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 타초경사(打草驚蛇)라고 아나? 성동격서(聲東擊西)는?


- 헐헐… 나를 바보로 아나.


- 그럼, 됐고.


- 응? 됐다고…? 아니,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 그것도 잘 두드리면 재미있지. 지금처럼.


- 허, 나를 갖고 놀겠다? 너의 그 얕은 준비로 내 천년을 대체할 수는 없지. 네가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해서 그것이 타초경사건 성동격서건 달라질 건 없어. 암. 자네가 이룬 일극무원결의 성취로는 안 돼. 무영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고.


- 정말, 그럴까? 확신하나? 자네의 수정 극본에도 결점이 없다고 믿고 있나, 아직도? 하하하, 그렇다면 뭐, 나라고 더 할 말은 없지. 두 연극을 동시에 무대 위로 올릴 밖에야.


- 극본이 탄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에 대한 자질과 연기력의 차이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자네의 연극은 너무 갖춰진 게 없어. 준비도 부족했고, 해서 한 무대에 올릴 것도 없지. 그 어떤 것으로도…


- 주인공의 인기를 넘어설 수 없다, 이거 아닌가? 자네의 말은?


- 더 말해 무엇 하겠나.. 이는.. 하룻강아지가 범.. 어?

‘이것은.. 삼경과 사경의 기운에 이상이 생긴 것.. 일환에 어.. 어찌 이런 일이? 허면 정말 저놈의 말이..’


-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영 또한 네놈처럼 정기신일체다.


- 뭐라고? 무영이!


- 뭘, 그리 놀라나? 그것뿐이 아니야. 검강천은 무영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이를 알았지. 그리고 천상천와 역천마곡, 천외천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 그는 천상지무의 무공이 극에 이를 때쯤에야 한 가지 검결이 이상했음을 알았고 그것이 정기신일체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 그 또한 이를 추론해냈고 그때부터 대비했던 거야.


- 검강천이..


- 선천지체였던 검강천은 알 수 있었던 거야.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무영이 갖고 있음을. 해서 그는 자신이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어. 정기신일체는 세 가지 무공을 소화해낼 수 있는 유일한 신체라는 것을 선천지체의 한계에 도달한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이는 세 개의 무공을 다 취하려는 자도 정기신일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면 최고의 적이 될 수 있는 무영을 제일 먼저 제거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했지.

그가 혜준을 불렀어. 그 아이는 순음지체였지. 무영에게서 정기신일체 중 신의 일부를 혜준에게 옮겨놓은 거야. 그 대가로 검강천은 자신의 내공 3할을 아이에게 넘겨야 했어. 만일 그 3할이 그의 몸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는 천상무극독에도 중독되지 않았을 거야. 역천은 막을 수 있었더라도 대신 무영이 죽었겠지, 자네에게.


- ......


- 그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천년 전설의 허상을 벗기기로 결심했던 게야.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고 나와의 비무에서 그는 물을 줘 그 씨앗을 키울 사람으로 나를 정했던 거야. 나 역시 그의 뜻을 알았고 내가 무영을 가르치며 물을 줘 줄기와 몽우리까지 이끌었어. 대견한 것은, 해서 너와 다른 것은 무영이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 꽃을 피웠다는 거야.

헌데 검강인과 진무결의 순서가 바뀌고 자네가 자꾸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면 이젠 무영이 열매까지 맺은 것 같은데.. 맞나? 네놈은 천년을 관조했던 눈을 갖고 있는데 보이지 않나?


- ......


- 후훗! 이젠 말도 못하는군. 세 개의 무공의 위대함은 각각 존재함으로써 최강이지. 자네가 애당초 비틀지 않았다면 그러했겠지. 일극무원결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는 거야. 자네가 비튼 부분을 채워 어떤 무공이던지 간에 그 끝에 이를 수 있게 돕는데 있지.

등에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고 하지 않나. 자네가 비틀었기에 자네만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거기에 허점이 있었어. 나는 그것에 모든 것을 걸었고 여기까지 왔어. 이것이야, 너와 내가 다른 점이.


- ..해도 변할 건 없다. 내가 다 없애면 되니까. 정기신일체라 해도 천년을 단련시킨 나를 무영이 넘을 수 없어. 시간이 차이가 너무 커. 해서 안 되는 거야, 자네의 연극은. 더더욱 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가를 치러야지.


- 그래 네놈 말대로 무영에겐 시간이 문제였어. 그것을 극복할 묘안이 필요했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고민했어. 헌데 나에게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어.


- ...?


- 시간은 싸움이 되지 않지만 운칠기삼(運七機三)이 떠올랐던 거야. 시간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실전경험을 선택했던 거야. 네놈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실전경험만이 시간을 메울 수 있음을 알게 된 거야. 운을 줄이기 위해 삼의 기술을 최고조로 올리는 최고 무인들과의 실전이 필요했고 지금도 무영이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지.


- ...! ..놈!


- 후후. 그리 감탄할 것까진 없고. 네놈한테 듣기는 더욱 싫고. 어쨌든 일석이조였어. 이제 알겠나? 내가 준비해 무영이 완성시킬 새 천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크하하하하하!


- 놈! 내가 준비한 기간만 천년이다. 완벽한 정기신일체는 나 하나뿐이야. 그것으로 족한 거고. 앞으로의 천년도 마찬가지야.


- 다시 말하지만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은 결코 스스로 익힌 것을 넘지 못하는 법, 네놈이 무영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알겠느냐!

‘하지만, 자네는 나와 나눈 대화를 잘 기억해야 할 거야. 마지막 안배는 이미 닻을 올렸어. 자네가 천년 연극을 만들고 직접 그 무대에 오른다 해도, 자네는 나와 나눈 대화를 앞에서부터 마지막 말까지 잘 기억해야 해. 그것이 마지막 내 안배니까.’


ㅡㅡㅡㅡㅡㅡㅡ


한성과 철용의 합공은 마치 하나의 연인이라 해도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일극무원결로 그 결점이 보완된 파천태극무검의 제 삼초 단천령태극검류와 제 사초 태극어검단천류가 한성과 철용에 의해 펼쳐지니 그것은 완벽해서 너무 강했고 오히려 아름다웠다.



슈욱!



빛은 푸르렀고 검기는 간결했으며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아 신비로웠다. 오직 빛 다음에 소리가 있어 그것이 시전된 것을 알뿐이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아니 넘쳤다. 천하의 마인에겐 너무 아름다운 합공이었기 때문이다.



빙혈천마 사마천은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마기가 움직임을 멈췄고 그제야 드러난 처음 무공을 익히던 날의 그 깨끗했던 기운이 느껴졌다.



퍽! 퍽!



한 순간에 오백 년을 돌아간 그에게 미간과 심장에서 전해져 온 소리와 통증은 그 기운을 자신에게 돌려준 것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개가 꺾어졌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허전한 게 바람의 서늘함도 느껴졌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이 이런 것이라면 자신은 마공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검신과 도천 앞에 한 무리의 마인들이 나타났다. 이미 대결을 마친 준영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고 한성과 철용도 몸을 날렸다. 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삼영 옆으로 내려섰다.



“이곳은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오빠!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기원할게요. 힘내세요. 현성 사숙과 금강...도.’



삼혼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시선이 굳은 믿음과 함께 혜준과 삼영, 검신과 도천, 천상천의 4 명의 호법들을 스쳐갔다. 허나 삼혼의 표정은 어두웠다.



‘간절히 바란다. 아니길 바란다. 오직 주군의 부름이 그것을 의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무명곡을 향해 가던 두 신형이 그 입구로부터 백여 리 떨어진 곳에서 만났다.



“잘 지내셨어요. 현 사숙님.”

“너도 그랬느냐? 허허! 결국 우리가 다시 무림에 나오게 됐구나.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사숙님.”



그들은 사라졌던 현성과 금강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비궁의 입구에서 다시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러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크하하하하! 겨우 너희들이 나를 막겠다고. 크하하하! 크하하하! 감히 초만인 진무결과 열한 명의 지옥의 힘, 역천마곡의 정예들을 상대하겠다고. 어림없다. 류심환과 검무영 보러 이리 오라고 해라.”



진무결은 그들 앞을 막아선 자들 속에 두 사람이 없음을 발견하자 어의가 없었다. 당연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 이들을 상대하려 했다면 제천문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오늘로써 막을 내린 거짓과 위선의 천년이었을 때의 얘기다. 지금부터는 모든 이의 천년일 것이므로 우리라 해도 너희들에겐 넘친다. 덤벼라. 그것도 떼거지로.”



준영의 눈치를 힐끔 보던 한성이 먼저 말했다.



‘허! 이거 죽이는데. 내가 말했지만 멋있어. 도혼 할아버지가 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험! 분명 죽였어.’

“켈켈켈켈! 켈켈켈켈!”



진무결이 그저 바람 빠진 웃음만 흘렸다.



“넌 좀 빠져. 나설 때 나서야지.”



준영이 한성에게 말했지만 눈을 부릅뜬 것은 진무결이었다. 오해였다. 그것이 두 무리 간에 벌어진 천지개벽 같은 대결의 시작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


검강인은 만신창이 몸으로 겨우 집성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패했다는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은 그를 더 심하게 자책하게 했다.



허나.. 공포란 또 무엇인가. 자신이 고금제일을 꿈꿨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해 치러졌던 일방적인 대결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더 두려웠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무영의 어머니인 검강천의 아내를 겁탈하던 장면이었다.



‘이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인면수심의 말종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래, 역천의 정당성이 그것으로 사라진 거야. 허허.. 늘 마음에 걸려 죄스러움을 버릴 수 없었는데.. 허허.’

“이제 끝을 내지. 내가 힘들군.”



말을 하는 중에도 통증은 쉬지 않고 그를 강타했다.



“여죄가 적지 않은데.”

“허허. 그렇겠지. 자네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겠지. 한마디만 말하겠네.”

“길지 않게.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그래. 그거야. 내가 말하려던 것이 그거야. 미안했네. 내가 사람으로써 못할 짓을 했어. 그것은 진심으로 사죄하네. 미안하네.”



검강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점점 격해지더니 흐려져 갔다.



“...안 된다. 내가 너를 처단하기 전에 너는.. 검강인은.. 내 어머니를 겁탈한 너는.. 아직 그대로야 한다. 내가 너를 가장 치욕스럽게 죽일 때까지 너는 검강인 그대로 있어야만 한다.”



무영은 그의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특히 자신의 어머니에 관해서는 그가 사죄해서는 안 됐다. 그래야만 복수가 의미가 있고 어머니의 영혼의 일부라도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그가.. 그 짐승만도 못했던 그가.. 사죄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내 검에 가장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욕망에 눈이 먼 검강인이어야 한다.



무영이 일극무원결로 합친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정수를 끌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투명하고 푸른빛이 폭발했다. 그의 분노가, 미칠 것 같은 허탈함이 폭발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영아. 복수가 다가 아님을 잊었느냐. 네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그 초식은 새 천년을 여는 순간에만 펼쳐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초식은 아직 아껴야 한다. 이곳에 와서 나를 만난 후에 펼쳐야 한다. 무영아, 너와 모든 이의 천년을 생각해라.’



류심환의 영혼의 말이 그의 마음에서 울렸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와 모든 이의 천년...

그 천년을...

위해...



무영은.. 검강인의 목을..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한풀이를.. 천상지무로만 끝내기로 힘겹게 마음을 바꿨다.



그의 검에서 푸른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투명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 빛이 이미 검강인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때.. 무영의 눈에 하늘 가장 푸른 곳에서 미소 하나가 번쩍이는 것이 들어왔다. 착각이었을까.. 내 죄스러움의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것은 분명 어머니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삼혼은 계속 날았다. 주군의 부름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생을 다하는 사람이 말하는 유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느낀 것은 주군의 부름이 몹시도 급했고 급하면서도 탈속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야 했기 때문에 급했고 그것을 결심했기에 탈속해져 그 부름에 숨결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삼혼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몸의 속도가 빛살 같다 해도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남았다.



‘주군이 선택이 신삼혼지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야.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지금까지 주군이 단 하루라도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있었던가? 주기만 했고 받은 것이 있었던가? 심지어 주변 한 번 돌아보지 않았어. 주군의 삶에서 천외천의 이름으로 산 기간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 허망함이 부처라 해도 다스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주군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시작한 새 천년을 위해 무영과 강호인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었어. 심지어 주군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칭송마저 강호에 남기지 않았어.’



불혼은 자꾸 눈물이 나오는 것이 비궁에 가까워올수록 심해졌다. 돌이켜 보면 주군의 삶이란 모든 것의 희생뿐이지 않은가.



‘주군은 가장 위대한 무인이었으면서도 스스로 그 자리를 포기했어. 그저 다음 천년이 모든 이의 것이 될 수 있다면 부모의 죽음도, 그 불효이 회한과 처절한 복수마저 가슴에 담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어디 그것뿐인가? 새 천년의 초석을 위해 삼영에게 각각 일 할의 내공을 전수했고 신 삼혼지문을 위해 또 일 할의 내공을 넘기셨어. 이제 주군의 몸에 남은 것은 5할의 내공인데 그마저 대부분 사라진 것 같아.’



도혼도 눈에 자꾸 차오르는 것이 사내로써 그리 부끄러운 눈물임을 감추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주군의 삶은 온통 준 것뿐이다. 일극무원결은 또 무엇인가.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결합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며 이를 위해 주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고 기꺼이 모두에게 나눠줬다. 무인으로써의 최고 기재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다른 무인들의 완성을 위한 무공 창조에 다 쏟아 부은 것이니 그 희생을 또 누가 알겠는가.



‘5할의 무공도 이제 거의 다 소모했을 거야. 무영이 비궁 바로 밑에서 제천문의 감시를 피한 채 천상귀원검과 여의일도파천황을 익혀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주군은 그 감시의 눈을 속이는데 남은 내공 대부분을 소진했을 거야. 어찌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또한 내 자신의 목숨과 명예, 행복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찌 주군의 발끝에라도 이를 수 있단 말인가. 헌데.. 그 주군이 우리를 불렀어. 아직 줄 것이 남았기 때문이야, 주군은.’



속혼의 눈에서 눈물이 허공중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갈 때 세 사람은 동시에 떠올렸다.



‘주군은 신 삼혼지문을 열어 무영에게 무엇인가 넘기려 해. 이는 주군의 죽음을 말하는 거며, 비궁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이 무영에게 필요하기 때문일 거야. 아, 대체 주군이란 사람은..’


ㅡㅡㅡㅡㅡㅡㅡ


검강인의 죽음을 확인한 무영의 마음은 무거웠다. 자신이 그를 죽일 때 그는 가장 포악해야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도 사람이었고 사람이어서 죽음에 이르자 그의 일부는 선해졌다. 그것이 못내 받아들이기 싫었다.



‘허나.. 사부님의 말씀을 따른다. 그 뜻의 위대함을 내가 받든다. 그래.. 어쨌든 원수는 갚았고 어쩌면 저승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승의 한을 다 잊으셨을 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 복수까지도 산 사람들만의 일이 아닐까?’



쉽지 않은 깨달음에 이른 무영의 시선이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초마인 진무결을 향했다.



‘그래, 검강인과의 인과는 이것으로 끝내자. 사부님이 부르시니 빨리 저 자를 처단하고 비궁으로 가야 해. 이미 삼혼 할아버지들은 떠났고.. 서두르자.’



무영의 몸이 어느 새 광소를 멈추고 살기로 가득한 진무결의 앞에 내려섰다.



“그렇지. 네놈이 와야 하는 것이지. 나머지 떨거지를 내게 보내면 안 되는 것이지. 크하하하하!”



진무결의 청아한 음성이 마기마저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룬 초마인이 진면목이 그것만으로도 넘쳐흘렀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냥 시작하마. 천 년 전에도 너의 무공은 졌고 지금 너의 무공도 무엇을 더 얹었던 간에 나에게 져. 그것이 섭리다. 상극의 원리가 아니더라도 바르게 간 길과 사술을 쓴 것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야. 그 처음은 이것으로 깨닫게 해주마. 간다.”



무영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망상재를 펼친 것이다. 그는 빨리 류심환에게 가봐야 했기 때문에 속전속결을 택했다.



순간 진무결도 사라졌다. 그는 극에 이른 마기를 통해 세상의 어떤 탁한 기운에도 숨어들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어도 상관없었고 대기에 떠다니는 황사나 탁한 연기라도 상관없이 스며들 수 있었다. 마기가 자연의 일부와 일치를 이뤄낸 것이다.



‘제법이군. 허나 탁한 기운은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망상재를 펼치자 무영이 움직이는 곳마다 실상과 같은 기의 흔적들이 생겼다. 그것은 남아 있는 잔상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실상 같은 기운들이었다.



‘허억! 아니.. 이것은 모두가 다 진기(眞氣)야. 무한공력이 아니면 불가능하잖아? 이는 신의 영역이거늘 어찌 저놈이 펼친다 말인가?’



탁한 기운 속에서 무영에게 다가가던 진무결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물론 탁한 기운의 일부가 무영에게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지. 탁한 기운의 단점은 흩어질 수 없다는 거야. 탁한 기운은 한데 모여야만 위력이 커지고 본래의 성질도 유지하는 법이지. 자연에 스며들어 몸을 숨겼다 해도 결국..’



무영은 파천태그무검의 제 육초 제마무림파천황(制魔武林破天荒)을 탁한 기운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펼쳤다. 수없이 생성된 그의 사십이 개의 진기들 중에 스물아홉 번째에서 푸른빛이 일었다.



그 순 번에 어떤 의미도 없어 보였다. 일곱 번째에서도 빛이 일어날 수 있고 사십일 번째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만큼 모든 진기가 다 무영 같았다. 허나 무영의 실체는 스물아홉 번째 있었다.



팟!



빛이 날아간 후에 짧은 소리가 일었고 그곳의 대기가 잠시 흔들렸다. 그때 진무결은 자신의 종아리 쪽이 따끔하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펼친 멸천귀원장(滅天鬼怨掌)이 무영이 만든 사십이 개 진기 전체를 휩쓸어가는 것을 보았다.



“크윽!”



따끔한 것은 통증으로 발전했다. 허나 그의 손은 다음 장강을 발사하고 있었다. 무영의 진기들이 다 장풍에 산산이 부서지는 중에서 다시 열 개의 진기가 생성됐고 이번에는 여덟 번째에서 빛이 다시 일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망상재를 구성까지 펼쳤고 이번 열 개의 진기 중 열 번째까지는 순차적으로 펼친 것이었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앞의 진기로 두 번 거꾸로 옮겼다. 결국 무영은 열두 번의 진기를 만든 것이다.



이는 초마인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종아리가 잘려나갔음을 알았을 테고 급격히 흔들렸을 내력 때문에 다시 모든 진기를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자신이 만드는 진기 중 마지막 것이 생성될 때 그 진기를 노리리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았다. 진무결이 격발한 멸극귀혼장(滅極鬼魂掌)이 정확히 열 번째 진기에 부딪쳤다. 그 결과는 흩어질 뿐이었다. 멸극귀혼장은 조금 더 나간 뒤 사라졌고 이미 흩어진 진기는 스르르 대기로 돌아갔다. 본래의 성질로 귀환한 것이다.



번쩍! 콰르르릉!



엄청난 빛의 폭발과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그 빛은 검이었으나 처음부터 모든 곳에 있었고 초마인 진무결 시야의 모든 곳에도 있었다. 그것은 푸른빛의 해일이었고 축제였으며 거력이었다.



진무결은 멸극귀혼장을 회수하며 멸천마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천지양단마장(天地兩斷魔掌)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빛의 해일이 일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천지양단마장이 격발됐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에 완벽하게 펼쳐졌다. 이를 위해서 잘린 종아리의 혈도를 짚어 지혈해야 하는데도 방치했다.



그것은 본능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대응이었다. 그가 초마인의 경지를 이룰 때보다 그 위력은 더 강해졌다. 미증유의 거력이 그의 손에서도 쏟아졌다.주위의 모든 것이 극을 넘어선 마기에 전율했고 숨죽였다. 그렇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점령한 채 무영이 일으킨 빛의 해일에 부딪쳐갔다.



두 기운이 충돌했다. 천지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충돌은 이전에는 없었다.



쾅아아아아앙!!! 콰아아앙!!!!

버언쩍!! 슉! 쉭! 쉭! 팟! 팟!



주변 수백 장이 흔들렸고 들썩이었으며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 모든 것이 그 충돌 여파로 천지개벽 직전의 혼란함을 드러냈다. 한참 열한 명의 지옥의 힘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삼영과 혜준, 검신과 도천, 그 밖의 다른 정, 사파 고수들까지 급히 물러나야 했다.



쩍! 쿠르릉! 우드득!



충돌의 여파는 반각을 이어갔다. 그 위력에 맞서 성한 것이 없었다.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졌고 오직 커다란 진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차츰 그 진공 속에 떠다니던 부유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충돌의 여파가 진정되자 조금씩 시야가 트였다. 충돌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그 시점에서 진무결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다. 충돌은 여파가 반각이 갔지만 그 사이에도 수천 번을 넘게 작은 충돌이 이어졌고 그것은 일종의 내공 대결과 비슷했다. 해서 내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헌데 그는 자신의 내공이 밀리는 것을 느꼈다. 우위를 점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공이 무영에게 밀렸던 것이다. 내력의 대결이 되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의 판단이 뿌리 채 흔들린 것이다.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작은 마음의 흔들림이 그의 몸이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그의 종아리에서는 피와 함께 마기도 쉴새없이 빠져나갔다. 무한 마력이라 믿었는데 잘린 종아리 혈관을 타고 들어온 검기는 마기와 상극이었다. 그것이 이제야 위력을 드러내며 그의 내력을 급격히 갉아먹었다.



그리고 번쩍! 하나의 투명한 빛이 일었다. 그 빛은 그가 본 빛 중 가장 강렬했다. 그 빛의 강렬함에 무영의 말이 눈부시게 빛났다.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이 이 초식에 의해 양단됐으니 그의 후예인 너 또한 그리하라. 이미 말했듯 천 년 전에 진 자는 천년 후에도 천상지무를 넘을 수 없다. 천상지무의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天上制魔奪魂검)은 한 번 펼쳐지면 목표한 상대를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목숨을 거둔다. 이는 상대방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둘로 양단하기 때문에 천상제마양단검(天上制魔兩斷검)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화극연을 벌한 것이 이 초식이다. 너도 그리한다.”



진무결은 믿을 수 없었다. 아직 내공 대결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데 하나의 진기가 더 생기더니 거기에서 빛이 일었고 그 빛은 놀랍게도 천상지무의 초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절대에 이른 두 무공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진 것을 믿기란 그의 무공지식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두 무공을 동시에 펼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각각의 무영이 각각 하나씩 펼쳤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믿을 수 없어.’



그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졌고 그 중 일부는 그의 몸이 양단되면서 두 개로 갈라진 뇌가 조금씩 더 한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위대한 마인, 그 극에 이른 마기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진무결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정확히 둘로 양단됐다. 피조차 튀지 않았다.



쩍!



한 번의 소리와 작게 두 번 쿵! 쿵! 그것이 다였다. 초마인 진무결이 세상에 나와 마의 극에 이르렀음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이 몸이 소리와 함께 마기에 의해 재로 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가 튀지 않았다.



진무결의 생각은 맞았다. 무영은 둘을 두 개의 진기를 만들어 발사했다. 하나로 합쳐진 것은 지금 펼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고, 그 직전에 사부의 말이 있었다. 새 천년을 열기 위해서만 이는 펼쳐야 한다고 했으니 그것을 따라야 했다. 무영으로서도 최후의 초식은 지금은 남겨두고 싶었다. 아직 그에게는 최대의 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무결은 검강인보다 한 수 위였어. 만일 내가 두 무공을 합치기 위해 일극무원결을 익히지 않았다면 결과는 반대였을 거야. 대단한 자였어.'



[혜준, 삼영. 뒤를 부탁할게. 믿어도 되겠지?]

[오빠.. 조심해야 해!]

[주군.. 아니 동생 잘 해.]

[그래 나도 믿어.]

[형님.. 편히 다녀 오세요. 이곳은 우리가 해결할 테니..]

[다들 고마워. 내 꼭 돌아올게. 아무도 다쳐서는 안 돼.]



전음과 함께 무영이 신형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그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건너뛰어야 했다. 분명 류심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


그 순간 류심환의 몸이 끊어진 연처럼 튕겨져 이리저리 휘날렸다. 무천이 손에서 격발된 장장에 류심환이 힘없이 나가떨어진 것이다.



“아니? 이것이 웬 일이냐? 너는.. 나 못지 않은 자인데..? 어찌 이리도 간단하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 류심환! 어찌 이렇단 말이냐?!!!”



그때 무천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자신과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 명의 환 중 일환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일환이 죽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설마...? 그럴 수 없어. 삼영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해.’



무천이 표정을 감추며 류심환을 쳐다봤다. 그 또한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것 같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무엇엔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변화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ㅡㅡㅡㅡㅡㅡㅡ


이곳은 천산의 정상! 선인(仙人) 같은 풍모의 한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주재자가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음! 무천이 무리하는구나. 현 무림에 정기신일체는 세 명인데 그 중 두 명은 이를 완성 직전에 이르러 있어. 무천과 무영. 허나 그 신체를 이루는 것에 차이가 있어.”



그는 여기까지 말한 후 눈을 감더니 무엇인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가 눈을 떴다.



“이번 일전에서 세외문은 빠진다. 무천이 할 수 있다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맞다.”



그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세외문주였다. 이로써 그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삼기(三氣). 십이력을 불러들여라.”

“봉명!”



그의 명령에 그의 뒤 일장 높이에서 소리가 들렸다. 헌데 거기에선 대기의 흔들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흐르는 바람 중에 한 마디가 슬쩍 빠져 나온 것 같았다.



“무천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승리자가 누구이던 간에 어차피 세외문을 찾아올 터, 천년을 기다리며 지켜봤으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승자가 나를 보러 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삼혼이 날아간 곳에 두 명의 신형이 있었다. 존재하는 자체가 대기와 같은 두 사람. 삼경과 사경이었다.



“천년을 기다려왔을 텐데 지겨워할 것 같아서. 천년 동안 잠만 잔 놈들아.”



그곳에 둥실 떠있는 상태에서 도혼이 말했다. 헌데 이번에는 도혼 자체도 대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떠 있는 데도 그는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것 같았고 바람에 따라 신형이 흔들거렸다. 불혼과 속혼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크흐흐흐! 켈켈켈켈! 그래 천년 동안 잠만 자서 미치는 줄 알았다. 너희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제법이구나. 켈켈. 좋지, 한바탕 살육을 벌이는 것도.”



말이 끝나자 두 명의 신형이 대기에서 빠져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삼경이 말했고 사경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극도의 놀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건, 우리의 경공과 같아. 어떻게 저들이?’


ㅡㅡㅡㅡㅡㅡㅡㅡ


삼영은 제마단 백여 장 앞에서 두 명의 절대마인을 만났다. 그들은 이경의 말을 듣고 제마단에 거의 다가온 일소빙혈사 설지연과 빙혈천마 사마천이었다. 예상외의 만남이었지만 어차피 그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 삼영은 여기서 그것을 실행하리라 마음을 바꿨다.



“이번에는 영원히 보내주마. 다시 깨어나고 뭐 그런 것 없도록. 확실히 보내주지.”



한성이 준영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말했다.



“호홋! 젊은 것들이 말도 잘하네. 에그. 저것들 다 보쌈 해 먹어야 하는데, 호호홋. 애들아, 대체 어떻게 할 건데?”



설지연이 한성의 말에 징그럽게, 그러나 색기 넘치게 물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건데? 궁금하네. 어린 녀석들이. 범 무서운 것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 클클클.”



사마천이 삼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를 것 있겠나. 한성의 말이 정답이지. 말을 섞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시작하지.”



이번에는 준영이 사마천의 질문에 답하면서 상황을 아예 정리해 버렸다.







“이제 백리 남았다. 다 쓸어버린다. 크하하하! 초마인 진무결이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되는 거야. 천년의 진정한 주인에 오르는 거야. 크하하하!”



진무결이 광소를 터뜨렸고 그 뒤를 열한 명의 지옥의 힘이 뒤따랐다. 삼백여 장 뒤에서 역천마곡의 곡도들이 죽을힘을 다해 쫓아오고 있었다.



‘헥헥! 좆 나게 빠르네. 좀 늦추면 안 되나? 휴~ 수련을 더하든지 살을 빼든지 해야지 원 이건 도통 숨이 너무 차서. 헥헥!’



곡도들이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곡주라 대놓고 욕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다.


ㅡㅡㅡㅡㅡㅡㅡ


역천마곡 무리들을 쫓아가던 두 명의 신형이 갑자기 멈춰 섰다. 대기 중에 그대로 멈췄는데 바람조차 일지 않았다.



“문주께서 문으로 돌아오라는 명을 내리셨다. 복귀하도록.”



바람 중에 하나가 약간 흔들리며 하나의 말로써 풀어진 것이다.



“봉명!”



두 사람, 육력과 칠력이 명을 받는 뒤 대기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으! 가장 재미있는 순간인데. 천년을 기다린 일전인데..’

‘할 수 없지 상상으로 해결할 밖에야. 머리에 쥐나겠네.’


ㅡㅡㅡㅡㅡㅡㅡ


세 명의 환은 전력으로 제천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헌데 일환이 죽었다. 이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천의 계획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일단 제천문의 상황부터 살펴야 했다. 주군이 일환이 죽었는데도 자신을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류심환과의 대치가 만만치 않은 상황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세 명의 환은 마음이 다급했다. 자꾸 천년 연극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ㅡㅡㅡㅡㅡㅡ


두 사람이 있다. 어느 날부턴가 화전민이 모여 사는 곳에 들어와서 묵묵히 밭만 갈던 두 사람이 있었다. 꼬박 일 년을 그들은 밭만 갈며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그들은 화전민 터를 전부 갈고도 시간이 남아 터를 점점 넓혀가던 중이었다.



헌데 오늘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머물던 초가도 사라졌다. 그들이 이곳에 올 때처럼 그렇게 떠나간 것이다.



‘무명곡으로 간다.’

'주인이 명했다. 때가 됐다고.'





천검지로25 - 새 천년 그 시작을 향한 마무리2




- 헌데 그게 좀. 무영이 내 예상도 뛰어넘는 아이니까. 어쨌든 내가 무영과 삼혼, 삼영에게 준비시킨 안배의 첫 과실은 당연히 초마인이었지. 허나 무영은 그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아. 검강인을 먼저 삭한 것 같아. 그는 대의(大義)를 선택한 거지. 가슴 속에 담아 썩고 또 썩어서 그 증오의 흔적마저 어린 그의 살이 되고 피가 된 그 증오의 대상, 회한의 원수마저 새 천년이라는 대의를 위해 가장 극적인 개인적인 순간을 포기한 게지.



‘무영아 한은 풀어도 다시 매듭을 짓는 놈이란다. 운명과 그 이름을 같이 하는 질긴 놈이지. 이로써 네 한은 풀어졌지만 그 매듭만은 남을 거다. 그것을 내 안배의 마지막이 풀어줄 것이니. 무영아! 부디, 너는 운명의 질긴 매듭마저 풀어 내거라. 돌고 도는 것이 복수가 아님을 증명하거라. 부탁한다, 무영아.’


-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게야. 자네 말처럼 몸의 극대화를 이룬 자와 영혼의 극대화까지 이룬 자의 싸움이었으니까. 당연히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지. 이제 남은 건 하나 제천문. 자네와 그 떨거지들이지.


- 놈!


- 그 정도에 화낼 것까지는. 자네가 천년 동안 저질렀던 만행을 떠올려 봐. 그 짐승보다 못한 짓거리들을 떠올려 봐. 그러면 내 질문이 그리 화낼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야.


- …! 컬, 그 중에는 네 부모들도 들어있지. 크흐흐흐…


- 갈! 너의 더러운 입으로 내 부모를 말하는 것,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다.

나는 무영과 다르다. 내 가슴 속의 분노는 단 하나도 줄지 않았다. 여기서 끝낼 참이면, 내 부모를 다시 입에 올려도 좋다.


- 컬컬! 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 뛰는군. 천년 흥행이 그리 쉬운 줄 아나? 어림없지. 좋아. 이것은 내가 양보하지, 다음이 궁금하니깐. 천년 연극의 한 줄의 대사도 되지 못한 자들은 내 양보하지.


- 짐승만도 못한 놈! 그 대가를 치를 거다.


- 컬! 양보했잖아. 너도 흥분하지 말고 말해. 다음은 뭐야?


- 좋아, 그 부분은 인정하마. 이 부분만은 인정하마. 아직 후반부가 많이 남았으니까. 줄 것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그래, 이번은 넘어가마.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제 손으로 이 자를 벌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함을 탓해 주세요. 저승에 가서 이 불효를 어떤 것으로든 달게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영아 너무 큰 짐 맡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내 복수를 부탁하는 내가 많이 미안하다.’


- 참. 지금쯤이면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 후후! 없는데.


‘이환 삼환 사환 돌아와라. 육경도 돌아오라.’


- 그래? 이상하군. 이쯤이면 떨거지 중 하나는 갔을 텐데.. 여하튼.


‘이놈이.. 일환의 변고를 눈치챘나? 이곳에 있는 이상 알 수 없을 텐데? 설마 내 경지에 이렀을 터는 없는데? 아무튼 더 지켜보자.’


- 클클클,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 바뀐다!


