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사천성(四川省) 내 서부의 명산으로 유명한 아미산. 그곳엔 구파일방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 수백 년에 이르는 아미파(峨嵋派)가 있다. 헌데, 달빛 교교한 이 한밤에 수백 년 여승들의 성지(聖地)가 흔들리고 있다. 대웅전은 이미 함락됐고 복호사(伏虎寺)마저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휘익! 퍼억! 꺄악!



여기저기서 연속적으로 비명이 터졌다. 한 번의 병장기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한 명의 여승에게서 생을 달리하는 비명이 터졌다. 한 시진 전에 아미파에 들이닥친 침입자들은 한 칼에 한 명만 죽이는(一擊一殺) 살인놀이를 하고 있었다.곳곳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비구니의 승복이 찢기고 하얀 살점이 돼지고기 썰리듯 잘려나갔고,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침입자의 살수(殺手)에는 추호의 인정도 없었다. 여승의 유방이 뭉툭뭉툭 잘려나가고, 온 몸이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지거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고 있었다. 일격일살의 일방적인 도륙을 통해 살인놀이를 하고 있는 자들의 수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천하의 아미파의 여승들이 단 세 명의 침입자에게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크하하하! 비구니라도 여자의 피를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군! 아깝지만, 할 수 없지. 켈켈켈.”



침입자는 오직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 듯 잠시의 멈춤도 없이 잔인한 살수를 펼쳤다. 그렇게 그는 또 다시 아미파 여승들을 무 배듯 쓸어가면서 살인이 주는 쾌감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그는 목을 밴 여승을 뒤로 한 채 공포에 질려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는 또 한 명의 여승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흐흐흐, 셋째! 옷이라도 벗긴 다음 죽이는 게 어때? 살인도 좋지만 눈요기 한 후에 죽여도 늦지 않잖아?”



맹렬하게 여승을 도륙하던 삼 사마령 수라마군(修羅魔君) 필귀가 둘째 사형의 얘기에 귀가 쫑긋거렸다. 방금 휘두른 검에 30대로 보이는 여승의 머리가 경악한 상태에서 목과 분리되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잠시 동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사형, 그런 방법이 있었구려! 크흐흐흐. 고것 참.”



생각과 동시에 벌써 번뜩이기 시작한 필귀의 눈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여승을 발견했다. 삼십 대 초반과 중반으로 보이는 여승들은 번뜩이는 필구의 눈을 보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검을 든 손으로 가슴과 아랫배를 가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치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허나, 그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필귀의 욕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삼십대 물 오른 여승의 나체가 필귀의 눈에 아른거렸다.



“호오, 이렇게 보니 고년 제법인데. 크흐흐흐.”



필귀는 두꺼운 승복을 뚫고 그 안에 있는 여승의 나신을 떠올리며 음소를 흘리더니, 삽시간에 여승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는 왼손을 뻗어 두 여승을 향해 금나수를 펼쳤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금나수는 두 여승이 필사적으로 펼친 아미파의 비전무공인 소청신공(小淸神功)을 무력화시키며 여승들이 입고 있는 도복 깃을 낚아챘다.



“안돼! 이 살인마!”

“놓지 못해 이 손! 앗! 꺄악!”



두 여승은 자신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몸에서 도복이 벗겨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것도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던 속옷과 함께. 필귀의 금나수에 의해 삼십대 물오른 여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단 한 번의 남자관계도 없이 무공에 전념한 여승들은 유방의 형태도, 아랫배도 십대 후반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다리는 군살 하나 없는 것이 물오른 십대를 능가할 정도로 탄력이 넘쳐보였다.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가꿔온 그녀들의 나신이 파랗게 질려 오히려 수정처럼 투명해 보였다.






“오호라! 이거야 이거!! 젊은 처자라도 이만하겠어. 크크크, 잘 봤어. 너무 탐스러워 아깝지만, 그래도 살인이 주는 쾌감만은 못하지. 크크크크!!”



그의 음흉한 눈빛이 전라 여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살의로 물들어갔고, 잠시 동안 멈춘 살수를 다시 펼치려 할, 바로 그때.



