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와 경제의 실패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이 풍요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결핍인 시대가 도래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광고의 홍수와 제품의 풍요 속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만족을 늦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소비 촉진을 위해 방임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졌으나,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됐다. 넘치는 자유는 국가와 사회의 구제가 사라진 것에서 대신 주어진 것이라 그들의 삶을 옥죄었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조차 박탈당한 1030세대들은 잉여를 넘어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에 두려움과 순간에 집착하는 성향 사이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란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당연시 여기고, 적자생존의 승자독식을 인정하는 정글 같은 사회였다. 민주주의에 익숙하지만, 일정 수준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주어져야 민주주의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상충됐다.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혜란 빛의 속도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업데이트되는 현실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심지어 “2010년 현재 40세인 사람이 어떤 문제의 원인 발생이 시간적으로 자신이 태어나서 40년 전에 있었고, 그 해결책이 그가 죽은 후에 실행되기 때문에 자신은 원인 발생은 물론 그 해결책에도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그런 문제에 대한 책임이 귀속”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대지의 사막화와 물 부족 사태 등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 그들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앞 세대들을 모두 욕하자니 지금 누리는 자유와, 바로 그 감당하기 힘든 자유 때문에 저임금의 자리마저 날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줄어듬에 따라 체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사회경제적 결핍에 대한 서열에 민감하면서도, 이를 내면화해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기도 보다는 그 안에서 사는 법에 적응해야 했던 이들은 앞선 세대가 남긴 것들로 하여 ‘최초의 저주받은 세대’로 원치 않는 정체성을 구축해갔다. 이들이 해체된 가족과 더 이상 손을 잡아주지 않는 사회, 원천봉쇄된 기회와 철저히 차별화된 삶을 내면의 분노로 쌓아가면서, 신빈곤층을 형성한 채 디지털 세상을 배회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목인으로 변화해갔다.



이런 이중, 삼중의 박탈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묶어 ‘지배의 변증법’을 만들어낸 전 지구적 특권그룹의 무제한적인 탐욕에서 나온 결과다. 부와 기회와 권력은 최상층부에 쌓이고, 빈곤과 차별, 위험은 중하위층에 쌓여서 그 간격이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짐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유목민이 탄생했고, 이는 문명 이전의 유목민이 그들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폭주하는 기차를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 달랐다.



이렇게 수많은 패자ㅡ앞선 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ㅡ를 양산한 채, 전 지구적 독점자본과 초국적기업으로 성장한 세계적 특권그룹은 폭주하는 기차의 속도를 광속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모조리 털어내고 있다. 그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준 ‘무거운 경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자, ‘가벼운 경제’로 변신하기 위해 지금까지 유효했던 사회적 계약들을 무효화하며,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변신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500개 초국적기업이 축적한 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133개국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커켰고, 전 세계 총생산량의 52%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고용은 전 세계 노동력의 1.8%에 불과할 만큼 형편없어 부의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 0.1%의 슈퍼리치는 무려 전 세계 자산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슈퍼리치를 1%로 넓히면 45%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이런 부의 독점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극소수의 부의 독점의 역사였다. 





이제 본사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몇 번이나 걸러지고 추려져 별도의 왕국을 구축한 1%는 ‘우리-집단’에 들지 못한 99%의 ‘그들-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집단’이 전복적 혁명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의 부스러기만 흘려줄 뿐, 미래의 독점권을 현재의 시점에서 선점하고 있다. 그들의 탐욕이란 ‘종의 기원’을 넘어 신의 권능을 지닌 악마의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1%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NGO와 국제기구의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무조건적인 기부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들은 1%를 대신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단기적인 지원과 인류애로 포장된 의료행위나 봉사활동을 수행함으로써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은, 이들이 전 세계에서 보내진 구호품을 온갖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들을 양산하는 것도 모자라, 1%만이 거래할 수 있는 폭력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서들을 보면 전체 구호품의 15~20%가 통행세 명목으로 지역 출신의 범죄조직이나 용병들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이것을 팔아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고 조직원을 늘리고 훈련시켜서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인도주의사업에 가담하는 것을 넘어 각종 테러를 양산하고, 빈곤을 이용해 내전을 일으키는 등 폭력시장의 규모를 급속도로 늘려나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주도하는 폭력시장의 규모가 수조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서들이 속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40년 만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사를 통해 경고했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거대한 군사 조직과 대규모 방위산업체 간의 결합은 미국에겐 생소한 경험이다. 그 전체적인 영향력, 즉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는 정신적 영향은 모든 도시, 모든 주의 의회, 연방정부의 모든 기관에서 느껴진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내포된 중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노력, 자원, 생계 모두가 관련되어 있고, 사회의 조직 또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획득하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잘못 주어진 권력의 재앙적 번성은 이미 시작되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폭력시장은 이제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국제적 불평등에 기반해 빠른 속도로 시장규모를 늘리며 전 지구적 위협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자유방임적 시장논리에 따라 돌아가면 어떤 결과가 파생되는지 폭력시장의 기하급수적 확대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도 이런 면에서 보면 폭력시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전 세계를 경제대공황으로 몰아넣어 수없이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사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공동체와 가족을 해체하고, 수많은 자살과 죽음을 몰고 온 신용붕괴는 그 범죄를 주도적으로 행한 세계적 특권그룹에게 면죄부를 발행한 것을 넘어, 그 밖의 모든 사람들과의 소득 차이를 최대한 벌려놓았고, 탐욕의 질주를 하는 동안 금융산업 내부에 축적된 각종 위험요소들을 어마어마한 공적자금(현 세대의 세금)과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미래세대의 부채)로 해소한 것도 모자라, 폭력시장(민간이 주도하는 전쟁과 테러)이라는 새로운 먹거리까지 창출하는 4중의 성공을 거뒀다.







