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와 대한축구협회의 책임입니다. 선수 선발에서 기용, 로테이션, 작전 부재, 의료진 교체 실패 등까지 모든 것이 벤투와 대한축구협회의 무능력을 말해줍니다. 벤투가 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A대표팀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경기력만 놓고 볼 때 월드컵 독일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 벤투가 자신의 방식에 맞춰 선수를 선발했다고 하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권창훈, 유럽 최고의 리그와 최고의 팀들에서 멋진 데뷔전을 치른 이강인과 백승호, 정우영을 뽑지 않은 것은 아쉬웠습니다. 

 

 

 

 

경기력이 현저히 저하한 구자철과 지동원 대신 투지가 좋은 석현준을 뽑지 않은 것도 아쉬웠고요. 오늘의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손흥민의 경기력은 최악이었습니다. 볼키핑과 드리블, 돌파도 좋지 않았고, 킥을 전담했지만 날카로움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후반전 시작부터 그를 이승우로 교체해 선수들을 독려했어야 했습니다. 황인범과 이청용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고 체력이 많이 떨어져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교체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선수 기용과 교체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작전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모를 정도로 약속된 플레이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창의적인 플레이를 봤다면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전반전 내내 옛날로 돌아간 듯, 뻥축구만 되풀이하고 되풀이했습니다. 아시안컵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은 감독의 책임입니다. 8강전에서 탈락한 게 운이 나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벤투 감독은 독일전 이후의 A대표팀 경기력을 끌어올리기커녕 약화시켰습니다. 

 

 

남태희와 기성용이 빠졌다고 해도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원터치 패스부터 2대 1, 2대 2 같은 밀집수비를 뚫는 조직력과 창의력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플레이는 완전히 실종됐습니다. 지면 탈락하기에 수비 위주의 뻥축구를 고집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상대의 실력을 고려할 때 축구팬들은 실망을 금지 못했을 것입니다. 벤투호 특유의 플레이를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감독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황의조가 밀집수비에 막혀 고립됐을 때 그를 활용해 수비라인을 혼동시키는 시도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닏. 전반전과는 달리 후반전 중반까지 카타르가 공젹적으로 나왔을 때 이를 받아치는 임기응변의 전술적 다양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약체들을 상대할 때 승리를 따내는 최고의 방법인 전방부터의 압박도 실종됐습니다. 센터링의 질도, 타임도 좋지 않았습니다. 체력적 한계 때문에 2선에서의 리바운드도 좋지 않아서, 연속된 공격이 불가능했습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A대표팀은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팀을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선수들의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릴 감독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감독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는 동기 부여에 실패하면 국내선수로 경기를 치르는 것만도 못합니다. 선수를 장악하지 못했다면 더욱 큰 문제이고요. 지난 월드컵 독일전을 복기해 보면 그때의 A대표팀과 지금의 A대표팀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과 호주의 경기력이 이란의 경기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4강에 진출했고 대한민국은 8강에서 탈락했습니다. 그것도 15년만에요.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져서 그랬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감독으로 부임한 몇 경기에서만 선수들의 경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고, 그 다음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든다면 비싼 돈 주고 외국인 감독을 데려올 이유가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체력 관리 실패 운운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벤투 감독이 책임은 더욱 커집니다. 아시안컵 우승을 노렸다면 16강부터는 체력과 컨디션이 90% 이상에 이르도록 관리해주어야 합니다. 선수들이 아시안컵 일정에 맞춰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할 수 없도록 스케줄이 무리하게 잡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8강에서 졌다면 돈벌이에 눈이 멀어 최악의 스케줄을 짠 대한축구협회의 무능과 탐욕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르네상스를 기대해도 좋을 만큼 좋은 선수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아시안컵 8강 탈락이란 성적표는 벤투 감독과 축구협회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선수들은 세계적 수준을 향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데 정씨 가문의 사조직으로 전락한 축구협회부터 시작해 그밖의 모든 것들이 바닥을 모를 만큼 추락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캡틴 박지성의 중도 사임에서 보듯 정씨 일가의 퇴진 없이는 한국축구의 미래도 없습니다.

