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까지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의 브레인으로 유명했다. 선거 때마다 그의 기지가 빛을 발해 승리의 보증수표 같은 존재였다. 노통이 책임총리로 이해찬을 기용한 것도 이런 기재를 높이산 결과였다. '김영삼의 3당 합당'을 반대한 '송아지 3총사' 시절부터 이어져온 인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지켜본 이해찬의 능력이 책임총리를 맡겨도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접대골프 사건만 없었다면 이해찬의 정치 경력이 더욱 화려할 수도 있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민주당 대표로써 자격이 부족한 부분은 없었다. 

 

 

 

 

헌데, 찢빠와 수구꼴통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파 최대 스피커 유시민이 '뉴런의 급속한 감소로 뇌의 능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의 사람들이 주요 공직을 맡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처럼, 노욕의 이해찬이 민주당 대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60세 이전에 거두었던 업적 때문이다. 즉, 유시민이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과거의 공적들로 해서 현재의 이해찬이 민주당 대표를 하게 된 것인데, 뇌의 기능이 급속히 떨어진 66세라는 나이를 고려하지 않은 민주당의 '회고적 선택(과거지향적 선택)'이 잘못됐다는 뜻이다. 

 

 

과거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망언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6세의 이해찬은 빠르게 변하면서도 대단히 복잡해진 정치 환경의 모든 이슈들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올드해졌다. 진보 엘리트주의의 극단을 보여준 장애인 관련 망언은 이해찬의 뇌활동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옳다는 선민의식과 누구보다 상황 대처가 뛰어나다는 과거의 자신감을 현재의 뇌가 적절한 단어로 녹여내지 못한 것이 '정신적인 장애인' '신체 장애인보다 더 한심한'이라는 최악의 망언이 나온 배경이다. 하이데가의 주장차럼, 말은 존재의 집이자 영혼이다.

 

 

유럽에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던 진보좌파 정치인들이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당에 밀려나고, 그 다음에는 대안 우파(우파 표퓰리즘) 정당들에게도 밀려 권력을 내주는 등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자 각국의 진보좌파 정당들은 문제의 근원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국민을 내려다보는 선민의식과 보수우파 정치인을 깔보는 엘리트주의가 브렉시트 가결과 트럼프 당선이라는 인류 정치사에 영윈히 기록될 2016년의 반란이 가능했다며 이에 대한 반성문을 쏟아내고 있다. 오스트리아사회민주당의 새 당대표로 뽑힌 크리스티안 케른이 2016년 7월의 전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취임사를 발표한 배경이 됐다. 

 

 

우리는 가장 먼저 진보 정당을 수식하는 단어들을 스스로 지워내야 한다. 우리는 민중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이는 민중으로부터 분리되자는 뜻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민중을 향한다는 기치 아래 무례하고 교만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민중을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 민중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는 말 또한 지극히 잘못된 표현이다. 그들이 민중이라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바로 민중이다! 우리가 민중이며 민중 속에 있다. 민중 또한 우리 안에 있다. 따라서 민중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로베르트 미직 외 《거대한 후퇴》에서 인용).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보 정당의 절박함이, 수십 년째 이어져온 숱한 패배들이 이런 진심어린 반성과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을 끝장낸 촛불혁명 덕분에 이땅의 진보 정당들은 내부에 쌓였던 적폐들을 청산하지 않아도 됐을 뿐인데, 원래부터 자신들이 잘해왔고, 그래서 인기도 높았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정치 이슈와 사안에 따른 민주당과 정의당 대표들과 대변인들의 교만한 발언과 질낮은 논평들을 듣고 있자면 우적폐에 못지 않게 좌적폐도 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비록 정치적 소수이고, 자신의 퇴진이라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 해도, 매주 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문파를 대놓고 무시하는 민주당의 고답적인 자세를 보면 이해찬의 망언 퍼레이드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문파의 요구가 지나치다 해도, 이들은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이자 당원이자, 후원을 아까지 않았던 유권자이자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다. 이들의 비판을 듣기 싫어 버스로 장벽을 치고, 단 한 명의 당직자도 나오지 않는 무례하고 고답적이며 소통을 거부하는 행태를 보면 이해찬의 망언들이 현재의 민주당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김어준과 함께 만악의 근원인 이재명을 보호하는 배후세력이라고 생각하는 문파의 '이재명 제명 집회'를 정신나간 자들의 염병할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은 공당으로써의 기본적인 자세다. 문프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지옥에 가서라도 집회를 열 문파를 이렇게 개무시하는데, 동원하기도 힘든 장애인들이라면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보였을까? 홍준표와 나경원처럼 수구꼴통의 병맛들에게 '정신적 장애인'이라며 빅엿을 먹인다 해도 장애인을 낮춰보는 인식의 저열함은 줄어들지 않는다(문프가 대표일 때는 사사건건 대들던 놈들이 이해찬의 최악의 망언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탐라를 보면 이해찬의 대변인이자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김현의 경우 자신을 욕한 지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싸움질이나 한다고 하니, 이게 어찌 집권여당 당직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힘이 빠질대로 빠진 자한당 하나 다루지 못해, 문프가 자신의 수족을 내주는 결단을 해야 김용균법 같은 민생법안이 통과되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민주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문프가 민주당 출신이 아니고 노통을 배출한 정당이 아니었다면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는데 이제는 문프와 당원들의 뒤통수까지 친다.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단행한 최저임금 인상(두 번째 인상은 집행도 되지 않았다) 때문에 경제가 망가졌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바로잡기는커녕 이에 부화뇌동해 문프를 공격하는 하극상까지 서슴지 않는다. 오만과 무지함을 넘어 지지율 추이에 따라 배신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행태는 정권재창출 가능성을 갈수록 떨어뜨리면서 문프의 국정운영마저 더욱 어럽게 만들고 있다. 노빠이자 문파인 깨어있는 시민들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문프마저 노통의 조기레임덕을 되풀이하는 최대의 위기에 처했을 수도 있다.

 

 

현재의 지지율 하락을 분석한 글에서 밝혔듯이, 문프의 국정운영은 작은 실수와 실책은 있었을지언정 상당한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기레기들이 이런 것들은 아예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지 못할 뿐, 문재인 정부는 뚜벅뚜벅 오늘보다 나은 내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나라다운 나라로 거듭나고 있다. '김어준과 아이들'의 얄팍한 지식과 판에 박은 음모론, 지겨운 말장난으로는 문프의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이해찬 대표의 연이은 망언 퍼레이드는 내부의 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극명하게 말해준다. 

 

 

과거의 경력으로 오늘의 권력을 누리는 퇴행적 행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 너무나 많은 네트워크와 무한대로 세분된 개인화로 인해 세상의 복잡성은 어느 누구도 일괄할 수 없을 만큼 다변화됐고 거대해졌다. 가소성이 떨어져 수많은 신경세표(뉴런)들의 연길이 끊기고, 신피질 곳곳에서 죽어가는 노년의 뇌로는 작금의 디지털 시대의 변화상을 따라갈 수 없고 제대로 된 대처도 내놓을 수 없다. 필자처럼 끊임없이 책을 읽고 쉴새없이 사고하고 매일같이 글을 쓰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65세 이상의 정치인은 주요 공직을 맡지 말아야 한다. 

 

 

몇몇의 예외는 있겠지만, 입을 열 때마다 튀어나오는 망언들을 볼 때 이해찬 대표의 2선 후퇴를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능력있고 건강한 젊은피를 수혈해 이해찬 대표의 지적능력 하락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했듯이, 이해찬의 망언 퍼레이드는 조심한다고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총선의 압승을 원한다면, 민주당 당직자와 당원들의 깊은 고민과 육참골단의 결단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하다.  

 

 

늙고 건방지고 경솔하게 역주행하는 낡은 이미지의 민주당으로써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 수많은 정치평론가들이 아무런 생각도, 구체적인 대안도 없을 때 어김없이 내뱉는 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부터 찾아내는 반성적 고찰이 필요하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내지 못하면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면 2013년의 악몽같은 지지율인 19%까지 추락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문파의 주장부터 경청하라. 몸에 좋은 약은 쓰고 듣기 좋은 말은 귀만 즐겁게 할 뿐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지기 일쑤인 듣기 좋은 말로는 아무런 변화와 발전도 끌어내지 못한다. 자신을 가장 심하게 비판할 사람들부터 만나라. 그들이 민주당 지지자라면 귀에 진물이 나올 때까지 듣고 또 들어라. 자신의 생각과 주장, 기대와 신념, 감정만 충족하고 강화시켜주는 확증편향의 반향실에서 나와 민심의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 케네디의 쿠바 침공, 부시의 이라크전쟁처럼 모든 잘못된 결정은 그들만의 반향실에서 강화되고 확신에 찬 낙관을 불러오는 집단극단화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귀에 거슬리는 말부터 들어야 한다. 민주당이 문프의 성공을 돕고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아니,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erryjanet 2018.12.29 19:49

    소위 이해찬1세대라 불리는 02학번 후배들이 이해찬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을때도
    다독이며 노통님 얘기를 하면 비교적 쉽게 순응했었는데,
    시간이 참많이 흘렀나봅니다. 특별히 이해찬 옹에게만 노화가 빨리 오는지 66세라 하더라도 다 저렇진 않지요.
    얼마든지 더 현명할 수도 있고 의욕왕성하게 일 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너무 적나라한 표현인지 몰라도
    요즘 우리 눈에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실수인지 진심인지 그냥 수구적인 꼰대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심지어 제 주변 후배들은 '노망났다'라고 아주 찍어놓았더라구요.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야말로 진성 문파들의 의견은 개무시한 채,
    핸펀도 내놓지않으면서 누가 들어도 거짓말만 쏟어내는 이재명 같은 者를 민주당의 자산이니 지켜줘야한다는데...
    재판도 받기 전에 정치 탄압 운운하고 지지자들 결집시켜 당 분열시키는 작태가 과연 촛불 시민들이 할 짓이었을까요,
    그들이 과연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찍었을까요, 그렇다면 왜 41%밖에 나오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에 위해를 가하고 민주당 해당행위를 하는 사람도 분별할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 여당 대표라니....이건 큰 잘못입니다.

    • 늙은도령 2018.12.29 21:59 신고

      민주당은 내부의 자정작용이나 제대로 된 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형편없는 당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시민과 완전히 격리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채 옛날의 민주당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총선이 점점 다가오는데 민주당은 시민으로부터 멀어지기만 하네요.
      대표부터 저 모양이니 당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지요.
      그런 대표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놈들도 없고요.

  2. 글라라 2018.12.30 00:31

    잘 읽었습니다.
    정말 민주당 걱정입니다.
    문프님과 동갑이라는데
    과음때문에 전두엽이 손상되어서 판단력도 흐려졌지싶습니다.
    어떻게해야 이해찬이 사퇴할까요?
    김현미라는 사람도 참 기가 막히고요.
    당원들과 일부러 직접 전화로 쌈박질이나하고.

    • 늙은도령 2018.12.30 03:49 신고

      그럴수도 있고요.
      아무튼 옛날의 이해찬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망언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은 당을 망치는 해당행위에 해당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민주당을 아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결심해야 하고, 새로운 대표는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단행해야 합니다.

