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2016년 8월15일)이 71주기 광복절이자, 68주기 건국절이라며 친일·뉴라이트의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부 수립과 건국을 동일시하는 박근혜(뉴라이트 출신으로 현 KBS 이사장인 이인호로부터 배웠다)와 뉴라이트교과서 집필자인 이영훈(친일식민사관을 정립한 이병도의 제자)의 주장은 국민국가의 구성요소가 주권과 영토, 국민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부분적 진리를 보편적 진리인양 포장하는 대표적인 예이며, 수많은 민족과 도시국가들이 천년이 넘도록 얽히고 설킨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근대유럽에서나 가능했던 논리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경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통일이 됐을 정도로 근대유럽은 주권, 영토, 국민으로 이루어진 국민국가 개념이 너무나 절실했다(주권 개념은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로크의 《시민정부론》,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타적 주권이 독점되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국경을 정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영토 내의 국민(동일국가 동일민족이란 개념이 이때 무너졌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근대유럽과 우리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수천 년 동안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같은 민족의 나라였던 우리의 경우 주권·영토·국민이란 3요소로 대표되는 국민국가 개념이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영토와 주권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오직 주권만 일제에게 빼앗겼을 뿐, 광복과 함께 주권도 회복됐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제헌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상해임시정부가 결성돼 전 세계에 독립국가를 선언한 날이지, 친일파의 온상인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1948년 8월15일이 아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수정헌법에 건국의 시점을 명시해놓은 것처럼, 제헌국회도 제헌헌법에 건국의 시점을 명시해놓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정당성을 지닌다. 또한 '역사를 역사학자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왜곡과 오류로 넘쳐나는 뉴라이트교과서를 집필했던 (뻔뻔하고 멍청한) 이영훈과 무지하고 무능한 박근혜의 건국절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1948년 이전에 정부를 수립한 북한도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을 피할 수 없다. 문재인이 친일부역의 원죄를 벗고 싶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얼빠진 짓이라고 일갈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의 JTBC 뉴스룸에서 보도하고, 전화인터뷰와 팩트체크를 통해 3중으로 확인한 것처럼 건국절 논란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0년 전에 처음으로 제기했다.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그의 주장은 모든 친일부역자와 그들의 후손들이 독단적으로 발행한 자가면죄부인데, 그 근원에는 친일식민사관의 창시자이며, 역사학회 초대회장으로 서울대(일제가 만든 경성제대)를 오랫동안 친일파의 본거지로 만든 이병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병도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정신을 말살해 식민지지배를 영속시켜려 했던 '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보로 시작해 고문까지 올랐고, '조선사편수회'를 이끌었던 요시다 도고(유럽의 식민지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동원된 실증사학의 대가였던 랑케의 제자)의 《일한고사단》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와세대 동문과 경성제대 출신 학자들과 진단학회(1934년)를 결성해 친일식민사관을 정립한 자로, 안병직과 김진홍, 이인호, 박효종, 제성호 등이 참여한 뉴라이트의 정신적 스승이다.



결국 이영훈이 처음으로 제기했으며, 박근혜가 재점화시킨 건국절 논란의 배후에는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옹호하기 위해 친일식민사관(식민지근대화론)을 정립한 이병도의 망령이 자리하고 있으며, 박정희의 명예회복과 정치적 부활이 목표인 박근혜의 꿈이 자리하고 있다. 이병훈과 뉴라이트를 거쳐 박근혜의 입을 통해 재점화된 건국절 논란은 헌법에도 반하지만, 친일부역의 딱지를 떼는 것이 목표인 친일파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국정화된 역사교과서에도 상당히 반영된 친일식민사관의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모조리 부정하는 반역적이며 반민족적 행태이자 이땅의 통치권력이 아직도 친일부역자와 그들의 후손의 수중에 있음을 말해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치욕이다. 노무현 참여정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시작된 과거사 청산작업이 이명박의 당선과 함께 무력화됐고,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친일식민사관의 부활까지 치달은 헬조선의 참혹한 현실이기도 하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광복은 왔는데 어디에도 광복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금요일 2016.08.16 06:50

    1919가 건국절이면 독립운동가들은 명칭을 전부 바꿔야 할듯요.. 광복절도 명칭 바꾸고.. 대한독립만세 외치던 우리 조상님들 전부 헛발질 하셨네요..이미 나라가 있는데 뭔 독립운동인가요??? 다들 개소리 하신거네...

    • 늙은도령 2016.08.16 07:22 신고

      그렇게 됐습니다, 미친 건국절 논란 때문에!!!

    • 공수래공수거 2016.08.16 08:22 신고

      이미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를 일본놈들이 빼앗은겁니다

    • charlotte 2016.08.27 01:32

      아메리카 대륙이 영국 등의 식민지였을떄 미국은 1976년 독립선언을 합니다.
      이후 독립전쟁이 본격화 되었는데 식민지군을 몰아낸 시점은 1983년이고요.
      미국의 건국절인 독립기념일은 1976년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여 해방된 1983년을 독립기념일로 얘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 좀 해보세요.

    • 늙은도령 2016.08.27 01:35 신고

      원래 친일파의 후손들은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역사적 사실과 증거들을 들이대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친일파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없습니다.
      박근혜는 그런 것조차 모르고요.

  2. 금요일 2016.08.16 06:53

    역사왜곡질은 이젠 고만좀 하시지.. 책도 읽고 공부좀 하셨다는 분이면 임시정부설립과 건국은 다르다는걸 잘 아실텐데... 현 정권과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뻔히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공격하는건 양심이 괴로운일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6.08.16 07:23 신고

      본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넘어 박근혜가 주장하는 건국절의 논리도 모르네요.
      그것부터 알고 숙지한 다음에 댓글을 달면 답해주리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이병도부터 시작해 최근에 연구까지 들여다 보고 쓴 글이라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구절이 단 하나도 없는데... 이를 어쩌나?

      앞에서 말했듯이 박근혜와 이영훈이 주장하는 건국절 개념부터 공부하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6.08.16 08:26 신고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자가 이논란을 일으켰다는것이 더 문제입니다

    • 늙은도령 2016.08.16 15:53 신고

      조직적인 것이지요.
      뉴라이트가 친일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4. 참교육 2016.08.16 16:04

    역사 공부 시간에 땡땡친 모양입니다. 숙명여대는 이런 멍청이도 졸ㄹ업시키는가 봅니다. 고발뉴스를 보니 3.1운동 때 손에 들고 있었던 건 태극기가 아니었나라고 했더군요. 국가도 없는 데 국기는 웬.... 참 대단한 대통령입니다.

