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서성(陝西省) 남부에 자리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종남산! 짙은 황혼이 종남산 너머로 서둘러 지친 몸을 거두려 할 때, 그곳에 있는 구대문파의 중의 하나, 종남파(終南派)에 족히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종남파 문인들이 황혼에 젖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절명의 상흔이 비슷해 불과 몇 사람에 의해 당한 것 같았다. 문파의 위엄을 드러내는 종남파의 현판은 이미 두 동강이가 난 채 땅에 널브러져 있어 종남파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종남파 곳곳에서 사람이 죽은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고 문파의 수장이 있는 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퍽! 스윽!

크악! 커억!



장문실 쪽에서 계속해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천마성과 복마전에서처럼, 치열한 접전이 아닌 일방적인 도륙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종남파에 닥친 위기는 절체절명임에 틀림없었다.



“크크크… 모두 허접한 것들. 태을신수(太乙神手) 종재기, 네가 장문 놈이냐?”



지옥의 열두 개 힘 중 한 명인 오(五)마황 벽력마존(霹靂魔尊) 전기령이 마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한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가 음성에 공력을 실지 않았음에도 듣는 사람은 그 본연의 마기에 기혈이 흔들릴 정도였다. 종남파의 장문이자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종재기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장문 사형의 명호를 함부로 지껄이느냐. 네가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그의 마성에 얼굴을 찡그리며 종남파 이대(二代) 장로인 태을분광이검(太乙分光二劍) 추성호, 추성우 형제가 동시에 외쳤다.



“컬컬컬컬!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그래 어떻게 죽일 건데.”



전기령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디 한 번 죽여보라는 듯이 아예 목을 길게 내밀었다. 두 손도 늘어뜨린 것이 저항도 하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상대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야합!”

“멈추게. 사제. 자네의 상대가 아니네.”



종재기는 추성호가 행동하기 전에 그의 말을 잘랐다. 추성호가 막 몸을 날리려다, 멈춰 섰다. 사형이기에 앞서 장문의 명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그 자체로 마의 현신, 승산이 없다는 사실은 추성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상대는 어떻게 해본다는 것이 씨도 먹히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지만, 명문정파의 장로로서 죽음을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클클, 똘마니 대장이라고 보는 눈은 있네. 허나, 입은 달렸다고 다 말하라는 것은 아니지.”



전기령은 종재기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늘어뜨렸던 오른손으로 벌레를 쫓는 것처럼 작은 원을 그렸다. 빠르지만 설렁설렁 하는 것이 무슨 어린 아이의 옹알이처럼 단순했는데, 순간 원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하나의 권경이 느닷없이 격발됐다.



그와 거의 동시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추성호의 입 부분이 뻥 뚫렸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종재기가 권경이 격발되는 순간 그것을 막으려 장품을 발사하려고 했고, 추성호도 그러려 했으나 그것은 생각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끝 부분에는 생각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슉!



그제야 권경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종재기와 추성호는 그런 속도를 믿을 수 없었으나, 잘 드는 칼로 도려낸 듯 매끄러운 구멍이 추성호의 코밑에 생겼다. 이어서 덜컥! 하더니 조금 남은 그의 턱이 빠지는 증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추성호가 자신의 생을 서있는 상태에서 마감했다. 그리고 천천히 추성호의 몸이 뒤로 무너져 내렸다. 장문인 종재기도, 동생인 추성우도 얼굴이 뒤로 젖혀지고, 무릎이 꺾이면서 뒤로 쓰러지는 추성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쿵!



한 방의 권경, 뒤를 이은 하나의 소리, 하나의 죽음과 바닥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를 끝으로 추성호가 생을 마감했다. 코밑이 뻥 뚫린 채 턱이 빠진 사람이 돼 흘리는 것이 침인지 피인지 모를 상태로 마치 장난치듯 전기령이 흔든 손에 종남파의 장로가 즉사했다.



너무 간단해서,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고, 극도로 허망했다. 대 종남파의 장로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극도의 분노와 당혹,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왔다.



“형님! 형님!!”



추성우가 짚단처럼 쓰러진 추성호의 몸을 안았다. 친형의 몸을 안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으으… 이놈! 용서하지 않겠다.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내 손으로!!”



