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국가들은 노선을 바꿨다. 국가가 복지서비스를 확실히 제공하던 전통을 버리고 점점 더 혼합형 복지모델로 갈아타고 있다…이는 공공복지가 소수를 위한 것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소수를 위한 복지는 니쁜 복지가 될 위험성이 있다. 동시에 복지국가의 정통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ㅡ 벤트 글레베, 비에란 발의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재인용





촛불혁명의 목표 중 하나가 북유럽 모델에 근접한 선진복지국가라고 한다면 북유럽 4국(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이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위의 인용문에 나온 '혼합형 복지모델'은 고부담(고세율)·고복지로 알려진 북유럽 모델에, 저부담(저세율)·저복지로 알려진 시장모델(미국과 한국, 엥글로-색슨 모델)과 중부담(중세율)·중복지로 알려진 직장에 바탕을 둔 모델(독일, 유럽대륙모델)이 침투하는 바람에 높은 수준의 공공정책과 복지서비스가 후퇴한 모델을 말합니다. 



'복지국가는 경제적·사회적 분야에서 시장의 힘들과 민주적 통제 사이의 권력투쟁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의 결과물'입니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들의 권력투쟁이 계급타협(자본과 노동의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구축된 복지국가는 '노동운동의 발흥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약진'을 불러왔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사회적 안전과 인간의 존엄성과 시장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는 투쟁'이었습니다.



'복지국가가 구축되면서 국민의 전반적인 삶과 근로조건을 크게 개선시켰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기대수명, 사회적 안전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머리를 꼿꼿치 들고 삶을 자신 있게 살도록 만들었고, 사고나 질병 또는 실업의 불운에 처해서도 굽실거리지 않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세력의 힘(연대에서 나온다)이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계급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보면, 그가 책의 모든 부분에서 대항세력의 복원을 강조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유럽 모델까지 포함해 복지국가의 파괴와 축소를 목표로 각국 정부(좌우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와 손잡은 신자유주의세력의 맹공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것도 대항세력이 대처-레이건-슈뢰더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정부에 의해 와해됐거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촛불혁명은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고사 직전에 이른 대항세력을 되살려낸 최초의 성공한 혁명입니다. 그 첫 번째가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박근혜의 구속이며, 그 두 번째가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입니다. 촛불혁명은 정권창출을 통해 권력균형의 추를 시민과 노동자 쪽으로 기울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지난 한 달 동안 이루어진 각종 변화들은 대항세력에 힘을 실어준 촛불혁명의 성공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런 흐름에 처음으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자신사퇴한 것입니다. 42년 전의 위장결혼도 정치검찰이나 법원행정처(사법부의 핵심 엘리트가 모인 곳, 이들이 사법부의 권위적 보수화를 이끌고 있다)의 도움을 받은 주광덕과 TV조선의 협공에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인사실패가 결정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지율도 10% 가량 떨어졌습니다. 정치검찰과 법원행정처, 기득권언론(조중동문과 종편, MBC와 KBS,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재벌이라는 이땅의 특권층들이 '문재인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정치검찰과 법원행정처는 새로운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기득권언론은 모든 후보자와 방통위원장을, 자유한국당은 추경 심의와 후보자들의 청문보고서 채택 거부를, 재벌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문재인 죽이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담합과 역할 분담의 방식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거나 실망시키며 두세 달을 끌어갈 수 있다면, 그들의 목표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50% 밑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이 제2의 노무현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깨어난 시민들도 문재인을 지키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정부의 노골적이거나 직·간접적인 도움도 계속될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압박이 강해지거나, 이에 맞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이라는 미친 짓거리를 멈추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급격한 레임덕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더 이상의 동력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다음주가 분수령이 되리라고 봅니다. 지지율이 또다시 떨어진 것으로 나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불리한 여론환경과 여소야대의 상황, 검찰과 법원행정처의 반발, 재벌의 후방지원 등을 고려할 때 문재인 탄핵론이 빈번하게 언급될 수 있습니다. 4명의 후보자들이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해명에서 국민을 설득시킬 만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내각과 정부조직개편은 끝없이 늘어질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깨어난 시민과 촛불시민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이어지는 글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 그의 방식은 너무나 탁월해 위기 돌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것에 시민들이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문재인의 몰락은 노무현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던 책들에서 뒤늦게 시비거리를 만들어낸 탁현민(국민을 감동시킨 문재인 정부의 행사를 담당) 논란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믿어줘야 할 때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내민 방식을 극대화시켜야 합니다. 다음주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위기가 될 것이며, 오직 시민만이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무조건 믿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외무부장관에게 '실력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했듯이, 4명의 후보자들이 약간의 하자가 있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그들이 실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는 짧게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길게는 3년 후의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적폐청산과 국가개조를 통한 선진복지국가로의 진입이 가능하게 됩니다. 대항세력으로서의 촛불혁명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류사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문재인을 믿듯이, 문재인이 선택한 사람들을 믿어주십시오. 믿어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하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6.25 22:45 신고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촛불을 켜는 것도 생각하고 있구요.