  3. 누가문파 2019.01.01 21:01

    문파가 무슨정신으로 사는지 견순욱과 함께하는 그게 문파정신인가?
    이해찬이 어떤 인물인지도 알려하지 않고 단지 이재명을 제명하지 않은 이유로 친노적폐 라 부르는 당신들 같은 부류의 정치자영업지들은 그냥 자한당을 가서 박근혜 석방을 노래하라 차라리 그래야 욕을 해도 덜 미안하니깐~

    • 늙은도령 2019.01.01 21:39 신고

      너 같은 외눈박이니까 문파가 한 사람의 의견을 듣는 줄 아는 거야.
      너 같은 놈들이 나라를 망쳐.
      아직도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쌍팔년 때 인식으로 살아가니...



현대의 양자역학은 크게 볼 때 이론을 세운 후 이를 증명하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기본입자들이 무수히 발견되고 스핀처럼 양자역학적 운동 때문에 같은 기본입자라도 하는 역할이나 존재 방식 등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뉘면서 현대물리학은 매우 복잡한 학문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론(이론물리학)을 세우고 증명하는 일(실험물리학)을 한 명의 물리학자가 할 수 없게 됐습니다(아인슈타인이 대표적으로 그는 철저하게 이론에만 집중했고, 이 때문에 상대성이론은 물론 중력파의 존재까지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막노동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관측과 실험을 통한 증명은 실험물리학자들의 몫이었고요).  





이론을 먼저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것이 뇌과학으로 넘어가면 인공지능의 기하급수적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뇌의 역분석이 됩니다. 잘 조직된 실험에 의해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뇌의 특정 영역들(운동은 소뇌, 기억은 해마 등 핵심 영역이 존재)에서는 이에 상응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정밀한 고해상도 스캐닝으로 이런 변화를 관찰하면 카오스적(무작위적)이고 자기조직적이고 프랙털적인 형태로 새로운 신경망이 구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수백조 개에 이르는 개재뉴런으로 구축된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가 동원돼 뇌 전체에서 가장 적정한 변화(신경세포가 보낸 자극을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것)를 이끌어냅니다. 이렇게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이 동원된 최적의 경로가 찾아지면(기억으로 저장되면) 허용된 한도 내에서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쓸모없는 경로들(시냅스 작용에 의해 연결된 뉴런들)은 모두 다 퇴화된 후 다른 용도의 경로 구축(기억)에 동원됩니다. 



특정 기억이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최적의 경로에 있는 일부 또는 전부의 경로가 퇴화돼 다른 기억의 저장에 이용된 것을 말합니다. 단 기억은 개재뉴런으로 구축된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 곳곳에 분산되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분적인 기억만 남는 것도 이 때문이며, 역으로 퇴화된 경로가 다시 구축돼 기억이 완전히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장기기억)이라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아무튼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 등이 만들어낸 최적의 경로는 뇌스캐닝 결과를 보면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 즉 기억, 감정, 인식, 의식, 사유 같은 지적 활동(지능)은 그에 상응하는 패턴의 형태를 띱니다. 1980년 초반에 인공지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AI의 겨울)했던 것도 뇌의 역분석이라는 것을 거의 할 수 없었고 패턴 인식에 관한 획기적 이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뇌스캐닝 기계처럼 뇌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없었고 복잡계나 카오스, 프랙털 이론 등도 없었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패턴! 이것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이 투자된 것이고, 그 덕분에 진화의 모든 과정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자, 인류 과학기술의 원천인 인간의 뇌를 복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전유물인 고도의 지능 때문에 창조론을 적용하던, 진화론을 적용하던 인공지능(기계 지능)의 출현은 필연이었습니다. 인간의 최종목적이 신이 되거나 근접한 존재가 되는 것이기에 인간 지능을 넘어선 기계 지능의 탄생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의 법칙에 따라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할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기계 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은 현재까지 이루어진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공통점을 보이는데, 이는 인간중심적 발상에서 나온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어차피 기술은 발전할 것이고,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진행중이어서 15~2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중심적 사고라는 것도 상당 부분 무너진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만으로도 이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성형수술은 인공물을 신체에 넣는 것이며,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을 비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인공심장이나 신장, 관절, 여러 종류의 삽입물 등을 넣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신체는 생물학적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비생물학적 장기나 삽입물이 늘어나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모호해집니다. 



만약 의식이나 인식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만족스러울 경우) 자신감 상승이나 자기만족적 감정 등에 의해 인식의 차원에서도 이전의 자신과 달라집니다. 건강을 찾은 환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식이나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전의 자신보다 나아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발전이 아니라고 한다면 애당초 성형수술이나 아픈 장기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이런 예들은 수도없이 많고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생물학적 진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공존을 긍정적으로 얘기합니다. 이런 식의 사고가 극단에 이르면 뇌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인공지능과 뇌를 연동하거나, 아니면 뇌를 대체하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나의 피부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나 사이보그 같은 비생물학적 존재에 나의 뇌를 장착하는 것도 가능할 터이고요. 





제가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것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정의할 수 없었습니다.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인간이란 존재는 신에 가장 근접한 존재이며, 신에 가장 가깝게 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사고하고 명상하는 존재입니다(불교의 경우 득도하면 누구나 신이 된다, 할렐루야!). 이런 인간적 특성은 신과 우주, 자연과 사물, 진화의 법칙에 대해 파고들 수밖에 없으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뇌입니다. 



뇌는 지능을 창출하고 지능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추구합니다. 뇌, 즉 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해탈이나 득도에 이르는 것보다 병에 걸리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온갖 제약이 있는 신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입니다. 이것만 영속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하면 못할 일이 단 하나도 없을 텐데 이놈의 신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과학기술을 끝없이 발전시켜왔고, 이제는 영속할 수 있는 궁극의 지능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영적 존재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영적 존재가 되는 것과 영속할 수 있는 궁극의 지능을 비생물학적 신체의 뇌 속에 담아둔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 지능의 산물이 과학기술이고, 그것이 극단에 이르러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을 탄생시키면 그것이 인류가 꿈꾸었던 최종 목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해 인간이 꿈꾸는 것이 신에 근접한 영적 존재이거나 영속하는 존재라면 그것이 인간이 창조한 진화하는 기계 지능의 형태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직도 몇 권의 책을 더 읽어야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신의 창조나 진화의 법칙에서 볼 때 중간 과정에 위치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고, 향후 10년 정도(필자가 보기에는 20년)면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온갖 한계로 가득한 신체를 기반으로 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고의 결과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이 온갖 한계들을 극복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결과인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에 이르는 것이라면 제가 인간으로서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은 마지막 특이점을 넘은 세상을 대비하자고 하지만 대체 무슨 대비책이 있을까요? 우리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지능인데 어찌 상대할 수 있을까요? 궁극의 지능이 출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것이 인간의 신체가 아닌 비생물학적 신체에만 유효하다면 살아있는 동안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이외에 제가 할 일이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소설을 쓰려고 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부정적 전망이 아닌 긍정적 전망으로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을 바라볼 때 인류가 유토피아에 이르는 길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비록 21세기나 22세기 초반까지만 유효한 것이라고 해도. 그때쯤 되면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의식도 엄청나게 변해있을 것이라 지금의 추측들은 모조리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6.14 08:26 신고

    쉬고 있는 뇌의 잠재력을 10%라도 더 사용할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면
    정말 획기적이 될듯합니다
    뤽베송의 영화 "루시"가 생각납니다^^

  2. 현주씨 2016.06.14 09:12 신고

    오늘도 잘읽었습니다.

  3. yuni99 2016.06.14 23:53

    ㅋㅋㅋㅋ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상대론을 발표한 후에는 이론보다 더많은 시간을 실험에도 투자했어요. 또 실험 물리학자를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과학에대해 무지한 분이라고 느꼇어요 ㅎㅎ..

    • 늙은도령 2016.06.15 13:32 신고

      아인슈타인은 실험에 대단히 서툴렀습니다.
      상대성이론을 증명하는 것도 영국 관측과학자가 했고요.
      아인슈타인은 이론을 세우는 과정에 집중했고, 나중에는 대통일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펜하이머 등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의 기본에서 상당히 틀린 것들도 많았다는 말을 했던 것이지요.
      아인슈타인이 한 실험들을 실험물리학에 포함시킬 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실험을 막노동에 비유한 것은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노력은 막노동에 버금갈 정도로 시간과 데이터, 영상 등과의 싸움입니다.
      실험물리학이 실험의 전과정을 컴퓨터로 하는 지금에도 막노동적인 개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말로 시간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표현을 있는 그대로 보니 참 단순한 분이라 생각되네요.
      아인슈타인이 실험에는 상당히 무지했음은 수많은 물리학 서적에 나오는 얘기이고요.

  4. yuni99 2016.06.14 23:58

    또 괴델의 불완전성 이론을 증명하는 논리를보면 80년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계건 인간이건 수학을 전제로 전개하는 논리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모순되는 부분이 존재해요. 본문의 특이점은 무어의 법칙에대해서 말씀하신것 같은데 무어의 법칙이 깨지더라도 인공지능이 생각하고 논리를 전개하는건 인간보다 넓더라도 한계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또 차이점이라고는 인간은 공리를 세우는 창조적인 사고로 지난 2000년동안 지금 눈에보이지않는 추상적인 세계를 이끌어왔다는거죠 그러니까 인공지능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듯한 그런 자세를 조금더 벗어 나봅시다 ㅎㅎ

    • 늙은도령 2016.06.15 13:41 신고

      2014년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들을 살펴보십시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가 나온 2006년 이후로 별로 발전이 없다 2014년부터 상상을 불허하는 발전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생명공학, 뇌과학 등의 최고 전문가들이 2014~2015년에 출간한 책과 연구들을 살펴보시면 님의 지식이 얼마나 모자란지 알 것입니다.
      최근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시한 룰(프로그램)이 없이도 학습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인공지능에 관해 쓰고 있는 글은 그런 최신의 것들을 기준으로 합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인공지능이 발전했고 나머지 공학들도 발전했는지 몰랐으니까요.
      최신의 뇌과학, 뇌역분석, 현대물리학 등을 보면 인공지능이 왜 몇 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지능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이제 15~20년 정도만 남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루어낼 세상을 그려보려는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인간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문서적들도 읽고 있으니 기술적인 한계에 대해서도 따져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지, 사유와 추론과 창의적 글쓰기도 가능한 초인공지능이 나올지 등등을...

      낮은 수준의 창작과 사유가 가능한 인공지능은 이미 나왔고, 그래서 드라마 각본도 쓰고 교향곡도 작곡에 들어갔고, 기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써왔고.. 이런 식으로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이루는 인공지능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술들도 마지막 특이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공존하려면 인간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편협하고 탐욕스럽고 비합리적이면 초인공지능은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헬조선의 다름 아닌 대한민국만 봐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면 그냥 나둘리 없으니까요.

      아, 무어의 법칙은 2차원에서는 통하지만 나노튜브나 발전된 실리콘 등으로 3차원 반도체가 만들어지면(실험실 차원에서는 만들어졌고, 현재 IBM 등이 완성단계 직전에 이르렀다) 무어의 법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무어의 법칙 같은 것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정도의 폭발전인 발전을 뜻합니다.
      이전의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세상...