추 장로의 절명을 그저 옆에 서서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던 종남파의 장문인 종재기도 그 순간만큼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뚫고나오는 자신의 음성에 살의(殺意)의 감정을 실었다. 물러날 곳이 없다면 구대문파의 일원답게 그렇게 산화하는 것이 나으리라. 허나, 상대는 차원이 다른 마인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아. 이렇게 하려고?”



전기령이 종재기의 말은 무시한 채 추성우의 말에만 응대하며 이번에는 왼손을 한 바퀴 돌렸다. 조금 전보다 빨리 원을 그렸지만, 아무리 봐도 대강대강 돌리는 것 같았다. 그 작은 동작에서 어떤 심오한 무공의 원리를 떠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어린 아이의 손짓 같음에야.



하지만 여지없이 권경이 발사돼 추성우를 향했고 예외 없이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도 그때야 들렸고, 이번에는 추성우의 안면에 미간을 중심으로 주먹 한 개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뒤로 핏빛 종남산의 경치가 붉게 보였고, 그 위로 뇌수가 낙엽처럼 흩어져 얼핏 보였던 경치를 덮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추성우의 몸을 안고 있던 추성우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것으로 태어난 것은 1년의 차이가 있었지만 갈 때는 말 몇 마디 차이만 둔 채 두 형제가 동시에 쓰러지며, 이승을 떠났다.



“네, 이노옴! 죽어라. 살!”



두 장로의 죽음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본 종재기가 신형을 날리며 전력을 다해 전기령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극도의 분노가 그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지, 절정 경공에 의해 떠오른 것과 차이가 났다. 극도의 분노가 몸을 지배하자, 당연히 경공의 속도가 평상시보다 떨어졌다. 종재기는 순간적으로 무술의 초자나 하는 형편없는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태을무형검에 최대한 공력을 싣는 것 이외에 선택할 것이 없었다. 허나, 전기령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였다.



“컬! 너라고 다를 것 없지. 클클클!”



말할 때마다 마기가 출렁거리는 귀소(鬼笑)를 터뜨리며 전기령의 오른손이 이번에는 앞의 것보다 조금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그의 주먹이 출발한 곳에서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 원으로 완성되는 순간, 권결이 격발됐다. 바람을 가르며 공간을 압축하는 듯한 권경이 종재기와의 거리를 뭉툭뭉툭 잘라냈다.



슉! 슉.



소리가 하나 더 들렸고.



퍽!! 크윽!



권경에 무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동시에 전기령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푸시시시..



강력한 권경과 다른 무엇이 부딪쳤는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물에 의해 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일대종사 ㅡ 구글이미지



‘어라? 이건 뭐야?’



전기령이 듣기에 종재기의 머리통을 날리는 권경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작은 충돌음을 냈다. 그렇다고 그 충돌음을 일으킨 것이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과 자신의 권경이 부딪쳐 일어난 것임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러질 듯 저려오는 통증이 손목을 타고 온몸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경마저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가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게 그거였던 종재기의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이 자신의 가슴을 강타했다는 것이었다. 종재기의 검이 금강불괴지신을 한참 넘긴 자신의 몸을 뚫지는 못했으나, 안중에도 없던 종남파 무공이 자신에게 제법 큰 통증을 가하자, 전기령은 허접한 무공에 당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육체의 아픔보다 자존심을 더욱 건드렸다. 자신의 권경을 무력화시킨 자에 대한 두려움과 또 한 번의 신음과 함께.



“크윽!”



가슴에 가해진 충격에 두 발에 힘을 주었지만, 발목이 바닥에 박힌 채로 서너 걸음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기령은 상황을 단 번에 바꿔버린 미지의 상대를 향해 마기와 분노가 풀풀 넘치는 소리로 강력하게 외쳤다. 하지만 전기령은 미지의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올 정도로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냐?!! 내 권경을 막은 놈이!”



전기령이 종재기 너머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커지는 상대를 보고 외쳤다. 그의 음성에는 분노와 광호함이 묻어있었지만, 두 눈에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드러났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렇게 먼 거리에서, 내 권경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해 죽은 종남파 문인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너를 벌해 죽은 영혼을 위로함으로써 내 미안함을 덜려 하는, 나는.”



