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7년 동안 지상파3사에서 내놓은 예능 중 대박을 터뜨린 것들을 살펴보면 두 개의 키워드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남자고 나머지는 경쟁입니다.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데 하나는 남성 중심적 세계관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의 극대화입니다.






보수정부라는 특징보다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특징을 공유하는 이명박근혜의 7년 동안 지상파3사의 예능은 인식의 신자유주의화를 이끌어간 기간이기도 합니다. ‘1박2일’ ‘남자의 자격’ ‘백년손님, 자기야’ ‘아빠, 어디가’ ‘진짜사나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시세끼’ ‘아빠를 부탁해’에 이르기까지 남자라는 키워드가 대박을 터뜨린 예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의 지상파3사의 예능에서 여자들이 메인이 된 프로는 성공한 것이 전무합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통해 끝없이 되풀이되는 막장 드라마를 빼면, 여자가 메인이 된 예능 프로는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케이블의 예능 수준에서 먹고사는 ‘무한걸즈’와 시즌2로 종영된 ‘청춘불패’, tvn의 ‘꽃보다 누나’를 빼면 단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중 하나가 왜 남자냐 하면, 노동유연화를 통해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려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낮은 수준에서 지속적이고 대량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자는 인건비를 올려주지 않으면 투쟁에 나서지만, 여자는 투쟁에 나서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이렇게 여성의 인건비가 떨어지면, 최후에 이르러서는 ‘정규직 과보호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정규직 비율은 남자가 높고, 고위직으로 올라가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집니다(남성 중심적 세계관의 결과). ‘정규직 과보호론’의 핵심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라, ‘정규직 과보호론’의 최종 목표는 남자의 인건비를 여자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지상파3사의 예능은 시청자의 인식에 아무런 저항도 일으키지 않은 채 다가갈 수 있는 최적의 산물입니다. 지난 7년 동안 예능을 지배한 단어가 남자였다는 것에서, 그런 예능이 꾸준히 시청률을 올렸다는 점에서 우리의 의식이 아주 조금씩 신자유주의적 체제와 가치에 적합하게 바뀌어갔습니다.



그러면 경쟁이란 키워드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슈퍼스타K’의 성공에서 시작된 경쟁이란 키워드는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불후의 명곡’ ‘K팝스타’ ‘런닝맨’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순위경쟁 예능프로의 대박행진은 시청자의 의식에 경쟁이란 단어가 익숙하게 자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모토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 있습니다. 나머지 모토는 모두 다 이것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무한경쟁을 통해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이 오디션과 경연 예능을 통해 10대의 의식에까지 완벽하게 안착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전 연령대에서 가능해졌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해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사회진화의 법칙이라고 못 박아 버립니다. 그는 환경에 적응하는 집단적 협력의 산물인 적자생존에서, 적자의 뜻을 승자로 바꿔버림으로써 진화의 핵심을 경쟁과 승리로 왜곡해버렸습니다.



헌데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차이가 생존의 역할을 구별하고 결정하던 시절부터 남자는 경쟁에 익숙한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반면에 여자는 경쟁보다는 협력과 관계를 중시하는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자연히 신자유주의가 확장되면서 남자 중심의 경쟁은 격화일로를 달려왔습니다.





인류가 종말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몰린 것도 ‘남자 중심 구조와 무한경쟁의 조합’ 때문인데, 이런 남성 중심의 무한경쟁은 무조건 승자독식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한 반감을 최소화하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락적 요소를 극대화한 예능을 통해 시정자의 의식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스며들도록 만드는 것이 최상입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큼 경쟁을 당연시여기는 나라도 없습니다. 개인이 아닌 기업에 비중을 두는 나라도 없습니다. 남자가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비율로 고위직을 차지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이명박의 방송장악으로부터 본격화된 예능 프로의 남자와 경쟁이란 키워드는 수없이 많은 시청자의 의식을 신자유주의에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어갔습니다. 대한민국만큼 경쟁을 당연시 여기는 국민도 없고, 국가의 모든 분야가 신자유주의에 지배당한 나라도 없습니다.





