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셉 콘래드의 <로드 짐>의 명문장들
죠셉 콘래드의 소설 『로드 짐』에 나오는 명문장들을 일부만 모았습니다.
제국주의 시절의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로 주인공이 여러 가지 면에서 저와 비슷한 아웃사이더입니다.
선원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제국주의 시대의 야만을 글로 옮겼는데, 최근에 와서는 당시의 유럽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죠셉 콘래드의 소설들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요즘 소설과는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현대소설의 시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의 소설에는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표현들이 참 많습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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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외면적으로 내세우는 것들의 은밀한 진실...
위험도 직접 목격되지 않을 경우에는 인간의 생각 속에서 불완전하고 막연할 뿐이다.
죽음과 형제 관계에 있는 잠 앞에서는 모두들 평등했다.
잠을 자는 무리 위로 미약하지만 꾸준한 한숨 소리가 이따금 떠돌았다. 어지러운 꿈에서 발산되는 소리였다.
어쩌다 흘깃 보게 된 흐릿한 진리를 근거로 하나의 철학 체계를 펼치려는 사상가처럼 백치 같은 둔중함을 보이고 있었다.
짐은 그를 바라보다가 마치 마지막 이별을 한 뒤처럼 결연히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마치 그의 정령이 흘러간 시간 속으로 날갯짓하며 들어간 후 그의 입술을 빌려 과거로부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념이라니! 그것은 떠돌이요 방랑자로서 우리 마음의 뒷문을 찾아와 두드리고, 우리의 자질을 조금씩 앗아가며, 이 세상에서 점잖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게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수해야 하는 몇 가지의 단순한 관념에 대한 믿음을 부스러기마저 얼마쯤 가져가 버리기도 하지.
그의 몸은 당겼다 놓은 하프의 현처럼 팽팽하게 떨리더군.
그 심한 떠벌림 속에 그런 논리의 실오라기가 들어 있다니.
삶의 가혹함이 그의 자기만족적인 영혼에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었던 것은 마치 바늘을 가지고서 바위의 반질반질한 표면에 아무런 흠집을 낼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인간의 내면적 존재의 품위를 위해서는 육신의 단정함을 위해 옷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분별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한 문장이 지니는 힘은 그것이 구성하는 의미와 논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법이야.
내가 볼 수 있도록 그가 허용해준 자신의 모습은 짙은 안개 속의 갈라진 틈으로 흘깃 보이는 풍경들 같았어. 그 생생하지만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세부 광경의 조각들은 한 지역의 전체적인 경치에 대해서 조리 있게 알 수 있도록 해주진 않아.그 조각들은 호기심을 부추기기만 했을 뿐 충족시켜 주지는 않았어. 그 조각들은 그 지역에 대한 방위 잡기라는 목적을 위해서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까. 대체로 말해서 그는 나를 오도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는 죽어도 좋다고 체념했을지 모르나, 더 이상 공포의 상황을 겪지 말고 일종의 평화로운 몽환 상태에서 조용히 죽고 싶었을 거야.죽으려고 모종의 준비를 하는 사례는 그리 드물지 않겠지만, 뚫을 수 없는 결심의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들이라도 질 것이 뻔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사례는 보기 어려운 법이야.
희망이 줄어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은 삶의 요구까지 정복해 버리게 되지...턱없이 큰 세력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잘 알고 있지. 이를테면 난파선에서 구명정으로 빠져 나온 사람들이나,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들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이나 군중의 우둔한 포악함에 대항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일세.
그는 나를 상대로 말하는 것이 그저 내 앞에서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어. 어떤 보이지 않는 인격체랄까, 자기와는 적대적이면서도 자기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파트너랄까. 자기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랄까. 뭐 그런 상대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거지.
즉 제 나름의 요구를 하고 있는 평판 좋은 사람들과 제 나름의 절박함을 겪고 있는 평판 나쁜 사람들에게 다 같이 공평해지려면, 그 논쟁에서 판정을 내린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인데도 말이야...나는 모든 진실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관행이라든지 허위의 본질적 성실성을 바라보도록 요구 받고 있었던 거야. 그는 한꺼번에 모든 면을 향해 호소하고 있었지.
귀에는 익지만 일그러진 소리로 들리는 이름들이라 마치 여러 시대에 걸쳐 말없는 세월의 손길이 그 이름들 위에 작용한 것 같더군.
세월이 그를 따라잡고는 앞질러 버렸던 거지. 세월은 몇 가지 초라한 선물을 남긴 후 그를 절망적으로 뒤쳐지게 해버렸던 거야.
그의 무의식적인 얼굴은 언뜻 지나가는 경멸, 절망과 결의의 표정들을 차례로 반영하고 있었어. 마치 마법의 거울이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비현세적 형상들을 반영하는 것 같더군.