    • 늙은도령 2016.08.16 17:37 신고

      친일파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들에게 광복절과 안중근은 뼈에 가시 같은 날이며 존재이지요.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종종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일반의지가 오직 공동의 이익만을 지향하는 데 반해, 전체의지는 사적 이익을 따르며 다수의 특수한 의지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특수한 의지들 가운데 일단 지나친 부분과 모자라는 부분이 서로를 상쇄하고 나면 차이들의 총합으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위의 인용문은 루소가 《사회계약설》에서 ‘일반의지’가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입니다. 루소는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모든 불평등의 기원을 수천 년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심화시키는 사회구조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인간을 선량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는데 “사회가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고·노예 상태로 만들며 불행으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런 불평등을 타파하려면 사회혁명(프랑스혁명은 루소에 사상적 기반이 있다)을 이끌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일반의지’입니다.



루소는 완전한 평등을 지향하는 일반의지에 기초한 ‘사회계약’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면(루소는 계몽의 힘을 너무 믿었다) 모든 불평등이 사라져 인간은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자연상태(그에 준하는 사회 또는 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결성도 금지됩니다. 모두가 선량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기 때문에 구태여 정치적 조직이 필요없게 됩니다. 이것이 마르크스에 이르면 ‘능력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는 완전평등의 ‘자유의 왕국’으로 발전합니다.



이밖에도 다른 철학과 사상의 기원이 있지만 진보좌파의 신념과 가치, 도덕의 근간은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보좌파의 최종 목적은 완전한 자유입니다. 결과의 평등은 완전한 자유로 가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나 혁명의 목표일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변증법적 발전의 최종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평등에 기초한 자유입니다. 이런 사회를 진보좌파적 의미의 유토피아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을 거쳐 양자역학이 일반화되면서 불확실성을 거부하는 변증법(근대물리학과 진화론의 결과물)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가 밝혀졌지만, 진보좌파의 신념과 가치, 도덕은 민주공화국의 핵심으로 자리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에 녹아있으며, 역사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내천과 홍익인간까지 이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사는 세상’도 여기에 근원하고,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인 세상’도 마찬가지의 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공산주의적 사상을 전파한 예수의 가르침보다 선교에 의한 세력 확장에 방점을 찍은 바울의 가르침을 따름)와 손잡은 친일파 중심의 뉴라이트(신자유주의 우파)가 조선을 넘어 한반도의 역사를 폄하하고 왜곡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창극의 동영상은 뉴라이트의 세계관이 완벽히 녹아있는 정수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이조 5백 년 동안 허송세월을 했기에, 하나님이 일제식민지라는 시련을 주었지만 미국의 도움으로 해방됐고, 친일 경력이 있지만 윤치호 같은 기독교도 덕분에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공산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식민지근대화론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한민족과 조선(이들에게는 이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친일파에 대한 면죄부,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찬양, 친미와 친일에 뿌리가 있는 극단적인 반공, 독재시대의 경제성장에 대한 예찬 등으로 이루어진 뉴라이트의 핵심이 문창극의 동영상에 녹아 있습니다.



이중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단적인 반공, 친일파의 면죄부인 독재시대의 경제성장 예찬이 황교안에게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던 홍익인간과 인내천의 애민사상 및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향한 진보좌파적 가치들을 철저히 배척하고 탄압하는 사상적 기반을 이룹니다.





부의 불평등과 결과의 차별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온전하게 녹아있는 박근혜의 ‘줄푸세’가 대한민국을 비정규직과 반칙과 특권이 넘쳐나는 보수 반동의 나라(반민주공화국)로 만들려면 문창극과 동족이자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판사 임용을 앞둔 사람들에게 사상 검증을 자행한 국정원처럼, 모든 국민을 잠재적 빨갱이로 보는 공안적 시각은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과 함께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두 가지 핵무기입니다. 여기에 가장 폭력적인 기독교 근본주의까지 장착한 황교안은 디지털 전체주의를 자행할 적임자입니다.



P.S.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아날로그 전체주의(푸코가 정형화한 벤담의 파놉티콘적 독재, 모두를 감시하는 것)였다면, 박근혜의 줄푸세는 디지털 전체주의(푸코의 일괄감시 개념과 아감벤과 낭시의 추방 개념이 더해진 바놉티콘적 독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인데, 박근혜가 사물인터넷에 매달리는 이유도 디지털 전체주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박근혜가 이 개념을 알고 추진하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목요일. 2015.05.28 16:12 신고

    이 나라는 진정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6:55 신고

      민주주의는 폭이 너무 넓어서 아무나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과두정치에 가깝습니다.

  2. 로널드 2015.05.28 16:34

    이 글은 교묘한 물타기입니다. 민주주의를 진보좌파와 연결하고, 그것을 규정한 헌법을 인내천 사상에 붙이셨습니다. 그런데 인내천이니 홍익인간이니 할 때 우리 무슨 시대 살았습니까? 우리 왕조국가에 살지 않았습니까? 또 동학이 일어설 때 그들이 성공했으면 민주공화국을 건설했을까요?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온 것입니다. 인내천과 민주주의, 헌법을 연결 할 시도 같으면 기독교가 반동이라는식의 글을 쓰는게 이상한 거죠. 이건 이중잣대입니다. 유리하고 좋은건 민족사상과 민주주의에 가져다 붙이고 미국이 가져다 준 민주주의라는 팩트는 무시하고 근본주의 기독교와 친일을 묶는것. 아이러니죠.