- 큭! 아니라니까.


- 바뀐다.


- 무슨 자신감…? 지나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지.


- 된다. 지나치지도 않고. 네가 뭘 생각하던 그 이상이다. 결과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렸고 무영이 실현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아. 다시 천년이 흘러도 이는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말해주마. 이곳에 들기 전 일 년 간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을 풀기 위해 움직였고 두 가지를 확인했지. 그 첫 번째, 삼재와 쌍비의 침입 후 화월곡이 천상천과 역천마곡에 드러났다면 당연히 제 삼의 세력도 이를 알 것이라 생각했지. 결국 피할 수 없다면 부딪치기로 마음먹은 것이지. 운명이 원한다면 들어주기로 했지. 비궁행을 결심한 이유네.


물론, 그 때까지 제 삼 세력이 천외천이라 생각했네. 결과야 같아졌지만, 여하튼! 제천에 의해 유지된 천외천이던, 자네 무천(無天)의 숨겨진 하늘, 태천(太天)이던 간에 제 삼의 세력이 천외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고 그전까지의 내 추측을 수정했네.


- …! 후후. 다음.


- 짐승도 웃는군. 하긴, 그것도 아쉬웠겠지.


- …! 다음!


- 그렇지, 인내는 그렇게 배우는 것이지.


- 다음!


- 갈! 인내하라! 후반부의 시작이니. 내 부모님의 죽음에서도 네놈의 졸개들이 흘린 흔적을 확인했지. 해서 이번에는 내가 틀었어. 절대 독점의 천년을 틀어보기로 한 거야. 안배를 하나 추가하고 참여를 확대하는 거로.


‘허나, 그것에는 하나의 안배가 더 들어 있다. 지난 육년은 하나의 안배를 더하기 위함이지. 진정한 숨김(秘)이 무엇인지 너의 심장에 검을 꽂으며 알려주기 위해서지. 이것이 내 극본의 핵심이다. 너의 핵심이 무대로의 자신의 등장이라면 내 핵심은 그 등장의 장면을 삭(削)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모르는 새 전설, 모두의 출발이다.’


- 강해진 삼혼과 삼영, 그 아이 혜준으로? 겨우 그것으로, 설마?


- 네 생각에 맡기겠다. 거듭 말하지만 혜준에게는 검강천의 안배가 있었고 네 놈의 존재를 최초로 감지했기에 준비한 거다. 곧 말하지.


- 후후! 검강천의 안배라? 그래도 재미없는데, 그들로 다라면. 그 정도로 천년의 연극을 종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을 텐데? 아닌가…?


- 네 생각에 맡긴다고 했다.


- 풋! 말하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지. 천년 동안의 감시와 조정, 수정과 끝내 제 자리로 돌려놓는 완성이라는 것이 거저 얻는 것은 아니지.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여하튼. 다음!


ㅡㅡㅡㅡㅡㅡㅡ


무영은 집성전의 금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자 일각도 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검강인의 무릎까지는 이곳에서 자른다 했으니 좀 더 확실한 수를 써야 했다. 무영은 일극무원결의 망상재를 선택했고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때 검강인은 공포가 극에 달한 상태, 하지만 그도 절대자 중 한 명이다. 아직 그에겐 남은 것이 있다. 해서 그는 중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다음 한 수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걸리라 결심했다. 자신이 무영의 상대가 아님은 이미 손목과 발목의 절단을 통해 알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존재했던 천상무극진기와 빙혈류, 마교의 대법을 통해 얻은 천의 기운이 평상시에는 다스릴 수 있어 하나가 된 것이라 착각했음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것들이 자신이 복용한 천상천양신단과 함께 어우러져 절대공력을 이뤘고 천상지무도 극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사실 그는 수련과정에서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도 완벽하게 펼쳐졌으니까.



헌데 그것이 허상이었다. 네 가지 기운 중 하나가 천상천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극한에 이르렀을 때는 본연의 성질이 나온 것이었다. 그가 이를 깨닫는 순간 공포가 극에 이르렀지만 한편으로는 어차피 죽을 거면 단 한 번의 초식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일어나 자신의 몸에 배어버린 것을 지금 바꿀 수는 없었으며 그 이유로 이것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영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는 무영이 공격해올 때 천상귀원검을 펼치는 동시에 천의 무공, 태극전류섬(太極電流閃)을 펼치기 위해 상단전과 중단전의 기운을 하나로 모았고 하단전을 태극전류섬에 배치했다.



무영이 움직였다. 헌데 그가 사라졌다. 무영이 펼친 망상재가 극한까지 펼쳐졌기 때문이다. 신형 자체가 사라질 정도의 공간과 시간마저 단축하는 일극무원결의 정수, 그것이 극점까지 펼쳐졌다. 아울러 무영은 천상귀원검을 육성의 내력으로 펼쳤다.



검에서 나온 투명한 기운이 결빙체를 만들었다. 비록 육성의 공력을 사용했지만 천상귀원검의 정수가 발휘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그대로 재현됐다. 검강인도 무영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 결빙체가 시작된 곳을 보면서 천상귀원검을 전력으로 펼쳤다.



동시에 태극전류섬을 무영의 승천제마검 검병을 잡고 있을 팔의 위치를 가늠해 어깨와 심장을 다 포함할 수 있도록 연속으로 세 번 격발했다. 그 순간에 손가락이 세 번 털렸다. 심검을 펼친 것이 아니었기에 그쯤에 무영의 몸 일부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강인의 생각은 그랬다.



콰아아앙!



무영과 검강인에게서 나온 투명한 기운이 정면충돌했다. 엄청난 폭발음이 일면서 그 공기의 파장으로 인해 집성전의 금이 공간을 만들어 밖의 빛살들이 스며들 정도로 커졌다. 이어 지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사방의 벽도 갈라져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에 집성전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혼돈의 순간에도 두 기운은 정면으로 맞선 채 서로의 힘을 겨루었다.



휭!휭!휭!휭!



두 개의 투명한 기운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속도로 휘돌았다. 더 전진을 못하자 그 힘을 감당 못해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고 그 회전의 속도가 안력(眼力)의 범위를 넘어서자 집성전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집성전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검강인이 격발한 세 발의 태극전류섬이 무영의 어깨와 심장이 있음직한 곳으로 파고들더니 그대로 관통해 맞은편을 뚫고 나갔다.



퍽!퍽!퍽!



허나 망상재가 무엇인가. 일극무원결 다섯 가지 감각 중 태(態)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가. 존재 자체마저 잊게 하는 것, 해서 어디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펼쳐졌으니 태극전류섬이 관통한 것은 무영의 기의 잔상이 남아있던 곳이다.



이것이 망상재의 진정한 위력이다. 단순히 잔상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를 그곳에 일부 남겨서 완벽히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그때부터 검강인의 투명체가 밀려기 시작했다. 집성전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해진 무영이 다 무너져 내리기 전에 무릎을 잘라야 했기에 공력을 팔성으로 올린 것이다. 동시에 무영이 손을 펼쳐 무엇인가를 끌어들이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세 개의 빛이 태극전류섬이 만든 구멍을 통해 들어왔고 검강인의 무릎을 향해 폭사됐다.



“아니 이것은?!”



검강인의 놀란 외침처럼 그 세 개의 빛은 태극전류섬이 다시 되돌아 온 것이었다. 그 순간 내력에 밀려 뒤로 질질 밀려가던 그의 왼 무릎에 세 개의 통증이 일어났다.



퍽!퍽!퍽!



그 통증은 소리와 함께 구멍이 됐고 피가 터졌으며 뒤로 밀리던 검강인의 신형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



“분이발이라 하지. 집성전에서는 여기까지.”



말과 함께 무영의 신형이 사라졌고 투명체도 흔적 없이 증발했다. 순간 검강인의 투명체가 힘 겨루던 상대의 힘이 사라지자 그대로 날아가 집성전 좌측면을 통째로 날렸다.



“크아아악!”



그제서야 무릎에서 시작된 통증이 신경에 전달됐고 뇌도 그것을 감지했다. 검강인이 그 안에 극도의 통증이 느껴지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흩뜨리며 그의 머리 위로 대리석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잘린 발목을 축으로 경공을 펼쳤으며 잘린 손목으로 대리석을 쳐냈고 나머지 손은 검을 이용해 왼 무릎의 주위의 혈도들을 찍어 지혈을 해야 했다.



쿵! 텅! 팍!



그는 온몸으로 대리석들과 부딪치며 집성전 밖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그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잘린 부위들 때문에 호신강기를 펼칠 수 없었고 당연히 금강불괴의 몸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대리석에 맞은 부위들이 그래서 더욱 아팠다. 뼈도 부러졌다.



“크아아아아악! 검무영!! 이놈!!!!”


ㅡㅡㅡㅡㅡㅡㅡ


삼혼의 합공이 삼경과 사경을 향해 펼쳐졌다. 무천이 틀어놓은 검결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 완벽해진 구 삼혼지문이었다. 삼경과 사경도 그에 대항해 제천무형거력장(制天無形巨力掌)을 펼쳤다. 구 삼혼지문을 무력화시키는 원리가 들어있는 장법이었다.



지금까지 오합을 치르는 동안 그들은 서로 간에 최정예의 수를 펼치지는 않았다.상대에 대해 서로 처음 접하는 것이라 오합은 일종의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였다. 특히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삼혼의 입장에선 더욱 그랬다. 삼경과 사경도 달라진 삼혼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이에 응했다.



그 순간 집성전이 통째로 무너졌다.이런 식의 일전은 그 순간 무의미해졌다.그래서 전력을 다한 수가 펼쳐진 것이었고 그 첫 합이 이번의 충돌이었다.



쾅! 쾅! 콰앙!



세 번의 충돌이 허공중에 일어났다. 주변 십장 안의 모든 것들이 이 충격의 여파로 흔들렸다. 헌데 신기한 것이 그 정도에서 파장의 위력이 끝났다는 것이다. 완벽해진 구 삼혼지문이 제천무형거력장을 흡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어? 반대로 되는 것이 맞는데?”



삼경과 사경이 믿을 수 없다는 경악성을 날렸다. 그들이 천년을 준비했고 삼혼지문 또한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삼혼이 자신들의 비전무공을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삼혼이 더욱 강해진 것은 감시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 하지만 그 근본이 바뀐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이 현상에 경악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주군이 운결 몇 개를 바꿨지. 해서 삼혼지문은 더 이상 남의 무공을 받아 전하는 매개로써의 역할은 사라졌어. 이것이 우리가 달라진 점이지.”



불혼의 말에 도혼이 자신이 먼저 말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분했다. 해서 껴들었다. 가로챈 것이다.



“알겠냐! 잠만 처잔 놈들아. 새 삼혼지문도 있는데 그것은 다른 놈들한테 써야 하니까, 이것으로 그냥 가라. 자식들, 왜 깨어나서 고생을 자초해. 크하하하하하하!!”



도혼이 통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려준다. 우리가 또 하나 배웠거든. 역반투일세. 그냥 그렇게만 알아. 이젠 깨어나지 마! 우리가 재워줄 테니까.”



도혼의 말과 함께 불혼과 속혼이 동시에 소리쳤다.



“돌아가라!”



그 순간 구 삼혼지문 속으로 흡수된 제천무형거력장이 튕겨져 나와 삼경과 사경을 향해 뇌전처럼 폭사됐다. 삼혼 각각의 내공이 그 안에 무려 8성씩 포함돼 있었다.



“헉!”

“엇!”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삼경과 사경의 몸이 제천무형거력장에 휩쓸렸다. 그들은 위험을 느끼는 순간 급히 대기로 스며들려 했는데 이런, 삼혼의 무공이 아니라 자신들이 펼친 장풍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대기에 스며들어도 이 장풍 또한 제천문의 무공이어서 대기로 스며든 삼경과 사경을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대기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내상을 입거나 몸의 일부분이 파괴되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대기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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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영 중 준영이 일소혈빙사를 맡았고 한성과 철용이 빙혈천마를 상대했다. 일소빙혈사의 무공은 극음무공의 정수였고 그를 뒤받침 하는 내공 또한 가히 일절이었다.준영은 처음 십합을 조금 밀렸다. 십합까진 파천태극무검으로만 상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력을 오성만 사용했기 때문에 그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즐기고 싶었다. 제마단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일소빙혈사 설지연을 만났지만 제마단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고 해서 이런 일전이 다시없을 것 같아 이것저것을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



“호호홋! 토실토실한 것이 맛있게 생겼구먼. 왜 이리 앙탈이야. 얼른 와. 이 누가가 어루만져 줄게. 어영~ 어서. 호호호호!”



설지연은 상대의 강함도 좋았고 자신이 우위를 점함도 좋았다. 늠름한 것이 보기에도 좋았고 그의 공력을 자신이 흡수해버릴 생각이어서 더욱 좋았다. 둘 간의 교접을 생각하니 입이 찢어질 판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크게 웃어 가슴도 격랑 치게 만들었다.



“허! 이런. 칠백 년 묵은 몸을 함부로 놀리는군. 이제 볼만큼 봤으니 보낼 때가 된 것 같군. 어.. 칠백 년 묵은 처녀라. 허허.”

“그래서 더 완벽하지. 이 누나가 가르쳐 줄게. 호홋! 어서 오래니까.”

“아! 실수. 칠백 년 묵은 걸레겠지. 미안. 할머니.”

“뭐라고? 요놈 보라? 어린 것이 예쁘다고 봐줬더니만 기어오르려고 하네?”

“내가 왜 걸레 위로 기어올라? 미쳤어?”

“이..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아니, 죽이고 싶어 환장했어. 아주 오래된 걸레 할멈.”

“죽어!!!”



그녀가 정말로 욱해 극빙마혈공의 제 삼초 빙혈단혼절빙장을 팔성의 내력으로 펼쳤다. 팔성 정도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반경 십 장 이내의 나무에 서리가 끼고 바닥의 땅도 얼어붙었다. 개방에서 펼쳤던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이크! 할멈, 참!”



준영이 얼른 한마디 하고 몸을 회전시켰다. 호신강기로 막을 치는 동시에 회전을 통해 자신 주위의 공기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그 다음은.



“이상한 놈과의 대결에서 깨달은 태의 순상평(順狀平)이다.”



그의 외침과 함께 열기 덩어리가 된 준영의 신형이 빙혈단혼절빙장의 극음기에 부딪쳤지만 그냥 산들거렸다. 극음기가 비껴간 것이고 그 여파에 준형의 신형이 갈대처럼 흔들거렸지만 그것을 흔든 바람처럼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헛! 말도 안돼!”



설지연이 공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다급히 외쳤고.



“이번 초식은 무영이 깨닫게 해준 삼영지문의 여의무상파천류라 한다. 누구와 싸워도 최선을 다해야 하거늘, 넌 그렇지 못했어. 그 교만이 너를 죽음으로 인도할 거야. 이것으로 너의 칠백 년을 마감시킨다. 살!”

그의 검에서 빛이 번쩍했고 사라지더니 공간을 건너뛰는 시간을 압축해 설지연의 목에서 하나의 검 날로 재현됐다.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상평을 펼쳐 회전하기 시작한 몸이 극음기가 비껴가며 회전속도를 더욱 높여주었기에 그가 펼친 여의무상파천류는 가속을 받아 본래의 속도보다 몇 배는 빨랐던 것이다.



싹둑! 파!



두 개의 소리, 목이 잘리고 피가 튀는 것으로 일소혈빙사 설지연의 파란만장한 삶이 마감됐다.



‘이런. 말도 안 돼.’



그녀가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말은 앞서 뱉을 수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끝에 그녀의 몸이 얼음이 깨지는 것처럼 온몸에 금이 생기더니 이윽고 산산 조각나 사라졌다. 몇 개의 물방울이 대지 위로 떨어졌다. 나머지는 다 증발한 것이다. 그녀의 칠백 년과 일소혈빙사라는 희대의 마녀가 몇 개의 물방울로 무림 사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준영이 사마천을 상대하고 있는 한성과 철용을 보았다.



- 이미 연극은 무대 위로 올렸지. 자네가 모를 뿐이지.

- 무영이 천상귀원검에 이어 여의일도파천황을 이뤘다고 해서? 컬컬! 두 초식을 이뤘다고 해서 무턱대고 올릴 무대가 아니야. 천년의 연극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어 빨리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야.

- 자네의 눈으로 보면 그렇겠지. 이미 천년을 너의 입장에서만 봤으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겠지. 아, 몇 번 수정을 했다고 했지? 그런 게야. 직접 살아 움직이는 것에선 완벽함이란 없어. 그건 삶에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 자의 개념일 뿐이야. 수많은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기도 하지만 우연이 그냥 우연으로 끝나는 경우도 숱하게 있어. 모든 변화와 단절, 비약과 우연에 열려 있는 게 삶이야.

살아 있는 연극이란 때로 남이 마련한 무대에 올릴 때가 더욱 쉬울 수도 있어. 혼자만의 삶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만물은 서로 얽히고설켜 상호보완적 경향을 취해. 반대의 경우도 수두룩하고. 단절이 지속을 보장하고, 비약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해. 자유, 그게 핵심이야. 창조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야. 확정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뭐 그런 혼돈 속의 질서이지.

스스로 구성이 완벽하다고 확신해, 탈고하지 않는 극본이면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어. 모방이 창조의 시작이니까. 너의 연극이 그래서 더 쉬운 거야. 완벽하다고 믿는 것에 늘 허점이 있지. 난 그것만 찾으면 됐어. 아주 작은 틈을 찾아내는 게 삶이고 미래에 투자하는 현재의 의지야. 그게 무엇도 가능하게 하지.

게다가 너의 연극은 천년 동안이나 최고의 흥행을 거둔 연극이라 관성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네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첨삭이란 너조차 관성을 되돌릴 수 없어 미세조정만 가능하게 된 거지. 그게 네 연극의 단점이야. 난 관성에 올라타기만 하면 됐으니까.

- ..베꼈다는 게냐?

- 아니. 검결 몇 자 수정한 것처럼 가장 느슨해진 각본의 일부를 조금 고쳤을 뿐이야. 네가 자네처럼 어리벙벙하게 하겠어? 물론 자네야 무엇이든 갔다 쓰면 됐지만, 중간에 들어간 난 대사도 고치고 연기 지도도 직접 해야 했어. 때론 이리저리 빈자리도 메워야 했고, 고친 각본에 따라 연기할 배우들도 새로 뽑아야 했어. 당연히 천년의 흥행에 성공한 자네와 같을 수야 없겠지.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어. 자네가 첨삭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었으니까.

- 뭐라고? 이놈이 감히!!!

- 허허. 이제야 이해를 하네. 그래, 자네는 지금 천년의 주재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이 된 거야. 나, 류심환이 썼고 무영이 주연한 연극의 첫 번째 관객!

- 이.. 노엄! 이.. 클클.. 클클.. 좋아, 그렇다고 하고, 다음!!!

- 하하. 너무 서두르지 마라. 성질을 내니 이제 사람답군. 좋아, 그 모습.

- 다음!!!!!!!

-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놈의 성미하곤.. 좋아, 지금부터 확실하게 느껴보라고. 연극 속에 갇혀 네가 정한대로 연기하다 허무하게 사라진 그 많은 배역들의 눈물과 피와 한을 철저하게 느껴보라고. 네 놈의 극본에 갇혀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눈을 뽑고 입을 찢으며 사지를 절단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수많은 희생들을. 지금부터 내가 그들의 한을 네놈의 영혼과 뼈와 살에 하나하나씩 각인시켜 놓을 테니.

- 쓰레기들 얘기를 내가 왜? 아, 참! 대역이라면 삼영을 말하나? 설마 혜준을 같고 그럴 리는 없을 테니.

- 마음대로 생각해. 이젠 네 생각이나 궁금증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혜준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게야. 그때 확인해 보라고?

- 진정한 가치라? 겨우 그것으로. 클! 너무 재미없잖아, 그러면?

- 상상은 자유니까, 너 꼴리는 대로 생각해. 아무튼 다시 얘기하면 이렇지. 이곳에서 보낸 총 6년간의 기간 중 5년은 무영이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하나로 합치는 기간이었어.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합쳐지는 것이지, 대등하게.

- 대등하게?

- 그래, 대등하게. 여기서 자네와 다른 것 하나, 어떤 깨달음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다 의미가 있다는 것. 하나의 무공이 독점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이지. 자네처럼 관념 속에서 무공을 익히고, 사변으로 경험을 대신하는 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 생명 말이야. 약동하는 생명!!

- 생명?

- 넌 존재도 아니고, 실존도 아닌 채 천년을 이어왔어. 너는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어디서도 실존하지 못했어. 네 각본 속에서는 한 자의 문자였던 것이 현실에선 실재의 삶이야. 숱한 우연과 단절, 변이와 지속이 난무하는 삶 말이야. 넌 이해할 순 있어도 체험하지 못했어. 해서, 무의 근본이 힘에서 출발한다고? 어림 반 푼 어치 없는 소리!!

- 삶.. 기껏해야 백년도 못 넘기는 삶? 클클,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이야. 그까지 삶, 체험하지 않아도 돼. 난 천년을 주재했어. 편재가 곧 집중이야. 난 언제나 연결돼 있었으니까.

- 그럴까? 그렇다면 왜 첨삭이 필요했지? 변수는? 그것도 안배했나? 모든 변수를? 편재가 곧 집중이라고? 그건 집중이 아닌 연결일 뿐이야. 어디서나 단속은 일어나. 그래서 변수가 생기고, 첨삭이 필요한 거야. 너의 연극도 그랬고. 지금 너와 나의 대화가 바로 그래. 알겠나? 다시 말하지만, 너의 연극,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니까.

-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네 놈이 천년의 극본을 육년 만에 바꿀 수는 없어. 암, 그럴 수는 없어. 안 돼, 안 돼. 안 돼!!

- 너무 자책하지 마라. 추해 보이니까. 천년을 영혼으로만 떠다녔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넌 너도 아니야. 누고도 아니야. 그저..

- 으드득! 감히 어디 앞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망발을!! 노엄!!!

- 망발이라… 이제 시작인데, 망발이라면? 아직 많이 남았거든. 너무 흥분하지 말게. 좀 더 들어보라고. 내 각본도 재미있거든. 사람이.. 사람? 뭐, 사람이라 하지.

- 다음!!!

-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래, 천년의 전설을 바꾸는 건데 마냥 쉽기야 했겠어? 나도 사람인데.

- 크.. 크.. 다음!

-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웃기라도 해야겠지. 허나, 두 번째로 내 연극이 자네하고 다른 건 이거야. 자네가 초마인을 죽여 삭(削)하고, 검강인을 제거해 첨(添)할 임시주인공을 내게 보내주었을 때,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지. 그것은 임시주인공이 연기가 아니라, 삶의 무대로 내려와 부모의 처참한 죽음에 순정(純情)한 피의 분노와 한이 너무 깊어 투명해진 영혼으로 내게 다가온 순간 이루어진 깨달음이었어.

그것이 너와 달라. 인간의 삶에 담긴 진정한 가치란 그 잠재능력으로 하여 인간 자체가 우주가 될 수 있음을 그 아이가 가르쳐 주었어. 천상무극독을 치료할 때 무영의 본능이 보여준 잠재능력의 무안함과 순정함, 그것이 나를 깨우치게 해줬어. 그걸 해탈이라 하면 해탈이고, 그걸 우화등선이라 하면 우화등선이지.

내가 씨를 뿌렸으나 아이의 아비가 물을 주었고 아이에 의해 몽우리를 맺어 비로소 완성된 것, 일극무원결이 바로 그 결과야. 이로부터 해탈과 우화등선의 길에 오르고 두 무공의 합일을 통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끝이 끝이 아닌 거라는 깨달음, 죽음에서 시작되는 것도 있다는 깨달음, 그게 해탈이고 우화등선이야.

삶도 운명도, 하물며 무(武)라고 해도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귀결돼. 그게 무의 해탈이고 우화등선이야. 넌 집중했지만, 난 풀어놓았어. 넌 상승만 생각했다면, 난 하락도 받아들였어. 그 깨달음을 아이가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 지난 오년이었고, 나머지 1년은 그 과실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어. 바로 이것이 자네의 집중이나 독점과는 근본부터 다른 거야.

- 무의 해탈? 무의 우화등선? 그따위는 없어. 점점으로 나눠 편재할 순 있어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순 없어. 그건 무야. 무란 없는 거야. 관념이고 허상이야.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 일어나기나 하겠어?

- 그건 무가 아니라 진공이지. 무란 충만한 거야.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무엔 모든 것이 있어. 그냥 시공간에 드러나는 것이 없어 보일 뿐이지만, 무에는 모든 것이 있어. 그래서 무란 유의 부재가 아니라 충만이야. 다시 말해 우주인 거지.

- 철학적 유희는 그만하면 됐어. 네 놈은 일극무원결을 너무 믿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그것이 세 무공의 합일보다 더 강하다? 시정잡배가 말하길 개소리라 했던가, 네가 말한 것들이?

- 개소리도 극에 이른다면, 인간의 말이라고 못할 게 또 무엇이겠나?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일극무원결의 진정한 힘을 알 수 없어. 크하하하하!! 그게 너와 내가 다른 점이고 네놈이 다시 천년을 산다고.. 아니 뭐, 살아있던 떠 있든 간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진정 무영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여의일도파천황을 구현할 때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어떻게 여의일도파천황과 하나로 합쳤는지, 그 사이에서 일극무원결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네놈이 천년을 생각하고 지켜본다 한들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 얻는 것과 남이 이룬 것을 훔쳐가는 것의 차이를 네놈이 알 턱이 없지. 인간은 정신과 육체 외에도 영혼의 공간이 있어. 넌 그걸 이해하지 못해. 너와 나, 무영과 검강천이 죽음으로 안배한 것이 혜준의 사랑으로 완벽해지는 것을 너는 알 수 없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야. 무영과의 차이이기도 하고. 이게 지난 6년의 진정한 가치야. 천년보다 더욱 소중한.’



- 후후. 해서.

- 그렇게 총 육년, 나의 연극은 막을 내렸지. 네 말을 또 빌리면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한 연극의 전반부야.

- 전반부라고? 컬컬, 컬컬, 재미있어, 재밌어. 다음은?

- 먼저 4년이란 기간의 연기에 대한 대가를 너의 각본으로부터 받아내야 했어.

- 초마인과 검강인의 제거군. 당연히, 초마인이 먼저겠지.

-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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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너와 겨루려면 검무영과 그 떨거지들을 먼저 죽여야 한다? 크하하하. 건방진 놈. 이경이라? 뭐, 천외천이 아니라 제천문이라고? 컬컬컬! 뭐든 상관없어. 다 쓸어버리면 되는데 이제 와서 따진다 한들 뭐가 다르겠어. 좋아, 그래, 제마단으로 가마. 한 번에 모두 쓸어버리고 네놈의 본거지로 가지.”



초마인 진무결이 자신의 앞에 대기처럼 떠있는 이경에게 말했다. 그가 자신에게 한 말이 놀랍고 어의없는 것이어서 잠시 황당하기만 했지만 그 역시 이런 형태의 경공이란 처음 보는 것이라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잠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솔솔 흥미마저 일었다. 그는 원래 먼저 현 무림을 다 쓸어버린 후 천상천을 칠 생각이었다. 천외천은 그 다음에 멸문시켜야 가장 멋있는 결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천마성과 몇 개 문파를 멸문시킨 것이었다.



물론 뜻밖의 희생도 있었지만 천외천, 아니 제천문의 능력이 생각보다 커서 오히려 재미가 늘어났다. 그 결과란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 새로운 재미와 긴장을 자신에게 주지 않았던가.



헌데... 천외천은 껍데기고 실은 제천문이라고 했다. 저놈이 말하길 자신도 그 문파의 일원이라고 했다.

툴툴! 오히려 화도 나지 않았다. 지난 천년의 한이, 그 굴욕의 세월이 다 허망할 뿐이었다. 해서 순서고 계획이고 다 없애기로 마음을 바꿨다. 저놈부터 당장 없애고 싶었지만 그것은 재미가 덜할 것이어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마침 제마단에 검무영과 그 무리들까지 모였다니 이 살의와 허망함을 달래기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개 지옥의 힘과 곡인들은 들어라. 이제부터 무림을 쓸어버린다. 마음껏 죽여라. 살육을 즐겨라. 그 다음에 제천문을 쓸어버리겠다. 그것으로 천년을 바꾼다. 역천마곡의 이름으로 다시 무림 사를 기록한다. 일어나라. 마의 혼들아!”



초마인 만세!!

곡주님 만세!!

역천마곡 만만세!!!



천지를 흔드는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이 내뿜는 마기가 끝없이 일어나 하늘의 푸름마저 산 너머로 검붉게 기울게 했다. 마기 덩어리의 함성은 노을을 타고 제마단을 향했다, 놀라운 속도로.

그곳에선 지금, 무영이 막 열 걸음 째를 딛고 있었다.






천검지로23 -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5




“컬컬! 그런 것이었어. 천상천의 진정한 힘은 다섯 장로와 십팔 호법, 금제 당하지 않았어야 했던 십이 제마령, 삼재와 나머지 내궁 고수들이었어. 대부분 외궁에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나만 강해진 것이었어, 제기랄.”



검강인인 무영이 열 걸음 째를 내딛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모든 천상천 식솔들은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일부는 삼혼에게, 혜준에게, 검신과 도천에게 목숨을 잃었다. 온몸으로 번져가던 공포가 그들의 시신을 보자 일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모두들 최대한 물러나. 호신강기를 펼치되 이 갑자 이하의 무인들은 아예 집성전 밖으로 나가, 당장!”

검신이 두 절대자의 일전이 시작되려 하자 주위에 있던 각 파 대표들에게 그 위험성을 일깨워줬다. 그의 말에 각 문파의 대표들은 서둘러 물러났다.



허나 그들 중 단 한 명도 집성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생을 살면서 이런 대결을 보게 됐는데 누군들 그 자리를 떠나겠는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검강인이 툴툴거렸다.



“후후. 물러나야겠지. 컬컬컬! 내 판단이 잘못됐어. 그때 삼재가 아니라 내가 직접 움직여 너를 죽였어야 했어. 결국 내가 씨를 키운 셈이야, 클클클.”



무영이 검강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네가 직접 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네 잘못과 그 대가는 내 아버지 검강천 천주를 제거하겠다고 마음먹은 그 역천의 순간에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길게 생각할 것 없다. 지금부터 너는 죽어주면 되니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서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넌, 그렇게 죽어주면 되는 거야.”

“후후후. 자신이 지나치군. 검강천도 그랬지.”

“네 입에 내 선친의 이름을 올리지 마라. 한 번 더 올리면 네가 받을 고통의 크기는 그만큼 는다. 이미 한 번은 늘었다.”

“후후.. 컬컬. 이제는 말도 못하게 하는군. 허나 난 검강인이다. 천상천의 천주며 천상지무를 대성한 최초의 천주다. 여기 있는 놈들을 다 죽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너는 데려가야겠어. 원래 천주자리는 내 것이었고, 굴러 들어온 놈의 자식마저 없애야 천상천은 바로 서는 것이지. 천외천이라 해도 예외는 없어. 내가 원하는 만큼은 데려가야 하겠어, 클클.”



검강인의 자신의 검 천무신검(天武神劍)의 검병을 잡았다.



“하나만 얘기해 주지. 네가 알고 있는 천외천은 허상이야. 껍데기야. 천년 전설도 그래서 껍데기고. 그 뒤에 천년을 주재했던 세력이 있어. 그들이 있는 곳에 천검 류심환 사부님이 계시니, 너와 초마인 진무결을 없앤 후에 그곳으로 합류하면 천년의 전설은 막을 내리는 거야. 결국 천외천은 허상이야. 너는 껍데기가 간직한 비밀 속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야. 너의 삶 모두가 의미 없다는 거야, 알겠나?”



말을 마친 무영도 승천제마검을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이제는 복수의 완성을 이뤄야 할 시간,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뭐? 천외천이 허상이라고? 그 뒤에 다른 세력이 있다고? 크하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놈, 무영! 분명히 해라, 네 말이 정말인지?”



검강인이 검을 뽑은 상태에서 무영의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실은 죽어 지옥에서 확인해라. 일단 너의 손목으로부터 시작한다. 역천의 대가다. 갈!”



무영이 검을 뽑자마자 신형을 우측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검 끝을 튕겨 검강인을 향해 투명한 빛을 격발했다. 천상지무의 제 일초였다. 그가 튕긴 검강은 검강인의 손목을 향했다. 그 거리 안에서 이보다 빠른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속도로.



검강인은 무영이 한 말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으나 무영이 이미 몸을 이동했기에 그도 천상지무를 펼쳐야 했다. 그의 천무신검에서도 투명한 빛이 일었다. 동시에 하나의 검이 떠오르고 검강이 격발됐다.



천상지무 대 천상지무!



천년 전설의 검법이, 바로 그 천년 전설의 또 다른 검법을 상대하는 뒤틀어진 운명이 만들어낸 두 번째 일전이 시작됐다. 그 일전 첫 합은 투명한 두 개의 빛이 정면충돌하는 것이었다.



퍽!



두 사람 다 천상지무의 제 일초 천상태극뇌전류를 격발했는데 의외로 충돌음은 작았다. 다만 두 검강이 그 끝을 마주한 채 힘겨루기를 했다. 이런 모습이란 천년 역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두 개의 검강은 살아있는 생물인 듯 그렇게 서로를 향해 으르릉거렸다.



윙! 윙! 윙!



