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화를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다.


                                                             ㅡ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인용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를 다룬 책 중에서 가장 명료하게 신자유주의를 압축한 설명이 위의 인용문이라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이해하려면 꼭 숙지하기를 바랍니다. 푸코가 밝혔듯이 신자유주의는 19세기의 자유주의가 통치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생긴 상위 1%가 하위 90%를 상대로 벌인, 일종의 계급전쟁입니다. 



공통의 이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계급은 하위 90%가 이루어야 할 것인데, 신자유주의에서는 상위 1%가 공통의 이해와 이익을 위해 계급을 형성합니다. 이것 때문에 소수에 불과한 지배엘리트들이 하위 90%의 돈과 노동을 탈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상위 1%는 사회주의, 하위 99%는 자본주의가 적용된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합니다. 





상위 1%에 근접한 9%는 체제의 간수로 하위 90%를 감시하고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상위 1%의 필요에 맞게 관리하고 동원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도록 하위 90%를 각각의 임무를 수행시키며 그들의 노동과 부를 착취합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노동착취와 함께 임금과 혈세(정부사업 및 국가업무의 민영화 등으로)까지 탈취합니다. 



체제의 간수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의 경영진이나 중역들이고, 재벌이나 대기업의 경영진과 고위임원, 교육기관의 수장이나 종신교수 및 프로페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급진적 지식인, 고위공무원, 상급법원 판사, 정치검찰과 경찰간부, 교도소장, 공장장, 각종 감독관, 용역업체 간부, 범죄조직 보수 등등 각 분야에서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상위 1%의 이익을 실현시키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분상승의 가능성인 사회이동성을 말할 때 주로 인용하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 9%에게만 해당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정착되기 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례가 다양한 계층에 적용됐지만, 이제는 체제의 간수에게 적용됩니다. 상위 1%가 정치적 용어로 경제를 말할 때 쓰는 성공이니 대박이니 하는 것들은 성공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체제의 간수에게만 유효한 것이 신자유주의 체제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좌파적 버전과 우파적 버전이 공히 존재하며,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근본주의를 내세운 극우적 버전(시장자유주의 우파라고 순화해서 부르기도 한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경제규모는 커져도 국민의 소득은 늘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1원1표를 성립시키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상화한 것을 말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위계적 질서가 강한 초국적기업이나 대기업 집단, 거대금융업체, 슈퍼리치 등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지배엘리트의 이익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과 자본 편향적인 법치주의(현재의 권력과 자본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주기 위해 체제의 반대세력을 합법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목표)를 말합니다. 교육적으로는 권력과 시장 주도의 교육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1%의 지배층과 99%의 자발적 복종의 피지배층을 구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탈성장사회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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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쓴 조하나 버크만은 신자유주의가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로 구성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이룰 수 있는 이유가 이것에 녹아있습니다. 박근혜의 권위주의적 통치(줄푸세), 재벌의 황제경영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과 《쇼크 독트린》을 쓴 나오미 클라인은 소련과 동유럽, 남미를 박살낸 시카고보이즈(프리드먼의 제자들)와 하버드 신자유주의자(제프리 삭스가 대표적이었다)들이 보여주었던 통치방식에 따라 재난자본주의, 카지노자본주의, 쇼크자본주의라고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와 혼란 시기(전쟁, 내전, 금융 및 경제위기)에 적용해야 해야 이식이 가능하며, 권위주의적 정부가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정지시킬수록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현대 신자유주의의 탄생지인 독일의 경우 좌파적 버전(사회적 시장경제)이 상당 부분 살아남았고(필자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적 요소와 민주주의가 배제된 것이 우파적 버전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생각이다), 유럽 각국에 사회민주주의(민주적 사회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시장사회주의라고도 한다)의 형태로도 남아있습니다.