    그리고 반공, 그게 진정 나쁜가. 이걸 생각해 볼 필요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은 성선설에 기초한 것 같은데 인류가 진짜 선하고 유토피아 완성시킬 수 있었으면 소련은 왜 망했을까요? 북한은 왜 저따위 나라가 되었습니까? 현실은 냉정하고 많이 인정해가봐야 사민주의정도가 한계입니다. 인간 역사가 짧게는 수천년 길게는 수만년입니다. 그 동안 한번도 그런 신적 지성을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이백년 삼백년 뒤라고 크게 달라질까요? 반공하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잘못된 것처럼 기술한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봅니다. 또 기독교와 친일을 엮는 것도 물타기입니다. 3개 대표 종파 중 친일 안한 곳이 없고 가장 반일 한 곳이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는 반공노선 때문에 보수와 같이 가는것이지 친일을 옹호하기 위한게 아닙니다. 유관순, 김구, 안창호, 이승훈, 함석헌, 이준, 전덕기 같은 사람들이 친일파인가요? 아니면 조선 인구의 1.8% 밖에 안되던 시기에 3.1운동에서 22% 이상 수감된 개신교도들이 친일파인가요? 교회는 반공보수지 친일옹호가 아닙니다. 특별히 기독교 근본주의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문창극 발언은 그 사람의 지혜가 모자란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한 신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신이 일제시대를 허락한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문창극씨는 그 뒤 이야기를 안했죠. 일본이 패망하고 원폭을 맞은 것은 신의 심판이라는 말을 안한게 실수입니다. 사람들은 일제가 하늘의 뜻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할 뿐 일본이 신의 심판을 받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죠.

    • 늙은도령 2015.05.28 17:14 신고

      글을 제대로 독해할 능력이 없는 것 같네요.
      홍익인간과 인내천 사상이 진보좌파의 가치와 신념, 도덕과 일치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에 녹아들었다는 것인데, 왠 민주주의의 탄생과 시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고대 아테네에서 나왔지만, 현대의 민주주의에 들아가 있는 다양한 사상적 기반은 서양의 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체제도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전체주의, 자유방임주의적 요소들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없는 이유는 맹자도 민주주의와 동일한 개념을 발전시켰고, 공자의 인 사상도 민주주의의 정신과 관통합니다.
      민주주의는 평등과 자유, 관용과 정의, 공존과 공평 등이 혼합된 것이지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가 왕정국가였지만 지금보다도 왕의 권력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았고, 실제 어떤 왕도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면 쫓겨났습니다.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에게 말 한 마디 못하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이지만, 조선시대에는 환관마저 왕에게 직언을 했습니다.
      무엇을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지 일부의 편향된 얘기만 듣지 마십시오.
      기독교 운운 하는데 천주교가 더욱 많이 박해받았고, 독립운동과 함께 했습니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와 기독교 전체를 비교하십시오.
      기독교에도 우파가 있고 좌파가 있습니다.
      글을 정확히 읽고 댓글을 다셔야 제대로 된 토론이 가능한데, 님은 이미 편향된 생각으로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습니다.

      원폭을 말하지 않은 게 실수라면 당신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이군요.
      정말 무서운 소리 하고 있네요.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 했는데 정말 악마 같은 소리네요.
      성경부터 제대로 읽으시죠.
      예수는 성전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들에게만 단 한 번 화를 내며 성전에서 쫓아냈지만, 공적 생활 3년 동안 늘 사랑과 평화, 공존을 설파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온 것도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보다 큰 사랑은 없었는데 원폭을 신의 심판이라고요?
      정말 무섭고 악마같은 생각이네요.
      기독교 근본주의 우파들이 왜 신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당신의 댓글에 가장 잘 나와 있네요.

      그리고 성선설이요?
      루소의 일반의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의 철학을 설명한 것과 성선설을 동일시하면 왜 혁명이 필요하고 부의 불평등이 왜 일어납니까?
      이 글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글입니다.
      왜 부와 권력, 기회, 성공 등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는지, 예수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천국에 가려면 낙타가 바늘을 통과할 만큼 어렵다고 했는데, 뜬금없는 성선설이라니요.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면 예수와 바울을 따로 분리해서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청교도 정신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말로 있었던 개념인지, 아니면 베버가 오인한 것인지, 왜 루터와 칼뱅은 국가와 손을 잡았는지, 칼뱅의 예정설에 어떤 신학적 오류가 있는지, 미국의 보수 반동과 손잡은 신보수주의자들이 왜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에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일정 수준의 지식이 쌓이면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3. 로널드 2015.05.28 18:37

    이글은 미국과 자본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동일선상에 두었고 우리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내천, 홍익인간 정신 등을 엮었습니다. 저는 그게 이상한 결론이라는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물려받았냐는 겁니다. 홍익인간, 인내천 사상이 진보좌파의 가치와 신념, 도덕에 일치한다는건 엄연히 선생님 생각이죠. 저는 그런 도덕과 신념의 바탕이 되어 있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왜 시작을 해본적도 없고, 저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 선거 때 마다 이슈인 국가인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의 선봉에 서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것이고요.

    서양의 사상만이 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고는 하나 우리의 사상이 민주지표를 따라간 것이라는 것은 후세의 해석일 뿐입니다. 정작 주창자도 그런 생각을 안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해봤습니까? 단군왕검도 군주고 고조선도 고대왕조국가입니다. 공자 맹자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신중국 이후 공자는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배척 받은 인물입니다. 공산주으의 적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공자의 인이나 군군신신부부자자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지 누가 공자를 민주주의라고 평가하나요?

    그리고 천주교 독립운동이요? 천주교는 일제 초기부터 일제에 충성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을 담당하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봐주는 것 까지 금지했고, 신민회 해산의 원인이 된 105인 사건의 단서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성당내에서 얼마 반대도 없이 허가했죠. 아예 로마 교황청이 공식 허가를 했습니다. 천주교도로서 항일한 사례? 만주 등지에서 많이 했죠.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대표 항일인것처럼 말하는 건 거짓말이죠. 왜냐하면 독립 후 천주교의 친일사례 때문에 천주교가 지지를 별로 받지 못했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자 민주화와 국민의 편에 선 것으로 해석이 많이 되니까요.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교회 내에서 복권된 것도 1990년대에 와서입니다. 천주교가 더욱 박해 받았으면 31운동 때 천주교도는 개신교도 보다 많았을 텐데 어디있고, 대표적인 천주교 독립운동가는 왜 이렇게 적습니까? 개신교가 신사참배 반대해서 걸출한 순교자들 낼 때 천주교는 관련 인사가 얼마나 있나요? 결과적으로 볼 때 역사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알고도 거짓말을 하고 계시다는 것인데 만일 알고도 거짓기술을 하셨다면 이런 글 쓰실 자격이 있는가요? 제가 편향된게 아니고 선생님이 편향된겁니다. 그저 댓글들을 읽고, 혹은 지금의 반개신교 감정에 편승해서 이런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주장이 아닙니까?

