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의 대가인 스티븐 핑거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념적 편향이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아래의 글은 중도와 중용을 구별하지 못하는 안철수가 정치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20세기 물리학이 발견한 근본적인 사실 중 하나는 우주 역시 한쪽편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우습게 들린다. 우주 속의 어떤 물체나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진짜 사건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보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유기분자와 알파벳 철자 같은 인공물은 예외에 해당한다고 항의할지 모른다. 그런 것들에서 표준형은 도처에 널려 있고 익숙한 반면, 거울상은 드물고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자에게 표준형이나 거울상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의 한쪽편향성은 역사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며, 물리학의 법칙들에 위배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성에서든 다른 행성에서든 만일 진화의 테이프를 되감고 그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게 한다면, 똑같이 쉽게 정반대로 진행될 수 있다. 한때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모든 것이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볼프강 파울리는 "나는 신이 서툰 왼손잡이라고 믿지 않는다"라고 썼고, 리처드 파인만은 어떤 실험으로도 거울에 비치면 다르게 보이는 자연의 법칙을 밝혀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데에 50달러를 걸었다.(100달러를 거는 데는 주저했다.) 그는 내기에 졌다. 코발트 60의 핵은 핵을 지구로 가정했을 때 북극에 해당하는 지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순환적이다. '북국'이란 회전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회전축의 말단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어떤 것'으로 이른바 북극과 남극을 구별한다면 이 논리적 순환은 깨질 것이다. 여기에 그 '다른 어떤 것'이 있다. 원자가 붕괴될 때 전자들은 우리가 남쪽이라 부르는 쪽의 끝에서 더 쉽게 뛰쳐나간다. '북쪽' 대 '남쪽'과 '시계 방향' 대 '시계 반대 방향'은 더 이상 자의적인 설정이 아니라 전자 분출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핵 붕괴는 거울에 비치면 다르게 보일 것이고, 그렇다면 우주도 그럴 것이다. 신은 결국 양손잡이가 아니다. 


그래서 원자 내의 입자들에서부터 생명의 원료와 지구의 자전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오른손 판형과 외손 판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마음은 대개 이것들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위의 인용문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4장. 마음의 눈'에 나오는데, 우주와 삼라만상을 완벽한 3차원상으로 보지 못하는 시각(2와 1/2 차원, 달리 말해 2.5차원으로 본다)의 한계를 뇌가 어떻게 극복해내는지를 설명하는 후반부에 나옵니다.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는 뇌는 자주 등장하는 모든 물체에 대해 개별적인 기억 파일을 생성하는 복합시각, 사물의 형태를 하나의 좌표를 기준으로 돌려봄으로써 3차원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회전 이론, 뇌에 내재된 몇 개의 좌표를 이용해 시각 정보를 연산해내는 기하자 이론 모두를 사용(신경망 인공지능의 패턴 인식 알고리즘의 핵심)하지만, 위의 인용문만 별도로 놓고 봐도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우주가 그러하듯이, 인간의 이념도 한쪽편향성을 띄기 마련이다!' 인지심리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떠올리는 이런 추론은 초지능의 구축으로 수렴되고 있는 현대과학의 발견과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물리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삼라만상은 본질적으로 한쪽편향성을 띄고 있으며, 지능과 의식(마음), 이념 등이 탄생하고 만들어지는 뇌의 구조와 작동 또한 이런 물리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과 역할이 다른 것도 한쪽편향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에서 이루어지는 최종결정이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의 전전두엽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우뇌와 좌뇌는 물론 뇌의 모든 곳에서 아우성치는 다양한 소리와 잡음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최적의 소통을 이루어내기 위함입니다. 한쪽편향성은 우주와 만물의 원리이며,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념적 성향에서도 중간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좌우의 주장을 살펴보고 적정한 지점에서 최대의 행복을 창출하는 타협점을 찾아내는 중용은 있을 수 있어도, 우주와 만물의 법칙인 한쪽편향성을 부정하는 중도란, 레이코프가 주장했던 것처럼 사안에 따른 이중개념적 행태의 짝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법칙)에 중간이 있다면 특이점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빅뱅도 없었을 것이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와 삼라만상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도가 없음에도 한술 더 떠 극중까지 들고나온 안철수의 어리석음은 역대급을 넘어 우주적 차원의 창피함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제가 수없이 말했듯이, 안철수는 우파나 보수였지 단 한 번도 좌파나 진보였던 적이 없습니다. 보수우파 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고, 대한민국의 정치판에는 제대로 된 보수우파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며, 현대과학의 정치화를 최대한 늦추려면 우파보수의 가치도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쓴 채 국민을 현혹하는 안철수의 행태까지 수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시민이 썰전에 나온 안철수에게 정치를 그만두고 낚시나 함께 하자고 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교수나 사업가로써의 안철수는 괜찮아 보이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영 아니라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없어서 낚시나 하면서 일그러진 정치적 욕망을 털어내라고 제안한 것이지요. 다당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생의 목표였던 유시민에게는, 노통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주류에서 벗어나 온갖 고생을 자초한 것에 대한 후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안철수가 안타까워 보였던 모양입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공론화위원회에서 신고리 원전의 공사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원전 건설에 이미 투자된 '매몰비용 효과'를 극복하지 못한 아쉬운 결정이지만ㅡ원전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과 원전을 늘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ㅡ안철수 또한 '매몰비용 효과'에 얽매여 비루하기 그지없는 정치활동을 이어간다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진흙탕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안철수씨, 사안에 따라 사람들은 동시에 보수적이면서도 동시에 진보적일 수는 있습니다. 또한 자유주의자이면서도 진보적일 수 있으며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적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진보적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자유주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도란 일종의 지적 사기이며 자기 기만입니다. 안철수씨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와 고난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정치를 하면 안 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12.29 11:43 신고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버린 사람에게는 잘 보이는 법입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7.12.29 21:03 신고