“거기까지만.”



백장 정도 밖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엔 역천마곡의 마기로 키워온 필귀의 마력(魔力)을 억누르는 상극 같은 불력(佛力)이 들어 있었다. 필귀는 가공할 불력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느 놈? 헉!’



필귀가 소리가 시작된 백장 밖을 바라본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앞으로 내려서는 늙은 땡초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불혼이었다.



‘땡초? 너무 빨라!’

“넌, 누구.. 헉!”



필귀는 소리의 주인공이 늙은 중이며, 그의 경공이 가히 빛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헌데 상대가 자신의 앞에 내려서자마자 다짜고짜 손을 뻗자, 필귀는 헛바람을 켜며 상대의 수를 막아야 했다. 상대의 공격은 단순했지만, 그 빠름이 상상을 불허했다.



“핫!”



필귀는 오른손을 뻗어 귀곡탈혼장을 펼쳤다. 귀곡의 소리가 들리면 상대의 목숨을 뺏는다는 귀곡탈혼장은 역천마곡의 장풍 중 가장 빠른 것 중에 하나였다.



“너의 악행이 너무 커, 지옥으로 돌려보내니.”



불혼은 필귀가 펼친 귀곡탈혼장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불력이 담긴 손날로 필귀의 천령개를 내려쳤다. 그것은 마치 손목이 날아가도 괜찮다는 듯이 무모하기 그지없는 공격처럼 보였다.



“크하.. 헉!”



필귀는 상대의 손목이 귀곡탈혼장의 위력에 잘려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의 손날이 그리는 선을 따라 귀곡탈혼장에 담겨있는 마력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가서 네 죄를 씻어라.”



필귀의 놀람과 불혼의 말이 교차하면서 하나의 소리가 일었다.



퍼억!



필귀는 자신의 천령개에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수천 배는 넘을 듯한 강한 통증을 느꼈다. 필귀는 천령개가 박살나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으로 퍼진 그 통증이 말해주는 것은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였다.



“크악!!”



필귀는 언제나 상대에게서만 들었던 최후의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헌데 그의 마지막 생각과는 달리 불혼의 손날은 필귀의 천령개에서 머리 한 올 떨어진 상태로 멈춰 있었다. 대신 그의 손날에서 나온 불력이 필귀의 뇌를 파쇄시켰다. 불혼은 필귀의 머리를 산산조각낸 것이 아니라, 천령개를 통해 뇌를 파쇄시킬 만큼의 불력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필귀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선수를 뺏겼어. 아쉽지만 네놈들이라도. 이 짐승보다 못한 후랑당말코 같은 놈들아!”



도혼은 잠시 다른 곳을 보느라 자신보다 두 걸음 먼저 현장에 도착한 불혼이 필귀를 제거하자, 선수를 놓쳐버린 것이 억울해 나머지 두 놈은 자신의 몫이라고 목을 박았다. 속혼이 한 명을 맡기 전에 자신이 두 놈을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선이 착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도혼은 불혼의 등장과 필귀의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한 두 명의 사마령을 향해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뭔 소리야? 어, 어..’

‘자신이 신선이란 거야? 피해야 해!’



이(二) 사마령 혼마지존(魂魔至尊) 유결과 구(九) 사마령 금륭마왕(金輪魔王) 갈소풍은 필귀를 단 한 수로 죽인 자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 늙은 도장이 상상을 불허하는 속도로 날아오자 경공을 펼쳐 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상대의 공격에 대비해 최고의 절초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유결과 갈소풍은 비마귀혼을 펼쳐 상대의 공격권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력과 상극을 이루는 기운이 온몸을 둘러쌓고 있어서 운기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설마?’

‘정말로 저자가 신선인가?’



유결과 갈소풍은 두 눈 가득 불신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력과 신선의 기운이 상극이어서, 상대가 펼친 것이 압도적인 신선의 기운이라면 역천마곡의 마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은 알고 있었다. 상극의 기운이 만나면 쌍소멸하기 마련이지만, 한 쪽의 힘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면 약한 쪽의 기운은 작동하지 못한다.



