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라", "당신이 유난스러운 거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2차 가해 중 이른바 '사소화'라는 게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면 오히려 피해자를 유난스런 사람으로 몰고가 비난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실제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겪는다는 '사소화' 문제, 그 실태를 조혜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여성은 4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사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에 시달렸습니다.

[직장 성폭력 피해자 : "자기의 몸을 저한테 이렇게 뒤에서 밀착하면서 장난을 치는 그런 행동을 자주 하셨었거든요."]

하지만 신고 대신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회사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장 성폭력 피해자 : "(회사에서는) 늙어서 모르셔서 그랬으니 그냥 네가 이해해라 이런 식으로..."]
중학교 행정 직원인 이 여성은 2년 전 용기를 내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공개적인 '미투' 이후로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립학교 성폭력 피해자 : "저희 학교는 성희롱적 발언은 아무렇지 않게 되는 곳이거든요. 성희롱은 처벌이 약하다, 참고 다녀라. 이렇게 얘기를 관리자가 하세요."]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에게 참으라고 강요하고, 심지어 유난스런 사람으로 몰고 가는 걸 '사소화'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소화'는 피해자들을 더욱 침묵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가해자의 입지를 강화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김보화/한국성폭력상담소 책임연구원 :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 문제구나' 이런 것들을 사실 모두가 학습하죠. 다음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또 그 다음의 가해자를 양산하는 것..."]

 

한 조사 결과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8명은 문제 제기조차 포기한다고 나오는데 조직 내의 '사소화'가 큰 원인입니다.
[이수연/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 "부담을 고스란히 피해자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런 부분을 피해자도 이제 미리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신고까지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요."]
결국,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피해자만 참고 견디는 게 현실입니다.
[사립학교 성폭행 피해자 : "제가 얘기한 게 후회 안 됐으면 좋겠어요, 용기 내서 말한 게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이소정 앵커의 클로징멘트에 이어 이번에는 뉴스라는 형식을 빌어 KBS 9시뉴스가 고 박원순 시장을 부관참시했습니다. 지금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 이유는 김재련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고발인측 변호인단의 비협조와 정치적 행태 때문임에도 국민ㅡ반이 여성이라면 나머지 반은 남성이리라ㅡ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KBS 9시뉴스가 조중동스러운 보도를 내보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영상을 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iokCT949pc

 

 

  1. kbs편파방송 2021.01.09 15:53

    kbs는 3선이후18년 부터는 박시장에 대한 편견된 방송이 많았습니다.

    특히 라듸오 최강시사나 17시 이후 라이브 방송시간에는 이낙연 이재명 정책은 홍보하고 박시장님 정책은 비판적인 내용을 많이 내 보냈습니다.

    kbs 방송기자들과 편집자들 반드시 시민들로 부터 평가를 받을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절름발이 정책'이라는 단어를 썼던 이광재 의원이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장혜영 의원이 '장애인 비하'라며 사과를 요구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이광재 의원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장혜영 의원의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광재 의원의 사과는 상처를 입은 장애인에게 비장애인이 취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올렸던 영상에서 장혜영 의원의 인식에 격렬하게 반대했을 때 몇 가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여성이 다양하듯이 장애인도 다양한데, 장혜영 의원은 그런 다양성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풀어갔습니다. 장애인 중에는 절름발이라는 단어에 신경쓰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좋지 않은 의미로 그 단어를 쓴 사람에게 창피한 마음을 들게 할 때도 많습니다. 창피함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도록 만든 것이지요.  

 

