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의 창업자들이 불안한 이유는 그들이 창조주보다 한발 더 나아가 사고할 수 있는 놀랍도록 멋진 기계를 창조하려는 소년 같은 열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 같은 열망을 가지도록 한 그들의 인간 사고에 대한 이해 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ㅡ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빅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 글에서 빅데이터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것으로 부족한 감이 있어 오늘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절대강자라 할 수 있는 구글이 유튜브를 사들인 이유부터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구글어스와 스트리트 뷰(필자가 정보통신사업을 할 때 스텐포드 출신의 벤처사장이 이에 대한 한국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도 빅데이터의 구축을 통해 인공지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구글은 2009년 11월에 벤처캐피탈로부터 400만 달러를 투자받아 2010년 9월에 동영상 공유서비스 사업을 시작한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은 유투브를 18억 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사들였습니다. 유투브가 10개월 동안 한 일이란 온갖 종류의 영상들(드라마의 클립 영상, 각종 TV쇼, 가수의 뮤직비디오와 공연 영상, 포르노 등)을 올릴 수 있는 사이버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유투브는 창기 몇 달 동안에는 포르노(지금은 차단된다)와 각종 폭력물,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몰래 찍은 도촬 영상까지 탈법적이고 관음적인 동영상들이 무차별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모른 척 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노동, 아이디어와 촬영 장비를 이용해 직접 찍은 짧은 동영상(UCC)들을 자유롭게 올리고 무차별적으로 다운받고, 끼리끼리 주고받고 때로는 은밀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방치했습니다.

 

 

디지털 관음증과 노출증을 깨놓고 드러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등장은 디지털 세대에게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유투브 이용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무한대의 영상물이 매초마다 수백 개씩 올라왔습니다. 그에 따라 이용자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는 유투브 창업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특별한 수익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영상을 담아둘 서버를 늘리기도 벅찰 정도였습니다. 



다만 유투브 서버에는 누가 어떤 영상을 올렸고, 전 세계의 이용자들이 어떤 내용의 영상을 주로 클릭했고, 한 번 들어오면 얼마를 머물렀고, 일주일에 몇 번 들어왔고, 얼마나 많은 동영상을 퍼다 나르고 댓글을 달았으며, 얼마나 자주 재접속을 하는지 유투브에 접속한 이용자들의 모든 행태와 성향, 기호와 중독성의 흔적들을 낱낱이 축적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용해 수익구조를 만들기만 하면 대박도 가능할 것이었습니다.

 

 

헌데 수억에서 수십억 명에 이르는 이용자 정보를 가지고 수익구조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용자 정보를 팔 수도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2008년이 금융붕괴 이후 벤처기업에 대한 평가도 박해진 상태였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유투브를 삼키고 싶었지만 이용자 정보를 가지고 수익구조를 창출하는 일이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투브 창업자 스티브 첸  

          

 

이때 빅데이터를 구축해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인 구글이 18억 5천만 달러라는 상상을 불허하는 금액에 유투브를 인수했습니다. 구글이 다른 기업들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탱한 것은 유투브의 서버에 축적되어 있는 전 세계 이용자들의 데이터였습니다.  연간 수십억에서 수백억 명에 이르는 네티즌들의 빅데이터는 구글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개인정보의 수집과 데이터 마이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구글은 유투브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집·축적·가공해 그들의 기호와 성향, 행태를 파악함으로써, 그들의 머릿속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면 유투브 인수에 들어간 자금을 얼마든지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구글은 개인정보의 무차별적인 수집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최종 목표인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확률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정보통신의 최강자인 카네기멜론대의 싱(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교수는 특정한 미로에 갇힌 쥐가 그곳에서 빠져나올 확률을 계산해내는 이론으로 인공지능의 대가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쥐가 탈출하기까지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낼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통해 쥐의 행태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필자와 잠시 동안 함께 일했던 인공지능의 세계적인 대가에 따르면 그녀의 이론에 십만 분의 1의 오차가 있다고 했지만,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는 예측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 최적의 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것(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산을 투자하려고 할 때 그의 결정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마케팅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추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위해 획기적인 이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구글 정도의 빅데이터가 쌓이면 인간처럼 추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전 단계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구글이 미국의 가장 큰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모든 책을 스케닝하려고 했던 것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정보뿐만 아니라, 무한대의 단어와 문장, 감정과 상황에 따른 다양한 반응 등을 분석해 인공지능의 개발에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창업 10개월 만에 잭팟을 터뜨린 유투브의 창업자와 임직원들이 한 일이란 사이버 영상놀이터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빼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술이라는 것이 인터넷이 평등의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코드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위대한 선각자들, (그러나 그 기술들이 악용되는 것을 그저 지켜볼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픈 소스주의자들의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특별한 원천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 그들은 다른 기업에서 만든 동영상 압축·전송 기술, 아마추어가 촬영한 동영상을 쉽게 편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인용 영상장비, 특정 국가와 기업들이 깔아놓은 인터넷 광대역망이라는 기반시설의 도움을 받아 잭팟을 터뜨린 것입니다. 최근에는 유투브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과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확률이라는 것이 수십억 분의 1도 안됩니다.

 

 

가벼운 경제가 고용없는 성장으로 귀착되기 쉬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글의 야심대로 추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고용없는 성장은 최고에 이를 것입니다. 여기에 개인용 컴퓨터가 슈퍼컴퓨터와 별반 다르지 않게 만들며, 해킹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양자컴퓨터까지 개발되면 만물의 영장 자리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인공지능의 개발을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인간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을 이용해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 인간이 프로그래밍 한 컴퓨터와 인터넷이 이제는 인간을 프로그래밍하고 통제하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빅브라더의 세상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위험사회를 넘어 감시사회에 이른 것이지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또 다른 차원의 열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이 하던 일의 대부분이, 그것도 창조적이고 깊은 성찰이 필요로 하는 일들까지 인공지능에 넘겨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월급을 줘야 하지만 인공지능은 데이터만 늘려주면 되기 때문에 인건비도 필요없습니다. 바둑은 무한대에 이르는 경우의 수가 나오기 때문에 이세돌 정도의 강자를 이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는데, 그것마저 몇 년이나 단축했으니 이세돌의 패배를 과대포장할 없지만, 단순한 1패로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내 사랑은 아이와 같아서(http://www.realkim.com/)

                                                         

 

 

내 몸의 미열처럼






너는 10월 들녘의 햇살에도 있었고

멋적게 키만 커서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거렸다


그날로 떠나는 가을 여행

홀로 거니는 걸음마다 너는 낙엽이 되고

둘이 부르던 그날의 노래 속에

간밤의 취기처럼 깃들여 있다

잊는다는 것은 한 올씩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놓는 것 네가 남겨놓은

약속의 말들 속에 너는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되어

내 몸의 미열처럼 머물러 있다  

   

이 미열이 감기라도 되는 날

너는 또 어떻게 풀어질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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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문득 돌아보는 그곳에(http://www.realkim.com/)

 

 


행여 그대 저 문 밖에





내 그리움이 너에게로 가면 슬픔이요

너의 잔소리라도 내게로 오면 기쁨이다

떠올릴 수 있다면 어디선가

지금은 기억의 단편에도 없는

처음의 다툼 상처조차 되지 못한 말들도

기쁨이려니

어떻게 인들 아침을 해치우고서

습관처럼 물을 끓이는데

꺼내 놓은 잔이란 아직도 두 개라오


행여 그대 저 문 밖에

지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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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하늘이 물 속에도 있답니다(http://www.realkim.com/)




하늘(1)




하늘이 한 칸씩 비어져 갑니다

아직도 영혼은 깨어 있지 못하여

저 푸른 빈 칸을

무슨 言語로 채워야 하는지



하늘이 한 칸씩 비어져 갑니다

때로는 산길 떠도는 낙엽과 햇살

바람 따르는 눈길만 같고

서른 여덜의 하루

실피줄 터지는 웃음만 같은



하늘이 한 칸씩 비어져 갑니다

막무가내로 펴놓은 원고지엔

그 어떤 날의 향기이던가

차마 옮기지 못하는 사연들만 찾아와

입안을 맴돌고 맴돌단

지쳐서 손끝의 슬픔이나 되는데

 


하늘이 한 칸씩 비어져 갑니다

나는 새벽까지 깨어선 하늘만 보고

여명이 다가와 나를 적시면

비로소 떠오르는 몇 마디 말

망설이다가 영혼의 원고지에

끄적이다가 찢고 또 찢는 내 안의

갈망들



이승은 어찌하라고

저 구겨진 속됨은 어찌하라고

하늘만 한 칸씩 비어져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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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성에(1)

 

 

 

창문엔 지난 밤 내내

나를 부르는 너의 영혼이 하얗게 얼어 있다.

얼마나 애태웠으면 온몸이 이렇게 갈라졌을까.

다시 열리는 하늘에 어느 어둠이 있어

승냥한 이승의 한 밤을 빙꽃처럼 지새웠을까.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나에게

너는 얼마나 목청이 터지고 그리움의 이름으로

또 얼마를 추위 속에 서성였을까.

창문에 손을 대본다 살을 에는 한기

그랬었구나, 너의 슬픔과 외로움이 그대로 돌아갈 수 없어서

꿈도 없는 밤을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이렇겐들 불러 보지 않으면 잠들 수 없어

한 밤을 꼬박 거기서 울었었구나. 



갈갈이 찢겨진 너의 흔적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어지러움 속에

너의 마지막을 담은 스마트폰의 영상들이 

하나씩 기어나와 

뚝. 뚝.   

맹골수도의 차가운 수면 위로 빗물처럼 떨어진다.  




P.S. 단원고 존치교실을 없애려는 단원고 측과 30명 정도에 이르는 재학생 부모들이 행태가 인간으로서의 금도를 넘었습니다. 이재명 교육감도 단원고 재학생을 위해 8개의 교실을 증축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단원고 측과 일부 재학생 부모들의 행태가 마치 짜고치는 고스톱을 연상시킵니다. 세월호특별법부터 시작해 진상규명 작업 일체를 방해했던 여당 추천 위원들이 줄줄이 사퇴함에 따라 세월호특위는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에서,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특위의 활동시한이 종료된 한 달 뒤로 미루었고, 그에 발 맞춘 듯 단원고 측과 일부 재학생 부모들의 행태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위헌 논란과 UN 안보리결의 위반 논란을 무릎쓴 박근혜의 프레임 전환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쓰레기 언론들의 광기 어린 북풍몰이 때문에 국민의 관심이 모두 다 개성공단과 미사일방어체제 도입에 쏠려 있는 틈을 타고 이루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막지 못한다면 세월호참사는 바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종지부를 찍을 것입니다. 단원고 존치교실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로 봤을 때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에게도 정부의 파렴치한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박근혜의 환관정치가 국민 모두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면, 세월호유족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이며, 단원고에 항의의 전화라도 해야 할 듯합니다.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와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요. 힘을 냅시다, 고지가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북한 제재에 미국도 한 발 물러서며 무력시위에서 모든 것을 덮으려하는 것으로 볼 때, 박근혜는 낙동갈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 엄혹한 시절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면 우리가 먼저 지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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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성윤 2014.07.16 10:46

    시인이시네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



아래의 글은 찰스 킨들버거와 로버트 알리버가 공저한 《광기, 패닉, 붕괴ㅡ금융위기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이 책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주기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명료하게 밝혀냈다. 평균적으로 10년 단위로 반복되는 금융위기는 자본주의가 부실을 털어내는 공식적인 방식이며, 소위 개미로 불리는 사람들의 지갑을 털어가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그 과정을 압축한 것이 아래의 인용문이다.  



내부자들은 가격을 여러 차례 견인함으로써 시장을 균형점에서 이탈시키고 나서, 최고가 내지 그 근방에서 외부자들에게 매도한다. 외부자들의 손실은 필연적으로 내부자들의 이익과 같다...투기 세력으로서의 전문적 내부자들은 처음에 상승 파동과 하락 파동을 과다하게 증폭시킴으로써 균형점 이탈을 유발한다. 이 내부자들은 "추세는 내 친구"라는 마법의 주문을 따른다...고점에서 매수해 저점에서 매도하는 비전문가인 외부자들은 뒤늦게 그들을 끌어들이는 풍요감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돈을 잃고 난 뒤 앞으로 5~10년 후에 쓸 또 다른 판돈을 저축하기 위해 다시 일상의 직업으로 돌아간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전 세계적인 장기불황을 초래한 2008년의 금융 대붕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증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거대 금융기업(특히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거대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탐욕적 술수가 자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면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확률은 아르바이트만 해서 중산층에 드는 것만큼 확률보다 더 낮다. 현대의 자본주의를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2008년의 금융 대붕괴가 제조업을 담보로 폰지사기(다단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먼저 투자한 자가 뒤에 투자한 자들의 돈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를 벌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폰지사기가 그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으며, 길게는 1873년과 1929년에 발생한 경제대공황과 짧게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숄츠-블랙이론으로 명명된 이들의 이론은 주식투자의 위험분산에 관한 것이다)이 설립한 금융회사가 망하면서 발생한 1997년의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인류의 기억 속에, 혹은 금융권의 기억 속에서 강제로 삭제된 1929년의 경제대공황과 1997년의 금융위기의 원형은 1711년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에 설립된 남해회사의 내부자들이 일으킨 사기사건에서 기원한다. 남해회사 사기사건의 내막은 의외로 단순한데, 그 전말은 스페인 정부의 묵인 하에 존 블런트와 그의 내부자들이 자신에게 발행한 주식, 그것도 바로 그 주식을 담보로 차입한 돈으로 자본이득을 얻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 거대한 거품을 만든 것이다. 




