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환관들의 폭정은 대한민국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가고 있다. 국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분들은 박근혜의 임기가 끝날 때쯤에는 대한민국이 부도를 피할 수 없거나, 붕괴를 걱정할 만큼 최악에 이를 것이라는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이명박근혜 정부가 이렇게까지 형편없을 줄은 미쳐 몰랐다며, 정부와 사회의 모든 기능이 정지한 작금의 상태를 구한말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4대강공사를 찬성했던 토목건축의 최고 전문가들(필자의 외삼촌은 한국토목학회 회장을 했던 분이고, 삼촌도 세계적인 교통학자로 토목공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 이분들은 공히 4대강공사를 찬성했는데 현재의 결과에 경악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라 나중에 글로 옮기겠다)도 결과가 이렇게까지 처참할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결과가 이러함에도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정부에 분노를 넘어 절망하고 있다. 



자원외교와 방산비리 등까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형 부패들이 드러나자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실제 주역(박정희 정부 당시 과장급이 제일 많다)으로써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분들의 절망은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한계에 도달했다. 대부분 전문관료 출신으로 부총리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 오른 분들조차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민국의 붕괴까지 염려하고 있다. 



초국적기업과 재벌의 대표이사거나 고위임원으로 있는 필자의 형제와 친구, 선후배들도 대놓고 말을 못하지만 IMF 외환위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제현실에 대해 자포자기 직전에 이르렀다. 이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면 최근에 들어서는 1년 단위가 아닌 6개월 단위로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금융과 보험처럼 서비스업종에 근무하는 임원들의 경우 6개월 단위로 계약이 연장되는 계약도 나왔다고 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 그딴 것이란 없었다.  



소위 대한민국의 상위 3%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하위 97%의 경우야 말해야 무엇하랴. 이들과의 대화는 물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책을 읽는 필자의 경우에도 현재의 상황은 최악을 넘어 붕괴 직전에 이른 무정부상태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조가 넘는 분식회계를 한 것을 알고도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을 지원한 한국판 엔론 파동과, 졸속으로 결정한 사드 배치, 대책도 없는 한진해운 물류대란, 녹조라떼 4대강을 방치하는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무능·무책임을 말해주는 것들로 가득한데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인구절벽'에 관한 책들에서 온갖 통계들로 입증한 것처럼, 이명박근혜 8년9개월 동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발생했던 국가와 사회, 지역과 가족, 개인의 붕괴 현상들이 거의 다 일어났다. 우리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기초가 튼튼한 일본보다 대한민국의 퇴행속도는 무려 2배 이상이나 빨랐으니 그 퇴행과 몰락의 총량이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한민국의 붕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좀 더 많이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사람들일수록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절망의 강도가 크다. 이명박 정부에게 철저하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1960~70년대의 유신독재 망령에 사로잡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붕괴를 이끌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폭정이 3년9개월 동안 이어지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반전의 기회를 잡을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헌데 말이다,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자살만 꿈꾸다가 '알고나 죽자'며 바닥에서 다시 출발한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바닥을 치기 전에는 두려움과 공포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탈출구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이제는 죽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때, 두려움과 공포는 실존적 체념으로 변한다



실존적 체념은 단순한 무기력과 무위에 빠지는 것 아니라 삶을 내려놓은 것이다. 삶의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빌어먹을 희망이나 터무니없는 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삶을 내려놓은 것, 희망과 꿈을 접어둔 채 악착같이 외면해왔던 압도적인 절망과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실존적 체념은 죽음을 진지하게 대면함으로써 자신의 현실과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리드리히 빌헬름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히브리인 예수는 선과 정의감에 대한 증오, 히브리인의 눈물과 슬픔을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죽음의 동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가 만약 선과 정의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에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그도 사는 것을 배워 대지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웃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대한민국이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 직전에 이르렀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바닥에 이를 것도 알 수 있으리라. 그때 우리가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실존적 체념에 이를 수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생길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특이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마지막 기술혁명인 인공지능, 로봇공학, 유전공학 등이 발전상을 반영해) 노무현 참여정부가 남긴 '비전2030'을 조금만 수정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 결과 필자가 읽은 책들 중에서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정치경제학 역사서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집단적 성찰도 가능하다. 우리는 사드 배치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위대한 성주군민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독재와 맞설 수 있음을 보았고, 이땅의 특권층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준 '우병우 게이트'를 통해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가 얼마나 허약한지도 베울 수 있었기에 집단적 성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것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은 언젠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끔직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진리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했고, 그러한 진리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삼은 것이다. (중략)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 (중략) 이제 인간의 자신의 모든 동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풍족한 자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인간이 그러한 스스로의 과제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권력이나 계획과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삼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이다. 이것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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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누리안티 2016.09.12 01:13