두 개의 감강이 반의반의 반각도 안 되는 순간에 만들어낸 수천 번의 충돌에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휘돌며, 엄청난 크기의 파장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발생된 파장이 두 검강이 이루는 반탄력에 밀려 맹렬하게 휘돌며 주위를 휘몰아쳤다. 그들의 첫 합이 집성전을 고려해 내력 대결로 간 것인데 그 대결의 여파가 순식간에 집성전 내부를 쓸어버릴 듯 퍼졌다. 두 사람에게서 최대한 뒤로 물러나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던 각 문파의 대표들이 이에 휩쓸릴 정도였다. 그 중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몇몇 장로급 인물들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다. 그들 중 일부는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때 삼혼과 검신, 도천이 그들을 앞에 하나의 기막을 형성시켰다.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반탄력을 흡수하는 성질의 기막을 펼쳤다. 그렇게 방어벽이 생기자 비로소 각 문파 대표들의 흔들림이 멈췄다. 그 순간 두 절대 절초가 대치한 곳에서 일고 있는 윙윙거리던 소리가 급격하게 커졌다. 두 사람이 내력을 올린 것이었다. 검강인인 이런 힘겨루기라면 자신의 내력이 무영보다 강하다고 판단해 승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내력을 올렸고 무영도 이에 뒤질세라 내력을 올렸다. 그는 어떤 식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모든 초식에서 검강인을 아예 압도해버릴 생각이었다. 상대가 느낄 공포란 그럴 때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휭!! 휭!! 휭!!



상승된 공력이 전달되자 두 검강의 끝에서 엄청난 속도의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마침내 하나의 화염을 형성했다. 충돌이 만들어낸 열기와 불꽃이 주변의 공기를 태우기에 이른 것이다.



콰-앙!!!!!



처음 제대로 된 폭발음이 터졌다.



쏴아악!!! 트트트특!!!



폭발의 여진이 집성전을 미친 듯 회오리 쳐 거력의 광풍을 만들었다.



쩌억! 쩌억! 쩍! 쩍!



집성전의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삼혼과 검신, 도천의 기막이 뒤로 크게 밀렸다. 순간 혜준이 그 기막에 하나의 기막을 더 얹었다. 그러자 그들이 펼친 기막을 뚫어버릴 듯했던 거력의 강풍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일전을 치켜보다 다음을 결정해요.”



혜준은 무영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문은 중요치 않았다. 그런 혜준의 시선과 함께 그들의 눈에도 검강인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내공에서도 밀리다니... 이럴 리가 없는데..’



검강인이 기혈이 흔들리며 솟아온 신음을 삼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번쩍! 차르르르륵!!



맹렬히 뒤엉키던 검강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검강인은 다급히 기혈을 조절해 파편들을 튕겨내며 다음 초식을 펼치기 위해 천상지무의 운결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시야에서 빛이 먼저 어른거렸다. 그것은 화염이 폭발할 때 생긴 강기의 수천 조각 중 하나였다.



“역반투라 한다.”



무영의 말과 동시에 검강인인 자신의 왼 손목에서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들었던 순간에 소림 끼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삭둑!



그 느낌은 이런 소리와 함께 극렬한 통증으로 변했다. 강렬한 신음이 검강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큭!”



헌데 자신의 손목을 자른 것은 자신이 펼친 검강 조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강에는 일정량의 마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었다.



툭! 파앗!



검강인의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잘린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검강인은 급히 요혈을 짚어 지혈했다. 그렇게 검강인 지혈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있어야 할 곳에 있었던 팔의 일부를 볼 수 없었다.



“마기만 돌려줬다. 천상지무가 아니어서. 다음은 오른쪽 발목!”



무영의 말이 검강인이 고막을 흔들기 전에 무영의 신형이 흐려졌다. 검강인의 눈이 본 것과 귀가 느낀 차이는 그런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삼혼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핫!”



검강인은 천무신검의 끝을 두 번 튕겨 천상지무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을 격발시켰다. 흐린 무영의 모습 끝에 두 번 번쩍이는 것이 그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펑! 펑!



검강의 정면충돌이 두 번 일어났다. 또 다시 내력의 대결이 일어났고 일합보다 더 큰 파장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집성전 전체가 흔들렸고 삼혼과 혜준의 기막도 크게 흔들렸다. 폭풍을 동반한 거력이 집성전을 삼킬 듯 휘몰아치던 그 혼돈의 순간, 두 내력의 폭발에 의해 수없이 만들어진 조각난 강기 중 하나가 폭발과 동시에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빠져 나왔다.



무영은 일합과는 달리 자신이 격발한 검강이 검강인의 검강과 충돌할 때 일극무원결의 수비식 망(網)을 동시에 펼쳤고 검강을 통한 치열한 내력 겨루기를 하는 동안 하나의 검기를 분리시켜 다시 역반투로 발사했던 것이다. 일극무원결의 위대함이란 이런 임기응변적 창조성에 있었다.



“이번에는 망을 더했고 역반투는 아버님 몫의 일부다.”



검강인은 그런 수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불신의 결과는 여지없이 슥! 하고 싹둑! 이었다. 찰라 지간의 차이를 두고 검강인의 귀에 두 소리가 인식됐다. 이어 신경이 감각을 건드렸고 이를 감지한 뇌에서 신호를 보내기 전에 검강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감각보다 본능이 빨랐다.



“크악!”

톡!



발목이 작은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고 엇갈리듯 그 위의 다리는 앞으로 밀려났다.



휘청!



발목이 잘린 여파에 발이 앞으로 나가자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턱!



잘린 발목이 바닥을 짚었고 피가 튀면서 다시 비명이 터졌다.



“컥!”



순간 내력의 대결을 펼쳤던 검강인의 검강이 검결에서 이탈했다. 무영의 검강도 같은 순간 사라졌다. 마기가 담긴 일탈한 검강인의 검강들이 사방으로 폭사됐다. 집성전이 그 파편에 의해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그 충격에 금이 깊어지고 간격이 넓어졌다.



쩌ㅡ억!!!



“이번 합에선 발목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영의 청아한 음성이 울렸고 각 문파의 고수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혜준이 그들의 앞에 기막을 유지해 퇴로를 확보해 주었다. 그 순간 삼혼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제마단 집성전 위 삼십여 장 위로 빛살처럼 날아갔다. 삼영은 이곳 제마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검강인이 급히 검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손으로 발목으로 가는 혈도들을 점해 출혈을 막았다. 검강인의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 봤다. 고금제일인을 꿈꿨던 자신이 허리를 비틀며 힘겹게 중심을 잡고 발목으로 서있는 것이었다. 이제 통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이 더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는 툴툴거리며 겨드랑이에 꼈던 검을 다시 오른손으로 들면서 고개를 들어 무영을 바라봤다.



그때 무영은 집성전에 생긴 금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했다. 그 정도면 검신과 혜준 등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어 검강인을 보며 말했다.



“다음 무릎까지는 이곳에서. 지금부터 어머님의 몫도 함께 포함된다.”



그의 말에 어머니이란 단어가 들어가자 검강인의 뇌리에 다시 공포가 떠올랐다. 그 공포엔 치욕 같은 수치심이 묻어 있었다. 허망함이 아무리 크고 자존심의 상처가 뼈에 사무쳐도 수치심을 동반한 공포는 그에게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검강인의 눈빛이 마음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그때 삼영에게 목숨을 잃은 일환이 쓰러져 있는 곳에 나머지 세 명의 환이 내려섰다.

  1. Arthur Jung 2015.02.02 17:00 신고

    아, 이런 글도 쓰시는군요.
    블로그를 잘 활용하고 계시네요 ^^

    • 늙은도령 2015.02.02 18:55 신고

      아, 예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죽지 못해 썼던 소설입니다.
      그때는 정말 자살만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이끌어갈 수 있게 해준 소일거리였습니다.



사년 전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완성해 그것을 처음으로 펼칠 때였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뜻밖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주목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선천지체가 천상귀원검의 검결에 따라 온몸에 충만해 있는 천상무극진기를 하나로 모아 단전을 출발할 때 무영은 검결이 운용되는 그 시발점에서 아주 미세한 공간이 비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천상지무의 최후 초식 천상귀원검을 펼치려면 온몸에 있는 천상무극진기를 모두 써야 하는데 무영도 이를 처음 펼치는 것이어서 이제까지 자신의 몸 속에 이런 공간이 비어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천상귀원검을 완성했건 안 했건 간에 무영의 몸은 이제는 순의 경지에 이르러 있어 몸 안에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선천지체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무영은 천상무극진기를 다 꺼내니 비로소 드러난 새로운 공간에 의문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검결의 운용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어서 판단을 내리기가 오히려 어려웠다. 그가 느끼는 그 공간은 자신에게서 다른 누구에게 무엇이 넘어가 생긴 빈자리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를 이해할 방법은 없었다. 그때 무영의 마음에서 다시 류심환이 전해온 영혼의 소리가 들렸다.



“무영아, 멈추지 말고 그대로 천상귀원검을 펼쳐라. 그 빈공간은 너의 선친인 검강천 천주께서 안배한 것이니라. 어떤 의혹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답은 혜준에게 있으니 너는 지금 천상귀원검을 펼치되 전력을 다해야 한다. 네가 파천태극무검을 완성할 때면 이 이유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한껏 펼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펼쳐라.”



‘네? 아버님의 안배가 이것에? 그렇다면...? 아니야, 지금은 아저씨의 말을 따라는 것이 현명해. 이유는 자연히 알게 되겠지. 지금은 오직 천상귀원검만을 생각한다. 늘 아저씨가 옳았음을 믿자.’

번쩍!



하나의 검에서 시작한 빛의 해일은 암천을 삼켰다. 그 빛이 가는 어디에도 검이 있었고 그 투명함이 하늘가 닮았다.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전력으로 펼쳤다.







남은 두 명 중의 일인인 천상천 제일 장로 천상거력참마장(天上巨力懺魔掌) 견필과 제이 장로 천상태극일검(天上太極一劍) 무소야는 그저 투명한 빛이 폭사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분명 빛이었지만 그것은 검을 닮았고, 천상지무 제일 초 천상태극뇌전류가 확실했는데 검무영이 펼친 것은 검강천 천주가 보여준 것과 또 달랐다.



빛은 검에서 이는 순간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고 동시에 그들의 심장을 터뜨릴 것 같은 세 개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슥! 슥! 슥!



무엇인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눈에서 모세혈관이 터져 붉게 충혈됐다.



투둑! 투둑! 투둑!



검류에 잘린 것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그들의 뇌에서 모세혈관이 터져 생각이 멈췄다. 허나 공포는 맹렬하게 떠올라 살을 뚫고 뼈를 자를 듯 그들의 사지에 생생하게 각인됐다. 검궁인이 그것을 보면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잠시 그 상태로 있었다.



데구르르!



“더 벌하지 않고 목을 자른 것은 그 죄의 경중이 경에 가까웠음이나 천상지무의 제일 초로 이를 행한 것은 검강천 천주의 애정이 아직도 천상천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 어머니 유선화 천후의 영전에 바치려 하니 너희 두 장로가 그 시작이다. 여덟!”



콰앙!



그 걸음이 내는 소리에 그들은 세 사제의 머리가 구르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공포에 질려 물러난 것을 인지했을 때 여덟 번째 걸음이 만들어내 소리는 한 걸음 더 다가와 견필과 무소야의 고막을 터뜨렸고 코의 혈관을 함께 터뜨렸다. 그의 귀와 코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뚝! 뚝!



자신들의 귀와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또 왜 이리 크게 들리는 것인지. 그 치명적 공포를 떨쳐내고 싶어서 그들은 장풍을 펼치고 검을 휘둘러야 했는데 뇌가 기능의 마비돼서 신경이 명령해도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혈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곧 칠공 모두에서 피가 흘러내릴 판이었다.



헌데 그 놈의 소천주의 음성은 그들의 고막이 터졌는데도 또렷하게 들렸다.



“먼저 두 팔!”



청아했지만 살기가 담겨 있는 무영의 음성이 그들의 뇌리에서 폭발했다. 견필과 무소야는 그 충격에 팔을 뻗어 장풍을 펼쳤고 검을 휘둘렀다. 그들은 그것을 원했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무사답게 죽고 싶었다. 그들의 원(源)은 이랬으나 근육과 뼈, 힘줄이 그것을 거부했다. 소천주 검무영의 검에서 투명한 빛이 일었다.



‘참 아름다운 빛이다.’



그들의 생각이 이랬다. 동시에 싹둑! 하는 소리가 두 번. 이어서 툭! 툭! 그들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자신들의 팔임을 알았을 때 어깨에서 피가 튀었고 데구르르 굴어왔던 사제들의 머리 위로 무소야가 놓친 태극검이 떨어져 오 장로의 이마에 박혔다.



퍽!



태극검이 무소야와 견필이 가장 아꼈던 막네 사제의 이마에 박혔지만 견필과 무소야는 몸이 급격하게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오직 비명만 질러댔다.



“크악!” “커억!”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말로 형언키 어려운 통증이 어떤 것임을 알았다. 동시에 앞으로 쓰러지는 몸의 균형을 잡아 줄 팔이 없음을 다시 느꼈고 그때 소천주 검무영의 음성이 푸른빛으로 날아들었다.



“다음 무릎!”



팔이 잘렸을 때와 약간 다르게 이번에는 스걱! 하는 소리가 두 번. 그리고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을 경험해야만 했다. 눈이 보기에 무릎 밑으로는 그대로 서있는데 그 위의 다리가 앞으로 꺾어지는 것이 아닌가. 평생 뒤로만 접혀지던 두 다리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야 반대로도 꺾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 현상은 그들이 다시 느꼈던 살아 두 번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과 분수처럼 뿜어지던 피가 쿨렁쿨렁 솟아서는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을 동반했다. 그 바람에 그들은 보지 못했다, 자신들의 안면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을.



뻑! 뻑!



소리는 가장 컸지만 이것은 아픔도 아니었다. 그들은 코가 부러지고 이마가 깨지는 정도만 아프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픈 것이 그들은 허탈했다.



툴툴..



웃음이라도 흘렸으면 좋으련만 무심한 머리가 대리석과 충돌한 후 한 번 튕겼고 아주 조금 한 번 더 튕겼다. 그제야 견필과 무소야는 대리석 바닥이 붉은 빛을 띠고 있음을 알았다. 코와 잎의 높이가 같아진 그 순간, 그들은 대리석을 물들이는 자신들의 피처럼 그 한의 깊이가 느껴지는 무영의 음성이 그들의 뇌리에서 폭발함을 느꼈다.



“무릎을 잘라 벌함은 너희의 죄가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서는 옳지 않으면 주인의 말이라도 거역하길 바란다. 이는 검강인을 주인으로 두었음에 대한 단죄와 같음이다. 이만 떠나라.”



무영의 왼손에서 두 줄기 빛이 일었다. 태극멸섬이 다시 펼쳐졌고.



퍽! 퍽!



어김없이 그들의 머리에서 그 결과가 일어났다. 그들의 머리가 터지며 이승에서 두 개의 숨이 사라졌다. 그 끝에 천상천 외궁주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던 견필과 무소야가 내궁의 장로라는 자리가 자신들에게 벅찼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트득! 툭! 턱!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시 대리석 위로 떨어지는 머리와 뇌 조각들이 어지러운 소리를 냈다. 그때 검강인이 눈을 떴다.



“아홉!”



너무나 청아해 오히려 슬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무영의 음성이 집성전을 흔들었다.






두 명의 살혼령(殺魂靈)의 검이 무영의 목과 가슴을 관통했고 동시에 세 살혼령의 검이 그의 단전과 명문, 오른쪽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영의 머리 위에서 내리꽂힌 검이 천령개를 갈랐다. 연이어 두 명의 살혼령의 검이 무영의 복부에 박히고 두 다리를 잘랐다.



여덟 명의 살혼령은 네 명의 살혼령이 동귀어진을 노려 무영의 움직임에 작은 틈새를 만든 순간을 이용한 자신들의 합공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자 비로소 미소 지었다. 허나 그 미소가 다 그들의 입술에서 완벽한 선으로 완성되기 전에 그들의 눈에서 갑작스런 광채가 떠올랐다.



광채의 오 할은 합공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었으나 나머지 오 할은 그들의 검이 무영에게 박히고 잘라내던 그 순간 무영의 신형이 저절로 반걸음 뒤로 옮겨지며 그곳에 이동의 잔상을 남긴 채 다시 반걸음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떠오른 경악을 담은 것이었다.



“어, 어..”

“분명 찔렀는데?”

“나는 베는데 성공했어! 헌데 이 건 뭐지?”



그들이 보기에 무영의 움직임은 합공의 결과로 발현된 검기들이 만들어낸 공기의 움직임과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여덟 개의 검기는 모두 무영을 찌르고 벤 것이 확실했는데 실제로 찌르고 벤 것은 무영의 잔영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놀랄 일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도 엄청난 문제였다. 여덟 명의 살혼령들은 여덟 개의 검기에 의해 여러 개로 조각난 무영의 잔영들이 정확히 8개로 모여서는 자신들을 향해 공격해 오는 각각의 무영으로 화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번쩍!



여덟 명의 살혼령은 각각의 무영이 펼친 검에서 발출된 눈부신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볼 수만 있었다, 의지는 피하라고 명령했지만 몸이 그것을 따르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그들은 남의 목숨을 취할 때 듣기만 했던 그 소리를 이번에는 정반대로 들어야만 했다.



퍽!퍽!퍽!



섬뜩한 소리와 함께 여덟 명의 살혼령 미간에 각각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살혼령들은 자신을 향해 날아든 각각 하나씩의 검만 불 수 있었다. 검강인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여덟 명의 살혼령들에게 각각 한 명씩의 무영이 배정된 것처럼 보였다. 천상천주에 오른 검강인의 눈에도 무영의 신법이 너무 빨라 신체분신술(身體分身術) 같다는 착각이 들었고, 각 살혼령마다 배정된 무영의 검이 다 진초(眞招)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었다. 어떤 무공도 한 명의 인간을 8명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무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검강인 같은 절대고수의 눈에서마저 무영이 8명으로 보인 것은 그의 신법이 빛의 속도를 방불케 할 만큼 빨라서 일어난 착각이었다.



‘이런 신법이 있을 수 있다니..’



검강인은 평생 처음으로 공포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8명의 살혼령들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더욱 큰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 공포라는 사실을 이때의 검강인은 깨닫지 못했다.



“너희 죄는 주인을 잘못 만난 것. 단 일초에 너희를 절명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나머지 여죄는 저승에서 검강천 천주에게 받도록. 그럼 다음.”



고목처럼 쓰러지는 여덟 명의 살혼령을 뒤로 한 채 무영이 돌아섰다. 그는 다섯 명의 외궁 장로가 검강인 앞으로 나선 것을 봤다. 그 순간에 무영은 혜준의 상황을 살폈다. 그녀는 천상천의 미래였던 세 명의 제마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해. 안심해도 되겠어.’



헤준의 안전을 확인한 무영은 다섯 장로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삼혼의 상대가 될 만한 자가 검강인을 제외하면 이곳에 없었기 때문에 혜준의 신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기우였음을 알게 됐으니 마음 놓고 일전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검강인의 앞으로 나선, 외궁에서 내궁의 장로가 된 다섯 명의 천상천 장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그가 내딛는 걸음마다 압도적인 죽음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5명의 장로는 무영의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맥박이 빨라지고 무기를 잡고 있는 손에서 땀이 배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기랄, 이 지랄 같은 느낌은 뭐야?’

‘염병할!!’



5명의 장로는 무영이 두 걸음을 더 다가오자 이번에는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살혼령들이 여덟 수처럼 보인 단 한 번의 절초에 절명한 것을 봤기 때문에 두려움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겄다. 그때.



“살!” 

“갈!”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 먼저 승천일룡검 옥진결이 무영의 관자놀이를 향해 그의 성명절기인 욱일승천검(旭日昇天劍)을 전력으로 격발했다. 그는 중검(重劍)에 속도를 붙여 변화를 만들어낸 신검류(新劍流)로 인해 강호 최고 후기지수(後起之秀)로 꼽혔다. 특히 그의 마지막 초식, 중가속변절명류(重加速變絶命流)는 검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절초 중의 절초였다. 창룡문의 장로로 변신해 있던 그는 천상천의 비밀명기 십이 사마령의 첫째였다.



옥진결의 공격과 동시에 화산파 장문인 매화일검(梅花一劍) 추성웅이 자하신공(紫霞神功)에 천상무극진기를 가미시킨 신육합신검법(新六合神劍法)의 최후 절초를 무영의 후단전을 향해 번개처럼 격발했다. 추성웅도 검강인이 각 문파에 침투시킨 제마령 중 여덟 번째인 방명석이었다.



그들은 두 문파의 핵심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한 채 정파 고수들과 함께 천상천 무리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무영이 검강인 앞으로 나선 다섯 명의 장로를 향해 걸어갈 때 양 옆으로 길을 터줬고, 그 덕분에 무영의 바로 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그 이점을 이용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살초를 펼칠 수 있었다.



쉭! 쉭!



그들이 펼친 두 개의 살초는 낙뢰 같은 기세를 드러내면서도 소리조차 늦을 만큼 빨랐다. 두 개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전무해 보였다. 모두의 예상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두 제마령의 검은 무영의 관자놀이와 후단전을 파고들었다.



‘성공했어!’

‘확실해!’



두 제마령은 그렇게 느꼈다. 헌데, 옥진결의 검기가 무영의 관자놀이를 관통해 무영의 앞면까지 나갔으나 갑자기 그 끝이 반원을 그리며 휘어졌다. 무영의 뒤에서 앞으로 후단전을 뚫었던 방명석의 검기도 그 끝이 휘어지더니 오진결의 검기와 스치듯 교차했다. 두 검기는 이렇게 방향이 바뀌었고 그것에는 무영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퍽! 퍽!



무영에 의해 강제로 방향이 바뀐 옥진결의 검기는 방명석의 미간에 박혔고 방명석의 검기는 옥진결의 미간을 뚫었다. 이런 결과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크윽!” 

“커억!”



두 제마령이 생을 다하는 비명을 토했다. 옥진결은 자신의 검에 의해 관자놀이가 관통된 무영의 머리와 함께 자신의 검기를 피할 만큼만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무영이 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관통시켰다고 확신했던 무영의 머리가 옆에 있는 머리 쪽으로 흡수되는 것을 본 것은 그가 살아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이었다.



‘두 개였어. 미간을 관통당한 한 개와 멀쩡한 또 한 개.’



생사가 뒤바꾼 순간의 방명석의 눈에도 옥질결의 눈에서 드러난 현상이 똑같이 재현됐다.



‘두 개였어. 내 검기가 관통하자 그 중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야.’



그의 생각도 옥진결처럼 거기에서 멈췄다. 그들은 상대의 목숨을 취해야 했을 두 개의 검기가 제멋대로 교차해 자신들의 미간을 관통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너희들도 주인을 잘못 만난 죄이니 이것으로 족해. 가서 내 어머니께 나머지 죄를 고해 사죄를 받아라. 너희 명(命)을 취한 것은 일극무원결의 공격식 제 삼초 분이발(分移發 : 분석하여 변형시킨 공격)이며 너희가 본 나는 다섯 개의 감각 중 태(態)의 후반부 망상재(妄想在)가 만든 것이다. 너희의 목숨을 가져갈 만한 수이니 그리 알고 가라.”



“휴~!”



그 순간 혜준은 세 명의 사마령 중 사 사마령 냉면철심(冷面鐵心) 구지굉의 목을 베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세 명의 사마령을 상대하면서도 무영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상대해야 자들이 너무 많았고 하나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은 무영이 혜준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고 전음을 보내며 검지 하나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이 정도 쯤이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너도 하나 처리했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와중에도 다섯 장로를 향해 걷는 무영의 걸음이 그 속도와 폭을 일정하게 유지했다는 사실이었다.



쿵! 쿵!



그때야 두 제마령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처음으로 생명체가 아닌 육질 덩어리로 변화한 소리를 냈다. 그것이 다섯 장로에게 뚜렷하게 들렸고, 검강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열 걸음 정도면 진정한 복수가 시작된다.’



무영의 생각은 그랬고, 다섯 장로는 그 열 걸음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강인에게도 무영의 걸음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공포의 농도가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무영의 발걸음이 두 번 더 바닥을 딛자 그들에겐 거한이 걷는 소리처럼 들렸고, 공포에 질린 그들의 감정이 저절로 둘이라는 숫자를 세게 만들었다. 두 사마령의 기습마저 간단히 무너뜨린 무영의 무공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이성을 대신해 걸음의 수를 셌던 것이다. 그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박동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뚜벅! 뚜벅!!



이번에는 무영의 걸음이 내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두려움이 센 숫자가 다시 두 걸음이 진행됐음을 알려주었다. 두려움에서 공포로 발전한 감정이 더욱 확실한 느낌으로 죽음의 수를 셌다. 극한으로 커가는 공포가 죽음과의 거리를 좁히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 같았다. 다섯 명의 장로들 중 제일 밑인 오 장로 검일이 공포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숫자를 외쳤다.



“넷!”



그가 말한 숫자가 나머지 네 명에게 공포를 극점 근처까지 이르게 했고 무영은 아랑곳없이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쿵!



"이것으로 반. 다섯!"



무영이 죽음의 숫자를 말했다. 다섯 장로의 귀에 무영의 말이 야차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하는 법이지만 다섯 명의 장로에게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영이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쿵!



다섯 명의 장로 중 상대적으로 무공이 떨어지는 세 명의 장로에게 무영의 여섯 번째 걸음이 만들어 낸 소리는 염라대왕이 직접 다가오는 것 같은 거력의 폭음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나머지 두 장로의 뇌리에도 공포가 세는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 섯..”



이번에는 목과 팔의 핏줄마저 지렁이처럼 꿈틀대던 삼 장로 환충이 신음처럼 숫자를 뱉었다. 호흡마저 턱턱 막혀왔고 온몸의 신경은 있는 대로 곤두섰다. 죽음이라는 것이 공포를 타고 와서 그들에게 이제 네 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그들은 더 이상 이를 수 없는 공포의 극한으로 빠져들었다. 검강인의 손에서도 땀이 배기 시작했다.



“이제 네 걸음 남았다. 그것으로 너희에게 허락된 이승은 더 이상 없다. 이후의 기억은 저승까지 가져갈 것이니 하나도 놓치지 말도록. 일곱!”



쾅!



무영의 일곱 번째 걸음이 대리석에 내리 찍힐 때 세 명의 장로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아예 폭발해 버렸다. 그들의 뇌리와 마음속에선 제어할 수 없는 공포가 직접 비명을 질렀고, 온몸의 피는 모든 혈관이란 혈관을 미친 듯이 휘돌며 모세혈관들을 모조리 터뜨렸다. 신경이 폭발이 뒤를 이었고, 그 폭발은 근육과 정신에게 명령해 더 이상의 공포는 감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죽어라!”

“크아아아아! 이놈, 너 죽고 나 죽자!!”



그들은 미친 듯이 외쳤으나 공포 때문에 날카롭게 갈라졌고, 몸을 날려 무영을 향해 황소처럼 달려들었으나 사시나무 떨 듯 불안정했다. 그것은 신경이 미쳐 근육에 전달된 공포가 만들어낸 본능의 몸부림이었다. 아무것도 안하느니 차라리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질린 본능적 몸부림을 지켜보며 무영의 손목이 좌우로 튕기듯 한 번 흔들렸다.



번쩍!



손목을 한 번만 튕겼을 뿐인데, 세 번의 빛이 일었다.



태극멸섬(太極滅閃)!

류심환이 검강윤을 절명시킨 태극일섬보다 더 빠르고 파괴적인 지공이다. 빛을 봤을 때는 이미 늦은 뒤라는 사실이 태극멸섬의 무서움이었다.



펑! 펑! 펑!



세 번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에서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이성을 잃은 세 장로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와 살점이 솟구쳤다.



“크윽!”

“컥!”

“으악!”



그들 세 명이 엄청난 통증에 비명을 터뜨렸고 그것을 그들의 귀가 확인한 순간 그들은 왼쪽 어깨 부위로 파고든 또 다른,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절초를 느낄 수 있었다.



‘어?’

‘뭐야?

‘대체 이건?’



그들은 의문을 풀기도 전에 그들의 신경은 인식했으나 뇌에서 정리되지 못한 비명부터 토해야 했다, 살아서는 풀지 못할 것 같은 의문과 함께.



“안 돼!”

“이놈!”



나머지 두 장로가 그들의 사제인 세 명의 장로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하자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극한의 공포를 억누르며 무영을 향해 그들의 최고 절초를 펼쳤다. 허나 그때에는.



퍽! 싹둑! 푸욱!



세 장로의 세 가지 다른 공격 중 장풍은 그것을 발사한 삼 장로에게 되돌아가 그의 왼쪽 어깨를 통째로 날렸고, 하나의 도기(刀氣)는 그것을 펼친 사 장로의 왼쪽 어깨를 잘랐으며, 마지막 검기(劍氣)는 자신의 주인인 오 장로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그들의 몸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뒤로 밀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오는 죽음의 공포를 동반한 통증이 정신을 가물가물하게 했다. 그런 그들의 귀로 무영의 소리가 흘러들었고 나머지 두 장로는 그들을 지나 무영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죽어라!"

"살!"



그들의 외침은 간절했다. 허나.



“너희들은 그 죄가 중하니 오른쪽 어깨로 그것을 깨닫게 했고, 역반투(力反投)로 왼쪽 어깨를 취했으니 너희들이 깨달은 죄의 대가가 그 일부를 벌했다. 여죄가 있으므로 다음은 천상지무로 벌하겠다. 여덟!”



세 장로의 공격을 그대로 돌려준 역반투는 일극무원결의 공격식 제 이초였다. 무영은 말을 하는 중에 자신을 향해 폭사된 두 명의 장로를 향해 다시 왼쪽 손목을 흔들었고 오른손에 든 승천제마검의 끝을 한 바퀴 돌려 세 명의 장로를 겨냥했다.



그것으로 검강인 앞에 더 이상 장로가 없었고 그도 비로소 공포가 현실처럼 분명해졌다. 손에서 나던 땀이 등에서도 솟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의 상대를 가볍게 처단한 삼혼이 삽시간에 날아와 검강인을 정립의 형태로 둘러쌓았다. 그 바람에 그에게는 탈출구마저 사라졌다.



검강인 자신이 죽던지 아니면 무영 일행을 모두 죽이던지 이곳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느끼는 공포의 단계가 이판사판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두 장로마저 죽으면... 남은 자는 자신뿐이지 않은가? 검강인의 눈빛이 깊고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순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냐?”

“네. 역천마곡이 아니라 검강인을 먼저 치겠습니다. 역으로 가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네가 의심하는 신비세력이 움직일 보장은 없잖아.”

“뭔, 얼어 죽을 신비세력? 그냥 아새끼들이지! 헌데 그 자식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날 건 없죠. 어차피 없애야 할 놈이니. 대신 그놈을 처단할 때 최대로 많은 인원이 직접 보게 해 신비세력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먼저 상대를 파악하자, 이거네.”

“그거 멋지다. 지피지기면, 즉 가죽을 벗기면. 백전백승이라, 즉 호랑이를 때려잡는다는 것이지. 허, 그거 정말 멋지네.”

“네 도혼 할아버지. 호랑이를 굴에서 끌어내는 거죠. 게다가 그 자리에 역천마곡까지 끌어들이면 신비세력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도 모습의 일단이라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거에요.”

“후후. 그거 신나겠군. 원 없이 싸워보겠네. 크크, 하하.”

“해서. 삼혼께서 역천마곡을 흔들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더 좋고, 좋지. 아예 뿌리 채 뽑아놓을게. 흐흐흐. 놈들! 다 죽었어, 이제. 이 도혼 어른님이 사랑을 듬뿍 안겨주마.”

“무영아. 그러면 천상천은 삼영에게 유인시키게 할 생각이냐?”

“아니요. 불혼 할아버지. 그것을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아저씨가 미리 안배한 사람들.”

“뭐? 주군께서?”



뜻밖의 말에 불혼과 도혼이 동시에 물었다.



“네. 아저씨가.”

“아, 그래서.. 역시, 주군이야. 그 혜안의 깊이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겠어.”



불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혼의 말이 이미 귀를 파고들었다. 헌데 무영의 말도 함께 파고들었다.



“그거야, 네놈 머리가 나빠서지.”

“네. 그래요. 정말 아저..”

“그렇지? 무영아,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불혼, 저놈은 정말 돌대가리가 분명해.”



도혼과 무영의 말이 섞이는 불혼이 정말로 돌대리가 됐다. 무영은 웃으며 끊겨진 말을 이었고, 불혼의 얼굴은 붉그락푸르락 했다.



“도혼, 너 이놈!! 내, 너부터 손 보고 말겠다!!!”

“할아버지, 제 말은 그것이 아니라.. 아무튼 정말 아저씨는 대단한 분이세요. 게다가 이런 상황을 예상해 삼영이 해야 할 일을 안배해 놓으셨으니 그저 감탄할 뿐이에요.”

“뭐? 삼영이 할 일까지? 어허! 허. 허허. 역시 불혼의 주군이시구나. 도혼 저 덜 떨어진 놈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 너겠지? 주군은 너보다 날 믿으셔. 착각하지마, 이 땡중아! 늙었다고 모든지 다 갖다 붙이면 되는 거 아니거든!”



대화가 여기까지 본말이 전도됐다. 무영은 맨 날 되풀이되는 둘의 말싸움부터 막아야 했다.