박근혜 3년차,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상파3사와 케이블방송을 통해 새로운 경쟁 프로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제2, 제3의 <국제시장>도 나올 것입니다. 현 집권세력은 이렇게 국민 의식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며, 그런 가운데 다음 정부와 미래세대가 책임져야 할 부채의 크기는 늘어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2.25 07:12 신고

    깨어닜는 눈으로 보면 TV란 쓰레기통입니다
    독재건력을 홍보매체로서 외모지상주의 경쟁지상주의, 신델레아 콤프렉스.. 기득권을 정당화시키고....
    지상파방송은 이미 미디어로서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대안언론이 있어 숨을 쉴 수 있습니다.

  2. 좋은글 너무 잘보고 갑니다
    즐건 하루 되세요

  3. 耽讀 2015.02.25 08:35 신고

    남자와 신자유주의가 예능까지 지배합니다. 특히 군문화 프로그램은 우리 정신을 좀먹는 주범입니다. 그 어떤 군대도 좋은 군대는 없습니다. 군대 존재 이유가 다른 생명을 빼앗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전 평화주의는 아닙니다.

    • 늙은도령 2015.02.25 13:47 신고

      신자유주의는 어떤 분야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지배하게 만듭니다.

  4. 뉴론♥ 2015.02.25 10:37 신고

    잘보고 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5. 공수래공수거 2015.02.25 10:43 신고

    요즘 또 아빠들의 자존심을 긁는 프로가
    인기몰이를 하는것 같네요...

    TV 켜기가 겁이 납니다

    • 늙은도령 2015.02.25 14:25 신고

      환상 팔아먹기이지요.
      육아프로도 맨 협찬된 옷만 입고....
      아버지들 죽어날 판입니다.

  6. 꼬장닷컴 2015.02.25 11:48 신고

    전 개인적으로 MBC 근처에도 안 갑니다.
    하여 여군특집 같은 프로도 그런게 있구나 정도입니다.
    주말에는 스타킹이나 k팝/런닝맨을 보는데 볼만 하더라구요.
    하지만 예능은 그냥 가볍게 보는 정도가 좋은데 꼭 그렇지도 않나 봅니다.

    • 늙은도령 2015.02.25 14:26 신고

      저도 MBC는 보지 않습니다.
      단지 비판이 필요할 때만 봅니다.
      그 외에는 경영진이 바뀔 때까지 보지 않습니다.
      권성민 PD의 복귀와 그밖의 PD들이 복귀하기 전까지는 안 볼 것입니다.

  7. 꼴찌PD 2015.02.25 14:59 신고

    꼴찌를 키워드로 3년 동안 지지부진한 콘텐츠 작업을 하는 꼴찌닷컴 ㅋㅋ 언젠간 꼴찌가 키워드가 되는 날이 오겠죠^^

    • 늙은도령 2015.02.25 15:09 신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알려지면서 나아질 것입니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리기를 바랍니다.

  8. 비비큐300 2015.02.25 15:25 신고

    요즘들어서 MBC를 자주 보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이유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포스팅 감사히 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2.25 19:07 신고

      MBC는 현재 방송사도 아닙니다.
      현 경영진이 물러나야 예전의 MBC가 될 것입니다.

  9. 천추 2015.02.25 15:26 신고

    맞습니다 게다가 국적없는 다문화도 한몫한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5.02.25 19:09 신고

      다문화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피할 수 없는 추세지만 무분별한 다문화는 커다란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이 땅에 정착한 다문화는 일체의 차별도 없이 대해야 하지만, 향후 돈으로 여자를 사오는 식의 다문화는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합니다.

  10. 나비오 2015.02.25 16:09 신고

    남자와 경쟁..

    천박한 자본주의가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지요 ..
    너무 예리한 지적이셨습니다. !!!!