    기독교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기독교도 공산주의에 참여 할 수는 없습니다. 좌파와 공산주의를 분리한다는 점이 독특 할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해 맑시즘에서 오는 공산주의 운동은 기본적으로 신을 반대하기 때문에 교회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교회가 성악설에 기초하기 때문에 인간만의 유토피아 건설은 불가하므로 지지 받을 수 없는겁니다.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대교회의 공산주의는 '성령'이라는 신적 매개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고요. 그런면에서 예수가 공산주의적 성향을 띄었다는 것도 정확한 지식을 알지 못한 채 기술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확히 지적하자면 그리스도교 내 진보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남미의 해방신학이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크리스트교는 신없는 유토피아, 맑시즘, 레닌적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구절 앞에는 첫째는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취해서 받을찐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황교안을 이해 할 수 없다면 이게 자기 유리한 것만 가져다 쓰는 것이지 뭡니까?
    예수가 시킨 대로 하는 것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면, 학교선생님이 시킨대로 하는 자도 선생님의 근본주의자고, 선생이 가르친 것 중에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말만 뽑아서 쓰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그리고 성전에 있던 사람은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라 로마 황제가 그려진 우상숭배적 화폐를 성전에서만 쓸 수 있는 문양없는 돈으로 바꿔주던 자들과, 억지로 흠을 붙여 자신들의 짐승을 사게 만들던 자들입니다. 예수 공생애 3년간 사랑과, 평화, 공존을 선언했다고요? 어찌보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예수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신국,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 평화, 공존을 이야기 한 것이죠. 선생님을 가톨릭 교도로 알고 있는데 성경은 한번 안 읽으신 것 같은 분같습니다. 양 교회가 교리 해석이 달라도 이 부분이 다르지는 않는데 저에게 성경을 제대로 읽으라 하시니 이해 할 수 없군요.

    문창극이 일본의 한국 지배가 신의 뜻이라고 말한 것이 기독교 근본주의이며 반민족적인 일로 매도 받아야 한다고 비판받으면서 원폭이 신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류애의 상실이며 악마같은 이야기라고 비난받는게 공존 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논리에는 일관성이란게 있어야죠. 그리고 신이 사람 마음 속에 있는게 아니라 인류 역사를 지배한다면 아시아에서 600만명 이상 죽인 일본이 신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모든지 잘했어 잘했어 하는게 좋은 부모고 좋은 판사인가요? 자신의 입맛에 맛는 신을 찾거나, 신이 사람들 마음 속에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계관을 이해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 좋은 신이라면 모든 걸 눈감는게 아니라 커리큘럼으로 운행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훈계해야죠. 신마저 정의에 눈 감기를 원합니까? 다른 글에 본인을 천주교인으로 언급하셔서 그런 줄로 압니다만 하느님이 사람 맘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제3자로써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단적 이신론자가 아니고서야 왜 신의 정의로운 심판을 그릇되고 악마적이라 하십니까? 링컨 대통령 연설에 노예노동으로 쌓아 올린 부가 다 무너져도 신의 심판은 정의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구약을 인용한건데 그 사람도 기독교 근본주의자입니까?

    그리고 낙타 바늘귀 이야기가 성생님께서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리스도교(이점에서는 가톨릭까지 포함해서) 문화를 잘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저건 부와 권력, 기회, 성공 등이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세상에서 가질 거 다 가진 사람들은 신을 찾지 않기 때문에 멸망길로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가리켜 부정한 창녀, 세리 같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비난하자 예수는 말하기를 병든자에게라야 의원이 쓸모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인 즉슨 너희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병든 줄 모르고 의사인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고, 이들 창녀나 세리같은 자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알고 나에게 나아오니 내가 구원할 것이란 말입니다. 성서적 지식을 자기 편한대로, 혹은 어느 공산주의 서적에서 읽어서 기술하면서 그게 무슨 주류 해석인것처럼 자랑하니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예수와 바울을 분리해서 공부하는 것도 근대 역사주의적, 비평성서학적, 자유주의 신학적 관점에서나 성립하는 것이지 원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주교는 1900년대 초에 이미 교황에 의해 '근대주의'라는 이름으로 해당 신학을 이단으로 공표했고 개신교 내에서도 자유주의가 주 노선은 아닌데 예수와 바울을 분리해서 공부하는 것을 당연한 것 처럼 이야기하는게 맞는 걸까요? 불교가 궁굼하면 스님에게 묻고, 기독교가 궁굼하면 신부나 목사에게 물어야지 자신 편한대로 기술하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투성이의 이야기를 하고는 소양이 쌓인 후 찾아오라니 여기에 무슨 좋은 것이 있겠습니까? 쭉 읽어보니 진보논객이신 듯 한데 저도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고 복지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진보고 저 또한 신자유주의를 싫어합니다. 고용을 유연하게 만들어 국민들이 생각하게 만들기 보다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 스스로 돈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뉴라이트의 문제를 확대시켜서 그 큰 근본주의 기독교와 엮고, 예수의 의도나 성서에 대한 지식은 없이 기독교 세계 변두리의 주장으로 숲을 해석하려는 시도, 반공과 친일을 구분 못하고 가톨릭의 일제 수난사 같은 거짓 역사 자료로 이야기를 돌파하려는 점은 정말 이 원글과 덧글의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8:50 신고

      내 분명히 말하리다.
      글부터 정확히 읽고 댓글을 다십시오.
      당신은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경직돼 논리를 전개할 뿐이어서 정치학적으로도 저급한 수준의 글입니다.
      공부를 제대로 한 다음에 답글을 다십시오.
      당신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철학, 사상의 발달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요.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도 형편없고요.
      기본적인 지적 수준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토론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니 기본적인 지식부터 갖춘 다음에 오십시오.
      공자, 맹자, 묵자, 한비자, 노자, 장자 등등 제가백가에 대해 기본적인 것이라도 읽고 숙지하면 답해줄 테니.

