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지구는 부분적으로 닫힌 세계, 즉 에너지가 입자로 전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세계여서 모든 존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한정돼 있다. 결국 모든 존재들이 에너지 확보와 사용을 위해 득달같이 달려든다면, 그 빌어먹을 홉스의 명언처럼 세상은 에너지 사용을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록 그의 명언이 열역학 법칙에 내재된 심오한 원리, 특히 엔트로피에 대한 이해에서 한참 벗어나 있지만, 그 두 개의 법칙은 인간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입자로 이루어진 내가 부와 권력 따위를 얻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면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만큼 늘어난 엔트로피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같은 양의 에너지가 허용되지 않으면 그들은 생존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불평등에 처하게 된다. 이런 논리는 나를 넘어 가족, 사회, 세대, 국가 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평균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얻을 수 있는 모든 부와 권력에는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고, 아예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부와 권력을 획득하고 세습하는 불로소득은 반드시 막아야 할 최악의 범죄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최대한 평균에 수렴하는 부와 권력의 재분배는 지극히 당연한 우주의 법칙이며, 인간에 의한 의도적이고 불순한 개입만 없다면 그렇게 이루어진다. 



내 삶도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창 너머로 가을 단풍이 붉은 노을에 속절없이 젖어들 때, 한창 때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개처럼 눈이 맞아 그 뜨겁고 끈적끈적한 욕망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자지러지듯 아버지 몸에서 어머니 자궁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어머니 배속에서 10개월을 머물렀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기까지 4년 동안 (가끔은 어머니의 사랑을 아버지에게 양보했을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어머니와 가끔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그분들의 말에 따르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고 한다. 



헌데 나에게 허락된 평균적인 삶은 그로부터 3년 후까지만 허락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유난히 건강한 신체를 물려받은 동생이 약 먹은 콩나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에 비해, 7살이 된 나는 아주 조금씩 성장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나의 뇌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육체적 성장이 둔해지면 둔해질수록 이놈의 뇌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행보를 거침없이 보여줬다. 한 번 보거나 들은 것은 자동 저장돼 삭제되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고, 특히 수학적인 지능과 추상적인 직관, 논리적인 상상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명석해졌다. 대략 100억 개에 이르는 뉴런과 무려 30개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가 연결돼 대뇌피질에 셀 수 없이 많은 이랑과 고랑을 만들었다. 그렇게 3년이 더 흐르자 육체와 뇌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 사용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관한 최신 물리학 이론이나 방정식도 쉽게 풀어내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떤 목적으로든 뇌를 사용할 때마다 평균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마치 제국주의시대의 강국들이 주변의 약소국들을, 내부의 강자들이 지방을 식민지화한 것처럼 뇌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육체가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이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만 놓고 볼 때, 나는 마치 고성능 뇌의 활동을 위해, 육체적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대한 억제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조인간을 연상시켰다. 뻥의 대가인 할리우드에서도 나 같은 인간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적 기능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속히 퇴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뇌의 기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육체적 기능과 움직임이 느려졌을 뿐,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역할은 제대로 이행됐다. 오감도 살아 있으며 피를 공급하는 심장도 산소를 제공하는 허파도, 음식으로부터 각종 영양분을 축출하는 위와 장의 작용도, 소화효소를 분비하고 각종 독성을 걸러내는 간의 작용도 제대로 이루어졌다. 당연히 땀과 각질도 오줌과 똥도 제대로 나왔다. 이 모든 것들이 평균보다 느리게 나왔을 뿐이고, 평균적인 인간보다 상당히 적은 에너지로 실행됐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모든 신체적 작용이 뇌의 발달을 제외하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데 최적화되어 간 것이었다. 이는 마치 음식과 인조 영양제를 통해 얻게 된 신생 에너지와 육체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 에너지 총량을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배분하는 살아 있는 컴퓨터를 방불케 했다.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에 적합한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는 진화처럼, 나라는 존재는 한정된 에너지를 이용해 최적의 생존 방식을 찾아가는 뇌에 의한 육체의 착취사였다. 그것은 세상이 에너지 사용에 따른 엔트로피의 증가를 최대한 조절해 전체적 균형과 생명을 연장하는 것과 동일했다. 



가끔씩 감기나 상처 때문에 육체적 문제가 발생해 에너지 배분에 일시적 문제가 생기거나, 유리처럼 섹시한 가수나 상하의가 실종된 채 선정적인 춤으로 도배하는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그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구태여 꿈에까지 찾아온 그들이 고맙게도 나를 유혹하는 등의 돌연변이적 사건 때문에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감당하지 못해 제어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이어진 음양의 피드백을 통해 에너지 제어의 효율성은 높아져 갔다. 인류의 역사가 지구적 차원의 에너지와 물질의 끊임없는 프로세싱과 그에 연관된 정보의 피드백 및 재프로그래밍의 과정인 것처럼 나의 삶이란 뇌의 발전에 사용될 에너지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육체의 기능을 최소의 에너지로 수행하고 늘어난 엔트로피를 최대한 통제하는 제어 혁명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이 더 흘러 온라인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수학문제를 풀어낸 15세에 이르러서는 내가 나의 상태를 인체공학적으로 반영한 의자에 앉아서도 채 10분도 버텨낼 수 없을 만큼 육체적 기능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쩌면 ‘급격히 줄어들었다’보다는 ‘철저하게 제한됐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의자에 앉아 있는 10분 동안에도 자세를 유지하는데 사용될 에너지가 뇌의 활동에 동원됐기 때문에 근육에 사용될 에너지는 철저하게 제한될 수박에 없었다. 그렇다고 육체의 기능이 루게릭병처럼 무력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오감에 가해진 자극이 뇌에 전달되는 속도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지 갈수록 느려졌을 뿐이다. 즉, 피부나 신체에 가해진 자극이 신경망을 타고 뇌로 전달되는 속도가 굼벵이 기어가듯 느려서 에너지 소모가 최소화됐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외부 자극에 대한 뇌의 인지과정에 상당한 시간차를 보이게 돼 신체적 반응이 갈수록 느려졌다.



하지만 인지와 반응 사이의 시간차라는 그 지랄 맞은 느낌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정상인데 신경이 전달되는 속도가 느려서 평균보다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뇌는 이미 그 다음 반응을 하달했지만 앞에 보낸 내용이 아직 현실 세계에 반영된 상태가 아니었으니, 오감에 작용하는 모든 것에서 나는 상당한 지체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몇 초 전의 과거를 현재처럼 사는 사람이 되었다. 이를테면 내가 실제로 귀신을 봐도 몇 초 후에나 귀신인줄 알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눈에서 시상하부로 전달된 시각 정보가 느려서 뇌에서 이루어진 반응이 현실화되는 데는 것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귀신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이 느릴 뿐이다, 귀신의 체면이 말이 아닐 정도로.



어떤가? 상상만 해도 지랄 맞지 않은가? 귀신은 또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내가 놀라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입증되는 것인데, 죽어서도 풀지 못한 이승의 한 덕분에 얻게 된 차원 이동과 두려움 유발 능력의 결정체인 자신을 보고도 심하게 골골해 보이는 내가 몇 초 후에나, 마지 못 해 놀라는 표정이나 반응을 보인다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는가? 이것은 그래도 양반 측에 속한다. 문득 과일을 먹고 싶어 과도를 들었는데, 어 이거 거꾸로 잡았네? 그것도 시퍼렇게 날을 세운 후 처음으로 잡았다면 가뜩이나 약한 피부에 상처가 나고 거기서 피가 흘러나오는데, 그제야 거꾸로 잡은 걸 알 수 있다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이불에 피고름이 베 나와도 그것이 아픈 것임을 알기까지 몇 초간의 시간이 걸린다면, 게다가 그것을 눈으로 지켜보고도 즉각적인 인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지랄 맞은 시간차에 돌아버리지 않겠는가?



또 이것은 어떤가? 등산을 하는데 앞선 놈 때문에 수박만한 돌이 떨어져 머리가 깨지고 난 뒤에야 ‘어, 내 머리가 깨지겠는데?’ 해봤자, 앞선 놈이 고의로 그랬는지 단순한 사고인지 살아서 밝힐 수나 있겠는가? 사랑하는 여인과의 키스는 상상할 수도 없다. 상대는 달아올랐는데 나는 몇 초 뒤에야 키스했다는 것을 알고 그제야 달아오르면 상대의 입장에서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내 반응에 실망한 상대가 입술을 떼는데, 뒤늦게 달아오른 내가 설왕설래를 시도라도 했다면.. 아, 그 다음의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다. 키스를 네이버나 구글에서 배운 놈도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도 몇 초 전의 생각에 반응하는 육체란 정말 지랄 맞은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05 08:03 신고

    시작부터 좀 난해하긴 하지만
    열심히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05 09:53 신고

      네, 앞 부분이 많이 난해합니다.
      퇴고를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과 체력이 안 돼 그냥 올리니 이해해 주십시오.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처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선진국과 경제대국들이 아예 대놓고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라고 해도 특별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돈을 푸는 것 이외에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싸움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냥 당할 수만은 없는 신흥국들도 이에 맞대응하고 있습니다. 제로섬 게임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환율전쟁은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고속열차를 떠올릴 만큼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를 모릴 리 없는 이들의 환율전쟁은 현재의 경제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 국면에 이르렀는지 반증해주고 있습니다. 