분명 점에서 나온 말은 백 장 밖에서 들렸는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기령 앞에 하나의 신형이 나타났다.



"검무영이라 한다."



전기령이 보기에 그는 아무리 봐도 약관도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헌데,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도란, 초마인의 기도에 뒤지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눈빛과 서있는 자체가 하늘을 닮아, 보는 이의 영혼마저 시리도록 푸르게 만드는 그 품위란,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엄청난 기도야! 게다가 분명 백 장 밖이었어. 내 권경을 그 정도 거리에서 무력화시킬 자가 있다니? 절대 불가능한 일이거늘, 손목과 팔이 너무 저려.이 자의 기도는 내 마기마저 약화시키고 있어. 이 정도의 이르려면.. 아. 뭐라 했지, 이름이? 검.. 무영.. 검? 검!!'



“검.. 무영? 너, 너.. 혹시?”

“시간이 없어서.”

“헉! 크악!”



전기령은 자신의 앞으로 내려선 상대에게 엄청날 정도의 기도를 느꼈고, 형언키 어려운 두려움이 일었으며, 상대의 성이 검이라는 것에 천상천이 떠올랐는데, 그래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려 했던 것인데 상대의 주먹이 자신의 눈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권?'



그 주먹 끝에 하나의 권경이 격발돼 자신의 미간과 입술 사이의 공간에 엄청난 통증을 일으키며 그대로 가격됐다.



'경? 내가 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코를 중심으로 주먹 크기만큼의 구멍이 뻥 뚫렸다, 추성호와 추성우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휭! 하니 바람도 시원하게 그 구멍으로 불었다.



“네가 그 위와, 그 아래를 두 분에게 했기 때문에, 그것을 동시에 벌하려 나는 네 놈의 코 부위를 선택했지. 그래야 공평해서. 너무 허무하게 당한 것에 대해서는 지옥에 가면 알게 될 거야. 원래 역천마곡은.. ”



단 한 수에 전기령을 지옥으로 다시 돌려보낸 후 무영이 돌아섰다. 무영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류심환 아저씨에게서 전해오던 영혼의 울림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도 설렁설렁 했어, 전기령처럼!'



종재기는 그제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검무영이라는 존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장문인,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최대한 서둘렀는데.. 아무튼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네? 네? 네.. 저야.. 그래주시면..”



종재기는 지금의 상황들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마인들이 나타나 일방적 살육을 벌였고, 자신의 처소까지 쳐들어와 종남파를 무림에서 사라지게 만들기 직전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천년 전의..



“호.. 혹시? 자네는.. 아니 대협은..?”

“삼영! 종남파에 침입한 나머지 역천마곡의 잔당들을 처단해줘. 상황이 급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면 안 될 것 같아.”

“존명!!”



삼영으로서의 첫 임무에 들뜬 준영이 큰 소리로 무영에게 답했다.



“알았어, 형. 빨리 끝낼게.”



철용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했다. 순간 준영이 공적인 자리에서 무영에게 반말로 답한 철용을 죽일 듯 째려보며 몸을 날렸다. 한성은 ‘아차’ 하며 자신이 철용에게 주의를 주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철용이 너무 움츠려 들지 않도록 철용에게 눈을 한 번 찡긋거린 후,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준영이 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철용은 준용의 눈빛에 조금 움찔했다가 한성의 위로에 다시 기운을 내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의 중간인, 무영이 내려선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다 죽었어.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야지.’



철용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기를 부렸다. 그는 병을 달고 살았기에 이 순간의 떨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더욱 호기를 부려야 했다. 이렇게 무영이 맡은 남쪽을 빼고, 동서북으로 한 명씩 삼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한 이각쯤 흘렀을까, 철용이 상대를 향해 외치는 기합이 마지막으로 들렸다.



“에이, 시시해. 이게 뭐야.”



철용이 마지막 침입자를 제거한 후 실망한 듯 말했다. 철용은 첫 번째 실전이고, 자신의 주위에는 고수들만 있어 다른 무인들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 고정관념이 있었다. 철용은 그가 이루어낸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몰랐던 것이다. 비교의 대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삼혼의 무공이 얼마나 위대한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종남파에서 벌어지던 일방적 도륙은 정반대의 결과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장문인, 저는 검무영이라 합니다.”