    특히 자한당의 저 쪽바리 짓은 더더욱 용납 할 수 없죠.
    5행시에 물론 참여했구요. 앞으로도 SNS에 적극 참여하려고 합니다

  2. 참교육 2017.06.26 08:18 신고

    결국 자본이 주인인 세상으로 가자는 얘기 아닐까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6.26 08:30 신고

    자위한국당을 해체시키는 촛불이 한번 더 타 올라야 합니다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반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먼저 답부터 말하면, 'No'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잠시동안의 사회주의가 등장)만이 자유의 왕국(과학적 공산주의, 무계급사회, 개인의 발전이 모든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세상,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가는 사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복지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아편이라고 했던 종교(국가의 영속에 기여)처럼, 국가가 혁명의 주역인 노동자에게 복지를 많이 제공할수록 폭력혁명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질 자유의 왕국에 이를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국가가 부르주아의 이익만 대변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상부구조로 법률과 문화, 교육, 도덕 등이 포함된다)마저 폭력혁명을 위한 선동의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마르크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만이 인류 해방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모든 것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복지의 일종으로 자본가와의 타협(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비판한 부르주아 사회주의)을 뜻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은 역사 발전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만 한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에게는 계급들이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이익을 재분배하는 계급타협, 즉 모든 국민에게 인간으로써의 존엄한 삶을 제공하는 복지국가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악마(부르주아)와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패배를 의미했고, 부르주아 지배(노동착취에 따른 자본축적, 로자 룩셈부르크그의 《자본의 축적》을 참조)의 영속을 의미했으며, 역사의 법칙에 어긋난 잠시동안의 도피에 불과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전의 과실(잉여 가치)을 자본가가 독점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술 발전이 마지막에 이르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노동착취와 자본축적이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이때에 이르면 자본축적을 위한 소수 자본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부르주아를 제외한 모든 계급에서 충원될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추상의 핵심에는 기술 발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기술 발전이 없었으면 잉여가치를 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넘겨주는 자본주의가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마르크스의 추상도 기술 발전에 대한 탁월한 이해(지금에서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는 어림짐작, 마르크스가 푸리에, 푸르동, 오언을 비판한 것과 똑같은 논리로 마르크스를 비판하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추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작금의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이끌고 있는 4차 산업혁명입니다.         