      공부하느라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글로 올리려고요.
      초지능으로 수렴되는 현대과학의 흐름을 최대한 쉽게 풀어내는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내년 3월 쯤이면 공부도 끝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공부에 공부입니다.

  2. 진인사대천명 2017.12.31 08:09

    오랫만에 늙은도령님의 글을 봅니다. 그래요. 이런 예리한 평론을 기대했고 또 그랬기에 지금껏 기다렸습니다. 확실히 이런 정치평론가로써의 모습이 어울리시네요.
    근데 보수의 대안이 없는 지금은 왠지 안철수의 전략이...어느 정도는 성공할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mb아바타겠지만..)

    • 늙은도령 2017.12.31 09:23 신고

      6월 지방선거까지 야3당은 어떤 짓이든 할 것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사실상 사망에 이를 테니까요.
      안철수는 정치적 감각이 정말로 형편없습니다.
      그가 정치에서 물러나는 것이 그에게도 좋고 국민에게도 좋습니다.
      민주당을 제외하면 야3당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물 교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합리적 보수라는 최초의 세력이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이념을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정치판이 부상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정당 분포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습니다.


제가 빠른 시일 내에 앞의 글에 대한 추가적인 답글을 올리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늘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추가적인 공부를 통해 특이점주의자들의 주장이 상당 부분 과포장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전 속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다양하며 하나로 수렴되고 있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면 양자역학이 밝혀낸 물리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드렉슬러가 주장했고 커즈와일이 떠들어대는 분자조립자(단백질로 세포를 만드는 리보솜에서 영감을 얻었다)이며, 뇌의 역설계를 통한 초인공지능으로의 도약입니다. 스몰리와의 논쟁에서 드렉슬러가 인정했듯이 분자조립자는 양자 간섭의 한계(그밖에도 몇 가지 한계가 더 있다)를 벗어날 수 없으며, 개개의 뉴런 단위에서 의식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광유전학의 발전이 아무리 빨라도 역설계된 뇌를 작동시키려면 분자조립자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뇌에서 일어나는 일의 90% 이상을 무의식적으로 처리하는, 다시 말해 거의 에너지를 쓰지 않은 채 90% 이상의 일들을 처리하는 인간의 뇌는 20W라는 적은 전기로 돌아갑니다. 헌데 어마어마한 수의 트랜지스터나 대체 물질로 된 저장매체가 필요한 뇌라면 얼마의 전기가 필요할까요? 그것이 제대로 돌아갈까요? 작동시 발생하는 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원자에 가까운 크기로 줄어든 저장매체간의 양자 간섭과 전기누수는 어떻게 막을까요? 문제점은 수없이 많습니다). 