우파적 신자유주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라 하며, 최근에는 미국식 자본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이것의 기원은 리프먼, 미제스, 하이에크, 프리드먼, 나이트, 포퍼 등이 참여한 몽페를랭 협회(초기 이름은 액턴-토크빌 협회였다)가 결성됐을 때 구체화된 신자유주의(국가 개입을 극도로 반대하고, 통화주의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독립, 자유방임 시장경제와 이를 위한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가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극우적 버전인데, 권위주의적 정부, 제왕적 대통령, 위계적 재벌, 기득권화한 양당, 노조와 파업 불용, 비정규직 양산, 상시해고, 취업규칙 완화, 최저임금의 악용, 각종 규제 철폐, 경제민주화 회피, 경쟁 중심의 교육, 지역적 차별, 언론의 상업화, 안보 강조, 재난자본주의, 시장 중심의 경제주의, 여성의 상품화, 세대 간 갈등 조장, 소비지상주의, 사법과 인식의 보수화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사회주의적 요소 때문에 민주정부 10년을 뺀 60년을 내내 극우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였지만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박정희 향수에 사로잡힌 37.5%의 고정지지층만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들 중에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0.0001%도 안 되겠지만, 이들의 열성적인 투표 참여로 인해 하위 90%의 돈을 상위 1%로 이전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현재의 한국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치적 자유도 사회경제적 평등도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남북분단 상황을 악용해 최대로 번성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재벌 오너도 한 사람의 시민에 불과한데 국회에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이 마치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된 것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모든 파업에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고, 기업의 경영실패는 노동자에게 전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평등에 기반하는 민주주의가 최소화됐고, 부자감세와 서민증세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도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성공을 말해줍니다. 한국 현대사를 성공한 자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국정교과서 부활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헬조선에 가깝습니다. 집권세력이 포털을 대놓고 길들이는 독재적 행태가 가능한 것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주주의를 최소화하는 극우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세습자본주의가 정착됨에 따라, 뉴라이트 계열의 부활하는 것은 역행하는 역사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정치엘리트와 위계적 재벌의 경제엘리트가 이끌고 있는 상위 1%가 지배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 출발은 잘못된 광복의 형태(남북 분단)에 있었고, 이를 이용한 친일부역자들과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맥아더의 오판이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려면 박정희 시절의 압축성장과 IMF 외환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IMF 외환위기부터 다루겠습니다.  




10월9일 첫 만남을 가지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청공(靑空) 2015.09.12 18:19 신고

    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이런 식으로 정착이 되었을까요? 저는 조중동과 재벌, 이승만의 자유당부터 지금의 새누리당까지 이어지는 기득권층(이라 부르는 매국집단, 재난집단)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철학 따위는 없고, 영악함을 제외하고는 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이라도 짓밟고 망칠 수 있는 이들이요. 저는 이념과 체계조차 인간 이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악한 이들을 잉태한 것은 일제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사회학과의 게오르크 폴만 교수의 전세계 엘리트들의 이동경향성을 추적한 연구에서 한국은 비정상적으로 영미에 편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의 무국가성에 대한 이해없이 문화적 토양과 법과 국가체계가 상이한 한국에 무분별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심었습니다. 미국에 자국의 국가기밀을 팔려고 서로 다투는 그 모습은 미국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국가와 사회의 의사결정에서 이들을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압도적이고, 그들의 금력과 권력 또한 반대진영에 비해서 너무나도 공고합니다.

    제대로 된 후속세대라도 키워야 할텐데... 작금의 교육과 사회가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들을 키울 수 있을지... 키우고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답답하네요.

