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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이 금리인상에 나서기 전에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럽경제와 경착륙 조짐이 갈수록 커지는 중국경제, 잠깐 좋았다가 다시 경기둔화로 돌아선 일본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1995~1998년까지 계속됐던 개발도상국과 신흥산업국들의 경제가 파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9월 중에 강행하면 한국과 중국, 대만,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스엘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외국자본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전 세계의 실물경제는 완전히 붕괴되기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한 대공황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 내년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엘리뇨 현상의 피해(특히 농축산업)까지 더하면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전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저유가도 너무 길어지고 있어 성장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미국도 살아나고 있는 경제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 저유가 때문에 세일가스를 추출하는 대형회사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제적인 금융시장과 감시‧영상‧연예산업과 결합한 군산복합체의 폭력시장만이 호황을 누릴 수 있는데, 이들의 호황도 다른 분야의 산업들이 극도로 침체되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연준의 고민이 깊어지겠지만, 대규모양적완화를 통해 지금까지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고 강달러 전략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미국경제가 또다시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가 《신자유주의-간략한 역사》에서 지난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가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였다고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연준이 그런 연장선상에서 결정(볼커, 그린스펀, 버냉키가 그랬듯이)을 내리면 세계경제는 대공황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무제한 양적완화의 양을 줄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엄청난 액수의 돈을 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4분기 경제상장률이 3%대에 이르고, 고용지표가 완전고용에 이른다면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를 조정하기도 힘들다. 폴 볼커가 미국 중하위층의 삶을 박살내는 대가로 겨우 잡을 수 있었던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경제가 대비책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대략 4~6개월이라 정도라는 뜻이다. 이 안에 어떤 형태로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조건 부채를 줄여야 한다. 환율변동에 따른 시장개입도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가계부채는 치명적이어서 대규모 탕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중산층이 완전히 붕괴되고 하층민은 빈곤층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

현재 모든 국가의 실물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아니 냉혹하게 말하면 제로에 가깝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화석연료를 줄여하는 현실에서 석유를 대체할 수 있으며, 세계경제를 되살려낼 수 있는 획기적인 먹거리가 나오지도 않았다. 빚은 이미 지구 전체를 외계인에게 팔아도 원금도 못갚을 만큼 거대하다. 탈출의 유일한 방법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법인세 인상과 누진적 부자증세(피케티의 주장), 금융거래세의 의미 있는 인상(토빈세의 확대)뿐이다.
조세도피처에 있는 자금과 함께 지하경제와 그림자경제(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전체 GDP의 10%에 수준이 적절하다고 한다) 대한 압수, 과세, 몰수도 필요하다. 성장을 포기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공존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다. 공유경제도 활용하면 좋을 것이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답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무차별적인 성장을 포기하고, 지금보다 소비를 줄이고, 좀더 느리게 살아야 하며, 상후하박의 임금체계를 수술하고,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를 실현하고, 기본소득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차원에서 줄이고, 성장 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사회적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게 40년만 노력하면 인류에게 다시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최상의 것은 피케티가 주장한 글로벌 부유세의 도입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빚에 의존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샌더스가 되고, 민주당이 사회주의적 요소를 늘린 진보정당으로 전환한다면 혹시라도 가능할지 모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처럼 성급한 ‘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바람에 주류의 의제에서 사라진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민주주의와 동반하게 되면 세상은 지금보다 수십 배는 좋아질 수 있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적대적이지만, 사회주의는 우호적이다. 심지어는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는 동반할 수 있고, 일정 수준의 사유재산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위 1%에 맞서 대등한 토론을 벌일 수 있다면, 하위 99%에 속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시도했던 시장사회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이 성공과 탐욕, 독식을 위한 경쟁을 줄이고, 도덕‧윤리‧공존‧상생‧박애‧관용의 정신을 살리면 세상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양대 거두였던 레이건과 대처가 70~80%대의 소득세율을 20~30%대로 내리는 바람에 극단의 불평등이 일상화됐고, 세계적 차원의 대공황을 불러왔듯이, 그들이 강행했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인류는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단히 짧은 시일 안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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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 삶이 걸려있는 문제여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양당이 '노동시장 개혁'이나 '노동시장 개악'이냐를 가지고 정치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난 주에 진행된 밤샘토론을 통해 그 이유를 풀어볼까 한다.
‘노동시장 개편, 경제 살릴까?’라는 시의적절한 주제로 진행된 JTBC 밤샘토론은 유시민의 젊은 시절과 비교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논리를 보여준 조성주라는 보석의 발견을 논외로 치면, 사회적 합의에 논제를 제시하는 TV토론으로서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한계를 보여줬다. 첫 번째 한계는 토론 주제에서 나왔고, 나머지 한계는 토론자의 구성에서 나왔다.