환자의 병상 곁에서 밤을 세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혼이 쥐어짜는 희미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거야.
그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대양의 기슭에 서 있는 외로운 사람처럼 거대한 어둠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던 거야.
말은 세월을 통해 멀리까지 옮겨가며, 허공을 나는 총알처럼 파괴를 가하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치고 그런 종말감 말고 따로 무엇이 있겠는가? 끝장! 종결! 이런 강력한 말들이 생명의 집에 유령처럼 출몰하는 운명의 그림자를 쫓아낼 수 있는 거야...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정말이지 희망은 있어. 그러나 두려움 또한 있는 법이야...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죄뿐인데도 그가 자기의 불명예를 너무 심각히 여긴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해...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그 사념이 어둠 속의 물웅덩이처럼 아른거리는 걸 나는 볼 수 있었지만,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 접근하는 데 대해서는 절망하고 있었지.
그의 상처 입은 영혼이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깡총거리며 퍼덕이다가 어떤 구멍에 빠져 결국은 영양실조로 조용히 죽어가는 동안, 그가 늘 하던 대로 일상의 중요 용무를 보며 먹고 마시고 자는 데 필요한 생계비를 나는 그의 속에 억지로 쥐어주었지.
백분의 일이라는 가능성 말이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늘 그 백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가능성이거든.
그 여린 날개의 청동색 광채라든지 하얀 선이라든지 화려한 무늬에서 그는 마치 다른 무엇을 보고 있는 듯했는데, 그건 죽어서도 손상되지 않은 화려함을 보여주는 여리고 생명 없는 나비의 조직만큼이라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면서도 파괴는 거역하는 어떤 무엇의 이미지였어.
인간도 놀랍긴 하지만 걸작은 못 돼...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인간이 나타난 것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어. 인간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데도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인간이 모든 곳을 갖고 싶어 할까?
그는 등불이 밝게 비치는 곳을 벗어나서 불빛이 희미하게 테를 이루고 있던 가장자리를 거쳐 결국은 아무 형상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더군. 그 몇 발짝이 마치 이 구체적이고도 어지러운 세계로부터 그를 데리고 나간 것처럼 기이한 효과를 내고 있었어. 키가 큰 그의 형체는, 마치 그 실체를 박탈당한 것처럼, 허리를 굽힌 불명확한 동작으로, 보이지 않는 물체 위를 소리 없이 떠돌고 있었거든. 그가 실없는 관심을 쏟으며 영문 모르게 바쁜 모습을 엿보이고 있던 그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먼 거리로 인해 부드러워진 채 굵고 엄숙하게 굴러오는 듯하더군.
그의 일생은 고귀한 이념을 위한 희생과 열정 속에 시작되었고 그 후에 여러 종류의 길이며 낯선 길을 따라 참으로 먼 여행을 해왔지만, 어떤 길을 걸을 때건 비틀거림이 없었고 따라서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할 일도 없었지. 그때까지 그는 늘 옳았어. 그게 유일한 길이었음을 의심할 수는 없지.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무덤과 함정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광대한 평원은 흐릿한 빛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시경 속에서 아주 황량하게 보였고, 마치 여러 갈래 불길로 가득한 심연으로 둘러싸인 듯이 가장자리는 동그랗게 밝았지만 그 중심은 그늘져 있었어. 드디어 내가 침을 깬 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자신보다 더 로맨틱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서였어.
내게 보인 것은 그가 확고한 걸음걸이로 뒤쫓고 있던 그의 운명이라는 실체와, 미천한 환경에서 시작한 후 열정, 우정, 사랑, 전쟁 같은 그 모든 고양된 로맨스의 요소들을 넉넉히 누렸던 그의 일생뿐이었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마치 자기네를 불안정하게 삶에 묶어두는 밧줄이 다른 사람의 밧줄보다 더 길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방향으로든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법이야.
욕망이라는 괴이한 고집이 그들로 하여금 온갖 형태의 죽음을 무릎 쓰고 했었지.
불굴의 죽음이 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목숨을 세금 걷듯이 앗아가는데도 교역을 갈망하고 있던 그들의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만 했어.
단지 탐욕 때문에 인간이 그처럼 집요한 목표에 매달릴 수 있고 그처럼 맹목적으로 끈질긴 노력과 희생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믿기 어려울 지경이야.
그 모든 정복, 신임, 명성, 우정, 사랑 같은 것들은 그를 지배자로 만든 동시에 사로잡힌 몸으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야...그는 일종의 격렬한 이기심과 경멸적인 애정을 가지고 그 땅과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더군.