    • 늙은도령 2015.09.13 03:39 신고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해방될 때 친일 부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것이 컸습니다.
      이 책임은 당시의 미 국방부와 맥아더에 있습니다.
      이들이 너무 안이하게 일본을 판단했고,소련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은 기회주의자의 천국이 됐습니다.
      더더욱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것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한국이 친일부역자들은 친미사대주의로 방향을 틀었고 박정희 또한 그것을 철저히 이용해 먹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조중동과 친일 부역자들이 한국의 주요 엘리트가 됐습니다.
      미국 유학파들이 한국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도 일본이란 나라를 점령한 맥아더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일제의 교육제도가 그대로 정착했고, 한국의 국가체제가 미국과 일본의 혼합물이 됐습니다.
      여기에 압축성장은 도덕의 필요성을 없앴고 성공만이 살길이라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더 이야기해야 하지만 아무튼 한국은 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공지상주의와 경제주의를 거둬내야 다음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거둬내야 조중동도 친열 부역의 후계들도 몰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과 유럽식 철학, 체제 등을 합쳐야 미래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적인 것들을 글로 옮기지 않는 것은 유럽을 먼저 이해해야 미국의 문제를 알 수 있고, 그래야 한국 지배엘리트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글로 옮기기에는 너무 길어 지적공동체가 잘 되면 거기서 풀어야겠지요.
      우리나라에도 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대가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을 각성시킬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국민들에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렵지만 하나씩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최근 많은 움직임들이 있으니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최소 10년은 갈등 상황이 폭발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2. 훈잉 2015.09.13 00:27 신고

    이게 절대 바뀌지는 않지만 바뀌지않는이상 저희 애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수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9.13 03:43 신고

      제가 보기에는 10년 내로 대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세계적으로 더 이상 이런 식의 경제와 정치가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부류들이 늘어났습니다.
      가장 빠른 길은 미국이 바뀌는 것이지만, 아무튼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이 조금 더 좋은 콘텐츠를 반영할 수 있으면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고요.
      한국은 현대성의 나쁜 점들이 모두 모여 있는 난장판이지만, 그것이 용광로처럼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3. 참교육 2015.09.13 08:07 신고

    어둠이 짙어진다는 것은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희망을 말하지요.
    우리사회는 더 이상 물러설수 없는 막장에 가끼워지고 있습니다. 자본은 자기네들의 세상을 구가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깨어나야 하는데.... 깊은 잠에 빠진 민중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3 23:39 신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그들은 실질적인 면에서 강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명목상의 자본은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그런 것이 불가능합니다.
      정치와 사법까지 얽매여 있느니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합니다.
      헌데 그런 힘을 시민이 만들지 못하니 외부효과가 있어야겠지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이라, 걱정이 앞섭니다.

  4. besso 2015.09.19 01:41

    님 글을 읽다보면 웬지 정토회가 생각이 납니다. 희망의 내음...
    진정한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만나서 좋은 세상을 만들면 참 좋겠습니다.
    다만 인류라는게 원래 탐욕이 근본이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화해보자는 식으로 .. 뭐랄까 참회의 마음으로 접근하는게 좋다는 생각도 하구요.



발터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인용한 어느 생물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가 만물의 척도로 존재했던 시간을 24시간으로 환산하면 마지막의 2초에 불과하며, 문명화 기간은 그 마지막 1초의 5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류는 그 찰나 같은 시간 동안 진보의 이름으로 고삐 풀린 과학기술과 모든 분야의 전문 지식을 총동원해 지구상의 모든 자원과 노동을 착취해 지구를 공멸의 위기로 내몰았다.





생물다양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에 존재했던 종들의 90% 이상이 그 마지막 2초 동안에 멸종됐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을 속출시키고 있는 지구온난화도 그 임계점인 2℃ 상승에 근접해가고 있다(하랄트 벨처의 《기후전쟁》을 보라). 예측불가능해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전 지구적 재앙은 국가의 부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고 순차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도 인류가 대오각성 하는 것을 근거로 한 것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이산화탄소가 불러올 지구온난화의 사회적 비용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5배 이상 크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대륙과 국가, 사회, 계급,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상 최고의 빈부격차가 벌어진 이유를 설명한 후에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몇 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심각한 전망을 내놓기까지 했다. 자크 아탈리는 10년 전에 이런 현상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인간적인 길》을 내놓았고, 많은 지도자들이 ‘제3의 길’도 가보았으나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고 바랐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보수 경제학자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됐는지 방대한 자료와 지독히 간단한 공식으로 입증했다. 



