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이란 책을 보면, 한 젊은 소설가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을 막지 못했다며 '자신이 진정한 작가였다면 전쟁을 막아야 했다'는 탄식을 인용하며 자신의 얘기를 풀어갑니다. 카네티는 어떤 작가도 신이 될 수 없기에 이런 탄식은 현실성이 없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말 한마디에도 양심과 도덕, 정의처럼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내야지 대중의 증오와 폭력을 선동해 살인과 전쟁을 유도하는 메시지로 채우지 말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카네티가 탁월한 연설과 목소리로 대중을 열광시키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크라우스를 선동의 대가로 꼽았는데, 세월호 집회와 촛불집회에서 사이다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대중을 열광시켰던 이재명도 선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좌파적 교리로 중무장한 크라우스에 비하면 이재명은 질적으로 한참 떨어지지만 '생각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사이다 발언이 위대한 정치철학처럼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급진적 사회주의자 목수정에게도 이재명은 비슷하게 다가온 것 같고요.



목수정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후보자토론의 주제(국방·외교)와 한국적 특수성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문재인 후보가 특전사 시절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는 이유로 '치졸한 우클릭이다. 전략이건 신념이건 내 알바 아니다'라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촛불집회까지 들먹이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는 목수정의 글에서는 자신이 밀었던 이재명을 탈락시킨 증오 이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목수정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다양한 시민들의 한 명에 불과함에도 자신이 촛불집회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는 것에서는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먹고사는 선동가의 레토릭만 번성했습니다. 정당한 군복무를 군발이와 등치시킴으로써 전두환에 대한 국민적 증오를 이용한 목수정은 정의와 가장 가까운 감정인 분노보다는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파멸시켜야 풀리는 증오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혁명가가 아닌 선동가라는 것만 증명했을 뿐입니다.       

  




사실관계가 없었고, 선동적 레토릭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논리적 비약으로 점철된 목수정의 이번 글은 인지부조화의 근원인 확증편향의 오류로 치닫습니다.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던 인사 중 일부의 과거전력을 트집 잡아 전체를 비난하는 '자연주의 오류'에 빠진 목수정은 문재인 후보를 이승만과 등치시킨 다음 전두환으로 치환시키는 광기까지 보여줍니다. 일부의 사실로 전체를 호도하는 목수정의 논리적 비약은 작가라는 상상력의 산물일지언정 증오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입니다. 



목수정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푸코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성찰에 반대를 표명함으로써 유명해진 '프랑스 페미니즘'이 90년대를 지배하면서 여성인권을 꾸준하게 개선해왔던 페미니즘을 부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반사회적인 무엇으로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행태를 심상정을 지지하고 문재인을 저주하는 것으로 재현했습니다. 목수정이 이재명의 탈락이 확정된 시점에서 그와 이념적으로 가장 가까운 심상정을 지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폭력적 레토릭과 증오 유발은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는 구좌파의 한계를 넘치도록 드러냈습니다. 





이재명의 후원회장이었던 목수정은 이재명과 안희정의 네거티브와 마타도어(프랑스에서는 너무나 흔한 방식이라 목수정에게는 이재명과 안희정의 행태가 당연했을 것) 때문에 후보 네 명이 맥주타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다고 한탄했던 젊은 소설가처럼, 현실정치를 소설로 생각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목수정의 이번 글은 경선에서 배제된 것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정치권 전체로 넓히는 어마어마한 논리적 비약을 보여줌으로써 글의 진정성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습니다.



제가 아는 목수정은 경향신문 칼럼 몇 개와 엔티엔 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을 번역하면서 그 앞에 썼던 짧은 글(땅콩회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한 대한항공 직원과 노조의 행태가 자발적 복종에 해당한다며 설득력 있게 비판한 글)밖에 없지만,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가 실패한 이유를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과 『인간적인 길』 등의 저작들을 통해 살펴본 필자이기에 목수정의 주장에도 동의하기 힘듭니다. 



미테랑 사회당 정부는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보다 슈미트 정부에 가까운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절반의 실패라면 인정하겠지만, 수정된 케인즈주의마저 실패가 분명해 보였던 그래서 신자유주의 광풍을 막을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목수정의 평가는 어설픈 정치학자를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경제학이 정치학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변방의 경제학이었던 신자유주의가 주류경제학으로 자리잡은 과정은 『불경한 삼위일체』를 참조할 것).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수많은 석학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목수정의 주장은 토니 블레어 정부에나 적용하면 그나마 낙제점은 면할 정도입니다(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를 비판한 책은 대니얼 롤링의 『불의는 무엇인가』를 참조할 것). 





