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제합병 덕분에 근대화의 초석이 마련됐다고 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음을 밝히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국내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밝히는 작업을 선구자들의 뒤만 따라가면 별로 의미가 없을 듯하다. 따라서 1970년대부터 유럽의 발전사와 제3세계의 종속이론을 다시 연구하면서 새롭게 정립된 '신 비교사 정치경제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1970~80년대까지 방대한 자료와 문헌들을 담아낸 샌드라 핼퍼린의 《유럽의 자본주의》와, 그보다 훨씬 앞선 학자인 토크빌의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과 일련의 저작들을 '신 비교 정치경제학'을 통해 접근하면 식민지사관을 신봉하는 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로 가득한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식민지론을 다룬 책으로는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가 있지만 너무 현학적이지만, 프랑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한 이병도를 통해 맹위를 떨쳤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것도 사실은 '신 비교 정치경제학'이 발전되기 전의 유럽식 제국주의의 관점을 일본의 정한론 등과 연동시킨 것에 불과하다.



또한 필자와 친척관계인 신용하 교수의 《일제 식민지근대화론 비판》과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상)과 (중)》을 보면, 조선을 경제적으로 착취할 목적을 드러낸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과, 기또 다카요시는 정치적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정한론, 사이꼬 다가모리는 일본에 넘쳐나는 하급의 사무라이들(겐요샤 소속)을 조선에 보내 그들의 먹거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준군사적이며 패거리조폭 같은 개념의 정한론이 이와꾸라 도모니와 이토 히로부미 등이 정한론을 잠시 미룬 채 '선내치 후정한'을 우선시함에 따라, 정한론이 실시됐을 때를 대비해 일본육군 참보본부 하에 '조선국사편찬부'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정한론이 이루어졌을 당시 한국의 역사를 철저히 말살하고 왜고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다음 1919년의 3.1운동의 열기 때문에 지나칠 정도의 착취를 하지 않은 채 하나의 일본이라는 내선일체의 방법들에 대해 소리소문없이 준비해나갔다. 그리고 한일 강제합병이 이루어진 1910년을 기점으로 조선국사편찬부의 활약이 절대적 영향를 행세했다. 그렇게 5000년사의 찬란했던 우리 고유의 문화들이 파괴되고 단절되고 왜곡됐다. 



                                      일제의 식민지약탈은 주로 전쟁 준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특히 대동아전쟁이 본격화되고 미국과의 무모한 전쟁에 들어갔을 때까지 무려 12~3년에 걸친 전 국민과 전 국토의 수탈은 극에 달했다. 조선총독부는 전쟁자금과 금속을 모으기 위해 은수저와 일반 수서까지 쇠라면 닥치는 대로 착취했고 돈이 될만한 것은 모조리 빼앗아 갔다. 당시의 친일파로 불렸던 필자 어미님의 큰오빠(중추원참의로 친일인명사전에 나와 있다)도 자신의 재산을 상당 부분 일제에게 빼앗겼다. 일본의 총독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한 전통의 양반들도 재산을 빼앗겼다.  



일제 강제합병시기에 대한 공부가 끝나면, 그 다음으로는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박명림 연세대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과 《한국 1950년 전쟁과 평화》 등과 비밀이 해제된 미국과 소련의 외교문서 등의 도움을 받으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들이 일부의 사실로 전체로 확장시키는 논리적 오류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책과 문서들을 읽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명백하게 나온다. 



실제 악질적인 친일 부역자들은 일제의 강제합병 36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국과 이승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 군정의 수장이었던 하지 중장은 행정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정치적 기반이 없었지만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이 땅의 통치엘리트로 더 큰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뉴라이트와 족벌언론이 이것을 이어받았다 



샌드라 핼퍼린은 무려 500여 권이 넘는 책들과 수많은 논문들을 종합한 결과 "유럽의 경제정치사가 다른 세계와 확연히 달리지는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녀는 "명시적으로나 잠재적으로...'유럽적 모델'은 실제이기보다는 허구이며, 현대 제3세계 나라들과 비슷한 길을 갔고, 번영과 민주주의로 향했던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길은 근본적으로는 내부의 계급 구성과 연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 분명하게 밝혔다.   