“그래, 너 잘났다. 너 힘쓰는 것 굵어서 좋겠다. 젊고 힘이 넘치지만 아무 데도 쓸모없어서 좋겠다. 우이구, 이것도 사제라고. 쯧쯧.”

“큭! 두 분 싸우지 마시고요. 일단 밥이나 먹죠. 그리고 준영형과.. 삼영이 한 가지 일을 해줬으면 해. 맨 날 어려운 일만 시켜서 미안하지만.”

“말만 하십시오. …주군.”



불혼과 도혼의 말다툼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준영이 공손하게 답했다. 무영이 준영이라고 말했다가 삼영으로 바꾼 것은 삼혼이 같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삼영으로 하기로 약속한 것이 떠올라, 얼른 말을 바꾼 것이었다.



‘그래도 주군이란 말은 정말 싫어.’

“부탁할 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며칠 자리를 비울 거야. 늦지 않겠지만, 그 기간 동안 삼영이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내가 여기 머물러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었으면 해.”

“어떻게 저희가 주군을 대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힘들 것 같은데요?”

“아니. 될 수 있어. 힘들겠지만 그 방법을 생각해봐 답이 나올 거야. 셋이서 생각하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럼, 나는 한 시진 후에 출발할게.”

“하지만 주군, 뭔가 단초라도 하나만 주시면..”

“셋이 모이면 생각날 거야. 삼영이 함께 하면 뭐든 못 하겠어? 그럼, 나는 준비할게.”








“혹시 이것 아닐까요, 대사형!”

“우리끼리 있을 때는 큰형이라고 부르라 했지. 뭔데?”

“네, 큰형. 다름 아니라 우리 셋이 모여서 무영 형에게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것 아닐까요?”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그러네. 네 말이 맞아. 그런 것 같아. 형, 안 그래?”

“허허, 철용이가 보통이 아니네. 우린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허허, 막내가 최고야.”

“헤! 형. 뭘 이정도 갖고.”



철용이 준영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야! 그러면 나는 그 정도도 아니다, 이 말이잖아? 이 노~옴 철용아, 이 예쁜 막내야.”

“켁! 헤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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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무영과 류심환이 상승무공의 기초를 닦았던 무명곡! 무영이 삼혼과 삼영을 차례로 만날 때, 두 신형이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의 신형은 그 은밀함이 삼재나 쌍비에 못지않았다. 신형 하나는 육척을 넘는 장신에 어깨가 넓고 전체적으로 건장한 것이 남자인 게 틀림없었고 나머지 신형은 작고 동그란 어깨와 가녀린 허리, 길고 얇은 다리와 팔로 볼 때 여자인 게 분명했다.



“금강인가요?”



여자로 보이는 신형이 듣기만 해도 심신이 맑아지는 소리로 칠 척 장신의 신형에게 물었다.



“네. 그렇소. 당신은?”



그는 중저음의 음성으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고 다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네. 혜준 맞아요.”

“반갑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아마, 저곳 같습니다. 거기에 현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혜준임을 확인한 금강은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네. 그리로 가요.”



그녀의 말이 끝남도 동시에 두 사람이 무명곡의 동쪽 끝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곳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클클. 이런 어린 얘들과 함께 해야 한다니. 이거 참. 이 나이에 입장이 말이 아니야, 말이. 너 금강이라 했나?”



칠 척 장신의 거구였지만 머리는 감았으나 냄새가 남아 있고 삐쩍 말라 뼈가 다 드러날 정도 로 마른 강시 같은 사람이 금강에게 물었다.



“네. 금강입니다.”



그의 음성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담백함과 단아한 품위가 느껴졌다.



“어린놈이 늙은 티내는 느낌하곤. 클. 그럼 너는?”

“혜준이라고 해요. 할아버지는요?”



초롱초롱한 별빛 같은 눈망울로 혜준은 현성이란 존재가 마냥 신기한 듯 올려보았다.



‘허. 이렇게 크고 맑은 눈이. 그 안에서 헤엄도 치겠어. 원, 저런 눈이 있다니?’

“나는 현성이라 한다. 하지만 내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열 받으니까.”

‘이름을 얘기해 주고 부르지는 말라니?’

“그럼 뭐라 불러요?”

“험.. 음.. 에.. 그러면. 험. 어.. 그러니까. 험.. 에라! 그냥 현성이라 불러.”



그 또한 그들과 너무 많은 나이 차이가 커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칠십 년 세월이 너무 가슴에 맺혀 죽어도 할아버지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땅한 호칭이 도통 떠오르는 게 없었다.



“호호호. 그럼 사숙이라 할게요. 현 사숙님. 와. 그렇게 부르니까 참 좋다. 혜준은 그게 좋아요. 현 사숙님.”

“혜준 소저님이 그러시면, 저도 사숙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야! 넌 됐어 그냥 부르지 마. 필요하면 내가 놈이라고 부를 테니.”

“어머, 현 사숙님 그러는 게 어딨어요. 그럼, 금강 오빠가 맘 아프잖아. 그냥 사숙이라고 부르게 해줘요. 응? 나의 사숙님. 헤헤.”

‘응? 나의 사숙님… 이라고. 요 맹랑한 것 보라? 저 표정은 또..’



혜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에 견딜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그는 고금제일의 감정억제신공을 대성한 자일 것이다.



“혜준의 사숙님. 응? 그렇게 해줘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귀엽고 아름다운 거야. 에라. 한 번 망가진 것.’

“알았다. 너도 사숙이라 불러.”

“네. 사숙.”

“님 자 붙여.”

“네 사숙님!”

“와 이것으로 우리 사이의 관계가 정리됐네. 잘됐다. 그럼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맛있는 저녁 준비할게.”

“저. 혜준 소저…”

“왜? 금강 오빠.”

“저… 저녁은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왜? 내가 하면 맛없을 것 같아서? 아니야, 이젠 나 잘해.”



금강의 말에 혜준의 말끝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왕방울만한 두 눈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야, 놈! 니가 왜 밥을 해. 넌 빠져. 혜준…아, 네가 해라.”

“정말? 알았어요, 나의 사숙님.”



그렁그렁한 눈물이 쏙 들어가며 혜준이 해맑게 웃었다.



‘우와! 죽겠네. 지 사숙이래? 헐, 저놈의 표정하고는!’

“왜! 또 뭐! 야. 제발, 그 표정 좀 풀어..라.”



혜준이 눈을 약간 찌푸린 채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인가 부탁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알았어. 알았어.”



현성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혜준이 자신을 왜 그렇게 뚫어질 듯 바라보는지.



“야. 놈. 너도 같이 해. 대신 놈, 네가 장작 패 불 피고 쌀 씻고… 뭐, 그런 거. 잡일은 놈, 네가 해. 끝!”

“와. 잘됐다. 그럼 왕창 산해진미를 차려야지.”

“…네. 혜준 소저.”

“야. 놈! 젊은 놈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놈!”

“넵!!”

“호호호호. 오빠 그냥 같이 해요.”



그녀의 웃음은 정말 옥쟁반에 구슬 구르는 소리였다. 금강은 왜 선인들이 혜준 같은 웃음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어색한 세 사람의 만남을 부드럽게 만들려는 혜준이 노력이 가상할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허나, 그들을 볼 때마다 혜준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저렸다. 그들의 몸에는 천상천 네 호법의 희생도 함께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혜준은 며칠이 지나면 자신은 그들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온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렸다. 그녀의 옆에서 간도 보고 몰래 소금도 넣고 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도왔지만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과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한 가지 합공을 수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합공은 펼쳐질 수도 평생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수련의 결과가 거의 완성에 다다랐다. 그 순간이 오면 현성과 금강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해 완벽한 어둠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그것은 은형술을 펼쳐 숨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아예 그들의 삶 자체를 어둠에 묻어둬야 했고 일이 잘못되면 그들은 영원히 그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더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해 결국 임무의 완성은 두 사람의 완전한 희생을 담보로 했다.



그래서 혜준은 마음이 더욱 아팠고 상을 차리는 손에 자꾸 눈물이 떨어졌다. 해서, 혜준은 간절히 기원했다. 아예 최상의 결과가 나와 모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무영 오빠가 해내길 바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같은 것을 기원했다. 며칠만 지나면 자신들은 이제부터 존재하지 않는 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돼야 한다. 현성은 자신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무림 삼성의 제자로 선택된 이유도 천년 전설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전설만 믿고 기다릴 수 없어 삼성이 천하 기재인 자신을 보자마자 공동 제자로 받아들였고 최강의 전사를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 같았다. 이제 팔십을 넘기는 나이가 돼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운명은 아예 돌고 도는 것 같았다. 인간은 그 안에서 쳇바퀴 돌듯이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금강은 혜준이 너무 예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녀와 있는 동안은 바라만 봐도 좋았기 때문에 그 다음은 일은 그녀가 떠난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까짓 것 사나이 한 목숨 아닌가. 혜준 같은 사람이 나 하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무림이나 천하. 뭐 그렇게 대단한 것 대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까짓 것 정말 사나이 한 목숨 얼마든지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그녀가 곁에 있어 행복하고 너무 아름답고 눈부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금강은 이십 평생 짧은 세월이었지만 처음으로 행복이란 단어의 뜻을 알 것 같았다. 그녀와의 만남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어쨌든 그녀가 지금은 내 옆에 있다. 



같은 시각. 사천성(四川省) 내 서부의 명산으로 유명한 아미산. 그곳엔 구파일방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 수백 년에 이르는 아미파(峨嵋派)가 있다. 헌데, 달빛 교교한 이 한밤에 수백 년 여승들의 성지(聖地)가 흔들리고 있다. 대웅전은 이미 함락됐고 복호사(伏虎寺)마저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휘익! 퍼억! 꺄악!



여기저기서 연속적으로 비명이 터졌다. 한 번의 병장기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한 명의 여승에게서 생을 달리하는 비명이 터졌다. 한 시진 전에 아미파에 들이닥친 침입자들은 한 칼에 한 명만 죽이는(一擊一殺) 살인놀이를 하고 있었다.곳곳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비구니의 승복이 찢기고 하얀 살점이 돼지고기 썰리듯 잘려나갔고,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침입자의 살수(殺手)에는 추호의 인정도 없었다. 여승의 유방이 뭉툭뭉툭 잘려나가고, 온 몸이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지거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고 있었다. 일격일살의 일방적인 도륙을 통해 살인놀이를 하고 있는 자들의 수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천하의 아미파의 여승들이 단 세 명의 침입자에게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크하하하! 비구니라도 여자의 피를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군! 아깝지만, 할 수 없지. 켈켈켈.”



침입자는 오직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 듯 잠시의 멈춤도 없이 잔인한 살수를 펼쳤다. 그렇게 그는 또 다시 아미파 여승들을 무 배듯 쓸어가면서 살인이 주는 쾌감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그는 목을 밴 여승을 뒤로 한 채 공포에 질려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는 또 한 명의 여승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흐흐흐, 셋째! 옷이라도 벗긴 다음 죽이는 게 어때? 살인도 좋지만 눈요기 한 후에 죽여도 늦지 않잖아?”



맹렬하게 여승을 도륙하던 삼 사마령 수라마군(修羅魔君) 필귀가 둘째 사형의 얘기에 귀가 쫑긋거렸다. 방금 휘두른 검에 30대로 보이는 여승의 머리가 경악한 상태에서 목과 분리되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잠시 동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사형, 그런 방법이 있었구려! 크흐흐흐. 고것 참.”



생각과 동시에 벌써 번뜩이기 시작한 필귀의 눈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여승을 발견했다. 삼십 대 초반과 중반으로 보이는 여승들은 번뜩이는 필구의 눈을 보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검을 든 손으로 가슴과 아랫배를 가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치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허나, 그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필귀의 욕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삼십대 물 오른 여승의 나체가 필귀의 눈에 아른거렸다.



“호오, 이렇게 보니 고년 제법인데. 크흐흐흐.”



필귀는 두꺼운 승복을 뚫고 그 안에 있는 여승의 나신을 떠올리며 음소를 흘리더니, 삽시간에 여승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는 왼손을 뻗어 두 여승을 향해 금나수를 펼쳤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금나수는 두 여승이 필사적으로 펼친 아미파의 비전무공인 소청신공(小淸神功)을 무력화시키며 여승들이 입고 있는 도복 깃을 낚아챘다.



“안돼! 이 살인마!”

“놓지 못해 이 손! 앗! 꺄악!”



두 여승은 자신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몸에서 도복이 벗겨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것도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던 속옷과 함께. 필귀의 금나수에 의해 삼십대 물오른 여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단 한 번의 남자관계도 없이 무공에 전념한 여승들은 유방의 형태도, 아랫배도 십대 후반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다리는 군살 하나 없는 것이 물오른 십대를 능가할 정도로 탄력이 넘쳐보였다.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가꿔온 그녀들의 나신이 파랗게 질려 오히려 수정처럼 투명해 보였다.






“오호라! 이거야 이거!! 젊은 처자라도 이만하겠어. 크크크, 잘 봤어. 너무 탐스러워 아깝지만, 그래도 살인이 주는 쾌감만은 못하지. 크크크크!!”



그의 음흉한 눈빛이 전라 여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살의로 물들어갔고, 잠시 동안 멈춘 살수를 다시 펼치려 할, 바로 그때.



“거기까지만.”



백장 정도 밖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엔 역천마곡의 마기로 키워온 필귀의 마력(魔力)을 억누르는 상극 같은 불력(佛力)이 들어 있었다. 필귀는 가공할 불력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느 놈? 헉!’



필귀가 소리가 시작된 백장 밖을 바라본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앞으로 내려서는 늙은 땡초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불혼이었다.



‘땡초? 너무 빨라!’

“넌, 누구.. 헉!”



필귀는 소리의 주인공이 늙은 중이며, 그의 경공이 가히 빛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헌데 상대가 자신의 앞에 내려서자마자 다짜고짜 손을 뻗자, 필귀는 헛바람을 켜며 상대의 수를 막아야 했다. 상대의 공격은 단순했지만, 그 빠름이 상상을 불허했다.



“핫!”



필귀는 오른손을 뻗어 귀곡탈혼장을 펼쳤다. 귀곡의 소리가 들리면 상대의 목숨을 뺏는다는 귀곡탈혼장은 역천마곡의 장풍 중 가장 빠른 것 중에 하나였다.



“너의 악행이 너무 커, 지옥으로 돌려보내니.”



불혼은 필귀가 펼친 귀곡탈혼장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불력이 담긴 손날로 필귀의 천령개를 내려쳤다. 그것은 마치 손목이 날아가도 괜찮다는 듯이 무모하기 그지없는 공격처럼 보였다.



“크하.. 헉!”



필귀는 상대의 손목이 귀곡탈혼장의 위력에 잘려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의 손날이 그리는 선을 따라 귀곡탈혼장에 담겨있는 마력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가서 네 죄를 씻어라.”



필귀의 놀람과 불혼의 말이 교차하면서 하나의 소리가 일었다.



퍼억!



필귀는 자신의 천령개에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수천 배는 넘을 듯한 강한 통증을 느꼈다. 필귀는 천령개가 박살나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으로 퍼진 그 통증이 말해주는 것은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였다.



“크악!!”



필귀는 언제나 상대에게서만 들었던 최후의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헌데 그의 마지막 생각과는 달리 불혼의 손날은 필귀의 천령개에서 머리 한 올 떨어진 상태로 멈춰 있었다. 대신 그의 손날에서 나온 불력이 필귀의 뇌를 파쇄시켰다. 불혼은 필귀의 머리를 산산조각낸 것이 아니라, 천령개를 통해 뇌를 파쇄시킬 만큼의 불력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필귀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선수를 뺏겼어. 아쉽지만 네놈들이라도. 이 짐승보다 못한 후랑당말코 같은 놈들아!”



도혼은 잠시 다른 곳을 보느라 자신보다 두 걸음 먼저 현장에 도착한 불혼이 필귀를 제거하자, 선수를 놓쳐버린 것이 억울해 나머지 두 놈은 자신의 몫이라고 목을 박았다. 속혼이 한 명을 맡기 전에 자신이 두 놈을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선이 착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도혼은 불혼의 등장과 필귀의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한 두 명의 사마령을 향해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뭔 소리야? 어, 어..’

‘자신이 신선이란 거야? 피해야 해!’



이(二) 사마령 혼마지존(魂魔至尊) 유결과 구(九) 사마령 금륭마왕(金輪魔王) 갈소풍은 필귀를 단 한 수로 죽인 자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 늙은 도장이 상상을 불허하는 속도로 날아오자 경공을 펼쳐 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상대의 공격에 대비해 최고의 절초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유결과 갈소풍은 비마귀혼을 펼쳐 상대의 공격권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력과 상극을 이루는 기운이 온몸을 둘러쌓고 있어서 운기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설마?’

‘정말로 저자가 신선인가?’



유결과 갈소풍은 두 눈 가득 불신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력과 신선의 기운이 상극이어서, 상대가 펼친 것이 압도적인 신선의 기운이라면 역천마곡의 마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은 알고 있었다. 상극의 기운이 만나면 쌍소멸하기 마련이지만, 한 쪽의 힘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면 약한 쪽의 기운은 작동하지 못한다.



‘천상천주는 아닌데?’

‘곡주와 비교해도..’



유결과 갈소풍은 가늠하기도 힘든 불력과 전설에나 존재하는 신선의 기운을 가진 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웠다. 전설의 천상천주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무인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렸다. 어쩌면 이들은 역천마곡주와 맞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고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결과 갈소풍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자가 눈앞에 내려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죽음이라는 놈이 어슬렁거렸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상대의 정체가 더욱 궁금했다.



“신선도 열 받으면, 나처럼 하기도 해.”



도혼이 유결과 갈소풍의 앞에 내려섰다, 마치 거기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어떻게 죽을래? 세 가지 중에 골라. 눈을 깜빡일 수 있을 테니, 내가 제시하는 세 가지 죽음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눈을 깜빡이는 숫자로 말해, 알았지?”

‘뭐라고? 죽음을 선택하라고?’

‘이 새끼가, 정말!’

“속으로 열불을 내고 있는 것 느껴지지만, 그냥 듣고 선택해. 많이 봐준 거니까. 첫 번째, 죽을 때까지 한 곳만 맞는 것. 두 번째, 죽을 때까지 두 곳만 맞는 것. 세 번째, 죽을 때까지 세 곳만 맞는 것.”

‘야, 이 개 같은 신선아! 그게 그거잖아!!’

‘이.. 이.. 이 자식이!!’

“속으로 욕하는 거 아니까, 그냥 눈이나 깜빡여. 안 그러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도 추가할 거니까, 알았어?”

‘뭐,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추가하겠다고? 이 새끼가 정말!’

‘이런 지랄 같은 놈이!! 헌데, 운기가 안 돼. 아무리 시도해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으니,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추가한다. 내가 원래 친절해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자세히 말해주마.”



그렇게 도혼과 유결과 갈소풍의 일방적인 실랑이가 일각 정도 계속됐다. 불혼이 도중에 ‘당장 끝내지 못해! 다른 곳도 가봐야 하잖아!’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면 도혼의 장난은 계속될 수 있었다.



“에이, 알았어! 야, 시간이 없어서 두 번째로 정했어. 이마와 사타구니!”

‘뭐, 사타구니? 야, 그냥 한 방에 죽여!!’

‘으아아아악!! 이노오오옴!! 죽어서도 너를 죽여 버릴 테다!!!!’



유결과 갈소풍은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하는 비명을 수없이 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도혼은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간 여승들을 대신해 유결과 갈소풍을 벌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다 익히지 못한 것이 있어. 시신부터 수습하시죠.”



불혼이 처참하게 도륙된 비구니와 여승의 시신들을 돌아보며 아미파 장문인에게 말했다. 종남파에 이어 아미파도 멸문지화는 면했지만, 그 피해가 너무 커서 재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속혼은 이미 시신들을 수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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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생각보다 몇 수 위야.”



무영이 종남파에서 오마황 전기령을 처단할 때, 대웅전 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하나의 신형이 말했다.



“천년 만에 무림에 나왔지만 이런 놈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어. 이것만 봐도 제천의 판단이 부족했다는 게 확실해. 검무영, 저 놈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잘못된 거야.”



하나의 신형은 상상을 뛰어넘는 무영의 무공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일환을 불러 깨우라 지시했던 육경의 셋 번째인 삼경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역시 감시자가 있어. 삼혼 할아버지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아. 은신술은 그 이상이고. 천년 배후가 모습을 드러냈어. 아저씨의 예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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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역시 아미파 내 복호사에서 30장쯤 떨어진 높이의 대기가 흔들리더니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삼혼의 능력이 이렇게 강해다니? 삼혼지문은 제천의 함정일 텐데?”



육경 중에서 네 번째인 사경이 삼혼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환이 말해준 것보다 삼혼의 무공은 몇 수는 위였다. 지난 천년 동안 제천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들이 없었다면, 삼혼이 보여준 무공은 그의 감시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천의 감시에 착오가 있어. 최초의 삼혼도 이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 돼. 무공의 깊이가 너무 차이가 나. 뭔가 잘못됐어. 혹시 삼경 쪽도 상황이 비슷하다면, 보통일이 아니야. 뭔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어.”



사경은 현 시대의 삼혼을 바라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하늘 밖의 힘으로 천년을 잠들어 있는 동안 제천도 파악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최소한 삼혼에 관한 한 천년의 감시는 완벽하지 않았다. 일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은 분명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켜보는 놈이 있는 것 같아.]

불혼이 도혼과 속혼에 전음을 보내며 눈동자로 사경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도혼과 속혼도 감시하는 자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불혼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주군의 예상이 정확했어. 천년의 전설은 거짓이야.]

[주군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선대의 삼혼처럼 천년의 거짓에 속은 채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네요.]

[제기랄! 지난 80년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 기간이 무려 천년이라니! 대체, 이 거지 같은 천년 전설의 진실이 뭐야?]

[그러게 말이야. 천년 전설의 진실이 뭐기에 그 오랜 동안 무림 전체가.. 허허허.]

[주군이 그렇게도 저희를 구속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년 전설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이유가 너무 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거짓을 숭배하며 살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간 거야.]

[지금도 속고 있잖아! 제기랄!! 천년의 전설,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내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네, 그래야죠.]

[그래, 우리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천년 전설의 거짓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었으니 진실을 밝혀낼 책임이 있어. 무림을 무림인에게 돌려주려면 반드시 밝혀내야 해.]

[그래,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보자. 천년 전설을 이따위로 만든 놈이 누구인지.. 제기랄!!!] 


  1. 하늘꽃 2014.10.04 07:37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섬서성(陝西省) 남부에 자리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종남산! 짙은 황혼이 종남산 너머로 서둘러 지친 몸을 거두려 할 때, 그곳에 있는 구대문파의 중의 하나, 종남파(終南派)에 족히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종남파 문인들이 황혼에 젖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절명의 상흔이 비슷해 불과 몇 사람에 의해 당한 것 같았다. 문파의 위엄을 드러내는 종남파의 현판은 이미 두 동강이가 난 채 땅에 널브러져 있어 종남파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종남파 곳곳에서 사람이 죽은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고 문파의 수장이 있는 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퍽! 스윽!

크악! 커억!



장문실 쪽에서 계속해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천마성과 복마전에서처럼, 치열한 접전이 아닌 일방적인 도륙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종남파에 닥친 위기는 절체절명임에 틀림없었다.



“크크크… 모두 허접한 것들. 태을신수(太乙神手) 종재기, 네가 장문 놈이냐?”



지옥의 열두 개 힘 중 한 명인 오(五)마황 벽력마존(霹靂魔尊) 전기령이 마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한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가 음성에 공력을 실지 않았음에도 듣는 사람은 그 본연의 마기에 기혈이 흔들릴 정도였다. 종남파의 장문이자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종재기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장문 사형의 명호를 함부로 지껄이느냐. 네가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그의 마성에 얼굴을 찡그리며 종남파 이대(二代) 장로인 태을분광이검(太乙分光二劍) 추성호, 추성우 형제가 동시에 외쳤다.



“컬컬컬컬!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그래 어떻게 죽일 건데.”



전기령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디 한 번 죽여보라는 듯이 아예 목을 길게 내밀었다. 두 손도 늘어뜨린 것이 저항도 하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상대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야합!”

“멈추게. 사제. 자네의 상대가 아니네.”



종재기는 추성호가 행동하기 전에 그의 말을 잘랐다. 추성호가 막 몸을 날리려다, 멈춰 섰다. 사형이기에 앞서 장문의 명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그 자체로 마의 현신, 승산이 없다는 사실은 추성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상대는 어떻게 해본다는 것이 씨도 먹히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지만, 명문정파의 장로로서 죽음을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클클, 똘마니 대장이라고 보는 눈은 있네. 허나, 입은 달렸다고 다 말하라는 것은 아니지.”



전기령은 종재기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늘어뜨렸던 오른손으로 벌레를 쫓는 것처럼 작은 원을 그렸다. 빠르지만 설렁설렁 하는 것이 무슨 어린 아이의 옹알이처럼 단순했는데, 순간 원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하나의 권경이 느닷없이 격발됐다.



그와 거의 동시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추성호의 입 부분이 뻥 뚫렸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종재기가 권경이 격발되는 순간 그것을 막으려 장품을 발사하려고 했고, 추성호도 그러려 했으나 그것은 생각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끝 부분에는 생각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슉!



그제야 권경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종재기와 추성호는 그런 속도를 믿을 수 없었으나, 잘 드는 칼로 도려낸 듯 매끄러운 구멍이 추성호의 코밑에 생겼다. 이어서 덜컥! 하더니 조금 남은 그의 턱이 빠지는 증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추성호가 자신의 생을 서있는 상태에서 마감했다. 그리고 천천히 추성호의 몸이 뒤로 무너져 내렸다. 장문인 종재기도, 동생인 추성우도 얼굴이 뒤로 젖혀지고, 무릎이 꺾이면서 뒤로 쓰러지는 추성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쿵!



한 방의 권경, 뒤를 이은 하나의 소리, 하나의 죽음과 바닥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를 끝으로 추성호가 생을 마감했다. 코밑이 뻥 뚫린 채 턱이 빠진 사람이 돼 흘리는 것이 침인지 피인지 모를 상태로 마치 장난치듯 전기령이 흔든 손에 종남파의 장로가 즉사했다.



너무 간단해서,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고, 극도로 허망했다. 대 종남파의 장로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극도의 분노와 당혹,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왔다.



“형님! 형님!!”



추성우가 짚단처럼 쓰러진 추성호의 몸을 안았다. 친형의 몸을 안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으으… 이놈! 용서하지 않겠다.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내 손으로!!”



추 장로의 절명을 그저 옆에 서서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던 종남파의 장문인 종재기도 그 순간만큼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뚫고나오는 자신의 음성에 살의(殺意)의 감정을 실었다. 물러날 곳이 없다면 구대문파의 일원답게 그렇게 산화하는 것이 나으리라. 허나, 상대는 차원이 다른 마인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아. 이렇게 하려고?”



전기령이 종재기의 말은 무시한 채 추성우의 말에만 응대하며 이번에는 왼손을 한 바퀴 돌렸다. 조금 전보다 빨리 원을 그렸지만, 아무리 봐도 대강대강 돌리는 것 같았다. 그 작은 동작에서 어떤 심오한 무공의 원리를 떠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어린 아이의 손짓 같음에야.



하지만 여지없이 권경이 발사돼 추성우를 향했고 예외 없이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도 그때야 들렸고, 이번에는 추성우의 안면에 미간을 중심으로 주먹 한 개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뒤로 핏빛 종남산의 경치가 붉게 보였고, 그 위로 뇌수가 낙엽처럼 흩어져 얼핏 보였던 경치를 덮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추성우의 몸을 안고 있던 추성우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것으로 태어난 것은 1년의 차이가 있었지만 갈 때는 말 몇 마디 차이만 둔 채 두 형제가 동시에 쓰러지며, 이승을 떠났다.



“네, 이노옴! 죽어라. 살!”



두 장로의 죽음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본 종재기가 신형을 날리며 전력을 다해 전기령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극도의 분노가 그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지, 절정 경공에 의해 떠오른 것과 차이가 났다. 극도의 분노가 몸을 지배하자, 당연히 경공의 속도가 평상시보다 떨어졌다. 종재기는 순간적으로 무술의 초자나 하는 형편없는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태을무형검에 최대한 공력을 싣는 것 이외에 선택할 것이 없었다. 허나, 전기령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였다.



“컬! 너라고 다를 것 없지. 클클클!”



말할 때마다 마기가 출렁거리는 귀소(鬼笑)를 터뜨리며 전기령의 오른손이 이번에는 앞의 것보다 조금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그의 주먹이 출발한 곳에서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 원으로 완성되는 순간, 권결이 격발됐다. 바람을 가르며 공간을 압축하는 듯한 권경이 종재기와의 거리를 뭉툭뭉툭 잘라냈다.



슉! 슉.



소리가 하나 더 들렸고.



퍽!! 크윽!



권경에 무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동시에 전기령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푸시시시..



강력한 권경과 다른 무엇이 부딪쳤는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물에 의해 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일대종사 ㅡ 구글이미지



‘어라? 이건 뭐야?’



전기령이 듣기에 종재기의 머리통을 날리는 권경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작은 충돌음을 냈다. 그렇다고 그 충돌음을 일으킨 것이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과 자신의 권경이 부딪쳐 일어난 것임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러질 듯 저려오는 통증이 손목을 타고 온몸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경마저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가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게 그거였던 종재기의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이 자신의 가슴을 강타했다는 것이었다. 종재기의 검이 금강불괴지신을 한참 넘긴 자신의 몸을 뚫지는 못했으나, 안중에도 없던 종남파 무공이 자신에게 제법 큰 통증을 가하자, 전기령은 허접한 무공에 당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육체의 아픔보다 자존심을 더욱 건드렸다. 자신의 권경을 무력화시킨 자에 대한 두려움과 또 한 번의 신음과 함께.



“크윽!”



가슴에 가해진 충격에 두 발에 힘을 주었지만, 발목이 바닥에 박힌 채로 서너 걸음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기령은 상황을 단 번에 바꿔버린 미지의 상대를 향해 마기와 분노가 풀풀 넘치는 소리로 강력하게 외쳤다. 하지만 전기령은 미지의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올 정도로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냐?!! 내 권경을 막은 놈이!”



전기령이 종재기 너머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커지는 상대를 보고 외쳤다. 그의 음성에는 분노와 광호함이 묻어있었지만, 두 눈에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드러났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렇게 먼 거리에서, 내 권경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해 죽은 종남파 문인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너를 벌해 죽은 영혼을 위로함으로써 내 미안함을 덜려 하는, 나는.”



분명 점에서 나온 말은 백 장 밖에서 들렸는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기령 앞에 하나의 신형이 나타났다.



"검무영이라 한다."



전기령이 보기에 그는 아무리 봐도 약관도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헌데,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도란, 초마인의 기도에 뒤지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눈빛과 서있는 자체가 하늘을 닮아, 보는 이의 영혼마저 시리도록 푸르게 만드는 그 품위란,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엄청난 기도야! 게다가 분명 백 장 밖이었어. 내 권경을 그 정도 거리에서 무력화시킬 자가 있다니? 절대 불가능한 일이거늘, 손목과 팔이 너무 저려.이 자의 기도는 내 마기마저 약화시키고 있어. 이 정도의 이르려면.. 아. 뭐라 했지, 이름이? 검.. 무영.. 검? 검!!'



“검.. 무영? 너, 너.. 혹시?”

“시간이 없어서.”

“헉! 크악!”



전기령은 자신의 앞으로 내려선 상대에게 엄청날 정도의 기도를 느꼈고, 형언키 어려운 두려움이 일었으며, 상대의 성이 검이라는 것에 천상천이 떠올랐는데, 그래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려 했던 것인데 상대의 주먹이 자신의 눈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권?'



그 주먹 끝에 하나의 권경이 격발돼 자신의 미간과 입술 사이의 공간에 엄청난 통증을 일으키며 그대로 가격됐다.



'경? 내가 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코를 중심으로 주먹 크기만큼의 구멍이 뻥 뚫렸다, 추성호와 추성우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휭! 하니 바람도 시원하게 그 구멍으로 불었다.



“네가 그 위와, 그 아래를 두 분에게 했기 때문에, 그것을 동시에 벌하려 나는 네 놈의 코 부위를 선택했지. 그래야 공평해서. 너무 허무하게 당한 것에 대해서는 지옥에 가면 알게 될 거야. 원래 역천마곡은.. ”



단 한 수에 전기령을 지옥으로 다시 돌려보낸 후 무영이 돌아섰다. 무영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류심환 아저씨에게서 전해오던 영혼의 울림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도 설렁설렁 했어, 전기령처럼!'



종재기는 그제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검무영이라는 존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장문인,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최대한 서둘렀는데.. 아무튼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네? 네? 네.. 저야.. 그래주시면..”



종재기는 지금의 상황들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마인들이 나타나 일방적 살육을 벌였고, 자신의 처소까지 쳐들어와 종남파를 무림에서 사라지게 만들기 직전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천년 전의..



“호.. 혹시? 자네는.. 아니 대협은..?”

“삼영! 종남파에 침입한 나머지 역천마곡의 잔당들을 처단해줘. 상황이 급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면 안 될 것 같아.”

“존명!!”



삼영으로서의 첫 임무에 들뜬 준영이 큰 소리로 무영에게 답했다.



“알았어, 형. 빨리 끝낼게.”



