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오너의 딸인 조현아는 이 땅의 수많은 장그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땅콩 후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재벌의 세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땅콩 후진’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너 딸의 명령에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기장은 항공기를 후진시켰고, 서비스를 담당해야 할 사무장은 무력하게 내렸으며, 거대기업 대한항공은 오너의 딸을 감싸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동안 표 값을 지불한 승객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문제의 항공기는 승객이 지불한 돈으로 비행을 함에도 그들은 철저하게 무시됐습니다. 이런 초법적인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조현아가 대한항공 임직원들에게는 신과 동격인 오너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빚으로 샀을 항공기는 물론, 승객이 지불한 돈으로 월급을 주면서도 자신이 기장과 사무장, 승무원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땅콩 후진’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빼앗긴 승객들의 피해는 승무원의 서비스로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왔지만,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한 지금에는 오로지 돈이 곧 권력입니다. 축적돼 견교해진 돈의 크기에 따라 권력의 크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초법과 불법, 탈법적인 행동도 돈의 크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됩니다. 재벌가의 특권의식과 슈퍼갑질이 일상화됩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하는 독점 자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하에서 가장 잘 돌아가고 성장하지만, 축적돼 막강한 권력이 된 거대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됨에 따라 민주주의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세습되는 독점 자본의 시대에 들어서면 사회경제적 평등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만큼 성가신 것이 없습니다.



왕족과 귀족에게 부와 권력이 독점되던 봉건사회에서 제3의 신분으로 등장해 새로운 부와 권력을 늘려가는 부르주아에게는 자신의 재산과 시장경제를 지켜줄 국가와 함께, 자유방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한국에서는 왜곡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이에 대해서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자들의 속셈’에서 다루겠습니다)가 최상의 체제였습니다.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부르주아가 민주주의와 손을 잡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이 된 독점 자본이 봉건시대의 왕족이나 귀족처럼 거대한 부를 세습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면 민주주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유의 원천이 사라진 불평등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가 단위에서 세계로 넓혀진 시장의 통합은 불평등을 지구적 차원으로 고착화시킵니다.



독점 자본의 권력이 이렇게 세계화되면 절대군주를 떠올리는 ‘땅콩 후진’이 가능한 일이 됩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부의 독점이 이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세습되는 거대한 부의 독점을 분산시키면 이런 봉건적이고 초법적인 행태는 불가능해집니다.



                                          노무현 정부 때 민주주의가 확대됐던 이유



민주주의국가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밖에 없습니다. 독점되고 세습돼 초국가적이 되는 독점 자본의 속성을 조세정의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화 하는 것입니다. 세습되지 않는 한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등 사회적 비용에서 자유로운 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치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대한 부가 세습되지 못하게 하는 것,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 시장의 기능이 원래는 공정한 경쟁과 가격을 형성하는 정의 실현의 장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바로 잡는 것, 국민행복권 실현을 위해 불평등한 탄생을 평등한 공존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조현아 앞에선 또 다른 장그래인 기장과 사무장, 승무원들이 불평등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항공기가 출발하면 그때부터는 기장과 승무원의 역할 하에 표 값을 지불한 승객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정치가 죽으면, 그래서 독점 자본을 견제할 것이 사라지면 계약직 사원도 아닌 정규직은 물론 서비스 비용을 지불한 승객마저도 또 다른 장그래로 만드는 ‘슈퍼갑질’을 방지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경우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재벌 오너 중에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여전히 제왕적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후진'과 '무늬만 사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재 시대의 압축성장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한 정실자본주의와 세습자본주의의 천국인 대한민국은 극소수의 거인과 절대다수의 난쟁이로 나뉘어진 후진국에 불과합니다. 



흔히들 경제가 밥 먹여 준다고 하지만 이는 상위 10%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지 하위 90%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거대한 지적 사기입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경제 규모가 수백 배로 커졌지만, 중산층이 줄고 하층민이 늘어나는 것에서 보듯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위 90%에게 늘어난 것은 빚과 구조화된 불평등과 새로운 형태의 차별입니다.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진들 부의 재분배와 경제민주화를 강제하는 정치의 역할이 사라지면 제2, 제3의 ‘땅콩 후진’과 ‘무늬만 사퇴’인 재벌가의 특권의식은 반복될 뿐입니다. 하위 90%를 밥 먹여 주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부와 권력의 독점을 최소화하는 정치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10 08:14 신고

    재벌을 없애야 합니다
    세습...절대로 안될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10 15:37 신고

      재벌보다는 재벌로부터 제대로 된 행태를 이끌어내는 정치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재벌에게서 세금을 제대로 걷고 공정거래를 하게 만들고 중소기업과 공생의 길을 가게 만들면 모두가 좋아집니다.

