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다다다다다다!



일정한 속도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100여 개의 책상이 놓여 진 수백 평의 공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벽과 창문에 부딪친 소리는 미세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파장은 형광등이 방출한 창백한 빛과 어우러져 지옥에서 흘러나온 사자(死者)의 곡성처럼 섬뜩하게 울렸다. 가끔씩 속도가 줄어들거나 어쩔 때는 멈추기도 하던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이어지다가 1분 전부터 완전히 멈췄다. 그렇게 수백 평에 이르는 공간이 다시 정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쯤, 평정을 찾아가던 공기를 연속적으로 뒤흔들었다.



다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



규칙적인 소리가 다시 한 곳에서 시작돼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들은 앞서 출발한 소리의 반향과 섞이거나 예외 없이 벽과 창문에 부딪쳐 새로운 반향을 만들어낸 소리는 수백 평의 공간에 극미한 파문을 일으키며 날아다녔다. 서서히 소멸하여 증발하는 소리, 그 불연속한 에너지의 방출은 중앙 출입문을 기준으로 우측 창가 끝부분에 자리한 재영의 자리에서 출발했다. 예정된 취재를 마치고 그가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는 낮은 비구름이 도심의 하늘에 걸려 있던 축축한 낮과 어둑한 밤 사이였는데 지금은 도시 전체가 무겁고 조밀한 어둠과 빛의 공해 속에 잠겨 있었다. 도심의 조명이 방출하는 현란한 빛들과 그 총천연색 파동을 삼키는 어둠의 물질이 소름이 끼칠 정도의 균형을 이루고 있어 그 안정감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영은 워드 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이제 끝이 보인다. 사무실 밖에서 일어난 변화를 전혀 깨닫지 못한 재영은 조금씩 지쳐가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처럼 보수 언론의 신방겸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가치에 대한 국가적 의제를 선정하고 논의의 범주를 제한시켜 국민의 후생 증진이 아닌 특정 이념과 한정된 광고주와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증대에 몰두할 것이라는 한정된 프레임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사기업적인 요소가 강한 대한민국의 거대 언론에 비해 다양한 의견을 제공하는 독립 언론의 부재는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기존의 거대 언론매체와 초국적기업에 의한 일방적인 미디어 통합이나, 광고수주나 협찬 주문 등의 무한경쟁으로 이끌어 미디어 생태계, 그 자체를 공멸로 이끌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 또한 같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거대 언론과 초국적기업에 의한 미디어 통합과 미디어 생태계의 파괴는 공공담론의 형성이라는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하면서도 하층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여론의 통로를 제한할 것이며, 광고와 협찬을 유치하는데 절대적 기준이 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돼 선정성과 폭력성 높은 프로그램들을 남발해 시청자의 안방까지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비관적 결과를 예측해낼 수는 있다. 이탈리아 언론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가 자신 소유의 방송들을 통해 총리 재직 시의 실정에 대해 아예 기소조차도 할 수 없는 면책특권을 통과시키는 등 자신과 추종세력에게 유리한 일방적 주장을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국민의 탈정치화를 만연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도배시킨 ‘베를루스코니 효과’가 이를 생생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청자 인식의 오락화는 정치적 무관심을 더욱 심화시켜 정치의 오락화를 초래하고, 1년 예산이 400조에 이르는 정부의 예산집행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약화시킨다. 그 결과 시대의 과제인, 지속 가능한 성장과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더욱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언론기업을 구축한 머독 소유의 타블로이드 잡지,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무차별적인 도청사건에서 보듯, 행정ㆍ입법ㆍ사법에 이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이 신방겸영과 소유권 집중을 통해 민주주의를 그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는 현실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는 있다.



이제 언론이란 다양한 공공담론의 형성과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감시견으로써의 역할에서 벗어나, 정부에 대한 ‘언론의 감시’가 아니라 정부와 국민에 의한 ‘언론에 대한 감시’가 시대적 사명으로 바뀔 정도로 절대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암울한 현실인식도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현상을 경계하는 수많은 언론학자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거대 언론에 의한 미디어 통합과 집중은 개인과 사회, 개인과 기업, 개인과 국가가 소통하는 길목에 자리해 광고주와 언론기업 자체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종국에는 그들 스스로 권력과 탐욕의 권좌에 오를 때까지 욕망의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선험적인 분석과 현실적인 입증사례들을 살펴보고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나 극도도 상업화되는 언론환경에 대해 공통의 우려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는 표피적이며 단층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시안적 판단들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표층 프레임을 걷어내고 그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거기에 무엇이 웅크리고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 만천하에 밝혀내야 한다. 그 회심의 미소는 당연히 언론의 신자유주의화와 선정적인 보수화다. 광고대행에 대한 위헌판결이 그 첫 단계이고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표류에 따른 각 사의 독자적인 광고수주가 중간단계이니 그들의 계획은 점차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가 운영체제의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가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두 개의 지배적 시스템이 남았으니 그 하나가 인터넷과 통신이요, 그 나머지가 언론이다. 인터넷은 물론 메이저 신문과 방송도 광고와 협찬으로 움직인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부산물일 따름이다. 따라서 광고시장이 공공성을 잃고 무한경쟁의 장이자 승자독식의 정글로 접어들면 언론의 공공성은 자동적으로 고사한다. 광고와 협찬을 기업과 정부, 특정 이익집단 등에서 따오지 못하거나 언론의 공익성과 다양성을 위해 광고와 협찬이 재분배되지 못하면 언론 자체가 돈이 말라 폐업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시청률에서 밀리고 광고주의 선호도에 반하는 공공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규제 철폐를 통한 시장 자유화와 자본의 무한 축적과 세습을 위한 노동유연화,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 등이 교조적 행동강령인 신자유주의가 침투한 영역치고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지켜낸 분야가 있었던가? 보수 신문의 종편 진출은 압축성장과 IMF 외환위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중하층을 삼켜버린 1%의 신자유주의가 회귀불능의 천 년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려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전파는 공공의 재산이라는 철학만으로 미디어랩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전파를 위임 받은 언론 매체의 투명성 강화는 민주국가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자 선진 복지국가로 가는 첩경이라는 주장도 광고와 협찬 시장의 파괴와 왜곡에 철지난 외침으로 전락할 것이다. 무한경쟁으로 달려가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압축성장과 외환위기 극복에 따른 과실의 재분배에 실패한 대한민국은 선진 민주국가로 진입하는 갈림길에서 멈춰서 있다. 지속적인 성장과 보편적 복지를 이루기 위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기존 질서에 머물러 퇴보할 것인가는 동방국 미디어 생태계를 건전하게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시급한 통과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개의 지상파로 모자라 대한민국의 언론 환경을 과포화 상태로 만들어버린 4개 종편의 디지털 방송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한 국회의 표결을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정당성도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광고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혼탁해지고 있다. 국민과 시민으로써의 우리는 언론이 민주주의의 감시견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여야 모두에게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공공재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언론의 존재가치는 그 다양성에 있으며, 오직 국민에게서 나와 국민에게만 귀속될 뿐 왜곡되고 편향된 광고나 협찬 시장에 귀속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여야 국회의원들과 정부는 언론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기업들에게 지나친 광고 협찬비용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통과에 당장 나서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사안이다. 언론의 신자유주의화는 국민과 시대의 이름으로써 막아내야 할 절대 명령이기 때문이다. 헌데 현 집권세력은 물론 야당마저도 미디어랩 관련 법안의 통과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 여기에는 국민의 이익에 반하거나 그들에게 밝히지 못할 특별한 이유와 이해관계라도 숨어 있단 말인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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