철용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했다. 순간 준영이 공적인 자리에서 무영에게 반말로 답한 철용을 죽일 듯 째려보며 몸을 날렸다. 한성은 ‘아차’ 하며 자신이 철용에게 주의를 주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철용이 너무 움츠려 들지 않도록 철용에게 눈을 한 번 찡긋거린 후,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준영이 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철용은 준용의 눈빛에 조금 움찔했다가 한성의 위로에 다시 기운을 내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의 중간인, 무영이 내려선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다 죽었어.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야지.’



철용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기를 부렸다. 그는 병을 달고 살았기에 이 순간의 떨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더욱 호기를 부려야 했다. 이렇게 무영이 맡은 남쪽을 빼고, 동서북으로 한 명씩 삼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한 이각쯤 흘렀을까, 철용이 상대를 향해 외치는 기합이 마지막으로 들렸다.



“에이, 시시해. 이게 뭐야.”



철용이 마지막 침입자를 제거한 후 실망한 듯 말했다. 철용은 첫 번째 실전이고, 자신의 주위에는 고수들만 있어 다른 무인들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 고정관념이 있었다. 철용은 그가 이루어낸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몰랐던 것이다. 비교의 대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삼혼의 무공이 얼마나 위대한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종남파에서 벌어지던 일방적 도륙은 정반대의 결과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장문인, 저는 검무영이라 합니다.”



무영은 종재기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의 예를 취했다. 종재기는 그제야 마인들이 역천마곡 후예들이며, 이들을 제거한 청년들이 천상천의 후예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협! 이 고마움을 어떻게…”

“아닙니다. 제가 늦었는데요. 일단 수습을 하시는 것이.”

“아? 아! 네. 그래야죠. 그래야죠. 아. 아. 그리 해야… 하지요.”



그때, 쿵!



그것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오래 버티고 서있던 전기령이 제법 강한 바람이 불자, 그제야 썩은 나무처럼 뒤로 넘어가며 땅과 부딪쳐 만들어낸 소리였다. 몸의 나이는 천 살이 넘었으나 잠들어 있던 시간이 거의 구백육십 년에 이르러 실제 살아있던 기간은 사십 년에 불과한 지옥의 다섯 번째 힘, 전기령이 너무나 허무하게 영원히 잠들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대성했고, 그것을 하나로 합친 무공까지 익힌 무영의 상대로는 전기령의 무공은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단상 같은 전기령의 마지막 생각 하나가 종재기의 생각과 함께 종남파를 떠나지 못한 채 맴돌았다.



‘정말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 흉수는 전설의 마인인데 단 한 초였어.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또 누구야? 천상천은 일인전승의 문파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만 종남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대부분의 문인이 죽었으니..’



비로소 현실의 참담함을 파악한 종재기의 생각이 이러했고.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천년을 누워만 있다 이제 막 일어났는데.. 게다가 저놈이 펼친 권경은, 제기랄. 내 것이야!!’



죽어서도 미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전기령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1. 태봉 2014.09.29 21:58

    잘 읽었습니다
    오늘 제이티비 2부에 보니 강준만 교수가 나와서 인텨뷰 하던데
    낼 2부에 나와서 나머지 인텨뷰 방송한다던데, 저는 보니 잘 모르겠네요
    혹시 안 보셨으면 낼 보시고 강준만 교수의 인텨뷰 평좀 해주세요^^

    • 늙은도령 2014.09.29 22:36 신고

      '새정연과 진보정당이 몰락한 세 번째 이유ㅡ1'에 짧게 언급했습니다.
      '진보세력의 몰락과 부활을 위해'이 사실 저 나름의 진보진파이며, 미래의 진보를 위한 제언업니다.
      거기에 썼던 것처럼, 내일 강주만 인터뷰 2부를 보고나서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제천은 무너져 내린 비궁을 샅샅이 뒤졌다. 그는 일환에게 육경을 깨우라고 했지만, 비궁만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제천은 무너져 내린 비궁의 잔해들을 일일이 살펴보았고, 천년 동안 처음 느껴본 의문을 풀 단서를 찾아냈다.



“이것 봐라? 류심환, 이놈이 나를 속였어! 감히 나를, 천년의 주재자인 나 제천을! 클클클.. 클클.. 크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



하나의 떠 있는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제천은 그렇게 한참동안 분노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 따라 비궁 주변이 통째로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주변 수백 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두 놈이었어, 두 놈!! 류심환, 이놈이 나를 속였어. 클클클! 처음이야, 천년 동안 나를 속인 놈은 류심환이 처음이야.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류심환, 네 놈부터 없애주마. 흔적조차 남겨놓지 않겠어. 무영, 이 어린놈은 그 다음에. 클클, 클클,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날 속였어, 내가 무림을 주재해왔던 바로 그 방식으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천이 직접 움직였기에 류심환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천년이란 긴긴 시간 동안 무림의 모든 것을 주재할 수 없다. 제천이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무림 전체를 관장하기 위해서였다. 숫자가 얼마 안 되는 수하들로 무림 전체를 감시할 수 있었던 것도 제천이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천은 이를 위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무한공력을 이룬다 해도 육체라는 형태를 유지한 채 천년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곳에 있으면서도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란 떠 있는 시각의 형태를 취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한 줌의 진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떠 있는 눈, 그러나 모든 곳에 동시에 떠 있을 수 있는 기(氣)의 형태로 자신을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물질과 비슷해서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었고, 무림 전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수천만 개의 떠 있는 눈으로 분산해서 존재할 수 있었다. 각각의 떠 있는 눈을 연결하는 것은 자체의 진동에서 얻은 극히 미약한 기였다.



하지만 모든 기는 동일한 운동을 통해 창출되고 서로의 기를 주고받기 때문에 통일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눈이 미약한 기로 연결돼 있기에 무엇으로도 자를 수 없었고, 존재의 형태를 기로 바꿨기에 천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무림 전체에 퍼져있는 각각의 눈들이 보는 것을 모든 눈이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헌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류심환이 제천을 속일 수 있었다. 류심환도 무영의 수련을 숨기기 위해 기의 형태로 수련을 함으로써 자신을 감시하는 눈을 속일 수 있었다. 기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의 형태로 수련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류심환은 천년 동안 천상천과 천외천을 속일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는 천상천이 배출한 최고의 천재였던 검강천도 역천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이어오던 생각이었다. 그가 천년 동안 천상천을 감시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천상지무를 대성한 이후였다.



검강천은 천년 동안 어떤 천주도 이르지 못한 최후의 경지에 이르자, 천상지무가 반쪽의 무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쪽만으로도 어떤 무공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이런 결과는 천상지무를 처음 만들 때부터 의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검강천은 류심환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됐지만,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류심환과의 비무를 통해 천상지무의 반쪽이 류심환이 펼친 무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강천이 류심환에게 천상지무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며 한 가지 단서를 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치면 어떤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판단했고, 이를 류심환에게 알려주었다. 일극무원결을 만든 류심환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검강천은 천년 동안 천상천은 물론 무림 전체를 속이고, 천상지무라는 반쪽 무공만으로도 절대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면, 도박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류심환은 검강천의 기대처럼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고, 천년의 전설에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거짓은 검창천이 깨달은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이 하나의 무공에서 갈라진 두 개의 무공이란 사실이었다. 하나의 비밀이란 그것을 실행한 제3자가 있다는 것이었고, 그의 능력의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천년 동안 생명을 유지한 채 무림 전체를 감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류심환은 삼라만상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근본 원리와 일치하지 않으면 천년을 이어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모든 무공의 근원이자 삶의 기원인 기의 형태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명이 수련하는 동안 류심환이 50장 떨어진 비궁에서 기의 형태로 무영과 똑같은 수련을 한 것이 이 때문이었다. 무영이 수련 중에 펼치는 기와 자신의 기를 일치시켜 하나이면서도 둘인 상태로 무공을 수련했고, 제천을 속일 수 있었다. 기를 속이는 것은 기만이 가능하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면 의심이 들 이유도 없으므로.



다만 류심환도 천년의 주재자가 음의 기운 형태로 존재할지, 양의 기운 형태로 존재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천년을 살아서 무림을 주재한들, 기의 형태에 머문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천년의 주재자라면 무림을 자신의 손아귀에 두려는 욕망이 끝이 없을 터, 자신과 같은 돌발변수가 생긴다면, 그리고 천년의 주재자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다면 기의 형태에서 인간의 형태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 류심환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의 흐름을 살폈고, 음과 양의 조화가 깨지는 현상을 몇 번이나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음의 기운이 클 때 그런 현상을 더욱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이 음양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무공 같지만, 일극무원결을 통해 두 개의 무공을 동시에 운용하면 양의 기운이 미약하나마 강하게 작용할 수 있었듯이, 천년의 주재자는 음의 기운 형태로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류심환이 제천의 수하들과 세외문의 감시자들이 서로 다른 문파의 소속이란 것은 알지 못했다. 또한 류심환이 두 개의 무공을 완벽하게 하나로 합친 이후에는 자신을 감시하는 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천년의 주재자였지, 그의 수하들이 아니었다.



류심환은 그때부터 한 가지 원칙하에 움직였다. 그것은 누군가를 속이려면, 그 누군가가 천년 무림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오른 단 한 명의 무인이라면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는 원칙. 삼혼부터 시작해 자신까지 속일 수 있을 천년의 주재자를 속일 수 있을 것이며, 그럴 때만이 무영의 수련이 절대변수가 될 수가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검강천이 무영을 데리고 류심환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시작됐다. 류심환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검강천의 죽음을 목도하며, 천년의 거짓과 비밀을 푸는 것을 무영에게 맡기기로 결심했고, 한 치의 어김도 완벽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무영을 위한 안배들도 그런 차원에서 진행했던 것이고, 동시에 삼혼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고 싶었다.



무영이 천년의 주재자를 꺾는 것까지 보장할 수 없지만, 류심환은 최대한으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영은 고금제일의 경지에 올랐고, 천년의 주재자와 맞설 수 있는 수준에 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과 일극무원결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곧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법칙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류심환은 천년의 주재자를 속이는데 성공했다. 하나가 가능했다면, 그 다음도 가능한 것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끝없는 변화를 창출했으면서도 본질에 이르면 변한 것이 없는 삼라만상의 법칙이 증명해왔지 않은가. 류심환이 생각하기에 무영의 성취가 그러했다. 무영의 성취에 관한 한 천년의 주재자는 주재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류심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은 무영과 삼혼, 삼영, 그리고 삼성처럼 현존하는 무림인들의 몫이지,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류심환은 무영을 위한 마지막 안배를 위해 일주일만 더 천년의 주재자를 속이면 됐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제천이 직접 움직였기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의 감시망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류심환도 제천처럼 기의 형태로 움직이지 않은 한의 그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제천이 류심환을 찾아낸 것은 단 반나절 만이었다. 류심환은 최소 이틀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네가 천년 전설의 거짓이냐?”



류심환이 삼장 앞에 떠 있는 하나의 눈을 향해 물었다. 천년의 주재자가 음의 기운을 취하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형태가 하나의 떠 있는 눈이라니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었다.



“후후. 그렇다면?”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답했다.



“어지간히 급해나 보군, 직접 모습을 드러낼 정도면?”

“클. 건방진 놈.”

“그 상태에선 아무것도 못할 텐데?”



류심환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는 천년의 주재자가 하나의 떠 있는 눈의 상태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변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기의 형태로 있는 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컬컬!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네가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나 본데, 컬컬,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한 번은 만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컬컬! 그래, 좋아. 이제 만났으니 어떡할 건데?”

“몇 가지 궁금한 것부터 물어봐야지.”

“궁금한 것?”

“응.”

“응? 응! 컬컬컬! 컬컬컬컬! 좋아, 좋아. 뭐가 궁금한데?”

“우선 네 이름.”

“내 이름? 클. 그건 말해줄 수 있는데, 그 다음은?”

“내가 너를 무시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해?”



류심환은 하나의 떠 있는 눈의 형태로 있는 천년의 주재자가 말을 나눌수록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천년의 주재자는 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내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류심환은 천년의 주재자가 무림 전체에 퍼져 있는 기운을 하나로 합쳐 인간의 형태로 돌아온다면 무공의 신이라도 그를 제압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몇 수 위야. 어쩌면 최악이라고 가정했을 때보다 더 강한 것 같아. 무영이 이 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내 안배가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류심환은 처음으로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천년 무림을 주재해왔다면, 그의 능력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존재의 형태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를 속일 수 있었잖아? 완벽하다면 구태여 저런 형태로 있을 필요가 없어. 뭔가 약점이 있을 거야. 절대나 전능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류심환은 시간을 끌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천년의 주재자가 저런 형태로 자신을 찾아왔다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이 아닌가? 류심환은 뇌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뭘, 그렇게 생각해? 내게 질문할 것이 두 개밖에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물론 질문을 많이 하고 아무리 생각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나를 한 번 속인 것만으로도 너는 무림 역사상 최고고 그 대가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어. 다음 질문이 뭐야? 그 질문에 따라 네놈이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할 테니, 충분히 생각해서 해야 할 거야.”  

  1. 뉴론7 2014.09.26 05:36 신고

    류심환과 제천의 대면 잘읽고 감니다.

  2. 태봉 2014.09.26 06:47

    갈수록 흥미진진합니다 새벽녁에 수고하셨어요^^

    • 늙은도령 2014.09.26 06:50 신고

      이러다간 천검지로의 3부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2부에서 끝낸 소설인데, 고민되네요.

  3. 박창식 2014.09.26 09:17

    님의 다른 글도 꼼꼼하게 읽지만
    무협은 날마다 기다려 집니다.

    • 늙은도령 2014.09.26 16:53 신고

      블로그의 내용들이 무거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올렸는데...
      정말 3부를 써야 할 것 같네요.
      에고.. 그럴 시간이 나올지?

  4. 태봉 2014.09.26 12:03

    책을 내시면 좋겠고요 한권의 분량이 안되시면 석삼이라고 이왕 3부도 쓰세용^^

    • 늙은도령 2014.09.26 16:55 신고

      그러려면 많은 시간을 내야 합니다.
      제 건강 상 다른 글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협지를 책으로 내면 팔리기나 할까요?
      그냥 소장용 이상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책으로 내려면 많은 퇴고해야 합니다.
      아무튼 고민해 보겠습니다.

    • 태봉 2014.09.27 12:08

      아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군요
      건강 생각하시고 쉬엄 쉬엄 하셨으면 좋겠네요

    • 늙은도령 2014.09.27 21:20 신고

      네,알겠습니다.



삼영은 사년 육 개월의 노력 끝에 삼혼의 무공을 대부분 소화할 수 있었다. 아직 내공 면에서 차이가 났지만, 속혼이 무림을 샅샅이 뒤져 선발한 그들은 무영만큼은 아니지만 1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어서 이런 성취가 가능했다. 또한 그들의 성취가 비정상적일 만큼 빨랐던 것은 류심환이 그들의 신체를 삼혼의 무공을 소화하는데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이 크게 작용했지만, 그들의 천재성을 압도할 만큼의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비약적 발전이 가능했다.



그들은 단 하루로 쉰 적이 없었다. 초반에는 철용이 준영과 한성을 쫓아가지 못해 악을 쓰며 따라가다 결국 6개월 만에 몸져눕기까지 했다. 철용은 온몸을 태울 듯한 신열에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푹푹 꺼져 물먹은 솜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팔을 뻗었다. 팔을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상상 속에서라도 검을 휘둘렀다.



한성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철용보다야 시작은 훨씬 수월했지만, 그 역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 이르면, 앉아서 검을 휘둘렀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철용처럼 누워서라도 검결을 운용했다. 한성은 철용의 모습을 지켜보며 약해지려는 자신을 다그쳤고, 그럴 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영은 불혼에게서 받은 일할의 공력을 처음부터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기에 한성과 철용과는 달리 지금까지 도중에 쓰러진 적은 없었다. 또 성격 상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철용과 한성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지거나 힘들어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서있기 어려우면 앉아서, 앉아있기도 힘들면 누워서라도 검을 뻗고 그으며 베라고 했다.



한성과 철용은 그런 준영의 닦달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피곤에 곯아떨어지면 준영이 한 시진 이상 온몸을 주물러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등 그날그날의 피로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형이자 아버지 같은 준영의 희생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준영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한성과 철용은 힘겨운 무공수련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삼혼이 직접 만들어준 해설서를 갖고 사년 육 개월을 일각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채 수련에 매진했다. 한성은 삼년 전에 도혼의 내공 일할을 자신의 내력에 완전히 흡수해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제는 초절정 고수의 반열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철용은 그보다 1년이 더 걸렸지만 류심환의 치료를 받은 까닭에 발전 속도는 셋 중에 가장 빨랐다.



그리고 그들의 내공이 삼혼의 반 정도가 됐을 때야, 류심환이 숨겨놓았던 또 다른 선물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류심환은 삼영이 노력에 노력을 더해 내공의 깊이가 삼혼의 반에 이르면 봉인된 상태로 단전의 가장 내부에 저장해둔 태극무한진기가 삼영의 내공에 합쳐질 수 있도록 안배해두었고, 1년 반 전에 그것이 실현되었다. 삼영이 자력으로 삼혼의 내공의 반에 이르러야 봉인된 태극무한진기가 풀어지도록 만들어놓은 것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의 차원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사년 반이라는 턱없이 짧은 기간에 삼혼에 필적하는 경지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들은 육 개월이 더 흐른 후에 삼혼지문을 한 단계 발전시킨 삼영지문의 수련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더 흘렀고, 삼영은 삼영지문을 대성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헌데 그때부터 삼영은 단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삼혼이 그랬던 것처럼 삼영도 온갖 것들을 시도해봤지만 모든 것들이 허사로 돌아갔다. 삼영지문은 류심환이 기존 삼혼지문의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해 그들에 맞게 수정한 합공이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육 개월 동안 허송세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문제도 삼혼과 비슷했던 것이다. 류심환이 새로운 무공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에 그들의 합공은 삼영지문의 초입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각자가 맡은 부분이 문제없이 돌아가 하나로 합쳐졌지만 마지막 격발의 시점에서 흐름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들이 일극무원결을 배웠다면, 그래서 기관 속에 들었던 무영 정도에 이르렀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을 텐데 지금의 삼영으로서는 이 지점에서 막혀 어떤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더 해보자.”



준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무명이 난관에 봉착한 삼영지문의 초입부터 모든 것을 되풀이하고 되풀이해도 딱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무작정 반복하다 보면 번개처럼 지나가는 깨달음이 있을까 해서 무모하리만치 반복에 반복을 더하며, 한성과 철용을 몰아붙였다.



그것은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몸에라도 각인시켜 불연 듯 다가올지도 모를 깨달음의 순간에 완벽한 삼영지문에 도달하기 위한 준영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흘려버린 시간이 너무 많아 그의 조급함이 극한에 이르렀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의 성격상 무엇이라도 시도해야 했다.



“또? ..알았어.”

“대형.. 도대체 언제까지.. 아,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한성도 지겨울 정도로 이어지는 반복 수련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처음을 올리고 끝을 내리는 말투가 전부였다. 철용도 답답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미간을 찡그리며 호통을 칠 것은 같은 대형의 말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라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한성과 철용은 준영의 심정이 자신들보다 더욱 답답해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준영의 명령에 무조건 따랐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죽을 맛이었고, 준영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차라리 수련을 하다 과로사하는 것이 모양새도 있고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이 단계만 넘으면 끝에 이르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포기할 수 없었다.



“철용!”



준영이 삼영의 막내, 철용을 호명했다.



“알겠어요, 대형. 합!”



철용이 힘이 빠진 기합을 한 번 넣더니, 파천태극무검의 제 사초를 펼쳤다. 그의 검에서 한 가닥 검기가 일더니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태극에 이르러 검에 뜻이 담기니 하늘도 자를 것이며(太極馭劍斷天流)!



“한성!”



준영이 이번에는 한성을 불렀고,



“갑니다. 사형. 합!”



그가 철용처럼 기합을 넣으며 검법의 제 오초를 시전했다. 그의 검에서도 한 가닥 검기가 뻗어 나오더니 하늘이라도 가를 듯, 맹렬하게 허공을 치달았다.



그 뜻이 검과 다르지 않으니 하늘도 무너뜨릴 것이며(如意馭劍破天流)!



이어서 준영 자신이, 검을 들어 검기를 격발시키자 세 개의 검기가 무서운 속도로 한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뜻과 검이 같아 그 존재조차 망각하니 그것이 또 하늘을 무너뜨린다(如意無常破天流)!



그는 검법의 제 육초를 전력으로 펼쳤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철용과 한성이 준영의 검이 그려내는 형상에 자신의 초식을 더해 삼영지문의 마지막 초식으로 거듭난 신 여의일도파천황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로써 뜻이 길에 이르니 세상 어는 것도 그 앞에 존재할 수 없다(如意一道破天荒)!



신 여의일도파천황!! 삼영이 전력을 다해 세 개의 검기를 하나로 합쳐 초식의 검결을 이루고자 했으나 이번에도 격발의 단계에서 급격한 역혈을 일으켰다. 그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역혈을 달래며, 또 한 번의 시도를 다시 하려고 하는데, 하나의 소리가 그들의 고막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여의일도파천황이네?



삼영은 분명 미쳐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만들어낸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삼영지문의 정수에 이르는 입구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머릿속은 온통 순백의 설원인데,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세상 너머에서 ‘새로운 여의일도파천황이네?’라는 말이 들렸다.



헌데 그 목소리라는 것이 평생을 듣고 싶어, 지난 오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않았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류심환과 삼혼이 무영이 돌아오려면 최소 6년은 걸린다 했으니 무영을 빼닮은 이 목소리라는 것이 환청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구나. 미쳐가는 것이.’



준영은 지금 자신의 귀에서 영혼까지 울려버린 환청이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초기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환청을 털어내고자 고개를 좌우로 짧고 빠르게 흔들었다. 헌데, 이놈의 초기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환청이 이르길.



“첫째, 검에 담은 뜻이 태극에 이르지 못했고.”



이런 말과 함께 하나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검은 살아서 숨 쉬고 있었다. 하나의 점에서 출발해 하늘로 치솟았다고 눈이 인식하는 순간 땅으로 방향을 틀었고(陰陽), 그 방향이 가는 곳에 하늘과 땅과 인간(三才)이 공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동시에 네 가지 우주의 모습(四象)이 네 가지 뚜렷한 검강을 만들었고 그 흐름은 자신이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삼라만상의 이치(五行)를 드러내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 모든 것이 유연하고 정연해 마침내 하나에 이르니 그것이 진정 태극이었다. 준영이 두 눈이 있는 대로 커졌다. 그리고 다시 환청이 이르길.



“둘째, 검에 담긴 뜻 또한 태극과 같지 않았으며.”



이제는 무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며 태극에 이른 검이 전후좌우로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을 준영은 볼 수 있었다. 검이 그리는 선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참뜻(眞意)에 이를 때 비로소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지니 그 선을 따라 하늘이 좌우로 갈라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제는 환청이 아닌 무영이 얘기하길.



“셋째, 그래서 망각한 것은 검도, 뜻도 아니었어.”



무영의 말끝에서 그가 펼친 기검(氣劍)마저 사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성의 생각 속에 하나의 검이 떠올랐다. 무형검과 함께 검의 최고 경지라 하는 심검(心劍)이 그의 생각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검은 그가 생각하는 대로 천지간을 유영했고, 그것은 마치 물결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미끄러지듯 허공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철용의 눈앞에 무영이 내려서며 소곤거리기를.



“해서 여의일도파천황은 시현되지 않았던 거야. 태극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 본질을 잃으면 허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 삼영지문은 출발이 가장 중요해. 먼저 태극으로 돌아가야 해. 알았지, 철용아. 나야 무영. 반가워. 너무나 보고 싶었어. 그 동안 잘 지냈지?”



철용에게 오년 만에 평생의 친구가 돌아왔다며 무영이 활짝 웃었다. 그 투명한 웃음 뒤로 삼영지문의 정수를 담은 심검이 흘러가는 곳마다 금이 생기며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천상천처럼. 마치, 천외천처럼.



“형! 무영형!!!”



철용이 가득 팔을 벌린 무영의 가슴으로 와락 안겼다.



“왔구나. 반가워, 무영아!”



한성이 무영이 내민 손을 잡았다, 깍지까지 끼면서.



“…동생, 수고했어. 고맙고.”



준영이 무영보다 더 활짝 웃었다.



“와! 다들 너무 컸다. 철용이가 내 눈까지 컸네. 하하하. 내가 보고 싶었지, 한성형, 준영형. 응, 그렇지?”

“그럼. 매일 생각했어. 형아.”

“철용아, 그랬어? 나도 그랬어. 형들도 그랬지."



무영이 철용을 한껏 안으며 깍지를 낀 한성의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움켜쥐고 준영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며 그렇게 온몸으로 삼영 모두에게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럼.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 넌 내 생각이 가는 어디에도 있었는데 어찌 잊을 수 있었겠어."



한성이 도혼의 후예답지 않게 반가움을 표했다. 그의 두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차올라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우리에게 너를 잊는다는 것은 호흡할 때 공기가 없는 것과 같아. 무영아 축하해. 네 기도가 보통이 아니구나."



준영이 맏형처럼 든든하게 말했다.



"어? 헌데, 왜 이리 배가 고프지.”



무영이 자신을 생각하는 삼영의 마음에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려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자신의 가슴에 안긴 채 이미 울고 있는 철용의 두 눈과 들썩이는 어깨가 있었다. 무영의 옷이 그의 눈물에 젖어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의 눈도 젖어 들었다. 철용과 준영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1. 하늘꽃 2014.09.23 07:58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려집니다..

    • 늙은도령 2014.09.23 17:23 신고

      즐거우시면 됩니다.
      다음 편은 조금 퇴고를 봐야 하기 때문에 하루 후에나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써두었던 것들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삼혼이 새 삼혼지문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터질 듯 답답한 마음에 한바탕의 소나기처럼 그들의 고열을 식혀준 하늘에서 내려 온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잘 지내셨죠? 보고 싶었어요.



‘어, 이젠 환청이 다 들리네? 부처가 이곳까지 올 리도 없.. 어, 이 목소리는?’

‘잘 지내긴 뭘 잘 지네? 신선놀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만 터져 죽겠.. 어, 어, 이 목소리는?’

‘보고 싶었다고? 이 목소리는 분명..’



그것은 너무 익숙하여 단 하루로 잊을 수 없었던 소리였다. 어느 새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이제는 죽어서도 잊기 힘든 소리가 삼혼의 고막을 흔들었다. 그것도 연이어서.



어, 나만 보고 싶었나?



‘아직 1년은 더 걸릴 텐데? 무영이 벌써?’

‘무공의 신이 아닌 이상.. 이건 너무 빠르잖아? 무영이 설마?’

‘주군도 이렇게까지 빠르게는.. 하지만 무영이 분명해!’



바로 그 소리에 불혼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돌아간 목 때문에 신음을 흘렸지만, 갑작스럽게 뛰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귀를 거쳐 눈가로 번지려는 주책부터 잡아야 했다. 도혼은 그 소리에 몸 전체가 돌아섰고, 속혼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소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너로구나, 너였어. 벌써 대성한 게구나. 허허허! 부처의 홍복이야, 홍복. 허허허허.”

“부처는 개뿔! 그냥 무영이가 최고가 되서 온 거지. 얼어 죽을 부처는 왜 끌고 와! 그냥 좋은 거지. 한 마디로 말해 죽이는 거지. 안 그래, 사제? 크하하하하!”

“허허, 사형도 참! 대사형 마음 상하겠어요. 평생 배운 도둑질이 불공인데?허허, 무영아 축하한다, 축하해. 대견하구나. 눈물 날 정도로 네가 자랑스럽구나.”



과묵한 속혼까지도 말이 길어질 정도로 삼혼은 예상보다 무려 1년이나 앞당겨진 5년 만에 무영이 돌아오자, 기쁨을 표시하기에 정신없었다. 조금 전까지 새 삼혼지문에 막혀 끙끙대던 모습은 온데 간데도 없었다.



“저도 너무 기뻐요. 삼혼 할아버지를 이렇게 1년이나 앞당겨 만나게 돼서.”



무영도 한껏 반가움을 표했다. 5년 동안 혼자서 무공 수련에만 매달린 것은 죽어도 다시 못할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인내와 초조, 좌절과 번뇌의 연속이었다. 항상 아저씨가 함께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었다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진공상태가 같은 억겁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무영은 자신의 성취를 삼혼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듣고 싶었다. 조금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래, 무려 1년이나 앞당겼어. 네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불혼이 무영의 성취를 친손자가 이룬 것처럼 대견스러워 했다.



“저, 잘한 거죠?”

“그럼, 두말하면 잔소리지.”

“앓던 마누라 죽자 곳간으로 달려가 소리 나게 웃기지. 그럼, 그럼.”

“네? 왜요? 애인이 있나? 하하하!?



무영이 씨익 웃었다. 언제나 새로운 성취를 이루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웃음이 불혼은 물론 도혼과 속의 두 눈에도 가득히 담겨졌다. 무영의 성취가 이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5년간의 그리움을 푼 후, 무영은 상황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파천태극무검과 천상지무를 대성하고 하나로 합치는 과정 중에 일극무원결도 절정에 이르렀다. 무영은 이곳에 도착한 후 삼혼에게 자신의 등장을 알리려다, 삼혼이 힘들어하는 것을 봤다. 무영은 삼혼이 막힌 곳을 돌파하기 위해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합공을 지켜봤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무영은 이제 최절정의 무공도 몇 수만 보면 근본 원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류심환이 검강천과의 비무에서 천상지무의 원리를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일극무원결을 대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영은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삼혼에게 선뜻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일단 만남의 회포부터 풀면서, 상황에 따라 할어버지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회포를 푸는 중에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제 삼혼이 풀지 못한 문제의 근원에 대해 풀어가도 될 것 같았다. 무영이 비궁 바로 밑에서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이 다섯 개의 감각이었다. 그 중 하나가 모든 무공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視)였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능력이었다.



무영은 시를 통해 삼혼이 막혀 있던 새 삼혼지문의 근본 원리에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을 덜 상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삼혼 할아버지? 제가 수련 중에 떠오른 건데,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서요."

"응? 뭔데. 먹는 얘기?"

"비슷해요, 도혼 할아버지.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것은 이래요. 열 살짜리 아이가 호랑이를 만났어요. 그때 아이는 손에 무기조차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손으로 때려잡으면 되지.”



도혼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큭!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고요.”

“아니. 정답이지.”

“그래도 다른 것은 없을까요?”

“모자라면 가죽도 벗겨버리고.”

“야! 도혼. 너, 나 따라 해. 합!”



불혼이 쌍 도끼눈을 치켜뜨며 검지를 입술에 댔다. 도혼한테 입 닥치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런 후에 도혼이 쌍심지를 켜며 화내기 전에 무영의 질문에 답했다.



“나라면 팔 하나 떼 줄 정도에서 타협하려 애쓰겠지.”

“왜, 팔을 줘. 그냥 때려잡자니까!”



아무리 위협해도 가만히 있을 도혼이 아니었다. 불혼이 다시 한 번 도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도혼! 합이라 했다. 너 죽는다, 한 번만 더 말하면. 넌,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처먹는 거냐? 무영아, 개 짖는 소리거니 하고 그냥 네가 다 얘기해라.”



불혼은 무영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혼은 그렇지 않았다. 무영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개라고 내가?!!’



불혼의 말에 도혼의 분노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 이번에는 무영이 불혼에게 말했다.



“네! 불혼 할아버지. 그럼, 제가 말할게요.”

‘윽! 개… 됐다. 말할 틈도 안 주다니!! 불혼, 너 죽을 줄 알아!’



무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도혼의 시선을 회피한 채 말을 이었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했어요. 먼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부터 떨쳐야 했어요. 그래서 아이는 용기를 내서 호랑이를 정면으로 바라봤어요.”

“나같이 배포 큰 놈이군. 아예 호랑이 눈을 뽑아버리지. 끙!…그래서.”



불혼의 눈썹이 다시 위로 치켜지고, 그의 눈빛이 ‘야! 너 죽을래’라고 말하며 주먹을 자신의 머리까지 들어 올리자 도혼은 얼른 무영에게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 무영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큭!’

“그런데 아이가 용기를 내어 자세히 보니 호랑이는 자신이 들고 있던 토끼를 보고 있었어요. 그것이 먹고 싶었던 거죠.”

“…음. 사람고기가 맛이 없나? 그 놈 식성 까다롭네, 누구처럼!”

“놈! 합!”

“큭! 헌데, 그 토끼는 아이가 직접 기른 거라 아이는 많이 망설였어요. 자신이 살려면 토끼를 포기해야 하는데 확신이 서지 않았던 거에요.”

“결국, 둘 다를 잃을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구나. 흠, 알겠다, 무영아.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불혼이 도혼이 또 껴들기 전에 무영을 대신해서 얘기의 끝을 맺었다.



“어? 뭐야, 그것으로 끝이야? 에이, 나를 부르지. 내가 통째로 그 놈 가죽까지 벗겨버렸을 텐데. 하긴, 직접 기른 토끼처럼 익숙한 것은 먹기도 버리기도 힘들지.”

“그리고 호랑이라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이겠지. 천외천이 이제 우리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그곳을 향해 검을 드는 것을 이젠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이지.”



속혼이 무영의 뜻을 해석했다. 묵직한 저음이 그 동안의 맘고생을 온전히 드러냈다.



“…!”