경제 불황에 따른 유래 없는 유가하락(경제 불황의 직접증거)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미국의 세일가스에 대항해 현재의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위험천만한 환율전쟁에 이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킬 에너지전쟁도 사활을 건 치킨 싸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유가 하락이 경제 활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각국 정부에게 환율전쟁을 부추기는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경제 후발국의 수익원인 각종 원자재 수익률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무역교역량이 늘어도 환율전쟁 때문에 기업이익이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내수시장이 크고 견고한 나라라 해도 세계화의 영향으로 외부변수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유가가 떨어지고 원자재 가격도 하락하는 상황에서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 그들 모두가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인도 등의 다른 후진국으로 이전하지 않는 것 등은 미약한 미국 경제의 회복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신흥국의 경제성장도 인플레이션을 빼면 제대로 된 성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을 전 세계적인 구조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제 불황의 근본 원인은 부의 불평등이 너무나 커져 소비를 받쳐줄 중하층(전체 인구의 90%)의 지갑이 얇아진 것이 결정적입니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라하고 출산율이 저하하고,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령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더해져 세계 경제는 끝을 모르는 나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각국 정부는 공격적으로 경기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돈을 풀어 새로운 신용을 창출한다고 해도 경제의 미래가 좋지 않아 천문학적인 빚만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종 대부자인 국가도 부도가 날 수 있음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여러 번 증명됐습니다. 빚이란 원금이 정산되지 않는 한 후대로 이어지고 눈덩이처럼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반전의 계기도 나올 수 없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어져온 지금의 체제를 완전히 뒤엎지 않으면, 세계 경제는 파국의 지점까지 달려갈 것 같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미 총알에 올라탄 형국입니다. 세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공동의 합의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시기를 놓쳐버렸지만, 그 지구온난화가 천문학적인 부실을 털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사실 자본주의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습니다. 각국 정부는 관성에 젖어 파국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부실을 터는 방식으로 최고의 것이란 중하위층을 생존의 위기로 내모는 대불황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수십억 명을 위기로 내모는 인위적인 빚잔치를 할 수 없으니 경제상황에 떠넘기는 것이지요.  





거대 기업과 슈퍼리치, 거대 자본에 고율의 누진세를 물려 전 세계적으로 소비시장을 늘리기 위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면 지금의 불황을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음에도 특권화된 기득권은 어떤 불황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파국을 피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부수적 피해(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될 비대칭적 종말)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지요.



다음 정권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경기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을 파기하지 않은 채 담뱃값처럼 간접세 형태를 늘리는 것을 넘어, 이제는 정규직의 과보호(최경환의 중규직 발언 논란)를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임기 동안 파국의 시기를 미뤄놓고 보자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현장의 소리를 지난 30년 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내몬 IMF 환란과 2008년의 경제위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채와 불평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한류와 창조경제도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모두 다 허상에 불과합니다. 초국적 기업집단 삼성그룹에서 4개의 기업을 팔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되새겨 보십시오. 이제는 돈이 안 되는 계열사를 끌고 갈 의지도 없고, 미래의 반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겠다는 뜻입니다. 무서울 정도의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특권화된 기득권층이 문제 해결의 방법을 갈 데까지 가보자로 정했다면, 이제는 혁명적 저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폭력적 혁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와 언론(특히 방송)이 타락한 현실에서 서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혁명의 역사를 봐도 미국혁명(이들은 혁명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외에는 성공한 혁명이 없습니다.



결국 환상의 유토피아를 상정한 마르크스적 폭력혁명이란 불가능한 옵션입니다. 촘촘히 짜진 전 지구적 체제가 이를 원천방지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체제를 뒤엎을 수 없다 해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특권화된 기득권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을 바꿀 수 있을 정도까지는. 



다행히 현재의 체제는 최대의 강점이 최대의 약점이라 이것이 가능합니다(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1. 공수래공수거 2014.12.04 08:19 신고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서서 박치게 싸워도 이길까말까 한데
    구경만 하고 있네요..대가리들부터

  2. 뉴론7 2014.12.04 09:22 신고

    요즘 경기도 안좋고 담배값 인상에 머리 아포요

    • 늙은도령 2014.12.04 16:41 신고

      그 모든 것이 서민들의 분노를 증가시킬 것입니다.
      어차피 힘겹게 살아가는 것, 명분을 쌓아가는 것으로 생각하시죠.
      역전의 시간이 올 것입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프롤로그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다.


                                                                              - 존 롤스의 『정의론』 중에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면 정의가 우리를 평등하게 하리라. 조금씩 의견을 달리하는 우리 세 사람은 이 명제에 합의했고 이의 실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기로 했다. 창조주로써의 신은 여전히 죽음만 붙들고 있을 뿐, 인류의 삶에 간섭하려 하지 않기에 우리 세 사람은 세상이 별로 값을 쳐주지도 않는 목숨을 내놓는 대신에 불의와 탐욕, 특권과 반칙으로 얼룩진 세상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작업에서 신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우리의 계획에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가 필요 없기 때문에 특별히 국민의 세금이나 단기 외채가 필요하지도 않고, 보복과 학살의 명분이 됐지만 나중에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밝혀졌어도 아무런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는 대량살상무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와 자연을 파멸로 몰고 가는 탐욕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단 하나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지난 250년 간 성장의 담론에 숨겨진 속도의 파시즘을 넘으려면 그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영워드 ㅡ 모든 것의 시작 1





P.S.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문학적인 소설은 아닙니다. 3년 전에 쓰다가 너무 재미없고 힘들어서 중단한 것인데, 너무 전문적인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초반이 특히 그러합니다. 제대로 된 퇴고도 되지 않았고 중간에 멈춘 소설이라서 연재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연재 중에 제 건강이 더욱 좋아지면 완결까지 가고 싶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는 제가 공부한 것의 모든 것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동안 글을 너무 많이 올리지 못해 이 소설을 올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최소 한 달 이상은 매일 글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양이 확보돼 있으니 퇴고와 상관없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는 중에 건강이 더욱 좋아지기만 기원합니다.  


 

                                           


  1. 여강여호 2014.12.03 18:24 신고

    늙은도령님의 생각을 소설로 읽을 수 있다니...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읽어볼랍니다.

    • 늙은도령 2014.12.03 18:40 신고

      앞 부분이 많이 어려울 것입니다.
      물리학과 진화론, 경제학과 뇌과학 등이 많이 거론되기 때문입니다.
      초반만 지나면 소설다워질 텐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04 08:13 신고

    기대가 되고 저에게 많은 공부도 될듯 합니다



이 땅 특권층의 원조인 박정희의 딸로서 대통령에 오른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현대의 대통령은 개인의 철학이나 정치 여정, 국민과의 소통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중매체와 권력기관을 이용한 정치마케팅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님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전과가 14범이나 되는 이명박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매스미디어와 보수언론을 총동원한 정치 마케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매스미디어와 결합된 정치마케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는 평범한 정치인을 과대 포장하고 매끈하게 다듬어, 신화적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매스미디어를 동원한 정치마케팅이 대한민국을 기업으로 치환시킬 수 있었고, 대통령 선거가 최고의 CEO를 뽑는 것으로 변질됨에 따라 이명박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듯이, 독재자인 아버지를 압축성장의 신화를 통해 민주화의 포석을 깔아놓은 전설의 지도자로 재포장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딸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저급한 정치공학적 술수들이 더해졌지만, 핵심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국정은 국민에 대한 공약 파기와 인사 실패의 연속이었고, 온갖 불평등과 각종 부조리가 양산됐으며, 나라는 회복 불가능한 빚의 굴레에 빠졌들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사라진 뿌리까지 부패한 나라가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정윤회 관련 문건은 국정의 난맥상이 금단의 성역, 청와대 내부에서 가장 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문건과 관련된 것들이 검찰 수사와 보수와 관변언론의 물타기와 왜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 등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청와대마저 대통령이 관리하지 못하는 권력의 암투장이 된 것입니다.



제대로 된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기업 개혁이 필요하고, 누구도 건들지 못했던 군대의 온갖 비리를 잘라내고, 무너지는 경제를 민주적으로 재구축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고, 미래를 위해 출산율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것 등에 전념해야 함에도, 청와대 내의 더러운 권력 암투에 따른 인사난맥상과 국정 운용의 비효율성이 도를 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만들어졌건, 스스로의 힘으로 대통령에 올랐건 간에 정윤회 관련 문건의 등장은 대통령의 정치력과 국정 장악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당정청이 보여주는 불협화음과 국정난맥상은 바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음을 정윤회 관련 문건이 말해줍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의 유출에 방점을 둔 권위주의적이며 독선적인 발언이나 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무능력의 정수입니다.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사태의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제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시지요. 능력이 안 된다면,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과 야당과 시민단체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경청하십시오.