다시 말해 일제 강제합병 36년 동안 대한민국이 근대화를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라는 외부의 식민지 착취와 일제 부역자들이란 내부의 착취 때문에 대한제국의 시기보다 오히려 퇴행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은 양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에 모든 시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민주주의가 정착됐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1975년까지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선진 유럽으로 진입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메모와 노트만으로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책들ㅡ우리의 근대화와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 중, 대한민국의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토지 개혁도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밝혔듯이 유럽은 물론 식민지 치하의 한반도에서도 국내외의 신흥 자본과 그들에 부역한 구체제의 엘리트들의 부를 불려주기 위한 사전 조치였음은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다. 식민지 정부와 신흥 자본들이 대도시 위주의 발전을 위해 돈이 없는 소작농에게 토지를 나누어준 뒤, 이를 유지할 수 없는 소작농에게서 헐값에 사들이는 과정이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1945년 전까지의 유럽과 일본, 1910년대 말까지 유럽보다 부유했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이 각종 자료와 통계, 연구들에 의해 상세히 밝혀졌다.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기 전까지 유럽도, 일본도, 1910년대 말까지 유럽보다 부유했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야간의 시기적 차이만 있을 뿐, 유럽이나 선진 신흥국이나 제3세계나 내부와 외부의 자본과 지배 엘리트에 의한 식민지 착취가 진행됐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일본의 식민지로 36년을 착취당한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했겠는가? 해방된 대한민국만 친일부역자의 후손들을 중심ㅡ특히 서울대 교수들이 많았고, 역사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이병도가 그 정점에 있었다ㅡ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이 힘을 얻었고, 족벌언론들이 이를 확대재생산했고, 이승만처럼 미국 유학파들이 정치와 경제의 파워엘리트를 형성하는 바람에 이런 '신 비교사 정치경제학'의 결실들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허면 1945년 이후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럽의 국가들과, 여전히 선진국 초입에서 극도의 불평등과 대기업 위주의 정부 운영 때문에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반하는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각종 사건과 사고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음 편에서 이에 대해 다루어보겠지만, 그 선두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맥아더와 미국 연방정부 및 좌파 전체주의의 맹주였던 소비에트 연방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날카롭게 해부했던 마루마야 마사오의 《현대정치사상과 행동》에는 "독재자는 민주주의를 이른바 바깥으로부터 공공연하게 파괴하지만, 보수는 그것을 안에서부터 조용히 부식시"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공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한 역할이 바로 그러했다. 이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친일의 대명사들의 비호 아래 한국역사학회와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독점하며 지금의 60대부터 80대의 노인들까지 정신을 부식시켰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일본의 정한론과 일제 강제합병 기간 동안에 벌어졌던 민족정신 말살과 역사 왜곡에 대해서 다루겠지만(건강이 악화돼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연재할 생각이다), 아무리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한들 이 땅에서 악질적인 친일 부역자들의 후손들이 만들어놓은 각종 정치경제 및 교육과 종교적인 담론들을 거둬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은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재에 이른 역사의 요소들은 너무나 많아서, 승자와 강장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과 절대다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이 때문에 역사의 왜곡은 천천히 오랫동안에 포괄적인 목표 하에 세부적인 계획들로 치밀하게 이루어진다. 일본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여기에 있는데, 우리는 단점마저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당장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니 장기적 비전을 세울 수도, 실천할 수도 없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Elisa 2014.08.22 10:55

    아,.. 감사합니다.
    사실 교육체계의 제일 꼭대기는
    "친일파"라는 말이 이해가 잘 안되었었거든요

    자세한 설명으로
    이 부족한 머리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22 18:25 신고

      우리나라 교육부는 정말 문제가 많은 집단입니다.
      그들은 이땅의 특권층 중에서 가장 빨리 없애야 할 자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요.
      많은 어른들이 교육부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2. 가난한여행자 2015.05.24 23:13 신고

    이완용 마지막 노론마지막 영수 였다는것에 친일파 알기위한 핵심인것같네요
    조선은 시대정신을 잃고 개인영달을 추구하는 가운데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하지않았나 싶네요

    이완용이 처음 독립협회중심인물 , 친러, 친미 를 옮겨다니면서 마지막 귀착점은 친일,,,

    마지막 제국주의 열차를탄 일본을 고종, 노론들은 일본을 새로운 명나라로 생각하고 나라를 넘긴것 같네요

    박정희가 친일, 민족사회주의. 친미 한것은 같은것이라는생각입니다

    청산되고 단죄될사람이 우리나라 역사 주인공이된것이 비극입니다

    2015년 오늘도 어둠의역사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이나라를 좌지우지하는것이 한국의 비극이네요


