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이런, 벌써 눈치 챘어? 허, 이렇게 허무할 데가? 자넨 그게 문제야. 너무 똑똑해. 재미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고. 내 제자였으면 전 과목을 F로 도배해버릴 텐데?”

“제가 자퇴하고 말지요. 돌리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허, 성미까지 급한 것 하고는? 알았어, 내 말하지. 자네가 나보다 몇 백배는 더 생각하겠지만, 내부인으로서 요즘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퇴행적 언론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재영은 자신이 3년 전부터 준비한 필생의 목표에 대해 성수가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하자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언론 환경이라니?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매스 미디어에 관한 것임을 예상했지만 하필이면 언론 환경이란 말인가? 재영은 자신도 모르게 동그라진 눈으로 성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왜 그리 놀라나? 난 자네가 문제의 M방송국 기자라서 묻는 말인데? 그냥 수수방관만 할 자네도 아니고,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반응이 왜 그렇게 과도해?”

“아, 그거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수님 같은 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갑자기 뛰어넘어가며 말하면 누군들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마치 미친..”

“미친년 널뛰듯 한단 말이지? 하하하,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내가 너무 왔다 갔다 하기는 했어. 어, 이거 괜히 미안하네? 그래도 미친년 널뛰듯 한다는 말은 너무 심했어. 명색이 교수인 나에게, 안 그래?”



서둘러 말을 삼킨 재영에게 성수는 웃으며 말했다. 말실수에 대해 분명한 추궁도 곁들이면서. 재영의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지리라! 최소한 얼굴의 일부라도. 성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속으로 숫자를 세고 계시죠? 어림없습니다. 전 학습효과도 없는 놈이랍니까?”



성수에 대해서 상당 부분 파악한 재영이 그의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넘겨짚었다. 장군에 멍군하는 격 이었니 이보다 확실한 반격은 어디 있으랴.



“이런,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도저히 못 당하겠어.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 장강의 앞 물이 뒷물을 밀어낸다)이라더니, 이건 왠지 씁쓸하네.”

“하하, 그것 보다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교수님?”

“하하하하! 그래, 그게 더 적절하겠어. 그럼, 내가 손오공이고 자네가 부처인 것으로 하지. 그건 그렇다 치고, 언론 환경에 대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더할 수 없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공영방송마저 관료주의에 빠져들었고 추악한 자사이기주의적 행태는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뼈 속까지 상업주의에 물들었어요. 미국보다도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네, 언론의 존립근거마저 흔들릴 정도에요. 동방국 언론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소셜테이너 금지규정과 도청사건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으니 낙하산 사장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언론 매체로써 절대 남겨서는 안 될 나쁜 선례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던 간에 또다시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근거가 점점 쌓이고 있는 거니까요. 기자와 PD들의 열패감이 너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이젠 무력하기까지 한 것도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에요. 게다가 지상파 방송을 새로 허가받은 4개의 보수 언론들이 점점 열악해지는 언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차별적인 광고영업을 하고 스타급 PD와 제작자, 인기 연예인과 연기자, 특급 MC들을 빼오는 과정에서 몸값이 엄청나게 폭등하는 등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물밑 전쟁이 가히 썩은 흙탕물로도 표현이 안돼요. 기업들도 이런 조폭 식 광고영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골치 아파할 정도에요. 광고와 협찬을 따내기 위한 협박성 기사와 뉴스보도가 신문과 방송을 갈아타며 무차별적으로 진행될지 누가 알겠어요? 최근에는 타 방송사 MC와 PD, 작가들을 빼오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인기 프로그램을 죽이기 위해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여러 가지 관행마저 마구 까발리고 있어요. 이건 마치 스스로 자멸하려는 자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일상으로 저지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거의 미칠 지경입니다. 뭔가 사단을 내지 않으면 미디어 생태계는 최소 2~3년 안에 공멸할 수도 있을 만큼 엉망이고 지독히 비관적이에요.”



언론 장악을 통해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낙하산 인사와 광고시장의 한계로 지속이 불가능한 4개 지상파방송을 무더기로 허가해준 것 때문에 언론 자체가 스스로 자멸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방송사 내·외부에서 비이성적인 일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재영의 말에 성수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지는 몰랐다. 성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거대한 전화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 시점에서 끝을 모르고 퇴행하는 언론을 보고 있자면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국민의 입장에서도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쩔 때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반인륜적 언론의 행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국에서 언론정책에 관한 가장 저명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에드윈 베이커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미디어 집중과 민주주의』에서 ‘미디어의 당파성이 미디어 집중과 맞물리게 되면 권위주의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나서 망령처럼 되살아난 권위주의 정권과 그와 결탁한 미디어 경영진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제어하거나 멈추게 하지 않으면 어떤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잠시 재영을 바라보던 성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 서랍을 열어 서류봉투 하나를 꺼냈다.