무영이 속혼의 말에 그냥 웃었다. 염화시중(捻花示衆)의 미소였다.







“그래, 삼혼이라는 명호부터 버려야 했어. 나를 비우지 못했는데 그 안에 더 큰 것을 어찌 담을 수 있겠어. 허허, 그런 것인데. 허허허…”



무영은 허탈하게 웃는 불혼의 표정에서 천외천의 수호자에게만 전해져왔던 삼혼지문에 대한 미련이 툴툴 자리를 털고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삼혼은 결국 한 가지를 떨칠 수 없었고, 한 가지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들은 새 삼혼지문을 완성하기 위해 파천태극무검의 후반부 삼 초식을 하나씩 맡아 수련했다. 그리고 각자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하나의 합공을 이루면 새 삼혼지문도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을 거쳐 이룬 무공을 스스로 비우는 것이어서, 삼혼은 무의식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검법의 초식도 완성하지 못했으며, 당연히 새 삼혼지문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이 떨치지 못한 것이었다.



반면에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속혼이 말했듯, 새 삼혼지문을 대성하는 것이란 그들의 존재이유였던 천외천을 향해 검을 들어야 하는 것을 뜻했다. 그것은 무영이 천상천을 향해 검을 드는 것과 주군이 천외천의 거짓을 파헤치기 위해 비궁에 든 것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정작 삼혼만은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해서 더 이상 나가지 모했던 것이다.



존재의 근원을 버릴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변화가 진행 중에는 어떤 변화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변화는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처럼 너무나 익숙해 변화가 아닌 원래 그랬던 것처럼 됐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을 버리면, 모든 변화에 열려있게 되며 막상 변화를 이루고 나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일극무원결의 원리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무공을 아무리 봐도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에 열려있는 것은 어떤 것에도 열려있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존재의 근원을 중심으로 했을 때만 성립하는 것이다.



“파천태극무검은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모든 초식의 변화를 담은 것이죠. 천상지무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극에 이른 무공이죠. 하나로 귀결돼 전체가 되는 천상지무와 모든 수를 다 펼쳐 그것이 하나가 되는 파천태극무검은 그래서 서로 상극이지요. 끝에 이르면 하나가 되지만, 그 경지가 할아버지들이 익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하하!”



무영은 말을 하면서도 겸연쩍은지 말의 끝머리에 억지웃음을 집어넣어야 했다. 그 웃음이 저 홀로 몸 둘 바를 모를 때, 삼혼은 이미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무영이 해준 말은 명상의 중심에서 삼혼이 볼 수 있는 하나의 깨달음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삼혼은 그렇게 자신을 비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의 몸과 생각에 각인시켜 잘 때도 수련이 가능할 정도였던 동작 하나하나를 지워나갔다. 그 중에는 팔십 년을 갈고 닦았던 과정에서 자신만이 이룬 고유의 깨달음들도 들어있었다. 삼혼은 그렇게 숱한 생각과 분석, 노력과 몸부림의 순간들을 다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삼혼은 각자가 맡은 새로운 파천태극무검의 초식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러자 초식도 하나씩 살아나 검법의 운결 하나하나로 이어졌고 그것이 쌓여 파천태극무검의 최후 초식이 한 눈에 보일 듯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삼혼은 길을 찾았다. 그들 스스로 치열하게 거부했던 길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더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다. 뼈를 깎는 훈련만이 그 길의 끝에 이르게 할 것이었다. 그 끝에 주군과 무영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다만 이번에는 출발하는 곳부터 무영이 있다. 삼혼은 그것이 더없이 고맙고 기쁘고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삼혼 할아버지, 저는 친구들한테 갈게요. 한 십 개월쯤 걸릴까요? 1년은 넘지 않겠지요? 그때 다 같이 만나요. 그럼, 삼혼 할아버지. 나 가요. 아, 참, 아저씨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그래서 삼혼이 무영을 보니, 그냥 슬슬 팔을 이리저리 휘휘 저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주군의 복사판이었다. 무영은 그냥 걸어가는 것 하나에도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무영의 몸 자체가 순(順)에 든 것이 확실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팍팍 밀어냈다. 헌데, 밀리는 물결이 오히려 더 즐거워 한껏 출렁거렸다.



“직접 보여주기 힘들었던 게야.”



불혼이 유유자적 떠가는 무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요. 제가 할아버지들에게 어떻게 직접 시범을 보여드리겠어요. 제가 제자며 손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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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운장. 아니 이제는 천상천임을 무림에 선포했으니 천상천 본궁(本宮)이라 하는 것이 올을 일이다. 천년 무림의 전실이 현실의 무림으로 내려온 곳, 그 중심에 있는 승천제마관에 검강인이 들어섰다. 동시에 우렁찬 소리들이 입구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가히 그 소리들만으로도 무림을 뒤흔들 만했다.



“천세 천천세! 만세 만만세!”

“삼가 궁인들이 천주님의 용안을 뵈옵니다.”



너나 할 것이 없이 소리에 흥이 넘쳤고 힘이 넘쳤다. 개나 소나 다 흥에 겨워 고래고래 소리쳤다. 허연 대낮에 이제는 아예 깨놓고 천년의 은둔을 광적으로 털어냈다.



검강인은 고개를 좌우로 한 번 돌린 후에, 가볍게 눈과 턱으로 묵례를 했고 몸은 정면에 자리한 용봉태사의로 직진했다. 걸음 하나하나마다 힘을 주는 품이 마치 황제 즉위식에 오르는 발걸음 같았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이 걸렸다. 이 이십 장에 불과한 거리를 가기 위해 삼십 년 동안 2인자의 자리에서 쓰디쓴 웅담을 핥고 짚단에서 새우잠을 잤으며, 역천을 통해 1인자에 오른 후에도 십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이제 내가 완벽한 일인자야. 천년 전설의 새로운 주인이야. 크하하하하하!’



검강인이 마음 속으로 포효하며 마침내 용봉태사의에 앉았다.



“천상천의 율법을 새로 정한다.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을 폐하고 강호에 나섬을 자유롭게 한다. 이로써 지난 천년은 가고 새 천년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검강인의 음성이 천년 신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며, 승천제마궁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천세 만세 만만세!”



검궁인 앞에 도열해 있던 궁의 고위 당직자와 궁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들도 천년의 은둔 속에서 가슴 속에 쌓이고 쌓여 선대로부터 계속해서 물려받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물려줘야 했을 분노와 좌절과 체념을 모조리 토해냈다.



“새로운 율법의 이름으로 명하니 가서 천상천의 강호출도를 천하에 선포하라. 전설에서 나왔지만 그 전설의 위대함도 함께 갖고 나왔음을 만천하에 알려라.”

“천주님 만세!”

“천무대제 검강인 만세!”

“천상천 만세!”



그렇게 열기와 광기가 넘쳐났고, 그것은 전체 무림을 완전히 뒤집어버릴 그런 것이었다.



“그 처음에 천마성을 멸문시켰으니 다음은 귀곡을 벌하겠다. 그 다음에 제마단 태상맹주 자리에 오를 것이니 이를 천하에 알려 본 천주의 위대함을 칭송케 하라. 천상천을 높이 받들 게 하라. 가서 이를 실행하라.”



검궁인이 마침내 무림통일의 대전을 선포했다. 그는 천년 동안 갈고닦을 뿐 드러낼 수 없었던 이빨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무림 역사에 단 한 번만 재현된 적이 없는 천하혈난지세의 본격적인 출발을 선언했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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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도 깊으면 병이지. 애새끼, 지 높은 줄만 알지. 클클! 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몸이라도 보존하지. 클클!”



이번에도 여지없이 승천제마궁 위에서 들리는 천년의 진정한 감시자의 냉랭한 소리, 육력이었다. 허나, 검강인을 감시하는 것이 이번에는 그 혼자였다. 오력은 다른 일에 투입됐다. 세외문의 감시자들도 할 일이 갑자기 늘었으니 그에 합당하게 움직여야 했다.



“클클, 음지에 있던 놈들이 양지로 나오니까 갑자기 일이 많아졌어. 이거 가랑이가 찢어져 죽을 판이야. 그냥, 확 쓸어버렸으면 원이 없겠는데.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 거야. 원, 미친개 지랄하는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하니. 오력이라고 나와 다를 것 있겠어. 그 놈도 거기서 이런 미친개가 울부짖는 소리나 듣고 있겠지.”



오력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천년을 이어온 세외문의 감시자로 마음의 인내가 슬슬 바닥을 드러낼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검강인, 지금이라도 마음껏 웃어라.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클클, 천년의 기다림.. 너무 길었어. 그래서 넌, 내 손으로 자근자근 발라주마. 클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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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해, 류심환의 행동이. 마치 다른 놈이 있어 함께 수련하는 이 느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지만, 하여튼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뭔가.. 있다고 봐야 해. 뭔가, 이상해. 그렇다면..’



제천이 일환을 부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처음 류심환이 천상지무를 대성할 때 미간을 찡그렸던 그는 류심환이 자신의 예상보다 빠르게 파천태극무검마저 완성하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류심환이 보여준 속도란 자신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가 지켜본 무인 중 최고의 자질을 보여주었던 검강천보다 훨씬 빨랐다. 천외천의 적자라고 해도 이 정도의 속도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천은 자신의 예측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무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무림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제천으로도 당황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또 한 명이 있다는 느낌까지, 뭔가 이상해? 알아보고, 대비해야지. 류심환의 경지가 이제 끝에 이르렀으니, 무엇이든 좋지 않은 낌새가 있다면 철저하게 밝혀 대비해야지. 내가 관장하는 범위 밖에 단 한 명의 무인도 용납할 수 없으니까. 결국, 손이 더 필요한 거야.’



며칠 째 류심환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복기해본 제천이 마음을 굳혔다. 류심환이 이런 경지에 이를 것은 필연의 과정이었지만, 막상 류심환이 최후의 지점에 이르자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무엇이 느껴졌다. 어떤 변수도 두려울 것이 없지만, 지금까지 그가 허용할 수 있는 변수의 범위 밖으로 나간 것은 류심환을 둘러싼 풍문 같은 것, 즉 유체이탈 같은 또 다른 존재의 느낌 같은 것이었다. 이는 천년의 주재자인 제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환! 마지막 세상 밖의 힘, 육경(六誙)을 깨운다. 실시하라.”

  1. 참교육 2014.09.22 17:32 신고

    마음잡고 시간 내 읽어야겠습니다.
    아니면 책이 나오면 읽든지...해야겠습니다.




무영이 천상귀원검를 완성하던 날, 그 빛의 축제가 시작된 곳, 그곳에서 또 한 번의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하나의 빛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천공을 뒤덮은 것과 그것이 검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똑같은 날에 있었다.



다른 것은 칠흑의 어둠을 삼키는 검강의 진행이다. 빛의 축제는 시작부터 셀 수 없는 검강으로 시작돼 그대로 이어졌다. 검은 어디에나 있었으나 처음부터 그랬다. 어디를 봐도 검이 있었고 그 검은 끝없는 검강의 정수를 모두 담았다.



콰과쾅!!!



그날처럼 똑같은 폭발이 일자, 빛의 해일은 출발점부터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갔다. 막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뚫고 나갔다. 산봉우리가 그대로 관통됐고 절벽이 절단 났다.



팟! 팟! 팟!!



부딪치는 모든 것은 검강에 의해 뭉툭뭉툭 잘려나갔고 산산이 부서졌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검강의 해일 앞에 버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으로 하나의 검에서 시작된 빛의 축제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공연을 마쳤다. 이날의 천지개벽은 같은 시간에 일어난 빛의 해일이 보여줬던 것과 이렇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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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 이 정도면 충분해. 아저씨가 원하는 것도 다 이루었어. 1년이란 시간을 단축한 것도 일극무원결 덕분이야. 아저씨께 고맙다고 해야지. 삼영도 성취를 이루었으면 좋을 텐데.”



무영은 일부러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무영이 마침내 류심환의 안배를 모두 다 이룬 것이다. 이는 무영이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의 문제점을 찾아 두 절대무공을 하나로 합치는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일극무원결의 더 깊은 오의도 찾은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는 류심환이 예상했던 최대치보다 1년이나 기간을 앞당긴 것으로 보였다.



이제 무영은 고금제일의 경지에 이르러 뜻하여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무인의 반열에 올랐다. 겨우 열일곱 살 6개월의 나이에 무영은 천년 무림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최고의 고수로 성장했다.



“역천의 놈들, 다 죽었어.”



무영이 오년 만에 한껏 호기를 부린다. 그의 미소가 시리도록 눈부셔 태초의 하늘을 닮아 보인다. 무영은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금제일이라 할 만한 기도가 은은히 퍼져 나왔다. 그것은 일상의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호신강기의 일종으로 절대무인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할아버지들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지. 가서 깜작 놀래 켜야지.”





그가 대기(帶氣)처럼, 바람에 실린 청명한 기운처럼 흘러간다. 딱히 설명할 것도 없다. 무영이 이미 대기이며 바람인 것을.



헌데, 그가 나온 곳을 돌아보니 천목산이다. 그것도 비궁에서 불과 오십 장 밑에 나 있는 작은 동굴이다. 무영 자신도 나와서 보니 류심환이 설명한 비궁이란 것이 자신이 머물던 불과 삼십 장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천상지무를 완성해 무영이 천상귀원검의 무위(武威)를 보여줄 때 어떻게 네 명의 환(幻)과 여섯 명의 력(力)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에게 무영은 어떻게 들키지 않은 것일까. 그것도 바로 코 밑에 있었는데, 도대체 무영이 오년을 수련하는 동안 그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일까.



“그때 아저씨도 천상지무를 펼치신 것 같았는데 그 이유가 이것이었어. 아저씨가 함께 하고 계시다는 느낌이 떠나질 않았는데 이것이었어.”



무영이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오년을 동굴 속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나와서 보니, 자신을 위한 아저씨의 마음과 정성이 정말 어떤 것이었는지 무영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무영은 류심환이 마련해둔 안배의 절묘함에 감탄했고 한 순간도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던 그 안배 속에 숨어 있는 노력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랬어. 내가 팔을 앞으로 내밀면 거기에도 아저씨가 있는 것 같았고, 검의 방향을 꺾기 위해 팔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또 거기에 아저씨가 있는 같았어. 내가 깨면 아저씨도 깼고 내가 잠에 들면 그제야 아저씨도 잠에 드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이것이었어.”



그는 몰랐었다. 왜, 검을 뻗고 그으며 자르는 동작 하나하나마다 아저씨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고, 호흡 하나 하나마다 아저씨가 함께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늘 자신을 떠나지 않는 아저씨의 걱정이나 그것에 기댄 여린 마음의 막연한 그리움이라 생각했다. 외로움에 지친 못난 영혼이 아저씨께 떼를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난 알지 못했어. 하루 열두 시진 내내 나의 작은 동작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날 천외천의 감시로부터 숨겨주기 위해 아저씨는 나와 똑같이 5년을 보낸 것이었어. 나의 하루가 아저씨의 하루였고 내 성취의 모든 단계가 아저씨의 보살핌이었어. 난 어리석게도 이를 몰랐어. 그저 난 내 성취에 만족했을 뿐이었던 거야.”



무영의 눈에 지난 오 년 간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펼쳐졌고, 그 어디에도 아저씨가 함께 했었음을 하나씩 확인해 갔다. 무영은 그런 과정을 통해 지난 5년 동안 천상천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신비 문파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무영은 류심환이 자신과 함께 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성취가 류심환의 가늠할 수 없는 희생 속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나를 위해 하늘마저 속이려 했던 거야.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똑같이 되풀이함으로써 자신에게 모든 감시의 시선들이 머물도록 만든 거야. 아저씨는 이미 노출된 상태이니, 혹시 모를 위험에서 나를 지켜주신 거야. 내가 오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곳 바로 50장 위에서.”



류심환의 안배란 그런 것이었다. 천년의 전실을 주재하는 자들로부터 무영이 고금제일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지켜주는 것이 그의 안배의 핵심이었고, 또한 삼혼으로부터 삼영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영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그를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을 때까지 류심환은 무영이 무공을 수련하던 50장 위에서 무영과 똑같은 수련을 진행함으로써 제천과 세외문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천년 무림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속았다면, 류심환이 처음으로 그들을 속였던 것이다, 무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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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드디어 이루었다. 내가 무림 천년 사에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렀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류심환이 비궁을 무너뜨릴 심산인지 미친 듯이 웃었다. 그것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낼 수 있는 광포한 웃음이며 포효(咆哮)였다. 당연히 그 순간에 무영이 파천태극무검을 대성해 여의일도파천황을 시전했고, 그래서 류심환도 똑같이 그 초식을 펼쳤다. 그 위력이야 다시 말해 무엇 하랴. 비궁은 완전히 박살났고 존재했던 흔적들도 사라졌다.



그때 류심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루었어. 드디어, 아니 예상보다 1년이나 앞당겨 이루었어. 허허허, 이렇게 대견할 수가, 이렇게 기쁠 수가! 허허허. 무영아, 네가 이루었어. 네가 일극무원결을 통해 여의일도파천황마저 이루었어. 허허허, 이제 제대로 된 한 번의 실전만 치르면, 네가 나보다 먼저 최후의 경지에 이르겠어. 허허허허! 허허허허!’



그렇게 류심환이 자신과 무영에게 지독히도 모질었던 운명을 털어내며 웃을 때 무영이 동굴에서 나왔다. 무영이 그가 원했던 경지에 이르렀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류심환은 무영이 동굴에서 나올 때 미친 듯이 웃었다. 천년의 진정한 주재자에게 들리도록. 천년 전설의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을 향해 통쾌하게 웃었다.



그는 지난 오년 간 단 한 순간도 무영이 있는 곳에서 시선을 거둔 적이 없었다. 무영이 일극무원결의 진정한 오의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일각의 일각도 나누어 무영의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그 긴박했던 순간순간을 지켜보며 무영의 깨달음이 한 걸음 한 걸음 일극무원결의 정수에 다가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정수에 이르러 무공수련을 끝낼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무영에게서 시선을 거둔 적이 없었다. 그래서 류심환은 무영이 동굴을 나오는 순간 미친 듯이 웃었던 것이다.



“크하하하! 크하하하!!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원수는 들어라. 내가 고금제일의 경지에 이르렀다. 네놈이 내 검에 죽어 저승에 가서도 잊지 못하게 그렇게 죽여주마. 너의 근육 하나하나를 끊어버릴 것이며, 너의 혈관 하나하나를 잔인하게 도려낼 것이다. 기다려라. 내가 이제 경지에 이르고 너를 벌하러 간다. 너의 영혼의 마지막 조각까지 갈기갈기 찢어 죽이리라.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류심환은 천년의 주재자가 들으라는 듯이 최대한 자인하게 말했다. 무영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그의 연기는 계속됐다. 그는 무영을 위해 안배해둔 모든 것들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니, 그것을 확인할 때까지 천년의 주재자를 속이기 위한 연기를 계속해야 했다.



‘무영아, 삼혼과 삼영을 만나면 내 소식도 전해주려무나. 그 동안 수고했고 고마웠다고. 이제 세상은 너 하기에 달렸으니 말함에 가벼움이 없고 행함에 있어 태산보다 진중해야 한다. 복수는 강호에 든 이상 벗어날 수 없는 필연의 고리이지만, 그것이 다시 돌아와 다른 복수를 낳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네가 한 걸음 걸으면 세상도 신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갈 것이고, 네가 한 번 시선을 주면 그곳이 곧 신천지일 것이니 언행에 추호의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될 것이야. 아저씨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야. 힘들겠지만 너는 운명을 넘어 네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이 되길 바랄게. 진심으로 축하한다, 무영아. 아들 같은 무영아.’



그것은 영혼의 울림이었다. 또한 지난 오년 간 한 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던 그의 조바심이 팽팽했던 허리끈을 푼 것이었고, 마침내 무공을 대성한 무영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공간과 시간을 건너 뛰어 무영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 영혼의 울림이 삼혼과 삼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무영의 영혼에 또렷한 떨림으로 전해졌을 때, 바로 그 순간의 무영은, 몸 전체가 귀처럼 쫑긋거렸고, 심장이 노을 지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붉은 퍼덕임처럼 쉴 새 없이 뛰었고, 마음은 막 일어선 아이의 발가락처럼 그 울림을 향해 한껏 모여들었고, 영혼에선 하나의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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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과 류심환이 하나 된 재회의 순간, 그들과 정반대 편에 서서 천년의 음모를 진두 지휘해온 제천에게 처음으로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는 지난 오년 간 류심환이 진행했던 무공수련과 겹쳐지는 것 같은 또 다른 움직임을 느꼈다. 너무나 미약해 류심환의 무공수련에서 나오는 잔상 같기도 했지만, 가끔은 서로 다른 움직임 같기도 했다.



허나, 류심환 정도의 경지에 이른 자가 현 무림에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런 이해하기 힘든 느낌을 류심환이 펼친 초식의 잔상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류심환의 이룬 경지가 너무나 막강하다 보니 천하의 제천마저도 의문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만큼 류심환이 이룬 경지가 그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는 이 모든 수련과정을 끝낸 류심환의 광소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자신이 류심환이라면 저렇게까지 광호함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본 류심환은 저렇게 말할 자가 아니었다. 그가 검강천을 만나기 전이라면 모를까, 그 이후의 류심환은 무공의 성취가 극에 이르렀다고 해서 광호함을 드러낼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류심환이 천상지무를 완성한 삼년 전부터는 자신의 존재 여부를 막연하게나마 알게 됐을 터, 자신이 류심환이라면 그렇게까지 의식적으로 웃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 오년간의 모든 일들을 하나씩 다시 떠올려봤다.



‘그러고 보니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어. 그 느낌들, 분명 이상했어. 뭔가 있어, 내가 놓친 무엇이.’



처음으로 떠 있는 눈으로서의 제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이 외적으로 드러났을 때는 떠 있는 하나의 눈 전체가 양쪽으로 늘어나며 가늘어졌다.



“일환!”



그가 자신의 의심에 힘을 실었다.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 분명했다. 류심환은 이제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그에 의해 자신이 놓친 무엇이 있을 정도라면 그것부터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천년을 주재한 그가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는 변수의 등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일사분란한 운동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길거리에 있는 돌 하나, 목초 하나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나 있으면 안 된다. 제천의 미간이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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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혼은 막 새로운 삼혼지문의 칠백삼십 번째 수련과정을 마쳤다. 주군의 상세한 설명이 담긴 해설서를 가지고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을 익히는데 걸린 삼년을 빼면 지난 이년 간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새로운 삼혼지문을 수련했다.



허나, 기본 검결을 완전히 익혔는데도 불구하고 파천태극무검의 핵심 검결로 이루어진 새로운 삼혼지문은 대성할 수 없었다.



‘주군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기본 심결을 익히는 데만 꼬박 삼년이 걸렸고, 기의 흐름과 검이 그리는 선까지 일일이 그려놓은 운결의 해설서를 가지고도 또 이년을 매달렸어. 그런데도 아직 반도 이해하지 못했어. 주군의 경지가 이 정도에 이르러 있었다니. 지금껏 헛살았어. 나, 불혼은 어리석기가 한량이 없는 놈이었어. 허허, 주군의 깨달음이 이렇게 깊은 것도 몰랐으니. 허허허, 헛산 게야. 지난 세월이란 모두 다 허당이었어.’



두 번째 빛의 축제가 있던 날, 불혼은 이런 생각을 했고.



“우아! 미치겠네! 도무지 모르겠어. 잡힐 듯 잡힐 듯 가물가물하기만 해. 주군의 해설을 호흡 속에도 각인시켰고, 생각의 허튼 순간에도 새겨 넣었는데 몸통은 어디 가고 왜 팔과 다리만 보이는 거야! 우아와!! 돌아버리겠어!!! 힘들게 구워삶아 조심조심 다 벗겨놓으니까, 여장남자가 나오는 꼴이잖아! 내게도 달린 것이 거기서 오줌을 누고 있느냔 말이야!! 우아아아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야!! 나 도혼이 돌아버리겠다고. 우아아아악!!!”



도혼은 도무지 끝을 보여주지 않은 새 삼혼지문의 운결에 아예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으며.



‘주군, 이 못난 놈을 탓해주십시오. 주군의 상세한 해설서과 그림까지 갖고서도 이렇게 깨닫지 못하고 제 자리만 맴도는 이 못난 놈을 탓해주십시오. 주군의 깊고 높은 은덕에 아직 무엇도 보은하지 못하는 이 못난 신하의 불충을 벌해주십시오. 주군…’



속혼은 새 삼혼지문을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이 못내 마음에 걸려 속아리만 깊어져 갔다. 다만, 삼혼 모두는 주군이 만든 새 삼혼지문을 수련하는 중에 천외천의 안배가 얼마나 가공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주군이 말한 하나의 거짓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천년의 비밀은 터럭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천외천의 노리개일 뿐이었던 지난 백년에 가까운 삶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불혼은 한없이 답답했고, 도혼은 미쳐서 돌아버리기 직전이었고, 속혼은 그런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라도 보듬어 주는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살아 숨 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어쨌든 주군의 성취는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주군의 성취를 빠르게 따라가고 있는 무영의 속도에 새삼 감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에 비하면 자신들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삼혼은 새로운 삼혼지문의 거대한 벽 앞에 멈춰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무인으로서의 자괴감도 커져만 갔다.



바로, 그때였다. 무영이 헤맸던 것과 똑같이 지난 6개월 동안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삼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결국, 천상무극진기와 태극무한진기가 하나로 합쳐진 후 그것이 검결로 넘어갈 때 검결의 수만 가지 흐름 중 딱 하나에서 역류가 일어나. 이게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야. 하지만 너무 순간적이라 놈을 잡을 수 없어. 놈을 잡아야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어쩌지?’



무영은 무려 한 달만에 두 진기가 충돌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이 단 하나의 역류에서 비롯됨을 밝힐 수 있었다. 헌데 이를 치료하려면 역류의 원리를 밝혀야 하는데, 역류의 순간이 너무나 짧아 기억 속에 잡히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을 조각내서 단계별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시간을 멈추지 않은 한 속수무책으로 역류가 반복되는 것만을 지켜봐야 했다.



‘마냥 검결을 운용할 수도 없는 노릇, 어떤 방법이 있을까? 역류가 반복되면서 기혈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순간의 변화를 어떻게 포착한단 말이냐? 아.. 쉽지 않구나. 원인을 찾아놓고 도대체 이게 며칠 째냐. 답답해 미치겠어.’



무영은 좀처럼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자 그의 마음은 갈수록 조급해졌다. 류심환과 약속한 육년이 이제 이년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두 무공을 완전히 소화해내지도 못했으니, 그 다음 단계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영은 점점 커가는 초조함을 다스리며, 기발한 방업을 찾아내야 하는 이중의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게다가 일극무원결은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원리를 이해한 것과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수많은 연습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것은 어떤 무인도 초월할 수 없는 시간의 문제였고, 실천의 문제였다.



‘휴..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아. 하.. 이 상태로 가면 일극무원결은 제대로 수련조차 못하겠네. 기본 검결에 걸려 아예 검법을 연습조차 못하니, 이걸 어찌해야 하지? 이러다간 일극무원결의 정수를 아예 익히지도.. 어? 어? 어, 잠깐! 어쩌면.. 그래, 일극무원결이야. 아, 그래, 맞아! 이거야, 바로 이거야! 답은 일극무원결에 있어!’



무영은 황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듯, 옆으로 센 생각 중에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류심환이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모든 무공 중 극에 이른 것일수록 하나의 원리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오의의 정수들을 담아둔 것이 일극무원결의 진정한 가치라고. 일극무원결은 어떤 형태의 무공이라도 그 원리에 반하지 않은 채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원리들을 담아낸 만능의 보약 같은 것이었다. 일극무원결은 모든 무공의 원리에 적용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나는 것도 모든 무공의 기원 같은 요소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 일극무원결의 다섯 감각 중 상(想)의 중반부인 투상(透狀)으로 역혈 현상 전체를 잡아낸 후, 시(視)의 후반부인 투원(透原)으로 원리를 근원에서부터 분석하면 역혈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 바로 이거야. 그러면 문제를 풀 수 있을 거야. 해보자, 당장.’



무영은 다시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을 운용했다. 이번에도 당연히 두 진기가 충돌하며 역혈이 일어났다. 순간 단전에서 두 진기가 일어나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어 전력으로 충돌했다. 무영이 역혈이 일어나는 것을 방치한 채 투상과 투원을 동시에 펼쳤다. 온몸에 엄청난 통증이 몰아쳐 왔지만, 무영은 단전을 최대한 열어놓은 채 투상에 의해 역혈이 일어나는 그 찰나 지간의 변화들을 놓치지 않고 투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그 동안 역혈을 일으켰던 모든 현상들이 시상의 표면에 뚜렷하게 각인됐다. 무영은 이어 투원으로 각인된 현상들을 재빨리 들여다봤다. 순식간이었지만, 역혈의 원리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무영은 무엇이 문제인지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시상의 표면에 각인된 것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그러나 기억은 남았다.



‘역혈은 천상무극진기가 원인이었어. 태극무한진기와 상극의 흐름을 보여야 기본 검결을 운용할 수 있는데, 나는 천상무극진기 중에서 무엇에도 역행하지 않는 순(順)의 흐름을 보냈던 거야. 그 때문에 상극의 흐름으로 시작되는 기본 검결의 운용이 문제를 일으키며 그 다음 단계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 거야. 어떤 기와도 충돌하지 않고, 그 기의 원리까지 포용하는 천상무극진기의 최고 경지의 순(順)을 보냈던 거야. 그래서 기본 검결의 바탕인 태극무한진기와 상극을 이루지 않아, 오히려 역혈을 일어났던 거야. 둘은 닮았지만 상극의 기운이라는 것을 깜빡했어. 진기까지 인간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주체인 내가 진기에 지배됐던 거야. 깨달음은 주체의 몫, 이젠 수단인 천상무극진기의 정수인 순의 기운을 역으로 돌려놓으면 기본 검결을 운용할 수 있어. 그러면 상극의 검결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고, 일극무원결의 도움을 받아 하나로 합칠 수 있어. 류심환 아저씨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마침내 문제의 원인을 밝혀낸 무영은 기본 검결 상의 문제들을 하나씩 잡아나갔다. 역혈의 문제만 잡으면 한층 상승된 파천태극무검을 완성할 수 있으니, 이는 천상무극진기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 두 개의 상승효과를 하나로 합쳐 천상귀원검으로 녹여 내거나, 둘을 하나의 연환식으로 펼쳐, 합공의 위력을 갖게 하면 그런 경지의 무공이란 고금제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로는 뜻하여 이루지 못할 것이 천하에는 없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무영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깨달음을 공고한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정말로 천상천은 가까워졌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 있는 날이 이제 멀지 않았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역천이 얼마나 큰 죄인지, 검강인과 금미령에게 뼈저리게 보여줄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라.’

“검강천의 아들, 나 검무영이 너희들을 찾아갈 테니!”



무영은 천상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없던 생기도 일어났다. 참혹했던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도 떠올랐다. 허나, 예전 같았으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영혼을 갉아먹는 심적 고통을 느꼈을 무영이 지금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확신이 자리했기 때문이며,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무공은 깊어질수록 인간의 마음도 정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물론 사파의 무공은 이와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무영은 아저씨와 할아버지들,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천상천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것이 무영에게 여유를 주었고, 복수에 대한 조급함을 덜어주었다. 이는 무공의 빠른 증진에도 도움으로 작용했다. 무영은 이제 진정한 절대 고수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참 대단해. 이런 과정을 다 거쳤을 텐데 내색 한 번 않다니.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래, 내가 본받을 것이 그거야. 자신이 한 말과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반드시 이행하는 것. 그래, 아저씨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아저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결과를 이루어내자. 헌데… 삼혼과 삼영은 잘하고 있을까? 보고 싶어. 벌써 몇 년이냐? 아, 그리고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됐을.. 혜준이도.’



무영은 삼혼과 삼영을 떠 올리며 그 끝에 혜준도 떠올렸다. 그녀의 눈부신 미소가 떠오르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이곳에는 삼년 내내 무영만 있었지만, 혜준만 떠올리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으흠! 험!”



무영은 공기라도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헛기침을 해본다. 참 이상도 하다.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볼이 뜨거워지는 것이. 혼자 있으면서도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이렇게 헛기침이라도 해야 창피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참 이상도 하다. 하지만 정말 보고 싶다, 혜준이가.





“혜준아, 고집부리지 말고 내 말을 따라라. 어서!”



한 사람, 천상천 오장로(五長老) 천상무영원혼지 위재영이 혜준에게 소리쳤다. 그는 혜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싫어요. 저 이제, 고 사숙조의 무공과 세 분 사숙조의 무공까지 모두 익혔어요. 그것들을 하나로 합친 탈천화령검결(奪天花靈劍訣)도 이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고요. 헌데 갑자기 왜, 위 사숙조의 내공을 제가 받아야 해요? 왜 그래야 하는 데요? 전 싫어요,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혜준은 위재영의 요구를 강하게 거절했다. 사숙조의 내력을 받을 수 없는 일이다. 위 사숙조가 자신의 내공을 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면 위 사숙조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받을 수 없다. 혜준은 완강하게 거절하며,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혜준아, 이는 네가 좋고 싫고, 그런 것에 따라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잖니? 돌아가신 검강천 천주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를 탈출시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네 할아버지인 대장로님과 고지천 차장로님, 열명의 호법들과 내궁 소속 천인들의 한결 같은 뜻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게다가 무영 도련님이 무공을 대성해 나올 때, 너도 준비가 돼 있어야 작은 힘이라도 되지 않겠어? 이건 운명과도 같은 거야. 혜준아, 이제 이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다오. 제발 고집을 꺾고 무영 도련님이 천상천을 되찾는데 도움이 돼 다오.”



