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라투슈의 《탈성장사회-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를 보면 소비사회에서 학교와 교육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탈성장’은 이반 일리치와 카스토리아디스, 장 피에르 뒤피 등이 개념화한 것으로, 경제주의, 경제 성장, 공급주의와 빚의 경제학 등이 만들어낸 지속 불가능한 소비사회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생태주의 시민운동입니다.





많은 분들이 현재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는데, ‘탈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육과 학교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합니다. 이들은 각종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신질환과 만성질환, 자살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인류의 공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대지의 사막화, 물 부족 등을 초래하는 소비사회로부터 벗어나려면 교육과 학교가 전복적일 만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려서부터 TV와 스마트폰, PC, 야외광고판 등의 고도로 첨단화된 상업광고에 노출되는 아이들은 학교에 진학해서도 미디어에 노출되고, 경제성장과 소비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 회로가 단절되고, 유도된 욕구를 즉각적으로 해소해야만 - 욕구는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므로 과소비와 소비중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살아갈 수 있는 소비자(=생산자)로 키워집니다. 학교와 교육이 모두 다 점령당한 것이며, 그래서 세르주 라투슈는 《탈성장사회-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주체 형성을 기조로 하는 학교는 일조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학교는 현재 모습 그대로의 사회, 즉 경제 성장과 치열한 경쟁을 중심 가치로 하는 이 사회에 청소년들을 적응시켜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드시 나아가야 할 사회 - 탈성장 사회 - 를 준비하도록, 즉 소비주의적인 파괴에 저항하는 능력을 지닌 시민의 형성을 위해 청소년을 교육해야 하는 것인가. 학생은 장차 지적이고 혁명적인 실업자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소외된 생산자=소비자, 즉 ‘문명화된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학생은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질서를, 적어도 그 가장 유해한 측면을 극복하거나 깨뜨리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이용하고 발달시키는 동시에 사회에 최소한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 있어서 학교 제도 - ‘사회 질서에 종속을 조장하는 요소와 해방을 촉구하는 잠재적 요소가 동거하고 있는 제도’ - 의 책임은 어떤 것일까. 교육자에게 요구되는 곡예 같은 훈련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반 일리치의 신랄한 비판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교육은 ‘고용 가능한’ 노동자의 양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경제, 경제 성장, 소비라는 이름의 종교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의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소수 엘리트가 극히 생산적으로 변해가고 대다수 대중은 규율을 준수하는 소비를 배울 필요가 있는 사회에서 학교는 그 사회의 일부가 된다.” 


시장 민주주의의 퇴폐함은 필연적으로 제도의 타락을 초래한다. 오늘날 학교는 경제 성장이라는 종교를 전파하고 진보에 대한 믿음을 주입시킨다. 유치원부터 대학 그리고 평생 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 제도의 공식적인 일부는 상식을 벗어난 초대형 기계를 위해 원활하게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만든 것이다(이반 일리치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와 《성장을 멈춰라》,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고민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탈출구를 모색하고 실천하며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탈성장’의 모토가 대안의 모색이 아닌 대안의 모태이듯이, 다양한 형태의 대안교육들이 미래를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울리히 벡이 경고한 대로 우리는 ‘초위험사회’에 돌입해 있고, 신자유주의는 그런 위험사회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탈취의 체제입니다. 지배엘리트를 구축하는 상위 1%가 9% 정도에 이르는 체제의 간수의 도움을 받아 하위 90%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언론의 소유와 함께) 교육과 학교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한 현 체제를 비폭력적으로 전복하려면, 교육과 학교의 중심인 교사들이 분명한 시대적 이해와 사명,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소비자 육성 세력과 사고력을 저하시키는 기술에 저항해야 합니다.” 교육과 학교가 차별을 공고히 하는 지배의 수단과 장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더 이상 미루면 기회는 없습니다.





성장과 대규모 개발, 과학기술의 고삐 풀린 폭주, 타락한 정치의 직무유기, 진보의 낙관론, 자연의 풍요를 자원의 희소성으로 탈바꿈시킨 경제학(극소수에게 무한대의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해준 경제학)이 창출한 문명의 역설이 '초위험사회'로 귀결된 지금, 인류가 6번째 종말에서 탈출하려면 우리의 인식이 급진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성장을 얘기하는 것은 지독히 무책임한 것이며, 공멸의 순간을 앞당기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진 자들이야 그렇게 해서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싶겠지만, 그 과정에서 배제되고 버려지고 죽어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탈성장'과 '성장 없는 풍요'의 긴급성과 전면성에 대해 얘기하고 떠들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9.14 08:26 신고

    숫자 놀음 하는 성장..
    피부에 와 닿는건 없습니다
    도대체 뭐가 성장인지..

    • 늙은도령 2015.09.14 17:06 신고

      지금은 성장이 아닌 파괴입니다.
      성장보다는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먼저입니다.
      망가진 지구를 살리는 것도 시급하고요.

  2. 앨리스 2015.09.14 09:34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 너무나 공감되고 걱정되고 걱정되는 시대입니다.
    도령님의 추천으로 읽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주더군요.
    실제 요즘 아이들은 생각을 귀찮아 하고 많이 하지 않아요 그것이 가장 충격적이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4 17:08 신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인간은 진화의 산물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나갑니다.
      교육도 거기에 맞춰 아이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제발 무엇이 인간의 미래를 바꿀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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