 

 

문광부는 대한체육회만이 아니라 대한축구협회도 낱낱이 털어야 합니다. 정씨 가문으로부터 대한축구협회를 해방시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정씨 가문의 무능력과 횡포, 제멋대로의 행정을 지켜봐야 합니까? 뿌리부터 모조리 바꿔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한국축구의 미래도 보장될 수 있습니다. 손흥민에 이어 이강인과 정우영, 백승호 같은 선수들이 유럽으로 조기유학을 선택하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축잘알 2019.01.26 23:25

    호주 8강 떨어졌구요
    이승우 타령하지말고 전체적인걸 보세요
    아주 엉망인데 축잘알인척...
    역겹다

    • 늙은도령 2019.01.27 00:06 신고

      호주 8강전을 보지 못해 팩트 하나는 틀렸는데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지적해주면 답할게요.
      이런 식의 댓글은 하도 많이 받아봐서요.
      비판은 어떤 부분이 잘못인지 정확히 지적할 때만 최소한의 정당성이 생긴답니다.


2002년 히딩크의 A대표팀이 서울월드컵에서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요인 중 첫 번째에 자리하는 것이 수비조직력이다. 공격력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 때문에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수비는 그렇지 않다. 전후반 내내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강철체력을 바탕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수비조직력을 갖추면 최소한 패배하지는 않는다. 최전방 공격수가 상대의 공격을 막는 첫 번째 수비수가 될 수 있다면 어떤 팀과도 승부를 겨룰 수 있다. 





히딩크가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수비는 하지 않는 이동국을 뽑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반대했던 박지성을 대표팀에 승선시킨 것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방점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히팅크가 홍종국을 중용한 것도 그의 강철체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지나칠 정도의 훈련량 때문에 강팀과의 친선경기에서 '5대 빵'으로 지기를 반복하면서도 홍명보를 축으로 하는 수비조직력를 극대화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것도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시험했지만 수비수에 관해서는 일찌감치 주전을 정한 것도 그들의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수비조직력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끊임없는 압박전술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덩달아 공격력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수비조직력과 쉴새없는 압박이 완성되기 전에 5대 0으로 대패했던 프랑스와의 마지막 친선경기에서 대등한 공방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월드컵 출전을 우습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슈틀리케의 A대표팀에는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매 경기마다 수비수가 바뀌었고, 이 때문에 조직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도 없었다. 3대 2로 패한 카타르전에서 대표팀이 보여준 수비력은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상대선수에 대한 유기적인 압박도 없었고, 대인과 지역방어 모두에서 실패했고, 공만 따라다기에 급급해 골기퍼와의 일대일찬스룰 수시로 내주었고, 무슨 자신감인지 공뺏기에 혈안이 돼 대책없는 태클만 남발했다. 



카타르 공격수들은 단 한 번의 패스만으로 수비진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운이 좋아서 3골만 먹었지 카타르보다 한 수 위의 팀이었다면 6~7골은 넣을 수 있었다. 손흥민의 부상에서 보듯, 시즌을 마친 유럽파들은 몸이 너무 무거웠고 미드필더진의 공간압박과 수비 가담은 한국에 두고온 모양이었다. 공격수들은 상대수비수가 만만해보였는지 오로지 드리볼 돌파에만 전념했다. 기성룡이 골을 넣을 때만 빼면 원터치 패스(슈틀리케가 표방한 점유율 축구의 핵심)란 안드로메다로 출장을 가버렸다.





더 이상 최악일 수 없는 경기력은,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수비조직력도 갖추지 못한 채 경기에 임한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자신이 무슨 메시나 호날도라도 된양 드리블 돌파만 고집한 것과 승리에 대한 압박감에 흥분제를 먹기라도 한듯이 망나니처럼 뛰어다기만 했던 선수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모래알 같은 수비조직력과 선수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한 채 아무런 전술도 보여주지 못한 경기력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오늘의 패배가 말해주는 것은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없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감독 경질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동안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월드컵 진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축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많은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빠짐없이 봤지만, 오늘처럼 개판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축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너무나 화가 나서 사족으로 붙인다. 이게 다 야당 때문이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7.06.14 08:31 신고