      민주주의의 기원을 말할 때 과거의 철학부터 찾아가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공산주의의 전형이 실현된 것은 천주교 초기공동체만이 유일했으니 공산주의의 근원도 그렇게 오래됏습니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로 고대의 철학에서 찾습니다.
      어떤 체제도 그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그들의 신화가 상당 부분 조작됐다는 것도 함께 읽어보고, 미국의 보수 반동을 이끌었던 주역이 좌파에서 전향한 신보주의자임도 공부하시고, 그들이 어떤 문화전쟁을 진행했는지도 찾아보시고, 미국이 어떻게 세계를 파멸로 이끌었는지도 찾아보시고, 당신의 눈을 제대로 열어줄 것들은 널려 있으니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글을 정확히 읽고 먼저 이해한 다음에 댓글을 달아요.
      기독교 근본주의가 왠 예수와 연결되냐고요?
      글에서 바울이라 했는데 왠 예수?
      글부터 제대로 읽고 숙지하는 것이 먼저고 예의입니다.

      어떤 기독교도 공산주의가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구체적인 근거를 대십시오.
      마르크스가 종교가 아편이라는 말만 듣고 어림진작 말고요.
      기독교의 종류가 얼마나 많고 기독교의 여러 분파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가와 공동체 건설까지 나왔는데 뭔 소리를 하는지?

      거듭 말하지만 당신의 지식으로는 나와 토론이 안 됩니다.
      당신은 댓글 자체에서도 오류가 있어요.
      기독교와 천주교에 대한 이해도 형편없고요.
      종말론적 예언을 이용해 기독교 우파가 근본주의자로 발전한 것이니 이것도 더 공부하시고.

      예수와 바울에 대해 수없이 많은 정치종교철학자들이 다루었으니 찾아보시지요.
      당신이 찾아서 읽을 생각만 있으면 넘칠 정도로 많으니.

      참고로 기도교 우파의 복음 같은 책들은 소개해줄 수 있으니 읽어보실 의향이 있으면 알려드리리다.
      기본적으로 종교던 신학이던 사회던 과학이던 철학이던 역사던, 특정 분야를 비판하려면 찬반 양쪽을 모두 습득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사유와 성찰이 깊어지면 양쪽에서 최고에 이른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받는 석학들로 넘어가야 하고요.
      그렇게 해야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생깁니다.

      비판이라는 게 한쪽의 주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함부로 추측하지 마시고요.
      기독교 우파와 근보주의를 비판하려면 기독교 우파와 근본주의에 대해 먼저 공부해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어떤 논리와 기원,역사를 가졌는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는 읽었고 사유했고 노력했으니 함부로 떠들지 마시고.

      마찬가지로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도 수백 권의 경제서적을 통해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쭉 공부했고 공부하고 있으니 이것에 대해서도 함부로 예단하지 마시고.
      미국의 역사와 그들이 세계에 미친 영향에 관한 것도 수백 권이 넘게 읽었으니 비판이 가능한 것이니 그리 아시고.

      이런 글들도 아무 소용이 없음은 당신이 내 글이나 답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나와 토론하고자 하면 각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지적으로 성숙되고 철학적으로 확고해졌을 때 오십시오.
      기본적인 예의와 수준이 되면 그때는 밤새도록 토론합시다.
      이런 시간도 아까운 사람이니 이것으로 답글은 끝낼 생각입니다.


  4. 머무는바람 2015.05.28 18:57 신고

    항상 잘보고 갑니다.

  5. 로널드 2015.05.28 21:17

    어차피 토론을 끌어나가기 보다는 너는 내 상대가 아니니 물러나거라는 식의 짧은 답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지으려 하시니 저도 이 글을 끝으로 그만 두지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살아있는 현실적 문제로 해석한 것이라면 몰라도 학문적이고 기초가 되는 이론적인 선에서 제 이야기에는 흠결이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본래 모순되는 의미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모택동은 공산주의자이며 동시에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동양사상을 몰라서 공자를 배척했겠습니까? 중국이 중국식 프롤레타리아 독재민주주의를 하면서 공자를 비난하고 배척한 까닭이 분명하건만 선생이 스스로 견주어 마오쩌둥 수준이라고 판단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공산주의의 전형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천주교라고 애써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굼하군요. 정교도들이 알면 서운할 겁니다. 그리고 언급했듯 그건 지금의 공산주의와 유사한 것, 교회사적으로 보면 신의 도움으로나 가능했던 이야기지요.

    그리고 본문 중간에 예수와 바울이 언급됩니다.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공산주의적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을 비판한 겁니다. 본문을 제대로 안 읽은게 아니죠. 그런면에서 제게 예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더 예의가 없는 것은 분명 그리스도교와 공산주의가 양립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그렇게 주장했을 것이다라고 어림짐작해서 넘겨짚는 것이 아닐런지요. 소수 기독교도가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게 주류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면 그 얼마나 무모한 행보입니까? 또한 특별히 공산주의자이면서 기독교도인 사람들이 신의 도움 없는 유토피아 건설이 가능 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판단하시나요?

    종말사상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기독교와 가톨릭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게 아니라 선생님 주장이 비주류인거죠. 지금껏 선생님이 주장했던 바늘귀 같은 이야기를 신부님들에게 한번 물어볼까요? 어차피 그렇게 물어본다한들 추기경들에게도 순명하고 싶어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이신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들이 무식한 것이라고 이야기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선생님에게 가톨릭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굼하군요. 타자로써의 하느님을 믿기는 합니까? 참된 가톨릭 신자라면 찔릴 이야기를 해볼까요? 성령의 도움 없이 악한 인간이 결과론적으로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 할 수 있을까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독재정부를 스스로 제거 할까요? 인간사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진짜 신자라면 양심을 속이지는 마십시오. 인간이 악하다면 진보는 수단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누릴 수 있는 수단. 하지만 그것도 허울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선량하지 못합니다.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1%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면 하느님도 그냥 우리를 내버려 두셨겠죠. 아들을 죽일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그럴 가능성이 안 보였으니 구원을 위해 성자를 보냈겠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유토피아를 건설합니까? 양심에 비춰 말해보세요. 그게 가능한 것인지. 말끝마다 성경을 운운하는게 근본주의가 아닙니다. 그냥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뿐이죠. 성경과 교회사를 읽어보십시오. 마침 위에서 언급하신 것 처럼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은 없어요. 기독교 우파가 종말론을 발판삼아 성장했다는건 진짜 짧은 교회사를 가지고 지식을 늘어놓은 것이죠. 종말론이 갑자기 나온 것 처럼 이야기 하시는 건 이상한 겁니다.