‘천상천주는 아닌데?’

‘곡주와 비교해도..’



유결과 갈소풍은 가늠하기도 힘든 불력과 전설에나 존재하는 신선의 기운을 가진 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웠다. 전설의 천상천주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무인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렸다. 어쩌면 이들은 역천마곡주와 맞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고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결과 갈소풍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자가 눈앞에 내려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죽음이라는 놈이 어슬렁거렸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상대의 정체가 더욱 궁금했다.



“신선도 열 받으면, 나처럼 하기도 해.”



도혼이 유결과 갈소풍의 앞에 내려섰다, 마치 거기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어떻게 죽을래? 세 가지 중에 골라. 눈을 깜빡일 수 있을 테니, 내가 제시하는 세 가지 죽음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눈을 깜빡이는 숫자로 말해, 알았지?”

‘뭐라고? 죽음을 선택하라고?’

‘이 새끼가, 정말!’

“속으로 열불을 내고 있는 것 느껴지지만, 그냥 듣고 선택해. 많이 봐준 거니까. 첫 번째, 죽을 때까지 한 곳만 맞는 것. 두 번째, 죽을 때까지 두 곳만 맞는 것. 세 번째, 죽을 때까지 세 곳만 맞는 것.”

‘야, 이 개 같은 신선아! 그게 그거잖아!!’

‘이.. 이.. 이 자식이!!’

“속으로 욕하는 거 아니까, 그냥 눈이나 깜빡여. 안 그러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도 추가할 거니까, 알았어?”

‘뭐,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추가하겠다고? 이 새끼가 정말!’

‘이런 지랄 같은 놈이!! 헌데, 운기가 안 돼. 아무리 시도해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으니,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추가한다. 내가 원래 친절해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자세히 말해주마.”



그렇게 도혼과 유결과 갈소풍의 일방적인 실랑이가 일각 정도 계속됐다. 불혼이 도중에 ‘당장 끝내지 못해! 다른 곳도 가봐야 하잖아!’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면 도혼의 장난은 계속될 수 있었다.



“에이, 알았어! 야, 시간이 없어서 두 번째로 정했어. 이마와 사타구니!”

‘뭐, 사타구니? 야, 그냥 한 방에 죽여!!’

‘으아아아악!! 이노오오옴!! 죽어서도 너를 죽여 버릴 테다!!!!’



유결과 갈소풍은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하는 비명을 수없이 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도혼은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간 여승들을 대신해 유결과 갈소풍을 벌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다 익히지 못한 것이 있어. 시신부터 수습하시죠.”



불혼이 처참하게 도륙된 비구니와 여승의 시신들을 돌아보며 아미파 장문인에게 말했다. 종남파에 이어 아미파도 멸문지화는 면했지만, 그 피해가 너무 커서 재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속혼은 이미 시신들을 수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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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생각보다 몇 수 위야.”



무영이 종남파에서 오마황 전기령을 처단할 때, 대웅전 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하나의 신형이 말했다.



“천년 만에 무림에 나왔지만 이런 놈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어. 이것만 봐도 제천의 판단이 부족했다는 게 확실해. 검무영, 저 놈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잘못된 거야.”



하나의 신형은 상상을 뛰어넘는 무영의 무공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일환을 불러 깨우라 지시했던 육경의 셋 번째인 삼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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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감시자가 있어. 삼혼 할아버지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아. 은신술은 그 이상이고. 천년 배후가 모습을 드러냈어. 아저씨의 예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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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역시 아미파 내 복호사에서 30장쯤 떨어진 높이의 대기가 흔들리더니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삼혼의 능력이 이렇게 강해다니? 삼혼지문은 제천의 함정일 텐데?”



육경 중에서 네 번째인 사경이 삼혼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환이 말해준 것보다 삼혼의 무공은 몇 수는 위였다. 지난 천년 동안 제천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들이 없었다면, 삼혼이 보여준 무공은 그의 감시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천의 감시에 착오가 있어. 최초의 삼혼도 이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 돼. 무공의 깊이가 너무 차이가 나. 뭔가 잘못됐어. 혹시 삼경 쪽도 상황이 비슷하다면, 보통일이 아니야. 뭔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어.”