    • 늙은도령 2015.02.25 19:09 신고

      네, 지상파3사가 더욱 심합니다.
      그러니까 JTBC나 tvn 등에 시청자를 뺏기는 것입니다.

  11. 화이트세상 2015.02.25 16:40 신고

    경환이의 머릴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네요.

  12. 『방쌤』 2015.02.25 16:44 신고

    그냥 단순한 흐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니 새롭게 느껴지네요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25 19:10 신고

      대중문화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고듭니다.
      하지만 지금은 억지로 시대의 흐름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대(성)의 병폐가 정점에 이르러 발생한 미증유의 참극인. 미국 월가 발 2008년의 신용 대붕괴가 유럽으로 전이돼 복지국가 신화에 종지부를 찍더니,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같은 신흥국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결과의 낙관론'이 부른 이런 참사들이 이어지며, 인류의 진보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고, 머지 않은 장래에 파국적 결말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확산일로에 있다.



                   작년 1월1일에 작고한 울리히 벡의 저작들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독일의 재부상은 현대(성)의 퇴행을 보여주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독일은 1945년부터 오이켄과 뢰프케 등의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로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했다)를 기반으로 압축성장을 이루었지만,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극도의 경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이후 제3제국의 특징인 파시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녹색운동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며, 70~80년대의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국민이 절약에 동참하고 국내투자(복지와 SOC투자 축소, 외국인에게 돈을 걷는 것 등)를 최소화한 채, 수출에 올인한 것이 신용 대붕괴를 전후로 해서 독일의 급부상을 견인했다. 



거대 금융자본의 탐욕 때문에, 소가 뒷걸음치다 횡재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독일의 부상은, 그런 성공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유럽의 지형도를 뿌리 채 흔들고 있다. 유럽이 고도의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는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졌던 1945~1975년 사이의 '황금시대 30년' 뿐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점진적인 부상과 케인즈 모델의 점진적인 몰락이 교차한 1979~1980년을 정점으로 유럽은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각종 불평등이 양산됐다.     



2008년 금융 대붕괴 이후의 유럽이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속담의 전형이었다. 바로 그 3년이 흐른 2011년부터 (독일을 제외한) 유럽은, 미국이 그런 것처럼 1929년에 버금가는 대공황으로 빠졌들었다. 이로써 서구의 양대 축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를 착취하고 약탈했으며, 일방적인 세계화를 통해 부와 권력과 위험의 불평등을 초래한 서구의 개발레짐과 채무레짐을 거쳐, 화폐 근본주의로 이어졌던 개발과 금융 위주의 성장 모델의 허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바우만이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언급한 내용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임을 보여준다.



바우마도 너무 고령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프랑수아 브루기뇽은 1인당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1인당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국가 경제들 간의 불평등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세계 최상위 부자들과 세계 최하위 빈자들 간의 간격은 계속 벌어지고 있고 각국 내의 소득 격차도 계속 확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콩쿠르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에릭 오르세나는...최근의 변화는 세계 인구의 상위 10퍼센트의 평균 소득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서는 최근의 변화의 크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돌연변이(‘주기상의 한 국면’과는 분명히 다른 변화)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려면, 상위1퍼센트, 아니 아마도 상위 0.1퍼센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의 변화가 초래한 진정한 영향 즉 ‘중산계급들’의 ‘프리카리아트(비정규직·파견직·실업자·노숙자들을 총칭)’로의 전락이라는 결과를 간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정당하다는 것은 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건 다수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건 간에 모든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 모든 연구들이 동의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부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최상위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는 반면 빈자들, 특히 최하위 빈자들은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더군다나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진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의 냉혹한 현실은 사회 내의 모든 사람에게, 혹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분명한 진실이 됐다. 특히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폭주로 인해 인류가 배운 교훈이라면 ‘가장 부유한 사회 구성원들이 갈수록 케이크의 더 큰 몫을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제 모델(낙수효과를 처음 정립한 존 롤스의 《정의론》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해준 것을 넘어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어준 경제 모델)은 결국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명백한 교훈도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그 효과를 독점하고 있는 초국적기업들(애플, 구글, MS, 삼성전자, 도요타, 폭스바겐, 포드, GM, 현대차 등)과 거대 금융자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 때 전 세계시장을 점령한 채 실질적인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고, 《평등이 답이다》에서 모든 통계수치로 볼 때 최상의 국가에 속했던 일본의 몰락과 몸부림은 ‘독일 중심의 유럽의 재편성’과 비교할 때 현대성의 병폐가 한 가지 현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의 해프닝으로 끝난, 하지만 초국적 제약업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이익과 각 국가의 공적자금을 물 쓰듯이 써버리도록 만든 대중매체의 선정적인 ‘신종플루의 습격’에 대한 보도처럼,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선정적인 방식으로 중계돼 인류에게 극도의 공포를 안겨준 3.11 제1원전 폭발은 현대(성)의 병폐가 한두 가지가 아님을 드러낸다. 최근에 들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선정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도 몇 년 후에는 '제2의 신종플루의 습격'이 될 수도 있다(물론 전 세계에서 1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던 '스페인 독감'이 재현될 수도 있다).  