    빈정이 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도 한 마디 말을 하고 가겠습니다. 선생님이 온라인 여기저기서 많은 인지도를 가지시고 여러 기사에도 출현하시며 지식이 많으신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감히 한마디 이야기하자면 책을 다독할 때에 주의할 점은 지식을 쌓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다독으로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 삼는 것은 교만의 지름길입니다. 책은 지혜를 얻기 위해 읽었을 때에 깨이는 것이지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 할 때에는 그저 남보다 우월함을 이야기하는데 쓰일 뿐입니다.오늘 날의 토론 자세를 보십시오. 만일 제가 부족하다한들 설명 할 것 같지 않았으면 무엇하러 세상에 보라고 이런 사이트를 만들어 둡니까? 그냥 혼자 생각하면 되지 다음 같은 곳에도 올려두시고. 수준을 이야기하면서 예의를 언급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을 계도하고 싶다면 가르치면 될 일입니다. 또 옳지 않은 정보를 가졌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에 소리는 지르면서 맞지 않는 자와는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모습,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라면서 한쪽으로 아주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선생님 충고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많은 지식을 가졌으되 남의 수준에 맞게 전달하지는 못하며, 지식을 무기로 알되 지혜가 부족하다면 그게 무슨 세상을 바꿀 광야의 소리요 국가와 민족의 씨알이겠습니까. 권위에 찬 보수는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지식과 지위를 무기로 삼고 다른 이를 가르치지 않거나 무시한다면 보수와 다를 것은 고사하고 씨알의 소리로 거듭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까운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어니 회이트 2015.05.28 21:54

      도령님께서 장문의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시는 걸로 보이는건
      모든학문이 독립적인게 아니고 상호 관계속에서 이루어졌단 겁니다
      학문의 역사는 철학 역사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의 전반이 두루 발전해왔는데 님의 글은 정치와 철학이 무슨 관계냐 할정도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22:44 신고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본주의나 원리주의자가 그러합니다.
      종교가 맹신을 요구할 때 가장 잘먹히기 때문에 나온 인지부조화의 전형입니다.

      세상을 망치는 세력과 함께 움직이는 종교가 기독교 우파인데 기본적인 것부터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너무 신경쓸 것 없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도 없고,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하고, 생시몽, 푸리에, 오웬 등도 모르는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합니까?

      로널드라는 사람이 하는 말은 기독교 목사들과 토론하며 수없이 듣고 들었던 얘기들입니다.
      원래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과 얘기하면 늘 이런 식이기 때문에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악마와 천사가 원래 같았다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6. 耽讀 2015.05.29 07:38 신고

    일제강점기 때만해도 기독교는 저항하고, 인민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침레교장로)이 권력을 잡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에서 남하한 근본주의는 반공주의와 결탁합니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습니다. 영락교회(한경직 목사)는 서북청년단과 손잡고 제주4.3항쟁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이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박정희와 조용기, 김준곤 등과 손잡고 철권통치 행사했고, 기독교는 양적 성장을 했습니다.
    기독교근본주의와 반공주의는 동고동락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9 14:47 신고

      일제강점기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까지 일제에 저항했지요.
      일부는 친일부역을 했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저항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와 기독교 근본주의 우파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국가와 거래를 시작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에도 참여해 나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조용기 목사는 제가 나온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담당목사였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성공해 순복음교회까지 발전했습니다.
      저는 순복음교회와 국민일보와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용기의 아들들과 사업을 한 것이지요.

      그들은 이미 종교를 사업화했습니다.
      그렇기에 보수정부와의 거래를 적극적으로 한 것이지요.
      기독교 우파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악마입니다.
      예수를 팔아먹는 자들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의도 예수의 가르침을 호도한 것입니다.
      성경에 자본주의에 딱 들어맞는 예가 두세 개 나오지만 그것은 믿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는데 성경에 나온 글자만 악용해 고리대금업을 하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청교도 정신으로 차용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두 군데, 신명기에 한 군데 나옵니다.
      그렇다 보니 사업적 이유로 공산주의를 부정합니다.
      예수는 철저하게 공산주의적 가르침을 설파했습니다.
      신의 권위는 공산주의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헌데도 기본적인 지식도, 성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자들이 악용하고 있습니다.



  7. 최홍대 2015.05.29 19:39 신고

    황교안은 정말 편향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인것 같습니다.
    게다가 만성담마진이라는 이상한 질병으로 면제를 받은것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29 20:08 신고

      믿을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유신독재와 군부독재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공안 검사를 믿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그는 법무부장관으로도 과한 사람일 뿐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까? 초등학생에서 해외유학생까지 일베로 대표되는 극우의 분출과 기독교와 결탁한 보수 반동의 득세를 설명하려면ㅡ원인을 모르면 해결책도 없기 때문에ㅡ그리하여 상식과 양심, 도덕과 윤리, 정의와 관용, 이성과 지성이 사라진 혼돈의 대한민국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보수 반동의 득세는 역사의 분명한 퇴행이자 역행인데, 어찌하여 돈(권력)과 성공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봉건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계급 차별과 나치 치하에서나 어울릴 인종 혐오와 성적 폭력으로 대체됐을까? 홍익인간과 인내천의 나라가 분열과 갈등, 증오의 나라가 됐을까?



국정원과 군의 대선개입이 종북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 되고, 세월호 유족의 진실규명 요구가 종북세력의 체제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식민지근대화론과 기독교근본주의, 반공주의와 애국보수를 자처하는 뉴라이트의 득세로 건국절 이전의 역사를 폄하하는 것이 가능해졌을까?



이명박 정부의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를 비판한 박근혜가 정권을 재창출하고, 최근에는 김무성이 박근혜의 불통과 무능, 무책임과 대척점에서 서서 차기대선의 선두주자로 떠오를 수 있을까?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의 한축인 새누리당은 연전연승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종편의 폭력과 선동, 왜곡과 호도, 편향과 선정성이 심해질수록 시청률이 올라가고, 지상파3사는 공공성에서 멀어지고 공적의제 선정능력을 잃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도채널은 준종편화의 길로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까? 종이신문의 퇴조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의 영향력은 유지되는 것일까?