초인공지능에 이르는 방법에는 물리법칙에서 벗어날 방법이 몇 개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최소 80~100년은 더 걸릴 것입니다. 이것도 가능성이지 확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과학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을 모두 다 밝히고 역설계할 수 있다는 기세여서 어떤 가능성도 얘기할 수 있지만, 그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중우주나 평행우주, 초끈이론 등은 어떤 미래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인류원리는 그중에서 하나만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물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최근의 과학은 200~300년 안에 모든 인간이 신처럼 영생에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리적 신체를 갖지 않은 채 정신적 존재로만 살아야 한다면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100%에 이르지만 몸을 포기할 수 있다면 정신적 존재로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영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발전할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영생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초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천지개벽하는 차원으로 뒤바꿀 것은 확실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그 정도에 이르면 인류가 극소수 천재들의 미래놀음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올 것입니다. 제가 초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파고들며 극도의 혼란에 빠진 것도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따라가려는 빌어먹을 노력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10~20년만 지나면 평범한 분들에게도 닥쳐올 혼란을 저는 조금 일찍 경험한 것이라고 할까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이전의 혁명과는 달리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1~3차 산업혁명까지는 지나고 난 뒤에야 이름이 붙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오기도 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온갖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래는 모두의 것이며,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인데 소수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미래를 이렇게 만들겠다고 오만방자하게 떠들고 나온 것이 초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입니다. 



신이라도 된듯이 만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인간 이상의 비생물학적 지능을 만들어 우주를 깨우고, 다시 말해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재편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겠다는 것이 초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입니다. 이에 동참하기 위해 인간은 생물학적 육체를 버리고 정신적 존재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싫다면 써로게이트(대리인)나 로봇을 통해 영생에 들고 우주를 여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 중 누구도 과학기술이 이를 수 있는 최종 지점에 대해서는 떠들어대면서도 그것에 이를 때까지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이나 청사진은 누구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간은 없고 끝만 있습니다. 과정은 모두 사라지고 꿈같은 미래만 떠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거대한 지적사기라고 합니다. 똑똑한 몇몇 놈들이 미래는 우리가 알아서 만들테니 평범한 것들은 따라오기만 하라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고 현대의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조금은 빨리 파악한 것이며ㅡ틀릴 수도 있다ㅡ인간의 몸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다시 말해 아픔과 슬픔, 고통과 비극, 실패와 좌절 등에서 수없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인간의 삶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4차 산업혁명입니다. 종교의 근본주의적 성향과 영성의 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높은 차원의 행복이나 영생 등을 추구하느라 몸이라는 존재를 낮추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부처나 예수처럼 깨달아야 한다며 평범한 삶을 부정했습니다. 



우주의 거대함, 장엄함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에 널려있다는 소립자는 뇌의 연결보다 숫적으로 적은데, 그 놈의 우주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우주의 거대함과 장엄함에 비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티끌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정신적 존재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으면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절대다수는 깨달음에 들지 못할 것인데,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 깨달음에 그렇게도 목메면서 절대다수의 삶을 폄하할까요? 



뇌과학 중에서도 신경물리학과 인지신경과학에 집중하고 있는 저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물리학이 어떠할지 공부해야 하지만, 저의 고민이 머무는 것은 절대다수의 평범함에 있습니다. 10~20년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하는 고민을 하겠지만 지금의 제가 해야 할 일이란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문제점들을 지적함으로써 본격적인 토론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의 모토처럼, 사람사는 세상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조금이라도 오래갈 수 있도록 떠들어대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면, 그것을 주도하는 놈들이 인류의 절대다수인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솔직하게 고백하고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사라지는 양질의 일자리는 얼마나 많을지, 늘어난다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저질의 일자리인지 고백해야 합니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부와 권력의 집중은 어떻게 될지, 복지와 부의 재분배는 어떻게 되는지, 우주를 개발하면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 누구부터 생명이 늘어나고 권력이 강화되며, 영생에 들어 우주를 지배할지  솔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미래를 극소수가 결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 모두의 것이지, 몇몇 똑똑한 놈들이 독점할 수 없습니다. 