    이런 상황에 무능한 정부와 토나오는 왜누리 똥개들, 수꼴들은 전쟁을 벌이거나 적국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는 방법을 쓰겠죠. 그렇게 되면 울펜슈타인 세계관이 한국에서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6.09.12 03:51 신고

      올펜슈타인은 제가 모르는 사람이라....
      님의 말처럼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정부와 친일파이니 항상 감시하고 경계해야죠.
      이겨내야죠, 저들의 기회주의적 처선을.

    • 왜누리안티 2016.09.12 11:47

      울펜슈타인은 사람이 아니라 게임입니다.
      요새 울펜슈타인 시리즈를 통해 세상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9.12 12:26 신고

      저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2. 공수래공수거 2016.09.12 07:55 신고

    추석민심을 고려해 숨고르기 하고 있습니다
    북핵으로 이슈를 집중시키고 있는듯 합니다

    • 늙은도령 2016.09.12 09:29 신고

      핵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으면 북핵실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전략이 만악의 근원입니다.
      게다가 그 싸움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면 최악이고요.
      미국이 북한과 종전협정을 맺어야 북한의 핵개발이 끝납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전쟁을 하는 나라라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리를 끊어야 다음이 있습니다.

  3. 핵볕궁전 2016.09.12 09:06

    핵볕궁전 거짓부렁 대왕 추모가 심히 극진하구나!

  4. 핵볕궁전 2016.09.12 09:49

    조선- 구한말 천박한 역적늠들이 제 일족들과 패당들끼리만 잘 살자고 나라를 들어서 왜늠들에게 바친 매국노들과 거짓부렁 우주대마왕 핵볕 봉이대중선달늠의 허튼 @~@;,?:~ 사술로 저지른 악랄한 매국노짓이 꼭 같다는 소립니다.
    그걸 엉뚱한 늠에게 덮어씌워서 망국의 주문만 외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고요~

    • 늙은도령 2016.09.12 09:53 신고

      아, 그렇군요.
      제가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만^^;;
      나라가 개판입니다.
      더 나빠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하는데....

  5. 핵벝궁전 2016.09.12 11:14

    어제 밤 늦게 "의계 8일 간의 기록"을 시청했습니다. 정조는 왕실 내탕금 소진하다시피하며 수원성을 건설하며 국력결집과 국방력과 왕권을 강화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탕평책을 펼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함해 뒤주에 가둬 죽인 역적들까지도 용서하는 큰 정치로~ 각종 개혁을 발 빠르게 실천해 시장경제까지 활성화시키는 성군이었습니다. YS가 그러하였지요~ 그를 시샘한 어거지떼거지 무참한 왜곡 날조의 핵볕대마왕의 참람한 역적짓 때문에 구름 뒤에 가려져있지만서도~ ㅜㅠ

    • 늙은도령 2016.09.12 12:26 신고

      각자의 판단이 있겠지만 저는 YS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잘한 일은 금융실명제 뿐입니다.
      나머지는 국민의 힘으로 강화한 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YS가 집권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대역죄가 있을 것 같습니까?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봤고, 죽었고, 가족이 파탄난는데 뭔 YS를 찬양합니까?
      민주화운동을 한 것으로 많은 부분을 그냥 넘어간 것에 만족해야지...