토마스 만 이래로 끈질기게 인류를 유혹하고 현재의 문제에 한 발 물러서게 만드는, 우리 모두의 유토피아로 가는 길은 언제나 자본과 권력이 선취해 자신의 신무기로 만들기 때문에 파편화된 개인에게는 나쁜 결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유토피아가 보여주는 달콤함이란 미래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라는 현실도피의 한 형태로 나타나거나 억압과 착취에 순응하도록 만든다(특히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와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를 보라).





대체 인류 역사의 마지막 2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그 2초의 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근의 250년 동안, 더 정확히 말하면 전체주의적 자본주의의 정수인 부정적 세계화(신자유주의)의 3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기에 인류의 문명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성장과 개발이 꾸준히 이루어진 인류 진보의 과정에서 대체 무슨 일들이 있어 인류는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까?



영원한 진보를 추동하는 과학과 기술-경제적 관점이 어떻게 테크노폴리화 되면서 세상을 파국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지 살펴볼 때 우리는 그 이유의 일단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직선적인 성장만 인정하는 지배와 착취의 사회철학이자 사회공학인 계몽의 변증법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소외가 급진적 자살관이나 자아의 완전한 고립과 타자에 대한 적대적 배척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개발은 왜 진행될수록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높아지는지, 개발의 결과가 지구적 차원의 퇴행으로 이어지는지, 이런 부정적 사례들이 가시적인 형태로 널려 있는데 왜 시민이라는 계몽된 인간들은 동물적 쾌락과 철저한 순응에 빠져드는지, 그런 악순환의 고리와 구조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분명 세상은 발전해왔다고 하는데 인간 생존의 조건인 삶의 궁핍함과 초라함은 자기 파괴적 단계에 이르렀으니, 그 모순된 현실(개발의 역설)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인류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인류가 저지른 일은 인류가 아니면 풀어낼 수 있는 존재가 없고(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보라), 과거에 대한 반성적 고찰 없이 매번 처음일 수밖에 없는 현재를 미래에 투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성장과 개발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지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구를 이토록 망쳐놓은 인류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의 대반격 앞에서 빈곤과 결핍의 중하위층부터ㅡ물론 상류층도 피해를 면할 수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ㅡ회복 불가능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근원적인 모순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파멸을 피하려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발전과 관료제 등에 의해서 진행되는 진보의 신화인 근대이성의 기원부터 시작해 최근의 30년 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해체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국가의 전체화하는 경향과 개인화하는 경향을 살펴봐야 하고, 푸코로 대표되는 사건 위주의 단절과 분절, 충돌과 상호연관 및 권력 작동으로서의 통치술의 변천과 같은 미시적 접근,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와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다룬 것처럼 거시적인 접근도 해야 한다. 


 

특히 독일에서 시작돼 영국과 미국에서 변형된 시장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를 살펴봐야 하고, 타락한 방송과 신문을 대체하고 있는 포탈의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방패막이를 이용해 거대금융집단과 초국적기업들, 미국의 NSA와 CIA처럼 각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이 인류를 감시하고 지배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빅데이터 구축과 그것의 군사와 외교와 통상 및·경제적 활용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에 따른 프라이버스 침해 문제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일들은 사회적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최소한 고발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시사회의 등장은 현재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구글과 똑같은 꿈을 꿨던 필자가 장담할 수 있다). 개인의 행동이 예측되기 시작하면 감시사회는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의 내밀한 삶 깊숙이 파고들어 전제적 행태를 보일 수 있고, 최소한 경제적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악의 근원인 미국의 연방정부(연방준비제도를 포함한)를 장악하고 있는 전 지구적 통치엘리트와 UN 및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사법제도, 월가와 런던의 금융 세력들, 이들의 그림자로 전체를 조율하고 있는 극소수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들과 모든 것을 쇼로 만들어버리는 대중매체와 영상산업, 권력과 자본의 시녀와 나팔수 역할에 충실한 언론(특히 방송)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자아와 전체를 통일시켜ㅡ이것은 책략이라는 술수가 내재해 있는 이성의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고, 후대에 의해 위대한 칸트의 관념론이 비판받은 이유다ㅡ이성의 지배를 공고히 한 칸트의 관념론을 넘어, 주체와 객체에 대한 치열한 공방 속에서 더 이상 생각을 밀고나갈 수 없어서, 계몽에 의해 완성된 시민인 자아(주체와의 차이에서 나오는 특수성의 담지자)에 대해서 전체로서의 사회(또는 체제로서의 객체로 보편성과 영원성의 담지자)의 우위를 선언한 헤겔의 변증법적 낙관론, 오직 노동자의 구원에만 집중해 자본에게 세계를 석권하는 길을 열어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극단의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탄생한 이상, 자본주의와 운명을 달리 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영향력은 특히 학문적으로,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치밀한 분석력과 통찰력은 현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는 필수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과 자본주의 세계화와 계층화에 대한 정확한 비판은 탁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로 확장되면서 부자와 빈자, 부국과 빈국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인간소외, 물신숭배, 생산과 소비의 과잉, 공황의 문제 등도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싫든 좋든 마르크스를 탐구하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사회과학자라면 마르크스에 신세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듯, 마르크스에게는 독보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5년, BBC방송은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를 뽑았다. 단연 1위는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주의가 비록 현실에서 다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했고 여러 대안을 세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일부 결론상의 오류가 있었지만 마르크스 사상이 갖는 중요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면서 "그의 사상은 역사, 사회를 바라볼 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인간의 인식을 높여주며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고 강조했다.(위키백과에서 인용)



