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오랜 독자분들은, 제가 통신사업에서 망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고, 정말로 깡그리 잃었고, 그 때문에 가장 초라한 형태의 자살만 꿈꾸다 '어차피 죽을 것, 알고나 죽자'며 공부를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제 죽은 이들이 그렇게도 그렸을 '오늘'이라는 24시간 중에 다량의 항우울제와 수면제에 의해 잠들어있던 시간을 빼면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그에 따르는 정신적 좌절에 자살을 빼면 아무런 탈출구도 존재하지 않을 때, 필자는 첫 번째 책을 구입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공부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됐고, 17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노력 덕분에 지금의 늙은도령이 있을 수 있었으며, 온갖 약물로 빠르게 퇴화하던 뇌도 제자리를 찾았고, 그에 따라 건강도 좋아지는 부수입까지 올릴 수 있었습니다. 재벌의 반칙으로 한 방에 망한 덕분에, 자살이라는 실패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 근원을 돌아보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황우석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박기영 교수를 임명한 이유에 대해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배운 경험을 공유하고, IT와 과학기술의 국가경쟁력이 가장 높았던 성공의 경험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문통의 뜻을 전달한 박 대변인에 따르면, 이명박근혜가 과기부와 정통부를 폐지하면서 IT와 과학기술의 국가경쟁력이 후퇴를 거듭해왔는데, 이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과학기술혁신본부)의 부활이 필요했고, 당시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는 박기영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과기부와 정통부 폐지는 물론,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R&D 예산을 줄인 이명박근혜의 미친 결정과 정책에 반대했던 필자로써는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부활에는 대찬성을 표합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녔던 IT의 국가경쟁력을 되살려내고, 수없이 많은 실패까지 염두에 두고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런 면에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부활한 문통의 의지에도 대찬성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R&D 예산을 지원받아 무거운 철로 만들어진 컨테이너를 가벼운 탄소섬유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컨테이너로 대체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던 필자의 형이 중견기업 오너가문의 횡포와 갑질 때문에 해당 연구를 중단하게 됐지만, 이것과는 상관없이 R&D 예산의 확충과 효율적인 집행은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재벌과 대기업에 집중된 R&D 예산을 각 분야의 인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예산 분배와 집행에서 성공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드물게 나오는 성공의 결과물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연구의 결과물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야 하며, 중간에서 세는 자금도 엄격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실패의 확률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과학기술연구의 특성으로 볼 때, 그것에서 후발 연구의 성공 포인트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실패한 연구라도 해도,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들을 자세히 밝혀 후발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학위를 수여하고, 성공에 준하는 평가를 부여합니다. 이런 면에서 국가의 R&D 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적폐들이 모조리 담겨져 있었지만 국민 대다수가 속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던 황우석 사태의 중심에 박기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참혹했던 광적인 경험으로부터 뼈와 살을 깎는 반성을 했다면, 그로 인해 투명한 성공으로 가는 성찰을 얻었다면, IT와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참여정부 시절로 되살리려는 문통의 의지를 가장 잘 대리할 수 있는 적임자일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박기영의 반성과 성찰이 얼마나 깊고 절실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문통이 그녀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를 임명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며, 이런저런 루트로 과기계의 반응도 살펴봤을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참여정부 때 가장 높았던 IT와 과학기술의 국가경쟁력을 되살려내려면 박기영이 적임자라는 판단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상당한 반발이 있겠지만 두 번의 실패는 없을 것이며, 결과로 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필자는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을 운명처럼 짊어진 문통은, 노무현이라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기득권의 탐욕을 꿰뚫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며, 자신이 공약한 것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며,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며,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전술적 변화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다고 했습니다. "비판은 쉽고, 의심은 짜릿하며, 비난은 통쾌합니다. 믿고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것은 힘들고 재미없으며 지루"하다고도 했습니다.