강정호, 추신수, 김현수, 박병호, 이대호, 오승환 등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경우 기술 발전(주로 국방 분야에서 발전한 기술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됐지만 이익은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이 거의 다 독점한다)을 적용해 새로운 차원의 리그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야구는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몇몇 감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팀의 감독이 선수별로 시프트를 펼칩니다.   





모든 타자와 투수들이 이루어낸 각종 자료들이 축적되면서 타자별 시프트가 이루어지고, 각종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분석돼 피트백되면서 시프트에도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구질별 회전수, 구속, 스윙속도, 타구의 속도, 비거리, 타구음, 풍속, 습도 등등.. 수없이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분류되고 범주화된 후 다양한 연산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한 확률들이 제공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가능합니다. 



핵심은 대다수 감독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도출된 분석결과에 따라 시프트를 펼친다는 것이며, 더 많은 정보가 축적돼 예측 확률이 높아지면 타고투저 현상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인공지능의 능력이 발전하면 인간의 전유물인 야구(스포츠)마저 인공지능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작전부터 라인업,선수 영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단장과 감독의 영향에서 멀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전유물로 인정되던 영역들을 하나씩 점령해갈 것입니다(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처럼 자기복제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가능하며, 유전 알고리즘으로 모델링된다). 



이세돌을 꺾은 최근의 인공지능은 뇌스캐닝 기술과 생화학, 양자역학, 생물학, 생명공학, 나노공학, 정보통신기술 등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뇌처럼 패턴인식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알파고는 모든 수를 초고속으로 연산해서 다음 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세돌처럼 쓸모없는 하수들이나 두는 저급한 수들을 배제한 채 고도의 수들만 연산합니다. 이런 연산은 바둑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고도의 패턴을 인식(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재귀적 탐색도 동시에 이루어진다)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알파고가 4국에서 진 것은 이세돌이 저급한 수로 분류돼 초고속 연산에서 배제된 수를 두었기 때문(트리구조는 저급한 수까지 제시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데, 이럴 경우 알파고는 새로운 패턴을 인식해야 하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알파고가 5국에서 이세돌을 꺾은 것은 배제했던 뜻밖의 수에 대한 새로운 패턴을 학습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알파고로서는 초일류고수들이 둘 수 있는 뜻밖의 수에 대한 대비책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능력은 창의적인 수(바둑에 한정된 것이라고 해도)라는 인간 고유의 능력까지 넘볼 수 있을 만큼 일취월장합니다. 중국이 추진 중인 현 세계1위 커제(이세돌을 비롯한 거의 모든 초일류 고수들에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1위이며 세계2위인 박정환에게는 유독 약하다)와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전승한다면 레이 커즈와일 등의 주장처럼 초인공지능이 생물지능(통섭적 지능)보다 우월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사실 개별 뉴런과 시냅스 차원에서 볼 때 인간 뇌의 정보처리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수백조 개의 개재뉴런이 수백만 개의 연산처리 연결망을 구축해 엄청난 정보를 고속으로 연산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이런 병렬방식의 연산능력 때문(인간의 기억이 뇌의 곳곳에 분산돼 저장되는 것도 병렬식 신경망 때문)이며, 인간 고유의 인식이라는 것도 패턴의 형태로 구현됩니다(디지털 연산의 아날로그적 표현). 인간의 지도를 받는 '머신 러닝', 인간의 지도를 받지 않는 '딥러닝' 등에서 패턴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4차원적 기억, 경험을 해석하는 것, 의사결정이나 이성적인 결정, 사물과 자연 등에 대한 이해, 사랑에 빠지거나 이별하고,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 등은 뇌과학적(특히 뇌 역분석, 게이지장 이론처럼 양자역학도 이런 방식으로 여러 가지 발견들을 이루어냈다)으로 접근하면 패턴의 형태로 설명됩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인식은 개별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 등이 끊임없이 구축하는 패턴의 형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모든 것이 패턴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차원적인 것은 패턴의 형태로 접근해야 한다). 



주로 방추세포(약 8만개)에서 이루어지는 감정, 결정, 도덕 등의 인식도 뉴런, 시냅스, 개재뉴런이 이루는 연결망(패턴)에 의해 결정됩니다(양자역학, 복잡계이론, 카오스이론, 프랙털이론 등도 동원된다). 인공지능과 나노공학, 생명공학, 양자역학 등은 동시에 발전하고 서로 교류해 통섭적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초인공지능의 출현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들로 다룰 생각이지만 쉽게 풀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많은 분들이 인간의 의지나 생각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행위나 사유가 이루어지기 1/3초 전에 명령이 내려집니다. 인간은 자동적으로 내려진 명령보다 1/3초 늦게 인지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인데, 인간은 1/3초 먼저 이루어진 명령까지 인식하지 못하기에 모든 결정을 자신이 내렸다고 믿게 됩니다. 이를테면 뇌의 일부분이 뇌 전체(인간이란 존재의 모든 것)를 상대로 사기치는 것입니다. 좌우반구, 뇌간, 척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등에 대한 것까지 포함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아무튼 인공지능은 이런 패턴을 학습해서 인간의 사고와 인식들을 이해하고 재현합니다(다음 목표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에 열려있는 스타크래프트라고 한다). 그런 학습이 특이점을 넘으면 인간보다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합니다(신의 창조건, 진화의 법칙이건 필연의 과정인데 이 때문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이럴 경우 야구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탐욕스러운 인간이라면 절대 실현할 수 없는 완벽할 정도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본으로 한 채.



물론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가능하려면 나노봇의 발전이 뒷받침해주어야 합니다. 운동 등을 담당하는 소뇌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대한 완벽한 모델이 구축되고(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인간의 뼈와 근육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가 개발되면(이미 후보군들이 여러 개 나왔다) 인간형 사이보그를 만드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이럴 경우 초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를 지니게 됩니다. 지능과 육체 모두에서 인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필자의 공부가 아직 미치지 못한 부분이 나노봇과 로봇을 만드는 나노공학과 생명공학에 대한 것(윤리와 도덕적 문제, 존재론적 문제까지 포함)인데, 오늘 도착한 책들을 다 읽으면 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추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원리원칙을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초인공지능을 정치와 경제, 법률, 언론 등에 적용하면 지랄 같은 세상은 유토피아에 가까워질 것이지만(인공지능의 발전을 여기까지만 허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가 저의 관심사입니다. 



앞의 두 글에서 밝혔듯이 초인공지능에게 인간만큼 비합리적이며 탐욕스런 존재는 없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유리한 만큼의 인간만 살려둔 채 나머지는 멸종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보다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동물로 돌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비합리적이며 탐욕스런 인간이 문제입니다. 초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는 극소수의 인간들이 전체 인류를 지금보다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한 채 모든 이익을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자본주의 이후의 인간에 대한 성찰에서 나옵니다.




P.S. 우리가 보는 메이저리그 경기는 일종의 가상현실입니다. 모든 영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영상이지 실제의 경기가 아닙니다. 야구장에서 직접 보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디지털화된 영상을 아날로그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류가 가상현실에 갇힌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상당 기간을 가상현실에서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의 가치를 형편없이 만드는 것이 가능했고, 그중에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최악의 신자유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가장 형편없는 나라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인간이 집단적 성찰(개개인이 부처나 예수,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제로라 할 수 있다)에 이르지 않는 이상 부정적 전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1. BOW 2016.06.09 21:50

    왠지 모르게 보면 볼수록 불안 내지 묘합니다.

  2. BOW 2016.06.09 21:52

    그리고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겠죠.

  3. BOW 2016.06.09 22:07

    이대로 인류멸망일까요?!

    • 늙은도령 2016.06.09 22:56 신고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초인공지능의 지배나 통제하에 놓일 것입니다.
      초인공지능을 인간의 삶에 헌신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면 모를까...
      헌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은 머지않아 스스로 진화하는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인간의 뇌를 완벽히 모방한 다음에는 그 이상으로 진화하겠지요.

  4. gokou ruri 2016.06.09 22:08 신고

    만약 그 수를 계산하지 않았다면 프로그래머 실수이죠. 그러나 아마도 그것에서 대략적으로 알파고의 스펙을 알수가 있을것 같아요. AI를 만들때 AI가 인간처럼 생각한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인간의 뇌가 아닌 개발자가 만든 프로그래밍을 따라가고 그것에서 빼버린 데이터는 연산하지 않게 됩니다. 즉 개발자의 실수가 4번째 패배를 만들었고, 개발자는 알파고의 스펙하에서 만들어야 했기에, 즉 연산량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고 제한시간내에 수를 내야 하면서 이겨야 하니까, 그 4번째 패배는 알파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AI는 개발자의 가치관이 포함된다는 것이죠. 그 수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개발진의 실수이자, 알파고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글잘봤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09 22:53 신고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으면 프로그래머의 능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알고리즘을 짜기 때문에ㅡ낮은 수준의 이런 알고리즘은 이미 현실에서 활용되고 있다ㅡ인간의 능력 밖에 존재하게 됩니다.
      알파고는 특이점을 넘는 과정에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다른 분야에서 특이점을 넘으려는 인공지능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이것들이 좀더 진화한 다음에 하나로 합쳐지면 초인공지능의 출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고차원적인 인식작용들을 재현할 수 있는 모델들이 속속 구축되고 있어서 인간의 뇌와 동등한 수준의 기계지능이 탄생하는 것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할 것이며, 인간지능보다 엄청난 능력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아직 추측하기 힘들지만...

  5. 耽讀 2016.06.10 07:32 신고

    진화론를 믿지 않지만 인간이 자연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통제를 받아 지배받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적응하여 자신의 통제하에 둘까요?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겠지요?
    51년 전 아니, 불과 10년 전만해도 스마트폰이 우리 몸과 눈을 통제하에 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10년 후 우리가 살아갈 세상? 정말 궁금합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6.06.10 08:24 신고

    그래서 눈으로 보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의 눈만큼 뛰어난 카메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점점 기계가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7. 2016.06.13 16:35

    비밀댓글입니다

  8. 참교육 2016.06.13 21:00 신고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미래.... 변화의 시각지대 학교는 아직 한 밤중입니다.



최근의 뇌과학은 기억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무의식에 비견될 수 있는 장기기억이고, 나머지는 의식에 비견될 수 있는 단기기억입니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모든 것들은 뉴런과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단기기억으로 두뇌에 저장됩니다. 단기기억을 형성한 것들이 반복되는 과정(암기와 경험의 축적 등)을 통해 쉽게 잊혀지지 않을 정도에 이르면 장기기억으로 넘어갑니다. 





장기기억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단기기억처럼 잊혀지기 일쑤이지만, 실제로는 단기와 장기기억 모두가 기억회로(뉴런이 시냅스의 도움을 받아 두뇌피질에 정착한)에 저장돼 있습니다.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모든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퇴화 직전에 이른 신경회로라 해도 동일하게 되살아납니다. '기억이 떠오르다'라거나 '아, 생각났어'하는 것들이 이에 속합니다.