프랑스적 경험과 한계에 빠져있는 목수정이 이재명의 후원회장을 한 것은 둘의 지향점이 구좌파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한 조합이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토해낸 목수정의 글들은 소설이나 쓰면서 지냈으면 좋았을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재명을 옹호한 위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목수정은 단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봅니다. 이재명이 거대 팟캐들과 기득권 언론의 침묵 덕분에 당선됐음에도 사실관계를 정반대로 적시한 것이 그녀의 확증편향적 오류가 얼마나 심각한지 말해줍니다.  



현장을 경험해본 경험이 없을 목수정이 극단적 이데올로그로써 제멋대로의 스피커를 가동할 수 있음도 진보매체의 후진성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원론적 민주주의(조직으로써의 정당과 이념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당정치)를 고집하는 최장집 부류가 현실정치에서는 실패를 거듭하는 것처럼, 진보적 자유주의를 모태로 하는 시민주권 행동주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목수정도 '말의 양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구좌파적 선동가이자 급진적 이데올로그에 불과합니다. 



해서, 소설가로써의 목수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재명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목수정의 페이스북 글들을 활용하는 것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목수정의 페이스북 글들을 보면 정치적으로 포장해 대중을 속이는데 성공한 이재명의 실체와 미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해피엔딩으로 귀결된 동화와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에서 현실이 시작된다는 말은 대단히 진부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대단한 울림을 줍니다. 문프의 등을 꽂을 확률로 따지면 이재명은 내부의 적이며,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저격수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그림이의 이구아나 2018.06.17 06:29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마녀 2018.06.17 10:33

    일방의 주장에 불과한 10년전 연애사건이라니...얼마전까지 방송에 나와 미투를 설파하던 자가 등일인이 맞나 의심스럽군요..
    저런 이중적 행태가 사회적 동의를 얻기는 어렵겄네요.

  3. merryjanet 2018.06.17 12:35

    미국이나 아시아와 달리 프랑스에서 국내 사정을 그리 세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저 단순히 민주노동당원이었던 목수정이 민주당내 특별한 기반도 없는 이재명의 선동적인 돌출행동,
    언뜻보면 극렬진보주의자 같은 오해를 할 수 있는 일면을 보고 이러저러한 기회가 닿아
    이재명 후원회에 발을 들인 게 아닌가 싶은데 제가 무지해서 단순하게 치부해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만,
    목수정이 뭐 그리 영향력이 지대한 사람이라고 이재명의 악행전력이 덮어지겠습니까.
    목수정 키워주지 맙시다.
    그리고 이재명의 crimes 는 제대로 punishment 처리해야 할 것이고 경기도주민들은 재선거 혹은 보궐선거를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8.06.18 23:40 신고

      이재명 같은 자들이 정치권에 많을수록 권모술수와 정치공작이 너무 많아집니다.
      촛불혁명이 바란 나라는 이런 자들이 없는 나라인데......

  4. 2018.06.17 21:11

    비밀댓글입니다

  5. 과유불급 2018.06.18 15:43

    이 정치인이 어떤사람인가? 하는 답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현재 남기고 있는 짧은 글귀나 과거에 남겼던 글들을 찾아보면 대충이 아닌 명확한 답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절대 안된다!!!" 는 확신을 서게 하죠. 목수정! 노골적 고소,고발 경기지사의 빠! 과거 민주 경선때 문통에게서 승만이 그림자를 봤다고 그에게 표를 줄봐엔 차라리...

    휴지조각 하나가 쓰레기장을 만들고 자가증식을 하게 됩니다. 도덕적 문제로 치부하기엔 돌이키기 힘든 골치거리로 낙인 찍혀버린 경기지사 극열지지자들은 타인에 대한 냉정한 비판보단 정확한 평가를 먼저하였으면 좋으련만... 너무 가버린 느낌입니다.

    내부 총질을 할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가를 그러한 지지자들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트로이의 목마!!!

    • 늙은도령 2018.06.18 23:38 신고

      정의당에서 자신에 맞는 일을 해야지 왜 민주당에 와서 지랄을 하는 것인지.....
      답답하네요.