“리블링은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네. 언론의 소유권이 한 사람이나 일부에게 집중되느냐 아니면 견해를 달리하는 다수에게 분산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알지요. 형의 파일에서 읽었고 매일 경험하고 있으니 어찌 모르겠습니까?’



재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다음에 나올 말이 형과 같은지 궁금했기 때문에 자신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이걸 줄 테니 시간 나는 데로 읽어보게.”



재영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성수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봉투를 꺼내 재영에게 건넸다. 오늘의 성수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재영이 얼핏 봐도 서류봉투는 한 손으로 받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 보였다. 두께를 가늠하면 족히 7~800페이지에 이를 듯싶었다. 성수가 건넨 서류봉투를 받아 든 재영은 그 무게가 주는 이질감과 알 수 없는 압박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USB에 담아주면 될 걸, 굳이?’



재영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을 재빨리 움켜쥐었다. 그것은 치열한 기자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제2의 본능 같은 감각이었다.



“교수님도 프린트된 상태로 받은 모양인데, 서류를 준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지 않으시겠죠?”

“응, 지금은. 침대를 같이 쓰는 마누라에게도 밝힐 수 없는 사람이니, 자네가 이해해주게. 자료를 읽고 나면 그가 누군지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을 거야. 자료를 받고 많이 고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만한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어. 내가 조금이라도 자네를 믿지 못하면 절대 그 자료를 넘기지 않았을 거네.”

“어떤 자료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기도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하네요.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자료인 것 같은데?”



재영은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이 성수에게 적임자가 됐으니 둘 사이의 인연이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치사는 나중에 하지. 일단 읽어보게. 절대 간단치 않은 내용이니, 심사숙고해야 할 거야. 난 일생의 모험을 선택했어. 자네도 같은 선택을 했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그렇다고 내 선택에 얽매이지 말게.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너무 큰 숙제를 안겨준 게 아닌지, 벌써 걱정되네?”



이미 재영에게 자료를 건넨 후인데도 성수는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워 했다. 재영은 어떤 권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교수라는 신분인 그가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라고 말할 정도면 자료가 갖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서류의 무게 이상으로 묵직한 내용이 들어 있으리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 읽는 대로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참,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에 대한 제 생각은 교수님과 조금은 다릅니다. 저는 20세기를 풍요를 향한 속도의 파시즘과 소비의 시대라고 보며, 21세기는 그 속도와 가격 파괴로 가능했던 과소비의 저주가 초래한 부작용과 폐해들을 전 인류가 대신 짊어지고 하나씩 치유하는 시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며 미국 전역으로 번져가고 있는 패자들의 시위와 미국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다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버린 유로존의 몰락에서 그 징후들을 보고 있고요.”



재영은 자신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은 채, 자신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못하는 성수를 뒤에 남긴 채 그의 방에서 나왔다. 재영은 형의 힌트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뿐만 아니라 인식의 차이도 느꼈지만 그것보다는 미지의 자료에 대한 기자로써의 호기심과 흥분, 성수 같은 사람이 조심할 정도의 내용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과 무게의 과중함에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지만 재영은 왠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단어들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것 외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취재기획안의 속도를 높이자. 이 자료가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나도 그처럼 주사위를 던질 때가 온 거야. 어차피 가고자 했던 길, 두려워할 게 뭐 있어? 게다가.’

“난 영원한 아웃사이더잖아!”



성수의 연구실에서 나와 계단이 있는 곳까지 복도를 걸어가던 재영이 자신을 향해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의 말이 좁고 밀폐된 공간의 공기와 뒤섞여, 뚜렷한 공진을 만들자 마치 사자후처럼 쩌렁쩌렁 복도를 울렸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진동이 같은 흐름에 합쳐져 증폭되는 원리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실현된 것이었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물리학 법칙은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강하건 약하건 간에 인간원리가 적용되는 우주의 행성이라면 단 하나의 예외도 존재하지 않는다.



“뭐라고요?”



마침 계단에서 복도로 들어선 30대 후반의 남자가 깜짝 놀라며 재영에게 물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의 단단한 신체의 소유자였다. 9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온 것이 분명하다면 최소한 몇 방울의 땀이라도 이마에 맺혀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호흡이 조금은 거칠어지거나. 어쨌든 그는 육체적 단련에 있어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가 분명했다.