마르크스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나노공학, 유전공학, 로봇공학이 핵심)이 인류에게 재앙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을 최고로 이끌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종류의 노동을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처럼, 노동의 종말이 도래합니다. 고용주가 아닌 임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임금소득이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특이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초인공지능(=강한 인공지능, 인간을 넘어 신에 근접한 지능)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의 뇌를 거의 대부분 재현해낼 '약한 인공지능'(알파고는 낮은 단계의 약한 인공지능에 속한다)과 인간의 손동작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 만나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릅니다. 늙고 아프고 불평하는 인간의 불완전 노동을 로봇의 완전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은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인공지능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거의 모든 부가 독점됩니다. 부의 불평등이 거의 무한대에 이르며, 우주로 진출하는 것을 빼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축적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마르크스의 추상이 맞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한 '액체자본주의'(액체근대)로 빠지지 않고, 숫적으로 최대치에 이른 가난하고 소외됐지만 공산당과 전위에 의해 교화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의 주장처럼 임금소득이 제로에 처하게 될 99.9999%의 국민들에게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기본소득이 제공되는 타협점(새로운 복지국가 또는 칼 폴라니와 미셀 푸코의 정치경제관에 가까운 사회의 복원)에 이르지 않고, 모든 노동착취와 자본독점을 끝장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마르크스라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가 마르크스 비판에 나선 것은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경제대침체 때문에 마르크스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예언을 무색케 만든 북유럽 모델도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겨우겨우 명백을 유지하는 처지로 내몰렸고, 부의 불평등을 극대화할 4차 산업혁명까지 목전에 도래했으니 마르크스로부터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 폴라니, 한나 아렌트,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토마 피케티로 이어져온 마르크스 비판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더하면 새로운 복지국가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경제가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온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각성과 성찰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기술 발전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의 도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적 세율 인상을 전제로 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계속될 글에서 이에 대해 다루겠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한다!)로 소득의 분배를 이룩할 문재인 정부에 이어 부의 재분배에 성공해야 할 다음 정부에서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내년의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견인할 민주당의 압승은 필수라고 할 수 있으며, 이재명의 경기지사(또는 서울시장) 출마는 안희정의 중앙정치 복귀와 함께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념을 말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의 실현(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다음, 그 다음의 정부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이명박근헤 9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깨어난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에도 꼴통이 있는 것처럼 진보좌파에도 꼴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의 좌절이 보수우파의 맹공보다는 진보좌파의 공격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노동조합에도 보수우파가 있으며,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기득권에 편입된 사례로 많습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신좌파의 68혁명이 양쪽을 모두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허니빳다 2017.06.25 02:42

    작금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북유럽의 형태를 따라갈것 처럼 보입니다. 차이점은 북유럽처럼 우리보단 오래 성숙된 시민의식에 의해서는 아닌것 같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좋던 싫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팩트를 어쩔 수 없이 접하면서 자연적으로 이전의 조작된 정보에 잘 안 속게 되다 보니 그런것 같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소위 "수구꼴통"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겠고요. 다만 말씀하신 수구좌파들이 문제인데 얘네들이 주류로 못갈지언정 일정 부분 점유율은 유지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게 항상 옳고 그름으로만 접근하는거 아니니까요.

    맑스야 비참하게 갔지만 그 이후 시대에 그 달콤함이 큰 반향을 일으켰듯이 지금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맑스같은 헛소리에 여전히 달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쩔 수가 없을것 같고요. 다만 저 "수구꼴통" 세력이 아직도 매우 견조한데 저 세력이 힘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수구좌파들이 그 일정 비율을 유지하는 것을 이용해 훼방을 놓아서 다시 "수구꼴통"들이 집권하는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막아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구좌파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수구좌파는 기독교와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같은 종자들로 보입니다.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는 무교나 불교나 타종교는 접근 안합니다. 오로지 기독교에 접근해서 신자들을 빼갑니다. 지들 입장에서는 무교나 불교신자를 빼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방법을 택한거겠지요. 방법론에서야 문제가 없지만 종교나 정치에서는 이런 편법은 대의명분에 정당성이 없어지므로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구좌파들이 저런짓을 합니다. 리버럴이 압도적으로 수구꼴통을 제압했을 때야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한 동안은 "수구꼴통" 보다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양한 루트로 견제할겁니다. 알아서 죽어가는 "수구꼴통"보다 내부에서 스멀스멀 살아나면서 좀먹으려 하는 수구좌파를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7.06.25 18:33 신고

      수구꼴통은 제거돼야 할 대상입니다.
      수구좌파도 이제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촛불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진보좌파들도 거듭나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좋은 점만 가져와야지 그의 주장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면 답이 없습니다.

  2. 세나 2017.06.25 19:07

    기존복지를 삭제 및 대체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핀란드 방식은 진정한 기본소득제가 아닙니다. 재벌해체하고 주요산업 국유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기본소득제 도입한 베네수엘라 방식이 진짜 기본소득제죠.. 한국도 베네수엘라 방식의 기반소득제를 도입해서 아시아의 베네수엘라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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