공교육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고, 사교육은 중산층 붕괴의 핵심이자 모든 차별과 불평등의 기원으로 작용하게 됐을까? 신분이동성이 줄어들었음에도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복원하기보다 극단의 불평등을 내면화해 자발적 복종을 받아들이면서도, 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 폭력의 원천으로 사용하게 됐을까?



정치권의 타락과 논리의 일관성도 없는 하향평준화가 극복과 개혁의 대상이기보다 보수 반동과 극우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됐을까? 막장드라마의 범람과 성 상품화의 일반화와 저질 문화가 난무하는 디지털 미디어와 사이버 공간이 민주주의의 학습장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보수 반동의 원동력이 됐을까?





사는 지역과 부의 크기에 따른 계급의 탄생, 종교의 세속화와 대형화, 전통과 관습의 붕괴, 세대 간 갈등의 심화, 물질만능과 소비지상주의, 쾌락과 욕망의 비뚤어진 분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파편화되고 표피적인 충동과 유행에 대한 강박적 추종 등등 온갖 질문들과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 대한민국의 보수화를 설명하려면 보수 반동의 정확한 이해부터 필요하다.



필자는 ‘보수 반동의 시대’를 연재하며 좌파의 몰락과 우파의 부상에 대해 다양한 책들을 인용하고 우리와 비교하면서 신자유주의 30년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생각이다. 고리타분해진 진보주의자의 믿음처럼 사실과 진실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 보여줄 생각이다. 



연재를 하는 중에도 추가적인 책들을 공부할 생각이고, 지적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오프라인에서의 노력(건강과 상관없이 7월에 첫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에도 시작할 생각인데, 이 모든 것이 보수 반동의 폭주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양이 늘었다고 생각의 양과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무엇이건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분석의 틀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프레임 전쟁》, 리처드 생크먼의 《우리는 왜 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됐는가》,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존 퀴긴의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 저스틴 폭스의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등을 주로 활용할 생각이다.    



그 시작은 토마스 프랭크의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ㅡ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인용문이 적절할 것 같다. 대한민국의 지배엘리트를 독점하고 있는 미국 유학파의 생각(프레임)부터 꿰뚫지 않으면 보수 반동의 시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P.S.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가 되려면 진보의 가치와 미래의 모습은 유럽에서 찾아야 하고, 현재의 보수화를 이해하려면 미국 보수 반동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은 미국 보수세력의 판박이다. 미국적인 것들(자유시장 자본주의, 기독교 우파, 보수 언론과 연구소, 교육제도, 허리우드, 티파티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사람이 돈과 권력보다 우선되는 세상으로 갈 수 없다. 



필자는 사실 이 작업을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비판'과 '한국 현대사 비판'을 끝낸 다음에 진행하려 했으나, 진보세력의 무능력과 기득권화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순서를 바꿨다. 건강이 좋지 않은 필자가 이 작업을 완수할 수 있으려면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이 절대적이며, 쉬운 언어로 어려운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다. 자, 일단 가보도록 하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5.20 15:57 신고

    저는 요즈음 가끔 역사가 진보 발전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수구세력들이 발호해 역사를 반동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런 경향성은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읿ㄴ을 비롯한 미국 그리고 영국에서 조차 반동이 역사로 회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도래할런지 착잡하고도 답답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20 16:20 신고

      그것에 대해 지금껏 공부해왔는데 하나씩 풀어낼 생각입니다.
      저는 개별 사안을 보수 반동과 묶어서 우경화 경향을 해체하는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7월 달에 지적공동체를 위한 첫 번째 모임을 가질 생각인데, 그분들과 좋은 네트워크를 구축할 생각입니다.

  2. 여행쟁이 김군 2015.05.21 03:37 신고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당~^^

  3. 공수래공수거 2015.05.21 08:49 신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정말 투표를 잘해야 하는데
    왜 선거때만 되면 보수에 표를 주는지 모르겠네요
    보수들의 현란한 속임수에 놀아 나는건지?
    투표를 해서 그 들이 권력을 잡으면 나도 그렇게 될수 있다는
    환상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1 17:59 신고

      그것을 이번 연재를 통해 자세히 밝힐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보수 반동의 성공이 그렇게 만들어놨습니다.


극심한 혼란과 분열로 무정부적 상태에 이른 대한민국의 문제들은 보수우파의 경험과 단절의 삼중적인 모순에서 발생하고 있다. 첫 번째로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극단적인 혼란과 분열은 해방 이후 권위주의와 군부독재 시절에 이룩한 압축성장과 자본주의의 전성시대ㅡ이것도 최근의 연구를 통해 빚의 확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ㅡ에 대한 구보수의 일방적인 향수가 IMF 환란을 극복해낸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들을 부정하면서 발생한다.



또한 IMF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신보수와 구보수 간의 정치경제적 권력투쟁이 경험상의 차이를 드러내며 또 다른 형태의 혼란과 분열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 모두는 4.19운동과 광주민주화항쟁 및 6.10항쟁으로 이어져온 민주주의의 결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IMF 환란을 극복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모두 다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하지만 산업화 세력과 신자유주의자로 나뉘는 이들의 근본적인 경험의 차이는 바우만이 말한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와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와의 차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식민지근대화론과 권위주의적 독재에 대한 구보수의 긍정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민주화 세대의 신보수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들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무섭게 성장한 진보좌파의 세력화에는 공통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구보수는 참여정부의 4대개혁입법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반감을 가진 반면 신보수는 이에 대해 조금은 유연한 편이다. 구보수와 신보수의 차이 중에 나이나 세대를 들먹이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글이미지 인용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 내에서도 이들의 경험적 차이는 다양한 정책과 지향점에서 갈등과 혼란을 야기시켰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위치 변동만 있었을 뿐, 이들의 갈등과 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언론들도 이런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기도 하고, 그들에게 불리할 때는 맹수처럼 달려들기도 한다.



헌데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단절이다. 구보수나 신보수나 할 것 없이 2008년 미국의 금융 대붕괴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인 경제 대침체로 이어지며, 자본주의체제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공통의 경험이 뿌리 채 흔들리는 단절에 직면했다. 그들은 근대이성이 현대성을 이루며 확고해진 무한한 진보와 결과의 낙관론에 노예들이었다.