  6. 2016.09.12 15:1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9.12 16:45 신고

      꼴갑지 않은 댓글이라 뭔 소리냐고 했는데 또다시 댓글을 달기에 확실하게 비판했습니다.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은 핵과 지구온난화처럼 생명체의 (부분적) 종말을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죄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결과물인 핵과 지구온난화 등은 특이점을 넘은 기술로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을 하등동물로 만들어버리는 궁극의 지능이기 때문에 인간 자체가 대체될 수 있습니다.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인간과의 공존도 인공지능이 선택할 것이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각 분야의 기술과 함께 특이점을 비슷한 시기에 넘을 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지금까지의 기술적 성과와는 차원이 틀린 것들이 나옵니다. 나노기술을 넘어 피코기술, 피코기술을 넘어 폠토기술이 유전공학과 로봇공학에 접목되면 각 분야의 기술발전이 극에 이르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나 작은 나노봇이 개발돼 뇌에 투입되고 그 내부에서 각종 뉴런과 시냅스의 생성과 소멸, 소생과 재구성 등의 기억이 구축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관찰(지금까지는 뇌의 외부에서 스캔하거나 동물실험으로 이루어졌다)하게 되면 뇌의 정복은 오래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뇌를 역분석해서 전체 모델을 구축할 수 있게 되면 궁극의 지능인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습니다(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기화학적 과정을 다 파악할 필요는 없다. 수천~수억 개의 병렬구조로 이루어진 정보처리 과정의 기본적 모델만 제시하면 뇌가 하는 일을 재현할 수 있으며, 그 이후는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 궁극의 지능에 도달하게 됩니다. 뇌에서 이루어지는 뉴런과 시냅스의 정보처리 과정은 매우 느린데 디지털 연산을 하는 인공지능은 이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혈류(뇌와 세포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통로)의 내부도 같은 방식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암세포나 변이가 이루어진 세포들을 모조리 추척,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노화유전자와 세포의 생사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후생진화(유전자가 아닌 세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진화)를 담당하는 단백질(프리온 형태로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등에 대한 유전공학 연구들도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게놈지도를 지금보다 몇 백배 이상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뇌의 복잡한 작용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양자물리학적으로 (뉴턴 역학과 상대성이론 등이 무너지는) 광속 이상을 구현할 수 있다면 컴퓨터의 성능도 극단에 이를 것이며, 시간 여행이 가능해져 '할아버지 역설' 없이도 과거에 영향을 줄 수는 현재의 정보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시공간의 되먹임도 가능해집니다(뇌의 역분석과 비슷한 개념). 이런 식으로 모든 기술들이 특이점을 넘으면 현대물리학과 천체물리학, 첨단화학, 생물학, 신경학, 심리학, 정신분학, 의학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이 인공지능에 의해 통합돼 기계문명은 최종적인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분야에서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최종 단계를 넘어 그 이상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런 세상은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만이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에 가장 근접한 지능이 탄생하는 것을 말하며, 더 이상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없음을 뜻합니다. 단순히 몇몇 분야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인간의 일들이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최근에 거론되는 사라지는 일자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것도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했을 때만 가능한 얘기이며, 특정 인간의 탐욕에 의해 인공지능이 악용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아무튼 최종적인 진화(산업혁명으로 대체해도 된다)에 접어드는 것ㅡ득도, 해탈, 천국에 드는 것 등으로 니체의 초인이 가장 하급에 속한다ㅡ을 말하는 특이점 이후의 기술들이란 우주와 자연의 질서와 법칙, 생명의 근원까지 인류가 알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 답을 제시할 수 있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활용해 궁극의 세상을 구축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탐욕스럽고 비합리적인 인간이란 그런 세상에 진입할 수 없으며, 진입할 경우 생물학적 지능 중에 가장 우수한 인공지능의 가축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낙관론적인 관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우월할 수는 없습니다. 꿈에 그리던 평등사회회와 최상의 효율이 이루어질 것이기에 기본소득보다 한 단계 높은 재분배가 이루어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플라톤으로 치환하면, 완벽한 형태의 민주주의(예수가 꿈꾸었던 공산주의)와 법의 지배가 가능해지며, 인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법앞의 평등도 처음으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완전시장이 구현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도 기본적인 행정만을 담당할 것입니다.