  6. 가을 2018.11.08 12:44

    이제서야 이글을보네요

    그냥 문재인빠냐

    이재명 빠냐 그차이

    팬덤문제


신좌파는 평등한 배려를 거부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이상으로서의 평등을 거부한다면 이는 평등한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의 특별한 해석만 거부하는 것이다. 신좌파가 생각하는 구좌파의 평등에 대한 견해는 각각의 시민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을 하든지 말든지 또한 어떤 일을 하든지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들이 동일한 재산을 갖는 것이며, 정부는 항상 개미에게서 떼어내서 배짱이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평등을 정치적 이상으로 진지하게 제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단조롭고 무분별한 평등은 단순히 약한 정치적 가치 또는 다른 가치들에 의해서 쉽게 무시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아무런 가치도 아니다.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근면한 사람들의 생산물을 보답으로 받는 세계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은 없다(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은 마르크스적 구좌파들의 꿈인 결과의 평등이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허구적이고(칼 폴라니, 미셀 푸코, 한나 아렌트, 존 롤스,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등의 수많은 석학들에 의해 비판받았다), 공정과 공평을 추구하는 정의의 관점에서는 수용되지 못함을 웅변해줍니다. 사회주의 실험이 모든 국가에서 실패로 끝난 후 인간의 본성을 수용한 정치철학은 정의를 실현하는 정치(국가와 함께 마르크스가 부르주아의 산물이라며 없애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노자와 비슷하게 최소한의 행정만 인정했다)에 집중하게 됩니다.



인간과 정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했던 마르크스의 교리에 따르면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헤드트릭을 기록한 호날도와 지금 아이슬란드와 경기를 치르고 있는 메시의 연봉이 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한 수많은 선수들과 똑같아야 합니다. 한 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한 노동자와 15세 견습노동자의 연봉도 똑같아야 합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3권에서 '한 사람의 발전이 모든 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세상인 '자유의 왕국'에 이르려면 결과의 평등(노동자의 폭력혁명으로 달성된다)은 절대조건입니다. (인간의 뇌가 초인공지능으로 연결된 세상이라면 이런 세상도 가능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제거됩니다.)  



극소수 학자들은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에 그런 내용이 한 번씩 나온다고 하면서) 마르크스가 노동의 질적 차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ㅡ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교리는 무너진다ㅡ그를 신봉하는 마르크스적 구좌파들은 노동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폭력혁명을 통해 완벽한 평등을 이루어야 '자유의 왕국'에 이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도덕과 정의가 부재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목적의 숭고함 때문에 과정의 폭력성과 부정의를 외면하는 구좌파와 기득권을 부정하는 신좌파가 구별되는 핵심적 차이가 이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이 그의 사상을 현실의 혁명과 정치에 적용하려니 쓸모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며 그만의 수정을 가한 것처럼, 그리고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듯이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는 마르크스의 추상화가 정치철학적 가치 이상을 갖지 못함을 말합니다. 마르크스적 이상향에 제일 가까운 나라들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아니라 노르딕 모델을 꾸준하게 발전시켜온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습에 모델의 상당 부분이 흔들리고 있는) 북유럽국가인 것도 노동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경제와 복지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마르크스는 폭력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다며 복지 확대에 반대했다).





모든 노동자가 마르크스의 교리를 완벽하게 소화하지 않는 한, 루소가 '시민 모두가 신이라면 완벽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실험은 '정부-기업-노조(구좌파가 핵심)'라는 기득권 체제로 귀결됐습니다. (유럽의 경우 마르쿠제와 기 드보르, 카치아피카스 같은 학자가 논리를 제공, 미국에서는 C. 라이트 밀즈 같은 학자가 논리를 제공한) 신좌파가 68혁명(유럽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주축, 미국은 대학생이 주축)을 일으켰던 것도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다는 '정부-기업-노조'라는 삼각동맹이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좌파의 68혁명은 일체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성(원래는 폭력적이지 않았으나 정부가 폭력성을 유도했다) 때문에 차원 높은 민주주의를 꿈꿨던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대단히 보수적이서 수구세력과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온) 구좌파까지 포함된 기득권의 반동에 의해 철저하게 진압돼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런 역사적 배경 하에 탄생한 새로운 정치철학으로 롤스와 하버마스, 드워킨과 샌델이라는 두 개의 부류로 발전했습니다(경제철학으로 넘어가면 전자는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는 보수적 시장경제를, 후자는 국가의 개입을 찬성하는 진보적 시장경제을 지향한다). 