P.S. 안철수가 같은 자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이번의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극우와 극좌 모두에게 문제가 있듯이 극중(과학적으로 이런 것은 존재할 수 없다)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명박과 트럼프가 성공한 CEO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안철수도 어느 정도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을 심판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철수 같은 자들을 현실정치에서 퇴출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1. 참교육 2017.12.13 09:52 신고

    이런변화에 민감해야할 학교는 무풍지대입니다.
    지식주입식 교육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12.13 17:48 신고

      10년에서 20년만 지나면 모두가 이에 대해 토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은 그 직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부모들의 자식사랑(?)이 줄어들어야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교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부모들이 깨달을 시기가 오겠지요.

  2. 청공(靑空) 2017.12.14 03:06 신고

    오랜만에 올려주신 포스팅이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평범한 대중들이 변화에서도 도태되지 않고 인류 전체를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신대로 학습과, 학습하는 개인의 이해 수준의 증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의 적용과 그를 통한 가이드라인 혹은 가이드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분야에서의 개혁이 불가피한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전문지식 습득에 초점을 맞췄던 교육에서 인간의 신체와 지성, 그리고 더 깊은 의미에서의 정신을 두루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 및 체제의 발전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와는 별개로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팔로우업할 수 있도록 참고문헌을 대략이나마 적어주신다면 더 심도있는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 늙은도령 2017.12.14 03:14 신고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책을 읽어서 몇 권으로 압축하기 힘드네요.
      내년 2~3월 정도에는 공부의 속도를 대폭 줄일 생각입니다.
      그때 제가 읽은 책들을 분류하려고 합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에서 성찰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전문서적과 논문까지 분류한 다음에 추천에 나설게요.
      내년에는 반드시 팟캐스트나 유튜브 강연에 들어갈 것인데, 이를 위해서도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분류, 정리해야 합니다.

  3. 재앙 2017.12.15 02:31

    정말이지 세계 기술은 하루가 멀다하고 진일보하는데 아스팔트를 자갈밭으로 도로 파내버리고 이전 정권이 고생해서 수주한 원전을 위험하다고 비난해 아랍 왕세자가 항의할 정도로 과학과 기술에 무지한 조선시대 수준의 재앙정권이 하필 21세기에 나타나서 근심이에요...

    • 일베충박멸 2017.12.15 21:30

      재앙//그딴 원전 필요 없다
      밥은 먹고 다니냐?

    • 늙은도령 2017.12.16 01:16 신고

      원문을 읽고 댓글을 달았으면 하네요.
      저는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저는 이번 글을 통해 과학기술이 인간의 관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4. 아줌마 2017.12.16 14:06

    저도 커스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와 하라리 시리즈 2권을 읽고 우울과 공황을 경험했어요. 아날로그적 삶을 인간이 결단코 포기할수없기 때문에 우울에서 벗어났습니다. 4차산업혁명은 개소립니다. 저는 정신만 우주를 떠도는 삶을 거부합니다.
    공부와 통찰에 감사하며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7.12.16 20:22 신고

      커즈와일의 주장은 상당수 실현되겠지만 그 시기가 한참은 뒤로 밀릴 것이며, 양자역학의 한계에 걸려 실현되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형태를 바꾸는 것은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며, 결국은 투표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과학기술은 인간 이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화소가 떨어지는 CCTV의 시야에 들어오면 제멋대로 변색을 하는 트랜스포머적 구형 마티즈가 영상채집(새누리당 인권위원장에 임명된 김진태가 대단히 좋아하는 것으로, 기본권을 행사하는 국민을 협박할 때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을 부업으로 하는 경찰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폐차됐다.