사경은 현 시대의 삼혼을 바라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하늘 밖의 힘으로 천년을 잠들어 있는 동안 제천도 파악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최소한 삼혼에 관한 한 천년의 감시는 완벽하지 않았다. 일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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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놈이 있는 것 같아.]

불혼이 도혼과 속혼에 전음을 보내며 눈동자로 사경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도혼과 속혼도 감시하는 자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불혼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주군의 예상이 정확했어. 천년의 전설은 거짓이야.]

[주군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선대의 삼혼처럼 천년의 거짓에 속은 채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네요.]

[제기랄! 지난 80년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 기간이 무려 천년이라니! 대체, 이 거지 같은 천년 전설의 진실이 뭐야?]

[그러게 말이야. 천년 전설의 진실이 뭐기에 그 오랜 동안 무림 전체가.. 허허허.]

[주군이 그렇게도 저희를 구속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년 전설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이유가 너무 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거짓을 숭배하며 살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간 거야.]

[지금도 속고 있잖아! 제기랄!! 천년의 전설,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내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네, 그래야죠.]

[그래, 우리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천년 전설의 거짓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었으니 진실을 밝혀낼 책임이 있어. 무림을 무림인에게 돌려주려면 반드시 밝혀내야 해.]

[그래,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보자. 천년 전설을 이따위로 만든 놈이 누구인지.. 제기랄!!!] 


  1. 하늘꽃 2014.10.04 07:37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심환은 속혼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난 후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지난 1년간의 속혼의 노력이 한 눈에 보였고 그 내용의 충실함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심환이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이 천상천과 연관돼 일어나고 있는 예상치 못한 강호의 움직임이었다.



‘이것까지는 예상치 못했는데, 결국.. 비궁에 들어가라는 뜻일까?’



류심환은 1 년간의 기록 중 마지막의 내용에 대해 속혼에게 물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천상천이 은둔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속혼이 보기에 어떤 연유가 있는 것 같습니까?”



그는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속혼으로부터 상세한 자초지정을 듣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그에게 먼저 물었다.



“네, 그들은 은둔의 형식을 유지한 채 무림통일을 노리는 작전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들어났고 있습니다. 보신 것처럼 천상천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열두 제마령(制魔靈)이 그 예입니다. 역천 시 검강인에 의해 금제 당한 채 지하 감옥에 있었는데 그 중 세 명이 사라졌습니다. 거의 6개월 동안 그들의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3인 중 한 명인 오(五) 제마령 장지영이 무당의 태극도인이 돼 있었습니다. 완벽한 변신이어서 무당 내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두 명의 제마령은 …”



류심환이 들어도 속혼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검강인은 겉으로 은둔의 율법을 지키면서도, 암중에서 현 무림의 주요 문파의 핵심인사를 제마령들로 대체하면서 무림통일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은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천하통일을 이루려는 암계라 할 수 있었다. 음지에서 검강천을 상대로 역천을 이룩해낸 그다웠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흡혈차능대법에 의해 완전하게 금제당한 나머지 아홉 명의 제마령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 같습니다. 현 무림의 나머지 거대문파에 이들을 침투시킬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지난 1년간의 천상천 감시에 대한 속혼의 보고가 끝났다. 그의 보고가 충격적이었던 만큼 검강인의 묘계는 제갈량에 못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검강인.. 생각보다 뛰어난 자네요. 천상천의 특기인 은둔을 활용한 천하제패라.. 하나같이 암중에서 진행되는 것이 그답기는 하네요. 그런데 이 보고서에 그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설마 그가 속혼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무공을 지닌 상태인가요?”



류심환은 속혼의 보고서 상에 나온 내용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강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자, 이에 대해서 물었다.