세계사적 사건인 스탈린의 굴락과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일본에 떨어진 두 발의 원자탄과 홀로코스트의 발전된 재현인 베트남전쟁, 소비지상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을 증거를 조작(한국의 국정원처럼 미과 영국의 정보기관이 조작하고 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부시와 블레어가 요구했던)해서 제멋대로 선언한 9.11사태에 대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폭력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이자 우월한 인종으로서의 백인의 천국을 꿈꾸는 신보수주의자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또한 미국의 악마성을 가장 잘 드러낸 2008년 신용붕괴와 대마불사를 확인한 천문학적인 보조금 지급, 무기력한 유럽을 상징하는 장기적인 경제위기, 독일의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제3제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뒤집혀진 유럽, 역사의 비극은 더 큰 단위로 되풀이될 뿐이라는 3.11 일본 제1원전 폭발,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통해 1등 국가로 재도약하려는 아베의 광기어린 부활, 부정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세력의 힘이 너무나 미약함을 입증한 시애틀 세계화포럼 반대시위와 2012년의 ‘성난 사람들’의 ‘점령하라 운동’의 초라한 결말 등에 내재돼 있는 인류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부정적 세계화에 적극적인 나라일수록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과 그들의 그물망이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로 커졌고 촘촘해졌으며 가벼워졌고 그래서 그만큼 유연해졌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곳곳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짐에 따라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기상이변과 사막화, 물 부족 사태와 바다 산성화, 전 방위적인 생태계파괴 등이 파시즘적 속도로 이루어낸 무차별적인 개발과 성장의 역설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성장하고 개발할수록 지구는 파괴되고 불평등이 늘어난다면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봉포스트 2015.01.19 20:48 신고

    아..유익하면서도 재밌네요.
    잘 읽다 갑니다!

  2. 참교육 2015.01.19 21:20

    자멸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자연파괴에 대한 보복이 곧 밀어 닥칠 것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19 22:15 신고

      자업자득이지만, 상위 1%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극단화되지 않는 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는 1%에서 대부분의 생존자가 나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음에도......

  3. base 2015.01.20 01:55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도령께서 영화평을 하신 어느 시점에 제가 '설국열차'를 언급했더니 마르크스로 답변하시더군요. 그런데 요즘 점점 더 그 영화가 생각난는지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래야 훌륭한 글로 애국하시고 저 같은 사람이 살 만한 가치와 의미와 희망을 가지거든요. 오늘 한 잔 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20 02:50 신고

      설국열차의 엔진은 자본주의를 말합니다.
      신성한 엔진이란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말하고요.
      맨 뒷 칸에서 앞 칸으로 가는 과정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계층의 피라미드를 거슬러 올라가는 혁명을 말합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포함돼 있는데 그 핵심에는 마르크스가 있습니다.
      아울러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내재돼 있습니다.