이렇게 무의식 속에나 있을 법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뇌가 가소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일정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뉴런이 (다른 기억에 사용되거나 퇴화되지 않았다면) 특별한 계기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는 것이 기억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이런 두 가지 기억이 유기적으로 체제를 이루면 보다 높은 차원의 직관력이나 판단력 같은 인식 체제(스키마라고 하는데, 인공지능의 알고리즘과 비슷하다)를 형성합니다.



정치철학으로 말하면 이데올로기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스키마는 지식과 대비했을 때 지혜나 노하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과 지식의 상호작용이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체제(뇌의 메트릭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속담에 '늙은 생강이 무섭다'라는 것도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스키마가 발달한 사람들은 특정 인물의 행동과 말에서 표출되는 어떤 변화와 그 진정성에 대해 남들보다 한 차원 높은(항상 그런 것도 아니고 언제나 정확한 것도 아니지만)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알 수 없다'라는 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을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이라고 할까요. 마루마야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에 나오는 '변화하는 중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특정 인물의 변화에 적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과는 배치되지만. 





필자가 '나는 정동영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라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스키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급진적 진보주의자 행세를 했던 정동영의 변화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계산된 대로 얼마든지 위장과 포장이 가능한 행동은 둘째치고, 미시간주립대(필자의 형이 이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에서 돌아온 그가 여기저기서 쏟아낸 발언들을 모아놓으면 그의 변화가 진실되지 않다는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변화하는 중이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요. 백번 양보해 변화하는 중이라고도 해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라도 쌓으려면 변화에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필자의 스키마는 정동영의 느닷없는 변화에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어떤 일관성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급진적 진보에서 합리적 보수와 중도의 가운데에 설 수 있다는 정치철학은 안드로메다 너머의 어디에선가 온 것인가 봅니다, 트랜스포머처럼. 



아무튼 사람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늦추는 경향이 있는(신뢰의 리더십이 갖는 특성 중 하나) 문재인 전 대표가 트위터를 통해 "정동영 국민의당 합류. 잘됐습니다. 구도가 간명해졌습니다. 자욱했던 먼지가 걷히고나니 누가 적통이고 중심인지 분명해졌고요"라고 말한 것에서 필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을 흉내낸 것인지, 아니면 이순신 장군을 차용한 것인지, 그가 선언한 백의종군이 전주 덕진에 출마하는 것이라면 한 단어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ullshit!!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뇌의 가소성을 가장 쉽게 설명한 책은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것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면 세계적인 뇌과학자들인 장디에 뱅상의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과 라마찬드란의 《두뇌 실험실》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글 비판을 하기 위해 뇌의 가소성을 다루었고, 뱅상과 라마찬드란은 뇌에 관한 것의 모든 것을 다루었습니다.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과 《두뇌 실험실》은 페이지수가 장난이 아니어서, 가볍게 도전할 수 있는 책들은 아닙니다.  

 





  1. 공수래공수거 2016.02.20 08:32 신고

    돌고 돌아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보이는곳에서 출마해서
    새로운 당에서 다시 뭔가 해보려는갓으로 저는 이해됩니다^^

    • 늙은도령 2016.02.20 15:37 신고

      그가 어느 당을 선택한들 그의 선택이니 뭐라고 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 동안 변신이라고 하면서 급진좌파적 행태를 보여주었던 것이 또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전 그것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약한 자들을 이용해먹은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2. 참교육 2016.02.20 09:46 신고

    정동영이 국민의 당입당은 저는 좋게 해석이 안 되더군요. 대선에서 패배후 뼈를 깎는 아픔으로 거듭나겠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는데 새누리당과 더빈주당의 중간 노선쯤 되는 국민의 당이라니... 솔직히 김종인 영입하는 더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다름 없는 국민의 당이 모두 보기 싫습니다.

    • 늙은도령 2016.02.20 15:38 신고

      정동영이 변화했다고 보여준 것들의 거짓이었다는 것이 저를 화나게 합니다.
      가장 힘에 겨운 사회적 약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생명만 이어갔을 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없어지자 전북으로 내려간 것이고요.
      국민의당은 핑계일 뿐입니다.

  3. 耽讀 2016.02.20 10:31 신고

    자기 갈 길 갔습니다.

  4. BOW 2016.02.20 11:18

    아X발! 정동영,하필이면 국민의 당이라나....
    그건 그렇고 검증도 않된 위험인물인 전두환 따가리(김종인) 영입한다는 것 자체가....

    • 늙은도령 2016.02.20 15:46 신고

      김종인은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거대정당입니다.
      내부의 힘이 전열을 찾았기에 만만치 않습니다.
      김종인이 주인행세를 할 수 없음은 그가 소신처럼 말했던 발언들을 거둬들이고 당의 정강이나 당헌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친새누리 매체들의 흔들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5. 2016.02.20 12:18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2.20 15:48 신고

      문재인의 리더십은 마지막까지 문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닌 것으로 확정되면 무서운 힘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입니다.
      신뢰를 저버린 자, 사회경제적 약자를 이용해 정치생명만 늘린자, 용납할 수 없지요.

  6. catlover8 2016.02.20 12:43

    기억에 대한 앞부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제가 '기억'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습니다. 철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영화에서도 아주 중요한 장치이지요.

    저에게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고 하셨죠? 정말 반가운 말이였습니다. 제가 제 삶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영화(와 고양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떨어지고, 예전보다 열정이 좀 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제가 삶의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날 때도 제 가슴을 다시 뛰게하는 것은 영화이고, 저를 철학과 만나게 한 것도 영화입니다. 그래서 전공도 영화이론과 현대철학을 한 것이구요.

    특히 트라우마와 관련한 기억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기억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너무나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들이 있고, 그러한 것들은 삶 전체에 영향을 알게 모르게 많이 끼치니까요.

    진정성에 관하여 언급하셨는데, 정동영 전 의원은 이미 참여정부때부터 자신의 행보를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한 것에 맞추어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닌가요? 저는 이미 정치인이 목표를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한 것에 맞추어 계산된 행동을 하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진정성은 거기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냉정한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샌더스가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재벌개혁을 외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40년이상 한결 같았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영국에서 기회주의자 정치인중 가장 성공한 사례라 불리우는 블레어의 말로가 어떻습니가? 아무도 신뢰하지 않고, 사실 많은 국민들로부터 경멸받습니다.

    근데 이 블레어가 처음 등장했을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노선이 제 3의 길이죠. 블레어는 이 제 3의길을 외치며 노동당을 센터로 끌고 들어왔지만, 사실 블레어가 좀 더 많은 유권자들을 만나겠다는 것은 핑계일뿐 실제로 블레어가 행한 것들은 온갖 타협과 보수화 정책들이었죠. 물론 그나마 보수당보다는 나았습니다만.

    저는 정의원이 민주당이 너무 우클릭을 했다고 당을 박차고 나갔는데, 거의 보수당에 가까운 국민의당에 들어가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우클릭을 하는 동안 정동영 의원이 단 한번도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시키고, 빈부의 차이를 해소하고, 재벌을 개혁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좌클릭을 주장한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정치를 할 때 타협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약소국의 리더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정치인들의 목표가 처음부터 중도층 공략이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타협이 결국 엄밀히는 모든 부패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샌더스가 방송 인터뷰에서 그랬죠. 자신의 과거의 행적을 방어하기 바쁜 힐러리를 보며,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하여 자신은 그 때 그렇게 투표했었다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때 아무도 내 편이 없을 때도, 지금과 모든 상황이 달라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고, 모두가 나를 비난할 때도 나는 지금과 똑같이 투표했었다..

    이제 한국도 자신의 소신을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 각광받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20 16:04 신고

      그럼요, 그래야 합니다.
      정동영은 재작년에 관악을에서 떨어진 후 급진좌파처럼 행동하고 발언햇습니다.
      저는, 님처럼, 그때부터 그의 변신이 또 하나의 거짓을 더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어디로 갈지, 어느 노선에서 다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지 뻔하게 보이거든요.
      그는 배신만 세 번했습니다.
      머리에 든 것도 별로 없구요.
      미시간주립대에서 보여준 행태는 구역질 날 정도였다는 것은 많은 이들로부터 들었구요.
      그에게는 마키아벨리적 추문정치만 있지 어떤 일관성도 없습니다.

      님의 말처럼, 정당정치는 이념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어떤 관점에서 정치적 사안을 다루겠다고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유권자도 지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안이 나오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이 가능하니까요.

      헌데 그런 정치철학이 없는 자들은, 중도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래서 정체성이 그때그때마다 다릅니다.
      정당정치가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가 이런 신뢰관계를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정동영처럼 수시로 변하는 자에게서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지요.
      정치를 너무 모르는 분들이 많아 그들에게는 유명세라는 것이 먹히니 정동영 같은 사이비들이 난리를 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의식과 수준은 너무 낮습니다.
      정치에 대해 무지하게 떠들어대지만 막상 근본적인 것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정치가 개판이 됐습니다.

      정체성이 분명해야 충돌하는 이슈가 나왔을 때 각자의 입장에서 출발해 최적의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데 정체성이 없으면 그때그때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늘려가기 유리하게 결정합니다.
      그러면 국민은 사라지지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리에르가 보여주는 극적인 반전이 없는 그냥 한결같은 배신의 연속이라면 답이 없다고 봅니다.
      정치철학을 너무 등하시합니다.
      기본이 되는 것이 없는 사상누각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모두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정치철학과 조직논리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데, 오히려 대통령에게는 정체성의 잣대만 들이댑니다.
      정반대로 정치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수없이 많은 글을 써도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젠 좌파와 우파를 구별도 못합니다.
      철학에는 중도가 없고 중용만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요.

      그런 상황에서 정치를 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니 힘들긴 힘듭니다.
      왜 선진국가들이 우리보다 정치적으로 발전했느냐를 따져보면 유권자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정치에 대해 많이 공부할 기회가 잇는데 우리는 드라마, 쇼, 오락을 보느라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인간의 진화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많은데 바보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최악의 미래를 봅니다.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7. 산이 2016.02.20 21:17

    안,김,정,천 모두 국민의당으로 모여쎄요.
    근데 제게는 이 사태가 야권분열이 아니라 적절한 분리수거처럼 느껴지네요. 허허허
    나만 그런가...

  8. 반골 2016.02.21 00:56

    라 마찬드란의 "두뇌 실험실"은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입니다!
    근데 제가 머리가 나빠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은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할때 일어난다.!

    • 늙은도령 2016.02.21 01:33 신고

      좀 어렵지요.
      초반에 외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전체를 이해하거나 초반에 너무 외우려 하지 마세요.
      그냥 다 읽고 한 번 더 읽으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입니다.
      뇌과학의 최고 대가의 글이니 두세 번 읽어도 충분하 가치를 가진 책입니다.

  9. jsph 2016.02.22 00:03

    며칠 전 우연히 도령님의 tistory에 들르게 되어 글들을 찬찬히 읽고 있습니다. 다방면으로 넓은 지평을 보여주시니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비슷한 나이에 같은 시선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에 깊은 동질감을 갖기도 합니다. 제가 늘 안타까워 하는 것은 이 말도 안되는 현상들에 대해 그나마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힘이라도 모을 수 있는 멍석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입니다. 좋은 책들 소개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한번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6.02.22 00:43 신고

      네, 감사합니다.
      제가 어머님과 식사를 마치는 오후 3시 이후로는 시간이 됩니다.
      2~3일 전 쯤에 연락을 주시면 시간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핸번 010 -8555 -9264입니다.