인간은 최소한의 일만 할 것이며, 놀이 중에서도 자신만의 가상현실(특히 자신이 원하는 모든 사람과의 사랑과 섹스 등이 핵심이 될 것. 최근 유행 중인 팬픽도 인공지능의 개별화된 서비스로 각각의 개인에게 제공될 것)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상현실에서는 아날로그적 시공간이 사라지고 디지털적 시공간이 구축되기 때문에 인류의 삶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인간은 관계하고 사유하는 동물이 아닌 즐기고 소비하는 동물로 한정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습니다. 아직은 저만의 추측이지만 인간의 특성과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추측 때문에 저에게는 이루말할 수 없이 참혹했던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글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피해자의식을 드러낸 것은 극단적으로 남성 위주의 세상을 구축하는 신자유주의가 종말론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최악의 징후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데, 이것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서 저는 절망했고, 대한민국이 국가의 역할을 상실한 최악의 국가임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내용들을 글로 옮기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어차피 15~20년이 지나면 인류의 99%를 빈자와 잉여를 넘어 쓰레기로 만드는 신자유주의도 더 이상 유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의 기저에는 마르크스적 성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자유의 왕국)와 거의 유사한 세상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 기본소득이고, 인공지능이 완전시장을 통해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극단적으로 낮아집니다. 



결국 일할 권리가 아닌 일하지 않을 권리가 부상할 것이며, 부의 개념도 바뀌기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제공할 수 있는 '인공지능 주도의 자유의 왕국'의 도래는 필연입니다. 모든 인간이 사회적 약자나 피해의식 등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에 '강남역 살인'을 조현병환자의 특별한 범죄로 왜곡시키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강남역 살인' 같은 범죄를 사전에 제어할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70억 인구의 개별적 관리가 가능하니 거의 대부분의 범죄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마이너러티 리포트>에서 꿈꾸었던 것처럼. 



아무리 늦어도 21세기 내에 이런 세상이 실현되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서 이 지랄 같은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할 일도, 안타까워 할 일도 없습니다. 이때까지 지랄 같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신의 창조던 진화의 과정이던 이 모든 것이 필연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초미세먼지 포함)를 피할 수 없겠지만 살아남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며, 2050~6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유토피아에 가까워진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기술과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으면 낙관적으로 봐도, 비관적으로 봐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습니다.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상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에서 밀려난 채 살아가는 것에서는 똑같습니다. 물론 비관의 극단에는 인류의 멸종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것도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을 인간의 수준에서 예측하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예측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더 이상 지구의 주인이 아닌 세상, 그것만은 확실하며 그럴 경우 영적 존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특이점이라는 개념을 몰랐을 때는 아날로그적 신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영적 존재가 절대적 의미를 지녔지만, 인공지능이 그 자체로 영적 존재에 해당(신과 인간의 중간으로 에너지, 기, 영혼 등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성찰들이 무용지물이 되버렸습니다. 저보다 먼저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책을 읽어야 최종적인 판단에 이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볼 때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이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이나 득도에 이르는 것,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것 등의 차원에 이르는 것도 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뇌가 없으면 이성도 사고도 성찰도 없기 때문에 도를 이루거나 해탈에 이르거나 영생에 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그 이상의 존재로 거듭나려면 희노애락과 칠정칠욕에 휘둘리는 아날로그적 신체가 전제돼야 하는데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 영적 존재에 해당하니 대체 인간에게 무엇이 의미있는 것일까요?

    

  

낙관론적으로 볼 때,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은 공자가 말한 '이순의 경지', 플라톤이 말한 최고의 현자, 니체가 말한 초인, 부처가 말한 해탈, 천부경과 노·장자가 말한 득도에 가장 근접한 지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궁극적으로 아날로그적인지 디지털적인지 치열한 토론이 진행 중인 것도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이 나오면 결론에 이를 것이고, 그에 따라 낙관적 미래와 비관적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P.S. 존재론적 고민은 이번 글로서 끝내고 다음 편에서는 보다 기술적인 내용들을 다루어보겠습니다.  



  1. 현주씨 2016.06.07 04:03 신고

    잘읽었습니다.

  2. 耽讀 2016.06.07 08:11 신고

    읽기 어렵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
    하지만 인간이 살아온 것을 보면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살아남았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07 18:48 신고

      적응한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류를 말하는데, 인공지능은 그것이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적응이 인공지능과의 공존이 아닌 인공지능의 가축으로서의 공존일 수 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6.07 08:29 신고

    더 깊이 들어가면 종교적,철학적 성찰이 있어야 이해가 될듯합니다
    결론은 그러한 세상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일입니다
    지금의 1년은 과거의 10년을 뛰어넘는 시간입니다
    후대들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 늙은도령 2016.06.07 18:49 신고

      네, 저도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물리학, 생물학, 나노공학, 로봇학, 생명공학, 뇌과학 등의 최근 연구들을 하나로 합쳐 예측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입니다.