  2. 동의합니다 2014.12.12 01:02

    몇 년 전 TV에서 오늘날의 멕시코 경제,
    특히 살리나스라는 자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과 캐나다와 FTA 를 체결하면서
    극소수의 부자가 그 나라의 거의 모든 부를 다 차지하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너무나 불평등한 그들의 상황을 보고는
    무척 마음 아픈적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의 삶이 수준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삶은 지금보다 더 불합리 했으면 했지
    덜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판단으로 이 역경을 넘겨야 하는데
    그런 힘은 좀 더 현실을 볼 줄 아는 눈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져야 되는 것이죠.

    그런 눈과 귀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늙은도령님,
    계속 진실을 밝히며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좋은 글
    잘 써 주시기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4.12.12 03:13 신고

      아무리 저 같은 사람이 비판의 글을 올려도 님 같은 분들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판에 열려있는 님 같은 분들이 늘어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좋아질 것입니다.
      압축성상의 시대에 삶의 전성기를 보낸 60대 이상의 노인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분들처럼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국가란 정치가 절대적 힘을 갖습니다.
      정치를 멀리하면 할수록 소수의 엘리트에게 모든 것이 돌아갑니다.
      보는 눈과 듣는 귀는 하나입니다.

  3. 동의합니다 2014.12.12 04:10

    맞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유권자인 우리 모두가
    잘 감시 감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TV 나 방송에서 일삼는
    국회의원들의 싸움에 욕하지 말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더욱 관심을 가져서 당장 부정을 고칠 수 없다 해도
    최소한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줘야 합니다.

    국회의원들 싸우는 것에 염증을 느껴 정치에 관심을 가지 않고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의 권리도 행사하지 않는다면
    서민과 약자들의 삶에 무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권리마저 짓밟을 기득권자들의 영생불멸만 이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야당 의원들이 집권당을 향해서 싸우는 것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줄 아는 인내력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12 05:58 신고

      정치는 말이고 토론이며 어느 정도는 논쟁이고 언쟁입니다.
      외국의 정치토론은 한국보다 더욱 치열하고 살벌합니다.
      우리의 정치토론은 너무나 얌전하고 순치됐습니다.
      이런 식이면 노무현 같은 지도자는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국회의원들의 토론이 짜증나고 저급한 언쟁처럼 보일 뿐입니다.
      님의 말처럼 인내심을 갖고 그 이면에 자리한 것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촌천살인의 대명사였던 유시민이 활약할 때는 우파논객이 상대가 되지 못했지요.
      그 덕분에 우리는 정치가 말이며 논쟁이라는 것을 깨달았었구요.
      이제는 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국가가 통치술로부터 탄생했다는 것도, 인간의 통치라는 기술이 17세기에 탄생했다는 것도 아니다. 주권에 관한 제도들의 총체로서의 국가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의 통치라는 기술도 수천 년전부터 있었다. 단 국가가 우리가 아는 형식을 갖게 된 것은 인간들을 통치하는 새로운 일반적 테크놀로지를 그 출발점으로 해서이다.

 

                                                                                 ㅡ 미셀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인용



이승만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정희의 판박이인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대한민국은 매일같이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마치 국가 전가 무슨 중병에 걸린 것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매일매일의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시청하고 각종 보도들을 검색하는 것이 어제에 있었고, 내일도 있을 비극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건과 사고들로 얼룩져 있는 오늘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국가는 존재 이유를 상실했고, 정부는 경제와 민생을 핑계로 소수에게 부와 권력, 기회가 독점되는 정책과 법률들을 밀어붙이고, 기업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칙과 불법도 마다하지 않고, 방송과 신문은 이들을 위해 여론을 왜곡하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지식인들은 무력하게 해체된 상태에서 자신만의 참호를 구축한 채 비루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5천년 역사의 영광과 자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이 네 자에 모두 포함돼 있다 