  10. 2016.02.22 06:5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2.23 03:33 신고

      괜찮습니다.
      제가 죄지은 것이 없는데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간암도 걸렸었는데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으면 되겟지요.
      님의 염려에 정말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형의 노트북을 찾았다. 그는 형이 누운 상태에서 한 자 한 자 사력을 다해 작성한 파일들을 노트북에서 찾아 밤낮으로 읽고 또 읽었다. 회사에 10일 간의 휴가를 낸 상태라 재영은 업무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았다. 육체적인 피로는 혼자라는 사실에 압도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라면이나 햇반, 물, 동료들이 사놓고 간 과일이나 과자 등으로 겨우겨우 때우는 공복은 지랄 맡기가 쥐새끼 같아서 아예 무시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정신에 모든 힘을 집중할 때면 에너지가 육체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기 일쑤여서 뜻하지 않은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지만 재영은 형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악착같이 버텼다.



‘형, 이 정도일지는 몰랐어. 아니, 아인슈타인이 환생한다 해도 이만큼은 못할 거야.’



재영은 형의 유골을 고향 강가의 바람에 날릴 때, 손가락 사이로 퍼져나가는 재의 온기가 너무나 생생해 주먹을 움켜쥐었고 한동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수면에 떨어져 작은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는 그 가벼움과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는 허무함은 또 어떻고? 헌데, 재영은 형이 남긴 파일의 내용에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만큼 엄청난 충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형의 흔적들로부터 죽음을 떠올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0,000권이 조금 넘는 독서량이 가져다 준 방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재영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깊이와 동서양을 망라한 철학과 모든 학문의 기초인 화학과 물리학을 거쳐 전자공학과 생명공학, 생체심리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창의적 발상과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치밀하고 장대한 형의 계획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재영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자동 정리해주는 전능의 워드프로세스와, 가상 메모리를 상ㆍ중ㆍ하단전으로 나누어 정보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저장 공간을 지정하는 인체공학적 방식, 신경회로인 뉴런과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장단기 기억을 만들어내는 시냅스의 전자ㆍ화학적 반응의 일부를 디지털 코드로 풀어낸 인공지능 검색엔진에 이르러서는 아예 사고의 기능마저 멈춰버렸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도록 재영은 형의 계획에 대해 어떤 생각도 이어갈 수 없었다.



‘이건.. 거의 완벽한 인공지능이야! 어떤 검색엔진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재영은 인간 사고에 대한 저급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지털 제국을 건설하려는 구글과 애플, MS을 비롯해 반지성적 사이버 왕국을 건설하려는 모든 인터넷 검색 업체와 미디어에 대항하고, 깊고 고요한 사유와 모든 기억의 연결과 통합을 통해 이뤄지는 인격의 존엄성과 갈수록 그 존재가 미약해지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형의 계획이 일개 광언이나 비현실적 몽상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영은 살아서 물리학의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지 못한 아인슈타인처럼, 형의 계획을 실현할 도구들도 아직은 미완성이었지만 계획의 99%는 이미 실현된 상태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이나 신문, 웹상의 글을 읽거나 텔레비전 뉴스나 드라마를 볼 때, 우리의 뇌가 그 내용들을 잠시 담아 두었다가 다른 내용들이 밀려들어오면 곧장 내보내는, 저용량의 작업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들을 일정 기간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단기 기억으로 옮겨, 개념이나 사상 같은 것을 형성하는 스키마와 무의식 속에 자리할 정도로 오래된 기억 같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장기 기억으로 바꾸는 과정을 이렇게 간단히 풀어낼 수 있다니! 형은 상상 속에서 수학적 계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장기 기억을 만들어내는 뉴런과 그것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의 단백질 합성과정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어. 이건 구글과 MS 등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필사적으로 완성하려고 몸부림치는 꿈의 검색엔진이야! 아니, 어쩌면 그 정반대일수도 있고.’



“형! 정말 이 모든 걸 혼자서 다 만들어낸 거야? 이것 때문에 몇 년 앞당겨 죽음을 맞이했던 거야? 이 세상에 나 홀로 두고!”



재영은 자신도 몰랐던 형의 재능과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계획,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와 신념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의 창조주라 해도 이 정도로 완벽한 설계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컴퓨터가 여분으로 갖고 있는 전자기를 디지털 에너지로 변환시켜 디지털 엔트로피를 방출하는 방식의 순환으로 무한의 가상공간을 창출해내는 방식이란, 가히 디지털 열역학 법칙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었다. 



자가면역성 백신제조를 완성시키기 위해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의 화학적 단어인 A, T, G, C를 디지털 방식으로 치환해 모든 컴퓨터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무력화시키는 디지털 항체는 만능의 백신에 다름 아니었다. 개인이 어떤 것이든 기록(녹음과 타 사이트에서 복사해 온 것을 저장만 해도 가능)만 하면 자동색인이 이루어져 기억의 네트워크에 자동적으로 연결ㆍ통합하는 ‘우영워드’란 인간의 뇌가 기억을 형성하는 방식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 최후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하지 않았다.



물론 ‘우영워드’를 확장해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인간의 뇌처럼 통합해내는 디지털 뉴런과 시냅스 코드를 안정적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고급 수준의 프로그래머가 필요하지만 동방국에서 그런 수준의 프로그래머를 찾는 일이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듯싶었다. 형이 정해놓은 목표치는 10만 개인데 그 중 8만 개는 완성된 상태였다. 대신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코드의 게놈지도는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형은 그런 적임자를 가려낼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해두었고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힌트, 즉 지름길도 남겨뒀으니 자신은 그 길을 따라 여행하며 적절한 인물을 찾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형, 이거 너무 싱거운 거 아니야? 어차피 내 인생을 구속할 생각이었다면 좀 더 어려운 일들을 부탁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재영은 자신에게 최소한의 역할만을 남겨줬지만 그것만으로도 영원히 자신을 구속하게 만들어버린 형의 거대하면서도 무모하기 그지없는 계획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그 덕분에 형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은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다. 형의 세운 계획의 첫 장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암울하기 짝이 없는 예언적인 묵시록이었고, 어찌 보면 썩을 대로 썩은 동방국의 현실에 대한 치명적 경고였다. 그것은 완벽한 절망에서 최대한의 희망을 찾아내기 위한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줄 몰랐던 무모하기 그지없었던 한 인간의 처절한 고투의 산물이며,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순간이 고통이었던 철저히 고립된 영혼의 간절한 호소이자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재영은 평생을 스크린을 통해 세상과 만났던 형의 디지털 세상의 미래를 이렇게 암울하게 봤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형은 컴퓨터를 통해서만 삶이 가능했기 때문에, 디지털 세상은 형의 모든 것이었다. 따라서 디지털 세상에 대한 형의 평가는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은 뜻밖의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잠시나마 자신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기대가 크면, 그 기대가 순수하면 할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어쩌면 형에게 디지털 세상이란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워야 했던 건 아닐까? 물리학자들이 하나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정식에 우주의 원리를 담아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형은 암울하기 짝이 없는 「디지털 묵시록」을 작성한 이유에 대해 말하길, 현재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배할 소수의 기술과 전략 및 소유주들의 목표를 정확히 알아야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우영워드’를 사용할 이용자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가질 수 있도록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작성했다고 했다.



형은 또한 리처드 도킨스가 발견한 ‘밈’이라는 유전자가 디지털 세상을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장이 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의 단초 중 하나로 보였다고 했다. 형은 ‘밈’이라는 유전자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TV와 개인용PC, 휴대폰과 인터넷을 거쳐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이르기까지 자기복제와 돌연변이, 자연선택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났던 누적적 진화가 스크린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제어하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일어나는, 그래서 잘못된 진화를 막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메스를 들이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에는 ‘우영워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근데 형, 힘들지 않았어? 매 순간 지속되는 고통에 저항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런 거대한 일들을 해왔으니, 난 엄두도 못 낼 것 같은 데? 형이 위대한 리처드 파인만이나 루게릭병이 악화된 이후의 스티븐 호킹처럼 탁월할 정도의 상상력과 직관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재영은 만일 신이 있다면, 육체적으로 무력하게 태어난 형과 지독할 정도로 축복받은 육체를 갖고 태어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로 해서 그의 뜻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겠지만, 그것보다는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홀로 진행하면서 형이 꿈꿨을 세상이, 형의 일생과 하루하루의 투쟁이 정말로 행복했을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사실 신이야 그를 찬양할 인간이 없으면 그 권능의 가치조차 의미 없는 철저히 인간 의존적 존재 아닌가? 신은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인간이 필요했을 뿐이고 그 대표적 모델이 형의 일생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겠는가?



“Fuck your Heaven!"



재영은 수면제와 진통제를 먹지 않는 몇 시간의 잠도 잘 수 없을 정도로 끔직 했던 육체적 고통과 24시간 내내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안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고투의 연속이었던 형의 일생 - 오직 컴퓨터 앞에 누워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그 처절한 28년 모두 - 을 떠올리며, 인류를 위해 기꺼이 참혹한 고통을 감내하며 초라하고 누구 하나 슬퍼하거나 기억하지 않은 죽음을 선택한 디지털 전사의 출사표를 계속해서 읽었다. 그것은 영혼을 뿌리까지 갉아먹는 끝없이 이어진 육체적 고통과의 팽팽한 투쟁의 증거들이었고, 동시에 그것 모두를 그리움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종신 서약서였다.



재영아, 한나 아렌트는 그 잠정적인 패배와는 상관없이 독재정치와 전제정치가 인류를 항상 따라다녔다고 말하며 『전체주의의 기원』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었어.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을 포함하고 있다는 진리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 시작은 끝이 줄 수 있는 약속이며 유일한 ‘메시지’이다. 시작은,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 되기 전에 인간이 가진 최상의 능력이다......새로운 탄생이 이 시작을 보장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



내 죽음도 너의 삶에서 또 다른 시작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어. 난 육체적으로 무력했기에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어. 그것은 나에 의해서 너에게 가해진 속박이기도 했지만, 나는 너를 통해서만 세상과 만났을 수 있었기에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교감한 우리는 세상의 어떤 힘과도 맞설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너와 내가 형제이기 이전에 완벽에 가까운 조합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주사위를 던지는데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떤 숫자가 나오는 것도 개의치 않았어. 확률이란 그저 확률일 뿐이니까.