그들은 세계화의 긍정성을 찰떡같이 믿었지만, 신자유주의 40년의 현실이 극도의 불평등과 지구온난화라는 종말적 현상들로 귀결되자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주가 돼 자신들까지 종말의 위험에 처하게 할지는 몰랐다. 작금의 상황이란 그들이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그들이 찰떡같이 믿어온 것들이 뿌리부터 무너지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행태를 결정해온 기회주의자들이 단 하나의 탈출구도 주어지지 않을 때 경험하는 공황상태와 거의 동일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들을 밀고 나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니 어마어마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들은 후자를 택했고,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자포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처럼.



이 두 권의 책은 연달아 읽으면 현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늘릴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과 뉴턴의 만류인력에 의해 기존 질서와 체제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해야 하고, 다윈의 진화론과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의해 적자생존의 법칙들이 유효해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이란 두 개의 축이 모두 다 무너지고 있다. 정치권력이란 보잘 것 없이 찌그러들었고, 초국적기업과 거대 언론의 도움 없이는 현재의 지위도 유지하기 힘들 정도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좌파 특유의 정책도 복사해서 사용해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과 세월호 참사에 이어, 끊이지 않는 대형 사고들과 GOP 총기난사사건과 각종 폭력사건들이 속출하고, 건축물 붕괴와 초미세먼지의 습격 및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싱크홀과 동공처럼 난개발의 후유증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이들은 현대성의 단절이 가하는 전방위적 압박과 습격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현재의 무정부 상태는 여기에 기인한다. 단순히 세월호 참사 때문만이 아니다. 



구보수건, 신보수건 경험과 단절의 이중적인 모순에서 발생하는 인지부조화에 단기적인 반응밖에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해도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일사분란한 질서의 효력이란 과거의 경험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한국의 우파들이 제왕적 대통령과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을 확보한 상태에서도 국정 동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를 비즈니스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가 비즈니스화 됨에 따라 정부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민영화됐기 때문에 정치 본연의 기능이 상실됨을 깨닫지 못했다. 이런 권력의 민영화는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적독점 집단과 거대 언론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보수우파들이 느끼는 정치권력의 무력함은 자신이 자기 무덤 판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이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보좌파의 가치와 정책들을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끌어다 쓰는 바람에, 선거에서는 승리했을지언정 정작 자신의 정체성이 파괴되고, 갈수록 무력해지는 정치권력의 헤게모니 때문에 실패한 자들이 돼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보수우파는 더 이상 스스로의 논리나 가치로 서있을 수 없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변질됐고, 국가의 공권력을 빼면 사적독점의 집단들과 거대 언론의 도움없이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힘들어졌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이들은 작금의 혼란과 분열을 일소하기 위해 권위주의 독재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초국적기업과 거대 자본 및 족벌언론도 이런 퇴행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방임 시장경제란 국가의 혼란이 크고, 사회적 불안이 클수록 최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현상으로, 신자유주의에 내포된 필연적인 과정이며, 바로 여기서 세 번째 모순이 발생한다.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인 한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혼란과 갈등으로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유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파의 해석이 온갖 논리적 모순과 오류에 빠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TV토론에 나오는 보수우파의 패널들을 보면 시정잡배보다 못한 자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분명 우파의 위기이자 정체성의 붕괴가 분명한 시기이며, 개입주의와 자유방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한국판 시장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은 기회주의적인 땜질식 처방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며, 장기적으로 집권세력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지금보다 더 큰 불법들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국민들에게 극도의 불만을 불러일으키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혁명의 기운으로 폭발할 때 보수우파가 설 수 있을 자리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승리했고 집권했지만 그것이 불안할 정도가 된 것이다. 승자의 역설, 그것이 한국의 보수우파가 처한 정신적 아노미현상이자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의 핵심이다. 문제는 한국의 진보좌파도 비슷한 위기와 모순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다음 글ㅡ언제 올릴지 알 수 없지만ㅡ에서는 거의 전멸의 수준에 이른 한국의 진보좌파의 위기와 해체를 다루면서, 그들의 무능력과 조급함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못지않게 참여민주주의의 위기와 퇴행 및 축소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됐다는 사실을 다루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에서 무정부적 자유주의(미국식 신자유주의)로 퇴행한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완벽하게 제시했던 프랑스혁명이 전체주의의 한 형태인 공포정치로 변질된 과정과 이유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1. 참교육 2014.08.22 07:40 신고

    새누리를 비롯한 우리나라 보수란느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해관계로 방황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친일 혹은 수구 기득권세력이 아니겠습니까?
    보수의 청체성을 찾는다는 것 부터가 웃기는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2 17:54 신고

      새누리당에 있는 자들이 보수우파의 본 모습을 갖추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보수우파들은 합리적인 분들이 많아요.
      저와 이념적으로 많은 토론을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새누리당에 합리적 보수우파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새누리당 내에 있는 악질 친일 부역자 후손들을 걸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진보좌파도 새롭게 구축될 것입니다.
      지금의 진보좌파는 너무 공부도 부족하고 미래 비전도 제시 못하니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2. 새 날 2014.08.22 10:58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3. 태봉 2014.08.22 14:49

    공부 잘 하고 갑니다^^

  4. 영감 2014.08.27 13:48

    세상이 평평하다는 말이 있죠.
    세계 경제가 개방되어서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프리카에도 있고 남미, 아시아 어디든지 있어요.
    그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불가능한 상상의 이념이 되었는데도 우리 민족은 순진한 모양입니다.
    국가가 적정한 통제를 통해 소수의 경제집중을 막아야 하는데
    다국적 거대기업을 제어할 수 없으니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수 없고요.
    친일 부역자를 걸러내려고 하면 더욱 발광하게 되고 서민들만 힘들어질거예요.
    아쉽지만 면죄부를 주고 잊어버리는게 낫습니다.
    나쁜 기억을 계속 가지고 있다보면 정신병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피폐해집니다.
    늙은도령님께서 쓰신 것처럼 신자유주의 경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 진보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7 14:37 신고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허나 완벽한 체제는 없는데 체제를 타락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악질적인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 0.01%밖에 안 됩니다.
      헌데 그들이 우리나라의 핵심부에 있어요.
      그들이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냥 조용히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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