    그런가요?
    저는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거의 안본답니다.
    옛날 3S정책 그 후로는요 다시 보고 싶어도 상업주의라는게 싫답니다.
    편협한 이런 생각하면 안되지만 대중 스포츠로 가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ㅎㅎ

    • 늙은도령 2017.06.14 18:02 신고

      둘 다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은 국민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몸값입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해도 일부 스타들이 받는 금액은 스포츠를 타락시킵니다.
      자본주의화된 스포츠에서 벗어나려면 약간의 재능 차이로 수십에서 수백억의 차이를 보이는 이적료와 몸값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6.14 09:44 신고

    새벽에 일어나서 본게 후회가 막심합니다
    손흥민의 부상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 늙은도령 2017.06.14 18:03 신고

      저는 이렇게 형편없는 대표팀은 처음입니다.
      정신자세도, 전술도 모두 다 빵점이었습니다.

  3. 이게다 2017.06.14 12:35

    이게 다 야당 때문이다!!

  4. 둘리토비 2017.06.14 23:09 신고

    국대의 축구에 관심 끊은지 오래되어서,
    새벽의 2:3 결과에도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네요~^^

    • 늙은도령 2017.06.14 23:58 신고

      스포츠 광인 저와는 다르네요.
      아무튼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필자가 연재를 하다 중단한 상태인 '늙은도령의 눈으로 본 근현대사 비판'은 인류 문명의 발전사가 자연과의 공생을 벗어난 순간부터 파시즘적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그 대가로 잃은 것은 자연의 파괴만이 아니라 인류마저도 그 희생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연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통곡부터 하리라'라는 유럽의 속담만으로는 하늘을 향해 우뚝 쏫은 마천루 속에서 쓰레기로 버려지는 인간의 초라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나마 인류는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문명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공동체와 사회 해체, 자연과 환경의 파괴를 감수하면서까지 문명의 발전을 받아들였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던 개인이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이전의 '사회(복지)국가'를 포기하고, 그래서 성공과 실패의 책임이 개인에게 돌려지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도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평생에 걸쳐 다양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모든 관계가 단절된 1인가구의 출현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후대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함으로써 종의 번성을 거듭해온 인류 진화의 방식을 거부하는 세대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앞세대가 누렸던 것들 중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3개에서 5개, 7개로 계속해서 늘어남에 따라, 무한대의 포기를 담을 수 있는 'N'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을 노동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 여겼던 과학기술의 발전은 빛의 속도로 일자리를 줄였고, 그에 따라 '남아 돈다'는 뜻의 잉여를 넘어 '쓸모 없다'는 뜻의 비존재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처지로 내몰린 수많은 사회초년생들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저임금노동의 굴레에 갇혀버렸습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청춘'은 고통과 좌절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자신의 앞세대인 청춘의 고통과 좌절을 지켜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변한 꿈과 도전의 자리에 조숙한 현실인식과 타협의 선택들로 채웠습니다. 잘리지 않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돈을 벌 수 있는 편안한 직업을 찾는 것은 희망의 1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아 때부터 선행교육을 받아야 했던 이들이 무한히 반복되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텔레비젼과 PC, 스마트폰 등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돌이나 운동선수를 동경하는 것도 그 이면에 자리한 수백만 명의 낙오자들이라는 압도적인 실패확률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높은 실패율은 어느 직업에서나 존재하는 세상이기에, 온몸을 성형하던 약물의 도움을 받던, 죽을 만큼 힘든 연습생(지망생)과 후보 생활을 넘길 수만 있다면 단시간 안에 평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박의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형되고 뒤틀려진 것이지 아이들과 청소년의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조)부모의 능력이 나머지 삶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육체를 활용하는 것에서 탈출구를 찾는 것은 필연적 결과입니다. 자신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삶의 시작에서부터 무한경쟁에 던져진 이들이 급증하는 정신질환(ADHD, 우을증, 공황증세)과 시도때도없이 찾아오는 자신과 타자를 향한 폭력성, 그 극한에 자리한 자살의 유혹에 빠지는 것에 비하면 그들의 선택은 치열한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이들이 보았던 것들이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만 강조된 용산참사, 철저한 방관이 불러온 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의 연이은 자살, 퇴임한 대통령에게 휘둘러졌던 광기 어린 폭력, 그들의 형제자매이자 친구와 선후배일 수도 있었던 250명의 단원고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참사,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노렸던 메르스대란 등이라면 자신에게 투영된 부모와 어른들의 꿈과 희망을 따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지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보기에 성공한 삶의 또 다른 이름이 불의와 부정, 반칙과 특권이라면 바르고 착하고 정의로운 삶을 주문하는 기성세대란 지독한 모순과 거짓의 화산이자, 이룰 수 없는 허상을 행해 죽을 때까지 노오오오력 하라는 그 유명한 '꼰대'의 전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하면서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목록에는 전혀 좋아할 수 없는 것들만 가득하다면 차라리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연습이 우선됐을 수도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살 수 있게 됐지만,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육체(적 재능)에 한가닥 희망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전에는 패배자나 사회부적응자로 취급됐던 외톨이라는 것도 사이버세상에서는 무한대의 네트워크를 통해 삶의 조각조각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한 생을 보낼 수 있는 (그들 나름대로는) 괜찮은 선택이 됐습니다. 