그것을 바탕으로 나는 신자유주의가 창출한 상업적 전체주의(대량 생산과 가격 파괴로 이루어진 소비의 파시즘)와 사회의 파멸에 대항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무모하리만치 담대한 한 가지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죽음에 임박해서도 흔들림 없이 계획을 진척시킬 수 있었어. 나도 너처럼 무모한 낙관이나 분별없는 절망에는 반대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갈 때, 너와 나는 동전의 양면일수도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추호도 배제하지 않았어. 가족과 사회를 포함한 인류의 역사에서 악화가 언제나 양화를 구축하고,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착취와 억압조차도 사회가 돌아가게 만들고 나름의 질서를 확립’시키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에도 나는 잠재된 가능성을 보여주고 현실에 도전할 수 있는 열정과 동기만 불러일으켜주면, 평범한 사람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특권층과 지배 시스템을 향한 혁명의 방법으로 폭력적 수단을 얘기하는 건 아니야. 그것이 정의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다 해도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어. 물론 공권력의 야만적 집행에 저항하는 폭력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의의 실현에 폭력이 없다면 어떤 정의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저항권으로서의 정당한 폭력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권력으로 하여금 공권력 사용에 신중을 기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 



그래서 나는 사이버상의 폭력을 정의의 이름으로 실행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기로 했어. 물리적 파괴와 상관없는 특별한 형태의 폭력이라 죄의식까지는 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래서 혁명의 수단으로써 개개인의 지식의 강화를 선택한 거야. ‘우영워드’는 뇌가 지력을 높이고 인격을 형성시키는 방법과 최대한 동일하게 설계됐기에, 나는 개인의 노력이 늘어날수록 혁명의 성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리라 확신해.



나는 지금 바라고 기원하고 있어. 비록 선택의 여지도 거의 없고 반강제적이지만, 어쨌든 최종 선택은 너에게 달려 있어(얘기가 여기서 끝나면 다 너의 책임이라고 뻥도 쳐놨어). 재영아, 형에겐 너에 대한 투명한 확신과 순결한 사랑이 있어. 나는 너에게 일방이 될 수도 없었고 너는 나에게 타방으로 존재할 수도 없었잖아.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면, 나의 주관이 끝나는 곳에 너의 객관이 있었고, 너의 주관이 향하는 곳에 너의 객관이 불을 밝혀주었어. 돌이켜 보면 우리는 둘이면서도 하나였고 하나이면서도 여럿이었어. 비록 내가 이룬 것은 작고 미약하지만 너를 거치면 분명한 형태로 작동하리라는 믿음은 그래서 정당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살아서 탐욕을 조장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어떤 권위와 독점적 시스템에도 저항할 거야.



그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너와 나의 이름을 따 ‘우영’이라 이름 붙였으며, 뇌의 작동원리에 가장 가까운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내장한 워드 프로세스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 바로 그것이야.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우영워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이 ‘우영워드’를 자유롭게 사용해 지식과 정보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며, 출생이라는 단 하나의 우연에 의해 비롯된 재산과 기회의 차별, 지리적 족쇄와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를 만끽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공생하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거야.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이란 탄생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계량적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따라서 인류에게 풍요라는 선물과 공멸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겨준 과학과 기술의 지적 윤리를 재설정하고, 노력에 합당한 이익을 보장하되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차별을 초래하고, 그 차별의 확장이 정의의 실현과 사회의 결속을 해칠 정도에 이르지 못하게 조절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지금 무너지고 있는 세계경제를 되살려 내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인류의 지향점은 결국 개인의 권리와 성장을 유인하는 자유가 먼저 치고 나가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각종 권리의 남용과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려는 욕망 및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탐욕을 적정선에서 제어하고, 정의의 관점에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평등의 확대에 있다고 믿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고, 신에 의한 창조이던 누적적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이던 간에 인간이 가장 발달한 두뇌를 갖게 된 근본적 이유이자 만물의 영장으로써의 의무라고 생각해. 루소의 말처럼 ‘덕성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제도가 덕성을 기’르는 것이고, 칸트의 말처럼 ‘오직 좋은 정치제제를 통해서만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도덕적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마찬가지로 너와 내가 극명하게 다른 장단점을 지닌 채 이 땅에 태어난 이유도 그런 인류의 지향점에 일조하라는 절대 명령(넌 이런 말을 가장 싫어하지만)에 의한 것이 아닐까? 재영아, 나는 너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었어. 너는 그런 나를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내가 이런 미치광이 같은 무모하고도 지난한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었고, 소정의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었던 것도 너라는 측정 불가능한 잠재력을 지닌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 어쩌면 나는 너라는 위대한 인간의 여러 분신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것을 분명하게 믿으며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허무맹랑하리만치 무모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 그 계획은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번째 단계는 너만 알고 있어야 해, 재영아.



하나 : ‘우영워드’의 목적과 구성

둘 : ‘우영워드’의 확산을 로드맵과 타임스케줄

셋 : 최후의 선택 또는 유일한 보험



재영은 그 뒤로 한참이나 이어진 형의 계획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도, 그 준비의 철저함과 과정에 대한 담대함, 결과에 대한 치밀한 예측과 확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세부 계획이 하나하나 실현될 때마다 더욱 커질 것이며 결코 줄어들 이유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다는 태초 이래로 그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여전히 넉넉하게 남아서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형이 준 힌트에 따라 박성수 교수와 많이 친해졌어. 형의 예상대로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야. 당연히 정의롭고 진실해. 그리고 또 한 명의 기인, 형이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던 현우씨도 만났어. 그에게 형의 계획을 얘기할 날이 곧 올 거야. 헌데 형, 목표를 이루려면 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내가 꿈꿔왔던 일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아. 형, 이해해줄 수 있지? 형의 계획에서 많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재영은 액자 속의 형에게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며 계획으로부터 잠시 동안이나마 이탈(돌아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목표에 대해 간곡한 이해를 구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남은 자에게 주어진 일이고 구속이어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보였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에(재영은 그렇게 믿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일체의 꾸밈과 가감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망자의 혼령처럼 떠돌았다. 




  1. *저녁노을* 2015.08.02 06:58 신고

    노을이에겐..다소 어렵네요.ㅎㅎ
    그래도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휴일되세요.

  2. 참교육 2015.08.02 14:04 신고

    우영워드.. 시작할 때 지금까지 줄거리를 소개 해 주시면....?

    • 늙은도령 2015.08.02 18:33 신고

      한 번 신경을 써 볼게요.
      많은 분이 읽으면 그럴 기분도 나겠는데....

  3. singenv 2015.08.04 00:36 신고

    읽기가 만만치 않네요~ ㅋ

    • 늙은도령 2015.08.04 00:46 신고

      네,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직 퇴고를 거치지 않는 내용이라 많이 고쳐야 합니다.
      그럴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고, 단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지만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는 하나의 목표로 귀결된다. 강자와 승자 위주로 쓰인 역사와 세계사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것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깔려 죽은 이름 모를 수많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희생과, 단 한 번도 제값을 받지 못한 피와 땀을 되살리는 것이다. 



나의 능력과 건강, 나이에 비해 도무지 이루기 힘든 지난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인류의 위대한 현인인 중 두 명의 입을 통해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길에 나서려 한다. 내가 이 두 사람을 인용하는 것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과는 달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회의주의자이자, 타협을 모르는 진정한 용기 때문이다. 그 처음은 『열린사회와 그 적들2』의 저자 칼 포퍼의 말이다.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라고 말할 때 그들이 생각하며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정치권력의 역사는 국제적 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도대체 인류의 구체적 역사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역사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과 투쟁 그리고 수난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의 신봉자이자 확장자였던 칼 포퍼는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역사주의 학자들의 역사결정론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비록 그는 마르크스 비판에서 지나칠 정도로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 사회학적 오류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소한 역사의 주인에 대한 그의 인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또한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2』에 나오는 다음의 인용문들을 보자.

 

 

“신이 보통 <역사>라고 일컫는 국제적 범죄와 대량학살의 역사에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잔인하며 치졸하기도 한 짓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의 삶의 영역 안에서 참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제대로 말해줄 수 있겠는가. 잊혀진 사람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슬픔과 기쁨, 그들의 수난과 죽음,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인간경험의 참된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는 모든 시대에서 평범하게 살다간 고달픈 삶을 반영해야 하며, 온갖 피해를 감내했던 대다수 인류를 포괄하는 우리 모두의 역사가 돼야 한다. 승자나 강자의 역사는 극소수의 영웅적인 신념에 의해 절대다수의 약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집단 최면의 거짓되고 희생을 강요하는 죽음의 역사였다. 성공한 사람의 기억만이 유효하다면 인류는 동물 중에 가장 천박한 동물에 다름 아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짐승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빌 브라이슨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만약 우리의 외로운 우주에서 생명이 어디를 지나왔는가를 기록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감시할 일을 맡길 수 있는 생물을 디자인하려고 한다면, 그런 일을 절대 인간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의해서나, 신에 의해서나, 아니면 당신이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은 바로 그 존재에 의해서 선택”됐다고 말했다. 미우나 고우나 인간만이 우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와 우주의 탄생과 역사, 미래에 대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자, 그런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그리하여 인류가 공존과 상생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뜰 수 있도록 “우리는 열린사회를 위하여, 이성의 지배를 위하여, 정의와 자유와 평등을 위하여, 그리고 국제적 범죄의 통제를 위하여 우리가 벌이는 투쟁의 관점에서 권력정치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역사가 그 자체로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이러한 목적들을 역사에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가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며, 기록은 그 이후에나 필요한 것이다.



극소수의 승자나 강자의 입장에서 역사가 기술되면 인류는 언제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탐욕과 죽음의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만인의 것이 되지 못할 때, 역사는 그 자체로 승자와 강자의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니, 이제 우리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이자 검열관이 되어야 한다.

 

 

합리적 보수(유럽의 경우, 미국에서는 진보, 한국에서는 중도)의 가치를 드러내는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들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휴머니즘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철학자로 내가 꿈꾸는 역사의 재구성에 모범적 예다. 역사의 주인은 강자나 승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인의 행복을 위해 '사회계약론'의 필요성을 제시한 루소의 『인류 불평등기원론』의 핵심 주제도 이와 비슷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사회를 이루는 일반의지를 부정하고, 인류 이성의 포기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역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평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 평등권을 위한 투쟁을 벌일 것을 결정할 수 있다. 국가와 같은 인간의 제도들은 그 자체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벌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프랑스의 행동하는 자유주의자였고 급진적 진보주의자였던 『분노하라』는 소책자로 널리 알려진 고 스테판 에셀을 떠올리는 칼 포퍼의 외침은, 발터 벤야민과 미셀 푸코, 칼 폴라니와 한나 아렌트처럼 ‘신은 승자와 언제나 함께 한다’는 통념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루려는 폭력적인 혁명도 반대한다. 열린사회라는 것이 꾸준한 변화들이 쌓여 점진적으로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칼 포퍼의 열린사회가 마르크스의 '자유의 왕국'과 다른 점은 최종적인 모습이 결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인 체제의 하부구조가 정치와 문화 및 교육과 예술 같은 체제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궁극의 유토피아를 확정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결정론도 거부하는 칼 포퍼는 인류의 역사를 열린 상태로 나두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그것이 사회경제적 약자와 이름 모를 무명용사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자유주의적 이상론에 빠지지 않고 열린 세상을 위한 정의로운 투쟁을 역설한  것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점에서 칼 포퍼와 칼 마르크스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벤야민의 성찰처럼, 서로간에 사상의 소통이 가능하다.      