      님의 댓글을 보니 설국열차에 대한 감사평을 길게 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한 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어 보이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5.01.20 08:47 신고

    제 수준을 뛰어 넘는 글이십니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수 없고 이기려 하는 방법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라고 저 나름대로 이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1.20 13:42 신고

      네, 공존이 중요합니다.
      공생과 함께요.
      과학기술의 발달이 미진할 때는 크게 일을 벌이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 글은 출판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조금 어렵습니다.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임시 직원인 '비상근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인도했을 뿐 아니라, 운영 지침서까지 썼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0년 넘게 창립 당시 들어왔던 프로그래머들과 부지런히 결속을 강화하고, 권력의 중추부에 들어올 수 있는 다른 직원들을 무수히 쫓아냈다. 그들은 독립 계약자와 임시직, 인력 파견 업체를 적극 활용하여 직원이 없는 완벽한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웃소싱과 공장 계약, 프리랜서를 통해서 말이다. DVD와 인터넷 제품을 개발하는 쌍방향 미디어 사업부에서는 직원 절반가량이 인재 파견 업체를 통해 들어왔다. 이들은 프린터 카트리지를 배달하듯 세금도 낼 필요 없는 노동자들을 조달해 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중 인력 구조는 뉴에이지 뉴딜의 축소판이다. 중심부에는 복지 혜택과 넉넉한 스톡옵션을 받고 젊은 회사 '캠퍼스'에서 일하고 뛰어노는 정규직 상근 근로자라는 첨단 기술의 꿈이 있다.


한편 4,000~5,750명의 임시직 근로자가 이런 핵심 인력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들 기술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는 핵심 인력과 함께 일하고, 하는 일도 비슷하다. 이 중 1,500명가량은 이 회사에서 일한지 하도 오래돼서 '영구 임시직'이라 부를 정도다. 임시 직원과 '진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의 차이가 있다면 배지 색깔뿐이다. 정규직은 파란색, 영구 임시직은 오랜지색 배지를 단다.  


(프리랜스들이 정식 직원으로서 받지 못한 복지 혜택, 연금, 스톡옵션을 달라는) 소송에서 진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리랜서를 급료 지불 명부에 올리지 않았고, 더 주도면밀하게 움직여 임시직을 주류에서 몰아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위해 독립 계악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인재를 찾아내서 면접하고 선별한 뒤, 특별 계약을 맺은 인력 파견 업체 다섯 군데 중 하나에 등록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공식 고용주 노릇을 하는 인력 파견 업체를 통해 임시직을 고용했다.   





임시 직원과 진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을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같이 야근을 해도 임시 직원에게는 피자를 주지 않는다. 또 퇴근 후 회식 자리에 부르지도 않는다. 1998년 6월에는 1년 이상 근무한 임시 직원은 근로계약을 연장하려면 그 전에 31일간 쉬어야 한다는 정책을 새로 도입했다...접수 업무를 맡는 직원 63명을 해고하고, 임시직 소개소 타스코를 통해 스톡옵션과 복지 혜택 없이 재취업하게 하게 만들었다. 


같은 전략 아래 마이크로소트프는 레이먼드 캠퍼스를 토막내어 조각들(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근로자들)을 외부 업체에 분배했다. 메일 관리는 피트니 보우스 사가 맡았고, 인쇄 및 복사 센터는 제록스 직원이 맡았고, 시디룸 공장은 KAO 인포메이션 시스템에 매각하고, 회사 매장까지 베누센 더치 사에 넘겼다. 이 구조조정 때문에 직원 680명이 해고당했고 운영 예산은 5억 달러가 삭감되었다. 





위의 내용들은 필자가 독자분들께 꼭 읽어보라고 가장 권하는 책 중의 하나인,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ㅡNo Logo》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것들은 세계 최고의 부자로 이번에 MS의 고문으로 돌아온 빌 게이츠가 어떻게 해서 그런 막대한 돈을 벌었는지 보여주는 내용 중 일부에 속한다. MS는 시장을 선점한 것을 이용해 경쟁사들을 죽이고, 독점적 이익을 누리면서도 직원들마저 최소화시키는 악마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며, 이는 빌 게이츠가 돈을 버는 방식이었다.   