권력 놀음에 취해서 저급한 권력 암투를 불러오지 마시고, 청와대에서 나와 거리의 얘기들을 들어보십시오. 청와대 내부에서 이런 암투가 벌어질 정도면 그 진위 여부를 넘어 국정 난맥상은 현재의 인물들로는, 지금까지의 대통령이 보여준 국정 운영방식으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권력은 하루살이 같은 것입니다. 여론이란 돌변하는 것이고, 지지란 얼마든지 철회가 가능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이제 자신을 바로 보시지요. 당신의 권력이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대통령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 놀음과 암투에 취한 자들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의 미스터리’도 결국은 이런 자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탄생의 시점부터 이 정부를 ‘찌라시 정부’라 하는 것도 돌아보시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부터 시작해 기레기 언론의 한바탕 난장을 거쳐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의 단식까지 찬찬히 돌아보십시오.



조기레임덕, 하야, 탄핵까지..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세계일보가 정윤회 관련 문건을 보도하면서, 추가로 폭로할 문건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언론을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권력은 하루살이 같은 것입니다. 철벽 같았던 닉슨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불법적인 도청이 아니라 대통령에 오른 후에 한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청와대가 그러하고, 대통령의 대응이 그러합니다.  



                                          


  1. 공수래공수거 2014.12.03 08:50 신고

    역사이래로 가장 찌질하고 비열한 권력투쟁을 보는듯합니다
    지도력없는 군주아래의...

    • 늙은도령 2014.12.03 16:33 신고

      지도력만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 사람을 믿지 않아요.
      심지어 청와대 수석까지도.....

  2. 뉴론7 2014.12.03 09:10 신고

    요즘 또다시 떠들썩 하죠 머리가 아프네요

    • 늙은도령 2014.12.03 16:33 신고

      지금까지 나온 것이 빙산의 일각인데도 그러니 얼마나 더 시끄러울까요?



오늘 캐치원에서 ‘크로싱오버’라는 영화를 받습니다. 미국에 불법적으로 입국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죽음과 추방, 이별과 정착, 검붉은 희망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으로 대표되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의 슬픈 열망을 담았습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끈질기고 모진 희구는 죽음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 각종 고통과 비극으로 점철된 인생에서 벗어나려는 인간 해방과 구원의 열망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최후의 낙원인 유토피아가 세상과 인생의 비극과 모순들이 만들어낸 이를 수 없는 도피처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닌 현재의 미국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칸드림으로 대표되는 기회와 축복의 땅이라는 ‘크로싱오버’는 그 이면에 자리한 회색빛 현실로 인해 너무나 척박한 희망과 풍부한 절망과 여밀 수 없는 아픔에 대해 얘기합니다. 영화는 희망으로 포장된 절망의 박스를 채워갑니다.



영화에 나오는 불법체류자들 중에서 퇴색된 유토피아에 정착한 누구도 행복한 시민이 되지 못합니다. 일부에게는 희망의 약속을 열어주지만 거기에도 가혹하거나 영원히 감추어야 할 비극적 대가(가족의 해체와 죽음, 추방, 연인과의 이별 등)가 뒤따랐습니다. 관계는 망가졌고 사랑은 깨졌고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유토피아가 좌절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기술 발전과 국가 간의 차이에 따라 드림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이 땅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을 모방한 코리안드림이 형성돼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뉴스와 다큐멘터리, 시사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고 듣는 코리안드림은 각박한 현실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전도된 유토피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우상사와 삼성물산을 합쳐놓은 듯한 ‘미생’은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의 얘기여서 많은 분들에게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러나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은 유토피아이기도 합니다. 



장그래는 '우리 회사'라는 곳에서 선배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꿈꿉니다. 계약직 사원인 그에게는 정규직으로서 '우리 회사'의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 젊은 날의 유토피아적 소망일 것입니다. 그가 정규직에 되던 되지 못하던, 그는 현실적 한계상황에 내몰리면서도 꿈꾸는 권리는 아직 잃지 않고 있습니다. 청춘이라서 아픈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꿈이라도 꿀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지요. 



장그래는 경제가 어렵다고, 기업이 힘들어한다고ㅡ누구와 무엇 때문에 경제와 기업이 어려워졌는지 따지지도 않고ㅡ계약직 정규직을 만들어 노동유연화를 활성화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와 집권 여당의 대기업 사랑은 장그래 같은 수많은 기간제 계약직들을 계약직 정규직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기존의 수많은 정규직들이 계약직 정규직으로 추락할까요?   



삶이란 바로 그 1%의 빌어먹을 희망이 99%의 압도적인 절망을 수용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삶이 숱한 실패와 좌절로 얼룩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성공한 것에서도 우리는 압도적인 절망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다음의 국면과 이어질 수도 있는 국면과, 그 이전에 그칠 수도 있는 국면에서는.



그렇게 단위가 커갈수록, 시간이 쌓일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능력의 한계에 이를수록 성공의 가능성은 작아지고 줄어들며 퇴색됩니다. 실패의 확률은 정반대로 늘어나고 쌓이고 완고해집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내려놓거나 비워내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적인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현명해져가고, 자신과 삶과 타협함으로써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배워갑니다. 우리는 희망과 성공이 아닌 체념과 절망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인생은 분명 비극입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가끔씩은 행복해지는 비극입니다. 자신과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하지 않으면 이런 지혜도 얻지 못하는 압도적인 비극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에 열려있는 삶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갖고, 그보다 더 갖고, 넘칠 정도로 가져서 세습화된 부의 제국을 구성한들, 그렇게 영속되는 가문의 삶을 이루려고 해도 그들은 인생의 비극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최고의 회사에 오른 애플회장 잡스의 때이른 죽음이나,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심근경색(사실상의 죽음)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부의 제국도 절대 유토피아로 이르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박근혜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간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 사이에는 너무나 거대한 간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처럼.



인간이 철학을 잃어버리고,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및 계몽의 이성ㅡ이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ㅡ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한 우리는 1%의 빌어먹을 희망을 위해 99%의 압도적인 절망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진 게 삶이고, 삶은 일단 낚아챈 먹이는 놓아주는 법이 없으니까요. 



헌데 말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매스미디어와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삶은 황폐해지고, 관계는 단절되고, 전쟁과 테러는 줄어들지 않고, 직장과 직업은 불안해지거나 단기화되고, 범죄와 이혼이 늘어나고, 불평등과 차별은 강화되고, 가족은 해체되고 결혼은 선택이 됐으며 비혼의 가장들이 늘어났을까요? 



현실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유토피아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미몽의 종교와 돈과 권력에 휘둘리면서 우리는 해방과 구원을 꿈꾸게 됐을까요? 왜 인류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해서 파멸과 종말을 두려워하면서도,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라는 환상의 세계를 꿈꾸지 않은 적이 없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분명 해방의 역사였는데 우리는 더욱더 현실과 기술의 노예로 전락하게 됐을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리로 끌어왔을까요? 어떤 것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까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빚을 내고, 자연과 자원을 고사와 고갈 직전까지 끌어다 썼으면서도 수십억 명이 절대 빈곤선에서 허덕이고, 기본적 자유과 권리마저도 행사할 수 없는 세상이 됐을까요? 



노동의 완전한 종말을 고하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며 덜 떨어진 미래학자와 테크노 낙관론자의 장밋빛 전망에 한 가닥 희망을 두는 것일까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호모 루덴스의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는 최저생활에 만족하라는 기본소득에 최후의 희망을 두는 것일까요? 그밖의 다른 미래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쉬운 타협을 선호하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게 싸구려가 아님에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02 08:21 신고

    미생이 요즘 화제입니다
    전 예전 생각이 날까봐 일부러 안 볼려고도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건강 유의하세요^^

    • 늙은도령 2014.12.02 16:28 신고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건강을 생각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건강하시죠?

  2. 백순주 2015.09.19 05:09 신고

    저는 선생님의 글을 상당부분 이해하지 못하므로(지식이 짧아서요) 공감할 수 있는 제 나름의 방법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은 내려놓거나 비워내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적인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음에 와 닿는 한 귀절을 찾아내 제 생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이미 학습된 선택이었다니 절망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사오기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이 곳에 와서 제가 느끼는 행복은 '불편함'인는데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니 저도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비가 줄어(마땅히 뭘 살 곳이 없습니다) 좋다고 말합니다.그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결정을 합리화 하는 과정입니다.

    행복을 찾습니다.갈망합니다.
    그러다 현실에 안주합니다. 변명합니다. 지지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고 적응하고 살면 그만이지 했는데...
    행복하려면 비워내고, 내려놓으라 했는데...