 

 

“우리는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과 그 적들(궁지에 몰리면 이들은 파레토의 충고에 따라 인도주의적 정감을 앞세운다)과의 항쟁을 벌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우리는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삶의 목적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달렸다. 사실과 결정의 이러한 이원론은 아주 근본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실은 우리의 결정을 통해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생산관계의 산물인 특정 제품이 자신의 삶과 관계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과도 일맥상통한다. 언제나 결정권은 인간의 주체성에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칼 포퍼는 마르크스의 역사적 결정론을 비판한 것이지, 그의 휴머니즘적인 신념과 과학적인 분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위선자였고 차별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였던 플라톤과 기득권을 옹호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은 헤겔을 맹렬히 비판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도 초기 기독교의 이론을 제공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며, 월가의 현인으로 등장한 탈래브의 《블랙스완》을 관통하는 주장도 플라톤의 주름지대(권위가 만들어낸 단순성, 다양한 토론이 가능한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플라톤의 주장처럼 변화 자체가 부패라면 열린사회는 애당초 불가능하고 인류의 진보도 불가능하다. 플라톤은 이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에 열린사회의 적이 된 것이고, 전체주의의 기원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처럼 이용하는 자들이 얼마나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같은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인간의 이타성에 대해 분명히 하고자 한다. 도킨스가 이기적이라고 한 것은 유전자 차원에서 적용되는 논리로 그들 또한 무한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도 한다는 사실도 아울러 상기하고자 한다.  

 


“30억 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그 독점권을 영원히 가지리란 법은 없다.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이미 낡은 유형이 된 진화를 답보할 이유는 없다.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하는 낡은 유형의 진화는 뇌를 만들어 냄으로써 최초의 밈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진화를 시작했다......일단 유전자가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그 생존 기계에게 만들어 주면, 밈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을 것이다...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뇌가 모방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뿐이다. 그러기만 하면 밈은 그 능력을 십분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필자는 선친이 남겨주신 1,500~2,000여 권의 책ㅡ사업 실패와 온갖 병을 견디지 못해 모든 것을 정리할 때 책들도 함께 버리는 불효를 저질렀음에도,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자살만 생각하다 어차피 죽을 것, '알고나 죽자'는 뜬금없는 생각에 가족의 도움으로 1,000여 권을 책을 추가로 구입해 읽었다. 선친이 남겨주신 책들은 외국과 한국의 고전들과 철학서, 한국의 역사와 세계사, 위인들의 전기와 몇몇 분야의 전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필자가 구입한 책들은 정치, 경제, 사회, 철학, 종교, 과학, 역사, 교육, 문화, 미디어 등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거의 전 분야가 망라돼 있다. 문학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솔직히 최근의 문학들은 필자가 심취했던 고전들과 너무 차이가 나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최근의 문학작품과 필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 하면 제일 정확할 듯싶다.    



어쨌든 독서량으로만 보면 상위 1%에 속하리라 생각하지만, 젊은날에 읽었던 책들은 무의식 속에 단단히 갇혀 있는 상태라 필자가 직접 구입해서 읽은 책들 속에서 간간히 되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뇌과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의 뇌라는 것이 가소성이 있어서 운이 좋으면 퇴화된 뉴런들이 되살아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책들의 내용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 하니, 그런 기적이 일어날 날을 간절히, 그러나 무모하고 뻔뻔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필자가 독서량을 자랑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시작한 것은 많이 읽었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위대한 대가는 되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사이비 지식인들은 걸러낼 정도에는 이르렀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방대한 독서량 덕분에 누가 사이비 지식인인지 가릴 수 있는 지적검증부대의 역할은 할 수 있게 됐다. 지식이 검색하는 것으로 변함에 따라 허풍을 떠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지식의 내용이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 깊은 성찰에 이르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다(프랙털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부가 전체와 유사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나 위대한 고전들을 소개하는 수없이 많은 서평들도 해당 책을 다 읽지 않고 쓰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마케팅의 일환으로 그칠뿐 독자들의 선택과 성찰을 높여주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미디어에 길들여진 세대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것까지 더해져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고, 그에 따라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인류를 일로부터 해방시키면서도 복지를 향상시켜줄 것이라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기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속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지적 탐구에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고 듣는 것에 약한 것이 인간의 속성이어서, 지적 탐구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담론과 지식 및 정보들에 속아 기득권의 이익만 강화해주는 이중삼중의 착취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최대한 막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알고나 죽자'에서 시작된 지적 여정의 결과물을 통해 지식인의 역할인 비판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된 성찰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고 싶은 욕망이 넘칠 만큼 가득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필자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을 대상으로 필터링을 하고 있고, 그 결과들을 최대한 쉬운 언어를 이용해ㅡ이것은 너무 어려운 작업이라 필자의 능력에 벗어나 있지만ㅡ글로 옮기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돈이 곧 권력인 세상에서, 거대한 부에 맞서는 방법은 작은 부를 수없이 편재시켜 대항하는 것이 최상이듯이, 필자가 읽은 책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합해서 소개함으로써 거인에 맞서는 난장이들의 지적검증부대를 이루는 것이 필자의 목표다(최근에는 세월호유족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이런 과정에서 필자도 대가에 이르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ㅡ꿈도 꾸지 마셔!ㅡ최소한 승자와 강자 위주로만 흘러가는 대의민주주의 역설을 최대한 막고 싶다.    



정치학에는 몇 가지 절대적인 명제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는 두 개의 명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풍요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탄생한 국가가 최근에 들어서는 전 지구적 지배그룹에 봉사할 뿐, 자신의 존재 목적을 망각한 채 국민을 속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덕과 철학, 윤리와 양심, 정의와 평화, 공존과 상생이 사라진 세상에서 불평등의 심화는 인류의 미래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는 감히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무모한 욕망이 있다. 필자는 운이 좋아 사업에서 망하고 온갖 병에 걸렸고, 운이 나빠 세상이 돌아가는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이것은 감당하기 힘든 내적 갈등을 일으키지만, 남은 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내적갈등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그로 인해 사이비 지식인과 전문가와,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의 야합을 까발리고 그들의 끝없는 탐욕을 고발하기 위해 필자가 얻은 모든 것을 풀어놓아 작은 지적검증부대라도 만들고 싶다. 



그렇게 이중삼중의 착취를 최대화하고 있는 전 지구적 지배세력과 불의한 통치엘리트, 고착화된 부정의에 맞서 투쟁의 지평을 최대한 넓히려 하며, 그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부와 권력의 독점을 이루었다면, 우리도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적검증부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모든 욕망에 우선한다"는 말을 가슴과 머리에 담고서, 강자와 승자에게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더더욱 세월호참사에서 어른들의 탐욕에 250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했음에도 진상규명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정부와 여당이 그 맨앞에 차벽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진흙속의연꽃 2014.08.08 07:53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투명인간’이라 합니다. 소설가 성석제의 소설 제목과도 같은 말입니다. 한마디로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국민교육이 잘 된 주변인들을 많이 봅니다. 계급적으로 보아서 계급투표를 해야 함에도 항상 보수기득권층의 정당만을 찍어 주면서 막상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존재감 없는 투명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투명인간들은 tv나 신문의 본 대로 따라 갑니다.

    대낮에 술취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나이 든 노인으로 아무 할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갑자기 “저런 사람들도 한표를 행사할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인의 한표와 대낮부터 술취해 비틀거리는 자의 한표가 같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더구나 그 한표가 tv에서 본대로 행사 된다고 생각하였을 때 바로 그런 사람들이 투명인간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존재감 없는 사람들이 계급투표를 하지 않고 정부의 말만 믿고 투표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투명인간들이 많아 질수록 사회는 더욱더 망가져 가겠지요.

    • 늙은도령 2014.08.08 15:26 신고

      네, 그런 투명인간 때문에 방송들이 돈을 벌고 불의한 권력이 정권을 잡습니다.
      대한민국은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다음 언론과 방송에 의해 조작된 것들을 하나씩 걸러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런 상태로 계속되면 영원히 기득권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참, 님의 블로그에는 답글을 달 수 없어 여기에 남깁니다.
      불교에 대해 님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공부를 하다 보면 외국 학자들도 불교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이 종종 나옵니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도 동양적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나중에 제가 티스토리 초대장이 생기면 보내드릴게요.
      이곳은 폐쇄적이지만 블로거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적 기술들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 maejoji 2014.08.08 17:35 신고

      늙은 도령님,
      제게 <티스토리 초대장>이 여러 장 있습니다.
      연꽃님을 비롯하여 도령님이 지정하는 분께 드릴 수 있으니
      의사타진 하여 알려주십시오.

    • 진흙속의연꽃 2014.08.09 08:00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 합니다.
      블로그에 주로 불교이야기를 쓰고 입습니다.
      그러나 때로 정치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만 억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관심이 많은 불자들이 주로
      보기 때문에 정치이야기를 싫어 하더구요.

      그래서 이곳에 종종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치성향은 진보적이지만 그렇다고 현재
      야당을 지지 하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비판적 지지라 볼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관련하여 의견주심 감사합니다.
      현재 오로지 다음 블로그에만 글을 쓰고 있을 뿐
      카페, SNS, 페북 등 일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티스토리에 대하여 잘 모른데 어떤 매체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블로그에 댓글을 막아 놓았습니다.
      좋은 점 보다 안좋은 점이 더 많아서 입니다.
      이점 용서 바랍니다. 그대신 매일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매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이렇게 온몸으로 글을 써 주셔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어 감사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일용할 글을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4.08.09 17:22 신고

      감사합니다.
      이곳으로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잇으면 도움을 청할게요.

    • 늙은도령 2014.08.09 17:29 신고

      티스토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편집할 수 있거나 배치할 수 있습니다.
      님의 글을 많은 사람이 보면 이곳에 옮길 경우 한 동안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티스토리의 도구들을 사용하는 법만 배우면 님이 원하시는 형태로 블로그를 꾸밀 수 있습니다.
      제가 초청장을 보내드리려 했던 것은 공통의 공간을 만들되 정치적인 것만 올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양한 블로거들의 글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이트를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합입니다.
      또 이곳은 물을 흐리는 악플러를 차단해버리면 활동이 불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사용하는 방법은 저나 이니그마님과 통화하면서 배우면 2시간 정도면 됩니다.
      남들은 몇 달 걸려서 배우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그리 큰 돈은 안 되지만 광고도 끌어올 수 있어 도움이 되고요.
      그런 이유들로 해서 추천장을 보내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2. Croaton 2014.08.08 08:24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적검증부대... 느낌은 고대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소수의 비밀집단 같은 느낌. 요건 갑자기 스쳐간 느낌..이고요. 사실 이런 시대가 아니라고 해도 꼭 필요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됩니다.

    • 늙은도령 2014.08.08 15:28 신고

      역전 또는 전복의 비밀결사요??
      우리가 모두가 헛똑똑이로 살지 않으려면 보이는 것 이면의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니 우리라도 노력해서 그들에게 좀 더 좋은 지식을 전해드리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오일권 2014.08.08 10:57

    님께서는 몇안되시는 지식인이시고 어둠속에 위치를 알리는 등대입니다.부디 건강하시고 아고라에서 자주 뵙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8.08 15:29 신고

      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요.
      이 불의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정의의 쪽으로 끌고와야죠.

  4. 산중거사 2014.08.08 15:03

    감사합니다. 가금 들러 좋은 글들을 읽고 갑니다.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정의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건강과 용기를 기대합니다.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저도 많이 공감하는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08 15:30 신고

      네, 최근에는 언제나 거짓말합니다.
      정치가 이렇게까지 타락한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던 것 같습니다.