무영은 종재기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의 예를 취했다. 종재기는 그제야 마인들이 역천마곡 후예들이며, 이들을 제거한 청년들이 천상천의 후예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협! 이 고마움을 어떻게…”

“아닙니다. 제가 늦었는데요. 일단 수습을 하시는 것이.”

“아? 아! 네. 그래야죠. 그래야죠. 아. 아. 그리 해야… 하지요.”



그때, 쿵!



그것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오래 버티고 서있던 전기령이 제법 강한 바람이 불자, 그제야 썩은 나무처럼 뒤로 넘어가며 땅과 부딪쳐 만들어낸 소리였다. 몸의 나이는 천 살이 넘었으나 잠들어 있던 시간이 거의 구백육십 년에 이르러 실제 살아있던 기간은 사십 년에 불과한 지옥의 다섯 번째 힘, 전기령이 너무나 허무하게 영원히 잠들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대성했고, 그것을 하나로 합친 무공까지 익힌 무영의 상대로는 전기령의 무공은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단상 같은 전기령의 마지막 생각 하나가 종재기의 생각과 함께 종남파를 떠나지 못한 채 맴돌았다.



‘정말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 흉수는 전설의 마인인데 단 한 초였어.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또 누구야? 천상천은 일인전승의 문파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만 종남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대부분의 문인이 죽었으니..’



비로소 현실의 참담함을 파악한 종재기의 생각이 이러했고.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천년을 누워만 있다 이제 막 일어났는데.. 게다가 저놈이 펼친 권경은, 제기랄. 내 것이야!!’



죽어서도 미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전기령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1. 태봉 2014.09.29 21:58

    잘 읽었습니다
    오늘 제이티비 2부에 보니 강준만 교수가 나와서 인텨뷰 하던데
    낼 2부에 나와서 나머지 인텨뷰 방송한다던데, 저는 보니 잘 모르겠네요
    혹시 안 보셨으면 낼 보시고 강준만 교수의 인텨뷰 평좀 해주세요^^

    • 늙은도령 2014.09.29 22:36 신고

      '새정연과 진보정당이 몰락한 세 번째 이유ㅡ1'에 짧게 언급했습니다.
      '진보세력의 몰락과 부활을 위해'이 사실 저 나름의 진보진파이며, 미래의 진보를 위한 제언업니다.
      거기에 썼던 것처럼, 내일 강주만 인터뷰 2부를 보고나서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류심환은 속혼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난 후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지난 1년간의 속혼의 노력이 한 눈에 보였고 그 내용의 충실함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심환이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이 천상천과 연관돼 일어나고 있는 예상치 못한 강호의 움직임이었다.



‘이것까지는 예상치 못했는데, 결국.. 비궁에 들어가라는 뜻일까?’



류심환은 1 년간의 기록 중 마지막의 내용에 대해 속혼에게 물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천상천이 은둔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속혼이 보기에 어떤 연유가 있는 것 같습니까?”



그는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속혼으로부터 상세한 자초지정을 듣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그에게 먼저 물었다.



“네, 그들은 은둔의 형식을 유지한 채 무림통일을 노리는 작전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들어났고 있습니다. 보신 것처럼 천상천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열두 제마령(制魔靈)이 그 예입니다. 역천 시 검강인에 의해 금제 당한 채 지하 감옥에 있었는데 그 중 세 명이 사라졌습니다. 거의 6개월 동안 그들의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3인 중 한 명인 오(五) 제마령 장지영이 무당의 태극도인이 돼 있었습니다. 완벽한 변신이어서 무당 내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두 명의 제마령은 …”



류심환이 들어도 속혼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검강인은 겉으로 은둔의 율법을 지키면서도, 암중에서 현 무림의 주요 문파의 핵심인사를 제마령들로 대체하면서 무림통일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은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천하통일을 이루려는 암계라 할 수 있었다. 음지에서 검강천을 상대로 역천을 이룩해낸 그다웠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흡혈차능대법에 의해 완전하게 금제당한 나머지 아홉 명의 제마령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 같습니다. 현 무림의 나머지 거대문파에 이들을 침투시킬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지난 1년간의 천상천 감시에 대한 속혼의 보고가 끝났다. 그의 보고가 충격적이었던 만큼 검강인의 묘계는 제갈량에 못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검강인.. 생각보다 뛰어난 자네요. 천상천의 특기인 은둔을 활용한 천하제패라.. 하나같이 암중에서 진행되는 것이 그답기는 하네요. 그런데 이 보고서에 그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설마 그가 속혼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무공을 지닌 상태인가요?”