갈수록 시장이 좁아지고, 경쟁이 과열돼 '짧은 활동과 그것보다 긴 휴식기'가 되풀이됨에 따라 소녀시대나 동방신기, 빅뱅과 슈주, 2NE1과 엑소 같은 넘사벽의 성공을 거두는 것들이 힘들어지는 것을 알면서도ㅡ홍수를 이루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K-pop스타'를 빼면, 다양해졌지만 고만고만한 것들로 재편된 것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ㅡ끝없이 아이돌그룹이 배출되고 퇴출되는 과정은 (기형적인 인구구조와 시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김연아와 박지성, 박찬호와 박세리, 박인비 같은 대박을 터트리는 것(손홍민과 손연재, 류현진과 박병호, 강정호와 기성용, 김효주와 김세영과 장하나, 이승우와 백승희 등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제외)도 어려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이 불가능해진 청춘에 접어들기 전까지 육체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10대의 선택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맞선 부모들의 전통적인 압박도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자신만의 시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끊임없이 배회하는 '떠다니는 섬'으로서의 10대의 등장이란 (다음 글에서 다룰) 무한한 진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1%의 희망 때문에 99%의 절망을 기꺼이 감내하도록 만들었던)낙관론적 세계관의 16세기에 잉태된 필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선진국들이 400년 이상이 걸린 (변증법적) 진보의 과정을 단 70년 만에 파시즘적 속도로 이룩한 압축성장에 내던져진 대한민국의 10대에게는 더더욱.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catlover8 2016.03.01 05:14

    아고라 경제방에 이번 더민주의 필리버스터 중단에 관한 제 생각을 담은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도령님처럼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짜피 많은 사람들이 읽을 건 아니지만, 그냥 답답해서 한 번 올려봤습니다.

    저는 아고라를 2년전에 처음 알게 됐는데, 정말 너무 난잡해서 처음 들어가 봤을 때 경악했었거든요. 그래서 글을 거의 올리지 않는데, 아무튼 혹시 관심 있으시면 읽어보세요. 닉네임 catlover8으로 찾으시면 되구요. 나중에 도령님 생각도 한 번 듣고 싶군요. 참으로 착찹한 저녁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01 05:12 신고

      알겠습니다.
      오늘 피로해서 10시가 넘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4일 전에 썼던 그대로입니다.
      님의 글을 읽고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글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3.01 08:25 신고

    꿈을 잃어버린 10대들입니다

    그 잃어버린 꿈을 찾아줄,되살려줄 의무가 기성세대들에게
    있습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

    • 늙은도령 2016.03.01 09:16 신고

      세상을 바꾸려면 압도적인 정치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화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을 최소화시켰지만, 국민의 지지가 높으면 얼마든지 체제를 바꿀 수 있습니다.