먼저 '개혁'이나 '개악' 대신 중립적인 '개편'을 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JTBC에서 정한 토론 주제의 한계를 보면 ‘경제’라는 단어가 갖는 일방성이다. 모든 것을 시장원리에 종속시켰던 19세기의 정치‧경제‧사회 체제로 돌아가자는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정치와 사회’에서 분리된 ‘경제’라는 단어는 진보와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자본에 독점되는 것을 말했다.
정치는 세금 인하와 규제 철폐, 노조 파괴와 노동유연성,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각종 무역협상을 통해 상위 1%의 지갑을 채워주는데 혈안이 됐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파괴하고 소득의 예측가능성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 자본은 노동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노동은 두꺼운 철장 속에 갇혀버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빈곤층이 늘어나며, 저임금 비정규직의 비중이 확대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지난 40년 동안의 ‘경제’는 철저하게 상위 1%를 위한 것이었다. 경제를 살아나도 위에서부터 가져갔고, 하위 90%에게 돌아가는 몫은 정체되거나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의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죽어라고 경제를 살려봐야 하위 90%의 소득이 늘어날 보장이란 없다. 법인세와 부자 증세 같은 부의 재분배를 강화하는 것을 뺀 채 경제를 살리자는 어떤 토론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시장이 경제정의의 실현을 버리고 오로지 교환과 축적의 메커니즘만으로 돌아간다면 노동이란 대체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부 주도로 살리고자 하는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경제며, 세금을 퍼붇고 슈퍼추경까지 수혈하면서까지 '경제를 살린다'면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것부터 정하고 가야 한다. 투자되는 돈은 한계가 있기에 도움을 받은 분야의 이익을 어떻게 환수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분야에 나누어줄지 그것부터 정해야 한다.
두 번째 토론자의 한계를 보면, ‘노동시장 개편’을 통해 청년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면 이를 주도할 정부와 기업의 대표들이 나왔어야 했는데 이들이 빠졌다는 것이다. 국회가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고, 비정규직과 청년이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해도 제왕적 대통령이 귓가시라도 듣지 않는데 토론의 양과 질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통령이 패대기친 경제민주화 공약만 이행해도 청년실업 문제를 넘어 고용 없는 성장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부모세대의 정규직과 자식세대의 비정규직을 갈등과 적의로 갈라놓은 비열하고 패륜적인 여론몰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지 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공약을 파기하고 말을 뒤집기 일쑤였던 지난 2년7개월 동안의 대통령으로 볼 때, 청년실업 해결을 핑계로 노동시장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기업의 족쇄만 풀어주거나,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제실패를 노동자나 노조에게 떠넘기기 위해 유권자를 속이는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이유란 없다. 속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또다시 속을 생각은 없다.
게다가 재벌과 거대자본의 행태는 또 어떤가? 이들은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한 채 탐욕의 질주만 가속하는 집단인데, 제왕적 대통령이 아무리 레이저를 발사하고 사면카드를 남발해도 기껏해야 정부의 고용지원금(이것도 국민의 세금이다)이 나오는 1년만 유효할 뿐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청년의 일자리를 위해 이익을 희생할 기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정권이 바뀌어도 약속한 일자리 창출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도 경제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데, 토론자로서 나오지도 않았으니 토론자들이 합의에 이른다 한들 어떤 구속력도 가질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늘의 밤샘토론은 노동시장 개편과 재벌오너 사면을 위한 명분쌓기 용 대국민 공청회를 치른 것과 같다.