“주군! 제 능력의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폐관에 들 상황도 아니어서 어떤 특별한 무공수련을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천상천의 일은 그의 심복이자 동생인 부천주 검강궁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전 천주의 정실인 금미령 태후가 이를 돕고 있었습니다.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렸지만 제 능력 밖이어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속혼도 류심환처럼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속혼은 검강인과 관련된 사항을 주군에게 구두 보고를 드린 뒤, 주군에게 다른 계획이 없다면 그에 대해 좀 더 정밀한 탐색을 할 생각이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 부분은 좀 더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이제부터 역천마곡에 대해 이야기 해 보죠. 먼저…”



그렇게 류심환의 질문과 속혼의 보고는 한 시진을 넘겼고, 그의 보고 내용에는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류심환과 삼혼의 논의는 두 시진을 넘어 계속됐다. 불혼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목이 계속 지근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도혼은 무영의 성취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 논의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특히 그는 미리 계획하고 탐색하고, 이런 것들을 너무 싫어하는 까닭에 일이 닥치면 그때 고민해도 된다는 식의 낙관파여서 무영의 수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천상천을 아예 쓸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불혼은 불혼대로 무영의 성취가 눈앞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무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도혼보다 더했다.



특히 역천마곡은 아예 그들의 관심 밖이라 도혼의 지루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불혼도 속혼의 보고가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눈은 속혼의 입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귀는 무영의 처소를 향해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 천이통을 극대화시킨 상태였다, 벌레 하나 움직여도 알 수 있을 만큼.



조금만 더 보고가 길어지면 낮에는 자신의 목이 돌아갔는데 밤에는 자신의 귀마저 돌아갈 판이었다. 낮에 다 돌아가지 않은 목 근육이 안달이 난 채 불혼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불혼과 도혼은 그만큼 무영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 무영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손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은 류심환이 그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밤새도록 강호의 정세를 살펴보고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시죠. 이참에 무영이 강호에 나가 가장 효율적으로 부모의 복수를 하고, 천상천주에 오르는 방안까지 논의하도록 하십시다. 필요하다면 밤도 새죠.”

“알겠습니다, 주군.”



속혼은 이렇게 답했지만, 불혼의 반응은 달랐다. 도혼도 마찬가지였다.



“네, 밤을 새서요?”

“밤까지.. 논의하자고요?”

‘으아, 주군! 살려주세요!'



불혼과 도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최대한 힘겨우면서도 피곤하고 가련한 눈빛으로 류심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류심환은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한 채 한술 더 떠 말했다.



“왜요? 아! 하룻밤 가지고는 너무 짧아서 그런가 보네? 좋습니다, 무영을 위해 완벽한 안이 나올 때까지 논의해 보죠.”

류심환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도혼이 하룻밤이 아니라 몇 날이라도 새자는 류심환의 말에 표정이 급격하게 구겨졌다.



'며칠 밤을? 어.. 이를 어째? 무영이 성취를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은데.. 정말 돌아버리겠네. 불혼, 저 놈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무영을 그렇게 감싸고돌더니만 지금은 왜 꿀 먹은 벙어리 행세야!!!’



도혼은 최대한 구겨진 표정의 얼굴로, 최대한 살기를 담아 불혼을 노려봤다. 전설의 도끼눈이 바로 이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야, 사제! 나라고 별 수 있어. 니 눈에는 안 보여? 내 안면도 점점 돌아가고 있는 거!! 무영의 성취를 아무리 알고 싶다고 해서, 주군이 하자는데 별 수 있어? 야, 꼴 보기도 싫은 눈 돌리지 않고 뭐해!!!'



이번에는 도혼을 째려보는 불혼의 두 눈이 도끼눈이 됐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 중에 부딪치는 것이 난형난제며 용호상박이었으되, 최고의 진상이었다. 두 사람은 주군이 뭐라 하던 둘 간의 눈싸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구? 그래, 잘났다! 낮에는 목 돌아가고, 밤에는 안면 돌아가서. 넌 좋기도 하겠다, 그 나이에 뭐 그리 돌아갈 것이 많은지!!'



도혼의 눈빛과 표정이 불혼에게 그렇게 말했고.