류심환은 속혼의 보고서 상에 나온 내용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강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자, 이에 대해서 물었다.



“주군! 제 능력의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폐관에 들 상황도 아니어서 어떤 특별한 무공수련을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천상천의 일은 그의 심복이자 동생인 부천주 검강궁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전 천주의 정실인 금미령 태후가 이를 돕고 있었습니다.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렸지만 제 능력 밖이어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속혼도 류심환처럼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속혼은 검강인과 관련된 사항을 주군에게 구두 보고를 드린 뒤, 주군에게 다른 계획이 없다면 그에 대해 좀 더 정밀한 탐색을 할 생각이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 부분은 좀 더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이제부터 역천마곡에 대해 이야기 해 보죠. 먼저…”



그렇게 류심환의 질문과 속혼의 보고는 한 시진을 넘겼고, 그의 보고 내용에는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류심환과 삼혼의 논의는 두 시진을 넘어 계속됐다. 불혼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목이 계속 지근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도혼은 무영의 성취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 논의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특히 그는 미리 계획하고 탐색하고, 이런 것들을 너무 싫어하는 까닭에 일이 닥치면 그때 고민해도 된다는 식의 낙관파여서 무영의 수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천상천을 아예 쓸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불혼은 불혼대로 무영의 성취가 눈앞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무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도혼보다 더했다.



특히 역천마곡은 아예 그들의 관심 밖이라 도혼의 지루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불혼도 속혼의 보고가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눈은 속혼의 입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귀는 무영의 처소를 향해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 천이통을 극대화시킨 상태였다, 벌레 하나 움직여도 알 수 있을 만큼.



조금만 더 보고가 길어지면 낮에는 자신의 목이 돌아갔는데 밤에는 자신의 귀마저 돌아갈 판이었다. 낮에 다 돌아가지 않은 목 근육이 안달이 난 채 불혼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불혼과 도혼은 그만큼 무영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 무영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손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은 류심환이 그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밤새도록 강호의 정세를 살펴보고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시죠. 이참에 무영이 강호에 나가 가장 효율적으로 부모의 복수를 하고, 천상천주에 오르는 방안까지 논의하도록 하십시다. 필요하다면 밤도 새죠.”

“알겠습니다, 주군.”



속혼은 이렇게 답했지만, 불혼의 반응은 달랐다. 도혼도 마찬가지였다.



“네, 밤을 새서요?”

“밤까지.. 논의하자고요?”

‘으아, 주군! 살려주세요!'



불혼과 도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최대한 힘겨우면서도 피곤하고 가련한 눈빛으로 류심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류심환은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한 채 한술 더 떠 말했다.



“왜요? 아! 하룻밤 가지고는 너무 짧아서 그런가 보네? 좋습니다, 무영을 위해 완벽한 안이 나올 때까지 논의해 보죠.”

류심환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도혼이 하룻밤이 아니라 몇 날이라도 새자는 류심환의 말에 표정이 급격하게 구겨졌다.



'며칠 밤을? 어.. 이를 어째? 무영이 성취를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은데.. 정말 돌아버리겠네. 불혼, 저 놈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무영을 그렇게 감싸고돌더니만 지금은 왜 꿀 먹은 벙어리 행세야!!!’



도혼은 최대한 구겨진 표정의 얼굴로, 최대한 살기를 담아 불혼을 노려봤다. 전설의 도끼눈이 바로 이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야, 사제! 나라고 별 수 있어. 니 눈에는 안 보여? 내 안면도 점점 돌아가고 있는 거!! 무영의 성취를 아무리 알고 싶다고 해서, 주군이 하자는데 별 수 있어? 야, 꼴 보기도 싫은 눈 돌리지 않고 뭐해!!!'