'아메리칸 드림'보다는 '유러피안 드림'에 가까운 진보적 자유주의는 미국의 신좌파가 구체화하는데 실패한 참여민주주의를 한국정치에 도입한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입니다(유시민은 경제적으로는 신좌파적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다). 노통과 문프의 인사와 정책이 자유지상주의와 구좌파적 평등주의로 기울지 않은 채 좌우를 넘나든 것도 이 때문이며, 거대 노조보다는 개별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며 급진적 사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목수정 작가가 사이비 기본소득·청년배당·무상복지 등을 떠들어대며 대중을 선동하는 이재명을 자신의 사상적 기반에서, 섹스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관대한(또는 지저분한) 프랑스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현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재벌에 대한 증오와 광기로 가득한 관념주의자의 입장에서 (재벌과 재벌체제가 다르다는 헛소리를 남발하며 재벌과 싸운다고 설레발을 치는) 이재명을 일방적으로 옹호한 목수정의 궤변이 노통과 문프에 비판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관계가 모조리 빠져있는 프랑스 페미니스트의 헛소리



노통과 문프는 기본적으로 진보적 가치에 무게를 두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개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이상도 공유합니다. 조세정의에 의한 재분배도 중시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폭을 대폭 늘렸고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유지할 것이지만, 인상의 결과가 최하위 노동자보다는 그 위의 노동자에게만 이익이 집중되고, 기업의 부담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최저임금법의 일부라도 개정해 바로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를 만족시킬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에 원래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가 나오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공정한 정의를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철학입니다. 일체의 폭력을 거부한 촛불혁명의 저변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철학이 깔려있었고요. 기득권 노조를 대변하는 구좌파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이재명이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든 것도, 경기도민 중 3040세대 남성이 그에게 몰표를 준 것도, 같은 구좌파인 목수정이 그를 옹호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이재명이 중상위층이 몰려있는 성남을 정치의 기반으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며, 그의 청년배당이 중상위층을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최하위층을 대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에 반대한다).



제가 문프의 등에 칼을 꽂을 확률이 너무 높고 폭력적인 구좌파를 대표하는 이재명을 거부했던 이유도 구좌파의 역사와 주장, 오류, 한계, 위선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김부선의 인권 유린과 그밖의 의혹들에 대한 이재명의 대응이 도덕과 정의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다수의 경기도민이 기권을 선택했다고 말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구좌파적 이해만 대변한 이재명의 반대와 민주노총의 폭력적 유세방해를 비판했던 것처럼. 



다만 정치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최대한 쉽게 압축적으로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 글이 어려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능력 부족을 의미하기에 독자분들과 트친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며, 다음 기회에 다른 글로 부족한 부분을 풀어보겠습니다. 강의의 형태면 모든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자신이 있는데 저의 힘만으로는 그런 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것을 이해해주십시오(양자역학이 물리학의 중심이 되면서 과학계에서도 역사결정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논외로 밀려났거늘, 아직도 마르크스라니.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을 철학자나 사회학자의 관점이 아닌 기술공학적으로 접근하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유의 왕국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erryjanet 2018.06.17 12:23

    먼저, 너무도 부족한 제 식견으로 선생님의 글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시간있을 땐, 잘 읽으면서 이해해보려고 애씁니다.
    목수정....그 여자가 파리를 나와 서울, 아니 부천주민이던가... 거기서 한 일 년만 아니 한 달만 살면서 제대로 파악만 한다면
    이재명을 결코 지지하지 못하리란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신 것처럼 프랑스에 거주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언뜻 약자의 편에 서서 거대 세력에 맞서는 것처럼
    보여지기만 하면 일단 우호적이잖아요. 이재명처럼 민주당내에서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마치 홀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니까.
    재작년 꼭 이맘때, 파리에 한 달 이상을 머물렀었는데 (교포들은 못만났고 그곳 시민운동하는 분들 ㅡ 하긴 프랑스는 거의 모든
    시민이 시민운동가로 보여지더군요) 우리보다 더 세월호참사에 대해 분개하더군요. 막대한 보수정권이 힘없는 서민이 사는 동네의
    학생들이 아주 낡은 배로 수학여행 가는 길에 참사를 당했는데 진상도 밝혀내지도 않고 당시만 해도 2년 이상을 그렇게 바다 속에
    수장된 채 있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고,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마침 당시에 파리를 방문한 박근혜에 대해 반대시위가 제법 눈에 띌 정도였는데 목수정씨도 선봉에 섰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목수정의 눈에는 이재명이 거대 민주당 내에서 홀로 버티는 약자로만 보여지는 모양입니다.
    사실은 민주당 배경을 이용해먹는 아주 비열한 인줄도 모르면서...
    자신의 친형 뿐 아니라 시민운동가 김사랑씨에 직권남용으로 강제정신병원 감금시킨 만행이나
    성남FC 를 통해 160억 금품 수수 혐의 등을 상세히 찾아서 알아봤다면 결코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싣지는 않았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목수정씨는 파리에서 흔한 그저 '생활좌파'로 보여지고, 이재명 지지자인 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지지를 철회한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닐까요?