  3. ON ALL 2016.04.10 16:51

    매번 좋은 글들을 다방면에 걸쳐 올리고 계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이 미치는 영역이 턱없이 좁기 때문에 본문을 몇 부분 인용하고 싶습니다. 인용한 후에는 출처를 남기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브라질월드컵이 새롭게 중무장한 전차군단 독일의 우승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축구황제 펠레의 전성기부터 월드컵에 빠져들었던 필자의 입장에서 월드컵 개최국이 브라질의 몰락이 독일의 우승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 올랐다는 메시가 마라도나의 폭발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입증됐지만, 브라질의 몰락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이 회자될 것 같다.

 


                                                         17세의 나이에 월드컵에서 우승한 펠레


 

펠레와 자일징요, 토스타워, 리베리노, 알베르토 등이 주전으로 활약했던 브라질대표팀은 월드컵 우승을 밥 먹듯이 할 만큼 역대 최강의 전력을 보여줬다. 이들은 브라질리그 소속팀인 산토스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는데 브라질의 전성시대는 한 팀에서 손발을 맞춰온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헌데 이번의 브라질대표팀은 주전선수 대부분이 유럽 빅리그 출신이어서 그런지 수비조직력과 공격전술의 다양성이 턱없이 부족했다. 조별리그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16강 토너먼트에 들어서는 브라질의 파괴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내이마르가 부상으로 결장했다고 해도 준결승과 3,4위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수준 이하였다.


                                                                        스포츠서울에서 인용

 

같은 나이의 펠레와 비교할 때 개인기와 체력, 경기지배력 등에서 뒤떨어진 내이마르가 뛰었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이에 반해 독일은 바이에른뮌헨이라는 당대 최고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구성했기에, 조직력과 체력 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줬다. 진정한 의미의 원 팀이라 할 수 있다.

 

 

결승전에서 메시의 활약이 기대에 못 미친 것도 이런 독일의 수비벽을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결정적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한 것도 체력 저하에 따른 집중력 부족 때문이다. 작년도 챔피언스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뮌헨의 맞붙었을 때도 메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메시가 바이에른뮌헨의 조직적이고 강력한 협력수비에 막히자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력도 살아나지 못했다. 


                                                                      스포츠한국에서 인용


 

독일이 우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자국 선수 위주의 리그 운영이다. 이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고, 일관성 있는 협회의 행정이 더해져 독일대표팀이 하나의 팀으로서 점점 강력해졌다. 여기에 지나칠 정도로 과소평가 받는 필립 램과 기술축구를 구사하는 메수르 외질이 가세하면서 독일대표팀은 펠레 등이 활약했던 브라질대표팀에 비견될 만큼 무적의 팀이 됐다.

 

 

프리미어리그에 외국인 선수들이 너무 많은 영국이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과 비교해 봐도 70~80년대의 시스템을 채택한 것 같은 독일의 리그 운영이 월드컵 우승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우승이 뜻하는 것은 한국축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준다. 박지성과 이영표라는 걸출한 스타의 성공 덕분에 유럽 빅그리 행이 늘었지만, 동시에 거품을 형성했다.

 

 

이번 월드컵만 놓고 볼 때, 손홍민을 제외하면 빅리그에 진출한 나머지 선수들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빅리그 진출에 성공한 선수들이 지나칠 정도로 과대포장된 거품의 일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 상태가 최악이었던 이청용을 포함해 유로파 출신들은 K-리그 선수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스포츠코리아에서 인용



다시 말하면 빅리그 진출보다 K-리그 활성화를 통해 내실을 다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축구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뛰지 못하는 선수란 절대 발전할 수 없다. 벤치에 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경기력은 떨어진다.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가 참담한 실패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의 결과였다.                                                                     

 

 

다시 K-리그다. 내적 충실함이 없을 때 외적 파괴력은 허상에 불과하다. 대표팀 전원이 빅그리에서 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국과 브라질의 몰락에서 보듯 축구대표팀이 하나의 팀으로서 강력해지려면 K-리그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표팀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축구협회가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이루려면 유소년에서 K-리그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확고하게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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