                                                     중앙일보에서 인용



미국 월가의 탐욕에서 비롯된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남해회사의 거품 형성과 폭발의 과정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 당시에 남해회사의 주식을 사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투자가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피해자 중의 한 명은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 아이작 뉴턴(과학자였던 그는 대영제국의 왕립조폐국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도 포함되어 있다. 존 카스웰은 자신의 투자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투자자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진정한 자본가치 이상의 추가적인 상승을 바라는 것은 그저 공상일 뿐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한 것을 그 어떤 세속적인 산술로 잡아 늘린다 해도 3.5를 만들지는 못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의제적 가치가 머지않아 누군가에게 손실일 수밖에 없다. 이것에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일찌감치 팔아치우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가 맨 뒤의 사람을 잡아먹도록 내버려 두라.



대상이 주식이건 채권이건 파생상품이건 간에 자본이득을 노린 금융투자는 소수의 사람들(거의 다 내부자거나 이들에게 자금을 맡기 초기 투자자들이다)의 배만 불리울 뿐이다. 단기적으로 이익을 봤을 지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손실을 본 사람들이 99%에 이른다. 이것 때문에 상승장에서 만난 사람은 하락장에서도 만나기 마련이다. 특히 상승장의 끝물에 올라탄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다. 


                                                   

                                               설국열차 예고편에서 캡처



이런 이유들로 해서 여유돈의 일부를 장기투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축과 국민연금 만큼 안전한 것이 없다. 헌데 2008년 금융 대붕괴로 은행의 금리가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금리까지 하락했다. 오바마 정부의 무제한적 양적완화가 상위 1%의 배만 불리면서 떨어진 주가를 회복한 것 이외에는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 자산가나 초국적기업의 임원과 고위간부가 아닌 99%의 삶이 갈수록 빈곤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장기 대공황을 극복하려면 카지노 자본주의를 공고하게 만든 신자유주의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 폭주하는 기차는 탈선하기 마련인데, 모두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종말론적 사태를 막으려면 설국열차의 주인공들처럼 기차의 영구 엔진(무한한 진보를 상징하는 이런 것은 존재할 수 없다)을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사라진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1. 중용투자자 2014.09.15 21:58

    투자와 투기의 구별이 없어졌죠 ^^



모든 것이 꾸며진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내가 그를 찾아 비궁을 나섰을까. 천 년을 이어온 전설이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이 조작해낸 인공적 설정인 것을 알았다면 나는 무공 최후의 단계에 이르렀을까. 그리고, 그 경지에 이르는 길을 알고도 화월곡에 오년이나 머물러 있었을까.

 

 

 

그때까지 나는 운명을 비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운명이란 놈은 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어떤 가능성도 열려 있는 내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신의 영역에서만 가능하고, 운명의 최종 형태를 안다면 난 하루도 더 살 이유가 없다. 너무 재미가 없을 것이고, 어떤 자유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세상 속에 있는 것,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자 인류로 이루어진 세상의 영속성이다. 나는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에만 실존할 수 있을 뿐이다. 최소한 나에게 운명 따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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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천과 비무를 한지 오년 후였다. 그날의 비무 이후 나는 이곳에 머물러 전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어리석음이 빌어먹을 운명을 비트는 출발점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하나의 약속이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와의 비무 이후 정확히 오년 만이다. 그때 고집스럽게 지켜온 나만의 경계선 안으로 천년을 이어온 최고의 무대에서 밀려난 주인공이 들어섰다. 그때는 그것도 운명이라 믿었다. 그날은 그와 비무를 한지 오년 후의 어느 날, 하늘 너무 푸르러 슬퍼보였고 녹음은 깊어 오히려 답답했으며, 대지는 너무 충만해 마음이 허기진 그런 날이었다.

 

 

 

 

군가 류심환이 쳐놓은 경계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에 들어오는 길을 아는 사람은 류심환이 유일했다. 천상지무를 보는 대가로 검강천에게 알려준 이곳은 무공이 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동물 한 마리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류심환에게 있어 절대의 공간이자, 한 없는 기다림의 감옥이었다.  

 

 

‘그가 아니라면..’

 

 

그가 땅의 진동과 공기의 파장을 감안해 살펴볼 때 그들이 달리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편이지만 맨 앞에서 달리는 자의 경우 경공이 많이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뒤를 이어 여러 명이 비슷한 속도를 내며 경계 안으로 함께 들어섰지만 흔들림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앞사람이 들어온 방향을 중심으로 몇 갈래로 포위망을 형성하며 들어온 것을 보면 그들은 추적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분명한 것은 어지러운 보법을 펼치고 있는 자가 이곳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를 쫓는 자들도 좀처럼 보기 힘든 고수라는 사실이었다. 류심환이 이곳에서 깨달은 무공의 원리에 따라 쳐놓은 경계 속으로 그들이 들어섰다 느꼈을 때, 그들은 이미 모옥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목적지가 모옥이 아니라면, 그들의 경공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고, 한 명이 도망가고 여럿이 쫓아가는 것으로 볼 때 한 바탕 소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아니라면… 누군가 선을 넘었어. 경계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자는.. 그래, 오직 그 뿐이야. 그에게만 입장권을 발행했으니까.'

 

 

 

류심환은 천천히 문 앞으로 나왔다. 소란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의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자가 누구며 그를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오는 자들이 누구인지 일말의 궁금증은 있었다. 그래서 문 앞에 나와 섰다. 궁금증 주위를 맴도는 어지러운 바람을 애써 외면한 채 그는 거대한 대문이 열리듯 우측으로 몸을 돌렸다.

 

 

 

허나, 그가 아니라면 경계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금단의 선을 넘었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을 문 앞까지 나오게 했다. 죽음같이 적막했던 5년간의 시간을 그들이 깼다. 이것에 대해 그들은 어떤 식이던 간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며, 한편으로는 무한정의 약속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가 아니면 누구도 경계 안으로 들어설 수 없고 자신의 기다림은 그만이 깰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 일 푼의 궁금증에 숨어 있던 바람이 얘기했던 한 사람, 5년이란 세월을 격하여 류심환 앞에 운명처럼 서있는 한 사람.  

 

 

 

죽음의 문턱에 선 피투성이 무인, 찢어진 도포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는 그가 얼마나 힘든 격전을 치렀는지 짐작케 했고, 손가락 끝을 타고 지면으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은 그 상처의 깊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줬다. 그 엄중한 상태에서 얼마를 달려 온 것인가. 생의 끝까지 내몰린 채 그가 달려 온 이곳까지 그 거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그만큼의 거리와 비슷했을까. 그는 호흡이 매우 거칠었고 때 없이 흔들렸다.

 

 

허나, 그런 순간조차도 존재하는 그 자체가 위대함인 단 한 사람. 나만의 경계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내 기억 속에 각인돼 있어서 단 한 순간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래서 귀찮아도 나올 수밖에 없었던 단 한 명의 절대자. 다급한 상황이 분명함에도 흔들림 없이 침잠되어 있어,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수련의 깊이를 드러내는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

 

 

수많은 위험과 고비를 뚫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너무도 미약해진 기운이지만 이 세상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맑고 단아하며 고결한 기도. 만남의 첫 순간부터 각인돼, 그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만의 기도. 내 기억 속에 항상 머물고 있던 단 한 명의 사람. 약속이란 이름으로 내 자유를 박탈해 5년간의 고독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사람, 검강천.

 

 

 

“천상천주 검강천.”

 

 

 

그였다. 천하에 그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하늘 아래 이 같은 기도를 가진 사람이 그 아니면 또 누가 있겠는가. 자신이 쳐놓은 경계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는 천년 전설의 주인공인 천상천주 검강천이었다. 5년간의 기다림 속에서 비로서 깨달은 고독의 실체를 알게 해준 사람, 그가 생의 마지막에서 자신을 찾아왔다.    

 

 

“류공!”

 

 

흔들리는 검강천의 부름이 류심환의 가슴에 날카롭게 닿았다. 온몸에 가득한 상처들은 너무 많고 치명적이어서 천하제일인이라고 해도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렇게 많은 상처를 입은 채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 기적일 따름이었다. 죽음의 순간을 필사적으로 늘려가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왼손에 품고 있는 것에 있었다.

“천주.. 오랜만입니다.”

 

 

그 짧은 부름에 역시 짧게 답하는 류심환의 음성에도 이처럼 느닷없이 일어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떨림이 묻어났다. 그것은 전혀 예측조차 못해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현실로 일어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놀람이었다. 허나, 오년 전에 한 약속,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아이를 맡아주시오.”

 

 

 

검강천이 거두절미하고 왼손으로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넸다. 아직까지 그가 살아 있는 유일한 이유이자, 오년 전에 예약한 부탁의 내용이었다. 너무 맑고 깊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검강천의 심연 같은 눈동자가 류심환이 아이를 받아 들자 잠깐 흔들렸다. 그것은 류심환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안타까운 시선이었다.  

 

 

 

‘중독됐어!’

 

 

 

류심환은 검강천으로부터 아이를 받아든 순간, 아이가 치명적인 독에 중독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류심환이 검창천에게 눈으로 물었고, 검강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간절한 눈빛으로 중독의 위중함을 류심환에게 알려주었다.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류심환의 말에 검강천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심연으로 돌아왔다. 그가 보인 순간의 흔들림은 심연의 수면을 건드리고 날아간 잠자리의 파장 같은 것이었지만, 슬픔과 체념이 교차하는 안도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가 일단 마음을 다잡자, 아니 더 이상 죽음을 늦출 여력이 없을 인정하자, 애당초 그에게 흔들림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처럼 보였다. 

 

 

“아이 이름은 무영이네.”

 

 

 

검강천이 건내준 아이를 류심환이 말없이 안아 들었다. 예닐곱 살 가량으로 보이는 아이는 자신이 낯선 이의 품으로 넘겨졌음에도 입을 굳게 다문 채 또렷한 눈망울만 깜박이고 있었다. 중독의 고통 속에서도 현 상황의 위급함을 정확히 알기에 아이는 신음소리를 내거나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깊게 가라앉은 채 두려움을 감추며 아비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과 꽉 다문 입술이 류심환의 뇌리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은 너무나 생경했지만,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보다 뛰어난 아이일지도..’

 

 

 

급히 진기를 주입해 중독의 속도를 줄이며 아이의 상태를 살펴본 류심환은 아이의 신체가 무술을 위해 태어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맑고 청아해 슬픔을 간직한 듯한 아이 눈빛이 검강천과 류심환을 인연의 끈으로 다시 묶은 것은 설명하기 힘든 인연 같았다. 조건이 약속이 되고, 약속이 새로운 인연을 창조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아이와의 인연은 질긴 운명으로 발전해 가리라. 늘 그랬듯 빌어먹을 운명은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방법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그렇게 다시 닻을 올린 운명이란 놈이 류심환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비틀었다. 그 비틀림의 시작에 검강천이 있었고, 중간에 류심환과 무영이 있었고, 그 끝에 그로부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자들의 소리가 들렸다.

 

 

 

‘불나방 같은 놈들…’

 

 

 

“저기다!”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소리쳤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창조한 운명이 추격자 무리의 외침을 빌려 검강천과 아이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의 시작은 수십 장 밖이었는데 어느 새 그들도 모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추적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검강천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중에는 검강천과 비슷한 옷을 입은 자들도 있었다.

 

 

 

늘 안 좋은 예감은 현실이 된다. 안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삶에서 안 좋은 예감은 늘 그랬다.

 

 

 

‘역모?’

 

 

 

류심환은 기세당당하게 거리를 좁혀오는 추적자들을 보며 검강천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왜 안 좋은 예감이 늘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 지 추적자 무리들을 응시했다.

 

 

 

‘내부의 소행이 아니면 천하에 이런 상황을 만들 자는 어디에도 없겠지.’