완벽한 실패로부터 지금에 이른 늙은도령으로써, 박기영이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고 어떤 성찰을 이끌어냈는지 알 수 없지만, 노통의 '성공과 좌절'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들 배우고 성찰해낸 문통을 믿기에, 박기영 임명도 믿어보려고 합니다. 문통이 박기영과 함께 가기로 한 이상, 그 부담을 껴앉고 가기로 한 이상, 그녀가 과거의 실패와 잘못에서 성공과 정의로 가는 성찰을 얻었을 것이라고 믿어보렵니다, 대단히 궁색하고 어렵지만.   



많은 분들이 실패했다고 하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던 김수현 수석이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8.2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아 천정부지로 널뛰던 집값 폭등을 막았던 것처럼, 박기영도 거의 모든 국민들이 속을 수밖에 없었던 황우석 사태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으리라 믿으려 합니다. 문통이 하려고 하는, 아니 반드시 해야 하는 참여정부의 재평가는 물론,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청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8.11 00:03 신고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8.11 02:16 신고

      R&D 예산을 따내기 위한 세계의 실상을 안다면 황우석 사태를 냉정하게 볼 수 있습니다.
      황우석 사태는 과하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즐비한 우리 집안에서도 깜쪽같이 속아넘어간 희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속지 않았던 분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또한 당시의 과학기술계에서는 데이타 조작이 너무 만연하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책임을 묻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2. 진인사대천명 2017.08.11 02:19

    아무리 그래도...본인의 사례, 그리고 노통과 문통의 사례만을 들어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실패가 악의를 가지고 진행한 사기라면(저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은 그의 욕심, 다시 말해 악의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박기영도 마찬가지구요. 국민연금에 손을 댄 이재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절대 박기영은 그 자리에 오를 인물이 아닙니다.

    • 늙은도령 2017.08.11 02:55 신고

      박기영에 대한 여론이 계속해서 안 좋으면 임명을 철회하겠지요.
      저는 박기영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문통을 믿는 것이며, 과학기술계에는 황우석 사태와 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았던 점도 고려했습니다.
      박기영이 전권을 지닌 자리에 임명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때의 사기극에서 배웠던 것만 제대로 실행한다면 상당한 사기들을 에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통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문통도 틀릴 수 있지만 그 책임도 문통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 글을 썼습니다.

  3. 과유불급 2017.08.11 07:39

    "비판은 쉽고, 의심은 짜릿하며, 비난은 통쾌합니다. 믿고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것은 힘들고 재미없으며 지루합니다."
    좋은 글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또한 저역시
    문통을 믿기에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면죄부를 주는것인가?"라는 여론에 직면한 이상 조심스럽게
    "힘들지만 이겨낼수 있을꺼야."가 아닌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적어봅니다.

    • 늙은도령 2017.08.11 15:07 신고

      여론이 결정할 것입니다.
      박기영을 임명한 문통의 생각을 유추해본 것인데, 이것이 제가 방어할 수 있는 최고입니다.
      여론이 계속 나쁘게 나타나면 문통이 임명을 취소할 것입니다.
      저는 문통의 임명취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4. 엄정희 2017.08.11 08:04