2008년의 신용 대붕괴와 그것이 초래한 세계적인 경제대침체는 거대 금융(투기)자본과 초국적기업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거운 경제들을 털어내는 구실로 작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구실로 작용했다. 부정적 세계화의 결과인 신용 대붕괴는 범죄 당사자인 전 지구적 특권그룹으로 하여금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내며 가벼운 경제로 이행하는 시기를 앞당겨주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는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지며, 비정규직 시장으로 진입하는 노동자의 수가 대폭 늘어나고, 생존선 밑으로 떨어진 사람들 간의 저임금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짐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기대하기 힘들며, 인류가 수백 년의 투쟁을 통해 거둔 노동자의 권리마저 무시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소득원이 사라짐으로써 가족의 해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생계형 이혼도 늘어나고, 그 동안 참고 버텼던 각종 질환도 증가하고 정신적 질환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십대의 범죄와 임신율과 낙태율이 증가하고, 은퇴자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아지고, 저임금 일자리와 한정된 복지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사에서, 무섭게 부상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오른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네트워크를 걱정했듯이,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지배그룹인 1%가 하는 일들은 모두 다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 영감 2014.08.27 12:33

    다음 블로그에 작성하신 좋은 글을 보고 티스토리까지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끝없는 거품으로 치닫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보면서
    결국 한번에 터져버릴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유명한 동화가 있습니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거대한 기둥을 향해 위로 끊임없이 올라가는데 결국 정상에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님께서도 병마와 싸우시면서 최소한의 돈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경쟁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빨리 인구가 줄어서 인간의 가치가 좀 올라가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의학이 발달해서 노년인구 비율이 자꾸 올라가니 인구 구성이 조정되려면 꽤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 선진국들은 나름대로 돈구멍이 다 있습니다. 조상을 잘둔 덕이지요
    우리나라는 돈되는 자원이 거의 없는 인구만 많은 나라이니 수출경제로 대외의존도가 높아서 신자유주의를 버릴 수가 없지요.
    계속 이민을 보내서 자급자족 수준의 소규모 국가로 가야되는데
    그러면 국력이 약해져서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에게 먹힐 가능성도 있으니 참 답이 안나오네요.
    북한처럼 꽁꽁 잠궈도 결국 망하지요. 조선말 쇄국정책으로 망해봤잖아요.
    남한은 개방해서 거품으로 위태롭고 북한은 잠궈서 망해가고
    참 답안나오는 처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7 19:26 신고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강해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의 경쟁력은 높은 편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된 분배정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럽의 부국들은 자원이 없는 곳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의 발전도 2차세계대전 이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위주의 경제 때문에 내부에 상당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부국들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영국이나 독일처럼 금융에 올인하거나 제조업에 올인한 나라들입니다.
      나머지는 분배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보다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면 내수시장이 살아납니다.
      전 세계적으로 5천만 정도의 시장을 가진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까지 하면 선진국의 기본 조건인 내수시장이 형성됩니다.
      북한은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그들은 국민을 희생시켜 국방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것은 실패한 국가의 전형이기에 우리의 도움을 뿌리칠 수 없고, 그 정도 수준에서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합니다.
      인구는 경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도권 위주의 자본주의를 지방으로 펼쳐나갈 수 있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 잘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부의 불평등을 줄여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치르는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정치권이 조세정의만 확실히 하면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를 보면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불확실성이 극에 다른 시대인지를 알 수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는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갤브레이스는 주로 주류 경제학의 입장에서 시대의 혼란을 얘기했다면, 바우만은 종합적 차원에서 시대의 혼란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홀로코스트와 현대성》에서 18~19세기의 근대이성이 창출한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현대성의 문제를 성찰한 바우만은 《액체근대》와  《유동하는 공포》를 통해 인류의 현대성이 어떤 상태에 이르렀는지 뛰어난 성찰을 보여줬다. 특히 바우만의 상징으로 자리한 《액체근대》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함께 현대를 종합적인 차원에서 파헤친 탁월한 성찰들로 가득하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런 수준의 성찰에는 절대 이르지 못한다.  