단군이 한반도에 고조선을 건국한 이래 우리 민족ㅡ차별적이고 배타적 의미의 민족이 아니라ㅡ은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따뜻하고 관대하며, 호방한 사람들이었다. 동양 문화 특유의 가치관 때문에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늦춰졌다고 해도 일제의 강제합병 36년이 있기 전까지는,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민족은 서양의 민주주의보다 한발 앞설 정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모범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이 결코 부끄러운 적도 없었고, 외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발전할 수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문창극 같은 식민지사관을 신봉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조선의 정치체제는 세계의 정치학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절대왕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잃은 적이 없었다. 인구의 수가 급격히 늘고, 도시 위주의 자본주의가 확대되고. 국가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난무하는 현대국가가 극소수의 특권층과 거대 관료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에 비해, 조선은 절대군주였던 왕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많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국정을 농단하는 폭군들은 반드시 제거됐으며, 국가의 체제는 안정적 형태를 유지하며 어떤 왕도 위민, 애민, 훈민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은 링컨이 말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었다. 단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초과학과 기술공학적 발전이 뒤쳐졌을 뿐이지, 현대적 의미의 국가이성과 통치이성을 잣대로 들이댄다 해도 고조선에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국가 역사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17세기까지 전 세계 자산의 45%를 보유하고 있었던 유일 초강대국 중국도 단군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의 국가들을 가장 두려워했다. 중국의 황제들은 주변의 국가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거나 자신의 역사 속으로 흡수할 수 있었지만, 그들보다 앞선 문명을 이어가던 한반도의 국가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고조선과 고구려가 최고로 번영했을 때는 최소 중국의 동북삼성은 우리의 관할권에 있었다(위서논란이 있는 《한단(또는 환단)고기》를 참고하지 않는다 해도). 



일본의 문명도 백제와 가야와 고구려에서 흘러들어간 것이며, 이는 일본의 황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본이 이런 역사를 세탁하기 위해 끝없이 정한론을 들고 나온 것도 그들의 자격지심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의 과학기술ㅡ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과 거대 관료조직 및 절대군주의 통치술ㅡ을 한 발 앞서 도입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정한론을 다시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한다. 



일본의 지적 천황으로 칭송받는 마루야마 마사오에 의하면, 메이지 유신이란 "봉건사회의 특징인 권력의 편중을 권위와 권력의 일체화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조직"한 것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면 봉건사회처럼 신성불가침의 권위가 주어진 천왕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권력과 사회적 순위가 정해지는 것이 일본 파시즘의 본질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봉건시대의 낭인을 흠모했던 시정잡배 수준의 사무라이가 구국과 부국강병의 지사로 둔갑해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우파 전체주의의 한 형태인 일본의 군주주의는 "군부, 관료, 정당 등 기존의 정치세력이 국가기구의 내부에서 점차 파쇼체제를 성숙시켰으며, 그것이 일본 파시즘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특색"을 이루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일본의 군국주의는 천황의 주위를 둘러싼 군부와 관료들의 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천황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일반 국민들은 일본 군국주의가 자행한 각종 전쟁범죄와 대량학살의 공범자이자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레다 어틀리가 《일본의 진흙발》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우익지도자들을 "봉건시대의 낭인과 시카고 잡종"의 결합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했다. 그들은 패거리집단을 이루어 행패를 부리기 위해 의리를 내세웠고, 사소한 일에도 폭력과 복수를 자행했고, 힘의 우위가 명백히 무너지면 배반도 밥먹듯이 했다. 이런 시장잡배에서 출발해 천황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가는데 성공한 일본 군구주의의 우익지도자들이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저급한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요정을 들락거리며 젊은 기녀들과 향략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모의 근거지는 거의 대부분 기생집이나 요리집이었다. 그들이 거기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비분강개할 때 그들의 가슴 속에는 "취하면 누워서 베개로 삼는 미인의 무릎, 깨어나면 손 안에 쥐게 되는 천하의 대권"이라 노래했던 바쿠후 말기 지사들의 영상이 남몰래 자리잡고 있었다.