 

역시 안 좋은 예감에 예외는 없었다, 지금처럼. 검강천을 살해하려는 역도들의 내는 경공의 파공음이 그의 등 뒤에 이르렀다. 천년 무림의 최강자, 검강천의 죽음을 재촉하는 소리가 행동으로 이뤄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검강천과 류심환에게 그들의 존재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둘 사이에는 오년 전의 약속만 의미 있었다. 무영의 미래, 그리고 그밖의 무수한 일들..

 

 

 

“아이를 무인으로 키워주시게.”

 

 

 

이것이 류심환이 검강천으로부터 들었던 마지막 말이다. 천상천의 신물 천상옥패와 그의 애검인 승천제마검, 그리고 한 권의 서책을 건네면서 검강천이 류심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다. 이것으로 천년의 전설에 처음으로 금이 갔고 그 금은 너무 커서 전설을 뿌리 채 흔들었지만 류심환을 보는 전설의 주인, 검강천의 눈에는 분명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의 약속으로 인해 천상천이 살아 있음을, 이를 아이가 입증할 수 있도록 천하제일인으로 키워주시게. 부탁하네.’

 

 

 

검강천의 믿음이 류심환에게 말하고 있었다. 허나, 천상천주 검강천만 놓고 보면 한 번 기울어진 위세란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기울어진 틈새를 노려 불나방들의 검, 도, 장, 지 등 탐욕과 역겨움의 짓거리가 역천이란 이름으로 가장해 전설의 주인에게 날아들었다. 전설이나 신화가 영원할 수는 없다면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리라.

 

 

 

“알겠습니다. 약속 지키지요.”

 

 

 

류심환이 아이를 품에 안고 돌아섰다. 독에 힘겹게 버티던 아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비의 죽음을 보기 싫었던 듯,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듯, 천상무극독에 악착같이 버텼던 아이가 의식의 마지막 조각을 놓쳐버렸다. 류심환의 응급조치에 의해 아이는 혼절하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본 검강천도 자신의 등 뒤까지 살수를 펼친 그의 형제와 식솔들을 향해 돌아섰다.

 

 

 

순간 두 사람의 등이 마주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멈춰 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억겁을 두고 그렇게 서 있어 세월의 흐름도 멈춰선 듯 했다. 그 사이에서는 역모의 탐욕자들이 펼친 가공할 위력의 합공은 존재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사물이 정지된 채 절대의 고요에 빠져들어 두 운명의 스쳐감과 틀어짐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다 누리기도 전에 두 사람은 앞으로 날아갔다. 한 사람은 이미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죽음을 향해, 한 사람은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새로운 인연의 미래를 향해.

 

[그리하여 천상천을 다시 세우는 날..]

[우리의 약속도 지켜지게 되겠지요.]

 

 

 

두 사람 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음이 오갔고 검강천으로서는 그 이상의 전음을 이어가기란 불가능했다. 그를 향해 달려드는 자들을 막기에도 힘겨웠기에. 류심환이 무영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시간이 남아 있기도 했고. 자신을 쫓아온 무리들은 이들만이 아니었고,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남아 있었다.

 

 

'무영아, 잘 자라서 아비처럼 후회를 남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라. 아비는 비록 떠나지만 언제나 네 주위에서 함께 할 거야.

 

 

 

검강천이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진기까지 끌어올려 몸을 날렸다. 신화의 영역에서 더욱 빛났던 그의 검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5년전 류심환에게 보여주었던 천상지무가 두 번째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위력은 너무나 달라서 신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자격이 없었다. 약간의 시간을 끌 수 있었지만, 그것이 다였다. 전설의 영역에 올라선 신화의 주인공의 죽음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 덕분에 신화는 계속될 수 있었지만. 

 

 

‘아빠… 아빠…’

 

 

혼절한 아이의 보낼 수 없는 마음이 마지막까지 그곳에 남아 몇 날을 목 놓아 울었다. 그때 하늘 밖에 있던 하나의 떠 있는 눈이 빙긋거렸다. 눈짓으로만. 그 빌어먹을 운명의 장난질이 인간에게 해왔던 것처럼, 하나의 떠 있는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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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은, 무려 천년 동안 얽히고 섞여서 부대끼며 싸울 수밖에 없었던 아픔과 회한의 여정(旅程)에서, 덧없이 사라진 수많은 죽음을 양산했고 그에 따른 복수의 대물림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삶과 죽음, 명성과 배신, 욕망과 탐욕, 정의와 협력 사이에서 이 모든 일은 하나의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검강천을 만나 비무를 청한 것에서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무영이 무대 위로 올라 임시주연이 아닌 진정한 주연임을 선언하는 순간 끝이 났다. 운명이 틀어버린 무림과 그에 얽힌 수많은 단상들의 허튼 꿈과 욕망과 처절한 몸부림의 물길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던 그 기나긴 여정은 하나의 전설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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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전설이 있다. 그 전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 전설을 고금제일이라 불렸으며, 그 전설의 주인이 홀로 나타나 건곤일척의 천하를 구했으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당연히 전설이 되어버린 것.

 

 

무림의 역사에는 존재했으나 군림하지 않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하늘 위에 위치한 하늘, 절대 문파 천상천(天上天)과 그 천상천을 전설의 영역에 들게 한 오직 하나의 절대무공. 천상지무(天上之武)! 홀로 일어나 천하지혈난(天下之血亂)을 종식시킨 단 한 명의 영웅에게만 몸을 허락한 절대신공.

 

 

무인이라면 누구나 이르고자 하는 무공의 최후 경지. 무림 역사상 단 한 사람만이 이르렀다고 전해 내려오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 말로 들었으나 전해지지 않아 볼 수 없었고, 못 봤기에 상상하였으나 누구도 그려낼 수 없었던 전능의 위력은 오직 무림 역사 상 단 하나의 사건으로만 전해졌다.

 

 

천 년 전 무림 태동기, 정파의 무공이 뿌리내리기도 전에 마의 화신인 음양합일역천지마(陰陽合一逆天之魔) 화극연이 역천마곡(逆天麻谷)을 세워 지옥혈왕의 열두 가지 힘, 십이마혼(十二魔魂)을 깨우고, 하나같이 절정 마인으로 키워낸 400명의 살귀를 이끌고 나타나 세외무림에서 중원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무차별로 살육해 가던 시절에 전설은 시작됐다.

 

 

그 천하 존망의 위기에 한 명의 영웅이 홀연히 나타나 절대마인과 그 혈겁의 추종자들을 홀로 처단해 갔다. 첫 발검으로 시작한 무림 구원사는 꼬박 1년이 흘러 태산의 정상에서 절대 마인 화극연을 전설의 검, 승천제마검(昇天制魔劍)으로 양단하니, 시산혈해를 이룬 혈겁은 그것으로 진저리 치는 피의 향연을 멈추게 됐다. 홀로 무림을 다니며 절대마인을 제거해 세상을 구하니(獨行武林 殺魔求世)비로소 검을 놓고 단 한 마디의 칭송도 받지 않은 채, 영웅은 자신이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무인과 일반인 가릴 것 없이 세상은 그를 칭송하여 무림혈록에 기록하기를 '정사무한대첩(正邪無限大捷)'이라 했으니 그것이 1년간의 혈겁의 역사며 홀로 진행한 무림 구원의 대장정이었다. 그가 절대마인과 그 추종자들을 한 자루의 검으로 베어가던 그 1년간의 여정을 천검지로(天劍之路)라 명명했고, 영웅의 업적을 기려 그를 천상무존(天上武尊)이라 칭송했으며, 그의 무공을 하늘의 무공이라 하여 천상지무(天上之武)라 함에 천 년 무림 혈사의 첫 장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렇게 그날의 일은 전설의 첫 장에서 인구에 회자되어 전설의 영역으로 들어섰고 그가 걸었던 독행무림(獨行武林)의 영광을 모든 무인들이 추구하여 하루도 검을 놓지 않으니 무림은 그것으로부터 흥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무림은 세상의 중심에 뿌리를 내렸으며 역사를 이루고 또 다른 영웅을 탄생시키며 전설의 장을 넓혀 갔으니 무림 역사가 이로써 비롯됐다 해도 과함이 아니었다.

 

 

                                                                행복한 산쟁이에서 인용  

              

 

그리고 한 가지 말, 모든 영광과 흠모를 뒤로 한 채 다시 은둔으로 돌아가면 천상천주가 했던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되니 그것이 천 년에 걸쳐 더해지고 부풀려져 하나의 전설에 이른다. 말이란 기억을 통해 상상을 자극하기에, 경험 이전의 신비감을 갖기 마련이며, 그래서 몇 마디 말에 불과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끝없이 회자되기에 모든 세대를 걸쳐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멸의 존재로 우상화된다. 거기에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당시의 사실은 신화의 영역으로 올라간 후, 태양처럼 빛나는 부분만 세상을 회자한다.

 

 

“내 이제 천하를 구하고 떠나니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자 다음을 기억하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도 그 아래이니, 내 생각 속에 모든 바람을 담고 내 육체 속에 생각을 풀어놓아라. 태극(太極)에서 십방(十方)까지 만물의 이치가 이 안에 있으며 깨달음을 얻는 자 그 흐름을 자신이 되게 하라.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자 영원히 하늘 아래 있고 그 경지를 넘어선 자 하늘 위에 있으리라. 내가 이루지 못한 이 경지를 뛰어넘는 자, 비로소 천하를 얻고 영원히 자유로워지리라. 후인이여, 무림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는 날 다시 하늘을 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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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천은 마음이 급했다. 속도를 낼수록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 상처와 깊게 갈라진 왼쪽 옆구리에서계속 피가 흘렀다. 내상도 치명적이어서 최소한의 운기조식이라도 해야 했지만 점점 가까워 오는 포위망에 아예 쉴 수도 없었다. 피와 땀이 뒤범벅돼 그의 등 뒤로 빠르게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처음에 30장마다 떨어졌던 핏자국은 지금에 이르러 3장으로 좁혀졌으니 그의 내력도 점점 고갈됐고, 그만큼 남은 삶의 시간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지러웠다. 전력질주가 네 시진을 넘어서면서부터 어지러움은 달리는 속도를 뭉툭 뭉툭 갉아먹었다. 살을 가르는 통증이야 그렇다 쳐도 한 시진 전부터 흩어지기 시작한 기력은 점점 바닥을 향해 달렸고 이를 알면서도 어떤 조처도 취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야 이미 버렸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역천의 순간부터 자신의 삶은 의미가 없어졌다. 아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실존하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존재였다. 신화의 주인에게 주어지는 삶이란 너무나 협소해, 천하가 혈란에 빠져들지 않은 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이들보다 높은 곳에 있었지만, 칭송의 대상이었지 그들 사이에 있을 수 없었고, 존재하는 인간이었지만 그 실재가 현존하는 인물로 세상에 속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검강천은 지독히 외로웠고, 누구와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죽음으로써 신화의 영역에 올라올 때까지는 자유로워질 자신의 아들이었지만.

  

 

‘이 아이만은 살려야 해.’

 

 

모든 것이 잘못됐지만, 잘못돼 한참은 정도에서 벗어났지만 이 아이만은 살려야 했다. 그것은 천년 전설의 진정한 주인이 이 아이이며, 이 아이만이 변질된 천년의 전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아이로 인해 전설은 더 이상 신화의 영역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에게 모든 가능성이 닫혀 있었다, 반나절 전까지는.

 

 

‘신화는 당사자에게 지옥이야. 이 아이는 지옥에 오르기 전까지만이라도 자유로워야 해.’

 

 

검강천은 자신의 아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가 지금 죽을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를 살려야 가능하다. 그 이유 때문에 그는 달리면서도 운기행공이나 지혈도 할 수 없었다. 촌각의 시간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으나 그것을 탓하지 않았고, 그것이 옳다면 누구의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으며, 먼저 돌아서지 않았고, 한 번 준 믿음은 이미 주었기에 거둔 적이 없었다.

 

 

헌데 평생을 함께 해온 이복형의 절대권력을 향한 탐욕의 칼에, 모든 것을 쥐고 싶었던 한 여인의 부정한 욕망에 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 이제는 이 아이마저 위태롭다. 무림은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고, 상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부를 늘리며, 뛰어나 자질을 소유한 문도를 늘림으로써 권력의 정점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정치를 닮았다. 절대적 힘을 갖게 되면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인 정치를 닮아서 무림은 피와 배신, 복수의 역사와 동일하다. 악은 그런 과정에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해서.. 살려야 했다. 이 아이만은 살려야 했다. 내 유일한 핏줄이어서가 아니라, 아이의 어미, 그 처참한 죽음 때문이 아니라, 틀어진 천년의 전설을 바르게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아이가 살아야 하고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다. 그 이유만으로 나는 내 아내의 죽음까지 받아들였다, 피눈물과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천형(天刑)의 사랑으로. 검강천은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지이잉!

지-잉!