    • 늙은도령 2016.01.20 05:29 신고

      저는 위대한 석학들의 철학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던하게 살려고 합니다.
      구태여 행복이나 그런 것들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삶이란 답이 없어서 평범해도 화려해도 가난해도 부유해도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꼭 성인이 되고자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나를 높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너무 행복한가를 묻지 않다보면 그런 대로 하루는 흘러가더군요.
      하긴 저는 워낙 최악의 상황을 오랫동안 유지해 더 나빠질 가능성(그것은 곧 죽음을 말했기에)은 별로 없습니다.
      혹시 그것이 빨리 와도 지금의 삶이 덤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하는 일에 충실하는데만 신경을 집중합니다.
      꼭 행복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독한 아픔과 슬픔도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거든요.
      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에 집착하면 할수록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포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것, 지독히 힘들지만 그것 이상을 할 방법이 없다면 그쯤에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비극으로 본 《오이디푸스》의 작가 소포클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말할 수 있는 어떤 의미보다도 낫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좋은 것은 일단 태어났으면 왔던 곳으로 가능한 한 빨리 되돌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지고 와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태어났으면 빨리 죽는 것이 태어나지 않는 것 다음으로 좋다고 말할 정도니 소포클래스가 보는 인생이란 비극 그 자체입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삶에 충실하고, 뜻하는 바를 이룬다 해도 인생이 비극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한계까지 탐구한 위대한 철학자 칸트도 인생이란 “최상의 인간조차도 속 태우면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집행유예와 같은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죽는 인간의 삶과 정신(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 도구적 이성 등)을 사유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위대한 성찰에 이른다한들 인생이 행복일 수는 없겠지요.



철학은 반드시 죽는 존재인 ‘나-자아’라는 ‘인간-주체’를 보편적 개념인 ‘인류-역사’라는 종으로 확대함으로써 불멸성을 획득하는 사유의 과정이자 결과이지만, 철학자는 보편적 진리나 인류의 유토피아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산고의 고통에 비견되는 치열한 사유를 이어가야 합니다.



사유의 결과는 말이나 언어로 표현되는데, 치열하고 엄밀한 사유 때문에 “표현은 사유와의 씨름에 지치고 사유는 표현 때문에 녹초가 되지만, 표현은 사유를 통해 자체의 우연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철학적 결과물은 하나도 허투루 나올 수 없으며 정말로 고독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철학자의 삶은 고독하고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치밀하고 복합적으로 짜진 각고의 사유를 통해 나온 이론이나 진리와 사상이 반대가 불가능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 대가일수록 그 후대에 의해 가혹할 정도로 집중포화를 받습니다. 종교와는 다른 철학은 절대적 사유란 독과 같은 것이어서 폐쇄적이면 안 되기 때문에 쇄도하는 반대담론과 일전을 치러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앞의 철학적 결과물은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철학자에게 인생이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상이며, 평생이 집행유예의 기간처럼 괴로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인류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해 영원히 이어질 종으로서의 인간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류를 고양시키지만 자신의 삶은 정반대의 고독 속으로 빠져들어야 합니다.







건강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고 있는 저로서는 지금의 삶이 보너스로 주어진 삶이라 생각했기에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을 생각하면 온갖 생각과 상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특히 지적공동체를 이루어보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암세포를 다 잡았지만 내일 찍을 MRI를 통해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온다 해도 이런 정도의 건강이라면 지적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지적공동체를 이루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판입니다. 암을 한 번 이겨냈지만, 생각보다 몸이 많이 약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을 뽑은 것이 정윤회 문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아픈 동안 정치에서 잠시 멀어진 채 철학책들을 집중으로 읽었고, 그 동안 뇌 속에 방치해두었던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검진결과가 좋게 나오고 체력이 회복되면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글로 올길까 합니다.



대가는 아니더라도 대가로 향하는 모험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글과 생각과는 다른 새로운 주제의 글들을 쓰고자 합니다. 경제는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어 세계가 공멸을 벗어나는데 합의할 때(향후 6~8년)까지 최악으로 향할 테니, 어떤 글도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생존이 중요합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돈이라도 저축해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만족을 몇 년 뒤로 미루고 생존에 유리한 것을 확보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파국의 시기에 죽어도 좋다는 사람은 지금처럼 소비해도 됩니다.



전세계 상위 10%에게 60~90%의 종합소득세를 누진적으로 물리고,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려 전세계적 경쟁을 완화시키지 않는 한 6~8년 후의 파국은 종말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회복불능의 상태 말입니다. 경제에 대해 다른 어떤 정책도 현재의 사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인류는 종멸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권은 포기했습니다. 특히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면 정치는 돌아보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인간적으로 문재인을 믿지만 그를 비토하는 세력이 너무나 거대해 그가 노무현 같은 기적을 이루어낼 에너지를 분출해낼지 자신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다음의 정부는 제2의 IMF를 겪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보수성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조차 그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자업자득이지만 할 말 다했죠. 서민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정부와 양당의 합의는 신생정당의 출현이 간절함을 말해줍니다.







이런 현실에서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저는 하늘이 허락해 건강을 회복시켜준다면, 지금까지의 글과는 달리 당파성에서 벗어나 철학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 각종 기득권과의 싸움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부디 형편없는 인생이고 삶이지만 주의 은총이 있어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는 분명 세 번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생각보다 건강 회복이 더디고 장과 허리상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허리상태는 침을 계속 맞으면 좋아질 것 같은데 체력이 버텨주지 못해 오히려 역효과를 받습니다. 침치료는 접었고 일단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가 없다는 것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힘들더라도 운동량을 늘려 체력을 회복하고 동시에 허리치료에 집중하면 내년 2월초부터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실패와 좌절, 고통과 병으로 보낸 시간이 장장 40여년이라 정말 내가 건강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아득합니다.



저의 후원자인 동생도 이번 정기인사에서 삼성을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잔인한 기업의 말도 안 되는 경영권 승계 때문에 수많은 삼성맨들이 맨붕상태입니다. 참 지독한 기업입니다. 물론 애플에 비하면 덜하지만, 지금의 삼성은 애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생이 삼성을 떠나면 저의 융단폭격이 강행될 것입니다.



1월 말쯤에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역에서 후원자 모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지적공동체의 대체적 줄기와 여러분들의 뜻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아프더라도 반드시 참석할 테니 어떤 분이라도 광화문이나 강남역에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으면 대신해주셨으면 합니다.



계약금이 필요하면 보내드릴게요. 그때 만나서 이러저런 서로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모두 연말 잘 보내시고 2014년의 마지막 달도 보람차게 보내십시오. 안산합동분양소에 한 번 가봐야 하는데...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2014년은 분명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죽음이 대한민국을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며 그들의 사회적응에 따뜻하게 맞아줘야 합니다. EBS에서 ‘가족의 쇼크’로 세월호 부모님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반영했는데 많이 울었습니다.



인간은 망각이 동물이지만 선택적 기억은 더욱 선명히 커갈 수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을 잊지 말고 그들의 삶에 기도를 하면서 작은 도움이나 됐으면 하네요. 세월호 참사는 분명 대한민국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몫이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시대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다음 번 글로 올리겠습니다. MRI 등이 힘들어 며칠 후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산다는 것, 즉 인생이란 비극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출발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더더욱 비극입니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놓은 신제품을 통한 순간순간의 만족을 통해 그런 만족이 영원히 될 것 같다는, 죽음을 회피하는 방식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헤겔이 비판했던(추종하기도 했던) 칸트를 푸코와 하버마스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계몽적 이성에 적대적 이성을 대립시켰던 니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비로소 이 시대에 맞게 풀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1월말이면 제 공부가 어느 정도 끝에 이르러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지적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ㅡ그것이 성공을 거두던, 실패하던ㅡ글쓰기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저 스스로도 하나의 이론과 체계를 갖추고 보편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독주분들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드리고,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모여서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헤겔을 헤겔좌파와 헤겔우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을 넘어 마르크스적 관점과, 칼 폴라니,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하버마스와 무엇보다도 벤야민과 푸코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리다와 라캉 등은 아직 제가 공부가 부족한 상황이라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적공동체를 이루면 그 다음의 일은 잘 진행될 것을 자신합니다. 솔직히 모임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제 주특기이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단단해지면 그 이상도 가능하니 한 발 한 발 목표를 향해 나갔으면 합니다.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대안언론이나 공부방 등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지적공동체를 구성하면 제가 제일 게으르고 문제가 가장 많겠지만, 그래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무튼 저를 믿고 기다려주시는 분들게 깊은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이 상태로 2주 정도 지나면 건강도 나아질 것 같아, 어느 분이든 용인에 오시면 제가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서민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이 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1. 공수래공수거 2014.12.01 08:29 신고

    쾌차하신 소식만 기다리겠습니다

  2. 박창식 2014.12.01 13:49

    참으로 절절하게 아픔으로 오는 글을 읽으며
    우선은 님의 건강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이미 기둥째 흔들리는 이 나라에 희망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되겠지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3. 덕산 2014.12.01 15:40

    요즘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회현상을 보면서..
    어떻게 까지 여기까지 내몰렸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요즘 기업들도 살빼기를 하고 있는지라.. 회사 일을 보는것만으로도
    넘 바쁘게 지내네요.