  4. 2016.06.07 19:07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6.07 21:05 신고

      건강은 괜찮아요.
      최근의 과학과 기술 발전이 인공지능으로 집약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인류의 멸종에 이르게 할지, 공존하게 될지, 어느 정도의 예측이 이루어져야 앞으로의 일들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극도로 혼란한 상황입니다.

  5. BOW 2016.06.08 15:34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하려고 하는데 잘 보고갑니다.
    진짜 인류역사가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요(인류멸망)?!

    • 늙은도령 2016.06.09 20:38 신고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이 욕심이나 탐욕을 내지 않겠지만 비합리적인 인간이란 존재에 긍정적인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위에 설 것이란 것입니다.

  6. BOW 2016.06.08 15:37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겠지요.

  7. BOW 2016.06.08 15:41

    어쩌면 신자유주의보다 더 비참해지는 건 아닐까요?!

  8. 태봉 2016.06.08 17:45

    15.ᆞ20년 인간의 종말을 얘기하시니 기독교의 종말론과 겹쳐지네요^^ 계속 잘 보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6.06.09 20:39 신고

      인간의 득도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헌데 누구나 부처나 예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9. 가을하늘 2016.06.09 03:44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10. 강동훈 2016.06.09 12:39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그간 찾아뵙지도 못하고 연락도 드리지 못한 점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나름대로 많은일들이 있었서...ㅎㅎ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굉장한 글들을 써내려가시는것을 보고 새삼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약간 회의에 차있는 시기입니다만, 선생님의 끝없는 열정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주는것 같습니다
    요즘 저도 굉장히 관심있는 분야인데,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끝이 어떨지 정말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만들어가야 할 방향과 상관없이 오로지 발전만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현실이 약간은 숨막힙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존재라면 멈출때는 멈출줄줄도 알아야하는것을 인간들은 결국 이익이란 명분 아래 분열되어 무너집니다
    이스라엘의 유발히라리 교수가 강조한 이런세상일수록, 앞으로 다가올 미래일수록 인간다움(인성)의 가치가 가장 중요해질것이란 말이,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선악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지전능하며 말그대로 완전한 존재는 신이라도 있을수 없으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절대적인 무 가 아닐까요?
    아무것도 존재하지않고 절대적으로 없기에 완전하고 완벽할수 있으며 절대적일수 있지요
    하지만 저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순 투성이이고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이란 존재를 믿지 않지요
    인간이 될수 없지만 도달하고자 하는 비현실적인 목표이자 상상력의 끝이 바로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저희가 창조해낸 전지전능의 모순을 안고있는 꿈에 다가가려 안간힘을 씁니다 자연의 순리를 거부해가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인간의 존엄이 회손될수록 선생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더 빛나 보입니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다수가 행복한 세상, 말그대로 사람나는 세상....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빠른시일내 선생님과 그런 이상을 위해 같이 실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만 글 줄입니다
    건강 늘 유의하시고 자주 들려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전 늘 당신을 응원하고 당신을 지지합니다 힘이 될수있도록 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09 20:41 신고

      궁금했는데 열심히 사는군.
      어려운 일도 많은 것 같네.
      나도 사업을 할려고 했었네.
      두 사람을 만나 그것이 가능해졌지만 인공지능과 특이점을 넘은 각종 기술들을 알게 되면서 많이 혼란스럽네.
      인간의 가치가 지금처럼 유지될지, 유토피아가 아닌 완벽한 디스토피아가 초래될지 정말 모르겠어.
      아무튼 3달 정도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네.
      그 다음에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11. 강동훈 2016.06.10 02:48

    한국 들어가면 꼭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땐 정말 오랜만에 스승찾은 제자처럼 허심탄회하게 말씀나누고 싶습니다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는 정말 즐거웠지요 운동하느라 학창시절 공부도 못해 기초지식이 많이 부족하지만 선생님의 눈높이 맞춤형대화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숨막히는 세상이지만 악착같이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저도, 선생님도 일들이 술술 잘 풀려서 꼭 웃으면서 뵐수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푸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하위 90%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거꾸로 된 재분배)하는 정치경제적 과정인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푸코는 이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