    이명박, 박근혜는 나오지 말아야할 악성 변종 바이러스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5 00:55 신고

      고종은 일본과 저항했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문제는 서구문명을 추종한 자들이 이완용을 포함한 5적이 조선을 일본에 팔 때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한제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무너질 나라라면 그들의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특히 멕아더)의 판단 미스로 남북한이 갈라지면서 친일부역자들의 80%가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들이 새누리당까지 이어져왔고, 이명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서운 것은 보수 반동을 이끌어낸 이들의 운동은 계속된다는 것이고 진보는 그에 대응할 만한 운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3. go to hell 2015.07.12 02:21

    친일파 개떼를 당연히 때려 잡아 모가지를 도려내야 하지요.

    그러나 이완용, 송병준 등등 그것들이 아무리 뛰고 날아 다니는 왜놈의 개떼라 해도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머슴들.

    주인은 바로 고종임금 이었어요. 그 냥반이 왜국에 통째로 넘겨준거...부끄럽고 치욕스럽지만 사실입니다.

    어떤식으로든 쥔의 싸인없이 성립되는 계약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읍니다.

    그래서 왜놈들이 이걸 빌미로 을사늑약이 합법이라고 강변하는 이유인걸 가르치지 않아서 이땅의 우린 모릅니다.

    왜놈들 역사를 가만 들여다보면 칼부림 전쟁만 하던 야먄인들이라서 자기가 약하면 바짝 엎드리고 자기가 강하면 기습합니다.

    걔들 의식속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원래부터 없어요. 기왕에 죽을거라면 수고를 안하도록 빨리 죽어달라고 하는것들이 걔들...

    따라서 잔대가리에 잔수작 부리면서 뒷통수 치는데는 천재.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직 후 아배란놈 하는 개소리 기억하시지요?

    한국에선 forced work에 대해 이의제기가 없었다라는...

    제 생각엔 다른거 없어요. 부끄러운것도 우리역사. 사실대로 정직하게 가르치고...

    기회를 봐서 왜국전체를 초토화 시켜서 우리가 당했던거를 그대로 만배로 되갚아서 영원히 주저앉게 하는것 뿐...

    소생은 그렇게 생각해요.

    • 늙은도령 2015.07.12 15:39 신고

      고종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고종은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많았구요.
      안타까운 시대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이 맺은 이전 유네스코 문제는 우리가 당한 것입니다.
      일본에게 또 뒤통수 맞은 것이지요.
      박 정부가 원래 무능하고, 무책임하니 이렇게 당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반박에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니
      까요.


국가가 통치술로부터 탄생했다는 것도, 인간의 통치라는 기술이 17세기에 탄생했다는 것도 아니다. 주권에 관한 제도들의 총체로서의 국가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의 통치라는 기술도 수천 년전부터 있었다. 단 국가가 우리가 아는 형식을 갖게 된 것은 인간들을 통치하는 새로운 일반적 테크놀로지를 그 출발점으로 해서이다.

 

                                                                                 ㅡ 미셀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인용



이승만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정희의 판박이인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대한민국은 매일같이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마치 국가 전가 무슨 중병에 걸린 것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매일매일의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시청하고 각종 보도들을 검색하는 것이 어제에 있었고, 내일도 있을 비극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건과 사고들로 얼룩져 있는 오늘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국가는 존재 이유를 상실했고, 정부는 경제와 민생을 핑계로 소수에게 부와 권력, 기회가 독점되는 정책과 법률들을 밀어붙이고, 기업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칙과 불법도 마다하지 않고, 방송과 신문은 이들을 위해 여론을 왜곡하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지식인들은 무력하게 해체된 상태에서 자신만의 참호를 구축한 채 비루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5천년 역사의 영광과 자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이 네 자에 모두 포함돼 있다 