    무엇보다 빨리 건강회복하시여 여러가지 지식 나누어 주시길 기다려봅니다.

  4. 여강여호 2014.12.01 19:42 신고

    지금은 다른 생각은 다 덮어두셨으면 합니다.
    건강부터 빨리 회복하셔야지요.
    죽음이라는 표현이 많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건강 완전하게 회복하시고 좋은 글로 뵈었으면 합니다.

  5. 바다구름 2015.01.06 06:40

    부디 건강을 회복하시고
    지금까지 해 오셨던 것처럼
    열심히 또 정확하게 세상을 해부하는
    좋은 글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6. 하늘이 2015.02.12 12:00

    어제 즐겨 찾기에 도령님을 올려 놓았습니다.
    도령님의 글을 읽으면 제안에 본성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저는 다른방법으로 세상을 힐링하고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가 숨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안에 신성을 깨우는 작업~
    항상 귀한글 감사드리며 건강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7. 도락산송이 2016.01.26 13:07

    모든 버섯은 항암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표교버섯을 햇볓에 말려서 음식에 넣어 먹으면 최고라고 합니다. 버섯을 매일 조금씩 드세요
    마늘도 좋습니다 통째로 익혀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통씩 드세요 (껍질을 까서 마늘을 통째로 음식에 넣어 익혀서 드세요)
    지난번 얘기한 봉지커피 발효식초 계피가루를 해서 드셔 보세요 010-5464-7160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중요 합니다
    날이 풀리면 운동삼아 곡괭이를 가지고 가까운 산에 조금씩 하다가 한두시간씩 산나물 도라지 더덕 같은걸 캐서 드세요
    못 캐면 운동 잘 했다고 생각 하시고, 이렇게 하면 큰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도 자연 치유 됩니다
    제가 집을 나와 있어서, 그렇지 않으면 가끔 내려 오시라고 하겠는데요

    • 늙은도령 2016.01.27 00:42 신고

      네, 운동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알려주신 것을 하기 위해 계피를 구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제기한 정리해고 무효소송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법원의 보수화가 지나칠 정도로 심화됐다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이 나라가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됐다는 것입니다.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버린 대법원의 판결에서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혹시 대법원에도 줄푸세를 몰아붙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레이저가 발사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 유병언과 관련된 사람들과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판결을 지켜본 세월호 유족들에 이어 이번에는 쌍용차노조까지, 기득권에 속하지 못한 국민들의 아픔과 죽음이란 정의의 전당에서도 차별적 법리해석을 적용 받나 봅니다.  



서민에게 경제가 좋았던 적은 없었고, 법 앞에서의 평등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사회적 타살'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쌍용차노조원과 가족들의 불행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나 봅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먹튀를 한 중국기업에 면죄부를 발행함과 동시에 파업을 주도한 노조원을 상대로 한 쌍용자동차의 손해배상청구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보수적인 사법부의 보수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타락과 부재가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하루입니다.  

  1. 공수래공수거 2014.11.14 08:31 신고

    레이저를 맞은듯 하군요

    중국이 한마디 했겠지요 ...

  2. 참교육 2014.11.17 09:16 신고

    약자가 설 곳은 없습니다.
    권력의 본질적으로 자본의 편입니다.

  3. 뉴론7 2014.11.24 06:29 신고

    잘보고 감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제공해야 하냐며, 선택적 복지로 돌아가자는 집권세력의 논리에는 한 가지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부에 따른 반인륜적 차별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수 세대에서 수십 세대를 먹여 살릴 만큼 부를 축적한 극소수의 후손들에게 돌아갈 쥐꼬리만도 못한 복지예산을 빌미로, 그들의 엄청난 부를 인정해주는 것이 선택적 복지의 핵심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부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식품과 제품이 넘쳐나는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하루 1~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30억 명에 이르며, 하루에도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소수에게 독점되는 한계가 없는 부의 불평등과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는 정치철학의 부재 때문입니다. 





인류는 보편적 복지를 하고자 하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단지 한 사람과 한 가족, 한 가문의 수중에 수십조에서 수백 조에 이르는 부가 집중돼 있어서 그렇지, 이들의 부에 제대로 된 세금을 물리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가 가능합니다. 



구태여 다른 행성에서 도저히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구축하느니, 생명체에 특화된 유일한 행성인 지구에서 다 같이 잘사는 법을 찾기만 하면 보편적 복지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인류 전체의 부란 70억 명이 아니라 700억 명이라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넘쳐납니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거대한 관료제와 시장경제에 기반하는 국가(정부)의 우선순위에 조금만 수정을 가하면 전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정책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이런 미세조정이 전 세계 국가로 퍼지면 인류는 보편적 복지를 통해 공존이 가능합니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자들은 차별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도 부의 축적에 어떠한 제한도 없는 무한대의 차별을 전제로 합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미세조정을 위해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내면 얼마든지 보편적 복지가 가능한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차별을 줄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사이에는 차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극대화된 차별을 1980년대 이전으로 줄이고자 하면, 성장과 개발이란 명목 하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부채ㅡ이자를 통해 슈퍼리치의 금고를 늘려준다ㅡ를 정치적 합의를 통해 탕감하고자 하면, 보편적 복지는 국가의 의무이자 인간의 권리가 됩니다. 



우리가 차별을 얼마까지 인정할 것이냐, 성장이란 명목 하에 소수에게만 부와 권력과 기회가 집중되는 세습자본주의를 언제까지 인정할 것이냐,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역할에 사로잡힌 국가의 탈선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이냐에 따라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즉 보편적 복지는 의지의 문제인지 재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층민과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집중하자는 선택적 복지는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의 불평등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기회를 독점하는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국가 단위의 최초의 복지가 통치의 수월성을 위해 도입됐듯이, 경제규모가 세계 14위인 나라에서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자들은 복지 수혜자들을 정치경제적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가난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공약을 지키려는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P.S. 글만 올리고 댓글에 답하지 못하는 것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건강해지면 늦게라도 일일이 답글을 달겠습니다. 



                                               


  1. 공수래공수거 2014.11.14 08:30 신고

    조금 나아 지셨나요?
    우쨌든 건강이 최고입니다

    10%를 위한 정부..

  2. 박근식 2014.11.17 16:28

    차별이란 관저으로 보니 선명하게보입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 종료가 확정된 날에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1심판결이 나왔습니다. 이것에 대해 음모론을 제시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우연들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니 마치 필연의 과정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법원에 제시된 증거와 증언들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1심판결을 논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승무원들에게 내려진 형량의 수준을 보면 한 가지 발언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발언의 천박함과 무책임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해양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다.’



언론을 통해 접한 이번 1심판결의 형량은 아무리 많은 국민이 죽음에 처한다 해도 그것이 고의가 아닌 이상 사고일 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수백 수천 명의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일어난다 해도 그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라면 사고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원전이 폭발해 수없이 많은 피해가 발생해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원전은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물이고, 그것이 완벽하지 못해 폭발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수천 명이 죽고 수십 수백만 명이 피해를 입는다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1심판결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고, 인류가 이룩한 발전이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정치경제적 탐욕과 과학기술이 만나면 그 결실은 일부에게 귀속되지만 그 피해는 모두에게 전가되는 세상, 그것이 이번 1심판결의 형량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유병언 자식들과 그들의 측근에 대한 법원판결도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너무나 쉬워 마음이 더욱 답답합니다. 우리가 선택했건, 어쩔 수 없기 끌려왔건 현재의 세상이란 소수가 주장하는 미래를 담보로 절대 다수의 과거를 망각한 참담한 결과물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1.12 08:14 신고

    좀 괜찮으신가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진도 앞 바다로 진실과 정의도 함께 떠 내려 간듯 합니다 ㅡ.ㅡ;

  2. 덕산 2014.11.12 14:01

    건강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며, 글 감사합니다.

  3. 밍♂구 2014.11.12 15:54 신고

    퇴선하라는 말한마디만 했어도. . .
    아쉽네요

  4. 여강여호 2014.11.12 19:35 신고

    무엇보다도 초기 대응에 실패한
    국가의 책임도 물어야 하는데.....
    어쩌면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에서는 정작 중요한 이 문제가
    잊혀져 가는 느낌입니다.
    세월호법으로 얼마나 규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5. 태봉 2014.11.16 11:19



    허리가 호전되면 꾸준히 108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허리에 정말 좋다고 합니다^^

  6. 큰산 2014.11.17 10:34

    건강챙기시고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좋은일이 함께 하시길...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허리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 장염을 동반하고, 허리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어 신

경과 간이 한꺼번에 나빠지면서 최악의 한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 장염은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고, 그래서 수면도 일부 개선됐습니다. 악화된 간 기능도 회복 중에 있습니다. 간암이 재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헌데 허리는 치료가 어려워 회복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내일부터는 집중적인 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그 동안 허리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치료를 받을 만큼의 체력은 돌아왔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에는 많이 약하지만 더 미룰 수 없어 힘들더라도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생각입니다. 