그렇게 그 사람도 발전하고 저도 발전합니다. 장 의원이 동생의 시설 생활에 대해 얘기하면서 모든 시설이 나쁜 것인양, 거기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에 여러 분 분노했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장애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음은 무엇도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사나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고충과 삶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까지 고려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장애인 복지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 설 수 있습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한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의 취업이 열리는 것도 아니며, 당사자의 행복을 올려주는 것만도 아닙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했을 때 장애인도 자긍심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이 계속 걸림돌이 됐을 때 어떤 장애인도 편하게 기업을 다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세부적인 현실들이 모조리 사라집니다. 그것은 장애인 복지의 확장과 질 제고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김재련의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혜영 의원과 류호정 의원의 조문 거부도 마찬가지이고요. 여러 분들은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ㅡ최근에는 이것에도 의문 부호가 달리는 형국이지만ㅡ피해자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모든 여성이 성희롱을 받는 것도 아니며, 여러 분의 방식에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성 중에 양성평등을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여러 분들이 말하는 형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양성평등에 이르고 그 이상의 성찰을 이루어 남성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습니다. 벌레보다 못한 일베가 전체 남성을 대표하지 않을 뿐더러, 단두대에 보내도 모자랄 그놈들이 여성의 적이기 전에 남성의 적이라고 분노를 터뜨리는 남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일베와의 미러링에서 배운 경험을 전체 남성에게 적용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여러 분 경험의 일방성과 일천함으로 모든 남성을 재단하지도 마시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지도 마십시오. 이땅의 모든 여성들이 당신들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마시고, 당신들의 투쟁에 동참하라고 강요하지도 마십시오. 

 

당신들의 방식에 반대하는 모든 반응들을 2차가해로 몰고가지 마시고, 당신들 못지않게 여성의 권리와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성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국회는 원피스를 입어도, 정장을 해도 권위가 생기는 곳이 아니라 지역구민과 전체 국민을 위해 올바른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곳입니다. 

 

절대적 진리와 정의, 이상은 없으며, 그것을 주장할 경우 플라톤이 그랬던 것처럼, 빌어먹을 윤석렬이 그랬던 것처럼 전체주의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것, 내가 깨달은 것만 신의 영역에 이르러 있으며 나머지는 피조물의 영역에 처박혀 있다는 오만함이 히틀러와 스탈린, 모택동, 피노체트, 박정희, 전두환, 김일성 등처럼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죽이는 초대형 범죄의 근원이 됐음을 잊지 마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xQ114boVV-E

 

  1. 우리말 2020.08.09 07:51

    절름발이는 순수한 우리말 아닌가요
    그럼 장애안비하가 아닌 절름발이 대체 용어를 장의원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20.08.09 23:16 신고

      어떤 단어도 사용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절름발이라는 단어는 영어에도 있고 그밖의 숱한 언어에도 있습니다.
      소아마비라는 병이 모든 국가에 있기 때문이며,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나 정책, 지식 등을 비판할 때 수백 년 동안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것 때문에 장애인이 비하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도 상황의 산물이다. 경험이 축적되고 가치관이 형성되고 죽어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신념이 구축된다고 해도 사람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과 맞싸우면서도 결코 기죽지 않았던 노무현도, 그래서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바보 소리를 들었다 해도 자신과 가족, 후원자, 동지, 지인들을 향한 전방위적 공격 앞에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평의 공간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자유도 허락하지 않은 그런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융단폭격 앞에서 바보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버려 주위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버림으로써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 반격이 가능하리라 희망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유서를 보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당시의 막막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호소 속에는 다음을 기약하는 어떤 희망의 단초도 볼 수 없었다.

 

고 박원순 시장도 그러했으리라. 3년을 같이했던 비서가 자기를 고발했고, 무엇보다도 법률대리인이 야차같은 김재련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공포와 같은 감정이 치고올라올 때면 차가운 이성은 숨을 멈춘다. 숨이 턱 막히며 오랜 세월 동안 갈고닦아온 합리적 사고가 작동되지 않는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김재련을 몰랐을 리 없는 박원순 시장으로써는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자신이 보였을 수도 있다.

 

대책회의에서 나온 회의적인 반응도 박원순 시장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갔을 지도 모른다. 자신 때문에 평생을 고생해온 아내와 고역을 치른 아들이 떠올랐을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부연할 필요도 없으리라. 자신의 지지자와 후원자, 서울시민들의 차가운 반응과 냉소적인 비판이 그의 귓전을 천둥벼락처럼 때렸을 것이다. 서울시 공무로 바빠 집무실에 마련한 침실에서 자야했던 그로써는 자신의 비서를 비서 이상으로 대했을 지도 모른다.

 

성적인 것이 아니라, 공식생활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보호자이자 딸처럼 다가왔을 수도 있다. 속옷을 가져오지 않아 비서에게 사와달라고 부탁했을 가능성도 있고, 비서가 알아서 준비해두었을지도 모른다. 비서 이상의 일들을 해주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터무니없지는 않으리라. 박 시장은 그렇게 비서를 단지 비서로만 대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으로써 자신의 속옷을 챙겨주는 비서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속옷을 입은 사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잘 맞는다며. 