단군이 한반도에 고조선을 건국한 이래 우리 민족ㅡ차별적이고 배타적 의미의 민족이 아니라ㅡ은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따뜻하고 관대하며, 호방한 사람들이었다. 동양 문화 특유의 가치관 때문에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늦춰졌다고 해도 일제의 강제합병 36년이 있기 전까지는,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민족은 서양의 민주주의보다 한발 앞설 정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모범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이 결코 부끄러운 적도 없었고, 외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발전할 수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문창극 같은 식민지사관을 신봉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조선의 정치체제는 세계의 정치학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절대왕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잃은 적이 없었다. 인구의 수가 급격히 늘고, 도시 위주의 자본주의가 확대되고. 국가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난무하는 현대국가가 극소수의 특권층과 거대 관료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에 비해, 조선은 절대군주였던 왕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많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국정을 농단하는 폭군들은 반드시 제거됐으며, 국가의 체제는 안정적 형태를 유지하며 어떤 왕도 위민, 애민, 훈민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은 링컨이 말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었다. 단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초과학과 기술공학적 발전이 뒤쳐졌을 뿐이지, 현대적 의미의 국가이성과 통치이성을 잣대로 들이댄다 해도 고조선에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국가 역사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17세기까지 전 세계 자산의 45%를 보유하고 있었던 유일 초강대국 중국도 단군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의 국가들을 가장 두려워했다. 중국의 황제들은 주변의 국가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거나 자신의 역사 속으로 흡수할 수 있었지만, 그들보다 앞선 문명을 이어가던 한반도의 국가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고조선과 고구려가 최고로 번영했을 때는 최소 중국의 동북삼성은 우리의 관할권에 있었다(위서논란이 있는 《한단(또는 환단)고기》를 참고하지 않는다 해도). 



일본의 문명도 백제와 가야와 고구려에서 흘러들어간 것이며, 이는 일본의 황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본이 이런 역사를 세탁하기 위해 끝없이 정한론을 들고 나온 것도 그들의 자격지심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의 과학기술ㅡ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과 거대 관료조직 및 절대군주의 통치술ㅡ을 한 발 앞서 도입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정한론을 다시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한다. 



일본의 지적 천황으로 칭송받는 마루야마 마사오에 의하면, 메이지 유신이란 "봉건사회의 특징인 권력의 편중을 권위와 권력의 일체화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조직"한 것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면 봉건사회처럼 신성불가침의 권위가 주어진 천왕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권력과 사회적 순위가 정해지는 것이 일본 파시즘의 본질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봉건시대의 낭인을 흠모했던 시정잡배 수준의 사무라이가 구국과 부국강병의 지사로 둔갑해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우파 전체주의의 한 형태인 일본의 군주주의는 "군부, 관료, 정당 등 기존의 정치세력이 국가기구의 내부에서 점차 파쇼체제를 성숙시켰으며, 그것이 일본 파시즘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특색"을 이루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일본의 군국주의는 천황의 주위를 둘러싼 군부와 관료들의 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천황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일반 국민들은 일본 군국주의가 자행한 각종 전쟁범죄와 대량학살의 공범자이자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레다 어틀리가 《일본의 진흙발》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우익지도자들을 "봉건시대의 낭인과 시카고 잡종"의 결합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했다. 그들은 패거리집단을 이루어 행패를 부리기 위해 의리를 내세웠고, 사소한 일에도 폭력과 복수를 자행했고, 힘의 우위가 명백히 무너지면 배반도 밥먹듯이 했다. 이런 시장잡배에서 출발해 천황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가는데 성공한 일본 군구주의의 우익지도자들이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저급한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요정을 들락거리며 젊은 기녀들과 향략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모의 근거지는 거의 대부분 기생집이나 요리집이었다. 그들이 거기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비분강개할 때 그들의 가슴 속에는 "취하면 누워서 베개로 삼는 미인의 무릎, 깨어나면 손 안에 쥐게 되는 천하의 대권"이라 노래했던 바쿠후 말기 지사들의 영상이 남몰래 자리잡고 있었다.