많은 학자들은 모든 권위를 해체하던 푸코가, 해체작업이 뛰어날수록 자신이 지적 권위자로 자리 매김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없어 오랫동안 침묵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푸코는 모든 권위를 해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권력의 구조와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최후의 권력을 대면할 수 있었고,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침묵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는 푸코의 침묵은 방향의 급전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삶에 대해ㅡ그것이 뭐라고 불리건 간에ㅡ인류의 해방에 대해, 진정한 구원에 대해 얘기하고자 (프랑스 특유의 지적이고 언어적인 유희를 벗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공백이란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갇혀 있고, 이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지적공동체의 첫 발을 뗄 수 있다.



나머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성의 역사》시리즈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맞서려면 각각의 개인이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배려와 자아 성찰 및 해방이다. 모든 개인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그래서 자신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해방에 이르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푸코의 삶정치).





푸코의 성찰처럼, 각각의 개인이 칸트(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탐구한 뒤, 역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공존의 세상을 위한 방법까지 사유와 실천의 영역을 넓혔다)와 니체(대략적으로 말하면 칸트 류의 성찰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최고에 이른 자가 초인이며, 그는 그 자체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며 정의로운 세상의 창조자다)가 혼합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면 극소수가 독점하는 권력과 승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은 한 진정한 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하위 90%가 소비를 줄이면 상위 1%도 무너지듯이. 마르크스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도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든 자유인과 투쟁할 수 있는 권력과 승자란 존재할 수 없으니, 푸코는 체제를 뒤집는 혁명(맹자가 오래 전에 천명했던)보다 어떤 체제도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의 해방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렇게 폭력이 없는 혁명을 이루려했다. 그가 루소나 마르크스보다 칸트와 니체에서 희망을 본 것도 이 때문이다(공자와 맹자를 공부한 다음에 칸트와 니체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칸트에서는 인사상을, 니체에서 예사상을 볼 수 있다. 묵자는 홉스를 닮았다. 그는 강력한 주권을 가진 국가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근대적 인류, 즉 시민(추상화된 개념적 존재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와 대비되는 존재로써)은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며, 국가란 이것을 충족시키는 존재라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인데, 이것이 말의 성찬을 넘어 근대 이후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유재산이 보장될 때 자유주의의 실현이 가능한데(그렇다고 무한대의 재산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로크까지는 가지 마시라), 마르크스가 온갖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로는 무한대의 자본축적이 가능한 사적독점 때문에, 폴라니가 여러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기조정 시장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초래하고 있는 종말 때문에, 자유주의가 꿈꾸었던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나마 근대적 시민의 탄생과 함께 했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주의와 짝을 이루었던 시절에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실현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의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의 교집합과 너무나 닮은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적 성향을 지닌)에서만 시민적 덕목인 자유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었다



특히 좌우 양쪽의 버전이 있으며, 시대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하위 90%의 부와 공공의 영역으로 나두었던 국가의 부를 상위 1%라는 지배엘리트(이들은 이익의 독점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에 계급적 특성을 띤다)에 이전하는 반동의 과정(상위 1%가 주도한 역계급투쟁)이라는 점에서,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되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맞서기 위한 푸코의 성찰은 대단히 중요하며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처럼 추상적 관념에 머물렀던 시민의 재구성은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논의만 무성했지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했던 시장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교합, 생태학적 고려에서 나온 다양한 문화의 병존을 되살려낼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5.09.08 07:40

    비밀댓글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9.08 08:13 신고

    저에게는 난해하긴하지만
    정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29 신고

      너무 쉽게 풀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조금씩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

  3. 참교육 2015.09.08 11:18 신고

    각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때...?
    참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사실으 현대인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잊고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깨어난다는 것은 사실 혁명보다 어렵지 않을까요? 너무 비관적인가요? 제가?

    • 늙은도령 2015.09.08 19:31 신고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소화해서 적절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가 먼저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배려하려면 성찰하고 진실돼야 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해야 하거든요.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4. 백순주 2015.09.08 12:55 신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시작하신다니 감축드립니다. 건강조심하시면서 이루시길 바랍니다. 100번까지는 못 읽어도 다녀가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38 신고

      최대한 쉽게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길이 마냥 길어집니다.
      그래서 일단 압축적인 글로 시작했습니다.