스마트폰 등장에 제대로 대체하지 못해 MS로 합병된 핸드폰 시장 부동의 1위 업체였던 노키아가 이런 빌 게이츠식 경영의 따라 2015년까지 전체 직원의 14%인 1만8000명을 줄이는 것을 넘어 노키아를 인수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빌 게이츠가 현장에 복귀하자마자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간 MS는 노키아의 특허를 이용해 전 세계 기업들과 특허전쟁에 들어갔다.  



MS는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특허권은 노키아에 놔둔 채 향후 10년간 휴대폰 관련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이런 계약은 순전히 특허전쟁을 이용해 악마 같은 돈벌이를 재현하는 것으로, 노키아를 통해 직접 휴대폰을 제조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게 특허권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거액의 특허료를 지불하라는 MS의 공쇄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써 MS가 휴대폰에 관한 특허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노키아를 72억 달러에 인수한 이유가 노키아를 특허전문회사(특허 괴물이라 한다)로 변형시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거액의 불로소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련 업계의 우려가 현실화됐다. 게다가 노피아의 특허는 휴대폰 생산에 반드시 포함되는 표준 특허여서 중국과 대만 업체들도 MS의 특허전쟁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생겼다. 



문제는 이런 MS의 특허전쟁 때문에 스마트폰 등의 휴대폰 메이커들은 원가 상승의 부담을 지게 되고 이는 스마트폰 등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MS가 노키아의 특허를 이용해 흡혈귀처럼 빨아먹은 막대한 특허료는 소비자의 지갑에서 충당된다. 필자가 애플부터 나이키, 스타벅스, 골드만삭스 같은 미국 기업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들의 돈벌이 방식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악마적이기 때문이다. 



뛰어나지 않은 중급 정도의 프로그래머한테 물어봐도 MS의 기술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운이 좋게 독점적인 지위를 형성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해 경쟁사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이익을 빨아먹었다. 말보로와 나이키가 선두에서 섰으며, 맥도날드와 월마트, 스타벅스가 뒤를 이었고, MS와 애플이 최고의 수준까지 발전시킨 미국 기업들의 돈벌이 방식은 기업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독하다. 



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무정부적 자유주의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이런 초국적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기 때문에 이들의 돈벌이 방식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런 경향에 제동이 걸리는 듯했으나 오바마 정부가 미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하에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하지 못하는 이런 악마적인 기업들의 행태에 미국이란 제국적 힘마저 얹어주고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국지전과 테러들은 거대한 폭력시장을 형성해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먹여 살리고 있으며, 이스라엘에 이어 일본과 한국이 그들의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해주고 있다. 우리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을 비난하기 바쁘지만, 미국 기업들에 비하면 이들은 천사에 속할 정도다. 특히 이들이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고, 생산시설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한에서는 비난의 목적을 정확히 해야 한다. 



이를 테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림프조혈기계 질환(백혈병이 대표적)에 걸린 노동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과 배상을 하라고 요구할지언정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에게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되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과 동일하다. 필자가 티스토리에 올리는 글을 통해 필자가 필터링한 이후의 책들을 소개하는 것도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정하고 개선해나가기 위해서다. 



아는 것이 힘이 되고 돈이 되는 세상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 포털로 따지면 네이버의 독주를 막아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아무튼 현업에 복귀한 빌 게이츠의 돈벌이 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마지막이자 최대의 먹거리인 특허전쟁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불의와 구조적 부정의마저 번성하게 만든다. 



  1. 태봉 2014.07.29 10:04

    특허 전쟁이 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 부탁드려요^^

  2. 여강여호 2014.07.29 18:44 신고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아 정말 대단한 기업들이구나 했습니다.
    심지어 윤리경영의 대표적 기업으로까지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미국과 미국의 초국적기업들의 민낯을 조금이나마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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