 

 

 

https://www.youtube.com/watch?v=XAiBmRRGDuc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결정됐습니다. 김재련 변호사의 1, 2차 기자회견을 거쳐 인권위 주위에서 시위를 한 것이 주효했는가 봅니다. 박 시장 관련 보도에서는 채널A와 함께 검언유착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는 SBS에 버금갈 정도의 취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30장에 이르는 증거사진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강제수사권이 없는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조사결과가 김재련으로 대표되는 고발인측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김재련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가운데 박원순 의혹의 진상규명은 어떤 식으로든 진전될 덧으로 보입니다.  

 

헌데, 인권위 대변인의 발표를 자세히 보면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그 의문은 KBS 이소정 앵커의 클로징 멘트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네 번째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김재련 등의 고발인측 1차회견과 2차회견, 직권조사를 결정한 인권위가 쓰는 단어의 변천에 주목하면 네 번째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극우보수유튜버들과 극좌진보유튜버들의 각종 음모론과 과잉된 역공까지 더하면, 성추행에서 성폭행을 거쳐 성희롱까지, 사건(이것도 의혹으로 낮아졌다)의 본질을 이런 프레이밍은 이수정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어떤 프레이밍 하에서 이루어졌는지 질문하게 만듭니다. KBS가 보여주는 난맥상으로 볼 때 이번에는 이소정 앵커가 제 질문에 답해주었으면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TaT5DDByk0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남은 이에겐 돌이킬 수 없는 가해가 된다는 의미”라며 “이 문장이 수없이 공유됐다는 건 그만큼 공감하는 마음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진실의 무게는 피해자가 짊어지게 됐고 피해자 중심주의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려하던 2차 가해도 범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KBS는 이명박근혜 9년 동안의 행태가 부끄러웠던지 정치적 중립, 객관적 보도, 균형잡힌 접근 운운하며 기계적 균형에만 집착합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변하겠다며 일방적 담론(그들만 알고 시청자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그들의 시선, 즉 카메라 각도)을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반이 여성이고 그 여성들이 모두 다 피해자인양 몰아가는 KBS의 일방적 담론은 특정 계층의 이익만 대변하는 전체주의적 보도의 느낌마저 듭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남은 이에겐 돌이킬 수 없는 가해가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죽음을 상상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헌데 이런 일방적인 접근은 고 박원순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복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릴 만큼 상상할 수도 없는 악인이자 파렴치한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듯이 평생을 선하고 옳은 일을 해오면서 살아온 박 시장이었음에도 단 한 명의 피해자에게 보복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만큼 악랄한 인간이었단 뜻입니다.

 

 

 

KBS 이소정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성공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자신이 단 한 번의 잘못으로 온갖 비난에 시달릴 것을 참지 못해 죽음으로 도피해버린 비겁한 인간이자 자신의 목숨값으로 피해자에게 보복이나 가하는 인간 말종이란 뜻도 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이토록 깎아내려야 피해자와 성폭력 희생자들의 인권과 치욕이 회복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피해자가 받을 고통의 몫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이런 글도 2차가해가 될 수 있음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재련 변호사와 그녀와 함께 시민단체가 보여주는 정치적 여론몰이 행태와 비교할 때 KBS 이소정 앵커의 클로징멘트는 고상함을 차용한 비열하기 짝이없는 부관참시이자 사자에 대한 영혼살인입니다. 남은 사람인 피해자의 고통이 큰 만큼 남편이자 아버지의 황망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유가족과 박원순 시장에게 도움을 받은 모든 시민들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인지,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형사법상 밝힐 수 있는 한계도 있는 상황에서 진실의 일단이라도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KBS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처박히기라도 한답니까? 이소정 앵커의 클로징멘트를 들으며,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로 일반명사처럼 되버린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마라>에서 나온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그리스의 현자였던 솔론을 인용하며, '비대칭문제'라는 확률에 대한 대중과 경제학자의 잘못된 믿음에 대해 다룹니다. '비대칭문제'란 '실패의 대가가 지나치게 클 경우, 아무리 자주 성공을 거두어도 소용없다는 뜻'이라고 탈레브는 말합니다. 전작보다 더욱 시니컬해진 저자의 성찰이 폐부를 칼로 찌르는 것처럼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저는 이소정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무작정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헌데 탈레브의 성찰에 기대 세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앵커는 '수없이 많이 공유'라는 말을 썼는데 '수없이 많은 공유'의 기준이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요?