이번에는 도혼을 째려보는 불혼의 두 눈이 도끼눈이 됐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 중에 부딪치는 것이 난형난제며 용호상박이었으되, 최고의 진상이었다. 두 사람은 주군이 뭐라 하던 둘 간의 눈싸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구? 그래, 잘났다! 낮에는 목 돌아가고, 밤에는 안면 돌아가서. 넌 좋기도 하겠다, 그 나이에 뭐 그리 돌아갈 것이 많은지!!'



도혼의 눈빛과 표정이 불혼에게 그렇게 말했고.



'도혼.. 이 노옴! 네 놈의 두 눈을 그냥 확!! 목 돌아간 것도 아파 죽겠는데!! 그래, 나 이제 뇌도 돌아버렸다! 너, 얘기만 끝나면 내 손에 죽었어! 네 놈의 나이에 죽도록 맞다, 비참하게 죽도록 만들어주마! 살고 싶으면 당장 네 놈이 말해! 당장 말이야!!!’



불혼이 도혼보다 더한 도끼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도혼이 아니더라도 지금 불혼의 도끼눈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싸움이 이어지다, 성질이 급한 도혼이 참지 못하고 류심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헌데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주군!! 논의를 꼭!”

‘헉, 이게 아닌데?’

“네? 논의를 꼭? 꼭, 뭐요?”

“너, 이놈 도혼!! 주군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네가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류심환이 자신의 실수 때문에 당황해버린 도혼을 향해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소리를 높였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동시에 도혼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에 깜짝 놀란 불혼이 얼른 끼어들어 도혼을 야단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꼭, 뭐가 아니라.. 죽으려고 환장해서.. 아, 아니.. 야! 불혼, 너.. 죽으려고 환장했냐고? 그래, 환장했다! 네 놈이 주군께 말하라고 시켰잖아?”

“네가 언제? 난 가만히 있었는데, 뭔 소리야??”

“네 놈이 눈으로.”

“눈으로? 사람이 어떻게 눈으로 말해? 게다가 난 눈도 작은데?"

“하하하, 두 분도 참.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내일 전체적인 제 구상을 말씀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가셔서 무영을 보세요. 하하하하!”



류심환이 예의 그 청아한 소리로 웃었다. 이렇게 농담을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영의 성취가 생각보다 빠르고 그의 조력자가 될 아이들도 왔고, 삼혼도 다 모여서 그런지 농담이 다 나왔다. 불혼과 도혼의 표정이 그의 웃음소리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주군의 웃음만 들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자신들이 주군의 농에 당했지만, 주군이 이렇게 농담도 하고 한껏 웃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주군의 웃음은 그들에게 마약과 같았다.



아니, 마약이었다. 도혼이 곧바로 중독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휭! 하는 소리만 남긴 채 도혼이 자신의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혼의 말은 그 뒤에 들렸다.



“주군, 감사합니다. 소신의 무례함은 나중에 이 가련한 늙은 몸으로 무려 세 끼의 밥을 굶는 엄청난 형별로 대신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오늘 한 번만 봐주십시오. 그럼… 무영아! 나, 지금 너에게로 간다!!”



그렇게 휑한 바람만 남기고 한참은 멀어진 도혼의 소리에 이어 그 다음은 당연히 불혼의 몫이었다. 그 역시 중독이 심했던 모양이다.



"주군, 죄송합니다. 오늘의 무례함, 두고두고 갚아나가겠습니다. 주군,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영아, 나도 간다!!"



무영으로 하여, 불혼과 도혼의 하루하루가 회춘으로 가는 길이었다. 평생을 천외천의 후계자를 찾아다녔고, 그 이후로는 후계자인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해본 그들에게 무영의 등장은 끝이 없는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이번에는 속혼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허허허, 무영을 사랑하는 두 분의 마음이란. 허허. 그래요, 그래. 아,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발굴했습니까? 속혼이 보기에 아이들의 어떤 점이 무영과 궁합이 맞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난 무영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어디에 살아? 속혼 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났어? 응, 너는 또 이름이 뭐야?”