독일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은 1급전범의 후예인 아베가 총리에 올라 두 번째 내각을 구성함과 동시에 파시즘의 동양판인 군국주의의 부활을 위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 나가고 있다. 1,000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발생시킨 고베 대지진에 이어 갈수록 도쿄를 향해 지진대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재무장과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의 변신은 새로운 냉전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만일 고베 수준의 지진이 도쿄에서 일어난다면 그 피해액만 34조 달러(2008년 신용붕괴보다 피해액이 더 크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3번째 대공황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일본 정치권의 초조함이 비이성적 행태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아베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이 미국(또는 오바마 정부의 묵인 하에)과 국제사회의 경고(또는 무기력한 말장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과 중국을 향해 끊임없는 도발적 언사와 행위를 강화시키는 이유는 일본에 팽배해 있는 패배의식과 숙명적 종말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가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의 로비도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감축 때문에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주민 대량학살 정도는 미 정치권을 움직여 국제여론의 비판으로부터 호모막을 칠 정도는 된다)에, 아베 내각의 의도적인 군국주의 부활은, 스스로의 탐욕으로 무너졌지만 전 세계에 그 피해를 배분함으로써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했던 제국의 몰락과 어우러지면서, 전 지구적 차원의 긴장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하면서 세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진이라는 자연적 사건을 논외로 친다고 해도, 이런 전 지구적 현상은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탄생의 순간부터 내재했던 필연적 결과여서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라 그 연구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며, 앞선 연구들의 공통점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영원한 진보에 대한 믿음과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역사를 연구한 거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듯이, 그 출발에 베이컨과 데카르트, 스미스와 리카도, 뉴턴과 다윈, 석탄의 효율적인 사용을 가능하게 해준 화학과 그것이 전부인 영국 발 산업혁명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시작된 근대이성의 요란한 질주는 사회경제적 평등ㅡ초기의 미국과 신자유주의 이전의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달성했다ㅡ을 유보시키며 자유의 이름으로 ‘유동하는 공포’를 동반한 채 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함께 현대(성)로 넘어갔다. 이후로 너무 많은 폐해를 양산하는 석탄을 대신해 ‘물보다 싼 석유’의 등장으로 현대의 비약은 어지러울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부정적 폐해도 포함되기 때문에 오직 양적인인 성장만 나타내는 지표인 GDP를 기준으로 할 때)을 거듭했다.