'도혼.. 이 노옴! 네 놈의 두 눈을 그냥 확!! 목 돌아간 것도 아파 죽겠는데!! 그래, 나 이제 뇌도 돌아버렸다! 너, 얘기만 끝나면 내 손에 죽었어! 네 놈의 나이에 죽도록 맞다, 비참하게 죽도록 만들어주마! 살고 싶으면 당장 네 놈이 말해! 당장 말이야!!!’



불혼이 도혼보다 더한 도끼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도혼이 아니더라도 지금 불혼의 도끼눈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싸움이 이어지다, 성질이 급한 도혼이 참지 못하고 류심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헌데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주군!! 논의를 꼭!”

‘헉, 이게 아닌데?’

“네? 논의를 꼭? 꼭, 뭐요?”

“너, 이놈 도혼!! 주군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네가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류심환이 자신의 실수 때문에 당황해버린 도혼을 향해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소리를 높였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동시에 도혼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에 깜짝 놀란 불혼이 얼른 끼어들어 도혼을 야단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꼭, 뭐가 아니라.. 죽으려고 환장해서.. 아, 아니.. 야! 불혼, 너.. 죽으려고 환장했냐고? 그래, 환장했다! 네 놈이 주군께 말하라고 시켰잖아?”

“네가 언제? 난 가만히 있었는데, 뭔 소리야??”

“네 놈이 눈으로.”

“눈으로? 사람이 어떻게 눈으로 말해? 게다가 난 눈도 작은데?"

“하하하, 두 분도 참.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내일 전체적인 제 구상을 말씀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가셔서 무영을 보세요. 하하하하!”



류심환이 예의 그 청아한 소리로 웃었다. 이렇게 농담을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영의 성취가 생각보다 빠르고 그의 조력자가 될 아이들도 왔고, 삼혼도 다 모여서 그런지 농담이 다 나왔다. 불혼과 도혼의 표정이 그의 웃음소리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주군의 웃음만 들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자신들이 주군의 농에 당했지만, 주군이 이렇게 농담도 하고 한껏 웃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주군의 웃음은 그들에게 마약과 같았다.



아니, 마약이었다. 도혼이 곧바로 중독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휭! 하는 소리만 남긴 채 도혼이 자신의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혼의 말은 그 뒤에 들렸다.



“주군, 감사합니다. 소신의 무례함은 나중에 이 가련한 늙은 몸으로 무려 세 끼의 밥을 굶는 엄청난 형별로 대신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오늘 한 번만 봐주십시오. 그럼… 무영아! 나, 지금 너에게로 간다!!”



그렇게 휑한 바람만 남기고 한참은 멀어진 도혼의 소리에 이어 그 다음은 당연히 불혼의 몫이었다. 그 역시 중독이 심했던 모양이다.



"주군, 죄송합니다. 오늘의 무례함, 두고두고 갚아나가겠습니다. 주군,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영아, 나도 간다!!"



무영으로 하여, 불혼과 도혼의 하루하루가 회춘으로 가는 길이었다. 평생을 천외천의 후계자를 찾아다녔고, 그 이후로는 후계자인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해본 그들에게 무영의 등장은 끝이 없는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이번에는 속혼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허허허, 무영을 사랑하는 두 분의 마음이란. 허허. 그래요, 그래. 아,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발굴했습니까? 속혼이 보기에 아이들의 어떤 점이 무영과 궁합이 맞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난 무영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어디에 살아? 속혼 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났어? 응, 너는 또 이름이 뭐야?”



무영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만큼 세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물었다. 무영의 입에서는 질문들이 연속해서 나왔고, 아직도 묻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무영은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천상천이 아닌 곳에서 그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무영은 이런 날이 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상천 천주의 후계자로 태어나 궁내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 보기만 했지, 살갑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곳에서 도망치던 날에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이곳에 와서 복수의 날만을 다짐하며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을 뿐,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이런 질문들을 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다, 이 적막한 곳에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한성이야. 우와, 근데 네 질문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말하지? 아, 그래! 내 나이는 열세 살이야. 너는?”