무영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만큼 세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물었다. 무영의 입에서는 질문들이 연속해서 나왔고, 아직도 묻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무영은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천상천이 아닌 곳에서 그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무영은 이런 날이 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상천 천주의 후계자로 태어나 궁내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 보기만 했지, 살갑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곳에서 도망치던 날에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이곳에 와서 복수의 날만을 다짐하며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을 뿐,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이런 질문들을 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다, 이 적막한 곳에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한성이야. 우와, 근데 네 질문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말하지? 아, 그래! 내 나이는 열세 살이야. 너는?”



무영의 눈에 도혼이 어렸다면 바로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아이가 무영의 질문에 답했다.



“아… 한성이 네 이름이었구나. 근데, 나보다 한 살 많네. 그럼, 나보다 형이네!”



무영이 탄성을 지르며 한성에게 말했다.



형이다.

나에게 형이 생길 수 있다.



“어.. 나는 철용이라고 해. 열한 살이니까, 내가 제일 어리네. 무명 형은 열다섯이고. 야, 이제 형만 셋이네! 무명 형, 형은 어때?”



속혼을 닮은, 그러나 왠지 약해 보이는 철용이 말했다. 그는 먼저 무영을 보고 말한 뒤 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철용의 질문에 무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까딱였다.



“어? 무명이 이름이야? 난 무영인데. 비슷하네. 그럼, 무명이 형이 제일 연장자네? 내가 셋째고?”



무영이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 불혼을 쏙 빼 닮아 더욱 믿음이 가는 무명에게 물었다.



“형이란 말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름이 없어서 그냥 무명입니다. 하대하십시오. 저희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영 도련님.”



무영을 향해 꾸벅 포권의 예를 취한 무명이 자신들과 무영의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이것은 또한 철용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기도 했다. 열다섯이란 나이도 있었지만, 그는 이미 속혼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다. 무영은 신화에 속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짧았지만 강호 경험도 있었고, 소림이나 무당 같은 명문 출신은 아니나 위계질서의 엄중함은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기에 무영과의 간격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게다가 얼핏 봐도 무영에게서 느껴지는 성취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무영은 자신과 두 아이의 주인이 될 사람이었고, 여러 모로 봐도 무영의 성취는 자신들과 차원이 달랐다.



“아니.. 그러지 마. 난 그런 거 싫어. 그냥 형, 동생으로 지내. 난 그게 좋아. 응, 형아.”



무영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천상천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고 반드시 돌아갈 것이지만,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외톨박이는 정말 싫었다. 주변에 사람은 넘치도록 있었지만 천상천에서 그는 늘 외로웠다.



“안됩니다, 도련님. 너희들도 일어나서 도련님께 예를 갖춰라, 어서.”



무명이 완강하게 무영의 뜻을 거부하며 두 아이에게 명령했다. 그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아이가 일어섰다. 그들의 눈은 그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 또한 결코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속혼에게서 무영에 대한 말을 들었기에, 당연히 이 부분에 있어 지독할 정도로 분명한 선을 그었다. 무명은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러지마.”



무영이 짧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한성과 철용이 반쯤 일어난 자세에서 멈췄다. 무명의 눈빛도 흔들렸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러지마. 나 그거, 너무 싫어. 정말 내가 주인이라면 같이 있을 때는 그러지마. 부탁이야, 내 말대로 해줘. 응, 무명 형.”



그것은 무영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어린 시절 천상천의 생활 속에서 그의 마음에 쌓여 점점 한처럼 굳어져 가던 무영의 슬픈 영혼이 그 고독했음을 말하는 소리였다.



“…”



무명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주인이 될 사람의 말이 너무나도 깊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외로움의 깊이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왔고 그 깊이를 자신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짧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억겁 같은 시간이 흘렀다. 무영의 시선이 일겁에서 시작해 육겁을 돌아 무명의 시선과 다시 만났다. 그 길고 찰나 같은 고독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두 어린 영혼의 울림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무명이 말했고.



“정말!!”



한성과 철용이 동시에 외쳤으며.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꼭!”



무영의 한이, 그 외로움의 응어리가 화답했다.



"야호!! 무명 형! 한성 형! 철용아, 만나서 반가워. 우리 잘 지내자."



무영의 영혼이, 그 깊었던 고독이 세월이 풀려나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나에게도 형과 동생이 생겼다.

가족 같은 친구가 생겼다.