    선생님.. 공유합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7.08.11 08:05 신고

    정말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했는지가 의문스럽습니다

    더 적격자가 분명 있을것입니다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처음에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L전자에 대한 원망이 강했으나, 갈수록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더욱 컸습니다.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과 끝까지 저를 밀어주었던 친구들의 도움에 아무런 화답도 못한 것들이 저를 끝없는 회한의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해진 정신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사업 실패에 대한 자책은 일상의 모든 것들에 스며선 견고하게 자리 잡아 끈질기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가족과의 눈 맞춤도 힘이 들었습니다. 형과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 곳은 마련했지만, 유별나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 제 주변의 상황이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자격지심이 집요할 정도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업 실패에 따른 온갖 병으로 제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는데도, 저는 병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정신이 병들면 어떤 위로의 말도 차갑거나 비릿하게 들리는 모양입니다.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삐딱한 경사가 생기고, 자책은 내적인 분노와 의심으로 영혼을 병들게 했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삶의 거의 모든 것에 긍정적이었던 제가 하루하루 폐쇄적이고 음울하며 적개심 강한 병든 괴물로 변해갔습니다. 제 안의 수많은 제가 수시로 생각의 주인이 돼 온갖 광기의 검들을 휘둘렀고, 육신의 고통과 감정의 너울에 따라 냉기를 퍼붇다가 용암처럼 튀어올라 저를 갉아먹었고, 극단으로 몰아쳤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 너는 살 가치도 없어.. 이 정도의 호사가 너에게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라.. 행동으로 너의 죄값을 치러라.. 가만히 있어도 떠올라 무섭게 저를 몰아치는 생각, 생각들.. 저는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힘겹고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생각이 멈추기나 하면 육체의 고통하고만 싸우면 될 것 같았습니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자책의 생각들 속으로는 회한이 참회로, 울분이 분노로, 저항이 광기로, 자괴가 자학으로 넘나들며 제가 제에게 묻고 제가 대답하고 회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제게 허락된 몇 평의 공간마저 저를 숨막힐 정도로 조여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죽어가는 날들이 쌓여가기를 몇 달을 넘어 몇 년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정신의 고통이 커갈수록 영혼은 어둠의 핵심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그것을 인지할 때마다ㅡ언제나 인지했지만ㅡ한 가닥 가느다란 존재의 끈마저 놓고 싶었습니다. 그때쯤부터,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진 날카롭고 끈질긴 육체의 고통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정신적 갈등과 영혼의 도피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육체적 고통의 크기가 커가는 만큼 정신적 방황은 줄어들었지만, 제가 거처할 공간이 갈수록 좁아드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압박이 커짐에 따라 수시로 발생하는 공황증세가 극도로 활성화된 죽음의 공포를 세포 하나하나, 신경 하나하나마다 독약처럼 스며들게 만들었습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건강이 나빠질수록, 체력이 고갈될수록 제가 제어하지도 방어하지도 못할 상황에 대한 공포가, 저를 짓누르는 죽음에 대한 극한의 공포ㅡ매일같이 자살을 생각했음에도ㅡ로 이어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공황증세가 저를 극도로 무력화시켰고, 매일같이 갱신되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것은 건강이 나빠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악화될 뿐, 회복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주는 극도의 고통과 공포에 저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무장해제된 제가, 살아서 머물 수 있는 참회와 안식의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증거만 쌓여갔습니다. 



1시간을 버티면 그 다음의 1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면 얼마든지 쌓일 수 있는 존재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적 고통이란 언어의 장난이자 건강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육체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면 정신이란 한낱 장신구에 불과했습니다.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이 괴로웠습니다. 당연히 생각의 지평은 좁아졌고, 의지의 영역이란 갈수록 줄어드는 공간의 압박과 시간의 축적에 최후의 수단이란 탈출구를 강요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남아 있는 선택이란 단 하나뿐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저를 설득했고, 이 질긴 육체적 고통에서, 모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삶이 주는 고통의 굴레가 커질수록, 가상의 죽음이 전해주는 그 악마적 쾌락만 무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육체적 고통에 잠들기조차도 힘이 들었습니다. 최후의 선택까지 버티려면 항우울제와 향정신성 약물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단 1분도 잠들 수 없었습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가 저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안식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약물에 의존해 잠이들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를 먹고 난 다음 긴긴 잠에서 깨어나면, 아직 고통에 대한 육체적 메커니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1분여 정도의 시간 동안만ㅡ신경이 온갖 병들이 만들어내는 통증을 뇌에 전달하기 전까지 1분여의 시간만 저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달콤함이란 내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자, 어떻게든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일종의 마약중독자처럼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의 노예로 전락해갔습니다.

 

 

저는 악마에게 기도했습니다. 부디 가족도 저를 포기해주기를.. 기억의 단편에서라도 저를 지워가기를..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자 거의 매시간마다 울려대던 핸드폰도 잠잠했졌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저의 안부를 묻는 전화도 점차 줄어들어갔고, 마침내 저는 핸드폰을 해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세상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매체인 인터넷과 신문도 끊었습니다. 저는 세상과 연결된 모든 것들을 하나씩 잘라나갔습니다.