 

 

그의 오른손에서 승천제마검(乘天制魔劍)이 슬프게 울었다. 주인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검명에는 습기가 가득해 검루(劍淚)를 뚝뚝 흘릴 듯 슬프게 울었다. 빠르게 뒤로 눕는 풀들 위로 여전히 검붉은 피와 영혼마저 잠식하는 땀이 떨어져 내렸고 하늘도 슬픈지 서쪽으로 길게 스러져 갔다. 어둠은 그에게만 밀려들었고 어디에서도 빛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검강천으로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 너무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니..’

 

 

그의 내력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다리도 하염없이 무거워졌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속도는 떨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 없었다. 하나의 약속이 남았기에 그는 쓰러질 수 없었다. 죽음이 그것을 막는다면 죽음부터 벨 것이고, 죽음을 베지 못한다면, 혼백이 되어서라도 약속의 땅으로 갈 것이기에 한 움큼도 남지 않은 의식을 한시라도 놓을 수 없었다.

 

 

가서, 그를 만나야 한다. 그에게 이 아이를 맡겨야 한다. 나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전설과 같은 영역에 올라선 사람, 류심환. 그에게 이 아이를 맡겨야 한다. 그 하나의 이유로 나는 쓰러질 수 없다. 기력이 다해 다리가 멈추면 기어서라도 가리라. 무릎이 다 닳아 뼈가 드러나 길 수 없다면 손가락으로 땅을 긁어서라도 가리라.

 

 

나에게 마지막 하나는 남았다. 하나의 약속만은 남았다. 오년 전에 했지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바람처럼 지나간 약속, 그 하나만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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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과도 일을 해본 사람으로써 잠시 팬택의 문제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팬택에는 휴대폰 개발팀이 12~17개가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삼성전자나 LG전자에도 팬택보다 많은 개발팀이 있었습니다. 각 팀들은 자신만의 제품을 내놓았고 그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들이 선택돼 생산되곤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건희 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선택을 받은 것이고,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밀여붙여 대한민국 휴대폰 사상 최고의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습니다(오너의 힘이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어쨌든 다양한 루트로 경쟁력을 확인해 본 다음에 출시된 폰들이 모두 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휴대폰의 경쟁력은 높아졌습니다.  



가장 많은 개발팀을 운영하던 삼성전자는 같은 방식으로 개발팀의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탈락된 팀들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들이 많은 중소 휴대폰 메이커로 옮겨가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팬택의 개발팀 전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삼성전자에서 밀려난 연구원(실력과는 상관없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팬택이 홈페이지에서 캡처


 

아무튼 기술력으로 무장한 팬택은 삼성전자가 독주하던 시절에 LG전자를 쫓아가며 다른 중소 휴대폰 메이커들과는 달리 대기업군으로 진입했습니다. 휴대폰 점유율이 10%대를 넘으면서 해외수출에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규모도 점점 커졌고, 다양한 제품군을 원했던 이동통신사들도 팬택의 휴대폰들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팬택이 위기에 처한 것은 국내 휴대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과 제조사에서 부담해야 하는 휴대폰 보조금의 끝없는 상승, 중국 후발업체의 공세, 퀄컴이 독점하고 있던 CDMA와 MS의 운영체제에의 완벽한 종속 등이 겹치면서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상당한 투자비를 쏟아부은 PDA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자금 압박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이때 PDA를 대체할 것으로 판단된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했고, 팬택도 스마트폰 개발에 상당한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에 최적화된 기존 이통사의 기지국(동시접속이 274명을 넘지 못한다, 필자도 이것 때문에 망했다)들로는 스마트폰의 테이터량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액정화면도, 터치스크린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해 초기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자신문에서 인용



노키아가 석권하고 있던 유럽의 경우처럼, 한국도 휴대폰을 대체할 스마트폰이란 시기상조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의 스마트폰 기술들을 쓸어모은 애플에서 아이폰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MP3의 원조국가였던 한국의 기술들을 차용해서 아이팟으로 대박을 터뜨린 것에 이어 애플의 두 번째 기습공격이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등은 스마트폰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폰의 독주에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두 회사와는 달리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팬택으로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진 것입니다. 휴대폰 국내시장에는 크게 중점을 두지 않았던 삼성전자(삼성전자의 휴대폰 중 7%만이 국내에서 판매됐다)가 애플을 쫓아가기 위해 국내시장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습니다.



비록 옴니아 시리즈가 참패를 거듭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애플의 아이폰을 따라잡기 시작한 삼성전자에 비해 자금력에서 한참 뒤떨어진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팬택의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기술 개발에 몰두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지만, 노키아와 모토로라, 소니에릭손의 몰락처럼 완전한 재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벤처신화의 대명사 중 하나였던 팬택의 회생은 자금의 문제입니다. 동시에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입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웨어러블 모바일기기(이것도 테블릿PC와 당뇨폰처럼, 필자가 사업을 할 때 숱하게 연구되던 것이었다)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스마트폰 시장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다음이미지 캡처



이런 상황에서 팬택을 살리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채권단이 아닌 이통사들의 수중에 달려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팬택 스마트폰의 점유율을 유지해줄 것이냐에 따라 팬택의 회생은 결정됩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팬택의 국유화는 스마트폰 혁신이 한계 이른 현재의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고, 현실적인 방법도 아닙니다.



팬택의 기술(특히 광대역 LTE-A)이 중국으로 가는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중국의 스마트폰 기술이 그렇게까지 형편없지 않습니다. 최근에 중국에서 아이폰의 신화가 깨지는 것도 중국 토종업체의 약진 때문입니다. 휴대폰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도 스마트폰을 내놓았고, 소니와 모토로라, 아마존 등도 스마트폰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팬택을 살리는 길이 정답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택을 살려야 한다면 정부가 채권단에게 추가적인 자금 투입에 대해 보증을 서주고 이통사들이 팬택의 제품군을 밀어줘야 가능합니다. 이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감상적 해결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해도 이를 국가 경제가 감수할 역량이 있다면, 정치적 해결책 이외에는 팬택을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1. 결국 자본 또한 경쟁력으로 간주되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저도 팬택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요..



위키백과는 거의 모든 미래의 먹거리와 연결되는 빅데이터와 그것이 사용된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필자가 정보통신사업을 할 때 꿈꿨던 것이 빅데이터를 이용한 맞춤형 서비스와 행동예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그것을 각각의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메일과 문자서비스(MMS와 영상을 보내는 것도 동일한 방식이다)일 것이기 때문에 이런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빅데이터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데이터 수집 및 관리, 처리 소프트웨어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크기의 데이터를 말한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캠프는 '다양한 형태의 유권자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이를 분석함으로써 '유권자 맞춤형 선거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미국은 부시 행정부의 막가파식 국제 경영에 반발해 폭발 직전에 이른 반미감정을 누그려뜨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 업무의 무차별적인 민영화와 외주화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연방정부를 물려받았고,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양대 전쟁비용 때문에 연방정부 재정이 고갈된 상태라 오바마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부시 행정부의 노선을 일부 수정함에 따라 노벨 평화상은 탈 수 있었습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저자 프랑츠 파농 식으로 말하면 '오바마는 백인이 지배하는 워싱턴 정가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성공한 검은 피부의 백인 대통령'에 불과합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오른 이후 한 일이라곤 누더기 전락한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킨 것과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양적완화로서 주식시장을 원상태로 회복시킨 것이었습니다(나오미 클라인이 《No Logo》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참조할 것).

 

 

아무튼 오바마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방법에는 탁월했지만 그 다음의 통치에서는 평균 정도에 그친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는 오바마 캠프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오바마 캠프는 유권자를 '인종, 종교, 나이, 가구형태, 소비수준과 같은 기본 인적 사항으로 유권자를 분류하는 것을 넘어서서 과거 투표 여부, 구독하는 잡지와 신문, 마시는 음료 등 유권자 성향까지 전화나 개별 방문을 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권자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통합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인 바터필드 시스템에 저장했습니다. 이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유권자 성향 분석, 미결정 유권자 선별, 유권자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 지도'를 작성한 뒤 '유권자 맞춤형 선거 전략'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위키백과에서 인용) 

                                                              

 


사실 빅데이터는 모든 분야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가장 원했던 것입니다. 보험회사가 각종 통계자료를 축적해서 보험상품에 대한 가격과 수익율을 계산했듯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기업들은 타겟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소비자들에 대한 정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TV광고는 단가도 높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관계로 광고 대비 매출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의 성능을 결정하는 반도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기업이 원하는 빅데이터 구축이 가능해지자, 기업가들은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다가갈 수 있었고, 마침내 구글이라는 기업도 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필자가 이통사들과 함께 수많은 프랜차이즈 고객들을 상대로 빅데이터를 구축해 각각의 업체마다 최적의 맞춤형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은 교회와 학원, 병원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고, 스타들의 팬관리에도 적용이 가능했습니다. 보험사와 카드사 은행과 증권사 등도 확대적용이 가능할 것이었습니다. 운송업체와 대리운전 전문업체, 유통업체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최종적으로는 여론회사와 리서치 회사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필자가 망한 후에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생각하는 컴퓨터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이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데이터의 양이 쌓이고 축적될수록 인간의 뇌에 근접한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보의 축적이 무한대로 늘어나면, 그러면서도 경제성이 있다면 인간의 뇌에 근접한 인공지능의 출현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참조할 것). 

 

 

예를 들면 제가 정보통신사업을 할 때 유행했던 음성인식기술을 들 수 있습니다. 말로써 모든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꿈의 시대로 접어들려면 음성인식기술이 상용화돼야 하는데 이것에도 빅데이터는 필수적입니다. 보통 음성인식율을 높이려면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을 선정(많을수록 좋다)해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도록 만듭니다. 발음이 좋은 사람부터 알아듣기 힘들 만큼 발음이 나쁜 사람까지 똑 같은 단어를 읽게 만들어 그것들을 서버에 축적한 다음에 수없이 되풀이해서 똑 같은 단어를 발성한 다종다양한 음성과 해당 단어의 매치율을 최대화합니다. 



이런 과정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데이터 마이닝된 단어들이 늘어나 음성인식율이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아직도 노이즈 제거라는 핵심사항이 남아 있지만 음성인식율이 높아지면 노이즈 문제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빅데이트를 활용하는 방식 중 하나에 속합니다. 구글이 이용자의 수많은 검색기록과 서핑기록, 사용기록 등을 축적해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이유도 사용자의 행태를 확률적 계산에 따라 유추해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음성인식에 있어 가장 힘든 일이 사용자의 음성과 섞이기 마련인 노이즈 제거이기 때문에, 잡음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사용하면 인식율은 높아집니다. 문제는 이 정도 수준의 인식율이면 개발비와 투자비를 회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 때 음성으로 전화를 거는 휴대폰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인식율이 떨어져 곧바로 사라졌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가 곧바로 시들어버린 것과 동일한 과정을 밟은 것이지요. 

 

 

특히 한글의 경우에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영어에 비해 인식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보통 음성인식이 제품으로서의 경쟁력을 지니려면 인식율이 98~99%에 이르러야 합니다.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원자력 같은 경우에는 99.99%의 인식율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필자가 사업하던 당시에는 한글의 인식율이 50% 수준에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음성인식의 최하의 단계인 TTS(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것)도 상용화되기에는 인식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빅 데이터 분석 기술과 방법들은 기존 통계학과 전산학에서 사용되던 데이터 마이닝기계 학습자연 언어 처리패턴 인식 등이 해당된다. 특히 최근 소셜 미디어등 비정형 데이터의 증가로 인해 분석기법들 중에서 텍스트 마이닝, 오피니언 마이닝, 소셜네트워크 분석, 군집분석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텍스트 마이닝: 비/반정형 텍스트 데이터에서 자연 언어 처리 기술에 기반하여 유용한 정보를 추출, 가공

오피니언 마이닝: 소셜미디어 등의 정형/비정형 텍스트의 긍정, 부정, 중립의 선호도를 판별

소셜 네트워크 분석: 소셜 네트워크의 연결 구조 및 강도 등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명성 및 영향력을 측정

군집 분석: 비슷한 특성을 가진 개체를 합쳐가면서 최종적으로 유사 특성의 군집을 발굴

                                                    


오랜 기간 동안 쌓인 데이터를 마이닝하고 분석한 결과, A라는 사람이 매월 3주차의 비 오는 수요일 오후 8시 경에 홈쇼핑에 접속해 특정 제품군을 많이 사는 경향이 있다면, 같은 조건이 날이 돌아오면 오후 8시 직전에 A의 휴대폰에 특별할인쿠폰을 발행해서 구입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소비자가 구입 확률이 가장 높은 때가 언제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빅데이터가 맞춤형 광고나 서비스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지만, 인간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 점에서 무서운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성능은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요? 특히 인간처럼 생각하고 추론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성하면 이것이 가능해질까요? 구글도 자신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는 까닭에 최상의 알고리즘을 추측할 수 없지만 빅데이터의 양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출현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인공지능에 관한 이론은 이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인공지능이 인류를 공멸로 이끌 최악의 위험이라고 했지만, 구글 등이 이를 인정할 리 없습니다. 현재의 포털이라는 것도 인공지능형 검색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주어진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것부터 최대한도로 순식간에 끌어오는 검색엔진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빅데이터에 대한 아주 조그만 인식이 생겼으니 다음 글에서는 구글이 가장 앞선 상태인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빅데이터가 왜 감시사회라는 빅브라더의 출현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세계 최정상의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와의 1국에서 졌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1. 2014.07.11 08:27

    비밀댓글입니다

  2. 솔숲향기 2014.07.19 07:49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오면 지배 하는자 지배 당하는자,
    이런 사회가 더 뚜렷해질 것 같네요.