처음으로 내게도 또래의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이곳에 한 명이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무영의 시선이 삼 년 전의 어느 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시선의 언저리에 아이 하나가 떠올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아, 우리 그냥 친구하면 안 돼?”



혜준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 아이는 대장로 심윤환의 손녀로 자신보다 한 살 어렸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반달 같은 아미와, 하늘의 별을 갖다 놓은 것 같은 눈망울과 알맞게 높은 콧날, 너무 앙증맞아 자꾸 손이 가려 하는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과 갸름한 턱 선에서 이어지는 길고 투명한 목을 가진 그 아이는 무영이 천상천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였다.



혜준은 뛰어난 미모를 지녔음에도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천상천 궁인들과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그를 모두 좋아했다. 그런 혜준이 자신에게 다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심 대장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혜준을 당장이라도 폐관에 처했을 일이었지만, 그렇게 예쁜 혜준이가 다가와 자신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와 친구하자는 아이가 생겨 너무나 기뻤다. 그것이 천의 규범에 어긋나다 해도 혜준이 먼저 친구하자 했고, 그것이 너무나 고맙고 마음에 들었다.



그날, 봄날의 햇살이 이마에서 따사로웠고

귀밑을 스쳐가는 바람은 어머니의 손길 같았다.

몇 안 되는 구름은 갈 곳이 있는지 서둘러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 또 다른 구름이 기웃거렸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러 핏줄이 보일 만큼 투명했다.

그 푸르른 날에 혜준이 햇살보다 빛나는 웃음으로 다가와

자신과 친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혜준이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들이 세 명이나 생겼다. 무영은 그것이 너무나 기뻤고, 한편으로는 한 아이가 그리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 날 새벽, 류심환이 다시 삼혼을 불렀다.



“비궁에 들 것입니다. 속혼이 데려온 철용의 병을 고친 후 들어갈 것입니다. 참, 아이들의 명호는 삼영(三影)이 좋겠는데 어떠신지요?”



류심환이 삼혼에게 담담하게 말했지만 밤새 고민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말하는 품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들이 듣기에 주군이 마치 봄나들이 가듯 비궁에 잠깐 다녀올 것 같았지만, 그것은 강호의 역사를 뒤바꿀 만한 엄청난 얘기였다.



“비궁이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도혼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김없이 그의 말이 세 중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불혼은 그 중간쯤에 있어 도혼이 물은 말이 목젖에 걸렸고, 속혼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네, 비궁에 들 것입니다. 해서 몇 가지 당부드릴 것도 있고 해서. 헌데 표정을 보니 삼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잔잔히 웃으면서 류심환이 삼혼을 향해 분명하게 비궁이라 말했다.



“아, 비궁이요? 아이들 명호로는 너무나 적절한 것… 아, 아니, 죄송합니다 주군. 비궁.. 아니.. 삼영, 마음에 쏙 듭니다. 들고말고요. 삼영! 최고네요, 최고!!”



류심환의 농담에 도혼이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비궁이란 단어가 갖는 중요성은 삼혼에게 절대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들어가실 모양이야. 주군이 운명에 정면으로 맞설 모양이야. 마침내.. 마침내..'



마구 흔들리는 불혼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도혼은 이미 눈물을 떨어뜨릴 판이었다. 속혼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군이 비궁이라 말했고, 비궁이란 단어를 말하면서도 주군이 담담하게 웃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주군이 자신들에게 연이틀 농을 걸어온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럼, 아이들 명호는 삼영으로 정하고요. 무명은 불혼의 이름을 따서 준영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려 했던 말은 다름이 아니라…”




  1. 태봉 2014.08.30 22:09

    늙은 도령님의 블로그에는 소설과 시와 그림과 평론?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어머니,어머니...ㅋ그냥 저의 맘^^''ㅋ 여러가지가 어우려져 맛을 내는 비빔밥같습니다 제가 비빔밥을 좋아합니다^^ㅋ

    • 늙은도령 2014.08.31 01:56 신고

      저도 그 점 때문에 고민입니다.
      몇 개의 블로그로 나눌까도 고민 중인데, 천검지로 같은 소설과 시는 이미 써놓은 것이고, 제 블로그가 너무 딱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다양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에 관한 글도 접할 수 있도록 하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람도 있습니다.
      골라먹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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