유럽의 제국주의와 유일 제국 미국의 역사이기도 한 석유시대의 무한 확장은 ‘가격파괴의 저주’와 함께 이기적인 개인주의의 정화인 소비하는 개인화를 통해 시장규모를 최대한 늘리는데 성공했다. 석유 매장량의 끝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바닥에 이를 터ㅡ21세기를 넘길 것 같지는 않다ㅡ영원한 성장을 약속했던 근대이성의 질주는 대체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한계 때문에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무한한 진보를 약속했던 열역학 제2법칙도 엔트로피의 질이 너무나도 나빠져 더 이상 전가의 보도로 사용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진보의 무한 동력이지만, 그 파국적 위험성은 인류 문명 전체의 종말로 불러올 수 있어 확률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나노과학은 초미세먼지와 조우하며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과 신종질환을 양산할 위험성을 동반하고 있다.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인용된, 마샤 에인절의 《뉴욕 북 리류》의 2009년 1월 15일자 기사는 갑자기 ‘위험해진 세상’에 대한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약회사들은 시장을 더 확장할 수 있는 보다 새롭고 극히 효율적인 방법을 완성시켰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들을 홍보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들의 약들에 적절하게 들어맞는 질병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략은) 미국인들에게는 오로지 단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만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일이다. 약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의학적인 상태를 지닌 사람들과 반면에 바로 자신도 약물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쯤을 전후로 해서 의료와 제약 산업은 새로운 수요 창출을 극대화해 이윤을 추구하는 마케팅 전략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의 묵인 하에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권력을 활용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건강에 대한 관심사가 커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건강하게 살려면 자신들의 약들을 먹고, 균형 잡힌 몸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트니스에 매달리며,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병원을 찾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약의 효능이 질병의 호전에 대해 약속할 필요는 없으며, 의료행위를 받는 사람들이 정말로 심각한 상태인지, 아니면 그저 여러 가지 통증 중 하나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따지지 않는다. 하나의 약이 효과를 보이지 못하면 다른 약을 먹으면 되고, 깨알 같은 전문용어로 써 있는 부작용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줄이는 다른 약을 머거나 의료행위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참는 데 익숙한 고통도 최근에는 질병으로 재정립된다.” 



최근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위식도 역류(필자의 어머니의 지병인 식도성 역류염)’는 예전에는 속쓰림이었으며, 온갖 형태로 나타나는 생리통과 그 징후가 너무나도 특이해 이해하기도 어려운 자신감 상실 같은 것들은 불길하게 들리는 병명으로 재정립돼, 긴급하게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처럼’ 변경됐다. 또한 ‘사회불안장애’나 필자가 겪고 있는 ‘공황장애’, ‘만성적인 수면장애’와 ‘누구나 걸리는 우울증’ 등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제약업계는 ‘불안-홍보 캠패인’을 지속적이며 대규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적인 경제공황을 탈출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민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의사와 약사와 갈리기도 하지만 초국적 제약회사와 첨단의료기기 제작업체와 전 세계적 판매상, 의료관광와 관광수입을 매개로 관광업계와 항공업계, 보험업계와 거대 금융자본들이 손을 잡고 각국 정부에 어마어마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특히 초고령사회와 초위험사회의 도래는 의료민영화만큼 돈이 되는 사업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이익집단과 국민 간의 전쟁은 갈수록 이익집단 쪽으로 기울고 있다. 거의 모든 의료대란이 상당 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형태로 진행되는 것처럼.