군국주의의 지도자들이 아시아국가를 상대로 벌인 '대동아전쟁'을 천왕이 다스리는 황국(일본)을 정점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으로, 저발전된 국가들에게 천황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천황을 정점으로 서열을 정하는 과정이란 선한 것이어서, 아무리 악한 전쟁범죄와 집단학실을 자행해도 그것은 신의 뜻이자 우주의 섭리이기 때문에 죄의식이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이런 학살이 1930년대 후반부터 수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 군구주의의 배후에 자리한 일본의 군국주의와 국민의 정체성은 이와는 달랐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현대정치사상과 행동》ㅡ이 책 하나만 봐도 이승만과 박정희가 얼마나 일본에 경도돼 있었는지 알 수 있다ㅡ에서 "(힘없는 나라와 사람을) 무리하게 억압하거나 또 (일본보다 강한 나라와 사람에게) 무리하게 억압당하여, 이쪽을 향하여 굽히면 저쪽을 향하여 어깨를 펼 수 있"으며 "앞에서의 치욕은 뒤쪽의 유쾌함에 의해 보상받기 때문에 불만족을 평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마치 서쪽 이웃에서 빌린 돈을 동쪽 이웃에게 독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한강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이 같은 행위를 '억압위양의 논리'라고 하는데, 자신보다 힘이 센 강자나 지위가 높은 상사로부터 받은 억압ㅡ모든 것을 투쟁으로 보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ㅡ을 약자나 부하에게 더 악독하게 분풀이하는 것처럼, 서구 열강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저발전 상태인 아시아 국가에게 잔인하고 악독하게 풀어버린 것이다. 



일본의 지배 집단들이 자행한 대동아전쟁은 강자(서양)에게 뺨맞은 것을 약자(아시아)에게 화풀이하는 전형적인 형태로서, '승자가 곧 정의'라는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 결과 정신적으로는 "선을 원하면서도 언제나 악을 행한 것이 일본의 지배권력"의 특징이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지도자들이 이런 시정잡배 수준의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단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들의 무책임한 심리가 일본 국민만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과 수많은 아시아국가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숙명적 낙관론, 그래서 비극적인 결과만 양산할 뿐인 일본의 군국주의가 독일의 나치보다 더 큰 전쟁범죄와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시정잡배 수준의 사무라이들(당시의 군부)이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전차는 물론 강남북을 연결한 한강철교도 건설한 상태였다.



이런 군국주의의 피해를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감당해야 했던 나라가, 조선왕조 500년의 찬라한 문화유산과 뛰어난 권력구조를 근대적 국민국가와 행정체제로 전환한 고종의 대한제국이자 현재의 대한민국이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추종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다양한 비전을 지니고 있던 엘리트들은 일본보다 조금 늦었을 뿐 자체적으로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견인했던 도조 히데키와 이토 히로부미, 기시 노부스케 등이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동양을 부의 원천으로 여겼던 유럽의 열강들과 러시아, 미국 등의 생각도 동일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한반도를 차지하는 국가가 미래의 제국으로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때 일본에서 정한론이 다시 등장했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주조해낸 천황의 영광 아래 아시아 국민들을 질서정연하게 위계지으려면 대한제국부터 식민지화해야 했다.

 



                                                 대한제국은 자체적인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이 일제에 의한 한반도 강제합병으로 이어졌고, 조선 500년을 근대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우리의 조상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착취와 침탈, 위대한 문화와 사회적 공동체의 파괴, 내선일체라는 조선의 일본화와 및 공교육의 질적 저하가 없었다면, 자체적인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던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를 이루었을 것은 우리의 5천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역사에서 가정을 전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통해 과거를 알아야 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일제 강제합병 36년 동안 위대했던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가 어떻게 말살됐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의해 우리의 역사와 국민성이 얼마나 왜곡되고 호도됐는지 알 수 있고,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악질적인 친일 부역자들을 지배엘리트 집단에서 걸러낼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8.14 09:41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것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낸게 아닐까라는 생각이듭니다.

    • 늙은도령 2014.08.14 10:14 신고

      그것을 하나씩 밝혀나갈 것입니다.
      그 동안 미루고 미루다 글을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2. 참교육 2014.08.14 14:54 신고

    이번에 교육부장관이 황우여도 대한민국은 1945년 건국했다더군요.
    해방 70년인데 아직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4 19:53 신고

      네, 보수 정부 7년은 정말 비극입니다.
      이들에게 역사의식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3. Konn 2014.08.16 23:33 신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파시즘을 비롯한 군국주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한국에 이식했고, 그 영향은 아직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 두 세대를 더 지나가야 그러한 멘탈리티를 청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시정잡배같은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뽑아주기 때문이며, 결국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과거의 것을 떨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친일 청산이 아닐까 싶군요.

    • 늙은도령 2014.08.18 17:24 신고

      친일파 중에 악질들이 있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지배엘리트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조중동이 그들과 손을 잡고 있어서 더욱더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만 정치권에서 걸러내면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입니다.
      헌데 지금은 대한민국이 너무 우경화되어 있어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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