바우만이 현대의 특징으로 액체를 선택했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격언, "모든 견고한 것들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견고한 체제를 구축하며 무섭게 질주하지만, 노동생산성이 발달할수록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 때문에 견고한 체제가 내부로부터 녹아 무너지며, 최후에는 기체처럼 자본주의의 체제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은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 중에서 모순과 오류가 있는 부분들은 제거한 채 자본주의라는 견고한 체제가 녹아내려 물처럼 유동하는 상태로 바뀐다고 주장했다. 부정적 세계화가 구축한 전 지구적 시장이란 첨단산업으로부터 1차산업과 소작농 및 물물교환까지 거의 모든 경제 형태가 하나의 액체 덩어리처럼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견고한 체제가 아닌 유동하는 특징이 있는 불확실한 체제의 형태로서. 



오늘날의 상황은 선택하고 행동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혐의를 (옳게 혹은 그릇되게) 받고 있는 족쇄와 사슬이 근본적으로 녹아버린 데서 발생했다. 질서의 경색은 인간 주체의 자유가 만든 인공물이자 침전물이다. 이 경색은 '브레이크를 푼' 전반적 결과이며 규제 철폐, 자유화, '유연화', 증가된 유동성, 재정·부동산·노동시장을 풀고 조세 의무를 덜어준 결과이다. 



결국 바우만의 성찰도 미국식 신자유주의(무정부적 자유주의) 40년이 장구한 세월 동안 구축돼 왔던 긴밀히 얽혀 있고 상호 이해관계로 단단히 묶여 있던 관계들이 모두 다 무너져버린 데서 출발한다. 공간적 거리를 속도로 극복해버린 전기·전자·정보통신 기술, 제품의 소형화에 성공한 무게 없는 제조업, 거대한 선박을 대체하기 시작한 비행기와 고속열차, 자동차 등의 등장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체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중후장대한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 시대에는 자본과 노동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했지만, 자본은 노동이 필요했고, 노동은 자본이 필요했다. 이들은 하나의 틀 안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거대한 공장을 중심으로 '역사와 자본, 경영과 노동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좋던 싫던 무한한 진보와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처럼 결속되어 있어야 했다. 


                                                             사물인터넷의 세계



하지만 혁신과 향상, 진보를 뜻하는 것이 '더 작고, 더 가볍고, 더 쉽게 이동 가능한 것들'을 뜻하게 됨에 따라 자본은 더 이상 노동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가 도래함으로써 20세기까지의 근대성이 현대성으로 변환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자본은 여행가방에 서류케이스, 휴대폰, 노트북, USB, 현지 법인만 있으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어디로든 가볍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잠시 머물 수 있고, 필요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그것은 강제적이고 강박적이고 지속적이고 멈출 수 없는, 영원히 미완에 그치는 '근대화'이다. 창조적 파괴(혹은 이 경우에는 파괴적 창조이기도 한)를 향한, 저항하거나 근절하거나 가라앉힐 수 없는 갈증이다. '새롭고 향상된'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개간'하는 근대성, '해체' '제거' '단계적 폐지' '합병' 혹은 '대규모 감원'의 근대성, 이 모든 것은 미래에도 똑같은 일, 즉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력을 확대하기 위한 힘이다.



이런 현대성의 목표는 근대성의 목표와 다르지는 않다. 단지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 그 방법론과 존재론이 달라진 것이다. 방법론은 가벼운 경제의 본성인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다. 존재론은 견고한 체제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다 끊임없이 유동하면서도, 어떤 견고한 것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액체의 특성을 지닌 체제로 변함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우리의 존재 방식과 근대적 형식의 변환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의 분업화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든 포디즘과 세계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포스트포디즘의 세계적인 생산체제 분업화가 만들어낸 중후장대한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가 막을 내리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인터넷과 SNS처럼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파편화된 대중이라는 고전적 의미를 넘어 소비하는 시민으로서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적 개인으로 변질됐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