넥스 히어로즈의 유격수 강정호의 질주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김재박과 유중일, 이종범으로 이어지는 대형유격수 계보에 마침표를 찍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강정호의 기세가 국내를 넘어 메이저리그도 점령할 판입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는 유격수의 특성 상 대형타자가 나오는 것은 10년에 한 명 꼴도 되지 않습니다. 


                                     강저호를  보기 위해 방한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ㅡ경향신문에서 켑처


올해의 강정호는 공인구의 반발력 때문에 폭발적인 장타를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유격수 출신의 최초의 홈런왕에 오를 기세입니다. 작년까지의 강정호는 리그 후반부에 들어서면 급격한 체력의 저하에 따른 타격 부진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데뷔 이래 대형유격수로 성장할 것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리그를 지배할 정도의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헌데 올해의 강정호는 조금 뻥을 치면, 전성기의 데릭 지터나 가르시아파라에 비견될 만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리그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선수경력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A-로드의 복사판을 보는 듯합니다. 리그 수준을  고려한다고 해도 스윙스피드와 수비력은 A-로드를 능가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강정호가 정규리그가 끝나는 시점까지 현재의 활약상을 이어갈 수 있다면 내년부터는 KBL이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강정호를 보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합니다. 약물복용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강화된 이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대형유격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입니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강정호 같은 선수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리그 최고의 유격수 트로이 톨로위츠키  


비록 KBO의 최고유격수이지만, 강정호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유격수인 트로이 톨로위츠키처럼 정교한 타격과 장타력을 겸비한 선수라서 류현진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계약조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후반기가 남아 있고,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기록만 욕심낼 수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있지만, 최소한 지금 같은 활약상을 시즌이 끝날 때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내년도 강정호는 국내에 있지 않을 것은 확실합니다. 


강정호가 KBL 출신의 내야수로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최초의 선수가 됐으면 합니다. 추신수는 외야수고 최희섭은 1루수였지만 두 선수 다 미국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선수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강정호 선수가 최고의 리그에 가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쳤으면 합니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면 계약금이 구단에 주어지기 때문에 넥센의 외국인선수 영입에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이 때문에 38세의 나이에 장타력이 부활해 세월을 거꾸로 가는 이승엽과 강정호의 경기를 챙겨 봅니다. 오늘도 스리런 홈런을 쳤으니 팀동료이자 경쟁자인 박병호와의 차이를 빠르게 좁히고 있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박병호가 살아나서 정규리그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면 이승엽과 심정수 이후로 최고의 홈런 레이스를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정호 선수의 멋진고 알찬 결과를 기대합니다. 내년도에는 미 메이저리그 명문팀에서 신인왕을 노릴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센의 강정호 선수 화이팅!!! 박병호 화이팅!!! 넥센 선수들 화이팅!!! 한국 프로야구 화이팅!!!

  1. 지바고 2014.08.11 16:32

    KBO와 KBL을 구분하지 못하시나봐요?
    야구하고 농구인데



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


                                                       ㅡ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용




삼성전자의 어닝쇼크에서 보듯 초국적기업들의 문제는 미래의 먹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발전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음은 애플의 혁신이 사라졌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최근에 들어 후발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시장을 조금씩 나눠가질 뿐 인류의 성장을 견인했던 기존의 제조업을 대체할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3D프린터와 유전공학 등이 기존의 제조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물보다 싼 석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규모 생산과 소비를 대체할 수 없다. 이를 테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처럼, 가벼운 경제가 무거운 경제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한 《롱테일 경제학》도 프랙털 이론(아래의 P.S를 참조할 것)에 기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빅뱅의 순간ㅡ다음이미지 인용



지금까지의 성장을 견인해온 신용 창출(화폐경제에서는 돈이 돌아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이라는 것이 힉스입자가 만들어내는 전자기장에 의해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다. 신용 창출이란 어떤 경우에도 사후 결재가 뒤따른다. 즉,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줄기차게 실시하고 있는 무제한 양적완화가 인플레를 초래하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에 직면하는 것도 발행된 통화량에 비해 그것을 변제할 수 있는 담보(지불준비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경제학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본질적 결함을 치유할 수 없다. 완전시장이라는 유토피아는 마르크스가 추상해낸 자유의 왕국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산업혁명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뉴턴역학 및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절대적 신봉에서 출발한 근대이성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기본적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끝없는 신용 창출로 인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비극적인 종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지구라는 행성을 끝없이 찾아내 광속으로 공간이동을 할 때만 가능하다.


                                                 머니투데이에서 인용(단위는 억이 아니라 조입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인 자기조정 시장(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무한한 진보를 견인하는)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황폐화시키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도, 애플이 혁신도 한계에 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산을 지탱해줄 소비자의 소득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의 무한 창출이란 그것을 바쳐줄 수 있는 생산이 우선돼야 하는데, 지구의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개발의 후유증을 무한대로 품어낼 지구도 한계가 있다. 생산비가 저렴한 사이버 세상마저도 전기라는 에너지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 역시 천연자원의 사용이 있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라, 삼성전자나 애플, 구글 같은 초국적기업들이 무엇인들 검토해보지 않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어느 것인들 시도해보거나 고민해보지 않았겠는가? 미국이란 유일제국이 신자유주의로 갈아탄지 겨우 40년만에 국민들의 과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장기불황에 빠져들었으며, 중국이란 신흥제국이 개발도상국의 GDP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개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겠는가?



잠시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것 같던 브라질이 극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고, 과거의 영광 중 일부라도 재현하는 것 같던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한 것에서 보듯, 무한한 진보를 견인할 미래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와 미래세대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산업혁명(샌드라 핼퍼린의 《유럽의 자본주의》를 보면 산업혁명이 유럽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과대포장된 이데올로기임을 증명했다)이 일어난지 300년도 안 돼 지구는 한계상황에 직면했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토지사막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부터 죽어나가는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1970년대부터 실질적인 면에서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빚잔치에 불과했고, 물가가 오른 만큼도 인류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소비해왔고, 신상에 매달렸으며, 그러는 사이 내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선 주변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치했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 진보가 선사해줄 풍요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약도 계속해서 수정보완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것이 완만한 진보이던, 영겁회귀하는 윤회의 반복이던 공존과 상생을 위한 것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P.S. 《롱테일 경제학》의 핵심은 가우스의 종의 곡선에서 양쪽 끝으로 내려가 직선처럼 길게 늘어지는 부분(χ축에 근접한 부분)이 실제로는 더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1 대 99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우스의 종의 곡선으로는 첨단정보통신 산업경제를 설명할 수 없다며, 가우스 확률에서는 의미없는 부분으로 취급되는 부분의 경제가 첨단정보통신기술과 어우러져 무거운 경제(중후장대)를 가벼운 경제(경박단소)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때 주장의 근거로 대는 이론이 프랙털 이론으로, 이것의 핵심은 전체는 그것을 이루는 부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전체를 다 살펴보지 않고 부문만 살펴봐도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 프랙털 이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해안선들의 모양이나, 한 지역에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을 살펴보면 지구 차원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0과 1이라는 단 두 개의 비트로 무엇이던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처럼, 많은 투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에서는 변수가 적은 종 부분이 중요하지만,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에서는 의미 없다며 잘려나간 부분이 중요하며, 99%가 몰려 있는 이곳에서 미래의 먹거리가 나올 것이란 뜻이다.



실제로 가우스 확률은 양자역학이 나온 이래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변수가 적은 거대한 규모에서나 이용되고 있다. 가우스가 정립한 수학과 확률이론은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기술과 나노단위로 작동하는 첨단산업, 금융공학 등에서는 유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패턴을 발견하는 데는 가우스 수학은 무용지물이다.



텔러비전과 고속도로와 주말여행과 편안한 아파트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한 순간도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지금은 오직 소수만이 분명히 보지만 언젠가는 전 세계가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눈부신 섬광 아래에서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도 좋다. 


                                                      ㅡ 이근식의 《서독의 질서자유주의, 오위켄과 뢰프케》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은 1940~5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한 빌헬름 뢰프케의 말이다. 현재 미국식 신자유주의(거대금융과 초국적기업이 국제기구와 지역국가 정부와 손을 잡고 벌이는 부와 권력의 독점 현상과 대물림이 핵심)가 세상을 점령한 상태여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우리나라 수구들은 이를 자유민주주의라 한다)의 원형을 제공한 독일 질서자유주의자(사회적 시장경제)의 대부인 뢰프케의 말은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불평등의 대가> 예고편에서 캡처



미국의 무정부적 자유주의가 시장경제의 공정한 경쟁마저 왜곡시킨 채, 미국이란 제국의 정치·경제·군사·외교적 힘을 빌려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한 다음부터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유럽에만 남아 있다)의 가치마저 종적을 감췄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전체주의적 자유주의 국가다. 미국에서 살고 자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유럽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미국은 돈의 논리 외에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



아무튼 이때부터 정확히 40년만에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밀림이 형성됐고, 세계 경제와 지역 경제는 초장기 대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처와 레이건이 한 일의 핵심은 공적 가치를 면영화하는 것이었으며, 제조업 위주에서 카지노 자본주의로 갈아탄 것이다. 이는 거대 금융자본의 주축인 유대계 고리대금업자와 군산복합체에 포진하고 있던 신보수주의 백인들이 원했던 미국의 모습이다. 



무려 60년 전에 이를 내다본 뢰프케의 성찰은 놀라울 지경이지만, 푸코의 지적처럼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는 달리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을 장려하기 때문에, 정글에서 사는 것처럼 '위험을 등지고 사는 삶'을 양산한다. 무한경쟁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조장하기에 그곳에서 사는 개인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시적인 위험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무한경쟁은 만인에 대한 승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승자독식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상위로 올라갈수록 독점의 수준은 가파르게 높아진다. 바로 이런 경쟁과 독식의 메커니즘 때문에 부와 기회의 독점이 가능해지고, 경제가 아무리 많이 성장해도 극소수의 승자와 절대다수의 패자를 양산한다. 소위 1 대 99 사회라는 것도 이런 과정이 쌓이고 축적됨에 따라 초래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경향신문에서 캡처



이처럼 자유방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국가의 공권력과 법률, 대통령령과 행정지도 등을 통해 국가의 전 분야를 재구성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만연되면 인간은 단 한 순간도 존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경제담론인지 알지만 사실은 시장논리로 다루면 안 되는 분야에까지 경쟁논리를 강제함으로써 국가와 사회, 시민들을 시장경제에 종속시키는 통치담론이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는 물가 안정과 최소한의 복지와 최저임금제를 통해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이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와 철도, 교육 같은 공적 영역의 민영화,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 최저임금제의 무력화, 기업 위주의 규제 완화, 관세 철폐와 증세 반대, 유치산업(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분야를 말하는데 한국의 경우 농축산업이 대표적이다)에 주어지는 보조금 금지 등이다.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모든 것들이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을 최대로 높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최적의 가격으로 연결시켜주는 시장의 기능에 따라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준다고 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시장이 최적의 가격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는 것이 증명됐음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실패가 완전경쟁을 방해하는 정치사회적 요인(규제가 대표적이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테면 신의 섭리 같은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국가의 실패는 있을지언정 시장 실패는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원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완전 시장이란 것도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허구의 유토피아임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방임적 무한경쟁만 보장하면 언제난 최대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이미지 캡처



지금의 2030세대들이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경쟁만이 개인과 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 국민경제가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인류의 발전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다. 1979년과 1980년에 영국에서 대처가 집권하고, 미국에서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사회경제적 평등이 확보한 상태에서 경쟁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강제로 폐기됐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신자유주의(무정부적 자유주의)가 들어서며 경쟁이 근대의 자연법처럼 당연시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지난 40년의 세상이 이러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태어나서 자란 2030세대는 민주주의 기초가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초한 정치적 자유와 공존의 박애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불의란 무엇인가》, 《슈퍼브랜드의 진실》을 참조하라) 



1930~40년대의 나치의 독일, 군국주의의 일본, 사회주의의 소련이라는 좌우의 전체주의적 파시즘의 반작용 때문에 자유주의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의 부활이 가능했고, 대처와 레이건의 집권을 기점으로 해서 인류의 부흥과 민주주의 확산을 견인했던 사회경제적 평등의 가치가 폐기됐다. 오직 자유방임의 가치만이 중시됐고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에서는 권위주의적 독재가 만연했다.  