“아, 아닙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재영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불의의 인물에게 사과하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온통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재영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지만 내내 뒷골이 간지러워 죽을 맛이었다.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행정․입법․사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보도나 해설 등을 통해서 여론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대중매체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거대 포털을 중심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의 영향력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거대 대중매체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헌데 모든 대중매체 엄정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닌 정치적 편향성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광고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자본과 정치권력에 맞서 언론의 사명인 권력 감시와 저널리즘 특유의 비판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중매체의 기술적 본질이 상류층과 오락화를 지향하는 것이어서 권력 편향성과 상업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 더욱 강화됐다.



특히 한국 언론생태계의 지형도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보수적이며 권력 편향적인 성향이 더욱 심화됐다. 보수정부가 일으킨 IMF 환란을 극복해야 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임기 중반부터는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반격에 직면해야 했다. 조중동이 보도행태는 금도를 넘었고, 증오의 정치를 일상화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는 조중동의 집요하고 끈질긴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대통령 자신도 권력이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언론철학을 가지고 있어, 임기 초반부터 조중동의 융단폭격에 시라렸다. 부동산거품 붕괴와 맞물린 중반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대중매체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이어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몰락한 두 번째가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참여정부 중반부터 노골적으로 보수 성향을 드러낸 조중동의 공격에 더해, 낙하산 사장에 장악된 KBS와 MBC의 권력 편향성이 강화됐다. 최소한의 보도준칙마저 지키지 않는 무더기 종편의 등장은 진보 진영의 맏형을 자처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극도로 악화된 언론생태계에 직면했다.



이렇게 해서 제1야당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정치적 프레임이 설정됐고, 신자유주의의 번성에 따른 사회의 보수화와 맞물려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중동이 이끄는 언론생태계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촛불집회가 전국에서 타오르던 시기를 빼면, 이명박 정부 내내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들에 이 난무했고, 새정연(구 민주당)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 현상의 등장도 언론생태계가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였다. 노무현이 일으킨 바람과는 달리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반발이 안철수라는 대중적 스타를 선택한 안철수 현상은 기득권 정치와 재벌로 대표되는 특권층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강했지만, 거대정당인 구 민주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중도보수화에 대한 열망으로 안철수 현상을 해석(필자는 형편없는 왜곡으로 보지만)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대한 노조의 장기파업이 참혹한 패배로 끝나면서 MBC의 종편화는 가속화됐고, 이것이 방송생태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손석희를 영입한 JTBC의 변화는 이를 만회할 정도는 아니어서 언론생태계 전체의 보수화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통진당의 투표부정과 폭력사태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정부에 의한 이석기의 내란음모죄 적용과 통진당 해산심판청구라는 반민주적인 행태까지 치달았다. 정부와 보수화된 언론들에 의해 진보정당과 종북세력이 이음동의어로 변질·왜곡됐다. 진보진영 전체의 위축과 이분법적인 사상 검열이 일상화됐고, 마침내 진보진영 전체의 몰락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총체적 보수화가 정점에 이르렀다.



조중동이 주도한 언론생태계의 보수화에 대한 극도의 피해의식과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구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언론생태계 하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안철수 현상은 세를 넓혀갔고, 잠재적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과 지방선거를 통한 친노의 부활도 오래갈 수 없었다.



보수화된 언론생태계가 주도한 사회의 보수화는 구 민주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패배 원인이 친노 강경파라는 언론몰이가 계속됐고, 친노라면 치를 떠는 의원들과 당내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도보수화 주장이 난무했다. 그 결과 김한길 대표의 당선과 안철수 신당의 탄생 및 졸속적인 합당으로 이어졌다.





잠깐 동안의 지지율 반등이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합당과정에서 보여준 절차적 민주성의 상실은 전통의 지지자들에게는 야합으로 보였다. 민주정부 10년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정강 소동까지 벌어지면서, 60년 전통의 정체성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다는 것이 합당의 실체라는 것이 알려졌다. 



당 내외에서 극도의 반발이 분출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합당을 했으면서도 분열의 강도는 내부화되며 계파별로 공고해졌다. 이는 새정연 내부의 정체성 혼란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됐음을 의미했다. 이때부터 진보 매체들마저 새정연에서 등을 돌렸고, 이것이 공천파동과 재보선 참패로 이어지면서 지도부의 리더십과 의원들의 팔로워십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정연은 사분오열됐다. 