    • 늙은도령 2018.07.01 14:00 신고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목수정이 그것도 모르면서 이재명의 후원회장을 했을 리 없습니다.
      프랑스 정치인들의 부패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세월호참사도 이재명이 일으킨 것이 아니니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욕하지 않은 것이 프랑스, 아니 유럽의 좌파들입니다.
      목수정은 글재주는 좋지만 딱 거기까지만 입니다.



130년 전통의 이화여자대학교를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비정상적인 대학으로 전락시킨 최경희 총장이 전격 사퇴했다. 공정과 공평, 상식과 원칙을 외치는 이대생의 분노한 소리에 불통과 편법, 탈법의 최경희가 (물러날 때도 지저분한 변명을 늘어놓은 채) 꼬리를 내린 것이다. 양심과 정의, 공정과 평등을 향한 이대생의 분노가 반칙과 특권의 무한폭주에 제동을 거는데 성공했다.    





지난 총선에서 드러난 분노한 민심에도 불과하고 비선실세와 환관의 탐욕에 놀아난 박근혜는 이땅의 청춘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채와 절망만 떠넘겼고, 이대 총장이 이런 역주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니 이대생의 분노와 저항은 너무나 당연했다. 공정과 공평이라는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이대생의 투쟁은 수많은 공명을 일으키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마침내 불통의 총장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권력에 맞서 투쟁의 지평을 넓히라는 푸코의 성찰을 떠올리는 이대생의 투쟁은 불의하고 초법적인 정권에 맞선 첫 번째 승전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반칙과 특권, 불통과 독재에 저항한 이대생의 투쟁은 교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수많은 시민의 가슴과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백남기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경찰의 야만적인 진압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 실현을 위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액체근대》에서 자본주의가 극단에 이른 21세기의 지배적 체제(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가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내부로부터 무너져내리지 않고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물과 같은 형태로 변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대생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며 유연하면서도 끈끈하게 이루어진 투쟁은 상위 1%가 독점하는 '액체근대'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투쟁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대생의 투쟁이 지나칠 정도로 교내 문제에만 매몰된 '그들만의 이익 추구'라고 비판했지만, 권력이라는 속성이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삶의 모든 국면에서 작용하는 것이기에 '그들만의 이익 추구'가 공정·공평·평등·상식·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의 투쟁은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대생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극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돌아가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할 때 어떤 권력도 정당성을 유지할 수 없다. 





이대에서 이룬 희망의 승전보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고 폭발력이 있는 것은 그들이 거둔 승리에 담겨 있는 민주적 연대와 절차적 공정, 합의의 수평성, 자발적 저항 등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의 성찰처럼, 이대생은 깨어있었고 자발적으로 저항을 조직했고 민주적으로 투쟁했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자발적 복종'에 들어선 수많은 시민들에게 이대생은 승리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성주군민의 사드 반대 투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대생의 투쟁은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위대한 여정의 출발점이다. 세월호참사와 백남기씨 사망처럼 진상규명이라는 거대한 벽이 남아있지만, 이대생이 보내준 아름다운 승전보를 비선실세와 환관들의 불법·탈법·초법으로 얼룩진 반칙과 특권의 청와대로 가져가는 것은 우리의 모두의 몫이다. 