오늘은 위재영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소천주 무영을 위해서는 혜준의 무공이 죽은 대사형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도 천상천의 무공 외에도 다른 문파의 무공도 익혀야 한다. 류심환이 제시해 준 방법대로 하려면, 그것을 이루려면 기본적으로 살아남은 세 명 장로의 내공이 필요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오늘은 장장 육 개월을 끌어온 혜준의 고집을 꺾어야 했다. 천상천을 검강인에게 뺏긴 이래 자신들의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무공이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한들 억울할 것도 없다.



“싫다고 했잖아요. 위 사숙조(師叔祖)가 뭐라고 해도 전 받지 않아요.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무영 오빠도 받지 말라고 할 게 분명해요. 그러니 사숙조님도 포기하세요.”



혜준은 미인의 표본 같은 예쁜 얼굴을 찡그리며 완강히 거부했다. 현재의 상태만으로도 혜준은 거의 완벽한 미인의 반열에 오를 만큼 물이 올라 있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느낌을 주는 인상은 백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슬픈 표정으로 강하게 거부하니 차마 말을 꺼내는 것조차 망설여질 정도였다.



‘죽음은, 더 이상의 죽음은 저는 싫어요. 이 정도로도 넘칠 만큼 많아요. 더는 싫어요.’



위재영은 고집을 꺾지 않는 혜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혜준의 고집을 꺾고 내공을 전달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혜준의 고집에 끌려왔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이 말까지 해야겠구나. 허허, 대사형 죄송하외다. 내 오늘은 이 말까지 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외다.’

“혜준아, 대사형이 왜 천주의 탈출을 따라가지 않고 비궁에 남았는지 아느냐?”

“…? 무슨 말이에요? 그게?”



사숙조의 말에 혜준은 크고 빛나는 보석 같은 눈망울에 의문을 가득 떠올렸다. 너무나 맑고 투명해 때로는 슬픔마저 느껴지는 혜준의 눈동자에 의문이 떠오르자 위재영은 자신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결함이 주는 아련한 아픔 같은 것이란, 도대체가! 하지만 오늘은 끝장을 봐야 했다. 단 한 치의 물러섬도 용납할 수 없었다.



“혜준아,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끝까지 들어야 한다. 알았지?”

“…”



혜준이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녀의 눈망울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위 사숙조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말했다. 부모님이 내궁의 일로 집에 들릴 틈이 거의 없어 자신은 주로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혜준에게 할아버지란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헌데, 위 사숙조가 할아버지의 죽음에 어떤 뜻이 있다고 말했다. 본능적으로 혜준은 다음 얘기가 두려웠다.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꺼내기만 하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게 만드는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거늘, 위 사숙조가 할아버지의 죽음에 담겨 있는 숨은 뜻을 말해주겠다고 한다. 혜준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위재영의 입술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무조건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렇게 알고 말하마. 소천주와 너는 한 가지를 공유하는 것이 있단다. 이는 검 천주와 장로들만 아는 사실인데, 그 시작은 십오 년 전 무영 도련님이 태어났던 그날이었어.”



위재영이 하나의 비사를 얘기했다. 그것은 그녀와 소천주 무영에 관한 태생적 비밀이었고, 대장로인 혜준의 할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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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오빠와 나 사이에 그런 인연의 끈이 있었다니…”



혜준은 위 사숙조가 한 말을 다 듣자 탄성부터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영 오빠와 자신은 태생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자신의 몸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무영과 영육 양 면에서 반드시 통해야 하는 운명으로 엮어 있었다. 그것만이 무영 오빠가 선천지체가 아닌 정기신일체(精氣神一體)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며, 할어버지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혜준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것들이 할아버지의 죽음에 담겨 있었다. 이를 따르자니 더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따르지 않으면 그보다 더한 슬픔을 자신과 무영, 할아버지들이 감당해야 한다.



“위 사숙조, 받을 게요. 받을 게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받을 게요.. 흑흑흑흑!”



혜준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도 그 고운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천상천을 다시 세워 천주의 자리에 오를 무영 오빠를 위해서라도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 돌아가신 검강천 천주도, 할아버지 대 장로 심윤환도, 차 장로 고지천도, 열 명의 사숙과 궁인들의 죽음도 다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혜준아, 마음을 진정시켜라. 이제 시작해야 하니, 지금부터는 세상의 모든 연을 다 잊어야 한다. 지금은 너와 내가 하나가 돼야 한다. 명심해라, 이것은 두 번 할 수 없는 일이니, 그 행함에 있어 추호의 감정의 개입도 있어서는 안 된다. 엄중함이 태산 같아야 하니 너도 추호의 틈도 드러내선 안 된다.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하겠다.”



‘혜준아, 너는 네 손녀와 다름없어.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데. 너에게 내 내력을 줄 수 있어 기쁘기 한량없고, 소천주 무영 도련님께 도움이 되니 그 또한 기쁘지 않겠느냐. 죽은 사형들과 숙질들, 내궁 식솔들에게 최소한의 용서라도 구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 부디, 탈천화령검결을 완성해 너 또한 무영 도련님처럼 정기신일체로 거듭나길 바랄게. 사랑한단다, 혜준아.’



혜준은 자신의 몸속으로 위 사숙조의 내력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생을 바친 위 사숙조의 내력은 장강의 물결처럼 거대하고, 그 안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누구도 행복함을 느낄 만큼 부드러웠다.



위재영의 내력이 혜준에게 넘어가자 그녀의 후단전에 머물러 있던 대 장로와 차 장로의 기정, 그리고 자신만 알고 있었던 검강천 천주의 기정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역천의 날에 검강천이 혜준의 내부에 서둘러 주입했던 비밀의 기정이었다. 혜준도 그제야 검강천이 남긴 기정이 자신의 몸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주님.. 천주님..’



혜준은 운기조식에 집중해야 했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혜준은 여기까지 흘러온 천상천이 생각나서 울었다. 자신을 위해 이미 무공의 반을 주고, 그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바친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울었다. 고 사숙조의 희생과 열 명 호법과 무엇보다도 검 천주의 배려 때문에 울었다. 자신에게 내공을 주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위 할아버지의 희생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울었다. 검 천주의 자식 사랑 때문에 울었고, 무영 오빠와 이루어야 할 일 때문에 울었다. 무영 오빠와 꼭 그렇게 맺어지지 않아도 서로 사랑할 수 있길 바랐기 때문에 울었다.



“그래, 혜준아. 꼭 무공을 대성해서 무영 도련님에게 힘이 되거라. 나와 네 할아버지, 호법들과 검 천주님까지 우리 모두의 한결 같은 소망을 생각하거라. 그리고…”

‘꼭, 무영 도련님과.. 잘.. 맺어져라. 부디, 무영 도련님과..’



그는 마지막 말을 다하지 못했고, 생각 속에서도 끝내 다하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내공을 모두 혜준에게 주입시킨 후 혜준의 등에 손을 댄 채 깊은 숙면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혜준은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하염없는 눈물이 상의를 다 젖게 할 때까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람은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갔고, 한 젊은 소녀는 절대무인의 경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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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최종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 컬! 그래야지, 그래야 재미있지. 일환!”



하나의 떠 있는 눈이 말했다. 제천이다. 그가 일환을 불렀다. 이번에도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삼환은 사지를 부복의 자세로 그의 앞에 엎드리고 있었다.



“소신 일환, 대령했습니다, 제천님.”

“판을 키운다. 일소빙혈사(一笑氷血死) 설지연을 깨우고 빙혈천마의 후인도 금제를 푼다. 그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풀어준다. 실시하라.”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명했다.



“존명! 제천님!”



일환이 소리와 함께 또 사라졌다. 당연히 그 자세, 그대로다. 헌데… 이는 또 무엇이란 말이냐. 제천이 말한 자들은 무림 사대(四大) 혈사의 주인공 중 두 명이며, 검강인이 천에게 말했던 각각 칠백년 전과 오백년 전에 천하를 피를 물들였던 두 절대마인 아닌가. 그들을 깨운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들이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설지연을 깨우고, 빙혈천마의 후인의 금제를 풀라고 하니,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컬! 류심환의 성취가 보통이 아니야. 세외문 놈들도 간이 배 밖으로 나왔고. 검강인과 진무결도 생각한 대로 절정의 반열에 올랐고, 컬! 무영이란 놈.. 지 아비보다 더 뛰어나지만 큰 변수는 아니지만. 컬! 재미있겠어. 재미있겠어.”



천년 무림을 자신의 뜻대로 주물러온 이 절대 문파의 수장인 제천의 능력은 대체 어디가 끝이란 말인가? 류심환부터 무영까지, 천년 무림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제천이란 자의 능력이 가능하기라도 하단 말인가? 도대체 천년 음모의 주재자인 제천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음모는 음모를 먹고 자란다. 그렇게 먹고 먹힌 음모들만 무려 천년을 이어왔다. 그 깊이와 넓이를 누가 감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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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영의 성취가 어디까지 이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할 거야. 무영이 내가 원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천년 음모의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야. 그의 주변에서 내가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한 움직임들이 미약하게나마 잡히고 있어. 하나의 비밀과 하나의 거짓 이상의 것들로 보이는 그런 움직임들이.’



류심환은 비궁에서 제천과 비슷한 형태로 무림 전체를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비궁을 찾은 이유 중에는 제천을 감시하는 것이 포함돼 있는 것은 분명했다. 류심환은 무영처럼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하나로 합치는 일과 일극무원결을 극대화하는 것 이외에 무엇인가 별도로 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제천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고, 어쩌면 세외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떤 것도 가능하다고 봐야 해. 모든 것에 열려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야. 모든 가능성을 변수로 두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이야. 내가 준비해둔 안배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하나라도 어긋나면 천년의 주재자를 처리할 수 없을 텐데, 세상일이란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최후의 1푼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로 비워둘 밖에야. 뜻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자. 무엇보다 무영의 성취가 중요해. 결국 이 모든 것이 중심에는 무영이 있어. 그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너무 크지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무게를 최대한 줄여주는 일에 전력하는 수밖에. 검강천, 당신이 파악한 것들이 진실에 가깝기를 바라야지. 나 또한 당신이 파악한 것에 기초해 이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니까.’



정, 사파를 가리지 않고 동북삼성(東北三省)의 모든 문파들은 하나의 공통된 꿈이 있다. 중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강호로의 진출이다. 그곳에는 팔괘가 나온 황하(黃河)가 있고, 글이 나온 낙수(洛水)가 있다. 역사의 산실인 장안이 있고 낙양도 있다. 웅장한 태산도 있고 아름다운 동정호도 있다. 전설의 복희(伏羲)와 신농(神農), 황제(黃帝), 제준(帝俊)이 나온 대륙의 역사가 그곳에 있다. 길림성(吉林省)과 요령성(遼寧省), 흑룡강성(黑龍江省)에 있는 모든 문파는 강호로 진출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동북삼성에서 그런 꿈을 이룰 수 있는 문파는 정파와 사파를 통틀어 오직 복마전(伏魔殿)만이 있을 뿐이다. 동북삼성의 흑룡강성에서 작은 문파로 시작해 동북삼성 전체를 호령하는 사파제일세력으로 성장한 복마전은 지난 100년 동안 강호 중심에 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세를 넓히고 내부의 힘을 강화하며, 강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승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사파제일세력인 천마성을 넘어 강호의 패자가 되는 그날을 위해 복마전은 오늘도 칼을 갈고 있다.



천마성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복마전의 중심인 마혼집성전(魔魂集成殿)! 복마전의 중심인 이곳의 불빛은 여전히 휘황찬란했지만, 이곳에서도 천마성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천마성의 상대가 초마인 진무결과 그의 조력자들이었다면, 이곳 복마전의 상대는 천무대제(天無大帝) 검강인과 천상천의 고수들이었다.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법도 한데…”



검강인이 전설의 미남인 반안을 떠올릴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냉소 어린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천년 전설의 경쟁자가 아니랄까 봐, 검강인도 초만인 진무결과 거의 똑 같은 말을 했다. 그의 검은 한 사람의 목젖에 닿아 있다. 그 한 사람은 동북삼성의 맹주로서 마공의 경지가 최절정에 이른 복마전주 흡혈마제(吸血魔帝) 추성한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목젖에 닿아 있는 검의 주인, 검강인을 바라봤다.



“…”



추성한은 검강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상대는 반 시진도 안 돼 복마전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전설의 주인 천상천주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추성한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무인이 아닌, 신의 경지에 이른 고금제일의 절대강자이다.



추성한은 그가 한 말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복마전주의 지위를 그의 부하인 옥진결에게 넘기라고 한 것은 자신의 퇴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단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상대가 천상천주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를 맞상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복마전의 주인을 바꾸겠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상대는 전설의 주인이다. 그를 상대로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보자는 허튼 희망도 갖고 있지 않다. 그가 복마전주의 자리를 지나가는 개에게 주라고 해도 줄 판인데, 추성한은 천년 만에 강호에 출도한 천상천주가 왜 하필이면 복마전주의 자리를 옥진결에게 넘기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복마전 전체를 취하면 될 일이거늘.



‘제기랄, 그냥 자신의 수하로 들어오라고 하면 될 일인데.. 전주 자리를 왜 넘기라는 것인지?’

“…왜? 천상천이, 복마전주 자리를 원하는 것인지…?”



추성한은 최소한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천상천이 천년 전설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무림을 접수하겠다면, 그런 변화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에 맞서 싸우는 것은 기름을 이고 불길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은 모든 강호인들이 알고 있는데, 그들의 능력에 비하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복마전 전주 자리를 노린단 말인가? 추성한은 목젖에 닿아 있는 검 때문에 제대로 말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씨부럴, 날카롭기는 더럽게 날카롭네. 천년 동안 검만 갈았나? 침만 삼켜도 피부가 갈라지니, 제기랄!!’



추성한은 죽음을 눈앞에 뒀고, 평생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죽는 이유라도 알아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 깊은 곳에서 삶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지독한 억울함에 오기도 생겼다. 해서 용기를 끌어올려 전주 자리를 넘겨줘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물어보려 시도했다.



“왜, 하필 전주..”

“그것까지 알 건 없고. 그냥 신물과 신패만 내놔. 그러면 돼, 넌.”



검강인이 추성한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냉혹하게 말했다. 그냥 복마전주를 상징하는 것만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복마전주 추성한이 이승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이 그것이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말라는 뜻이기도 했고.



“씨팔! 내가 왜, 헉!”

“씨팔?”



검강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검을 앞으로 밀었다. 그의 검은 추성한의 목젖을 뚫고 들어갔다. 추성한은 검강인의 검이 자신의 목을 파고들자, 하나의 바늘에서 시작해 전신을 가를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평생 처음 느끼는 날카로운 통증이었고, 비명은 그것에 대한 자동 반사였다.



“크악!!”

“어디에 있느냐?”



검강인이 추성한의 비명을 무시한 채 재차 물었다. 이번에도 말하지 않으면 목젖의 반까지만 들어간 검을 그대로 관통시키겠다는 뜻이 더욱 비릿해진 그의 미소 속에 담겨 있었다. 추성한은 비로소 죽음이라는 개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런… 것이었나? 컬컬, 그 동안 내 마도에 죽어갔던 놈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인가? 이런 거였나? 컬컬, 제기랄. 허나, 그래도 난 복마전주다. 천하의 추성한이란 말이다.’



추성한의 눈빛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밀어내는 결기가 언뜻 스쳐갔다. 그의 목젖에서 그제야 한 방울 피가 검날을 따라 흘러내렸다. 검의 날카로움도 날카로움이지만, 검을 목의 반까지 찔러 넣으면서도 한 방울의 피만 흐르게 만든 검강인의 검을 다루는 경지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의 피가 추성한에게는 가장 확실한 죽음의 증거였다. 검날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바닥에 부딪치며 일으킨 소리가 추성한에게는 벼락처럼 들렸다. 생과 사의 거리가 종이 한 장 차이만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추성한은 피할 수 없었다.



‘클클, 70이면 살만큼 산 것인가? 한 방울의 피에 죽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니..’



추성한은 한 방울의 피가 바닥에 튕겨 조그만 파편들로 공간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자 죽음이란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추성한이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자, 체념에서 피어나는 한 가닥 변화가 그를 최후의 선택으로 이끌고 갔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러 순간적인 생기가 찾아오는 회광반조(回光返照)와 비슷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동반자라도 있어야지.’



그렇게 삶을 내려놓자 추성한은 살아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결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살아났다. 반면에 검강인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추성한의 눈빛에서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보편적인 체념의 표상만 봤다. 삭으러드는 빛의 형태, 검강인이 본 추성한의 눈빛은 분명 체념을 의미했다. 그는 추성한이 순순히 복마전의 신물과 신패를 내놓겠다는 뜻으로 판단했다. 그 작은 차이가 추성한에게 필생의 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같이 가자!’

“놈! 파쇄체(破碎體)!!”



추성한이 자신의 몸을 산산조각 내 근거리의 상대와 함께 죽는 동귀어진의 절대초식인 파쇄체를 펼쳤다.



“끄륵!”



헌데 이상했다. 추성한은 자신의 목에서 성대를 파고 흘러나온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에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은 분명 파쇄체를 펼쳤는데, 펼친 게 분명한데, 그래서 산산조각 난 몸의 파편들이 수없이 많은 강철이 돼 상대의 온몸에 박혀야 했는데, 그전에 자신의 목을 관통한 검이 종이를 자르듯 밑으로 내려와 자신의 몸을 둘로 나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추성한은 부릅뜬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은 자신에게 향한 것이기도 했고 상대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두 개로 갈라진 몸의 여러 부위에서 조각난 내장들과 피가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왔다.



‘파쇄체가 제대로 펼쳐지기 전에..’



검강인의 검이 자신의 몸을 두 개로 절단했고, 그 다음에서야 파쇄체가 펼쳐진 것이었다. 그래서 파쇄체의 위력이 두 개로 절단된 자신의 몸 안에서만 일어났고, 그 결과 조각간 내장과 그에 따른 선혈이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파쇄체가… 펼쳐지지 않았군. 어! 근데 이건 또 뭐야?!!!’



추성한은 자신의 몸이 둘로 갈라진 상태에서 정말 희한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몸이 목 아래로 둘로 갈라졌기에 이미 죽음의 영역에 든 것이 확실한데, 지랄 맞게도 여전히 하나인 뇌는 두 개의 눈에 들어온 형상들이 신경을 따라 전해진 형상들을 인식했다. 추성한은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누구도 하지 못했을 특이한 경험을 하나 했다. 뇌가 인식한 형상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인식했다는 기억만은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떠돌고 있었다.



쿵! 쿵!



반으로 나뉜 금강불괴의 몸 덩어리가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까지 그의 기억은 유지됐고, 부릅뜬 두 눈에는 반으로 갈라진 추성한의 몸과 조각난 내장과 이리저리 퍼진 선혈이 어려 있었다.



제기랄!!!!!



“이곳, 마혼집성전의 모든 곳을 뒤지되, 신물과 신패가 나오지 않으면 복마전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실시하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크크크, 복마전이 박살나네. 저거 봐, 혈영기마대와 복마혈사대 놈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것을! 크크크. 검강인 저놈, 천상천양천단을 복용한 후 무공이 엄청나게 늘었어. 이제는 거의 거칠 것이 없는 놈이 됐어. 크크크, 재미있겠어. 앞으로의 일이 재미있겠어, 안 그래 육력(六力)?”



천마성과 마찬가지로 세외문의 인물 두 명이 복마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력’자라는 돌림을 가진 이들의 감시능력은 무림 전체를 관통하고도 남을 듯, 전설의 주인공인 두 문파의 움직임을 세세한 부분까지 꿰뚫고 있었다.



문제는 류심환이 말한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에 이들이 포함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이로써 제천과 그의 수하들의 등장과 함께 세외문이라는 상상을 불허하는 신비문파가 또 다른 변수로 등장했다.



“그래, 재미있는 싸움이 될 거야. 나와 붙는다면. 예전에야 상대조차 되지 않는 놈이었지만, 지금은 나와 대적할만한 정도까지 이르렀어. 클클클! 자네가 양보하면 내가 상대하지, 어때 오력(五力).”



육력이 오력에게 전설의 주인공인 천상천주 검강인을 자기 몫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천의 음기와 천상천양천단을 복용한 후 최고의 경지에 올라선 검강인을 자신과 동급으로 놓았다. 도대체 이들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이런 광호한 말을 서슴없이 내놓는단 말인가?



“검강인을 양보하라고? 글쎄, 복마전 놈들을 도륙하는 속도로 볼 때 너에게 양보하기 힘든 놈이야. 조금만 더 보고 결정하자. 이런 놈과 싸울 기회가 지난 천년 동안 세외문 누구에게도 없었잖아? 쉽게 양보하기 힘든 놈이야, 지금의 검강인은. 크크크.”



천상천주 검강인을 서로 상대하겠다는 두 사람들 중 숫자상으로 볼 때 오력이 사형 정도는 되는 것 같았으나, 오가는 말로 미루어보면 숫자가 그렇게 구속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야, 한 번 양보하면 어디 덧 나냐?”

“당연하지, 너라면 전설의 반열에 오른 놈을 상대하는 재미를 쉽게 양보할 수 있겠어?”

“하긴, 저런 놈과 겨루는 재미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일이니. 좋아, 네 말대로 좀더 지켜본 후 누가 상대할지 결정하자.”

“크크크, 그래야지. 헌데 검강인 저놈, 손속이 정말 지독하네.”

“그러니까 역천도 한 것이지. 아무튼 잔인하면서도 대단한 놈이야. 죽은 검강천에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어. 천년 전설이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니야.”

“그래서 제천이 더욱 무서운 놈인 거야. 제천이 세외문의 최대 적수인 이유가 천년 전설에 있는 거야.”

“맞아, 제천을 넘어야 세외문이 영원한 전설에 오를 수 있어. 문주의 귀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는 제천의 눈과 귀의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정말 긴긴 기다림이었어.”

“제천.. 그 놈이야 말로 진정한 천년 전설의 주인공이지. 이제 가자. 더 이상 지켜볼 것도 없으니까. 가서 제천에게 오늘의 일을 전해줘야지, 엿 같지만.”

“그래, 가자. 일방적 도륙은 재미없으니까. 복마전, 꽤 많이 준비하더니 단방에 갔어. 차원이 달라. 아무튼 무림이 한 동안 시끌시끌하겠어. 클클클!”



오력과 육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송에서 공기 같은 신형이 떨어져 나오며 허공중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천마성에서 삼력과 사력이 보여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사라진 것과, 허공에서 나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동질의 방식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의 무공은 자연의 원리를 완벽히 소화해낸 것이 분명했다. 이런 경지의 경공은 어떤 문파의 역사에도 나와 있지 않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완벽한 신비의 문파, 세외문! 그들의 힘은 네 명의 무인이 보여준 경공만으로도 천년 전설의 두 문파를 능가하는 문파임이 분명했다. 천년 동안 전설상에만 머물렀던 두 개의 문파가 모습을 드러낸 곳에 이들이 함께 했다. 제천에 이어 세외문의 등장까지, 이 두 개의 변수는 천년의 전설을 완벽하게 뒤바꿔버릴 만큼 미증유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천마성이 초마인 진무결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하던 바로 그 시각에 이곳 복마전에서도 천년의 전설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일들이 진행됐고, 그것을 세외문의 네 고수가 지켜보고 있었다. 무림이 격랑으로 빠져들며, 천하가 혈난의 시대로 접어드는 그 처음의 일들이 천마성과 복마전에서 일어났다, 천년 전설의 두 주인공에 의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의 고민이 깊어갔다. 천상지무를 완성해 이제는 그의 무공이 충만할 데로 충만해졌는데,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劍訣)인 파천무극일원결(破天無極一原訣)을 운용하면 천상무극진기와 자꾸 충돌을 일으켜 운결 자체를 유지할 수 없었다. 무영은 이런 현상이 일어나리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상하다. 왜, 충돌하는 거지? 본류가 같은데, 그래서 상극도 되는 것인데 왜, 자꾸 서로 밀어내지? 이유가 뭐지? 정말 이상해.’



무영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류심환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두 무공은 분명 본류가 같았다. 아저씨가 이것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저절로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도 확실했다. 두 개의 무공을 서로 반대로 운결하면 하나의 출발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에서 이는 분명히 입증됐다.



헌데 상극에서 출발해 하나의 본류로 합쳐지는 두 개의 진기가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만 운용하면 천상무극진기와 태극무한진기가 충돌을 일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가 없는데, 항상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만 떠올리면 두 진기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진기끼리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기본 검결만 읊으면 태극무한진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천상무극진기를 공격했다.



그렇게 무영은 보름 동안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개의 진기가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영은 지난 보름 동안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온갖 방식으로 실험을 계속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게 나왔다.



‘더 이상 경우의 수는 없어. 상상 가능한 모든 수를 적용해봤는데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무영은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생각하고 생각했다.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적용해봤지만 기본 검결만 운용하려 하면 두 개의 진기는 상극으로 돌변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곧바로 주화입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영은 뇌를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하려 하는 순간에 떠올랐다.



‘그래, 이상하다고만 할 일이 아니었어. 계속해서 일어났는데 그것을 부정하려고만 했으니 답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 그래, 일단 인정하자. 문제를 풀려면 현상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그 밑에 자리한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법, 기본 검결부터 다시 살펴보자. 그 다음은 태극무한진기, 그렇게 하나씩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자. 상극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인 이상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무영이 두 개의 진기가 충돌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파고들어 원인을 찾아내려는 방식을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기존의 방식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면, 아예 정반대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백지상태에서 출발해 두 진기가 충돌나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 같았다.



‘그 동안의 방식이 틀렸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어. 지금까지 이루어온 방식이 언제나 옳았기 때문에 다른 관점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 수도 있어. 최고의 경지에서도 풀 수 없다면,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무엇을 얻을 수는 없지 않겠어? 어쩌면 나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 언제나 옳았으니,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았던 거야. 아저씨가 끝에 이르러 그 다음이 닫혀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시작으로 가는 하나의 끝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한 말이 이것을 뜻한 것일 수도 있어. 인식의 고착화만큼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도 없다고도 했었어, 아저씨가! 그래,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어.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이에 이른 무영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문제의 현상을 파고들었다. 그는 충돌 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았다. 두 진기의 접점이 아니라 그 출발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도중에 막히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출발했고, 그러고도 막히면 막히는 지점에서 생각이 가는대로 사유를 풀어 놓았다. 어떤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을 운용하면 멀쩡하던 두 진기가 충돌을 일으키는 현상을 완전히 분해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현상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였을까, 무영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구라도 너무 쉽게 빠지는 일반적인 오류에 대한 것이었다. 고수들이 쉽게 빠지는 너무나 일반적인 오류에 자신도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절대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영은 천상지무를 대성했기 때문에 가장 일반적인 오류에 빠졌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거야. 내가 빠진 함정이 일반적 오류의 전형이었어.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에 버금가는 절대무공이라는 것 때문에 당연히 기본 검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한 것이 그간의 오류였던 거야. 그래,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이 완벽하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문제는 분명 기본 검결을 운용하면 일어났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완벽한 무공이지만, 두 개의 무공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나에겐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 그것에서 출발하자.’



무영은 절대에 대한 일반적 오류, 완벽한 것은 어떤 결점도 없다는 선입견부터 버렸다. 그는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에 담겨 있는 상승무공의 원리부터 찬찬히 들여다봤다. 축검기(蓄劍氣)에서 발검기(拔劍氣)까지 기본 검결의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원칙도 없이 생각이 가는대로 해체와 종합을 거듭해서 해보았다.



하지만 무영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과정 속에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무영은 파천태극무검의 기본 검결에서 어떤 문제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태극무한진기와 기본 검결과의 적합성 여부를 검토해보자. 기본 검결은 진기를 기반으로 해서 운용되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 이번에는 이 부분을 분해시켜 다시 조립해보자. 먼저 여기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무영은 태극무한진기를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았다. 이렇게 해서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것이다. 두 진기와 기본 검결과의 관계를 차례로 분석해 볼 것이고, 그 다음의 것들도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되짚어 볼 것이다. 어떤 정해진 끝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능성의 세계를 무한대로 넓혀놓았다. 영원히 그런 순환과 비약, 분해와 조립, 해체와 융합, 단절과 결합에 갇혀 있을지라도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따라가볼 생각이었다.



이 시점이 무영이 폐관에 든 지 삼년 반을 막 지나던 순간이었다. 당연히 삼영이 폐관에 든 지도 삼년 반이 지나고 있었다. 




블로그 정기후원자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1. 박창식 2014.09.14 01:56

    이 새벽에 글이 올라왔다는 것이 너무나 좋아
    담배 한개피 채 피우기도 전에 읽어 내렸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14 04:52 신고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일반적인 무협소설과 다르고 심리적인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데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2. 박창식 2014.09.15 10:02

    젊은 시절 무협지께나 읽었지요.
    그런데 님의 소설은 그 격이 다릅니다.
    주인공인 무영이 극강의 경지로 성장하는 하나하나의 깨달음에 숨어 있는
    오의를 이리도 잘 설명하여 주시니...




류심환은 속혼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난 후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지난 1년간의 속혼의 노력이 한 눈에 보였고 그 내용의 충실함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심환이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이 천상천과 연관돼 일어나고 있는 예상치 못한 강호의 움직임이었다.



‘이것까지는 예상치 못했는데, 결국.. 비궁에 들어가라는 뜻일까?’



류심환은 1 년간의 기록 중 마지막의 내용에 대해 속혼에게 물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천상천이 은둔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속혼이 보기에 어떤 연유가 있는 것 같습니까?”



그는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속혼으로부터 상세한 자초지정을 듣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그에게 먼저 물었다.



“네, 그들은 은둔의 형식을 유지한 채 무림통일을 노리는 작전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들어났고 있습니다. 보신 것처럼 천상천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열두 제마령(制魔靈)이 그 예입니다. 역천 시 검강인에 의해 금제 당한 채 지하 감옥에 있었는데 그 중 세 명이 사라졌습니다. 거의 6개월 동안 그들의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3인 중 한 명인 오(五) 제마령 장지영이 무당의 태극도인이 돼 있었습니다. 완벽한 변신이어서 무당 내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두 명의 제마령은 …”



류심환이 들어도 속혼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검강인은 겉으로 은둔의 율법을 지키면서도, 암중에서 현 무림의 주요 문파의 핵심인사를 제마령들로 대체하면서 무림통일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은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천하통일을 이루려는 암계라 할 수 있었다. 음지에서 검강천을 상대로 역천을 이룩해낸 그다웠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흡혈차능대법에 의해 완전하게 금제당한 나머지 아홉 명의 제마령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 같습니다. 현 무림의 나머지 거대문파에 이들을 침투시킬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지난 1년간의 천상천 감시에 대한 속혼의 보고가 끝났다. 그의 보고가 충격적이었던 만큼 검강인의 묘계는 제갈량에 못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검강인.. 생각보다 뛰어난 자네요. 천상천의 특기인 은둔을 활용한 천하제패라.. 하나같이 암중에서 진행되는 것이 그답기는 하네요. 그런데 이 보고서에 그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설마 그가 속혼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무공을 지닌 상태인가요?”



류심환은 속혼의 보고서 상에 나온 내용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강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자, 이에 대해서 물었다.



“주군! 제 능력의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폐관에 들 상황도 아니어서 어떤 특별한 무공수련을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천상천의 일은 그의 심복이자 동생인 부천주 검강궁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전 천주의 정실인 금미령 태후가 이를 돕고 있었습니다.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렸지만 제 능력 밖이어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속혼도 류심환처럼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속혼은 검강인과 관련된 사항을 주군에게 구두 보고를 드린 뒤, 주군에게 다른 계획이 없다면 그에 대해 좀 더 정밀한 탐색을 할 생각이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 부분은 좀 더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이제부터 역천마곡에 대해 이야기 해 보죠. 먼저…”



그렇게 류심환의 질문과 속혼의 보고는 한 시진을 넘겼고, 그의 보고 내용에는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류심환과 삼혼의 논의는 두 시진을 넘어 계속됐다. 불혼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목이 계속 지근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도혼은 무영의 성취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 논의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특히 그는 미리 계획하고 탐색하고, 이런 것들을 너무 싫어하는 까닭에 일이 닥치면 그때 고민해도 된다는 식의 낙관파여서 무영의 수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천상천을 아예 쓸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불혼은 불혼대로 무영의 성취가 눈앞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무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도혼보다 더했다.



특히 역천마곡은 아예 그들의 관심 밖이라 도혼의 지루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불혼도 속혼의 보고가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눈은 속혼의 입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귀는 무영의 처소를 향해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 천이통을 극대화시킨 상태였다, 벌레 하나 움직여도 알 수 있을 만큼.



조금만 더 보고가 길어지면 낮에는 자신의 목이 돌아갔는데 밤에는 자신의 귀마저 돌아갈 판이었다. 낮에 다 돌아가지 않은 목 근육이 안달이 난 채 불혼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불혼과 도혼은 그만큼 무영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 무영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손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은 류심환이 그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밤새도록 강호의 정세를 살펴보고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시죠. 이참에 무영이 강호에 나가 가장 효율적으로 부모의 복수를 하고, 천상천주에 오르는 방안까지 논의하도록 하십시다. 필요하다면 밤도 새죠.”