CIA 발 찌라시에 의하면 자유자재로 변색하는 마티즈를 구입하기 위해 전 세계 정보기관들이 딜러요원을 한국에 급파하려고 했던 22일에, 경찰에 의해 문제의 마티즈가 한없이 높아진 몸값을 등진 채 고철덩어리로 돌아갔다. 경찰은 국정원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변색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증거인멸이라는 국민적 질타를 받는 것을 감당하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하긴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한 밤의 TV연예’도.. 아니, 한 밤의 기자회견도 마다하지 않는 경찰로서는 기존의 물리학을 모조리 뒤엎어버린 변색 기술이라는 것이 별로 대단할 것도 없으리라. 시중에 널려있는 구형 마티즈로 변색의 마술을 재연해냈으니 마티즈를 폐차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위대한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의 입장에서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인권이 중요하지 변색 능력을 갖춘 마티즈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재연을 통해 변색 기술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님을 확인까지 했으니 문제의 마티즈를 폐차하는 것쯤이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폭력시위 전문꾼을 가려내기 위해, 대놓고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영상채집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음지에서 사찰하다 양지에서 걸리는' 국정원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정말 나쁜 놈들은 각국의 정보기관에 해킹 및 감청 프로그램을 팔아먹고도 고객의 정보가 담겨 있는 서버를 해킹당한 등신 같은 이탈리아 해킹팀이리라.



국제법도 어긴 채 외국에 암살요원을 파견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미국 연방정부 같은 힘이라도 있다면, 이탈리아로 요원들을 급파해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증거까지 인멸했을 터였다. 재수없게 증거가 나온다 해도, 경찰이 세월호 유족들을 폭력배로 몰고 간 능력의 반의반만 발휘해도 국정원 사건은 조용하게 종결됐을 것이다. 





그들의 뒤에는 몇 년 전 사진을 현재의 사진으로 둔갑시켜서 오보와 왜곡을 남발하기로 유명한 기레기들과, 최고권력(북한의 최고존엄과 무엇이 다른가?)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대로 편파적인 수사를 하는데 도를 튼 정치검찰과, 이를 최종적으로 확정해 면죄부를 발행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유전무죄의 대법원이 있으니 무슨 짓인들 못할 것인가?



양지에서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대놓고 영상채집해 권력의 입맛에 따라 선량한 국민을 음지에 처박아 버리는 경찰이 아니면, 변색을 자유자재로 하는 세계 유일의 마티즈를 폐차할 수 있겠는가? 초록은 (동색이 아닌) 흰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 했으니, 음지의 국정원을 양지의 경찰이 도와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하다.





야당도 국정원 청문회를 포기했으니, 이제 경찰에게 남은 일은 만일을 대비해 한 밤 중의 기자회견을 준비해두기만 하면 된다. 불통과 아집의 원칙에서는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는 푸른 기와집의 세입자에게서 날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초스피드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발라내지고, 그렇게 하면 특진이나 영전하기 일쑤다).



진실, 그따위 것은 엿장수에게 줘버려!! 경찰로서의 경험칙에 따르면, 음지에서건 양지에서건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하는 것만큼 국가안보와 질서유지에 확실한 것은 없다. 폐차와 함께 사라진 사상 최초의 변색 기술이야, 전문가가 삭제한 파일마저 100% 복구해내는 국정원의 능력이면 걱정할 것도 없다.






자원도 부족한 나라에서 폐차를 해서라도 고철의 재활용에 솔선수범을 보일 수 있었으니, 경찰의 입장에서 야당과 국민의 비판이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민첩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경찰 때문에 정치판으로 입성할 정치검찰의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최대 위기에 처한 국정원을 구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을 일이다.



현 집권세력의 성공을 위해, 국정원-경찰-검찰로 이어지는 권력의 삼각편대가 공고한 연대를 유지하는 한 여왕의 휴가는 편안할 것이다. 언제나 강자의 편에 서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는 법이다. 정의, 웃기지 말라고 그래!! 권력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최고야!! 대한민국 경찰의 역사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국민이 바라보는 정반대의 방향만 쳐다보며.  



P.S.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간 삼촌이 청와대에 근무한 적이 있어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넓은 게 청와대입니다. 구태여 '이도'나 '저도' 등으로 휴가를 가서 모래사장에 낙서하는 포즈를 취할 이유란 없답니다. 아래에 링크한 기사는 이탈리아 해킹팀 자료를 심층분석한 악성 코드 감별 및 보안 전문회사인 레드삭스(RedSocks)에 관한 것입니다. 