만 번의 공유요? 십만 번의 공유요? 이소정 앵커는 '수없이 많은 공유'의 기준이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진실의 무게'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요? 성추행의 정도도, 횟수도, 기간도, 실제 일어난 일들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진실인지요?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나요? 누군가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나요? 사실도 아닌 진실의 기준은 무엇인지요?    

 

마지막으로 '피해자 중심주의'가 절대적 선인지, 어디부터 피해자 중심주의가 시작되는지, 어디가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일치된 합의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그것은 남은 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남성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될 테니까요.

 

작년 말, 어머님의 돌아가신 이후의 저도 이런 '비대칭문제'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죽음'이라는 너무나 큰 사건 때문에 그 이후 아무리 열심히 살며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기도해도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머님 생전에 '엄마 죽으면 난 어떻게 살지? 나도 따라 죽을까?' 이런 말들을 수없이 되풀이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정작 잘만 살고 있어서 하루하루가 죄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님 생전보다 건강이 좋아진 것도 죄스럽고, 자주 찾아뵙기 위해 서울로 왔다는 핑계를 대면서 3주에 한 번도 동작동 국립묘지를 가지 않은 것도 죄스럽기만 합니다. 밥을 먹을 때도, 어머님이 좋아했던 음식을 먹을 때나 어머님처럼 등이 굽은 할머님들을 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도 살아가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 썼던 시에서 '죽음은 남은 자의 것일지도 모른다' 표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모든 역사와 존재하는 것과의 완벽한 단절을 뜻하는 실존적 사건인 죽음이란 지극히 정치적인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영상에서 그녀의 성찰을 풀어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죽음을 남은 자의 입장이 아닌 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로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개인적 경험의 차원에서는 그런 변화가 너무 힘겨운 일이지만,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행복하려면 저도 죽음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여성을 너무나 좋아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여성의 미와 덕성, 지능, 능력, 재치, 유머, 인품 모두에 긍정적인 페미니스트입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든 여성들의 개별성과 매력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권에 민감하고, 그들의 피해에 더욱 민감합니다. 그들의 성취와 성공, 희생과 배려에 기쁘고 고맙기만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가 제 어머님을 기억하는 방식이며, 제 조카들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예, 그래요, 저는 지독할 정도의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키우기 위해 늙어버린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는 멍청하고 한심한 놈입니다. 누구를 비판할 때는 정확한 기준과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다음에 하려는 것도 이땅의 남성이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해서 이소정 앵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피해자가 받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지만, 죽을 때까지 회복할 수 없는 실패를 몇 번이나 경험한 저로써는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이런 식의 여론몰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중에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자에 대해 말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클로징 멘트는 정말로 일방적인 폭력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fSZYS0O5S8 

 

  1. 하얀나비 2020.08.17 21:40

    이소정 앵커는 언론인의 기본이 안된 자인듯.. 피해자측에서는 현재 성추행에 대한 아무런 직접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서도 기자회견은 2번이나 하였음!! 그러나 이에대한 비판은 1도 없으면서 '박원순 시장이 자살하였으니 성추행을 인정한 것이다' 라는 확증을 가지고 저런 쓰레기 멘트를 날림!!

    대한민국에서 이런 자도 꼴에 언론인이라고 나와서 이렇게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어디 잡혀가서 고문 당하거나 맞아 죽지 않는 진정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데 평생을 헌신한 고 박원순 시장의 삶을 송두리채 무시하는 발언을 해도 될 만큼.. 이소정 이 자가 그리도 고귀하고 처절하게 살아왔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쥐자식과 평범한 주부의 꼬봉 시절.. 아무 말 못하던 바보 개비에스를 참 언론사가 되게 지원해주고 뒷받침 해주는 현 정부에게 가하는 기계적인 중립적 언론인의 행태는 꼴사납기 그지 없음을 개비에스는 알기 바란다!!

    그래서 옛선인들이 그러셨다.. '뉴스는 MBC'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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