하도 자주 아파 일정 기간 푹 쉬면 회복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기존의 방식이 먹히지 않네요. 허리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바람에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이 글도 누워서 쓰고 있습니다. 허리 통증을 주지 않으려 똥배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쓰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표해야 하는데 그 동안은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섣불리 제 마음을 표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이제는 악화된 것 중에서 두 가지를 거의 다 잡았기에 나머지도 좋아질 것이란 확신이 들어 이렇게 중간보고를 올리게 됐습니다. 한 번 몸이 아프면 스스로 좋아질 때까지 버텨내야 하는 까닭에 많이 힘들지만 대신 생각할 시간은 늘어 그 동안 헷갈렸던 것들을 보다 깊이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부터는 칸트의 책들과 헤겔, 베르그송, 후설 등의 철학들을 비교하며 사유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체력적 한계가 두려워 보다 깊은 사유에 주저했는데, 아픈 기간 동안 이것을 일부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지금보다 한 단계 이상 올라설 수 있으면서도 체력과 건강을 핑계로 더욱 깊은 사유를 주저하며,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사고체계를 확고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읽었으면서도 그것들을 하나의 인식 속에 합치시키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건강이 악화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깊은 사유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으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인식과 체계에 이를 때까지 상당히 많은 양의 에너지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인 칸트마저도 나이가 들어 지적능력이 떨어진 이후의 글과 전성기 때의 책의 퀄러티가 차이가 납니다. 



하물며 저 같은 놈이야 더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두려움을 아픈 가운데 일정 부분 극복해냈습니다. 이제 건강이 회복돼 다시 글을 쓰게 되면 이전의 저와는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철학적인 면에서 그러할 것입니다. 제가 자주 헷갈리고 흔들렸던 것에 대해 알게 됐으니ㅡ어느 정도 확신이 섰으니 그 전과는 다른 수준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향후 2~3주 정도 지나면 본격적인 글쓰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건강 회복이 더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일 수도 있고요. 미래는 모르는 것이어서 섣불리 확언을 드릴 수 없지만 아무튼 좋아지고 있는 추세라 하루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쓰는 것은 2주 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건강조자 관리하지 못하는 제가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제가 사는 방식이라 이것만은 죽을 때까지 고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 죽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도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제가 살아있는 증거이기에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겠지요. 다만 조절을 해서 조금은 길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조금은 천천히 가도 오래갈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저처럼 아프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신경을 끄고 보낸 지난 1개월....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몸은 편했는데 영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 갈등마저 줄이기 위해 책을 읽고 사유의 깊이를 늘리고 있으니 더 좋은 글쟁이가 돼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님들의 걱정과 관심이 저를 살게 합니다.    




  1. 2014.11.03 20:43

    비밀댓글입니다

  2. 어린나그네 2014.11.03 23:03

    건강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나중에 더 좋아진 모습이 글속에서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3. 리야 2014.11.04 00:30

    늙은 도령님..드디어 글을 남기셨군요...

    무척이나 반갑고 님의 글을 못읽는 보름남짓 저 또한

    이 현실과 맞물려 지옥 같았답니다.

    부디 첫째도 건강이니 잘 추스려서 계획하셨던

    지적 공동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4. 2014.11.04 03:05

    비밀댓글입니다

  5. 덕산 2014.11.04 08:22

    늙은 도령님 소식 그 동안 넘 궁금했습니다.
    건강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니 좋은 소식입니다.
    무엇보다 건강과 체력 빨리 회복하셔서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6. 태봉 2014.11.04 08:25

    다행입니다^^

  7. 박창식 2014.11.04 09:03

    염려하고 걱정했습니다.
    시대의 아픔이 너무 커서 더 힘드셨겠죠.
    강건하시어 더 좋은 글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길!!!

  8. 여강여호 2014.11.04 12:25 신고

    좋은 글을 읽을 수 없음은 아쉽지만
    그래도 잠시 접고 건강부터 추스렸으면 합니다.

  9. 소피스트 지니 2014.11.04 14:00 신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우선입니다. 건강부터 챙기시고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하시는게 어떠실런지요?

  10. 공수래공수거 2014.11.04 16:25 신고

    매일 들다 보고 있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요
    체력이 국력
    건강이 우선입니다

  11. 하늘꽃 2014.11.05 10:15

    드디어 글을 남기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얼른보다는 천천히라도 좋으니 강건하게 추스리시길...

  12. 궁시렁 2014.11.05 12:23

    아! 회복기에 들어가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도령님체력이 필력이고 국력인데
    화이팅하세요

  13. 대니 2014.11.06 23:33

    걱정했었는데 회복하신다니 다행이네요 모쪼록 회복잘하시고 좋은글 기다리겠습니다.^^

  14. 영국사는 크리스 2014.11.10 06:27 신고

    회복기에 접어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쾌차하셔서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15. 참교육 2014.11.11 09:19 신고

    그랬어군요.
    글리 안 보여서 궁금했었는데...
    건강 빨리 회복하시기 바랍나다,



최근에 저는 허리에 쌓인 피로와 다시 도진 장염 때문에 매우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하루에 한 편의 글도 쓰기 힘든 상황입니다. 다행히 회복기로 접어들어서 내일 아버님 제사를 치르고 나면 다음주부터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후원해주신 분들의 금액이 80만원 정도 됐습니다. 그 돈은 첫 번째 만남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그런 돈들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강단을 하나 빌려 제가 강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런 다음에 서로 간의 토론이 있었으면 하고요.



만일 이 모임이 잘 이루어지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범위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원금액이 300만원 정도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글에 있는 광고를 클릭해주시면 광고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광고 비용도 몇십만 원은 받을 수 있어 행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치 경제학이 뉴턴과 다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최신 과학들을 결과들을 동원해 21세기 서민에 의한 혁명을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나 됐으면 합니다.



지금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는 후원회원을 늘리고 독자분들의 도움을 받아 광고비를 늘림으러써 세상을 바로 잡는 지적검증부대의 출범을 현실화시키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적대적 경쟁의 삶이 아닌 협력과 연대의 풍요로운 삶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여러 분들을 그곳에 초대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지적검증부대 거쳐 지적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에 여려분의 능력과 도움을 청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공동체를 통해 기득권의 학벌이나 파벌보다 더욱 깊고 인간적인 비전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이유로 평등하지만, 탄생 당시의 환경과 조건 때문에 제대로 된 경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더욱 지적으로 무장해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한 차원 높은 민주주의의 길을 실천하면 그것은 제2, 제3의 지적공동체의 형성에 뿌리가 될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회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작업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남겨주십시오. 서로의 생각들이 모이면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며 댓글로 남겨 주십니오. 

  1. 참교육 2014.10.18 06:01

    좋은 생각을 하고계시군요
    계획하신 일이 잘 진행되시기를 바랍니다.
    빨리 건강 회복하시기 바랍나디.

    • 늙은도령 2014.10.19 00:09 신고

      네, 꼬 지적검증부대는 만들어야겠습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자들을 걸러내야죠.

  2. 공수래공수거 2014.10.18 08:53 신고

    무엇보다 건강한 신체가 우선입니다
    건강에 항상 유의하십시오

    언젠가는 저도 참여하고 싶습니다

  3. 뉴론7 2014.10.18 09:17 신고

    좋인 계획을 가지고 게시네요 일이 잘되길 바래요

  4. 리야 2014.10.19 01:19

    몇개의 작은 씨앗에

    저 또한 그 씨앗이 되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그 날까지....

  5. 소피스트 지니 2014.10.19 10:04 신고

    멀리서라도 응원하겠습니다.

  6. 여강여호 2014.10.19 10:11 신고

    의미있는 모임을 추진중이시네요.
    저도 그때 꼭 참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늘 건강 먼저 챙기십시오.

    • 늙은도령 2015.01.25 16:18 신고

      네, 갑자기 이사가 결정되는 바람에 3월이 지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너무 불안해 하셔서 이사가 끝난 다음에야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LastThesis 2014.10.19 11:27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저의 비겁함도 고백합니다. 건강하십시오.

    • 늙은도령 2015.01.25 16:18 신고

      모두가 자신의 방식으로 저항하면 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8.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2014.10.21 10:44

    부디 건강을 다시 되찾기를 원하며 아울러
    바라시고 계획하고 계시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 지시기를 바라요^^
    저또한 마음으로나마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드림

    • 늙은도령 2015.01.25 16:19 신고

      네, 감사합니다.
      제가 이쪽에 집중하느라 블로그 방문도 못하고 있습니다.
      링크가 걸리지 않아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9. 공수래공수거 2014.10.22 10:57 신고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시군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10. 리야 2014.10.23 01:21

    늙은도령님의 건강에 걱정이 많이 됩니다..