시민의 권리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살인경찰과 정권 안보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정치검찰, 초법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정원,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쓰레기 언론들은 우리의 행진을 막을 것이며, 종북몰이와 색깔론, 선동정치를 빼면 부패와 비리만 남는 새누리당이 거대한 벽을 친 채 우리를 막을 것이지만, 유신시대의 헬조선으로 퇴행한 대한민국을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이대생의 투쟁이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적극적 실천이었기에, 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을 번역한 목수정 작가의 '작가 서문'에 나오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현실으로 이번 글을 끝내고자 한다. 자발적 복정에서 벗어나 능동적 저항을 이끌고 있는 해시태그는 정권교체의 그날까지 당연히 계속된다. #그런데 최순실은? #게다가 차은택은? #그리고 우병우는? #그래서 정유라는? #무엇보다도 박근혜는?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땅콩회황’사건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동료를 대신해 오너의 딸의 행패에 원칙대로 대응한 사무장을 지지하기 위한 대한항공 동료들의 그 어떤 집단행동도 없었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한항공 직원들은 깊이 침묵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발길에 차이고 짓밟혀도 더 굳건한 충성을 바칠 뿐이라면, 계속 밟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 사건을 화제에 올렸던 모든 대화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대목은, 대한항공 직원들은 왜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받아들였는가였고, 홀로 회사에 맞서게 된 사무장을 지지하기 위한 파업이 없다는 지점에서 그들은 바로 그 해답을 찾았다. 한국판 재벌 자본주의가 빚어낸 이 슬픈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단 한 사람, 박창진 사무장만이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며 서 있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왜누리안티 2016.10.19 19:00

    그래도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무능한 정권과 왜당 놈들, 게슈타포와 정치검찰, 어용언론과 관변단체들이 불법·탈법·초법을 통해 최후의 수단과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테니까요.

    • 늙은도령 2016.10.19 22:05 신고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공무원들도, 즉 정치검찰과 폭력경찰, 국정원에서도 다음 정부에 줄을 대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세를 몰아 내년 초중반에 박근혜를 하야시키거나 식물대통령으로 만들면 지난 대선 같은 일은 일어나기 힘듭니다.
      압도적인 정권 교체 열망에 맞설 수 있는 자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님처럼 항상 경계하며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2. 2016.10.19 20:3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10.19 22:08 신고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태민이나 최순실, 정윤회를 능가하는 자를 추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멍청한 박근혜를 두고 조금 머리 좋은 자들이 난리를 친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뒤에 누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사람을 추측해내기가 힘듭니다.
      제3의 인물.... 가능성은 20~30% 이하로 보입니다.
      단 한 명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김기춘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좀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추론을 펼칠 자료가 너무 부족하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0.20 08:12 신고

    점점 최순실의 실체가 드러 나고 있습니다
    허수아비를 조종하는 인간이라는것이..

  4. 맹그로브 2016.10.20 09:40

    이대는 총장만 사퇴하면 끝나는 일인가요? 정유라는 자퇴인가요? 퇴학처분인가요?

    • 동우 2016.10.20 13:50

      정확한 팩트는 알수 없지만, 관련 기사 링크로 올립니다.

      http://www.amn.kr/sub_read.html?uid=26041&section=sc4

    • 늙은도령 2016.10.20 15:25 신고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대교수과 학생들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하니까요.

  5. 형형한눈 2016.10.20 23:48

    이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할일을 해가면서 자신들과 관련된 부당한 속물적학교사업의 문제네 대해 이화의정신과 명예를 걸고 평화적 투쟁을 한 것이 막연히 근거도 명확히 내세울 수 없는 정치문제에 대해서 투쟁하는 것 보다 명분이 뚜렷하고 현명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비리의 냄새에 접근하여 투잴하다보니 그와 관련된 입학비리 학점비리까지 다 알게 되어 더 큰 대의명분으로 싸울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정치까지 영향을 미쳐서 국민들이 잊지 않게 하고 마음을 울리고 교수들까지 움직이고 사법처리까지 하자는 목소리를 계속 높여갈 수 있게 된 점 그 이상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잊지 않고 울림을 일으키는 역할을 해주는 것에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 늙은도령 2016.10.21 02:37 신고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이대생은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해냈습니다.
      이대생의 투쟁은 전 세계 정치사회학자들에게 대단한 연구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 참여한 이대생을 만날 수 있다면 책을 집필할 때 녹여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자랑스러운 이대생입니다.

  6. 애쉬버튼그로브 2016.10.21 01:34 신고

    선생님 정말 좋은 글입니다. 자주 들러야겠어요. 앞으로도 날카로운 통찰력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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