                                                       ㅡ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용




삼성전자의 어닝쇼크에서 보듯 초국적기업들의 문제는 미래의 먹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발전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음은 애플의 혁신이 사라졌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최근에 들어 후발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시장을 조금씩 나눠가질 뿐 인류의 성장을 견인했던 기존의 제조업을 대체할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3D프린터와 유전공학 등이 기존의 제조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물보다 싼 석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규모 생산과 소비를 대체할 수 없다. 이를 테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처럼, 가벼운 경제가 무거운 경제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한 《롱테일 경제학》도 프랙털 이론(아래의 P.S를 참조할 것)에 기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빅뱅의 순간ㅡ다음이미지 인용



지금까지의 성장을 견인해온 신용 창출(화폐경제에서는 돈이 돌아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이라는 것이 힉스입자가 만들어내는 전자기장에 의해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다. 신용 창출이란 어떤 경우에도 사후 결재가 뒤따른다. 즉,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줄기차게 실시하고 있는 무제한 양적완화가 인플레를 초래하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에 직면하는 것도 발행된 통화량에 비해 그것을 변제할 수 있는 담보(지불준비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경제학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본질적 결함을 치유할 수 없다. 완전시장이라는 유토피아는 마르크스가 추상해낸 자유의 왕국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산업혁명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뉴턴역학 및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절대적 신봉에서 출발한 근대이성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기본적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끝없는 신용 창출로 인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비극적인 종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지구라는 행성을 끝없이 찾아내 광속으로 공간이동을 할 때만 가능하다.


                                                 머니투데이에서 인용(단위는 억이 아니라 조입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인 자기조정 시장(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무한한 진보를 견인하는)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황폐화시키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도, 애플이 혁신도 한계에 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산을 지탱해줄 소비자의 소득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의 무한 창출이란 그것을 바쳐줄 수 있는 생산이 우선돼야 하는데, 지구의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개발의 후유증을 무한대로 품어낼 지구도 한계가 있다. 생산비가 저렴한 사이버 세상마저도 전기라는 에너지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 역시 천연자원의 사용이 있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라, 삼성전자나 애플, 구글 같은 초국적기업들이 무엇인들 검토해보지 않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어느 것인들 시도해보거나 고민해보지 않았겠는가? 미국이란 유일제국이 신자유주의로 갈아탄지 겨우 40년만에 국민들의 과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장기불황에 빠져들었으며, 중국이란 신흥제국이 개발도상국의 GDP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개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겠는가?



잠시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것 같던 브라질이 극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고, 과거의 영광 중 일부라도 재현하는 것 같던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한 것에서 보듯, 무한한 진보를 견인할 미래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와 미래세대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산업혁명(샌드라 핼퍼린의 《유럽의 자본주의》를 보면 산업혁명이 유럽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과대포장된 이데올로기임을 증명했다)이 일어난지 300년도 안 돼 지구는 한계상황에 직면했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토지사막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부터 죽어나가는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1970년대부터 실질적인 면에서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빚잔치에 불과했고, 물가가 오른 만큼도 인류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소비해왔고, 신상에 매달렸으며, 그러는 사이 내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선 주변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치했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 진보가 선사해줄 풍요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약도 계속해서 수정보완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것이 완만한 진보이던, 영겁회귀하는 윤회의 반복이던 공존과 상생을 위한 것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P.S. 《롱테일 경제학》의 핵심은 가우스의 종의 곡선에서 양쪽 끝으로 내려가 직선처럼 길게 늘어지는 부분(χ축에 근접한 부분)이 실제로는 더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1 대 99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우스의 종의 곡선으로는 첨단정보통신 산업경제를 설명할 수 없다며, 가우스 확률에서는 의미없는 부분으로 취급되는 부분의 경제가 첨단정보통신기술과 어우러져 무거운 경제(중후장대)를 가벼운 경제(경박단소)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때 주장의 근거로 대는 이론이 프랙털 이론으로, 이것의 핵심은 전체는 그것을 이루는 부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전체를 다 살펴보지 않고 부문만 살펴봐도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 프랙털 이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해안선들의 모양이나, 한 지역에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을 살펴보면 지구 차원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0과 1이라는 단 두 개의 비트로 무엇이던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처럼, 많은 투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에서는 변수가 적은 종 부분이 중요하지만,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에서는 의미 없다며 잘려나간 부분이 중요하며, 99%가 몰려 있는 이곳에서 미래의 먹거리가 나올 것이란 뜻이다.



실제로 가우스 확률은 양자역학이 나온 이래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변수가 적은 거대한 규모에서나 이용되고 있다. 가우스가 정립한 수학과 확률이론은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기술과 나노단위로 작동하는 첨단산업, 금융공학 등에서는 유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패턴을 발견하는 데는 가우스 수학은 무용지물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