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감히 배제하지 못한다.


                                                 ㅡ 힐버그,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재인용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작심발언이 나오자마자 검찰에서 인터넷을 상시 감시하는 전담팀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만큼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통수권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공개된 장소(보수정부가 들어서면 담당직원이 죽어나가고 매출이 떨어지는 아고라가 대표적이다)에 올린 불경한 자를 ‘대통령 모독죄’를 적용해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 ‘대통령 씹는 맛’으로 살았던 국민들은 ‘뜨악’했을 것이다. 특히 태어났을 때부터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주어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젊은 네티즌들은 ‘미네르바 사건’이 떠올라 ‘뜨악’을 넘어 ‘공포’에 휩싸여 대규모로 ‘사이버 망명’을 할 만큼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이른바 ‘제2의 미네르바 효과’라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국내 포털과 인터넷 업체와 메신저 업체들은 이용자와 매출이 줄어들어 죽을 맛이고, 외국계 업체들만 갑자기 늘어난 회원 때문에 매출이 늘어나게 됐으니, 참으로 창조적인 마이너스 수출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네티즌들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헷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처럼,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이후로 자국 및 외국의 정부에 의해 집단학살이 지금까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듯이, 정치적 선례가 있었으면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대통령 모독죄’로 국민을 처벌한 사례가 정확히 39년6개월 전에 있었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무소불위의 대통령으로 있을 때였다.



‘국가원수모독죄’라 불렸던 형법 제104조의2의 ‘국가모독죄’가 1975년 3월18일, 집권여당인 공화당과 관변정당 유정회 의원들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형법 개정안이 제출된 하루만인 1975년 3월19일에, 여당들은 이 법안을 ‘의원 휴게실’에서 야당 몰래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대통령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들이 통과시킨 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②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전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황당무계한 이 법은 정작 박정희 정부 당시에는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고, 전두환이 유용하게 써먹었지만, 6.10 항쟁으로 여소야대가 된 1988년의 13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폐지됐다. 이때 집권여당에는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 시절에 날치기를 시도했던 의원들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열렬했던 사랑이 식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독재자의 서슬푸른 억압이 이제는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헌데 어쩌랴, 입법까지 됐던 선례가 있어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헌법에 명시된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 정부에 불리한 글들이 사이버 상에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미네르바 사건’을 자행할 수 있었다. 이때 검찰이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이 위헌 판정을 받아 미네르바는 무죄로 풀려났고, 정치적인 검찰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하지만 선례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정치에서 두 번의 선례가 있었다는 것은, 권위적인 대통령과 정치검찰이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추세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검찰이 초스피드로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화들짝 놀란 젊은 네티즌과 유신시대와 전두환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이버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삼세번에 이른 대통령 모독죄에 걸려든 국민들이 기소되고, 장기적인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해도 대통령은 통치행위에 속하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고, 검찰도 비난을 받을지언정 책임지지 않는다. 이에 무죄를 선고받은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면, 배상액은 전액 국민의 세금에서 나간다.





국가의 위신과 국익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 환청인 모양이다. 아니, 환청이다. 이처럼 대통령 모독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단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대통령과 검찰이 노리는 것이 자발적인 검열이라고 해도, 네티즌들은 법정싸움을 벌이려면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는 에너지 소모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이버 망명을 선택한다. 검열을 받느니 차라리 외국계업체의 배를 불려줄지언정 자유롭게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감히 배제하지 못’하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창조적인 나라가 됐다. 실로 나날이 새로워지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이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1. 달빛천사7 2014.09.27 05:37 신고

    사람들 많은곳에서 특정인물을 모독해도 예전에 많이 엮여서 고생했는데 요즘은 그나마 들해져서 다행이에염 .

    • 늙은도령 2014.09.27 05:54 신고

      유신시대에는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찰의 폭행을 당하기도 햇습니다.
      실제로 세 명만 모여 있어도 집시법 위반이라고 현장에서 끌고가도 무조건 끌려가야 했어요.
      대부분 훈방처리했지만, 재수없으면 즉결로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2. 노지 2014.09.27 07:43 신고

    하아...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무서워서 원...

    • 늙은도령 2014.09.27 16:07 신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신시대로 돌아가면 전 세계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번 검찰의 검열도 문제가 커지면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고, 야당을 비롯해 지식인, 교수만이 아니라 국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검찰은 일종의 정치쇼를 하는 것인데, 위헌 문제를 또다사 불러올 것입니다.
      박정희가 왜 미국에서조차 포기했느냐면 유신시대 때문입니다.
      경제도 그 바람에 나빠져서 그는 사면초가였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4.09.27 09:05 신고

    말로만 창조 창조..
    모방..답습

    • 늙은도령 2014.09.27 16:09 신고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뻐쳤습니다.
      하지만 검찰을 동원해 이런 검열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레임덕이 생깁니다.
      야당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입니다.

  4. 김현기 2014.09.27 12:02

    박정희 따라하다.박정희꼴 날까 걱정됩니다

    • 늙은도령 2014.09.27 16:10 신고

      임기는 다 마칠 것입니다.
      그러나 상시적 검열이 난무하면 어마어마한 후폭풍과 저항에 시달릴 것입니다.
      박근헤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하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양보하면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음에도 박근혜는 판단력을 잃어 몰락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5. 하이서명 2014.09.27 13:13 신고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유신이 돌아올까봐 정말 무섭고
    오늘따라 그분이 그립네요..ㅠㅠ

    • 늙은도령 2014.09.27 16:11 신고

      그러게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그는 참 대단한 분입니다.
      민주주의에 관한한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가장 잘 보여준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6. 중용투자자 2014.09.27 18:22

    환관들은 약점많은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하니 그말이 사실인 듯합니다.

  7. 바람 언덕 2014.09.28 10:26 신고

    왔다 갑니다 도령님.
    오늘 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나...

    ^^

    • 늙은도령 2014.09.28 14:17 신고

      아이고, 반갑습니다.
      취가 떠난다 해서 아쉽기만 합니다.
      님의 블로그는 자주 들려 보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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