                                                     정경유착의 폐해



전체주의적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독재의 시대에는 정치와 경제의 유착에 따른 공적 독점이 문제였지만, 자유방임 시장경제가 득세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사적 독점이 문제로 등장했다. 자유방임은 완전 시장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의 축적과 규모의 확대, 자유무역의 활성화로 인해 전 지구적 차원의 사적 독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자유방임 시장경제는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적 독점을 막을 방법이 없다.       



신자유주의 40년 만에 1 대 99 사회의 등장이 현실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신자유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풍요로운 삶과 극도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없다. 공존과 상생이 무한경쟁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줄어들지 않는 것도 신자유주의저 사고가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가 원형인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활성화와 최대화를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했다는 사실이다. 즉, 좁히기 힘든 작금의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경쟁이 결과가 아니라 통치권력의 인위적인 개입(적극적 자유주의라고도 한다)의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의 질서가 작용하는 어떤 생태계에도 승자독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통치자의 권력이 피통치자의 동의(주권재민)에 근거할 때만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사적 독점을 초래한 국가권력이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의 과제이자 정신이다. 하물며 자유방임 경제학에서조차 부는 소수에게 독점되어 있을 때보다 만인에게 편재해 있을 때 더욱 효율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카지노 자본주의, 폭주하는 기차를 멈춰라    

  1. 꼬꼬 2014.08.05 16:06

    잘 보고 갑니다! 인간적인 삶을 그리며 글을 읽고 동감하고 가요~

    • 늙은도령 2014.08.05 17:58 신고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잘 살 수 있고, 그래야 맞는데 그것이 안 되니 답답합니다.
      국민들이 조금만 더 세상을 이해하면 당장이라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박근혜 2기내각의 경제수장으로 내정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의 경제인식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 중의 한 명인 최경환 후보자는 "경제 회복세가 아주 미약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가 겹친 데다 세계 경제 리스크도 커졌다"면서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살펴볼 것"이라면서 "재정과 통화 신용 정책을 포함한 거시 정책과 내수 활성화 등 미시 정책, 기업 투자 활성화 대책 등 종합적인 대책을 이른 시일 안에 내놓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IMF환란을 초래한 강만수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들을 동원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최 후보자의 발언을 기준으로 할 때 그 자체로도 논리적 오류가 존재한다. 먼저 세계 경제 리스크가 커졌다면서 기업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기업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 리스크의 부담을 더욱 지라고 하는 것이니 이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까?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삼성전자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들이 느끼는 세계 경제의 리스크란 미래의 먹거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이는 일국의 정부 경제팀이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시에 초점을 맞추면 미시를 포기해야 되고, 미시에 초점을 맞추면 거시가 망가진다. 주류 경제학(미시에 방점)과 비주류 경제학(거시에 방점)이 매일같이 싸우는 것도 미시와 거시 사이에서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있다. 



최경환 후보자의 시각은 시장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 정부의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신자유주의의 원형)를 통해 케인스식 총수요확대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어서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경제정책의 결과가 경제학의 논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정책의 기본적인 수준에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면 그 결과란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논리로 경제를 풀어서는 안 되는다는 것이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본 중 기본 아닌가? 



그러나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최 후보자는 재정과 신용 정책을 거시정책에 포함시키며 추경 편성과 함께 LTV와 DTI의 한도를 대폭적으로 풀겠다고 했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공채를 발행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세율을 올려 추경을 편성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정권이나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국공채를 발행하는 것밖에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공사 때문에 매년 갚아야 하는 이자만 거의 조 단위에 이른다. 4대강공사를 통한 부대사업으로 이자는커녕 매년 유지비만 수천억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것을 최경환 후보자가 모를 리 없다. 이런 식으로 국가의 부채가 계속해서 늘면 제2의 IMF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명박근혜 정부 10년이 지나가면 공적 부문의 부채가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KBS 9시뉴스 방송화면 캡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수활성화를 위해 LTV와 DTI의 한도를 대폭적으로 풀겠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1020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가계부채를 더욱 늘리겠다는 것이 최 후보자의 생각이다. LTV와 DTI를 풀면 당장 돈이 급한 서민들이 대출을 받아 이것으로 일정 기간 동안 연명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바닥나면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방법이 없다. 깡통주택이 넘쳐나게 된다. 경매로 넘어가도 원금 상환조차 안 된다.



또한 부자들은 LTV와 DTI를 이용해 부동산 거래를 늘릴 수 있어 거래활성화가 이루어진다. 집값은 잠시 동안 상승한다. 제2금융권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떳다방과 대출브로커들도 생긴다. 기획부동산들이 움직이며 짒갑 상승을 본격적으로 부추긴다. 은행과 제2금융권은 대출증권을 팔아 높은 수익을 거두고자 한다. 그러다가 쾅! 이것이 미국에서 모기지사태가 일어난 과정의 압축이며 그 출발이 LTV와 DTI를 무려 집값의 120%까지 늘리고 소득원이 없어도 마구잡이로 대출한 것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의 안정적이고 특별한 소득원이 없는 상태에서 짒갑 상승에 따른 소득 대체효과가 발생해 내수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란 말도 안 되는 단견은 가계부채만 늘려서 경제 파탄을 앞당기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가계부채란 모라토리엄도 선언할 수 없는 것이어서 IMF 구조금융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까지 가지 않겠지만 인위적인 부동산활성화는 당장은 좋지만 2~3년 후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폭탄을 터뜨리고 만다.



보수경제학의 대가이자 현 인도 중앙은행 총재인 라구란 라잠의 《폴트라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2008년의 모기지사태를 일으킨 주범 중 하나가 정치에서 나왔음은 상식의 영역이다. IMF마저 참여정부 때 단행된 LTV와 DTI 규제를 금융위기 극복의 모범사례로 각국 정부에게 제시하는 마당에 박근혜 정부는 정반대로 가겠다니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경제가 어떻게 되든 말든 박근혜 대통령의 치적과 기업의 단기이익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게다가 경기침체가 세월호 참사 때문이라고? 웃기는 얘기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오로지 돈만 쫓아가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무한 것인지 깨달았고, 과소비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맞았다. 이는 거시적으로 봤을 때 한국경제를 튼튼하게 만들 최선의 방책이며, 초장기 경제불황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의 실질소득을 늘려주되, 빚은 줄여야 하며, 이를 위해 소비를 줄이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부의 재분배가 형편없기로 유명한 나라가 그것이 미시 정책적이던 거시 정책이던 파이만 키우는 일에 몰두하면 늘어나는 것은 빚과 무차별적인 규제 완화일 수밖에 없다. 천국을 옮기지 못하겠으니 지옥을 움직이도록 만들겠다는 프로이트의 말이 생각날 정도다. 따라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경환 후보자는 부의 재분배를 위한 조세 정의 실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내수경제를 살릴 방안은 갖고 있는지?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건 말건 오직 줄푸세만 끝까지 밀어붙일 생각인지?      

  1. 대한민국 2014.07.09 23:51

    티스토리로 옮겨 주셨군요.

    훌륭한 글 감사히 보고 갑니다.

    새로 즐겨찾기 해두고 자주 들르겠습니다.

    항상 지식과 통찰을 나눠주시느라 고맙습니다 ^^;


전통 경제학에서는 시장의 가격원리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면, 직종에 대한 매력이 소실돼 노동공급이 감소해야만 한다. 노동력을 사기 위한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구인 욕구와 노동자의 취업 욕구가 최적의 조합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제품 가격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헌데 실제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곤 한다. 노동자의 임금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지면 노동공급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작금의 비정규직과 임시직 및 일요직 노동자들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에도 자신의 노동력을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이런 역설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경제학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이런 역설은 “임금이 생계비 이하로 낮으면 근로자들은 부족한 생계비를 벌기 위하여 잔업을 하거나 부녀자와 아동들도 일하게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최신판인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지금, 하루에 투잡 이상을 띠는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에 나선 부녀자와 아동들이 넘쳐나는 것도 이런 시장의 가격원리에 내재하는 근본적 문제이다.



1940~5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원형인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오이켄은 자본주의 역사에 만연한 이런 역설을 예방하려면 국가가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경쟁질서를 확립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독점기업들을 해체한 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되면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이 해소되기 때문에 이런 역설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임금이 하락할수록 노동공급이 과잉되는 역설(마르크스는 사업자가 자본 축적을 위해 생계비에 미달하는 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초과착취라고 했다)이 계속되면, 이를 막기 위한 최종 해결책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임금에 관한 시장의 가격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계를 위해 국가가 최저임금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율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가장 많이 올랐다ㅡ다음이미지 인용 



오이켄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면 노동시장의 수요독점에 따른 임금 하락이 사라진다고 봤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에서 금융이나 아이디어 및 서비스 산업처럼 가벼운 경제로 이행할수록 이런 역설이 강화됐다. 특히 영미식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대되면 될수록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했다. 



문제는 이런 역설의 강화가 일반화되자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생계비가 노동자의 임금이 생존비용에 턱걸이 하는 수준에서 책정되도록 악용되는데 있다. 오이켄 등에 의해 최저생계비라는 제도가 도입됐을 때만 해도 평균적인 남성노동자의 임금만으로 가족의 생계가 해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축과 교육, 보험을 들 수 있었다. 



헌데 1973~75년 이래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 성장과 규모가 줄어들고, 국가에 의한 독점기업이 아니라 시장경제에 의해 민간독점기업들이 부를 독식함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은 추락을 거듭했는데, 그 근거로 이용된 것이 최저임금제였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조에 따라 부의 불평등이 극대화되자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이에 따라 부녀자와 청년 및 아이들이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신자유주의적 퇴행이 발생했다.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최저임금제가 노동자는 물론 가족의 해체나 파괴,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근거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존임금으로의 변질,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진실이다.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면 노동시간 단축도 불가능해지고, 연예와 결혼 및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양산되며, 각종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이처럼 노동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기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이것이 선장과 승무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던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다윗 2014.07.19 03:49

    진보세력들이 얘기하는것처럼 최저임금이 그들의 업적일까? 여당후보가 최저임금 모른다고 난리치고 할일인가? 임금은 시장의 공급과 수급사이에서 결정되는게 가장 좋은것이다 막상 최저임금정해놓고 외노자 조선족마구 들어오게해서 서민일자리 복지더 위협하고있다 더 웃기는건 공기업 은행권 귀족노조 언론노조만 더 배불리는 구조된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나요? 자칭 진보라면서?



정말로 명승부였다. 

월드컵 때문에 많이 묻혀버렸지만 페더라와 조코비치가 맞붙은 올해의 윔블던 결승전은 나달에게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었던 조코비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는 33살의 페더라가 승리했으면 윔블던 최다 우승의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페더라와 함께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샘프라스의 우승기록을 넘어 새로운 신천지를 열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를 페더러는 놓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승한 조코비치의 코치가 윔블던 역사에서 페더러와 샘프라스와 거의 동급에 자리하고 있는 보리스 베커라는사실이다. 

독일 출신의 베커는 샘프라스와 함께 강한 서브와 뛰어난 발리로 공격적인 테니스의 대명사로 탁월한 스트로크 플레이어인 조코비치와는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코치로 베커를 영입한 조코비치의 선택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할 수 있다. 

조코비치가 페더러에 버금가는 선수로 성장하려면 페더러는 물론 숙명의 라이벌이자 클레이코드의 황제인 라파엘 나달을 넘어서야 한다.

비록 올해의 프랑스오픈에서 나달에게 우승트로피를 넘겨줘야 했지만, 윔블던에서는 페더러를 꺾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만일 내년도 프랑스오픈에서 조코비치가 우승한다면 베커를 코치로 영입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될 수 있다. 


                                                                    연합뉴스에서 인용


반면에 역대 최고의 선수로서 코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페더러는 전성기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우승할 수 있기 위해 코드의 신사였던 스테판 에드버리를 코치로 영입했다. 

서브 앤 발리가 대세였던 시절에 에드버리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유명했다. 

그를 코치로 영입한 페더러의 선택도 상당한 결실로 이어졌다. 

윔블던 결승에서 조코비치의 벽에 막혀 분루를 삼켜야 했지만, 5세트까지 승부를 끌고갈 수 있었던 것은 에드베리의 영입이 유

효했음을 입증한다. 



필자는 사실 베커의 광팬이었고, 에드베리의 열렬한 팬이었다.

두 사람의 플레이는 여러 면에서 달랐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테니스 달인이었다는 점에서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결승전을 보는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페더러의 우승을 기원했던 필자로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지만, 왕년의 두 스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윔블던 결승전은 많은 테니스 팬들에게 솔솔한 재미를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리라.      