오늘의 밤샘토론은 (단 한 번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새누리당 의원과 법학교수를 빼면 논의 질이 높은 편이었고, 통계적 의미가 없다고 해도 청년의 간절함이 배어있는 패널들의 판정도 현실을 반영하지만, 딱 거기까지 만이다. 두 개의 한계로 인해 재미있었고 유익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토론을 감성한 정도다.
이런 이유들로 오늘의 JTBC 밤샘토론은 한 줄로 표현하면 ‘허공에 대고 외치다’로 충분할 것 같다. 지상파3사의 토론이 정부의 홍보물로 전락한 현실에서 JTBC 밤샘토론에서도 주제의 핵심 당사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 행정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야당이 노동시장 개악을 막는데 목숨을 걸어야 함이 이 때문이다. JTBC 밤샘토론 관계자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지만, 새누리당은 청년표의 일부라도 끌어들이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서를 뽑아놓은 채, ‘노동시장 개혁’을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야당이 청년일자리 창출의 발목을 잡는다는 모양새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총선 투표일까지.
이런 가운데 국정원의 사찰 논란은 잦아들 것이며, 경찰의 마티즈 폐차도 묻혀버릴 것이다. 메르스 대란의 책임을 가리는 특검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세월호 유족을 대표하는 박래군 위원장의 구속기소에서 보듯이 역행을 거듭할 것이다.
P.S. 제가 알고 있는 재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시적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익이 나오지 않는 부문을 해체하거나 팔아버리고, 합병을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먹을거리가 나오지 않고, 몇 년 안으로 터질 가능성이 높은 대공황과 갈수록 급진화되는 지구온난화 등 최악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내부유금만 늘리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요? 윗돌(임원을 제외한 부장 수준) 빼서 아랫돌(청년 비정규직) 채워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업이 추가적인 비용 지출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직원의 임금인하와 자유로운 해고가 목표입니다. 고용안정성(존엄한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실업급여, 재교육과 재취업, 복지 확대 등)이 담보되지 않은 노동시장 개악은 하위 90%의 삶을 영원한 종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최후의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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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월가의 신용대붕괴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를 비롯해 전 세계 정부가 풀어놓은 유동성 자금이 수십조 달러에 이른다. 유동성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를 담보로 미래의 부채로 떠넘겨진 이 막대한 자금은 국경을 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만이 생명(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

몇 번만 돌려도 수천조 달러로 뻥튀기되는 수십조 달러의 유동성은 월가와 런던의 주가를 신용대붕괴 이전보다 높게 끌어올린 과정에서 충분한 이익을 거뒀다. 수십억 명을 빈곤층으로 내몬 범죄자(슈퍼 투자자와 거대 금융업체)들은 처벌은 고사하고 수백 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글로벌 금융위기의 결론은 0.1%의 지배를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미국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 전 세계를 상대로 폰지사기를 남발한 미 연방정부와 월가의 추악한 동맹은 그리스 사태로 대표되는 유로존의 경제위기를 이용해 추가적인 수익을 거뒀고, 일본과 인도, 브라질 등을 거쳐 중국에 상륙했다. 올해만 32%나 폭락한 중국의 주가는 이들이 주도했고 주도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수천 배에 이르는 유동성이 한바탕 파티를 벌일 수 있는 시장은 중국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무한대의 먹거리를 제공해온 미국이라는 시장에서 최소 10년간은 광란의 파티가 불가능하다. 미국이 세일가스를 아무리 뻥튀기해도 예전 같은 호황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상 경제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한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기 전에 이들에게 마지막 파티를 제공할 수 있는 무대란 중국(과 얼음이 녹아버린 이후의 시베리아)밖에 없다. 미 연방정부보다 더 많은 달러를 가지고 있는 중국 정부와 국민의 자금력은 이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올해 초부터 중국 증시에는 실물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품을 형성할 만큼의 투기 자금이 유입됐다. 이렇게 상승장이 형성되자 눈덩이가 굴러가며 부풀어가듯, 개미와 중소형 금융업체의 자금이 대량으로 유입됐고, 실물경제와 별도로 움직이는 (그래서 반드시 터지기 마련인) 거품이 형성됐다.
이때까지는 상승장을 통해 차익 거래를 진행할 수 있었고, 한 달 전부터 폭락세가 이어지자 풋옵션에 의해 또다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정확한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없지만, 주가의 폭락세를 멈추기 위해 중국정부가 개입하기 직전에 대량의 주식매입이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풋옵션을 걸어놓은 채.

중국정부의 자금력 때문에 중국증시가 미국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신용대붕괴로 이어질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투기적인 거품의 붕괴라는 조정과정은 피할 수 없다. 중앙정부도 확인할 수 없는 지방정부의 부채들이 터질 경우에는 미국처럼 대폭락을 면할 수 없다.
문제는 증시급등락을 거듭하는 중에 사라지는 돈의 양이며, 이것이 클수록 한국경제가 받을 충격은 2008년의 신용대붕괴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의 중국의존도는 70~80년대의 미일의존도보다 높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돈줄이 말라버리면 IMF 외환위기는 어린애장난에 불과한 경제위기가 도래한다.
특히 중국도 유럽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어, 그리스 사태 이후의 유럽에 더 큰 경제위기가 도래하면 그 피해는 도미노처럼 이어져 한국과 일본, 대만을 거쳐 미국까지 파급될 것이고, 그 다음은 2008년의 재현이다. 아니, 중국을 대체할 시장이 없기 때문에 1929년의 대공황을 능가하는 미증유의 대공황이 일어날 수 있다.