레드삭스, 해킹팀 자료 심층분석...'5163부대가 가장 적극적'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25 08:20 신고

    폐차할때 번호판도 따로 반납했더군요
    이해가 안갑니다

    • 늙은도령 2015.07.25 22:19 신고

      백 퍼센트 두 대입니다.
      경찰이 거짓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2. 공유의 플랫폼 2015.07.27 18:21 신고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이제는 너무 많은 왜곡이 세상을 뒤덮는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7 19:42 신고

      진실은 나와 있는데 숨기고 속이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해온 것을 돌아보면 누가 거짓말하는지는 뻔합니다.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안 되고요.



4. 과학비판



궁극적이고 대답 불가능한 질문들을 물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질문하는 존재로 정립한다. 대답 가능한 질문을 묻는 과학이 철학에 기원을 두는 것은 이 때문인데, 이 기원은 모든 세대를 통해 항상 현존할 원천으로 남아 있다.


                                                               ㅡ 한나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에서 인용



이제 도스토예프스키나 프로이트, 디킨슨이나 베버, 트웨인이나 마르크스 가운데 그 누구도 합법적인 지식생산자가 될 수 없다. 단지 재미있어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뿐, 그들은 과거의 산물일 뿐이다. 진리를 원한다면, 주저없이 과학으로 눈을 돌릴 일이다. 과학만능주의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것은 테크노폴리 속에 과학만능주의가 생겨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ㅡ 닐 포스트만의 《테코노폴리》에서 인용





부와 기회를 독점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극도의 불평등과 회복불가능한 위험을 인류와 자연에게 떠넘긴 ‘탐욕의 삼위일체’의 성공에는 영원한 성장이라는 진보의 믿음을 보편적인 진리로 만들어준 과학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는 과학과 과학적 결과와 발명이라는 것이 시장의 외부(국가가 예산을 배정하고 대학이나 개인이 연구의 주체가 되는 방식과, 기업과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에 위치하면서, 성장을 견인하고 시장이 정체상태에 빠졌을 때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외부효과로 인식되었다. 



금속인쇄술의 발명으로 과학지식이 보편화됐고, 화약의 발명으로 전쟁이 빈발해졌으며, 자석의 발명으로 식민지 정복을 위한 항해술의 발전이 가능해졌다. 석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내연기관이 나왔고 그것이 산업혁명의 동력이 된 이후에 나온 과학적 결과물들은 시장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제품화할 수 있는 연구들만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초과학(물리학과 화학이 핵심)의 발전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정도로 과학의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에 ‘탐욕의 삼위일체’가 기획한 국민(민족)국가 탄생의 원대한 비밀이 숨어 있다. 초기의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은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되는 것에 비해 결과물의 효용성과 경제성이 의심스러운 다양한 분야의 과학(특히 기초과학)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했다. 결국 해결책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대량생산에 따른 충분한 수요를 만들기 위해 국내의 그물망 같은 인프라와 해외 시장과의 안정적인 연결망 구축을 담당했던 국가가 이를 대신하도록 만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유전자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지적 욕구라는 불치병이 자리하고 있어서 과학적 결과들은 계속해서 나올 터였고, 심지어는 잘 갖춰진 교육제도 밖에서도 과학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과학발전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이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제도적으로ㅡ국가가 투자한 비용(세금) 대비 국민의 이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게 만들어놓은ㅡ시장에 흡수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과학의 눈으로 본 경제성장에 관한 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과학의 성과들이 약속하는 진보에 대한 낙관론(경제성장을 통해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거짓말)과 성장의 결과들이 개인에게 내려가는데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이라며, 끝없이 미뤄지기만 하는 ‘낙수효과’를 내세워 연구의 결과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 낙수효과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전 세계적으로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 경제규모를 확장하고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독점한 결과, 자산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의 GDP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은 과학을 아예 ‘탐욕의 삼위일체’에 종속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니퍼 위시번의 《대학주식회사》를 보면 정부의 예산(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이 담당했던 과학연구의 결과물들이 헐값에 기업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나와 있다. 이는 국민의 세금을 통해 기업의 배를 채워주는 반국민적 행위이며, 특히 누진적 세금으로 회수돼 복지를 통해 국민에게 재분배되지 않으면 사회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방식이야말로 미국이 유일 제국으로 발돋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들을 등쳐먹은 방법으로 자신까지 말아먹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기업이 자체 연구소에서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의 연구소와도 독점 계약ㅡ연구원들은 학생 신분이어서 얼마든지 저임금 노동 착취가 가능하다ㅡ을 맺어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사례가 수없이 언급되었다.