경기도 명승부였듯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두 코치의 모습이 겹쳐저서 더욱 재미를 배가시켰다. 

승자인 조코비치에는 박수를, 패자인 페더러에게는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노장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면, 페더러의 부활은 시간마저 거슬러 가는 위대한 선수의 초인적인 도전을 우리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이제 그랜드슬램대회는 US오픈만이 남았다. 

윔블던 대회를 통해 더욱 확연해진 여자테니스의 세대교체와는 달리 최강 4인의 공고함이 유지되고 있는 남자테니스의 경우, 조코비치와 페더러는 US오픈의 강력한 우승후보일 수밖에 없다.

둘이 결승전에서 다시 한 번 만난다면, 그래서 페더라가 우승한다면 윔블던에서 놓친 최다우승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 

US오픈의 경우에도 샘프라스가 페더러와 함께 5회에 걸친 우승기록을 갖고 있다.



어쩌면 페더러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US오픈에서 우승해 테니스 역사에 새로운 신천지를 열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다른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들은 필자의 바람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1. 무법 2014.08.12 11:11 신고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페더러의 윔블던 최다승을 기원했던 한명의 팬이었고 감격과 눈물로 이번 윔블던을 봤었습니다. 페더러가 US 오픈에서 꼭 우승했으면 합니다. 정말 이번 윔블던 4세트는... 평생 잊지 못할 경기였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24 신고

      네, 정말 명승부였습니다.
      저도 4세트를 페더라 이겼을 때 역전 우승도 가능하다 봤는데 늘 5세트가 되면 힘을 내는 조코비치의 젊음을 넘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쉬웠어요.
      이제 저무는 별에서 다시 일어난 페더러가 US오픈에서 우승하기를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



처음은 두려움이고 설레임이다.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것이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인연들을 만들고, 색다른 경험을 할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어서 미래라는 것인데 

그래서 현재만이 실재하는 것이라 했는데 글이란 것은 늘 죽어있는 경험들의 소산이다. 

글이란 쓸 때만이 현재일 뿐, 업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생각을 거처 언어로 드러난다는 것에서 늘 죽어있는 경험이다.

글이 기록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미셀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첫 경험에 대신하려 한다.

20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떠오른 푸코는 권력의 해체와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인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지만, 너무나 많은 추종자로 하여 자신이 지적 권력으로 우상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무려 8년 간 침묵을 했다.

그가 지적 권력으로 자리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자세에서 나왔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하나의 참조사항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 사람 이상이, 의심할 바 없이 나처럼, 더 이상 얼굴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쓴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나에게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지도 말라. 이것이 나의 도덕이다. 이것이 내 신분증명서의 원칙이다. 쓴다는 것이 필요할 때,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좌우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던 푸코로서는 일일이 대항할 방법도 없었고, 그런 논란에 빠져들고 싶지도 않아 자신은 오직 글을 쓰는 것으로만 말하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다.

필자도 이와 비슷하다.

쓸 것이 필요할 때, 사유의 결과물을 기록으로 옮겨야 할 때, 이곳에 글을 남김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나는 글로써 말할 것이며, 글로써만 존재할 것이다.

나의 얼굴은 없으며, 신분증명서도 갖지 않고 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나 또한 끝없이 공부하고 보다 깊은 성찰에 이르기 위해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뿐이며, 그것들을 글로써 말할 뿐이다. 

시작은 언제나 사막과도 같다.

자유로운 자만이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언제나 출발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상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보기 보다는 현실의 가장 낮은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려 한다.

죽음에서 시작하면 영원히 살 것이며, 출생부터 시작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출발을 시작한다.

길은 있어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나왔기에 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면서..

  1. 대한민국 2014.07.09 23:53

    훌륭하신 마음과 강인한 정신...

    항상 끝없이 공부하고, 죽음마저 초월하시는 숭고함..

    도령님의 글들을 보며 많이 깨닫고 본 받고 싶습니다.

  2. 씽ㅡㅡ 2014.07.13 14:28

    우연히 아고라글을 보고 찾아와 즐겨찾기 했습니다~!

    학식과 성품을 본받기 위해 자주 들려서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건강하세요~~!

  3. 꼬꼬 2014.08.05 17:25

    도령님의 답글에도 공감을 많이 하고 갑니다.

    글을 써서 남긴다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 정말 공감이 갑니다. 역설적이기도 해서 재밌네요. 요즘 인터넷을 통한 광장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는데요. 현실의 시공간 벽을 허무는 새로운 장인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남기고 소통하는게 과연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선 공존을 가장한 혼자만의 세상에서의 독재도 일어나기 때문이죠. 물론 독재라는 것도 작은 세상안에서의 착각이지만 (또 다른 통제는 존재하니까요) 적어도 익명성, 내 인터넷기기의 독점성 등은 내가 작은 세계에서나마 주인이 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좋죠. 독재가 전제된 소통의 입을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지..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적어도 도령님글은 도령님의 삶의 방향이 공동체와 이상을 향해 있는듯하여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가는 길을 밝히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령님이 앞으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쓰시며 자신의 존재의 길을 밝혀나가시길 응원합니다. 멋지십니다. 전 댓글 하나 달때도 많은 용기를 내야 하던데 이렇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당당히 보여주신다는 게. 오즈의 마법사에서 허수아비,양철나무꾼,겁쟁이사자가 뇌,심장,용기를 찾는 것엔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 늙은도령 2014.08.05 18:06 신고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이 정립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치열해야 하며, 진실해야 하며, 투명해야 합니다.
      글이 힘을 지니거나 울림이 있으려면 거짓된 것들을 올리면 그것은 독자를 향한 사기입니다.
      삶의 경험과 지적 여정, 성찰의 결과물들을 가장 쉬운 언어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숨기고, 분명한 기준이 없다면 허구의 기록이겠지요.
      글을 쓰는 것이 삶이기에 최대한 투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감사합니다.

    • 꼬꼬 2014.08.08 18:20

      치열하고, 진실하고, 투명할 것. 앞으로 계속해서 곱씹어야 할 말들이겠네요.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4. 덕산 2014.08.11 20:36

    늙은도령님

    늦게나마 감사인사드립니다.
    아고라에서 알게된 후에 이사이트에 와서도 써놓으신 귀중한 글 늘 읽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활짝 열게 해주시고 악덕자본의 진실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더 많은 분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저도 작은 힘이지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00:37 신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 명씩 깨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연대의 소중함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개성이 평등을 기초로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세계입니다.

  5. 육펜스 2014.09.01 02:55 신고


    살이와 생각. 이라고
    티스토리 대문만 지어놓고

    이럭저럭 일상으로
    전혀 글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있습니다^^


    님의 글들 보다 정독하며
    제 마음자세를 먼저 다듬어봐야할듯 합니다


    좋은 글과 정보들..
    늘 감사드립니다.

  6. 백순주 2015.08.21 15:56 신고

    '나의 얼굴은 없으며, 신분증명서도 갖지 않고 있다.'

    PC로 만나는 세상은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전 블로그 개설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얼굴이 생기고, 신분증명서도 발급되었습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그게 더 어려워 그만 두었습니다.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초식명은 천지빙결검류(天地氷結劍流)라 하네. 한천마결의 제1초지.”

 

 

검강천은 극음지기의 정수, 빙혈류를 천상천의 천상무극진기(天上無極眞氣)에 실었다. 빙혈류가 만든 적홍의 음강이 점점 투명해졌다. 색의 변화는 투명함으로써 오히려 적홍의 음강보다 더 강렬하게 보였다. 어쨌든 차가운 음강 아닌가.

 

 

"비록 제1초식이라 해도 각 빙강마다 다섯 단계의 변화가 있네. 단순히 음강의 격발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말과 동시에 그는 자신의 손 안에서 키운 음기의 결정체, 구를 맹렬하게 돌렸다. 수천 가닥의 음강이 일어나 앞서 펼친 것들과 함께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지잉! 징-!

 

 

공명이 대기를 갈랐고, 비온 뒤 수많은 빛이 구름을 뚫고 땅까지 쏟아지는 광경이 이것 아니면 무엇이랴. 그 장엄한 광경에 눈이 부실 때, 10장 정도의 길이까지 치솟은 음강이 먹이를 앞에 둔 매의 눈처럼 류심환을 노려봤다.

 

 

'대단해. 멋있어!'

 

 

그 변화를 지켜보는 류심환의 긴장도 고조됐다. 혹시 모를 죽음이 두렵기도 했고, 자신을 향해 펼쳐질 절초(絶招)의 끝없는 변화와 위력을 알지 못했기에 긴장은 더했다. 허나, 극도의 긴장은 집중을 증폭시킨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무림인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천상천의 무공, 그것도 천상천주가 직접 펼치는 절대 초식 앞에 서있었지만 증폭된 그의 집중은 점점 하나의 길에 이르고 있었다.

 

 

"처음엔 이중 하나가, 다음엔 두 개, 그렇게 열개도 백 개도 될 수 있지. 변화는 이미 말했고."

 

 

결국, 강기의 수가 가장 많을 때 격발될 것이며 다시 다섯 단계의 변화를 일으키며 날아들겠지만 류심환도 하나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그의 모든 잠재능력마저 깨웠다. 그에겐 아직 선택할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길의 끝에서 그가 잠재능력이 내민 손을 잡았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푸른 느낌이 빛살처럼 스쳐갔다. 지금껏 무의식에 자리해 어렴풋했던 영감(靈感)이 전율처럼 스쳐갔다. 전율의 끝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 가지 원리(原理)가 떠올랐다. 끝까지 밀고 갈 수 없었던 사유가 마침내 목적지 근처에 도달했고, 마치 류심환이 원리에 이르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번쩍! 쾅!

 

 

빛이 일었고, 검강천의 음강이 초신성처럼 폭발했다. 그 폭발은 한 개의 음강에서 시작됐으나 다음에는 2개, 그 다음엔 3개, 그렇게 10개가 연속으로 폭발했다. 이 모든 것은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났다. 속도를 따라가기도 힘든 무한정의 폭발을 향해 류심환은 그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영감이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고 그는 그것에 따랐다.

 

 

‘목숨을 담보로 무엇인들 못하랴. 믿음이 원하는 걸 줄 거야.’

 

 

그렇게 염원했던 무(武)의 최후 단계에 들어서는 것, 그 초입에서 류심환은 느닷없이 떠오른 영감이 자신에게 제안한 수를 굳게 잡았다.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류심환의 한 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아닌, 물 위에 떠있는 지푸라기처럼 자연스러웠다.  

 

 

‘모든 무공이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돌아온다(一極武原訣)!’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래서 어떤 위대한 초식처럼 보이지 않는 류심환의 한 수가 검강천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는 그냥 손을 뻗어 몇 번 흔든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우주의 폭발 같은 음강의 모든 흐름이 멈췄다. 류심환은 이번에도 그런 단순한 동작으로 검강천의 초식을 막아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한 성공이었다.

 

 

‘어떻게 이게.. 말도 안 돼!’

 

 

검강천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정말 상대의 단순한 동작에 천지빙결검류가 파식됐다. 물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지형에 따라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자연의 섭리 같기도 하고, 우주의 원리 같기도 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문득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나의 생각이 검강천의 뇌리 속에서도 떠오르려 했다. 뭔가, 새로운 어떤 것이 꿈틀거렸다.  

 

 

허나, 류심환의 느낌은 단순했다. 그것은 모든 무공의 결과를 이루는 근본에 관한 깨달음이었다. 그 동안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던 그의 깨달음이 일제히 기어 나와 의식에 다리 하나를 걸쳤다. 그 다리가 몸통마저 끌어올릴 것이며 결국 몸 전체가 의식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단순했지만, 그래서 더 명료한 것 같았다.

 

 

‘천지빙결검류에는 이 방식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었어.’

 

 

류심환은 조금 전의 장면을 하나하나씩 떠올려 분리하고 다시 합쳐 보기를 수 십 차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단순한 느낌에서 시작된 이해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거리 안의 깨달음이 됐다. 가만히 있는데도 무의식에 숨어 있던 놈이 이제 몸통까지 나와 의식에 머무르려 했다.

 

 

모든 무공이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돌아온다. 그가 마침내 그 끝에 이른 길이 거기에서 문을 열었다. 그 안은 인간의 잠재력의 보고이자 무의식의 신천지였다.

 

 

‘그래도 아직 한 가지가 남았어.’

“부탁이 있습니다.”

 

 

류심환이 말도 안 되는 현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검강천을 향해 말했다.

 

 

“부탁?”

 

“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천상지무를 보여주십시오.”

 

 

마침내 류심환이 천하 최고의 무공인 천상지무를 언급했다. 그가 여기 온 이유이자 목적인 천상지무를 언급했다. 이미 깨달음의 근간은 얻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무공의 끝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조금씩 다르듯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경이로운 체험이 환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자타가 공인하는 천상지무와 겨뤄야 했다.