부디 저를 기억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저의 존재를 잊어주기를.. 저라는 인간이 이땅에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였다는 것처럼 잊혀지기를.. 저는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나씩 지옥으로의 떠남을 준비했습니다. 억지로라도 세상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저에게 세상이 언제 자비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멍에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존재했던 자리마저 허용되지 않는 냉정한 현실과 갈수록 늘어나는 약물 뿐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것이란 이런 죽음보다 못한 삶의 비루함 뿐이었습니다. 저는 꿈꿨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극적인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만 더욱더 강해졌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이 실패와 좌절에 대한 것들뿐인데.. 가장 극적인 죽음이라니!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습니다. 초라하게 떠나자,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할 수 있다면 제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몇 조각의 흔적마저 지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죽음 중 가장 초라한 죽음, 컴퓨터 자판의 딜리트 키만 누르면 이땅에 존재했다는 모든 흔적들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져버리는 그런 삭제되는 죽음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죽음을 떠올리고 떠올려 봤는데.. 끝내 한 사람의 얼굴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 제 삶에서 손을 뻗으면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 있었던 어머님의 얼굴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한 발짝도 앞으로도 나갈 수 없었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갇힌 채, 살아 있으나 주검만도 못한 육체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죽지 못했기에 단 한 순간도 휴식할 수 없었던 생각의 고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완전히 갇힌 채 벌레 같은 몇 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싸움을 나 홀로 하고 있을 때, 어떤 매개물도 근거도 없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체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가? 난 정말 열심히 살았지 않았는가? 가능하면 죄짓지 않으려 했고,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멍에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도 투정부리지도 않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고통의 질곡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가? 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봤고, 게다가 같은 장애인이지만 나처럼 살지 못하는 이들과 상대적인 약자들을 위해 사업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저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최초의 순간이 생각나지 않지만,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제 삶이 꼬였고 도저히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버렸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경쟁에서도 뒤쳐지지 않았던 제가 왜 이런 막다른 골목까지 밀려왔을까? 제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이 철저한 실패로 이어지는데 세상은 또 어떻게 작용했을까? 단지 장애인이라는 것만으로, 평균적 인간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저 같은 인간에게는 상당히 닫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처참한 실패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저에게 가장 초라한 죽음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에서, 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자리한 지랄 같은 세상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저 알고 싶었습니다, 가장 초라한 죽음을 택하기 전에. 끝끝내 어머니의 얼굴을 지울 수 없다고 해도, 저는 알고나 죽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초가 된 것은(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ㅡ2)

  1. 진흙속의연꽃 2014.08.09 08:15

    참으로 눈물 나는 이야기 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요. 단맛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단맛을 느끼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보지만 당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로서도 충분히 다가 옵니다.

    글의 말미에 극적인 반전이 보입니다. 그것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목숨을 건 단식을 하는지에 대한 심정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왜 이 사회가 잘 못 되었는지 모두 알려 주십시요.

    • 늙은도령 2014.08.09 19:44 신고

      네,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최대한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죠.
      권력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2. 덕산 2014.08.12 13:25

    정말 눈물이 나옵니다.
    왜 늙은 도령님의 글에 진심과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44 신고

      글을 쓰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정말로 글을 통해 자신을 담아내려면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도 용감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자세입니다.

  3. 태봉 2014.08.16 21:55

    님의 글을 보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 직접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런다고 제가 얼마나 님의 고통을 알수나 있을까요? 그나저나 현재 님이 그 기간을 이겨내시고 제가 이렇게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8 17:22 신고

      네, 그렇게 다시 살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고, 님과도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4. hwang sy 2016.01.26 03:44

    살아야 하는 건 그 자체가 이유가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요 ^^

    • 늙은도령 2016.01.26 04:58 신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라,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라.... 그러다 보면 살아내는 것이지요.

  5. 남순희 2016.01.27 08:02

    현재님이 장애인 이셨다니 ~
    그리고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글을 읽으니 정말 마음 아프네요.
    어떻게든 극복 하셔야죠.

  6. 2018.06.11 04:3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8.06.11 19:47 신고

      저도 그런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님이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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