중국정부가 투기자본의 분탕질을 얼마나 막을 수 있느냐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좌우할 것이다. 중국정부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금융시장 개방을 늘린다면, 그에 비례해서 공산당 중심의 국가자본주의도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런 경착륙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금융개방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거대 투기자본의 천문학적인 먹거리가 최소 10여 년은 보장되지만, 그것이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은 절대빈곤층이 5~6억 명에 이르기 때문에, 현 수준의 실물경제와 내수경제로만 13억5천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정치경제적 위기란 여러 가지가 있다.
증시폭락의 결과가 어떻게 나던 세계경제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미루고 미뤘던 구조조정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거의 모든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없으며, 이런 대공멸을 피할 수 있는 해답은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피케티, 삭스 등이 이미 제시해둔 상태다. 미국이 금리인상에 들어가기 전에 중국증시가 안정되지 못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박근혜 정부가 더욱 늘려놓은 대한민국의 가계부채,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무조건적인 충성을 표명하고 있는 콘크리트 지지층, 그놈이 그놈이라며 투표하지 않은 정치혐오층, 이를 부추기고 선동하는 기레기들, 물질의 노예가 된 수많은 소비자들, 어떤 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1%, 그리고 현 체제를 바꿀 수 없는 2015년의 우리들.
P.S. 중국의 금융위기와 그리스 사태가 아니더라도 박근혜 정부 임기의 말에는 한국경제도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부자증세와 법인세 인상을 통해 복지를 확대하지 않는 한 중하위층이 선택할 옵션이란 소비를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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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체제의 주체는 자아 최적화의 명령, 즉 더 큰 성과를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몰락해간다. 힐링은 킬링으로 귀결된다.
ㅡ 한병철의 《심리정치, 신자유주의 통치술》에서 인용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그것이 도를 넘는 수준에 이르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나부터 잡아가라’며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을 압박하는 박근혜 정부의 폭력에 저항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을 가로막는 정부의 폭력은 세월호특위에 관한 시행령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원인과 본질을 제대로 숙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확정된 프레임에 있습니다.
철저하게 박근혜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그래서 가장 정치적인 '세월호 프레임‘의 핵심이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역설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치적인 요인을 배제하면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려면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결과인 부의 불평등이 위험의 불평등과 빈곤시장을 창출한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21세기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 나오는 내용으로 출발해 보겠습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급속도로 증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부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최상위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는 반면 빈자들, 특히 최하위 빈자들은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더군다나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진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체제에 포획된 전 세계에서는 파시즘적 속도로 하위층과 빈곤층이 늘어났습니다. 국가의 경제규모가 12위에 올라 선 대한민국에서도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삶의 존엄성도 유지하기 힘든 하위층과 빈곤층이 양산됐습니다.

그 비율이 전체 국민의 50%를 넘나들 만큼 커지자, 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이윤창출이 가능할 정도의 빈곤시장이 구축됐습니다. 이른바 ‘빈곤의 거버넌스’라고 하는 신자유주의의 먹거리가 또 하나 생긴 것입니다(필립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을 참조).
동시에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설파했듯이 성장일변도의 신자유주의적 폭주는 경제성장의 폐해인 각종 위험을 중하위층에 집중시켰습니다. 폭증하는 위험에서 벗어날 방법이란 없습니다. 이렇게 빈곤시장과 위험의 전가가 만나는 지점에 세월호 참사가 자리합니다.
폐선이 됐어야 할 배를 일본에서 헐값으로 사들여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 침몰한 것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이명박 정부는 각종 규제를 풀어준 것이고, 새누리당이 다수인 국회는 이에 동조했고, 박근혜 정부는 ‘줄푸세’를 내세워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즉 세월호 참사는 몇 십 년에 걸친 정치적 결정들이 쌓여서 일어난 참극입니다. 자본에 유리하도록 규제를 푸는 것을 넘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업무를 민영화하고, 법인세 인하와 부자감세를 통해 재난대책에 투입될 재정마저 고갈시킨 정치적 결정들이 쌓여서 일어난 참극입니다.
참사의 본질이 이러함에도 진상규명을 위한 정치적 접근을 배제하면, 그래서 현 집권세력이 세월호 참사를 산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세월호 참사는 자본의 탐욕과 해수부 마피아, 특정 종교를 매개로 한 사악한 집단이 일으킨 해상교통사고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 정부여당에 철저하게 유리하게 설정된 세월호 프레임 때문에 야당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시민단체나 국민들도 정치적 접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 개조는 불가능해졌습니다.