 

 

허나 현재의 능력으로는 검강천이 펼치는 천상지무를 상대할 수 없다. 백이면 백 자신의 목숨은 지상에 소속된 것이 아닐 터였다. 천상지무를 경험하지 못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것이기에, 부딪치려고 여기까지 왔고, 온 이상 어떤 형식으로든 천상지무를 경험해야 했다.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류심환은 도박을 선택했고, 그 이후의 것들은 검창천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류심환의 어이없는 부탁에 검강천이 의외로 담담히 물었다. 그도 현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마친 것 같았다. 그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없지만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류심환은 여기까지 온 거, 결과가 무엇이 되든 끝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무인이 그러하듯이..”

 

“....”

 

 

류심환은 여기까지 말해놓고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뻔뻔했기 때문이다. 검강천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류심환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검강천이었기에 말없이 류심환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느리게 눈을 감았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후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뒤의 얘기는 상대로부터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네, 무리라 하더라도.”

 

 

류심환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검강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울러 입술의 선이 방향을 위로 틀려했다. 상대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갖고 있더라 하더라도 자신이 천상지무를 펼치면 상대의 목숨은 그것으로 끝이다. 검강천의 심기가 약간 뒤틀렸다. 천상지무는 아무나 익힐 수 없는 비전의 신공이기도 했지만, 무신의 현신한다고 해도 보는 것만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천상지무를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천문의 규율을 깨는 일이었고, 그 대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천상지무를 배우기 위해 투입한 시간만 해도 상대의 나이를 훌쩍 넘을 것이었다.   

 

 

“너무 건방지군. 무신이라고 해도 천상지무를 보는 것만으로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자네 정도의..”

 

 

검창천의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순간적으로 휙 하니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아득한 심연의 침묵이 흐른 후, 뜬금없이 검강천이 웃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류심환의 패를 받은 것은 분명했다. 있을 수 없는 상대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그도 류심환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의 뇌리를 번개처럼 지나갔던 생각이 만들어낸 조건이었다.

 

 

“이 거래가 공평하려면, 나도 부탁을 하나 하겠네.”

 

 

웃음을 거둔 검강천이 말했다.

 

 

‘부탁? 천상지무를 공짜로 보여주는 대가로서?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무슨 부탁을?”

 

 

오히려 궁금해진 쪽은 류심환이었다. 검강천이 자신이 제시한 요청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지 너무나 궁금했다. 분명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인으로써, 그것도 그 끝에 이르고 싶은 야망을 가진 자로써 천상지무를 보는 대가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든 자네를 찾을 수 있게 있는 곳을 알려주게. 부탁은.. 하게 된다면, 그때 하겠네.”

 

 

‘하게 된다면 그때 부탁하겠다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 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보여주는 것이 돼잖아?’

 

 

도무지 짐작할 수 없기에 류심환은 검강천의 부탁이 미칠 만큼 궁금했고, 검강천은 조건을 걸면서도 그런 조건을 실행할 날이 도래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이 상대에게 부탁할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천지대란의 서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순 같은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 될 수 있지만, 천상지무를 익힌 검강천에게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검강천이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다. 류심환은 그의 부탁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

 

 

이렇게 나와 검강천과 하나의 약속이 이뤄졌다. 빌어먹을 운명이 비틀어버린 거대한 물길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내 첫 걸음이 5년 전의 이날에 시작됐다. 그것은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하늘이 마련해 놓은 또 하나의 운명이나, 거역할 수 없는 선택지 같은 것이었다. 인간을 구속하는 그 빌어먹을 운명을 따르든지, 아니면 거역해서 새로운 운명, 즉 완벽한 자유를 개척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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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운명, 그 오년 전의 약속1

 

 

  

드디어 운명을 바꿨다. 운명이 틀어놓은 물줄기를 제 자리로 돌려놨다. 누군가, 그것도 운명이라 한다면 나는 또 그 물결을 돌릴 것이다.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또 죽어갔는가. 그놈의 연극을 중원이란 무대에서 내리고, 다시 돌아온 비궁(秘宮)에서.. 무천의 하늘에서.. 나 류심환(柳心煥)이 기획하고 무영이 주연한 연극(演劇)을 그놈의 무대 위에 올렸다. 운명을 내가 바꿨다.

 

 

긴 여정의 시작은 내가 한 사람을 만난 것으로 시작됐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내가 하늘 밖의 하늘, 그 후예의 자리를 버리고 무작정 비궁(秘宮)을 떠나 그를 만나 비무(比武)를 청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지금 내 앞에 그가 서있다. 하늘 위의 하늘, 그 천년 전설의 주인, 천상천주(天上天主) 검강천이 지금 내 앞에 서있다. 이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무려 삼십 합이야. 그것도 그때 그때 즉흥적인 방식 같아.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돼. 헌데 대체 이건..'

 

 

검강천은 지금까지의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약관에 이르렀을까? 상대는 어떻게든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물론 그가 천상천(天上天)의 무공을 펼친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그가 펼친 무공은 모두 녹녹치 않은 것들이다. 평범한 무공도 그를 거치면 천하 일절(一絶)로 거듭나는데, 하물며 25합 이후의 초식은 지난 백년 이래 최강자인 무림 삼성(三聖)의 무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런 최강의 5합을 막아낼 수 있는 고수는 현 무림에선 한 손을 넘지 않을 것인데.. 상대는 약관 이전의 청년 같았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예였다. 게다가 무림 역사상 최고 무인의 자리에 오른 자신조차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이걸 믿으란 말이야?’ 

 

 

지난 삼십 합을 다시 떠올려 봐도 상대는 일정한 규칙도 없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感)에 의해 손을 뻗고 흔들고 펼쳐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 분명했다. 더 놀라운 것은 상대의 내공 수위가 현 구대 문파의 장문과 비슷하거나 천상천 호법 수준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에게 상대가 천상천을 어떻게 찾았고 천주인 자신은 또 어떻게 찾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를 처음 본 순간 그저 운명의 한 축처럼 자신의 몸을 관통했던 전율 같던 느낌만 검강천(劍强天)을 사로잡았다.

 

 

'상대에겐 내가 모르는 원리가 있어. 허면.. 방법은 하나, 본 천의 무공이야. 좋아, 한천마결로 간다. 저자가 한천마결마저 같은 방식으로 막아내는지 확인해야 저자의 원리를 알 수 있어.’

 

 

마침내 그는 상대가 지난 삼십 합에서 보여준 방식의 근본 원리를 밝히기 위해 천상천 무공을 선택했다. 천상천 무공은 격이 다르다. 천년 전설의 천상천, 그 절대문파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가 한천마결마저 앞과 같은 방식으로 막아낸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임기응변이 아닌 하나의 원리를 이루고 있음이 확실해진다. 그것은 전설의 주인인 그조차도 경험치 못한 무공의 신천지다.

 

 

                                                                     다음이미지에서 캡처

 

결국, 그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천상천주로써 상대를 제압하고 그에게 밝혀내야 할 것들에 대한 의무보다 작금의 상황이 더 그를 매료시킨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가 가져다 준 신선한 충격이 절대 무인으로써 더 흥미로웠고 응대방식의 간명함이 주는 의외성이 검을 든 첫 날의 초심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천상천 천주이기 전에 한 사람의 무인이었다.

 

'이런 즐거움, 정말 오랜만이야. 더는 없을 것 같던 무공의 신천지가 이런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열릴 수도 있다니..'

 

 

작금의 상황을 그로서는 믿기 힘들었지만 이런 결과가 절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것이 무공이다, 언제나 신천지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그에게 솔솔 재미가 붙었다.

 

 

“류심환이라 했던가?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네. 이전의 것들은 잊게. 이제부터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검강천이 진정한 비무의 개시 선언을 했다. 결심 했기에 그는 추호의 망설임없이 한천마결의 기수식을 취했다.

 

 

“저 또한.”

 

 

칠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말없이 검강천의 행동을 지켜보던 류심환도 검강천이 변한 것처럼 그도 준비에 들어갔다. 순간, 그의 눈빛이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가라앉더니 투명해 오히려 푸른빛을 드러냈다. 그 역시 무엇인가 달라졌다. 그런 상대의 변화를 느끼며 검강천은 한천마결의 진기, 빙혈류를 어깨너비로 벌린 두 다리에 보냈다. 빙혈류가 두 다리의 혈맥을 따라 땅속으로 스며들어 대지의 깊은 곳에서 억겁을 흘러온 순정의 음기를 자극했다. 그 순정의 음기는 상대의 기운을 탐색하듯 빙혈류를 감싸더니, 그대로 솟구쳐 흡수됐다.

 

 

그는 두 다리의 혈맥을 타고 대지의 음기가 올라오자 빙혈류를 양 팔로 보내 대지의 음기가 그에 따라 장심에 이르게 했다. 두 절대음기가 하나가 된 그의 손바닥이 푸르게 채화됐다. 그는 선홍빛으로 물든 두 손바닥을 위아래로 마주보게 함으로써 하나의 구(球)를 감싸안은 모양을 취한 뒤 그 형태를 유지하며 가슴까지 내렸다. 빙혈류가 작동하자 천지 간에 퍼져 있는 한기가 들끓더니 그의 손바닥 안으로 모여들었다. 주위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고 류심환은 엄청난 한기를 느꼈다.

 

 

순간, 검강천의 양 손 안에 두 다리를 타고 올라온 대지의 순정 음기와 천지 간에 떠다니던 한기가 하나의 구(球)로 결집됐다. 거거에 한천마결의 공결(功訣)이 흐르자 그대로 결빙됐다. 한기는 그 결빙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급속히 심해졌다. 게다가 결빙은 계속됐다. 두 기운이 손 안에서 계속 물방울을 만들었고 결빙됐다. 그에 따라 물방울 모양의 작은 결정체가 수없이 늘어났고 그때마다 류심환이 느끼는 한기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시간이 흐르자 물방울도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나더니 어는 한 순간 쩡! 하며 하나의 결정체로 합쳐졌다. 그것은 대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얼려 가던 빙하기의 결빙과정을 두 손 안에 재현한 것 같았다. 류심환이 느끼는 한기의 강도는 결정체의 크기에 비래했고 곧이어 그가 더 이상 참기 힘든 지경에 이르자 한기는 그 하강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검강천 손 안의 결정체도 확장을 멈췄다. 이 모든 진행이 반다경 만에 이뤄졌다.

 

 

‘내가 버텨낼 수 없는 한기의 한계점에 도달하자 공력을 더 높이지 않았어. 내 내부까지 들여다본다는 뜻, 역시 천상천주야. 천년의 전설에 허명은 없어. 허나, 난 류심환이야.'

 

 

그는 검강천이 초식의 격발세만으로 보여준 놀라운 무위에 감탄하면서도 결빙체가 회전을 멈춘 순간 본능적으로 그의 입술 근육 하나가 꿈틀했다. 그것은 파리가 내렸다가 가는 정도의 반응이어서 신경이 순간 반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회전을 멈춘 검강천의 배려에 그의 자존심이 꿈틀댄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때.. 검강천의 손 안에 떠있던 결정체가 맹렬한 속도로 돌았다. 반 자 정도의 결정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류심환은 살을 에는 듯한 한기에 저절로 몸이 굳어졌다. 그 순간에.. 번쩍!! 극음의 정수인 음강이 그 결빙체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결빙체는 계속해서 돌았다.

 

 

'결국 음강의 수가 한도 없겠군.'

 

 

류심환은 그런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한공력의 소유자라도 불가능한 무위가 너무 간단히 펼쳐졌다. 그렇지만 그 간단한 동작이 만든 결과에 류심환은 살을 파고드는 한기와 하늘을 뒤덮을 듯 뻗어간 강기의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초식의 모든 변화를 보면 안 돼. 집중해야 해. 변화의 원리를 찾아야 해.'

 

 

한천마결의 위력을 생생히 지켜본 그에게 극도의 긴장감이 일었다. 그의 본능이 긴장을 불렀고 이를 통해 그의 집중력이 살아났다.

 

 

'내겐 천상지무 외엔 의미 없어. 이를 넘어야 천상지무와 겨룰 수 있어. 넘는다, 반드시.'

 

 

그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결정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 30합을 통해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막무가내 같던 해초(解招 : 초식을 파악해 막아내는 원리)의 원리를, 그 원리의 정수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몇 천 번, 몇 만 번의 연습을 통해 그 원리를 파고들면 완성된 깨달음에 이르러 자신의 손발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만일 검강천이 전력으로 나온다면 천상지무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천마결도 그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던 것, 류심환은 온몸에 퍼져있는 신경을 단 하나로 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아주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었지만 자신은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끌어내야 한다. 끌어내 무엇이든 이루어야 한다.

 

 

‘넘는다. 무조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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