    빠른 쾌유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1. 덕산 2014.10.24 22:17

    몸이 많이 편찮으신가 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길 바랍니다.

  12. 영국사는 크리스 2014.10.25 00:05 신고

    빨리 쾌차하셔서 계획하신 일들 이루시길 바랍니다.

  13. 하늘꽃 2014.10.26 13:14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와 봅니다.많이 걱정됩니다...뜻하신 일을 이루려면 건강이 최우선입니다..항상 강건하시길...

    • 늙은도령 2015.01.25 16:21 신고

      걱정 끼처 드려서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14. 독자 2014.10.27 23:04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힘내세요!!

  15. 씽ㅡㅡ 2014.11.02 00:56

    오랫만에 들렸습니다.
    얼릉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16. 궁시렁 2014.11.02 07:50

    항상 도령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있습니다.
    부족하지만 하시는일에 작은 씨앗이 되고싶네요.
    쾌차하세요.

    • 늙은도령 2015.01.25 16:22 신고

      감사합니다.
      늘 건강에 힘쓰며 최선을 다해 글로 화답하겠습니다.

  17. 김윤환 2014.11.03 23:52

    빠른 건강 회복으로 많은 지식을 전해주셔요~



세월호가 직립됐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관련 글들을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유족분들을 만나러 안산에도 가지 못했고요.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지만 직립된 세월호에서 침몰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면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하고 1000일이 지났을 때 더없는 슬픔과 분노를 달래며 힘겹게 쓴 시입니다. 시는 이제 포기했지만 알량한 재주라고 미수습자(당시의 기준)에게 바치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치울 방법이 없어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모두가 돌아가고 있다.

지난 1000일의 슬픔과 연민을

어제 입은 속옷처럼 벗어두고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난 1000일의 투쟁과 저항, 외침과 절규가

싸구려 동정이나 집단적 분노의 단편이 아니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싸웠고, 분명히 전달했음을 

능숙하지 못한 언어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난 1000일의 짧았다면, 누구도 비겁하지 않았음을 

지난 1000일의 길었다면, 누구도 용감하지 않았음을

나 또한 그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 또한 나와 함께 했다고 

잃어버린 언어로 스스로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날에 그들은

분명히 나처럼, 전해지지 않은 두 개의 유언을 들었다.

말했으나, 바다보다 차가운 두려움과 공포 속에 갇혀 버린

두 개의 유언을 피맺힌 절규처럼 들었다.

(우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라고

(당신과 같았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지는 해는, 분명히 나처럼 

떠나는 그들의 등 뒤로 

지난 1000일의 슬픔과 연민, 분노를 길게 드리우고 

그날의 유언처럼 일상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어쩌면 나는, 떠나는 그들처럼 

하루에 하루치씩

그렇게 1000일을 가라앉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떠나는 그들과는 달리

(우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라는 295개의 유언은 들었지만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당신과 같았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9개의 유언도 들었지만

영원히 전달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들처럼 떠날 곳이 없는 나는 

한 치의 자유도 없는 차가운 공간 속에 갇혀     

전달하지 못한 9개의 유언을 

영원히 떠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가 죽었고

누가 살아있는가, 이 망각의 대지 위에

저 차가운 심연의 바다 속에. 

분명히 나는, 떠나는 그들처럼

304개의 유언을 들었고

아직도 9개의 유언을 전달하지도 못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론7 2014.10.17 08:39 신고

    직접작성한 글이세요 좋은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4.10.17 08:53 신고

      답답해서 시로 표현해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엄청난 비극이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슬픈 에너지였습니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혁명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는데.....
      결국 기득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2. 참교육 2014.10.17 09:08 신고

    세월호... 우리는 세월호 참사 후 납덩이를 하나씩 안고 삽니다.
    그 차디찬 바다물이 차 오를 때 공포와 싸웠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가장 잔인한 범죄입니다.
    유가족이 합의해주지 않아야 하는데... 결국은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춸호 참사 속에 새누리의 생존권이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 늙은도령 2014.10.17 09:30 신고

      저는 최근에 한나 아렌트와 토크빌의 혁명 관련 저작들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사상과 말이 담겨 있는 연방주의자의 페이퍼를 다시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풀어낼 글을 쓸 생각으로요.
      이렇게 보낼 수 없는 것이 세월호여서 뭔가 시대적 의미를 밝히고 후속작업을 하려면 무언가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저도 가슴 속에 바위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4.10.17 10:02 신고

    숙연한 좋은 시입니다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 하자는 주위 사람이 있어
    우울하고 답답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17 23:18 신고

      대체 무엇이 밝혀졌기에 그만해야 할까요?
      자신의 자식이 죽었다면 그럴까요?
      참으로 잔인한 세상입니다.

  4. 바람 언덕 2014.10.17 11:11 신고

    세월호...
    우리사회의 비정상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이 사건 하나로 우리나라의 민낯이 다 드러났다고 봅니다...
    치부까지 말입니다...
    죽어서 어찌 그 아이들을 볼지...

    • 늙은도령 2014.10.17 23:19 신고

      그러게 말입니다.
      죽어서 아이들을 어찌 볼지....
      그저 당장의 삶에 허덕되는 사람들의 나라.....

  5. 봄빛 2014.10.17 11:52

    레퀴엠을 눈으로 들었습니다. 우리민족의 냄비근성을 얘기할때 알랑한 자존감에 버럭 했지만 당할만치 당했어도 정신 못차리는 국민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것이 부끄러워 미치겠습니다. 코리안이란 도매금...

    • 늙은도령 2014.10.17 23:20 신고

      격정적인 우리 민족....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특히 개인적 이익에 매몰되면 격정적인 것은 극도의 투쟁과 증오가 됩니다.

  6. 소피스트 지니 2014.10.17 13:04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7. 영국사는 크리스 2014.10.18 08:09 신고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그만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합니다.
    오늘은 또 말도 안되는 사고가 있었더군요.
    이런 안전불감증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 늙은도령 2014.10.19 00:08 신고

      그래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끝낸다고 하니....
      이 나라는 앞만 볼 줄 알고, 빨리 달리며 남을 등처먹는 것을 발전이라 합니다.
      그런 나라에서 제대로 된 안전이란 없습니다.
      국민만 죽어나가는 것입니다.

  8. 새 날 2014.10.18 10:30 신고

    이런 와중에 또 대형참사가 벌어졌으니, 참 할 말이 없습니다 ㅠㅠ

    • 늙은도령 2014.10.19 00:09 신고

      이런 형편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자들부터 처벌해야 합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감이 해결하라고 통첩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5조원을 추가로 풀겠다고 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미래인 아이들을 돌볼 예산은 한 푼도 늘려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삼성전자와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려주는 단통법을 만들어서, 수많은 이통사 대리점들을 고사 직전으로 몰고 가더니, 이번에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늘어나자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예산까지 교육감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지방세수를 담당했던 종부세를 무력화시키고, 법인세 및 부자감세로 인해 지방교육청의 예산이 어려운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뜹니다.



4대강공사와 원전 확대, 부자감세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는커녕, 담뱃값․주민세․자동차세 인상에 이어 이번에는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3040대 부모들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정부의 특기가 공약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해도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감에게 떠넘기는 것은 대통령 공약에 대한 정부의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대체 교육감이 무슨 요술방망이가 있어 누리과정 예산을 만들어낸답니까? 그들에게 조세징수권이라도 있습니까? 불평등만 심화시키는 조세정책으로 지방정부와 교육청의 손발을 모두 잘라놓고 그들에게 중앙정부의 몫까지 책임지라고 하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명박 정부 때 실시된 부자감세와 법인세 인하만 제자리로 돌려놓아도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들의 표는 전체 인구수에 비하면 극히 미미해서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않습니다. 낙수효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내부유보금만 잔뜩 싸놓고 있는 기업들과 소비유발효과(부자는 늘어나는 소득이 반도 소비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은 100% 소비한다)가 낮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놈의 보수정부들은 파산 직전의 서민과 원수진 일이라도 있습니까? 증세를 해도 서민이나 유리지갑을 타겟으로 하지 않나, 저출산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도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누리과정 예산까지 교육감에게 떠넘기면 도대체 뭐하자는 것입니까? 서민들은 아이도 낳지 말라는 것입니까?



정부의 경제와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라면 뭔가 해결책을 들고 나와야지, 아이들을 볼모로 교육감들을 옥죄면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한답니까? 아무리 무책임한 정부라 해도 이건 너무 막가자는 것 아닙니까? 아이들을 볼모로 이런 추접한 흥정은 없었으면 합니다.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베스트인 2014.10.16 04:32 신고

    잘보고 갑니다.``

  2. 박창식 2014.10.16 06:28

    누구를 탓할까요?
    태생이 저러함에도 불구하고,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이 나라는 젊은이들이 살아 갈 세상인데
    왜 늙은이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는 것인지...
    18세부터 투표할 권리를 주던지,아님 60이상은 투표권을 박탈하던지...