바슐라르와 칼 포퍼, 칼 세이건과 제임스 베니거, 스티븐 호킹과 스티븐 와인버거, 리처드 도킨스와 에드워드 윌슨, 니콜라스 카와 장하석, 나심 탈레브와 제레미 다이아몬드 등의 저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오니아 자연과학과 자연철학의 진정한 후계자인 근대과학의 출발에, 자연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 베이컨과 근대이성을 종교의 영역에 올려놓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내놓은 데카르트가 있었다. 



또한 인간 이성(순수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한정지으려고 했던 칸트의 영향도 지대했다. 칸트는 그의 비판시리즈를 통해 하늘만 바라보던 인간들을 지상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그가 정한 인간 이성의 한계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칼 포퍼에 따르면 칸트는 ‘형이상학에 대한 돼먹지도 않은 소리가 나오는 터전을 없애 버리려는데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칸트가 없애 버린 것은 그 헛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합리적 논증을 사용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됐다고 말했다(사족이지만, 칼 포퍼는 토마스 쿤보다 베르그송과 같은 세대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칸트를 놓고 멋진 설전을 벌였을 것이므로).





즉,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인식의 기본 틀은 각종 이론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없는, 그래서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선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바람에 과학적 지식이 진리의 영역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검증 과정이 질식사해버렸다. 아인슈타인이 불변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우리가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빛이 강력한 인력을 발휘하는 태양을 지나갈 때 휘어지고, 그렇게 시공간이 휘어지는 방식으로 시간여행도 가능할 수 있다며, 기존의 과학적 인식을 혁명적으로 뒤집어버린 상대성이론)을 입증함으로써 과학적 객관성의 불완전함을 경고했지만, 이마저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고전물리학적 발견들에 기초한 영원한 진보라는 개념이 한정된 자원과 공간만 제공하는 지구에서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허구임을 알 수 있는데, ‘탐욕의 삼위일체’는 과학적 진보의 영원성에 대한 모든 저항들을 하나씩 점령해가면서 무한질주를 계속할 수 있었다. 하물며 과학적 지식이 돈이 되는 상황에서 칸트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탐욕의 삼위일체’에게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헤겔의 등장은 이 모든 과정의 완결판이었으니, 그는 미완성의 변증법을 통해 과학기술이 견인하는 진보의 영원성과 개인에 대한 사회와 체제의 우월함을 선언함으로써 모든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개인 대한 사회의 우위와 역사의 필연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시장의 규모를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는데 결정적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이로써 근대이성이 완성됐으며 그 첫 번째 수혜자는 불완전한 근대과학이었고, 부산물은 근대철학이었으며, 최대 수혜자는 거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들이었다.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준 근대이성이 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16세기에 현대적인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설익은, 그래서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과학에 대한 믿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아쉬운 것은 어렸을 때 읽었던 베이컨의 책들을 모두 다 처분한 관계로, 필자에게 변증법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재인용했다.