군국주의의 지도자들이 아시아국가를 상대로 벌인 '대동아전쟁'을 천왕이 다스리는 황국(일본)을 정점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으로, 저발전된 국가들에게 천황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천황을 정점으로 서열을 정하는 과정이란 선한 것이어서, 아무리 악한 전쟁범죄와 집단학실을 자행해도 그것은 신의 뜻이자 우주의 섭리이기 때문에 죄의식이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이런 학살이 1930년대 후반부터 수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 군구주의의 배후에 자리한 일본의 군국주의와 국민의 정체성은 이와는 달랐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현대정치사상과 행동》ㅡ이 책 하나만 봐도 이승만과 박정희가 얼마나 일본에 경도돼 있었는지 알 수 있다ㅡ에서 "(힘없는 나라와 사람을) 무리하게 억압하거나 또 (일본보다 강한 나라와 사람에게) 무리하게 억압당하여, 이쪽을 향하여 굽히면 저쪽을 향하여 어깨를 펼 수 있"으며 "앞에서의 치욕은 뒤쪽의 유쾌함에 의해 보상받기 때문에 불만족을 평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마치 서쪽 이웃에서 빌린 돈을 동쪽 이웃에게 독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한강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이 같은 행위를 '억압위양의 논리'라고 하는데, 자신보다 힘이 센 강자나 지위가 높은 상사로부터 받은 억압ㅡ모든 것을 투쟁으로 보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ㅡ을 약자나 부하에게 더 악독하게 분풀이하는 것처럼, 서구 열강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저발전 상태인 아시아 국가에게 잔인하고 악독하게 풀어버린 것이다. 



일본의 지배 집단들이 자행한 대동아전쟁은 강자(서양)에게 뺨맞은 것을 약자(아시아)에게 화풀이하는 전형적인 형태로서, '승자가 곧 정의'라는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 결과 정신적으로는 "선을 원하면서도 언제나 악을 행한 것이 일본의 지배권력"의 특징이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지도자들이 이런 시정잡배 수준의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단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들의 무책임한 심리가 일본 국민만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과 수많은 아시아국가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숙명적 낙관론, 그래서 비극적인 결과만 양산할 뿐인 일본의 군국주의가 독일의 나치보다 더 큰 전쟁범죄와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시정잡배 수준의 사무라이들(당시의 군부)이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전차는 물론 강남북을 연결한 한강철교도 건설한 상태였다.



이런 군국주의의 피해를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감당해야 했던 나라가, 조선왕조 500년의 찬라한 문화유산과 뛰어난 권력구조를 근대적 국민국가와 행정체제로 전환한 고종의 대한제국이자 현재의 대한민국이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추종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다양한 비전을 지니고 있던 엘리트들은 일본보다 조금 늦었을 뿐 자체적으로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견인했던 도조 히데키와 이토 히로부미, 기시 노부스케 등이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동양을 부의 원천으로 여겼던 유럽의 열강들과 러시아, 미국 등의 생각도 동일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한반도를 차지하는 국가가 미래의 제국으로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때 일본에서 정한론이 다시 등장했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주조해낸 천황의 영광 아래 아시아 국민들을 질서정연하게 위계지으려면 대한제국부터 식민지화해야 했다.

 



                                                 대한제국은 자체적인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이 일제에 의한 한반도 강제합병으로 이어졌고, 조선 500년을 근대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우리의 조상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착취와 침탈, 위대한 문화와 사회적 공동체의 파괴, 내선일체라는 조선의 일본화와 및 공교육의 질적 저하가 없었다면, 자체적인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던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를 이루었을 것은 우리의 5천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역사에서 가정을 전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통해 과거를 알아야 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일제 강제합병 36년 동안 위대했던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가 어떻게 말살됐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의해 우리의 역사와 국민성이 얼마나 왜곡되고 호도됐는지 알 수 있고,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악질적인 친일 부역자들을 지배엘리트 집단에서 걸러낼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8.14 09:41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것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낸게 아닐까라는 생각이듭니다.

    • 늙은도령 2014.08.14 10:14 신고

      그것을 하나씩 밝혀나갈 것입니다.
      그 동안 미루고 미루다 글을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2. 참교육 2014.08.14 14:54 신고

    이번에 교육부장관이 황우여도 대한민국은 1945년 건국했다더군요.
    해방 70년인데 아직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4 19:53 신고

      네, 보수 정부 7년은 정말 비극입니다.
      이들에게 역사의식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3. Konn 2014.08.16 23:33 신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파시즘을 비롯한 군국주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한국에 이식했고, 그 영향은 아직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 두 세대를 더 지나가야 그러한 멘탈리티를 청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시정잡배같은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뽑아주기 때문이며, 결국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과거의 것을 떨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친일 청산이 아닐까 싶군요.

    • 늙은도령 2014.08.18 17:24 신고

      친일파 중에 악질들이 있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지배엘리트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조중동이 그들과 손을 잡고 있어서 더욱더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만 정치권에서 걸러내면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입니다.
      헌데 지금은 대한민국이 너무 우경화되어 있어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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