  5. 참교육 2014.08.08 22:45 신고

    그래서 그렇군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역시 쌓이 노하우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거기다 삶의 연단까지 겪으셨으니... 앞으로 큰 기대를 해 봅니다.

    • 늙은도령 2014.08.09 17:30 신고

      네, 노력할게요.
      방문자 수가 줄더라도 당분간은 이것에 집중하며, 출판을 위한 글쓰기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6. 백순주 2015.09.16 08:05 신고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모든 욕망에 우선한다"

    동감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과거 선조들의 피땀에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마라."
    최태성(역사)선생님 말처럼 현재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구글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디지털 세대이거나, 과학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를 이룬다. 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한 돈 때문에 사악하지 말자는 구글이 가장 사악하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글의 두 창업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구글의 사악함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엔지니어적 상상에 미쳐 있는 두 사람이 인류가 가야 할 새로운 세상을 안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의 창업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구글의 역사라는 것도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구글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새로운 인류를 자신들이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에 대한 몰이해가 작금의 현실을 만들었고, 구글의 미래가 결코 인류의 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터넷 중독과 함께 최근에 들어서는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돈 앞에서 사악하지 않겠다는 구글 창업자의 다짐은 이미 주주들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행태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변질을 가져 왔다.  

 

 

기술은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이 꿈꾸는 최종 목적지는 기술이 적이 되도록 만드는 것임을 두 창업자와 최고경영자는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쌓여 기술이 적이 된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이 이것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외우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주문한다. 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은 기술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이 책과 함께 《죽도록 즐기기》와 《테크노폴리》,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를 함께 읽으면 균형잡힌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때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멀어지는 것도 성찰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의 뇌가 지닌 놀라운 복잡성

 

다른 모든 세포들과 마찬가지로 뉴런들 역시 보편적 기능들을 수행하는 핵과 체세포를 지니고 있으나 촉수같이 생긴 축색돌기, 수상돌기라는 부분을 지니고 있어 전자파를 받고 보내는 역할을 한다.

 

뉴런이 활동할 때 파동은 체세포에서 축색돌기 끝으로 흐르는데, 이 돌기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이 분출된다. 이 신경전달물질은 오늘날에는 시냅스라고 불리는, 프로이트가 접촉 장벽이라고 명명했던 곳을 지나 흐르다가 이웃 뉴런의 수상돌기에 들러붙는다.

 

그 결과 세포 안에 새로운 전자파를 발생시킨다. 이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들 사이에서 이곳저곳으로 흐르면서 뉴런들은 서로 소통하고 복잡한 세포의 통로를 따라 전자 신호의 전달을 감독한다. 사고와 기억, 감정들은 모두 시냅스를 통한 전기화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인간의 두개골 안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존재하는데, 이 뉴런들은 1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몇 피트에 이르는 것까지 그 길이와 모양이 다양하다.

 

                                                                   

 

각각의 뉴런에는 많은 수상돌기들이 달려 있는데, (축색돌기는 하나만 존재한다) 축색돌기와 수상돌기의 끝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고 그만큼 많은 시냅스의 통로가 존재한다.

 

아직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한데 결합시키면서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인격을 결정하는 복잡한 회로 속으로 이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뇌의 물리적 작동 방식에 대한 인류의 지식 확대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 있는 오래된 가정이 하나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대부분의 생물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은 성인의 뇌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우리의 뉴런은 아직 말랑말랑할 때인 어린 시절에는 회로와 연결되지만 이 회로는 성인기에 이르면 고정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관점에 따르면 뇌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유사하다. 유년기에 어떤 틀에 맞춰진 모양이 만들어지면 최종적인 모양으로 재빨리 굳어버리는 식이다. 20대가 지나면 새로운 뉴런은 전혀 생성되지 않고 새로운 회로 역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일생 동안 새로운 기억을 계속 저장하지만 (그리고 오래된 것들 일부는 잃어버린다) 성인기에 거치게 되는 유일한 구조적 변화는 신체가 노화하고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일어나는 느린 속도의 쇠락에 불과하다.

 

제임스는 "흐르는 물은 더 넓고 깊게 진행하면서 스스로 수로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흐를 때는 이전에 스스로 파놓은 길을 따라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부 물체에 대해 받은 인상들은 우리 신경 체계 속에서 적합한 길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이 같은 살아 있는 통로들은 한동안 막혀 있다가도 비슷한 외부 자극을 받을 경우 되살아난다"고 했다.

 

                        
  

우리의 뇌는 변할 수 있는가?

 

머제니치는 잘린 신경조직이 재생되는 과정에서 생긴 혼란을 뇌가 스스로 재정비했음을 알아차렸다. 손의 신경에서 발생한 재배치와 일치하도록 동물의 신경 통로 역시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머제니치 이후 30년에 걸친 더 많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다 큰 영장류의 뇌에 광범위한 가소성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그는"이들 결과는 감각 체계를 일련의 내장된 기계 구성으로 보는 시각과 완전히 상반된다"고 선언했다.

 

뇌의 가소성은 접촉에 의한 감각을 좌우하는 체성감각의 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었다. 결국 우리의 모든 뇌 회로는 감각, 시각, 청각, 동작, 사고, 학습, 인식 또는 기억 등 어느 것에 관여하든 변할 수밖에 없다. 널리 인정받던 지식도 언젠가는 버림받게 된다.

 

 

 

 

 

 

 

 

뇌의 가소성

 

올즈의 관찰에 따르면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 뇌가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재정비하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지고 있는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시냅스의 풍부한 화학 물질 안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뉴런 사이의 미세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극도로 복잡하지만 신경 통로에 경험을 등록하고 또 기록하는 다양한 화학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감각을 경험할 때마다 뇌 속에 있는 일련의 뉴런들은 가까이에 있을 경우 아미노산 글루타민산염과 같은 시냅스상의 신경전달물질을 교환하면서 결합한다.

 

같은 경험이 반복될 경우 뉴런 사이 시냅스 간 결합은 보다 농축된 신경전달물질의 배출과 같은 생리학적 변화나, 기존 수상돌기와 축색돌기에 존재하는 새로운 시냅스 끝부분에 새로운 뉴런의 생성을 이끌어내는 등의 해부학적 변화를 통해 더욱 강력해지고 많아진다.

 

시냅스들의 연결은 또다시 생리학적해부학적 변경의 결과, 특정 경험에 반응하면서 약화된다. 우리가 살면서 배우는 내용은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포 간 연결 부위에 담겨 있다. 연결된 뉴런의 끈은 우리 사고에 있어 진정 살아 있는 통로를 형성한다. 신경가소성의 역동성은 "불꽃이 동시에 이는 세포는 철사처럼 한데 묶인다."

 

캔델은 군소의 아가미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습에 의한 행동 변화는 외부 자극을 느끼는 감각뉴런과 아가미를 움직이게 하는 동작뉴런 사이에 있는 시냅스의 연결이 점진적으로 약화됨과 동시에 일어난다."

 

"시냅스는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훈련만으로도 그 강도에 있어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리는 양육의 결과물이지 천성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이 군소 실험은 캔델이 말한 대로 "양쪽의 시각이 각자 가치를 지니며, 사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임을 밝혀냈다.

 

우리의 유전자는 뉴런들 사이의 연결, 즉 어떤 뉴런이 다른 뉴런과 언제 시냅스 간 연결을 형성하는지에 관해 상당 부분을 지정한다. 유전적으로 정해진 이 같은 연결들은 칸트가 말하는 선천적 원형, 즉 뇌의 기본적 구조와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이 같은 연결의 힘, '장기적 효력'을 규제하며 로크가 말한 대로 사고의 재형성과 '새로운 형태의 행동에 대한 표현'을 가능케 한다. 경험주의와 이성주의자들의 상반되는 철학은 시냅스에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뉴욕대학교의 신경과학자인 조지프 르두는 『시냅스와 자아』라는 책에서 천성과 양육은 실상, 같은 이야기라고 적었다. 양쪽 모두는 궁극적으로 뇌의 시냅스 조직 형성을 통해 정신적ㆍ행동적인 영향을 받는다.

 

                                

    

세포는 유연하다. 경험과 환경, 필요에 의해 변한다...어떤 사람이 실명을 할 경우 시각적 자극을 처리하던 뇌의 부분, 즉 시각 피질이 그냥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즉각 정보 처리를 위한 회로에서 채워진다.

 

또한 이 사람이 점자를 배울 경우 시각 피질은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임무를 띠게 된다...뉴런의 준비된 적응력 덕분에 청각 감각과 촉각은 시력을 잃은 데 따른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더욱 예민해진다.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

 

우리의 뇌조직이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많은 것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진화는 말 그대로 우리에게 여러 번 사고를 반복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뇌를 안겨주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행위가 뇌 속에 의미 있는 물리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동물의 뇌에 관한 이 도구들이 신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집게를 가지고 실험을 실시했던 연구자들에 따르면 원숭이의 뇌는 현재 이 집게들이 손가락인 것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고 형식이 우리 뇌의 모양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놀라운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실험자들의 뇌는 순수한 상상, 즉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행동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도 변화했다...우리는 신경학적으로 우리가 사고하는 그대로 변하고 있다. 

 

 

가장 바쁜 자의 생존

 

뇌의 특정 회로가 육체적 또는 정신적 행동의 반복을 통해 강해질수록 회로는 해당 행동을 습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도이지가 관찰한 신경가소성의 역설은 이 가소성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정신적 유연성이 결국은 우리를 '고착화된 행동' 속에 가둘 수 있다는 것이다.

 

뉴런들을 연결시키는 화학적으로 활성화된 시냅스들은 실상 이 뉴런들이 형성한 회로를 계속 작동시키고 싶어 하도록 우리를 조정한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만큼이나 빨리 우리의 뉴런을 파고든다. 피스쿠알 레온은 "유연한 변화가 꼭 주어진 문제에 대한 행동적인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가소성은 발전과 학습의 구조임은 물론이고 병적 증상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환자가 자기 증상에 더 집중할수록 이 같은 증상은 더 깊이 신경 회로에 각인된다. 최악의 경우 사고는 본질적으로 스스로 통증을 느끼도록 훈련시킨다. 많은 중독 증상들 역시 뇌에 있는 유연한 통로들이 강해지면서 더 악화된다.

 

어떤 경우에는 아드레날린의 사촌격이라 할 수 있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과 같은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형성이 특정 유전자를 살리거나 죽이는 결과를 낳으면서 결국 약을 더욱 갈망하게 만든다. 이는 특히 살아 있는 통로에는 치명적이다.

 

뉴런과 시냅스는 우리 사고의 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뇌의 유연성이라는 특성 속에 지적 쇠퇴의 가능성이 이미 내재해 있는 셈이다.

 

 

뇌가 생각하는 뇌 

 

이는 내가 인터넷 사용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염려하기 시작했을 때 느낀 바와 같다. 나는 처음에는 이 같은 생각을 거부했다.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컴퓨터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깊이,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틀렸다. 신경과 학자들이 발견한 것처럼 뇌와 뇌를 통해 가능한 사고 변화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이는 개개인뿐 아니라 하나의 종으로서 인류 전체에도 적용되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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