우선 자신들(과학적 성과의 전통의 대가들)이 모르는 것을 그들은 안다고 믿는다. 경솔한 믿음, 회의에 대한 거부, 신중하지 못한 답변, 교양의 과시, ‘모순’의 혐오, 이해타산적인 태도, 탐구에의 태만, 언어물신주의, 단순한 부분적 인식에만 머물러 있음. 이 비슷한 것들이 인간의 오성과 사물의 본성이 행복하게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고는 오성을 공허한 개념이나 무계획한 실험과 결혼시켰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이러한 결합의 결과나 열매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쇄기는 조야한 발명품이고, 대포는 이미 익숙한 물건이었고, 나침반은 벌써 이전부터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물건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나는 학문에 있어서,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또 다른 하나는 재정, 무역 그리고 항해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소 뒷걸음치다가 건진 것들이다. 지식은 많은 것들을 자신의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제왕들이 보화를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 그들이 명령이 미치지 않는 것이며, 왕의 첩자들이 그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도 없고, 항해자와 탐험가들은 그것이 생겨난 원산지에 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말로만 자연을 지배할 뿐 자연의 강압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연의 인도를 받아 발명에 전념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베이컨의 선언은 베니스 대지진이라는 무자비한 자연을 과학의 발전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지만,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와 필요하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의 파괴까지 넓혀지는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밝힌 것처럼, 그 결과는 종말이나 파국이라는 말이 너무나 많이 언급돼 실증이 날 정도에 이른 현대의 만연하는 공포와 폭력의 일상화이다. 베이컨이 말한 ‘우리가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오늘날, 그가 정복되지 못한 자연의 탓으로 돌린 강압의 본질이 명백해졌다. 그것은 지배 자체였”음이 확실해졌다. 





이렇게 베이컨에서 출발해 신의 영역에 오를 기회를 포착한 과학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무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화의 첫 장을 열었다. 과학은 지식에서 나오고 실험과 생산을 통해 제품화할 수 있기 때문에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학적 지식은 원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베이컨의 선언에 의해 자연을 정복하는 능력(이윤의 원천)을 얻었고, 기업이 이를 제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노동 착취의 과정인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학자가 아니었던 베이컨은 과학자다운 면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과학의 언어인 수학 지식도 형편없었고 과학적 실험에 대한 경험도 없었지만, 과학 발전의 현대적 토대를 마련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문의 진보》에서 베이컨은 발명가들을 위한 대학이라는, 마치 매사추세츠(MIT)와 유사한 대학의 설립구상안까지 들려준다. 베이컨은 정부가 발명가들에게 실험과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해 주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학술 저널과 국제 학회를 주관한 일도 있다. 그는 과학자들 간의 완전한 협동을 꾀하였는데, 이는 티코 브라헤,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노출시키지 않고 최대한 숨길 방법을 찾고 있었기에, 이러한 발상은 그들을 무척이나 놀라게 했을 것이다. 베이컨은 또한 과학자들이 쉽게 대중을 위한 공개강연에 나설 수 있도록 충분한 보수를 보장하라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발명품의 활용방법을 계몽시키는 것 역시 발명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가 과학 사업을 바라보던 시각은 현대인의 안목 그대로였던 것이다. 즉 조직화되고,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하며, 공적인 의무를 지니고, 인류가 삶의 조건들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4.01 07:07 신고

    오늘은 차분하게 정독해야할 것 같습니다.
    늘 많은 공부를 하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16:08 신고

      첫 번째 출판으로 생각했던 글이어서 조금은 어렵습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보완 탈고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네요.

  2. 뉴론♥ 2015.04.01 08:48 신고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은데 실력이 없어서염 부럽네염 늙은노령님은 글을 잘쓰시네요

    • 늙은도령 2015.04.01 16:09 신고

      그 동안 읽은 책들을 녹여내야 하는데 게을러서.....
      당장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분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깊은 글은 쓰기 힘드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4.01 10:05 신고

    혜안과 박학다식에 늘 감탄을 합니다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4. 공유의 플랫폼 2015.04.01 10:18 신고

    제대로된 과학의 발견 그리고 통찰력을 가진 과학자가 한국에는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

  5. 耽讀 2015.04.01 13:54 신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과학 영역은 항상 어렵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16:14 신고

      네, 어렵습니다.
      최대한 쉽게 쓰느라 어려운 부분을 생략해서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6. 나비오 2015.04.01 14:47 신고

    음 매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
    베이컨을 새롭게 보게 되네요
    그가 진정한 혁신가라는 ^^

    • 늙은도령 2015.04.01 16:15 신고

      지금의 세상을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성찰이 현대를 만드는데 결정적이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