승전의 도덕적 효과는 그를 갈등에서 평화로 인도했고 죽음을 거쳐 사람들의 가장 깊숙한 내면 생활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하지만 햇빛 아래 펼쳐진 대지의 어둠은 속을 헤아릴 수 없이 영속하는 안식의 외양을 지니고 있었어.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자기네가 거둔 성공이나 소중히 지키고 있을 만큼 우둔하지 못하고, 결국은 불우한 일생의 역정을 마치고 마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어.
이따금 그녀가 우리와 함께 앉아 있을 때면 작은 주먹으로 부드러운 뺨을 누르면서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 마치 우리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우리의 생존이 다른 사람들 위해 필요하되,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알게 될 경우 우리 각자는 여느 때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들은 마치 유령이 나올 듯한 폐허에서 사랑이 맹세를 교환하는 기사와 소녀처럼 삶의 재앙이 던지는 그림자 아래서 만나 함께 살게 되었던 거야. 그런 이야기를 위해서는 별빛이면 충분했어. 그 빛은 너무 희미하고 아득해서 그림자의 형상을 드러낸다든지 강 건너편 기슭을 보여줄 수도 없을 정도였어.
이처럼 한 망령의 마력에 이끌린 가엾은 인간이 또 다른 유령으로부터 엄청난 비밀을 짜내려 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것은 이 세상의 열정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어떤 와해된 영혼에 대한 저 세상의 소유권과 관계되는 비밀이었어. 내가 디디고 섰던 바로 그 땅바닥이 발 밑에서 녹아버리는 듯하더라니까. 게다가 그건 아주 단순했어. 하지만 만약에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에 의해 환기된 유령들이 비참한 마술사인 우리들 앞에서 서로의 항구성을 보장해야 한다면, 나는 –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서도 나만은 – 그 과업의 절망적인 냉혹함 속에서 몸서리를 치고 있었던 거야.
진리도 기회를 얻어야 이기는 법이라고. 법칙이 있음도 의심할 수 없지. 마찬가지로 주사위를 던질 때는 어떤 법칙이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법이야. 고르고 세심한 균형을 유지해 주는 것은 인간이 하인처럼 부리는 정의가 아니고 우연이나 운명이나 행운 같은 것들로서 모두 참을성 많은 시간과 연대 관계에 있지...우연은 시간과 연대하고 있지만 시간은 서두른다고 빨라지지 않는다고. 또 우연은 죽음과 적대 관계에 있지만 죽음은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야...운명은 우리를 희생시킬 뿐더러 도구로 삼기까지 하거니와 나는 마치 그 달랠 수 없는 운명의 작용을 눈으로 보게 된 듯했어.
인간의 마음은 모든 세계를 포용할 만큼 넓고 모든 짐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만, 그 짐을 벗어 던질 용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이 세상의 마지막 인간인 것처럼, 오직 내 기억 속에서만 잠시 동안 살이 있는 듯했어...참으로 그곳은 이 지구상에서 상실되어 잊힌 미지의 땅 중의 한 곳이었어. 나는 그 불분명한 표면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튿날 내가 그곳을 영영 떠나면 그곳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내 자신이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날까지 내 기억 속에서만 존속할 거라고만 느끼고 있었지.
잔인하고 끔직한 파국에 처해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에게서 진실을 꺼낼 수 있는 법이니까.
마치 우리가 캔버스 위에 상상해서 그려놓은 그림을 오랫동안 곰곰이 들여다 본 후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는 기분이더군. 그런 그림은,그 속의 삶이 불변의 빛 속에 정지된 가운데, 퇴색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지.
펜이 떨려 잉크가 튀겼고, 그는 그만두고 말았지. 더는 쓰지 않은 거야. 그는 자기의 시력이나 목소리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간격을 보았던 거지.
마치 압도적인 운명의 힘을 우리에게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상상력뿐인 것처럼 말일세. 우리 사념의 무모함은 결국 우리의 머리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지.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니까.
우리 인간 자체가 지나친 잔인함과 지나친 헌신이라는 여러 갈래 어두운 오솔길에서 그만 스스로의 위대함과 스스로의 힘에 대한 꿈에 휩쓸린 나머지 맹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닐까? 진실의 추구라는 게 도대체 무얼까?
그가 이십 년간 사납게 공격적으로 멸시하며 협박해 오던 세계가 물질적 이득이라는 면에서 그에게 한 자루의 은화밖에 남기지 않았고, 그는 “악마도 냄새 맡지 못하도록” 그 자루를 자기 선실에 감춰두었다.
세상에는 영영 잊을 수 없는 광경이 있는 법이다.
허영심은 늘 우리의 기억을 상대로 음침한 속임수를 쓰는 법이며, 모든 열정의 진실은 그것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게 할 약간의 거짓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