무영의 눈에 도혼이 어렸다면 바로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아이가 무영의 질문에 답했다.



“아… 한성이 네 이름이었구나. 근데, 나보다 한 살 많네. 그럼, 나보다 형이네!”



무영이 탄성을 지르며 한성에게 말했다.



형이다.

나에게 형이 생길 수 있다.



“어.. 나는 철용이라고 해. 열한 살이니까, 내가 제일 어리네. 무명 형은 열다섯이고. 야, 이제 형만 셋이네! 무명 형, 형은 어때?”



속혼을 닮은, 그러나 왠지 약해 보이는 철용이 말했다. 그는 먼저 무영을 보고 말한 뒤 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철용의 질문에 무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까딱였다.



“어? 무명이 이름이야? 난 무영인데. 비슷하네. 그럼, 무명이 형이 제일 연장자네? 내가 셋째고?”



무영이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 불혼을 쏙 빼 닮아 더욱 믿음이 가는 무명에게 물었다.



“형이란 말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름이 없어서 그냥 무명입니다. 하대하십시오. 저희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영 도련님.”



무영을 향해 꾸벅 포권의 예를 취한 무명이 자신들과 무영의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이것은 또한 철용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기도 했다. 열다섯이란 나이도 있었지만, 그는 이미 속혼으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다. 무영은 신화에 속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짧았지만 강호 경험도 있었고, 소림이나 무당 같은 명문 출신은 아니나 위계질서의 엄중함은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기에 무영과의 간격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게다가 얼핏 봐도 무영에게서 느껴지는 성취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무영은 자신과 두 아이의 주인이 될 사람이었고, 여러 모로 봐도 무영의 성취는 자신들과 차원이 달랐다.



“아니.. 그러지 마. 난 그런 거 싫어. 그냥 형, 동생으로 지내. 난 그게 좋아. 응, 형아.”



무영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천상천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고 반드시 돌아갈 것이지만,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외톨박이는 정말 싫었다. 주변에 사람은 넘치도록 있었지만 천상천에서 그는 늘 외로웠다.



“안됩니다, 도련님. 너희들도 일어나서 도련님께 예를 갖춰라, 어서.”



무명이 완강하게 무영의 뜻을 거부하며 두 아이에게 명령했다. 그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아이가 일어섰다. 그들의 눈은 그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 또한 결코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속혼에게서 무영에 대한 말을 들었기에, 당연히 이 부분에 있어 지독할 정도로 분명한 선을 그었다. 무명은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러지마.”



무영이 짧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한성과 철용이 반쯤 일어난 자세에서 멈췄다. 무명의 눈빛도 흔들렸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러지마. 나 그거, 너무 싫어. 정말 내가 주인이라면 같이 있을 때는 그러지마. 부탁이야, 내 말대로 해줘. 응, 무명 형.”



그것은 무영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어린 시절 천상천의 생활 속에서 그의 마음에 쌓여 점점 한처럼 굳어져 가던 무영의 슬픈 영혼이 그 고독했음을 말하는 소리였다.



“…”



무명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주인이 될 사람의 말이 너무나도 깊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외로움의 깊이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왔고 그 깊이를 자신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짧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억겁 같은 시간이 흘렀다. 무영의 시선이 일겁에서 시작해 육겁을 돌아 무명의 시선과 다시 만났다. 그 길고 찰나 같은 고독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두 어린 영혼의 울림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무명이 말했고.



“정말!!”



한성과 철용이 동시에 외쳤으며.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꼭!”



무영의 한이, 그 외로움의 응어리가 화답했다.



"야호!! 무명 형! 한성 형! 철용아, 만나서 반가워. 우리 잘 지내자."



무영의 영혼이, 그 깊었던 고독이 세월이 풀려나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나에게도 형과 동생이 생겼다.

가족 같은 친구가 생겼다.

처음으로 내게도 또래의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이곳에 한 명이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무영의 시선이 삼 년 전의 어느 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시선의 언저리에 아이 하나가 떠올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아, 우리 그냥 친구하면 안 돼?”