    • 늙은도령 2014.10.16 14:54 신고

      그러게요.
      노인분들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네요.
      그분들이 제대로 세상을 이해하면 좋겠는데......

  3. 뉴론7 2014.10.16 08:44 신고

    2014년도에는 정말로 머리아픈 일들이 많이 생기네요

    • 늙은도령 2014.10.16 14:55 신고

      앞으로 더 할 것입니다.
      북한과의 대화는 미국이 밀어주기 때문에 남한에 투자해야 할 것이 북한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한 동안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복지체제를 갖춰놓고 진행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한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4. 참교육 2014.10.16 10:00 신고

    진보교육감 물먹이기...
    이딴짓하고도 표를얻는 새누리가 놀랍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16 14:56 신고

      제가 보기에는 진보교육감 죽이기입니다.
      다른 데 쓰는 예산을 돌리면 되는데 정치인 출신의 장관들이라....

  5. 새 날 2014.10.16 10:41 신고

    이 말도 안 되는 힘겨루기로 정작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까 두렵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16 14:56 신고

      네, 문제는 아이들이 볼모로 잡혔다는 것입니다.
      정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6. 바람 언덕 2014.10.16 11:32 신고

    원인은 지들이 제공하고 책임은 전가하기 일쑤니,
    이런 파렴치한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정상일리 없습니다.
    무상보육 공약 내건 당사자들이 하는 꼬라지라고는...
    정말 조폭 양아치같은 몹쓸 정부입니다.

    • 늙은도령 2014.10.16 14:58 신고

      늘 그런 식이지요.
      박근혜가 물러나면 제2의 IMF가 닥칠 수도 있어요.
      현재 대기업들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투자하라고 닥달하나 봐요.
      손해가 뻔한 것을 할 수도 없는데 정권의 업적 때문에 지랄을 하는 모양입니다.

  7. 공수래공수거 2014.10.16 12:51 신고

    단통법만 해도 그렇습니다..

    질러 놓고 나 몰라라..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 늙은도령 2014.10.16 14:59 신고

      단통법은 하도 어이 없어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통사들의 이익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소비자만 죽어나갑니다.
      대리점들도 많이 힘들 것입니다.
      그들은 통신이용요금의 일부를 이통사로 받아서 먹고 사는데 개통이 줄어들면 먹을 것이 없어집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활성화 압박에 호응한 이주열 한국은행장이 기준금리를 0.25% 내려, 사상 최저치인 2%가 됐다. 기준금리가 2%라는 것은 한국의 잠재성장률과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시대로 접어든 것을 말한다. 이제 저축을 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이유는 시중에 돈이 돌도록 만들어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인데,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상류층의 부동산투기와 주식투기만 조장할 뿐, 국민이 기대하는 경제활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투기는 늘 거품을 발생시키며, 금융위기로 가는 지름길이다.



물론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적자재정을 감수한 대규모 확대재정까지 실시되면 시중의 자금이 더욱 늘어, 이런저런 잡다한 과정들을 거치면 정부의 업적으로 포장되기 일쑤인 수치상의 경제성장률은 높아진다.



헌데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충분한 자금여력이 있어 장기적인 자금 운영이 가능한 부자들은 대출을 통해 부를 늘릴 수 있지만, 장기여력이 부족한 서민들은 대출로 받은 돈을 굴려 이자와 물가상승률을 넘는 이익을 거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금리인하는 부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대출받은 돈들이 부동산으로 몰릴 경우, 위의 도표처럼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는 것 이상으로 전세가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금까지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어서,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죌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금리가 낮기 때문에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돌릴 가능성도 늘어나 소득이 적은 서민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향후 꾸준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4% 이상의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파트 매매가가 오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럴 경우 부동산 시장은 더욱 왜곡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집값 상승은 GDP를 높여 수치상의 경제성장률만 높아질 뿐, 서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설사 집값이 오른다 해도 집을 팔아야 할 시기에 경제가 나빠지면, 자금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집값 하락의 폭에 따라 깡통신세로 전락한다. 전세가가 올라가면 주택을 구입할 것이란 전망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비정규․임시직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주택을 구입할 서민은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에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1979~1980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를 몰고 왔던 일들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적수인 일본의 기업경쟁력이 강화되는 것도 악재다. 또한 중국이 경제 연착륙에 실패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유럽의 경제침체가 다시 재현되고 있는 점도 중국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결국 집값 상승은 국내의 요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민들은 이자, 물가상승률, 미국의 금리인상, 환율 변동, 유럽과 중국 및 일본의 경제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여력이 되지 않는 한 섣부른 주택매입은 기름통을 지고 불로 뛰어 들어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현실경제를 이해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금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보수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현금의 양을 늘려놓은 일에 집중하다 보면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난 70년 동안 경제성장을 울부짖지 않은 정부가 있었던가? 그 결과가 지금의 불평등이고, 신빈곤층의 양산이며,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1위고 청년실업의 심화이다.





지금은 도박을 하면 안 되는 시기다. 부자증세와 법인세 인상 및 각종 감면혜택 종료 등의 방법으로 세수를 늘려, 기본적인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할 시기다. 소득이 없으면 불평등은 더욱 늘어나고 소비가 줄기 때문에 내수경제는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처럼 경제가 둔화되는 시기에서 부동산투기와 주식투기 같은 도박을 하는 것은 부자들의 지갑을 두껍게 해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피케티 같은 보수경제학자가 어마어마한 자료를 가지고 내린 결론이 불평등의 심화였다. 정말 오랫동안 그 놈의 경제 타령에 지겨울 정도로 속아오지 않았는가? 



국가의 경제규모가 늘어난 만큼 당신의 여유 돈이 늘었는지 그것만 확인해보라. 아이들을 교육시켜 일류대학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킨 후 결혼까지 책임질 수 있는 돈이 있는지 따져보라. 그런 다음에 노후도 준비할 수 있는지, 그것까지 따져보면 나라의 경제규모가 늘어난 것에 비해 불평등이 더욱 늘어났는지 알 수 있을 테니.  



한국은행의 금리인하가 부자감세와 다르지 않음이 이 때문이다.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에서 어떤 정책을 동원한다고 해도 부의 재분배를 통한 소득 보전 없이 진행되면 불평등만 늘릴 뿐, 서민에게는 말짱도루묵이다. 아니, 신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최후의 빚잔치다.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영국사는 크리스 2014.10.15 19:26 신고

    서민들만 죽어라 죽어라 하는군요.

    • 늙은도령 2014.10.15 22:33 신고

      근본적인 것은 건드리지 않고 늘 주변부만 건드리는게 문제입니다.

  2. 덕산 2014.10.16 12:37

    물가 인프레를 통해 세수 확보를 할려는 심보가 아닐까요?
    우선 최대한 현금을 확보해야지만 경제 상황이 녹녹치 않아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점점 돈벌기가 힘들어 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허리띠 졸라메야겠죠?^^

    • 늙은도령 2014.10.16 14:49 신고

      지금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새로운 일보다는 기존의 것을 지키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절약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이상의 것들로 통신비나 기타 사치품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게 절약하면서 중소기업의 제품들을 주로 사용하며, 정부로부터 답을 받아내면 다음은 내수경제가 살아납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그게 힘드네요.
      내수경제가 커지면 이런 불평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 덕산 2014.10.16 16:07

      이런 불합리한 고리를 풀어내고 중소기업도 일할 만한 세상이 빨리 왔음 좋겠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의 근심, 걱정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일단 할 수 있는 한 절약하고 낭비하는 것을 줄여나가며
      기존의 것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17 06:39 신고

      지금은 자본주의가 끝에 이른 시점으로 보입니다.
      삼성이나 현대의 임원들이 진심으로 어렵다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생각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으면, 몇 년 단위로 이런 불경기가 반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위 30% 정도를 털어내면 자본주의는 또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늘 그러했습니다.
      그것을 이겨내야 비로소 좋은 세상이 옵니다.
      민주주의란 모든 국민이 중위소득 근처에 이른 사회경제적 평등이 보장될 때 시작됩니다.
      헌데 자본주의는 그것과 정반대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불평등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국가와 사회가 극심한 분열과 대립 속에서 돌아가지 않고, 선의의 경쟁에서 지금보다 나은 풍요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사회경제적인 것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각각의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정치가 사적 이익을 바라는 것이 되고, 세습되는 부와 권력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곳이 되면 민주주의는 죽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동전의 양면이어서 연결되어 있되 서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균형점이 무너진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면 신자유주의가 되는데, 신자유주의 전성시대이니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니, 그것에 마지막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4.10.16 12:49 신고

    금리를 내리면 소비가 늘어나나요?
    헐 입니다

    정책 만드는 사람들은 시장에나가 보는지 모르겠네요

    • 늙은도령 2014.10.16 14:51 신고

      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새누리당을 찍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놈의 빨갱이만 가져다 붙이면 얘기가 안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