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경험 4개월차, 광고게재라는 허상에 대해
블로그와 함께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지 세 달, 구글 유튜브가 요구하는 두 가지 조건을 넘어 광고 게재가 가능해졌지만 그 이후로 저답지 않은 내적 검열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국가유공자 유족연금 때문에 남은 여생 입고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몇 푼 안되는 광고 수입을 위해 언어 사용에 조심하는 저를 발견하고 며칠 동안 도덕적 갈등이 컸습니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 새뮤얼 보울스의 《도덕경제학》을 보면 '경제적 인센티브가 정의를 추구하고 자발적인 선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각종 연구결과들이 나오는데, 저도 그랬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북과는 달리 두 가지 조건ㅡ시청 4천 시간과 구독자 1천 명ㅡ을 채우면 크리에이터에게 광고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유튜브의 수익 극대화 전략에 자발적 검열을 실시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사업했을 때의 2년 여를 빼면 속물로 살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저항했건만, 정말 몇 푼 안되는 광고비에 사로잡혀 평생의 삶을 모조리 날리는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익 추구가 목적인 플랫폼 초공룡으로써 구글과 페이스북을 비교할 때 극단적인 분열과 인종차별, 가짜뉴스 등으로 판단의 기준을 둔 것이 어쩌면 올바르지 못한 접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판단의 기준에 크리에이터의 '도덕적 거리두기'나 이익 추구를 위한 자기검열까지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폐해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비판했지만, 단순 이용자와 크리에이터를 광고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번아웃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글의 전략이 더욱 사악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고 있습니다. 광고 시청과 노골적인 후원 요청, 실시간방송을 통한 슈퍼챗 유도 전략, 끝없이 이어지는 프리미엄 가입 유도가 콘텐츠의 자극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셍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매일 10억 개 이상의 영상이 업로드 되는 상황에서 몇 푼의 돈이라도 건지려면 콘텐츠의 상업성과 선정성, 폭력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전략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그룹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이 주요 목적인 페이스북에 비해 유튜브에서의 활동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구글의 전략이 더욱 사악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확증편향과 집단극단화를 유발하는 반향실 효과가 극대화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그룹별 활동이 거의 전부라는 점에서 그 부정적 결과는 한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에도 나름의 추천 알고리즘과 재접속 유도 인공지능 봇이 활동하고 있지만, '아동용과 그밖으로만 구분'되는 구글의 추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봇의 암약상은 무작위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 경험과는 별도로 인공지능에 대한 공부가 깊어지면 질수록 이런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딥러닝의 알고리즘을 획기적으로 비약시키는 차세대 버전이 나오지 않는 이상 반도체에 가해질 양자역학과 열역학적 한계, 정보처리 속도 저하(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확연해지고 있다)와 데이터 저장 비용과 보안 및 분산 비용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특이점 돌파의 핵심인 '빅데이터의 역설'을 피할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고민의 깊이와 크기는 더욱 늘어납니다.
유튜브가 고정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리미엄 가입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인데, 그럴수록 구글의 알고리즘은 크리에이터의 번아웃을 강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지금보다는 낫게 만들기 위해, 현재의 욕망보다는 미래의 이익에 충실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성찰하고 그 결과물을 나누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광고비라는 푼돈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저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유튜브와 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도 점점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공부해온 것들을 아무리 쉽게 풀어낸다고 해도 제 콘텐츠가 더 많은 유튜브 이용자에게 다가갈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광고주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명목 하에 모든 영상을 검열하고 제한을 걸어두면서도 그 기준, 다시 말해 영업비밀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는 구글의 정책에 놀아나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고요.
유튜브의 수익 전략을 파고들다 보면 《1984》의 빅 브라더와 《멋진 신세계》의 소마가 완벽하게 합쳐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부터 시작된 구글 비판자의 최고봉인 니콜라스 카, 《구글의 종말》과 그밖의 저작들을 통해 기술적 한계까지 지적한 조지 길더 등의 경고도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죽도록 즐기기》에서 텔레비전의 테크놀로지를 차원 높게 비판한 닐 포스트만의 경고가 유튜브에서 최대화됐다는 생각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광고시장을 독점함으로써 언론의 무한타락을 이끌고 있다는 것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이 기레기로 전락한 최대 이유는 판단 미스도 있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초공룡에게 광고 수익의 대부분을 뺏꼈기 때문이니까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적자생존 논리로만 접근하면 기레기로 전락한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보낼 방법도 없습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너무 강해 무엇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당분간 고민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지적검증부대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길이 블로그와 페이스북, 유튜브 활동인지 부모님이 생존에 부탁한 집필에 전념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깊어져 갑니다. 어머님을 떠나보낸 뒤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죄송스러울 정도로 잘 버티고, 뻔뻔스럽게도 건강마저 좋아졌다는 것이 형이상학적 죄의식에서 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87UHz6ig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