혜준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 아이는 대장로 심윤환의 손녀로 자신보다 한 살 어렸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반달 같은 아미와, 하늘의 별을 갖다 놓은 것 같은 눈망울과 알맞게 높은 콧날, 너무 앙증맞아 자꾸 손이 가려 하는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과 갸름한 턱 선에서 이어지는 길고 투명한 목을 가진 그 아이는 무영이 천상천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였다.



혜준은 뛰어난 미모를 지녔음에도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천상천 궁인들과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그를 모두 좋아했다. 그런 혜준이 자신에게 다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심 대장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혜준을 당장이라도 폐관에 처했을 일이었지만, 그렇게 예쁜 혜준이가 다가와 자신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와 친구하자는 아이가 생겨 너무나 기뻤다. 그것이 천의 규범에 어긋나다 해도 혜준이 먼저 친구하자 했고, 그것이 너무나 고맙고 마음에 들었다.



그날, 봄날의 햇살이 이마에서 따사로웠고

귀밑을 스쳐가는 바람은 어머니의 손길 같았다.

몇 안 되는 구름은 갈 곳이 있는지 서둘러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 또 다른 구름이 기웃거렸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러 핏줄이 보일 만큼 투명했다.

그 푸르른 날에 혜준이 햇살보다 빛나는 웃음으로 다가와

자신과 친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혜준이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들이 세 명이나 생겼다. 무영은 그것이 너무나 기뻤고, 한편으로는 한 아이가 그리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 날 새벽, 류심환이 다시 삼혼을 불렀다.



“비궁에 들 것입니다. 속혼이 데려온 철용의 병을 고친 후 들어갈 것입니다. 참, 아이들의 명호는 삼영(三影)이 좋겠는데 어떠신지요?”



류심환이 삼혼에게 담담하게 말했지만 밤새 고민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말하는 품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들이 듣기에 주군이 마치 봄나들이 가듯 비궁에 잠깐 다녀올 것 같았지만, 그것은 강호의 역사를 뒤바꿀 만한 엄청난 얘기였다.



“비궁이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도혼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김없이 그의 말이 세 중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불혼은 그 중간쯤에 있어 도혼이 물은 말이 목젖에 걸렸고, 속혼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네, 비궁에 들 것입니다. 해서 몇 가지 당부드릴 것도 있고 해서. 헌데 표정을 보니 삼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잔잔히 웃으면서 류심환이 삼혼을 향해 분명하게 비궁이라 말했다.



“아, 비궁이요? 아이들 명호로는 너무나 적절한 것… 아, 아니, 죄송합니다 주군. 비궁.. 아니.. 삼영, 마음에 쏙 듭니다. 들고말고요. 삼영! 최고네요, 최고!!”



류심환의 농담에 도혼이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비궁이란 단어가 갖는 중요성은 삼혼에게 절대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들어가실 모양이야. 주군이 운명에 정면으로 맞설 모양이야. 마침내.. 마침내..'



마구 흔들리는 불혼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도혼은 이미 눈물을 떨어뜨릴 판이었다. 속혼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군이 비궁이라 말했고, 비궁이란 단어를 말하면서도 주군이 담담하게 웃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주군이 자신들에게 연이틀 농을 걸어온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럼, 아이들 명호는 삼영으로 정하고요. 무명은 불혼의 이름을 따서 준영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려 했던 말은 다름이 아니라…”




  1. 태봉 2014.08.30 22:09

    늙은 도령님의 블로그에는 소설과 시와 그림과 평론?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어머니,어머니...ㅋ그냥 저의 맘^^''ㅋ 여러가지가 어우려져 맛을 내는 비빔밥같습니다 제가 비빔밥을 좋아합니다^^ㅋ

    • 늙은도령 2014.08.31 01:56 신고

      저도 그 점 때문에 고민입니다.
      몇 개의 블로그로 나눌까도 고민 중인데, 천검지로 같은 소설과 시는 이미 써놓은 것이고, 제 블로그가 너무 딱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다양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에 관한 글도 접할 수 있도록 하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람도 있습니다.
      골라먹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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