혁명을 제외하면, 정치적 힘이 받쳐주지 않는 국민저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입법‧사법‧언론을 독점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의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것에 빨간색을 치할 수 있게 됩니다, 자유와 정의, 진실과 도덕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늘 그렇게 해왔듯이.
참극이 일어난 날부터, 세월호 참사라면 지겹다고 말하는 정서가 조금씩 세를 넓혀가고 있는 지금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인양을 해야 하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나옵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빨갱이를 넘어 체제를 전복하려는 폭력적인 집단으로 호도되기까지 합니다. 인양에 드는 비용은 아무런 소득도 없는 대통령의 해외순방비용만 전용해도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인양을 위한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 것은 정부를 움직이게 만드는 정치적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이루어진 일들은 힐링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루어진 것이 힐링입니다. 세월호 유족과 생존학생들을 위해 힐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정치적 접근이 배제됐기 때문에 힐링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에서 힐링은 권력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기에 킬링으로 귀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유족에게는 잔인하겠지만, 침몰의 순간부터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국민이 방송의 생중계와 숱한 오보행진 속에 속절없이 죽어갔는데도 진상규명의 첫 발을 떼는 것도 힘들어졌는지 하나하나 분석하고 재구성해야, 참사의 백만분의 1이라도 만회할 수 있습니다.
P.S.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힐링을 부추기는 이유와 그것이 자기 자신의 킬링으로 몰아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것입니다. 힐링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 힐링이 넘쳐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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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3차합의를 통과시킨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이상 진보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당신들이 말하는 진보의 가치란 무엇이며, 정치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당신들은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모였는가, 아니면 정권을 잡아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취하기 위해 모였는가? 아니면 지역구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돼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기 위해서 모였는가?

당신들은 정치적 기득권이 되기 위해 새정연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보수 경제학자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을 '세습자본주의'라고 비판하는 데도 현재의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것인가? 도대체 몇 명의 국민이 죽어야, 정부의 무능과 기업의 탐욕, 종교의 일탈, 관료의 타락, 부와 권력의 세습, 차별의 공고화,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 법 앞의 불평등을 방관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고 상호 결합돼 민주주의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빈곤층을 양산하고, 결과의 불평등이 중세 봉건사회의 수준으로 퇴행하는 것에 침묵할 것인가? 당신들이 그렇게 열렬히 구애를 하고 있는 중도와 합리적 보수란 대체 무엇인가? 이념적 정체성을 버리면 집권이 가능하고, 불평등이 줄어드는가?
민주주의가 인류가 선택한 지배적 체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폭력적 혁명을 포기한 좌파가 민주적 절차(파업과 집회가 최대치며, 불복종은 모든 권리와 목숨을 걸어야 한다)를 통해 모든 자유의 기초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기회와 조건의 평등을 최대화하기 위해 진보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념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방법을 민주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란 주권재민과 1인1표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공평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적용이 전제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어떤 박탈과 배제보다 비참한 빈곤에 빠지지 않을 때, 권리가 없어 물질로 취급되는 노예의 상태에 빠지지 않을 때 작동할 수 있다.
철저한 자유의지에 의해, 인간의 기본권과 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좌파의 이념을 민주적으로 계승한 진보가 제 역할을 못하면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퇴행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져 ‘세습자본주의’가 일반화되면 어떤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누가 어떤 식으로 떠들어대던 진보는 기득권의 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확대에 매진하는 것이 진보의 가치고 존재의 이유다. 304명의 국민이 얽히고설킨 기득권의 탐욕에 목숨을 잃은 것이 세월호 참사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특별법 제정이란 기득권의 정치놀음으로 변질된 대의민주주의를 믿을 수 없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수많은 정치경제학자들이 현대의 민주주의가 1인1표가 아닌 1원1표로 퇴행했다고 지적하고 경고한다. 극소수의 기득권이 ‘세습자본주의’를 통해 봉건시대의 귀족계급처럼 특권화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갈수록 많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너무 커져 현대의 민주주의를 특권화된 기득권의 과두정치에 비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명확한 증거다. 세월호 유족과 수많은 국민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특별법에 찬성을 표한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서라도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보수화된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를 믿을 수 없어 아우성을 친 것이었다.

헌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를 사퇴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났다. 중도보수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지 진보적 가치가 사라진 보수화된 거대 정당의 계파정치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민주주의에서 진보적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턱없이 부족한 인식만 보여준 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내년에 해도 이미 늦을 만큼 늦어 있어서, 몇 달 뒤로 미룬다고 304명의 국민들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유족과 수많은 국민이 원했던 것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였지 정치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운 보수화된 거대 양당의 야합이 아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이상 진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도 말라. 진보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도 말라. 계층과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져 사회이동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 대변한다고 말하지도 말라. 온갖 불평등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진보가 죽으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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