이런 현상은 제약업체만이 아니다. 《불량의학》과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는 것》, 《의학과 문화》, 《의학과 기술의 지배》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문진의 시간은 엄청나게 줄었고, 그 사이에 각종 의료기기를 동원한 수치와 보다 많은 투약, 보다 자주 이루어지는 수술 등이 자리하게 됨으로써 환자의 건강은 의료기술이 발전할수록 각종 신규 질병에 위협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국가와 국민이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그것의 반도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건강에 관한 모든 면에서 높은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에 비해 미국의 건강 관련 각종 수치는 선진국이라고 전혀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개인파산자의 대부분이 높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만성질병이 만연되고 있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해준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건강보험이 실시되지 않으면,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중첩되는 새로운 사회적 계급들의 삶의 질은 19세기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의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연구와 통계를 이용한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를 보면, 의료행위와 의학기술에 내포된 경제논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다른 나라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천박한 미국의 실상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의사들은 영국의 의사들보다 1인당 평균 6배나 많은 심장질환과 이식수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의사들이 진찰을 위해서 행하는 검사의 횟수는 프랑스, 독일, 혹은 영국보다 많다. 미국의 여성들은 유럽의 여성보다 2배에서 3배나 많은 자궁적출수술을 받고 있으며, 미국에서 이 수술을 받는 사람의 60퍼센트가 44세 이하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전립선수술을 한다. 미국은 제왕절개수술에서도 업계의 선두에 서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50에서 200퍼센트 이상 많은 시술이 이루어진다. 미국 의사들은 수술을 피하고 약물치료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다른 나라의 의사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약을 사용한다. 그들은 영국 의사들보다 항생제를 2배 이상 많이 처방한다. 유럽의 의사들은 세균에 의한 감염이 분명하고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만 항생제를 사용하는 데 반해, 미국 의사들은 세균감염으로 보이면 별 고민 없이 항생제를 투여한다. 미국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훨씬 많은 양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도록 한다. 어떤 방사선 학자는 엑스레이의 사용 정도를 조사하는 중, 5장이면 충분했을 환장에게 50장에서 100장까지 엑스레이를 찍은 사례들을 발견하였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임상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엑스레이를 전혀 찍을 필요가 없거나 연기해도 좋은 환자가 2/3에 달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 2014.08.11 01:55

    도령님의 훌륭한 글 읽다가

    글 마지막 문단 보고서...

    알고 있는 자료가 있어서 댓글로 남겨 봅니다.

    우리나라가 자궁 적체 수술 1위랍니다...

    http://www.yakup.com/news/index.html?mode=view&nid=147891
    http://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874

    영국이나 미국 보다도 더 심한 이 나라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OECD 평균에 2배나 된다는데...

    멀쩡한 여자들 생식기로 돈 벌어먹을 의사들 ... ㅠㅠ


    항생제 처방율도 1위라는 것은 예전에 나왔고요...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40611001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국가보다도 더 악랄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이해가 안갑니다.

    왜 그런지... 부디 현명하신 도령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1 02:57 신고

      님이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는 몇 편의 글로 올릴 수 있도록 구상을 마친 상태입니다.
      제가 올해 안으로 끝내서 출판해야 할 책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기 때문에 구상하고, 자료를 구하고, 책들을 읽느라 많이 늦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핵심은 일제시대의 단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통치엘리트들은 일제시대에 부를 축적한 자들과 족벌언론들입니다.
      그들이 일제시대에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북한을 최고의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했던 미국의 제국적 이익이 이승만을 거쳐 박정희로 이어지면서 천민자본주의가 뿌리깊게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6.25전쟁은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됐지만, 미국과 소련 및 이승만 정권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6.25전쟁 때 북한의 침략으로 무너져내린 것은 알려진 것보다 적고, 미국의 폭격 때문에 망가진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로 이어지는 이땅의 통치엘리트들이 6.25이후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고 이를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의 뇌리 속에 박아 놓았습니다.

      헌데 저들이 주장하는 압축성장이라는 것도 당시의 유럽도 똑같이 이룩한 것이었고, 그들은 부의 재분배를 통해 민주주의를 확고히 했지만 우리는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지배세력이 부를 독점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 극도의 불평등이 만연하게 됐고 돈이 되는 것은 무슨 짓이라도 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4대개혁입법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국민들이 깨달아야 하는데, 조중동을 필두로 한 언론과 문창극 같은 식민지근대화론를 주장하는 자들 때문에 이것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정말 엿 같은 나라가 된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도 특별법 하나 만들지 못하고, 국정원의 불법이 밝혀졌는데도 재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것도 다 저들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업의 힘이 너무 커져버렸고요, 신자유주의 20년 동안.
      이것이 대강의 과정입니다.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2. 뉴론7 2014.08.11 05:19 신고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네염 좋은하루되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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