국회의원이란 공천권을 잃는 순간 잉여보다 못한 존재로 떨어질 수 있는 특수한 존재다. 반정치적 정서가 만연돼 있는 한국의 경우, 특히 야당 의원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야당의 국회의원이었다는 것이 족쇄로 작용해서, 모아둔 돈이 없으면 정치브로커나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니면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것이 계파정치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014년에는 이것이 맞다



이 모든 것이 수십 년에 걸쳐 조중동이 설정해 놓은 정치적 프레임의 대국민 세뇌작용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결과다. 열린우리당에서 구 민주당을 거쳐 새정연으로 이어진 제1야당이 권위주의와 독재에 맞서 민주정부 10년이란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던 60년 전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채 보수화된 언론생태계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이다.



세 번째 요인으로 다룰 조중동의 안보상업주의와 종북몰이까지 더하면, 새정연으로서는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보수화된 언론생태계에 맞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한다는 것이 진보(자유주의적 진보라 해도)를 표방한 정당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독히 강화된 반정치적 정서와 공적 영역이 사적인 것들로 점령된 상태에서 어떤 정당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사실 새정연의 몰락과 지리멸렬함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잘못된 만남이 만들어낸 정치의 몰락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몰락이다.



                                       


  1. 덕산 2014.09.22 09:00

    늙은도령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정치도 공학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네요.

    • 늙은도령 2014.09.22 09:27 신고

      공학은 공학인데, 철학이 바탕이 된 공학이어야 합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철학적 부재가 너무 큽니다.
      상당수가 시정잡배 모리배 수준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도 권력을 잡은 지배자, 권력을 잡지 못하면 범죄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최악이 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2. 태봉 2014.09.22 09:13

    옛날부터 드는 생각이었는데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를 다시 재정립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어 모든 국민은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을 너무 혼동하고 잘못이해하고 있습니다 위 도표는 한눈에 누가진보고 보수이고 수구인지 잘 보여주네요 늙은 도령님이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22 09:29 신고

      제가 새로 연재하게 된 진보의 몰락과 부활을 위해 에서 다루게 돨 것이빈다.
      그 동안 머리속으로만 정리해놓은 것들이 이제는 풀어낼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구분을 못해서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것이고, 자신의 권리도 다 요구해서 받아내지 못합니다.
      일단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에 대한 글을 최대한 빨리 올리도록 할게요.

  3. 중용투자자 2014.09.22 10:27

    자본이 곧 진실이 되어버린 듯한 형국입니다.

    • 늙은도령 2014.09.22 15:54 신고

      지금의 시대가 바로 그러합니다.
      자본주의는 정신을 죽이기 때문에 물질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곧 권위입니다.

  4. 참교육 2014.09.22 10:58 신고

    언론이 바뀌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그림의 떡입니다.
    이제 언론도 지지하는 정당을 명시하고 당당하게 주관을 펴야할 때도 됐습니다.
    공정이니 중립이라는 외피를 쓰고 찌라시 역할을 하는 모습이 꼴볼견입니다.

    • 늙은도령 2014.09.22 15:59 신고

      종편을 없애야만 방송생태계가 제 자리를 찾습니다.
      종편 등장 이후 방송생태계는 아예 추락 평준화됐습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4.09.22 12:35 신고

    힘을 얻어야 할 언론들이 있는데
    힘을 좀 모았으면 합니다
    뉴스타파,국민TV,팩트 TV등등...

    • 늙은도령 2014.09.22 16:01 신고

      제도권 방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인터넷 방송으로는 절대 역전시키지 못합니다.
      반드시 제도권 방송생태계를 제대로 돌려내야 합니다.

  6. 피닉스 2014.09.23 14:37

    명바기와 시중이 십세이 장마철 먼지가 나도록 패 쥑이고 싶습니다.

  7. 마틴 2014.09.26 22:36

    맹박씨를 옹호하고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현재 가장 큰 국민적 이슈인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해 제1야당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하는짓을 보십시오. 진보라고 하는 것들이 본인들의 의지도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있다면 여당이랑 다를게 뭐 있을런지요. 가장 큰 원인은 새민련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임으로 결코 진보는 될수 없소.

    • 늙은도령 2014.09.27 05:03 신고

      맞는 말입니다.
      뿌리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사회경제적 평등입니다.

      공무원연금은 개혁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하후상박으로 가야 합니다.
      박근혜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려면 모든 것을 실패합니다.

      전 증세에 찬성합니다.
      순서는 부자부터 해야지만, 그것이 안 된다면 동시에라도 해야 합니다.
      다만 증세로 늘어난 세수를 복지와 사회안전망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지속가능한 성장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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