“알겠습니다, 주군.”



속혼은 이렇게 답했지만, 불혼의 반응은 달랐다. 도혼도 마찬가지였다.



“네, 밤을 새서요?”

“밤까지.. 논의하자고요?”

‘으아, 주군! 살려주세요!'



불혼과 도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최대한 힘겨우면서도 피곤하고 가련한 눈빛으로 류심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류심환은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한 채 한술 더 떠 말했다.



“왜요? 아! 하룻밤 가지고는 너무 짧아서 그런가 보네? 좋습니다, 무영을 위해 완벽한 안이 나올 때까지 논의해 보죠.”

류심환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도혼이 하룻밤이 아니라 몇 날이라도 새자는 류심환의 말에 표정이 급격하게 구겨졌다.



'며칠 밤을? 어.. 이를 어째? 무영이 성취를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은데.. 정말 돌아버리겠네. 불혼, 저 놈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무영을 그렇게 감싸고돌더니만 지금은 왜 꿀 먹은 벙어리 행세야!!!’



도혼은 최대한 구겨진 표정의 얼굴로, 최대한 살기를 담아 불혼을 노려봤다. 전설의 도끼눈이 바로 이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야, 사제! 나라고 별 수 있어. 니 눈에는 안 보여? 내 안면도 점점 돌아가고 있는 거!! 무영의 성취를 아무리 알고 싶다고 해서, 주군이 하자는데 별 수 있어? 야, 꼴 보기도 싫은 눈 돌리지 않고 뭐해!!!'



이번에는 도혼을 째려보는 불혼의 두 눈이 도끼눈이 됐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 중에 부딪치는 것이 난형난제며 용호상박이었으되, 최고의 진상이었다. 두 사람은 주군이 뭐라 하던 둘 간의 눈싸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구? 그래, 잘났다! 낮에는 목 돌아가고, 밤에는 안면 돌아가서. 넌 좋기도 하겠다, 그 나이에 뭐 그리 돌아갈 것이 많은지!!'



도혼의 눈빛과 표정이 불혼에게 그렇게 말했고.



'도혼.. 이 노옴! 네 놈의 두 눈을 그냥 확!! 목 돌아간 것도 아파 죽겠는데!! 그래, 나 이제 뇌도 돌아버렸다! 너, 얘기만 끝나면 내 손에 죽었어! 네 놈의 나이에 죽도록 맞다, 비참하게 죽도록 만들어주마! 살고 싶으면 당장 네 놈이 말해! 당장 말이야!!!’



불혼이 도혼보다 더한 도끼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도혼이 아니더라도 지금 불혼의 도끼눈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싸움이 이어지다, 성질이 급한 도혼이 참지 못하고 류심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헌데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주군!! 논의를 꼭!”

‘헉, 이게 아닌데?’

“네? 논의를 꼭? 꼭, 뭐요?”

“너, 이놈 도혼!! 주군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네가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류심환이 자신의 실수 때문에 당황해버린 도혼을 향해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소리를 높였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동시에 도혼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에 깜짝 놀란 불혼이 얼른 끼어들어 도혼을 야단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꼭, 뭐가 아니라.. 죽으려고 환장해서.. 아, 아니.. 야! 불혼, 너.. 죽으려고 환장했냐고? 그래, 환장했다! 네 놈이 주군께 말하라고 시켰잖아?”

“네가 언제? 난 가만히 있었는데, 뭔 소리야??”

“네 놈이 눈으로.”

“눈으로? 사람이 어떻게 눈으로 말해? 게다가 난 눈도 작은데?"

“하하하, 두 분도 참.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내일 전체적인 제 구상을 말씀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가셔서 무영을 보세요. 하하하하!”



류심환이 예의 그 청아한 소리로 웃었다. 이렇게 농담을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영의 성취가 생각보다 빠르고 그의 조력자가 될 아이들도 왔고, 삼혼도 다 모여서 그런지 농담이 다 나왔다. 불혼과 도혼의 표정이 그의 웃음소리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주군의 웃음만 들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자신들이 주군의 농에 당했지만, 주군이 이렇게 농담도 하고 한껏 웃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주군의 웃음은 그들에게 마약과 같았다.



아니, 마약이었다. 도혼이 곧바로 중독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휭! 하는 소리만 남긴 채 도혼이 자신의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혼의 말은 그 뒤에 들렸다.



“주군, 감사합니다. 소신의 무례함은 나중에 이 가련한 늙은 몸으로 무려 세 끼의 밥을 굶는 엄청난 형별로 대신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오늘 한 번만 봐주십시오. 그럼… 무영아! 나, 지금 너에게로 간다!!”



그렇게 휑한 바람만 남기고 한참은 멀어진 도혼의 소리에 이어 그 다음은 당연히 불혼의 몫이었다. 그 역시 중독이 심했던 모양이다.



"주군, 죄송합니다. 오늘의 무례함, 두고두고 갚아나가겠습니다. 주군,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영아, 나도 간다!!"



무영으로 하여, 불혼과 도혼의 하루하루가 회춘으로 가는 길이었다. 평생을 천외천의 후계자를 찾아다녔고, 그 이후로는 후계자인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해본 그들에게 무영의 등장은 끝이 없는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이번에는 속혼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허허허, 무영을 사랑하는 두 분의 마음이란. 허허. 그래요, 그래. 아,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발굴했습니까? 속혼이 보기에 아이들의 어떤 점이 무영과 궁합이 맞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난 무영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어디에 살아? 속혼 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났어? 응, 너는 또 이름이 뭐야?”



무영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만큼 세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물었다. 무영의 입에서는 질문들이 연속해서 나왔고, 아직도 묻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무영은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천상천이 아닌 곳에서 그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무영은 이런 날이 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상천 천주의 후계자로 태어나 궁내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 보기만 했지, 살갑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곳에서 도망치던 날에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이곳에 와서 복수의 날만을 다짐하며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을 뿐,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이런 질문들을 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다, 이 적막한 곳에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한성이야. 우와, 근데 네 질문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말하지? 아, 그래! 내 나이는 열세 살이야. 너는?”



무영의 눈에 도혼이 어렸다면 바로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아이가 무영의 질문에 답했다.



“아… 한성이 네 이름이었구나. 근데, 나보다 한 살 많네. 그럼, 나보다 형이네!”



무영이 탄성을 지르며 한성에게 말했다.



형이다.

나에게 형이 생길 수 있다.



“어.. 나는 철용이라고 해. 열한 살이니까, 내가 제일 어리네. 무명 형은 열다섯이고. 야, 이제 형만 셋이네! 무명 형, 형은 어때?”



속혼을 닮은, 그러나 왠지 약해 보이는 철용이 말했다. 그는 먼저 무영을 보고 말한 뒤 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철용의 질문에 무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까딱였다.



“어? 무명이 이름이야? 난 무영인데. 비슷하네. 그럼, 무명이 형이 제일 연장자네? 내가 셋째고?”



무영이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 불혼을 쏙 빼 닮아 더욱 믿음이 가는 무명에게 물었다.



“형이란 말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름이 없어서 그냥 무명입니다. 하대하십시오. 저희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영 도련님.”



무영을 향해 꾸벅 포권의 예를 취한 무명이 자신들과 무영의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이것은 또한 철용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기도 했다. 열다섯이란 나이도 있었지만, 그는 이미 속혼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다. 무영은 신화에 속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짧았지만 강호 경험도 있었고, 소림이나 무당 같은 명문 출신은 아니나 위계질서의 엄중함은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기에 무영과의 간격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게다가 얼핏 봐도 무영에게서 느껴지는 성취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무영은 자신과 두 아이의 주인이 될 사람이었고, 여러 모로 봐도 무영의 성취는 자신들과 차원이 달랐다.



“아니.. 그러지 마. 난 그런 거 싫어. 그냥 형, 동생으로 지내. 난 그게 좋아. 응, 형아.”



무영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천상천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고 반드시 돌아갈 것이지만,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외톨박이는 정말 싫었다. 주변에 사람은 넘치도록 있었지만 천상천에서 그는 늘 외로웠다.



“안됩니다, 도련님. 너희들도 일어나서 도련님께 예를 갖춰라, 어서.”



무명이 완강하게 무영의 뜻을 거부하며 두 아이에게 명령했다. 그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아이가 일어섰다. 그들의 눈은 그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 또한 결코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속혼에게서 무영에 대한 말을 들었기에, 당연히 이 부분에 있어 지독할 정도로 분명한 선을 그었다. 무명은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러지마.”



무영이 짧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한성과 철용이 반쯤 일어난 자세에서 멈췄다. 무명의 눈빛도 흔들렸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러지마. 나 그거, 너무 싫어. 정말 내가 주인이라면 같이 있을 때는 그러지마. 부탁이야, 내 말대로 해줘. 응, 무명 형.”



그것은 무영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어린 시절 천상천의 생활 속에서 그의 마음에 쌓여 점점 한처럼 굳어져 가던 무영의 슬픈 영혼이 그 고독했음을 말하는 소리였다.



“…”



무명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주인이 될 사람의 말이 너무나도 깊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외로움의 깊이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왔고 그 깊이를 자신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짧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억겁 같은 시간이 흘렀다. 무영의 시선이 일겁에서 시작해 육겁을 돌아 무명의 시선과 다시 만났다. 그 길고 찰나 같은 고독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두 어린 영혼의 울림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무명이 말했고.



“정말!!”



한성과 철용이 동시에 외쳤으며.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꼭!”



무영의 한이, 그 외로움의 응어리가 화답했다.



"야호!! 무명 형! 한성 형! 철용아, 만나서 반가워. 우리 잘 지내자."



무영의 영혼이, 그 깊었던 고독이 세월이 풀려나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나에게도 형과 동생이 생겼다.

가족 같은 친구가 생겼다.

처음으로 내게도 또래의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이곳에 한 명이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무영의 시선이 삼 년 전의 어느 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시선의 언저리에 아이 하나가 떠올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아, 우리 그냥 친구하면 안 돼?”



혜준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 아이는 대장로 심윤환의 손녀로 자신보다 한 살 어렸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반달 같은 아미와, 하늘의 별을 갖다 놓은 것 같은 눈망울과 알맞게 높은 콧날, 너무 앙증맞아 자꾸 손이 가려 하는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과 갸름한 턱 선에서 이어지는 길고 투명한 목을 가진 그 아이는 무영이 천상천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였다.



혜준은 뛰어난 미모를 지녔음에도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천상천 궁인들과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그를 모두 좋아했다. 그런 혜준이 자신에게 다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심 대장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혜준을 당장이라도 폐관에 처했을 일이었지만, 그렇게 예쁜 혜준이가 다가와 자신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와 친구하자는 아이가 생겨 너무나 기뻤다. 그것이 천의 규범에 어긋나다 해도 혜준이 먼저 친구하자 했고, 그것이 너무나 고맙고 마음에 들었다.



그날, 봄날의 햇살이 이마에서 따사로웠고

귀밑을 스쳐가는 바람은 어머니의 손길 같았다.

몇 안 되는 구름은 갈 곳이 있는지 서둘러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 또 다른 구름이 기웃거렸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러 핏줄이 보일 만큼 투명했다.

그 푸르른 날에 혜준이 햇살보다 빛나는 웃음으로 다가와

자신과 친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혜준이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들이 세 명이나 생겼다. 무영은 그것이 너무나 기뻤고, 한편으로는 한 아이가 그리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 날 새벽, 류심환이 다시 삼혼을 불렀다.



“비궁에 들 것입니다. 속혼이 데려온 철용의 병을 고친 후 들어갈 것입니다. 참, 아이들의 명호는 삼영(三影)이 좋겠는데 어떠신지요?”



류심환이 삼혼에게 담담하게 말했지만 밤새 고민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말하는 품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들이 듣기에 주군이 마치 봄나들이 가듯 비궁에 잠깐 다녀올 것 같았지만, 그것은 강호의 역사를 뒤바꿀 만한 엄청난 얘기였다.



“비궁이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도혼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김없이 그의 말이 세 중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불혼은 그 중간쯤에 있어 도혼이 물은 말이 목젖에 걸렸고, 속혼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네, 비궁에 들 것입니다. 해서 몇 가지 당부드릴 것도 있고 해서. 헌데 표정을 보니 삼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잔잔히 웃으면서 류심환이 삼혼을 향해 분명하게 비궁이라 말했다.



“아, 비궁이요? 아이들 명호로는 너무나 적절한 것… 아, 아니, 죄송합니다 주군. 비궁.. 아니.. 삼영, 마음에 쏙 듭니다. 들고말고요. 삼영! 최고네요, 최고!!”



류심환의 농담에 도혼이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비궁이란 단어가 갖는 중요성은 삼혼에게 절대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들어가실 모양이야. 주군이 운명에 정면으로 맞설 모양이야. 마침내.. 마침내..'



마구 흔들리는 불혼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도혼은 이미 눈물을 떨어뜨릴 판이었다. 속혼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군이 비궁이라 말했고, 비궁이란 단어를 말하면서도 주군이 담담하게 웃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주군이 자신들에게 연이틀 농을 걸어온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럼, 아이들 명호는 삼영으로 정하고요. 무명은 불혼의 이름을 따서 준영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려 했던 말은 다름이 아니라…”




  1. 태봉 2014.08.30 22:09

    늙은 도령님의 블로그에는 소설과 시와 그림과 평론?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어머니,어머니...ㅋ그냥 저의 맘^^''ㅋ 여러가지가 어우려져 맛을 내는 비빔밥같습니다 제가 비빔밥을 좋아합니다^^ㅋ

    • 늙은도령 2014.08.31 01:56 신고

      저도 그 점 때문에 고민입니다.
      몇 개의 블로그로 나눌까도 고민 중인데, 천검지로 같은 소설과 시는 이미 써놓은 것이고, 제 블로그가 너무 딱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다양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에 관한 글도 접할 수 있도록 하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람도 있습니다.
      골라먹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ㅎㅎㅎ


‘물러선 적이 없었잖아. 부딪치자. 뭐가 되도 되겠지.’

“합!”



무영은 일성을 지르며 다섯 번째 감각인 태의 전반부 순상평(땅 위에 부드럽게 서있는 것)과 함께 압상평(壓狀平, 여기서는 압진평으로 땅에 압력을 가해 자세를 고정시킨다)까지 펼쳐 바닥의 진동을 힘으로 눌렀다. 그 힘에 그의 두 다리는 발목까지 바닥에 박혔고 그 진동을 타며 그는 그 상태에서 발기의 자세를 갖춘 후 앞을 향해 왼손을 두 번 뻗었다. 그의 왼손은 일극무원결 상의 수비식 제 삼초, 그 후반부 망(網)과 제 사초 파(破)를 연속해서 펼쳤다. 나머지 오른손으로는 공격식 제 삼초 분이발(分移發)을 펼쳐 그의 등뒤로 파고드는 다섯 개의 검을 상대했다.



그 모습이란! 

격렬한 진동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면서도 평형을 유지하고 선 그 부드럽고 굳건함이란! 



무영에 의해 일극무원결 상의 여러 원리가 하나의 물처럼 흘러 번개처럼 펼쳐졌다.무영은 왼손으로 펼친 수비식 망을 통해 앞에서 날아온 공격 중 연환시를 찰나의 순간만큼 멈추게 한 뒤, 이를 다섯 개의 감각 중 하나인 시의 후반부 투원(透原)을 펼쳐 그 원리를 파악한 후, 그 이해를 바탕으로 연환시의 흐름 일부의 일할 정도만 삽시간에 변형시켜 분이발을 통해 등뒤로 파고든 필살탈혼검을 막기 위해 날렸다. 그 과정의 연속성과 물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은 한 마리 날렵한 새를 떠올렸다. 



캉!캉!캉! 콰앙!



두 극강의 절초가 충돌해 수천 가닥의 빛살이 터져 나왔고 강력한 폭발음이 발생했다. 기관 전체가 흔들렸고 미세하지만 여기저기 금이 생겼다. 



‘하나는 처리했고…’



이어서 무영은 왼손으로 펼친 수비식 제 사초 파를 통해 열여덟 자루의 극섬비도를 아예 파괴시켜 버렸다. 자신의 내공의 크기를 실전에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쾅!쾅!! 쾅아앙!!!!



연환시와 필살탈혼검이 일으킨 충돌과 동시에 일어난 이번 폭발은 열여덟 개의 비도를 수천 조각으로 폭파시키며 미증유의 기세로 기관 천체를 휘몰아쳤다.



퍽!퍽! 우우웅!!!

쩍! 쩌억!!



산산히 부서진 비도 조각들이 통로 벽면을 파고 들었고 충돌에 따른 파장의 반탄력은 미세한 금의 간격을 확실하게 늘려놓았다. 그 기세는 마치 통로의 공간이란 공간은 다 삼켜버릴 듯 덮쳐갔다. 무영이 노린 것이 이것이었다. 





우웅!

그그그긍!!!!!



그 기세는 금의 간격을 더욱 넓히며 기관 전체를 들었다 놓을 듯 흔들렸고,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키며 통로의 모든 공간을 삼켜버린 채 광속의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던 기세는 최후로 무영의 몸을 삼켜버릴 듯 입을 쩍 벌린 채 달려들었다. 기세의 눈빛이 갈라진 기관의 틈새를 뚫고 들어온 햇살에 눈부시게 반사되며 강렬하게 빛났다. 그 빛나는 미증유의 기세가 그를 삼켜버린 순간..



‘주위의 상황을 넘어서면 뜻하는 곳에 내가 존재한다.’



섬전처럼 그의 뇌리를 관통해 가는 것이 있었으니, 무영은 일극무원결 상의 다섯 개 감각 중 최후의 단계인 태의 후반부 망상재(妄想在)의 오의를 터득하는 수간이었다물 흐르듯 흘러온 앞의 수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기세의 거력에 저항하는 가운데 일어난 그 찰나의 깨달음은 류심환이 무영을 치료할 때 무아지경에서 얻은 깨달음과 그 모습이 닮아 있었다.


‘무가 극에 이르면 하나의 근본으로 돌아간다!’



무영은 일극무원결의 진정한 오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불혼과 도혼은 기관 안으로부터 제법 큰 폭발음을 들었다.



“앞으로 갔군.”



그 소리를 들은 도혼이 말했다.



“적절한 선택이네. 무영이 앞의 실수를 깨달은 것 같아.”



불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폭발음이 일어난 기관의 입구에서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그의 시선을 두었다. 그의 표정에는 무영이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이 더 커 보였다. 해서 그가 도혼에게 물었다.



“자네, 살벌하게 만든 것은 아니지? 괜찮겠지?”

“허허, 걱정도 팔자군. 늙으면 죽으라 했다는 말이 다 이유가 있어. 왜? 내가 무영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응?!”



도혼이 불혼에게 면박을 줬다.불혼이 사형인데도 그는 말이 나오는 대로 뱉었다. 뇌가 보낸 생각이 전달되기 전이다. 그는 꾸며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불혼도 그러려니 해왔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넘기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해서 또 묻고 말해야 했다.



“너, 그 말 정말이지?! 무영이 다치기라도 해봐라. 내, 가만이 있나. 네놈 손목을 분질러 버리지. 내 가만 있나 봐라!!”



불혼이 말을 하면서 괜히 화가 났고 그래서 씩씩거리며 거칠게 말을 끝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이 그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이 기관 속으로 뛰어들 판이었다. 불안(不安)이란 감정은 그렇게 자라는 것이다.



‘무영을 생각하는 사형의 마음이 정말 깊구나.’

“노친네 아니랄까 봐. 그럼? 무영이 다치지 않고 나오면 내가 사형 팔을 분질러 버리면 되겠네?!”



도혼이 자신의 팔을 비트는 동작을 하며 불혼에게 말했다.



“그래라.”



불혼이 도혼의 말에 짧게 답했다. 도혼이 고개를 돌려 불혼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 걱정하는 마음이 여름철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걱정 말아. 무영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순간에 기관이 멈추게 해놨으니까.”



도혼이 다시 기관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혼이 갖고 있는 마음의 불편함을 털어줘야 했다. 자라난 불안은 그대로 두면 정신을 잠식하고 육체의 병으로 전이되는 경향이 매우 높았다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나도 예상하기 힘들어. 주군이 추가시킨 장치니까. 지금까지는 그것에 비하면 어린네 장난이지… 다음 단계는 나도 예상 못해. 그냥 무영이를 믿을밖에.’



도혼의 시선에도 긴장이 묻어났다. 불혼이 이 사실을 알면 안되기 때문에 도혼은 자신의 시선을 서둘러 기관으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불혼이 이를 눈치챘다. 자신과 살아온 세월만 육십 년이다.



“너, 이놈… 도혼! 바른 대로 말하… 헛!!!!”



불혼의 눈이 극도로 커지며 도혼을 향해 외쳤던 그의 고함이 중간에서 잘렸다. 


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기관의 한쪽 면의 일부가 순식간에 뚫렸다. 두 장 두께의 만년한철이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벽처럼 안쪽으로부터 그대로 뚫렸다. 삼혼의 크기보다 조금 작은 구멍이 그곳에 생겼다. 순간, 구멍 주변에 있던 공기와 빛이 대롱에 맞닿아 있는 물처럼 기관 안쪽으로 삽시간 에 빨려 들면서 먼지를 일으켰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도혼의 눈에 상황을 알 수 없다는 의문이 떠올랐다 이내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가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불혼의 외침이 들렸고 뒤를 이어 청아한 웃음소리 하나가 들렸다. 



“무, 무,, 무영이다!”



당연히 불혼의 것이었고,



“허허허, 깨달았구나, 일극무원결을! 수고했다, 무영아.”



더욱 당연하게 주군의 음성이었다. 헌데 도혼은 누구를 먼저 봐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몸,은 자동적으로 주군 쪽으로 돌아가는데 시선은 무영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몸과 목 부분이 완전히 반대의 상태가 됐다. 당연히, 목의 근육이 뒤틀렸고 찢어지는 아픔이 전율처럼 일었다.



“허걱!”



날카롭지만 벌쭘한 신음이 그의 입에서 터졌고, 불혼의 목에서 자신의 목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뼈나 목근육이 완전희 뒤틀릴 때나 나올 수 있는 소리였다. 



우드득! 찌익!



목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목의 힘줄이 찢어지는 듯하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들린 소리만으로도 그의 상태가 눈에는 훤하게 떠올랐다. 머리는 무영에 고정된 채 그 놈의 몸이 완전히 돌아섰음이다.



"나이가 들면 급격한 방향 전환은 몸에 좋지 않다 하던데…"



도혼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불혼이 꼭 그꼴이었다. 문득, 정말, 뜬금도 없이 도혼에게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형의 나이가 팔십을 넘겼지, 아마?’



그리고 주군의 한 발 뒤에 속혼이 서있다. 그의 양 옆에 모두 세 명의 아이도 서있다. 삼혼인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각자의 느낌이 자신들과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무영의 소리가 들렸다. 청아한 것이 주군과 많이 닮았다.



“그래, 천상무극진기도 풀어냈구나. 허허허, 축하한다. 이제 천하제일인이 됐음이야, 허허허.”



듣고 들어도 변함없는 주군의 음성을 듣고 나니, 무영의 음성이 주군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때 불혼의 비명이 터졌다.



“으아아! 그래, 나 목 돌아갔다! 도혼, 너 이노옴!!!”



불혼이 도혼의 중얼거림을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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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극무원결의 오의을 깨닫는 순간, 제천무극진기가 단전에서 솟아 섬전의 속도로 대주천을 하며 천상무극독을 모두 작동시켰어요. 동시에 그 진기는 혈도와 혈맥 주변에 있던 극양과 극음지기를 일할 정도만 만 남긴 채 나머지를 흡수해 세를 키운 뒤 다시 단전 위에서 한 치 정도 떨어진 곳에 단전 정도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런 후 천상무극진기와 천양천단의 효능을 극도로 자극시키더라고요. 이에 흥분했는지 두 진기와 효능이 단전에서 그대로 솟아 올라 제천무극진기를 향해 날아 들었어요. 세 가지 각기 다른 절대 기운이 그 작은 공간에 서 정면으로 부딪쳤지요. 우주가 폭발해 팽창했던 그날처럼 내 안의 소우주에서 천지개벽같은 충돌이 일어나려 하는 바로, 그때였어요.”




  1. 뉴론7 2014.08.24 15:01 신고

    잘보고 감니다. 주말 잘보내세염.

  2. 유머조아 2014.08.25 00:52 신고

    흥미진진하게 잘 보고 갑니다.
    좋은 꿈 꾸시길요~~

  3. 태봉 2014.08.25 16:44

    잼나게 보고 갑니다^^



무영은 이 장 옆으로 새롭게 생긴 통로로 들어서기 위해 그 입구에 섰다. 이번에는 통로의 안이 아예 처음부터 암흑천지였다. 그는 처음부터 일극무원결의 다섯 가지 감각 중 시(視)의 전반부 투시(透視)와 두 번째 감각 이(耳)의 전반부 지성(知聲)를 사용해야 했다.



투시는 어둠 속을 자신의 손바닥 보듯 하거나 수백 장 떨어진 벌레를 볼 수 있으며, 수백 개의 침이 동시에 발사 되도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초절정 안공과는 달리, 그것이 어떤 것이던 간에 그 흐름의 원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격이 달랐다.



이는 일극무원결의 공수 초식을 뒷받침 하는 다섯 감각 중 하나인 시(또는 시각:視覺)를 어둠에 가장 적절하게 변형시킨 것이다. 절정의 투안공을 쓰면 이런 암흑천지에서도 어지간한 흐름은 다 잡아낼 수 있지만, 그 방향까지 예측하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도혼이 만든 장치들의 기습 공격은 절정 고수 수십 명이 동시에 합공하는 위력을 갖고 있어 그 공격의 원리를 파악해 대응하지 못한다면 절정의 투안공도 이곳에선 아무 쓸모가 없을 뿐이다. 투시처럼 지성(知聲)은 지음(知音)과 같은 의미로 일극무원결의 다섯 가지 감각 중 청각을 극대화시켜 깨달음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지성은 삼라만상의 어떤 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그 진원지와 종류뿐만 아니라 소리가 만드는 흐름의 원리까지 밝힐 수 있다. 이는 절정의 천이통(天耳通)이 주로 소리의 분류와 거리에 중점을 둔 것에 비해 지성은 이중에서 분류를 차용해 최고점까지 발전시켜 소리의 원리를 파악해내기 때문에 흐름의 변화를 예측해 적절히 대비해야 하는 경우에 적합했다.



기관 속의 무영처럼 수많은 변화를 포함한 암흑 속에서의 기습공격을 차단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이후의 공격은 분명 앞의 연속적인 공격보다 더 강력해지고 빠를 것이며 공격의 변화도 더 다양하고 예측하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아마, 일원무극결에 상의 초식들을 상당 수 써야 할 것이며 이번이든 다음에서든 삼혼의 무공도 써야 할 것이다. 일단 투시와 지성을 작동시킨 무영이 생각을 정리하며 어둠 속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의 첫 발이 칠흑의 어둠 속으로 무릎까지 넘어갈 때 다섯 가지의 파공음이 지성에 걸렸다.



‘지독해! 다 들어간 것도 아니고 다리만, 그것도 반만 들어갔는데. 허, 이번은 두 번째 단계라 이거군.’



무영이 도혼의 안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나 돌아간 것은 그의 고개가 아니라 그의 생각 속의 고개가 돌아갔을 뿐이다. 실제로 돌렸다면 자신은 파공음의 실체 중 하나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다섯 개의 파공음 중 네 개는 자신의 사대 사혈을 향해 날아왔지만 한 개는 그가 고개를 흔들 것을 가정해 실제 흔들 때 당연히 머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으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날 죽이려는 게 분명해!’



지음에 걸린 파공음의 진원지는 양쪽 벽면에서 각각 두 곳과 그의 머리 일 장 위에 있는 천장 우축 구석진 곳이었다. 또한 파공음의 정체는 철륜(鐵輪)이며 흐름의 근본은 가공할 회전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이를 받아 투시는 다섯 개 철륜의 진행을 예상해 그것을 막으며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동시에 찾아냈다.



순간, 무영이 무릎에서 다리를 거쳐 허리와 몸통에서 머리까지 삽시간에 암흑 속으로 이동하며 지풍을 연속해서 다섯 번 발사했다. 그의 이동은 구멍 속으로 혼령이 빨려 들어갈 때 구멍에서 먼 쪽의 얼굴부터 조금씩 옆으로 짓눌려 찌그러지며 얇아지다가 마침내 연기처럼 가늘게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마치 그의 몸이 그처럼 어둠에 흡입되는 것처럼 보였다.



다섯 번의 지풍이 내는 파공음은 그런 흡입의 단계마다 발사돼 마치 실처럼 압축된 혼령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슉! 슉! 흐입!



이 일련의 과정은 투시와 지성을 통해 도혼의 의도를 예측해낸 무영의 판단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것에 따라 무영이 어둠 속으로 일장 이동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양 손의 검지와 중지를 두 번 튕겨 네 개의 지강을 발사했다. 지풍은 류심환이 검강윤을 잡을 때 사용한 태극일섬이었다. 속도와 파괴력 면에서 상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지풍이었다.



캉! 캉! 캉!!!



네 발의 태극일섬이 철륜 네 개를 산산조각 냈다. 빠르기와 위력을 동시에 지닌 초절정의 지공이었다. 현 무름에서 이 정도 지공을 쓸 수 있는 자는 10~20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휙! 퍽!!



동시에 나머지 한 개의 철륜이 무영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가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철륜이 바닥에 박히는 중에도 일어난 회전 때문에 발생한 불꽃에 몇 가닥 잘린 무영의 머리털이 공중으로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헌데 철륜이 바닥에 박히자 상당한 파공음이 동굴 안을 귀를 찢는 소리로 가득채웠다.



카캉캉캉캉!!!

투투투투툭!!!



바닥이 심한 진동과 함께 파편이 바닥에서 사방으로 튀어나갔고.



슉! 텅!텅!!!

츄릿! 츄리릭!!!



서로 다른 파공음을 내는 이종의 기습공격이 무영을 향해 잠시의 틈도 주지 않으려고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경솔했다.’



무영은 도혼의 수를 예측했다고 판단해 마지막 철륜이 발사된 앞 쪽으로 자신 있게 이동한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그는 도혼의 수를 예측해 역으로 치고 든 것인데 도혼은 이것까지 예상해 세 가지 경우의 공격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지금의 기습공격은 그 중의 하나였고 나머지 두 개는 무영이 좌측이나 우측으로 움직였을 때를 대비해 준비돼 있었다. 허나 그가 앞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기습공격을 펼친 앞과는 달리 좌우의 기관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그가 지음을 통해 그 양 측면의 기관이 기습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일으킨 미세한 진동을 파악함으로써 알 수 있었다.



도혼은 자신의 반응이 최대치를 안배했던 것이고 그는 도혼의 안배 중 최소치만 예측했던 것이다.



‘예단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무영은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하나의 깨달음을 찾아내며 일극무원결의 다섯 감각 중 어떤 상황에서도 몸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해주는 감각, 태(態)의 전반부 순진평(順震平)을 즉시 펼쳤다.



원래 이 감각은 순상평(順狀平)이 근본으로 순진평으로 변형시킨 이유는 바닥에서 일어난 진동에 몸을 맡김으로써 진동에 따라 함께 흔들리며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무영의 몸이 격렬한 진동에 물결을 타듯 무게 중심을 잡자 그의 투시와 지성은 파공음의 정체를 밝혀냈고 무영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파공음의 정체는 회전을 통해 십방(十方)을 이루며 날아오는 여덟 개의 연환시(連環矢)와 열여덟 개의 주요 혈도를 향해 연환시 사이를 파고든 극섬비도(極閃飛刀)였고 마지막으로 그가 이동전에 있던 자리에서 격발된 다섯 개의 필살탈혼검(必殺奪魂劍)으로 이루어졌다.



무영은 순간, 죽음 근처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옆으로 피할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서 반격의 기회를 가질 수도 없었다. 또한 공격을 막아내 그것이 옆으로 튀기라도 하면 좌우의 기관이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고 튕겨내면 또 어떤 기관이 작동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무영의 느낌과 판단은 적절했다.



지금 그에게 펼쳐진 공격의 실체는 후에 류심환이 천외천에 들었을 때 알게 되지만 어쨌든 이번의 공격은 초절정 무공의 연합으로 가히 무적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무영은 그 무공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높은 단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그 순간만은 깨닫지 못했다.



허면, 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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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마기가 흐르고 있다. 그 마기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리에서 녹아들었다.



칙! 칙! 칙!!!!



바위가 흘러내렸고 나무가 타서 재로 흩어졌고 땅이 흐물흐물 녹아 퍼질러졌다. 절대 마기가 지난 곳은 어김없이 그 형체를 잃거나 녹아버렸다. 그 극강의 마기에 절대 음기가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 음기는 빙혈류였다. 빙혈류를 펼치고 있는 자들은 오천신룡이었다. 절대 마기의 주인공은 초마인 천불마존(天佛魔尊) 진무결이었다.



“크흐흐흐! 오천신룡이라 했나?”



진무결이 냉소를 흘리며 오천신룡을 쳐다봤다. 그가 말할 때마다 그의 몸에서 뿜어진 마기는 요동쳤다. 엄청난 위력의 마기가 출렁거리며 공간을 가로질러 오천신룡의 고막을 터뜨릴 듯 울렸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