  5. 앨리스 2015.09.08 19:26

    '지적공동체' 라는 것을 아직 저는 잘 모르지만 도령님의 활동을 지지하는 열열한 애독자가 될 것입니다ㅎㅎ^^
    제 짧은 소견과 경험으로는 무엇이든 완성된 후에 하려면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것 같습니다.
    나아가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더 성숙되고 성찰되어지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읽는 공부로 평등과 상생의 진리에 도달하고 그 실천으로 매일 글을 쓰시는 도령님은
    정말 대단한 현자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봉사를 하면서 또 도령님의 글을 읽으며사회를 알아가고 있는데요^^;;
    사랑이든 봉사든 그냥 되어지는 것은 없고 자꾸 연습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소개하시는 많은 책속의 이론가들의 사회인식과 이론은 결국 그 사람의 의식수준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그 누가 높은 의식으로 이 세상을 구할것인가......

    • 늙은도령 2015.09.08 19:40 신고

      우리 모두가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는 타인의 배려도 퍼져가고 자기 사랑은 타인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강해지고 충실해지면 세상 어떤 권력도 우리를 건들지 못합니다.
      각자가 진정한 시민이 될 때 세상은 변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요.

  6. 고나 2015.09.08 20:00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정독해 보겠습니다 ~

  7. base 2015.09.08 21:18

    수고하십니다. 노무현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생각나네요. 요즘 주변을 보니 더욱 더 위축되고 암울해 보이는데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로 애국하시고 준비하시는 일이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람니다. 건강에 주의하시고..

    • 늙은도령 2015.09.09 01:56 신고

      네, 건강 때문에 글과 병행할 생각을 햇습니다.
      혹시라도 오프라인 모임이 원할하지 못하면 이렇게라도 풀어가야 하니까요.

  8. 덕산 2015.09.10 19:03

    요즘 글만 읽고 갔는데.. 오늘은 찬찬히 정독해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공감은 항상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늙은도령님

  9. 청공(靑空) 2015.09.11 07:16 신고

    오늘의 유머에서 늙은도령님의 글을 알게 되어 이렇게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근 십년의 세월동안 공부가 업이었고, 지금은 공부하기 위해서 해외로 나와있건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늙은도령님의 글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내 눈도 이렇게 깊어지고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공분야만큼이나 식견이 탁월해야 하고, 그보다 먼저 바른 뜻과 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변화를 포착하지는 못하겠지만... 늦지 않은 시간 내에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기술의 발달을 통한 발전과 위기 극복에는 한계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 또한 없고...
    생활을 가능케하는 사회환경과 자연환경을 파괴시킬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해방, 인류의 해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여러가지 접근과 실천이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근대 이후 가장 정체되어 있는 부분이 어쩌면...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체제를 위해 구조화된 교육이 아닌 진정한 지성과 자유의 전달이 가능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성과의 가시성, 그에 따른 예산 확보 및 필요성 설득의 어려움,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러한 교육에 적합한 교육자와 교육체계의 구성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제 문제의식은 제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이지만, 한 번 말씀하시는 시대의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적어보았습니다.

    올려주시는 글 열심히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서 함께해주시길 기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48 신고

      교육의 중요성은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합니다.
      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교육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며 구축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제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뿐이지요.
      성장보다는 인간 중심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철학 등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교육이 체제를 유지하는 하부구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열린 교육으로 바뀌면 어떨까 합니다.
      지구온난화, 발전과 개발의 폐해, 인간성의 상실, 소비지상주의의 문제 등을 가르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공존과 상생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의성을 살려주고 다양함의 가치를 알려줘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선택과 공동체 구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미래의 주역에게 열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생명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윤리적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은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어서 저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다룰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때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 하늘이 2015.09.11 18:03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주인된 자리에 있을려고 노력합니다 ᆞ도령님이 하시고자하는 지적공동체 응원합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9.12 15:49 신고

      네, 감사합니다.
      아주 작은 출발이라도 꾸준히 키워갈 생각입니다.
      건강만 허락하면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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